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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박규빈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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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태백 주민들 “석포 제련소 이전은 지역 소멸”…생존권 걸고 대규모 집회

경북 봉화군과 강원 태백시 주민 수백 명이 정부와 경상북도가 추진하는 영풍 석포 제련소 이전에 맞서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대규모 궐기 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제련소 이전은 곧 지역의 소멸'이라며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결사 항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25일 오후 봉화군 석포면에서 열린 집회에서 '봉화·태백 생존권 사수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는 제련소 이전 계획에 대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는 폭거이자 지역 말살 정책"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1970년 설립 이후 반세기 넘게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돼온 석포 제련소가 사라지면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봉화와 태백의 공동체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재한 공동투쟁위원장(봉화청년회의소 회장)은 “석포 제련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이었고 지난 50년간 우리 지역의 생명줄이었다"며 “정부가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만 듣고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도 환경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으며, 제련소 역시 친환경 공정 개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면서 “합리적인 대화 대신 이전과 폐쇄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세우는 정부의 태도에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임광길 석포면현안대책위원장 역시 “이 투쟁은 단순히 제련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내는 싸움"이라며 “우리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주민들은 제련소 이전을 환경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들은 제련소가 무방류 시스템과 대기·수질 개선 설비 등 수십 차례에 걸쳐 환경 투자를 진행해왔다며 현 시점에서의 이전 추진은 환경 개선 목적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공동투쟁위원회는 이날 집회에서 △영풍 석포제련소 이전 및 폐쇄 계획 즉각 중단 △영풍 측의 이전·폐쇄 관련 명확한 입장 표명 및 문서화 △이전 강행 시 주민 생존권과 지역 경제 붕괴에 대한 완벽한 보장 대책 및 환경 원상 복구책 제시 △경상북도 '영풍 제련소 이전 TF팀' 즉각 해체 및 이철우 경북지사의 사과 등 4개의 요구 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중앙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경상북도는 석포제련소 이전을 위한 전담팀(TF)을 구성해 타당성 조사와 종합 대책 수립을 진행 중이어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충돌이 예상된다. 주민들은 앞으로도 지역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방침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KAI 노조 상경 집회…“사장 부재 탓 사업 전반 제자리 걸음 넘어 흔들려 경영 위기”

“경영 정체 책임져라! 사업 차질 각성하라! 내부 혼란 끝장내자! 신뢰 하락 방치 말라!" 2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동조합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소재 한국수출입은행(KEXIM) 본점 앞에서 사장 인선 촉구를 위한 상경 결의 대회를 열었다. 김승구 KAI 노조 위원장은 “지난 7월 1일 강구영 전임 사장이 퇴임한지 100일이 다 돼가지만 사장 인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이는 단순 인사 지연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미래를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은 “KF-21 개발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초도 양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폴란드 사업이 흔들리고 전자전기 사업과 미 해군 사업 수주 건 역시 표류하며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KAI는 최근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과의 대결에서 9613억원 규모의 블랙 호크 성능 개량 사업과 1조7775억원 수준의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 등 총 2조7388억원 어치를 놓쳤다. 노조는 사장 공백에 따른 결과물이라며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완제기 수출 등 KAI의 사업 전반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지급 보증이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남병서 KAI 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사장 자리가 비어있는 탓에 주요 사업 추진과 대외 신뢰 확보가 지연되며 국가 전략 사업과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아덱스(ADEX) 2025가 불과 1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사장 공백 상태로 전시회를 맞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대한민국 항공우주 산업계와 도약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며 “이는 곧 국제적 신뢰를 잃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노조 역시 회사가 문제 없이 수주할 경우 책임있는 자세로 항공기 생산 작업에 임할 것"이라며 “세계 만방에 회사 상태가 이렇다는 것을 적극 알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027년까지 글로벌 방산 4대 강국으로의 진입을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노조 측은 이 대통령이 이와 같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즉시 업무를 수행하고 사업 수주에 앞장서며, 현장을 존중하고 산업 생태계를 꿰뚫어 보는 전문가를 새 사장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KAI 노조는 새 사장이 선임될 경우 △실패한 사업부제 철폐 후 본부제로의 전환 △퇴직 임원 복귀 시도 전면 차단 △정치 줄 세우기·기밀 유출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 등에 화답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KAI 노조는 최대 주주인 수은이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경우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투쟁을 전면 확대하고 대 정부 압박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위원회·국방위원회·세종 정부 청사까지 직접 찾아가 시위를 전개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전면 투쟁에도 나서겠다"고 투지를 밝혔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보잉코리아 “한국 세계4대 방산수출에 참여하겠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역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한다. 