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는 건설현장 죽음의 문턱”…집중력 급격히 떨어져

건설 현장의 최대 불청객인 '추락 사고'가 폭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기온이 29℃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사고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현행 폭염 특보 기준(주의보 33℃ 이상)보다 낮은 온도에서부터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을지대 간호대학 최은희 교수와 강원대 대학원의 조덕연씨, 직업환경연구소 이성숙 연구원 등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인 '작업 안전과 보건(Safety and Health at Work)'에 투고한 논문에 이같은 내용을 담아 발표했다. 이 연구는 2015~2019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KOSHA)에 보고된 4만2220건의 건설업 추락 사고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다. ◇29℃, 추락 사고의 '위험 임계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 최고기온과 추락 사고 발생 건수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했다. 특히, 일 최고기온이 29℃에 도달할 때 추락 사고가 정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사고의 증가 폭이다. 분석 결과, 일 최고기온이 29℃를 넘어선 상태에서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추락 사고 발생 건수는 약 16.7%씩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고온 노출이 작업자의 신체적 제어 능력을 약화시켜 실질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실제 건설 현장은 강한 직사광선과 더불어 콘크리트나 철재 표면에서 발생하는 복사열, 그리고 작업자의 높은 노동 강도가 더해져 체감온도가 기상청 수치보다 훨씬 높게 형성된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일 최고기온 29℃는 작업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로 환산할 경우 약 32~33℃에 해당한다. 이는 현재 기상청의 폭염 주의보 발령 기준(33℃)과 유사한 수준이다. 고온에 노출된 작업자는 탈수, 전해질 불균형, 피로감, 집중력 저하 등을 겪게 된다. 이는 어지러움이나 평형 감각 상실을 유발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추락 위험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원인이 된다. ◇고령 작업자와 소규모 현장 '적신호' 이번 연구에서는 특정 집단의 취약성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온도 상승에 따른 추락 사고 패턴은 50대와 60대 이상의 고령 작업자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났다. 이는 노화로 인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기저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고령자가 고온 환경에서 더 큰 생리적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50인 미만의 소규모 건설 현장 역시 기온 상승에 따른 사고 증가세가 가팔랐다. 대규모 현장에 비해 그늘막, 휴게 시설, 수분 공급 등 폭염 대응 인프라가 부족한 소규모 현장의 열악한 환경이 사고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공식 특보 전이라도 29℃ 넘으면 쉬어야" 연구팀은 기상청의 공식적인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기 전이라도, 일 최고기온이 29℃에 접근하면 선제적인 안전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먼저 선제적 의무 휴식이다. 일 최고기온 29℃ 도달하면 의무적인으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고, 수분 섭취 프로토콜을 시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고령자 집중 관리다. 60세 이상 고령 작업자가 높은 곳에서 작업할 경우 추락 방지 감독과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세 번째는 소규모 현장에 대한 지원 강화다. 안전 관리 역량이 부족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폭염 대응 및 안전 시설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차원을 넘어, 29℃라는 실질적인 위험 임계점을 기준으로 작업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정교한 안전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정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온난화와 부영양화가 만나면…강·호수는 ‘탄소 폭탄’

사람들은 흔히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발전소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가스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또 다른 거대한 배출원을 주목하고 있다. 바로 강·호수·저수지·습지·논과 같은 내륙 수계(inland waters)다. 이곳에서는 이산화탄소(CO₂)뿐 아니라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가 지속적으로 배출된다. 특히 메탄은 100년 단위로 산출했을 때의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이산화탄소의 약 28배, 아산화질소는 약 273배에 이른다. 적은 양이라도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이러한 배출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부(富)영양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강과 호수가 '온실가스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핵심 원인은 온난화와 부영양화 강과 호수에서 메탄과 아산화질소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온 상승과 영양염 과잉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물의 온도도 상승한다. 따뜻한 물에서는 미생물의 대사 속도가 빨라지고, 유기물 분해가 활발해진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빠르게 소모되고, 산소가 부족한 혐기성 환경에서는 메탄 생성균(methanogens)이 활발하게 작동해 메탄이 대량 발생한다. 여기에 농경지 비료, 축산 분뇨, 생활하수, 산업폐수 등이 흘러들어오면 질소와 인이 과도하게 축적된다. 이를 부영양화라고 한다. 부영양화는 조류(藻類) 번성과 유기물 축적을 일으키고, 결국 미생물의 질산화와 탈질 과정을 강화해 아산화질소 배출까지 늘린다. 즉, 온난화는 “엔진", 부영양화는 “연료" 역할을 하며 함께 작동한다. ◇온난화·부영양화 만나면 N₂O 100배 증가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지난해 7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온난화와 부영양화가 결합할 때 호수의 N₂O 배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수온을 4℃ 더 높이고 영양염 농도를 증가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온난화와 고영양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때 N₂O 흐름는 온난화만 있을 때보다 100배, 부영양화만 있을 때보다 3.5배 높게 나타났다. 더 중요한 것은 배출 패턴의 변화였다. 원래 N₂O 배출은 영양 상태에 따라 어느 지점에서 정점을 찍고는 다시 감소하는 패턴을 보였지만, 온난화가 진행되면 이 관계가 선형으로 바뀌었다. 이는 “영양분이 늘어날수록 끝없이 더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암모니아 산화 관련 유전자와 탈질 유전자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생물의 N₂O 생산 능력이 크게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탈질(denitrification)은 미생물이 산소가 부족한 조건에서 질산염(NO₃⁻) 등을 질소 기체(N₂)나 N₂O로 환원해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강이 더 위험…산소 손실 속도 호수·바다보다 빨라 독일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지구 변화 생물학(Global Change 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전 세계 하천의 탈산소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2002~2022년 약 5000개 유역을 대상으로 위성 관측 자료와 머신러닝 모델을 결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강의 산소 손실 속도는 호수나 해양보다 최대 2.5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다. 따뜻한 물에서는 산소를 덜 녹는다. 두번째는 농경지 확대와 도시화다. 토지 이용 변화는 유기물과 영양염 유입을 크게 늘려 미생물 호흡을 가속화한다. 특히 강한 온난화와 인위적 토지 이용 확대가 동시에 일어난 유역에서는 CH₄ 과(過)포화도가 1,644%, CO₂ 과포화도가 52% 더 높아졌다. 과포화도는 특정 온도와 압력에서 용액에 녹을 수 있는 용해도를 초과해 용질이 더 많이 녹아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연구진은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변화로 인해 추가 배출된 온실가스가 CO₂ 기준으로 15억톤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와 호주가 특히 취약한 '배출 핫스팟'으로 확인됐다. 도시화는 강을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만든다. 생활하수와 불투수면 확대는 유기탄소와 영양염 유입을 늘리고, 도시 열섬 효과는 수온을 높인다. 