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포트] 온난화 적응하느라 작아진 생선…인류 식탁은 텅 비어

가파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바다 물고기가 적응하느라 크기가 작아지면서 전 세계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온난화가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 연구 결과다. 폴란드 야기엘로니안대학교와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발표한 논문에서 온난화에 대한 어류의 '진화적 적응'이 오히려 전 세계 어획량 감소를 가속화한다는 점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기존 수산자원 예측 모델이 간과해온 핵심 변수로, 향후 식량 안보 논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번식하고, 더 작아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어류의 대사율이 증가하고 자연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물고기들은 생존과 번식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애 전략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구체적으로 어린 시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이른 시점에 성숙 단계에 도달한다. 문제는 성숙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성장에 쓰이던 에너지가 번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성체의 최대 몸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개체 수준에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일찍 번식하면 생존 확률이 낮은 환경에서도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어획 대상이 되는 개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체 어획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물고기가 성장보다 번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으면 바다 전체의 물고기 양, 즉 생물량(biomass)은 과거보다 줄게 된다. 어획량을 채우기 위해 남획이라도 하게 되면, 물고기 크기는 더 작아지고, 어획량은 더 줄게 된다. ◇“진화를 고려하면 어획량 감소 더 뚜렷" 연구팀은 전 세계 주요 43개 어종을 대상으로 기후 시나리오별 어획량 변화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단순히 수온 상승의 직접적 영향만 고려할 경우 어획량은 약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 어류의 진화적 적응을 포함하자 감소폭은 22%로 확대됐다. 이는 진화가 기후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손실을 약 50% 추가로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특히 온실가스 고배출 경로(시나리오, SSP3-7.0)에서는 세기말까지 어획량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대로 저배출 경로(SSP1-2.6)를 따를 경우 연간 약 1800만 톤의 어획량을 보전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어획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물고기의 크기 감소는 해양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생태계에서 포식 관계는 주로 몸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상위 포식자의 크기가 줄어들면 먹이 생물을 통제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실제로 북서대서양 스코샤붕 해역에서는 상위 포식자의 평균 크기가 약 40% 감소하자, 먹이 생물의 생물량이 300% 증가하는 현상이 관측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시 플랑크톤 구조를 변화시키며, 결국 생태계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재편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먹이였던 종이 포식자의 어린 개체를 잡아먹는 '관계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생태계는 바다가 아니라 담수(민물) 환경으로 나타났다. 민물 생태계는 해양보다 온도 상승 폭이 더 크고 변동성이 높아, 어류의 진화적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몸 크기 감소와 생태계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식탁도 직격탄… 명태·고등어·멸치 모두 영향권 이번 연구는 한국 수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시사한다. 분석 대상 43개 어종에는 한국에서 소비 비중이 높은 주요 어종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명태는 최대 체중이 약 12% 감소하고, 이에 따라 연간 약 50만 톤의 어획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외에도 고등어·멸치·갈치·참조기·대구·전갱이·꽁치·청어·가다랑어·까나리 등 한국 연근해 주요 어종 대부분이 동일한 경로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어종은 공통적으로 “더 빨리 자라지만 더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1990년대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대구(대서양대구) 어획 붕괴 사례를 중요한 교훈으로 제시한다. 당시 대구 개체군은 과도한 어획과 환경 변화로 급감했고, 이후 어획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체군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개체 수 감소가 아니라, 생태계가 '새로운 안정 상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구조가 바뀌고, 작은 개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회복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소형화 진화' 역시 이와 유사한 비가역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고기를 '진화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물고기의 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물고기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생선의 크기 변화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생태계와 식량 시스템에 보내는 구조적 경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기존 수산 관리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모델은 물고기를 '환경에 반응하지만 진화하지는 않는 존재'로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후 변화와 어획 압력이 결합해 매우 빠른 진화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화적 변수를 포함한 수산자원 모델 도입 △어획 압력의 전략적 조절 △대형 개체 보호를 통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 △생태계 기반 관리 접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후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지목된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래의 바다는 물고기가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재앙 피하려면 온실가스 배출 ‘제로’로 부족…‘마이너스’가 필요

오늘날 전 세계는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Net-zero)'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최신 과학 연구는 단순히 배출량 0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는 이미 시작된 기후 변화의 시계바늘을 멈추기에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이제는 이미 대기 중에 쌓여 있는 온실가스를 직접 흡수해 제거하는 마이너스 배출, 즉 '네거티브 배출(negative emissions)'이 필수인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멈추지 않는 기후 시계: 왜 '감축'만으로는 부족한가 인류가 오늘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중단하더라도 지구의 기온 상승과 그로 인한 피해는 즉각 멈추지 않는다. 이미 지구 대기 중에 차 있는 온실가스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기온을 계속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1월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온도가 안정화된 후에도 해수면 상승(SLR)이나 영구동토층 해빙(PFT)과 같은 '지연된 기후 영향(Time-lagged impacts)'이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에 비유한다. 