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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가상자산 제도화, 세계는 변하는데…

가상자산 업계가 금융당국의 태도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여러 차례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질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 문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까지 법인이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좌 개설 허용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조치는 예고된 기한을 한참 넘겼다. 금융당국은 이른 시일 내에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산업을 제도적으로 안착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법인의 시장 참여는 단순한 편의성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될 경우 시장 변동성이 완화되고, 투자자 보호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현재 개인 투자자 위주로 구성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기관 및 기업의 참여가 제한돼 있어 극심한 가격 변동성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기관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시장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로 기관 자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면서 미국 내 코인 거래 시장이 안정화된 것은 이미 유명한 사례다. 다른 금융 선진국인 영국과 홍콩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가상자산 제도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발맞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현재 국내 금융당국은 제도화 속도를 높이겠다 밝히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현재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에 한국은 여전히 수수방관하는 셈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국경을 초월해 거래가 이루어지며 제도적 장점이 있는 국가로 자금과 기업이 몰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법인 계좌 개설을 포함한 가상자산 제도화 정책을 더 이상 늦춘다면, 한국 시장은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검토가 아니라 결단이다. 속도를 내겠다는 선언만 반복하는 대신, 금융당국이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앞서 나가는 동안 한국은 계속해서 두고만 볼 것인가. 금융당국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 지속경영부 부장 이종수 △ 채권관리부 부장 우정수 △ 예금보호정책부 부장 장영갑 △ 기획조정부 팀장 김경중 △ 착오송금반환지원부 팀장 박대수 △ 회수기획부 팀장 염유동 △ 조사기획부 팀장 김현석 △ 김민혁 △ 김선영 △ 박용순 △ 양순철 △ 한동완 △ 강현후 △ 권준형 △ 맹근영 △ 문병호 △ 송상우 △ 유광진 △ 정수호 △ 정혜선 △ 차호성 △ 최윤숙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온라인경마 도입해 놓고 ‘파행 운영’ 시킬건가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마권의 올해 발매총량을 지난해와 같은 전체 경마 매출 총량의 10%로 정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정하는 올해 전체 경마 매출 한도의 10%인 약 7400억원어치만 온라인으로 마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내 경마에서 온라인 마권 발매(온라인 베팅) 제도는 지난해 6월 처음 도입됐다. 이슬람권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전세계 경마시행국 중 가장 늦은 것은 물론 카지노·소싸움을 제외한 복권(로또),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경륜, 경정 등 다른 사행산업 중에서도 가장 늦게 시행됐다. 경마업계의 줄기찬 요구에도 국내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이 늦은 데에는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온라인 마권 발매가 사행심을 조장하고, 청소년의 접근 용이성, 도박 중독 등 부작용을 야기할 우려가 있고, 경마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른 사행산업보다 큰 만큼 더 신중해야 한다며 줄곧 반대 이유를 주창했다. 그러나, 온라인 마권 발매를 지난 6개월간 시행한 결과, 농식품부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많다. 청소년 접근 등 우려했던 부작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오프라인 이용객보다 소액으로 구매(베팅)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경마 건전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많다. 문제는 농식품부가 여전히 기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른 정부부처가 주관하는 경륜·경정 등은 이미 온라인 발매 비중을 전체 총량의 50%로 높이거나 아예 비중 제한을 폐지했다. 어차피 온라인 매출 비중을 100%로 높여도 사감위가 정한 사행산업별 매출 총량을 넘을 수 없음에도 농식품부는 '추후 필요시 농식품부와 협의를 거쳐 추가 증액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를 붙여 마사회가 요청한 50%를 거부하고 10%를 고집했다. 지난해 10월 온라인 매출 비중이 10% 한도에 이르는 바람에 마사회는 같은해 11~12월 온라인 발매를 부분중단하는 파행운영을 감수해야 했다. 올해는 7월께부터 조기 파행운영이 예상된다. 모처럼 정착하고 는있는 경마 건전화 제도가 초반부터 파행 운영으로 이용자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 경마산업과 이에 의존하는 말산업은 코로나 팬데믹때 경마장 폐쇄 및 경마 중단으로 존폐 위기를 맞았고 지금도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팬데믹때 온라인 발매 도입을 지연시키며 말산업계를 위기에 빠뜨렸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EE칼럼]미래의 주력 에너지원은 태양광

