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미·중 AI 패권경쟁 한국 생존법은 한·일 경제통합”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미국과 중국 간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AI 경쟁력이 통하지 않을 경우 생존 백업 전략으로 일본과 경제통합 수준의 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중 AI 기술 패권 속 대한민국 성장전략' 세미나 특별강연에 연사로 나서 자신의 지론인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강연에서 “전세계가 인공지능(AI)을 향해 뛰는데 우리가 꼭 이긴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 백업 차원에서 다른 옵션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데 일본과 경제통합 수준으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통상 질서는 이미 '룰'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모습이 됐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때 우린 좋았지만 다신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자신들보다 경제 규모가 10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EU 사례를 참고해 한·일이 협력하면 강대국들과 대등한 형태로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 체제에서 한국이 첫 번째로 봐야할 부분이 일본과 경제공동체 구성이고, 일본도 이를 일정 수준 인정하고 있음을 덧붙여 설명했다. 미-중 경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도 '경제 덩치'를 키워야 하며, 그 전략으로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과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최 회장의 지론이었다. 최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글로벌 AI 시장 동향 소개와 함께 한국이 AI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속도(스피드) △규모(스케일) △안전 등 3대 키워드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빠트리지 않았다. 글로벌 AI 시장과 관련, 최 회장은 “자본, 에너지(전력), 그래픽처리장치(GPU) 세 부분에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하며, “전기를 만드는 양과 속도는 중국이 미국보다 빠르지만 GPU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AI시대로 가려면 공장을 만들고 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많이 짓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인도 등도 이쪽으로 방향을 틀고 법과 제도를 수정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돈이 있다면 다음으로 전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력 예비율이 높은 편인데 발전용량과 송전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중앙에서 모든 전기를 통제하고 공급하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텐데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강국 실현을 위해 “(AI 관련) 지금은 뭔가 만들어 계속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불완전해도 상관 없고 일단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속도감을 주문했다. 아울러 “속도를 내더라도 그 스케일이 너무 작으면 소용이 없다. 규모를 키우되 AI가 가져올 폐혜 등 안전에 대한 예방책도 생각해야 한다"며 3대 키워드의 균형 성장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밖에 최 회장은 '소셜 밸류'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성장이 둔화된 상태에서 'AI 쇼크'가 오면 일자리 감소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이었다. 최 회장은 “그동안은 자본이 더 많은 자본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데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아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착한일'을 수치로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등을 제대로 평가해 기업이 사회가치를 만드는 것을 '시장화'하고 참여할 사람을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최 회장은 강연 뒤 질의응답 시간에서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어떤 사안을) 법으로 해결할지, 자율에 맡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뒤 “법으로 해결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기업활동 등에) 제약이 생긴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무리한 입법 움직임에 우회적으로 일침을 놓았다. 이날 세미나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중의원연맹' 주최로 마련돼 현장에 여야의원 20여명이 참석해 최태원 회장 강연을 경청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철강업, 보릿고개 업황 ‘AI·非철강’으로 버티기

