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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AI시대, 활용 능력이 경쟁력이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쏟아지는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비슷하다. 'AI로 업무 혁신', 'AI로 고객 만족도 제고' 등이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들은 사례들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지난달 열린 LG유플러스 기자간담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AI는 1조 개에 달하는 고객 데이터를 단 6시간 만에 분석했다. 숙련된 전문가가 7만 시간, 무려 8년 이상 걸릴 일을 하루도 안 걸려 끝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지난 15일 열린 삼성SDS의 '리얼 서밋 2025'에서는 더 직접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AI 통역·회의록 자동생성 등 기능이 소개되자 곧 사라질 직업군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수년간 언어 능력을 갈고닦은 동시통역사가 이제는 10개국 이상의 언어를 한 번에 소화하는 AI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인과 이 얘기를 나눴을 때 돌아온 대답은 “기우(杞憂)"였다. 결국 AI를 만든 것도 인간이니, 인간 스스로 자리를 위협할 만큼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AI는 이미 사람의 영역을 넘보고 있었다. 전문가들 역시 “AI는 거품이 아니라 지속 발전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AI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언제 여기까지 올까'를 묻는 게 더 현실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AI를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경쟁의 룰을 바꿀 무기가 됐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AI를 자신의 일에 맞게 접목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삼성SDS 행사에서 강연자로 나선 프로바둑 기사 출신의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의 말은 이런 흐름을 잘 대변해 준다. 그는 “AI 시대의 경쟁력은 활용 능력에서 갈린다"고 강조했다. 바둑계도 AI 프로그램 보급으로 평준화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AI를 이해하고 잘 다룬 이들이 더 큰 성과를 거뒀다는 설명이었다. AI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건 'AI가 인간을 대체할까'가 아니라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가'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일자리 위협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재생에너지 1~2년만에 늘리려면 결국, 민간보다는 공공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언의 타당성 논란과는 별개로,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무제한으로 풀겠다고 말한 건 아니다. 결국,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억제하면서도, 단기간에 확대하려면 공공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는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이후 한국전력 산하 발전공기업의 통폐합과 재생에너지 전담 기구 신설이 검토될 전망이다. 전담 기구가 입지 개발·계통 확보·인허가 단축·주민 수용성 제고를 전담하고, 통합된 발전공기업이 설비를 빠르게 설치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올해 풍력 고정가격계약에서는 공공 해상풍력 4건(총 0.7GW)이 모두 낙찰됐다. 반면 민간 해상풍력은 전부 탈락했다. 태양광 고정가격계약은 모집물량 1GW 중 4.6%만 낙찰되며 대부분 미달했다. 이 공백은 공공이 메울 가능성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재생에너지 전력가격을 예상보다 높게 책정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민간사업자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엄격하게 비칠 수 있다. 환경부는 환경규제 못지않게 기획재정부 눈치를 보며 물가 안정에도 신경을 써 왔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기후위기 대응만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체감상 산업통상자원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지난 2021년 700만원에서 올해 300만원까지 줄여왔다. 공공 전기차 충전요금은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항변해도 동결 기조를 유지 중이다. 물 요금은 투자보수비용도 못 건지는 수준인데 9년째 동결이다. 생활폐기물 처리는 소각장이 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음에도, 처리비용이 저렴한 시멘트 소성로 의존을 염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환경부가 재생에너지를 맡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와 비교해 민간사업자에게 높은 전력가격을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전력가격 억제 기조를 유지한 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면, 사업성에 덜 민감한 공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국산 설비를 더 써야 한다는 명분,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수익을 지역주민에게 공유하는 '햇빛·바람 연금' 구상까지 고려하면, 말을 잘 안 듣는 민간보다 공공이 더 맞는 그릇일 수 있다. 다만, 공공 역할 확대는 공기업 비대화와 한전·발전공기업의 재무 부담 심화라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공공과 비슷한 조건에서 수익구조를 재설계하든지, 정부에 시장 논리 존중과 민간 참여 위축 완화를 요구하든지로 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 눈] 전세 옥죄기, 방향은 맞지만 보완해야

9·7 대책 이후 청년층과 신혼부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젊은 무주택자 입장에선 6·27 대출 규제로 집을 사는 길(주택담보대출)이 좁아진 데다 9·7 대책으로 세입자로 버틸 길(전세대출 3억→2억원 축소)도 줄어들었다.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웃도는 현실에서 자산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선택지는 빠르게 줄고 있다. 전세사기·역전세, 전세대출을 활용한 갭투자(전세 낀 매매)가 시장을 왜곡해온 것은 분명하다. 전세 제도를 손보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일요일 발표 후 월요일 즉시 시행된 규제는 실수요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시장에서는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여기에 9·7 대책이 전세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전세 공급이 한층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강남을 비롯한 서울 주요 지역에서는 보증금 1억~2억 원에 월세 100~200만 원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에게는 매달 이 정도의 고정 비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번의 목돈으로 '숨 고르기'를 가능하게 했던 전세의 징검다리가 더 빠르게 좁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앞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예고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 중인 임대주택 모델은 미국식 장기 모기지를 접목한 공공분양으로, 목돈이 없어도 30~40년 모기지처럼 집을 장기 할부로 마련할 수 있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국제적으로 드물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월세 또는 장기 모기지를 통해 주거를 확보한다. 