2024년 태양광 산업은 전례 없는 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신규 태양광 발전설비 용량은 2023년 대비 약 30% 증가한 593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발전의 총 설치 용량은 최근 몇 년간 주요 이정표를 연이어 달성했다. 2018년 원자력, 2021년 풍력, 2023년 수력 발전 용량을 차례로 추월했으며, 2024년 말 이전에는 가스 발전 용량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 추세라면 2025년에는 석탄 발전 용량마저 추월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설치 용량을 가진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2024년 신규 태양광 발전 용량이 2010년 이후 전 세계에 신규 설치된 석탄 발전 용량 540GW를 상회한다는 것이며, 이는 태양광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총용량 375.92GW의 약 1.6배이며, 2024년 신규 건설된 원자력 발전 용량보다 약 100배 더 빠르게 배치되는 등 역사상 가장 빠른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계에서는 2024년 신설된 원자력 발전 용량은 6.815GW, 영구 정지된 용량은 2.889GW, 순 증가용량은 3.926GW였다. 글로벌태양광협의회(Global Solar Council)와 솔라파워유럽(Solar Power Europe)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 설치된 누적 태양광 발전 용량은 2024년 11월에 2테라와트(TW)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는데, 첫 번째 테라와트를 설치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지만 두 번째 테라와트를 설치하는 데는 불과 2년이면 충분했다. 태양광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전문기관의 예측이나 시장 기대치를 계속 뛰어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핵심 전력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2024년 설치 통계가 발표되지 않아 두 개 이상의 기관 자료를 참고하여 분석했기 때문에 최종 통계와 일부 다를 수 있겠지만 2024년 신규 태양광 설치가 급증한 국가들을 보면 터키가 2023년 1.9GW에서 2024년 7.4GW로 289% 증가했고, 인도가 2023년 10GW에서 2024년 24.8GW로 148%, 미국은 2023년 24.8GW에서 2024년 38GW로 53% 증가했다. 태양광 발전에 절대 강국인 중국도 2023년 216.9GW에서 2024년 260GW 20% 증가했고, EU, 브라질, 독일 등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 2024년 전 세계 원별 발전량에서도 태양광은 전체 발전량 증가분 1,069TWh 중 430TWh로 40%를 점유하여 수력 19%, 풍력 15%, 석탄 14%, 가스 7%, 원자력 5%를 압도했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은 태양광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비용 감소, 그리고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정책 추진에 기인한다. 최근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질 실리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이 세계 최고 효율인 28.6%를 달성했고, RMI(Rocky Mountain Institute)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태양광 모듈 가격은 2010년 이후 89%, 2024년에만 35% 하락하여 9센트/W 미만이 되었으며, Ember의 중국 태양광 모듈 수출 현황에서도 2024년 전체 기간은 아니지만 전 세계 모듈 수출 단가가 2023년 10월 14센트/W에서 2024년 10월 10센트/W로 40% 하락하는 등 역사적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탄소 중립 정책과 관련해서도 REPowerEU, IRA, RE100, COP21, COP28 등은 태양광 산업의 성장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은 햇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료비가 들지 않고 발전과정에서 탄소 배출 등 대기오염이나 폐기물 발생이 없으며, 국산 에너지이자,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하는 무한 에너지원이다. 