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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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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의 질이 삶의 만족도 좌우…고대 연구팀 분석

집 안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주거환경이 세입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난방비 지출이 많을수록 만족도가 약간 올라가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지만, 난방의 질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좌절감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박금령 교수팀이 최근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 및 의학(Social Science & Medcine)'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연구팀은 주택의 난방 적절성이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생활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연구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한국복지패널(KoWePS)의 15년치 자료를 활용했고, 모두 2만3791명(총 19만여 관찰치)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동일인을 대상으로 시간이 흐르며 나타나는 변화를 비교하는 '개인 고정효과 회귀' 방식으로 분석을 수행했다. 이 방법을 쓰면, 성격이나 배경 같은 개인 고유의 특성은 통제한 채 난방 환경 변화가 삶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난방 적절성은 “집의 난방·단열·환기 상태가 적절한가"라는 설문 응답을 기준으로 삼았다. 난방비가 소득의 10%를 넘는 경우는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가구'로 분류했다. 삶의 만족도는 1~5점 단일 문항을 활용했다. ◇“집이 따뜻하지 않으면 삶이 불안정해진다" 분석 결과, 약 11.7%는 부적절한 난방을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15.3%는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가구로 분류됐다. 통계 분석 결과, 난방이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가구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뚜렷하게 낮았다. 난방의 질이 떨어지는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예상보다 더 크게 흔들린다 점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실내 온도가 적정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 수면과 휴식이 방해받고, 결국 심리적·생활적 안정감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반대로 난방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가구는 만족도가 소폭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비용을 들여 쾌적한 실내 온도를 확보하려는 적극적 선택이 일정 수준의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른바 '에너지와 행복의 역설(Energy-Happiness Paradox)'도 관찰됐다. 비용을 아무리 많이 써도 난방의 질이 낮으면 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돈을 들였지만 기대한 온기와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좌절감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행복 역설'이라는 표현은, 에너지 소비가 늘면 편안함과 만족도도 함께 올라갈 것이라는 직관과 달리 현실에서는 에너지 사용량이 곧 행복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일부 국가 비교 연구에서는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도 국민 행복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반복돼 왔다. 이번 연구는 이 아이디어를 가구 수준으로 좁혀 확인한 셈이다. 즉 난방비를 더 지불해도 주거의 기본 조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행복은 커지지 않는다는 점이 '역설'로 드러난다. ◇세입자에게 더 큰 타격… “주거 통제권의 격차" 이번 조사에서 세입자는 '역설'에 특히 더 취약했다. 소유주에 비해 주택 개보수 권한이 제한적이고, 장기 거주가 보장되지 않아 단열·난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난방 부적절성과 에너지 비용 부담이 동시에 나타나는 집에서는 세입자의 삶의 만족도 하락 폭이 자가 소유자보다 더 컸다. 연구팀은 이를 “열악한 주거 인프라에 대한 노출과 임대료·에너지 비용이 겹치는 이중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현재의 에너지 복지 정책에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에너지 비용을 낮춰주는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주거 품질을 함께 개선해야 난방비 지출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집주인을 대상으로 난방·단열 개선 인센티브 제공 ▶세입자용 최소 난방·단열 기준 마련 ▶주거·에너지 빈곤을 함께 고려한 복합 지표 도입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따뜻한 집"이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권·건강·행복을 동시에 좌우하는 사회적 기반임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전과정평가(LCA), 온실가스 측정의 새 도구로 주목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자동차 업계가 온실가스 전과정평가(LCA) 역량 강화를 위해 협력한다는 협약식 행사가 열렸다. LCA(life-cycle assessment)는 자동차 제작단계(원료 채취 및 부품제조, 완성차 생산포함)부터 운행,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하여 평가·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번 협약은 유럽연합(EU)이 2026년 자동차 생애주기 탄소배출 보고를 시작하는 등 국제 규범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마련됐다. 자동차 업계의 온실가스 LCA 역량을 선제적으로 강화하고, 공급망 내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탄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협약에는 현대자동차 등 주요 자동차 제작사(5개)와 부품사(16개)가 참여했다. 이번 협약은 LCA가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는 한국기후변화연구원과 한국기후환경원 등이 주최한 '대한민국 탄소포럼 2025'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LCA 기반 제품탄소 규제동향과 사례'와 'Scope3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기준 및 기업적용 사례'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각각 열렸다. 또, 국제 기후환경단체 (사)푸른아시아는 최근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계약을 맺고 '온실가스(GHG) 프로토콜' 공식 번역본을 발간했다. GHG 프로토콜은 국제 온실가스 산정·보고·검증(MRV)을 위한 국제 표준·지침이다. 전 세계 기업과 기관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처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 가운데 특히 LCA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의 핵심 도구로 주목 받고 있다. ◇ 스코프 3 부상… “전체 배출량의 70~90% 차지" 전 세계적으로 기후 관련 공시 의무화가 확산하면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 핵심 경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2023년 내놓은 '기후 공시(IFRS S2)'는 기후 리스크와 배출량 정보를 재무 공시 수준으로 엄격하게 요구한다. 기업이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투자자와 고객, 규제기관 모두가 탄소 데이터를 기업 신뢰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보고가 아니라 재무 정보 수준의 엄격한 '탄소 회계'가 요구되는 시대다. GHG 프로토콜은 배출 범위를 스코프 1(기업이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직접 배출량), 스코프 2(전력 등 외부에서 가져온 에너지로 인한 간접 배출량), 스코프 3(원료·부품의 매입이나 제품의 배송 등 가치사슬(공급망)을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한 배출량)으로 구분한다. 그중 스코프 3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국내 주요 기업의 스코프 3 배출량은 스코프 1·2 합산보다 8배 이상 많으며, 글로벌 탄소 공개 프로젝트(CDP) 공개 기업 기준으로는 전체 배출량의 96%에 달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업에서도 배출량의 대부분이 스코프 3에서 발생한다. 최근 삼성전자·현대차·GS칼텍스 등 국내 대기업들은 스코프 3 공개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코프 3 규모는 1억 톤을 넘으며, GS칼텍스는 스코프 3의 98%가 4개 카테고리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프 3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전체 배출량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보고도 불가능하다. CDP한국위원회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2024 CDP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23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68%인 158곳이 스코프3 배출량을 집계해 CDP에 공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프 3 측정의 가장 큰 난관은 “공급망의 불확실성" 스코프 3는 원자재 채굴부터 제품 폐기까지 가치사슬 전 과정의 배출을 포함한다. 