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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동산 대책, 공급보다 ‘임대료 지원’ 급선무

“곧 현실적인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대책의 현실성을 강조했다. 과거처럼 “주택 100만 호"를 몇 년 안에 공급하겠다는 식의 추상적 총량 계획이 아니라, 인허가·착공 기준으로 실제 공급 가능한 물량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잇따른 정책 발표에도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며 공급 확대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실효성 있는 공급대책을 내놓겠다는 메시지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급을 인허가·착공 기준으로 말한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집이 당장 나오는 대책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가 공급 대책을 발표한다고 해도 입주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비아파트형 주택도 인허가와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올 이사철에 맞춰 쓸 수 있는 물량은 아니다. 도시형생활주택 등은 인허가가 상대적으로 빠른 카드로 거론되지만, 지금 발표하는 대책이 실제 입주로 이어지기까진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사이를 버텨야 하는 무주택자다. 전세 만기를 앞둔 필자도 최근 중개업소에서 “보여줄 집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전세 매물은 확 줄었고, 그 빈자리를 월세가 채운다. 그런데 월세는 선택지라기보다 통로에 가깝다. 전세가 없으니 월세로 갈 수밖에 없고, 월세가 140만~150만원씩 나오면 버티기 어렵다. 임금근로자 평균 월급이 300만~400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 결국 주거를 위해 생계비를 줄여가며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서 수요 억제 정책의 역설이 나온다. 매매를 눌러 집값을 잡겠다는 규제가 강해질수록 거래가 줄면서 전세 물건이 시장에 새로 나오는 통로도 좁아진다.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규제로 매수·매도가 묶이고,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막히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던 수요가 끊기면서 전세 매물은 더 씨가 마른다. 전세가 줄면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화가 빨라지는데,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무주택자들이 “차라리 사자"로 돌아서며 매매 수요를 떠받치는 역효과가 난다. 정부가 할 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전세가 없어 월세로 밀려난 가구부터 숨통을 틔워야 한다. 청년월세 한시지원, 월세 세액공제 같은 제도가 있지만 대상과 기간이 제한적이라 '지금 나가는 돈'을 줄여주는 한시적 월세 지원과 세액공제 확대가 더 필요하다. 전세로 버티고 싶은 실수요자에겐 보증금 마련 길을 열어줘야 한다. 청년·신혼부부 전세대출 보증요건을 미세 조정하고, 이사철에 전세대출이 끊기지 않게 하는 보완책이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몇 년 뒤 착공 숫자가 아니라 지금 무주택자가 버틸 수 있느냐로 증명돼야 한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쿠팡이 영업정지 된다면

정부가 쿠팡에 대한 총체적 압박에 들어갔다. 최악의 경우 영업중지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가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에서는 이번 쿠팡 사태로 '탈팡'(쿠팡을 탈퇴하는 것)이 급증해 사업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동안 쿠팡의 '갑질'에 소상공인들이 무척 힘들었다는 분노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쿠팡이 미운 건 맞는데, 영업정지라는 카드가 과연 소상공인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일까. 쿠팡 입점업체 대표 몇몇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였다. 입점업체 대표 A씨는 “업체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우린 쿠팡 그로스(쿠팡 풀필먼트서비스)도 하려고 하는데 영업정지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고, B씨는 “쿠팡 전용 상품을 만드는 업체도 있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쿠팡 문 닫으면 다 망한다"고 말했다. C씨는 “영업정지가 현실적으로 되나. 그런 것에 관심 없다. 잘 팔리면 계속 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쿠팡 사태를 보면서 스쳐간 장면이 있다. 한때 '국민 매국노 기업' 취급을 당했던 카카오 얘기다. 카카오는 지난 2022년 10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로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정부와 국회, 언론의 융단 폭격을 맞았다. 플랫폼 독점에 높은 수수료,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결합되면서 전방위 압박을 받은 것이다. 카카오는 결국 헤어샵 예약 서비스 등 진행하던 이런저런 사업들을 상당수 접게 됐다. 헤어샵 예약 서비스를 철수했을 당시를 떠올려보면, 중소 미용실 사업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규 고객 유치 채널을 잃게 될 것이라며 카카오의 철수를 반대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카카오의 빈자리는 결국 네이버가 채웠다. 카카오의 사업 철수는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네이버의 독점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업계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론상으로는 쿠팡 영업정지가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현실적으로는 거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혼쭐'은 내야겠으니 있는 힘껏 '블러핑(bluffing)'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쿠팡의 아성에 위축됐던 이커머스 업체들의 '반사 수혜'가 실제로 가시화됐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결국 정답은 '시장'에 있지 않나 싶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K-스타트업 성공신화의 전제조건

