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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지구의 허파’ 산림이 위험하다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로 낮추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배출량을 제로로 해야 한다. 사실 이것도 벅찬데, 유엔에서는 2030년 평균 감축률을 45%로 높여야 한다고 발표해 우리나라의 압박감은 더욱 커진 상태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석유, 석탄, 가스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의 사용을 줄이는 것과 산림 등 자연적인 온실가스 흡수원을 확대하는 것이 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탄소중립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요 온실가스 흡수원인 산림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림을 통한 온실가스 흡수량은 정점인 2008년 6149만톤CO2eq에서 2021년 4038만톤CO2eq로 13년간 34.3%(2111만톤CO2eq)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총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흡수율도 10.4%에서 6.2%로 감소했다. 어찌 된 일일까? 그 원인을 보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우선 산림면적이 늘지는 못할 망정 줄고 있다. 산림면적은 2008년 637만5000헥타르(ha)에서 2021년 629만4000ha로 1.3% 감소했다. 인간의 탐욕으로 도시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산림이 계속 깎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산불피해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산불피해 면적은 3만6230ha로, 이는 이전 5년(2014~2018년)의 3307ha에 비해 무려 11배나 확대됐다. 기후변화로 건조기간이 길어지면서 산불피해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산림 온실가스 흡수율을 떨어트리는 것은 가장 큰 원인은 산림의 노령화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산림 80%가 임령 31년 이상으로 채워져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흡수량이 가장 큰 상수리나무를 기준으로 1ha당 임령별 연간 탄소 흡수량은 20년생 15.9톤을 정점으로 30년생 14톤, 40년생 12.3톤, 50년생 10.9톤, 60년생 9.8톤, 70년생 8.9톤으로 계속 감소한다. 산림청은 이대로 가면 2030년 국내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2250만톤CO2eq로 떨어져 정점인 2008년대비 63%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림은 지구의 허파이다. 허파가 튼튼해야 사람도, 지구도 건강하게 숨쉴 수 있다.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규 산림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생장력이 떨어진 노후 나무를 벌채해 목재제품으로 사용해 플라스틱을 대체하고, 그 자리에 어린 목을 심으면 흡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소나무 30년생으로 조성된 1ha 숲의 매년 온실가스 흡수량은 11톤으로, 이는 승용차 5.7대가 매년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상쇄할 수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우리집’ 사명이 무색한 아워홈 분쟁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뜻의 옛 한자성어다. 세상만사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가족간 불화로 심심찮게 가화만사성의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최근 남매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범LG가의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이 대표사례다. '우리 집(Our home)'이라는 기업명에 부응하지 못하는 가족간 분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점에서 사명이 무색할 정도다. 아워홈 지분은 창업주인 고(故) 구자학 회장의 자녀 4명이 전체의 98%를 보유하고 있다.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이 지분 38.56%로 가장 많고, 장녀 구미현 19.28%, 차녀 구명진 19.60%, 그리고 현재 아워홈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막내 구지은 부회장이 20.67%를 갖고 있다. 아워홈의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일진일퇴의 흐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구본성 전 부회장과 장녀 구미현 씨의 반대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되고 구미현씨와 남편이 사내이사로 새로 진출하면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최소 1명의 사내이사를 충원해야 하는 만큼 구 전 부회장은 오는 31일 예정된 임시주총 안건으로 기타비상무이사로 본인을, 사내이사로 자신의 장남 구재모 씨와 황광일 전 아워홈 중국남경법인장을 선임하는 안을 올렸다. 해당 안건이 통과되면 아워홈 경영권은 구지은 부회장에서 이사회를 재장악한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측으로 바꿔질 전망이다. 오는 6월 3일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앞둔 구지은 부회장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큰언니 구미현 씨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구미현 씨의 '캐스팅보터' 선택에 아워홈 경영권 향배가 달려있는 셈이다. 실제로 구미현 씨는 '1차 남매의 난'이 벌어진 2017년 전문경영인 선임에 구본성 전 부회장을, 2021년에는 세 자매간 의결권 통합 등 주주협약을 맺어 구지은 부회장의 손을 번갈아 들어줬다. 최근 정기주총서 다시 구본성 전 부회장과 연대한 결정적 이유는 2022년 구지은 부회장이 회사 경영 정상화를 위해 내린 무배당 결정이었다. 무배당 결정에 반발해 구 전 부회장과 손잡고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반복된 아워홈 총수일가의 갈등 지속으로 직원들도 불안과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단 내부 직원들은 구지은 부회장 측에 힘을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낸 아픔을 딛고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영업이익을 달성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아워홈 노조는 지난달 22일 성명서에서 “대주주들 경영권 싸움으로 아워홈 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오너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비판하며, 구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 구미현 씨 부부의 이사직 수용 철회를 동시에 요구했다. 현재 아워홈의 경영권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올해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사업 육성을 예고한 가운데 재발한 집안싸움이 회사 경영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안팎의 우려가 높다. '돈 앞에서는 핏줄도 소용없다'는 시쳇말이 있지만, 아워홈 사명 중 '우리의(our)'에는 오너들만 있는게 아니다. 9년째 '이권 다툼'을 벌이는 아워홈에 직원은 물론 고객과 투자자들이 얼마나 신뢰를 보낼 지 의문스럽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K-밸류업 빛나려면 ‘집중’투표제 필요

