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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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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대전환의 관건은 탄소 가격… “가격 낮으면 혁신 신호 약화시켜”

탄소 가격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기업과 시장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혁신의 신호'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국내 탄소 가격이 너무 낮으면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혁신이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조셉 알디(기후경제학) 교수는 27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의 주최로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넷제로 인텔리전스 국제포럼(Net Zero Intelligence International Forum)'의 기조 강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셉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탄소 가격(carbon pricing)이 갖는 결정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배출권거래제(ETS)를 사례로 들며, 제도 설계 자체는 상당히 진전돼 있지만 탄소 가격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알디 교수는 “한국 ETS는 발전·산업 등 주요 부문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출권 가격이 2019년 이산화탄소 1톤당 4만 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1만 원대까지 하락했다"면서 “이러한 가격 수준은 기업의 장기적인 기술 전환과 설비 투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학계에서 추정하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세계적으로 톤당 약 190달러 수준임을 언급하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실제 탄소 가격은 기후 피해 비용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진단했다. 이날 포럼은 '녹색 대전환을 위한 기술과 시장의 도전과 혁신'을 주제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정책·시장·기술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내외 정책 전문가와 학계, 금융 및 산업계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소 가격제의 역할, 배출권거래제와 자발적 탄소시장의 관계, 정부 지원과 민간 금융의 역할 등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탄소 가격은 가장 저렴한 감축 수단을 찾게 만드는 '시장의 나침반' 알디 교수는 탄소 가격이 기술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했다. 탄소 가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가스 복합화력 발전이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저렴해 보일 수 있지만, 탄소 가격이 도입되거나 상승하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한 시스템이 더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된다는 것이다. 탄소 가격은 기업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하는 '시장의 나침반'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격이 낮거나 불안정하면 기업은 기존 화석연료 기반 설비를 유지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혁신을 지연시킨다"고 강조했다. 또한 탄소 가격제가 본격화된 이후 저탄소 기술 관련 특허와 연구개발(R&D)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한 유럽연합(EU)의 사례를 언급하며 “탄소 가격은 규제가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알디 교수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시장 안정화(market stability)'였다. 그는 탄소 가격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문제지만, 가격 변동성이 클 경우 기업의 장기 투자가 더욱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은 5년, 10년을 내다보고 설비와 기술 투자를 결정하는데, 배출권 가격이 급등락하면 시장의 방향성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이럴 경우 기업은 투자를 미루거나 최소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로 ▶투명하고 일관된 규칙 운영 ▶가격 하한선 설정 등 합리적인 가격 범위 관리 ▶시장 안정화 예비분(market stability reserve)의 전략적 활용 ▶배출권 공급 조절에 대한 명확한 신호 제공 등을 제시했다. 알디 교수는 “정부가 가격의 방향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야만 탄소 가격이 제대로 된 혁신 신호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일본 GX 전략 조명… “기술과 시장 결합한 산업 전환" 이날 포럼에서는 일본의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 GX) 전략도 소개됐다. 일본 경제산업성 나카하라 히로미치 GX그룹 부국장은 “일본의 GX 정책은 탄소 감축과 에너지 안정적 공급, 경제 성장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나카하라 부국장은 일본 정부가 GX를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산업·금융 정책을 통합한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을 산업 구조 전환과 성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대규모 재정 지원과 민간 투자를 결합해 수소와 암모니아, 차세대 전력망 등 전략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명확한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초기에는 정부 주도로 시장을 형성하되 점진적으로 민간의 자율성과 경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GX를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은 지난해 국회 입법을 거쳐 오는 4월부터 전국적으로 ETS를 시행할 예정이다. 10만톤 이상 배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300~400개 정도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전체 탄소 배출량의 60% 정도가 ETS 제도에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배출권거래제와 자발적 탄소시장, “대체재 아닌 보완재" 포럼에서는 정부 주도의 배출권거래제(ETS, 준수 시장)와 민간 중심의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관계도 핵심 논제로 다뤄졌다. 알디 교수는 “전 세계 배출량의 약 30%만이 ETS와 같은 탄소 가격제의 적용을 받고 있다"며 “나머지 70%를 포괄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자발적 탄소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발적 탄소시장이 기업의 자발적 감축 목표를 확대하고, 산림 보호, 재생수소, 신기술 실증과 같은 영역에서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 검증, 투명한 기준, 신뢰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VCM과 ETS는 상호 보완 관계"라면서 “ETS는 정부 할당을 통해 배출권을 공급하기 때문에 공급도 비탄력적이고, 배출을 피할 수 없는 대기업의 배출권 수요 역시 비탄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ETS에서 가격 변동성은 피할 수 없고, 불확실성은 기업의 결정을 미루도록 한다"면서 “가격이 높아도 불안적하다면 탄소 저감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VCM이 완충작용을 한다면 ETS 탄소 가격의 불확실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과 민간 금융 “마중물 역할이 중요" 정부와 금융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알디 교수는 “공공 재정은 민간 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특허 활동이 30% 이상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녹색 전환을 위한 민간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K-GX 기획단의 김병훈 부단장은 “지난해 마련한 2035년 온실가스 감축계획(NDC) 달성을 위해 '종합 팩키지' 형태로 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음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단장은 오는 6월 K-GX 전략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신산업을 성장 동력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모두가 참여하며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민간투자 확대를 유도해 지속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 등 세 가지를 축으로 하는 전략을 마현하겠다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마스크, 미세먼지 걸러내 심장병 위험 낮춘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혹은 건강한 사람이 감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에도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세계보건기구(WHO)도 마스크 착용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역학·임상 연구는 이러한 논란에 분명한 과학적 답을 제시하고 있다. 마스크는 단순한 감염병 대응 수단을 넘어, 미세먼지 흡입을 물리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심혈관 질환 위험까지 낮추는 효과적인 공중보건 도구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팬데믹이 드러낸 '자연 실험'… 미세먼지 차단 효과 입증 마스크의 환경보건적 효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구는 일본에서 수행된 대규모 분석이다. 구마모토 대학 의학과학연구과 이시이 마사노부 박사팀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일본 전역의 급성 심근경색 환자 27만여 명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사회적 변화를 일종의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으로 활용했다. 