이는 미생물 대사를 더욱 활성화시킨다. 중국 차오후(Chaohu) 유역 조사에서는 도시 하천의 CO₂ 배출이 하루에 1ha당 394.2 kg으로, 비도시 하천(220.7)보다 약 1.8배 높았다. 메탄은 더 심각했다. 도시 하천의 CH₄ 배출은 하루에 1ha당 1,138.8 g으로 비도시 하천(192.5)보다 약 5.9배 높았다. 산소 부족이 심해질수록 메탄 생성균이 우세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습지도 무시 못해…전 세계 습지 메탄의 24% 배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작은 습지의 중요성을 새롭게 밝혀냈다. 면적 1㎢ 미만의 작은 습지가 전 세계 비산림 습지 메탄 배출량의 약 24%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30m급 고해상도 위성 자료를 활용해 전 세계에 약 1억6000만 개의 작은 습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98.7%는 0.1㎢ 미만의 매우 작은 습지였다. 이 작은 습지들은 개수는 많고, 단위 면적당 배출량도 높았다. 열대 지역에서는 전체 작은 습지 면적 비중은 15.1%에 불과하지만 배출량은 37%를 차지했다. 기존 저해상도 위성 자료로는 이런 배출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립농업과학원의 이형석 연구사 등이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벼 재배 과정에서 배출된 메탄은 연간 약 24만4911톤으로 추산됐다. 논은 물을 계속 가둬두는 담수 조건 때문에 대표적인 혐기성 환경이다. 이곳에서 메탄 생성균이 활발히 활동한다. 특히 지역별 편차도 컸다. 대전은 단위 면적당 배출량이 높았고, 제주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물 관리 방식과 중간물떼기 실천 비율 차이와 관련이 있다. ◇ 4대강 보 부근에서 메탄 배출량 많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박지형 교수팀은 한강·낙동강·영산강 물 시료에서 CO₂·CH₄·N₂O 농도를 측정한 결과를 지난 2023년 4월 '워터 리서치(Water Research)' 저널에 발표했다. 강물 속 메탄 등 온실가스 농도는 서울과 광주 등 대도시를 통과할 때 증가했는데, 오·폐수처리시설 방류수 등 오염물질이 유입한 탓이었다. 보가 8개 있는 낙동강의 경우 보가 집중된 구간에서도 메탄 농도가 높게 검출됐다. 낙동강에서는 메탄 농도가 포화 수준(L당 3.1 nmol(나노몰))을 훨씬 초과해 검출됐다. 4월(평균 541 nmol/L)보다 7월(평균 968 nmol/L)에 더 높았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부영양화 지수가 높은 물이 흐르는 낙동강에 4대강 보 건설로 체류 시간이 5배로 늘면서 남세균의 녹조 발생에 유리한 조건이 됐다"면서 “식물플랑크톤이 분해되면서 메탄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식물플랑크톤이 광합성할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물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일시적으로 낮아지지만, 녹조 발생후 사체가 분해될 때 온난화 잠재력이 훨씬 큰 메탄이 배출되기 때문에 기후변화 유발 효과는 더 커진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를 어떻게 재나 온실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측정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한경국립대학교 장수헌·박성직 교수는 최근 '한국물환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요 측정 방법을 정리했다. 헤드스페이스법은 물을 채취해 용존가스를 기체로 분리한 뒤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챔버법은 수면 위에 상자를 띄워 내부에 쌓이는 가스를 직접 측정한다. 논과 습지에서 많이 사용된다. 기포포집법은 저수지나 호수 바닥에서 올라오는 메탄 기포를 깔때기 형태 장치로 모아 분석한다. 에디공분산법은 타워를 설치해 수면과 대기 사이의 가스 교환을 실시간으로 연속 측정하는 고정밀 기술이다. 최근에는 위성 자료와 머신러닝 모델을 결합해 전 지구 규모로 배출량을 추정하는 연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감축 대책은…영양분 관리와 물 관리가 핵심 가장 중요한 대책은 부영양화를 막는 것이다. 농업 비료 사용을 줄이고, 하수 처리 효율을 높이며, 하천 주변 완충녹지를 확대해야 한다. 논에서는 '중간물떼기'가 대표적인 감축 기술이다. 벼 재배 중 일정 기간 물을 빼 토양에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3주 이상 중간물떼기를 하면 메탄 배출을 약 51% 줄일 수 있다. 서서히 녹아 나오는 완효성 비료를 함께 사용하면 아산화질소 증가라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국제 협력도 필요하다. 강과 호수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류 국가의 농업 오염이 하류 국가의 메탄 배출로 이어지고, 습지 파괴는 전 지구적 기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국가별 온실가스 인벤토리(NIR)를 고도화하고, IPCC 기준에 맞춘 측정·보고·검증(MRV) 체계를 국제적으로 통일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는 배출 핫스팟이면서 동시에 관측 자료가 부족한 지역이다. 정확한 실측과 데이터 공유 없이는 감축도 불가능하다. 물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이 곧 기후 정책이 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전기 시대의 패권 경쟁…누가 탈탄소를 지배할 것인가

지구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면서 기후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인류가 아무리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해도 파리 기후협정에서 정한 1.5℃ 목표를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 즉 이른바 '오버슈트(overshoot)'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026년 현재 세계 기후정책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문명을 얼마나 빠르게 전기 중심 체제로 전환할 것인가'가 중심 의제가 됐다. 그리고 최근 국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는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단순히 태양광과 풍력을 얼마나 더 설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전기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쓰고, 누가 더 많이 쓰며,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라는 '수요의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즉, 전기 시대의 패권 경쟁은 공급뿐 아니라 수요까지 포함한 시스템 전체의 재편 경쟁이 되고 있다. ◇ 이미 주류가 된 재생에너지…아직은 불충분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글로벌 전력 보고서(Global Electricity Review) 2026'에 따르면, 2025년은 세계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전환점이었다. 태양광 발전이 기록적인 속도로 증가하면서 청정전력이 처음으로 전력 수요 증가분 전체를 충당했고, 그 결과 화석연료 발전의 순증가가 사실상 멈췄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 세계 전력 생산의 3분의 1을 넘어 처음으로 석탄 발전 비중을 추월했다. 특히 태양광은 더 이상 보조 전원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신규 주력 전원이 됐다. 배터리 저장장치와 결합하면서 '낮에만 생산되는 전기'가 아니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전기'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의 확대 속도보다 기후 위기의 진행 속도가 더 빠르다. 홍콩대와 칭화대 연구진이 '네이처 리뷰, 지구와 환경(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CO2 배출량은 372억 톤으로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1.5℃ 목표를 위한 잔여 탄소예산은 2029년경 완전히 소진된다. 앞으로 불과 3~4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의 창(窓)인 셈이다. 지난 2023년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합의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는 단순한 정치 선언이 아니다. 사실상 파리협정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다. 스웨덴 차머스공과대 연구팀이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를 달성하려면 주요 경제권은 풍력 발전의 성장 속도를 현재보다 최소 1.43배 이상 높여야 하며, 일부 신흥국은 최대 14배까지 가속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발전소를 더 짓는 문제가 아니다. 송배전망 확충, 배터리 투자, 인허가 개혁, 금융조달 체계 개편까지 포함하는 산업혁명 수준의 구조 개혁이다. 핵심은 설치량이 아니라 속도다. ◇ 공급만으로는 안 돼…'수요 목표'가 필요 여기서 최근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논문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포르투갈 리스본대 연구진은 논문에서 지금의 기후정책이 지나치게 공급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더 늘릴 것인가'에 집중해왔지만, 정작 에너지 시스템의 궁극적 동인은 '수요(demand)'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COP28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에너지효율 개선 속도 2배 확대, 메탄 배출 감축 등을 합의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것만으로는 넷제로 달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요 증가가 계속되면 아무리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도 화석연료를 구조적으로 밀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센터, 전기차,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전력화는 필수지만, 무제한적인 수요 증가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2035년까지 달성해야 할 세 가지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는 에너지 효율이다. 