때문에 주요국에서는 신규 발전설비의 60~80%를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에 신설된 발전설비의 83%는 재생에너지였고, 신설된 모든 발전설비 중 태양광 비율은 63%였으며, 각각의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24년의 경우 독일은 신설 발전설비의 91%가 태양광이었으며, 중국은 66.2%(1월부터 11월까지), 인도 72.8%, 미국은 75.2%가 태양광이다. OpenSolar 앤드류 버치(Andrew Birch)의 S-Curve 모델은 2035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절반이 태양광으로 공급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연간 10%씩 비용이 감소하고 25%씩 성장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2025년 태양광이 원자력을, 2031년 석유를 추월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태양광은 급속한 기술 발전, 비용 감소, 그리고 청정에너지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가에 힘입어 미래의 주력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 안보 강화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옵션으로 부상한 태양광은, 앞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이슈&인사이트]유럽의 그린란드, 아메리카로 가는가?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구매하겠다고 언급하였으며, 필요하다면 무력의 활용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것은 부동산 사업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언급일 수도 있지만, 그린란드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린란드는 북아메리카 캐나다에서 동북 방향에 위치하며, 대서양 건너편인 유럽인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이 지구에서 가장 큰 섬에는 6만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주로 해안에 거주하고 있다. 그린란드의 이러한 지리적 특징은 북아메리카와 유럽 사이의 바다인 북대서양 또는 북극해의 중요한 수송로의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즉 그린란드는 현대 사회에서도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수송로에서 중간 보급기지로서 역할을 하였고, 이 해역을 지배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하여 북극항로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린란드의 중요성도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물론 이곳에 매장된 천연가스부터 희토류 같은 경제성 높은 여러 지하자원이나 인근 해역의 개발가능성도 그린란드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그린란드는 북극 지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북극 지역의 중요성이 경제적 활용에만 연결된 것도 아니다. 국제사회와 여러 국가는 북극지역에 관한 최근 정치안보적 중요성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른바 '미중경쟁' 또는 '신냉전'의 확장된 무대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 위험성이 특히 북극지역에 두드러진 영향을 주기도 하고, 북극지역에 존재하는 소수민족과 새롭게 진출한 문명세계의 갈등도 북극지역의 생태환경적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원인이다. 경제-안보-환경-인간 등의 여러 주제와 대상이 얽힌 복잡한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북극지역은 대체로 지구의 북극점과 북위 66도 이상의 고위도 지점 사이의 공간을 의미하며, 이 공간에 영토가 존재하는 국가들은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5개국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 그리고 러시아가 포함된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해에 가장 길게 접하고 가장 많은 영토를 북극지역에 두고 있으며, 미국은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매한 이후 북극인접국이 되었다. 이 북극인접국은 1990년대 '북극이사회'라는 그룹을 형성하며, 북극에 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논의와 규율을 시작하였다. 많은 국제사회 구성원들은 북극이사회 참여를 원하였는데, 북극이사회에는 '옵저버'라는 지위를 만들어 영국 등 여러 유럽 국가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3국 등을 옵저버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북극이사회 운영은 북극인접국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북극지역이 원칙적으로 북극점 중심의 바다인 북극해가 대부분이며 북극해는 주로 얼음이 차지하고 있는데, 북극지역의 아래쪽 일부분에 위 8개국의 일부 영토가 접한 상황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구 반대편의 남극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다. 남극은 하나의 독립된 대륙 즉 육지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북극 문제가 여러 복잡하고 통합적 규율이 아닌 상황인 것에 비하면, 남극 문제는 비교적 통일적인 규율체계의 통제를 받고 있다. 1959년에 체결된 남극조약과 이 다자간 조약의 철학을 반영한 여러 세부적인 조약들이 '남극조약체제'라는 통일적인 국제법 체계로 남극문제를 규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남극대륙은 어느 국가의 영토도 아니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과학연구 등만 허용된다. 한국은 북극이사회에서 옵저버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북극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한다. 