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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산업계 ‘딥시크 경계령’ 확산…정부도 ‘사용 유의’ 공문

국내 산업계에 이른바 '딥시크 경계령'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 이용을 당분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안이 취약해 내부 데이터 유출 가능성이 적지 않아서다. 5일 산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 LG유플러스 등 기업들이 사내 공지사항을 통해 업무 목적으로 딥시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지양해 달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이용자 기기 정보와 인터넷 프로토콜(IP), 키보드 입력 패턴 등을 전방위적으로 수집해 중국 서버에 저장함에 따라 내부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앞서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딥시크가 수집하는 정보가 광범위하게 많다"며 “사용 장비 정보는 물론 키보드 입력 패턴이나 리듬, IP 정보, 장치 ID, 쿠키까지 수집하고, 이는 중국 내에 있는 보안 서버에 저장되는 만큼 이런 것들을 미리 고려해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딥시크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해외 동향도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호주·일본·대만 등 다수의 국가들은 정부 소유 기기에서 딥시크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정보 보안·윤리 등 안전성에 대해 완전한 검증이 되지 않아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경우 사내 가이드라인에 따라 딥시크를 업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회사 관계자는 “챗GPT 이용이 증가하던 시점에 대화형 AI 서비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임직원에게 안내한 바 있다"며 “이에 따라 외부 서버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형태의 AI 서비스를 업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딥시크의 보안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개인 PC 이용 시에도 딥시크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딥시크 경계령을 내리고 있다. 공공기관 중에선 원자력발전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송전 설비 정비 공기업 한전KPS가 딥시크 사용을 제한했다. 보안이 매우 중요한 산업 특성상 데이터 유출에 취약한 상용 모델을 사용하기엔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중앙부처와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생성형 AI 사용 관련한 주의사항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여기엔 생성형 AI에 개인정보 및 내부정보를 입력하는 것을 자제하고, 제공된 결과물의 신뢰성을 반드시 검토한 후 활용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중국 딥시크 본사에 △개인정보 수집 항목 △수집 절차 △처리·보관 방법을 확인하기 위한 공식 질의서를 발송키도 했다. 다만 아직 회신을 받진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딥시크의 보안 안전성에 대한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산업계는 긴급회의를 잇따라 열고 현안 점검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날 중소벤처기업부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주최한 '최신 인공지능(AI) 개발 동향점검 및 활용·확산방안 회의'에서 딥시크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의 조속한 지원책 및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가전·스마트폰 中 ‘대륙의 실수’ 韓시장 인해전술 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누비던 중국 가전·스마트폰 기업들이 최근 한국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중국 내수경기가 워낙 침체돼 수요 기반이 무너진데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겪을 가능성이 있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으로 분석된다. 제품 기술력을 끌어올렸다는 판단에 과거 정면 대결을 피해온 삼성·LG전자 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 에코백스는 이날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디봇 X8 프로 옴니' 신제품을 공개했다. 청소에 물걸레 기능을 결합한 뒤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넣은 신제품이다. 현장을 찾은 데이비드 첸 에코백스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이미 중국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는 상태다. 점유율 1위 기업 로보락은 저가형 뿐 아니라 150만원대 프리미엄 제품까지 내놓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필드 하남·고양 등에는 매장을 열고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일체형 세탁건조기 신제품까지 출시하며 다양한 가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륙의 실수' 샤오미도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달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스마트폰, TV, 웨어러블, 보조배터리 등 신제품을 이달 안에 출시한다고 선언했다. 샤오미 14T, 레드미 노트 14 프로 5G 등 모바일 제품에는 고객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샤오미는 지난해 3분기까지 17분기 연속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 3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TCL, 하이센스 등 TV 기업들도 한국 공략에 속도를 낼 분위기다. TCL은 지난 2023년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동향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다. 하이센스는 쿠팡에 입점하는 등 소비자 접점을 늘려나가고 있다. 이밖에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업체인 BYD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등은 이미 이커머스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텐센트 등 게임 업체들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가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 그간 14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거듭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인 5%를 달성하긴 했으나 부동산·서비스업 부진은 심각한 상황이다. 