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이너서클” 한마디에…금융지주 회장 ‘연임 공식’ 흔들 [이슈+]

금융권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편 화살이 겨눠지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를 비롯해 회장 선임 결정을 앞둔 금융사에 긴장감이 실리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내놓을 지배구조 개편 방식에 따른 변화에도 이목이 모인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사의 연임 관행에 대해 '부패한 이너서클' 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금융 분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금융 지배구조에 대한 투서가 요즘 엄청나게 들어온다"며 “(주요 인사들이) 회장을 했다가 은행장을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만히 놔두니 부패한 '이너 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면서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덧붙였다. 발언의 타깃은 사실상 금융지주와 이사회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 시도가 관행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나, 이사회를 '회장 라인' 인사로 채운 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우호 세력 중심으로 구성되는 등 사실상 연임이 용이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과거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3연임으로 9년간 회장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현직에 유리한 회장 선임이 가능한 이사회·사추위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한지주는 진옥동 회장 1기 초반인 지난 2023년 말 9개 계열사 대표 전원을 연임시키며 “전쟁 중 수장 안 바꾼다"는 전략을 내세워 기존 라인을 유지했다. 당시 신한은행·카드·라이프 등 핵심 계열 CEO들이 사실상 '진옥동 사단'이라는 평가가 붙기도 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에 걸쳐 4연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올해도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임기 종료를 앞둔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이 속속 연임을 확정한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사회 개편을 비롯한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기 위해 이미 별도 전담반(TF)을 구성을 예고했다. 은행·금융지주 CEO 교체 때마다 불거지는 '셀프 연임·코드 인사' 논란에 대해 정면으로 지배구조를 손보겠다는 신호를 낸 것이다. TF는 사외이사 구성 정합성 제고, 최고경영자(CEO) 자격 기준 마련 등 제도 개선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 대통령의 공개 질타 이후 금융지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BNK금융지주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내달 검사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회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 등을 살펴보기 위한 준비를 착수했다는 전언이다. 지난 8일 BNK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빈대인 BNK금융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단독 후보로 확정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장 선임 절차와 관련해 후보자 접수 기간이 너무 짧다는 비판을 낸 바 있다. 회추위나 임추위가 최종 후보를 선정했거나 압축후보군 대상 면접이 진행 중인 금융지주도 일제히 사정권이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현 임종룡 회장 체제에서 지배구조 논란이 지적되고 있다. 올 들어 '이사회 물갈이를 통해 연임 기반을 다진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회장 연임을 염두에 둔 자기 보호형 인사라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회장 후보 추천 이후 검증 과정에서도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점에서 '깜깜이 추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년 이사회 재편과 회장 승계 구도 밑그림이 그려지는 KB금융도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KB금융지주는 현재 사외이사 7명 중 5명의 임기가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종료되며 이사회 구성원의 70%가 같은 시기에 재선임 혹은 교체 절차에 들어간다. 양종희 회장의 임기 만료는 내년 11월로, 이 시기와 약 8개월 간격이다. 3월 사외이사 구성 변화가 연임 심사 및 차기 회장 선임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시선이 모인다. KB금융의 경우 사외이사 전원이 회추위에 참여하는 구조로, 기존 이사회 기류가 강하게 유지되는 부작용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달 진행한 계열사CEO 인사에서도 증권·저축은행 등 일부 계열사 CEO를 교체하고 기존 인사를 유지한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은행, 증권사와 같은 지주·주력 계열사 핵심 보직을 내부 출신이나 기존 회장 라인 중심으로 채워 외부 견제나 세력 교체 여지를 줄이는 방식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회추위가 단독 후보를 최종 추천한 단계라도, 당국의 검사를 통해 중대한 이슈가 불거지면 절차상 정지될 수 있어 긴장감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 상폐 결정 속도내면 뭐하나…법원으로 모여드는 ‘좀비들’

올해 들어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 절차를 손질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실제 퇴출은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폐지가 결정된 상장사는 49곳으로 집계됐다. 그중 코스닥 시장 상장 기업이 38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코스닥 기업 상장폐지 결정은 지난 3년간 평균(14곳) 대비 2.5배 정도 늘어났다. 올해부터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요건을 손봐 좀비기업 퇴출 절차에 속도를 냈다. 상장폐지는 정량적 요건만 판단하는 형식적 상장폐지와 기업의 상장 적격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실질심사로 분류된다. 거래소는 두 기준 모두 높일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7월부터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를 기존 3심제에서 2심제로 간소화했다. 실질심사 대상기업에 부여되는 개선 기간도 최대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였다. 기존에는 기업에 회생 기회를 부여하는 쪽으로 상장폐지 제도의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 부실기업은 신속하게 퇴출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상장폐지를 위한 재무 요건도 내년부터 차례대로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 시가총액과 매출액이 각각 40억원, 30억원 이하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다만 기준이 낮은 탓에 지난 10년간 해당 요건으로 상장폐지가 이뤄진 적은 없다. 