북극점에 가까운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연구기지에서 한국의 연구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정부의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 산하의 극지연구소와 해양수산개발원 등이 과학/정책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연구쇄빙선 아라온호가 북극항로 개척과 북극해 연구를 위한 항해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외교부에는 극지협력대표(대사)가 북극에 관련된 국제협력을 위한 활동을 도모하고 있다. 2021년에는 '극지활동진흥법'을 제정하여 국제사회 활동, 전문가 육성, 인식 및 교육 확산 등을 위한 장단기 계획수립과 실천이 이루어진다. 북극지역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은 여러 면에서 한국에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지역의 환경문제가 경제개발 방법의 대안을 요구하는데, 한국기업들은 전통적인 방법들이 지배하고 있던 기존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대안을 제시하거나 적응하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환경보호를 추구하는 녹색경제 개념에서 발전한, 이른바 '청색경제' 개념이 환경보호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과학기술 적용과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낳으면, 한국의 경제에 활로를 열어주는 무대가 마련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북극인접국을 포함한 여러 국제사회 구성원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김봉철

[데스크칼럼] 外憂內患…트럼프노믹스와 계엄노믹스의 간극

국어(國語) 진어(晉語)편. 복잡한 내외 정치 관계에 휘말린 진나라(晉)는 화평을 배신한 정나라(鄭)를 정벌하려 들었다. 그러자 초나라(楚)가 지원군을 보내 언릉에서 진나라와 맞섰다. 진나라 사섭(士燮)은 싸우지 않을 것을 주장하며 “제후(諸侯)로 있는 사람이 반란하면 이것을 토벌하고, 공격을 당하면 이를 구해야 한다. 나라는 이로써 혼란해진다. 따라서 제후는 어려움의 근본"이라고 입을 뗀다. 이어 사섭은 “성인은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능히 견디지만(唯聖人能外內無患) 성인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밖으로부터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근심이 있다(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 초나라와 정나라는 놔두자. 밖으로부터의 근심을 내버려두지 않겠는가"라고 조언한다. 초나라의 위협(외부 위협)이 약해지면 제후가 반란을 일으키는 내부 정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사섭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진나라 내부 정쟁이 심화하면서 조, 위, 한 세 가문이 진나라로부터 독립한다. 사섭 말에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우(憂)는 '항상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근심'이다. '우려'에 이 자를 쓴다. 환(患)도 근심이다. 환은 '어떤 일에 대한 근심'이다. '환란'과 같이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근심에 환을 쓴다. 한국은 지금 내외발 근심과 걱정에 둘러싸여 있다. 안(內)으로는 12.3 계엄에서 시작된 근심이오, 밖(外)으로는 트럼프2.0이 가져올 걱정이다. 모두 한국인의 삶에 직접적인 우환이다. 이를 보면 외우내환이다. 성어 배열을 뒤집어 쓴 이유가 있다. 내외 근심의 양상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12.3 계엄은 이미 사건으로 일어났다. 군 수뇌부가 줄줄이 구속되고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을 체포해 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탄핵을 둘러싸고 국론은 찬반으로 나뉘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갈라진 국론을 두고 논박이 뒤엉켰다.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일으킨 계엄은 정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친위쿠데타로 영구집권을 획책했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연말 이후 연초까지 모든 이슈는 '계엄'이었다. 여야 협치나 민생이란 단어는 한가한 사람들의 사치스런 말로 치부됐다. 그래서 계엄은 '환'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조 바이든이 형성했던 거의 모든 정책을 뒤집을 태세다.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자국 이익 중심주의를 천명했다. 세계 경제를 이끌던 비교우위론은 순진한 학자들의 옛말로 치부하려 한다. 지원금을 준다며 꼬드겨 한국의 반도체 기업을 유치했던 미국의 정책도 변화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주한 미군을 운영하기 위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9배 가량 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남한을 배제하고 김정은과 직거래를 틀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의 그 모든 공언이 한국 경제에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어디로 얼만큼 튈지 모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래서 트럼프 2.0은 '우'다. 환은 우보다 직접적이어서 충격도 강하다. 계엄으로 나라가 부서질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사법 일정에 따라 탄핵 심판의 수순을 밟을 것이고, 여야는 서둘러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계엄은 위험의 잠재성을 이미 보였다. 한국 경제에 이미 선반영됐다. 그러니 '환'은 이미 지나간 근심이다. 우가 더 걱정이다. 트럼프는 많은 위험을 아직 시전하지 않았다. 그 크기와 폭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없다. 