이미 속도가 붙은 기후 재앙이라는 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배출 감축)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차를 재빨리 세울 수 있는 것처럼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인 네거티브 배출을 통해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직접 낮춰야만 기후재앙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넷제로 달성 이후에도 수백 년간 순배출량이 마이너스(-)가 되는 '순 네가티브 배출(Net-negative)'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아다. ◇10년 앞당겨진 데드라인과 '예방적' 탄소 가격 기후 시스템의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더 빠른 행동을 요구한다. IIASA 연구팀은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후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넷제로 달성 시점은 기존 계획보다 약 10년 정도 앞당겨진 2041년경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논문은 기후 위기를 일종의 보험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2030년 탄소 가격을 현재 예측치보다 대폭 높은 톤당 425달러 수준으로 인상하는 '예방적 프리미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탄소 제거 기술(CDR)의 조기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에 아주 높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막대한 복구 비용을 현재 세대가 분담하는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법적 의무가 된 기후 보호와 국가 간 형평성 네거티브 배출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를 넘어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변화협약 가입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기후 시스템을 보호해야 할 구속력 있는 의무가 있고, 상당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권고 의견을 냈다. IIASA 연구팀은 이러한 법적 판단이 결국 국가 간에 '탄소 제거 의무(carbon removal obligations)'를 공정하게 분담하는 제도적 설계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각 국가의 역사적 배출 책임과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정치적 주기와 상관없이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강력한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탄소 제거 기술'의 두 얼굴: 자원 고갈과 환경 영향 하지만 네거티브 배출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이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 칸타브리아 대학교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연구팀은 이달 초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0'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탄소 제거 기술의 잠재적 부작용을 경고했다. 직접공기포집(DACCS)과 같은 화학적 제거 기술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위해 니켈(Ni)과 바륨(Ba) 같은 핵심 광물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자원 공급망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또한 생물학적 제거 기술(BECCS)이나 바이오차(Biochar)의 경우, 대규모 경작에 필요한 칼륨(K) 등의 비료 자원 수요를 최대 70%까지 높여 식량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조림(Forestation) 역시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 증가를 낳게 되고, 저장된 탄소가 다시 배출될 위험이 크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기후 안정을 위한 정책 제안 전문가들은 탄소 제거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네거티브 배출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배출돼 대기에 있는 온실가스를 제거하기에 앞서 배출 자체를 미리 줄이는 데 우선을 둬야 한다. 둘째, 지역적 특성에 맞는 최적의 기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특정 기술의 독점을 피하고 토지, 물, 광물 자원의 가용성을 고려하여 환경 영향을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자원 순환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 탄소 제거 설비에 필요한 금속 자원의 재활용률을 극대화하고, 폐기물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사용하여 자원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결국 네거티브 배출은 인류가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인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공사장 터파기 때 나온 흙도 온실가스 배출원”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굴착 토양이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않았던 새로운 탄소 배출원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하철·하수관·건물 공사장에서 터파기로 파낸 흙이 지표면에 쌓여 있을 경우 토양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굴착 토양을 일종의 숯인 바이오차(biochar)와 혼합한 뒤 깊게 매립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경희대학교 응용환경공학과 유가영 교수 연구팀은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굴착 토양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CO2)와 메탄(CH4) 배출을 실측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관리 방안까지 제시하는 내용의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바이오차'에 발표했다. ◇도시 굴착 토양이 새로운 탄소 배출원 연구팀이 국내 재개발 지역에서 굴착 토양을 조사한 결과, 지표면에 노출된 굴착 토양은 연간 헥타르(㏊)당 약 12.78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이산화탄소이고, 일부는 메탄이었다. 굴착 과정에서 토양이 뒤집히면 공기 접촉이 늘어나고 온도가 상승해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 결과 토양 속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나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특히 메탄은 배출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이산화탄소의 20배 이상으로 매우 높기 때문에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굴착 토양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기후 영향 가운데 약 15~22%는 메탄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기후 변화 추세가 계속되면 이러한 배출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폭염은 미생물 활동을 증가시켜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리고, 장마나 집중호우 때는 토양을 혐기성 상태로 만들어 메탄 발생을 촉진한다. 즉 굴착 토양은 기후 변화와 상호작용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깊은 매립'이 토양 탄소 분해를 억제 연구진이 제안한 첫 번째 해결책은 굴착 토양을 깊게 매립하는 토양 캡핑(soil capping) 방식이다. 이는 탄소가 풍부한 굴착 토양을 지표면 아래에 묻고 그 위를 탄소 함량이 낮은 토양으로 덮어 외부 환경과의 접촉을 줄이는 방법이다. 토양이 깊은 곳에 매립되면 온도가 낮아지고 산소 공급이 줄어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 활동이 크게 둔화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굴착 토양을 40~60㎝ 깊이에 매립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이 약 4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깊은 토양층은 집중호우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수분 포화 상태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메탄 발생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 때문에 메탄 배출 역시 상당 부분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차, 토양 속 '탄소 저장 물질' 연구팀이 제시한 두 번째 핵심 전략은 바이오차의 활용이다. 바이오차는 나무나 농업 부산물과 같은 바이오매스를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온으로 열분해해 일종의 숯과 같은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휘발성 물질이 제거되고 탄소 중심의 안정적인 구조가 형성된다. 