한국은 전세가 장기간 유지되며 부동산, 특히 '똘똘한 집 한채' 중심의 노후 대비가 굳어졌고, 전세보증금이 집주인의 추가 매입·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한계 때문에 전세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 모기지 기반의 임대·금융 시스템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결국 전세 축소에서 장기 모기지 기반의 임대·금융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이번 대책이 그 첫 단추라면 시장 충격을 완화할 연착륙 장치와 세밀한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비(非)아파트 전세 매물 확대와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 등으로 빠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나온다. 전세의 부작용을 고치되 젊은 세대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을 함께 지켜야 한다. 단기 충격을 흡수할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 모기지형 공공분양이라는 큰 그림도 설득력을 잃는다. 정책의 방향은 맞다. 이제 필요한 건 정교한 보완책과 시장을 부드럽게 안착시킬 장치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대통령의 실용주의, ‘여의도 머슴’도 배워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난 100일을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규정했다. 또 앞으로의 남은 임기를 '도약과 성장의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11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은 대통령의 '실용주의'였다.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 활성화를 우선해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확대를 굳이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현실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야당과도 얼마든지 '협치'할 수 있다고 했다. 현실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비판도 마다않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우려되는 대목도 없진 않았다. 중소·벤처업계를 포함한 경영계가 반발하는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서는 “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라 악덕기업의 지배주주를 압박해 기업 경영 풍토를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고, 재정 관료들도 우려했다는 나랏빚에 대해서는 “칡뿌리 캐먹고 맹물 마시면서 어떻게 일하나, 지금은 씨를 뿌릴 때"라고 설명했다. 최근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의 악수 하루만에 “내란정당 해산"이라며 날을 세웠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100일은)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시간이었다"며 뻔뻔한 말을 했다. 민생경제 회복을 넘어 도약과 성장을 위한 협치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것이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했다. '머슴'들에게 일을 시켜놨으니, 누가 일을 잘하는지 두 눈 뜨고 잘 보라는 거다. 좌우로 편을 가르면 머슴들이 일은 안하고 편만 짤 거라고도 했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귀담아들을 얘기다. 일단 정부가 돈을 뿌렸으니 소비심리는 살아났고, 기업 체감경기도 반등했다. 남은 건 가을의 수확이다. 갈길은 멀다. 나랏빚은 많고 한국인 구금 같은 돌발변수도 있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지금부터라도, 도약과 성장을 위해 여의도가 좀 더 유연해지기를 바란다.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옆 나라 대통령 가랑이 사이라도 가겠다지 않나.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억대 연봉에 주 4.5일제…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10여년 전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 인근에서 겪은 일이다. 오전조 근무가 끝날 무렵 유독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단순히 “일하는 직원이 많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구조적 이유가 있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곳 근로자들은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모두 문앞에 모인다. 마치 달리기 경주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1~2시간 전에 일을 끝내고 휴대폰만 보고 있는 이도 많다. 수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이어오며 시간당 차량 생산 대수를 줄여온 탓이다. '묻지마 파업'으로 임금을 무제한 올릴 수는 없으니 근무 강도를 느슨하게 바꿨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현대차 베이징 3공장을 방문했다. 현대속도(现代速度)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중국 내 현대차 영향력이 상당하던 시절이다. 임금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데 차량 생산 속도는 2배 넘게 빨랐다. 이 곳 직원들은 주문이 몰리면 일이 늘어난다며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1시간이던 점심시간은 스스로 40분으로 줄이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자동차 시장 구도는 많이 달라졌다. 현대차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내 입지는 거의 사라졌다. 선진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전기차 등 일부 분야에서 중국차가 한국차를 넘어섰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한국 제조업 현장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 현대차 노조는 올해 정년 연장, 주 4.5일제, 성과급 수천만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잠정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억대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모습에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노조의 탐욕'이 아니다. 이런 요구가 지속 가능하냐에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대기업 중심, 고비용 체제, 강성 노조, 다단계 하청이라는 4박자를 기반으로 굴러가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근로조건을 바꾸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전가된다. 생산량 조절, 비용 상승, 일정 차질 등은 중소 협력업체에게는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여기서 정치권은 대개 '표'를, 노조는 '이익'을, 사측은 '타협'을 택한다. 그 누구도 전체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노조 역시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지금 한국 제조업이 '고비용·저생산' 구조에 머무른다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지금은 더 많이 가져가려는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모두가 살아남을지 고민할 때다. 파업과 투쟁 이전에 우리가 어느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공정한 책임 분담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땀 위에 세워진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계·전문가 우려 불식시키길