최종에너지 기준 에너지 집약도 개선 속도를 현재 연평균 1.3%에서 4%로, 즉 3배 높여야 한다. 이는 공급 확대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며 수입 의존도를 낮춘다. 둘째는 전력화다.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 속도를 현재 연평균 1.3%에서 4%로 3배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기의 비중은 2035년 33%, 2050년 60%까지 올라간다. 이는 태양광·풍력 확대를 실제 감축으로 연결하는 핵심 조건이다. 셋째는 과소비 억제다. 연구진은 1인당 연간 최종에너지 소비가 300 GJ(기가줄)를 넘는 초고소비층에 추가 과세를 제안했다. 현재 상위 1.7%인 약 1억 명이 전 세계 최종에너지의 33%를 소비하고 있으며, 반면 약 30억 명은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최소 수준인 13~18GJ에도 미치지 못한다. 탈탄소는 단지 발전소를 더 짓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에너지를 쓰는가의 정의 문제라는 뜻이다. ◇ 유럽은 규칙을 만들고, 중국은 시스템을 장악한다 국제 사회에서 역할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연합(EU)은 규칙을 만들어왔고, 그 역할은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204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86% 감축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설정했다. 풍력·태양광을 7배 확대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 비중을 49%까지 높이며, 시멘트·철강·화학 산업에는 탄소 포집·저장(CCS)와 수소 기반 공정을 본격 도입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공급망 규제는 모두 유럽이 만든 새로운 질서다. 반면 중국은 제조와 시스템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및 풍력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비화석 발전 비중은 42%에 도달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V2G(Vehicle-to-Grid)를 통해 전기차 자체를 전력망의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는 낮에 태양광으로 충전하고 저녁 피크 시간에는 다시 전력을 계통에 공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피크 부하를 최대 7% 줄이고, 양수발전 투자 필요성을 23% 낮출 수 있다. 중국은 발전소를 짓는 나라가 아니라, 전력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탈탄소 리더라기보다 글로벌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LNG 수출과 석유 생산을 확대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스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가스발전이 석탄발전으로 대체되는 '역전환' 현상까지 발생했다. 전력 부문 탄소배출은 3.1% 증가했다. 미국은 기후 보증인이 아니라, 시장 교란자가 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 탈탄소의 새 모토는 “더 빨리, 더 싸게, 더 안정적으로"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수입되는 분자(molecules), 즉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체계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자(electrons), 즉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체계가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다. 탈탄소는 더 이상 환경정책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산업정책이고, 무역정책이며, 에너지 안보 전략이자 국가 생존 전략이 됐다. 결국 재생에너지를 더 빨리 확대하고, 전기화를 더 싸게 만들며, 에너지 안보를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나라가 다음 시대의 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 탈탄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패권 경쟁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모토가 “Citius, Altius, Fortius(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라면, 전기 시대의 새로운 구호는 “Citius, Vilius, Tutius"가 될 것이다. “더 빨리, 더 저렴하게, 더 안정적으로"란 뜻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가장 시급한 환경문제는?”…국민 57.5% ‘기후변화’ 응답 [기후 리포트]

우리 국민이 가장 시급한 환경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기후변화이고, 국민 대다수가 일상 생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최근 공개한 '2025 국민환경의식조사 보고서'(연구진 염정윤·강선아)를 통해 밝혀졌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3008명을 대상으로 2025년 9월 24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됐다. 온라인 패널을 활용한 웹 조사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8%다. KEI는 국민의 환경 인식과 행동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2012년부터 매년 장기 추적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5년 단위로 응답 패널을 유지해 해당 기간의 시계열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기후변화와 함께 '기후테크'에 대한 인식을 별도 조사 항목으로 포함, 변화하는 정책 환경과 사회적 관심을 반영했다. ◇ “기후변화가 가장 시급"…다른 환경문제 압도 지난해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5%가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이는 쓰레기·폐기물(47.9%), 대기오염·미세먼지(42.7%)보다 높은 수치를 보여준다. '기후변화' 문제는 2024년에 이어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꼽혔지만, 2024년 68.2%에 비해 10.7%P 하락했다. '쓰레기·폐기물 처리 문제'나 '대기오염·미세먼지 문제' 역시 2024년과 비교해 비중이 하락했다. 반면, '생활 속 유해 화학물질'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9.0%로 2024년(20.0%)보다 9.0%P 증가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홍수 및 가뭄'(17.2%), '환경 불평등'(10.0%)이라는 응답도 2024년보다 증가했다. 이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다양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우리 국민은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로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일상생활에서 기후변화를 체감한다고 답했고, 70.7%는 이미 부정적 영향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경제적 영향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계 지출이 증가했다고 느끼는 항목으로는 냉난방비 등 에너지 비용이 70.2%로 가장 많았고, 식료품비(65.3%)와 의료비(52.6%) 역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를 넘어 '민생 문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이상기후 현상은 폭염(67.1%)과 집중호우(52.1%)로 나타나, 극단적 기상 현상이 체감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으로 분석된다. ◇기후변화 인식, '불안'이 지배적 감정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 감정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가장 많이 나타난 감정은 '불안'(73.1%)이었고, 미안함(64.5%), 분노(59.9%), 무력감(57.2%)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정보 수준을 넘어 정서적 반응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기후변화 적응' 분야—폭염·홍수 대응 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기후변화 적응 정책(폭염·홍수 대응 등) 46.7% △자연환경 보전 28.5% △기업 규제 및 책임 강화 25.6%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완화(온실가스 감축)'보다 이미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적응 정책'의 시급성을 국민이 체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 처음 조사한 기후테크의 경우 인지도는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20대 인지도는 20.4%, 반면 60대는 8.5%에 그쳐 세대 간 격차가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테크가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기술 기반 대응에 대한 잠재적 수용성은 확보되어 있으나, 정보 접근성과 이해도가 부족한 초기 단계"로 평가했다. 