철강사들이 본격적인 시장 반등 전까지 버티기 위해 신시장과 신사업을 모색하고 나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에 맞춰 강재 패키지 공급 전략을 강화하거나, 강재 제조와 정보통신(IT) 경쟁력 등을 결합해 AI 데이터센터 사업 진출 카드를 검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세계 철강 소비량 증가세 전환 전망에도 철근 같은 범용 소재의 수요 위축이 불가피한 시황이 새 기회를 모색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2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인공지능(AI)과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수요 확대를 겨냥한 신수요 확보에도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보호 건축물(인클로저)용 강재, 송전철탑용 형강·후판 등을 중심으로 수주·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판재와 봉형강을 포괄하는 제품 패키지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4일 실적 설명회에서 “미국향(向) 철근은 1분기 수출판매가 전분기 대비 286% 증가했는데, 미국 견조한 봉형강 시장의 영향인 것으로 본다"며 “이번 2분기 이후에도 미국의 시장상황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와 ESS향 제품 공급에 대해서도 “이들 제품의 수익은 마진(이윤) 차이보다 현대제철의 강재부터 판재에 이르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여러 강재 대상 '원스톱 패키지' 영업을 강화 수요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철강을 넘어 신사업 확장을 도모해 철강 부진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전략도 있다. 본업인 철강이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도 버틸 체력을 확보하고 미래 기술력 강화 재원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동국제강그룹은 올해 초 그룹의 미래 신사업으로 AI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동국제강과 동국씨엠 등을 통해 철강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동국제강그룹은 공장부지나 전력 인프라 등의 자산을 이용해 AI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를 검토 중이다. 장세욱 동국홀딩스 대표이사(부회장)는 지난달 26일 주주총회에서 “현재 '동국제강그룹 4차 중기경영계획'을 수립 중이며, 올해 안에 세부 전략을 명확히 하고 필요 시 주주에 공유할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며 “그룹 본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소재·부품·장비 등 전후방 가치사슬(Value Chain)을 폭넓게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동국제강그룹은 계열사 동국시스템즈를 통해 주요 산업군을 겨냥한 정보통신(IT) 서비스 사업을 운영해와 AI 인프라 구축 사업을 확대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엔비디아의 파트너 네트워크(NPN)에 가입했고, 올해는 '컴퓨트(연산)' 부문에서 최상위 등급을 획득하기도 했다. KG스틸은 국내 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K Car) 인수 주체로 나서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본격화한다. 중고차 유통 플랫폼 케이카의 지분 72.19%을 보유한 한앤코와 지난달 31일 주식매매계약 체결에 이어 지난 21일 KG스틸이 4000억원을 들여 지분 52.5%를 인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19.69%는 공동 투자자로 참여하는 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 주식회사가 사들인다. 이는 KG그룹 모빌리티 사업 수직 계열화의 일환인 동시에 철강산업의 경기 변동성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케이카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매출 성장세를 이어왔다. 지난해 매출은 2조438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 증가했고, 5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하면 84.3%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처럼 철강사들이 신시장·신사업 개척에 나서는 이유는 국내와 세계 철강 시장이 수요 침체를 딛더라도 회복 속도가 가파르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동차와 함께 주요 철강 수요산업으로 꼽히는 건설이 시황 부진을 이어가며 범용 철근을 넘어선 고부가 강재로 수익성을 강화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세계 시장에서 철강 완제품 수요는 각각 17억2410만톤과 17억6200만톤으로 직전 연도보다 각각 0.3%, 2.2%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시장에서도 4370만톤과 4420만톤으로 0.3%, 1.1%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에서 철강재 수출 허가제로 저품질·저가 철강재 수출을 사실상 제한한 점은 수요 회복 기대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철근 시장 구조조정을 앞둔 점도 변수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통해 철근을 설비 구조조정 우선 품목으로 못박았다. 정부와 업계는 아직 철근 설비 감축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철강업계 위기감이 큰 만큼 정확한 조정 대상과 규모가 나오면 계획이 나오면 구조조정에 속도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삼성전자·SK하이닉스, ‘포스트 HBM 배틀’ 막올랐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열어젖힌 인공지능(AI) 반도체시장이 이제 '성능'을 넘어 '효율'과 '확장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가 HBM의 압도적인 속도 이면에 가려졌던 전력 소모와 물리적 확장 한계에 주목하고, '포스트 HBM 선점'을 위한 기술 헤게모니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현재 포스트 HBM의 흐름은 소캠2(SOCAMM2),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 차세대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 축을 형성하는 구도이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LPDDR5X 저전력 D램 기반 소캠2 192GB 제품 양산에 돌입했다. 