바이오차의 가장 큰 특징은 탄소 안정성이다. 토양에 투입된 바이오차는 분해 속도가 매우 느려 장기간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국제 연구에서는 토양에 투입된 바이오차의 탄소가 100년 후에도 약 89%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땅속에 기체 상태로 이산화탄소를 묻는 탄소 포집 저장(CCS) 방식보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도 있다. 또한 바이오차는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어 토양 물리성을 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실험 결과 굴착 토양에 약 2% 비율로 바이오차를 혼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은 약 8.9%, 메탄 배출은 약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방법을 함께 적용하면 효과 극대화 연구팀은 깊은 매립과 바이오차 혼합을 동시에 적용할 경우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굴착 토양을 바이오차와 혼합한 뒤 40~60㎝ 깊이로 매립하면 지표면에 그대로 노출했을 때와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은 42.5% 감소하고 메탄 배출은 95.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탄소 감축 효과의 대부분은 바이오차 자체가 토양 속에 장기간 저장되면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탄소 격리 효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는 특히 도시 기반시설 공사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노후 하수관 교체나 지하 인프라 설치 과정에서는 땅을 굴착한 뒤 다시 메우는 과정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는 굴착한 흙을 그대로 되메우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흙에 바이오차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되메우는 방식이 훨씬 큰 탄소 격리 효과를 낼 수 있다. 단순히 흙만 다시 메울 경우에도 깊은 매립 효과로 일정한 배출 감소가 가능하지만, 바이오차를 함께 사용할 경우 토양 자체가 장기간 탄소를 저장하는 도시형 탄소 저장소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굴착 토양을 단순한 건설 부산물로 처리하기보다 탄소 관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규모에서도 큰 감축 잠재력 연구팀은 이러한 관리 방식을 국가 규모로 확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방치된 굴착 토양에서 약 14만톤의 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만약 이 기간 동안 발생한 굴착 토양에 바이오차 혼합과 깊은 매립을 적용했다면 총 384만톤의 탄소 감축 및 격리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폐기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감축된 384톤의 대부분인 약 378만톤은 바이오차를 매립하면서 얻는 탄소 격리 저장 효과였고, 나머지는 토양 배출 감소 효과였다. 바이오차를 별도로 땅에 매립할 경우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하수관 재정비처럼 어차피 땅을 굴착해야 할 경우에는 파낸 흙 대신 바이오차를 섞어 저장하면 이산화탄소 격리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화재 위험 없는 ‘바나듐 흐름 배터리’ 차세대 전력망 핵심으로 떠올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일 이호현 제2차관이 에이치투(H2) 사업장을 방문해 비(非)리튬계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H2는 바나듐 흐름전지 전문 기업이다. 덕분에 바나듐 흐름 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바나듐 배터리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10시간 이상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LDES)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나듐 흐름 배터리, 즉 바나듐 레독스 흐름 배터리(VRFB)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와 화재 위험 최소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일까. ◇바나듐 이온의 다양한 산화-환원 상태 VRFB는 전해질 내 바나듐 이온의 가역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지난해 9월 '넥스트 리서치(Next Research)' 저널에 발표된 이란 과학기술대학교(IU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의 리뷰 논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양극 전해질의 4가와 5가 바나듐 이온 쌍, 즉 V(IV)/V(V)과 음극 전해질의 2가와 3가 바나늄 이온쌍, 즉 V(II)/V(III)이 각각 다른 산화 상태 사이를 이동하며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가역적으로 변환한다. 노르웨이 연구팀은 지난달 '저널 오브 파워 소스(Journal of Power 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VRFB의 작동 원리를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외부 탱크에 저장된 액체 전해질이 펌프에 의해 셀 스택(cell stack, 배터리에서 실제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반응 장치)으로 순환하게 된다. 셀 스택에서는 전해질이 전극과 접촉해 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이온 선택성 막(Nafion 등)이 두 전해질의 혼합을 막으면서 특정 이온만 통과시켜 전하 균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전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바나듐 배터리의 최대 강점은 압도적인 안전성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유기 용매 기반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및 열폭주 위험이 상존하지만, 바나듐 기반 전해질은 가혹한 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서도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바나듐 배터리는 물 기반의 비연소성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및 폭발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나듐 배터리의 수계 전해질은 비열이 매우 높고 에너지 방출이 제한적이어서 리튬 배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명적인 시스템 실패 위험이 거의 없다. 수계 전해질의 사용이 전압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은 있으나, 화재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한다. 여기에다 VRFB는 전력을 담당하는 셀 스택과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질 탱크가 분리된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핵심 부품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를 줄여 장기간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낮춘다. 과충전 시 가스 발생 등의 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즉각적인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적절한 전압 제어 및 관리 전략을 통해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25~30년 이상 장기 운전도 가능 VRFB는 양극과 음극 모두 동일한 바나듐 원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해질이 섞여도 용량이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교차 오염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바나듐 배터리는 장기 수명과 경제적인 확장성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기후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배터리는 2만 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할 수 있어 25~30년 이상 장기 운전이 가능해 리튬 배터리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출력(Power)과 에너지 용량(Energy)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셀 스택의 크기와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액 탱크의 크기를 분리할 수 있어 단순히 탱크 용량과 전해액 양만 늘리는 것만으로도 대규모 저장 용량을 매우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부는 이러한 장점을 기반으로 바나듐 배터리 등 비(非)리튬계 에너지저장 기술의 빠른 개발과 보급을 지원해 국가 전력망을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호현 