“스타트업이 제2의 삼성, 제3의 현대차로 도약할 수 있을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허황된 꿈처럼 들렸던 말이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데다 자본·인재도 미국으로 쏠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공신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IT공룡으로 도약한 네이버·카카오나 거액에 팔려나간 우아한형제들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들에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견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성장 방정식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도 있었다. 새해 들어 국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누비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국가대표 AI 프로젝트' 1차 평가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살아남은 3개 팀 중 유일한 스타트업이다. 업스테이지는 가성비 AI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의 딥시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무대에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크로스허브, 스튜디오랩, 둠둠주식회사, 엘비에스테크, 망고슬래브, Nation A, Deep Fusion AI, CT5 등 국내 기업들이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3D 모션 생성, 딥러닝 기반 안전 설루션, 표절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특히 우리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장착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리벨리온, 에스투더블유(S2W), 에어스메디컬 등은 딥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일정 수준 성과도 내는 중이다. '빅테크'라 불리는 구글과 아마존도 시작은 초라했다. 구글은 스탠퍼드대학교 차고에서 시작된 검색 알고리즘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오랫동안 적자의 늪을 헤매야 했다. 당시 미국 사회가 이들에게 보낸 것은 냉소가 아니었다.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와 혁신을 향한 응원이었다.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도 이런 '성장의 시간'과 '사회적 지지'다. 기술력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다면 이들이 시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규제의 빗장을 풀고 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기업 규모가 커질 때마다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열정으로 뭉친 한국 스타트업들이 더 많은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길 기대한다. 이들의 성장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지배구조 개선과 신관치의 경계

“부패한 이너서클." 이재명 대통령의 한 마디에 금융지주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을 겨냥해 “돌아가면서 은행장 했다가 회장했다가 10년, 20년 해먹는다"고 했다. 소수의 인물이 금융지주 지배권을 장기간 독점하는 구조를 날선 발언으로 지적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곧바로 움직였다. 이번 발언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BNK금융지주 현장검사에 이어 이번 주부터는 8대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진행한다. 이 대통령 발언이 금융권 분위기를 바꾼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금융권을 향해 “이자놀이를 멈추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자 기업으로 자금 물꼬를 바꾸는 '생산적 금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고신용자에게 낮게, 저신용자에게 높은 금리를 매기는 기존 금리 산정 체계를 문제 삼았고, “금융계급제"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금융권을 압박했다. 이후 저신용자 대출 지원과 혜택이 확대되며 고신용 대출 금리가 저신용대출 금리보다 오히려 높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도 새삼스럽지 않다. 회장 중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체계와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회장 연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규를 손보는 모습 등은 시장 불신마저 확대시켰다. 지난해 BNK금융의 회장 선임 방식을 두고 주주인 라이프자산운용이 서한을 발송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점검에 나서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앞서 주주 서한 등 의혹 제기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금감원이 대통령 발언 후 노골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신관치로 해석될 위험이 커진다.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이 2023년 마련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지배구조를 손질했다고 말한다. 당국은 이번 점검에서 모범관행의 '형식적 외관'이 아닌 '작동 여부'를 들여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모범관행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작동 방식에 빈틈이 발견되면, 모범관행을 설계한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범관행 마련 후 2년의 시간 동안 금융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이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해결 방식에 따라 금융권 해석은 달라진다. 정치 언어가 시장 신호로 읽히는 순간 변화의 시도는 성과로 남기보다 또다른 불안감을 낳는다. 시장이 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정책 개선과 신관치 사이의 뚜렷한 경계가 필요하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새만금 논쟁 핵심은 ‘이전’이 아니라 ‘해결 능력’이다