해당 연구는 최근 '유럽 심장 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팬데믹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이뤄진 마스크 착용과 이동 감소가 개인의 미세먼지(PM2.5) 노출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당 10㎍ 증가할 때 급성 심근경색 발생 위험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시기에는 특정 유형의 심근경색 위험이 뚜렷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상동맥 폐쇄가 없는 심근경색(MINOCA)의 경우 미세먼지 노출에 따른 위험도가 팬데믹 이전 1.303에서 이후 1.230으로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연구팀은 일본 사회에서 법적 강제 없이도 광범위하게 마스크 착용이 이뤄졌고, 덕분에 미세먼지 흡입이 줄어 심혈관계 부담을 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세먼지가 심장병 위험을 높이는 경로는 비교적 명확하다.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되면 전신 염증 반응과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혈관 내피세포 기능 장애가 유발된다.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ROS)가 과도하게 생성돼 혈관 내벽을 손상시키고, 미세혈관 기능을 저하시켜 결국 급성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심혈관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스크는 이러한 병리적 연쇄 반응의 출발점인 '흡입 노출' 자체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 차단 효과도 재확인 마스크의 효과는 환경 요인에 그치지 않는다. 호흡기 바이러스 차단 효과는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연구팀은 지난 2024년 11월 미국 의학협회 저널인 'JAMA 네크워크 오픈(Network Open)'에 발표한 논문에서 병원 내 마스크 착용 정책의 실효성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10개 병원에서 발생한 64만 건 이상의 입원 사례를 분석한 결과, 보편적 마스크 착용과 선제적 검사 정책을 중단했을 때 병원 내 호흡기 바이러스(코로나19, 인플루엔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률이 이전보다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대로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을 경우 감염률은 33% 감소했다. 이는 의료 환경에서 마스크가 여전히 핵심적인 감염 차단 수단임을 보여준다. ◇“선택이 아닌 과학적 예방 수단" 이들 연구 결과는 마스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보호할 뿐 아니라, 미세먼지라는 환경적 위험 요인으로부터 심장 건강을 지키는 실질적이고 과학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과거의 논란과 달리,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나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행동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근거에 기반한 효과적인 공중보건 전략으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턱없이 낮은 韓 탄소가격, 그러다 좌초자산 쇼크 맞는다”

한국 경제가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을 상대적으로 늦추면서 단기적인 비용 부담은 피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미래에 훨씬 더 급격하고 파괴적인 '좌초 자산(stranded assets)'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지금의 정책적 완만함이 오히려 산업 구조를 낡은 기술에 고착시키고, 향후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대규모 자산 가치 붕괴와 지역 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경고는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비즈니스개발·기술학과 교수이자 영국 서섹스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의 과학정책 부문 연구원인 아바스 압둘라피우 박사가 내놓았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국제 기후·에너지 전환 정책과 탈탄소화 전략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계 연구자로, 학제간 접근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경제·기술 측면을 분석해 온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연구 및 사회과학 (Energy Research & Social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과 유럽연합(EU)·미국·일본·캐나다·호주 등 주요 6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탈탄소화 과정에서 산업별 좌초 자산 위험을 비교·분석했다. 좌초 자산이란 기후 규제 강화와 기술 혁신, 시장 수요 변화 등으로 인해 설비나 인프라가 예상 수명보다 훨씬 이르게 경제적 가치를 상실하는 자본 투자를 의미한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논문에서 탈탄소화가 가속될수록 이러한 자산이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급격히 가치가 붕괴되는 '비선형적 위험'에 노출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산업의 구조적 위험: '기술적 고착'과 '지연된 전환의 역설' 논문이 한국 경제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목한 것은 단순히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사실이 아니다. 핵심은 정책 강도가 낮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산업 전반에 '기술적 고착(technological lock-in)'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호주는 EU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만한 탄소 규제 환경을 유지해 왔다. 논문은 한국의 탄소가격 수준을 국제 비교 기준으로 톤당 약 30~35달러 수준으로 설정하고 분석했는데, 이는 EU(약 80달러 이상)나 미국(약 60달러 내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로 인해 한국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규제 비용 부담을 덜고, 기존 설비를 더 오래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로 이 지점이 한국 산업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규제가 느슨할수록 기업은 조기 전환을 미루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본이 탄소 집약적 기술에 추가로 묶이게 된다. 이는 미래의 규제 강화 국면에서 자산 가치가 한꺼번에 붕괴되는 '집중형 충격'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완만한 현재(shallow now)가 급격한 미래(steep later)를 만든다"는 구조적 역설로 설명한다. 전환을 미룰수록 조정 비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며, 어느 순간 더 이상 분산시킬 수 없는 형태로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철강·정유·화학 산업, '완만한 쇠퇴'가 아닌 '급락 시나리오' 논문이 지목한 한국의 고위험 산업은 철강·정유·석유화학 부문이다. 한국 철강 산업의 경우 일부 노후 고로와 평로 설비가 탄소 가격이 상승할수록 운영 비용과 유지보수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설비의 조기 폐쇄 또는 대규모 감가상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정유·화학 산업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이들 산업은 화석연료 기반 원료와 공정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데다 전동화나 저탄소 원료로의 전환에는 막대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 논문은 한국의 경우 이러한 전환이 지연될수록 기술 전환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급격한 단절'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즉, 경쟁력은 서서히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좌초 자산 문제가 단순히 기업 회계상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강·정유·발전 설비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단일 공장의 폐쇄가 지역 전체의 고용과 소득 구조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개의 대형 산업 시설이 폐쇄되면 협력업체와 지역 서비스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수백 가구의 생계가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탈탄소화 지연은 결국 충격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과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해법은 '속도 논쟁'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 논문이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히 “더 빨리 탈탄소화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핵심은 예측 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정책 신호다. 첫째, 정부는 탄소가격 경로, 성능 기준, 기술 전환 의무 등에 대해 일관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기업과 투자자가 자산 수명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좌초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둘째,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노후 설비의 저탄소 개조, 관리된 폐쇄, 신기술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저금리 융자와 공공 보증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 화학 공정 전동화처럼 초기 자본 부담이 큰 분야에서는 금융 접근성이 전환 속도를 좌우한다. 셋째, 수소·재생에너지·탄소 포집 및 저장(CCUS) 등 인프라 준비성 없이는 기술 전환도 불가능하다.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을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노동자 재교육, 사회 안전망 강화, 산업 의존 지역의 경제 다변화 없이는 탈탄소 정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논문에서 “탈탄소화를 늦춘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비용은 단지 미래로 떠넘길 뿐이며, 그 형태는 더 급격하고 더 불평등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낮은 탄소가격이 주는 안도감'이 아니라 충격을 관리 가능한 경로로 분산시키는 예측 가능한 전환 전략이라는 주문이다. ◇EU는 자초 자산이 관리 가능한 수준 EU는 높은 탄소가격과 엄격한 규제로 인해 단기적인 좌초 자산 부담은 크지만, 산업 전반에서 조기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장기적 자산 붕괴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평가된다. 