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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거창한 에너지 목표, 사소한 걸림돌에 발목 잡힌다

“올여름 제가 사는 아파트도 정전을 겪었어요. 더워서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니 집이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지금 히트펌프를 달면 정전이 더 자주 생기지 않겠어요?"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산다는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정부 목표를 두고 이같이 일갈했다. 아무리 법을 고치고 보조금을 지급해 사용을 장려한다 한들, 구축 아파트의 낡은 배전 체계가 과연 수많은 히트펌프를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구축 건물의 비중이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배전 설비 노후화가 히트펌프 보급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곱씹어볼 만하다. 히트펌프는 천연가스 보일러를 대체하지만, 결국 전기를 끌어와야 작동한다. 건물용 히트펌프 1대의 소비전력은 대개 15kW 수준이다. 개별 건물 단위에서 전기를 안정적으로 수용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거창한 보급 목표는 현실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소한 걸림돌이 거대한 정책 목표와 충돌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전기화 국가', '탄소중립', '3대 메가 프로젝트' 같은 화려한 구호 속에 '언제까지 얼마나 확대하겠다'는 식의 약속이 난무하고 있다.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200GW를 보급하겠다거나,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40GW 규모의 전력용량을 신속히 확충하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전력 공급이 시급해지자 신규 대형 원전 건설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언급까지 나온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속도전이 필요하지만, 그간의 전력 정책을 돌이켜보면 실행을 막아서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원전 1기를 짓는 데 이론상 15년 안팎이 걸린다지만, 실제로는 여러 이유가 얽혀 20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재생에너지 역시 올해 상반기 신규 확충 설비가 약 2GW에 그쳐 정부의 원대한 목표치와는 거리가 멀다. 기자재 공급부터 부지 선정, 행정 인허가까지 제반 여건이 박자를 맞춰야 하나 변수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전력 확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반도체 산단을 비롯한 국가 산업 정책 전반이 흔들린다.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순간 공장은 멈춰 서기 때문이다. 낡은 아파트의 배전 설비처럼 사소해 보이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냉정히 계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무리한 목표는 과감히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담대한 구호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말 실행 가능한가'를 신중히 검토할 때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상폐는 억울하다”는 코스닥, 주주에게는 떳떳한가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코스닥 상장사 주총장을 다니다 보면 종종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수많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겠다며 시장에 들어온 상장사인지, 몇몇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는 동네 구멍가게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서다. 주주가 문제를 제기해도 제대로 된 답변 없이 넘어가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총장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도 의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는 뒷전이고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유리한 선택이 반복됐다는 의심을 사는 기업도 있다. 상장사가 누구의 것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종목은 달라도 주총장에서 만난 소액주주들의 요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주주가치를 높여달라는 것, 주가를 방치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적어도 납득할 수 있게 회사를 경영해달라는 것이다. 회사의 돈을 경영진 개인의 곳간처럼 여기지 말라는 요구도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장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에 가깝다. 그런데 일부 코스닥 기업에서는 이 기본을 요구하는 것조차 주주들의 지나친 간섭처럼 취급돼 왔다. 필요할 때는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등을 통해 시장에서 돈을 끌어오면서 정작 돈을 댄 주주들의 목소리는 외면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주가가 장기간 추락해도 책임지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경영진을 둘러싼 이해하기 힘든 자금 거래가 발견돼도 충분한 설명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코스닥 이미지를 만들었다. 물론 코스닥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건실한 기업이 훨씬 많다. 몇몇 부실기업의 행태를 전체 코스닥 기업으로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는 좋은 기업 몇 곳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불투명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시장 전체에 대한 할인으로 돌아온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 강화되는 상장폐지 요건을 두고 코스닥 기업들의 아우성이 큰 것도 그래서 복잡하게 다가온다.