도시 지역 평균 실업률은 5.1%를 기록했고 청년 실업률이 50%에 달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중국은 2023년 6월 청년 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자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가 기준 자체를 바꿔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명품 시장 매출이 20% 급감했다는 점은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다. '트럼프 리스크'도 이 같은 상황과 맞물렸다. 미국은 4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중국산 제품에 10% 보편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10일부터 원유 등에 10~15% 보복 관세를 추가한다고 밝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 아래 무분별한 무역 전쟁을 벌일 경우 중국산 제품의 수출처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 진입장벽이 높은 한국에 눈길을 주는 것은 중국 기업들이 스스로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가전·스마트폰 기업들은 저렴한 가격에 성능은 떨어지는 제품을 주로 만들어왔지만 최근 들어 기술력 확대해 매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통신(IT) 박람회 'CES' 무대에서도 TCL, 하이센스 등이 주인공 자리를 노릴 정도다. 정부가 기업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중국과 달리 우리 업체들은 '족쇄'를 달고 있는 처지다. 학계 한 관계자는 “제조업에 규모의 경제가 생명인데 주52시간 등 규제를 따르면서 저가 공세를 퍼붓는 중국 회사들과 상대하기 힘들다"며 “보조배터리 등 저부가가치 산업은 사실상 중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산업 측면에서 한·중·일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구조는 가전 분야도 동일하다. 임금이 높고 각종 노동 관련 규제가 중국보다 많은 우리나라가 생산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 중국 공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며 “내 줄 분야는 내주면서도 (우리 기업들이)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력에서 앞서는 쪽에 집중해 차별화를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데이비드 첸 CEO “韓 매우 중요한 시장”

데이비드 첸 에코백스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제품 판매를 확대해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첸 CEO는 5일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디봇 X8 프로 옴니'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에코백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로봇 청소기 업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첸 CEO는 “에코백스그룹은 2023년 기준 200만달러 이상 매출액을 올리고 직원을 1만명 이상 고용한 기업"이라며 “800여개 협력업체와 일하며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2008년부터 제품을 선보여 로봇청소기 누적 선적량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포인트로 '문화'를 꼽았다. 동아시아권 특성상 청소를 하며 물걸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노린다는 포부다. 인구 고령화로 청소를 도와주는 로봇이 각광받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첸 CEO는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골칫거리를 해결하도록 돕는 게 최고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에코백스가 2017년 세계 최초로 건·습식 로봇청소기를 내놓고 물걸레질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힘을 쏟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첸 CEO는 “한국은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시장"이라며 “최고의 유명인사를 홍보대사로 초청하는 등 브랜드 평판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비전은 '모두를 위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며 “최고의 제품을 만들 뿐 아니라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여 한국 소비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겠다"고 강조했다. 에코백스에 따르면 이날 공개한 '디봇 X8 프로 옴니'는 △오즈모 롤러 자동 세척 물걸레 기술 △트루엣지 2.0 적응형 모서리 청소 기술 △아이비(AIVI) 3D 3.0 옴니 어프로치 기능 등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오즈모 롤러 자동 세척은 청소기의 교차오염과 세균 번식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술이다. 16개의 청정수 노즐을 통해 롤러에 지속적으로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 트루 엣지 기능은 기존 로봇 청소기가 놓쳤던 가장자리와 모서리 청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했다. 아이비 3.0 어프로치는 로봇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기능을 향상시켜 물체 윤곽을 더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에코백스 코리아 관계자는 “앞으로도 더욱 향상된 기능들을 기반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분석] 삼성 “어게인 2014”… ‘사법 리스크’ 해소 9부 능선 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9년에 걸친 길고 험난했던 '사법 리스크'의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무죄 판결은, 그간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아 온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 정상화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로써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경영 공백을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이제 삼성은 총수 부재 장기화로 인한 조직 문화 위축과 미래 투자 차질 등 후유증을 치료하고, 지배구조 개편과 컨트롤타워 재건 등 숙제도 해결해야 할 시기다. 