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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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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40도 시대의 도시 생존학…물·숲·바람길 연결해야 산다[기후 신호등]

'대프리카'의 시대가 끝난 것일까. 올여름 전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곳은 오랫동안 폭염의 대명사였던 대구가 아니라 경남 양산이었다. 양산은 지난 2일 42.5℃까지 기온이 치솟으며 국내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거듭 새로 썼다. 반면 매년 폭염의 중심으로 꼽히던 대구와 서울은 최근 최고기온 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났다. 물론 올해 폭염은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의 중첩, 지구온난화, 국지적인 푄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같은 남부 지역에서도 왜 양산이 유난히 뜨거웠는지, 왜 과거 폭염의 상징이던 도시들이 상대적으로 순위가 내려갔는지는 기상 현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세계 학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새로운 답을 내놓고 있다. 폭염은 단순히 기후가 아니라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도시의 녹지와 물, 건물 배치, 도로 재질,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까지 모두 기온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같은 기후 조건에서도 어떤 도시는 더 시원해지고, 어떤 도시는 더 뜨거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 각국의 연구는 이제 폭염 대응의 초점을 '더위를 견디는 방법'에서 '도시 자체를 식히는 방법'으로 옮기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급속한 도시 개발을 겪고 있는 양산은 물론 국내 여러 도시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나무를 많이 심는 것"보다 “어디에 심느냐"가 더 중요했다 대표적인 연구가 중국 베이징에서 나왔다. 중국 칭화대학교 건축학과 연구팀은 지난해 7월 국제학술지 '지속가능한 도시와 사회(Sustainable Cities and Society)'에 발표한 논문에서 도시 녹지의 냉각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연구 결과. 도시공원과 녹지는 지표면 온도를 2~9℃ 낮추고, 공원 내부 기온도 평균 3℃ 정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공원을 무조건 크게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공원 면적이 약 114.65 ha를 넘으면 추가적인 냉각 효과는 점차 감소했다. 일정 규모 이상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가 줄어드는 이른바 '임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녹지를 전략적으로 배치했을 때 폭염 위험을 기존 방식보다 117.41% 더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베이징 도심 2~3순환도로 주변처럼 취약계층이 밀집한 지역에 녹지를 집중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한국 도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는 도시 전체의 녹지율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폭염에 가장 취약한 지역을 찾아 집중적으로 녹지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도 너무 많으면 밤에는 오히려 도시를 덥힌다 나무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는 통념도 최근 연구에서는 수정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사범대학교 연구팀은 역시 지난해 7월 같은 '지속가능한 도시와 사회'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무의 냉각 효과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잎에서 수분을 내보내면서 주변 열을 빼앗는 '증산작용'이다. 사람의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낮추는 것과 같은 원리다. 두 번째는 잎과 가지가 햇빛을 차단하는 '차광 효과'다. 연구 결과 증산작용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사이 가장 활발했고, 폭염이 심할수록 그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났다. 반면 차광 효과는 정오 무렵 가장 강력했으며 하루 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냉각 효과를 유지했다. 그러나 의외의 문제도 발견됐다. 나무가 지나치게 빽빽하면 밤에는 오히려 도시가 더 더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관이 너무 조밀하면 낮 동안 흡수한 열이 하늘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숲 안에 머무는 '담요 효과(blanket effect)'가 발생한다. 마치 담요를 덮으면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강변이나 공원, 도시 바람길 주변에는 키 8m 이상의 활엽수를 우선 심되, 공기 흐름을 막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도시의 가로수 정책도 단순히 경관이나 녹지 면적을 늘리는 수준에서 벗어나, 바람의 흐름과 열 방출까지 고려하는 정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과 숲을 연결하고, 도로를 바꾸고, 바람길을 열어라 도시를 시원하게 만드는 해법은 더 이상 나무를 많이 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연구는 녹지와 물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건물과 도로의 재료를 바꾸며,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폭염을 관리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도시를 식히는 또 다른 핵심은 물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단순히 분수나 인공호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과 녹지가 서로 연결될 때 냉각 효과가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중국 소주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국제학술지 '랜드(Land)'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 푸저우의 도시 공간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같은 면적이라도 물만 있는 공간보다 물과 숲이 함께 조성된 공간의 냉각 효과가 훨씬 뛰어났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은 수면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고, 잎에서 증발한 수분은 공기를 식힌다. 여기에 물이 다시 주변 공기를 냉각시키면서 두 요소가 서로 상승효과를 낸다. 특히 연구진은 강이나 호수의 경계를 직선으로 만들기보다 굴곡이 많은 형태로 조성할 것을 권고했다. 물과 녹지가 맞닿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냉각 효과도 커지기 때문이다. 작은 연못은 주변 전체를 녹지로 둘러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아스팔트도 도시를 식힐 수 있다 도시를 뜨겁게 만드는 주범 가운데 하나는 검은색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 시설도 도시를 식히는 장치로 바뀌고 있다.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도시 발견(Discover Cities)'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쿨 루프(cool roof)'를 가장 경제적인 폭염 대응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쿨 루프는 햇빛을 많이 반사하는 밝은색 재료를 지붕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태양열 흡수를 줄여 건물 내부 온도를 낮추고 냉방 에너지 사용도 크게 줄인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2010년부터 건축 기준에 쿨 루프를 의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도로 역시 달라지고 있다. 