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머스크·젠슨황의 경고 현실화?…AI 패권 경쟁서 중국이 웃는 이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적해온 '에너지 격차'가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는 속도로 발전설비 확충에 나서자 AI 인프라를 지탱할 전력 공급 측면에서 구조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중국 국가에너지국(NEA)·블룸버그NEF(BNEF) 등에 따르면 중국이 2021년 이후 4년간 새로 설치한 발전설비 규모는 총 1515.3기가와트(GW)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이 건립 이후 누적해온 발전설비 용량(1373GW)을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작년에만 중국에서 543GW의 발전설비가 새로 추가됐는데 이는 2024년말 기준 인도의 전체 발전설비(483.1GW)를 웃도는 규모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BNEF는 중국이 향후 5년간 3.4테라와트(TW) 이상의 발전설비를 새로 추가할 것이란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약 6배에 달하는 규모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이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데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지난달 22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래리 핑크 블랙록 CEO와의 인터뷰를 통해 “AI 보급의 근본적인 제약 요인은 전력"이라며 “가동할 수 있는 발전설비보다 더 많은 반도체 칩이 생산되는 상황이 아주 가까운 시점, 어쩌면 올해 안에 도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만 중국은 예외"라며 “중국의 전력 성장 속도는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머스크 CEO가 이끄는 AI기업 xAI는 현재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다. 황 CEO 역시 전력 접근성이 미국과 중국 간 AI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행사에서 “AI 경쟁력은 에너지, 반도체, 인프라, 모델, 응용이라는 다섯 개 층으로 이루어진 케이크로 볼 수 있다"며 “가장 아래층인 에너지에서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업계의 거물들의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하듯, BNEF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 전력 수요 증가분의 38%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에서는 그 비중이 6%에 그칠 전망이다. 2030년 기준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전체 전력 수요 비중도 미국은 약 7%에 달하는 반면 중국은 2%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됐다. 이와 관련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사만다 다트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총괄은 “미국은 병목 현상에 직면할 수 있지만 중국은 이런 현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AI 경쟁의 주도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약 20년간 정체됐던 전력 수요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지만 발전설비 확장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AI 수요 증가를 계기로 천연가스 발전시설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나 엄격한 규제와 공급망 병목으로 인해 발전시설이 실제 가동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친환경 기조로 태양광·풍력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전력망의 병목 현상은 AI 산업 성장에 이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전력회사는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 연결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통보하고 있고 데이터센터 허브로 불리는 버지니아주 북부 지역에서는 전력망 결함으로 인한 단전 사례도 발생했다. BNEF는 AI 전력 수요와 발전설비 확충 속도 간 괴리가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전력 부족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난해 12월 경고하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사만다 그로스 에너지안보·기후 이니셔티브 국장은 “미국에서 에너지가 AI 개발자들의 성장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극히 흔해졌다"며 “최근 AI 업계에서 '타임 투 파워'(전력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라는 말이 떠오른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반도체 공급이 아니라 전력 가용성"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AI 패권 경쟁의 우위를 확보하는 유일한 요인이 전력만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국은 여전히 자체적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중국의 AI 기업들은 현재의 최첨단 기술을 넘어서는 혁신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기술력이 서방 기업들에 비해 약 6개월가량 뒤처져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치라그 데카테 애널리스트 역시 “중국은 풍부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반도체 계층과 AI모델 계층에서 여전히 혁신 우위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머니+] 재생에너지 관련주, 올해도 ‘트럼프 리스크’ 압도할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친환경 기조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관련주들의 상승세가 앞으로도 꺾일 조짐이 보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사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에서 24억달러 규모의 플래그십 지속가능성 펀드를 운용하는 해미시 체임벌린 글로벌 지속가능 주식 부문 총괄은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작년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가 재생에너지 산업에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지난해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관련주에 환상적인 한 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S&P 글로벌 청정에너지전환 지수(S&P Global Clean Energy Transition Index)는 지난 12개월간 64% 급등했다. 같은 기간 뉴욕증시를 대표하는 S&P500 지수는 15% 상승했고 S&P 글로벌 석유 지수는 약 13% 상승하는 데 그쳤다. S&P 글로벌 청정에너지전환 지수는 이달에만 11% 올라 1월 기준 2019년 이후 최고의 월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초반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를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차단하는 한편 저탄소 산업을 지원하던 세제 혜택을 종료했다. 또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주최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기후변화와 관련한 의제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금은 계속해서 재생에너지로 유입되고 있다. 전력 수요가 인공지능(AI) 확산과 전기화 추세에 힘입어 증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가 수혜를 입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체임벌린 총괄은 “기후 이슈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투자 기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바뀌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인 에너지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비용이 낮고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많은 시장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야 할 인센티브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도 AI로 인해 모든 형태의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짚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편, 블룸버그가 집계한 결과 체임벌린 총괄이 운용하는 지속가능성 펀드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TSMC 등 기술주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펀드는 또한 수자원 관리 기업인 자일럼, 태양광 업체 넥스트파워에도 투자하고 있다. 자일럼 주가와 넥스트파워 주가는 지난해 각각 17%, 138% 급등했다. 다만 이 펀드는 빅테크와 보험을 포함한 금융주 비중이 높아 지난 1년간 투자 수익률이 S&P 글로벌 청정에너지전환 지수에 비해 부진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체임벌린 총괄은 “당시 더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앞으로도 재생에너지 산업에 매우 강력한 투자 환경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머니+] 한파와 숏스퀴즈가 부른 역대급 천연가스 폭등…‘에너지 위기’ 수준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됐던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미국 전역에 강력한 눈폭풍이 상륙하며 난방 수요가 급증한 데다, 한파로 천연가스 생산 차질 우려까지 겹치면서 공급 불안이 확산한 결과다. 여기에 가격 하락을 예상했던 트레이더들의 숏 스퀴즈(공매도 청산)가 더해지며 가격 급등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 美 천연가스 가격 3년 1개월 만에 6달러 돌파 26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헨리허브 천연가스 2월물 선물 가격은 아시아 시장 개장 직후 전장 대비 최대 19% 급등한 MMBtu당 6.288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한국시간 오전 11시 40분 기준 6.100달러로 상승세가 소폭 진정됐으나, 여전히 6달러선을 웃돌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6달러선을 넘어선 적은 2022년 12월 이후 약 3년 1개월만이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주에만 70% 폭등했는데, 이는 집계가 시작된 1990년 이후 사상 최대 주간 상승폭이다. 유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유럽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1월 셋째 주에만 28유로에서 37유로로 약 30% 급등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40유로 선까지 추가로 상승했다. ◇ '체감온도 -34도' 한파에 마비된 미국 이번 가격 급등의 일차적 원인은 북반구를 덮친 극심한 한파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일부 지역이 영하 20도 아래의 강추위를 겪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남부·중부·북동부를 중심으로 강추위가 찾아왔다. NBC 방송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 1억8500만명이 눈폭풍 주의보 지역에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체감온도가 화씨 영화 20~30도(섭씨 약 영하 29~34도)까지 떨어졌다. 