재계는 지금이 삼성의 재도약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책임 경영과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시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연루에서 시작되어 2020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기소로 심화됐다. 먼저 지난 2017년 2월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경영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 특검 수사 등 정치적 격변 속에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2019년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다시 법정에 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그룹 총수의 장기간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2020년 9월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불공정 거래 및 시세 조종 혐의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불공정한 비율로 합병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디어 지난 3일 서울고등법원은 이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합병 목적에 대해 “피고인 이재용의 승계 및 지배력 강화라는 목적이 이 사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부수적으로 경영권 안정 및 지배구조 단순화를 통한 지배력 강화라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합병 비율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정된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불공정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길고 복잡한 법정 다툼은, 이 회장 개인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총수의 부재와 사법 리스크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며, 혁신적인 사업 추진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면 사법 리스크가 드리우기 전의 삼성은 어떠했을까?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시작되기 전인 2016년 이전, 삼성은 '공격 경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울 만큼 적극적인 M&A와 투자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지난 2016년 80억 달러 규모의 하만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이는 삼성의 전장 사업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 이 시기 삼성은 미래전략실이라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둔 상태였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조정하며,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2014년 이후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삼성은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들을 출시하며 경쟁 우위를 점했다. 이처럼 2016년 이전 삼성은 기술 혁신과 과감한 투자,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삼성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인식됐다. 반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된 2016년 이후의 삼성은, 경영 활동 위축과 미래 투자 지연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는 그룹 차원의 통합적인 전략 수립과 조율 기능을 약화시켰으며, 이는 대규모 투자와 M&A를 추진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했다. 또 이재용 회장은 2019년 삼성전자 이사회 멤버십에서 사임했으며, 이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로 이어져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적극적인 투자를 주저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수동적인 경영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AI, 바이오,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시기를 놓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사업에서만 14조 88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인텔에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주고 스마트폰 출하량도 애플에 밀려 2위로 하락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가 전무했던 상황은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불안감을 더했다. 또한, 이 회장의 재판 과정이 장기화되면서, 조직 문화도 경직되고 의사 결정 속도가 느려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번 이 회장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 회장에게 드리워져 있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이 상고를 할 가능성이 높아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의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계에서는 삼성에 대해 대규모 투자와 M&A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2025년 2나노 반도체 생산, AI 기반 신사업 확대, 미국 테일러 공장 건설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또한, 2025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용인 기흥캠퍼스에 반도체 R&D 단지를 건설하고, AI 사업 확장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미전실과 같은 조직을 재건해 그룹 차원의 신속하고 통일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 삼성은 전보다 더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리더십과 삼성 임직원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네이버 이해진, 이사회 의장 7년만에 복귀…AI·글로벌 힘 싣는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다.