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EE칼럼] 플라스틱 협약, 한국 리더십 발휘해야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달 말 캐나다 오타와에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국제협약(이른바 플라스틱 협약)의 성안을 위해 열린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당초 계획했던 기간보다 하루 연장되며 치열한 밤샘 토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INC-4에서는 지난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INC-3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유엔환경계획(UN Environment Programme: UNEP)이 작성한 '수정 초안(revised draft text)'에 대해 토론을 계속했지만, 참가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환경부의 설명이다. 유엔 차원에서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대응은 기후변화 대응에 비해 논의 자체가 매우 늦게 시작됐다. 2022년 2월에 역시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Resumed fifth session of the UN Environment Assembly: UNEA-5.2)가 2024년까지 플라스틱의 생산 및 소비부터 폐기물의 처리까지 전주기를 포함시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유엔환경총회는 193개에 달하는 유엔 회원국 모두가 참여해 UNEP의 사업은 물론 글로벌 환경 현안들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인데, 2022년에서야 비로소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협약을 마련하자는 데 중론이 모아진 것이다. 성안을 목표로 총 5차례의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마지막 정부 간 협상이 될 INC-5는 올 해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플라스틱 오염 대응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논의는 일찌감치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역시 우여곡절의 과정이 매우 길었다. 1997년에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Third session of the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 이른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지만, 미국은 선진국 중에 유일하게 비준을 거부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역사적 책임이 크다고 하는 선진국들과 아직 산업화를 해야 하는 개발도상국 사이의 간극이 커서 감축에 대한 의무가 이른바 Annex I에 속하는 선진국으로 한정되었다. 교토의정서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한 것과는 달리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당사국 총회(COP21)에서는 참가국 전체가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하게 된 데에는 개최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전 대통령과 당시 유엔의 수장이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7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를 경고해 왔고, 90년대 초에 들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전 회원국이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된 것은 2015년이었으니, 무려 20여년의 노정을 거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리협정을 탈퇴하여 다시 한 번 기후 거버넌스 레짐을 흔들기도 했다. 기후 거버넌스 레짐이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것을 떠올릴 때, 플라스틱 협약의 성안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INC-5까지 전문가 그룹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였지만, 최대 쟁점 사안이라고 하는 1차 플라스틱인 폴리머 생산의 감축은 아예 의제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이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사고 있다. 이는 1차 플라스틱의 주원료가 되는 석유를 생산하는 주요 산유국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 역시 미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불과 150만 톤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약 3억 9천만 톤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소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6년에는 88kg 정도였으나, 이제는 조사 기관마다 수치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90kg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가 모두 막대하다 보니, 정부 역시 플라스틱 협약에 대해 다소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INC-4 개최 기간 중 태평양 도서국들을 포함한 20여 개국이 폴리머 생산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정작 개최국인 한국은 참여하지 않아 빈축을 사게 됐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산업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깊을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해 온 것은 수출이고,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인 석유화학 제품의 경우 수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 우수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대체할 만한 재료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부산 INC-5를 산업 체질 전환의 계기이자 미래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주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고 있느니 만큼 플라스틱 거버넌스 레짐 설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입장이 다른 국가 간의 간극을 조율하는 데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인류세의 유산이라는 플라스틱의 오염 방지를 위한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결단과 리더십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임은정