트럼프의 말이 으름장이 될 지, 실제 대한국 정책에 반영을 할 지 알 수 없다. 무섭게 다가오는 회색코뿔소다. 위험인 건 맞는데, 한국을 들이받을지 빗겨 나갈지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이 더욱 두럽다. 다가오지 않은 근심, 트럼프2.0은 '우'다. 내환은 연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자극을 준다. 그러나 이미 역치를 넘는 극단의 충격을 받은 국민이다. 내환에 면역마저 생겼다. 이제 왠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다. 외우는 심각한 위험이지만 큰 자극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서 트럼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를 어느 언론도 단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상 트럼프의 행정 지시가 떨어지고서야 부랴부랴 대응할 참이다. 내환은 커보이고 외우는 작아 보인다. 그 시각적 간극은 심리적 상상에 불과하다. 보이는 것과 달리 간극은 서로 맞닿아있다. 오히려 외우가 크고, 내환은 작을 수 있다. 그래서 외우내환이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박영범의 세무칼럼]우리나라도 세금 한 푼 안 내는 조세피난처가 있다

조세회피처는 수입이나 소득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조세회피처에서는 세금이 없거나, 외국환관리법·회사법 등 규제가 적고,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하므로 기업이나 개인이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으로 카리브해 연안과 중남미 국가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운용하고 있다. 국세청과 관세청은 말레이시아 라부안,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맨 제도 등에 있는 외국 법인과 거래하거나 금융거래하면 역외 탈세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 국세청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을 하는 내국법인 대표자가 해외 고객사(가상자산 발행사 등)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개발 대금 일부를 법정 통화가 아닌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받으면서 자기 명의의 조세회피처 펀드 계좌에 몰래 유출하여 사용하다 추징당하였다. 심지어 일부 조세회피처 국가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현지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시민권을 주는 황금비자 제도를 이용해 조세회피처의 국적을 취득한 후, 조세피난처 계좌에 숨겨둔 금융 재산으로 호화 생활을 하는 사업자도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도 사업장 소재지에 따라 100% 세금을 안내는 조세회피처가 있다. 유명 청년 유튜버 A 씨는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 지역에 창업하면 5년간 소득세 100%를 감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제 사업장은 서울이지만 가짜 사업장인 용인에 있는 공유오피스에 사업자등록을 하였다. 3년간 수십억 원 수입을 얻으면서도 청년창업 감면을 적용받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것 같아 이를 수상하게 여긴 주변인의 제보로 관할 세무서는 현장 확인하였다.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는 공유오피스는 천여 개의 사업자가 등록되어 있으며, 현장 확인 결과 별도로 분리된 사무공간 없이 호수만 구분되어 있고 주소 세탁을 위해 우편물 수령만 가능한 월 2만 원 월세만 내는 장소였음을 확인하였다. 현장 확인한 세무서는 사업자등록을 한 사무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업자등록은 직권 폐업 조치하고 감면받은 소득세 및 가산세 수억 원을 추징하였다.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 제도는 청년 창업을 유도하고 사업 초기 세 부담 경감을 통해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최초로 소득이 발생한 해부터 5년간 법인세·소득세 50%∼100% 감면하고 있다. 감면 대상은 제조업·건설업 등 총 18개 업종이며,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청년(15∼34세) 여부에 따라 감면율을 차등 적용한다. 그런데 일부 유튜버·통신판매업자 등은 청년(만 15∼34세)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에서 창업 시, 5년간 법인세 및 소득세 100% 창업중소기업 감면율을 적용받기 위해, 실제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 용인·송도 등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 지역 공유오피스에 허위 사업자등록을 하는 사업장 소재지 세탁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용인에 소재한 400평대 공유오피스에는 1,400여 개의 사업자가 입주(한 명당 약 0.3평)하고 있었으며, 송도에 소재한 400평대 공유오피스에도 1,300여 개의 사업자가 입주(한 명당 0.3평)하여 국내판 조세회피처로 악용하고 있다. 국세청은 역외 탈세 국제거래조사국처럼 공유오피스 세원 관리 T/F를 구성하여 용인·송도 등 해당 지역 공유오피스에 입주한 무늬만 지방 사업자 중 실사업 여부가 의심되는 사업자를 정밀 검증하여, 허위 사업장은 직권 폐업 조치하고 부당감면 사업자는 감면 세액을 추징하고 있다. 해외 조세회피처럼 국내도 지역에 따른 조세감면 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법인세와 소득세를 탈세하는 조세회피처가 있다. 박영범

