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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후위기와 함께 커지는 정치양극화

정치양극화는 상대방 정치 진영을 악마화하는 데서 확대된다 한다. 기후위기가 정치양극화를 키우기 좋은 소재다. 진보는 보수를 기후위기로 멸종위기인 인류를 방치한다 보고, 보수는 진보를 기후위기에 정신 팔려 경제를 파괴한다고 공격한다. 기후위기로 나타난 정치양극화의 서늘함은 공무원들이 제대로 느끼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 했던 기후에너지 정책이 혹시 정권 교체 이후 문제 되지 않을까 걱정이란다. 윤 정부 지지율은 오를 기미를 안 보이는데 국회를 절반 이상 차지한 야당은 정부를 '기후 범죄자'와 '태양광 살인마'로 보고 있다. 기후에너지 정책은 이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끄네 마네' 하던 '탈원전 감사'와는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환경부에서 수립 중인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모든 기후 관련 정책을 이끄는 상위 정책이다. NDC는 환경부의 탄소배출권, 전기차 충전소 정책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국토교통부의 제로에너지건축물 제도 등을 수립하는 기반이 된다. 기후에너지 정책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보니 공무원들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시민단체가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기후소송은 정부가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소송이다. 기후소송의 목적과 승소 가능성을 떠나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정책은 정치적으로 더 위험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야심차게 발표한 동해안 석유·가스전 개발사업은 실제 성공 여부를 떠나 정권이 교체되면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캐고 있다며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벌써 야당은 동해안 석유·가스전 개발사업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혈안이다. 2035 NDC 또는 원전이나 재생에너지 보급 계획을 포함하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같이 굵직한 기후에너지 정책도 윤 정부 계획대로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감사'의 희생자가 어디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윤 정부도 문 정부 때 계획한 NDC와 전기본을 뒤집었다. 태양광 관련 주요 정책을 폐지했고, 국무조정실을 동원해 문 정부에서 추진한 태양광 사업을 전수조사했다. 야당과 재생에너지 업계는 이 일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보수 정부의 등장으로 기후에너지 정책이 바뀔 수 있다 하니 우리나라 일만은 아닌 듯하다. 확실한 건 언론이 기후위기로 나타나는 정치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기업에 참 좋은’ 납품대금연동제, 시장 안착 빠를수록 좋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15년 전쯤 한 건강보조식품의 TV 광고에 나온 문구다. 해당기업 회장이 광고에 직접 등장해 자사 제품이 남성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말한 이 장면은 개그 프로그램 소재로 활용될 정도로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 중인 '납품대금연동제'를 보며 이 CF가 번뜩 떠올랐다. 누가 봐도 '중소기업에 참 좋은 제도'인데, 정작 기업들이 이 제도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막연한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계가 납품제도연동제 관련 이런저런 행사들을 여는 것도 현장에서 제도 안착을 위해서다. 납품대금연동제는 원재료 가격이 일정 기준(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10% 이내에서 협의해 정한 비율) 이상 변동하는 경우, 그 변동분에 연동해 납품대금을 조정(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원자재 가격의 갑작스런 상승에도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일굴 수 있는 방책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 10월 4일부터 약 3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올해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중기부는 최근 서울 강남에 있는 반도체 부품 제조 중견기업 해성디에스에서 '(납품대금연동제) 우수 동행기업 간담회'를 열었다. 해성디에스는 민간기업 1호로 7개 협력업체와 함께 연동 약정을 체결하며 제도 확산에 기여한 모범기업이다. 이날 현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연동제는 위탁기업에게도 좋은 제도"라고 한 조병학 해성디에스 대표의 발언이다. 흔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게 납품대금연동제는 부담만 안겨주는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조 대표는 오히려 납품대금연동제 덕분에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기업 본연의 제품 경쟁력 상승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등은 외생 변수인 만큼, 이걸 두고 위·수탁기업 간 실랑이를 벌여봐야 득이 될 게 없다고 갈파했던 것이다. 한 치 앞이 아닌 미래에 무게를 둔 해성디에스의 '통큰 결단'에 협력사들이 왜 '무한 감사'를 표시하는 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 아직까지 대기업에 납품하는 3, 4차 협력기업들은 납품대금연동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납품대금연동제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는 오해나 잘 모른다는 이해 부족은 정부가 풀어야할 숙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확대를 통해 국가경제 성장의 시너지 창출을 이끌어내는 '납품대금연동제 안착' 성공사례가 더 나오기를 바란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증시 신뢰 회복 위해서는 테마주 바로잡아야