한국의 혁신 정신에 입각해 한국 산업계와 함께 계속해서 성장을 이끌어 나가겠다." 24일 윌 셰이퍼 보잉 코리아 사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 소재 롯데호텔에서 열린 '보잉-대한민국 파트너십 75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어 “혁신적 성장과 첨단 제조업, 세계적 수준의 기술 인력을 갖춘 한국은 미래 항공우주 산업을 위한 당사의 주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보잉 측은 지난 75년간 한국과 맺어온 협력의 역사를 조명하고, 한국 산업·기술 역량과 결합해 미래 항공우주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보잉과 한국의 인연은 1950년에 시작됐다.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이 보잉이 제작한 DC-3 항공기를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었고, 같은 해 한국 공군이 F-51D 머스탱 전투기로 첫 임무를 수행하며 방위 분야의 협력도 막을 올렸다. 이후 양측의 파트너십은 상용기와 방산 부문을 아우르며 꾸준히 발전했다. 현재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및 여러 저비용 항공사(LCC)를 포함, 총 270여대의 보잉 상용기가 한국에서 운용되고 있고, 시장 점유율은 60%를 상회한다. 특히 대한항공은 올해 777-9, 787 등 차세대 보잉 항공기 103대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는 대한항공 역사상 최대 주문이자 보잉이 아시아 항공사로부터 수주한 최대 규모의 광동체 주문이 될 전망이다. 방산 부문에서도 △F-15K △아파치(AH-64) 헬기 △치누크(CH-47) 헬기 등 150여 대의 보잉 플랫폼이 대한민국 국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단순 구매에서 나아가 F-15K 프로그램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한화그룹·LIG넥스원 등이 부품 공동 개발에 참여했고, 아파치 헬기는 KAI가 동체를 직접 제작하는 등 공동 생산·기술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 셰이퍼 사장은 한국이 단순한 고객을 넘어 핵심적인 공급망 파트너임을 분명히 했다. 보잉은 2024년 기준 약 3억2500만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부품을 한국 협력사로부터 구매했다. 이는 보잉의 전 세계 공급망에서 5~6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셰이퍼 사장은 “737과 787 생산량이 늘고 있고, 2026년부터는 777-9의 생산도 본격화될 것"이라며 “향후 한국 공급사로부터의 구매액이 단기적으로 50%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보잉 측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인도량은 8월까지 누적 385대로 전년 동기 258대 대비 49.2% 증가하며 가파른 생산량 증대를 뒷받침했다. 보잉은 한국의 R&D 역량에도 주목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 입주한 보잉코리아기술연구센터(BKETC)에는 현재 10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근무하며 차세대 기술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셰이퍼 사장은 “내년까지 BKETC 인력을 약 20% 증원할 계획"이라며 “소프트웨어·인공 지능(AI)·시스템 엔지니어링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과 함께 항공우주 혁신을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출입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 -2024년 3억2500만달러 투자의 의미와 향후 계획은. “투자 개념보다는 한국 내 공급사로부터의 '구매액'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737·787, 내년부터 생산이 늘어날 777-9 등 상용기 프로그램의 생산량 증대에 따라 이 구매액은 향후 50%까지도 증가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대규모 주문이 영향을 미쳤는가. “직접적인 투자 증대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와 오랜 기간 중요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왔고,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향후 추가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LIG넥스원과 협력하는 등 한국 방산업계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잉의 계획은. “앞으로는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고 싶다. 단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공동 개발을 통해 한국과 함께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요컨대 아파치 헬기에서 드론을 발사하는 '런치 이펙트' 같은 기술을 한국과 공동 개발한다면 현재 폴란드·호주·인도 등에서 수요가 높은 아파치 시장에 한국 기업과 함께 진출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민항기 시장에서 에어버스와의 경쟁 전략과 향후 개발 로드맵, 코로나19 시기 해고했던 숙련공 충원 계획은. “판매 목표는 고객사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데 향후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약 4만3000대의 신규 항공기 수요가 예상된다. 이 중 절반은 동남아·인도 등 신흥 시장의 성장에 따른 것이고, 차세대 기종 개발보다는 현재 주문이 2030년대까지 밀려있는 기존 제품군의 생산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고, 엔진 등 차세대 기술의 발전도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하지는 않았고, 일부 조정과 은퇴 인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후 적극적으로 엔지니어를 신규 채용해 현재 엔지니어 인력의 약 50%가 새로 합류한 인원이다." -지난 3월 취임 후 포부와 보잉코리아기술연구센터(BKETC) 인력 증원 계획은. “사장으로서 고객 지원·인재 개발·한국 정부 및 산업계와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BKETC의 인력은 내년까지 약 20% 증원할 계획이며, 주로 AI 엔지니어링·시스템 및 생산 엔지니어링·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 집중해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할 것이다. 또 스마트 팩토리·AI 등 한국이 선도하는 첨단 제조 기술을 보잉의 생산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안을 배우고 싶다. 향후 기술 개발·인재 양성·공급망 고도화 등 다방면에서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한 단계 격상시킬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韓中 세탁기 전쟁] “세탁기, 중국제가 최고”…대륙의 이유 있는 ‘애국소비’