총 15개 카테고리에 걸쳐 여러 단계의 협력사·물류업체·사용자·폐기물 업체 등이 얽혀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 통제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스코프 3 배출량 분석에서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는데. 이는 ▶협력사의 배출량 데이터 미제공 ▶국가·산업별 배출계수와 활동 데이터의 질적 격차 ▶공급망 규모의 방대함 ▶검증 비용 증가 등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코프 3 보고는 스코프 1·2에 비해 데이터 품질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코프 3를 제외한 배출 보고는 국제적으로 '불완전 보고'로 간주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LCA 기법이 활용된다. LCA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태어나서 사라질 때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하고 평가하는 방법론이다. 원료 채취부터 생산, 운송,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요람에서 무덤까지)에서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평가한다. LCA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단계를 거쳐 수행된다. 1. 목표 및 범위 설정: 분석의 목적, 대상 제품/서비스, 시스템 경계 및 기능 단위를 정의. 2. 목록 분석: 각 단계에서 원료, 에너지 등의 투입(input)과 온실가스, 폐기물 등의 산출(output)을 정량적으로 목록화함. 3. 영향 평가: 목록화된 데이터를 환경 영향 범주로 변환하여 평가. 주요 영향 범주에는 기후변화(온실가스), 대기오염(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수질오염(부영양화) 등이 포함됨. 4. 해석: 평가 결과를 종합하고 환경 부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Hot Spot)을 식별,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보고. ◇ 스코프 3 산정의 핵심 도구는 LCA… “전 과정과 전 범위가 맞물린다" 스코프 3 측정이 중요해지면서 LCA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LCA는 가치사슬 전 과정 배출을 분석하는 스코프 3와 구조적으로 정확히 대응된다. 정확한 스코프 3 산정에는 LCA가 필요하고, 또 정교한 LCA 수행을 위해서는 공급망에서 확보한 스코프 3 데이터가 필요하다. 스코프 3와 LCA는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인 셈이다. 이에 따라 LCA는 '스코프 3의 확장판'이자 기업의 전(全)주기 탄소전략을 설계하는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자동차 산업은 LCA 도입의 대표 사례다. 해외에서 나온 자동차 대상 LCA 연구 결과를 보면, 전기차는 운행 단계에서는 내연차보다 배출량이 낮지만, 제조 단계에서는 배터리 생산으로 인해 상당한 탄소가 발생한다. 유럽의 전과정평가 분석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 단계 배출량은 내연차보다 약 30% 높고, 운행 단계에서는 32~47% 수준으로 크게 낮다. 전력망이 탈탄소화될수록 전기차의 전체 수명 배출량은 더욱 낮아진다. 보통은 운행 2~3년이 지나면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내연차보다 더 작아진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배터리 공급망의 스코프 3 감축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협력사에 탄소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확성은 1차 데이터에서 온다"… 공급망 협력이 핵심 LCA의 신뢰도는 사용된 데이터의 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기업이 실제 공정에서 발생하는 배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1차 데이터를 확보해야 정확한 LCA 산정이 가능하다. 반면 산업 평균값 또는 문헌 기반의 2차 데이터는 편리하지만 정확성이 낮고, 글로벌 공시 기준에서는 점점 인정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서 배출계수가 중요한데, 정부 등에서 제공하는 배출계수를 사용하는 것보다 실제 측정을 통해 확보한 배출계수를 적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미 에너지 효율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공급망 탄소 파트너십'을 통해 실제 공급망의 배출계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 배출의 80~90%를 1차 데이터 기반으로 산정한다"와 같은 정량 목표를 세우고 공급망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다. LCA 시대에는 기업 단일 노력이 아닌, 공급망 전체의 측정·보고·검증(MRV) 체계 구축이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탄소포럼 LCA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 ㈜후시파터너스 박종한 상무는 “2026년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한국의 4차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으로 탄소 규제 빅뱅이 벌어질 것"이라며 “공급망 전체를 단일 생태계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관계사들의 협력적 MRV다. 금융권에서도 LCA 기법 적용은 이미 현실화됐다. 금융기관이 대출·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배출량, 즉 '금융 배출량'이 스코프 3에 속하기 때문이다. 금융부문 탄소회계 파트너십(PCAF) 기준은 기업의 스코프 1·2 데이터 확보를 전제로 금융기관의 배출 귀책 비율을 계산한다. 이 때문에 제조업이든 금융업이든, 결국 스코프 3의 정확성이 기업 전체 탄소 회계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좌우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 LCA 시대, 스코프 3는 기업 경쟁력의 분기점 LCA 방법은 지금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최근 유엔 산하 '국제 자동차 규제조화포럼'에서는 자동차 전과정평가 전문가작업반을 구성하고 내년 초 국제사회의 채택을 목표로 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탄소포럼 LCA 세미나에서 '글로벌 제품탄소 규제동향과 LCA'를 주제로 발표를 한 스마트에코 김익 대표이사는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이 LCA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기업 내부 공정만 관리하면 됐지만, 현재는 가치사슬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이사는 “스코프 3를 파악하지 못하면 기업의 실제 배출량은 물론 감축 전략도 수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기업 경쟁력은 ▶정확한 스코프 3 산정 능력 ▶공급망 1차 데이터 확보 체계 ▶LCA 기반 전 생애주기 인사이트 확보 능력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스코프 3를 모르면 LCA를 실행할 수 없고, LCA 없는 탄소 회계는 국제 공시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정확한 데이터 기반의 LCA를 갖춘 기업만이 글로벌 규제 환경에서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 경영의 실질적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화학물질 딴 용도로 사용하다 사고 발생…“화평법 개정으로 예방을”

카페트 항균제를 가습기를 사용하는 제품으로 만든 탓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에탄올 대신 값싼 메탄올을 사용한 탓에 노동자가 실명한 사고, 전자 부품 공장에서 금속 세척제로 트리클로로메탄(클로로포름)을 사용하다 노동자가 독성 간염 증세를 보인 사고…. 이처럼 국내에서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등록된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화학물질을 사용한 탓이다. 사업장 단위의 안전관리가 부재하고, 규제망을 피해가는 대체 물질 사용 등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현행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서 실질적으로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하위사용자, 즉 화학물질을 구입해 사용하는 기업이나 노동자에게 명확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박홍배(더불어민주당)의원과 '발암물질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화학물질 참사 없는 사회를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주제 발표를 통해 “하위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등록·신고된 용도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 할 경우 스스로 위험성 평가보고서를 적성해 정부에 제출하도록 화평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제시된 용도와 안전관리 요령을 준수하거나, 스스로 실시한 위험성 평가에 따라 안전관리요령을 마련해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임의로 용도를 변경하거나 안전관리 요령을 준수하지 않은 하위사용자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미란 경성대 연구원은 “국내에서 화평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허가물질'로 지정된 화학물질은 여전히 전무하고, '제한물질' 지정도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미국 등 주요국이 고위험 물질에 대해 사용 자체를 관리하거나 단계적 퇴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또 “위험한 화학물질에 대해 '필수 용도(essential use)' 개념을 적용하는 새로운 관리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화학물질이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고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동시에 환경및 건강 측면에서 수용할 수 있으며 ▶기술·경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경우 등 3가지 모두를 충족할 때 필수용도 물질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수 용도는 한시적으로 허용하되, 노출을 최소화하도록 요구하고 대체물질 개발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비필수 용도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장기적·단계적 퇴출 로드맵을 설정함으로써 예측 가능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경석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운영위원장 등 토론자들은 대체로 주제 발표 내용에 동의하고 화평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백세언 한국경영자총협회 선임위원은 “(화학물질의 용도를 새로 추가하기 위해) 유해성 시험자료를 마련해야 하는 데, 그 비용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대체화학물질을 개발하는 데도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 규제가 기업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손성길 고용노동부 화학사고예방조사과장은 “안전과 관련된 규정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MSDS와 화평법 규정이 잘 연계가 되도록 부처 협업을 잘 하겠다"고 말했다. 