한중일 3국이 나란히 밸류업 프로그램을 실행 중이다. 다른 나라들은 발표 이후 주가가 상승했다. '중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신(新)국9조 발표 이후 상하이종합지수는 약 5% 상승했고, 일본은 지난 1년 사이 40% 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성적표는 아쉬운 상황이다. 1차 발표와 2차 발표가 있던 날 주가 지수는 모두 하락했다. 특히 지난 2일 2차 세미나 때에는 금융지주 중심으로 약세를 시현하는 등 밸류업 프로그램에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한국식 밸류업 프로그램의 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동상이몽이다. 기업이 주장하는 인센티브를 정부는 제공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내 R&D 예산마저도 줄일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매년 세수가 마이너스다. 약 56조원의 세수펑크가 발생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같은 모습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돼 법인세가 예상보다 덜 걷혔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세 지출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업들은 본인들이 최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그 부담을 정부에 전가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희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주권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어느 한 주체가 희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모두가 향유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주권의 가치를 높이는,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조치들을 가동하는 것이다. 현재 코스닥 기업의 경우, 최대주주는 10%~20%의 지분과 일정한 우호지분을 확보하면 이사회를 모두 장악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70%가량 지분의 의결권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해당 의결권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집중투표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한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KT&G, JB금융지주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를 선임했다. 양 사 모두 이사 자리 중 1~2곳은 소액주주를 대변할 수 있는 이사로 선임되는 효과를 거뒀다. 집중투표제는 현재 정관에 배제 규정을 두면 피해 갈 수 있는데 이를 바꿔 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 만으로도 K-밸류업이 달성될 수 있다. 물론 외국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우려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행동주의 펀드 자금 유입은 필수 불가결하다. 특히 선별적으로 받기에는 국내 산업 매력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려가 된다면 코스닥 시장에만 도입하는 등 안전장치를 도입하면 될 문제이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선 넘은 발전설비 도입 반대…대안부터 제시하라

산업계가 글로벌 경기부진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력 및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한 행보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태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 공장 가동을 목표로 했던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허가와 주민반대라는 굵직한 장애물을 넘어서면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SK하이닉스는 120조원을 들여 인공지능(AI) 반도체향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생산해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수출(7000억달러) 달성을 추진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목을 잡았다. SK E&S의 1200M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공장에 전력과 스팀을 공급한다는 프로세스를 문제삼은 것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대규모 발전소가 들어서면 탄소중립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산업부가 발전공기업의 석탄발전 대체사업과 협업한다면 이 발전 사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제철도 2028년까지 8000억원을 들여 당진제철소 내 499MW급 LNG자가발전설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저탄소 철강생산 체제 등을 위해 전기로를 늘리는 현대제철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인 셈이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들을 만나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선택적촉매환원장치 등 유해물질을 저감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여기에는 설비 가동에 필요한 용수 조달 및 오·폐수 처리 방침도 포함됐다. 어촌이 있는 지역 특성을 특히 반영한 것이다. 2050년까지 수소혼소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주민들의 마음도 점차 얻고 있지만 환경단체가 이를 두고 '그린워싱(실제로는 환경오염을 자아내지만 겉으로는 친환경적으로 포장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가하는 탓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정부가 무리하게 설정하고 이번 정부가 사실상 계승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 탄소중립 로드맵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소발전 기술 등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았고 가성비 높은 무탄소 발전원으로 꼽히는 원자력을 크게 늘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브릿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LNG발전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이 빚은 사태라는 점을 외면한 것이다. 