“수입 제품이 우리 것보다 좋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중국 제품의 가성비가 훨씬 좋습니다." 지난 8월 4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중국 가전제품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베이징 시내의 현장 곳곳을 찾았다. '애국 소비' 열풍에 힘입어 자국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만난 하이센스(Hisense) 직원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는 이번 취재의 목적을 관통하는 답변과도 같았다. 중국의 애국 소비는 맹목적인 국산품 사랑이 아닌, 치밀한 현지화 전략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제품 경쟁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매장 곳곳에서 확인한 중국 가전의 현주소는 한국 기업들이 더 이상 '프리미엄'이라는 이름만으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었다. 베이징의 한 대형 가전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하이센스의 '3-in-1' 세탁기였다. 상단에 1kg 용량의 소형 드럼 세탁기 두 대와 하단에 13kg 용량의 대형 드럼 세탁기 한 대가 결합된, 마치 로봇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였다. 하이센스 매장 직원은 “이 세탁기는 동시에 세 부분을 구동할 수 있다"고 설명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속옷, 아기 옷, 양말 등 소량의 빨랫감을 상단에서 각각 분리 세탁함과 동시에 하단에서는 이불이나 많은 양의 옷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어서다. 한 번에 최대 15kg의 세탁물을 용도에 맞게 나눠 빨 수 있는 것이다. 이 제품은 최근 중국 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해당 직원은 “요즘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는 1~2인 가구가 급격히 늘었다"며 “이들은 빨래를 모아뒀다 한 번에 하기보다 소량이라도 자주, 그리고 분리해서 세탁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 세탁기 하나면 여러 대의 세탁기를 놓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 공간 효율성도 높다. 단순히 물리적인 결합에 그치지 않았다. 기술력 또한 인상적이었다. 세탁물의 무게와 종류를 감지하는 AI 기능이 탑재돼 물의 양, 세제 투입, 세탁 시간 등을 알아서 최적화한다. 이 직원은 “수천만 가지의 옷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옷의 재질을 식별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세탁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실크 같은 섬세한 옷감은 스팀으로 부드럽게 관리해주는 식이다. 세탁 성능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그는 “세탁 후 얼마나 깨끗한지를 나타내는 국가 표준 세척도 수치가 있는데, 이 제품은 1.33에 달한다"며 “보통 다른 브랜드 제품은 1.15 수준에 머문다"고 자신했다. 여기에 하이센스의 자체 스마트홈 앱인 '아이자(愛家)'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세탁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원격으로 제어하는 사물 인터넷(IoT) 기능까지 갖췄다. 모터는 무려 12년, 기기 전체는 3년간 품질을 보증한다는 조건은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큰 세탁기와 냉장고를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가서 정말 놀랐어요." 현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자신이 중국 집에서 8kg짜리 LG 세탁기를 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매장을 둘러보는 내내 20kg가 넘는 대용량 세탁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8~10kg, 커봐야 13kg 용량의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는 중국의 세탁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가정이 두꺼운 이불까지 집에서 세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중국의 상황은 달랐다. 현지 직원과 통역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솜이불을 많이 사용해왔고 이는 물세탁 대신 털어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아예 전문 세탁소에 맡기거나 집 근처 코인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집안에 거대한 세탁기를 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한국 가전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매장을 찾은 한 소비자는 “삼성전자나 LG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력으로 미는 25kg짜리 대용량 프리미엄 제품을 중국에 그대로 가져와서 팔아봤자 그 필요성을 못 느끼는 현지 소비자들에게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지 수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고집하는 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현지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오프라인 백색 가전 매장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시장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중국 가전 시장은 하이얼(Haier)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여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였다. 한 매장 직원은 “전 세계 판매량으로 보면 하이얼이 단연 1위"라고 단언했다. 하이얼의 가장 큰 무기는 '가성비'와 '품질'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고장이 적고, 문제가 생겨도 AS가 편리하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얼이 단순히 가성비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이얼은 '카사디(Casarte)'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며 고급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는 “동일한 사양의 제품이라도 카사디 브랜드로 출시되면 디자인과 스크린 등에서 차별화를 둬 2000위안(한화 약 37만 원)가량 더 비싸다"고 전했다. 이는 삼성의 '비스포크 인피니트'나 LG의 '시그니처'처럼, 대중적인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를 이원화 해 시장을 공략하는 고도화된 전략이다. 여기에 샤오티엔어(小天鹅, Little Swan)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중견 브랜드와 샤오미(Xiaomi)처럼 IoT 생태계를 앞세워 가전 시장에 뛰어든 신흥 강자까지 가세해 시장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샤오미는 세탁기뿐만 아니라 스마트 건조대까지 선보이며 집안의 모든 가전을 하나로 연결하는 스마트홈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제품들과는 별개로 오프라인 매장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었다. 특히 시내의 한 '궈메이(Gome)' 매장은 불 꺼진 공간이 많고 먼지가 쌓여 있어 마치 창고를 방불케 했다. 이는 중국 역시 온라인으로 소비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불황 속에서도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강력해 보였다. '이구환신(以旧换新)'이라 불리는 당국의 가전 교체 보조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헌 제품을 반납하면 새 제품을 살 때 일정 금액을 보조해주는 이 정책은 소비자들의 교체 주기를 앞당기고 내수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자국 브랜드의 성장에 든든한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4박 5일 간의 짧은 취재였지만 중국 가전 시장의 저력과 잠재력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애국 소비'라는 말 뒤에는 자국 소비자의 생활 방식을 꿰뚫는 치밀한 현지화, 글로벌 브랜드를 위협하는 기술력, 그리고 시장을 세분화해 공략하는 노련한 브랜드 전략이 숨어 있었다.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는 값싼 제품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한국 기업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강력한 경쟁자의 이름이 됐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하늘 위 숨겨진 위험, 우주 방사선 (하)] 정책·규제를 넘어 ‘안전 문화’로 정착돼야…해법은?