김병훈 기후에너지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도 “현장에서 규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부의 단속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플어나가도록 유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항공기 탄소배출 줄일 방법은…‘지속가능’ 항공유

꾸준히 성장하는 항공업은 전 세계 경제 성장의 한 축을 이루지만, 동시에 '숨겨진 기후 비용'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제학술지에 최근 발표된 세 편의 연구는 항공업이 기후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물론 2050년 항공업의 '넷제로' 달성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다. ◇항공 CO₂ 배출의 사회적 비용 크다 스웨덴 칼머스 공대 연구팀은 지난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항공기에서 배출된 CO₂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기후 비용을 정량적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항공가 배출한 CO₂의 사회적 비용을 연간 230억~1조6000억 달러(약 34조~2360조원)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항공 CO₂ 배출이 초래하는 피해 비용으로 제시한 금액은 기존 추정보다 훨씬 높았다. 단순한 탄소 가격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악화와 농업 생산성 감소, 재해 피해 증가 등을 모두 반영한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 개념을 적용한 결과다. 사회적 비용이란 특정 배출이 미래에 일으킬 피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개념이다. CO₂의 경우 대기 수명이 길고 예측 가능한 장기 피해가 쌓인다. 특히, 항공 부문은 고도에서 배출이 일어나 기후 영향을 증폭시키는 특성이 있어, 동일한 CO₂라도 지상 배출보다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는 점이 강조됐다. 비행운의 경우 수명이 수 시간에 불과하지만, 특정 기상 조건에서는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낸다.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은 감축이 지연될수록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항공 배출의 진짜 비용을 반영할 경우, 현행 항공유 가격 구조로는 기후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단기대책: 비행경로 변경으로 비행운 형성 피하기 항공기가 하늘에 남기는 비행운(contrail cirrus)은 그 자체가 항공기가 배출되는 CO₂에 필적할 정도로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운이 현재 기후에 미치는 유효 복사 강제력(effective radiative forcing, ERF)은 항공 부문에서 배출하는 CO₂의 복사 강제력과 맞먹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비행운은 적외선 복사를 흡수하고 태양 복사를 산란시켜 온난화와 냉각 효과를 모두 가져오지만, 분석된 비행 중 약 38%는 지속적인 비행운 형성을 통해 온난화 강제력에 기여했다. 이러한 비행운 형성으로 인한 세계적인 총 사회적 비용은 할인율, 피해 함수 등의 가정에 따라 연간 43억 달러에서 4100억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비행운의 경우 CO₂와 달리 수명이 수 시간 정도로 짧고 예측이 어려워 완화 정책 수립에 중대한 복잡성을 야기한다. 비행운의 형성, 특성 및 온난화 효과는 주변 대기 조건, 연료 특성 및 엔진 특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공간적·시간적 변동성이 매우 크고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논문에 따르면, 비행운의 기후 영향은 매우 이질적이어서, 모든 비행 중 약 2~3%만이 전체 비행운 ERF의 약 80%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대서양 지역의 특정 비행 분석 결과, 일부 비행은 해당 비행의 CO₂ 배출량으로 인한 영향보다 한 자릿수 더 큰 비행운 영향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질성은 모든 비행에 일률적인 완화 조치를 적용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온난화 영향이 큰 비행을 목표로 하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비행운이 형성되는 지역을 피하도록 비행 경로를 변경하는 운영상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기후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경로 변경으로 인해 추가 연료 소모(연료 페널티)가 1% 미만일 경우, 약 35%의 비행에서 경로 변경이 기후적으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연료 페널티가 5%에 달하더라도 약 30%의 비행에서 여전히 이득이 발생한다. ◇ “SAF 생산, 발표된 물량의 4분의 1만 실제 가동" 장기적인 대안은 지속가능 항공유(SAF)의 사용 확대다. 문제는 SAF 생산량이다. 벨기에 하세트대학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SAF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 정책 목표와의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기업들이 '2030년까지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SAF 물량 중에서 2024년 기준 실제로 가동에 성공한 비율은 글로벌 기준으로는 24%, 유럽연합(EU) 기준으로는 26%에 불과했다. 벨기에 연구팀이 구축한 '글로벌 SAF 생산능력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기업이 발표한 시설 중 상당수가 투자 지연, 기술 완성도 부족, 원료(바이오매스·폐기물·CO₂) 확보 문제로 업무가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특히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폐식용유 등 지방산 기반 공정(HEFA)은 원료 부족 문제가 심각해 대규모 확대가 어렵다. 이런 구조에서는 2030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SAF 기반 5% 감축 목표조차 달성될 가능성이 낮다. 연구팀은 “태양광·풍력처럼 빠른 기술 확산 속도를 SAF에 적용한다 해도 2030년 목표 자체는 너무 낮은 수준"이라며 “2050년 완전 대체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 연평균 23%의 생산능력 증가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도시 폐기물 기반 항공유'가 대안으로 떠올라 이런 가운데 도시 고형폐기물(municipal solid waste, MSW) 기반의 SAF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이달 초 '네이처 지속가능성(Nature Sustainablity)' 저널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도시폐기물 기반 SAF는 음식물·종이·금속·플라스틱 등 가정·도시에서 나오는 혼합 폐기물로, 식량 기반의 SAF와는 달리 공급 제한이 심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 폐기물 기반 SAF는 ▶원료가 안정적이고 대량 확보 가능하며 ▶매립·소각으로 인한 온실가스를 줄이고 ▶바이오 기반 연료보다 지역사회 수용성이 높고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 항공사들이 미국·유럽의 폐기물 처리 기업과 협력해 MSW 기반 SAF 프로젝트를 늘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MSW를 활용해 SAF를 생산하는 주된 방법은 가스화 및 피셔-트롭쉬(Fischer–Tropsch, FT) 합성 경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먼저 파쇄·건조 등의 전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고온에서 합성가스를 생산하게 된다. 생산된 합성가스는 정제 과정을 거쳐 FT반응을 통해 긴 사슬의 탄화수소로 전환된다. 생산된 탄화수소는 기존 항공유와 섞어 사용하게 된다. 연구팀은 “폐기물 기반 SAF는 기존 전통 바이오연료보다 정책 목표에 맞춘 대규모 확장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도시 폐기물 기반 SAF가 유망하더라도, 현실적 과제는 여전히 많다. MSW의 분리·정제 비용이나 제조 과정에서 높은 전력 사용량, 장기 공급 계약의 불확실성 등이다. ◇ 2050년 탄소중립 항공의 관건: '정책 일관성과 투자 안정성' 국내 항공업계에서도 SAF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2027년부터 국내 출발 국제선에 SAF 혼합을 의무화하고, 혼합 비율을 1%에서 2030년 3~5%, 2035년 7~10%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 인천~하네다 KE719편에 국산 SAF 1% 혼합을 시작했다. 논문을 발표한 각 연구팀은 공통적으로 정책 신뢰성과 투자 안정성을 SAF 시장 확산의 핵심 조건으로 꼽는다. 태양광·풍력이 급속한 확산에 성공한 이유도 장기적·강제적 정책 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항공 분야는 규제가 국가마다 달라 기업이 장기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EU는 'EU 항공연료 친환경 전환 규정(ReFuelEU Aviation)'에 따라 2025년 SAF 혼합비율을 2%, 2050년에는 70%를 의무화하고, 특히 전력기반 합성연료(e-Fuel)의 의무 사용량까지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아시아는 세제지원 중심으로 정책이 흩어져 있어 공급 확대 속도가 더디다. 연구팀은 “2030년 SAF 수요를 충족하려면 기업이 목표 달성 '1년 전'을 기준으로 투자를 미리 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SAF 생태계는 '수요 예측보다 선제적인 공급 투자'가 없으면 구조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 일관된 정책, 그리고 조기 투자"라고 강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후 비용을 솔직히 드러내고, 실질적 대안을 실행하는 산업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국제무역 지탱하는 ‘해상 병목’ 막히면 한국 경제도 위험해져