이란 타브리즈대학교 연구팀은 '글로벌 변화를 위한 감축과 적응 전략(Mitigation and Adaptation Strategies for Global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반사율이 높은 포장재를 사용할 경우 도로 표면 온도가 10~25℃ 낮아지고, 냉방 에너지 사용량도 15~30%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도쿄는 이러한 기술을 실제 도심에 적용해 도로 표면 온도를 최대 10℃ 낮추고 여름철 전력 피크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프랑스 파리 시립대학교 연구팀은 '에너지와 건물(Energy and Buildings)'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존 건물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루프 워터링(roof watering)' 기술을 제안했다. 이는 지붕에 물을 분사해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는 원리를 이용한다. 실험 결과 지붕 표면 온도는 최대 30℃ 낮아졌고, 건물 내부로 전달되는 열도 30~6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특히 쿨 루프와 루프 워터링을 함께 적용하면 냉각 효과는 더욱 커지고 물 사용량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폭염을 관리하는 시대 폭염 대응은 이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시와 그리스 에게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전기전자공학회 학술지(IEEE Access)'에 발표한 논문에서 도시 전체를 컴퓨터 속에 그대로 구현하는 '그래프 기반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제안했다. 구글 솔라(Google Solar)의 태양복사 자료와 오픈스트리트맵의 도로망, 인구 데이터를 통합해 폭염 위험지역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어느 지역의 위험이 주변으로 확산되는지까지 예측했다. 특히 응급차가 고령자 밀집지역에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최적 경로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시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쿨 스팟'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기능도 구현했다. 폭염 대응이 더 이상 단순한 기상 예보가 아니라 도시 운영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지구의 미래(Earth's Fu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빗물 저장시설과 옥상 살수(roof sprinkling)를 결합한 시스템이 도시 폭염 대응의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도시기후모델(CLMU)과 머신러닝 기반 최적화 기법을 활용해 일본 도쿄를 분석한 결과, 빗물을 저장해 폭염 시 지붕에 살수하면 냉방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극한기온과 폭염 발생일수, 연속 폭염의 강도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빗물 저장조를 지나치게 크게 설치한다고 효과가 비례해 증가하는 것은 아니고, 살수를 시작하는 기온 기준을 적절하게 설정하는 것이 시스템 성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앞으로 기후변화로 폭염이 심해질수록 이러한 빗물 수확·옥상 살수 시스템의 냉각 효과와 에너지 절감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는 준비했고, 서울도 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안수현 연구팀이 지난해 '환경(Environment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구는 전국 최초로 폭염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도시열섬 대응을 별도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통해 5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도시 바람길 숲을 조성해 산지의 찬 공기가 도심으로 흐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로에 지하수를 분사하는 '클린로드'와 버스정류장의 '쿨링포그'도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운영 중이다. 서울도 3000만 그루 나무 심기 사업아 함께 스마트 그늘막과 클린로드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대구와 비교하면 쿨 루프 지원이나 폭염 대응을 도시계획과 연계하는 제도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도 도시 바람길 분석을 도시계획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 국내 도시들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산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도심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도시 바람길을 확보해야 한다. 건물 높이와 배치를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검토하고, 신규 개발지에는 바람길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녹지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거대한 공원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폭염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녹지와 수변 공간을 연결한 '그린-블루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건물에는 쿨 루프와 옥상녹화를 확대하고, 도로와 주차장에는 반사율이 높은 투수성 포장을 적용해야 한다. 아울러 위성 자료와 기상 정보, 인구 데이터를 결합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구축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밀집한 지역을 실시간 관리하고, 폭염 시 응급 대응 체계를 정교화해야 한다. 폭염은 이제 여름철 불편을 넘어 도시의 생존을 좌우하는 재난이 됐다. 이는 앞으로 도시 경쟁력은 얼마나 높은 건물을 세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시민이 안전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경남 양산 오늘 42.5도…최고기온 또 경신, 유독 기온 높은 이유는

경남 양산이 또다시 국내 기상관측 역사를 새로 썼다. 2일 오후 1시 13분 양산의 낮 최고기온이 41.7도(℃)를 기록하며 전날 세운 41.6도를 넘어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기온 기록을 하루 만에 다시 경신했다. 특히, 이날 오후 1시16분에는 42도마저 초과했고, 오후 1시 25분에는 42.5도를 기록했다. 양산은 지난달 31일 41.4도, 8월 1일 41.6도에 이어 사흘 연속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웠고, 지난달 29일부터는 닷새 연속 40도를 넘기며 전례 없는 극한폭염을 이어가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폭염이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 여러 기상·지형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는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의 티베트고기압이 한반도를 동시에 덮고 있다"며 “하층에서는 덥고 습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상층에서는 공기가 하강하면서 압축돼 기온이 오르는 승온 효과까지 더해져 폭염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남 지역의 지형도 기록적인 고온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서풍 계열의 공기가 영남알프스 등 산지를 넘으면서 수분을 잃고 더욱 뜨거워지는 푄현상이 나타났다"며 “산을 넘어온 고온건조한 공기가 경남 내륙으로 유입되면서 양산의 기온을 더욱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양산의 분지 지형도 극한폭염을 키운 원인으로 꼽혔다. 