현재까지 최소 22개 주(州)와 수도 워싱턴DC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눈폭풍 영향으로 전날 하루만 항공편 1만편 이상이 취소됐다. 1만편은 미국에서 하루에 운항하는 전체 항공편의 4분의 1에 육박하는데 이런 결항 규모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나 볼 수 있었다. 이번 눈폭풍으로 미국 전역에서 최소 8명이 사망했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뉴욕 5명, 텍사스 1명, 루이지애나 2명이며 저체온증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한파가 확산되면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는 급증했지만 공급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텍사스주에 위치한 주요 천연가스 생산 시설의 약 10%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최근 며칠간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하루 기준 약 100억 입방피트 감소한 반면, 수요는 180억 입방피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한파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로는 생산·수출 위주의 투자 구조가 지목된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에 힘입어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LNG 생산량은 2021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현재 멕시코만 연안에 8곳, 동부 해안에 2곳의 수출 시설이 운영 중이다. 이달 초 미국 LNG 시설의 가스 처리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전체 생산량의 18%를 차지했다. 그러나 텍사스의 주요 가스 생산업체인 BKV의 크리스토퍼 칼닌 최고경영자(CEO)는 생산과 수요가 급증했지만 저장 시설은 거의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장 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요가 강하면 가격 급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 현상을 “무거워지는 사람이 트램펄린 위에 뛰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반면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중국과 일본은 최근 몇 주간 한파를 겪었음에도 충분한 재고와 장기 계약 물량, 대체 연료 선택지를 확보하고 있어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알고리즘 뚫린 '숏 스퀴즈'…ETN 투자자도 희비 교차 여기에 가격 하락을 예상했던 트레이더들의 공매도 청산도 이번 급등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수의 가스 트레이더들은 충분한 공급을 근거로 이달 초반부터 가격 하락에 베팅했었다. 그러나 유럽의 한파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시장을 자극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자 유럽 트레이더들은 숏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해 다급히 매수에 나섰고, 미국에서도 숏 스퀴즈가 뒤따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자동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실행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역시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었으나, 선물 가격이 주요 저항선을 잇달아 돌파하자 손실을 감수하며 계약을 되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주 초 100%에 육박했던 숏 포지션은 지난 22일 기준 45%까지 급격히 축소됐다. 에너지 가격 헤징 자문사 글로벌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우다얀 바타차르야 수석 트레이더는 “포지션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렸던 사례"라며 “여기에 나쁜 날씨와 정치적 긴장이 더해지면 최근 며칠간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공격적인 숏 커버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가스 트레이딩 업체 업리프트 에너지 스트래티지의 폴 필립스 수석 전략가는 “지금은 모두가 패닉 상태"라며 “불과 지난주만 해도 시장에서는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파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NBC는 “상황이 점차 나아지겠지만 눈과 매서운 추위는 계속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2021년 2월처럼 대규모 LNG 수출 차질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유럽을 중심으로 가격이 빠르게 안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가격을 2배 추종하는 '삼성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가격은 지난주에만 약 58% 급등했으며, 이날도 장중 18% 안팎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천연가스 일간 수익률을 역방향으로 2배 추종하는 '삼성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 ETN D' 가격은 지난 16일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지난주에만 약 50% 급락하며 사실상 반토막 났다. 이날 역시 장중 18%가량 추가 하락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인터뷰]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 “AI·탄소중립, 둘 중 하나 선택할 문제 아니다…전력 인프라·시장 구조 전면 재설계해야”

“AI와 탄소중립은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라, 동시에 달성해야 할 과제입니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전력산업 구조와 전력망이 준비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기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 수급·시장 체계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올해 학회 슬로건을 'AI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대한전기학회'로 정한 배경에 대해 “AI도, 탄소중립도 결국 해답은 전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AI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능력이고, 탄소중립 역시 전기화와 저탄소 전원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2030년이 승부…비수도권 2단계 전략 필요" 박 회장은 AI 산업의 시간표가 촉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AI 산업의 1차 승부는 2030년 이전에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그 시기까지 국내 AI 인프라, 특히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AX(인공지능 전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도권 입지 한계도 분명히 짚었다. “수도권은 이미 계통 여력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며 “개통 영향 평가로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당분간은 비수도권으로 AI 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남처럼 원자력과 LNG가 풍부한 지역, 호남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을 활용해 2030년까지는 비수도권 중심 전략을 취하고, 이후 송전망이 보강되면 수도권도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2차 전기본, AI 수요부터 다시 써야" 박 회장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AI 전력 수요 재산정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1차 전기본은 2023년에 착수되어 AI 수요를 예측했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산 속도는 당시 가정을 완전히 뛰어넘고 있다"며 “2038년 기준 6.2GW 수준이었던 기존 전망은 현재 추세를 보면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산업계에서 거론되는 'AI 전력 수요 20GW' 전망에 대해 그는 “실현 여부를 떠나, 수요 상향 가능성을 전제로 전력 시스템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산업의 전력 수요는 줄고 있지만, AI·반도체·전기화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며 “12차 전기본은 이 구조 변화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생·원전·LNG·ESS…네 축 모두 필요" 에너지 믹스에 대해서는 명확한 '병행론'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두 축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며 “여기에 LNG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유연성 축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35년 이전에는 신규 원전의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고, 이후에는 SMR을 포함한 원전 옵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LNG는 완전한 탄소중립 전원은 아니지만, 과도기적 유연 전원으로 적절한 보상을 전제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S와 양수발전 확대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전력시장 구조, 이대로는 안 된다" 박 회장은 현행 전력시장 구조에 대해 “에너지 전환과 AI 시대를 감당하기에 구조적으로 너무 낙후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입찰제 도입 ▲유연성 보상 메커니즘 강화 ▲실시간 전력시장 조기 도입 ▲지역별 가격 체계 검토를 도매시장 개편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특히 현재 전력시장 운영 기관과 당국이 너무 국내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등 간헐성 자원의 비중이 높은 해외의 전력시장 진화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에는 지금의 예비력·보조서비스 체계로는 계통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출력 제어와 유연 운전을 제대로 보상하는 시장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매 요금과 관련해서는 “전기요금 결정의 독립성과 거버넌스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전망, 민간 역할 확대 검토할 시점" 송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는 민간 참여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회장은 “해외에서는 민간이 HVDC 등 기간 송전선로를 건설하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모델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민간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HVDC, 인버터, 해상풍력 핵심 장비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단기 비용만 보고 해외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통한 북미 수출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정답 제시보다 토론의 장 만드는 학회 역할 강화" 대한전기학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박 회장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찬반이 공존하는 토론의 장을 만드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기공학을 넘어 경제·법·행정·AI 등 인접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 논의의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전력·에너지 문제는 이제 특정 학문이나 이해관계자만의 영역이 아니다"며 “전문가 집단의 집단지성이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학회가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내 산업을 키우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요금 체계와 장기적 관점의 정책 설계가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신년 인터뷰] 홍종호 교수 “탄소세 왜 유럽에 내나…국내서 부담하고 돈 돌게 만들어야”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에 너무 수세적이다. EU에 인증서 비용을 내느니 국내에서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부담하는 게 낫다. 