전 세계 무역의 원활한 흐름은 대양 한가운데가 아니라 극히 좁은 전략적 해상 통로에 의해 지탱된다. 이른바 '해상 병목 지점(maritime chokepoints)'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상 병목지점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 경제도, 한국 경제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교역량의 80%가 바다를 통해 이동하는데, 단 24개의 병목 지점이 국제 물류의 흐름을 상당 부분이 좌우한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이들 병목지점은 기후 재난과 지정학적 긴장, 해적 행위, 항만 사고 같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한 곳만 막혀도 세계 공급망은 거대한 도미노처럼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병목 지점에서 '연간 교란될 것으로 예상되는 무역 가치(expected value of trade disrupted, EVTD)'가 무려 1920억 달러(약 282조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는 운송 지연, 우회항로 선택, 보험료 상승, 운송 중단 등으로 이어지며 실제 경제적 피해만 해도 107억 달러, 여기에 운임 상승이 초래하는 추가 비용이 34억 달러가량 붙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주요 선박 항로와 병목 지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특히 동아시아 교역의 연결로인 대한해협·대만해협·말라카 해협의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들 해협이 막힐 경우 우회가 가능하다 해도 일단 위험이 발생하면 해상 무역 가치의 상당 부분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한해협, '안전 지대'가 아니다… 태풍이 가장 큰 위험 한국이 마주한 병목 중 하나가 바로 대한해협이다. 한반도와 일본 규슈 사이에 놓인 폭 좁은 해역이지만, 동북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물류의 필수 관문이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에서도 주요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논문에 따르면 대한해협은 다른 병목 지점과 달리 지정학적 긴장보다는 자연 재해, 특히 태풍이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지목됐다. 연구팀은 대한해협과 관련해 연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교란 무역 가치, 즉 EVTD는 82억 달러(약 12조 원)이며, 이 가운데 태풍이 초래할 수 있는 교란 규모가 68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물류는 글로벌 교역 대비 비중이 0.03%로 작아 보이지만, 지역 공급망에는 실질적인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대한해협은 우회가 비교적 쉬운 병목으로 분류된다. 대만 해협이나 수에즈 운하처럼 대체 항로가 극히 제한된 구간들과 달리, 선박들은 일본 남부 등으로 크게 돌아 항해하는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한 일이다. 즉, '경로 재지정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피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처럼 제조업 중심의 수출입 비중이 큰 국가에서는 짧은 지연도 생산 라인 차질, 원자재 추가 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대만해협·말라카 해협 차단되면 경제 타격 커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한해협보다 더 큰 리스크는 사실 대만해협과 말라카 해협에 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EVTD를 유발하는 해역으로 대만해협을 꼽았다. 대만해협의 EVTD는 373억 달러이고, 말라카 해협 EVTD도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한국은 이 두 병목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 대만해협의 EVTD가 높은데도 실질적 경제 위험은 9억 달러로 낮게 나온 것은 '사건 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영향이 매우 큰 지정학적 위험'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빈도는 낮지만 충격은 크다는 의미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해역에 군사적 긴장이나 물리적 봉쇄가 발생할 경우, 원유·LNG·광물·중간재 운송이 직접적으로 차단된다. 한국의 제조업 기반 측면에서는 단기적 공급망 충격이 기업-산업-국가 경제로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은 “특정 병목 지점 교란에 따른 피해는 그 지점을 직접 이용하지 않는 국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운임 급등은 전 세계적 파급을 가져온다. 수에즈 운하나 바브 엘 만데브 같은 '우회가 거의 불가능한 초중요 병목'이 교란되면 선박 용량이 대거 시장에서 이탈해 운임이 폭등하고, 이는 한국도 피해를 똑같이 입는다. ◇에너지 수입 의존 한국, 산업 전반에 직격탄 논문은 특정 국가별로 구체적인 국내총생산(GDP) 손실 추정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구조적 특징을 고려할 때 경제적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한국은 수출입 규모가 GDP 대비 매우 큰 국가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통합돼 있어 물류 교란의 영향이 즉시 제조업 생산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대부분을 해상 의존하고 있다. 원유·LNG·석탄 등의 수입선 대부분이 대만해협·말라카 해협을 지난다. 에너지 흐름이 막히면 산업 전반의 가동률에 직격탄이 된다. 고부가가치 제조업 중심 구조도 불리하다.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산업은 시차 없는 공급망 운영(Just-in-time production)에 익숙해, 물류 지연이 곧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 결국 연구팀이 제시한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은 ▶해상 교란에 노출된 무역 규모가 전체의 1% 이상이고 ▶병목 지점 상황이 악화할 경우 교역 지연·운임 상승 등 간접 피해가 수십억 달러 단위로 확대될 수 있으며 ▶특히 대만해협의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면 단기·중기 경제에 구조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정부 모두 '해상 병목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때 연구팀은 “각 기업이 의존하는 병목 지점의 유형에 따라 재고 전략, 조달 다변화, 운송 수단 전환 등 대응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한해협처럼 우회가 상대적으로 쉬운 구간에 대한 대응은 비상 재고 확보와 대체 항만 활용으로 가능하지만, 대만해협처럼 우회가 거의 불가능한 지점에 대해서는 생산지 조정이나 공급선 다변화 같은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 차원에서 병목 지점의 항행 안전과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에게 이익이 된다. 한국은 경제를 해상 교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항행 안전 등 글로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푸른아시아, ‘온실가스 프로토콜’ 공식 한국어 번역본 발간

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떻게 측정해서 보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자료가 번역돼 나왔다. 국제 기후환경단체 (사)푸른아시아는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계약을 맺고 '온실가스(GHG) 프로토콜' 공식 번역본을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GHG 프로토콜은 국제 온실가스 산정·보고·검증(MRV)을 위한 국제 표준·지침이다. 전 세계 기업과 기관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에 따라 GHG 프로토콜은 각종 탄소규제와 지속가능성·ESG(환경·사회· 지배구조) 공시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기업이 필요한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RE100' 측정·보고는 GHG프로토콜을 핵심 표준으로 활용한다. 또 지난해 6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후 관련 공시(IFRS S2) 기준 측정과 공시 요구사항에 GHG프로토콜을 활용하도록 명시했다. 영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으려면 GHG프로토콜을 활용한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승인이 필수적이다. 이밖에도 한국 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회계 공시들도 온실가스 산정·보고 기준으로 GHG 프로토콜 채택이 늘고 있다. GHG프로토콜은 총 7개 표준과 10개 지침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에 가장 먼저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이 번역됐고, 나머지 표준과 지침은 내년 상반기까지 차례로 나올 예정이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탄소 무역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온실가스 표준에 따라 산정․보고하지 않으면 수출, 투자 등을 하는 기업은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번 번역본 공개가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번역본은 푸른아시아 홈페이지(https://greenasia.kr)와 GHG프로토콜 공식 홈페이지(https://ghgprotocol.org/corporate-standard)에서 무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세계적 영향력 K-드라마, 기후위기는 외면”…해외의 지적