천성산(920.2m), 금정산(802m), 매봉산(703m) 등 700~900m급 산지로 둘러싸인 양산은 외부 공기와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대표적인 분지다. 기상청 관계자는 “양산 주변에서는 지상 바람이 수렴하면서 뜨거운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며 “고온 공기가 계속 축적되면서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더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강한 햇볕과 메마른 토양도 폭염을 더욱 심화시켰다. 기상청에 따르면 양산의 7월 누적 일사량은 지표면적 ㎡당 582.49MJ(메가줄)로 평년보다 약 36% 많았다. 장마 이후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태양에너지가 지표에 지속적으로 축적됐고, 토양 수분이 크게 줄어 증발에 사용될 에너지가 감소하면서 대부분의 열이 지표를 달구는 데 쓰였다. 인근 진주의 토양 수분도 평년의 26.3%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적은 강수량과 지속적인 강한 일사가 기온 상승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며 “건조한 토양 역시 지표 가열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도시화에 따른 열섬현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양산은 물금신도시와 동면 일대 등 대규모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면적이 크게 늘었다. 낮 동안 저장된 열이 밤에도 충분히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아침 기온이 점차 높아지고, 이 열이 다음 날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열축적'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양산에서는 40도를 넘는 시점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오후 3시가 넘어 40도에 도달했지만, 이후 점차 앞당겨져 이날은 오전에 이미 40도를 넘어섰다. 이는 밤사이 식지 못한 열이 계속 누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장마 이후 이어진 고기압 정체와 강한 일사, 건조한 토양, 푄현상, 분지에 의한 열축적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양산에 기온 상승의 최적 조건이 형성됐다"며 “현재 기압계가 크게 바뀌지 않는 만큼 폭염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타는 더위 vs 찌는 더위, 견디기 더 힘든 쪽은? [기후 신호등]

지난 1일 경남 양산의 낮 최고기온은 41.6℃까지 치솟으며 국내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부산도 지난달 29일 38.8℃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22년만에 최고 기온을 보였다. 올여름 폭염은 단순히 '더운 여름'이 아니다. 장마가 끝난 뒤 숨이 턱 막히는 찜통더위가 이어지는가 하면, 며칠 뒤에는 피부가 타들어 갈 듯한 건조한 열기가 전국을 덮친다. 같은 폭염이라도 성격은 전혀 다르다. 습도가 높아 땀이 마르지 않는 '찌는 듯한 더위'가 있는가 하면, 토양까지 바짝 말라 공기 자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타는 듯한 더위'도 있다. 두 얼굴의 폭염은 반복되고 있다. 2018년 홍천과 수도권에서는 40℃를 웃도는 기록적인 건조 폭염이 발생했다. 올여름도 영남 등 남부지방에 가뭄이 나타나는 가운데 경북 경산과 포항 등 곳곳에서는 푄(Foehn) 현상까지 겹치며 폭염 중대경보가 내려졌다. 반대로 지난달 장마 직후 서울 등 도심은 열대 지방을 방불케 하는 습한 폭염에 휩싸였고, 농촌 비닐하우스는 '습식 사우나'를 연상시키는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변했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여름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는 44℃의 건조 폭염 속에 등산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6월 유럽은 사하라의 뜨거운 공기가 갇힌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45℃ 안팎의 기록적인 고온과 산불 피해를 겪었다. 반면 지난 4~5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기온 상승에 높은 습도까지 겹치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웃 일본은 최근 여름철 기온과 습도가 방콕·싱가포르를 닮아가는 '열대화' 현상으로 막대한 노동 손실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여름 폭염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기온이 얼마나 높은지가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타는 듯한 건조한 폭염(dry heatwave)'​과 '찌는 듯한 습한 폭염(humid heatwave)'​을 구분해야 할 정도로 폭염의 성격이 다양해지고 있다. 두 폭염은 발생 원인도 다르고 인체를 위협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사람의 체온 조절 기능을 무너뜨려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어느 쪽도 더 안전하지 않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은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 모두 인간의 생존 한계를 위협하는 '승자 없는 죽음의 게임'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가뭄이 부른 '불의 역습'…타는 듯한 건조한 폭염 건조한 폭염은 대부분 토양의 수분 부족, 즉 가뭄에서 시작된다. 평소에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토양 속 수분을 증발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토양이 메마르면 이 에너지가 증발이 아닌 공기를 직접 가열하는 데 쓰이면서 지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중국 학술원 대기물리연구소 연구진은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지구의 미래(Earth's Fu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3년 중국 북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당시 폭염은 이상 고기압뿐 아니라 평년보다 4배나 강력해진 토양 수분-온도 피드백(feedback)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국립부경대학교 김상단 교수팀은 최근 '한국수자원학회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에 강릉과 서울 등 국내 주요 도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폭염 발생 약 한 달 전 토양이 건조할수록 여름철 극한 고온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음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건조한 폭염이 무서운 이유는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특성 때문이다. 토양이 마를수록 공기는 더 뜨거워지고, 더 뜨거워진 공기는 다시 토양을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강력한 현열(顯熱, sensible heat)이 형성되고, 대기 순환의 도움 없이도 폭염이 장기간 유지·증폭될 수 있다. 현열은 물을 증발시키는 데 쓰이지 않고 공기나 지표의 온도를 직접 높이는 데 사용되는 열을 말한다. 토양이 마르면 태양 에너지가 물을 증발시키는 대신 공기를 직접 달군다는 의미다. 