[김상호 칼럼] 하남시 청소년의회, ‘더불어 숲’ 가자

하남시 미래 정치의 꽃, 청소년의회는 하남시 희망입니다. 제5대 하남시 청소년의회가 개원했습니다. 올해 4월 선출된 청소년의원이 30명이 당선증을 받았습니다. 2020년 초대 손혜원 의장을 비롯해 2021년 2대 김진주 의장, 2022년~23년 3-4대 이은표 의장이 청소년의회를 이끌었습니다. 올해는 박찬용 의장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하남시에는 청소년 대표 7명이 5만여명 청소년을 대변합니다. 청소년수련관 청소년 관장(박채은), 청소년의회 의장(박찬용), 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장(김현주), 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장(정태희), 아동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장(김아정), 덕풍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장(양슬기), 학교밖지원센터꿈드림 위원장(임서진)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 7명 대표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처럼, 하남청소년 참여시정을 통해 청소년 권리를 스스로 찾습니다. 정당가입연령 16세, 선거권도 18세로 되면서 청소년 시선과 목소리가 더 필요합니다. 특히 청소년의회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실현과 인권 보호 및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입니다.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민주적 참여의식을 함양하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율성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남시 청소년 국회입니다. 청소년의회는 청소년 참여시정을 위해 교육상임위원회(8명), 안전환경상임위원회(7명), 문화체육상임위원회(8명), 인권소통위원회(7명), 청년보좌관(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청소년 대표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첫째, 청소년 주민참여 예산을 심의-의결합니다. 청소년이 자신들의 사업을 결정하고, 이를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제도입니다. 최종 안건으로 결정된 제안은 하남시 주민참여 예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음해 예산으로 편성됩니다. 청소년이 생활 속에서 접한 고민이 다양한 안건으로 제안됩니다. 작년에는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다시 쓰는 방울상점 사업' 등이 선정됐습니다. 둘째, 청소년 정책제안대회 '청포도'(청소년들의 포근하고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를 개최합니다. 다양한 주제로 경합하며 제안합니다. 하남시 안전 지킴이 헬멧 대여대 설치', '바다의 시작, 배수로, 담배꽁초-쓰레기는 NO',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와 참여권 확대' 등 좋은 제안을 조례로 제정합니다. 특히 2021년 '하남 내일 제안대회'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구성된 미래원정대는 미사 나무고아원 별칭을 '쉼트리'로 해 보다 친근한 인식을 심어주고, '나무를 위한 음악 제작' 등 이야기가 흐르는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청정하남 시작! 나무 고아원 쉼트리' 프로젝트는 하남시 성인 발표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습니다. 셋째, 국내외 교류활동으로 세계시민으로 성장합니다. 하남시 국내외 자매도시와 소통하며 국가-도시를 뛰어넘어 견문을 넓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자매도시 영월과 메타버스 교류를, 미국 자매도시 리틀락시와는 지속적인 홈스테이 교류를 통해 세계시민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남시 청소년은 독립적인 인격체이자, 무한한 잠재력과 역량을 지닌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하남시민, 하남시, 시의회, 광주하남교육청, 선출직 공직자가 청소년 참여를 보장하고 권리증진을 위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5기 청소년의회가 하남시 14개 동 청소년 목소리를 대변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다문화, 새터민 청소년과 함께하는 의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청소년수련관 조재영 관장님, 덕풍청소년문화의집, 감일청소년문화의집 관장님들과 청소년 지도자분들은 하남시 청소년공동체들을 북돋는 '더불어 숲'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청소년의회가 하남시 청소년과 소통하는 '더불어 숲'이 되길 바랍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EE칼럼] 최저전력수요 ‘심각’…전력계통망 투자 시급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봄철에 전력 문제가 심각하단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전력 수요가 모자라서라고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전력의 이슈는 언제나 공급 부족이었다. 특히 냉방 수요가 몰리는 여름철에 전력수요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그리고 전기 난방으로 겨울철에도 전력 수요가 몰리면서 여름철과 겨울철에 급격하게 솟구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비상근무를 하고는 하였었다. 그러던 추세가 급격히 바뀐 것은 지난 3~4년 전부터이다. 