그 돈이 국내에 돌 수 있어서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국회의장 직속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는 지난달 23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CBAM 대응 전략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새해를 앞두고 우원식 국회의장 인터뷰와 함께 우 의장의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CBAM은 일종의 탄소세이다. EU가 정한 6개 품목(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에 대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EU의 배출권거래제(EU ETS) 가격만큼 비용을 지출해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홍 교수는 올해 본격 도입되는 CBAM에 앞서 배출권 가격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은 CBAM을 통해 자국의 배출권 가격과 해외 국가들의 배출권 가격을 조정하려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가 유럽 수준에 맞는 배출권 가격을 유지하면 EU에 세금을 내지 않고도 CBAM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홍 교수는 최근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식량 안보 문제를 촉발하며 물리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떼어내 환경부와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에 대해서는 “에너지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산업 정책에 봉사하는 구조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행정부에 충격이 필요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임기 동안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2035년 NDC 달성 역시 어렵다는 분석이다. 홍 교수는 향후 5년 안에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현 10% 수준에서 2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역별 요금 차등제와 실시간 요금제를 도입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전에 대해서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고 진단하며 재생에너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에너지원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재생에너지 설치 여건이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 대부분 국가와 비교하면 훨씬 좋다"며 “재생에너지는 기후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경제성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 -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는가. ▲ 자연과학자들과 소통해 보면 대체로 기후변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산업혁명 대비 1.5℃(도) 한도 목표는 달성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도 많고 남북구 빙하 융해, 해수면 상승, 바다 온도 상승 등이 결합하며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진단이 많다. 사회과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어떻게 개입할 것이냐다. 전 인류가 공통 목표를 지향하며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기후위기 피해가 워낙 심각한 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다. 지금도 배출량 1위는 중국이지만 중국의 탄소 배출 증가 속도는 분명히 둔화됐다. - 기후위기가 우리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 10년 전과 비교하면 물리적 피해가 훨씬 커졌다. 경제·금융 분야에서도 기후발 인플레이션, 농산물 가격 급등이 이미 현실이 됐다. 이는 전 지구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식량 공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는 국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배출된 탄소만으로도 폭우·폭염·가뭄·산불 같은 피해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는 이런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처럼 영향력이 큰 국가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전 세계에 주는 신호는 매우 부정적이다. 기후 피해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만큼 한국은 그 안에서 어떤 경로를 찾을지 매우 어려운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지금까지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을 평가해보면 어떤가. ▲ 에너지 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떼어내 환경부에 붙여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만든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과거에는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와 합쳐지면서 에너지 정책이 산업 정책의 일부가 됐다. 당시에는 안정적이고 최대한 싼 화석연료를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 시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화석연료 사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산업부 안에 있던 에너지 정책은 오랫동안 산업 정책에 봉사하는 관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행정부에 충격이 필요했다고 본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오랫동안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화학적으로 결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이제 에너지 정책은 규제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 중요한 건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인식 전환이다. 탄소를 배출하며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제시됐다. ▲ 53~61%처럼 범위를 제시하는 나라도 없지는 않지만 폭이 상당히 넓다. 50%를 넘어서면 1%포인트를 추가로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8%포인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양쪽(환경계와 산업계) 의견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이렇게 제시된 것 같지만 국민과 산업계에 주는 메시지는 다소 모호하다. 사실 핵심은 2035년 53%가 아니라 2030년 40%다. 2030년 40% 감축은 현재 상황에서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다. 지난 정부에서 충분한 탄력을 주지 못했고 이제 남은 시간이 5년밖에 없다. 2030년에 40%를 달성하면 2035년 53%는 갈 수 있다. 하지만 2030년에 실패하면 2030~2035년 사이에 훨씬 더 큰 추가 노력이 필요해진다. 결국 이 정부가 남은 5년 동안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 부담을 넘기게 된다. - AI 시대에 원전하고 소형모듈원전(SMR)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서 풀 수는 없는 문제인가. ▲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전력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1~2년 전만 해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상상 이상으로 폭증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과다 추정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전력 생산의 약 60%를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AI 산업 확대는 전력 소비 증가, 즉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이 충돌하지 않으려면 전력 생산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SMR은 결국 시장에서 성패가 갈릴 것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규모를 줄이면 규모의 경제가 약화되는데 그 상태에서 발전 단가 경쟁력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형 원전도 마찬가지다. 현재 26기에서 신한울 3·4호기까지 가면 30기다. 국토 면적 대비 원전 설비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원전을 더 짓는 게 맞는 선택인지 고민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역시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지금은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너무 낮다는 현실을 먼저 봐야 한다. 이를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원전과 화석연료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 대중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어디에 설치하느냐', '한국은 바람도 없고 햇볕도 약하다'는 이야기다. 재생에너지가 중금속이나 소음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도 많은데 상당수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유럽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동처럼 태양광 여건이 뛰어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독일이나 영국과 비교하면 훨씬 낫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은 애초에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나라였어야 한다. 자원도 없고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했지만 결국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다. 5년 전보다 시민들의 인식은 분명히 좋아졌다. 재생에너지 관련 가짜뉴스가 문제라는 공감대도 생기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민 소득을 늘리고 풍력도 실제로 해보면 우려만큼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10% 수준인데 3~5년 안에 20%는 가야 한다. 25%까지 가도 일본 수준이다. 