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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창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현창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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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일곱 번째 거부권…기업의 봉건제 언제까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오랫동안 '왕과 신하'의 관계와 다를 바 없었다. 소유지분이 미미한 총수 일가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다수의 일반 주주들은 그저 '납세하는 백성'에 불과했다. 이사회는 총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충성스러운 신하'들로 채워졌고,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주 전체가 아닌 지배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상법 개정안은 이러한 봉건적 지배구조에 '주주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려는 시도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41번째, 한덕수 권한대행 개인으로는 7번째 거부권이 상법 개정안을 향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이 개정안은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운영에 견제를 가하고 일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 대행은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회의 결정을 뒤집었다. 한 대행의 거부 논리는 재계와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온 것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여기에 “일반 주주 보호에 역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상법 개정의의 본질이 바로 '일반 주주 보호'임을 고려하면,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재계는 늘 개혁에 저항해왔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일감몰아주기 규제, 소비자 피해구제 확대 등 모든 개혁조치에 “경영 위축"과 “투자 감소"를 우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도 한국 경제는 성장을 지속했고, 기업들은 적응하며 발전했다. 오히려 개혁의 지연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더욱이 '권한대행'이라는 직무의 무게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권한대행은 차기 정부 출범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민생 현안을 챙기는 '관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국회가 숙고 끝에 통과시킨 법안, 특히 오랜 개혁 과제와 맞닿아 있는 법안에 대해 선뜻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그 역할에 부합하는 모습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혹자는 이번 결정을 '원칙과 소신에 따른 결단'이라 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원칙이 과연 누구를 위한 원칙이며, 그 소신이 시대정신과 얼마나 발을 맞추고 있는지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질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특정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과도하게 귀 기울인 나머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키를 되돌리려 한 것은 아닌가. 한 대행의 논리에서 너무나 익숙한 기득권의 그림자를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 대행의 이번 결정은 당장의 파도를 잠재우는 미풍(微風)처럼 보일지 모르나, 역사는 이를 개혁의 흐름을 거스른 역풍(逆風)으로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번 거부권 행사가 던진 질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성숙한 논의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 대행의 '신중함'이 향후 국정 운영에서는 '시대의 요구에 대한 깊은 통찰'로 발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찻잔 속 미풍이 역사의 역풍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60일 내 새 대통령 뽑는다…급박한 선거 시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급박한 정치 일정이 시작되었다. 정치권은 즉각 선거 체제로 전환하며 짧은 기간 내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차기 대통령 선거는 늦어도 6월 3일까지 실시되어야 한다. 6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먼저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60일 이내 대선 실시를 위해 늦어도 4월 14일까지 선거일을 공고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일은 투표일 50일 전에 공식 확정·공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법정 시한을 최대한 활용해 선거일을 60일째 되는 날인 6월 3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선거일이 6월 3일로 정해질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이틀간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록을 받을 예정이다. 후보 등록이 마감된 다음 날(5월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며, 투표 전날인 6월 2일까지 약 3주간 각 후보들의 전국 선거운동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이 기간 중 재외국민 투표는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세계 각국 투표소에서 실시되고, 국내 사전투표는 5월 29일부터 이틀간 전국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공직자(지방자치단체장 등)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후보자 등록 이전까지 직을 사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광역단체장 등 출마자는 5월 4일까지 사퇴를 마쳐야 한다. 본투표일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14시간 동안 전국 투표가 진행된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 보궐선거에 해당되어 평소 대통령선거보다 투표시간이 2시간 연장된다. 투표가 종료되면 즉시 개표에 들어가 당일 늦은 밤 당선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보궐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즉시 시작된다. 공직선거법은 “궐위로 인한 대통령의 선거에서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임기가 개시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중앙선관위가 모든 개표 완료 후 전체위원회의 의결로 당선인을 확정하는 즉시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어 대통령 권한과 군 통수권 등이 이양된다. 