발전설비 예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전력 공급을 위해 추가적인 발전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는 일각의 지적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지난해 울산과 여수 등 국내 산업생산 주요거점에서 정전이 발생하면서 기업들이 설비 가동을 멈추는 등 실제적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동 중단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유해물질 누출을 비롯한 환경적 측면의 리스크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일 소지가 있다. 국내에서 솔루션을 찾지 못한 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외국에 나간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각국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반대 행보를 걷는다면 가뜩이나 쉽지 않은 우리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눈]공매도와 싸웠지만 공매도의 이유가 된 진양곤

주식시장에는 공매도와 전쟁을 벌이는 CEO를 종종 볼 수 있다. 최근 주가 폭락으로 수많은 투자자를 실망하게 한 HLB의 진양곤 회장도 그중 하나다. 진 회장은 그동안 HLB그룹의 상장사 주가가 떨어질 때 공매도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세력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하락시키려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2019년에는 공매도를 이용한 주가조작이 의심된다며 증권사를 고발하기도 했다. 진 회장은 지난 3월 14일 주주들에게 공개서한을 공지한 바 있다. 서한에는 “회사의 신약승인이 임박해 오면서, 공매도가 어떤 형태로든 비상식적 행위를 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고 밝혔다. 이제 그 서한을 다시 보자. 맞는 말이 있는가? 진 회장의 장담은 공염불이 되고 주가가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HLB에 대한 공매도는 매우 합리적인 투자였다. HLB의 주가는 리보세라닙의 허가 불발로 반토막이 났다. 만약 공매도 때문에 HLB의 주가 상승 폭이 제한됐었더라면, 그 또한 공매도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주가가 더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손실의 규모는 더욱 컸기 때문이다. HLB의 공매도, 그리고 현재의 주가 폭락은 그동안 공매도가 시장에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당국과 학계의 설명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례다. 원칙대로라면 공매도는 해당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했을 때 사용하는 투자 기법이다. 그리고 최근 HLB의 주가는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오르던 상황이다. 또 신약에 대한 허가는 잘 될 확률보다 안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허가 성공에 대한 베팅도 할 수 있지만 허가 불발에 대비해 공매도로 리스크를 줄여 두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결국 HLB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안긴 주체는 공매도가 아니라 듣기 좋은 소리만 해온 진 회장 본인이다. 진 회장처럼 기업을 운영하는 CEO가 리스크를 축소하고 포텐셜만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매도가 필요한 법이다. 물론 시장에는 불법적인 공매도를 하다가 당국에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관련 규정 위반에 불과하고 진 회장의 설명처럼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공매도는 적발된 바가 없다. 통화량은 제한이 있다. 그렇기에 주가는 끝없이 오를 수 없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간다. 하지만 내려갔다고 반드시 오르지는 않는다. 계속 내려가다가 상폐되는 종목이 부지기수다. 모두 간과하는 리스크다. HLB의 회복을 기원한다. 하지만 모두 이번 HLB의 사례를 잊지 말아야겠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8명 희생’ 전세사기, 선구제 후회수 대책 절실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힘 없으면 죽어나가야만 하나요?" 지난 1일 대구 남구 남영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남긴 말이다. A씨는 현행 특별법 사각지대였다. 다가구주택 후순위 임차인이자 소액임차인에 해당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의신청 끝에 그는 숨진 날이 되어서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피해자'로 뒤늦게 인정받았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목숨을 끊은 사례는 이번이 벌써 8번째다. 안타까운 사례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실효성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여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우선 구제하고, 향후 우선매수권·우선변제권 등을 보유한 상태로 경·공매를 통해 피해주택을 매각, 비용을 회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 개정 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경우라면 모두 소급적용된다. 반면 정부·여당은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구제하는 방안이 전례가 없어 다른 사기범죄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7일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1만5433명이다. 정부는 이 속도라면 내년 5월까지 피해자 3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최소 1조원, 최대 4조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제도의 실패가 낳은 사회적 재난이다. 이번 전세사기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기에 접어든 2020년 전후에 집중됐다. 이 시기에는 임대업이라는 포장으로 갭투자 사기꾼이 등장해 깡통전세가 난무했으며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은 늘 시장보다 한발 느린 모습을 보였다. 전세사기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도 아쉬움이 남는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차담에서 “전세를 얻은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장관의 경솔한 발언은 전세사기 피해자들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오는 28일 열릴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여야 입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뒷짐을 지지 말고 구제 등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기자의 눈] K증시 밸류업을 위한다면 당정 모두 과감해져야