결코 앞선 수치가 아니다. - 재생에너지공사 등을 통해 공기업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그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에너지이고 시장에서 수많은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기술 개발은 대기업이 설치와 운영은 중소기업이 맡는 구조다. 태양광 사업자 10만 시대라고 하는데 대부분 중소사업자다. 공사를 만드는 방식보다는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 송전선로 건설이 주민들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주민수용성을 높이려고 투자를 늘리면 전기요금이 올라가는 문제도 있지 않나. ▲ 송전망 부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다. 발전원이 무엇이든 한국 송전망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다. 주민 반대를 이유로 책임을 미루는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거의 전부 수도권으로 보내는 구조였다. 충남 당진에 가면 석탄발전소 10기가 있는데 거기서 만든 전기는 당진 시민들에게 거의 쓰이지 않고 수도권으로 간다. 당진 시민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나 실시간 요금제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송전거리가 길수록 손실이 커지는 수도권이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는 게 형평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를 계속 짓고 전기는 남쪽에서 다 끌어오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하냐는 거다. 이제는 전기 있는 곳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가야 할 시대다. 재생에너지가 많은 서남권, 동남권으로 기업들이 내려가면 송전선 부담도 줄고 사회적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 한전 적자 상황이 심각하다.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 원가가 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구조 탓이다. 전기사업법에는 원가주의가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용 전기를 너무 싸게 공급해 왔고 최근엔 산업용 요금을 올리다 보니 가정용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생겼다. 정치권은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통신요금에는 더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전기요금 인상에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인색하다. 한전 적자를 결정적으로 키운 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전기요금을 최대한 동결하려 했고 그 결과 국민은 에너지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 대신 한전의 부담만 커졌다. 이제는 전기요금 정상화와 전력산업 구조 정상화를 같이 논의해야 한다. 이걸 미루면 탈탄소 시대, 재생에너지 전환 시대를 제대로 버텨내기 어렵다. - 올해 유럽에서 CBAM이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데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비해야 겠는가. ▲ CBAM은 국가가 국가를 상대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온 탄소를 이유로 제재하는 첫 사례다. 예전 같았으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난무했을 텐데 대부분 나라가 그러지 못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탄소 비용을 내부에서 부담하면서 생산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나라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그건 탄소 누출이 되고 기후 대응이라는 대의에 어긋난다. 문제는 한국이 너무 수세적이라는 거다. EU에 인증서 비용을 내느니 국내에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을 늘려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게 낫다. 그 돈이 국내에서 돌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는 고통만 주는 게 아니다. 제대로 설계된 규제는 혁신을 만든다. 탈탄소 공정, 에너지 효율 기술 개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산업계가 어렵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는 정책·금융·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하고 산업계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일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 ▲ 우리는 여전히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회에 살고 있다. 짧은 기간에 성장해 왔고 그 경험을 한 세대가 아직 사회의 중심에 있다. 이걸 무시하고 환경 의식이 낮다고 비난해 봐야 답이 안 나온다. 기후 문제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로 봐야 한다. 기후 문제는 먹거리 문제고 일자리 문제고 물가 문제고 생존 문제다. 이 인식이 퍼지면 공감대는 훨씬 커진다. 기업들도 해외에 나가면서 공급망 실사, 스코프 1·2·3 같은 규범의 압박을 체험하고 있다. 결국 남은 건 정치권과 언론이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처럼 합의 가능한 모델을 키워야 하고 언론은 가짜뉴스를 줄이고 세계 흐름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경제성 때문에 가는 거다. 제일 싸고 제일 빠르다. 이걸 인정하면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의 소모적 갈등도 줄어든다. 결국 해답은 재생에너지를 키우는 데 있다. 대담=강찬수 기후환경전문기자 정리=이원희 기자 □ 홍종호 서울대 교수 프로필 ◇약력 △1963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석사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 (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원장 △기획재정부 재정정책자문회의 위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아시아환경자원경제학회(AAERE) 회장 △한국재정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부회장 △한국환경경제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지속가능발전연구소(ISD) 소장 △세계은행(World Bank) 컨설턴트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고문 (현) △국회의장 직속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장 (현)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신년호] 한전 독점에, 요금은 정치가 결정…전력 시스템의 한계가 왔다

한국 전력 시스템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에너지 업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산, 재생에너지 급증, 분산형 전원 확대 등 전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제도와 거버넌스는 여전히 중앙집중형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문제로 꼽히는 것은 한국전력공사를 중심으로 한 독점적 구조다. 한전은 전력 도매·소매 시장과 송·배전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발전시장에서도 5개 발전 자회사를 통해 전체 설비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발전경쟁 체제가 도입됐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간 발전사와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늘고 있음에도 계통 접속과 급전·정산 구조는 여전히 한전 중심 체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력 거래를 관장하는 전력거래소와 전기사업 인허가 및 제도 운영을 심의하는 전기위원회 역시 한전 출신 또는 한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시장은 있으나 경쟁이 부족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체계 역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력 원가와 연료 가격 변동이 존재함에도 전기요금은 사실상 정치적 판단에 좌우돼 왔다. 요금 인상은 번번이 지연됐고 그 부담은 한전의 부채로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료비가 급등했을 때도 요금 반영은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한전은 200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떠안았다. 에너지 수입 구조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230조원 안팎에 달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이 그대로 국가 경제와 전기요금, 한전 재무에 충격을 주는 구조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요금을 억누른다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부채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전력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요구하고, 재생에너지는 수천 개의 소규모 발전원이 동시에 계통에 연결되는 분산형 구조를 만든다. 수요와 공급이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환경에서 중앙집중형 계획·통제 모델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AI 기반 전력 수요 관리, 분산형 전원 운영, 실시간 가격 신호 반영을 위해서는 전력 시스템 거버넌스의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산업계와 국회가 주최한 각종 세미나에서도 반복됐다. 세미나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구분 없이 기업이 다양한 전원을 직접 선택해 전력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전력구매계약(PPA)을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PPA는 발전사업자와 수요기업이 직접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PPA는 시장 기반 전력 거래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전환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공급 구조에서는 PPA가 사실상 제한적이었던 만큼 계통 이용요금 체계 개편과 직접 PPA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 역시 PPA 확대와 가격 경쟁력 확보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전력 거버넌스 개편을 주요 정책 과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5 전력산업 세미나'에서는 AI 시대 전력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고, 전기요금 구조와 전략 전환 필요성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미 킬로와트시(kWh)당 180원 수준까지 상승한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을 감당하려면 kWh당 100원 이하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AI 산업은 전력 비용에 극도로 민감한 구조"라며 “해체 비용과 사용후핵연료 비용까지 포함하더라도 100원 이하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전원은 현실적으로 원자력"이라고 강조하며 원자력 전용 PPA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전우영 서울과학기술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기존 전력 수급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순간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했다가 급격히 수요가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한다"며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가 결합될 경우 전력 계통 안정성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산업 세마나 다음날 열린 '새만금 RE100 산단' 세미나에서도 기업 유치의 관건으로 재생에너지 PPA 물량 확보와 가격 경쟁력이 집중 거론됐다. 