이 제품은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적용한 모듈로, 엔비디아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맞춰 설계됐다. 베라 루빈은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소캠2는 모바일 중심이던 저전력 메모리를 서버 환경에 맞게 확장한 모듈로, 차세대 AI 서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RDIMM(서버·워크스테이션용 D램 모듈) 대비 전력 효율을 75% 이상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앞서 삼성전자도 지난달 엔비디아 공급용 소캠2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 제품은 10나노급 5세대(1b) D램을 적용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256GB 고용량 소캠2 샘플을 고객사에 출하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글로벌 메모리 '빅3' 간 소캠 시장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소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시장 구조 변화가 있다. 대규모 학습 중심에서 실제 서비스에 적용되는 '추론' 중심으로 무게추가 이동하면서, 전력 효율과 발열 관리가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소캠은 저전력·고효율 특성을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운영 부담을 낮추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탈부착이 가능한 모듈형 구조를 채택해 고장 시 해당 부품만 교체할 수 있어 유지보수 효율도 높다. 성능 측면에서도 HBM과 DDR5 사이 영역을 공략하며 가격 부담과 공정 난이도를 낮추면서도 기존 메모리 대비 향상된 성능을 제공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확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캠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며 “기술 선점을 위한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효율을 넘어 메모리의 물리적 한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CXL이다. CXL은 서버 내 메모리를 공유 자원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용량을 유연하게 확장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기존에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당 장착 가능한 메모리 용량이 제한적이었지만, CXL을 활용하면 테라바이트(TB)급 확장이 가능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CXL 기반 D램 기술에서도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대 1TB 용량과 초당 72GB 대역폭을 지원하는 CXL 모듈 'CMM-D 3.1'을 개발했으며, SK하이닉스는 CXL 2.0 기반 96GB DDR5 D램의 고객 인증을 마쳤다. 여기에 연산 기능을 메모리 내부에 통합한 PIM 기술도 본격 개발 단계에 들어섰다. 메모리와 프로세서 간 데이터 이동을 최소화해 '메모리 병목'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접근이다. 삼성전자는 LPDDR5X 기반 PIM을 주요 고객사와 협력해 개발 중이며, 올해 하반기 샘플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규격인 LPDDR6에서도 PIM 적용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GDDR6-AiM'을 출시한 데 이어 LPDDR6 기반 PIM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전선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 시장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초기에는 '더 빠른 AI' 구현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비용 대비 효율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AI'가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총소유비용(TCO)을 낮추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메모리 역시 단순 성능 경쟁을 넘어 전력 효율과 확장성, 운영 효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HBM에 이어 차세대 메모리 기술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경우, AI 시대 반도체 경쟁력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12차 전기본, 2040년 수요 ‘657~694TWh’ 전망…“수요관리로 대응”

정부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인공지능(AI)과 전기화 확대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를 반영하면서도, 수요관리 강화를 통해 증가 속도를 제어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22일 열린 전력수요 전망 공개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허진 이화여대 교수(수요전망 위원장) 따르면 2040년 전력소비량은 657.6~694.1TWh로 전망됐다. 이는 11차 전기본 최종연도(624.5TWh) 대비 증가한 수치다. 다만 경제성장률 둔화 영향으로 기본적인 수요 증가세는 과거보다 완만해진 반면, AI 데이터센터와 산업 전기화 등 '추가수요'가 구조적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12차 전기본은 처음으로 복수 시나리오 체계를 도입했다. 기준 시나리오는 기존 성장 흐름과 2035 NDC 53%를, 상향 시나리오는 AI 확산과 NDC 61% 달성을 가정했다. 허진 교수는 단일 전망이 아닌 시나리오 기반 접근을 통해 “과잉·과소 투자 리스크를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AI 데이터센터는 이번 계획에서 가장 큰 변화 요인이다. GPU 서버 전력밀도는 2040년까지 현재 대비 약 3배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반영됐으며, 이에 따른 전력수요는 약 26.5TWh로 전망됐다. 