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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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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재생에너지 도우미?…오히려 화석연료 구원투수로 등판

인공지능(AI)이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적절한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오히려 화석연료의 수명을 연장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AI가 태양광·풍력 등 저탄소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석유·가스의 탐사와 생산성까지 높여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미국 시애틀의 비영리 연구·정책 프로젝트인 '인에블드 에미션 캠페인(Enabled Emissions Campaign, 유발 배출 캠페인)'과 퍼듀대학교 등의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의 자매 학술지인 'npj 클라이밋 액션(Climate Action)'에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에서 연구진은 AI를 단순한 전력 소비 기술이 아니라 '양방향 생산성 증폭기(bidirectional productivity amplifier)'로 규정했다. AI가 재생에너지와 전력망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화석연료 산업의 생산성도 높인다는 의미다. ◇AI가 태양광도 돕지만 석유도 더 싸게 캔다 AI는 태양광·풍력 발전량 예측, 전력망 운영, 발전설비 유지보수 등을 개선해 재생에너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의 기후 영향을 둘러싼 기존 논의 역시 주로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과 AI를 활용해 줄일 수 있는 배출량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AI가 화석연료 공급 자체의 경제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했다. AI가 석유·가스 분야에서는 탐사와 시추, 생산, 정제 등 공급망 전반의 효율을 높이고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비용이 낮아지면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었던 화석연료 자원까지 개발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두 효과가 대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느 쪽에 더 크게 기여할까. ◇AI 적용하면 세계 CO₂ 배출량 최대 18억톤 증가 연구진이 글로벌 에너지·경제 시스템을 대상으로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모델을 이용해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에 AI가 비슷한 수준으로 도입되는 경우 세계 연간 CO₂ 배출량이 4억7000만톤~18억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4년 세계 에너지 관련 CO₂ 배출량의 1.2~4.8%에 해당한다. 배출 증가를 주도한 것은 재생에너지의 효율 개선보다 화석연료 생산성 향상 효과였다. 특히 연구진은 재생에너지의 생산성 향상이 화석연료 생산성 향상보다 4~5배 커야 AI의 효과가 배출 증가에서 감소로 전환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AI가 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 활용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데이터센터보다 더 큰 '숨은 배출'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AI의 기후 영향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AI의 화석연료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하는 '유발 배출(enabled emissions)'을 연간 6억~24억톤 CO₂로 추정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5년 데이터센터 배출량 추정치인 1억8000만톤보다 3.3~13.3배 큰 규모다. 연구진은 다만 두 수치는 서로 다른 분석체계에서 나온 것이어서 직접 합산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AI가 에너지를 직접 소비해서 발생시키는 1차적 배출뿐 아니라, AI가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춰 추가적인 생산과 소비를 유발하는 2차·3차 효과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 결과는 미래의 실제 배출량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AI 생산성 충격을 적용한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연구진도 실제 배출량의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효율 향상'이 반드시 배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아 AI로 석유 생산비용이 낮아지면 기업은 생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과거 경제성이 없었던 유전이 다시 개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기술 발전으로 생산비용이 내려가면서 소비와 생산이 증가해 기대했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일부 상쇄되거나 역전되는 현상을 '반동 효과(rebound effect)'라고 한다. 이번 연구에서 AI의 효과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AI가 화석연료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 기존 화석연료 체제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기존 탄소집약적 에너지 체제의 '강화(reinforcement)'라고 설명한다. 현재 세계 1차 에너지의 약 80%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AI가 기존 경제 시스템의 생산성을 높일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화석연료 시스템에 더 큰 효과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AI 규제가 아니라 '방향'의 규제 연구진이 제시하는 해법은 AI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AI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에너지 시스템에 집중되도록 할 것인가를 정책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AI가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해 발생시키는 '유발 배출'을 별도의 기후정책 대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와 AI가 줄여주는 배출량만 계산하면 AI의 전체 기후효과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태양광·풍력·전력망·에너지저장 등 저탄소 시스템에 AI 활용을 집중해야 한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AI 활용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AI를 통한 화석연료 공급 확대를 제한하는 공급 측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AI가 재생에너지와 전력망의 병목을 해결하고 화석연료의 신규 공급 확대에는 제약을 받도록 정책을 설계한다면 AI는 에너지 전환의 강력한 가속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겨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에 동일하게 AI를 확산한다면, 현재의 화석연료 중심 경제가 AI를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도 잊지 않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거제·통영에 관측 이래 최강 폭우…사흘간 여름비 90% 쏟아져

경남 거제와 통영을 비롯한 남해안과 부산·제주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침수 등 피해가 잇따랐다. 거제에는 17일 오전 1시32분부터 한 시간 동안 124.5㎜의 비가 내려 1972년 관측 이래 1시간 강수량 최고치를 경신했다. 통영도 한 시간에 97.4㎜가 내려 1968년 관측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산 가덕도에서도 시간당 101.5㎜의 극한호우가 관측됐다. 거제에는 16일 오전 11시부터 7일 오전 11시까지 24시간 동안 787.8㎜, 통영에는 642.8㎜가 내렸다. 지난 15일 광복절부터 사흘간 누적 강수량은 거제 815.5㎜, 통영 686.1㎜에 달했다. 두 지역의 평년 여름 강수량의 약 90%가 불과 사흘 만에 쏟아진 셈이다. ◇거제 산사태로 1명 사망…주민 대피 폭우로 인한 피해도 속출했다. 거제 옥포동에서는 17일 새벽 산사태가 아파트 1층을 덮쳐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50대 여성이 다쳤다. 토사가 아파트 8가구에 밀려들었고 인근 2개 동 150여 가구에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통영에서도 산사태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거제와 통영에서는 하천 범람과 주택·도로 침수가 이어졌으며, 경남에서만 97세대 132명이 대피했다. 도로와 산책로, 세월교 등 204곳의 통행도 통제됐다. 거제와 통영의 학교 등 교육시설 12곳에서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부산에도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렸다. 지난 15일부터 17일 오전 11시까지 부산 영도구에는 267.5㎜, 사하구에는 259.5㎜의 비가 내렸으며 가덕도 인근에서는 시간당 100㎜ 안팎의 강한 비가 쏟아졌다. 주택 침수와 신호등 파손, 토사 붕괴 등 피해 신고가 25건 접수됐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기상청이 2026년 새롭게 도입한 '재난성호우' 기준​에 따르면 시간당 100㎜ 이상의 비가 내리거나, 1시간 85㎜와 15분 25㎜ 이상의 강수가 동시에 관측되면 재난성호우로 분류된다. 