즉, 충격은 분산되어 나타나며 '관리 가능한 좌초(managed stranding)' 경로에 가깝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탄소가격은 제한적이지만, 주(州) 단위 규제와 보조금 중심 정책으로 산업 탈탄소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좌초 자산 위험은 산업·지역별로 불균등하게 분포하며, 일부 화석연료 집약 산업은 여전히 높은 노출도를 보인다. 호주는 한국과 유사하게 정책 강도가 낮아 단기적 비용 부담은 작지만, 그만큼 기술적 고착과 지연된 전환 위험이 크다고 평가된다. 특히 자원·에너지 집약 산업에서 미래 규제 강화 시 급격한 자산 가치 하락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점진적 기술 전환이 진행되고 있으나, 화석연료 기반 산업 구조가 여전히 강해 좌초 자산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정책 신호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캐나다는 명시적인 탄소가격 제도를 통해 장기적 전환 신호를 제공하고 있지만, 자원 채굴 및 에너지 산업 비중이 커 산업별 위험 격차가 크다. 전반적으로는 단기 충격은 있으나 장기적 구조조정은 비교적 질서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ETS 시장가격과 정책·분석용 탄소가격의 중요한 차이 압둘라피우 박사 논문에서 한국의 탄소가격을 톤당 약 30~35달러 수준으로 설정했는데, 현재 한국 배출권 거래제(ETS)에서 형성되는 실제 배출권 시장가격은 톤당 약 1만 원대 중반,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10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EU ETS나 북미 시장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논문에서 사용한 톤당 30~35달러 수준의 탄소가격은 실제 거래 가격이 아니라 정책 분석에서 흔히 사용되는 '암묵적 탄소가격(implicit carbon price)', 혹은 각국의 규제 강도, 보조금, 기준 등을 종합해 환산한 '정책적 유효 탄소가격', 또는 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장기 기대 탄소가격'에 가깝다. 즉, 시장에 형성된 가격이 아니라, '정책이 신뢰될 경우 기업이 직면하게 될 비용 수준'을 가정한 분석용 지표다. 이처럼 한국의 ETS 시장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은 단기 비용 부담이 작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탄소가격 신호가 산업 투자 결정에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지금은 싸다"는 신호에 반응해 기존 설비를 유지·연장하지만, 정책이 강화되거나 ETS 설계가 바뀌는 순간 낮은 가격은 더 이상 완충장치가 되지 못하고 충격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기온 오르니 男兒 출생률 감소…“기후변화, 미래 인구구조 영향”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폭염과 가뭄, 홍수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출생 성비(性比)라는 인구학적 지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너필드 칼리지와 레버흄 인구과학센터 등 국제연구팀은 기온 상승이 출생 시 성비(sex ratio at birth, SRB)를 체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3개국과 인도의 출생자료 500만 건 이상을 고해상도 기온 데이터와 결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임신 기간 중 일(日)최고기온이 20°C를 넘는 날이 늘어날수록 남아 출생 비중이 감소하는 일관된 경향이 확인됐다. ◇같은 폭염, 다른 메커니즘 흥미로운 점은 성비 변화의 원인이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임신 초기(제1분기, 제12주차까지)의 고온 노출이 남아 출생률 감소와 가장 강하게 연결됐다. 일최고기온이 20~25°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0.022%p 감소했고,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0.023%p 감소했다. 임신 1분기 동안 30°C 이상의 날이 1표준편차(SD, 약 34.8일)만큼 증가하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54명에서 101.08명으로, 남아 수가 약 2.47명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는 남아 태아가 환경적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는 이른바 '취약한 남아(frail male)' 가설을 뒷받침한다. 폭염은 임산부의 체온 조절, 수분 균형, 태반 혈류에 부담을 주고,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더 약한 남아 태아의 자연유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인도에서는 전혀 다른 경로가 작동했다. 인도에서는 임신 중기(제2분기, 13~27주차)의 고온 노출이 남아 비중 감소와 연결됐다. 임신 제2분기에서 25~30°C인 날이 1표준편차(SD, 약 19.3일) 증가할 때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약 1.15명 감소(109.95명 → 108.81명)했다. 제3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이 0.015%p 감소했다. 특히 출산 2개월 전(임신 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되면 남아 확률이 0.037%p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생물학적 유산보다는 행동 변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인도 사회에는 오랫동안 남아 선호와 여아 선택적 낙태라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해 왔다. 그런데 폭염이 심해지면 소득이 줄고 이동이 어려워진다. 의료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평소에는 이루어지던 여아 선택적 낙태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고, 통계적으로는 남아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폭염은 인도에서 역설적으로 성차별적 관행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산모의 교육 수준에 따라 영향 더 커 기온 상승이 출생 성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농촌 지역 거주자, 교육 수준이 낮은 산모, 넷째 이상 다자녀 임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후 충격이 사회적 취약성과 겹치며 증폭된 것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거나 초등 교육만 받은 산모의 경우, 제1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확률이 0.031%p 감소했다. 중등 교육 이상 산모에게선 영향이 없었다. 또, 넷째 아이 이상의 다자녀 임신에서 30°C 이상의 날이 1표준편차 증가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1.28%p나 크게 감소했다. 인도에서는 30세 이상 산모가 임신 중기(제2분기)에 20°C 이상의 고온에 노출될 경우, 남아 확률은 하루당 0.056%p에서 최대 0.099%p까지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남아 선호도가 강한 북부 지역에서 아들이 없는 상태로 넷째 이상을 임신한 경우, 제2분기에 25~30°C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확률이 0.183%p 감소했다. 이를 1표준편차 증가로 환산하면 남아 출생 확률이 2.77%p나 줄어드는 매우 강력한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수치는 폭염이 임산부의 생물학적 스트레스를 높여 남아의 자연 유산을 유발하거나(아프리카), 경제적·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여아 선택적 낙태를 줄임으로써(인도) 성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입증했다. ◇온대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연구는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성비 변화는 특정 문화권이나 개발도상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과거 문헌을 인용, 북반구의 온대·고소득 국가들에서도 기온 변동이 성비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이미 보고돼 왔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는 성비 변화가 지역이나 기후대보다 '절대 기온이 특정 임계치(약 20°C)를 넘느냐'에 따라 반응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시원했던 온대 지역이 기후 변화로 이 임계치를 넘게 될 경우 향후 출생 성비와 인구 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기온 상승이 단순히 더위를 견디는 문제를 넘어 태아의 생존 가능성, 부모의 출산 선택, 성차별적 관행,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과 결혼 구조까지 수십 년 뒤 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자연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연구는 폭염이 인간의 생물학과 사회적 선택을 동시에 흔들며, 인구 구성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출생 성비라는 지표는 기후 위기의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미세플라스틱, 하늘에서 내리는 보이지 않는 위협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미세플라스틱은 더 이상 바다와 토양에만 머무는 오염원이 아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는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 즉 대기 중에도 미세 혹은 나노 플라스틱(micro- and nano-plastics, MNP)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동시에 이 MNP가 인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잇따라 경고하고 있다. 