전기화 역시 핵심 변수로, 산업·수송·건물 전반에서 전력수요를 크게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3차 전기본 수립 위원회는 수요 증가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효율향상(EERS) △DR시장 △히트펌프 △시간대별 요금(TOU) 등을 통해 120TWh 이상을 절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특히 이번 계획에서는 전기차(V2G), 산업용 요금 등을 활용한 부하이전 개념이 처음 도입됐다. 이번 12차 전기본 수요 전망의 핵심은 '수요는 늘어나지만, 그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AI·반도체·전기화로 전력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정부는 이를 그대로 설비 확대로 연결하기보다는 수요관리와 패턴조정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전력이 필수이며 산업 전기화 역시 '피크 수요' 확대 요인이라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변동성까지 고려하면 “수요관리만으로 감당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의문이 남는다. 결국 향후 쟁점은 △수요관리 실현 가능성 △LNG·원전 등 백업전원 필요성 △계통·송전 투자와의 정합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네이버,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직접 투자…국내 첫 사례

네이버가 재생에너지 발전소 직접 투자를 단행한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서 빠르게 늘고 있는 전력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21일 네이버는 GS풍력발전과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거래(PPA) 계약을 체결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의 지분 3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국내에서 RE100 가입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법인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한 첫 사례다. GS가 건설 중인 경상북도 영양군 소재 풍력발전단지는 연간 약 180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2028년 상반기 상업운전 개시 후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각 춘천 등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네이버 측은 “이번 투자로 2029년 기준 회사 전체 전력사용량의 약 46% 수준까지 재생에너지 전환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번 계약을 시작으로 양사의 파트너십은 전략적이고 지속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로써 네이버는 단순 전력 구매를 넘어 국내 시장에서 장기적·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RE100 달성의 목표에도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특히 민간 기업이 추가 투자의 제약 요인을 걷어내고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울러 비수도권에 입지한 데이터센터에 재생에너지를 직접 사용해, 국가적 에너지 수급 안정성 강화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다. 임동아 네이버 대외·ESG정책 리더는 “AI와 클라우드 확대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재생에너지 확보는 필수적인 과제"라며 “발전법인 직접 투자라는 새로운 모델을 통해 에너지 수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2040 탄소 네거티브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AI·재생에너지’ 50兆 쏟는다...국민성장펀드, 2차 프로젝트 가동

정부가 대규모 정책자금을 앞세워 첨단산업 육성에 속도를 낸다. 핵심 산업군을 중심으로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미래 성장 기반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14일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를 열고 '2차 메가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150조원 규모 펀드 운용 방향의 일환으로, 새만금 첨단벨트와 자립형 인공지능(AI) 생태계 등을 포함한 6개 분야가 새롭게 선정됐다. 선정된 분야는 차세대 바이오·백신 생산 및 연구개발, OLED 디스플레이, 미래 모빌리티·방산, 소버린 AI, 재생에너지 인프라, 새만금 첨단벨트다. 정부는 이들 분야에 대해 향후 5년간 50조원 이상을 투입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번 2차 프로젝트에는 우선 약 10조원 수준의 자금이 공급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말 발표된 1차 메가프로젝트(신안우이 해상풍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는 올해 1분기 동안 약 6조6000억원이 집행된 바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바이오 부문은 글로벌 임상 3상 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신약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OLED 분야는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 유지를 위한 설비 투자가 지원된다. 미래 모빌리티와 방산 영역에서는 무인기 등 차세대 기술 개발과 양산 기반 구축이 핵심이다. 소버린 AI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AI 모델을 포괄하는 독립형 생태계 구축이 목표다. 재생에너지 인프라는 태양광과 풍력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처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새만금 첨단벨트는 로봇·수소·데이터센터를 집적한 산업 거점으로 조성되며, 최근 대기업 투자 계획과도 맞물려 추진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에너지 전환 흐름에 대응하면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첨단산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 역시 급증하는 투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는 빠르면 다음 달부터 개별 사업에 대한 첫 투자 집행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금융위는 50조원 규모의 첨단산업 생태계 지원 방안도 내놓았다. 