기존에는 전혀 문제가 없던 봄철과 가을철에 전력 수요가 매우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그 최저치가 전력계통 안정화에 이슈가 발생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어서다. 2020년 봄철 전기수요는 42.8GW였으나 2021년 42.4GW, 2022년 41.4GW로 줄어들더니 작년에는 급기야 39.5GW로 40GW 아래로 낮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봄 전력 수요가 37.3GW로 작년 봄보다도 2.2GW 줄어들어 역대 최저전력수요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지난 3월에 차질 없는 전력수급을 위해 봄철 전력수급 특별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에너지소비 중에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22년 21.5%로 전체 에너지사용량의 5분의 1 수준이며, 정부가 발표한 다양한 중장기 계획을 살펴볼 떄 2050년에는 전력 소비 비중이 25~35%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나타나고 있다. 그럼 최근 봄철 및 가을철에 전력 수요가 급하게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태양광 발전량이 크게 늘어났기 떄문이다. 특히 봄철은 태양광 발전량이 크게 높아져 수급 불균형이 크게 나빠진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봄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전력수요 편차가 11.1GW에 이르렀다고 한다. 출력을 조절할 수 없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격히 늘어나며 낮은 전력수요와 함께 봄·가을철 계통운영 난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2017년에 5.1GW 수준이던 국내 태양광 설비는 2019년 12.8GW에서 2023년 28.9GW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봄철 전력계통 안정화 대책을 수립하여 올해 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을 작년보다 1주일 확대하여 3월 23일부터 6월 2일까지 총 72일간 운영하고, 선제적으로 전력계통 안정화 조치를 이행한 후 계통 안정화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출력제어를 시행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력 소비량이 너무 많이 이를 줄이기 위하여 시행하던 각종 발전설비 정비일정 조정과 수요자원(DR) 활용 등이 반대로 태양광 전력 공급량을 줄이기 위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이번 봄에는 특히 5월 4~6일에 3일의 연휴가 이어지고 있어 전력 업계와 당국의 시선이 집중되었었다. 긴 연휴를 맞아 공장 가동이 극단적으로 감소하는 등 전력수요가 급격히 낮아질 수 있는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광 발전설비의 전력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작년에는 처음으로 연휴 기간동안 필수계통유지운전용 발전기를 제외하고는 전력생산 100%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담당하는 상황이 발생, 국내 전력시장 개설 이후 최초로 계통한계가격(SMP)이 0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 등지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특히 풍력의 비중이 높은 유럽의 경우는 전력도매시장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음(negative)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다행히 이번 연휴기간 동안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태양광 발전량이 줄어들어 시급한 문제는 피했다고 한다. 전력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의 전력 계통에 대한 투자가 크게 모자라 급변하고 있는 전력 공급원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95% 이상의 국민에게 전력을 공급하며 또한 정전이 세계 최소 수준인 매우 휼륭한 전력망을 가지고 있지만 1980~90년대에 지어진 설비들이 많아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적용이나 새로운 재생에너지원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를 해결하고자 이미 10여년 전에 이미 스마트 그리드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전력망의 개선과 투자를 시도하였으나 님비(NIMBY) 현상 등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력계통망 투자 지연과 감소로 인한 부작용은 지금과 같은 봄, 가을철 전력 수요 급감의 문제는 물론 지방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등 지속적으로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향후 봄·가을철 공급과잉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 출력제어 서비스 시장 개설 등 계통 안정화 조치 과정에서 전력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전력계통망 투자 계획을 마련하여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통한 전력망의 스마트화를 꾀하여야 하겠다.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전기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의 개발과 투자의 장이 활발히 열리기를 기대한다. 허은녕