“한국 주식시장의 난이도는 미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 누가 이런 어려운 주식시장에 뛰어들려 하겠나?."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은 게 지난 2월이니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융주와 같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을 사들이며 이에 화답했다. 하지만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세부안을 보면 강제성이 전혀 없어 맹탕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간 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더불어 소각 시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세율 및 상속세율 인하와 같은 세제혜택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다. 하지만 기업의 자율을 보장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통해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사실상 '속빈 강정'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졌고, 급등했던 일부 종목들의 주가 또한 뒷걸음질 쳤다. 다만 최근 정부가 배당소득을 분리과세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경우 세금으로 15.4%만 내면 된다. 하지만 2000만원을 초과한다면 다른 종합소득(근로소득, 사업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과 합해 누진세율(6.6%~49.5%)을 적용 받게 된다. 배당 분리과세는 기업인들의 배당 의욕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목돈이 필요하거나 현재 가진 현금이 없는 경우 기업인은 배당을 통해 자금을 수혈받는다"면서 “하지만 배당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배당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상속세도 감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지적이다. 기업을 남에게 넘겨주기보다 자녀에게 상속하는 걸 선호하는 국내 정서 상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상속을 진행하기 위해 주가를 억누르는 기업인들이 많다는 거다. 여기에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주식 매매차익 중 50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 22%~27.5%의 세금이 과세되는 점을 두고 도입론자들은 정부의 폐지 방침에 부자감세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고, 반대로 폐지론자들은 증권거래세가 당분간 유지되는 만큼 이는 이중과세며 큰 손들의 이탈로 이어져 국내 증시가 한바탕 홍역을 치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전 금융당국 관계자도 “금투세 도입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된다. 세금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 없이 무조건 도입한들 시장에 주는 실익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개인 투자자들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금투세 전면 폐지를 요청하고 있다. 청원인은 “기관과 외국인, 법인에게 감세해주고 개인에게만 독박과세를 부과하는 금투세 전면 폐지를 촉구한다"며 “그리고 국민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불의한 법안에 국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민 거부권 행사법 제정도 촉구한다"고 썼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 중 일부만 국내 시장으로 유(U)턴을 한다면, 또 그들이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 정부가 서로 소통하며 더욱 과감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양성모 기자 paperkiller@ekn.kr

[기자의 눈] 카드사 “수수료 더 못 내려” 절규에 당국 이번에도 눈 감을까

지난달 총선이 마무리되며 당국이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 산정을 위한 적격비용 산출의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되며 카드 수수료율 적격비용 산출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현재 3년 주기로 적격비용을 재산정하고 있다. 적격비용 개선안을 두고 업계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카드업계에선 결국 또 수수료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가맹점 수수료율는 지난 2007년부터 마지막 재산정 시기였던 2021년까지 총 14차례 하향 조정됐다. 2007년 당시 4.5%였던 가맹점 수수료율은 현재 0.5~1.5%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다. 재산정 주기를 5년으로 연장하겠단 방안이 선정될 가능성도 높지만 이 역시 사실상 수수료 인하 시기를 늦추는 것일 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따른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자 조달비용 문제로 골치가 아픈 카드사들은 본업인 수수료 부문 수익성에서도 사실상 마이너스를 가리키고 있어 속이 타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8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2조5741억원으로 전년(2조7269억원) 대비 5.6%가량 줄어들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율 문제가 정무적인 도구로 활용돼 왔기에 기대는 커녕 형평성에 역차별을 맞고 있다는 목소리다. 적격비용 산정 제도는 당초 영세 자영업자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재산정 시기가 향후 3년간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않아 실제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일부 가맹점의 경우 혜택을 받는 구간에 들어갈우 수수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남기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카드사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카드 혜택을 줄이면서 업계에선 다수 일반 소비자에게로 피해가 전가되고 있단 지적이 잇따른다. 금융위는 간편결제를 운영하는 빅테크사들이 적격비용 산출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 점과 적격비용 산정상 불합리성, 카드업황 악화 등에 따라 수수료율을 둘러싼 불만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현재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가 지난 2022년 적격비용 제도개선을 위해 여신금융협회를 비롯해 소상공인연합회, 소비자단체 등으로 구성된 TF를 구성했지만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TF가 카드사와 가맹점간 상생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초 발표 시기인 지난해 말보다 시기가 한참 지난 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수수료율 산정 결과에 맞춰 카드사들은 3년 가량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된다. 