2023년 11월 당시 사무장급이던 대한항공 승무원의 위암 사망이 우주방사선 노출에 따른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되면서 '하늘 위 숨겨진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한국항공운항학회에 투고한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저감에 관한 연구' 논문을 근거로 국내 항공승무원들이 마주한 '우주방사선 피폭'의 실태를 과학적 데이터로 분석하고, 그 원인과 현실적인 저감 방안을 심층적으로 조명해 본다. 기획 내용은 총 3회에 걸쳐 △상편 문제의 심각성 △중편 피폭의 핵심 원인 △하편 구체적인 해법과 미래 과제 순으로 연재한다. 우주방사선 피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할 수는 없다. 핵심은 위험을 인지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리하며, 합리적인 수준에서 저감하는 것이다. 대한항공 현직 기장들이 주도한 연구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3가지 저감 방안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제언을 넘어 항공사의 운항 스케줄링과 비행 계획 시스템에 직접 적용 가능한 실행 계획에 가깝다. ①개인별 북극 항로 비행 횟수 제한 특정 승무원이 고위험 노선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것을 막아 단기간에 과도한 피폭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이는 연간 총 피폭량이 법적 한도에 근접하는 승무원들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조치다. ②고위도-저위도 노선 균형적 배분 이는 보다 정교한 접근법으로 승무원의 비행 스케줄을 하나의 포트폴리오처럼 관리하는 개념이다. 요컨대 한 승무원이 피폭량이 높은 뉴욕 비행을 했다면 다음 비행은 피폭량이 현저히 낮은 방콕이나 시드니 노선에 배정해 월간 또는 연간 누적 피폭량을 평균화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스케줄링 기반의 저감 방안은 이미 대한항공에서도 수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노사는 2021년 7월 협의를 통해 승무원의 비행 노선과 시간을 관리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연간 6mSv에 근접하는 피폭량을 기록한 승무원을 북극 항로가 아닌 노선이나 비행 시간이 짧은 노선에 자동으로 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연구에서 제시된 방안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고 노사 양측의 공감대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③고위도 노선 운항 시 계획 비행 고도 하향 항공기는 일반적으로 공기 저항이 적어 연료 효율이 가장 높은 최적 순항 고도로 비행한다. 그러나 이 고도는 우주방사선 노출 측면에서는 가장 위험한 고도일 수 있다. 연구는 비행 계획서상 고도를 의도적으로 낮출 경우, 방사선량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CARI-6M'을 통해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순항 고도를 단 2000ft(약 610m)만 낮춰도 평균 13.2%의 피폭선량 저감 효과가 나타났고 4000ft(약 1220m)를 낮추면 그 효과는 25.6%에 달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저감 효과가 저위도 지역보다 고위도 지역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가장 위험한 구간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데이터는 항공사와 규제 당국, 그리고 노조 간의 논의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의 이분법적 대립에서 '어느 수준까지가 합리적인가'의 과학적 토론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비근한 예로 4000ft 하강이 연료비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면 2000ft 하강이라는 절충안을 통해 여전히 13% 이상의 의미 있는 안전 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 이는 급진적인 변화 없이도 점진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안전성 향상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고도 조절과 북극항로 우회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고도를 낮추면 공기 밀도가 높아져 항공기 저항이 커지고, 이는 곧 유류 소비 증가와 비행 시간 연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항공사의 운영 비용을 직접적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며, 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환경적 부담으로도 작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영공 폐쇄는 이러한 비용 증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현실에서 보여줬다.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우회하게 된 미주 동부 노선들은 편도 비행 시간이 최대 1시간 40분까지 늘어났고, 이는 고스란히 추가 유류비와 운영비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 문제는 '안전'과 '경제성' 사이의 고전적인 줄다리기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최근의 법적 판결들은 이 저울의 균형추를 안전 쪽으로 상당 부분 이동시켰다. 과거에는 추가 유류비가 명확한 '비용'으로 인식된 반면, 승무원의 건강 문제는 잠재적이고 불확실한 '리스크'로 취급됐다. 하지만 이제 우주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이 구체적인 '산재'로 인정됨에 따라 승무원의 건강 문제는 수백억 원에 이를 수 있는 법적 배상·기업 이미지 실추·우수 인력 이탈 등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비용'이 됐다. 따라서 이제 항공사는 단기적인 유류비 절감과 장기적인 법적·재무적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만 하는 입장이 됐다. 연구가 제시한 데이터 기반의 점진적 저감 방안들은 이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경영 과제다. 정부는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규제를 꾸준히 강화해왔다. 과거 국토교통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이원화 돼있 관리 체계는 2023년 6월 11일부터 원안위로 일원화됐고,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하 생활방사선법)' 개정을 통해 항공사의 책임과 의무가 대폭 강화됐다. 개정된 법률과 그 하위 규정인 '항공운송사업자의 우주방사선 안전 관리 규정'은 승무원의 연간 피폭 방사선량 관리 기준을 6mSv로 명시했다. 이는 과거 '5년간 100mSv'라는 복잡한 기준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명확하다. 또한 항공사는 승무원의 연간 피폭량이 6mSv를 초과할 우려가 있는 경우, 즉시 저감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진다. 법령이 명시한 조치는 △기존 계획된 국제 항공 노선보다 피폭 방사선량이 낮은 노선으로 변경 △탑승 예정 국제 항공 노선 횟수의 조정 △국제·국내 항공 노선을 탑승하지 않는 근무로 변경 등이다. 이는 앞서 연구가 제시한 스케줄링 기반의 해결책을 법적으로 강제한 것이다. 아울러 항공사는 우주방사선 측정 장비나 검증된 평가 프로그램을 사용해 노선별·개인별 피폭량을 정확히 조사·분석하고, 그 기록을 승무원이 75세가 되거나 마지막 운항 후 30년이 될 때까지 보관해야 하며 관련 내용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외에도 승무원에게 우주방사선의 위험성과 안전 관리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이에 관한 건강 진단을 받게 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 강화는 정부 차원의 항공 승무원 안전 관리의 중요한 진일보다. 