특히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호흡을 통해 체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해양 오염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공중보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5㎜ 이하, 나노플라스틱은 지름 1㎛(마이그로미터 1㎛=1000분의 1㎜)보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도심과 실내를 뒤덮은 미세 플라스틱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원은 매우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일상적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독일 라이프니츠 대류권 연구소(TROPOS)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Nature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라이프치히 도심 대기에서 측정된 지름 10㎛ 미만의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평균 농도는 ㎥당 0.6㎍(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에 달했다. 이 연구팀의 분석 결과, 전체 플라스틱 입자의 약 65%는 타이어 마모 입자로 나타났다. 도심 대기 미세플라스틱의 지배적인 오염원이 바로 타이어 가루임이 확인됐다. 그 뒤를 폴리염화비닐(PVC), 폴리에틸렌(PE),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등이었다. 실내 환경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란 마슈하드 의과대학 환경보건공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병원 세탁실 공기 중에서 고농도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음을 보고했다. 이 연구에서 검출된 입자의 97%는 검은색 폴리아미드(나일론) 섬유였는데, 병원 유니폼과 침구류 등 합성섬유 제품이 주요 발생원으로 지목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일회용 마스크도 새로운 대기 오염원으로 떠올랐다. 인도 비스바-바라티 대학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일회용 마스크 한 장이 수천 개의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방출할 수 있다. 마스크를 함부로 버리면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공기 속 미세 플라스틱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야외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들은 지하철과 버스 같은 밀폐된 대중교통 내부 공기가 일반 주거 공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박준홍 교수팀이 '유해물질 저널(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역사와 차량 내부 공기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 공기 ㎥당 최대 5.94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스페인 IDAEA-CSIC(환경진단 및 수연구소) 연구팀도 2022년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바르셀로나 지하철 내부 공기 중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당 4.8개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버스에서는 17.3개/m³가 검출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승객 활동과 합성섬유 의류에서 발생하는 미세 섬유의 방출,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바닥 먼지와 플라스틱 입자가 다시 떠오르는 재비산 현상을 지목했다. ◇미세 플라스틱은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떠다닐까 대기 중으로 방출된 미세플라스틱은 바람을 타고 수천 ㎞ 이상 이동할 수 있다. 북극과 남극 같은 외딴 지역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 이유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역학 연구소(IBED)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에 발표한 모델링 연구에서 미세플라스틱의 대기 중 체류 시간(반감기)이 수 초에서 수 주(週)까지 매우 넓은 범위를 가진다고 밝혔다. 특히 직경 약 1㎛ 수준의 입자와 섬유 형태의 플라스틱이 가장 오래 공기 중에 머물고 장거리 이동 가능성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더해 미세플라스틱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그을음(soot)이나 광물 먼지와 결합해 '불균질 응집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과학원 지구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연구에서 광물 먼지와의 응집은 대기 전반에서 흔히 발생하며, 그을음과의 응집은 강수 과정에서 특히 빈번하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응집은 입자의 크기와 밀도를 바꿔 대기 중 체류 시간과 제거 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와 바람을 타고 다시 지표로, 그리고 바다로 대기 중 미세 플라스틱은 결국 지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과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연구팀이 수행한 서울 지역 사례 연구(게재 전 사전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빗물 속 미세플라스틱의 평균 농도는 L당 197개에 달했다. 특히 비가 오기 전 건조한 기간이 길수록, 강우 초기에 대기 중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오는 '초기 세척 효과(first-flush effect)'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침적된 미세플라스틱의 상당량은 해양으로 유입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팀이 올해 초 '해양 오염 회보(Marine Pollution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해안 마산만으로 유입되는 대기 기원의 미세플라스틱이 연간 약 1.94조(兆) 개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봄과 겨울철 내륙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에 침적률이 특히 높아, 도시와 산업 활동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치명적 위험 대기 중 미세 및 나노 플라스틱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체 흡입을 통해 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TROPOS 연구팀의 위해성 평가에 따르면, 하루 약 2.1㎍의 미세플라스틱을 흡입할 경우 심폐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최대 9%, 폐암 사망 위험은 최대 13%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자가 작을수록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폴리에틸렌(PE)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해 신경 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타이어 마모 입자는 중금속과 유기독성 물질이 혼합된 '독성 칵테일' 형태로 산화 스트레스와 만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PVC는 발암성과 돌연변이 유발 가능성이 높은 유해 폴리머로 분류돼, 장기적 노출 시 공중보건 차원의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구팀은 지난달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글로벌 배출량 연구에서, 기존 모델이 실제 농도를 과대평가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여전히 연간 약 61경(京) 개에 이르는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육지에서 대기로 방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80억 인구 1인당 7600만개에 해당한다. 이는 대기 중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오염임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모니터링 표준과 강력한 배출 규제 정책 없이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연구들은 개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응책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헤파(HEPA) 필터를 갖춘 공기청정기와 적극적인 환기가 도움이 된다. 세탁 공간에는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실외에서는 교통량이 많은 도로변 활동을 피하고, 봄·겨울철 바람 방향과 대기 질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강우 초기에는 빗물 노출을 최소화하고, 일회용 마스크와 플라스틱 제품은 사용 시간을 지키고 올바르게 폐기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대기 중 미세·나노 플라스틱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며, 이제는 '공기의 질'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황사와 함께 세균도 날아온다…평소 5~6배로 늘어나

지난 22일 한반도의 하늘이 누렇게 변했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전국 대부분 지방에서 짙은 황사가 관찰됐다. 황사는 미세먼지 농도를 급격히 높여 시야를 가리고 호흡기·심혈관 질환을 악화시킨다. 농작물 피해, 토양·수질 오염까지 초래하는 복합 환경·보건 재난이다.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황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학적 위험을 함께 실어 나르고 있다고 경고한다. 바로 황사 먼지 속에 다량의 세균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22일 수도권·충청권 '황사 위기경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2일 오후 2시 서울·경기 지역을 시작으로 이날 밤까지 전국 각 시·도에 황사 위기경보 '주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발령했다. 이번 황사는 전날 고비사막과 내몽골고원에서 발원해 강한 북서풍을 타고 빠르게 한반도로 유입됐다. 황사 경보 '주의 단계'는 황사로 인해 미세먼지(PM-10) 농도가 ㎥당 300㎍(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이상인 상태가 2시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이날 서울 서초구에서는 오후 1시경 미세먼지 농도가 1시간 평균 460 ㎍/㎥까지 이르러 '매우 나쁨' 기준(150㎍/㎥)의 3배를 넘어섰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서는 오후 2시 592㎍/㎥까지 치솟았다. 전북 익산시 춘포면 측정소에서는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781㎍/㎥을 기록하기도 했다. ◇황사는 '모래'가 아니라 '운반체'다 황사가 진정한 위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모래 입자 자체보다, 그 표면에 붙어 이동하는 중금속 등 유해물질과 미생물 때문이다. 