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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후위기가 흔드는 밥상…위협받는 식량안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 위기가 실감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흔했던 식자재들을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사치품'이 돼가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현상으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일부 외식업체와 베이커리 체인에서 토마토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것만 봐도 기후위기가 우리 먹거리에 얼마나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올여름 폭염과 같은 극한 기후가 농작물 생육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농산물의 수급이 불안정해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작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배추, 무, 귤, 사과 등 다양한 농작물 가격이 오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던 품목들이 이제는 기후위기에 따라 생산량이 들쑥날쑥해지면서 소비자의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식량안보 문제는 국민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앞으로 기후위기는 더 빈번하고, 더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가열화로 인해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2040년의 기후 조건을 예측해 서양배 재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변화에 맞춰 품종 개발과 농업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 최근 국정감사에 따르면 5년간 농림축산식품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연구용역을 단 한 차례밖에 발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식량안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인해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맞서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대응은 단기적인 대책을 넘어서야 한다. 정부는 선제적으로 농작물 수급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식탁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토종 OTT ‘숏폼’ 콘텐츠 도입 망설일 이유 있나

콘텐츠 시장 내 '숏폼'의 인기가 연일 화제다. 15초~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숏폼 콘텐츠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이 시작됐다. 현재는 1인당 월 평균 숏폼 앱 사용 시간이 여타 앱의 7배가 넘는 52시간이란 조사 결과가 대변하듯 숏폼은 전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숏폼이 콘텐츠 시장을 점령하면서 롱폼 위주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영역을 확대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최대 관심사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여부다. 숏폼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밀리는 토종 OTT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OTT 시장의 절대 강자는 넷플릭스다. 초창기 대비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월간활성이용자수(MAU) 측면 국내 시장 유일한 1000만 앱이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막강한 자금력'과도 맞닿아 있다. 일례로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흥행몰이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의 제작비는 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공개를 앞둔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일부 토종 OTT의 특성상 예능 제작에 100억원을 투입하는 건 부담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데 1000억원을 들이는 건 더더욱 힘들다. 숏폼 콘텐츠의 강점은 적은 제작비다. 2분 이내 드라마 50부작 기준 1억원에서 1억5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흑백요리사의 100분의 1 제작비로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왓챠 외에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왓챠는 최근 숏폼드라마 전문 플랫폼 '숏챠'를 선보였다. 다만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태다. OTT 시장은 결국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이 살아남는 곳이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면 결국 더 나은 '한방'이 필요하다. 숏폼의 인기는 어쩌면 토종 OTT에게 기회일 수 있다. 숏폼 콘텐츠를 통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대작을 선보이는 데 혈안이 돼있는 넷플릭스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트렌드는 급변하기 마련이다. 대세가 됐을 때 잡아야 한다. 토종 OTT들이 숏폼 콘텐츠로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길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양극화의 새로운 기준 ‘얼죽신’

신축 아파트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서울 신규 아파트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신축 아파트들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울 내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가격은 지난 6~8월 석달 새 무려 5.7%나 올랐다. 서울 전체 아파트(3.1%)의 두 배에 가깝다. 얼죽신 열풍은 고분양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분양가가 더 오르기 전에, 주변 단지 시세보다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상품성을 갖춘 신축. 즉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요자들이 쏠리고 있다. 실제 올해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와 비교해 3.3㎡(평)당 1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이날 발표한 9월 말 기준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민간아파트의 최근 1년간 ㎡당 평균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1338만3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를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4424만1000원에 해당한다. 전년 동월(969만7000원) 대비 38.00% 오른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향후 서울 신규 아파트 공급 감소 예상이 기름을 끼얹었다.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린 후 출생한 30대들이 주택구매연령으로 성장하면서 주거환경이 우수한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주효했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분양을 위해 필요한 청약통장 해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545만7228명으로 전월 대비 3만2635명, 전년 동월과 비교해 35만8657명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부양가족이 있으면 가점을 주는 청약제도의 특성과 감당할 수 없이 올라간 고분양가 때문으로 보고 있다. 경쟁률이 워낙 높은 데다 당첨된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분양가가 비싸다. 중산층 젊은이들조차 '그림의 떡'으로 여기며 청약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시내 분양가는 3.3㎡당 4311만원으로 전용59㎡(공급 25평)형은 11억원, 전용 84㎡(공급 34평)형은 15억원 정도로 부모님 도움 없이는 꿈도 못꿀 형편이다. 서울 내 신축 아파트 입성이 양극화의 새로운 기준이 된 현 시점에, 불공정한 청약제도와 비현실적으로 높은 분양가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양극화가 고착되고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 희망도 사라지고 말것이다. 정부가 현명한 대책을 통해 불씨를 살릴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기자의 눈] 국내 증시를 믿고 싶다