이는 항공사가 더 이상 재량에 따라 안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의무로서 승무원의 피폭량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저감해야 함을 의미한다. 국내에서의 규제 강화는 긍정적이지만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체계적인 우주방사선 관리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이는 국내 제도가 국제 표준에 발맞춰 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96년 유럽 원자력 공동체(EURATOM) 지침을 통해 항공 승무원을 직업적 피폭자로 간주하고 보호 조치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2001년부터 관련 법규를 시행했고 루프트한자는 연간 피폭량이 1mSv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승무원을 의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독일 항공우주센터(DLR)와 협력해 '항공 경로 선량 계산을 위한 유럽 프로그램 패키지(EPCARD)'와 같은 공식 승인된 계산 프로그램을 사용해 각 비행편의 피폭량을 산출한다. 이 데이터는 승무원 관리 시스템과 직접 연동돼 고피폭 승무원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 활용된다. 또 정기적인 기내 실측을 통해 계산 프로그램의 정확도를 검증하는 등 과학적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힘쓰고 있다. 에어프랑스는 프랑스 항공 당국과 협력해 2000년대 초반부터 '시버트(SIEVERT)'라는 독자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 시스템은 은하 우주방사선뿐만 아니라, 예측이 어려운 '태양 입자 현상(SPE)' 발생 시의 피폭량까지 계산해 실시간에 가까운 위험 관리를 지원한다. SIEVERT 시스템의 계산 결과는 실제 항공기에서 측정한 값과 15% 이내의 오차를 보일 정도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며, 이는 프랑스 승무원 피폭량 관리의 과학적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 사례는 20여 년 전부터 정부와 항공사가 함께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고, 피폭량 계산 결과를 승무원 스케줄링이라는 실질적인 인력 운용에 직접 연동해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대한민국 항공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는 평가다. 승무원들의 우주방사선 피폭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한 승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시작된 사회적 관심은 사법부의 역사적인 판결과 정부의 강력한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대한항공 역시 자동화된 스케줄링 시스템 도입을 약속하는 등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은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규제는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 승무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안전 문화(Safety Culture)'가 기업의 운영 철학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는 항공사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승무원의 건강이라는 변수가 당연하게 포함돼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비행 계획을 수립할 때 운항 관리사는 단순히 최단 거리와 최적 고도를 계산해 연료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항로와 고도의 예상 피폭선량을 함께 비교 평가해야 한다. 만약 약간의 고도 하향이나 항로 변경으로 피폭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추가되는 연료비를 '안전을 위한 투자'로 인식하고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와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가능한 한 낮게(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라는 방사선 방호의 대원칙을 기업 경영에 체화하는 과정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업계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승무원의 안전을 단순한 규제 준수 항목이나 비용 문제로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나 기업의 최우선 가치이자 지속가능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늘길의 안전은 항공기의 안전 외에도 그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HD현대중공업,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다산정약용함’ 진수

17일 HD현대중공업은 (수) 울산 본사에서 8,200톤급 최첨단 이지스구축함 '다산정약용함'의 진수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이 함정은 향상된 탐지 및 요격 능력으로 우리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할 예정이며, 최근 주목받는 한미 조선업 협력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다. '다산정약용함'은 정조대왕급 구축함(KDX-III Batch-II) 2번함으로, 길이 170m, 폭 21m, 경하톤수 8,200톤에 최대 30노트(약 55km/h)로 항해할 수 있다. 기존 세종대왕급 이지스함보다 기능이 대폭 향상된 최신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해 탄도미사일 탐지 및 추적 능력이 2배 이상 강화됐다. 또한, 잠수함 탐지 거리를 3배 이상 늘린 통합소나체계를 적용해 수중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특히,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해상 기반 3축 체계'의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다산정약용함은 시운전과 마무리 작업을 거쳐 2026년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번 진수식은 미국의 조선업 부활을 목표로 하는 'MASGA(Maintaining and Strengthening the Shipbuilding-supply-chain and Growing industrial Advantages) 프로젝트'가 논의되는 가운데 열려 더욱 주목받았다. 다산정약용함은 미국의 이지스 전투체계를 HD현대중공업이 개발한 함정에 성공적으로 통합한 한미 조선 협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이날 진수식에는 안규백 국방부장관, 강동길 해군참모총장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안규백 장관은 축사를 통해 “다산정약용함은 K-조선 기술력과 우리 해군의 의지가 결합된 결정체"라며 “방산 4대 강국을 견인할 국방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 주원호 특수선사업대표는 “미국도 인정하는 최첨단 이지스함 건조 기술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함정 수출 세계화와 MASGA 프로젝트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2008년 '세종대왕함' 건조를 시작으로, 성능이 향상된 1번함 '정조대왕함'을 2024년 11월 해군에 인도했으며 현재 3번함 건조도 순조롭게 진행하며 이지스함 명가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정기선의 통 큰 결단…HD현대중공업 노사, 업계 최고 대우로 2차 잠정합의