[EE칼럼] 지속적 원전 수출의 성공 조건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청색을 뜻하는'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를 합하여 '청사(靑蛇)의 해'라고 한다. '다산·재물·치유'를 상징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을사년이라면 우선 120년 전 일제가 강제로 저지른 을사늑약(勒約)이 먼저 생각난다. 그때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 구속-기소에다 무주공항 참사까지 겹쳐 온 나라는 어수선하다. 이러니 우리 사회공동체의 존재 이유인 국리민복 증강 기반이 무너지는 듯하다. 원화 환율은 급변하고 소비 심리와 기업 체감 경기는 코로나 사태 이후 최악이다. 이 모두가 지나고 보면 허망하게 끝날 정쟁(政爭)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망라한 정치권 탓이 가장 크단다. 이런 정치권의 피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우리 정치 불확실성은 경제사회 시스템에 추가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AP통신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보고 있다. 올해 잠재성장의 상당 부분(년 0.2%p)이 훼손될 것 같다. 정치권 관련 '이슈'에 관여를 꺼리는 우리 재계(대한상공회의소 등)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따른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AI의 빠른 기술적 변화 등을 걱정하고 있다. 이에 2차 대전 이후의 호혜적 다자(多者) 협력 체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1) 다양한 해외 투자와 국제연대, 2) 소프트파워 등 대체 성장 모델 모색, 3) 해외 이민자 유입(500만 명 수준)을 통한 인구절벽 극복 등이 필요하단다. 이 밖에 에너지 조달과 관련 대책으로는; 97% 에너지 수입 의존국인 우리는 AI체재 유지-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등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식 전력체계에서 분산 전원 체재로의 일 부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암울한 여건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총사업비 20조 원대 '체코'원전 '두코바니' 사업의 최종계약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한전과 그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 1월17일자로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종료하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그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려는 최신 한국형 원전 APR1400 모델이 자사의 원천 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며 한수원의 독자적인 수출에 제동을 걸어왔다. 반면 우리는 APR1400의 국산화에 성공으로 독자 수출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왔다. 그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분쟁은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에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은 '수백억 달러 상당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최고 수준의 비확산 기준을 준수할 수 있는 매우 경쟁력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그간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원전 시장장악 가능성을 우려해온 미국 서방권은 큰 전략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번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 간 협상 결과는 관련 당사자들의 유-불리 여부는 결국 검증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불리한 내용이 많을 수 있다는 의혹이 일부 계층에서 표출되고 있다. 당사자들 간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아직 그 세부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유럽 원전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전담하고, 우리 기업들은 중동·동남아 지역진출을 담당할 것이란다.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을 앞둔 한국 측으로서는 국내 정치여건 혼돈의 악영향이 겹친 상황에서 한-미 관련자 분쟁 해결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었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없고 협상 여건마저 약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보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원전 사업 경쟁력은 지난 50년간 정부 지원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전체 발전량의 40% 수준을 원전에 우선 배정했다. 기기/부품 생산의 전 주기적 구축 지원도 있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비교적 충분했고 미국 스리마일, 일본 후쿠시마 등 원전사고에 따른 악영향도 차단됐다. 이에 따라 세계 수준의 경제적 기기조립 및 시공능력(On Time On Budget) 확보가 가능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바로 그 산물이다. 건설단가(㎾당 1,500달러 수준)는 중국보다도 낮고 선진 경쟁국들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장기 특혜 성장은 항상 비효율을 동반한다. 원전폐기물 처리와 사고 복구 비용, 품질관리 미흡과 전력 시스템 왜곡 등 모든 외부효과를 반영하면 원전의 경제성이 당연히 저하된다. 