자금은 민관 합동펀드 형태의 간접투자 35조원과 직접투자 15조원으로 나뉘어 운용된다. 민관 합동펀드는 약 20개의 자펀드로 구성되며 기능별로 세분화된다. 첨단 일반펀드, 특정 기능 펀드, 초장기 기술 펀드, 프로젝트 펀드, 국민참여형 펀드 등으로 구분해 투자 목적에 맞게 운용할 계획이다. 특히 특정 기능 펀드는 스케일업, AI·반도체, 인수합병(M&A), 코스닥, 지역 특화 등으로 세분화된다. 첨단 일반펀드는 기업 성장 단계별 투자 체계를 구축해 초기부터 중견 단계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민간 자금이 충분히 유입되지 못했던 영역까지 투자 공백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운용사 선정 기준도 바뀐다. 기존 정책자금 운용 경험뿐 아니라 첨단산업 창업 경험(실패 사례 포함)도 평가 요소에 반영해 참여 문턱을 낮춘다. 이를 통해 투자 생태계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또 대형 프로젝트나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는 직접투자 방식이 병행된다. 아울러 '성장기업발굴 협의체'를 신설해 민간과 정부가 발굴한 유망 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도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2분기 중 펀드 운용사 선정을 마무리하고, 연말부터 본격적인 자금 집행에 들어간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정의선 “로보틱스·피지컬AI, 현대차그룹 진화의 핵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와 피지컬 인공지능(AI)은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분야를 넘어 더욱 진화하는 과정의 중심"이라며 미래 모빌리티 리더십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 회장은 1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디지털 뉴스 플랫폼 세마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로보틱스와 AI가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하는 인간 중심 AI 로보틱스 전략을 현대차그룹의 미래사업 핵심 요소"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경쟁은 혁신을 자극하는 요소"라며 “현대차그룹의 DNA에 내재된 유연성과 회복력 덕분에 위기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룹의 접근 방식은 글로벌 확장과 지역별 민첩성을 결합하고 있으며 사업을 영위하는 각 지역에서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오는 2028년까지 현대차 제조 시설에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배치하고 2030년까지 연간 최대 3만대의 아틀라스를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13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닷새간 미국 워싱턴 D.C. 콘래드호텔에서 열리는 '2026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에 참가해 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과 전략을 소개할 계획이다.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각국 민관 글로벌 리더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 콘퍼런스다. 올해 행사에는 정 회장을 비롯해 장재훈 부회장, 성 김 사장, 호세 무뇨스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참석한다. 14일 열리는 미래 모빌리티 트랙 세션에서는 제네시스가 트랙 스폰서를 맡는다. 무뇨스 사장은 연사로 참여해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과 에너지 전환 논의를 주도한다. 제네시스는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 행사장에 브랜드 전용 공간을 마련해 글로벌 리더들에게 럭셔리 브랜드 가치와 고객 경험을 선보일 방침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LG에너지솔루션, AI 전환 ‘생산성 50% 혁신’ 2년 앞당긴다

글로벌 배터리 경쟁이 격화되자 LG에너지솔루션이 인공지능(AI)으로 눈을 돌려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인공지능 전환(AX)을 통해 전사 생산성 50% 개선 목표 달성 시점을 기존 2030년에서 2028년으로 2년 앞당기며 혁신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13일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AX는 미래 생존과 직결된 필수 과제"라며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단순한 양적 경쟁만으로는 의미 있는 승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AX를 통해 '핵심 자산 및 인재 중심'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며 “LG에너지솔루션은 다수의 명품 특허 등 지식재산권과 30여 년간 축적된 업력, 풍부한 역량을 갖춘 인재라는 핵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 같은 자산이 AX와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면 경쟁 구도를 바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 AX 실행 전략을 공유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초 수립한 '2030년까지 생산성 30% 개선'이라는 전사 목표를 '2028년까지 50% 개선'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경쟁사들이 대규모 투자와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보다 도전적인 목표를 앞당겨 달성해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판단이다. 