이번 집중호우에서 경남 거제에는 1시간 동안 124.5㎜, 부산 가덕도에는 101.5㎜​의 비가 쏟아졌다. 두 지역 모두 시간당 100㎜를 넘으면서 재난성호우 기준을 충족했다. 특히 거제의 시간당 124.5㎜는 거제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2년 이후 1시간 강수량 최고 기록이다. 기존 기록은 2001년 7월 5일의 96.5㎜였다. 부산 가덕도에서도 올여름 처음으로 시간당 100㎜를 넘는 강수가 관측됐다. 이번 사례는 단순한 집중호우를 넘어 시간당 100㎜ 이상의 재난성호우가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호남에도 200㎜ 넘는 폭우…침수 피해 잇따라 전남·광주 지역에도 밤사이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16일 오전 10시30분 기준 호우 피해 신고는 125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118건이 주택·도로·상가 등의 침수 피해였다. 다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누적 강수량은 목포 166.5㎜, 여수 170.7㎜, 광양 151.5㎜ 등을 기록했다. 특히 목포에는 시간당 66.4㎜, 해남 64㎜, 진도 60.8㎜의 강한 비가 내렸다. 폭우로 목포 상가 지하실과 해남 음식점 등이 침수되고 가로수가 쓰러지거나 하수구가 역류했다. 완도·목포·여수·고흥을 오가는 일부 여객선 운항과 무등산·지리산 등 국립공원 입산도 통제됐다. 제주에도 15일부터 사흘간 폭우가 이어졌다. 17일 오전 11시까지 한라산 남벽에는 376㎜, 진달래밭 372㎜, 성판악 233㎜의 비가 내렸고, 해안지역인 성산 수산에도 375㎜가 쏟아졌다. 이번 비로 제주 지역의 가뭄은 완전히 해갈됐다. 다만 중산간 이상에는 가시거리 200m 미만의 짙은 안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교통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남해안 저녁까지 최대 150㎜ 추가 이번 폭우는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화한 저기압이 남서쪽에서 접근하면서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해안과 충돌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청은 17일 저녁까지 남해안에 80~150㎜, 경남 동부내륙에 50~100㎜, 경남 중·서부 내륙에 20~6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경남 서부 남해안에는 100㎜ 이상의 추가 강수가 예상돼 이미 많은 비가 내린 지역에서는 산사태와 하천 범람 등 2차 피해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영남과 제주에는 17일 밤까지 비가 내릴 전망이다. 오후에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 곳곳에서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이 있으며, 제주에는 18일 늦은 오후까지 가끔 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CO₂ 넣어서 만드는 시멘트…기후 위기 해결에 보탬될까

시멘트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이다. 특히 석회석을 고온에서 소성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해 탈탄소화가 쉽지 않은 산업으로 꼽힌다. 이런 시멘트 산업이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에서 오히려 탄소를 저장하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두 건의 연구는 시멘트 생산 과정에 CO₂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시멘트 자체를 탄소 저장고로 만들면서 강도까지 높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CO₂를 넣었더니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마르신 하이두체크 연구원과 어드미르 마식 교수 연구팀은 인도 조드푸르 공대 및 탄소저장 기술기업 카본큐어(CarbonCure) 연구진과 함께 시멘트 경화 과정에 CO₂를 주입했을 때 발생하는 화학적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6월 '미국 세라믹학회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Ceramic Society)'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CO₂가 시멘트 내부에서 단순히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의 미세구조 형성 과정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멘트 혼합 과정에서 CO₂를 주입하면 CO₂가 시멘트 내부의 칼슘 이온과 빠르게 반응해 나노 크기의 탄산칼슘 입자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칼슘이 빠져나간 자리에 일시적으로 실리카 겔(silica gel)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 실리카 겔은 일종의 '템플릿' 역할을 한다. 이후 생성되는 주요 시멘트 결합재인 칼슘 규산염 수화물(calcium silicate hydrate, C-S-H)가 보다 균일하게 분포하고 높은 중합도를 갖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CO₂를 주입한 시멘트의 24시간 압축강도는 일반 시멘트보다 약 13% 높아졌다. 이는 CO₂를 시멘트에 주입하는 기술이 단순한 탄소 저장 수단을 넘어 시멘트의 미세구조와 기계적 성능까지 개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탄소 포집 공장과 시멘트 공장을 하나로 시멘트 산업의 탄소 문제를 공정 전체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연구도 나왔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Zurich) 안드레 바르도우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순환 화학(Chem Circularity)' 저널에 탄소 포집과 시멘트 생산을 통합하는 시스템의 환경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핵심은 '칼슘 순환 공정(calcium looping)' 기술이다. 칼슘 기반 물질을 이용해 CO₂를 포집한 뒤 이를 다시 시멘트 생산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탄소 포집 과정에서 사용된 칼슘 화합물을 폐기하지 않고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원료로 다시 투입하는 통합 시스템을 제안했다. 탄소 포집과 시멘트 생산을 별개의 공정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순환 시스템으로 연결한 것이다. 생애주기평가(LCA)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2050년까지 시멘트 1톤 생산당 탄소발자국을 약 -0.15톤 CO₂ 수준까지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탄소발자국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보다 포집·저장하는 CO₂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넷-네거티브(net-negative) 시멘트'​의 가능성이 제시된 셈이다. 다만 이러한 연구 결과가 곧바로 시멘트 산업 전체의 '탄소 네거티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CO₂ 포집에 필요한 에너지, 포집·압축·운송 비용, 원료와 공정 조건, 장기적인 탄소 저장 안정성, 그리고 대규모 생산에서의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탄소 저장'과 '강도 향상' 동시에 노린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규모에서 시멘트 산업의 탈탄소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ETH 취리히 연구가 탄소 포집과 시멘트 생산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대규모 탄소 제거를 가능하게 하는 공정적 경로를 제시했다면, MIT 연구는 포집된 CO₂가 시멘트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광물화되고 미세구조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중요한 점은 탄소 감축과 소재 성능 향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시멘트 산업에서 CO₂는 제거해야 할 '배출물'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생산 과정에 다시 투입해 시멘트 내부에 고정하고, 나아가 소재 성능까지 높이는 '원료'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탄소 배출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지목돼 온 시멘트가 기후위기 대응의 새로운 수단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 ‘차이나 딜레마’…탄소 감축이냐, 산업 보호냐