[EE칼럼] 기후에너지정책 관련 중앙은행 역할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한국은행은 금융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는 기후위기에 중앙은행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총재 직속의 '지속가능성장실'을 신설했다.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예고하는 것이라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관련 조직을 크게 보강하여 운용 중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환경 및 에너지 관련 시장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득력 있는 통화당국의 역할이 보여질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어찌 보면 기후 관련 정책에 있어서, 정부 부처들 보다도 중앙은행이 가장 중립적이고 공정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관련 보고서나 총재의 언급에 큰 무게가 실릴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일선 부처들은 딸린 관련 예하 기관들도 많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슈에 관한 입장도 이미 정해진 경우가 많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지만 산하 공기업인 석탄발전소를 포기하기 힘들 것이고, 경제도 지켜야 하지만 제철소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 해외 이전하라고 등 떠미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부처의 입장 및 산하기관들의 밥벌이와 예산집행권이 당장 눈앞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국익이나 큰 흐름 차원에서 머리로는 동의가 돼도 손발이 따라줄 수 없는 한계가 많다. 그러니 아무리 토론을 해봐도 윗선에서의 정무적인 결정이 없는 한 답이 정해진 약속 대련만 보게 된다. 반면 중앙은행은 그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 포괄적인 조사분석 및 정책대안 제시가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금융권에서 늘 하는 수박 겉핥기식 해석, 예컨데 관련 채권의 부실화 정도로 치부하는 등을 넘어서, 한국은행이 관련 이슈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말이다. 필자가 과거 말단 직원일 때 팀장께 들은 말인데,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이라는 청룡언월도(거시정책수단)만 있지, 시장주체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볼 도구로서의 검사권 같은 바늘(미시정책수단)이 없어서 정책 수립에 활용할 필수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단다. 중앙은행의 제대로 된 역할을 위해선 시장에 대한 선험적 정보 파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도 중앙은행은 실물을 가리는 금융 베일(veil)만 보고 행동하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기후환경에너지 부문도 마찬가지지만, 내밀한 실물 시장 상황을 모르고는 현실과 동떨어진 똥 볼만 차는 중앙은행이 될 우려도 있다. 사실 많은 기후환경에너지 정책들이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며 이미 진행 중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가 모두 공약한 탄소차액계약지원제도(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를 통한 막대한 보조금, 연간 2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대응기금으로 인한 재정지출은 외국환평형기금 등 국채발행 및 상환과 마찬가지로 시장 유동성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많은 미시적인 기후 정책들은 단순히 환경 및 에너지 관련 이슈를 넘어서, 산업정책화 되고 있는 현실이다. 탄소시장에서의 부문간 할당과 거래, RE100의 달성 유무에 따라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도 크게 영향 받는다. 무역측면에선, 탄소국경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에 의해 국제수지가 결정되며 이는 다시 산업 부문간의 고통분담과 관련된 고민을 안겨준다. 한국 내수시장도 언젠가는이러한 국제경쟁력 상실을 가져올 탄소누출 방지 차원에서의 무역장벽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학계에서도 꾸준히 기후변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경제블록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사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해서도 금융권에서는 말만 떠들썩하지 실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없다. 녹색, ESG 채권 시장 등도 실제로는 관련된 실물시장이 매우 미비하여 아무것도 안 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금융권 단독으로 공시기준 강화 혹은 관련 금융상품 출시 등을 해봐야 공염불이다. 이럴 땐 금융감독당국이 벌주고 때리며 앞에서 잡아 끌고 갈게 아니라, 중앙은행이 해줄 잔소리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실물시장이 왜 미시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는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역량을 보유해야만 가능한 역할이다. 물론 아직 한국은행이 해당분야에 대한 경험 및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를 기존에 다른 일 하던 공채 인원들로는 채우기 힘들다. 아마 한국은행 직원들 사이에서 해당 부서는 한직(閑職)으로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통 정책부서에 배치 받지 못해 마지못해 끌려가듯 기후변화 업무를 맡는 상황에서는, 능력 축적은 고사하고 의욕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폐쇄적인 한국은행 순혈주의 문화에선 외부인력이 들어와 일순간 전문성을 보강해줘도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가지기 힘들다면, 매우 빠르게 변화가 닥쳐오는 기후환경에너지 분야에서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승진 및 파견으로 보상받는 조직문화 속에서 해당 외부수혈 인력에 의욕을 불어넣어 줄 마땅한 수단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기후변화 관련 정책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화정책을 비롯해 앞으로 많은 거시정책들이 기후변화 및 그를 의한 각종 리스크들에 의해, 또한 정부부처들이 행하는 각종 관련 정책들에 의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심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 내의 문화를 알기에, 전담부서를 만들었다고 저절로 굴러가진 않을 것 같아 노파심에서 글을 쓴다. 유종민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