정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식 확정했다. 탄소중립 이행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단행된 이번 조직개편은 환경 중심의 에너지 거버넌스 재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와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깊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에너지 정책의 주무가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 중심의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한전, 한수원, 발전 5사 등 주요 에너지 공공기관의 주무 부처도 바뀌게 된다.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구조 전환, 송전망 확충 등 과제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맡게 된다. 그러나 산업·에너지의 축이 환경 부처로 이동함으로써 생기는 정책 불일치, 실행력 저하, 규제 강화 우려는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은 환경 규제와는 다른 차원의 전문성과 추진력이 필요한데, 환경부 내에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지 의문"이라며 “에너지는 경제·산업 부문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들의 공통된 구조"라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은 에너지부(DOE), 독일은 경제기후보호부(BMWK), 일본은 경제산업성(METI) 등 모두 독립된 또는 산업과 통합된 부처가 에너지를 관할하고 있다. 원전 정책도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이번 개편으로 원전 운영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원전 수출은 산업부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바라카 원전 수주 사례에서 보듯, 운영과 수출은 불가분의 관계다. 외국 정부와의 신뢰 기반 협상에 있어 “운영은 저쪽에서, 수출은 이쪽에서"라는 체계는 국제 사회에서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발전공기업 통폐합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환경부가 주도하는 탄소중립 정책 하에서 기존 석탄발전 중심의 구조는 대대적인 재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발전 5개 공기업을 2개 권역형 공기업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지방 경제, 일자리, 노조 반발 등 사회적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 문제도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ESS 구축, 송배전망 확충 등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의 형평성 논란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체계 없는 에너지 전환은 오히려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진정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로 기능하려면 산업계와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정책 방향은 명분에서 시작되지만, 정책의 성공은 실행력과 균형감에서 판가름난다. 조직 개편의 '이름값'이 아닌, 실질적 성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영화제와 지역경제의 상생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는 경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관광객들에게 관광 콘텐츠로 자리를 잡으면 현지인들에게는 축제 기간의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특히 음식점이나 숙박업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예상 외의 수익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영화제를 유치하고자 한다. 영화제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좋은 롤모델이 정동진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다. 올해 8월1일부터 3일까지 강원 강릉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을 메인무대로 열린 제27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사흘간 2만7256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아 지난해 기록(1만4553명)을 경신하며 명실상부한 한여름 최대 야외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는 역대급 무더위로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지만 관객들은 자연에 둘러싸인 야외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낭만'에 마음을 빼앗겼다.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주제와 걸맞은 운동장에 텐트를 설치하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은 자동차 극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안긴다. 연인, 친구, 가족 등 방문하는 관객들도 다양하다. 하지만 올해 초만 해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외부 변수에 몸살을 앓았다. 강릉시가 영화제 관련 예산을 지난해(1억2000만원)에 비해 7000만원을 삭감하면서 주민들이 예산 복원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강릉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영화제를 지키려고 힘을 모았다. 주최사 강릉시네마테크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제는 72억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추산돼 주민들의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은 더 컸다. 결국 예산은 복원되지 못했지만 올해의 성공으로 정부의 관심 속 내년 '정상 운영'을 기대하고 있다. 오는 17일부터는 올해 30돌을 맞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16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7일 배우 이병헌이 진행하는 개막식 이후 10일간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개막작은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아쉽게 수상이 불발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가 선정됐다. 18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행사가 진행된다. 해운대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의전당 BIFF 야외무대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토크가 시작한다. '어쩔수가 없다'를 비롯해 '보스', '윗집 사람들', '굿뉴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주역이 참석한다. 올해 영화제는 지난해와 다른 뜨거움을 뿜어내고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이 다소 부진했지만 K-컬처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어 10일 동안 뜨거워질 부산에 시선이 쏠린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노동계 금통위원 논란, 중립성 훼손 더 큰 문제