미국이 중국 중심의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 등에 사용되는 폴리실리콘 및 파생제품에 15%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최저수입가격(MIP)을 설정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동시에 미국 내 생산 기반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통상 정책을 넘어선다. 태양광을 비롯한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재편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본격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세로 막고 세제 혜택으로 키우고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에 집중된 태양광 공급망이다. 특히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제조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핵심 소재다. 미국의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 점유율은 2005년 50%에서 2024년 2% 미만으로 급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단순한 산업 경쟁력 약화가 아니라 전략물자의 공급망을 외국에 의존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 정책 수단도 명확하다. 중국산 제품에는 관세와 최저수입가격이라는 '채찍'을 들고, 미국 내 생산시설에는 세제 혜택과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당근'을 제시했다.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중국산 부품을 제3국에서 가공·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회수출까지 관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단순히 중국산 모듈을 막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장악한 공급망의 영향력 자체를 낮추려는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태양광 보급에는 부담 문제는 공급망의 안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발전의 경제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베이징사범대 연구진은 최근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의 효율성을 분석했다. 글로벌 분업을 통해 태양광을 저렴하게 생산하고 세계 곳곳에 대량 보급하면서 얻는 화석에너지 절감 효과가 제조·운송 과정에서 추가로 투입되는 화석에너지보다 매우 큰 규모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가 매우 크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관세로 태양광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망의 위험을 낮추는 대신 태양광 보급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극단적인 보호무역 시나리오에서 세계 태양광 보급 감소로 순 화석에너지 절감 잠재력의 최대 25%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입장을 반영한 연구 결과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연합(EU)으로서도 이러한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안보 사이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다. ◇EU도 중국 의존 줄이지만 '미국식'은 아니다 EU 역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태양광 제조 기반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강력한 관세 장벽을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는 방식에는 상대적으로 신중하다. 태양광 제조비용이 높은 유럽에서 자급률을 지나치게 끌어올릴 경우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EU가 글로벌 최적화 공급망보다 자국 생산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할 경우 태양광 산업 비용이 최대 34% 높아질 수 있다. 더구나 중국산을 차단한다고 공급망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생산기지가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동하면 중국 의존이 다른 국가에 대한 의존으로 바뀌는 '의존성 전이'​가 나타날 수 있다. EU가 탄소발자국과 공급망 회복력, 지속가능성 등 가격 이외의 요소를 중시하는 이유다. 값싼 제품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유럽 기업이 비(非)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겠다는 접근이다. 아울러 유럽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중국은 '배출자'인 동시에 탈탄소의 핵심 공급자 중국 측에서도 태양광 산업의 가격 경쟁력만 따지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본다. 중국 저장대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태양광 제조업체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뿐 아니라, 이들이 만든 제품이 화석연료 발전을 대체하면서 발생시키는 탄소감축 효과까지 함께 평가하는 '생산자 탈탄소 기여도(PDC)' 개념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중국 태양광 제조업체가 글로벌 탈탄소화 기여도의 27.9~45.4%를 담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중국 중심 공급망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중국의 대규모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배제할 경우 저렴한 태양광의 대량 보급이라는 기후변화 대응 효과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태양광의 탈탄소 기여도가 정점에 이르는 전략적 시점을 세계적으로 2030년으로 제시했다. 태양광 보급이 시급한 시기에는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일단 보급 확대에 주력하고, 이후에는 태양광 패널 제조 과정의 탄소배출과 자원 낭비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탈중국'보다 공급망 주도권 확보해야 앞서 살펴본 논문 저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태양광 공급망의 '차이나 딜레마'는 중국을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넷제로를 늦추지 않으면서 경제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공급망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EU의 움직임은 그 답을 찾기 위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미·중·EU의 경쟁은 한국 태양광 산업에도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산 제품을 전면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중국 공급망에 계속 의존하는 것도 미국과 EU의 공급망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위험하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해 중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탄소발자국과 공급망 안정성 등 비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효율 모듈과 제조공정 혁신, 핵심 소재·부품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정부 역시 관세로 수입을 막기보다 연구개발(R&D) 지원과 세제 혜택을 통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직접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결국 한국의 전략은 '탈중국'이 아니라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경쟁력 확보'​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태아·어린이 위협하는 ‘영원한 화학물질’…일상 곳곳에서 ‘빨간불’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이 태아기부터 어린이의 성장 과정까지 광범위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기존에 규제 대상이 된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과불화옥탄산(PFOA)을 대신해 사용되는 단쇄·초단쇄 PFAS(분자 사슬이 짧은 PFAS)까지 태반과 중추신경계에 도달하거나 간 기능을 교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PFAS 관리의 사각지대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원한 화학물질' PFAS 과불화화합물(PFAS)은 탄소와 불소의 강한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수천 종 이상의 거대한 화합물 군(群)을 말한다. PFAS는 태반 발달과 기능을 방해하여 저체중아 출산, 조산, 임신중독증 등 임신 합병증 위험을 높이고, 어린이의 중추신경계에 도달해 지능 지수(IQ) 감소와 인지 및 행동 장애 등 신경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간세포 내 담즙 대사를 교란해 간 기능 장애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대사 이상, 면역 결핍, 신장 손상 및 발암 가능성 등 인체 전반에 걸쳐 심각한 건강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불화화합물은 그 탄소 사슬의 길이(탄소 수)에 따라 초단쇄, 단쇄, 장쇄로 구분한다. 초단쇄(Ultra-short-chain, USC)는 보통 탄소 수가 1~3개(C1~C3)인 화합물로 정의한다. 단쇄(Short-chain, SC)는 일반적으로 C4~C7인 화합물을 말한다. 장쇄(Long-chain, LC)는 탄소 사슬이 긴 화합물로, 카르복실산 계열은 C8 이상(예: PFOA), 술폰산 계열은 C7 이상(예: PFOS)으로 분류한다. 장쇄 PFAS는 환경 내 지속성과 생물 농축성이 높아 우선적인 규제 대상이 됐다. 2019년 스톡홀름 협약에서는 PFOA 및 그 염류와 관련 화학물질 175종을 전면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국내 수질 관리 조사에서는 보통 28종 또는 29종의 주요 PFAS를 표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산모 혈액 속 PFAS, 태반 넘어 태아로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지난 4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임신 기간 산모의 PFAS 노출과 태반 독성의 연관성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 신시내티 산모 코호트(동질 집단)에서는 임신 16주 산모 혈청의 PFOS 기하평균 농도가 mL당 12.70ng(나노그램, 10억분의 1g)이었는데, 출산 시점에는 8.50ng/mL로 낮아졌다. PFOA도 4.80ng/mL에서 3.30ng/mL, 과불화노난산(PFNA)은 0.82ng/mL에서 0.66ng/mL로 감소했다. 