황사 입자는 발원지에서 떠오른 토양 입자에서 시작되지만, 산업지대를 통과하면서 중금속과 각종 유해 화학물질을 흡착한 채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황사 발생 시 대기 중 먼지에는 납(Pb), 카드뮴(Cd), 비소(As), 수은(Hg) 등 인체에 축적될 경우 건강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 성분이 평소보다 높은 농도로 포함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황사가 중국 북부와 동북부의 공업지대를 거쳐 유입될 경우, 석탄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금속성 입자나 산업 배출 잔류물이 황사 입자 표면에 부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황사는 단순한 자연 먼지가 아니라 '자연 기원 먼지 + 인위적 오염물질'이 결합된 복합 오염체로 성격이 바뀐다. 문제는 이러한 화학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로 유입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수와 함께 토양·하천·농경지로 침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중금속은 체내에서 쉽게 배출되지 않아 장기적으로 신경계·신장·심혈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농작물에 흡수될 경우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PM10·PM2.5) 관리가 주로 '농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황사와 같은 장거리 이동 먼지에 대해서는 '성분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같은 농도의 먼지라도, 어떤 금속과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지에 따라 건강 위험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 현지 토양 미생물의 수송체 역할도 황사가 실어 나르는 것은 오염물질만이 아니다. 황사는 일종의 '미생물 수송체'로 작동한다. 대륙의 토양에 서식하던 세균과 곰팡이를 수천 ㎞ 떨어진 지역까지 실어 나른다. 부산대 미생물학과 김태관 교수 연구팀은 2019~2022년 사이 3년 이상 황사 발생 전·중·후의 대기 시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한 연구 결과를 지난달 '응용 환경 미생물학(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국제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단순한 먼지 농도 비교가 아니라, 공기 중에 부유하는 세균의 절대량과 구성 변화를 정밀 측정함으로써 황사가 대기 미생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다. 그 결과 황사가 관측된 기간에는 공기 1㎥당 세균 농도가 평상시 대비 평균 5.5배, 조건에 따라서는 최대 6.2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황사 발생 시 채집한 대기 부유먼지 시료에서 세균의 DNA를 직접 추출한 뒤, 세균 분류와 계통 분석에 표준적으로 사용되는 유전자(16S rRNA 유전자) 영역을 중합효소연쇄반응(PCR)로 증폭해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렇게 확보한 염기서열을 몽골 및 중국 사막 지역 토양에서 채취한 세균 데이터와 비교했다. 황사 시 공기 중에서 검출된 주요 세균으로는 토양에 서식하는 바실러스(Bacillus)와 블라스토코쿠스(Blastococcus) 등이 포함됐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들 세균은 몽골과 중국 사막 지역 토양에서 채취한 세균과 높은 수준의 유전적 일치성을 보였다. 이는 황사가 실제로 발원지 토양의 미생물 군집을 거의 그대로 동아시아 대기권으로 이동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황사 입자가 단순한 '운반 수단'을 넘어, 미생물이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황사 입자에 부착된 세균이 강한 자외선과 극심한 건조 환경에 직접 노출될 때보다 훨씬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황사 입자가 미생물을 감싸는 일종의 '미세 방패막'으로 작용해, 사막에서 발생한 세균이 수천 ㎞ 떨어진 한반도까지 살아 있는 상태로 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들 세균 대부분이 즉각적인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아니지만, 일부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거나 호흡기 점막에 염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호흡기 질환자에게는 장기적·누적적 노출이 건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황사를 단순한 대기 오염 현상이 아니라 미생물 노출이 동반되는 생물학적 환경 사건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사는 줄지 않았다"… 계절도, 빈도도 바뀌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의 황사 양상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 분석에 따르면, 2021~2023년 봄철 평균 황사 일수는 7.9일로, 평년(1991~2020년 평균 5.4일)을 크게 웃돌았다. 더 이상 황사는 '봄철 손님'에 그치지 않고, 가을과 겨울에도 반복적으로 관측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발원지의 급격한 환경 변화다. 몽골은 현재 국토의 약 77%가 사막화 영향을 받고 있으며, 지난 80여 년간 평균 기온이 2.49도 상승해 전 지구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온난화를 겪고 있다. 식생이 사라지고 토양이 메마르면서, 모래폭풍 발생 빈도는 약 55년 동안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기후변화가 황사에 미치는 영향은 단선적이지 않다. 발원지의 고온·건조화는 황사 발생 가능성을 높이지만, 실제로 한반도에 피해를 주는지는 대기 순환과 기류 구조에 달려 있다.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황사 발생 '잠재력'은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미칠지는 바람의 경로와 속도가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연구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몽골 지역에서 형성되는 온대저기압, 이른바 '몽골 회오리바람'이 과거보다 느리게 이동하면서 강한 북풍을 장시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바람이 대규모 황사와 미생물을 한반도와 중국 동부로 실어 나르는 주된 통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사는 관리 대상 재난" 황사 위기 경보 '주의' 단계가 발령되면 각 가정에서는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닫아 황사 유입을 차단하고, 경계·심각 단계 발령되면 실외활동을 피하고, 불가피하게 외출해야 할 경우에는 보호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공기청정기를 최대한 가동할 필요가 있다. 건설 현장 등 야외 작업자는 작업 시간을 조정하고 작업 시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황사 심한 날은 야외 작업을 중단하고, 야적물과 장비 등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덮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황사가 더 불규칙하고, 더 생물학적으로 복합적인 재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에 따라 단기적인 마스크 착용이나 행동 요령을 넘어 발원지 관리와 국제 협력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막화 진행을 늦추고 토양을 안정화하는 조림 사업 등에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강대국간 자원 전쟁, 지구 마지막 유산 ‘심해’마저 훼손

지구 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류에게 여전히 낯선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수천 m 수심 아래의 심해저는 인간이 직접 관측한 면적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이 미지의 공간이 이제 전 지구적 에너지 전환과 자원 안보 경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기차, 재생에너지 설비, 전력 저장 장치에 필수적인 니켈·코발트·구리와 희토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은 최근 태평양 미나미토리시마 인근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수심 약 5700~6000m 해저에서 희토류를 함유한 진흙을 실제로 채취·인양하는 시굴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성취를 넘어 중국의 희토류 '자원 무기화' 전략에 대응해 독자적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일본의 강력한 국가 전략을 상징한다. 동시에 인류가 지금까지 거의 손대지 않았던 심해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산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국제 사회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도 지난해 7월 최첨단 물리탐사연구선 탐해3호로 서태평양 공해상 첫 대양 탐사에 나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수심 5800m 지점의 코어링 시추를 통해 얻은 시료에서 최대 3100ppm, 평균 2000ppm의 고농도 희토류 부존을 확인한 것이다. KIGAM은 정밀 자원 탐사를 위해 오는 4월 2차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심해저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 광물들 심해저에는 육상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전략 광물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해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자원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망간단괴(polymetallic nodules)다. 수심 4000~6000m의 심해 평원에 감자 크기의 둥근 형태로 흩어져 있는 이 광물에는 니켈·코발트·구리·망간이 고농도로 함유돼 있다.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필수적인 금속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돌 속의 배터리'로 불린다. 둘째는 코발트 리치 크러스트(cobalt-rich crusts)다. 해저산의 사면과 정상부를 얇게 덮고 있는 이 광물층은 코발트뿐 아니라 희토류와 백금족(族) 금속까지 포함하고 있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암반에 단단히 부착돼 있어 채굴 과정에서 해저 지형 훼손이 불가피하다. 셋째는 해저에 형성된 대규모 황화물 광상(seafloor massive sulfides)이다. 해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이 열수광상(熱水鑛床)에는 구리·아연·금·은이 고품위로 농축돼 있다. 지형이 급경사이고 열수 분출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기술적 위험성이 크다. 이 가운데 일본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미나미토리시마 인근 EEZ에 분포한 희토류 함유 심해 진흙(퇴적토)이다. 