국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계 입장을 반영하는 금통위원을 포함하자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노동계가 금리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이들 목소리가 금리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하지만 금통위 역할과 성격을 고려할 때 특정 집단을 대변하는 위원이 참여하는 것은 신중히 다뤄야 한다. 금통위는 한은 통화신용정책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정책결정기구다. 대표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은 물가, 환율, 금융 안정 등과 직결되며, 이는 중앙은행이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따라서 금통위원은 정치·이념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내외 거시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은법에서 금통위원의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고, 정당 가입이나 정치 활동, 영리 목적의 사업, 공무원 겸직 등을 금지하고 있다. 금통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임명되면 이런 원칙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노동계 대변 위원은 거시경제에 대한 합리적 판단보다는 집단 이해를 우선시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또 노동계 대변 위원이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변화는 통화정책의 신뢰를 흔들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오히려 확대할 수 있다. 노동계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이 금통위원의 직접 참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자문위원회나 협의체 등을 운영하며 노동계 상황을 공유하는 방안 등도 대안으로 언급된다. 실제 한은은 현재도 금통위에서 노동시장을 포함한 실물경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국민경제 전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금통위원이 임명돼야 한다"고 했다. 통화정책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히 큰 만큼 국민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금통위가 특정 집단 이익을 대변하는 장으로 변질되면 그 정책 신호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노동계 목소리는 존중하면서도 금통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은행권, 보이스피싱까지 배상...상식과 비상식의 경계

최근 은행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보이스피싱이다. 우리은행은 보이스피싱 예방전문기업과 손잡고 우리WON뱅킹을 통해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지원한다. KB국민은행은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체계를 전면 강화해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원을 기존 11명에서 25명으로 늘렸다. AI가 스스로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를 분석해 수상한 거래 패턴을 미리 찾고, 신속하게 계좌 지급정지 등 예방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기능을 고도화한다. 국민은행이 모니터링을 통해 8월 한 달 동안 예방한 보이스피싱 사기계좌만 1306건, 피해액은 약 225억원이다. 은행권이 앞다퉈 보이스피싱 예방책을 강화하는 것은 지난주 정부가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고자 금융권의 대응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연내 금융사 등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이 있는 주체가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 법제화를 추진한다. 금융사가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 등 고도의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췄다는 이유로 보이스피싱 피해에도 책임감을 갖고 적극 대응하라는 취지다. 정부의 해당 지침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어 당연히 이득이다. 그러나 이는 범죄자에게도 이득이다. 범죄자 입장에서는 은행권의 배상책임을 믿고 역발상 전략으로 또 다른 범죄수법을 모색할 수 있다. 대체 은행권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을 색출하고 정부가 책임지는 것보다 은행권이 배상하는 게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건가. 은행권이 보이스피싱 예방에 책임이 있는 주체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100% 책임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은행권이 정부 지침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이 때,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발언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 상황을 회고하며 “비상계엄은 보수 대 진보 문제가 아니다. 상식이냐 비상식이냐의 문제다"고 짚었다.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입은 금융소비자, 금융사, 가해자, 신종 범죄를 막지 못하는 정부 가운데 보이스피싱 예방과 배상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정부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1000%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까지 부담하는 것은 상식일까, 비상식일까.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펴는 지금도 보이스피싱 범죄 시계는 바쁘게 돌아간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주택 공급, 급할수록 돌아가라

주택공급 정책이 이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관련 정부 당국인 국토교통부가 2일 상세 예산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예산 편성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벌써부터 곧 정체가 공개될 공급 정책에 대해 우려가 앞선다. 우선 국토부는 2026년도 공공분양 지원 예산으로 4295억원을 편성했다. 이는 올해 예산(1조4741억원) 대비 무려 1조원(70.86%)이나 삭감된 수치다. 해당 예산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분양 임대 아파트를 공급할 때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융자 지원을 해주는 데 주로 사용되는데, 이 예산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내년부터 공공분양 임대아파트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다가구 매입임대 출자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1964.5% 급증한 5조6382억원이 편성됐다. 다가구 매입임대 사업은 신축 빌라를 LH가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향후 공공 주택공급이 아파트가 아닌 빌라로 전환된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물론 정부가 아파트보다는 빌라에 주택 공급의 무게를 싣는 이유는 이해가 된다. 빌라는 공사 기간이 아파트보다 짧아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대단지 아파트는 토지 매입부터 입주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인만큼 이달에 주택공급 정책이 발표되고 곧바로 속도전에 나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만족할만한 양의 주택이 공급될 가능성이 낮다. 당국 입장에선 현 정부 하에서 속도가 빠른 빌라 공급을 통해 주택 공급 실적을 쌓겠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단기간 실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선호하는 주거 형태는 빌라가 아닌 아파트다. 당장 눈 앞의 성과에 매몰돼 아파트 공급이 아닌 빌라 공급에 재원을 투자할 경우 얼마간은 공급정책 효과에 안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예산을 편성하는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책을 실행하는 국토부 직원들까지 아파트와 빌라 중에서 빌라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빌라와 아파트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지면 대부분은 아파트를 선택한다. 대규모 아파트 공급이 국민 주거 안정과 부동산 시장 안정에 기여한 역사는 과거 노태우 정부의 수도권 신도시 건설과 이명박 정부의 서울 뉴타운 사업이 증명해왔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주택공급 정책이야말로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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