“왜 일반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못 믿는 걸까요?" 금융업계에 오래 발을 담았던 한 관계자와의 대화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주가 때문이라고 결론 냈다. 기업의 실적이 아닌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호재, 테마 등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잦다보니 투자자들이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최근 증시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주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군 '동해 심해 가스전' 테마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성공률 20%, 다시 말해 실패 확률이 80%임에도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석유, 가스, 유전, 철강 관련 종목이 일제히 급등했다.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 동양철관 등이 상한가를 찍었다. 특히 철강 테마주로 떠오른 동양철관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거래일 연속 상한가라는 진풍경을 낳았다. 3일 평균 거래량이 5409만7796주에 달했고 상한가를 3거래일째 기록한 지난 5일에는 무려 1억4688만주가 거래됐다. 삼성전자의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평균 거래량이 1766만주였던 것을 감안하면 투심이 어느 정도로 쏠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슈가 발생하면 관련 종목이 테마주로 급부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호재로 인식되면 기업 가치에 반영될 수 있어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묻지마 투자'로 흘러가면서 이슈의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주가가 과도하게 급등한다는 점이다. 실제 사업 연관성이 없는 종목들이 테마주로 묶이는 것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번에도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과 연관 없지만 기업명에 석유, 가스, 유전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테마주로 묶인 종목들의 주가가 20%씩 치솟았다가 다음날 바로 급락하기도 했다. 투자자들도 테마주가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테마주는 거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올라가는 주식을 보면 올라타고 싶은 것이 투자자들의 심리다. 투자자들에게 테마주 투자에 주의하라고 당부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나타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인 셈이다. 금융당국에서도 테마주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 아니라 테마주 가운데 사업 연관성이 낮은 종목들은 해명 공시를 하도록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글로벌 삼성, 그룹 차원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미국)=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바야흐로 대변혁의 시대다.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기술이 진보하고 경제가 발전한 영향이다. '대체불가토큰(NFT)'·'메타버스' 같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은 구태가 되기 십상이다. '혁신의 성지' 실리콘밸리는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실리콘 칩 제조 회사들이 많이 모여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은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 엔비디아, 애플, 구글, 메타 등이 경쟁사들보다 앞서 미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성형 AI과 확장현실(XR)을 비롯한 트렌드는 이 곳에서 만들어진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결단력이다. 애플은 10여년간 수조원을 들여 개발해온 '애플카' 프로젝트를 과감히 중단했다. 아이폰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비전프로' 등 신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구글은 검색 등장 이후 25년만에 '제미나이'라는 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 엔비디아는 기술력을 앞세워 AI 칩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필요하다면 돈·시간도 아끼지 않는다. 메타는 원래 사명이 '페이스북'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용기'는 수많은 빅테크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역시 '대변혁의 시대'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삼성' 위상을 생각하면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과 시스템반도체 등 분야에서 고전하는 중으로 스마트폰·가전 등은 이제 막 AI 기술을 개발해나가는 단계다. 재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살아남기 위해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 계열사 역량을 총동원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반도체, 스마트폰, 이차전지 등 한 분야를 파고들어서는 생존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룹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말했던 고인의 용기는 오늘날 삼성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용기가 절실하다. '미래전략실 부활'을 선언하고 임직원과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삼성그룹에는 통제탑이 필요하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탄소감축’ 11차 전기본·‘산유국’ 대통령실…오락가락 에너지정책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주 정부는 '탄소감축'을 위해 원전 등 무탄소전원 확대 의지를 담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직후 대통령실은 뜬금없이 '대규모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며 '산유국'의 꿈을 부풀리는 소식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11차 전기본은 지난 정부와 국회에서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2050탄소중립,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탄소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2038년까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비중을 70% 이상으로 잡았다. 반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발전 비중은 대폭 줄였다. 