부경대 연구진은 논문에서 한국형 폭염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한국에서의 복합 극한 사건이 단순히 대기 순환의 문제만이 아니라, '토양 수분 결핍 → 증발산 억제 → 잠열 감소 및 현열 증가 → 지표 가열 강화'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해 증폭된다고 설명했다. ◇바다와 폭우가 만든 또 다른 폭염…찌는 듯한 습한 더위 습한 폭염은 기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온도는 건조한 폭염보다 낮더라도 높은 습도가 체온 조절 기능을 무너뜨리면서 훨씬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대규모 습한 폭염이 인근 해수면 온도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따뜻해진 바다가 대기로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하면서 육지의 습도가 높아지고, 이 수증기가 폭염을 더욱 치명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습한 폭염이 치명적인 이유는 인간이 체온을 낮추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땀의 증발을 막기 때문이다. 땀이 흘러도 증발하지 못하면 몸속 열은 계속 축적되고, 결국 체온 조절 시스템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폭우도 역설적으로 폭염을 키울 수 있다. 중국 화중사범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5월 'npj 기후 대기과학(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육지 면적의 73.4%에서는 기온보다 습도 이상 현상이 폭염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기간 비가 내린 뒤에는 토양에서 대량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지표면 습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이 과정에서 습한 폭염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습한 폭염은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주변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과 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이 겹치는 이른바 '이중 열돔(double heat dome)'이 형성되면서 뜨겁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에 장기간 갇히게 된다. 장마나 집중호우가 끝난 뒤에는 토양에 머금은 수분이 빠르게 증발해 지표면 습도를 더욱 끌어올리면서 한증막 같은 환경을 만든다. 경북 남부와 동해안 등에서는 산맥을 넘는 공기의 푄(Foehn) 현상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한반도의 습한 폭염은 바다와 대기, 토양, 지형이 함께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기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답은 “둘 다 치명적" 오랫동안 과학계는 습구온도 35℃를 인간의 생존 한계로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기준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호주 국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서 실제 폭염 사례를 분석한 결과,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 모두 습구온도 35℃보다 훨씬 낮은 조건에서도 사망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건조한 폭염에서는 습도가 낮아 땀이 비교적 잘 증발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땀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기온이 40℃ 안팎까지 치솟고 이런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땀만으로는 열을 배출하지 못해 결국 체온이 위험 수준까지 상승한다. 반대로 습한 폭염에서는 기온이 30℃ 초반이라도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이 거의 증발하지 않는다. 신체의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열사병과 사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결국 건조한 폭염은 지나치게 높은 기온이 문제이고, 습한 폭염은 열을 내보낼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는 차이가 있을 뿐, 두 폭염 모두 인간의 생존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가장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고령층과 야외 노동자 폭염의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가장 취약한 집단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나이가 들수록 땀샘 기능과 혈액순환 능력이 저하되면서 체온 조절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직사광선을 피할 그늘이 없는 환경에서는 현재 수준의 폭염만으로도 고령층이 반복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조건(non-survivable conditions)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임산부와 어린이,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 등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냉방시설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과 장시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폭염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혈관 질환자는 열로 인해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받게 된다. 또한 만성 콩팥병 환자는 탈수로 인해 신장 기능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향정신성 의약품, 이뇨제, 항히스타민제 등 항콜린성 작용을 하는 약물은 체온 조절 경로에 영향을 주거나 땀 분비를 억제하여 고열 발생 위험을 높인다. 신체 조절 기능이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신진대사가 활발한 어린이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온만 봐서는 안 된다…폭염 대응도 달라져야 폭염 대응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중국 하해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의 발생 원인이 서로 다른 만큼 지역 특성에 맞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우선 폭염 경보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최고기온만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 수분 상태를 반영하는 가뭄지수(SPI)​와 습도 또는 습구온도를 함께 고려하는 입체적인 폭염 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시에서는 그늘이 생명을 구하는 기반시설이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순히 그늘 아래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열사병 위험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도시 녹지 확대와 가로수, 그늘막 설치는 폭염 적응을 위한 가장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대책 가운데 하나다. 냉방 복지도 중요하다. 선풍기는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온이 지나치게 높거나 습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체온을 효과적으로 낮추지 못할 수도 있다. 실내 기온이 37℃ 이상일 때는 선풍기만 사용하면 오히려 탈수를 가속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에어컨을 사용하거나 시원한 물로 몸을 식혀야 한다. 전문가들이 에어컨 접근성을 폭염 대응의 필수 인프라로 강조하는 이유다.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히 평균기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폭염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건조한 폭염은 대지를 태우고, 습한 폭염은 사람의 체온 조절 기능을 가둔다. 앞으로는 기온만 바라보는 시대를 넘어 토양 수분과 습도까지 함께 살펴야 진짜 폭염의 위험을 읽을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양산 오늘 41.6도로 국내 최고기온 기록 재경신