각 정당은 이 같은 법정 일정을 감안해 4월 말까지 당내 후보를 확정한 뒤 5월 초 공식 선거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은 조기 대선에 대비해 약 2주간의 압축적인 경선을 진행할 예정이며, 4월 말까지 대선 후보를 확정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경선 일정은 당내 논의를 통해 주 중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6일 의원총회와 7일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경선 일정을 논의하고 확정할 예정이다. 경선은 공직선거법상 지자체장 출마자의 사퇴 시한인 5월 4일 이전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며, 약 한 달간의 경선 기간이 유력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60일 남짓의 짧은 선거전인 만큼 향후 일정마다 여야 후보들의 연대나 단일화, 정책 대결 등이 빠르게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조기 대선 시작…여·야 ‘대권 레이스’ 본격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주요 대권 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여야 정치권은 곧바로 선거 체제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현재 여야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유력 대선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각 정당에서는 이미 대선 후보 경선 준비에 착수했고,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유력 인사들의 출마 선언과 움직임이 공식 보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 이재명 대표로 후보 단일화되는 분위기지만, 경선을 위해 몇몇 인사들이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먼저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오는 7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사 당원존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는 진보 진영에서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 이후 첫 공식화된 대선 출마 선언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파면 선고 직후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다양한 후보들이 나와 경쟁할 것"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측근에 따르면 당내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이르면 다음 주 초·중반에 공식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등도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없다.​ 한편, 민주당은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 경선 룰을 조속히 확정하고, 후보자 간 공정한 경쟁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당 관계자는 “압축된 일정 속에서 당원과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경선 방식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 국면에서 다수 후보들의 경쟁이 예상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5일 “윤석열 탄핵은 이제 과거가 됐다"며 “오는 60일간의 단기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공식 출마 선언은 다음 주 중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시장직 사퇴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르면 오는 8일 장관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 측 관계자는 “화요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에 사의를 표하고 국민의힘 복당 신청, 출마 선언을 순차적으로 할 것"이라고 전했다. ​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외에도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잇따라 출마 의사를 내비쳤거나 거론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조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안철수 의원은 아직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없으나, 정치권에서는 그의 출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지난 “내가 후보가 돼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이길 수 있다"며 출마 의지를 보여준 바가 있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올해 대선이 열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개헌을 이끌고 3년 뒤인 2028년 물러나겠다"고 밝힌 바가 있어 사실상 출마 의사를 드러낸 바 있다.​ 이외에 원내 소수정당들도 독자 후보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총 8개 원내정당이 존재하며, 민주당·국민의힘 양당 외에 조국혁신당(의석 12석), 개혁신당(3석), 진보당(3석) 등이 각각 당내 후보 선출 절차에 돌입했다.​ 조국혁신당은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며, 당 관계자는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의원을 후보로 확정한 상태며, 진보당에서는 강성희 전 의원이 출마의사를 밝힌 가운데 경선 일정을 진행 중이다. 이들 군소 정당의 후보들은 추후 선거 과정에서 단일화 연대 등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지만, 각 당은 우선 자체 후보를 내세워 조기 대선에 임할 방침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급박한 대선 일정 속에서 각 당은 후보 선출과 전략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가의 안정을 회복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윤석열 파면] 선고 직후 첫 주말, 찬반 집회 ‘대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첫 주말동안 서울 도심 곳곳에서 탄핵 찬반 양측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양측 지지자들은 각자의 입장을 표명하며 도심을 가득 메웠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5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일대에서 '승리의 날 범시민 대행진' 집회를 개최했다. 경찰 비공식 추산 약 7500명이 참석한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환호하며, 헌재의 결정을 '시민의 승리'로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축하의 분위기를 나누었으며, 현장에는 '이제, 사회 대개혁으로!', '윤석열 파면!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등의 현수막이 걸렸다. 축하 떡과 핫도그 등 먹거리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 집회에는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김재연 진보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참석하여 지지 의사를 밝혔다. ​ 같은 시각, 촛불행동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도 약 500명이 모여 '내란세력 완전 청산', '민주정부 건설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완전한 내란 종식과 철저한 개혁을 통해 대선을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반면,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자유통일당은 같은 날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국민저항권 광화문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초기 약 5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참석하였으며, 오후 2시 30분경에는 약 1만8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사기 탄핵 원천무효', '헌법재판소를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헌재의 결정을 비판했다. 