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과 동전주 퇴출 등 높아진 문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일률적인 기준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시장에서 밀어내는 부작용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절규가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코스닥 기업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은 정말 없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상장은 기업에 주어지는 영구적인 권리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의 지분을 내주고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투명한 경영과 주주에 대한 책임을 약속하는 계약에 가깝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호소하기에 앞서 그동안 상장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는지부터 자문할 필요가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사관학교 통합론 불 지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빤쓰런’

최근 군 안팎이 육·해·공 3군의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는 이른바 '통합 사관학교' 창설 논란으로 뜨겁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통합 사관학교론에 불을 지피자 각 군 총동창회와 예비역 단체들이 “각 군의 고유한 전통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찬반 여론을 수렴하고 갈등을 조율해야 할 관련 공청회 자리를 국방부가 오는 26일 개최한다고 발표하고선 정작 안 장관이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장관 참석 여부가 공청회 개최에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며, 김홍철 정책실장이 공청회를 주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주도해 거대한 국방 개악안을 던져 놓고서 정작 십자포화에 가까울 이해 관계자들의 비판이 쏟아질 껄끄러운 소통의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실무진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행보는 안 장관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탈영(군무 이탈) 의혹'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과거 방위병으로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제기한 탈영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 조차 못한 장관이 이제는 국가 안보의 백년대계가 걸린 핵심 정책의 공청회마저 회피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과거엔 탈영 의혹을 남기더니 이제는 국방 정책마저 '빤쓰런' 하느냐"는 조소가 터져 나온다. '빤쓰런'이란 2011년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일부 선임병들이 위기 상황에서 후임병들을 버려두고 속옷 차림으로 줄행랑을 친 데서 유래한 말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나 체면은 모두 내팽개치고 오직 자기만 살겠다고 허겁지겁 달아나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조롱할 때 쓰인다. 명색이 대한민국 국방부의 수장이라는 자가 논란에 거대한 산불을 내놓고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은 부하 직원들에게 대신 맞게 한 채 홀연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책임감을 버리고 달아나는 '빤쓰런'의 본질적인 의미와 절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반대의 목소리가 클수록 더 앞장서서 설득하고 토론해야 한다. 정책의 불씨만 던져놓고 쏟아지는 세간의 비판의 화살은 면하려는 것이 국방 수장의 올바른 자세일 리 없다. 안 장관이 진정으로 사관학교 통합을 미래 강군 육성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개혁이라고 믿는다면 비겁하게 요리조리 도망칠 것이 아니라 당당히 공청회장에 나와 반대파들과 마주해 쓴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마땅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스타벅스 너마저…본업 견조한 이마트, 자회사 실적은 과제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많은 기자 직업 특성상 경사 축하용으로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5·18 탱크데이' 논란 이후 부정적 꼬리표가 붙은 이후로는 그런 적이 많지 않았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정치적 상징화에 이어 공직사회까지 퍼지면서 대놓고 선물하기 어려운 선물로 전락해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의 전사적 쇄신까지 약속했지만 완전한 이미지 회복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눈치다. 운영사인 SCK컴퍼니 입장에선 올해 2분기 '사상 첫 적자'라는 타이틀까지 받게 돼 더 뼈아프다. 마케팅 실책의 여파로 1999년 한국 진출 이후 27년 간 이어온 무결점 기록이 깨진 것이다. 앞서 코로나19·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외부 변수까지 버텼던 점을 고려하면 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본업 위주로 개선세를 보이는 모회사인 이마트 입장에선 자회사 리스크 탓에 덩달아 흔들리는 꼴이 됐다. 올해 1분기만 해도 14년 만에 연결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냈던 반면, 2분기에는 43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할인점·트레이더스·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이마트의 별도기준만 보면 2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사실상 이마트 본체가 벌어들인 이익을 자회사·관계사가 깎아먹은 셈이다. 수년 째 대형 적자를 내는 중인 신세계건설·SSG닷컴뿐 아니라, SCK컴퍼니마저 18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실적 부담을 키운 것이다. 2분기 어닝 쇼크에 본업 반등에도 주식 시장은 냉담했다. 이마트 2분기 실적 공시가 발표된 지난 13일, 시작가 8만300원였던 주가는 장중 7만5600원까지 5.85% 떨어졌다. 