또한 기후테크 산업 성장의 주요 장애 요인으로는 △높은 비용 △기술 상용화 불확실성 △정책 및 제도 미비 등이 지적됐다. 이는 향후 정책 지원과 투자 확대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환경보다 경제"…우선순위 역전 흐름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변화는 환경과 경제 사이의 우선순위 이동이다. 환경보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2023년 52.4%에서 2025년 42.2%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응답은 18.5%에서 19.6%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고물가와 경기 둔화 등 경제적 압박이 장기화되면서, 환경 가치보다 현실적 생계 문제를 우선시하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로 보고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2022년 74.2%로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25년 68.7%를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의 기후위기 체감도(80.6%)와 문제 인식(57.5%)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경제적 부담 속에서 환경보전의 우선순위는 오히려 42.2%로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이는 고물가와 경기 불안 속에서 국민들이 현실적 생계 문제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번 조사는 기후 위기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가계경제를 직접 압박하는 민생 문제로 전환되고 있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의 환경정책은 산업과 민생, 복지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정책이 △에너지 안전망 강화 △취약 계층 지원 △생활밀착형 감축 정책 등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와 환경의 동시 달성'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빌딩 벽면의 변신…전기 생산하고, 냉방 수요도 줄이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지상 50층, 지하 6층 규모인 이 건물은 10년 전 미국 소재 웹사이트 아메리칸 아키텍처 닷컴이 '올해의 빌딩(Building of the Year)'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건축 관련 상을 받았다. 2013년 준공된 이 건물은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설비시스템을 갖춰 건물 유리벽면 전체와 옥상 부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은 전체 3279개로,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빌딩 조명에 필요한 전력 60~70%를 충당한다. 여름철에는 사무실 내부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하고, 겨울철에는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하는 커튼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전력 수요 급증이 동시에 심화되는 가운데, 건물의 '벽면'을 활용한 새로운 태양광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옥상 중심 태양광을 넘어, 건물 외벽 자체를 발전 설비로 전환하는 건물 파사드 일체형 태양광(building façade photovoltaics, FIPV)이 도시 에너지 시스템과 기후 대응 전략을 동시에 바꿀 수 있는 핵심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기술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확보 차원을 넘어 도시의 기후 회복력을 강화하는 복합적 솔루션임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건물 외벽 일체형 태양광(FIPV)은 건물의 외장재 자체를 태양광 발전 기능을 가진 재료로 대체해 외벽이 곧 전력 생산 설비로 작동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는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부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축 외피와 발전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FIPV는 콘크리트 벽면에 적용되는 불투명형 패널과 창문에 적용되는 반투명 태양광 유리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설치 과정에서는 외벽 구조 안전성, 풍하중, 내구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데, 전력 생산을 위한 배선과 인버터 등 전기 시스템이 함께 구축하게 된다. 또한 패널과 외벽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과열을 방지하고 단열 성능을 높이는 열 관리 설계도 중요하다. 특히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시에서는 옥상보다 넓은 외벽 면적을 활용할 수 있어 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FIPV는 건물을 단순한 에너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절감하는 복합적인 인프라로 전환시키는 기술로 평가된다. ◇전 세계 잠재력 732TWh… “도시 자체가 발전소로" 연구팀은 위성 기반 건물 데이터와 3차원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전 세계 FIPV 잠재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기술 조건에서 FIPV는 연간 약 732.5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300kWh의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를 기준으로, 2억 가구 이상이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연구팀은 “이는 단순히 새로운 발전원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건물 외벽 면적은 옥상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기존 태양광의 공간 제약을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FIPV는 일반 태양광과 달리 직사광보다 산란광(diffuse radiation)에 더 크게 의존하는 특성을 보여,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전력 생산 + 냉방 절감…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인다" 이 기술의 핵심은 단순 발전이 아니다. FIPV는 건물 외피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차양(shading)과 단열(insulation) 기능을 제공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295.6TWh의 전력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는 건물 전력 사용량의 평균 8.1%를 줄이는 수준이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차단해 실내로 열이 들어오는 것을 줄이고, 동시에 추가적인 열저항층 역할로 냉방 부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폭염 시기에 중요하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순간, FIPV는 전력 생산과 수요 억제를 동시에 수행해 전력망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2050년 최대 37.7Gt 감축… “작은 온도, 큰 의미" FIPV가 본격적으로 확산할 경우 기후변화 완화 효과도 상당하다. 논문에 따르면 2050년까지 누적으로 최대 37.7Gt(기가톤, 1Gt=10억톤)의 이산화탄소(CO₂), 377억톤을 감축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1년에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양이 CO₂로 500억 톤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같은 감축으로 지구 온난화를 약 0.052°C 억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0.05°C라는 수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기후 시스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후 임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시간 확보' 효과로 해석된다. ◇경제성: “비싸지만 결국 이익"… 80% 지역에서 순지출 감소 FIPV의 가장 큰 논쟁은 경제성이다. 실제로 균등화 발전 단가(LCOE)는 kWh당 약 0.147달러로, 대규모 태양광(약 0.044달러)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총 비용'이 아니라 '총 효과'다. 