“이러니 다들 미국 주식만 하죠. 코스피에 투자해봐야 오르질 않는데." 개인 투자자들의 푸념이 아니다. 이 발언은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만큼 최근 국내 증시 상황이 암담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연초 정부가 내세운 '밸류업 프로그램'은 시행 초기에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손꼽아 기다렸던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도 코스피는 2600선을 지키기도 버겁다. 당장 본인부터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년간 보유하던 국내 주식을 7월경 모두 정리했는데, 8~9월을 거치며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주식을 보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0~2021년에 급증한 개인 투자자들이 인내심을 잃고 국내 증시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정부가 장기투자와 퇴직연금 투자를 강조하지만, 이는 증시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내 주식 시장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증시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기침체, 인공지능(AI) 거품론과 같은 악재에도 증시는 꾸준히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 투자자가 국내 주식에 손을 뻗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밸류업'만 외치면서도 투자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의 대응은 의문스럽다. 부동산에 쏠려있는 자금의 자본시장 이동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국내 증시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뉴욕 증시가 장기간 우상향하는데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강력한 세제 혜택이 꼽힌다. 특히 개인 투자자가 주식을 장기 보유할 때 얻는 소득세 감면, 재투자 및 배당소득세율 우대가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논란 장기화로 증시에 불안을 일으키는 우리 상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세제 혜택은 단순히 투자 수익을 높여줄 뿐 아니라, 신뢰 강화로 자금이 증시에 머물러 상승 요인이 된다는 점을 정치권이 강력히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기자의 눈] 우리나라가 기후악당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파행되는 일이 있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노트북에 붙인 '기후파괴범 윤석열' 스티커를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떼라고 항의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정 의원의 문구를 두고 “비과학적이고 사실적이지도 않다. 기후변화 문제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안다면 기후파괴범 바이든, 시진핑 이렇게 했으면 용납하겠다"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만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물론 여당 의원이니 현 정부를 비호해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후환경 전문가 출신이 하기엔 이 바닥에선 신성모독 수준의 말이다. 다들 알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후대응을 재촉하는 데 열중하느라 쉬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으로 보다 보면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악영향을 주는 무리한 정책 방향을 요구하는 데 빠질 수 있다. 환경부도 기후악당 프레임에 넘어간 모습이다. 최근 환경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 발전량 비중 21.6%를 상향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산업부가 환경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는 이를 두고 산업부가 환경부 요청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건 묵살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다. 마라톤 코치가 마라톤을 2시간 이내로 완주하라고 요청한 걸 선수가 못 받아들이면 그게 묵살인가. 환경부는 11차 전기본 실무안 기후변화영향평가에서 “태양광 수력 발전 등 국내 신재생에너지 잠재량을 적극 활용할 경우 신재생에너지 비율 상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수력 발전은 조그마한 소수력 발전을 말하는 건지 왜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2030년까지 신규 수력발전은 없다 봐야 한다. 결국, 태양광을 우겨넣어 2030년까지 21.6% 이상을 채우라는 건데 이는 지금도 위태로운 전력수급 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10%인 지금도 봄이나 가을에 한낮의 태양광 발전량이 순간 전체의 30% 이상까지 치솟는다. 만약 21.6%면 태양광 발전량이 한낮에 순간 전체 발전량의 50% 이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전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도 전력망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태양광이 늘면 화력 발전을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경직적인 원자력 발전을 미리 꺼놔야 한다. 시간 단위로 요동치는 태양광 발전량을 보완하는 건 유연한 화력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전을 줄이면 탄소배출량은 늘어난다. 풍력 발전에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풍력은 배정된 2030년 목표 할당치를 채우기도 버겁다. 환경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를 넘긴 일본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수력 발전량이 10배 이상 많은 나라다. 한 기상 전문가의 말도 떠오른다. 일본은 서쪽과 동쪽으로 긴 나라로 나라 전체로 보면 해가 길게 떠 있어 우리나라보다 태양광을 하기 유리하다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력시스템 개편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등 우리 사정에 맞춰서 태양광이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때 급하게 태양광을 늘리느라 생긴 부작용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는 허용 수치를 넘어 태양광을 받아들였고 지난 2021년부터 태양광 보급량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이라 자책하고 급해지는 건 오히려 독이다. 2030년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중간 과정일 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눈] ‘개굴’거리는 대한상의…지배구조 개혁이 두려운가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라는 말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규제강화 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보고서를 보면, 이 고사성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좁은 우물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개구리처럼, 대한상공회의소는 변화하는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회원사, 아니 어쩌면 '회원사의 오너'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할 뿐, 글로벌 시장의 변화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가 꼭 개구리같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지배구조 규제 강화가 “기업경영 근간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대한상의는 이번 입장을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사자성어로 대변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대한상의에 들려주고 싶은 사자성어와 속담, 우화가 한두개가 아니다. 먼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세계 경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의 태도는 마치 제자리에 멈춰 서서 이끼만 키우겠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태도로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이솝 우화도 떠오른다.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태도는 마치 닿지 않는 포도를 보고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라며 자기위안을 하는 여우와 비슷하다. 개구리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결국 '루저'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도 적용할 수 있겠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당장은 크게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은 분명해질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혁신을 이루는 법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들려주고 싶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실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규제 강화를 반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여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다. 특히 지배구조 규제는 '폭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러한 장기적 안목을 제시해야 하는 기관이 아닐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사자성어 중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떠오른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당장은 쓴 약과 같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기업과 경제 전체에 달콤한 결실을 안겨줄 것이다. 잠시의 인내로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계가 겪었던 고난과 시련을 생각한다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역시 당장은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안 되는 게 어디있나. “이봐, 해봤어"라는 故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 기업들을 대표하는 대한상의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를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교각살우'로 '소'를 들어 비유한 대한상의에게 이왕이면 '우보만리(牛步萬里)'가 더 좋을 거 같다는 제안을 해본다. 만리 길을 위한 한 걸음을 걷자.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 오명이 된 밸류업 지수