전광훈 목사는 무대에 올라 “헌재의 결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헌재의 권위보다 국민저항권의 권위가 더 높다. 앞으로 헌재는 국민저항권으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들은 조기 대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선을 거부하고 사기 탄핵의 진실을 밝혀서 윤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 심판 이후에도 양 측의 입장은 여전히 첨예하게 나뉜다. 탄핵 찬성 측은 헌재의 결정을 민주주의의 승리로 받아들이며, 이를 계기로 사회 대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결과라며, 향후 조기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탄핵 반대 측은 헌재의 결정이 부당하며,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탄핵 사유의 불명확성, 정치 보복성 탄핵, 국정 공백 우려 등을 이유로 헌재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일부 단체는 국민저항권을 발동하여 헌재의 결정에 맞서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법적으로 최종적이며 구속력을 가지므로,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 따라서 탄핵 반대 측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집회 상황은 향후 정치 지형과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라며 “향후 조기 대선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美, 글로벌 관세 폭탄에 삼성·LG ‘직격탄’

미국의 통상정책이 급변하면서 국내 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베트남, 인도 등 제3국 생산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지각변동이 진행되는 중이다. 당장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대표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조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파장은 미국 기업과 글로벌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며, 미국 스스로 자초한 '공급망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6일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연설을 통해 베트남과 인도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각각 46%, 26%의 추가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오는 9일부터 발효되며, 해당 지역에 생산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들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는 자국 내 산업 보호와 중국 견제를 이유로 제3국 생산품에 대한 원산지 기준 강화 및 고율 관세 적용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던 중이었다. 겉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정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해 온 한국, 일본, 대만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Bac Ninh)과 타이응우옌(Thai Nguyen)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운영하며, 전 세계 스마트폰의 약 45%를 이곳에서 생산 중이다. 미국 시장에 출하되는 제품 상당수가 이들 지역에서 조립된다. 이로 인해 관세 인상은 곧바로 제품 가격 상승 또는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수 있다. LG전자 역시 베트남 하이퐁(Hai Phong)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으며, 이곳에서 냉장고, 세탁기, TV 등 주요 가전제품을 생산 중이다. 이번 조치로 베트남에서 생산된 LG전자의 가전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 이번 관세 강화 조치가 가지는 또 다른 문제는 피해가 한국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 생산을 일부 수행하는 애플, 테슬라 등 자국 기업조차도 카메라 모듈, 배터리, 전자기판 등 핵심 부품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라 해도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돼 있는 이상, 부품 단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산지 규제는 자국 기업에도 가격 상승, 공급 불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미국이 디지털 원산지 추적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부품의 국적까지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게 되면, 단순한 조립국 변경으로는 관세 회피가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CHIPS법은 이미 중국산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CHIPS법과 IRA 자체를 폐지하거나 미국 내 생산 의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공급망 국적 기준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미국 내에서도 CHIPS법과 IRA로 인해 창출된 일자리가 이미 공화당 지역구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폐지 주장은 공화당 내부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미국의 관세 강화 조치는 결국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공급망의 '정치적 국적'을 재정의하는 움직임"이라며 “미국의 동맹국들과 주요 기업들이 공동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번 조치는 국제산업질서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격동의 메모리 패권] ‘시장과 기술 다 가진’ 中의 반도체 야망, 삼성 발목을 잡다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장악해온 메모리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밀린 데 이어, DRAM과 낸드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경쟁력을 압박하는 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자국화 전략과 미국의 대중 규제라는 이중 압박은 삼성의 기술력만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3알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의 '텃밭'에 실질적인 균열을 내고 있다. 