연구 결과, 전 세계 도시의 80% 이상에서 생애 주기를 통해 지출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력 생산과 냉방 부하 감소 효과를 합산했을 때, 시스템 수명(25년) 동안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된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25년을 기준으로 평균 내부수익률(IRR)은 세계 평균이 약 6.45%로 나타났는데, 이는 안정적인 투자 수익률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일부 지역(서유럽, 남아시아, 브라질)은 15%를 초과해 매우 빠른 자금 회수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냉방 절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익'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FIPV는 발전 설비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건축 자재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좁은 국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 전략적 의미가 크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 밀도가 높고,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전통적인 대규모 태양광 확대에 불리하지만, FIPV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FIPV 잠재력은 연간 약 10.7TWh로, 세계 10권 내에 들어간다. 한국은 특히 ▲공간 제약 해결: 옥상 대신 벽면을 활용함으로써 토지 문제를 회피할 수 있고, ▲도심형 분산 전원 구축: 도심에서 직접 생산·소비가 가능해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폭염 대응 효과: 여름 냉방 수요가 큰 한국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 다만 다만 한계도 존재 한다. 한국은 중위도 기후로, FIPV 효과가 열대 지역보다 다소 제한될 수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태양열 유입이 줄어들어 난방 수요를 늘리는 방향을 작용, 순절감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가스 및 지역난방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발전소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재정의" 이번 연구는 FIPV를 단순한 태양광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건축·기후 대응이 결합된 '통합 인프라'로 정의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를 줄이며,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 탄소를 감축하는 복합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특히 정책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기 투자비 절감을 위한 세제 혜택, 탄소배출권 보상, 도시 설계 인센티브 등이 결합될 경우 FIPV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과거 30년 배출한 온실가스 51조 달러의 경제 피해 유발

과거에 개인과 기업, 국가 단위에서 배출한 탄소가 이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켰고, 미래에도 대기 중에 남아서 훨씬 큰 손실을 발생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1990~2020년 사이에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현재까지 51조 달러(7경7000조원) 이상의 경제 피해를 유발했고, 이렇게 배출된 온실가스가 향후 2100년까지 지금까지 피해의 10배를 유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도어(Doerr) 지속가능성대학원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과거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현재와 미래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화폐 단위로 정량화하는 통합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개인과 기업,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구체적으로 따진 이번 연구의 결론은 기후변화 논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탄소는 부채다"…미래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책임 연구진은 탄소 배출을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제적 부채'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과거 배출로 이미 발생한 손실보다, 해당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손실이 최소 10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가 단발적 충격이 아니라 경제 성장률 자체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구조적 요인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배출은 미래 경제에 대한 일종의 '지연된 비용 청구서'인 셈이다.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의 소비 행동 역시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로 환산된다. 특히 2022년 기준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테일러 스위프트(팝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복서), 제이 지(래퍼) 같은 인물이 상위권에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해 오는 2100년까지 각각 100만 달러(약 15억 원) 이상의 미래 경제적 손실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일반 개인의 행동에서도 구체적인 비용이 산출된다. 장거리 항공편 연 1회(10년 지속)는 약 2만5000달러, 육류 소비 지속은 수천 달러 규모 추가 피해를 유발한다. 반대로 채식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은 각각 약 6000달러의 피해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개인의 소비 선택이 단순한 생활 방식이 아니라 전 지구적 경제 손실과 직접 연결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기업 책임 순위: '탄소 메이저'의 압도적 영향 기업 단위에서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는 1988~2015년 누적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업별 책임을 분석했다. 주요 기업 순위 (경제적 피해 기준)를 보면, 1위은 사우디 아람코(사우디아라비가 국영 석유기업)로 2020년까지 약 3조 달러 피해를 유발했고, 2100년까지 약 64조 달러 추가 피해를 발생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엑슨모빌(미국 석유기업)은 2020년까지 약 1.6조 달러의 피해를 유발했고, 미래에도 약 29조 달러의 피해를 더 가져올 것이다. 이밖에도 가즈프롬(러시아 가스기업), 이란 국영석유회사(이란 국영석유), 페멕스(멕시코 국영석유), 인도석탄(인도 국영석탄), 쉘(글로벌 석유기업), BP(영국 석유기업), CNPC(중국 국영석유), 쉐브론(미국 석유기업) 등이 앞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으로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미래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국가별 책임 순위: 가해국과 피해국의 역설 국가 단위 분석에서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누적 배출을 기준으로 경제적 피해를 산출했다. 배출 책임이 큰 국가(가해국) 순위에서 1위는 미국으로 약 10조1800억 달러의 피해를 끼쳤다. 2위는 중국으로 8조7000억 달러, 3위 유럽연합(EU)은 약 6조4200억 달러, 4위 브라질은 약 3억 5500억 달러, 5위 러시아는 약 3조 270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입은 피해 규모가 국가(피해국)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피해를 입은 규모가 약 16조 2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2위는 유럽연합으로 약 7조5700억 달러, 3위는 중국으로 6조550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4위 일본은 3조8500억 달러, 5위 인도 2조8400억 달러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최대 가해국이면서 동시에 최대 피해국으로 나타났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손실의 절대 금액도 커진다는 것 특징이다. 또, 배출과 피해는 국가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중위권에서 '가해국이자 피해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 배출 책임에서 약 7200억 달러(1086조원)로 중상위권(16위)이었고, 피해 규모는 약 8300억 달러(1252조원)로 1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글로벌 배출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국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국가에 유의미한 경제적 피해를 입힌 국가인 셈이다. ◇기후 문제는 이제 '정산 가능한 경제 문제' 이 연구는 기후변화를 윤리적 논쟁에서 경제적 책임 문제로 전환시켰다. 개인은 소비를 통해, 기업은 생산을 통해, 국가는 산업 구조를 통해 각각 정량화 가능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앞으로 발생할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과거 탄소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경제적 손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의 피해를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배출에 따른 전체 '기후 부채'를 결코 청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금은 단순한 환경 대응이 아니라 미래 경제 손실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를 고려한 정책 선택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온난화 적응하느라 작아진 생선…인류 식탁은 텅 비어