​HD현대중공업이 조선업계 라이벌인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을 뛰어넘는 최고 수준의 대우로 2025년 임금교섭 2차 잠정합의안을 마련하며 미래를 향한 상생의 길을 열었다. 이번 합의는 최근 조선업 회복세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기선 부회장의 '통 큰 결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17일 HD현대중공업 노사는 24차 교섭에서 △기본급 13만5000원(호봉 승급분 3만5000원 포함) 인상 △격려금 520만원(상품권 20만원 포함) △특별 인센티브 100% △HD현대미포 합병 재도약 축하금 120만원 등을 골자로 한 2차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는 회사가 제시한 역대 최고 수준이자, 올해 임금 협상을 마무리한 경쟁사들의 타결안을 상회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앞서 지난 7월 24일 타결한 한화오션은 기본급 12만3262원 인상과 일시금 520만원 등에 합의했으며, 9월 10일 타결한 삼성중공업은 기본급 13만3196원 인상, 일시금 520만원, 복지포인트 10만원 인상(90만원→100만원)을 결정한 바 있다. HD현대중공업의 이번 제시안은 기본급 인상 폭에서 두 경쟁사를 모두 넘어서며 업계 최고 대우를 확고히 했다. ​이번 잠정 합의는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수주와 HD현대미포 합병 등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노사 갈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막고,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려는 정기선 부회장의 결단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두 번째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며, “동종사 최고 수준의 이번 합의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지역사회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오는 19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이번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의 이목이 쏠린 투표 결과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이 조선업 '슈퍼 사이클'의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하늘 위 숨겨진 위험, 우주 방사선 (중)] 북극 항로와 비행 고도…피폭의 주범을 파헤치다

2023년 11월 당시 사무장급이던 대한항공 승무원의 위암 사망이 우주방사선 노출에 따른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되면서 '하늘 위 숨겨진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한국항공운항학회에 투고한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저감에 관한 연구' 논문을 근거로 국내 항공승무원들이 마주한 '우주방사선 피폭'의 실태를 과학적 데이터로 분석하고, 그 원인과 현실적인 저감 방안을 심층적으로 조명해 본다. 기획 내용은 총 3회에 걸쳐 △상편 문제의 심각성 △중편 피폭의 핵심 원인 △하편 구체적인 해법과 미래 과제 순으로 연재한다. 항공사에게 북극항로(Polar Route)는 아시아와 북미 동부를 잇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다. 기존 태평양항로에 비해 비행시간을 3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단축하고, 그에 따른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 효율성이 매우 높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6년 8월 국내 항공사 최초로 북극항로 운항을 시작했고, 뉴욕·애틀랜타·워싱턴·시카고·토론토 등 5개 핵심 미주노선에 북극항로를 적극 활용해 왔다. 또한, 최근 5년 간 미국 동부노선의 북극항로 이용률은 평균 65%에 이를 정도로 대한항공의 기재운용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하늘 위 지름길'은 심각한 방사선 노출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우주방사선은 크게 태양에서 오는 '태양 우주방사선(SCR, Solar Cosmic Ray)'​​과 태양계 밖 은하에서 오는 '은하 우주방사선(GCR, Galactic Cosmic Ray)'으로 나뉜다. 지구는 거대한 자기장을 형성해 이 고에너지 입자들의 상당수를 막아내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구 자기장의 힘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지 않다. 적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하고 자기장이 대기로 수렴하는 남극과 북극의 양극 지역으로 갈수록 급격히 약해진다. 따라서, 북극 상공을 비행하는 것은 이 방사선 보호막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같은 고도라고 해도 북극항로를 비행할 때의 우주방사선량은 다른 중위도나 저위도 항로에 비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KAPU) 등 회사 구성원들은 북극항로 취항 초기부터 이 같은 방사선 노출 위험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결국, 북극항로가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은 승무원들의 건강을 담보로 얻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우주방사선 피폭량은 단순히 비행시간에만 비례하지 않는다. '어디를, 얼마나 높이' 비행하는 지가 결정적인 변수다. 대한항공의 자체 피폭 관리 프로그램(CARI-6M)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연구는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런던·로스앤젤레스(LA)·시드니·방콕·뉴욕 등 5개 대표 노선의 지난 2014~2018년 5년간 왕복 피폭선량을 비교했다. 그 결과는 노선별로 극적인 차이를 보였다. 2018년 기준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뉴욕 노선의 1회 왕복 피폭선량은 평균 0.174밀리시버트(mSv)에 달했다. 반면, 대표적인 저위도 노선인 방콕 노선은 0.023mSv에 불과했다. 이는 단 한 번의 뉴욕 비행이 방콕 비행 7.5회에 해당하는 방사선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고도 역시 피폭량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우주방사선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며 공기 분자와 충돌해 점차 에너지를 잃는다. 따라서 대기층이 두꺼운 저고도일수록 안전하고, 공기가 희박한 고고도로 올라갈수록 방사선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연구진은 “고위도(북위 50도 이상) 노선에서 고고도(8000m 이상)로 비행하는 경우 고도가 높을수록, 비행 시간이 길수록 우주방사선에 많이 노출되고 피폭선량은 급격히 증가한다"고 결론 내렸다. 항공사들이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높은 고도로 비행하려는 경향이 결국 승무원들의 피폭량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는 셈이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태양 활동이 활발할 때 오히려 지구에 도달하는 우주방사선은 줄어든다. 이는 '태양의 역설'이라 불릴 만한 현상으로 승무원 피폭 관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변수다. 태양은 약 11년 주기로 흑점 활동이 활발해지는 극대기와 잠잠해지는 극소기를 반복한다. 태양 활동이 극대기에 이르면 강력한 '태양풍'이 발생하는데, 이 태양풍이 마치 방패처럼 태양계 외부에서 날아오는 은하 우주방사선(GCR)을 밀어내 지구에 도달하는 양을 줄여준다. 반대로 태양 활동이 극소기에 접어들면 이 방패가 약해져 더 많은 은하 우주방사선이 지구 대기권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연구진은 태양 활동의 지표인 '태양권 전위(HCP:Heliocentric Potentials)' 값과 노선별 피폭선량을 비교해 이 역설적인 관계를 명확히 입증했다. HCP 값은 태양 활동이 활발할수록 높아진다. 태양 활동이 극대기였던 2014년에 비해 극소기로 향하던 2018년에는 HCP 값이 크게 낮아졌고 이에 반비례해 고위도 노선인 뉴욕과 런던의 피폭선량은 뚜렷하게 증가했다. 반면에 저위도 노선인 시드니와 방콕은 태양 활동주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는 태양 활동주기에 따른 피폭량 변화가 주로 극지방 항로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분석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주방사선 피폭은 예측 불가능한 재해가 아니라 11년 주기로 변동하는 '예측 가능한 위험'이라는 것이다. 