글로벌 한류의 핵심인 K-드라마가 기후환경 이슈를 다루는 데 인색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총 1135시간 분량의 한국 인기 드라마 60편을 분석한 결과, 기후환경과 관련된 내용은 전체 시청 시간의 약 4시간, 0.36%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핀란드 LUT 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커뮤니케이션 국제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연구는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60편의 한국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에코시네마(ecocinema)와 프레이밍 분석을 결합한 방법론을 적용했다. 이 연구는 기후환경 서사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사례로 파악되고 있다. ◇충격적인 스크린 타임: 26편만 기후-환경 관련 키워드 포함 연구에 따르면, 분석 대상 드라마 60편 중 34편은 기후환경 관련 장면이 아예 없었다. 심지어 전 세계 시청 시간이 28억 시간을 넘긴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2021)》역시 기후환경 주제를 포함하지 않았다. 기후환경 관련 키워드('기후', '오염', '자연재해' 등 73개 용어)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기후환경 관련 내용이 포함된 드라마는 26편에 불과했다. 관련 장면은 모두 158개로 확인됐다. 이는 미국에서 진행된 유사 연구에서 '개'(dog)라는 단어가 기후 관련 키워드 전체를 합친 것보다 13배 더 자주 등장했다는 결과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매체가 기후환경 문제를 주요 주제로 다루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기후환경 이슈: 재활용은 긍정적, 재난은 부정적 드라마에 등장하는 기후환경 관련 주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가장 자주 등장한 주제는 자연재해 (15편 드라마에서 30개 장면), 그 다음은 재활용 (16편 드라마에서 22개 장면), 친환경적 실천 (10편 드라마에서 12개 장면), 그리고 인재(人災) 순이었다. 재활용 주제는 일관되게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감정으로 그려졌다. 이는 재활용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일상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더 킹: 영원의 군주(2020)》에서는 경찰 훈련 중에 재활용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언급됐다. 또《빈센조(2021)》, 《사이코메트리 그녀석(2019)》, 《여신강림(2020)》, 《닭강정(2024)》, 《마이데몬(2023)》, 《유미의 세포들(2021)》, 《스타트업(2020)》 등에서도 재활용 장면이 등장했다. 자연재해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그려졌다. 특히 홍수 관련 장면이 자주 묘사됐는데, 캐릭터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을 강조했다. 《갯마을 차차차(2021)》에서는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도로 접근이 막히면서, 임산부가 병원이 아닌 치과 의사의 집에서 출산하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연출됐다. 《호텔 델루나(2019)》와 《사랑의 불시착(2019)》 역시 주로 부정적인 어조로 자연재해를 다뤘다. 기후환경 테마는 기업의 전략부터 코믹한 상황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펜트하우스(2020)》와 《경이로운 소문(2020)》에서는 기업 리더들이 친환경 개발 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반면, 《사랑의 불시착(2019)》에서는 농장 동물로 가득 찬 아파트를 “친환경 생활 공간"이라고 묘사하며 풍자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후환경 서사를 이끈 핵심 드라마 60편의 드라마 중 기후 관련 장면이 가장 많은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2022)》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해피니스(2021)》가 특히 주목받았다. 총 50개의 기후 관련 장면으로 단연 압도적이었던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2022)》은 기후 변화 인식을 스토리라인에 직접 통합시킨 예외적인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기상청을 배경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제도적 인식과 책임을 강조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에서는 '행복로' 건설 프로젝트를 둘러싼 환경 소송이 에피소드의 중심이 됐다. 환경 파괴에 반대하는 불교 승려의 이야기는 유교-불교 윤리에 뿌리를 둔 환경 정의를 보여주었다. 변호사 우영우가 절차적 논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의 지연 문제를 제기하지만, 결국 법원은 개발을 지지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제시하며 사건은 종결된다. 기후환경 관련 주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법정 드라마에서 주로 단발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할 뿐, 장기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K-드라마의 일반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해피니스(2021)》에서는 종말 대비 생존주의자인 김세훈이라는 조연 캐릭터가 지구 온난화와 극단적인 날씨에 대해 명시적인 우려를 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지구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극단적인 날씨, 지구 온난화... 멸종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말하며 방호복을 입고 생존 물품을 비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캐릭터의 불안은 전후 사정 없이 단편적으로 제시됐고, 극의 중심 서사로 발전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김세훈을 묘사한 장면은 기후 불안을 합리적인 우려라기보다는 주변적인 편집증으로 프레이밍함으로써, 관객이 환경 문제에 지속적으로 공감할 기회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K-드라마의 글로벌 영향력, 환경 인식 제고에 활용해야 연구팀은 논문에서 “한국은 화석 연료 의존도와 산업 집중도가 높아 1인당 CO₂ 배출량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이고, 미세먼지 수치 역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크게 초과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약 90%가 기후 변화를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시청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드라마는 복잡하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환경 문제를 다루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연구팀은 꼬집었다. 하지만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이 로맨스와 기상 주제를 결합하여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에 6주 연속 진입하며 성공을 거둔 사례는 기후환경 관련 콘텐츠가 시장성 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K-드라마가 전 세계적 영향력(한류)을 가진 매체로서 가족·역사·성별 등 기존의 연구 범위를 넘어 기후환경 이슈를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K- 드라마가 기후환경 이슈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중요한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테크] 더 귀해진 희토류…고사리 채굴법까지 등장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REEs)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각국은 첨단 기술의 필수 요소인 이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희토류 원소(REEs)는 스칸듐(Sc)과 이트륨(Y)을 포함한 란타넘족(族) 원소들로 구성된다. 독특한 자기촉매 특성 덕분에 풍력 터빈과 전기 자동차, 국방 및 첨단 전자 기술 등 현대 기술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까지 희토류 수요는 현재보다 3~7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 무역갈등 속에 희토류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다. 전통적인 광물 자원 외의 대안을 찾는 것이 시급해졌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 결과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전통적인 채굴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채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석탄 폐기물에서 희토류를 추출하기도 하고, 특수한 식물, 심지어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혁신적인 희토류 채취 및 분리 기술들을 정리했다. ◇산업 폐기물 재활용: 석탄 재(coal ash) 및 광미(tailings)에서 회수 석탄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석탄 비산재(fly ash)나 석탄 광미(鑛尾, 광산 잔재물)는 환경 폐기물이지만 희토류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희토류의 잠재적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립된 석탄재를 통해 연간 약 1만2000톤의 희토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 미국의 소비량을 넘어서는 양이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지하에너지·환경센터 연구팀은 지난 9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석탄 비산재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다. 