성공적인 AX 체계 안착을 위한 지원도 강화한다. 김 사장은 “AX는 제조업의 복잡성, 국가핵심기술 보안, 현업 적용 체계까지 함께 풀어야 하는 복잡한 과제"라며 전사적 지원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매월 CEO가 직접 주재하는 'AI 거버넌스 위원회'를 운영해 AI 솔루션 도입과 보안·변화관리 이슈를 점검하고 있으며, 기업형 AI 플랫폼을 비국가핵심기술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사 AI 교육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 우려에 대해서는 “계산기가 있어도 연산 원리를 이해해야 제대로 쓸 수 있듯 AI 역시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화할 줄 아는 숙련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며 “AX는 구성원을 덜 중요하게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일에서 벗어나 사업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진짜 업무'에 집중하게 만드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도하고 피드백을 거쳐 빠르게 보완하는 것이 AX 추진 방식"이라며 “경쟁의 판을 바꾸고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낼 '이기는 혁신'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수열에너지 도입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7년이면 본전 뽑아

서울시가 국내 지하 공간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인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냉·난방에 수열에너지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9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지하 건물 전체에 수열에너지를 도입함으로써 6억원 이상의 연간 운영비 절감과 1500톤 가량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그간 서울엔 롯데월드타워와 코엑스 무역센터 등 민간 건물에 수열에너지 도입 사례가 있었지만 공공 인프라로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가 수열에너지를 도입하는 첫 사례다.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는 삼성역에서 봉은사역까지 지하 5층, 시설면적 17만㎡의 규모로 들어선다. 국내 지하 공간 개발로는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광역복합환승센터로서 통합역사(GTX, 위례신사선), 버스환승정류장, 공공 및 상업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냉·난방 시설로 수열에너지를 도입할 때 장점은 기존 상수도관을 열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별도로 송전선로를 깔 필요가 없고 도심에서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원리는 대기와 물의 온도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건물 안의 열을 한강 물을 통해 바깥으로 내보내 열을 식힌다.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한강물을 실내로 들어오게 해 열을 건물 안으로 이동시킨다. 물이 대기보다 온도차가 적어 에너지 효율이 높다. 수열에너지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전기요금 등 운영비는 매년 6.2억원이다. 관로공사에 25억원, 건물 내 설치되는 수열 기계설비 공사에 20억원이 소요돼 수열에너지 관련 설비 설치비용은 45억원이다. 7년이 넘어가면 초기 투자 비용 회수가 가능한 것이다. 시가 수열에너지 사업 시행을 맡고 한국수자원공사는 설계·공사지원·공급을 맡았다. 수열에너지 설비는 한강 물인 원수를 공급하는 인프라와 그 물을 사용하는 건물 내 시설로 나눠진다. 지하에 광역상수도 원수관이 지나가면 이 관으로부터 복합환승센터 건물 쪽으로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연결 배관을 설치하는 일은 수자원공사가 맡는다. 연결 지점부터 복합환승센터 내 열교환기·펌프·내부 배관 등 내부 설비 관리는 시의 몫이다. 민간 수열에너지 도입 사례인 롯데타워와 코엑스와 복합환승센터의 공통적인 조건은 관로가 가까이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관로가 건물 가까이 지나고 있어 경제성이 보장돼 수열에너지 사용이 용이하다. 수자원공사는 복합환승센터에 2030년부터 2049년까지 20년간 1800RT(냉동톤, Ton of Refrigeration)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공급해 건물 전체 냉·난방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는 에어컨 약 1800대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냉방 규모에 해당한다. RT는 0℃의 물 1톤을 24시간 동안 0℃의 얼음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의미한다. 1RT는 약 3.5kW에 해당한다. 환산하면 6438kW 규모다. 롯데타워는 3000RT(약 10500kW), 코엑스는 7000RT(약 24500kW) 규모로 도입됐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원수가 열만 교환하고 다시 수자원공사의 관로로 회귀될 수 있도록 물을 활용하는 계약을 20년간 맺는다"며 “계약이 만료되면 협의 뒤 다시 갱신한다"고 설명했다. 수열에너지 도입으로 기존 냉·난방 방식 대비 에너지 소비가 약 35% 절감된다. 그 결과 온실가스는 1498톤 감축 효과가 발생한다. 지난 6일 서울시가 수자원공사와 실시협약을 체결한 것은 2020년 광역상수도 원수 활용에 관한 MOU체결 이후 후속 조치다. 6년 만에 협약이 진전된 것은 복합환승센터 사업 진행 중 중간 설계과정에서 KTX가 빠져 재설계가 필요했고, 근로기준법도 개정돼 공기가 늘어 GTX-A 삼성역 개통이 지연된 전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복합환승센터는 2028년 4월 완공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수열에너지 시설은 완공 일정에 맞춰 공사 예정"이라며 “원수관로를 빼내는 작업을 올해 작업하고 열교환기·히트펌프 등 기계 장비 설치에 2~3년 소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복합환승센터 총사업비는 1조795억원 규모다. 