내년 1월부터 시가총액 기준을 먼저 150억원으로 높인다. 2029년까지 시가총액 300억원, 매출액 100억원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한국거래소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 수도 2026년 14곳에서 2029년 165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더라도 바로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상장폐지 결정에 불복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해당 가처분 신청은 기업이 법원에 상장폐지 절차의 집행을 잠정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임시 조치로,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상장 폐지 절차가 중단된다. 실제로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 38곳 중 27곳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은 대부분 기각되지만, 실제 상장폐지까지는 짧게는 3개월에서 길면 1년 이상 지연된다. 2019년 이후 가처분 소송이 인용된 경우는 두 건에 불과하다. 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정리매매 등 후속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 절차가 멈췄다고 투자자 리스크가 사라진 게 아니다"며 “거래소도 신속하게 심사하겠다고 한 만큼 법원도 '시간끌기용' 가처분은 빠르게 기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이슈+] 수급 불균형에 원·달러 1480원대 고착 우려...당국 “달러 유입 촉진” 대응 전환

원·달러 환율이 8개월 만에 장중 1480원대를 넘어서며 고환율 국면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외환당국의 경계 발언과 시장 안정 조치에도 환율 수준이 좀처럼 낮아지지 않자, 일시적 급등인지 구조적 변화의 신호인지를 둘러싼 해석이 엇갈린다. 외환당국은 '달러 유출 차단'에서 '달러 유입 촉진'으로 대응 방향을 바꿨다. 1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6.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주 환율은 장중 1482원대까지 오르며 4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연말을 앞둔 외화 수요 증가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달러인덱스 상승과 함께 외환시장의 달러 유동성이 빠듯해지면서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환율 움직임을 변동성 차원을 넘어서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기자설명회에서 “불필요하게 높은 환율 레벨은 조율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고환율이 금융위기라기보다는 물가와 분배 측면에서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외환당국 수장이 환율의 절대 수준에 개입 의지를 내비친 이례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개입이나 구두 경고만으로 환율 흐름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환율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잠시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거시 변수보다 수급 요인이 환율을 좌우하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과거 원·달러 환율을 움직이는 요인은 경상수지(무역)였다. 최근에는 수출 호조에도 환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수출과 환율 사이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확대로 인해 국내로 들어오는 외화는 줄고 해외 투자를 위한 국내 달러 수요는 늘면서 수급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 지목된 '서학개미' 외에도 금융기관도 외화수요를 늘린 주요 주체 중 하나다. 다올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실제 외화 수요를 주도한 주체는 국민연금보다 자산운용사·보험사 등 금융기관과 개인 투자자였다. 자산운용사는 해외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추종하기 위한 기초자산으로 미국 주식을 더 많이 사들였다. 연말 결산을 앞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며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일시적으로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고환율로 인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물가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0.3%포인트 높아진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에서 유지될 경우 내년 물가상승률은 기존 전망치(2.1%)를 웃도는 2.3%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수입 원가 상승은 에너지와 식료품 등 생활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달러를 살 때 환율은 1530원대를 넘어서며 해외여행·유학·직구 관련 체감 비용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수출 기업이나 해외 자산을 보유한 일부 주체는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고환율이 경제 주체 간 손익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용 총재는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우리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며 “성장과 물가, 양극화 측면의 위기일 수 있어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기존 서학개미와 국민연금 등 외환 수급 주체를 겨냥해 급증한 달러 유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압박해 온 조치에서 달러 유입 촉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외환당국은 18일 환율 급등의 원인을 구조적 외화 수급 불균형으로 보고 달러 유입을 가로막던 외환건전성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크게 네 가지로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규제 완화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의 선물환 비율 하향 조정 △수출기업 원화 용도 외화대출 허용 △외국인의 한국 주식 직거래 활성화다. 한국은행도 달러 유입 확대를 유도하려는 조치를 내놨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여고 한시적으로 외화건전성부담금 면제 조치를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한은은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환건전성 부담금 납입부담을 줄여 국내 외환 공급 유인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금융기관이 한은에 예치한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한은은 “금융기관이 주로 해외에서 운용하던 외화자금을 리스크 대비 안정적인 이자 수익으로 국내에서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환율 전망치를 최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내년 원·달러 환율 연평균 전망은 1390~1420원 수준으로 올라섰고, 상단은 1500원까지 열어둔 기관도 적지 않다. 