사실 지금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이 신재생이지만, 우리의 경우 일사 조건 등 자연환경과 토지 확보, 설비 수입 비용 등에서 불리한 점이 많아 신재생 주도 시대가 세계 추세에 비해 늦을 것 같다. 그래서 특정 발전원의 압도적 우세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 논란이 원숙한 에너지환경정책으로 전환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원전 업계는 무조건적 원전 수출 지원만을 요구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로 오해받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 경수로기술의 경제성 확보는 길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등에서 안전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춘 소형-모듈형 원자로 실용화가 급진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저성장-분산전력 시장에 적합하고 신재생과의 공생도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원전 수출에 필수적인 금융조달 능력이 부족하다. 결정적 약점이다. UAE 원전 수출의 경우 지급보증능력 부족으로 최종계약이 5년쯤 지연됐다. 우리 대신 UAE 재무부가 자국 원전회사에 지급 보증을 했다. 우리는 이득 감소를 수용했다. 예컨대 기대 투자수익률이 16%에서 10.5%로 줄었다는 분석(최기련 2018)결과도 있다. 환율 변동, 안전기준 변화 등으로 원전 수출 위험의 가변성이 커질 수 있다. '남지 않는' 원전 수출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 금융조달과 미래기술 확보가 가능한 경우에만 원전 수출을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중국에 대응해 우리 원전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 능력과 미래기술 확보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장쇠퇴기에 접어든 기존 원전의 수출 이득 감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새로운 이득 창출 전략 도입이 불가피하다. 원전 수출은 항상 '남는 장사'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이득 창출 시스템 없이는 대폭적인 원전 수출 지원은 불가능하다. 관련 경제주체들의 미래지향적 개혁조치가 필요한 때다. . 최기련

[기자의 눈] 환경부와 산하기관, 위상 오를수록 책임 통감해야

기후환경부는 환경부의 새 이름 후보다. 환경부 위상은 나날이 오르고 부총리급 부처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위상이 오를수록 책임도 함께 커진다. 환경만 신경 쓰고 있으면 위에서 알아서 조정해주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경제도 신경 쓰며 알아서 권한을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환경부 산하기관들도 마음가짐을 다잡아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을 함께 취재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직 의아할 때가 많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해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달성을 눈앞에 뒀다고 홍보했다. 수자원공사는 국가 소유의 댐과 저수지 등을 통해 물 관리를 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수력발전을 하는 공기업이다. 발전 규모는 원전 1개 수준인 1082메가와트(MW)이다. 수자원공사의 'RE100 달성 눈앞' 홍보는 옛날처럼 국토교통부 소속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환경부 소속이다. 환경부는 산업계에 재생에너지를 쓰라고 독려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수자원공사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자기가 사용하면서 우리는 RE100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게 아니다. 지금도 물량을 조금씩을 풀고 있지만, RE100 압박에 시달리는 수출기업들에 좀 더 빠르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총 14개의 기후대응댐은 목적이 여럿 있어 보인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용수 공급도 해야 하고 댐 인근에 파크골프장도 지어 지역 경제도 부흥시켜야 한다. 기후대응댐보다는 사실상 경제부흥댐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환경부가 기업들엔 '그린워싱(가짜환경주의)' 못하게 해놓고 기후라는 이름으로 댐 건설을 추진하는 게 적절한가 싶다. 한국환경공단은 존재감을 잘 모르겠다. 온실가스 감축사업은 한국에너지공단에서도 맡고 있고, 탄소배출권 제도는 한국거래소가 주도하고 있다. 환경공단은 올해 1079억원 규모로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에너지업계에서는 뒷말이 나온다. 탄소 다배출 태양광 모듈의 참여를 허용한 점이 불만이라고 한다. 에너지공단은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사업을 통해 탄소인증제 등급을 받은 태양광 모듈만 참여를 허용한다. 환경공단의 지원사업은 탄소인증제 등급이 없는 중국산 태양광 모듈도 마구 들어올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자가소비형 재생에너지 설비에 인증서를 발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당장은 필요 없는 탄소감축 실적을 인증서 교환을 통해 대기업에 팔 수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이같이 탄소감축 실적을 대기업에 이전하고 인정받을 제도가 없다고 한다. 환경공단이 제도 도입에 맞춰서 마련해줘야 할 텐데 늦은 모양이다. 