새만금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을 둘러싼 논쟁은 겉으로 보기엔 지역 간 경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핵심은 어디로 옮길 것이냐가 아니라, 어디가 전력과 용수를 현실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다. 반도체 산업은 선언이나 구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기업을 설득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숫자로 입증되는 실행 능력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해당 지역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비용을 들여 24시간 무중단 전력과 대규모 초순수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일정표와 재원 조달 방안, 계통·수자원 연계 계획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적격지'다. 수도권이든, 새만금이든, 또 다른 지역이든 기준은 동일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논쟁이 이 기준을 향해 가고 있는지다. 용인이 왜 논란의 대상이 됐는지, 송전망과 용수 문제가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 보다는 새만금 등으로 이전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정치적 공방이 앞서고 있다. 새만금 역시 재생에너지 잠재력이라는 장점만 강조될 뿐,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품질'과 계통 안정성, 초순수 공급 체계에 대한 구체적 검증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사실 이 논쟁은 정쟁으로 흐를 이유가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정 지역을 밀거나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후보지를 동일한 잣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전력 수요(GW), 송전망 구축 기간(년), 용수·초순수 확보 가능성, 총 비용(조 원)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묻는 것이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과정이 정쟁에 소모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전론은 포퓰리즘이라는 공격과, 현 입지 고수가 기득권이라는 반격이 맞부딪치면서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어디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을 가장 빨리 줄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한 번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수십 년을 되돌릴 수 없는 산업이다. 그래서 입지 논쟁은 더더욱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접근해야 한다. 용인이든, 새만금이든, 혹은 제3의 지역이든, 전력과 용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방안을 제시하는 곳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논쟁만 반복된다면, 이번 논쟁 역시 또 하나의 정치적 소음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검증이다. 정쟁이 아니라 설계도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미래는 말이 아니라, 전선과 관로, 그리고 숫자가 결정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책임지고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수치와 정보를 토대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연필조차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레너드 리드가 약 70년 전 선보인 에세이집 에는 “나는 읽고 쓸 줄 아는 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도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언론인 출신 영국 작가 에드 콘웨이는 리드의 에세이에서 소개한 연필 이야기 덕분에 수백만 명의 경제학도가 연필 공급망을 이해하고, 연필 부족 문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작은 연필 하나라도 원자재 조달과 가공 과정을 낱낱이 알아야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공급망 위기를 넘어설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연필 이야기를 꺼내든 건 최근 한국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불안해질 조짐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을 최근 일본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했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인 셈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수출 통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4년여 전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통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차량 운전자들이 요소수를 구하느라 한동안 진땀을 뺐다. 그보다 앞선 2019년에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필수 소재의 수출을 막아 우리 반도체기업들에 불안감을 안겨준 바 있다.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주요 교역국들이 핵심 원료 및 소재 등을 외교 및 통상의 압박 도구로 들고 나올 경우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 자원 뿐만 아니라 리튬·니켈 같은 핵심 광물까지 정·제련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공급망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 과정에서도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 견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국내외 악조건에서 지난해 수출 70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올해 연초부터 베네수엘라·이란 사태 등 국제정세 불확실성이 끊이지 않은 탓에 '공급망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럴수록 우리 산업계는 '연필이 주는 메시지'를 되새길 때다. AI산업의 쌀인 반도체부터 전통적인 제조업의 쌀인 철강, 제조업 핵심공정 곳곳에 쓰이는 석유화학 등 국내외 산업의 공급망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응해야 '부족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기자의 눈] 이혜훈이 쏘아올린 ‘로또청약’ 개혁론