이른바 '건식 소화' 추출 방식이다. 석탄 비산재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산 침출(acid leaching)이다. 칼슘(Ca) 함량이 높은 석탄재는 희토류 회수율이 약 70~100%로 높아 매력적이지만, 산성도가 높을 경우에는 침전물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산성도가 낮으면 희토류 회수율이 약 33~55%로 떨어진다. 연구진은 대안으로 건식 소화, 즉 산 베이킹(acid baking) 방법을 개발했다. 고농도 질산으로 전처리한 후, 물에 녹여내는 방식이다. 이 방법으로 눈에 띄는 침전물 없이 약 74%의 높은 희토류 추출 효율을 달성했다. 더욱이 최종 침출액에서 알루미늄(Al), 철(Fe), 규소(Si) 등 불필요한 이차 양이온의 농도가 낮아져 후속 분리 공정의 부담도 줄였다.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 화학공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환경 과학 기술'에 발표한 논문에서 석탄 광미에서 희토류를 추출할 때 알칼리 전처리 과정을 추가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알칼리 전처리는 희토류를 둘러싸고 있는 알루미노실리케이트 구조(주로 카올리나이트)를 분해한다. 특히 알칼리 전처리는 경희토류(LREEs, 주기율표 상에서 란타넘(La)에서 가돌리늄(Gd)까지의 원소를 말함)를 함유한 광물에 효과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희토류(HREEs)보다 추출 효율을 더 크게 향상시킨다는 의미다. 중희토륨은 가돌리늄(Gd)·터븀(Tb)·디스프로슘(Dy) 등을 말한다. ◇ 친환경 채굴: 고사리를 이용한 '식물 채굴' (phytomining) 중국 광저우 지구화학 연구소와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팀은 지난 13일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식물 기반 금속 채굴(phytomining) 방법을 소개했다. 이 전략은 '초축적 식물(hyperaccumulator plants)'을 이용해 토양에서 특정 금속을 추출해 식물 체내에 농축한 다음, 수확된 바이오매스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중국 남부의 이온 흡착형 희토류 광상에서 자생하는 희토류 초축적 식물인 고사리(Blechnum orientale)를 조사한 결과, 식물의 세포 외 조직에서 나노 크기의 모나자이트 결정이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모나자이트는 생물학적으로 유도된 광물화와 비평형 자기 조직화 과정을 통해 보통의 환경 조건(상온, 상압)에서 수지상(dendritic, 나뭇가지 모양) 나노 결정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는 고온과 고압이 필요한 전통적인 지질학적 모나자이트 형성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 매개하는 광물 형성 경로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희토류 초축적 식물이 희토류를 격리하고 해독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밝혀졌다"면서 “식물에서 형성된 나노 모나자이트는 높은 표면적과 향상된 반응성을 가지고 있어서 코팅· 발광체·방사성폐기물 관리 등 광범위한 첨단 응용 분야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를 활용하는 희토류 분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바이오공학과 이성욱 교수 등은 최근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 모양의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희토류를 분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희토류 원소들은 화학적 유사성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특히 어렵고, 기존 분리 기술은 혹독한 화학 물질과 에너지 집약적인 다단계 공정(주로 용매 추출)에 의존한다. 이 교수팀은 이러한 희토류 분리 과정의 환경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열반응성 희토류 분리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바이러스는 LBPhELP라고 불리는 '이중 기능 생체 틀'로 설계됐다. 바이러스 껍질 표면 단백질에는 세균(Methylobacterium extorquens)에서 유래한 란탄족 결합 펩타이드(LBP, 펩타이드는 짧은 단백질)가 발현되도록 조작했다. 이 LBP는 희토류 이온과 선택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LBP는 경희토류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LanM 단백질과 달리, 중희토류에 대해 결합 선호도를 보인다. 이 성질을 활용하면 희토류를 쉽게 분리할 수 있다. 온도에 반응하는 엘라스틴 유사 펩타이드(ELP)는 용액의 온도를 높이면 (예: 20°C에서 ∼50°C로) 소수성 모티프(펩타이드 중 물을 싫어하는 부위)가 노출돼 바이러스 입자의 응집이 일어난다. 만일 단백질에 희토류 이온이 결합하게 되면 열 응집 온도가 낮아진다. 연구팀은 “이 LBPhELP 시스템은 실제 광산 샘플(산성 광산 배수 및 알라나이트 광석 침출액)의 복잡한 금속 이온 혼합물에서도 중희토류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유지했고, 이러한 흡착-탈착 사이클을 여러 번 반복해도 성능 저하 없이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법은 전통적인 희토류 채굴과 분리 방법과 비교할 때, 훨씬 작고, 스마트하며,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이다. 미래 기술의 재료를 확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COP30 폐막: ‘화석연료 로드맵’ 빠진 절충안에 합의

브라질 아마존 인근 도시 벨렝에서 2주간 개최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예정된 폐막일인 21일(현지시간)을 넘겨 22일에 공동선언문(Mutirão Decision)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브라질은 이번 총회를 '이행의 COP'이자 '진실의 COP'로 규정하며 다자주의 강화와 기후 정책의 이행 가속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로드맵 마련을 놓고 산유국과 유럽연합(EU) 및 기후 취약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번 COP30의 결과는 다자주의가 시험받는 지정학적 분열의 시기 속에서 최소한의 공동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화석연료 로드맵 부재 등으로 인해 과학이 요구하는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브라질 의장국은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을 포함한 여러 약속을 COP30 이후에도 계속 추진할 것을 다짐했다. ◇최대 쟁점: 화석연료 로드맵 부재 COP30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에너지 전환에 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합의문에 명문화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주최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날 '명확한 로드맵'을 촉구하며 정치적 의지를 표명했고, EU와 콜롬비아, 소규모 섬나라를 포함한 80여 개국이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시간표 마련에 힘을 모았다. 콜롬비아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지지하는 선언문 발표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석유 생산국은 화석연료 감축 로드맵에 완강히 반대했다. 이들은 로드맵 대신 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을 통해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폐막을 앞두고 발표된 최종 합의문 초안에는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산유국들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EU는 초안 내용이 너무 약하다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막판 밤샘 협상 끝에 절충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합의문은 2023년 COP28에서 합의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상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사회에서는 합의문에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을 두고 “산유국들의 승리"이자 “COP의 후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기후 재원 및 적응 목표 강화 기후 재원 조성 계획은 COP30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이었다. 합의문은 개발도상국의 기후 행동을 위한 재원 조달 규모를 2035년까지 연간 최소 1조3000억 달러(약 1923조원)로 확대할 수 있도록 모든 행위자가 협력해야 한다는 요청을 재확인했다. 이 목표는 지난해 COP29에서 합의된 연간 최소 3000억 달러를 포함하는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의 일환이다. 