일본 정부와 연구진은 이 지역에 약 680만 톤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연간 소비량을 기준으로 수백 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평가된다. 특히 디스프로슘·네오디뮴 등 고성능 자석에 필수적인 중희토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수심 6000m 아래에서 기계 작동해야 심해 자원의 존재가 곧바로 개발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해 채굴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극한의 공학적 도전 중 하나다. 수심 6000m에서는 수압이 약 600기압에 달하고, 수온은 1~2℃에 불과하다. 염분과 황 성분으로 인해 금속 부식도 빠르게 진행된다. 태양광은 물론 일반적인 통신 신호도 도달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채굴 장비는 완전 무인 상태로 작동해야 한다. 일본은 수심 7000m까지 조사 가능한 자율형 무인탐사기(AUV)와 원격 조종 채굴 차량을 국산화했고, 해저 진흙을 흡입해 선박으로 끌어올리는 수직 양니관(揚泥管 혹은 洋泥管, riser-pipe)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이 관은 수 ㎞에 걸쳐 설치되기 때문에 파손 시 대규모 해양 오염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채굴 이후의 제련 과정 역시 난제다. 심해 진흙은 희토류 농도가 낮고 불순물이 많아 기존 방식으로는 에너지 소모와 탄소 배출이 과도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지속가능한 재료 연구소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Science Advances)' 저널에 수소 플라즈마 환원 공정(HPSR)을 제시했다. 이 공정은 화석 연료 대신 그린 수소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대 90%까지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약 18%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보이지 않는 파괴'에 대한 과학적 경고 심해 채굴을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환경 문제다. 특히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적물 플룸(sediment plumes)'이다. 해저를 긁거나 진흙을 흡입하는 순간 미세 입자들이 거대한 구름 형태로 확산돼 수십~수백 ㎞까지 퍼질 수 있다. 논바닥을 발로 딛고 다니면 진한 흙탕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미국 하와이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퇴적물 구름 속의 미세 입자가 동물플랑크톤의 여과 섭식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소형 어류를 거쳐 참치와 상어 같은 상위 포식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해양 먹이사슬 전체를 교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굴 장비의 소음 문제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텍사스 A&M대학교 연구팀은 채굴 소음이 수백 ㎞까지 전달돼 고래와 돌고래의 의사소통과 이동 경로를 방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해양 오염 회보(Marine Pollution Bulletin)'에 보고했다. 또한, 영국 자연사박물관과 사우샘프턴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네이처 생태학·진화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실제 채굴 시험 구역에서 대형 무척추동물의 밀도가 37% 감소하고 종 풍부도가 32% 하락했다. 연구진은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구역(Clarion-Clipperton Zone, CCZ)에서 발견된 5000종 이상의 생물 중 90%가 아직 이름조차 없는 신종임을 경고하며, 무분별한 개발이 이들을 발견하기도 전에 멸종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해 생태계 복원의 냉혹한 현실 심해 채굴의 또 다른 문제는 복원 가능성이다. 심해 생태계는 한 번 파괴되면 '인간의 시간 척도' 내에서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CCZ는 심해 채굴이 초래할 생태계 훼손과 회복 불가능성 문제로 인해 환경 논쟁의 중심지다. 영국 국립해양센터 연구팀은 1979년 CCZ에서 실시된 시험 채굴 지역을 40여 년 뒤 재조사해 그한 결과를 지난해 3월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공개했다. 해저에는 여전히 채굴 장비의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고, 대형 부착 생물은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CCZ는 태평양 중·동부 적도 해역에 위치한 수심 4000~6000m의 광대한 심해 평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망간단괴 분포 지역이다. 이 단괴에는 망간·니켈·코발트·구리 등이 포함돼 에너지 전환과 첨단 산업의 핵심 원료 공급지로 주목받아 왔다. CCZ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국가 관할권 밖 해저에 해당해 어느 국가도 소유할 수 없으며, 자원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탐사와 개발은 국제해저기구(ISA)의 관리 아래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상업 채굴은 아직 전면 승인되지 않았다. 망간단괴는 백만 년에 수 ㎜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괴 제거가 단순한 자원 채취가 아니라, 생물 서식 기반 자체를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망간단괴가 햇빛 없이도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산소를 생성하는 이른바 '어두운 산소(Dark oxygen)' 현상과 관련돼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이는 단괴 제거가 심해 생명 유지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인류 공동의 유산'을 둘러싼 외교 전쟁 심해저 자원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관리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가장 많은 탐사 계약을 보유하며 ISA 규칙 제정을 주도해 왔고, 태평양 공해에서 대규모 시험 채굴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SA 절차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ISA 사무총장 레티시아 카르발류는 “어떠한 국가도 인류 공동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미국과 '핵심 광물 프레임워크'를 체결하며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다자주의 질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7년 이후 하루 최대 350톤 규모의 심해 진흙 채취 실험을 통해 상업적 채산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일부 연구는 심해 광물 개발의 내부수익률(IRR)이 17~27%에 이를 수 있어 육상 광산보다 경제성이 높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태평양 도서국 사이에서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나우루와 쿡 제도는 새로운 경제적 수입원을 위해 채굴 찬성 입장인 반면, 팔라우·피지·사모아 등은 생태계 파괴를 이유로 10년 이상의 채굴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폴리네시아의 모에타이 브로더슨 대통령과 팔라우의 수랑겔 휩스 주니어 대통령은 '네이처'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심해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인류 공통의 유산이며, 불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해 채굴에 앞서 기존 자원 재활용부터 검토해야 지난해 6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유엔 해양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했던 리사 레빈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교수는 “결국 경제성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며 테슬라 등 주요 업체들이 이미 니켈과 코발트가 필요 없는 LFP 배터리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심해 채굴에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지속 가능한 금융 싱크탱크 '플래닛 트래커' 역시 국가가 얻을 로열티 수익은 제한적인 반면, 자원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기존 육상 광산과 지역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해 채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도시 광산(urban mining)'과 '순환 경제'가 강력히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인류가 매년 버리는 가전제품 폐기물에서 회수할 수 있는 코발트와 구리의 양이 심해 채굴 예상량을 상회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전문가들은 “심해를 파헤치기 전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재활용하고 수리해서 쓰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2026년은 심해 채굴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공해 해양생물다양성 협정(BBNJ)이 발효됐다. 이 협정은 공해상에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의무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향후 심해 채굴 활동에 강력한 법적 규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자원 패권을 선점하려는 국가들이 당장 속도전을 멈추지는 않을 전망이다. 심해저를 둘러싼 이 '총성 없는 전쟁'의 결말은 기술이 아니라, 인류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지구 마지막 미개척지인 심해를 희생시킬 것인지, 아니면 기술 혁신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기로에 인류가 서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풍력·파력 동시 수확하는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주목’