문제는 혈중 농도가 낮아졌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신 중 혈장량이 늘어난 데 따른 희석 효과와 태반을 통과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아가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상하이 출생 코호트에서도 PFOS 농도가 임신 1분기 13.90ng/mL에서 3분기 10.66ng/mL로 감소했지만 꾸준히 검출됐다. PFAS는 혈액 속 단백질과 결합한 상태로 이동한 뒤 태반에 도달한다. 태반은 산소와 영양분을 교환하는 능동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PFAS가 단순히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수동 확산과 수송체 등을 통해 태아 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FAS는 태반의 혈관 형성과 영양막세포의 침윤을 방해하고 산화 스트레스와 지질대사를 교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변화는 태아의 성장과 임신 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역학 연구에서는 산모의 PFOS·PFOA 농도가 높을수록 출생체중이 감소하는 경향이 관찰됐고, 산모의 PFOA 농도가 높을수록 조산 위험이 최대 2.08배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태반은 '장벽'이 아니라 PFAS의 통로이자 저장고 일본 규슈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5월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연구는 태반의 역할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02쌍의 산모·영아를 분석한 결과 산모 혈청에서 제대혈로 이어지는 PFAS의 평균 통과 효율은 약 45%였다. 그런데 PFBS, PFBA, PFPeA, PFDoA 등 일부 물질은 통과 효율이 100%를 넘어섰다. 여기서 '100% 초과'는 태아에게 전달되는 농도가 산모 혈청 농도와 비교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으로, 태반이 단순한 물리적 차단막이 아니라 PFAS를 축적하고 재분배하는 '활성 화학적 인터페이스'로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단쇄 PFAS가 장쇄 PFAS보다 태반을 쉽게 통과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기존 PFOS와 PFOA 대신에 사슬 길이가 짧은 대체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태아 노출을 충분히 줄이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태반 양면 사이의 PFAS 이동 효율도 약 73%로 나타났다. 태반이 PFAS의 일회성 통과 지점이 아니라 일정 기간 물질을 머금고 재분배하는 기관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하천에서는 초단쇄 PFAS가 압도적 PFAS 문제는 국내 수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물연구원 연구진이 지난 5월 국내 저널인 '환경분석과 독성보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5년 3~11월 남한강 수계 7개 지점에서 28종의 PFAS를 분석했다. 전자산업단지 방류수가 유입되는 죽당천(경기도 이천) 지점에서는 PFAS 총농도가 L당 평균 2803ng​로 가장 높았다. 남한강 본류 하류 지점에서는 75.2ng/L까지 낮아졌다. 더 주목할 점은 PFAS의 구성이다. 죽당천에서는 전체 PFAS의 99% 이상이 단쇄 또는 초단쇄 물질이었다. 초단쇄 PFAS가 58.9%, 단쇄 PFAS가 40.6%를 차지한 반면 PFOS·PFOA 등을 포함한 장쇄 PFAS는 불과 0.5%였다. 초단쇄 PFAS 가운데서는 PFPrA와 TFMS, 단쇄 PFAS 가운데서는 PFBA와 PFPeA가 주요 성분이었다. 연구진은 일부 PFAS 성분 사이에서 매우 강한 상관관계가 확인된 점 등을 근거로 반도체 제조공정과 폐수처리시설 등이 주요 배출원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들 물질의 특성이다. 단쇄·초단쇄 PFAS는 물에 잘 녹고 이동성이 높아 수계에서 넓게 퍼질 수 있으며 기존 활성탄 중심의 정수처리 공정으로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4대강 지류에서도 광범위하게 검출 창원대 전준호 교수팀이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에 제출한 '미관리 수질오염물질 탐색체계 구축' 연구 보고서에서도 PFAS의 광범위한 분포가 확인됐다. 전국 4대강 수계 129개 지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분석한 29종의 PFAS 가운데 20종이 지류에서 검출됐다. 지류에서 평균 농도가 가장 높은 물질은 GenX로 L당 0.0367㎍(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이었고, PFBA 0.0189㎍/L, PFMPA 0.0182㎍/L, PFHxA 0.0136㎍/L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폐수처리시설의 영향을 받는 지점에서는 GenX가 평균 0.0657㎍/L로 검출됐다. PFAS를 포함한 미관리 오염물질 전체의 평균 농도는 한강 권역 지류에서 0.0926㎍/L로 가장 높았고, 낙동강 0.0729㎍/L, 금강 0.0661㎍/L, 영산강 0.0607㎍/L 순이었다. PFAS는 물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조사 대상 민물고기에서 PFOS 검출률은 95.7%에 달했다. 먹이사슬을 통한 생물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집 안의 먼지와 공기도 어린이의 노출 경로 강물 오염은 수돗물을 통해 인체로 들어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PFAS는 활성탄 처리 등 고도정수처리를 통해서도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PFAS가 전달되는 경로는 수돗물이나 식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 연구진은 가정에서 실내 공기와 먼지를 조사해 그 결과를 지난달 '환경 과학 기술'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실내 공기에서는 6:2 FTOH가 98%의 높은 검출 빈도를 보였고 농도는 m³당 1.54~40.7ng이었다. 실내 먼지에서는 6:2 diPAP가 g당 최대 48.8ng까지 검출됐다. PFOS와 PFOA 역시 가정 먼지에서 각각 최대 24.2ng/g과 16.7ng/g의 농도로 확인됐다. 1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노출량을 추정한 결과, 고노출군에서는 실내 공기와 먼지만으로 체중 1kg당 하루 0.129ng의 PFAS를 섭취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실내 노출이 EFSA의 주간 섭취허용량(TWI)의 약 20%에 해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실내 공기와 먼지 노출만으로 어린이 혈청 PFOA와 PFDA 농도의 약 20%를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카펫과 가구, 방수·방오 기능성 섬유, 각종 소비재 등에 사용된 PFAS가 실내 먼지와 공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린이는 바닥이나 물건과 접촉하는 시간이 많고 손을 입에 대는 행동도 많아 성인보다 먼지 노출에 취약할 수 있다. ◇어린이 뇌척수액에서도 PFAS 검출 더 우려스러운 것은 PFAS가 어린이의 중추신경계 주변까지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다. 중국 난징의과대학교 연구진은 평균 연령 5.95세인 어린이 47명의 뇌척수액을 분석, 그 결과를 최근 '환경 과학 기술 회보(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Letters)'에 발표했다. 조사 결과, 대상자 47명 모두의 뇌척수액에서 PFAS가 검출됐다. PFOA는 98%에서 검출됐으며 중앙값은 0.0345ng/mL였다. PFOS는 89%, PFHxS는 96%에서 검출됐고 각각 중앙값은 0.0174ng/mL와 0.0040ng/mL였다. PFOS 대체물질로 사용되는 6:2 Cl-PFESA도 68%에서 검출됐다. 뇌척수액에서 PFAS가 검출됐다는 사실은 적어도 일부 PFAS가 혈액-뇌 장벽 또는 혈액-뇌척수액 장벽을 거쳐 중추신경계 주변까지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이 연구만으로 PFAS가 특정 어린이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지능 저하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기존 역학연구에서 신경발달과의 연관성이 보고돼 있지만, 뇌척수액 검출 결과와 특정 건강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려면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짧은 것은 안전하다'는 공식도 흔들려 PFAS 문제의 가장 큰 변화는 오염의 중심이 기존 PFOS·PFOA에서 새로운 대체물질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 자유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단쇄 PFAS인 TFA, TFMS, PFPrA, PFPrS가 인간 간세포 모델에서 담즙산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 및 수송체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BSEP, MRP2, MRP3 등 담즙 배출에 관여하는 수송체와 담즙산 대사 경로가 영향을 받았고, 24~72시간의 노출에서는 소포체 스트레스와 산화 스트레스,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 등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초단쇄 PFAS가 기존 PFOS·PFOA보다 독성이 낮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안전한 대체물질'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초단쇄 PFAS는 높은 수용성과 이동성 때문에 물환경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PFAS 관리, '몇 종 규제'에서 '물질군 관리'로 연구들을 종합하면 PFAS 문제는 더 이상 특정 화학물질 몇 종의 문제가 아니다. 산모의 혈액 → 태반 → 태아 → 출생 후 수돗물·식품 → 실내 먼지·공기 → 어린이의 혈액과 중추신경계로 이어지는 노출 경로가 존재한다. 동시에 산업폐수가 하천으로 유입되고, 일부 PFAS는 수계와 생태계에 잔류하면서 먹이사슬을 통해 다시 사람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이제 PFAS 관리는 '환경에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넘어 '태아와 어린이가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기존 PFOS·PFOA를 규제하자 단쇄·초단쇄 PFAS와 대체물질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정책적 과제다. 물질 하나가 규제되면 구조가 조금 다른 물질로 대체되는 '끝없는 두더지 잡기' 방식으로는 PFAS의 환경 잔류와 건강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PFAS 정책은 △PFAS 물질군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 △초단쇄·대체 PFAS를 포함한 수질 기준 마련 △산업폐수 배출원 관리 △정수장에서의 제거기술 고도화 △태반·제대혈·어린이 생체시료를 활용한 국가 차원의 노출 감시 △실내 먼지와 소비재에 대한 관리 등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가뭄에 라인강 멈추고 밥상 물가 껑충…‘기후플레이션’의 경고