8월 첫날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이 또다시 국내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기상청 관측망 자료에 따르면, 1일 오후 2시 9분 경남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위치한 양산 기상 관측지점의 기온이 41.6도(℃)를 기록했다. 양산 지점은 지난달 29일 이후 나흘 연속으로 40도를 넘었다. 전날 양산에선 기온이 41.4도까지 올라, 기상청이 기온 등의 순위를 관리하는 97개 기후 통계 관측 지점을 기준으로 1904년 국내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기온 기록이 세운 바 있다. 한편,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이중으로 우리나라를 덮으면서 전국적으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 영향으로 남쪽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이를 통해 들어온 열은 이중 고기압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온 오르면 대상포진 발병률 폭발…65세 이상·만성신장질환자 더 취약

여름철 폭염이 대상포진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과 만성신장질환 환자는 기온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커지는 만큼 앞으로 대상포진 예방 전략에도 기온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박민영 교수와 성균관대학교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안준호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감염 및 공중보건 저널(Journal of Infection and Public Health)'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2006~2019년 국내 성인 대상포진 환자 14만9098명을 분석했다. ◇수두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는 질환 대상포진은 몸통이나 얼굴 등에 몸의 한쪽을 따라 띠 모양의 물집과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어린 시절 수두를 일으켰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가 몸속 신경절(節)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다시 활성화되면서 생긴다. 피부 병변이 사라진 뒤에도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극심한 신경통이 이어지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고령층일수록 합병증 위험이 높다. 치료는 발병 후 가능한 한 빨리 아시클로버, 발라시클로버, 팜시클로버 등의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통증 조절을 위한 진통제나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를 함께 사용하며, 무엇보다 50세 이상에서는 예방접종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으로 권장된다. ◇기온 1℃ 오를 때마다 위험 0.46% 증가 연구진은 대상포진 환자가 진단받은 날의 기온과 같은 사람이 다른 날짜에 노출됐던 기온을 비교하는 환자-교차(case-crossover) 연구를 실시했다. 같은 사람을 자기 자신과 비교하기 때문에 흡연이나 생활습관, 유전적 특성처럼 개인마다 다른 요인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다. 분석 결과, 일(日)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 대상포진 발생 위험은 0.46% 증가했다. 기온의 영향은 폭염을 겪은 당일 가장 강했고 이후 2~3일까지 이어졌다. 또 기온이 높아질수록 대상포진 위험도 거의 직선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정 온도에서만 위험이 급증하는 것이 아니라 기온이 오를수록 위험도 함께 커졌다는 의미다. 고령층은 젊은 층보다 기온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만성신장질환 환자는 기온이 1℃ 오를 때 대상포진 위험이 2.19% 증가해 가장 민감한 집단으로 분석됐다. 다만 연구진은 이 차이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폭염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감염병의 발생 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로 평가된다. 그동안 대상포진의 주요 위험요인은 고령, 면역력 저하, 만성질환 등이었지만, 이번 연구는 주변 기온 역시 독립적인 위험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특히 폭염이 인체에 강한 스트레스를 주면서 면역 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고온 환경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해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탈수, 전해질 불균형, 수면 부족, 피로 등이 겹치면 몸속에 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폭염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령층과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관리와 대상포진 예방 전략에도 기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녹조 심한데 보 수문은 ‘찔끔’… 원인은 바닥 안 닿는 취수구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올여름 심각해진 낙동강 녹조를 줄이기 위해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강정고령보와 달성보,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 등 하류 4개 보를 순차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방이라고 해도 수문을 완전히 열어 강을 흐르게 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각 보의 수위를 54~90㎝만 낮춘 뒤 목표 수위에 도달하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수문을 올려 다시 물을 채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흘만에 원래 수위로 되돌리는 '찔끔 개방'인 셈이다. 기후부는 왜 녹조를 줄이기 위해 수문을 열면서도 곧장 다시 닫아야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강에는 물이 있지만 그 물을 끌어올리는 취수시설이 강바닥까지 닿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녹조 줄이려 수문 열면 농업용수 끊겨 기후부에 따르면 이번 개방은 보별로 약 3일 동안 진행된다. 수생태계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간당 3㎝씩 천천히 수위를 낮추는 데 보에 따라 1~1.6일이 걸린다. 이후 원래 수위를 회복하는 데 다시 1.3~1.7일이 걸린다. 수위 하강 폭은 강정고령보와 달성보가 각각 90㎝, 합천창녕보는 60㎝, 창녕함안보는 54㎝다. 4개 보가 수문 개방을 동시에 진행하지는 않고, 먼저 상류 보 수문을 개방했다가 다시 닫기 시작하는 시점에 아래 보의 수문을 열어 물을 내보기 시작하는 식이다. 정부가 수문을 제한적으로만 여는 가장 큰 이유는 농업용수 취수 때문이다. 낙동강 하류에는 농업용 양수장과 취수장이 밀집해 있다. 수위를 60~90㎝만 낮춰도 일부 시설은 취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기후부 이정용 물관리총괄과장은 “이번 수문 개방으로도 13개 취수장 시설이 취수를 하지 못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미리 논에 물을 채우는 식으로 사흘 정도만 참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개방에 앞서 기후부는 낙동강 자연성회복 민관협의회와 지역 주민 의견수렴을 거쳤고, 개방 과정에서도 양수장과 지하수 이용에 문제가 없는지를 계속 점검하기로 했다. ◇강바닥은 깊어졌는데 '빨대'는 그대로 어정쩡한 수문 개방의 근본 원인은 취수시설 구조에 있다. 4대강 사업 당시 낙동강은 대규모 준설을 통해 강바닥이 깊어졌다. 