이르면 2040년,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원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동해 심해 석유·가스 추정 매장량이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고 공언했다. 다만 에너지업계에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개발 성공률을 20% 정도라고 밝혔다. 아직 탐사 시추를 통한 석유·가스 부존 여부를 확인, 사업성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데다 탐사와 시추, 상업화까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또한 만약에 시추에 성공한다면 다시 석탄화력과 가스발전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정부는 2035년 이후부터 부족한 발전설비는 모두 무탄소 전원을 통해 충당하기로 했다. 이에 기존 석탄화력, 가스 발전사업자들도 양수발전, 해상풍력, 수소, 소형모듈원전(SMR)등 새로운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상황이다. 정부는 시추에 성공할 경우 국내 사용을 넘어 수출도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국제 사회에서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발전, 청정수소, CCS(탄소포집·저장)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 활용을 확대하는 무탄소전원이니셔티브(CFE)를 선도하겠다던 정부의 방향과 상충된다. 심해 해저에 1개의 시추 구멍을 뚫는 데는 약 100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여전히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적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송전망 확충 등 에너지업계 당면 현안들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 에너지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커진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지금의 인뱅도 ‘시간’이 걸렸다…새 플레이어들에 거는 기대

인터넷전문은행 제1호 케이뱅크와 제2호 카카오뱅크가 출범한 2017년, 이 때에도 인터넷은행의 성공을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확실한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 고객들이 오프라인 점포가 없는 생소한 온라인 은행으로 넘어갈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인터넷은행이 출범 이후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도 아니다. 케이뱅크는 자본확충에 발목이 잡혀 한시적으로 영업을 하지 못하기도 했고, 후발주자인 제3호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는 2021년 출범 후 곧바로 대출 규제에 막혀 대출 영업을 일정 기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출범 후 7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행은 명실공히 시중은행을 흔드는 메기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산 규모 등 덩치 면에서는 시중은행이 여전히 월등히 앞서고 있지만, 인터넷은행이 내놓는 금융 상품은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시중은행이 뒤따라가기도 하고, 대환대출을 통한 대출 성장세는 시중은행에 위협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DGB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제4인터넷은행의 탄생 예고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과점깨기를 위해 새로운 플레이어 등장을 예고했고, 올해 들어 현실화되고 있지만 시장에 파급력을 발휘할 지 의문이란 의견이 계속 나온다. 먼저 대구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보다 자산이 7분의 1 수준으로 적은 데다, 사업을 확대한다고 해도 시중은행과 대적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예상한다. 또 제4인터넷은행 도전자들은 하나같이 소상공인 특화 은행을 내세우면서 기존의 인터넷은행과 차별화를 두고 있는데, 건전성이 취약한 소상공인 금융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새 플레이어들이 등장 이후 곧바로 시중은행의 과점깨기에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먼저 덩치를 키우고 새로운 은행으로서 자리를 잡기까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들의 등장을 실패로 일찌감치 단정짓기에는 섣부른 면이 있어보인다. 몇 년에 걸쳐 시장의 메기로 인정받은 지금의 인터넷은행처럼, 이들도 몇 년의 시간을 거치며 시장의 메기로서 모습을 갖춰나갈 지 모를 일이다. 아울러 금융당국 역할도 중요하다. 신규 플레이어들의 '등장' 그 자체보다는 '지속 가능성'에 고민을 하고 정책을 정교하게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금융지주 글로벌 진출, 실패를 두려워 말라

“전망이라는 것은 자연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기상청도 틀리지만 그 정도 정확성을 갖고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렇게 차이가 나면 어떤 이유에서 틀렸고, 왜 차이가 났고, 그로 인해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논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달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5%로 상향 조정한 것을 두고 '예측이 틀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한국은행이 데이터 얘기 안하고, 이게 시장 안정에 좋다고 그냥 있으면 하루에 두 번 맞는 시계가 되고 크게 비난 안 받겠지만, 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정부 자료를 좀 더 빨리 받아볼 수는 없는지, 개선할 부분이 무엇인지 등을 논의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이 총재의 발언은 '경제성장률'이나 '시장 예측'을 넘어 금융지주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외 진출이다. 