환경부의 전기차와 충전기 보급 목표는 계속 미달인데 뾰족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계속 이 추세로 간다면 자동차 산업 진흥을 관리하는 산업부가 맡아서 업계와 정부의 소통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환경부와 산하기관들은 좀 더 산업에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산업계의 환경 부담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면 부총리급 기후환경부는 존재할 수 없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산업안전,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수준이 경제수준과 달리 낮은 이유는 뭘까. 산업안전 행정인원·예산과 학자 수가 산재예방 선진국보다 훨씬 많고 기업도 예전보다 많은 안전투자를 하고 있는데도 왜 그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 걸까.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법제의 엉성함, 행정과 법원의 비전문성과 무책임, 학계의 무능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 법제의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수범자의 규범의식이 높을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내부규칙이 애매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으면 준수하는 척만 할 뿐 위반이 만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산업안전법제가 재해예방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기업에 불필요하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고용노동부는 결함투성이 법제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도 정비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지침으로 자의적인 법해석과 집행을 일삼고 있다. 산업안전에 전문성도 진정성도 없다 보니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얼렁뚱땅 넘기려고만 하고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준법의지가 강한 기업조차 매우 혼란스럽고 법규를 지키기 어렵다는 지적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엄벌만능주의는 교리인 양 떠받든다. 법의 모호성과 공포분위기에 편승하여 퇴직 후 일자리를 얻는 데 혈안이 된 공무원으로 가득하다. 산업안전에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는 건 법원도 행정기관 못지않다. 치밀한 논거 제시는 선출된 권력이 아닌 법원에 헌법이 부과한 의무임에도, 전문성과 신중함보다는 휴리스틱과 감성으로 접근하는 판사들이 적지 많다. 수사기관의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는지 확인하거나 면밀히 논증하는 일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증거와 법리보다는 선입관과 이념에 따른 판결과 심지어 법창조(입법)까지 버젓이 하는 판결까지 나오고 있다. '엄벌이 곧 정의'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유죄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검찰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판사도 적지 않다. '닥치고' 유죄 판결로 기업이 실질적 예방보다는 서류작업에 매몰되는 부작용마저 야기하고 있다. 조잡한 판결의 바탕에는 판사의 산업안전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오만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자리 잡고 있다. 플라톤은 지위와 능력의 불균형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갈파했다. 안전학계는 이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집단이다. 학문의 견인은커녕 안전에 관한 기본지식도 없고 변변한 논문 한 편과 책 한 권 저술하지 못하는 사람 일색이다. 학문을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삼을 뿐 학자로서의 전문적 권위와 양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전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강의와 심사·자문이 엉성할 수밖에 없다. 학회는 친목단체와 다를 바 없고 학위 남발하는 교수가 넘쳐난 지 오래다. 이들로부터 과연 배울 게 있을지 의문스럽다. 존재감이 없는 정도를 넘어 학문 발전에 큰 걸림돌인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안전학계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지적까지 나올까. 현재와 같은 산업안전 환경에선 안전관리 가성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조차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적발 일변도의 아마추어 행정이 전횡하는 상태에서 수준 높은 산업안전은 기대난망이다. 안전 일류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실질적 안전을 위해서는 진정성과 헌신이 전제돼야 한다. 공포감에 기댄 처벌 위주의 법제와 법집행 환경에서는 겉멋과 형식이 판을 치고 진정성과 헌신이 들어설 여지는 비좁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법원, 학계는 우리 사회로부터 중요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런 만큼 산업안전에서도 그 지위에 걸맞은 능력을 당연히 지녀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산업안전 선진국에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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