본업 수익성 판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카드업권 전반의 경영 방향 설정부터 나아가 불특정 대다수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혜택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카드업권의 회의적인 목소리와 이해관계자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현재와 같은 시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형평성과 객관성을 염두에 둔 방향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눈] 저출생보다 ‘축소사회’ 대안 논의해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인구 절벽' 사태에 닥쳤다. 정부와 국회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현금성 지원,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우자 휴가, 급여 인상 정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저출생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해 교육, 노동, 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다만,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정책만으로는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출생의 원인으로는 부동산 급상승과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청년들의 가치관 변화도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자가가 있어도, 일·가정 양립이 되는 일터에 다니는 청년이더라도 출산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2030세대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위해 더 이상 희생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좋지만, 이미 시작된 축소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1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생산가능인구인 15~64세는 2019년 이후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생산가능인구는 2044년까지 1000만 명 가량 감소하고, 현재 5100만 명 가량의 총인구가 2065년에는 3000만명 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인구가 국가를 지탱하는 사회경제시스템과 사회적 인프라가 인구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고, 기술이 선제적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인구 감소로 인해 삶의 질을 현저하게 저하시킬 수 있다. 우선 경제활동인구와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해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출생아 감소로 인해 어린이집·유치원, 학교 기능의 저하와, 군 병력 감소에 따른 국가 안보 문제,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른 지방소멸 심화,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 약화 등 우리 사회의 존속 문제와도 직결된다.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다면 외국인 인력(이민자)를 받거나, 인공지능 기술 발달, 내수 시장·수출 경쟁력 강화 등 축소 사회에 맞는 새로운 경제·사회적 시스템 구축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차원이 다른 미분양 위기, 특단의 대책 필요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점점 늘어나는 아파트 미분양이 시장을 옥죄고 있다. 지난해 11월 5만7925가구까지 줄어들었던 전국 미분양 물량은 4개월 만에 6만4964가구까지 급증했다. 지난 3월 기준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2194가구로 1년 전인 지난해 4월(8716가구) 대비 40% 가깝게 늘어났다. 일부 지방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미분양 무덤'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는 얼마전 한 채도 팔리지 않아 전가구가 미분양인 아파트 단지가 등장해 우려를 키웠다. 최근에는 수도권까지 미분양 증가세가 확산됐다. 지난 3월 수도권 미분양은 1만1977가구로 지난해 12월 말(1만31가구) 대비 19.4% 급증했다. 특히 경기도는 지난해 말 5803가구에서 3달 만에 8340가구로 43.7%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앞으로 미분양 증가세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달 전국 분양 예정 물량이 지난해 동기(1만4363가구) 대비 2배가량 많은 3만6235가구나 되기 때문이다. 전국 미분양 주택 물량이 조만간 8만가구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건설업체들은 미분양 증가 때문에 아예 공사 수주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올해 들어 건설사들의 수주액은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뚜렷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10 대책'에서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면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해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실행도 되지 않았다. 지난 3월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통해 10여년 만에 기업구조조정(CR)리츠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환매될 가능성이 높은 우량 물건에만 집중돼 한계가 명확하다. 최근의 미분양 위기는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금리 상태에서 벌어져 건설사들에겐 저금리였던 2009년 금융 위기 직후 미분양 사태때보다 더 치명적이다. 특히 높은 금리는 미국발이라는 외생변수이기 때문에 정부, 기업들의 대응책도 마땅치 않다. 사상 초유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물가인상, 공사비 급등 등도 전쟁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와 겹쳐 있기도 하다. 현 정부가 온갖 규제 완화 대책을 내놔도 부동산 시장 전체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다. 그만큼 미분양으로 인한 위기가 더 심화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부디 정부가 빠르게 미분양 증가세를 억누르고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 시장이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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