차관은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이 되기 위해 장주기 ESS 구축이 관건"이라며 “비(非)리튬계 ESS 기술이 우리 전력망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의 중요한 실적(트랙레코드)이 될 수 있도록 시범 사업 지원과 기술 개발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中 다롄엔 100~400MWh 규모로 운영 중 한편,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VRFB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바나듐 흐름 배터리 시설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9월부터 1단계 100~400MWh 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향후 200~800MWh까지 확대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북부 풍력 지역에서는 풍력 발전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흐름 배터리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영국과 호주에서도 장주기 ESS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계속될 경우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수천 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대기 중 CO2 증가, 혈액 성분 바꿔 신장결석 초래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의 급격한 상승이 인류의 혈액 화학 성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고,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약 50년 이내에 인체의 생리적 조절 능력이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개별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건강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온실가스 증가가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 그리고 미래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현세대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호주 커틴대학교의 알렉산더 N. 라콤 교수와 호주 국립대학교의 필 N. 비어워스 박사가 공동으로 수행했고, 최근 국제학술지 '대기질, 대기, 건강(Air Quality, Atmosphere & Health)'에 게재됐다. ◇이산화탄소가 늘자, 혈액 속 중탄산염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 수집된 미국 국가 건강 및 영양 조사(NHANES) 자료를 활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인간의 혈액 성분 변화와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 환경 변화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혈액 화학 조성의 장기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 분석 결과, 미국 성인의 평균 혈중 중탄산염(HCO₃⁻) 농도는 1999~2000년 약 23.8 mEq/L에서 2019~2020년 약 25.3 mEq/L로 약 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mEq/L는 혈액 1 L당 이온이 몇 밀리 당량(mili-equivalent) 들어있느냐를 나타내는 단위다. 혈액 속 이온이 '얼마나 강하게 생리 작용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산–염기 균형과 전해질 조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지표다. 연구진은 중탄산염 농도 상승을 인체가 점점 더 산성화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완충 물질을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인체가 흡입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증가하고, 이는 혈액 내 이산화탄소 부하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인체는 혈액의 산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장을 중심으로 한 보상 기전을 작동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 혈중 중탄산염이다. ◇뼈에서 빠져나오는 칼슘과 인, '조용한 대가' 문제는 이러한 보상 과정이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 흡수로 인해 혈액의 산성도가 높아질수록 인체는 이를 중화하기 위해 뼈에 저장된 칼슘과 인산염을 혈액으로 끌어오게 된다. 연구 결과, 같은 기간 동안 혈중 칼슘 농도는 약 2%, 인 농도는 약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영양 섭취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기 환경 변화가 장기간 누적될 경우 인체 내부에서 뼈 대사와 무기질 균형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혈액과 장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면 1000ppm 미만의 비교적 낮은 농도에서도 집중력 저하, 의사 결정 능력 감소, 학습 효율 저하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이는 실내 환경에서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을 위험 신호로 감지하도록 설계돼 있어 농도가 높아질수록 불안 반응과 공황 반응이 촉진될 수 있다.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사회에서는 인구 전체의 불안 수준이 만성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2070년대, 인체 보상 능력의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의 증가 추세가 유지될 경우 2070년대 중반에는 평균 혈중 중탄산염 농도가 정상 상한선으로 여겨지는 30 mEq/L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람의 몸은 더 이상 산-염기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대사성 산증과 유사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 경우 수소 이온을 대신해 칼슘 이온이 과도하게 동원되는데, 이 칼슘이 탄산염 형태로 신장이나 혈관 벽에 달라붙어 신장 결석이나 혈관 석회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조직 석회화가 관찰된 동물 실험 결과들을 함께 제시하면서 인간에게도 장기적 노출 시 유사한 부담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장 결석은 지난 수십 년간 증가 추세를 보여왔고, 특히 기존 위험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구집단에서도 증가가 관찰되고 있다. 현재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신장 결석 증가의 직접 원인임을 입증한 단일 연구는 없지만, 생물학적 개연성과 역학적 추세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누적될 경우 신장 결석이 특정 생활습관병이 아니라 환경 노출과 연관된 보편적 건강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혈액 속에서 진행 중" 이번 연구는 기후 위기가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재 세대의 혈액과 신체 내부에서 진행 중인 변화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인류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혈액 화학 성분이 변화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체 항상성(일정한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는 눈에 띄는 증상 없이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건강 부담으로 축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맑으면 햇빛으로, 비 오면 빗방울로…‘전천후 발전’ 태양광 패널