이후로도 하락세가 지속되며 이달 21일 기준 이마트 종가는 7만1900원으로 마감했다. 일부 증권사는 자회사의 실적 불확실성 등으로 향후 이마트 주가에 대한 기대치를 내리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나증권은 이마트 목표주가를 11만원→8만2000원으로 낮췄고, 키움증권도 13만원에서 10만3000원으로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기업은 숫자로 실력을 증명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이마트가 시장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향후 실적에 달렸다. 가장 큰 책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인물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그동안 지속 강조해온 '본업 혁신' 기조 성과가 가시화됐지만 자회사 실적 반등이라는 또 다른 시험대에 섰다. 그가 책임 경영과 함께 인공지능(AI)·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기자의 눈] 국회의원 나으리들은 무슨 법이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1923'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 달 30일까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법안의 갯수다. 87일이니 3개월도 안 됐는데 국회의원 300명이 인당 평균 6.41개씩 법안을 제출한 셈이다. 각 상임위원회별로 무슨 법안을 냈는지 살펴봤더니 황당한 경우도 왕왕 보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최근 '풋살장 규제법안'을 내놨다. 내용을 살펴보면 규제를 받는 등록 또는 신고 체육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풋살장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소음과 조명 탓에 인근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거 지역에서 이격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면 어느 누가 도심에 풋살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공 한 번 차자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어느 누가 가겠는가. 규제 대상에 편입시켜면 이용자들이 풋살 중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지 의문이고, 소음과 조명이 문제면 그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면 될 일인데 접근법과 발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당 노종면 의원실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과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냈다. 현행법이 안전 인증 기관의 지정 요건에 대해 구체적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신뢰성과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영리 법인을 배제하고, 비영리 법인만이 이에 해당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법안의 요지다. 이 경우 비영리 법인 자체가 이익 집단이 될 것이고 돈벌이 수단을 갖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데, 사실상 시민 단체들의 이권 사업에 진입을 가능케 하려는 속셈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보좌관과 비서관, 비서들이 야근을 밥 먹듯 해가며 법안을 만들었을텐데 정작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의원들은 속속들이 읽어보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기는 할까. 공청회나 토론회와 같은 현장에 나가보면 이미 효력을 갖고 시행 중인 법률 하나에 우는 사람들이 많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처럼 한 번 만들어진 법은 개정하기도 어렵고 폐지하는 건 더욱 그러하다. 국회의원들은 개개인이 모두가 입법 기관인 만큼 법을 만드는 데에 있어 좌고우면 말고 신중을 기해주길 바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카드업계, 언제까지 자영업자 고충 ‘독박’ 써야하나

금융당국이 또다시 영세·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렸다. 신용카드가맹점 323만5000곳 중 309만4000곳(95.7%)에 달하는 사업장이 연매출 구간별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방식이다. 하위 70%, 90%를 넘어 96%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포용금융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SNS를 통해 “소상공인분들에게 카드수수료는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함께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라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포용금융 정책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분들의 힘이 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또다시 울상이다. 우선 본업에 해당하는 사업부문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실적을 끌어올린 기업들을 보면 장기카드대출(카드론)·연회비 수익 확대 또는 대손충당금 감소가 주를 이룬다. 가맹수수료 수익 확대가 IR 자료에서 언급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금융당국의 주장이 현실과 맞는지도 의문이다. 연매출 3억원 이하인 영세가맹점은 카드수수료 부담이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에 따르면 이들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4~1.45%, 체크카드는 0.15~1.15%다. 개인사업자가 신용카드 또는 현금영수증으로 매출을 올리면 국세청이 결제액의 1.3%를 감면하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익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수료율을 내리는 실익이 없다는 의미다. 가맹수수료가 내려가는 동안 △최저임금 △임대료 △전기/가스요금 등 경영난을 심화시키는 요인들은 커졌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700원으로 올해 대비 3.7% 오른다. 여기에 주휴수당을 더하면 1만2840원이다. 소상공인과 정치권에서 주휴수당 폐지론이 불거진 까닭이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가 입은 피해 일부는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됐다. 2024년과 지난해 단종된 신용카드는 1120종으로 집계됐다. 특히 생활비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일명 '알짜카드'가 많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또 어떤 알짜카드가 단종될지 전전긍긍하며 카드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사실상 카드사가 뒤집어쓰는 일을 멈춰야 한다. 나아가 포용금융이라는 포장지로 누군가의 희생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산다는 상생 본연의 의미가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정부의 정책 철학, 딜레마 빠질 때마다 피해는 국민의 몫