특히 DRAM의 CXMT와 낸드플래시의 YMTC는 생산 능력, 기술, 가격경쟁력 삼박자를 갖추며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CXMT는 2025년 현재 월 16만 장 수준의 12인치 웨이퍼 DRAM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이는 글로벌 생산능력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직 시장 점유율은 5% 내외에 그치지만 물량 확대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6나노 기반의 DDR5 제품까지 양산하면서, 기존 DDR4·LPDDR4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YMTC는 최근 294층 적층 구조의 5세대 3D NAND 플래시 출하에 돌입했다. 자사의 핵심 기술인 Xtacking 구조를 바탕으로 232단 낸드 기술을 상용화한 데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적층 기술로 평가되는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경쟁사 대비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특히 중국 내수시장에서 이들 기업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탈삼성'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CXMT와 YMTC의 제품은 삼성·SK 제품 대비 10~20%가량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으며, 정부가 지원하는 국산화 확대 정책과 결합되면서 B2B 납품 시장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 공공·산업용 서버 메모리 시장에서 YMTC 점유율이 30%에 근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추격과 함께 삼성에게 더욱 복잡한 변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다.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의 약 28%를 담당하는 글로벌 핵심 거점이지만, 미국 상무부의 규제 정책에 따라 공정 전환과 장비 반입이 제한되고 있다. 2024년 미국은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대해 장비 수출 유예 조치를 일시적으로 연장했지만, EUV, 식각, 증착 장비 등 첨단 공정 설비에 대한 반입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안 공장은 신규 라인 증설은 물론, 기술 업그레이드 속도에서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구조적으로 '미래 대응력'이 떨어지는 공장이 된 셈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최근 CHIPS법 관련 지원금 지급을 두고 조건 재검토에 들어갔다. 당초 삼성전자가 받을 예정이던 최대 64억 달러의 보조금은 2024년 말 기준 47억 달러 수준으로 조정됐으며, 2025년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법안의 전면 재협상 방침을 내세우면서 지급 자체도 유동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의 글로벌 생산전략이 정치 환경에 따라 직접 영향을 받고 있는 대표 사례다. 물론 삼성전자는 여전히 DRAM, 낸드, HBM 등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묻는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걸도 정진하며 현재 자급률은 약 25% 수준까지 끌어 올린 것으로 조사된다. 정부 주도의 조달·보조·시장통제 수단을 통해 사실상의 자국 중심 공급망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미국은 CHIPS법, IRA 등을 통해 자국 내 생산 유치와 동맹 중심 공급망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양국 모두 '중립' 혹은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삼성의 전략은 전환이 불가피하다. 시안 공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미국·인도·동남아 중심의 글로벌 생산망 재편에 나셔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지정학과 외교, 산업 전략에 맞춘 생산 구조와 고객 파트너십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한 반도체 관계자는 “지금은 기술이 아닌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며 “삼성은 '기술 중심의 제조사'에서 '공급망 중심의 전략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끝] 강현창 기자 khc@ekn.kr

트럼프 상호관세 폭탄, 수출 한국 강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 세계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특정국에는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이를 '경제 해방(Liberation of American Trade)' 조치라고 명명했다. 한국은 상호관세 대상국으로 분류돼, 주요 수출 산업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즉시 시행됐다. 백악관은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역사적 조치"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멕시코 등과 함께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됐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오전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전례 없는 통상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업종별 피해 분석과 외교적 해법 마련을 병행하라"고 지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는 미국 통상대표부(USTR)와의 접촉을 확대해 일부 품목에 대한 예외 조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미 수출 품목이자 최대 영향을 받는 업종이다. 2024년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수출은 약 81만 대로 전체 수출 차량의 28%에 해당한다. 25%의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차량 1대당 최소 400만~600만 원의 비용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현지 공장의 가동률 확대를 검토 중이다. 철강과 기계류도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다. 한국산 철강은 2018년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연간 무관세 수출 할당을 받아왔으나, 이번 조치로 모든 수출품에 대해 25%의 관세가 적용되며, 추가 파생 품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2025년 1분기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6% 감소했다"고 밝혔다. 기계·금속부품 업계도 미국 수주 일정 재조정과 가격 전략 수립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은 이번 관세 부과 1차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공급망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추가 조치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석유화학과 섬유, 플라스틱 등 중간재 산업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 완제품 제조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한국산 제품 수입을 줄일 경우, 수요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섬유산업은 대체 공급국이 많은 만큼, 관세 인상은 곧바로 수출 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중견 부품업체들은 대응 여력이 제한돼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부품업계는 공급 계약 재협상, 납기 연기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부품사들은 거래선 다변화와 환차손 보전 등 정부 차원의 세부 대책 마련을 요청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도 논평을 통해 “상호관세 정책은 한미 양국 간 무역뿐 아니라 글로벌 통상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라며 “양국 간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한 정책 조율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업종별 영향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긴급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자동차·철강·기계 업종에 대해 수출 보험 확대, 긴급 금융지원, 수출시장 전환 지원책 등 실질적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부품기업 대상 긴급 경영안정자금 투입을 예고한 상태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CJ CGV, 784억 날린 ‘극장 투자 참사’에 미국도 주목