기업 유치를 위해 현 전기요금보다 저렴한 PPA를 공급할 수 있다면 PPA 제도를 적극적으로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폐지에 따라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던 최대 7기가와트(GW)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물량이 PPA 물량으로 풀릴 수 있는 것도 변수다. 만약 RPS 폐지 이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로의 전환 과정에서 PPA 전력판매가격이 높게 측정된다면 7GW의 재생에너지 물량이 한전을 대량으로 이탈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이 kWh당 180원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이 180원 이하로 풀린다면 구매를 마다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도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의 가격이 PPA보다 낮다면, PPA를 더 선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정부의 국정 과제인 에너지고속도로와 재생에너지 보급 인프라를 감당해야 할 한전은 재무 상황에서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기업들의 직접 전력 조달 확대와 한전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한전의 재무 구조는 물론 국가 전력 인프라 투자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에너지고속도로를 비롯한 대규모 송전망 구축 사업은 장기적 수요 예측과 안정적인 투자 재원이 전제돼야 하는데 전력 판매 기반이 약화될 경우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빚이 이렇게 많은데 신규 투자가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 수요 증가가 예고된 상황에서 한전의 과도한 부채가 송·배전망 확충과 계통 투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동철 사장은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 안에서는 근본적인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요금 구조의 현실화를 강조했지만 대통령은 “기업들이 원가보다 비싸게 전기를 사고 있다고 아우성인데,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을 사겠다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며 요금 인상에 대한 산업계 부담을 짚었다. 결국 전기요금, 한전 부채, 송전망 투자, 에너지 전환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얽혀 있다. 전력은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자 국가 안보 자산이다. AI와 분산에너지라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한국 전력 시스템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정부는 내년도 업무보고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용 구조를 낮추고 전력 시장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는 올해 상반기부터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되고 계획 입지 도입과 인허가 간소화, 보증·융자 확대를 통해 사업 비용 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쟁 입찰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오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은 kWh당 250원 이하, 육상풍력은 150원 이하, 태양광은 100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력망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도 병행된다. 출력 감소에 사전 참여하는 조건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재생에너지 준중앙제도'는 올해 3월 도입된다. 히트펌프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양방향 충전(V2G) 등 수요 유연성 자원은 제주 지역 실증사업을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 정규 자원으로 시장 참여가 확대될 예정이다. 아울러 산업용 전기요금의 계시별 요금 체계 개편을 통해 재생에너지 출력이 집중되는 시간대의 수요 분산을 유도하고 송전 거리 등을 고려한 지역별 전기요금 도입은 내년 하반기 검토에 착수한다. 전기위원회에는 요금 결정 권한을 단계적으로 부여하고 전력감독원 신설을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시장 공정성과 전력망 안정성에 대한 상시 감독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요금 체계와 전력 거버넌스를 동시에 손대는 구조 개편인 만큼 정책 추진 속도와 이해관계 조정이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AI와 재생에너지 시대의 전력 시스템은 더 이상 한 기관이 독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한전의 역할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변화한 환경에 맞게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반도체·LLM·데이터센터·전력인프라 생태계가 ‘K-AI 경쟁력’

인공지능(AI)이 산업과 경제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경쟁의 무게중심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더 똑똑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넘어 AI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효율적으로,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대규모 언어 모델(LLM),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인프라, 스마트팩토리와 가전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집약형 산업 생태계가 AI 경쟁의 실체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제조·인프라 경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이 본격적인 상용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초거대 AI 모델을 학습하고 서비스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산 능력과 전력이 필요하다. GPU 확보, 반도체 공급망, 데이터센터 구축 역량, 전력 인프라까지 갖추지 못하면 AI 전략은 지속될 수 없다. 업계에서는 “AI 경쟁은 결국 누가 더 많은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AI를 운영하느냐의 싸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AI 관련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비용과 인프라 부담이 급증하면서, 기술력 못지않게 운영 효율과 비용 구조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AI 산업의 핵심 축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며 글로벌 빅테크의 AI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역시 첨단 공정과 AI 반도체 역량 강화를 통해 파운드리와 메모리 전반에서 AI 대응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AI 반도체 경쟁은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라 전력 대비 성능, 즉 에너지 효율의 싸움이다. 전력 소모가 큰 AI 연산 환경에서 효율이 낮은 반도체는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내 기업들이 AI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삼는 이유도, 기술 경쟁력을 넘어 에너지 효율을 포함한 종합 경쟁력 확보에 있다. 해외 빅테크가 주도하는 LLM 시장에 맞서 국내 기업들은 한국어와 산업 특화 모델을 앞세운 '소버린 AI'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국어 특화 AI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추론 능력을 강화한 '하이퍼클로바X 씽크'를 공개하며 GPT-4.1과 유사한 수준의 성능을 입증했다. 한국어 벤치마크에서는 오픈AI를 앞서는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소형 모델 '하이퍼클로바X 시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출시 한 달 만에 30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기존 100B급 모델을 3분의 1 수준으로 경량화하면서도 성능은 개선해 운영비용을 50% 이상 절감하는 성과도 거뒀다. LG그룹은 LG AI연구원에서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중심으로 '전문가 AI'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각 산업군에 특화된 AI 전문성을 강화해 그룹 핵심 사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AI 데이터센터(DC)는 더 이상 단순한 서버 공간이 아니다.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며 24시간 가동되는 'AI 공장'에 가깝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건설과 운영을 둘러싸고 전력 확보와 지역 수용성, 인프라 투자 문제가 새로운 산업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모델 개발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 기반 확보가 필수 조건이 됐다. 이 가운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인프라 경쟁력을 앞세워 데이터센터 설비 확대와 기술 고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아마존과 공동으로 약 7조원을 투자해 울산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KT는 삼성SDS가 주도하는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으며, 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 등과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경북센터를 비롯해 목동·분당 등 전국 15개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오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파주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신설하는 한편, 기존 평촌2센터의 2·3단계 증설을 병행하며 수도권 AIDC 경쟁에 본격 가세했다. AI 확산의 또 다른 축은 전력기기 산업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스마트 제조시설이 늘어나면서 변압기, 차단기, 배전 설비 등 전력기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를 확대하며 실적 개선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24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5% 이상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 전력기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2029년까지 미국 동남부 지역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 525킬로볼트(kV) 초고압 변압기를 공급한다. 