정부가 지난 13일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을 꺼냈다. 주택 공급과 실수요 위주로 나타난 대출 절벽현상을 완화하고, 투기성 자금은 더 조이는 방식으로 규제를 재설계한 게 골자다. 그러나 시장 불안감은 완전히 잠재워지지 않았다. 정부의 대출총량 두 배 확대와 대출 여력의 집단대출 우선 공급 약속에도 은행권은 구체적인 총량 배분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관망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내달 입주인 3000세대 대단지 디에이치방배만해도 5개 은행에 배정된 총한도 5000억원 가량이 여전히 부족한 액수란 관측이다. 잔금대출 선착순 대란 뿐만이 아니다. 2금융권을 기웃거리는 고소득자의 여건이나 주담대 오픈런 현상이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출을 풀었다지만 차주는 그래도 빌리지 못하고, 은행은 어디에 얼마나 빌려줄지 몰라 주저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정책 철학과 금융 정책의 특성이 부딪히며 당국이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국민들은 각종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시장 피해와 반발이 거세지면 그때마다 완화된 정책을 내놓는 '땜질식 행정'이란 비판은 현 정부의 금융정책 내내 따라붙은 꼬리표다. 지난해 6·27 이후 9·7, 10·15 대책때도 강력한 대출 규제 먼저 도입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자 예외를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정책 신뢰도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들어선 기조마저 번복되고 있다. 이번 대책에선 주택공급을 위한 금융을 확대하면서 '부동산과 금융을 절연한다'던 기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이 여전히 옳다면 다시금 금융과 연결하는 선택은 이전 흐름과 배치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대책이 보다 나은 방향이라면 이전까지의 정책은 다소 과했다는 것의 방증이 된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예외 기준에 '거주 이력이 하루'인 점 또한 투기를 잡아야 한다며 만든 잣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수많은 사례의 주거 형태를 '하루'라는 기준으로 나누게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커다란 변화를 위해 과감한 결단과 강경한 대응은 응당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일관되고 강력한 추진 뒤에 서민 자금을 끊는다는 비판이나 '난수표 규제'란 별칭이 더이상 이어져선 안된다. 부동산을 좌우하는 금융정책인 만큼 섬세한 계획과 유연한 속도감은 반드시 가져야할 요소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네이버가 두나무 품을 때 생긴 ‘예외’…참 절묘한 우연

시험 감독관을 미리 9명이나 자기 학원 강사로 데려다 놓은 학원이 있다면, 이걸 실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시험 대비를 참 잘했다고 봐야 할까. 네이버가 지금 인수하려는 두나무가 딱 이런 학원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딜을 추진 중이다. 이 결합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와 함께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인허가가 걸려 있다. 때마침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 문턱을 낮춰줬다. 원래는 “위반 이력이 있으면 경중과 관계없이 불수리"였던 조항이, 이제는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고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인정하면 예외적으로 수리 가능"으로 바뀌었다. 네이버가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1심 벌금형을 받아 대주주 자격에 빨간불이 켜졌던 바로 그 지점에, 딱 맞춰 비상구가 하나 열린 것이다. 절묘한 우연이다. 업계는 곧바로 “네이버-두나무 기업결합에 숨통이 트였다"고 반겼다. 채점 기준을 손보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무조건 감점하고 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 이 '경미함'을 누가 판단하느냐다. 개정안은 그 재량을 금융정보분석원장 한 사람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 재량이 처음 적용될 회사로 유력한 두나무는, 공교롭게도 이 재량을 쥔 기관과 이미 깊은 인연이 있다. 최근 5년간(2021~올해 6월) 인사혁신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현황에서 취업 예정기관이 '두나무㈜'인 사례를 추려보면 총 19건이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 출신이 9건으로 가장 많다. 2021년 고객보호실장을 시작으로, 2022년 사내변호사, 2024~2025년에는 매해 실장·팀장급이 실원부터 준법감시팀장, 거래지원심의위원회 위원까지 자리를 잡았다. 감독하던 기관 사람들이 감독받던 회사의 감독 대응 부서로 옮겨가는 흐름이, 지난 5년간 거의 매년 이어진 셈이다. 당국은 이번 완화 조치를 두고 “위반 경중을 따지지 않는 건 규제 목적에 비해 과도한 제한"이라고 설명한다. 발언 자체는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경중'을 가늠할 기관 바로 옆에는 이미 그 기관 출신 인사 9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절묘하다. 이런 인맥을 갖춘 학원이 하필 이 채점 기준 완화의 수혜 사례가 된다는 점을, 순수한 우연으로만 봐도 될까. 우연이라면 그것참 부지런한 우연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기자의 눈] 카지노 복합리조트, 예측가능한 정책이 자본을 유치한다