가파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바다 물고기가 적응하느라 크기가 작아지면서 전 세계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온난화가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 연구 결과다. 폴란드 야기엘로니안대학교와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발표한 논문에서 온난화에 대한 어류의 '진화적 적응'이 오히려 전 세계 어획량 감소를 가속화한다는 점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기존 수산자원 예측 모델이 간과해온 핵심 변수로, 향후 식량 안보 논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번식하고, 더 작아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어류의 대사율이 증가하고 자연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물고기들은 생존과 번식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애 전략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구체적으로 어린 시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이른 시점에 성숙 단계에 도달한다. 문제는 성숙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성장에 쓰이던 에너지가 번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성체의 최대 몸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개체 수준에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일찍 번식하면 생존 확률이 낮은 환경에서도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어획 대상이 되는 개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체 어획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물고기가 성장보다 번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으면 바다 전체의 물고기 양, 즉 생물량(biomass)은 과거보다 줄게 된다. 어획량을 채우기 위해 남획이라도 하게 되면, 물고기 크기는 더 작아지고, 어획량은 더 줄게 된다. ◇“진화를 고려하면 어획량 감소 더 뚜렷" 연구팀은 전 세계 주요 43개 어종을 대상으로 기후 시나리오별 어획량 변화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단순히 수온 상승의 직접적 영향만 고려할 경우 어획량은 약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 어류의 진화적 적응을 포함하자 감소폭은 22%로 확대됐다. 이는 진화가 기후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손실을 약 50% 추가로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특히 온실가스 고배출 경로(시나리오, SSP3-7.0)에서는 세기말까지 어획량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대로 저배출 경로(SSP1-2.6)를 따를 경우 연간 약 1800만 톤의 어획량을 보전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어획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물고기의 크기 감소는 해양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생태계에서 포식 관계는 주로 몸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상위 포식자의 크기가 줄어들면 먹이 생물을 통제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실제로 북서대서양 스코샤붕 해역에서는 상위 포식자의 평균 크기가 약 40% 감소하자, 먹이 생물의 생물량이 300% 증가하는 현상이 관측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시 플랑크톤 구조를 변화시키며, 결국 생태계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재편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먹이였던 종이 포식자의 어린 개체를 잡아먹는 '관계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생태계는 바다가 아니라 담수(민물) 환경으로 나타났다. 민물 생태계는 해양보다 온도 상승 폭이 더 크고 변동성이 높아, 어류의 진화적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몸 크기 감소와 생태계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식탁도 직격탄… 명태·고등어·멸치 모두 영향권 이번 연구는 한국 수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시사한다. 분석 대상 43개 어종에는 한국에서 소비 비중이 높은 주요 어종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명태는 최대 체중이 약 12% 감소하고, 이에 따라 연간 약 50만 톤의 어획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외에도 고등어·멸치·갈치·참조기·대구·전갱이·꽁치·청어·가다랑어·까나리 등 한국 연근해 주요 어종 대부분이 동일한 경로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어종은 공통적으로 “더 빨리 자라지만 더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1990년대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대구(대서양대구) 어획 붕괴 사례를 중요한 교훈으로 제시한다. 당시 대구 개체군은 과도한 어획과 환경 변화로 급감했고, 이후 어획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체군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개체 수 감소가 아니라, 생태계가 '새로운 안정 상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구조가 바뀌고, 작은 개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회복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소형화 진화' 역시 이와 유사한 비가역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고기를 '진화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물고기의 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물고기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생선의 크기 변화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생태계와 식량 시스템에 보내는 구조적 경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기존 수산 관리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모델은 물고기를 '환경에 반응하지만 진화하지는 않는 존재'로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후 변화와 어획 압력이 결합해 매우 빠른 진화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화적 변수를 포함한 수산자원 모델 도입 △어획 압력의 전략적 조절 △대형 개체 보호를 통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 △생태계 기반 관리 접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후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지목된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래의 바다는 물고기가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재앙 피하려면 온실가스 배출 ‘제로’로 부족…‘마이너스’가 필요

오늘날 전 세계는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Net-zero)'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최신 과학 연구는 단순히 배출량 0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는 이미 시작된 기후 변화의 시계바늘을 멈추기에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이제는 이미 대기 중에 쌓여 있는 온실가스를 직접 흡수해 제거하는 마이너스 배출, 즉 '네거티브 배출(negative emissions)'이 필수인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멈추지 않는 기후 시계: 왜 '감축'만으로는 부족한가 인류가 오늘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중단하더라도 지구의 기온 상승과 그로 인한 피해는 즉각 멈추지 않는다. 이미 지구 대기 중에 차 있는 온실가스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기온을 계속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1월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온도가 안정화된 후에도 해수면 상승(SLR)이나 영구동토층 해빙(PFT)과 같은 '지연된 기후 영향(Time-lagged impacts)'이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에 비유한다. 