해당 설비는 인근 대형 데이터센터의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유럽 전력기기 시장에서 고압 차단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일진전기 역시 영국 데이터센터용 초고압 변압기 수주를 계기로 유럽과 중동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AI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망 고도화와 고효율 설비 투자는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전력기기 산업은 AI 시대의 조용하지만 확실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계는 제조 공장을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조선 등 전 산업군에서 AI를 생산라인에 적용하며 미래 제조 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반도체 공장을 '반도체 AI 팩토리'로 전환한다. 향후 5만개 이상의 GPU를 투입해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하고, 옴니버스 기반 디지털 트윈 제조 환경 구현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고전력 AI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로봇과 AI를 결합한 산업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사전 단계다. 조선업계 역시 AI와 로봇을 앞세운 스마트 조선소 전환 경쟁에 돌입했다. 가전 분야에서도 AI는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TV 등에 AI를 적용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에너지 소비를 자동으로 최적화하는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다. 사용자가 부재중일 때 전력을 조절하거나, 요금이 높은 시간대를 피해 작동을 분산하는 기능은 가전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가정용 전력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장 예측과 부품 수명 관리, 에너지 사용 리포트 기반의 서비스 확장 역시 AI 가전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결국 에너지와 산업 인프라를 누가 선점하느냐로 귀결된다. 반도체에서 시작해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제조와 가전으로 이어지는 AI 연관 산업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2026년,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그 AI를 움직이는 힘은 전력과 산업 기반이다. AI 시대, 에너지가 곧 경제다. 국내 기업들이 축적해온 제조 역량과 인프라 경쟁력이 AI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AI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나라도, 기업도 ‘AI 패권 경쟁’…한국 ‘3강 도약’ 사활 걸었다

새해에도 인공지능(AI) 시장은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AI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제조업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AI를 공급망 전반에 접목하기 시작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만큼 민·관·학 협력에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주요국은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기술력과 자본 측면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중국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강 도약'을 목표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지난해 기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의 AI 관련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5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아마존 한 곳의 연간 투자액만 놓고 보면 미국 전체에서 석유·가스 시추 등을 위해 쓴 에너지 섹터 총지출보다 큰 수준이다. AI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라는 거대 물리 인프라를 독점하려는 '에너지 및 영토 전쟁'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AI 연산 능력을 H100 환산 수치로 비교해 보면 미국이 약 3970만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약 510만개 수준으로 글로벌 4~5위권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다만 2024년 AI 민간 투자액 상위 10위를 국가별로 뽑았을 때 우리나라는 10위권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의 AI 민간 투자 규모가 1090억달러로 한국(13억달러)의 80배를 넘는 수준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 영국, 스웨덴, 캐나다, 프랑스, 독일, UAE,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등이 경합하고 있다. 전세계 우수 인력과 자본이 집중된 미국 실리콘밸리는 AI를 통해 재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경제연구소인 The Bay Council Economic Institute 소속 션 란돌프 시니어 디렉터는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개최한 '한-미 혁신생태계 및 AI 미래전략' 세미나에 참가해 미국의 현 상황을 전했다. 란돌프는 “2024년 전세계 벤처투자액 중 AI분야가 37%를 차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며, 특히 미국 내 AI 투자의 76%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집중됐다"며 “2024년 전세계 AI 투자 유치액 기준 상위 5위를 기록한 기업들도 모두 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등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161개사 중 64개사(40%), 펜타콘 기업(기업가치 50억달러 이상) 79개사 중 45개사(57%)가 소재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혁신생태계가 가장 잘 구축된 지역으로 꼽힌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안정적인 정책 환경에서 AI에 자본을 집중 투자해 왔다. 반면, 한국은 AI 투자 속도가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1만3000여장의 최신 그래픽장치(GPU)를 확보한 것과 달리 미국은 민간기업인 오픈AI 한 곳에서만 2024년 기준 GPU 모듈 H100를 72만장을 가동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부문은 2026년부터 AI와 제조업의 접목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인력·자본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04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말 발간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49.2%)보다는 중소기업의 활용도(4.2%)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 수준을 묻는 질문에 기업의 73.6%는 '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AI 전환 수요가 늘면서 '인재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AI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80.7%가 '없다'고 했다. 'AI 인력을 어떻게 충원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기업의 82.1%가 '충원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한국의 AI 인재가 2만1000명 수준으로 △중국 41만1000명 △인도 19만5000명 △미국 12만명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우리 정부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단 오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분야 1위 달성을 목표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최근 'AI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제조업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분야의 인공지능전환(AX)을 가속화하고 AI 전주기와 연관된 수출 확대에 힘쓴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방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국방 AX를 가속화하고, AI 기반의 K-콘텐츠 창작·제작 생태계를 활성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AI 학습에 필요한 원본 개인 정보와 저작물 활용이 권리 침해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여러 부처에 걸친 중복 사업을 효율화하고 초·중·고 학교의 연속적인 AI 필수 교육 체계를 수립하기로 했다. 나아가 'K-AI' 특화 시범도시를 단계적으로 조성하는 한편 노동, 복지, 교육, 기본 의료 등을 포함한 'AI 기본사회 추진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글로벌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 'APEC CEO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국가 차원의 AI 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AI 동맹에 따라 엔비디아는 우리나라 정부 및 4대 기업에 블랙웰 등 최신 GPU 총 26만장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전세계 국가 단위 인프라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엔비디아도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AI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당시 젠슨 황 CEO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으로부터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웨이퍼를 선물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는 “삼성의 제조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로봇 칩 생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정상회의 결과물로 채택된 'APEC AI 이니셔티브'도 눈길을 끈다. 당시 회의에서는 21개 회원국이 사상 최초로 AI 공동 비전에 합의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제조 역량과 엔비디아의 기술력이 결합된 모델이 제시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놓고 격돌하는 가운데 한국이 엔비디아와 결속을 통해 AI 중립 지대이자 핵심 거점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는 평가로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일단 한국이 AI 벤처투자 유치 세계 9위인데 글로벌 시장 비중은 1%에 그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운영하는 'AI정책저장소'(AI Policy Observatory) 자료를 보면, 지난해 1~3분기 기준 전세계에서 AI 분야에 투입된 벤처투자액은 총 1584억달러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5년 400억달러에 비해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전체 벤처투자액 중 AI 분야에 투자된 비중은 2015년 20%에서 지난해 55.7%까지 뛰었다. 