또한 기후 변화 적응 지원과 관련하여, 합의문은 적응 재원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약 3배로 늘리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적응 재원 격차를 해소하고 선진국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정치적 신호이지만, 개발도상국이 요구한 수준의 야심 찬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목표 시점이 늦춰지거나 기준 연도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30년까지 적응 재원을 3배로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Loss and Damage Fund), 녹색기후기금(GCF), 지구환경시설(GEF)의 재원 보충을 기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마존 보전 노력과 브라질의 이니셔티브 COP30 개최지인 벨렝은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 생태계인 아마존에 인접해 있어, 브라질은 아마존의 중요성을 느끼도록 개최지를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브라질은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장기적인 재정 지원을 목표로 하는 열대우림보전기금(TFFF)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TFFF는 초기 기금 예상치 250억 달러(약 36조 원)와 민간 부문을 포함한 목표 재원 1000억 달러(약 145조 원) 규모로 추진된다. 브라질은 또한 '글로벌 무치랑(Global Mutirão)' 정신(브라질 토착어로 '공동 협력'을 의미)을 바탕으로 협상의 진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무역 장벽 및 NDC 격차 논의 합의문에는 기후 변화 대응 조치가 국제 무역에 있어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기후 관련 무역 장벽에 대한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최종 합의문은 기후 변화 대응 조치가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 또는 국제 무역에 대한 위장된 제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무역의 역할과 관련한 국제 협력 강화를 논의하기 위해 보조 기구에서 세 차례의 대화(dialogue)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각국이 제출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완전히 이행하더라도 지구 온도 상승 폭이 파리협정 목표인 1.5°C 이하가 아닌 2.3~2.5°C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감축 목표와 필요한 감축량 간의 '격차 해소' 방안도 주요 의제로 다뤘다. COP30은 파리협정의 1.5°C 목표를 재확인하고, 일시적인 온도 초과(overshoot) 수준과 기간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각국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이행 및 투자 계획을 개발하고 NDC를 경제 개발 전략과 연계하도록 권고했다.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은 결정문에서 제외되었으나, COP 30 및 31 의장국이 주도하는 '1.5도를 향한 벨렝 미션'을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향후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을 위한 발판을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NDC의 이행 가속화를 위해 협력적이고 자발적인 이니셔티브인 '글로벌 실행 촉진 기구(Global Implementation Accelerator)'도 출범시키기로 했다. ◇정의로운 전환와 성평등 문제도 다뤄 이번 회의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just transition)' 문제도 다뤄졌다. 각국은 국제 협력, 기술 지원, 역량 강화 등을 강화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just transition work programme)을 보다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성평등 행동 계획 (gender action plan, GAP)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여기에는 의사 결정 시 분리된 데이터와 성별 분석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기후 행동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인종·장애·연령 등 다차원적 요소가 사람들의 경험을 형성한다는 인식이 포함됐다. ◇미국 불참과 중국의 역할 확대 이번 총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 과학을 '사기극(con job)'으로 치부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미국이 유엔 기후 총회에 불참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를 대표단으로 파견하며, 녹색 전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기후변화 대처 리더십을 차지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COP30 의장 안드레 꼬레아 두 라고는 중국이 저탄소 에너지의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부상해 “전 세계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COP30은 치솟는 숙박비 문제와 더불어 폐막 직전 전시장 인근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는 등 혼란 속에서 진행됐으나, 다자간 협력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러나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가 빠지면서, 이는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에 미치지 못하는 '불충분한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엔 부담과 기회 양면적 영향 예상 우선 기업에는 수출규제와 무역장벽 강화 위험이 커질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서 EU의 CBAM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됐기 때문이다. EU 등은 앞으로도 CBAM 등 자체 규제와 녹색 규격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국내 수출기업은 제품·공정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성적 표기 등으로 인해 관련 비용의 상승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교통·건물·배터리·그린수소 등 분야에선 기술·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가 수출·투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전통적 석유화학·정유·철강은 구조적 수요 축소로 재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외교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개별 경제권 규제가 강화되면서 외교·무역 대응이 그 만큼 더 필요해졌다. 정부는 2035 NDC와 관련한 로드맵을 상세히 작성하고, 재원계획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전환지원(보조금·세제·직업전환) 프로그램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신호등] 글로벌 ‘그린 보호주의’ 파도…산업 대전환으로 넘어야

최근 산업연구원(KIET)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보고서의 제목은 '대외환경 변화에 따른 기후환경·에너지 정책 분석과 산업별 대응 방안'이다. 보고서는 전 세계적인 기후·에너지 정책 환경 변화가 국내 주력 산업에 중대한 구조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글로벌 그린 보호주의' 격랑을 소극적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심각한 한국 경제의 특성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글로벌 통상 질서와 기후 통상 정책 변화에 민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정책적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자(fast follower)'였지만, 선진국과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저탄소 시대을 맞아 적극적인 '선도자(first mover)'로 전환한다면 추월도 가능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국민경제와 관련된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문을 수행하기 위해 헌법(제93조1항)에 근거해 설립된 기관이다. 다음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 보호무역 강화와 에너지-AI의 충돌 보고서는 주요국의 정책 변화를 자세히 다뤘다. 우선 미국의 경우 기후 정책 후퇴 및 보호무역주의 심화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상호 관세 도입을 포함한 강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글로벌 통상 질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뿐만 아니라 글로벌 교역 둔화 등 부정적인 간접 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2기에서는 파리 기후 협정 탈퇴와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면적 축소 또는 폐지 가능성, 친환경 투자 인센티브의 대폭 축소가 예상된다. 특히,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의 제정으로 IRA에 기반한 전기자동차(EV) 세액공제는 2025년 9월까지, 충전 인프라 세액 공제는 2026년 6월까지 폐지될 예정이다. 한편, 공화당은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수입품의 탄소 집약도가 미국 제품보다 10% 이상 높으면 수수료를 부과하는 '해외 오염 관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발의를 통해 자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EU, 청정산업딜과 규제 완화 패키지 유럽연합(EU)은 기후 환경 규제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 주도권을 선점하는 기존 전략에서 성장과 전환을 동시에 도모하는 기조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 그린딜을 대체하는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을 통해 에너지 집약 산업 지원과 산업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규제를 간소화하기 위해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보고 의무 간소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적용 대상의 약 80% 축소 및 보고 기한 2년 연기, 공급망 실사 지짐(CSDDD) 적용 시기 1년 연기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CBAM은 예정대로 내년 1월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독일은 탄소 가격 변동 리스크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탄소차액계약(CCfD) 입찰을 시작해 중공업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등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GX(Green Transformation, 녹색 전환) 추진법을 기반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일본은 탄소세와 GX-ETS(배출권거래제, 2026년 의무화)를 결합해 탄소 가격 신호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은 GX 경제전환 채권을 통해 탈탄소 기술·인프라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2030년 이전 탄소 피크 도달과 2060년 탄소중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신규 설치한 발전 설비 용량 가운데 86%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등 국가 주도로 빠른 전환을 추진 중이다. 