“밸류없, 밸류 다운 지수…" 최근 시장에서 한국거래소가 야심차게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표현하는 말이다. 지난달 24일 밸류업 지수가 공개된 이후 시장에서는 혹평을 내놓고, 거래소는 해명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가치 제고 종목인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KT'가 빠지고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SK하이닉스가 특례로 편입되면서 기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엔씨소프트, SM엔터, 두산밥캣도 편입됐다. 경영권 이슈나 인수·합병이 진행 중인 기업들은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고려할 여력이 제한적인데 포함된 것도 거래소의 시장 관심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요인이다. 증권가에서도 발 빠르게 '밸류업 지수 편입 부적합 명단'을 내놓았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증권사 중 처음으로 밸류업 지수 100개 종목 중 55개 종목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진행했고, 24개의 종목을 부적합하다고 봤다. 개별 지배구조 및 중장기 전략을 고려하지 못했고 실적이 일시적으로 양호했던 기업도 기술적으로 편입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종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보고, 시장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B증권은 지난달 30일 '밸류업 미편입 금융주, 주가 하락은 기회'라는 리서치 보고서를 내고 밸류업 편입 실패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강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과 자본 비율을 개선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 KB금융은 9월 25일부터 10월 8일까지 14.04%나 상승하기도 했다. 시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거래소는 지수 공개 이틀 만인 지난달 26일 연내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 조기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밸류업 지수 시장의 실망감, 지적에 무관심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일은 벌어졌고,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시장 의구심은 지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은 중장기적인 우리 증시의 목표다.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선 기업의 특성, 지배구조, 기업가치 제고 현황 등을 세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밸류업 지수가 이름과 같이 평가 받는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 윤하늘 기자 yhn7704@ekn.kr