CJ CGV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극장 투자 실패 사례가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지역 매체 SFist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엔터테인먼트 전문매체 버라이어티 등은 1일(현지시간) 일제히 CJ CGV가 현지 극장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수백억 원의 손실을 입고 철수한 과정을 집중 조명하며 “애초에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사업 실패를 넘어, 계약 회피를 위한 꼼수와 법적 소송까지 이어진 '총체적 부실'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CJ CGV는 해당 사실에 대해 국내 언론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사업을 정리했지만, 미국 법원 판결과 지역 보도 등을 통해 구체적인 경위가 뒤늦게 드러났다. 총 손실은 최소 5350만달러(한화 약 784억 원)에 달하며, 실제 영업 손실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극장은 샌프란시스코 도심 1000 Van Ness Avenue에 위치한 AMC 1000 건물 내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CJ CGV는 이곳을 2018년 인수해 4DX, IMAX 등을 도입하며 리모델링에 착수했고, 팬데믹 여파로 공사가 지연된 끝에 2021년 9월 'CGV 샌프란시스코'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하지만 극장이 들어선 지역은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도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꼽히는 텐더로인(Tenderloin) 인근이었다. 노숙자 밀집과 마약 거래 문제, 범죄율 급증으로 인해 현지 관광청에서도 야간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곳이다. 팬데믹으로 도시 전반의 공실률이 치솟은 상황에서 고급 관람 경험을 내세운 CJ의 전략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 언론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CGV 샌프란시스코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지적하며, 지역 광고나 마케팅도 거의 없었고, 정작 월세는 30만 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업은 개장 1년 반 만에 사실상 종료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CJ CGV는 장기 임대계약 조기 해지에 따라 막대한 위약금을 물게 될 위기에 처하자, 이 계약을 '회계상 손실'로 남기지 않기 위해 우회 전략을 택했다. 2022년 12월, CJ CGV는 극장이 위치한 건물을 기존 건물주로부터 28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이를 별도 법인(1000 Van Ness LP)에 헐값에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손실 처리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계약 해지를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 건물 자체를 사들였다가 넘기는 식의 회피성 거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손해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을 가중시켰다. SFist는 “이들은 극장을 접고, 건물을 떠안고, 결국 되팔았지만 남은 건 공실 건물과 회피 실패뿐"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해당 건물은 3년째 비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철수 과정에서 CJ CGV는 법률 대리를 맡은 미국 로펌 '파출스키 스탱 지엘 & 존스'와도 분쟁에 휘말렸다. 해당 로펌은 위약금 협상에서 일정 부분을 줄여줬으니 '성공 보수'를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CJ CGV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미국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9월 로펌의 손을 들어줬고, CJ CGV는 약 1070만 달러(약 157억원)를 추가로 배상하게 됐다. 이로써 총 손실은 확인된 것만 784억원에 달한다. CJ CGV 측은 한국 내에서 이 같은 상황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정기공시나 보도자료에서도 관련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CJ가 최근 추진 중인 7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벤처캐피털 펀드 조성 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조기 처분과 은폐를 병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CJ CGV는 이번 사태로 브랜드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룹 전반의 글로벌 투자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때 2만3000원까지 올랐던 CJ CGV의 주가는 최근 4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은 CJ CGV의 실패를 “거대 자본이 지역 이해 없이 밀어붙인 결과"로 해석한다 특히 치안·수요·입지·임대료 등 리스크를 전방위적으로 간과한 채, 'K-콘텐츠 프리미엄'만으로 수익을 기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격동의 메모리 패권] 기술 패권의 상징 ‘HBM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HBM(High Bandwidth Memory)이 글로벌 메모리 업계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 DRAM보다 수배의 대역폭과 소비전력 효율을 가진 HBM은 고성능 GPU와의 병렬 연산 구조에서 병목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메모리 솔루션으로 꼽힌다. HBM은 이제 메모리 업계의 '주력 제품군'이자, AI 생태계의 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상징적 제품이 되었다. 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HBM 시장은 약 9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2025년에는 13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비디아, AMD, 인텔 등 AI 반도체 설계사가 HBM을 필수 요소로 채택하면서, 고객사와의 연계성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는 중심에서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SK하이닉스다. 하이닉스는 2022년 HBM3, 2024년 초 HBM3E 양산에 성공하며 AI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주력 공급사로 자리매김했다. B100, GH200, GB200 등 최신 GPU 플랫폼 대부분이 하이닉스 HBM을 채택하고 있으며, 고객사와의 공동 설계·동기화 개발을 통해 패키징 호환성과 전력 효율까지 최적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었다. 