그러나 상당수 취·양수장의 취수구는 예전 높이에 그대로 남았다. 마치 컵 바닥까지 빨대가 닿지 않는것과 같다. 이 때문에 보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취수가 가능하지만, 수문을 열어 수위가 조금만 내려가도 취수구가 물 밖으로 드러난다. 수심 6m 보에서 수위가 1m만 낮아져도 나머지 물은 퍼올릴 수 없다. 결국 녹조가 심해도 물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가뭄이 와도 보 아래쪽의 물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보는 저장 용량은 크지만 실제 활용 가능한 물은 제한되는 '가짜 물그릇'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 상황은 더욱 어렵다. 남부지방은 '마른 장마'로 최근 두 달 강수량이 평년의 33.8%(부산·울산·경남) 수준에 그쳤고, 폭염까지 겹치면서 녹조가 발생하기 더 쉬운 조건이 됐다. 반면 농민들은 논과 밭에 공급할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위를 낮추는 것 자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는 녹조 저감과 농업용수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3일 이내의 제한적 개방'이라는 절충안을 선택한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더 큰 약점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기후위기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가뭄과 홍수 같은 기후 위기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사실 보는 홍수예방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홍수 때는 수위를 높여 제방 붕괴 위험을 높인다. 폭염으로 수온이 올라가고 가뭄으로 유량이 줄면 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진다. 유속이 느릴수록 남세균(남조류)가 증식하기 쉬워 녹조가 악화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문을 열어 흐름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현재는 취수시설 때문에 수문을 자유롭게 운영하지 못한다. 녹조가 심해도 충분히 방류하지 못하고, 가뭄이 와도 보에 저장된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이중의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5월부터 녹조 예방을 위해 기후부에 낙동강 보 수문 개방을 줄기차게 요구했다"면서 “6월부터 녹조가 심했는데 그때는 개방하지 않다가 장마 마지막에 비가 좀 내리면서 녹조가 다소 가라앉은 지금에야 뒤늦게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녹조가 아무리 심해도 수문을 개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본대책은 취수구를 강바닥 가까이 내리는 것 기후부가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녹조 대책은 바로 취수장·양수장 개선이다. 정부는 전국 4대강 70곳의 취·양수장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며, 이 가운데 낙동강이 52곳으로 가장 많다. 현재 4곳은 공사를 마쳤고 66곳은 개선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만 470억원을 투입해 녹조 우려가 큰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집중 추진한다. 핵심은 취수구를 강바닥 가까이 낮추고 노후 펌프를 교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위를 지금보다 더 낮춰도 취수가 가능해져 녹조나 가뭄 상황에서도 보를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사업 추진 방식도 바뀌었다. 그동안에는 한국수자원공사를 거쳐 지방자치단체로 예산이 전달됐지만, 앞으로는 기후부가 직접 예산을 교부한다. 또 지방정부 시설 공사는 수자원공사 등에 위탁해 전문성을 높이고, 상시 점검반과 관계기관 협의체를 운영해 공사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한편,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정도만 개방해도 개방 기간 중 녹조가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환경과학원은 이번 수문 개방 과정을 통해 수문 개방이 녹조와 수질개선에 어떤 효과를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낡은 도마 당장 바꾸세요”…칼질할 때마다 나노입자 툭툭

가정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도마에서 발생하는 나노플라스틱의 상당수가 단순한 플라스틱 파편이 아니라 올리고머(oligomer, 짧은 고분자 사슬)의 자기조립(self-assembly)을 통해 생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도마를 반복 사용하거나 낡은 것일수록 이 같은 나노입자 발생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학기술대학교(USTC) 환경대학과 싱가포르 난양공대,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공동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머티리얼스(Communications Materials)'에 발표했다. ◇파편화 아닌 '자기조립'이 주요 생성 경로 연구진은 시판 플라스틱 도마 7종을 대상으로 표준화된 칼질 실험과 화학 분석,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칼질 과정에서 생성된 올리고머가 물속에서 소수성(疏水性, 물을 밀어내는 성질) 상호작용을 통해 자발적으로 응집하면서 나노입자를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나노플라스틱이 단순히 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진 결과라는 기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화학 분석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현미경 관찰을 병행했다. 우선 도마에서 방출된 나노입자를 질량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고분자가 아닌 짧은 사슬의 올리고머로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들 올리고머만 물속에 분리해 넣자 약 100~200nm(나노미터) 크기의 나노입자(나노플라스틱)가 자발적으로 형성됐다. 분자동역학(MD) 시뮬레이션에서도 올리고머들이 물속에서 소수성 상호작용에 의해 서로 응집해 안정적인 나노입자를 만드는 과정이 재현됐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실제 입자의 형태도 이와 일치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를 근거로 “가정용 플라스틱 도마에서 방출되는 나노플라스틱의 주요 생성 경로는 올리고머의 자기조립"이라고 결론 내렸다. ◇노화 과정에서 고분자 사슬이 올리고머로 절단돼 연구진은 실험에서 새 도마에서는 나노입자의 38.2~55.0%가 올리고머로부터 나왔고, 낡은 도마에서는 이 비율이 92.7%까지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에서는 폴리프로필렌(PP) 올리고머는 구형(공모양)이었고, 폴리에틸렌(PE) 올리고머는 층상 구조로 응집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10분간 600회의 칼질을 실시한 결과, 도마 1개당 2750~7242개의 미세플라스틱과 2330만~1억1200만 개의 나노입자가 발생했다. 반복 사용 횟수가 증가할수록 미세·나노플라스틱 배출량도 함께 증가했다. 특히 한 달간 가속 광(光)노화를 거친 PP 도마에서는 나노입자 발생량이 최대 963% 증가했고, 입자 크기는 50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이하까지 작아졌다. 연구진은 노화 과정에서 고분자 사슬의 절단과 산화가 진행되면서 올리고머 생성과 나노입자 형성이 촉진된 것으로 분석했다. ◇제브라피시서 심장·발달 독성 관찰 연구진은 에탄올로 추출한 PP 올리고머를 독성학 동물실험에서 흔히 사용하는 제브라피시 배아에 노출한 결과, 부화율 감소, 체장 감소, 심낭 부종, 심박수 감소, 심근 기능 저하 등이 농도 의존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농도가 높을수록 더 해로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제브라피시 실험은 올리고머로 인한 위해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단계이고, 실제 인체 노출 수준에서도 동일한 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연구팀은 2019~2022년 전 세계 144개 국가·지역의 가정 내 조리 빈도를 적용해 노출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정 내 조리가 증가한 2021년 미세·나노플라스틱 노출량이 가장 높게 추정됐는데, 이는 생활 방식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노출량은 실제 인체 흡수량이 아니라 실험 결과와 조리 행태를 결합한 시나리오 분석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도마의 반복적인 마모와 노화가 입자 발생을 크게 증가시키는 만큼 깊은 칼자국이나 균열, 박리 등이 나타난 제품은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또 사용 후에는 표면을 충분히 세척해 잔류 입자의 음식물 전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8개 시선으로 그려낸 아시아의 환경 현장”…환경재단 성과 공유회