생성형 AI가 본격화된 2023년을 기점으로 급증했으며, 글로벌 벤처투자의 절반이상이 AI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별로 보면 2025년 AI분야 벤처투자액 1584억달러 중 72%인 1140억달러가 미국기업에 투자됐다. 직전 2024년에 해당비중이 64.4%였는데 쏠림이 더욱 커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AI 분야 벤처투자 유치 2위 국가는 영국으로 115억달러를 기록했다. 3위는 90억달러의 중국이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5억7000달러로 9위를 기록했고, 이는 미국의 약 1.4%, 중국의 17.4% 수준에 해당한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건을 고려한 스타트업 집중 육성과 규제환경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자현 KDI 연구위원은 “AI 반도체 팹리스와 로보틱스·제조 현장에 결합된 피지컬 AI 등 우리나라가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중심으로 유망한 AI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 연구위원은 “거대언어모델(LLM) 및 AI 활용 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의 보다 과감한 선구매를 통해 기업들이 실질적인 트랙 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글로벌 대규모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선도적인 스타트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모험자본의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AI시대 기술 발전 속도에 맞는 경쟁정책 패러다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1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한국산업조직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AI·디지털 혁신과 경쟁정책' 정책심포지엄에서 정철 한경연 원장은 “AI가 산업지형을 바꾸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공정하면서도 유연한 경쟁의 새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적극 공감했다. 유민희 한경연 연구위원은 “복잡한 경쟁이슈로 인해 시장 불확실성 확대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정부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원칙으로 하되 산업계의 자율규제와 공동협약을 병행해 혁신과 공정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AI 경쟁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경쟁당국은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높여 혁신을 지원하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AI 산업의 특성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신년호]탄소로 돈 버는 시대: 2026년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 원년

21세기의 4분의 1을 뒤로 하고 새로 시작하는 2026년. 세계 경제는 '탄소'라는 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탄소가 새로운 '화폐'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무거운 짐이자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던 온실가스는 이제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직접 반영되는 비용이자 동시에 핵심 자산이 됐다. 온실가스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고 줄이느냐가 기업가치와 생존을 가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제(ETS)의 본격적인 강화, 기후테크(기후관련 기술)의 산업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탄소를 줄이면 돈이 된다'는 공식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26년은 이 거대한 탄소 경제가 제도·산업·금융 전반에서 완성형으로 진입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탄소 자본주의'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ETS의 룰이 바뀐다: 탄소, 가장 직접적인 '자산'이 되다 탄소가 가장 명확하게 '돈'으로 바뀌는 무대는 역시 ETS다. 한국은 2026년부터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진입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운영했던 제도의 골격 자체를 바꾼다. 한국은 2015년부터 ETS를 시행하고 있는데, 현재 철강·시멘트·정유·발전·화학 등 700여 개 기업이 대상이다. 그동안 한국 배출권시장은 과잉 할당 문제로 톤당 1만 원 내외의 '글로벌 최저가' 시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톤당 약 10만 원을 넘는 가격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는 실질적 감축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제4차 ETS 계획기간 동안 배출허용총량을 이전보다 22.5% 줄인 23억6299만 톤으로 설정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관계자는 “과도한 총량 설정과 무상할당 관행이 내재적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면서 “공짜 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배출권을 돈 내고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의 대폭 확대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 확대되고, 비발전 부문 역시 10%에서 15%로 상향된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누출 업종은 무상할당이 유지되지만, 판단 기준이 기존의 '비용 발생도'에서 '탄소집약도' 중심으로 정교화됐다. 새로운 탄소 감축 기술을 적용했을 때의 탄소집약도(단위 제품당 실제 배출량)를 무상할당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탄소누출 업종이란 기후 규제가 강화될 경우 생산비 상승으로 공장이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이전해 버리는 산업을 말한다. 가격 신호도 급변하고 있다. 에너지·환경 컨설팅기업인 나무이엔알(NAMU EnR)은 국내 배출권 가격이 2026년 말에는 2만8680원, 2030년에는 5만3699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 역시 “톤당 4만~5만 원은 돼야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감축 기술에 투자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는 11월 24일부터 배출권의 증권사 위탁거래가 허용되면서 시장의 성격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할당 기업뿐 아니라 은행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이 직접 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 활성화 수준을 고려해 배출권 선물시장 도입도 추진 중이다. 한편, 유상할당 수익금은 전액 기업 탈탄소 전환 지원 재원으로 투입된다. 정부는 이 재원을 활용해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도입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일정 기간 고정 탄소 가격을 보장하는 이 제도는 미래 탄소 가격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탄소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기후테크, 탄소를 줄여 '매출'로 바꾸는 산업 탄소 감축이 비용이 아니라 신규 매출로 전환되는 중심에는 기후테크 산업이 있다. 탄소 포집 이용 및 저장(CCUS), 수소,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에너지관리, 저탄소 소재는 이제 명백한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중국·유럽을 중심으로 100개 이상의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딥테크 생태계를 기반으로 핵융합, 에너지 플랫폼 등 전 분야에서 47개의 유니콘을 배출했다. 중국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거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유니콘의 70%를 차지하는 등 35개의 유니콘을 키워냈다. 미국 보스턴메탈의 경우 전기를 이용한 무탄소 제철 공정을 개발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브림스톤, 아일랜드의 에코셈은 석회석 대신 규산염을 활용해 공정에서 CO₂가 배출되는 것을 막는 시멘트를 상용화하고 있다. 캐나다 카본큐어는 콘크리트에 CO₂를 주입해 강도는 높이고 탄소는 영구 저장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저탄소 공정을 선점한 기업은 배출권 비용을 절감하면서 '그린 프리미엄' 가격까지 확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안토라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고체 탄소 열배터리로 저장해 중공업 열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스웨덴의 하트 에어로스페이스는 순수 전기 기반으로 최대 200㎞ 비행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항공기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경기도가 2030년까지 기후테크 유니콘 3개사 육성을 목표로 클러스터·펀드·센터 3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대 강용태 교수팀은 압축기 없는 냉각 기술로 냉장·냉방 전력 사용량을 최대 65% 감축하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8월 한 보고서를 통해 “빌 게이츠 등 글로벌 벤처펀드 기관들이 기후테크 육성을 통한 글로벌 탄소 중립의 미래지도를 그리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관련 스타트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테크는 향후 우리 산업구조 전환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 분야라는 것이다. ◇ 자발적 탄소시장: '감축을 팔아 돈을 벌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ETS 밖에서도 '감축 실적을 현금화하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성과를 탄소 크레딧(배출권)으로 발행해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다. 그동안 VCM은 '그린워싱' 논란으로 신뢰 위기를 겪었지만, 최근 시장은 '고품질 크레딧'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국제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위원회(ICVCM)의 핵심 탄소 원칙(CCP) 인증 크레딧은 현재 구매자의 40%가 선호하는 대표 상품이 됐다. 특히 직접 공기 포집(DAC), 바이오에너지-탄소포집저장(BECCS) 등 탄소 제거(CDR) 기반 크레딧에 대한 빅테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 '탄소 네거티브' 달성을 목표로 막대한 제거 크레딧을 선구매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출범을 준비 중이며, 거래 인프라는 한국거래소가 운영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무결성 원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내 크레딧의 국제 신뢰도를 확보할 방침이다. 이 시장은 중소기업과 농가에도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으로 얘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대한상공회의소·NH농협금융은 '농업 분야 자발적 탄소시장' 협약을 지난 9월 체결했다. 