재원은 광역급행철도사업·위례신사선·GBC 공공기여금·주변 교통개선사업 부담금을 활용한다. 서울시가 물사용료로 매년 수자원공사에 내는 비용은 5500만원이다. 이 안에는 유지·보수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한편 수자원공사는 2030년까지 누적 28.4만RT 규모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건설 역시 그 공급 목표의 일환이다. 이는 발전설비 용량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GW 수준으로 원전 1기와 맞먹는 규모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단독] 차지호 민주당 의원, “UN AI 허브, 빅테크 이전 신호탄 될 것”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 등 UN 6개 기구가 한 지붕 아래 모이는 건 “일하면서 한 번도 못 봤다"는 말이 나올 만큼 드문 일이다. 그 기구를 하나의 연대체로 묶은 건 유럽도, 미국도 아닌 한국이었다. 민주당 차지호 의원(경기 오산·초선)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가 구상한 '글로벌 AI 허브' 프로젝트는 지난달 유엔 6개 기구와의 협력 의향서(MOU) 체결로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블랙록 자본 유치, UN 총회 비전 선포에 이은 UN 플랫폼 유치의 첫 단추가 꿰어진 것이다. 반년 남짓한 시간에 이 판이 짜였다. 지난해 하반기 청와대 김우창 국가AI전략비서관과 차지호 의원이 유엔 기구들과 사전 교섭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UN 고위급 면담이 성사됐고, 당내에 'AI 글로벌 전략 TF'가 꾸려졌다. 그 사이 굵직한 성과도 나왔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에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와 AI·재생에너지 관련 MOU를 체결한 것이다. 12조5000억 달러(1경7000조 원)를 운용하는 '월스트리트의 제왕'을 움직인 건 차 의원의 아이디어였다. 차 의원이 구상을 짜고, 카이스트 동료 출신인 김우창 비서관과 함께 계획을 현실화했다. 올해 들어 속도는 더 붙었다. 유니세프(UNICEF)와 유엔환경계획(UNEP)도 추가 합류 대기 중이고, 미공개 기구 1곳도 줄을 섰다. 6개였던 연대체가 9개 기구로 늘어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경제적 파급력도 상당하다는 게 차 의원의 계산이다. WHO가 AI 헬스케어 컨퍼런스를 열고, ILO가 AI 노동시장 포럼을 개최하면 각 기구가 두 달에 한 번씩만 행사를 열어도 1년 내내 글로벌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엑스포보다 큰일"이라며 “1년 내내 엑스포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더 큰 그림은 따로 있다. UN 기구가 정착하면 민간 기업, 아카데미, 싱크탱크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온다는 구상이다. 그는 “구글 본사 기능 일부가 지금은 미국 서부와 싱가포르에만 있지 않느냐"며 “UN도 오는 마당에 구글 헤드쿼터 기능이 한국으로 못 올 이유가 없다. 지역 사무소가 아니라 각 기업의 핵심 기능들이 올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했다. 지난 1일 본지가 서울 여의도 의원실에서 만난 차지호 의원은 “국내 반응이 더 낯설다. 국내에서 이렇게 조용할지는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차지호 의원과의 일문일답 -'글로벌 AI 허브'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구상 자체는 오래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께서 나를 영입하시고 정치권으로 들어올 때 내주신 숙제였다. 가장 큰 질문 하나가 AI였고, 또 하나가 K-외교였다. 저는 이 두 과제가 사실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고 봤다. AI 전략은 산업 전략이기도 하고 사회 전략이기도 한데, 글로벌 전략이 빠지면 성립하기 어렵다. AI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전환을 일으키는 기술인데, 한국만을 위한 국내 전략을 짠다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국내 시장만 위해 AI를 만든다면 삼성이 한국에만 TV를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적으로도 제한적이고 글로벌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글로벌 전략이 필요했다." -AI 산업의 미래 먹거리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많은 분들이 제조 AI, 피지컬 AI를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지식서비스 산업 쪽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제조업은 한국 GDP에서 20%대지만, 3차 산업 비중은 훨씬 크고 AI 전환 속도도 더 빠를 수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미충족 의료시장만 2032년 2경원 규모로 예상된다. 의료 AI가 본격화하면 의사 인력 이동 없이도 서비스 수출이 가능해진다. 한국은 바이오·의료 시스템과 AI 기술을 함께 갖춘 만큼, 정부가 협의체를 통해 시장을 연결하면 보수적으로 봐도 세계 시장의 10%, 2000조원 규모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구상이다. 교육 분야 역시 EBS라는 강력한 데이터 자산이 있어 잠재력이 크다." -UN 6개 기구를 하나의 연대체로 묶어냈는데. “굉장히 이례적이다. 뉴욕과 제네바에 가기 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미 'UN AI 구상을 우리가 지지하는데 어떻게 참여하면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더라. 우리가 본격적으로 돌기 전부터 참여 의향을 확인해 온 건 꽤 큰 일이다. UN 내부에서도 세 가지 이유로 굉장히 센세이셔널했다. 첫째, 주요 6개 기구가 모여 연대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어떤 분은 자기 일하면서 한 번도 못 봤다고 하더라. 둘째, 그 연대를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경제력과 문화 영향력이 충분한데도 다자외교에서 이런 시도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움이 더 컸다. 