기후 위기가 깊어지고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해상 재생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 전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해상 풍력에 파력(波力)과 조류(潮流) 에너지를 결합한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시스템(hybrid offshore renewable energy harvest system, HOREHS)은 단일 에너지원의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해양 에너지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력 발전은 파도의 상하·전후 운동에 담긴 에너지를 기계적 운동으로 변환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파도의 불규칙성으로 인해 제어와 내구성이 기술적 과제로 남아 있다. 조류 발전은 밀물과 썰물로 발생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터빈으로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조류 주기가 규칙적이어서 발전 예측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 서리대학교 공학부와 중국 광저우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보존과 관리 (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에 발표한 종설 논문을 통해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 시스템의 기술적 진화와 남은 과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풍력과 파력, 나아가 조류 에너지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적으로 수확하는 접근이 기술·경제·환경 측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리드 해상 발전의 핵심 이점 ① 비용 절감과 경제성 향상 =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은 기초 구조물과 플랫폼의 공유다. 풍력 터빈과 파력·조류 발전 장치가 동일한 기초를 사용함으로써 개별 설치 대비 초기 투자비용(CAPEX)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해저 케이블과 계통 연계 설비를 공동으로 활용해 에너지 균등화 비용(LCOE)도 낮출 수 있다. ② 에너지 생산의 안정성 = 풍력과 파력, 조류 에너지는 시간적 특성이 서로 다르다. 바람이 약한 조건에서도 파랑이나 조류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복수의 에너지원 결합은 발전량의 변동성을 줄이고 전력망에 보다 안정적인 출력을 제공한다. ③ 해양 공간 효율성과 환경 영향 저감 = 단일 플랫폼에 여러 발전 장치를 통합하면 해양 점유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항로·어업 활동과의 공간적 충돌을 완화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④ 구조적 안정성 증대 = 특히 파력 발전 장치(WEC)를 부유식 해상 풍력 플랫폼에 통합할 경우, 파력 장치의 운동이 플랫폼의 피치(pitch)나 히브(heave) 운동을 억제하는 동적 댐퍼 역할을 수행한다. 수치해석과 실험 결과, 이는 풍력 터빈의 피로 하중을 줄이고 구조물 수명을 연장하는 부수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의 기술적 돌파구 파력 발전의 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성과도 주목된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이이다 타카히토 교수는 최근 '유체역학 저널(Journal of Fluid Mechanics)'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GWEC)가 광대역 파랑 주파수에서 이론적 최대 흡수 한계인 입사 에너지의 50%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선형 이론으로 증명했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하는 물체가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자신의 회전축 방향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이용해, 방향 변화나 기울기를 감지하고 안정화에 활용되는 장치이다. GWEC는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해상 구조물의 움직임을 내부 자이로스코프의 세차 운동으로 전환하고, 이 회전 에너지를 발전기에 전달해 전기를 생산하는 파력 발전 장치이다. GWEC는 플라이휠 회전 속도라는 추가 제어 변수를 활용함으로써, 특정 공진 주파수에만 의존하던 기존 파력 발전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부유체를 비대칭 구조로 설계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더 높은 에너지 흡수 가능성도 제시된다. ◇풍력과 조류 에너지의 결합이 만드는 시너지 풍력과 조류 에너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역시 뚜렷한 장점을 보인다. 조류 터빈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예측 가능성이 커, 풍력의 간헐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풍력 터빈과 조류 터빈이 동일 기초를 공유할 경우, 전체 발전량은 조류 단독 시스템 대비 약 70% 증가하고, LCOE는 10~12%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조류 터빈은 플랫폼 운동을 억제해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전문가들은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이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해상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과 결합될 경우 진정한 '해상 에너지 허브'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풍력·파력·조류라는 복수의 해양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향후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해양이 수행할 역할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한반도 해역의 파력 잠재량과 하이브리드 발전의 현실성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 실제 해역 조건에 대한 정량적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 연구진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파력 에너지 분포를 고해상도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한양대 정재홍 교수팀은 '확률적 환경 연구와 리스크 평가(Stochastic Environmental Research and Risk Assess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치 파랑 모형과 장기 해상 관측 자료를 결합해 한반도 전 해역의 파력 밀도(spatial wave power density)를 체계적으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동해 외해와 제주 남방 해역이 연중 평균 파력 에너지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단위 길이당 수십 kW/m 수준의 파력 잠재량이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해역 특성이 부유식 해상 풍력과 파력 발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특히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바람과 파랑이 동시에 강해지는 계절적 특성이 뚜렷해, 단일 에너지원 대비 발전량 변동성이 줄어들고 설비 이용률(capacity factor)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유럽 연구진이 제시한 풍력–파력 상보성 이론이 동북아 해역에서도 실증적으로 적용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주목할 논문 ‘보수층은 왜 재생에너지 싫어하고, 원전 선호할까’

재생에너지냐, 원자력 발전이냐를 둘러싼 에너지 논쟁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 대립의 상징처럼 작동해 왔다. 원전은 보수 진영의 '경제와 안보'의 언어로, 재생에너지는 진보 진영의 '환경과 도덕'의 언어로 고착되면서, 에너지 전환 논의 자체가 생산적 토론의 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보수층은 왜 원자력에는 우호적이면서 재생에너지에는 냉담한지, 그리고 이 간극을 좁힐 실질적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실증 연구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이다솜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정책 (Energy Polic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 에너지 정치의 깊은 양극화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전략적 접점을 제시했다. ◇한국 보수층의 에너지 인식 관련 설문 조사 연구의 핵심은 정치적 보수성과 청정에너지 지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검증하는 데 있었다. 논문에서 이 교수팀은 국내 성인 18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분석했다. 설문조사는 2024년 10월 2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진행됐다. 분석 결과, 응답자가 보수적일수록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일관되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원전 확대 정책에도 강한 지지를 나타냈다. 특히 보수층이 원전을 지지하는 핵심 동기는 환경이나 기후 대응이 아니라, 명확하게 '경제적 요인'이었다. 원자력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원이자, 산업 경쟁력과 국가 성장의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재생에너지에 대한 호감도와 정책 지지 수준은 뚜렷하게 낮아졌다. 주목할 점은, 재생에너지의 비용 절감이나 시장 창출 가능성 같은 경제적 논리가 한국 보수층의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금 감면이나 시장 자유화 논리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수용하는 서구권 보수주의와 뚜렷이 대비되는 지점이다. ◇재생에너지는 왜 '비경제적'으로 인식되는가 연구팀은 한국 보수층이 재생에너지를 '비경제적'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를 실제 발전 단가나 기술 성숙도의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보다는 재생에너지가 오랫동안 환경 보호, 도덕적 책임, 진보적 가치라는 프레임 속에서만 다뤄져 왔다는 점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 정치에서는 원자력이 보수 정당의 상징으로, 재생에너지는 진보 정당의 핵심 의제로 각인돼 왔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는 기술 혁신이나 산업 전략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진영의 정치적 메시지로 소비됐고, 그 결과 보수층에게는 실용적 경제 정책이 아닌 '이념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강한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합리성조차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원전, 기술적 상생의 가능성 논문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충분히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은 두 에너지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하나의 전력 시스템 안에서 결합하는 접근이다. 