논물 관리, 저탄소 농법 등을 통해 감축한 실적이 크레딧으로 발행돼 기업에 판매되는 구조다. ◇ 기업과 개인, 탄소 감축의 '이중 수익 구조' 2026년 본격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사실상 '기후 관세'를 부과한다. EU는 철강·알루미늄 소재가 많이 사용된 완제품인 세탁기와 자동차 도어, 가스레인지, 정원 도구 등도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기업으로서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다면 수출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 감축 성과에 따라 대출금리 인하, 투자 유치 확대라는 금융 혜택을 얻겠지만, 반대로 탄소 관리가 부실하면 조달금리 상승이라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탄소는 기업 신용도의 핵심 평가 지표가 됐다. 한경협 등에서 “감축이 어려운 산업은 단기적으로 전환비용 폭탄에 직면한다"며 전환금융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편, 기후부는 '탄소중립 포인트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2026년 관련 예산이 181억 원으로 늘었다. 고품질 재활용품, 공유자전거, 베란다 태양광 설치, 나무심기 등 직접 현금성 보상이 강화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개인 전기차에도 배출권 할당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후부는 12월 초 배출권 인증위원회를 열고 전기차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에 개인이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 방법론'을 개정했다. 전기차 1대당 연간 평균 감축량은 2~3톤, 배출권 가격이 톤당 2만 원이라고 했을 때, 전기차를 모는 개인도 전문업체에 의뢰해 연간 5만원가량의 돈을 챙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 2026년, '탄소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다 이제 '탄소 경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작동하고 있고, 한국 경제도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2026년은 탄소가 회계·금융·기술·무역을 동시에 지배하는 경제 변수로 완전히 자리 잡는 해가 될 전망이다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오히려 '얼마나 정교하게 탄소를 관리했는가'로 평가받는 시대에 열린 것이다. 이제 기업에게 탄소 관리는 두 가지 의미, 즉 비용 절감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배출권을 덜 사고, 국경 탄소세를 피하며, 전력 비용과 금융 비용을 낮추는 것이 비용 절감이다. 감축 기술을 팔고, 크레딧을 발행하고, 저탄소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수익 창출이다. 이제 탄소 감축을 외면하면 세금·관세·금융비용이라는 '3중 비용'을 떠안게 되고, 반대로 적극 대응하면 배출권 수익·신산업 매출·금융 혜택이라는 복합 수익이 열린다. 이제 탄소는 불확실한 미래 변수가 아니라, 오늘의 명확한 경제 자산이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배출권 가격의 정상화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 확보 ▶전환 금융의 대규모 공급 체계 정착이 이뤄져야 한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환경경제학)는 “EU의 CBAM 시행이나 국내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 강화 등의 상황을 볼 때 기후테크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2026년은 석유화학·철강 등 경제 여건이 어려워 기업으로서는 3중, 4중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면서 “기업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기술 투자에 힘 쓰는 것이 팔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신년호] 전력 블랙홀 AI, 원전·재생에너지·수소 ‘총동원’ 필요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기술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초거대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력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AI를 두고 '전력 블랙홀'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문제는 이 블랙홀이 단순히 많은 전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365일 끊김 없는 안정적 공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 앞에서 기존 전력 정책의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확대 전략만으로는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의 질과 양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진단이 잇따른다. 이에 따라 기후에너지부를 중심으로 원전·재생에너지·수소를 모두 동원하는 '청정 전력 총공세' 전략이 신년 에너지 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은 중소 도시 하나에 맞먹는다. GPU 서버 수만 대가 상시 가동되며 만들어내는 전력 수요는 단순한 피크 부하가 아니라, 연중 지속되는 기저 수요에 가깝다.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조건은 명확하다. kWh당 100원 이하의 가격, 무정전 공급, 그리고 저탄소·무탄소 전원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할 경우, AI 기업들은 전력 조건이 유리한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은 AI 전력 확보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루며 원전과 수소,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전력 공급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본질적으로 간헐성을 가진다.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하고, 풍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급변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하더라도 대규모·장시간 저장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AI 전력의 '주력 전원'이라기보다, 확대 가능한 보완 전원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이를 받쳐줄 안정적 청정 기저전원이 없으면 AI 산업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맥락에서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대규모·저비용·무탄소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전원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원전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원전 인근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AI 시대에 특히 주목받는 대안이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입지 유연성이 높고, 장기 고정 전력 계약에 적합해 데이터센터 전용 전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수소연료전지는 분산형 전원으로서의 장점을 가진다. 도심이나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어 송전망 부담을 줄이면서도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용 연료전지가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글로벌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전과 수소연료전지는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전원"이라며 “AI 시대에는 전원 간 역할 분담이 아니라, 총동원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부 내부에서는 전력 정책의 기준을 '탈원전'이나 '재생에너지 우선'과 같은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AI 산업 대응이라는 현실적 기준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원전·수소는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역할이 다른 보완적 전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전원을 배제하는 정책은 단기적인 정치 메시지는 될 수 있어도, AI 시대 산업 전략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원 선택'이 아니라, '전원 총동원' 전략이라는 평가다. AI 전력 수요 대응은 향후 10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전문가들은 신년을 맞아 국회와 정부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력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전력 정책의 목표를 RE100을 넘어 24시간 무탄소 전력(24/7 CFE)으로 전환해야 한다. 장부상 재생에너지 사용이 아니라, 실제로 연중 모든 시간대에 무탄소 전력을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산업 정책과 전력 조달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AI·데이터센터를 위한 전용 전력 공급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장기 고정가격 청정전력 계약, 원전·수소·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전력 패키지, 데이터센터 특화 전력 시장 등 새로운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전원별 로드맵도 명확히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원전 계속운전을 통해 가용 전력을 확보하고, 중기적으로는 신규 원전과 SMR 도입을 병행하며, 장기적으로는 수소연료전지와 재생에너지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전력 거버넌스, 정치화된 전기요금 결정 구조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지적된다.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송·배전망의 중립적 운영, 시장 신호를 반영한 요금 체계 개편 없이는 AI 시대 전력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력은 이제 환경 정책을 넘어 산업 정책이자 안보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신년 국회가 전기요금 논쟁이나 단기 수급 대책을 넘어, AI 시대 국가 전력 전략을 핵심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시대의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전원을 선호하느냐가 아니라, 이 전력으로 산업을 살릴 수 있느냐다. 2026년을 앞둔 지금의 선택이, 향후 10년 한국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전력 정책의 기준을 '탈○○'이 아닌 'AI·산업 생존'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본 전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원전·수소·저탄소 가스 등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합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전문가들은 AI 전력 수요 대응이 향후 10년간 에너지 정책의 성패를 가를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 안정성, 가격 경쟁력, 탄소 감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지 못하면 AI 산업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산업이다. AI를 키우겠다면 전력 정책도 그에 맞게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청정 전력이라면 가리지 않고 활용하는 유연한 전원 믹스 전략이 신년 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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