대표적인 강남 재건축 고급 아파트로 손꼽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가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덕분이다. 이 후보자는 남편인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명의로 2024년 7월 이 단지 분양에서 단 8채 뿐인 전용면적 137㎡(54평)형에 당첨돼 현재 거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지는 서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이었다. 시세보다 약 25억원이나 낮은 분양가로 당첨되자 마자 엄청난 차익이 예상돼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일반 분양 1순위 평균 경쟁률은 무려 527대1이었다. 이 후보자가 청약 신청한 137㎡형도 청약 경쟁률이 81대1에 달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5인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청약 가점 만점인 74점으로 청약에 당첨됐다. 5인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유지하고 청약저축에 가입한 지 15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점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후보자는 이미 결혼해 별도로 용산에 신혼 전셋집을 구해 살고 있던 큰 아들을 같이 사는 것처럼 꾸며 부양가족수를 부풀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형적인 청약 부정 행위 중 하나다. 결국 이 후보자는 54평 청약 신청자 648명 중 마지막 8번째 막차를 탔고 이득은 달콤했다. 청약 당첨 후 54평 분양대금인 36억7840만원을 전액 현금 납부할 정도의 재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무려 5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올리고 있다. 주택법상 계약 취소 및 최대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다.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시 해야할 공직자 후보자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거세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이 후보자의 사례는 오늘날 '로또청약'으로 대변되는 청약 시장의 어두운 면이다. 로또청약은 분양가상한제와 결합돼 청약 통장 쏠림 현상, 과도한 가점 경쟁 유발, 이에 따른 편법 청약 및 제도 악용, 사회적 박탈감 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기회에 부양가족 및 무주택 기간 산정 방식 등 조작이 쉬운 가점제도를 손보고 청약 취소·형사 처벌 등을 더욱 강화해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개발 이익을 '우연히 누군가' 독점하는 분양가 상한제도 취지에 맞게 손봐야 한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상법 개정 비웃는 ‘지배주주의 꼼수’, 사각지대서 ‘약탈적 막차’

정부가 1·2·3차에 걸친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고 있다. 이사회의 주주 충실 의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그동안 시장이 갈망하던 제도들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대형주 시장의 이면, 코스닥 상장사와 비상장사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밸류업이라는 구호가 이들에게는 닿지 않는 메아리처럼 들리는 이유다. 최근 자본시장 현장에서 목격되는 일련의 사태들은 '선진화'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퇴행적이다. 제도 개선의 과도기를 틈타, 규제의 그물망이 촘촘해지기 전 '막차'를 타려는 오너들의 변칙 행위가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어서다. 최근 논란이 된 한 코스닥 상장사 A사의 자사주 처분 사례가 단적인 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자, 이 회사는 시세 조종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냉각 기간' 규정마저 무시한 채 처분을 강행했다. 매수 주체는 오너 일가의 개인 회사였고, 처분가는 순자산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회사의 알짜 자산을 헐값에 넘겨 지배력을 강화하는 '터널링'의 전형이다. 비단 한 기업만의 일탈이 아니다. 한 게임사 계열 비상장사 B사가 추진하는 '1만 대 1 감자'는 더욱 노골적이다. 결손금 보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은 소액주주들을 단돈 몇 푼에 강제로 쫓아내는 '스퀴즈 아웃(Squeeze-out)'의 변칙적 활용이다. 현행 상법이 정당한 보상을 전제로 한 지배주주의 매도청구권 제도를 두고 있음에도, 굳이 보상 의무가 없는 '감자'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은 명백한 탈법적 꼼수다. 주주 보호를 위한 강행규정을 비웃는 행태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법 개정을 앞둔 지배주주들의 초조함을 대변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고 자사주 활용법이 원천 봉쇄되기 전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지배구조를 정리하겠다는 '약탈적 경영'의 발로다. 코스피가 '오천피' 시대를 꿈꾸는 동안, 중소형주 시장의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화려한 대형주들의 주주환원 공시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이 '기형적 지배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제도적 빈틈을 노린 꼼수가 성공할 때마다 자본시장의 신뢰는 한 뼘씩 무너진다. 금융당국은 상법 개정의 상징적 구호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변칙적 자산 이전과 주주 축출 행위에 대해 서슬 퍼런 감시와 엄단에 나서야 한다. 시장 선진화의 척도는 지수가 아니라, 법망 뒤에 숨어 주주를 기만하는 구태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막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소외된 시장의 비명이 멈추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간과한 ‘책갈피 외화 밀반출’의 본질