최근의 고환율이 시장의 '눈높이'를 끌어올렸다는 판단에서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0월 이후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4분기 평균 환율(1,450원)은 전망치(1,420원)를 큰 폭 상회했다"며 “한 번 높아진 눈높이가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기적으로 1500원대 환율이 고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최근 환율 급등은 해외증권 투자 증가와 연말 외화 수급 불균형이 맞물린 '오버슈팅' 성격이 강하며, 계절적 요인이 해소되면 달러 공급 여건도 점차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ETF 투자 증가 속도 역시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형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환율 범위는 1350~1450원을 예상한다"며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을 대비하되 대외투자를 진행하는 기관은 환율에 대해 상승과 하락 양방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1470~1480원대의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지만, 내년 상반기 중에는 1400원대 중반에서 점진적인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적인 달러 강세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환율 수준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동 허 암로(AMRO, 아세안+한·중·일 역내 거시경제조사기구) 수석경제학자는 최근 고환율 흐름의 원인으로 “국내 투자자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에 투자 관심이 늘고 확대된 것이 요인"이라며 “정부가 외환시장 추가 개방·확대 조치를 도입했는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행에서 명확히 운용하는 프레임워크 틀 내에서 어느정도의 환율 변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단기 변동성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전망이 안정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다각화 만능 아니다…금융지주 수익 안정의 ‘전제 조건’ [이슈+]

금융지주사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 수익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고정이하여신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악화될 경우 수익 안정성 제고 효과도 약화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등을 고려해 차별화된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일 한국금융연구원이 2012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주요 은행지주 8곳을 대상으로 사업다각화가 수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그 효과가 어떤 조건에서 달라지는지를 실증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저금리 환경의 장기화, 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전통적 예대마진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국내 은행지주들은 증권, 보험, 카드 등 비은행 부문으로의 사업다각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지주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해 경영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한국금융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사업다각화는 전반적으로 금융지주사의 수익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기·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다각화 수준이 높을수록 수익 변동성이 유의하게 줄어들어 서로 다른 수익 패턴을 지닌 사업부문들의 상호 보완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은 경우 사업다각화의 안정성 효과는 약화됐다. 대손충당금 비율이 높은 경우에는 오히려 수익 변동성이 증가했다. 사업부문별로 보면 여신부문 자산비중이 모든 모형에서 일관되게 수익 변동성을 높였다. 투자부문 비중이 높아도 수익 안정성이 저해됐다. 이대기·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사업 다각화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건전성 확보와 균형잡힌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며 “여신부문, 투자부문의 높은 비중은 경기 민감도를 올려 수익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해 금융당국은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리스크 프로파일을 고려한 차별화된 감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국금융연구원은 조언했다. 건전성 확보를 전제로 사업다각화를 승인하는 한편, 계열사 간 내부거래, 위험 전이 모니터링을 강화해 시스템리스크를 예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대기·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지주 경영진은 시너지 창출 가능성, 내부 역량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사업다각화를 접근해야 한다"며 “여신부문 의존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비은행 부문 간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합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해 사업부문 간 위험 전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2조원 ELS 과징금, 판단은 내년으로…금소법 잣대 시험대 [이슈+]

최대 2조원에 달하는 과징금 규모의 확정을 두고 금융감독원의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제재심의위원회 절차가 본격화됐다. 은행권이 자율배상 등 사후구제 노력을 근거로 과징금 경감을 이뤄내는 데 성공할지 업권의 관심이 쏠린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시중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을 대상으로 제재심을 열고 제재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대심제를 진행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이들 은행에 총 2조원대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은행별로 판매액에 따라 KB국민은행이 1조원대, 신한·하나은행이 3000억원대,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이 1000억~2000억원대로 추청된다. 은행들은 자율배상과 판매 프로세스 개선, KPI(성과지표) 조정 등 사전 예방 및 사후구제 노력을 근거로 과징금 경감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이 지난달 11일 개정됨에 따라 사후적인 피해 회복 노력이 인정될 경우 과징금의 50% 이내에서 감액이 가능하다. 은행권은 사전 예방 노력과 추가 요건을 충족해 최대치인 75%까지 감면받는 것이 목표다. 금소법상 감경 기준 중 두 가지 이상의 사유를 동시에 충족할 경우 감경이 가능하다. 시중은행들은 지난주 금감원에 과징금을 감경해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은행들은 그동안 진행해온 자율 배상과 판매 절차 개선 등을 강조할 방침이다. 자율배상액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조3437억원에 달하며 합의율도 96.1%를 기록했다. 은행별로 자율 배상 규모는 최대 7000억원 수준(KB국민은행)에 이른다. 아울러 금감원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 관행에 맞춰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등 조직을 확충하고 소비자보호담당임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등 구조적 개선 절차에도 착수했다. 상품 사후 모니터링 추가 등 고위험상품에 소비자보호 체계 강화 및 KPI설계도 개선했다. 