원자력은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원으로 전력 시스템의 뼈대를 담당하고, 재생에너지는 피크 수요 관리와 지역 분산형 발전에 기여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원전 전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을 결합하면,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발전 변동성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망 현대화 과정에서 이들 두 가지 에너지원과 더불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 인프라를 통합 운영하는 모델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기술적 결합이 원전 지지 성향이 강한 보수층에게도 재생에너지를 '원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시스템 안정성을 높이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전략적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재생에너지의 탈이념화, 해법은 '실용주의' 연구팀은 아울러 에너지 정책의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상호 보완성의 강조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대립 구도로 설명하는 대신, 각자의 기술적 강점을 결합한 시스템 설계를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둘째, 비정치적 프레임으로 재(再)정의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도덕적 의무나 환경 담론에서 분리해 '실용주의', '현대화', '기술 혁신'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해상풍력을 기후 정책이 아니라 국가 기술 경쟁력 전략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셋째, 지역적 공동 혜택(co-benefits)의 발굴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녹색 일자리보다 미세먼지 저감, 대기질 개선, 지방 소멸 대응과 같은 초당적 과제와 연결할 때 보수층의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넷째, 제도적 구조화다. 정권 교체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의 강화,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 확대 등 장기적 규제 틀을 통해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정치'가 아닌 '설계'에 달려 있다 연구팀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갈등은 기술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과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어느 진영의 상징으로 소비하는 한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연구팀은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의를 이념 대결의 장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란의 핵심을 기술적 시너지와 국가 경쟁력, 그리고 지역 사회의 실질적 이익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재구성할 때 비로소 출구가 보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전이냐, 재생에너지이냐 여부를 정치적 선택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용적 차원에서 어떻게 공존하도록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혼종 멧돼지’…생태계가 보내는 경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인간 사회를 넘어 지역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주민 대피로 비워진 땅을 차지한 것은 야생동물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가축 돼지와 야생 멧돼지가 뒤섞인 '혼종(hybrid) 멧돼지'의 등장이었다. 이 현상의 발생 메커니즘과 생태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히로사키대학교 방사선 비상 의학 연구소의 도노반 앤더슨 박사와 후쿠시마대학교 가네코 신고 교수 연구팀이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후쿠시마에서 재야생화된 돼지의 모계 혈통이 멧돼지 개체군 내 유전적 혼입 가속화에 기여하다'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국제학술지 '산림 연구 저널(Journal of Forest Research)'에 게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원전 사고 이후 대피 과정에서 사육 돼지들이 방치되거나 탈출했고, 이들은 농경지와 산림에서 빠르게 야생화됐다. 이후 기존에 서식하던 일본 토착 멧돼지와 자연 교배가 이뤄지며 유전적으로 혼합된 개체가 출현했다. 2015~2018년 사이 후쿠시마 일대에서 수집된 샘플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멧돼지 개체에서 이미 가축 돼지의 유전자가 확인됐다. ◇가축 유전자는 왜 '빠르게 사라지는가' 가축 돼지와 야생 멧돼지는 모두 같은 종(Sus scrofa)으로, 아종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자연적으로 교배가 가능하며 자손도 생식 능력을 가진다. 분류학적으로는 동일한 종이지만, 가축 돼지(Sus scrofa domesticus)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번식력과 성장 속도 등이 강화된 집단이고, 야생 멧돼지(Sus scrofa leucomystax)는 자연 선택을 통해 생존과 적응력이 유지된 집단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선택 압력 아래 형성된 유전적 성격 때문에, 두 집단의 교배는 단순한 개체 교류를 넘어 생태적 의미를 갖는다. 이들을 '혼종'으로 부르는 이유는 종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형성된 유전 형질이 야생 개체군의 진화 경로와 개체군 동태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축의 유전적 특징이 빠르게 희석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그 핵심 원인으로 '번식 주기'를 지목했다. 야생 멧돼지는 보통 연 1회 번식하지만, 가축 돼지는 인위적 개량을 통해 연 2회 이상 번식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가축 돼지의 번식 특성은 혼종 개체에도 일부 전달됐고, 이로 인해 혼종들은 빠른 세대교체를 거치며 다시 야생 멧돼지와 반복적으로 역교배됐다. 그 결과, 세포 내에서 가축 돼지의 유전자는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멧돼지 유전자는 개체군 전체에 빠르게 재흡수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만,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수정 시 난자에서만 전달되기 때문에, 가축 돼지 암컷에서 시작된 모계 혈통은 세대가 지나도 그대로 유지된다. 겉으로 보면 해당 개체는 '가축 모계 유전자(미토콘드리아)를 지닌 멧돼지"로 남는다. 이때 핵 유전자는 매 세대마다 부모 양쪽에서 재조합되므로, 혼종이 다시 야생 멧돼지와 반복적으로 교배할수록 가축 유래 핵 유전자는 빠르게 희석되고 멧돼지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결국, 가축 돼지의 모계 혈통은 미토콘드리아 수준에서 '기록'처럼 남아 있지만, 실제 개체의 생리·형태·행동을 좌우하는 핵 유전체는 이미 대부분 멧돼지 쪽으로 대체됐다. 그래서 연구팀은 이를 “가축 모계 혈통이 오히려 핵 유전체의 빠른 멧돼지화(野生化)를 촉진했다"는 다소 역설적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유전자 외곽 확산이 방사능 확산으로 이어질까 이러한 유전적 혼합은 단순한 진화 현상을 넘어 심각한 생태계 관리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가축 유래의 높은 번식력이 유입되면서 후쿠시마 피난 구역 내 멧돼지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로 사고 1년 뒤 약 6000마리 수준이던 포획 개체 수는 9년 만에 3만6000마리로 6배로 늘어났다. 더 우려되는 점은 방사성 물질의 확산 가능성이다. 혼종 멧돼지들은 방사성 세슘을 체내에 축적한 채 이동하며, 오염 지역과 비오염 지역을 잇는 '생물학적 매개체' 역할을 한다. 유전적 분석 결과, 원전 인근에 집중돼 있던 가축 유전자 분포가 점차 외곽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확인됐는데, 이는 방사능 오염 확산 경로와 겹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유전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외곽으로 확산된다는 사실만으로 방사능도 외곽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논문에서도 이를 '가능성' 수준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재난이 남긴 '진화의 흔적' 연구팀은 가축 유전자의 비율 자체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소규모 유전자 유입만으로도 토착종의 유전적 구조와 생태계 관리 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방사능 오염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개체 이동과 번식 패턴을 장기적으로 추적·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연구는 원전 사고가 단순한 환경 오염을 넘어, 야생동물의 진화 경로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986년 4월 방사능 오염 사고 있었던 구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도 '배제구역' 내의 인간 활동이 중단되면서 늑대·멧돼지·사슴 등 대형 야생동물이 급증하고, 이들 개체에서 방사성 물질의 체내 축적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 점에서는 후쿠시마와 마찬가지로 '인간 부재가 생태계를 빠르게 재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 직후에는 가축이 대부분 도살·제거돼 숲으로 방치되지 않았고, 그 결과 가축과 야생동물 사이의 지속적인 교배나 유전적 혼입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연구의 초점 역시 가축 유전자 유입이 아니라, 방사선 노출에 따른 돌연변이율 증가나 생식·형태 이상 여부에 맞춰져 있었다. 반면 후쿠시마는 농경지와 축산 지역이 넓게 분포한 상태에서 대피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며 가축 방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방사능 오염과 인간 부재, 가축 야생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차이 때문에 후쿠시마에서는 체르노빌과 달리, 재난 이후의 관리 방식이 야생동물의 유전 구조와 진화 경로까지 바꾸는 사례가 나타났다.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 자연 생태계에 어떤 '유전적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앞으로의 관찰과 연구에 달려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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