항공사는 태양 활동주기를 고려해 극소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고위도 노선 운항에 대한 보다 강화된 안전 조치를 적용하는 등 동적인 위험 관리가 가능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항공승무원 안전관리 차원에서 우주방사선량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예측 가능성이 승무원 피폭 저감을 위한 실질적인 운항정책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영공 폐쇄는 의도치 않은 '거대한 실험'이 됐다. 대한항공을 포함한 많은 항공사들은 기존에 북극항로를 통과하던 미주 동부노선을 알래스카와 태평양을 경유하는 남쪽항로로 우회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비행시간이 편도 기준 1시간에서 1시간 40분가량 늘어나고 유류비가 증가하는 등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극항로 회피라는 피폭 저감 방안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현실세계에서 수치로 드러낸 것이다. 러-우크라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충격은 항공승무원 안전(피폭 저감)과 항공사 비용(유류비 증가)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한 더 깊은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하늘 위 숨겨진 위험, 우주 방사선 (상)] 어느 대한항공 승무원 죽음으로 드러난 ‘공중 산업 재해’

2023년 11월 당시 사무장급이던 대한항공 승무원의 위암 사망이 우주방사선 노출에 따른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되면서 '하늘 위 숨겨진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한국항공운항학회에 투고한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저감에 관한 연구' 논문을 근거로 국내 항공승무원들이 마주한 '우주방사선 피폭'의 실태를 과학적 데이터로 분석하고, 그 원인과 현실적인 저감 방안을 심층적으로 조명해 본다. 기획 내용은 총 3회에 걸쳐 △상편 문제의 심각성 △중편 피폭의 핵심 원인 △하편 구체적인 해법과 미래 과제 순으로 연재한다. 지난 2021년 5월, 대한항공에서 26년 간 근무했던 베테랑 승무원 송 모 씨가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항공업계의 오랜 관행과 승무원들의 건강권 문제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2023년 10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송 씨가 위암으로 사망하자 우주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산업 재해'로 처음 인정했다. 공단 측은 “고인의 누적 노출 방사선량이 측정된 것보다 많을 수 있고, 장거리 노선의 특성상 불규칙한 식생활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송씨의 위암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송 씨는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022시간을 비행했고, 이 중 절반 가량은 우주방사선 노출량이 5배 이상 높아지는 북극 항로를 통과하는 미주·유럽 노선이었다. 이 결정은 항공 승무원들이 비행 중 자연적으로 노출되는 우주방사선이 단순한 근무 환경의 일부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직업적 위험 요인임을 국가 기관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남았다. 항공사는 더 빠르고 경제적인 운항을 위해 더 높은 고도에서 지구의 자전과 바람을 최대한 활용하는 최단 거리 항로를 비행한다. 특히 북미 동부와 유럽을 잇는 노선에서 시간과 연료를 획기적으로 절약해주는 북극 항로는 항공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경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효율성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가 존재했다. 지구 자기장의 보호가 가장 약한 극지방 상공과 대기의 방어막이 얇아지는 높은 고도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인 우주방사선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송 씨의 산재 인정은 항공업계, 특히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에 파장을 일으켰다. 회사 운영 효율성과 승무원의 건강권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주방사선이 불가피한 것인지, 혹은 충분히 관리하고 저감할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해서다. 지금껏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은 업무 환경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법적 판단들은 이러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우주방사선 피폭을 직업병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단일 사례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서울행정법원은 2009년부터 근무하다 2019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전직 승무원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주방사선에 포함된 전리방사선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발암 물질"이라며 “방사선은 최소량으로도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고 누적 방사선량이 특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해당 승무원의 총 비행시간 7672시간 43분 중 4600여시간이 8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평균적인 승무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우주방사선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명확한 '문턱값(threshold)'이 없는 저선량 방사선의 확률론적 위험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법적 판결들은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사들의 기존 입장을 무력화시켰다. 대한항공은 송 씨의 사례에서 “승무원의 누적 피폭 방사선량이 안전기준인 연간 6mSv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했으며, 위암과 우주방사선의 상관 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법원과 질병판정위원회는 단순히 법적 기준치인 연간 6mSv를 준수했는지 여부를 넘어 직업 환경 자체가 질병 발생에 '상당한 인과 관계'를 가졌는지를 판단했다. 이는 항공사의 책임 패러다임이 '규제 준수'에서 '실질적 위험 관리'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2009년 미국 우주 기상 워크숍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항공 승무원의 연간 평균 피폭선량은 3.07mSv로 원자력 관련 종사자 1.87mSv, 방사선 의료 종사자 0.75mSv를 크게 상회했다. 이는 일반인의 연간 선량 한도인 1mSv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2018년 기준 1회 이상 국제선 비행을 한 대한항공 직원의 연평균 피폭선량은 운항직 2.321mSv, 객실 승무원은 2.970mSv에 달했다. 개인별 최고 피폭량은 연간 법적 한도인 6mSv에 근접하는 5.648mSv(운항), 5.392mSv(객실)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객실 승무원의 평균 피폭량이 운항 승무원보다 높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객실 승무원이 특정 기종에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항공기에 탑승하며, 고위도·장거리 노선인 미주·유럽 노선 비행 횟수가 많고, 연평균 비행 시간도 899시간인 조종사들보다 긴 1014시간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피폭 문제가 특정 직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항공사의 인력 운용·스케줄링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시사한다. 