은행권은 금소법 위반의 중대성이 낮다는 점을 강조해 부과기준율을 최대한 낮추는 전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 위반의 중대성은 △매우 중대 △중대 △중대성 약함 등 3단계로, 중간단계인 '중대'의 경우 판매액의 30% 이상 65% 미만 부과기준율을 과징금으로 적용한다. 만일 제재심 이후 증선위 심의 과정으로 넘어간다면, '부당이득 10배 초과 감액' 근거를 내세울 수 있다. 금융위는 과징금이 부당이득인 H지수 ELS 판매 수수료 수익의 10배를 초과하면 감액을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금감원이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지적하며 맞서고 있어 이번 제재심에서 논리 공방이 치열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당국은 ELS 사태의 원인이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등 절차상 불완전성에 있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손실 위험 등 핵심 정보를 명확히 설명하고 설명서를 교부·확인해야하지만 상당수의 영업점이 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과거 20년간 손실률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거나 왜곡해 설명한 점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법의 6가지 판매원칙 중 1~2가지만 위반해도 과징금 대상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어 은행이 '적합성 원칙'에 의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재산 △거래목적 △투자경험 △연령 △상품이해도 △위험에 대한 태도 등 6가지 고객정보를 파악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당국은 은행의 ELS 고객이 오래된 점 등을 고려하면 단순항목도 누락하면 안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투업권과 달리 은행은 예금으로 재투자하는 경우나 투자경험이 부족한 소비자가 많아 적합성 원칙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시각이다. 당국이 소비자보호 기조를 시장에 나타낼 수 있는 사실상 첫 사례인 만큼 투자자 손실에 대한 책임이 크게 감경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업계는 5개 은행의 불완전판매 행위가 감독 규정 세부평가기준표상 1.7점을 받아 중간 단계인 '중대한 위반행위(1.6점 이상 2.3점 미만)'로 분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권에 기존에 통보된 과징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위험가중자산(RWA)을 과징금의 7배로 반영해야 한다. 자본금의 증발 뿐 아니라 RWA가 10조원대로 추가되는 것이다. 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의 1%p대 하락과 주주 배당액 감소 등으로 영향을 미친다. 자본 비율 악화는 현재 조단위로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이행에도 차질을 주게 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미 과징금과 비슷한 규모로 진행한 자율배상 조치와 상품 판매 프로세스 개선 등 손실 투자자 배상 및 사전 조치에 있어 다방면으로 개선했다"며 “금감원도 사후구제 노력과 은행권의 생산적 금융 이행에 따른 부담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과징금 경감쪽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제재심이 해를 넘겨 수차례 추가로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재심에서 결론이 도출되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최종 과징금이 확정될 것이란 예상이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지스 매각에 던져진 ‘국민연금’ 변수…인수전 시나리오가 바뀐다 [이슈+]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위탁한 투자금을 이관할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면서 인수전이 새 국면을 맞았다. 원매자가 소송전을 본격화한데다 우선협상대상자인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와의 인수 조건 차이라는 리스크 등 이슈가 맞물리면서 업계에선 완전히 새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14일 금융권과 투자은행(IB)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이지스자산운용에 맡긴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각에선 이미 회수 절차에 착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지스를 통해 스타필드 고양에 투자했던 약 3800억원의 자금에 대해 자산운용을 다른 운용사로 이관하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지스는 2016년 신세계와 함께 스타필드 고양 개발사업에 들어갔다. 이지스가 국민연금으로부터 약 3800억원(지분 약 49%)을 출자받아 신세계프라퍼티와 추진한 프로젝트다. 완공된 스타필드 고양은 꾸준한 임대수익으로 인해 이지스의 핵심 자산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국민연금은 이지스가 매각 과정에서 위탁자산 관련 정보가 사전 동의 없이 잠재적 인수자들에게 무단으로 제공됐다고 판단하고 위탁자금 전액 회수라는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26조원이 넘는 운용 자산을 보유 중인 이지스에 국민연금이 위탁한 자산은 2조원(시장 평가액 기준 7조~8조원) 가량인 것으로 시장은 추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산 이관이 현실화할 경우 이지스 운용 기반을 흔드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이지스 경영권 매각 작업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시장평가액 기준 거액의 자산이 갑자기 이동할 경우 회수 시점에 따라 운용자산이 크게 급감할 수 있어서다. 사업 안정성이나 신뢰도가 훼손되면 시장 지위가 흔들리게 되고, 영업 기반은 물론 매각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투자금 회수 외에도 약정 위반에 따른 민·형사상 조치까지 이어갈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이런 리스크가 극대화되는 형국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 담당 투자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자산을 어느 운용사로 이관할지 세부 검토에 들어가는 한편 후보 운용사들에 대한 인터뷰 진행 일정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자금이 빠져나가면 이지스의 다른 투자자들은 단기적으로 AUM 감소에 따른 충격이나 투자 구조가 재조정되는 등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지스의 다른 연기금이나 보험사들도 거버넌스 리스크가 높은 GP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주요 투자자가 다른 운용사로 교체되는 등의 구조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며 “다만 타 운용사로 이관하는 방안인 만큼 개별 부동산 펀드의 기초 자산이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원매자인 흥국생명이 매각 과정상 부당함을 붙잡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인수전을 흔들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 매각과 관련해 최대주주인 손 모 씨와 주주대표 김 모 씨, 공동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 모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1일 경찰에 고소했다. 매각 측이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힐하우스 측에 입찰가를 유출해 최고액을 얻어내는 등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선 흥국생명이 이지스 인수를 제안하면서 기존 임직원 300명 가량에 대한 '전원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내밀었다는 사실도 전해진다. 