이번 여름 극심한 폭염 속에 시민들이 치솟는 물가로 고통을 겪고 있다. 에어컨과 제습기 사용이 늘면서 전기료 부담이 커진 것이다. 건설·농업 현장에서는 한낮 작업을 줄여야 하는데, 타는 햇살과 작업량 부족 탓에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한다면 식탁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장마와 폭염을 거치면서 일부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12일 현재 전국 평균 소매가격 평균으로 배추 1포기는 4512원으로 두 달 전 6월 11일보다 24%가 올랐고, 시금치 100g은 2038원으로 140%나 치솟았다. 오이(10개)도 1만1079원으로 40%나 올랐는데, 그나마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5일 1만3824원에서 20% 내린 가격이다. 유럽도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기후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영국 비영리 연구조직 '에너지기후정보부'는 지난 6월 폭염 이후 4주간 유럽연합(EU) 및 영국의 곡물 생산량이 약 900만t 줄어들고, 이로 인해 약 21억유로(3조4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전체 생산액의 약 5%에 해당한다. 프랑스 농무부는 지난 7일 올해 옥수수 생산이 작년보다 35% 감소해 1980년 이래 최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기후 충격이 농업을 넘어 산업과 물류로 번지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극심한 가뭄으로 독일 라인강의 수위가 역사적으로 낮아지면서 화학제품과 연료, 곡물, 원자재의 선박 운송에 차질이 발생했다. 화학기업 코베스트로는 일부 제품에 불가항력을 선언했고, 에보닉의 마를 공장도 화물 운송량이 감소했다. 평소 라인강을 이용하던 기업들은 철도와 트럭으로 운송수단을 바꾸고 있지만 비용과 운송능력에 한계가 있다. 유럽의 폭염과 가뭄이 이제 물가와 공급망, 경제성장을 동시에 흔드는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초콜릿에서 시작된 가격 충격 기후변화가 상품 가격을 움직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코코아다. 2024년 서아프리카의 주요 코코아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악천후와 생산량 감소에 직면했다. 뉴욕 코코아 선물 가격은 2024년 12월 18일 t당 1만2931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코코아 가격이 2024년 한 해 동안 거의 세 배로 올랐다고 보도했다. 코코아뿐 아니라 커피 역시 주요 생산지역의 악천후로 가격 상승 압력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기후 충격이 생산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작물 생산량 감소는 국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원료를 수입하는 식품기업의 비용을 높인다. 결국 소비자는 초콜릿과 커피의 가격표를 통해 기후변화의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농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뭄으로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원료와 제품을 운반하는 비용이 상승하고, 발전소의 냉각수 확보가 어려워지면 전력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은 증가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거나 제품 가격에 전가해야 한다. 생산 감소와 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 물가와 성장률이 함께 악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물가와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이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다. ◇기후플레이션, 왜 생기나 영국 맨체스터대 정치학과 제임스 잭슨 연구원과 캐나다 오타와대 정치학부 라이언 카츠-로젠 부교수는 지난 6월 국제학술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s)'에 이 기후플레이션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다. 두 연구자는 기후플레이션을 기후변화의 원인, 기후변화가 만들어내는 물질적 피해,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이 모두 물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현상으로 정의했다. 이들은 기후플레이션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①화석연료플레이션(Fossilflation):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전쟁이나 공급망 차질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는 운송·전력·제조비용을 거쳐 소비자물가로 전가된다. ②탄소플레이션(Carbonflation): 폭염·가뭄·집중호우 같은 기후충격으로 농산물 생산과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가격이 오른다. 커피 생산지역의 기온과 강수 패턴 변화로 생산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③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탄소중립을 위해 전력망·재생에너지·배터리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관련 인프라와 핵심광물 가격에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이 화석연료플레이션과 탄소플레이션을 낮추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친환경 전환=물가 상승'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기후충격은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플레이션의 더 큰 문제는 물가 상승이 경제 전체의 불안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극한기후가 농산물 생산을 줄이면 식품 가격이 뛰고, 가뭄으로 물류가 차질을 빚으면 운송비와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 보험료 상승도 가계와 기업의 비용을 높이는 새로운 경로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보험료 상승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 연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잭슨 연구원의 논문에서 소개된다. 결국 기후플레이션은 물가→가계 부담→소비 위축→기업 비용 증가→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잭슨 등은 화석연료, 기후재난, 에너지 전환에서 발생하는 가격충격이 다른 지정학적·경제적 충격과 결합하면서 이른바 '대변동(Great Volatility)'의 시대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만 연구진은 모든 상품의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으로 기후플레이션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나 에너지 전환이 특정 상품의 가격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어 인플레이션과 디스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생활비 충격'으로 나타나 한국 경제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지난해 9월 한국은행이 공개한 '극한기상 현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고 기온이 평년보다 1℃만 올라도 소비자물가가 0.06%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또 극한기상 현상이 지속되면 물가상승 압력이 2050년 이후 부터 급증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농산물·수산물처럼 기상조건에 민감한 품목에서 가격충격이 나타난다. 기온 충격은 장기적인 물가상승률 자체보다는 단기적인 물가 변동성을 키우는 공급측 충격의 성격이 강하다. 2019~2025년 한국의 여름철 기온 상승과 함께 쌀 생산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1인당 전력소비가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농산물 가격 하나를 올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생산량 감소, 전력수요 증가, 노동생산성 저하, 가계 생활비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경제의 공급능력 자체를 압박하고 있다. 기후플레이션 시대에는 기후충격이 가격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공급망과 산업의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마르는 지구, 빈곤해지는 식탁…2050년 ‘식량 재난’ 온다