이미 속도가 붙은 기후 재앙이라는 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배출 감축)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차를 재빨리 세울 수 있는 것처럼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인 네거티브 배출을 통해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직접 낮춰야만 기후재앙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넷제로 달성 이후에도 수백 년간 순배출량이 마이너스(-)가 되는 '순 네가티브 배출(Net-negative)'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아다. ◇10년 앞당겨진 데드라인과 '예방적' 탄소 가격 기후 시스템의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더 빠른 행동을 요구한다. IIASA 연구팀은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후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넷제로 달성 시점은 기존 계획보다 약 10년 정도 앞당겨진 2041년경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논문은 기후 위기를 일종의 보험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2030년 탄소 가격을 현재 예측치보다 대폭 높은 톤당 425달러 수준으로 인상하는 '예방적 프리미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탄소 제거 기술(CDR)의 조기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에 아주 높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막대한 복구 비용을 현재 세대가 분담하는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법적 의무가 된 기후 보호와 국가 간 형평성 네거티브 배출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를 넘어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변화협약 가입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기후 시스템을 보호해야 할 구속력 있는 의무가 있고, 상당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권고 의견을 냈다. IIASA 연구팀은 이러한 법적 판단이 결국 국가 간에 '탄소 제거 의무(carbon removal obligations)'를 공정하게 분담하는 제도적 설계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각 국가의 역사적 배출 책임과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정치적 주기와 상관없이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강력한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탄소 제거 기술'의 두 얼굴: 자원 고갈과 환경 영향 하지만 네거티브 배출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이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 칸타브리아 대학교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연구팀은 이달 초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0'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탄소 제거 기술의 잠재적 부작용을 경고했다. 직접공기포집(DACCS)과 같은 화학적 제거 기술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위해 니켈(Ni)과 바륨(Ba) 같은 핵심 광물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자원 공급망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또한 생물학적 제거 기술(BECCS)이나 바이오차(Biochar)의 경우, 대규모 경작에 필요한 칼륨(K) 등의 비료 자원 수요를 최대 70%까지 높여 식량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조림(Forestation) 역시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 증가를 낳게 되고, 저장된 탄소가 다시 배출될 위험이 크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기후 안정을 위한 정책 제안 전문가들은 탄소 제거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네거티브 배출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배출돼 대기에 있는 온실가스를 제거하기에 앞서 배출 자체를 미리 줄이는 데 우선을 둬야 한다. 둘째, 지역적 특성에 맞는 최적의 기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특정 기술의 독점을 피하고 토지, 물, 광물 자원의 가용성을 고려하여 환경 영향을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자원 순환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 탄소 제거 설비에 필요한 금속 자원의 재활용률을 극대화하고, 폐기물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사용하여 자원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결국 네거티브 배출은 인류가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인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공사장 터파기 때 나온 흙도 온실가스 배출원”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굴착 토양이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않았던 새로운 탄소 배출원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하철·하수관·건물 공사장에서 터파기로 파낸 흙이 지표면에 쌓여 있을 경우 토양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굴착 토양을 일종의 숯인 바이오차(biochar)와 혼합한 뒤 깊게 매립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경희대학교 응용환경공학과 유가영 교수 연구팀은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한 굴착 토양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CO2)와 메탄(CH4) 배출을 실측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관리 방안까지 제시하는 내용의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바이오차'에 발표했다. ◇도시 굴착 토양이 새로운 탄소 배출원 연구팀이 국내 재개발 지역에서 굴착 토양을 조사한 결과, 지표면에 노출된 굴착 토양은 연간 헥타르(㏊)당 약 12.78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이산화탄소이고, 일부는 메탄이었다. 굴착 과정에서 토양이 뒤집히면 공기 접촉이 늘어나고 온도가 상승해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 결과 토양 속 유기물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나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특히 메탄은 배출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이산화탄소의 20배 이상으로 매우 높기 때문에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굴착 토양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기후 영향 가운데 약 15~22%는 메탄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기후 변화 추세가 계속되면 이러한 배출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폭염은 미생물 활동을 증가시켜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리고, 장마나 집중호우 때는 토양을 혐기성 상태로 만들어 메탄 발생을 촉진한다. 즉 굴착 토양은 기후 변화와 상호작용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깊은 매립'이 토양 탄소 분해를 억제 연구진이 제안한 첫 번째 해결책은 굴착 토양을 깊게 매립하는 토양 캡핑(soil capping) 방식이다. 이는 탄소가 풍부한 굴착 토양을 지표면 아래에 묻고 그 위를 탄소 함량이 낮은 토양으로 덮어 외부 환경과의 접촉을 줄이는 방법이다. 토양이 깊은 곳에 매립되면 온도가 낮아지고 산소 공급이 줄어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 활동이 크게 둔화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굴착 토양을 40~60㎝ 깊이에 매립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이 약 4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깊은 토양층은 집중호우가 발생하더라도 쉽게 수분 포화 상태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메탄 발생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 때문에 메탄 배출 역시 상당 부분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차, 토양 속 '탄소 저장 물질' 연구팀이 제시한 두 번째 핵심 전략은 바이오차의 활용이다. 바이오차는 나무나 농업 부산물과 같은 바이오매스를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온으로 열분해해 일종의 숯과 같은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휘발성 물질이 제거되고 탄소 중심의 안정적인 구조가 형성된다. 바이오차의 가장 큰 특징은 탄소 안정성이다. 토양에 투입된 바이오차는 분해 속도가 매우 느려 장기간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국제 연구에서는 토양에 투입된 바이오차의 탄소가 100년 후에도 약 89%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땅속에 기체 상태로 이산화탄소를 묻는 탄소 포집 저장(CCS) 방식보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도 있다. 또한 바이오차는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어 토양 물리성을 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실험 결과 굴착 토양에 약 2% 비율로 바이오차를 혼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은 약 8.9%, 메탄 배출은 약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방법을 함께 적용하면 효과 극대화 연구팀은 깊은 매립과 바이오차 혼합을 동시에 적용할 경우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굴착 토양을 바이오차와 혼합한 뒤 40~60㎝ 깊이로 매립하면 지표면에 그대로 노출했을 때와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은 42.5% 감소하고 메탄 배출은 95.