반면 힐하우스는 고용승계 범위를 100~150명 수준으로 제시하면서 인수 후 인력 축소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제시한 고용 수준에 따라 운영 체계를 조정할 경우 직원 1인이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10개 이상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국내 대형 운용사는 1인이 4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실사를 비롯해 리스크 및 품질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게 업계 공통된 평가다. 이는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나 주요 투자자들의 검토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 금융당국 또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시장에서 우려하는 '중국계 자본' 유입에 대해 정무적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의 인수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흥국생명 등 기존 원매자들의 재입찰 가능성도 있다"며 “실제로 매각주관사 측이 힐하우스와의 협상 결렬이나 매각 좌초 위기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 “화웨이 커질 바엔”…H200 중국 수출 빗장 푼 트럼프 속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의 대(對)중국 수출을 허용하면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을 둘러싼 또 한 번의 미·중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H200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최신 칩인 B200·B300보다 뒤처지지만, 현재 중국 수출이 승인된 저사양 칩 'H20'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성능 격차를 보인다. 이에 따라 올 연초 글로벌 AI 업계에 큰 충격을 준 딥시크를 비롯한 중국의 AI 기업들의 경쟁력만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미국이 H200 수출을 허용한 배경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의 대미 기술 의존도를 높이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중국 역시 자국 기업들의 H200 접근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H200 칩의 수출을 허용한 것은 중국 화웨이가 이미 비슷한 성능의 AI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어 안보 위험이 낮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그동안 H200의 중국 수출 허용 여부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왔다. AI 칩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부터 화웨이를 짓누르기 위해 물량을 대규모로 푸는 방안까지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하되, 엔비디아의 최신 칩은 미국 고객에게만 공급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엔비디아가 중국 및 다른 국가의 승인된 고객에게 H200 제품을 출하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통보했다"면서도 엔비디아의 블랙웰과 곧 출시 예정인 '루빈'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中 화웨이 맹추격 의식한 美…“시장 점유을 늘리자" 이 같은 결정의 배경 핵심에는 화웨이의 AI 기술력이 당초 미국 정부가 평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 정부는 H200을 중국에 수출하더라도 미국이 최소 18개월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 AI 기업들이 화웨이 대신 미국 기술 생태계에 의존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백악관은 화웨이가 자사의 최신 어센드 칩을 기반으로 개발한 AI 플랫폼 '클라우드매트릭스 384'가 블랙웰 칩을 적용한 NVL72와 유상한 성능을 낸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화웨이가 내년에는 엔비디아를 겨냥한 '어센드 910C' 가속기를 수백만 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시급성을 더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화웨이의 올해 어센드 칩 생산능력을 약 20만 개 수준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럼프 행정부가 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 것은 미국이 중국 시장 점유율을 유지함과 동시에 중국의 자립 기술을 낮추려는 이중 포석이라고 10일 보도했다.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침 리 선임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중국 내의 (H200과 그 이상 성능의 칩 개발) 혁신 인센티브를 줄일 목적으로 구형 기술을 수출하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엔비디아 H200은 전량이 대만 TSMC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중국 수출용은 먼저 미국으로 옮겨져 안보 심사를 거친 뒤 중국 내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미 행정부는 이 과정에서 H200 매출의 25%를 건네받는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미국의 제조업을 강화하며 미국 납세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자립 기술 강조하는 中…H200 도입할지 미지수 다만 중국이 H200을 적극적으로 도입할지는 불확실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AI 기술 자립을 목적으로 H200 칩 사용을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을 구매할 경우 자국산 대안 제품을 쓰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등 승인 절차가 의무화될 가능성이 크며, 정부 산하 기관의 H200 구매를 금지하는 조치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200은 기술적으로 화웨이, 캄브리콘, 무어스레드 등 중국 업체들의 어떤 제품보다 최소 한 세대 이상 앞선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산 칩 사용을 강하게 장려해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중국은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제한한 'H20'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사용을 제한한 바 있다. 중국이 미국 기술력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특히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될 경우 H200 칩 공급이 언제든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 중국에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 위쳇에는 “미국은 오늘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할 수 있지만 다음날 다시 금지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며 “중국이 미국 칩에 의존하는 한, 미국은 이를 이용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적었다. 