특히 철강 분야에서는 지난해 상반기 신규 설비(710만 톤) 모두를 전기로(EAF)로 채우는 등 산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혁명: 데이터센터 증가와 전력 수요 폭증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지난해 415 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 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6배 수준의 전력 소모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중단 없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므로, 간헐적인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적인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대한 의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집약도는 미국 평균보다 48% 높다. 이러한 전력 수요 압박에 대응하여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은 에너지 수요를 완화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와의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을 확대하고 있다. 구글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계약을 통해 2030년부터 50MW 전력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의 장기 PPA를 통해 원자력 발전을 확보했다. 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혼합형 PPA의 확산 가능성을 시사하며, 에너지 믹스 논의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및 그린 제품 시장의 지속적 성장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는 가파르게 증가해 전력 믹스의 핵심 전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기준 태양광의 평균 발전단가(LCOE)는 석탄보다 낮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2024년 신규 전원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92.5%에 달했다. 민간 이니셔티브인 RE100(재생에너지 100%)은 2023~2025년 동안 회원사가 450개사로 증가하는 등 순항 중이다. 반면 국내 기업에게 RE100은 중요한 수출 규제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등을 기반으로 하는 '그린 철강' 시장은 2024년 약 37억5000만 달러에서 2032년 약 1290억 달러로 연평균 55.6%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BMW와 포드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그린 철강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저탄소 제품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산업 '이중고': 수익성 악화와 정책적 부담 가중 국내 경제는 철강·화학 등 주요 기초 소재 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과 내수 침체, 통상 환경 불확실성으로 경영상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주요 소재 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제조업 평균(5.6%)을 하회하고 있다(예: 석유화학 2.2%, 철강 4.0%). 이러한 심각한 업황 부진은 향후 저탄소 전환을 위한 주력 산업의 투자 여력을 제한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전력비 등 생산비 인상 부담을 가격 결정력이 약한 소재 기업들이 떠안으면서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산업용 전기요금은 1961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주택용을 추월했는데, 일부 전력 다소비 업종에서는 국내 생산 중단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확정된 2035 NDC 목표(2018년 대비 최대 61% 감축)로 인해 산업 부문의 실질적 감축 부담은 기존 대비 3배 이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또한, 배출권거래제(ETS)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는 기업의 감축 의무와 비용 부담이 눈에 띄게 강화될 예정이다. 특히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이 현재 15%에서 2030년 50%로 증가하면서 전력 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수익이 축소된 상황에서 전환 투자비용과 배출권 구매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기업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 '전환 역량' 강화 통한 추월 기회 확보해야 보고서는 국내 주력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저탄소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산업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 탄소중립 이행을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체계를 혁신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개발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 목록을 새로 짜고, 철저히 이행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장기·고난도 혁신 기술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시설투자 및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기후대응기금의 안정적 재원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배출권 경매 수입 증가분의 재투자를 확대하고 환경부담금 체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에 앞서 탄소(배출권) 가격의 정상화부터 이뤄져야 한다. 셋째, 고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고배출 산업의 업종별 전환경로(decarbonisation pathways)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근거로 과학적 기반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투자 실행력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민간 금융기관이 전환금융 추진 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과도기적 투자의 회계 및 공시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넷째, 저탄소 제품 수요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그린 철강 생산 시범사업을 실제 시장 적용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인프라 사업에 그린 철강 사용을 일정 비율 의무화하거나, 민간기업 채택 시 차액계약(CfD) 제도를 시범 도입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비용 격차를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현재 전체 공공조달 규모 대비 2%에 불과한 녹색 공공조달 제도의 성과지표를 개선, 실질적인 녹색제품 수요를 견인할 필요가 있다. ◇균형 잡힌 무탄소 에너지 전환 믹스 실현 에너지 전환 정책은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계통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균형감 있는 무탄소 전원 믹스(mix)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에너지시스템의 탈탄소화와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서는 특정 에너지원을 배제하는 전원믹스와 에너지정책은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등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SMR을 포함해 수소발전,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모든 무탄소 전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높은 발전비용(LCOE)을 낮추기 위해서는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지역공유형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해 주민 수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내수 시장 기반의 국산화 및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해 장기적으로 발전단가를 하락시키고, 에너지고속도로(HVDC, 해저케이블) 구축을 조기 달성해 수급 불균형과 송전 제약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공지능(AI) 확산과 탄소중립 전력화에 따라 전력 수요가 크게 확대될 것에 대비해 산업 부문 에너지 효율 개선 제도 확대 및 고도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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