환경재단(이사장 최열)은 국내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아시아 기후·환경 현장 탐방 성과를 공유하는 '그린아시아 글로벌 리더십 지원사업 2기 결과공유회'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오는 3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지하 1층 모이다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국내 활동가들이 아시아 각국의 환경 문제를 직접 조사하고, 현지 시민사회와 교류하며 축적한 실무 역량과 국제 협력 성과를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결과 공유회 행사에서는 지난 4개월간 인도·베트남·몽골 등 아시아 7개국에서 활동한 8개 연수팀이 직접 발굴한 환경 의제와 프로젝트 성과를 발표한다. 8개 팀은 △쓰레기와 헤어질 결심 △사라지는 생명들을 지키는 법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전략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한 액션: 베트남 환경 인턴십 현장 등 4가지 테마에 따라 활동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현대자동차 후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이며, 31일 행사에는 아시아 기후·환경 문제와 국제 협력에 관심 있는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환경재단 홈페이지 또는 온라인 신청 폼을 이용하면 된다. 환경재단 그린리더십센터 박소영 매니저는 “이번 행사가 단순한 연수 보고를 넘어, 현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국제연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향후 아시아 환경 협력 모델을 찾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어 연결된 문제인 만큼 시민사회의 국가 간 협력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이번 행사가 새로운 국제협력 가능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국경 없는 플라스틱, 경계를 넘는 협력'을 주제로 국내외 플라스틱 오염 현황과 이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키는 방안에 대한 강연도 열릴 예정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부·산업부 조직문화 충돌…기후부 인사·운영체계 재점검 시급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 소속 30대 사무관 A씨가 지난 1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조직문화와 인사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경위는 조사 중이지만, 지난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일부 기능을 통합해 출범한 기후부가 조직문화 융합과 인력 운영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내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문화, 충분한 '융합 과정' 있었나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일관성 있는 탄소중립 추진, 기후위기 대응 강화, 그리고 에너지와 환경 정책의 유기적 연계를 목적으로 10월에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부문을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했다. 초대 장관은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맡았다. 거창하게 시작은 했지만,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환경부는 그야말로 환경을 지키는 조직이고, 에너지 부문은 불가피하게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 구조와 밀접해 상충되는 정책 목표를 다룰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른 정체성과 목표를 가진 두 부처의 결합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기후부 내부에서는 환경부와 산업부 출신 공무원들이 서로 다른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경부는 시민단체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의하는 업무가 많아 상대적으로 절차와 의견 조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반면, 산업부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효율성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환경부는 절차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산업부에서 넘어온 조직은 효율성과 경제 논리를 우선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환경부 출신인 A사무관과 상관인 산업부 출신 B과장 역시 업무 과정에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갈등을 겪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직관리 전문가는 “두 조직이 통합되면 문화와 업무 방식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를 완화하기 위한 교육과 소통, 조직 차원의 관리가 충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잦은 인사 이동에 전문성 약화 해당 과의 잦은 인사 이동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후부 등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해당 과에서는 서기관·사무관급 실무진 가운데 최소 7명이 교체됐다. 정원이 10명인 점을 고려하면 핵심 실무진 대부분이 바뀐 셈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해당 업무에 숙련된 주무관으로 근무하다 사무관으로 승진한 직후 다른 부서로 이동하거나 휴직을 선택하면서 실무 경험이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다른 부서에서 새롭게 배치된 인력들이 업무를 인수하는 일이 반복됐고, 정책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당 B과장은 올해 2월, A사무관은 올해 5월 각각 해당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A사무관은 생전에 “이 회사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신규 직원 교육·지원 체계)이 없다"며 충분한 업무 인수인계와 교육 없이 결과만 요구하는 조직문화에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부 관계자들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급자의 지도와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력 부족 속 반복되는 긴급 대응 기후부 노조는 구조적인 인력 부족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조 관계자는 “산업부 업무는 넘어왔지만 인력은 충분히 충원되지 못해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주말과 휴일에도 긴급 대응을 요구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 과중과 조직문화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성원들의 부담이 커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일부 내부에서는 기후부 출범 이후 정책 역량이 에너지와 산업 분야에 집중되면서 기후적응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정책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는데, 기후적응 업무의 중요성에 비해 경험 있는 인력 등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 개인 간 갈등 여부를 넘어 조직 통합 이후 인사 운영과 조직문화, 업무 분장, 인력 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지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문화와 인사 시스템에 잘못된 부분은 없었는지 자성하겠다"며 자체 감찰과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했다. 