외교·안보 싱크탱크 아시아그룹의 조지 첸 파트너는 “H200 칩은 단순한 AI 칩를 넘어 미중 관계가 얼마나 좋거나 나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H200 중국 수출 허용 조치를 두고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도 반발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의 크리스 맥과이어 선임연구원은 “H200 칩 수출 완화는 딥시크와 같은 중국 AI 기업들에 경쟁력을 더해줄 수 있다"며 “중국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왜 미국이 먼저 양보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현재 연방상원에는 H200을 포함해 블랙웰 기반 칩의 중국 수출을 향후 30개월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이 법안의 제안자 명단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이름을 올렸다. 공화당 소속 마이클 매클 하원의원은 “딥시크는 중국 공산당에 첨단 칩을 판매하는 것의 위험성을 일깨워준 경고음이었어야 했다"며 “중국은 성능이 낮은 엔비디아 칩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오픈소스 AI 모델을 개발했다. H200과 같은 고성능 하드웨어가 중국에 넘어갈 경우 그들이 무엇을 해낼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고 꼬집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암초 만난 이지스운용 매각…당국 ‘정성적 평가’도 통과할까 [이슈+]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전의 승자로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급부상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대주주 승인 가능성이나 중국자본 유입에 대한 여론의 반감정서 등이 맞물려 최종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시각도 일어나고 있다. 설상가상 원매자 측이 매각 주간사에 대한 법적 공방 이슈까지 제기하면서 딜 완주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형국이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간 '보험사 2파전' 형국으로 전망됐다가 힐하우스가 본입찰 이후 돌연 인수가를 1조1000억원까지 제시하며 판세를 뒤집은 것으로 전해진다. 흥국생명이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을 제시하며 최고가를 적어냈음에도 이를 따돌리며 우협 지위를 따냈다. 그러나 한편에선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정성적 평가가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당초 인수전에 힐하우스가 등판했다는 소식에 시장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지스운용이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회사인 만큼 여러 부문에서 당국의 까다로운 심사가 진행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힐하우스는 중국·미국·동남아 등 글로벌 LP가 섞여 있는 구조로 자금 출처나 건전성, 출자자 구성 파악, 지배구조 투명성이란 핵심 항목을 당국이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중국계 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국이 적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힐하우스 창업자 '장레이'의 이력상 중국계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힐하우스는 지난 2023년 인수한 SK에코프라임에서 연간 순이익(160억원)의 네 배를 웃도는 670억원 가량의 배당을 수령해 '과도한 배당을 통한 현금 회수'라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PEF가 주인이 될 경우 수익 안정성보다 엑시트·배당에 쏠리는 구조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힐하우스를 '중화권 자본'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여론의 영향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을 대량 위탁받는 이지스가 국부유출이나 안보, 부동산 주권 이슈가 정치권에서 쟁점화되면 금융위가 '정성 평가'에서 보수적으로 움직일 명분이 커질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 PEF가 인수 후 단기 배당이나 재매각으로 '먹튀' 논란을 일으킨 전례가 있어 당국도 최근 재무나 출자구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경영행태나 시장 영향 측면을 두루 고려하는 추세"라며 “정부도 금융주권 강화, 외국자본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론에서의 중국자본에 대한 반감 혹은 당국이 승인 이후 겪을 수 있는 논란 등 당국입장에서도 불편한 포인트가 많다"며 “이지스가 서울 주요 오피스 빌딩이나개발사업 등 대형 딜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 정보 유출이나 소유구조에 미칠 영향을 당국이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입찰 절차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는 원매자로 인해 인수전이 소송전으로 치닫고 있어 완주에 상당한 마찰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매각 주간사가 특정 후보 편의에 해당하는 기만·불법 행위를 일으켰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전날 흥국생명은 입장문을 내고 “매각주간사는 흥국생명에 소위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본입찰 이후 힐하우스에 인수 희망 가격을 본입찰 최고가 이상으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며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선 흥국생명의 법적 대응이 현실화할 경우 매각 일정 지연이나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당국 심사 강도 상향 등 매각 과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흥국생명이 가처분을 제기해 우협 선정 효력 정지를 요구하고 이를 법원이 인용한다면 매각 측 입장에선 우협과의 본계약(SPA) 체결이나 딜 클로징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대주주 심사에서 흥국생명의 '불공정·불투명 매각'이라는 지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이 입찰 절차까지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공정성 논란과 소송이 발생한 사안은 정치권과 여론을 자극할 수 있어 심사에 보수적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리스크가 커질 경우 힐하우스도 클로징 시점까지 규제 및 평판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의 리스크 가중으로 가격 조정 요구 등 현재 우협구조가 흔들리면, 매각 측도 가격보다 리스크가 덜한 투자자를 우선해 흥국생명·한화생명과 다시 협상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예상했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이슈+]코스닥, 이번엔 다를까?…강세론 무르익지만 그림자 여전