[기자의 눈] ‘티메프 규제’, 이커머스 생태계도 고려해야

“규제는 한 번 생기면 없애기 힘들잖아요.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려도 큽니다." 대규모 정산 지연사태를 촉발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규제가 조만간 가시화될 조짐에 이커머스업체 한 관계자의 우려 섞인 반응이다. 이 관계자는 제2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를 만들어 판매자와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규제라는 게 특정기업을 넘어서 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온라인 플랫폼산업 성장과 유망 스타트업의 신규 진입을 가로막는 '허들(장애물)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티메프 사태 방지를 위해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 개정안의 여론수렴 공청회를 열었다.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은 재화·용역 거래를 중개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에 정산기한 준수 및 대금 별도관리 의무 부여'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전자결제대행(PG)사의 미정산자금 전액에 별도관리 의무 부과'와 'PG사 건전경영 유도를 위한 실질적 관리·감독 장치 마련'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정부는 아직 개정안의 △적용 대상 기준 △정산기한 △대금 별도관리 비율 등 세부사항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법 적용 기준을 '중개거래 수익'으로 할 것인지, '중개거래액 전체'로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의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바라보는 이커머스업계는 '과잉규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에 시행될 규제가 전자상거래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단 이유에서다. 앞서 티메프 사태 여파가 일파만파 확산되며 이커머스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당시에도 업계 한켠에선 섣부른 규제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티메프 사태의 본질이 결국 티몬·위메프 두 기업의 재무 건전성 악화로 초래된 것인만큼 향후 이커머스기업 재무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재무적 관점에서 재발 방지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산주기 규제에도 비판적이다. 정산주기 규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적용하는 경우로 일괄 규제 시 판매자 성장에 장기적으로는 방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의 규제 움직임과 업계 일각의 역효과 우려가 혼재하는 가운데 국민 여론은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규제가 만능이 되어선 안된다. 자칫 '빈대(티메프) 잡으려다 초가삼간(이커머스 생태계) 다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더 신중하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여야 ‘민생 상품권’ 경쟁, 소비자 편의는 뒷전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을 두고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하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활성화'를 명분으로 지역사랑상품권 운영에 재정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당론으로 삼아 밀어부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면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온누리상품권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전통시장 등의 활성화를 위해 온누리상품권의 내년도 발행 규모를 역대 최대로 편성하고, 사용처도 확대하며 야당의 지역사랑상품권에 맞대응하는 모습이다. 지난 추석 연휴 전라남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사용을 시도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상품권 모두 사용이 불편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전통시장 밖에서도 사용 가능하지만, 사용처의 연매출에 상한선을 두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를 제한하도록 지침을 개정하면서 사용처 제한이 빡빡해졌다. 결국 상품권을 사 놓고도 못 쓴 셈이다. 지역 온라인몰에서 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 살펴보니, 사고 싶은 제품이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환불을 받으려 했더니 그것마저 불가했다. 다시 살펴보니 상품권 환불 유효기간이 일주일이었다. 서울에선 환불 기한이 이렇게까지 빡빡하진 않았는데 좀 너무하다 싶었다. 온누리상품권도 불편하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전남지역을 대표하는 어시장에 방문해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을 쓰겠다고 했더니, 가맹점 등록이 안 돼 있다며 차라리 신용카드로 결제하라는 말만 들었다. 또 다른 점포에선 지류만 취급한다고 해 모바일 상품권을 아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쓰지도 못할 상품권, 할인율만 높으면 뭐 하나 싶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집계한 모바일·카드 온누리상품권 가맹시장별 월평균 매출에 따르면, 올해 매출 1위는 대구종합유통단지 전자관으로 55억원이었다. 이는 전국 1387개 온누리상품권 가맹시장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온누리상품권이 '전통시장 살리기'라는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여야가 각자 밀고 있는 민생 상품권 어느 것도 민생현장에서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여야 모두 '민생 살리기' 법안이나 제도를 마련했다고 생색내기에 앞서 국민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더 시급하다. 그래야 전통시장이 살고, 지역경제도 숨통이 틘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디딤펀드가 노후 준비의 ‘진짜’ 디딤돌이 되려면

금융투자협회가 '디딤펀드'라는 새로운 개념의 퇴직연금 상품을 시장에 내놨다. 펀드명이 우선 직관적이다. 국민의 노후 준비에 디딤돌이 되겠다는 의미에서 '디딤펀드'로 이름 붙였다. 디딤펀드는 금투협의 지휘 아래 지난달 25일부터 자산운용사 25곳이 일제히 내놓은 펀드다. 퇴직연금을 주식, 채권 등 자산에 분산투자해서 안정성을 확보하고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의 85% 이상이 초저위험군인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몰려 있다. 노후 자금인 만큼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심리가 작용해서다. 협회는 디딤펀드를 통해 원리금보장형에 담긴 자금을 실적배당형으로 옮겨 국민들이 자산을 증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협회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디딤펀드의 콘셉트, 펀드 조건 등을 논의해왔다. 서유석 회장이 취임 당시 공약으로 디딤펀드를 제시했던 만큼 올해 협회의 핵심 사업이 될 전망이다. 디딤펀드라는 명칭도 서 회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디딤펀드의 핵심은 안정성과 수익률이다. 운용사별로 대표펀드를 하나씩 출시했는데 상품별로 자산 배분 비중이 다르고 수익률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부 상품은 ETF를 활용해 투자하기도 하고 물가상승률에 연 3% 수익률을 추가로 보장하는 등 각기 다른 특색을 지녔다. 위험도를 낮추면서도 복리 효과를 내 안정을 추구하는 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기존에 디폴트옵션이 가능한 타깃데이트펀드(TDF)와의 차별성이 모호해서다. TDF 자체도 아직 시장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디딤펀드로의 투자자 유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TDF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운용사들조차도 사업 추진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데 협회에서 성과를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부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아울러 디딤펀드는 아직 디폴트옵션으로 승인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협회도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의식한 듯하다. 협회에서 직접 운용사들에게 디딤펀드 간담회를 해줄 것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오는 7일부터 자산운용사들은 각사의 상품을 소개하는 디딤펀드 간담회를 순차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어떤 사업이든 시작하기 전에 의구심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상품의 퀄리티나 운영 방식 등이 좌우하게 된다. 업계에서 공들여 준비한 만큼 디딤펀드가 그저 그런 보통의 펀드로 남지 않길 바란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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