이어 마이크론도 HBM 시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후발주자였던 마이크론은 2025년 3월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을 확정지으며 본격적인 진입에 성공했다. HBM3E 12단 제품은 동급 대비 소비전력을 20% 절감하고, 발열 제어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마이크론은 'SOCAMM'이라는 모듈형 메모리 패키징을 병행 공급하며, 단순 메모리가 아닌 플랫폼 맞춤형 솔루션 벤더로 전략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상태다. 삼성은 2023년 하반기부터 HBM3E 제품을 개발 완료하고 고객 인증을 추진해왔으나, 2025년 3월 말 현재까지 납품이 공식화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HBM3E 초기 제품에서 발열 및 수율 문제, 소비전력 최적화 이슈가 지적됐으며, 이로 인해 엔비디아의 플랫폼에 채택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삼성의 제품 개발 전략 자체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이 고객사와 '공동개발' 방식으로 설계-인터페이스-패키징을 맞춰가는 방식이라면, 삼성은 제품을 먼저 개발한 뒤 고객사에 제안하는 '단방향 납품 구조'를 고수해왔다. 이는 HBM처럼 초정밀 맞춤 설계가 요구되는 제품군에서는 고객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이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관계 경쟁"이라며 “고객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채택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인은 “삼성의 기술력은 여전히 뛰어나지만, 고객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입지를 단기간에 따라잡긴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에게도 기회는 있다. 바로 HBM4다. HBM4는 HBM3E 대비 속도는 60% 이상 빠르고, 소비전력도 개선된 차세대 메모리다. AI GPU 업체들은 2026년부터 HBM4 기반의 차세대 플랫폼(B400 등)을 출시할 예정이며, 2025년 한 해가 공급사 선정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HBM4에서도 삼성전자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HBM4 12단 샘플을 이미 고객사에 제공하고 있으며, 마이크론도 설계 협의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삼성은 HBM4 개발을 가속화하고는 있으나, 핵심 공정인 1c D램의 일정이 지연돼 시제품 제작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당초 2024년 말 목표였던 1c D램 양산은 2025년 6월로 연기되었고, 이는 HBM4 개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삼성전자의 반등은 HBM4를 기점으로 전략을 전면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 공동개발, 플랫폼 최적화, 패키징 역량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HBM 시장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양자 구도로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전쟁은 단기 수주 경쟁이 아니라, AI 시대를 선도할 '기술-고객-생태계 동맹'의 전쟁"이라며 “삼성이 이 경쟁에서 다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그 성패는 2025년 HBM4 공급 전선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MBK-홈플러스 후폭풍…한신평, 사모펀드 리스크 ‘체계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이후 불거진 신용등급 논란을 계기로, 신용평가사들이 사모펀드(PEF)가 대주주로 참여한 기업에 대한 신용도 평가 항목을 보다 명확히 정리해 시장에 제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일 한국신용평가는 '사모펀드의 경영참여 확대로 부각되는 신용도 점검 항목'이라는 제목의 특별보고서를 통해,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한 경우 신용등급 평가에서 어떤 항목을 중심으로 판단하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설명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인 신용도 평가시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어, 사모펀드의 지배구조 참여로 신용도 분석의 체계가 크게 달라질 일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이슈가 집중 조명되는 가운데, 시장에서 자주 오해되거나 혼선이 발생한 항목을 중심으로 평가 논리를 정리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설명의 배경에는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 사례가 있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대규모 배당과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했으나, 이로 인해 홈플러스의 재무구조는 점차 악화됐다. 유통업 업황 부진과 맞물려 수익성이 떨어졌지만, 한동안 A급 신용등급이 유지되면서 “등급이 과도하게 유지됐다"는 시장의 비판이 제기됐다. 일부 채권자는 “사모펀드의 회수전략에 따른 리스크가 등급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신평사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일정 부분 수용해, 사모펀드가 경영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어떤 점을 중점 점검하는지를 항목별로 구체화했다. 한신평은 특히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기존에 인정되던 '유사시 계열지원 가능성'이 사라지는 경우, 신용등급이 조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대표적으로 SK렌터카는 2023년 자체신용도 개선으로 A+ 등급을 부여받았으나, 이후 사모펀드가 최대주주가 되면서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제거돼 2024년 A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바 있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보유한 기업의 신용도를 판단할 때, 사업 경쟁력의 변화 여부와 운영 효율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투자 및 배당 소요에 비해 현금흐름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등을 핵심적으로 들여다본다고 밝혔다. 또 인수금융 부담이나 SPV(인수목적회사)와의 합병 가능성 등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제시됐다. 또 회사채 관리계약서상 '지배구조 변경 조항'에 따라, 최대주주 변경 시 회사채 조기상환 요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로 지적됐다. 실제로 인수 직후 자금재조달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는 사모펀드나 기존 대주주가 유동성 대응 수단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ESG 평가 항목 중 지배구조(G) 관련 요소 역시 모니터링 대상임을 언급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배구조 변경 후 장기간 경영 및 재무정책을 모니터링하는 가운데, 재무전략·계열 구조·경영진 구성·공시 등 지배구조 요소를 점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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