수많은 이들은 '금융사들이 우리나라에만 안주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순이익 1,2위에 오르는 대형사들조차 해외 시장에 안착하고, 수익을 내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간, 돈을 투입해야 한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국내 시중은행과 해외 1, 2위 초대형 투자은행(IB) 가운데 한 곳에서만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면, 단연 우리나라 은행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행들이 타국의 금융사를 인수하거나 진출할 경우 빠른 시간 안에 흑자를 내야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만일 우리나라 은행들이 해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철수하면, '실패'라는 서슬퍼런 꼬리표가 붙는다. KB국민은행이 2020년 8월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 지분 67%를 인수한 이후 거듭된 유상증자에도 흑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코핀 은행은 인수 직후 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책임론을 물을 정도로, 알고 보니 상당한 부실 은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에서, 자칭 한국의 KB국민은행만한 우량한 금융사를 인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국민은행 사례처럼 지금도 국내 많은 금융사들이, 손실이거나 손해인 줄 알면서도 해외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부코핀 인수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봐야한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해외로 나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실패'라는 비난도 받지 않고, 시간과 돈을 아끼는 '가장 손쉬운 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길을 택한 금융사들이, 만일 해외에서 철수했다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이상 '실패'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철수로 어떠한 교훈을 얻었는지, 다음 해외 진출 때는 어떠한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게 곧 K-금융이 글로벌 금융사로 성장하는 길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고성 속에 문 연 22대 국회, 견제구는 적당히 던져라

야구 경기 중 투수가 마운드에서 견제구를 던지는 건 상대 주자의 도루 시도를 막음과 동시에 타자의 리듬을 깨기 위함이다. 견제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KIA 타이거즈의 견제 응원이 서남 방언을 활용한 “아야! 날 새것다(얘야! 날 새겠다)"일까. 21대 국회는 문을 닫는 마지막 날까지 지난한 정쟁으로 밤을 지새웠다. 협치를 통해 민생을 챙기겠다던 첫 다짐과는 달리 서로를 향한 비방과 욕설로 얼룩졌다. 명분은 '여야 견제를 통한 정권 감시'였지만, 실상은 '국K-1'을 방불케 하는 난투극이나 다름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산업계 주요 현안과 진흥 법안은 본회의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K칩스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산업기술보호법,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등이 줄줄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특히 여야 간 입장차가 거의 없었던 인공지능(AI) 기본법까지 자동 폐기되면서 산업계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해당 법안이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 육성 근거로 작용, 국가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는 '핵심 키'라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향후 해외 국가들과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지적이 적잖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법안마저 내팽개쳐졌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의 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체액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성폭력특례법 일부 개정안도 여야 모두 처리에 합의했지만 폐기됐다. 신용카드 사용 금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등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21대 국회는 '낙제점'에 가까운 입법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회의안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발의된 법안 2만5800여건 중 법률로 반영돼 처리된 법안은 9479건에 그치면서 통과율 35.3%을 기록했다. '식물 국회'라 평가받았던 20대 국회의 37.3%에도 못 미치면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게 됐다. 22대 국회에 입성한 이들은 폐기된 법안들을 소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양당의 갈등은 한층 더 첨예해질 전망이다. 당장 원구성 협상부터 여야는 법제사법위원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강하게 맞붙었다. 개원 첫날 국회 표정도 밝지 않았다. 여야는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과 윤석열 대통령의 14번째 거부권 행사를 두고 날선 신경전을 벌이면서 극한 대립을 예고했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타협과 상생은 실종된 채 견제만 지속된다면 정책 추진 동력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답답함이 길어지고 있다. 의미 없는 견제구로 입법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마!(이 놈아!·롯데 자이언츠의 견제 응원)"라는 엄포가 날아들 수 있음을 명심할 때다. 새 국회는 서로 합력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선을 이루는 '민의의 전당'이 돼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중국산은 싸구려’ 인식부터 버려야 산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엔 '중국산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짝퉁과 불량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한국 제품을 그대로 베낀 상품을 판매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싸구려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여전히 테무, 알리 등으로 싸구려 제품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에 유통되고 있지만 전기차와 배터리 등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고 있다. 