코스닥 시가총액이 종가 기준으로도 사상 처음 500조원을 돌파했다. 별다른 정책 발표가 없었는데도 '활성화 대책이 나온다'는 기대감만으로 투자심리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시장이 반응한 지점은 단순 기대감이 아니다.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 다른 몇 가지 구조적 신호가 동시에 포착되고 있어서다. '이번은 다르다'는 기대와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경계가 공존하는 국면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일 코스닥은 사상 처음으로 종가기준 시가총액이 5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4일 장중 사상 첫 500조원 돌파에 이은 겹경사다. 이는 지난 2021년 1월 400조 원을 넘은 이후 약 4년 11개월 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정부의 정책 기대감과 기술주 중심의 성장세가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천스닥(코스닥 1000포인트)' 기대가 재점화되면서, 시장은 강세장의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도 강세장의 전형적 패턴과 유사하다. 이런 강세 흐름이 당연한 수순처럼 읽히지만 '아직은 경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기 열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숙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먼저 과거 사례부터 꺼내 들고 있다. 코스닥 활성화가 화두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05년 거래소 통합, 2013년 코넥스 개설, 2018년 벤처펀드 도입 등 세 차례의 '코스닥 모멘텀'이 모두 '반짝 급등 후 장기 부진'으로 끝났다는 점을 짚는다. 겉으로는 제도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수급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통된 문제로는 △거래소 통합에도 '2부 리그' 인식이 그대로였던 점 △코넥스 개설이 수요 없이 공급만 늘린 점 △벤처펀드가 코스닥으로 유입돼야 할 유동성을 메자닌(CB·BW) 시장으로 돌려버린 점 등이 지적된다. 우량 기업 이탈과 개인 투자자 중심 구조도 정책 효과를 희석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에도 '언론 헤드라인만 보고 베팅하는 건 위험하다'며, 실효성 있는 핵심 변수를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 방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금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거론되는 방안 가운데 시장이 특히 기대를 거는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코스닥벤처펀드 소득공제 한도를 기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2018년 당시 코스닥 랠리를 이끌었던 세제 유인책을 한 단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고액 자산가의 자금을 다시 코스닥으로 끌어들이는 직접적인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모험자본 약 20조원을 코스닥·벤처 시장에 유입시키는 구상이다. 증권사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 일부를 모험자본으로 묶어 코스닥에 투입한다는 그림이다. 개인 수급 위주의 시장을 기관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번 사이클의 지속성을 가르는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 확대는 '헤드라인과 실제 효과를 구분해야 하는 영역'으로 분류된다. 정부가 목표 비중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운용지침·위험 관리 규정이 뒤따라 바뀌지 않으면 실제 매입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기금 코스닥 비중 확대'라는 문구보다, 연금 운용 규정이 얼마나 수정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상인증권은 보다 '현미경'에 가까운 시각을 내놓는다. 단기적으로는 정책 기대감과 수급 회복이 맞물리며 코스닥의 추가 상승 여력을 인정하면서도, '실적이 받쳐주지 않는 종목으로의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상상인증권은 코스닥 실적 모멘텀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일부 성장주·플랫폼·소부장 기업의 이익 추정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고, 내년 이익 증가율 전망도 코스피 대비 우위를 보이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익과 무관한 이벤트성 재료, 무상증자·특례상장·단기 테마에 기대 주가가 먼저 치솟는 패턴이 반복될 경우 다시 조정 국면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사이클을 질적으로 다른 코스닥 강세의 초입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단순한 부양책이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나증권은 이번 대책의 키워드를 '하이브리드 전환(JIT+JIC)'으로 설명한다. 과거에는 효율성(Just-in-Time·JIT)을 극대화하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제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여유 자본과 완충 장치를 두는 위험 대비(Just-in-Case·JIC) 요소가 함께 도입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코스닥 정책에도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해석이다. 구체적으로는 두 축이 동시에 움직인다. 첫째, 선별적 정화 장치다. 시가총액 150억원 미만 종목의 자동 퇴출, 2심제 심사 기간 단축 등은 '소형·부실 종목을 장기적으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작전주·테마주 논란의 진앙이 됐던 극단적인 저유동성 종목을 구조적으로 정리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둘째, 대규모 자금 버퍼다. 하나증권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증권사 모험자본 17조원 등 약 167조원 규모의 '정책 자금' 구상을 주목한다. 여기에 연기금의 코스닥 비중 상향 목표와 코스닥벤처펀드 소득공제 5000만원 상향, 특례상장 문턱 완화 등이 더해지면 '외부 충격이 와도 시장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방화벽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나증권은 이를 두고 2018년 대책이 성장에 치우친 JIT형이었다면, 2025년 대책은 성장과 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JIT+JIC 하이브리드 모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단기 랠리를 노리는 정책이 아니라, 코스닥을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드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는 설명이다. 섹터 관점에서도 구조적 전환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나증권은 과거 코스닥이 코스피를 앞섰던 시기(2008년, 2014년, 2022년)를 복기해 보면 공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업종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제약·바이오, 조선, 화장품, 상사·자본재 및 기계 등이 그 중심이다. 이번에도 코스닥이 코스피 대비 상대 강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이들 섹터가 다시 알파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코스피와의 연동성도 변수로 꼽힌다. 하나증권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밸류체인이 여전히 견조한 만큼, 고대역폭 메모리(HBM)을 공급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축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반 강세를 보일 여지가 크다고 본다. 코스닥이 '정책·수급 장'이라면, 코스피는 AI·반도체 실적 장세가 이어지는 구도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연말·연초 코스닥 시장은 2018년과는 다른 질적 차원의 강한 시세 국면으로 진입할 개연성이 크다"며 “코스피의 동반 상승까지 더해진다면, 2026년은 한국 증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머니+] 일본은행 금리인상에도 ‘엔캐리 청산’ 가능성 낮다?