지난해 4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가 열렸던 일본 유메시마에서는 MGM과 오릭스가 초기 투자만 1조2700억엔에 달하는 일본 최초의 카지노 포함 복합리조트를 착공했다. 2030년 가을 개장이 목표로, 일본 정부는 도쿄와 요코하마 등 두 곳에 복합리조트를 더 공모할 계획이다. 도박을 금기시해온 아랍에미리트(UAE)도 2024년 걸프국 최초로 카지노 면허를 내줬고, 윈 리조트가 39억달러를 들여 2027년 초 문을 열 예정이다. 싱가포르는 2019년 카지노에 부과하는 세율을 올리면서도 마리나베이샌즈 등 두 복합리조트의 카지노 독점을 2030년까지 연장했고, 이후 10년간 카지노 세율 동결을 보증했다. 그 대가로 90억싱가포르달러 규모의 재투자를 약속받았다. 각국이 카지노에 진심인 이유는 도박이 좋아서가 아니다. 카지노 수익이 호텔과 공연장과 회의장을 짓고 객실료 인상을 억제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인바운드 관광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최신 복합리조트 인스파이어의 투자액 1조8000억원은 오사카 복합리조트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미 몸집에서 밀리는데 우리 정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관광진흥개발기금(관광기금) 부담률 상한을 매출액의 10%에서 15%로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효기간이 없던 카지노 허가를 5년마다 갱신하는 제도, 양수도 사전인가제도 함께 얹었다. 30년 된 규칙 셋이 한꺼번에 바뀌는데 관광기금 부담률 15%가 적용될 매출 구간은 아직 미정이다. 문체부는 지난 3일 누진구간 구성은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업계와 전문가 논의를 거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상한을 먼저 정해 놓고 적용 대상은 나중에 정하는 것이다. 또한 의견수렴 토론회가 열리기 전에 법안 발의 일정부터 잡혔다. 기금은 매출 기준이라 적자가 나도 내야 한다. 인스파이어는 지난해 1548억원 순손실에도 관광기금 280억원을 냈다. 이런 시장에서 조단위 장기 투자를 결심할 자본은 세율보다 예측가능성 여부를 먼저 볼 것이다. 부담률 인상의 명분인 기금 사정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광기금의 '구멍'은 2024년 7월 출국납부금 인하가 냈다. 출국자가 151만명 늘었는데 징수액은 734억원 줄었다. 시행령만 고치면 복원될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출국납부금 2만원 인상 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 이후 계류 중인 사이, 카지노의 관광기금 부담률 인상에 먼저 속도가 붙었다. 국가가 허가한 사행산업인 카지노의 공적 기여 확대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유인책 없는 일방적 부담 증가다. 만일 지역과 공공에 투자한 몫을 기금에서 감면하고 세율 동결 등 예측가능성을 보증한다면 자연스럽게 투자도 뒤따를 것이다. 오사카가 문을 여는 2030년까지 4년이 남았다. 투자금은 세율이 낮은 곳이 아니라 규칙을 예측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지금 정부가 키우고 있는 것은 기금 수입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다. 송민규 기자 songmg@ekn.kr

[기자의 눈] ‘죽은 정치’만 나오는 씁쓸한 민주 전대

“김대중·노무현 정신과 가르침이 좋은 방향인지 여부를 떠나 전당대회가 '죽은 정치'로만 흐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막바지로 치닫는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바라본 정치권 한 관계자의 말이다.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실제 유력 당권주자인 김민석·정청래 후보는 연일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하고 있다. 김민석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 키즈", “김대중의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웠다. 정청래 후보 역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신으로 승리하겠다"며 자신이 노사모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후보가 호출하는 정치적 상징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이다. 고인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래를 말해야 할 전당대회에서 과거의 이름과 정치적 유산이 경쟁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가 각각 DJ와 노무현을 호출하는 이유는 결국 민주당의 '정통성' 경쟁과 맞닿아 있다. 누가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을 더 잘 계승할 적임자인지를 겨루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누가 과거의 민주당을 더 잘 계승했는지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앞으로 민주당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 경쟁하는 자리다. 민생과 경제를 어떻게 챙길 것인지, 집권여당으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가 당대표 후보들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대에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 과거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경쟁과 상대 후보의 행적을 파고드는 네거티브가 더 도드라진다. 정작 '다음 민주당'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결국 살아 있는 국민을 향해야 한다. 국민은 과거의 이름보다 오늘의 삶을 바꿀 정치의 답을 원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긴 가치를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과거는 정치의 자산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남은 전대 기간만큼은 후보들이 과거의 이름에 머물기보다 살아 있는 국민을 향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한다. 정치는 과거의 이름을 되풀이할 때가 아니라, 그 이름을 넘어 새로운 답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살아난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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