작년 말 인천국제공항 보안 검색대가 책 속에 숨긴 외화를 적발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책 페이지 사이사이에 지폐를 한 장씩 끼워 넣는 소위 '책갈피 밀반출' 수법이 통했다는 사실에 정치권과 여론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기강 해이를 질타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이 사태의 본질은 보안 요원의 '눈'이 아닌 25년 묵은 관행과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우선 “왜 엑스레이(X-ray)로 돈을 못 보느냐"는 기술적 의문부터 해소해야 한다. 공항 보안 검색 엑스레이는 물체를 투과해 유기물과 무기물을 색상으로 구분한다. 종이와 지폐는 둘 다 유기물이다. 지폐가 다발로 뭉쳐 있으면 그 밀도와 직육면체 형태 때문에 식별이 가능하지만 책장 사이에 낱장으로 흩어놓으면 엑스레이 상에서는 그저 똑같은 책 내지 종이 뭉치로 보일 뿐이다. “요즘 장비가 좋으니 찾을 수 있지 않냐"는 반론도 있지만 형태를 속이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AI 판독 기술도 학습된 형태를 기반으로 하기에 책 속에 숨겨 형태를 없앤 지폐를 찾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즉, 이 논란은 애초에 기술적으로 탐지가 극히 어려운 영역을 두고 “왜 못 찾았냐"고 다그치는 꼴이었던 셈이다. 진짜 문제는 '책임의 소재'다. 외화 밀반출 단속은 명백한 관세청의 고유 업무다. 다만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당시 인력 효율화를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관세청이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고, 공항공사가 보안 검색 과정에서 덤으로 이 업무를 대행해 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측은 이 MOU가 불합리하다며 파기를 요구하거나 비용 보전을 요청해왔으나 관세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테러를 막기 위한 '위해 물품' 탐지가 본업인 보안 검색 요원들에게 세관이 해야 할 '돈 찾기'까지 전가된 셈이다. 세관이 마약 밀반입을 100% 막지 못했다고 해서 징계하지 않듯 공항공사가 협조 업무인 외화 적발을 놓쳤다고 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묻는 건 과도하다. 더 뼈아픈 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대응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의 질타가 이어질 때 이 사장은 명확한 논리로 방어하지 못했다. 이미 전날 이명구 관세청장이 “그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업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음에도 이 사장은 이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나 '예상 문제'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이는 수험생이 기출문제를 보고도 답을 준비 안한 격이다. 일각에서는 이 사장이 공항 운영이라는 본업보다 차기 인천시장 출마 등 정치적 행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오죽하면 리더가 중심을 잡지 못하니 실무진이 20년 넘게 수행해 온 업무의 성격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여론의 뭇매만 맞고 있다는 핀잔마저 듣겠는가. 보안 검색의 최우선 가치는 테러 방지를 통한 승객의 안전이다. 외화 찾기에 혈안이 돼 검색 속도를 늦추거나 인력을 낭비하면 정작 중요한 위해 물품 탐지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해법은 전시 행정식 전수 조사가 아니다. 의심되는 화물에 대한 선별적 개봉 검색을 강화하되, 근본적으로는 관세청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조직의 업무 본질을 지켜낼 수 있는 전문성 있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李정부 바이오혁신위, ‘반쪽짜리’ 오명 면하려면

정부가 범(汎)국가 차원의 단일 제약바이오산업 정책 컨트롤타워를 야심차게 마련했다. 기존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와 국무총리 주재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로 통합하는 방식이 골자다. 흩어진 정책 거버넌스를 일원화하고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부상한 제약바이오 지원·육성에 박차를 가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국내 산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며 '바이오 5대 강국' 도약 의지를 드러내 업계의 정부 정책 수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번 혁신위 통합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오랜 숙원과도 맞닿아 있다. 정책·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곳곳에 분산된 까닭으로 그간 강력한 단일 컨트롤타워 필요성이 지속 제기됐는데, 다수의 정부부처가 참여하는 바이오혁신위 출범이 공식화하면서 업계 요구도 일부 충족되는 모양새다. 실제 바이오혁신위는 국무총리 위원장 체제 아래 재정경제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부 등 15개 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 등 45명 이내 규모의 위원으로 구성돼, 정부의 바이오산업 지원·육성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이다. 보다 정밀한 바이오산업 지원책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반면 혁신위 명칭에서부터 배제된 '제약산업', 특히 '케미칼(화학합성)의약품산업 홀대론'은 우려로 남는다.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을 진두지휘할 국가 컨트롤타워가 바이오산업 육성에 치우치면서, 자칫 제약산업 경쟁력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례로, 정부는 지난해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40%대로 인하하는 개편안을 발표, 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추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정부가 혁신에 매몰돼 제약산업 성장 동력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제약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 설계 과정에서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달 중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혁신위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태동 이래 최초의 단일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공식 출범하게 된다. '반쪽짜리' 컨트롤타워는 능사가 아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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