…엔화 환율 전망 어떻길래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가 11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 전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은행의 긴축에 따른 엔/달러 환율 급락(엔화 강세)으로 '엔캐리 트레이드'가 대거 청산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올해는 당시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 “日 기준금리 인상한다"…30년물 국채금리 사상 최고 8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가 지난 5일 1.94%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8년 만에 최고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해 안전자산에 수요가 몰렸던 지난 4월 당시 저점(1.13%)과 비교하면 국채금리가 약 8개월 만에 0.8%포인트(p) 가량 급등한 셈이다. 30년물 금리는 최근에 사상 최고치인 3.44%까지 오른 뒤 현재 3.38% 수준으로 소폭 진정됐다. 일본에서 3%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지자 일본은행은 그동안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시사해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 8월 “그들(일본은행)은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통제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이례적으로 일본 통화정책에 대해 평가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적극 재정과 완화적 금융정책을 선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출범하면서 금리 인상 시기가 내년으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확산됐고, 엔/달러 환율도 10월초 달러당 147엔 수준에서 지난달 중순 최고 157.9엔까치 치솟았다. 하지만 우에다 가즈오 일본 총재가 지난 1일 “인상 여부에 대한 장단점을 검토한 뒤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은행이 조만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장 명백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 역시 “일본은행이 12월에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다카이치 정부는 이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 일본은 긴축, 미국은 완화…엔캐리 청산 공포 커져 일본은행은 지난 1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0.25% 정도'에서 '0.5% 정도'로 인상했고, 이후 6회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8~19일 열리는 통화정책 회의에서 일본 금리가 0.5%에서 0.75%로 인상될 가능성을 약 91%로 보고 있다. 현실화된다면 일본 기준금리는 1995년 이후 30년만에 처음으로 0.5%선을 넘어서게 된다. 이처럼 일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사태가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된다는 점이 이러한 불안을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현재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시장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미 기준금리가 3.50~3.75%로 0.25%포인트 인하될 가능성을 88.4%로 반영하고 있다. 이 경우 미일 금리차는 현재 상단 기준 3.5%포인트에서 3.0%포인트로 축소된다. 미일 금리차 축소는 엔/달러 환율에 하방 압력을 가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하거나 매도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거나 주요국 간 금리차가 확대될 때 매력이 커진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화를 빌린 투자자들이 환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금을 본국으로 환수할 가능성도 커진다. 실제 지난해 7월 일본은행의 긴축과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동시에 겹치며 엔/달러 환율은 당시 152엔대에서 8월 5일 141엔 수준까지 급락했다. 투자자들의 급격한 엔화 매수로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이른바 '8·5 블랙먼데이' 사태가 발생했고, 이때 한국 코스피지수도 8.77% 급락해 종가 기준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 “작년과 다르다"…엔화 약세 심화 전망도 다만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의 이달 금리인상에도 엔/달러 환율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엔화 환율이 다시 상승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올 연말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 달러당 152엔에서 158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엔화 환율이 내년에 160엔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미일 금리차가 여전히 크게 남아 있는 만큼 엔캐리 트레이드가 대규모로 청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금리 인상이 지난해 7월 '깜짝 긴축'과 달리 상당 부분 시장에 예고됐 왔다는 점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코인데스크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이미 반영됐다"며 “일본 국채금리가 수십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역시 “우에다 총재가 이달 금리 인상에 대해 분명한 힌트를 제공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하락했음에도 하락폭은 미미했다"고 짚었다. 현재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엔 수준으로, 지난달 최고치(157.90) 대비 소폭 둔화됐다. 옵션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에 대한 콜옵션(환율 상승시 수익) 거래량이 풋옵션보다 4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라증권의 사가르 삼브라니 선임 외환 옵션 트레이더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중기적으로 비둘기파적으로 보인다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일본 해외 자금의 상당 부분이 연기금, 보험, 비과세 투자계좌(NISA) 등을 통한 장기 투자 성격이라는 점 역시 엔캐리 트레이드 대규모 청산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HSBC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0월까지 일본 투자자들은 해외 채권을 11조7000억엔어치 순매수했으며, 이는 2024년 한 해 전체 매입 규모였던 4조2000억엔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HSBC의 저스닡 헹 아태지역 금리 전략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로 환헤지 비용이 계속 낮아질 경우,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은행이 이달에 이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엔화 강세 흐름이 보다 뚜렷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4일 “중립금리가 1~2.5%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며 “향후 범위를 좁힐 수 있다면 적절한 시점에 공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립금리 범위가 좁혀지거나 하단이 상향 조정될 경우 일본의 최종 기준금리 수준이 예상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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