셋째, 주제가 AI라는 점이다. AI는 지금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인데, 그 공공성의 프레임을 한국이 선점하려고 나선 것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아직 체감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바로 그 점이 예상 밖이었다(웃음). 해외에서는 굉장히 큰 일로 받아들이는데, 국내에서는 '아, 그렇구나' 정도로 조용한 반응이 나와서 의외였다. 솔직히 그게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경제적 파급력은 어느 정도로 보나. “구체적인 수치는 4월쯤 나올 것으로 본다. 다만 큰 그림은 분명하다. 전시·컨벤션, 즉 마이스(MICE) 산업만 보더라도 사실상 매년 엑스포를 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AI 관련 주요 글로벌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열 수 있고, WHO는 AI 헬스케어, ILO는 AI 노동과 실업, 또 다른 기구들은 자기 분야별로 관련 행사를 계속 만들게 될 것이다. 여러 기구가 1년 내내 움직이면 컨퍼런스가 상시적으로 이어진다. 더 중요한 건 민간 기업과 아카데미, 싱크탱크 생태계가 따라 들어온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구글이 한국으로 본사의 일부 기능을 옮길 이유가 크지 않았지만,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UN이 오는데 기업 기능이 못 올 이유가 없지 않나. 지역 사무소가 아니라 본사의 일부 기능이 들어올 가능성도 열리는 셈이다."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2027년부터 시작해 이재명 정부 4~5년 차까지 한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식으로 계획을 잡고 있다. 지금 6개 기구가 들어와 있는데, 이미 2개 기구가 더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고 최근에 1개 기구가 추가로 관심을 보였다." -어느 기구들인가. “두 곳은 유니세프(UNICEF)와 유엔환경계획(UNEP)이다. 한 곳은 아직 지금 말하긴 어렵다."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설명해달라. “1단계는 글로벌 AI 기본사회 공약과 프레임을 짜서 국내 국정과제로 만들고 전 부처가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2단계는 글로벌 자본 플랫폼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한국 공공자본만으로 AI 전환에 필요한 자금의 5~10%를 동원할 수 있을까 말까다. 민간 자본까지 끼더라도 한계가 있다. 결국 글로벌 자본과 연결돼야 아시아태평양을 넘어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급한 게 글로벌 자본 플랫폼이었고, 그 과정에서 블랙록과 연결해 래리 핑크 회장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AI 아시아 시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3단계가 지금의 AI 거버넌스 플랫폼이다. 4단계는 이미 준비 중인데, 아직은 공개하기 어렵다."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과 만났을 때 비하인드가 있나. “함께 차를 마시며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여러 논의를 했지만, 세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김민석 총리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번에 새삼 느낀 건 우리 리더십들이 다 괜찮다는 점이다. 대통령께서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같이 논의해왔고, 총리님도 글로벌 및 중장기 전망에 굉장히 친숙한 분이다. 이 구상을 들었을 때 빨리 이해하고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저를 미래전략 사무부총장에 앉히고 이 일을 전적으로 하라고 지원했다. 당에 미래전략 사무부총장이라는 포지션 자체가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래서 블랙록도 하고, AI 거버넌스도 하고, 미래전략 관련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설계한 핵심 인물을 꼽는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방향을 던지시고, 대통령실 김우창 AI비서관과 계속 같이 움직였다. 또 최병민 전 보좌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대통령실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 AI민주주의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AI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고, 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뛰어난 인사이트를 가진 분이다. 함께 논의하며 설계를 다듬었다. 이 작업은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초선 의원으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다른 의원님들이 상대적으로 덜 하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당과 정부와 대통령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정치적 자율성을 가지고 비공식·공식 채널을 연결하고 탐색적으로 협상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장관이 직접 나서면 그건 곧 국가 간 약속이 돼버리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데, 저는 의원으로서 그런 중간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지금 정치에서 검찰개혁, 민주주의 위기 같은 중요한 의제들이 많지만, 미래의 문제이자 동시에 우리 세대의 문제인 AI와 기후에 대해선 아직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 같으면 20~30년 뒤 미래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5~15년 안에 닥칠 미래다. 저는 거기에 집중하겠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김나현 기자 kn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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