전 세계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 남부 지방은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며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의 주요 강들 역시 역대 최저 수위를 경신하며 물류와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의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식량 위기'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 국내외 가뭄 상황 '심각'… 강물 마르고 댐 바닥 드러내 국내 상황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재난 수준에 도달했다. 경남 18개 시군의 농업용수 평균 저수율은 35%로 평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4%에 불과하다. 특히 경남 밀양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농업용수 가뭄 '심각' 단계에 진입했고, 백안저수지의 경우 저수율이 1.2%까지 추락했다. 호남평야의 젖줄인 섬진강댐 저수율은 19.5%까지 떨어지며 가뭄 '경계' 단계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지난 11일에는 경남 지역에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됐다. 소방청은 전국 소방력을 투입해 경남지역에 농업·생활용수 공급을 지원하기로 했다. 가뭄으로 국가소방동원령이 선포된 것은 지난해 8월 강릉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해외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다뉴브강은 독일에서 흑해까지 10개국을 관통하는 구간 대부분에서 역대 최저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수자원 당국은 다뉴브강 수위가 종전 최저치보다 10㎝ 더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원전 냉각수 확보에 비상이 걸려 루마니아는 다뉴브강 암반을 폭파해 물길을 바꾸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시행했다. 미국에서도 최대 저수지인 미드호의 수위가 1040.5피트로 1937년 댐 조성 이래 약 9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 기후변화가 부른 '복합 재난'… 2050년 식량 안보 위협 문제는 이러한 가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폭우가 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나타나는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기후변화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가뭄이 향후 글로벌 식량 공급망을 파괴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지구환경과학부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가 98억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가뭄이 식량 안보의 주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2050년까지 전 세계 62개국이 10% 이상의 농작물 손실을 경험하고, 24개국에서는 그 손실이 20%를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대두(콩)는 특정 국가에서 최대 92.7%까지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작물로 꼽혔다. 이탈리아 토리노 공과대학과 미국 델라웨어대학 연구팀은 지난 5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연구를 통해 역사적 극한 기후 상황에서 전 세계 천수답(비에 의존하는 논) 생산 손실이 10.1%에 달하고, 이는 21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칼로리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인도 간디나가르 기술연구소(IITGN) 연구팀은 최근 '커뮤니케이션즈 지구 및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등도 가뭄 발생 시 주요 농업 지역의 작황 실패 확률이 25% 이상에 이르고, 옥수수와 대두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40~50%까지 치솟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뭄은 식량의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 떨어뜨린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 생물과학부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가뭄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은 철분 흡수 능력을 스스로 차단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가뭄이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뿐 아니라 철분 함량 등 영양학적 질을 떨어뜨려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 “비만 기다리는 시대 끝났다"… 선제적 대책 절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기술적 해결을 넘어 통합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환경공학부 감종훈 교수는 지난 2월 한 인터뷰에서 “재난 대응은 수자원 확보라는 기술적 해결을 넘어 대중의 인식과 소통을 고려해야 한다"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사회적 반응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여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강원도 강릉을 비롯해 국내 지자체들은 대체 수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릉시는 연곡 지하수 저류 댐 설치 등 대체 수원 마련을 통해 실효적인 가뭄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통영 욕지도에서도 내년 완공을 목표로 62억 원을 투입해 지하수 저류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관개 시설 확대와 기후 내성 작물로의 전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속 가능한 관개 확대와 작물 전환을 결합할 경우 가뭄으로 인한 손실의 62%를 방지하면서도 생산량을 14%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 정부의 경우 가뭄 취약 지역 농민들에게 콩류, 수수 등 물을 적게 필요로 하는 내한 작물로 재배 작물을 변경할 것을 공식 주문하고 나서고 있다. 가뭄은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직면한 이 거대한 마름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학계, 그리고 시민 모두의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낙동강·수도권 주민 소변서 녹조 독소 검출…“체내 유입 과학적 입증”

낙동강과 수도권의 녹조 발생 수계 주변 주민들의 소변에서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C)이 검출됐다. 녹조 독소가 물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넘어 사람의 생체시료에서 직접 확인됐다는 점에서 녹조 문제를 수질 관리 차원을 넘어 환경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낙동강네트워크와 환경운동연합, 보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 등은 11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과 수도권 주민을 대상으로 한 녹조 독소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총괄하고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이승준 경북대 응용생명과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조사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낙동강 유역과 기타 녹조 발생 수계 주변에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9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에서 150건의 소변 시료를 분석한 결과, 29건(19.3%)에서 남세균 독소인 MC가 검출​됐다. MC 중에서는 MC-LR, MC-YR, MC-RR 등 3종이 확인됐고, 일부 시료에서는 여러 종의 MC가 동시에 검출되기도 했다. MC-LR 검출회수가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검출 농도 범위는 MC-LR 0.75~3.65ppb(μg/L, 10억분의 1), MC-YR 1.10~23.63 ppb, MC-RR 1.21~2.33 ppb였다. 가장 많이 검출된 MC-LR은 대표적인 간독성 MC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010년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Group 2B)'로 분류했다. 지역별로는 수원·의왕·평택 등 경기도권에서 소변 60건 가운데 12건(20.0%), 낙동강권에서는 90건 가운데 17건(18.9%)에서 MC가 확인됐다. 강 주변에서는 79건 중 16건(20.3%), 호수·저수지 주변에서는 71건 중 13건(18.3%)이었다. ◇녹조 독소의 소변 검출 의미는 소변에서 MC가 검출됐다는 것은 적어도 독소가 단순히 물속에 존재하는 것과 달리 조사 대상자의 체내로 들어간 뒤 소변을 통해 배출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생체지표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을 곧바로 '녹조 독소가 신장을 손상시켰다'거나 '건강 피해가 발생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조사를 진행한 경북대 응용생명과학과 이승준 교수는 “한두 차례의 단기 조사이므로 체내 잔류 수준이나 위해성을 100% 단정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녹조에 노출된 주민들의 체내로 MC가 실제로 유입돼 순환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람의 소변에서 검출되는 MC 농도를 놓고 건강 위해성을 판단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준은 없다. 