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탄소 감축 효과의 대부분은 바이오차 자체가 토양 속에 장기간 저장되면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탄소 격리 효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는 특히 도시 기반시설 공사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노후 하수관 교체나 지하 인프라 설치 과정에서는 땅을 굴착한 뒤 다시 메우는 과정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는 굴착한 흙을 그대로 되메우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흙에 바이오차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되메우는 방식이 훨씬 큰 탄소 격리 효과를 낼 수 있다. 단순히 흙만 다시 메울 경우에도 깊은 매립 효과로 일정한 배출 감소가 가능하지만, 바이오차를 함께 사용할 경우 토양 자체가 장기간 탄소를 저장하는 도시형 탄소 저장소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굴착 토양을 단순한 건설 부산물로 처리하기보다 탄소 관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규모에서도 큰 감축 잠재력 연구팀은 이러한 관리 방식을 국가 규모로 확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방치된 굴착 토양에서 약 14만톤의 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만약 이 기간 동안 발생한 굴착 토양에 바이오차 혼합과 깊은 매립을 적용했다면 총 384만톤의 탄소 감축 및 격리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폐기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감축된 384톤의 대부분인 약 378만톤은 바이오차를 매립하면서 얻는 탄소 격리 저장 효과였고, 나머지는 토양 배출 감소 효과였다. 바이오차를 별도로 땅에 매립할 경우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하수관 재정비처럼 어차피 땅을 굴착해야 할 경우에는 파낸 흙 대신 바이오차를 섞어 저장하면 이산화탄소 격리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화재 위험 없는 ‘바나듐 흐름 배터리’ 차세대 전력망 핵심으로 떠올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일 이호현 제2차관이 에이치투(H2) 사업장을 방문해 비(非)리튬계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H2는 바나듐 흐름전지 전문 기업이다. 덕분에 바나듐 흐름 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바나듐 배터리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10시간 이상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LDES)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나듐 흐름 배터리, 즉 바나듐 레독스 흐름 배터리(VRFB)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와 화재 위험 최소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일까. ◇바나듐 이온의 다양한 산화-환원 상태 VRFB는 전해질 내 바나듐 이온의 가역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지난해 9월 '넥스트 리서치(Next Research)' 저널에 발표된 이란 과학기술대학교(IU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의 리뷰 논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양극 전해질의 4가와 5가 바나듐 이온 쌍, 즉 V(IV)/V(V)과 음극 전해질의 2가와 3가 바나늄 이온쌍, 즉 V(II)/V(III)이 각각 다른 산화 상태 사이를 이동하며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가역적으로 변환한다. 노르웨이 연구팀은 지난달 '저널 오브 파워 소스(Journal of Power 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VRFB의 작동 원리를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외부 탱크에 저장된 액체 전해질이 펌프에 의해 셀 스택(cell stack, 배터리에서 실제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반응 장치)으로 순환하게 된다. 셀 스택에서는 전해질이 전극과 접촉해 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이온 선택성 막(Nafion 등)이 두 전해질의 혼합을 막으면서 특정 이온만 통과시켜 전하 균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전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바나듐 배터리의 최대 강점은 압도적인 안전성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유기 용매 기반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및 열폭주 위험이 상존하지만, 바나듐 기반 전해질은 가혹한 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서도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바나듐 배터리는 물 기반의 비연소성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및 폭발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나듐 배터리의 수계 전해질은 비열이 매우 높고 에너지 방출이 제한적이어서 리튬 배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명적인 시스템 실패 위험이 거의 없다. 수계 전해질의 사용이 전압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은 있으나, 화재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한다. 여기에다 VRFB는 전력을 담당하는 셀 스택과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질 탱크가 분리된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핵심 부품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를 줄여 장기간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낮춘다. 과충전 시 가스 발생 등의 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즉각적인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적절한 전압 제어 및 관리 전략을 통해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25~30년 이상 장기 운전도 가능 VRFB는 양극과 음극 모두 동일한 바나듐 원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해질이 섞여도 용량이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교차 오염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바나듐 배터리는 장기 수명과 경제적인 확장성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기후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배터리는 2만 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할 수 있어 25~30년 이상 장기 운전이 가능해 리튬 배터리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출력(Power)과 에너지 용량(Energy)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셀 스택의 크기와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액 탱크의 크기를 분리할 수 있어 단순히 탱크 용량과 전해액 양만 늘리는 것만으로도 대규모 저장 용량을 매우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부는 이러한 장점을 기반으로 바나듐 배터리 등 비(非)리튬계 에너지저장 기술의 빠른 개발과 보급을 지원해 국가 전력망을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호현 차관은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이 되기 위해 장주기 ESS 구축이 관건"이라며 “비(非)리튬계 ESS 기술이 우리 전력망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의 중요한 실적(트랙레코드)이 될 수 있도록 시범 사업 지원과 기술 개발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中 다롄엔 100~400MWh 규모로 운영 중 한편,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VRFB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바나듐 흐름 배터리 시설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9월부터 1단계 100~400MWh 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향후 200~800MWh까지 확대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북부 풍력 지역에서는 풍력 발전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흐름 배터리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영국과 호주에서도 장주기 ESS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계속될 경우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수천 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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