맑은 날에는 태양빛으로, 비가 오는 날에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힘으로 전기를 만든다면…. 여기에다 흐린 날에도 발전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말 그대로 전천후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 패널이 되는 셈이다. 날씨에 따라 출력이 크게 흔들렸던 기존 태양광의 약점을 보완하는 하이브리드 에너지 기술이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 산하 세비야 재료과학연구소와 세비야 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최근 태양광과 빗물을 동시에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발전 소자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에너지 소재 분야의 대표 학술지인 '나노 에너지(Nano Energy)' 저널에 게재됐다. ◇태양전지 위에 '빗방울 발전기'를 얹은 구조 이 발전 설비는 태양빛을 전기로 바꾸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PSC) 위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생기는 마찰과 정전기 현상으로 전기를 만드는 액적 기반 마찰전기 나노발전기(D-TENG)를 결합한 구조다. 하나의 '패널'이 두 가지 발전 방식을 동시에 수행하는 셈이다. 태양광 발전은 전지 내부의 흡수층이 빛을 받아 전자를 이동시키는 광전 효과를 이용한다. 반면 빗방울 발전은 빗방울이 표면에 닿고 퍼졌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전하가 분리되고, 이때 생기는 전위차를 전기로 끌어낸다. 연구팀은 두 장치가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투명 전극(FTO)을 태양전지의 전극이자 빗방울 발전기의 하부 전극으로 공유하도록 설계했다. 연구팀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CFx 박막이다. CFx 박막은 불소(F)가 풍부한 고분자 물질로, 테플론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 물을 거의 튕겨내다시피 하는 강한 소수성(hydrophobic)을 띠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박막은 플라즈마 화학 기상 증착법(PECVD)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기체 상태의 재료를 플라즈마로 활성화해 아주 얇고 균일한 막으로 표면에 입히는 기술이다. 상온에서, 액체 용매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열과 화학물질에 약한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CFx 박막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첫째, 태양전지를 수분과 산소로부터 보호하는 봉지재(encapsulation) 역할이다. 봉지재란 태양전지의 핵심 재료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감싸 보호하는 일종의 방수·방습 보호막을 뜻한다. 둘째, 이 박막은 빗방울이 닿을 때 마찰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층으로도 작동한다. 보호막이 곧 발전 장치가 되는 셈이다. ◇비 오는 날뿐 아니라, 흐린 날에도 발전은 계속된다 이 하이브리드 설비의 강점은 비 오는 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 흐린 날에도 발전은 이어진다. 그 이유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perovskite solar cell)가 약한 빛과 확산광에 특히 강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흐린 날에는 직사광선은 줄어들지만, 구름에 의해 산란된 빛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이런 조건에서 출력이 크게 떨어지는 반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상대적으로 효율 저하가 적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후계자'로 자주 언급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물질군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빛을 매우 잘 흡수하고 전하 이동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이 덕분에 얇은 두께로도 높은 발전 효율을 낼 수 있고, 제조 공정이 비교적 단순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또한 유연한 기판에도 만들 수 있어, 창문이나 건물 외벽, 이동형 전자기기 등에 적용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결정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물과 습기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수분이 스며들면 결정 구조가 빠르게 무너져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로 '내구성' 문제가 지적돼 왔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된 태양전지는 낮은 조도에서도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흐린 날이나 비가 오기 직전처럼 빛이 약한 조건에서도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즉, 맑은 날에는 태양광, 비 오는 날에는 태양광과 빗방울, 흐린 날에는 확산광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으로 에너지 공백 구간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빗방울 발전은 순간적으로 높은 전압을 만들어내지만 전류가 작고 신호가 불규칙하다. 이를 그대로는 전자기기에 쓰기 어렵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스트 컨버터를 결합했다. 부스트 컨버터는 낮고 들쭉날쭉한 전압을 끌어올려, LED(발광다이오드)나 센서 같은 전자기기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으로 바꿔주는 장치다. 이 회로를 통해 연구진은 하이브리드 소자로 LED 어레이를 성공적으로 점등시켰다. 이는 이 기술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저전력 기기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맑은 날에도 발전 효율 저하 없어 이 같은 하이브리드 구조에 대해 중요한 질문은 “이중 구조 때문에 맑은 날 태양광 효율이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것이다. 우려와 달리 실험 결과는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CFx 박막을 적용한 뒤에도 태양전지 효율은 약 16.4~17.9%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보호막을 적용하지 않은 일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약 16.9~17.1%)과 거의 차이가 없다. 조건에 따라서는 미세한 효율 향상도 관측됐다. 즉, 맑은 날 발전 성능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비와 흐린 날까지 발전 시간을 확장한 셈이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연구진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이미 낮은 제조 비용과 대(大)면적 발전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추가되는 CFx 박막은 매우 얇고 공정이 단순해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무엇보다 장점은 발전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맑은 날에만 의존하던 태양광과 달리, 흐린 날과 비 오는 날에도 일정 수준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면, 단위 면적당 연간 발전량은 분명히 증가한다. 이는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은 센서, 사물인터넷(IoT) 기기, 스마트 인프라처럼 항상 소량의 전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특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태양광의 약점이었던 '날씨 의존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태양전지의 최대 적이었던 물과 습기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차세대 분산형·지속가능 에너지 시스템의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턱없이 낮은 韓 탄소가격, 그러다 좌초자산 쇼크 맞는다”

한국 경제가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을 상대적으로 늦추면서 단기적인 비용 부담은 피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미래에 훨씬 더 급격하고 파괴적인 '좌초 자산(stranded assets)'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지금의 정책적 완만함이 오히려 산업 구조를 낡은 기술에 고착시키고, 향후 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대규모 자산 가치 붕괴와 지역 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경고는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비즈니스개발·기술학과 교수이자 영국 서섹스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의 과학정책 부문 연구원인 아바스 압둘라피우 박사가 내놓았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국제 기후·에너지 전환 정책과 탈탄소화 전략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계 연구자로, 학제간 접근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경제·기술 측면을 분석해 온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연구 및 사회과학 (Energy Research & Social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과 유럽연합(EU)·미국·일본·캐나다·호주 등 주요 6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탈탄소화 과정에서 산업별 좌초 자산 위험을 비교·분석했다. 좌초 자산이란 기후 규제 강화와 기술 혁신, 시장 수요 변화 등으로 인해 설비나 인프라가 예상 수명보다 훨씬 이르게 경제적 가치를 상실하는 자본 투자를 의미한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논문에서 탈탄소화가 가속될수록 이러한 자산이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급격히 가치가 붕괴되는 '비선형적 위험'에 노출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산업의 구조적 위험: '기술적 고착'과 '지연된 전환의 역설' 논문이 한국 경제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목한 것은 단순히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사실이 아니다. 