사람의 생체시료에서 MC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 정저우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첨단연구저널(Journal of Advanced Research)에 발표한 논문에서 건강한 성인 남성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변 샘플의 66.12%에서 MC-LR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검출 농도는 최고 4.22ppb까지 나타났다. 중국 정저우대학교와 하이난성 인민병원 연구팀은 지난해 공개한 논문에서 생식 병원을 방문한 633명의 남성 자원봉사자 소변을 분석한 결과, 70.6%의 높은 검출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당시 소변 내 MC-LR의 중앙값 농도는 0.03ppb였다. 연구팀은 MC 수치가 정액량 감소, 정자 농도 및 정자 수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검출 자체보다 노출 경로와 건강 영향 밝혀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원수·공기·농산물 등 환경시료와 소변·혈액·비강 등 생체시료를 연계해 조사하고, 동일 주민을 반복 추적해 독소가 언제, 어떤 경로로 체내에 들어왔으며 어떻게 이동하고 배출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녹조 발생 지역 주민과 농·어업 종사자 등 노출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반복적인 소변검사뿐 아니라 혈액검사와 간·신장 기능검사를 병행하고 장기적인 건강 영향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녹조 관리의 관점을 기존의 '원수와 먹는물에 독소가 있는가'에서 '주민이 실제로 어느 정도 노출되고 있는가'로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이승준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등에 따르면 남세균 독소는 주로 피부 접촉 및 호흡기(코·입) 흡입을 통해 체내로 유입된다"면서 “금강 백제보 등에서 중·고등학생들이 카누 연습 후 물에 빠지는 등 경각심 없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기후에너지환경부나 교육부 등 범부처 차원의 대응과 조사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낙동강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 녹조 독소의 인체 노출 가능성이 전국에서 확인됐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낙동강처럼 해결 방안이 있는 경우에는 녹조를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양호와 대청호 등에서 녹조는 발생하지만,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 등 다른 기능을 가진 댐을 단순히 녹조가 발생한다는 이유만으로 없애자는 식의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취수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낙동강의 보를 개방하거나 해체하면 물의 흐름이 회복돼 녹조를 저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여름 녹조 대응을 위해 낙동강 하류 4개 보를 부분 개방했다. 강정고령보와 달성보는 수위를 90㎝, 합천창녕보는 60㎝, 창녕함안보는 54㎝ 낮추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수위가 내려가면 일부 취·양수장의 취수가 어려워지고 가뭄으로 수량이 부족해 그나마 수문을 제대로 열지도 못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제는 녹조 관리를 단순 수질 관리에 한정하지 말고 환경보건 정책과 연계해야 한다"면서 “녹조 관리 정책의 최종 목표를 주민들의 '노출 저감'으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골칫거리 폐PVC의 반전…70℃ 저온 공정으로 ‘고급 윤활유’로 전환

재활용이 까다로웠던 폴리염화비닐(PVC)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합성윤활유로 전환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폐PVC를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기존의 '재활용'을 넘어, 자동차와 산업기계 등에 사용되는 고성능 윤활유 원료인 폴리알파올레핀(PAO)으로 전환하는 '업사이클링' 기술이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텍사스 A&M대학교,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염소 57% PVC, 왜 재활용이 어려웠나 PVC는 건축자재, 배관, 전선 피복, 카드, 의료용품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재활용이 특히 어려운 플라스틱으로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염소 함량이다. PVC 무게의 약 57%가 염소로 구성돼 있어 열적·화학적 처리 과정에서 부식성이 강한 염화수소(HCl)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PVC 제품에는 가소제와 안정제, 난연제, 무기 충전제 등 다양한 첨가제가 들어간다. 이들 물질은 재활용 과정에서 촉매를 비활성화하거나 최종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존의 열분해 방식 역시 높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데다,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제품의 경제적 가치가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PVC 재활용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느냐'보다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얼마나 높은 가치를 가진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 ◇70℃에서 PVC의 염소를 빼고 윤활유 원료로 전환 연구진은 이 문제를 PVC의 화학적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핵심 기술은 탈(脫)할로겐화-알킬화(dehalogenation-alkylation)​다. 약 70℃의 비교적 온화한 조건에서 저가 촉매인 염화알루미늄(AlCl₃)을 이용해 PVC에서 염소를 제거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반응성 부위에 알파(α)-올레핀(분자 끝에 반응성이 높은 이중결합을 가진 탄화수소)을 결합시킨다. 동시에 길다란 PVC 고분자 사슬을 적절한 길이로 절단해 적합한 분자량을 가진 윤활유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물질이 비닐 유래 폴리알파올레핀(vinyl-derived polyalphaolefin, vPAO)이​다. 최종 분자는 길다란 중심 사슬 옆으로 갈래 사슬이 달린 '빗 모양(comb-like)' 구조를 형성한다. 연구진은 이 구조가 윤활 표면에서 안정적인 경계막을 만들어 마찰과 마모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폐PVC에서도 고성능 윤활유 생산 이번 연구의 중요한 부분은 실험실에서 만든 순수 PVC에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진은 파이프와 카드, 장갑, 장난감 등 여러 종류의 PVC 제품이 섞인 실제 폐기물 혼합물을 원료로 사용했다. 실제 폐기물에는 탄산칼슘과 같은 무기 충전제와 금속 화합물,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테트라하이드로푸란(THF)이라는 유기용매에 폐PVC를 녹인 뒤 불용성 첨가제를 걸러내는 전처리 과정을 거쳤다. 연구진은 폐PVC를 THF에 녹인 뒤 불용성 충전제를 여과하고, 물과 이소프로판올을 이용한 침전 과정을 통해 금속염과 유기 첨가제를 제거했다. 이러한 전처리는 불순물이 핵심 촉매인 염화알루미늄의 활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후 탈염소화-알킬화 반응을 진행해 윤활유를 생산했다. 탈염소화 효율은 99.98% 이상으로 나타났고, 최종 윤활유 속의 잔류 염소 농도는 100ppm 미만으로 낮아졌다. 반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화수소는 산화아연(ZnO)을 이용해 중화했다. ◇점도지수 최대 130…상용 PAO보다 뛰어난 내마모성 이렇게 얻은 vPAO는 성능 시험에서도 눈여겨볼 결과가 나왔다. vPAO는 PVC 사슬의 절단 정도와 결합하는 α-올레핀의 길이를 조절함으로써 분자량과 점도를 폭넓게 조절할 수 있었다. 점도지수(VI)는 최대 130에 달했고, 마찰계수도 약 0.08~0.15 수준으로 낮았다. 특히 실제 폐PVC 혼합물에서 제조한 v10PAO(탄소 10개짜리 α-올레핀인 1-데센을 사용해 만든 vPAO를 의미)는 상용 PAO10(점도 등급이 10인 상용 PAO 계열 윤활유)과 PAO40(점도 등급 40인 윤활유)보다 마모 부피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내마모성이 vPAO의 독특한 빗 모양 분자 구조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중심 사슬에 긴 옆 사슬이 결합된 구조가 마찰면에서 효율적으로 배열돼 고압과 강한 전단 조건(빠르게 서로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윤활막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기물은 싸고 윤활유는 비싸다…경제성도 확보 이 기술이 산업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성이다. 연구진의 기술경제성 분석(TEA)에 따르면 연간 5만t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가정할 경우 연간 약 1억6000만 달러의 매출과 1960만 달러의 순이익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내부수익률(IRR)은 22.8%, 투자회수기간은 약 4.26년으로 추산됐다. 