기후부 노조도 직원 의견을 수렴해 기자회견이나 성명을 통해 조직문화 개선과 인력 운영 대책을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車 과속으로 아낀 시간 겨우 하루 54초…날린 돈은 연간 수조 원”

도로에 나가 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제한속도를 넘겨 달리는 운전자가 없지 않다. 하지만 과속으로 얻는 시간은 하루 평균 1분도 채 되지 않는 반면, 연료와 전력 소비는 크게 늘어나고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환경적 비용은 막대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트윈시티 캠퍼스 기계공학과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서스테이너빌리티(Communications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미국 전역에서 수집한 1억2000만 건 이상의 실제 차량 주행 데이터를 분석해 과속이 연료 소비와 전력 소비, 탄소배출, 경제적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했다. ◇하루 54초를 아끼려다 연료 年 수천만L 낭비 연구 결과는 과속으로 얻는 이익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모든 운전자가 규정속도를 준수할 경우 하루 평균 이동시간은 과속할 때보다 약 54초 늘어나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반면 절감되는 연료와 비용은 매우 컸다. 미국 전체를 기준으로 하루 동안 휘발유 약 2540만L, 돈으로 환산하면 연료비 2200만 달러(약 330억 원), 이산화탄소 배출량 5만7000톤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자가 신호등이나 감속 구간을 미리 인지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예측 감속(anticipatory coasting)'까지 실천하면 절감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 경우 연료 절감과 탄소 감축 효과는 규정속도만 지킬 때보다 20% 이상 증가해 하루 휘발유 약 3100만L, 연료비 2700만 달러(약 405억 원), 이산화탄소 6만9000톤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08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승용차 약 550만 대를 도로에서 없앤 것과 맞먹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운전자에게는 연료비 절감, 사회에는 막대한 편익 이번 연구는 규정속도 준수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운전자에게는 연료비를 절약하는 직접적인 경제적 혜택이 돌아간다.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고 탄소배출이 감소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함께 줄어든다. 연구팀은 미국 정부가 사용하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을 적용한 결과, 규정속도 준수만으로도 하루 310만 달러(약 47억 원)의 기후변화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추산했다. 과속은 교통사고 위험도 크게 높인다. 미국에서는 2023년 한 해 동안 과속과 관련된 사고로 1만1775명이 목숨을 잃었다. 연구진은 하루 평균 54초를 아끼기 위해 치르는 사회적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시간은 돈'이라는 통념도 이번 연구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하루 평균 54초라는 시간 절약은 개인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반면, 과속으로 늘어나는 연료 소비와 탄소배출, 교통사고는 사회 전체에 막대한 비용을 남긴다는 것이다. 특히 절약된 연료비는 다른 소비로 이어져 경제 안에서 다시 순환하기 때문에, 규정속도 준수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 순편익(net benefit)을 가져오는 정책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전기차 규정속도를 지킬수록 효과가 더 커 이번 연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규정속도 준수의 효과를 더 크게 누린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속도를 줄였을 때, 내연기관차는 에너지 소비가 약 2.4~3% 감소하는 데 비해 전기차는 9%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차량의 동력 시스템 차이 때문이다. 내연기관차는 감속 과정에서 대부분의 운동에너지가 브레이크의 열로 사라진다. 반면 전기차는 회생제동 시스템을 이용해 운동에너지를 다시 전기로 바꿔 배터리에 저장한다. 또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저항은 급격히 증가하는데, 전기차는 이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따라서 과속을 줄일수록 전력 소비 감소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 연구진은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규정속도 준수에 따른 에너지 절감 효과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운전 습관보다 중요한 것은 도로 인프라 연구는 과속이 단순히 운전자 개인의 습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다. 분석 결과 과속 발생률은 고속도로와 간선도로의 밀도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과속이 가능한 도로 비율과 실제 과속 발생률 사이의 상관계수는 0.91에 달했다. 이는 지역별 과속이 운전자 성향보다 도로 인프라와 교통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따라서 단속만 강화하기보다 적정 제한속도 설정, 도로 설계 개선, 지능형교통체계(ITS), 가변 제한속도 시스템, 신호 연계 등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규정속도를 유지하도록 돕는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탄소감축 정책 탄소중립 정책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투자나 전기차 보급처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운전자들이 규정속도를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별도의 기술 개발이나 대규모 투자 없이 즉각적인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운전자에게는 연료비 절감이라는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고, 사회적으로는 에너지 소비 감소와 탄소배출 감축, 교통사고 감소, 기후변화 피해 저감이라는 복합적인 편익이 발생한다. 연구진은 “하루 평균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과속하는 것보다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경제성과 안전성, 환경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결론지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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