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환경단체 모두 퇴짜 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비용 부담·수급 안정은 어떻게?"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탄소중립위원회가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아무리 앞으로 30년 뒤를 내다보고 그린 그림이라고 하지만 목표를 정해놓고 짜 맞추는 식으로 제시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탄소중립위는 이날 현재로서는 발전 효율이 가장 낮고 비용은 높은 재생에너지를 2050년까지 최대 10배로 늘리면 그 비용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못했다. 또 현재 기저발전으로 발전효율이 높고 값싼 원자력의 발전 비중을 현재의 4분의 1로 줄이고 석탄 발전은 전면 폐쇄하는 대신 전력 최대 수요 시간 기여도가 11% 수준인 신재생에너지로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탄소중립위가 내놓은 것은 한 마디로 기술향상이 이뤄지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을 전제로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런 시나라오가 무슨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한 목소리로 내놓았다. 특히 이 시나리오가 제대로 각계의 의견을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도 업계와 전문가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탄소중립위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대통령 직속 최상위 컨트롤타워로 지난 5월 29일 출범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18개 정부부처 장관과 각계를 대표한 97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됐다. 두 달여만에 발표한 이 시나리오는 초안으로 단수 안도 아니고 3개의 복수안으로 제시됐다. 이 초안이 나오자 즉각 산업계와 환경단체 모두 반발했다. 산업계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반응이고 환경단체는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탄소중립위의 이 초안 마련이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기보다는 각계를 들러리 세웠다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탄소중립위는 이 초안에 대해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말 최종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정국과 맞물려 최종안은 ‘반쪽 시나리오’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탄소중립위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출범한 기구가 아니다. 진영에 따라 ‘그들만의 위원회 또는 계획’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시나리오 3가지 모두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최소 56%, 많으면 70%까지 늘어나 지난해 6%보다 10배나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기료 인상과 재생에너지 발전의 변동성이 큰 점에 대한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탄소중립위는 이와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윤순진 탄소중립위 민간공동위원장은 이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시나리오는 탄소중립이 실현됐을 때의 미래상과 부문별 전환내용을 전망한 것"이라며 "부문별 세부 정책 방향과 전환속도 등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의 역할이고, 세부 정책은 시나리오를 토대로 각 부처에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지금보다 10배 대폭 늘리겠다고 했지만 시나리오가 초래할 문제점을 해결할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그동안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전기료 인상을 가져오고 발전량 변동성 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돼왔다.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 가할수록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재생에너지 확대는 전기요금 청구 때 함께 징수되는 기후환경비 인상을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발전을 하면 지급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때문이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추가 발전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인증서다. 이 REC를 지급하는 비용의 재원이 전기 소비자에 부담으로 돌아오는 기후환경비다.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REC 발급량이 많아질수록 전기료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올해 REC 발급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약 3조 2463억원으로 추산된다.재생에너지의 변동성 높은 발전량도 문제로 지적된다. 재생에너지의 대표 주자인 태양광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해가 뜰 때는 발전량이 많지만 해가 지면 발전량이 확 줄어버린다.발전량이 제각각이다 보니 태양광이 정작 중요한 전력 수요 피크시간대에 에너지원으로서 기여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태양광이 특히 햇빛이 약해 발전량이 낮은 겨울철에 전력 수요 피크시간대에 기여도는 1∼4%로 분석됐다. 태양광이 전력 수요 피크시간대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자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양광이 여름철 전력 수요 피크 시간대인 오후 2∼3시에 전력 수요에 차지하는 비중이 11.1%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발전량을 꾸준히 유지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날수록 관련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탄소중립위는 이와 같은 문제는 기술혁신과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태양광 발전효율이 올라 비용이 줄어 전기료 부담이 크지 않아지고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는 에너지저장기술 등의 발전으로 발전량의 변동성을 대비할 수 있다는 식이다. 윤 위원장은 태양광 발전소가 차지하는 면적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태양광 효율은 18%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효율이 2배, 3배 상향한다면 소요 면적 또한 줄어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위원회는 이해관계자와 일반 국민 의견수렴, 부처 간 추가논의 결과를 종합 반영한 뒤 위원회 의결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서 정부 최종안을 확정하고, 10월 말 국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wonhee4544@ekn.kr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소중립 시나리오] 산업계 "국토 전체 태양광패널로 덮어도 감당 못하는 계획"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정부가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한 것과 관련 산업계는 먼저 "현실성이 크게 부족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대부분 업종에서 정부 지원에 대한 로드맵이 나오지 않았고 비용 예측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탈원전’, ‘부동산’,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 이번 정부 들어 실패한 정책들이 전부 ‘속도 조절’에서 원인이 있었던 만큼 탄소중립 제도 역시 천천히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우리는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성급하게 추진 땐 경쟁력 상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2050 탄소중립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기업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업종·규모별로 기업이 맞닥뜨린 상황과 여건이 달라 폭 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 이름의 논평에서 "정부 탄소중립위원회가 제시한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540만t, 1870만t, 그리고 0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에 동참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경제계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전경련은 "초안에 따르면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에서 산업 부문은 205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약 80%를 감축해야 한다.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위원회가 감축 수단으로 제시한 탄소감축 기술이나 연료 전환 등의 실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불명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전경련은 "경제계는 산업 전반의 저탄소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정부 역시 탄소중립 목표가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해치지 않도록 향후 목표 수립 과정에서 경제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반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온실가스의 지속적인 감축을 통한 2050년 탄소중립에는 공감하지만 시나리오의 감축 수단 중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친환경 연·원료 전환 등이 2050년 내 상용화될 수 있을지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경총은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높은 화석 발전 의존도 때문에 급격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경제·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향후 의견수렴 과정에서 산업계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탈원전 정치적 프레임 갇혀 탄소중립 정책 망치고 있다" 각 업계도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히 불명확하다는 게 중론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탄소중립 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온다. 원자력·석탄 비중을 10% 미만으로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60%로 늘리는 게 우리나라 지리적 현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주요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대부분 전기차로 교체되면 전력 수요가 더욱 급증할텐데, 우리나라 국토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견해다. 정부가 공개한 3개의 시나리오 초안 중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중단을 담은 시나리오 2안과 3안 역시 독립적인 계통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반드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특히 에너지 업계는 이번 시나리오에 대해 자신들과 협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비전이 달성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탄소중립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연료전환, CCUS 등 미래 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도 크다"며 "시나리오대로 이행시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돼 무리한 감축보다는 여건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자동차 업계는 급작스러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미 현대차·기아 등은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고 자금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 등은 전향적인 미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올해 초 출범한 ‘전기·전자 탄소중립위원회’에 동참했다. 이미 탄소중립 동참 의지를 표명하고 탄소감축·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 집단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면 초기 투자 지원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 쪽에서도 신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봤다.이날 정부의 발표와 별도로 이미 우리나라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ESG경영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고 탄소국경세 등 도입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등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추진 중이다. yes@ekn.kr자료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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