항공 승무원이 노출되는 우주방사선은 한 번에 대량의 방사선을 쬐는 급성 피폭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행 때마다 비교적 낮은 선량의 방사선에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만성 저선량 피폭'에 해당한다. 저선량 피폭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 연구진의 입장이다. 10mSv의 방사선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밝혀내려면 500만명, 1mSv의 경우 5억명이라는 비현실적인 규모의 연구 대상이 필요해서다. 그러나 과학적 인과 관계 입증의 어려움이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선량 방사선 피폭의 가장 큰 우려는 암이나 유전적 돌연변이와 같은 '확률론적 영향(stochastic effects)'이다. 이는 피폭선량이 높을수록 질병 발생 확률이 증가하지만 발병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는 특성을 가진다. IARC는 우주방사선의 주성분인 전리방사선을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확실한 물질'이라는 이유로 '그룹 1(Group 1)'로 분류하고 있다. 프랑스 식품환경산업안전보건청(ANSES)를 포함한 제반 연구 기관들도 항공 승무원 집단에서 편평세포암·흑색종을 포함한 피부암과 백혈병 등 특정 암의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ANSES는 문헌과 IARC 논문을 언급하며 태양과 우주방사선이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행 경력 20년 이상, 연간 900시간 이상 비행하는 승무원의 경우 추가적인 암 발생 위험이 최대 140명당 1명꼴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는 일반적인 암 발생 빈도인 평균 5명당 1명보다는 낮지만 특정 직업군에서 관찰되는 분명한 위험 증가 신호라는 분석이다. 최근의 산재 인정 사례들은 이러한 의학·통계적 개연성을 법적 인과 관계로 인정한 결과물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항공사는 더 이상 과학적 불확실성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워졌다. 이로써 항공사는 단순히 법적 한도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소극적 대응을 넘어 예방 원칙에 입각해 피폭량 자체를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입증해야 하는 새로운 법·사회적 책무를 안게 됐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당사는 법에 의해 정한 기준으로 우주방사선 노출량을 철저히 관리 중이며 건강 상담 등 필요한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며 “아울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정을 위한 자료 제공과 역학 조사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고 판정 결과를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영풍 “최윤범 회장, 나쁜 지배 구조의 전형”…고려아연 “적대적 M&A 막겠다”

70년간 이어져 온 동업 관계에 마침표를 찍은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양측의 신랄한 비방전으로 번지며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5일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 행태를 '나쁜 기업 지배구조의 전형'이라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영풍이 투기적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적대적 M&A를 시도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영풍은 이날 배포한 자료를 통해 지난 1년간 이어진 지배력 분쟁의 원인이 최윤범 회장의 독단적이고 전횡적인 경영에 있다고 주장했다. 영풍이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이사회의 무력화다. 영풍은 “최 회장이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이사회 거수기로 활용해, 지난 3년간 수천억 원의 대규모 투자 건들을 이사회 결의나 검증 없이 전결로 집행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받는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약 5600억 원, 국제법 위반 논란이 제기된 캐나다 심해채굴업체 TMC에 약 1200억 원을 투입한 것을 꼽았다. 또한, 40년간 유지된 무차입 경영 기조가 붕괴되며 재무구조가 심각하게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영풍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고려아연의 순현금은 4조 1000억 원 줄고 차입금은 3조 7000억 원 늘어 순차입금이 3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이자비용 역시 1년 사이 4배 이상 급증했다. 아울러 약 2조 5000억 원을 투입한 자사주 공개매수, 해외 자회사를 동원한 575억 원 규모의 상호주 투자 등은 회사의 자원을 회장 개인의 지배력 방어를 위해 남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배당가능이익이 고갈돼 2년 연속 실시하던 중간배당도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영풍은 SM엔터 주가조작 연루 의혹(자본시장법 위반), 순환출자 구조 설계(공정거래법 위반), 대규모 고위험 투자로 인한 회사 손실(업무상 배임) 등 최 회장이 다층적인 법적 책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하며, “고려아연의 지배구조가 바로 설 때까지 법과 원칙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이 “적대적 M&A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적인 여론 호도"라고 일축했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적대적 M&A 공격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기 사상 최대 매출과 10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며, 최근 미국 록히드마틴과의 전략광물 공급 MOU 체결 등 성과를 내세웠다. 이어 “사외이사 의장 제도, 집중투표제 도입 등 이사회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며 지배구조를 선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영풍이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선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비상식적 공격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고려아연은 “3년째 대규모 적자와 온갖 환경오염 논란에 휩싸인 영풍은 석포제련소 정상화에 힘써야 할 때"라며 “다른 기업의 지배구조를 논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게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지난 1년간 양측 사이에 발생한 소송이 24건에 달하는 등 과도한 법적 분쟁으로 경영 활동이 저해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임직원들이 심각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영풍∙MBK의 거짓과 왜곡, 탐욕으로부터 국가기간산업을 지켜내기 위해 임직원 모두가 합심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적대적 M&A 시도를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양측의 갈등이 공개적인 비난전으로 확산되면서, 오랜 동업 관계의 파국을 맞은 두 기업의 경영권 분쟁은 향후 주주총회 등에서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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