분석에서는 PVC 폐기물 가격을 톤당 약 870달러로, 생산되는 PAO 윤활유의 시장가격을 톤당 약 3000~6000달러로 가정했다. 폐플라스틱을 저가의 원료로 사용하는 대신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전환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다만 상업화 가능성을 낙관하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현재 공정에서 원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PVC 폐기물이 아니라 α-올레핀이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1-데센과 같은 α-올레핀의 가격과 공급 안정성이 전체 공정의 경제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 등 다른 폐플라스틱에서 α-올레핀을 생산해 이를 다시 PVC 윤활유 제조에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PVC 폐기물뿐 아니라 다른 폐플라스틱까지 하나의 순환형 화학공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 ◇'재활용'에서 '고부가가치 업사이클링'으로 이번 연구의 의미는 PVC를 얼마나 많이 재활용할 수 있느냐에만 있지 않다. 핵심은 폐기물에 포함된 탄소를 얼마나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PVC 외에도 폴리염화비닐리덴(PVDC), 염화폴리에틸렌(CPE) 등 다른 할로겐화 고분자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폐플라스틱을 단순히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기계적 재활용이나 연료로 전환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화학적 업사이클링'​으로 폐플라스틱 자원화의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려면 대량의 폐PVC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다양한 첨가제가 포함된 폐기물을 경제적으로 전처리하며, 염소 부산물을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험실 규모에서 확인된 수율과 윤활 성능이 대형 상업설비에서도 유지되는지 검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PVC 폐기물이 고급 윤활유의 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향후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재활용률' 중심에서 '폐기물의 경제적 가치 극대화'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수소선박 전환 시 연 390조원 편익…문제는 수소 공급망과 인프라

전 세계 선박의 연료를 수소로 전환하면 매년 약 13만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하고, 대기질 개선에 따른 경제적 편익이 연간 2840억달러(약 39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운 탈탄소화가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초미세먼지와 오존을 줄여 상당한 공중보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세계 해운의 연료체계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대규모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박 몇 척을 수소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연구에서 제시한 건강 편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와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SF NCAR)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구 시스템 모델과 대기질·건강영향 모델을 결합해 선박 에너지의 50%와 100%를 수소로 전환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매년 12만9458명 조기 사망 예방 100% 전면 전환 시나리오에서는 매년 12만9458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약 75%인 9만7417명은 오존 감소를 통해, 25%인 3만2041명은 초미세먼지(PM2.5) 감소에 따른 효과였다. 지역별로는 차이가 컸다. 남아시아에서는 오존 감소, ​동아시아에서는 PM2.5 감소에 따른 건강 편익이 두드러졌다. 특히 동아시아는 전 세계 PM2.5 관련 예방 사망자의 약 47%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2840억달러(약 390조원)에 이른다. 인도가 약 360억달러로 가장 큰 편익을 얻고 일본·미국·이탈리아·중국 등도 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50% 전환 시나리오는 전 세계 선박 에너지 수요의 절반을 수소로 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연간 약 4만5000명 수준의 조기 사망을 예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른 경제적 편익은 연간 약 1140억달러(약 157조원)에 이른다. 수소 해운의 효과가 단순한 탄소 감축에 그치지 않고 건강과 경제적 편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선박 건조에 막대한 비용 필요 문제는 이 결과를 현실로 옮기는 데 필요한 규모다. 100% 전환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이전에 총톤수 100t 이상 상선 11만2501척을 수소 추진선으로 새로 건조해야 한다. 선박 한 척당 건조비용을 4750만달러로 추산해 선박 교체 비용만 연간 약 2140억달러로 계산했다. 건강 개선에 따른 경제적 편익 2840억달러보다 크지는 않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건 편익과 선박 교체비용을 비교한 결과다. 논문에서는 50% 전환 시나리오에 따른 선박 교체비는 별도로 산정하지 않았다. 다만, 단순 비례로 가정을 하면, 5만6250척을 건조하는 데 약 2조6720억달러가 들어가고, 2050년까지 연간 1070억달러 정도가 들어가게 된다. ◇선박만 바꿔서는 안 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수소 생산·저장·운송과 항만 벙커링 인프라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 종합적인 경제성 분석은 아니다. 이번 연구를 근거로 당장 수소선박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오히려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간에 걸친 선박 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이 함께 드러난다. 수소 해운의 또 다른 과제는 연료 공급망이다. 연구진은 전 세계 해운의 수소 전환을 위해 연간 약 2억80만t 규모의 수소 생산을 가정했다. 이 가운데 88%는 그린수소, 11.8%는 블루수소였다. 그러나 수소 프로젝트가 발표됐다고 실제 공급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발표된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 가운데 일정대로 완공된 비율이 7%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소 공급망 구축 자체가 해운 전환의 중요한 불확실성이라는 의미다. ◇한국 서해안은 오존이 변수 더구나 수소 생산 과정에서는 육상 대기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수소선박 운항으로 이산화항(SO₂)과 일산화질소(NO) 등 선박 배출량은 크게 감소하지만, 수소 생산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오염물질 배출이 증가할 수 있다. 미국 걸프 연안, 칠레 북부, 서유럽, 인도 북서부 등에서는 PM2.5 농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지역도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선박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이 줄면 대체로 대기질이 개선되지만, NOx 농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오존 농도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NO로 인해 오존을 제거하는 반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중국 동부와 벨기에·네덜란드 해안, 한반도 서쪽 연안 등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제시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수소선박 전환과 함께 반응성이 높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배출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선박의 NOx 감축만으로는 오존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가 답인가'보다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이번 연구는 수소 해운의 가능성을 상당히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해운의 연료를 수소로 바꾸면 대기질 개선을 통해 연간 13만명에 가까운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고, 그 경제적 가치는 284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현실의 정책 목표로 바꾸려면 넘어야 할 산도 분명하다. 11만2501척의 선박을 교체하고, 연간 2억t 규모의 수소를 공급하며, 전 세계 항만에 새로운 벙커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수소 생산 과정의 대기오염과 지역별 오존 문제까지 관리해야 한다. 해운 탈탄소화에서 수소가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수소선박의 도입 숫자만 세는 것보다 수소 생산에서 선박 운항까지 전체 공급망을 어떻게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새로운 환경 부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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