핵심은 정책 강도가 낮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산업 전반에 '기술적 고착(technological lock-in)'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호주는 EU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만한 탄소 규제 환경을 유지해 왔다. 논문은 한국의 탄소가격 수준을 국제 비교 기준으로 톤당 약 30~35달러 수준으로 설정하고 분석했는데, 이는 EU(약 80달러 이상)나 미국(약 60달러 내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로 인해 한국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규제 비용 부담을 덜고, 기존 설비를 더 오래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로 이 지점이 한국 산업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규제가 느슨할수록 기업은 조기 전환을 미루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본이 탄소 집약적 기술에 추가로 묶이게 된다. 이는 미래의 규제 강화 국면에서 자산 가치가 한꺼번에 붕괴되는 '집중형 충격'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완만한 현재(shallow now)가 급격한 미래(steep later)를 만든다"는 구조적 역설로 설명한다. 전환을 미룰수록 조정 비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며, 어느 순간 더 이상 분산시킬 수 없는 형태로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철강·정유·화학 산업, '완만한 쇠퇴'가 아닌 '급락 시나리오' 논문이 지목한 한국의 고위험 산업은 철강·정유·석유화학 부문이다. 한국 철강 산업의 경우 일부 노후 고로와 평로 설비가 탄소 가격이 상승할수록 운영 비용과 유지보수 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설비의 조기 폐쇄 또는 대규모 감가상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정유·화학 산업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이들 산업은 화석연료 기반 원료와 공정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데다 전동화나 저탄소 원료로의 전환에는 막대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 논문은 한국의 경우 이러한 전환이 지연될수록 기술 전환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급격한 단절'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즉, 경쟁력은 서서히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좌초 자산 문제가 단순히 기업 회계상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강·정유·발전 설비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단일 공장의 폐쇄가 지역 전체의 고용과 소득 구조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개의 대형 산업 시설이 폐쇄되면 협력업체와 지역 서비스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수백 가구의 생계가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탈탄소화 지연은 결국 충격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과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해법은 '속도 논쟁'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 논문이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히 “더 빨리 탈탄소화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핵심은 예측 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정책 신호다. 첫째, 정부는 탄소가격 경로, 성능 기준, 기술 전환 의무 등에 대해 일관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기업과 투자자가 자산 수명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좌초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둘째,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노후 설비의 저탄소 개조, 관리된 폐쇄, 신기술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저금리 융자와 공공 보증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 화학 공정 전동화처럼 초기 자본 부담이 큰 분야에서는 금융 접근성이 전환 속도를 좌우한다. 셋째, 수소·재생에너지·탄소 포집 및 저장(CCUS) 등 인프라 준비성 없이는 기술 전환도 불가능하다.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을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노동자 재교육, 사회 안전망 강화, 산업 의존 지역의 경제 다변화 없이는 탈탄소 정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압둘라피우 박사는 논문에서 “탈탄소화를 늦춘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비용은 단지 미래로 떠넘길 뿐이며, 그 형태는 더 급격하고 더 불평등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낮은 탄소가격이 주는 안도감'이 아니라 충격을 관리 가능한 경로로 분산시키는 예측 가능한 전환 전략이라는 주문이다. ◇EU는 자초 자산이 관리 가능한 수준 EU는 높은 탄소가격과 엄격한 규제로 인해 단기적인 좌초 자산 부담은 크지만, 산업 전반에서 조기 전환이 진행되고 있어 장기적 자산 붕괴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평가된다. 즉, 충격은 분산되어 나타나며 '관리 가능한 좌초(managed stranding)' 경로에 가깝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탄소가격은 제한적이지만, 주(州) 단위 규제와 보조금 중심 정책으로 산업 탈탄소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좌초 자산 위험은 산업·지역별로 불균등하게 분포하며, 일부 화석연료 집약 산업은 여전히 높은 노출도를 보인다. 호주는 한국과 유사하게 정책 강도가 낮아 단기적 비용 부담은 작지만, 그만큼 기술적 고착과 지연된 전환 위험이 크다고 평가된다. 특히 자원·에너지 집약 산업에서 미래 규제 강화 시 급격한 자산 가치 하락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점진적 기술 전환이 진행되고 있으나, 화석연료 기반 산업 구조가 여전히 강해 좌초 자산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정책 신호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캐나다는 명시적인 탄소가격 제도를 통해 장기적 전환 신호를 제공하고 있지만, 자원 채굴 및 에너지 산업 비중이 커 산업별 위험 격차가 크다. 전반적으로는 단기 충격은 있으나 장기적 구조조정은 비교적 질서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ETS 시장가격과 정책·분석용 탄소가격의 중요한 차이 압둘라피우 박사 논문에서 한국의 탄소가격을 톤당 약 30~35달러 수준으로 설정했는데, 현재 한국 배출권 거래제(ETS)에서 형성되는 실제 배출권 시장가격은 톤당 약 1만 원대 중반,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10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EU ETS나 북미 시장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논문에서 사용한 톤당 30~35달러 수준의 탄소가격은 실제 거래 가격이 아니라 정책 분석에서 흔히 사용되는 '암묵적 탄소가격(implicit carbon price)', 혹은 각국의 규제 강도, 보조금, 기준 등을 종합해 환산한 '정책적 유효 탄소가격', 또는 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장기 기대 탄소가격'에 가깝다. 즉, 시장에 형성된 가격이 아니라, '정책이 신뢰될 경우 기업이 직면하게 될 비용 수준'을 가정한 분석용 지표다. 이처럼 한국의 ETS 시장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은 단기 비용 부담이 작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탄소가격 신호가 산업 투자 결정에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지금은 싸다"는 신호에 반응해 기존 설비를 유지·연장하지만, 정책이 강화되거나 ETS 설계가 바뀌는 순간 낮은 가격은 더 이상 완충장치가 되지 못하고 충격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기온 오르니 男兒 출생률 감소…“기후변화, 미래 인구구조 영향”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폭염과 가뭄, 홍수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출생 성비(性比)라는 인구학적 지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너필드 칼리지와 레버흄 인구과학센터 등 국제연구팀은 기온 상승이 출생 시 성비(sex ratio at birth, SRB)를 체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3개국과 인도의 출생자료 500만 건 이상을 고해상도 기온 데이터와 결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임신 기간 중 일(日)최고기온이 20°C를 넘는 날이 늘어날수록 남아 출생 비중이 감소하는 일관된 경향이 확인됐다. ◇같은 폭염, 다른 메커니즘 흥미로운 점은 성비 변화의 원인이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임신 초기(제1분기, 제12주차까지)의 고온 노출이 남아 출생률 감소와 가장 강하게 연결됐다. 