세계 산업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벌벌 떠는 것은 후진 제품을 싸게 팔아서가 아니라 좋은 제품을 싸게 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의 기술력과 상품성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중국산 제품을 싸구려로 생각하고 방심한다면 순식간에 시장을 중국에게 뺏길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위세가 특히 돋보이는 곳은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 관세를 100%로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산 전기차가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가다. 물론 80% 이상이 내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중국의 전기차·배터리 기업인 BYD는 지난해 3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미국의 테슬라보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배터리 시장을 살펴봐도 글로벌 점유율 1위는 중국의 CATL이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DI 등이 분전하고 있지만 CATL의 아성을 넘기엔 아직 부족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인지도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중국산을 깔보는 분위기가 남아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자사 전기차 출시 행사에서 “왜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했냐"고 물어보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제조사나 다른 국가의 기자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업계 순위도 높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중국의 기술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을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는 중국산 저가 공세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인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관점에만 해당된다. 기업은 중국산을 깔보고 무시하면 안된다. 그들의 공세를 위기로 인식하고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무조건적인 중국산 배제도 한계가 있다. 좋은 품질에 저렴한 가격이 동반된다면 아무리 중국을 싫어하는 한국 소비자들이라도 움직이게 된다. 중국은 더 이상 싸구려, 짝퉁을 판매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들의 기술 발전을 항상 경계하고 그들을 뛰어넘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관세청,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 고쳐매지 말라

지난 1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는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소비자 안전 확보 △소비자 피해 예방 및 구제 강화 △개인적 사용을 위한 해외 직구 금지 △해외 직구 통관 차단 강화 △유통소상공인과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 상실 문제 해결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관련 산업의 충격 완화 △중소 유통・소상공인의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해외 직구를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는 “무식한 정책에 화딱질이 난다", “공산 국가냐, 이민 가고싶다", “반중 정책 지지하니까 알리·테무·쉬인까지 금지하라는 것인 줄 아느냐" 등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IT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성인들의 취미 생활에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후 지난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발표 사흘만에 “국민들께 혼선을 끼쳐 죄송하다"며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를 일시에 차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고 KC 인증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윤석열 대통령은 “관계 부처들로부터 보고받지 못해 몰랐던 내용"이라면서도 해외 직구 대국민 '도게자'를 박았다. 이후 해외 직구를 막지 않겠다던 정부는 한편으로는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 6월 중 시행하겠다는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해외 직구 태스크 포스(TF)의 회의록을 비공개한다는 방침이어서 밀실에서 졸속 행정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무 담당자들은 정부 관계 부처 합동 보도자료를 보고서야 직구 금지 정책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부 부처에서는 해외 직구 전면 금지에 반대 의견을 제시해 얼마나 충분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발표한 것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와중에 지난 16일 13시, 눈치 없는 관세청은 조달청 전자 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 '해외 직접구매 증가가 국내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 입찰 공고를 개시해 27일 11시에 마감했다. 이는 유찰됐지만 28일 10시 재입찰이 시작됐고, 마감은 6월 3일 11시로 잡혀있다. 사업 금액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9000만원이다. 원래 입장을 고수하며 사실상 9000만원에 해외 직구 반대 논리를 개발해올 작업자들을 구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해당 용역은) 올해 1월 과제로 선정돼 입찰 공고된 것으로, 범정부 해외 직구 대책과는 전혀 무관하고 해당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할 수 없다"며 “현 단계에서는 정책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향후 국민 여론과 전문가, 관련 업계와 심도있는 의견 수렴, 논의를 거쳐 최종 정책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들어는 보겠다'고 농락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미 대 정부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오해 살 일을 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은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말라'는 오랜 격언이다. 관세청 당국자들은 잘 새겨듣기 바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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