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한 여성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폭염 속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프랑스는 한 달여 만에 세 번째 폭염에 직면해 있으며, 7월 5일에는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사진=AFP/연합뉴스)
2026년 여름, 유럽은 다시 한번 기후위기의 최전선이 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곳곳에서 40℃를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산불이 확산했고, 전력 수요도 급증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도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이 단순한 '더운 여름'이 아니라 앞으로 유럽에서 반복될 새로운 기후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 논문은 이 같은 유럽의 폭염이 '온실가스 증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사람의 건강을 위해 추진한 대기오염 저감 정책, 즉 미세먼지와 황산염 에어로졸을 줄인 정책이 역설적으로 유럽의 여름 폭염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환경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증폭되는 '환경신데믹(Eco-syndemic)'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2026년 유럽 폭염의 특징
2026년 유럽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의 기상학적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오메가 블록(omega block) 현상이다. 제트 기류가 그리스 문자 Ω(오메가) 모양으로 크게 굽어지며 대기 흐름이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중앙의 강한 고기압이 양옆의 저기압 사이에 끼어 '대기 정체'를 유발함으로써 뜨거운 공기를 특정 지역에 고착시켰다.
열돔(heat dome) 형성도 특징이다. 고기압 시스템이 마치 항아리 뚜껑처럼 작용하여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뒀다. 가둬진 공기는 고기압 아래에서 압축되며 더욱 뜨거워지는 되먹임 루프를 형성했다.
준정지 로스비 파동(QSW)의 강화도 나타났다. 로스비 파동은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물결처럼 크게 굽이치는 대기 흐름으로, 특정 지역에 폭염이나 한파가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준정지 로스비 파동은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 특정 지역에 거의 고정되어 있는 로스비 파동을 말하는데, 이 준정지 로스비 파동이 이 강화되면서 폭염의 지속성과 강도가 극대화됐다.
진공청소기 효과(Vacuum Cleaner Effect)도 있다. 포르투갈 해안의 저기압이 열펌프처럼 작동해 북아프리카의 열기를 유럽 본토로 강력하게 빨아올려 북쪽으로 비산시켰다.
이와 함께 제트 기류가 두 갈래로 나뉘어 정체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뜨거운 공기가 장기간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무는 현상이 심화됐다.
◇온실가스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유럽의 이상 고온
유럽의 여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더워졌다. 기후모델은 이러한 추세를 예측했지만, 실제 관측된 온난화 강도를 계속 과소평가해 왔다. 왜 실제 유럽은 모델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워졌을까.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 지구과학부의 페드로 J. 롤단-고메스 박사를 비롯해 카탈루냐 고등연구원(ICREA)의 마누엘 G. 도나트 교수, 영국 기상청 해들리 기후연구센터의 더그 M. 스미스 박사 등이 이 의문에 답했다.
이들은 최근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유럽 여름이 북반구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더워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황산염 에어로졸(미세먼지) 배출 감소를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서부 및 중부 유럽(WCE)의 연간 이산화황(SO2) 배출량은 1980년경 약 4000만톤 수준으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0년경에는 100만톤 이하로 급감했다.
연구진은 9개 기후모델, 392개의 역사적 사례 시뮬레이션과 에어로졸만 반영한 실험, 온실가스만 반영한 실험을 비교 분석해 각각의 영향을 분리했다.
◇깨끗한 공기가 폭염을 키운 이유
황산염 에어로졸은 석탄발전이나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이 대기 중에서 생성되는 미세 입자다. 인체에는 해롭지만 기후에는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빛 일부를 우주로 반사해 지표면을 식히는 '우산(parasol)'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은 산성비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산염 배출을 대폭 줄였다. 공기는 눈에 띄게 깨끗해졌고 호흡기 질환 위험도 감소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로 이 시점부터 유럽의 기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에어로졸이 감소하면서 단순히 햇빛이 더 많이 지표면에 도달한 것만이 아니었다.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기온 상승 속도 차이가 커졌고, 이것이 여름 동대서양 모드(Summer East Atlantic mode)를 강화했다. 이어 준정체 로스비파(Quasi-stationary Rossby Waves, QSW)가 더욱 자주 형성되면서 유럽 상공의 대기 흐름이 정체되는 '블로킹(blocking)' 현상이 강화됐다. 이 상태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한 지역에 오래 머물러 폭염이 며칠이 아니라 수주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연구진은 관측자료와 모델을 비교한 결과 현재 기후모델은 이러한 대기순환 변화를 충분히 재현하지 못해 유럽 폭염을 실제보다 낮게 예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델의 '신호 대 잡음(signal-to-noise)' 오류를 보정하면 유럽에서 관측된 추가적인 여름 온난화의 약 69%가 외부 강제력, 특히 에어로졸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인근에서 사람들이 민방위 픽업 트럭의 분무기가 뿌려주는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환경신데믹'이라는 새로운 경고
이 연구는 결코 “미세먼지를 줄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환경정책이 얼마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미세먼지를 줄이면 천식과 심혈관 질환, 조기 사망은 감소한다. 하지만 동시에 태양복사를 차단하던 에어로졸도 사라지면서 지역 기후는 더 빠르게 가열될 수 있다. 폭염은 다시 열사병, 심혈관 질환, 산불, 가뭄, 농업 피해, 전력난, 오존 농도 증가 등 또 다른 환경·보건 위기를 유발한다.
이처럼 하나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위험이 증폭되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피해를 확대하는 현상을 '환경신데믹(Eco-syndemic)'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논문은 이 개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질 개선 정책과 기후변화가 서로 충돌하는 메커니즘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기오염 정책과 기후변화 정책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미세먼지 저감, 온실가스 감축, 폭염 대응, 보건정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3일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 인근 폰테 델라 베카의 포 강변 들판에 가뭄과 폭염으로 해바라기가 말라버렸다. (사진=AFP/연합뉴스)
◇해법은 더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과 통합 정책
이번 유럽 폭염은 단순히 기후변화가 심해졌다는 사실만을 보여준 사건이 아니다. 인간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추진한 정책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후 시스템을 바꾸고, 다시 인간 사회에 새로운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에어로졸 감소가 문제이므로 배출을 다시 늘리자'가 해법은 결코 아니다. 황산염 에어로졸은 여전히 인체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오염물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난화 효과를 상쇄할 만큼 온실가스 감축을 더욱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시에 에어로졸 감소가 대기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현재보다 정밀하게 반영하는 차세대 기후모델을 개발하고, 폭염 조기경보와 전력망 강화, 도시 열섬 완화, 취약계층 보호 등 적응정책도 기존보다 높은 수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환경정책도 이제는 개별 오염물질이 아니라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환경신데믹'의 시각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폭염은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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