일최고기온이 20~25°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0.022%p 감소했고,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0.023%p 감소했다. 임신 1분기 동안 30°C 이상의 날이 1표준편차(SD, 약 34.8일)만큼 증가하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54명에서 101.08명으로, 남아 수가 약 2.47명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는 남아 태아가 환경적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는 이른바 '취약한 남아(frail male)' 가설을 뒷받침한다. 폭염은 임산부의 체온 조절, 수분 균형, 태반 혈류에 부담을 주고,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으로 더 약한 남아 태아의 자연유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인도에서는 전혀 다른 경로가 작동했다. 인도에서는 임신 중기(제2분기, 13~27주차)의 고온 노출이 남아 비중 감소와 연결됐다. 임신 제2분기에서 25~30°C인 날이 1표준편차(SD, 약 19.3일) 증가할 때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약 1.15명 감소(109.95명 → 108.81명)했다. 제3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출생 확률이 0.015%p 감소했다. 특히 출산 2개월 전(임신 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되면 남아 확률이 0.037%p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생물학적 유산보다는 행동 변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인도 사회에는 오랫동안 남아 선호와 여아 선택적 낙태라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해 왔다. 그런데 폭염이 심해지면 소득이 줄고 이동이 어려워진다. 의료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평소에는 이루어지던 여아 선택적 낙태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고, 통계적으로는 남아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폭염은 인도에서 역설적으로 성차별적 관행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산모의 교육 수준에 따라 영향 더 커 기온 상승이 출생 성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농촌 지역 거주자, 교육 수준이 낮은 산모, 넷째 이상 다자녀 임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후 충격이 사회적 취약성과 겹치며 증폭된 것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거나 초등 교육만 받은 산모의 경우, 제1분기에 25~30°C인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확률이 0.031%p 감소했다. 중등 교육 이상 산모에게선 영향이 없었다. 또, 넷째 아이 이상의 다자녀 임신에서 30°C 이상의 날이 1표준편차 증가할 때 남아 출생 확률은 1.28%p나 크게 감소했다. 인도에서는 30세 이상 산모가 임신 중기(제2분기)에 20°C 이상의 고온에 노출될 경우, 남아 확률은 하루당 0.056%p에서 최대 0.099%p까지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남아 선호도가 강한 북부 지역에서 아들이 없는 상태로 넷째 이상을 임신한 경우, 제2분기에 25~30°C 날이 하루 추가될 때 남아 확률이 0.183%p 감소했다. 이를 1표준편차 증가로 환산하면 남아 출생 확률이 2.77%p나 줄어드는 매우 강력한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수치는 폭염이 임산부의 생물학적 스트레스를 높여 남아의 자연 유산을 유발하거나(아프리카), 경제적·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여아 선택적 낙태를 줄임으로써(인도) 성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입증했다. ◇온대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연구는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성비 변화는 특정 문화권이나 개발도상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과거 문헌을 인용, 북반구의 온대·고소득 국가들에서도 기온 변동이 성비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이미 보고돼 왔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는 성비 변화가 지역이나 기후대보다 '절대 기온이 특정 임계치(약 20°C)를 넘느냐'에 따라 반응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시원했던 온대 지역이 기후 변화로 이 임계치를 넘게 될 경우 향후 출생 성비와 인구 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기온 상승이 단순히 더위를 견디는 문제를 넘어 태아의 생존 가능성, 부모의 출산 선택, 성차별적 관행,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과 결혼 구조까지 수십 년 뒤 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자연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연구는 폭염이 인간의 생물학과 사회적 선택을 동시에 흔들며, 인구 구성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출생 성비라는 지표는 기후 위기의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풍력·파력 동시 수확하는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주목’

기후 위기가 깊어지고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해상 재생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 전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해상 풍력에 파력(波力)과 조류(潮流) 에너지를 결합한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 시스템(hybrid offshore renewable energy harvest system, HOREHS)은 단일 에너지원의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해양 에너지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력 발전은 파도의 상하·전후 운동에 담긴 에너지를 기계적 운동으로 변환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파도의 불규칙성으로 인해 제어와 내구성이 기술적 과제로 남아 있다. 조류 발전은 밀물과 썰물로 발생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터빈으로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조류 주기가 규칙적이어서 발전 예측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 서리대학교 공학부와 중국 광저우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 보존과 관리 (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에 발표한 종설 논문을 통해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 시스템의 기술적 진화와 남은 과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풍력과 파력, 나아가 조류 에너지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적으로 수확하는 접근이 기술·경제·환경 측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리드 해상 발전의 핵심 이점 ① 비용 절감과 경제성 향상 =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은 기초 구조물과 플랫폼의 공유다. 풍력 터빈과 파력·조류 발전 장치가 동일한 기초를 사용함으로써 개별 설치 대비 초기 투자비용(CAPEX)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해저 케이블과 계통 연계 설비를 공동으로 활용해 에너지 균등화 비용(LCOE)도 낮출 수 있다. ② 에너지 생산의 안정성 = 풍력과 파력, 조류 에너지는 시간적 특성이 서로 다르다. 바람이 약한 조건에서도 파랑이나 조류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복수의 에너지원 결합은 발전량의 변동성을 줄이고 전력망에 보다 안정적인 출력을 제공한다. ③ 해양 공간 효율성과 환경 영향 저감 = 단일 플랫폼에 여러 발전 장치를 통합하면 해양 점유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항로·어업 활동과의 공간적 충돌을 완화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④ 구조적 안정성 증대 = 특히 파력 발전 장치(WEC)를 부유식 해상 풍력 플랫폼에 통합할 경우, 파력 장치의 운동이 플랫폼의 피치(pitch)나 히브(heave) 운동을 억제하는 동적 댐퍼 역할을 수행한다. 수치해석과 실험 결과, 이는 풍력 터빈의 피로 하중을 줄이고 구조물 수명을 연장하는 부수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의 기술적 돌파구 파력 발전의 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성과도 주목된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이이다 타카히토 교수는 최근 '유체역학 저널(Journal of Fluid Mechanics)'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이로스코프 파력 발전기(GWEC)가 광대역 파랑 주파수에서 이론적 최대 흡수 한계인 입사 에너지의 50%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선형 이론으로 증명했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하는 물체가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자신의 회전축 방향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이용해, 방향 변화나 기울기를 감지하고 안정화에 활용되는 장치이다. GWEC는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해상 구조물의 움직임을 내부 자이로스코프의 세차 운동으로 전환하고, 이 회전 에너지를 발전기에 전달해 전기를 생산하는 파력 발전 장치이다. GWEC는 플라이휠 회전 속도라는 추가 제어 변수를 활용함으로써, 특정 공진 주파수에만 의존하던 기존 파력 발전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부유체를 비대칭 구조로 설계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더 높은 에너지 흡수 가능성도 제시된다. ◇풍력과 조류 에너지의 결합이 만드는 시너지 풍력과 조류 에너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역시 뚜렷한 장점을 보인다. 조류 터빈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예측 가능성이 커, 풍력의 간헐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풍력 터빈과 조류 터빈이 동일 기초를 공유할 경우, 전체 발전량은 조류 단독 시스템 대비 약 70% 증가하고, LCOE는 10~12%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조류 터빈은 플랫폼 운동을 억제해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전문가들은 해상 하이브리드 발전이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해상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과 결합될 경우 진정한 '해상 에너지 허브'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풍력·파력·조류라는 복수의 해양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향후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해양이 수행할 역할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한반도 해역의 파력 잠재량과 하이브리드 발전의 현실성 해상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 실제 해역 조건에 대한 정량적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 연구진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파력 에너지 분포를 고해상도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한양대 정재홍 교수팀은 '확률적 환경 연구와 리스크 평가(Stochastic Environmental Research and Risk Assess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치 파랑 모형과 장기 해상 관측 자료를 결합해 한반도 전 해역의 파력 밀도(spatial wave power density)를 체계적으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동해 외해와 제주 남방 해역이 연중 평균 파력 에너지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단위 길이당 수십 kW/m 수준의 파력 잠재량이 형성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해역 특성이 부유식 해상 풍력과 파력 발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특히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바람과 파랑이 동시에 강해지는 계절적 특성이 뚜렷해, 단일 에너지원 대비 발전량 변동성이 줄어들고 설비 이용률(capacity factor)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유럽 연구진이 제시한 풍력–파력 상보성 이론이 동북아 해역에서도 실증적으로 적용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숲 생태계 변했다…꽃은 더 일찍, 단풍은 더디게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산림 생태계의 계절적 리듬이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와 국립수목원 김동학 박사 등 연구팀은 2009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산림의 낙엽활엽수의 계절 지표 관측 자료를 분석해 한국기상학회 학술지인 '대기(Atmosphere)'에 최근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수목원이 전국 10개 수목원을 통해 체계적으로 수집한 장기 모니터링 자료를 바탕을 두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현재 256종의 식물을 대상으로 잎눈파열과 개화, 단풍, 낙엽 등 총 13개의 식물계절 지표를 7~10일 간격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중 낙엽활엽수 20종을 골라 기후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잎눈파열, 개화시작, 개엽시작, 단풍 절정(90~100%) 등 4가지 주요 지표를 핵심적으로 분석했다. 잎눈파열은 눈 안에서 어린 잎이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이며, 개엽은 적어도 세 개의 다른 가지에서 잎자루나 펼쳐진 잎이 보일 때를 의미한다. 연구팀이 지난 16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산림의 생장 기간은 평균 17일에서 20일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봄철 식물계절 지표가 앞당겨지고 가을철 단풍 시기가 늦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구체적으로 잎눈파열은 연평균 0.94일, 개화 시작은 0.83일, 개엽 시작은 0.79일씩 빨라졌다. 반면 가을의 상징인 단풍 절정 시기는 연평균 0.33일씩 늦춰져, 전체적으로 약 5일 정도 지연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봄철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식물은 산수유로, 잎눈파열 시기가 매년 1.39일씩 앞당겨지는 가장 빠른 조기화 현상을 보였다. 그 외에도 노각나무와 자귀나무 등이 상대적으로 빠른 변화를 보였다. 개엽 시작 단계에서는 산벚나무·졸참나무·히어리 등이 매년 1일 이상 빠르게 잎을 틔우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을 단풍의 경우 종별로 차이가 더 뚜렷했다. 당단풍나무와 산벚나무는 오히려 시기가 앞당겨진 반면 노각나무와 백목련 등은 지연되는 등 종 특이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역별로도 변화의 속도가 달랐다. 봄철 현상의 조기화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전북과 충북 지역이었고, 국립수목원이 위치한 경기 북부 지역도 개화 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강원도와 제주도 같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변화 폭이 작거나 통계적으로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아, 고위도 지역이나 해양의 영향을 받는 환경 조건이 식물계절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식물의 계절 시기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상 요인은 온도였다. 분석 결과, 봄철 현상은 1월에서 5월 사이의 기온 및 지면 온도와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특히 개화와 개엽 단계는 기상 요인만으로 변동의 95% 이상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을 단풍은 7월에서 9월 사이의 늦여름 기온과 지면 온도, 이슬점 온도가 높고 습윤할수록 지연되는 특성을 보였다. 이처럼 식물계절 지표가 달라지면 산림 생태계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장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일시적으로 탄소 흡수량을 늘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영양분 재분배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식물과 수분 매개 곤충 사이의 활동 시기가 어긋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결국 생물 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서비스의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산림 생태계 모니터링과 적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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