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이사회를 나온 지 7년 만이다. 5일 플랫폼업계에 따르면 네이버 이사회는 오는 7일 이 GIO의 사내이사 복귀 안건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의결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다음달 말쯤 개최 예정인 주총에서 사내 이사로 선임될 경우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GIO가 지난해 인공지능(AI) 및 중동 진출 관련 적극 행보를 보여 왔음을 감안하면, 의장으로 복귀할 경우 관련 사업 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9월 사우디에서 열린 글로벌 AI 서밋(GAIN 2024) 컨퍼런스에 참석해 시장 현황과 기술 기업간거래(B2B) 전략 등을 살폈다. 직후 사우디 데이터인공지능청(SDAIA)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업계에선 이 GIO의 현지 방문이 처음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평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경영자'로 꼽히는데, 사우디 출장을 직접 챙겼다는 점에서 중동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에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소버린 AI 문제를 논의하는 등 AI 사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 자리는 국가별 AI 모델 구축을 위한 하드웨어 인프라를 제공하는 엔비디아와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네이버의 시너지를 모색하고자 이뤄졌다. 최근 중국 AI 기업 딥시크의 출현으로 글로벌 시장 선점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가운데 오픈AI가 카카오와 손을 잡고 국내 시장 공략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도 이 GIO가 경영복귀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 GIO가 경영 일선에 복귀할 시, 사업 부문 중에서도 AI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소버린 AI 구축을 위해 빅테크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자사 서비스에 접목하는 '온 서비스 AI' 전략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네이버 관계자는 “현재로썬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에도 ‘고용 1위’ 자리 지켜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동안 4700여명을 신규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용자 수는 12만5593명으로 국내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LG전자, 기아, SK하이닉스 등도 국내 고용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합병·분할 등으로 변동 폭이 컸던 32곳을 제외한 468개 기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 고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이 분석됐다고 5일 밝혔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이들 기업의 총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159만4119명으로 2023년 12월 말 158만8817명에서 5302명(0.3%)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12만5593명)였다. 이어 현대자동차(6만9285명), LG전자(3만6244명), 기아(3만3004명), SK하이닉스(3만1638명), LG디스플레이(2만5632명), 한국철도공사(2만3452명), 이마트(2만3305명) 등의 순으로 국민연금 가입자가 많았다. 한 해 동안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기업도 삼성전자였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023년(12만877명)과 비교해 4716명(3.9%) 늘었다. CEO스코어는 “인공지능(AI)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응 미비로 주력인 반도체 부문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신규 고용을 늘린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어 CJ올리브영(2224명↑), 한국철도공사(1359명↑), 롯데하이마트(1136명↑), 아성다이소(899명↑), 삼성SDI(876명↑), 현대자동차(858명↑), 티웨이항공(653명↑), LG전자(635명↑) 등의 순으로 고용을 늘렸다. 반면 같은 기간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LG이노텍(2391명↓)으로 조사됐다. 다만 LG이노텍의 경우 고객사 물량 변동에 따라 단기 계약직 채용 규모가 달라지는 업종 특성상 조사 시점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 증감 폭이 커질 수 있다고 CEO스코어는 설명했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LG디스플레이(2346명↓)와 이마트(1293명↓)를 비롯해 국민은행(684명↓), LG화학(634명↓), 파리크라상(614명↓) 등도 고용 규모가 줄었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 증가율은 롯데하이마트(41.3%), 에코프로이엠(33.8%), 티웨이항공(30.1%), CJ올리브영(23.0%) 등의 순으로 높았다. 반면 태영건설(-23.8%), 코리아세븐(-20.3%), 아이에스동서(-18.0%), SK에코엔지니어링(-17.6%) 등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업종별로 보면 IT전기전자(33만2570명)의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자동차·부품(18만9349명), 유통(15만4789명), 공기업(14만4789명), 서비스(9만9985명), 식음료(9만8099명), 은행(9만3193명), 건설·건자재(8만4420명), 조선기계·설비(6만7521명), 석유화학(6만2476명), 운송(5만1502명), 보험(5만302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삼성·오픈AI·손정의, AI 동맹 맺어질까

글로벌 IT 기업들이 핵심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힘을 모으는 가운데, 한미일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오픈AI, 소프트뱅크가 서울에서 만났다. 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만나 AI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회동에서 세 기업은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오라클과 함께 추진 중인 'AI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스타게이트는 향후 4년간 718조억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회동 후 손 회장은 “우리의 업데이트와 모바일 전략, AI 전략에 대해 좋은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스타게이트 참여 여부에 대해선 “더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에 합류할 경우 오픈AI에 반도체를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손 회장과 동행한 르네 하스 Arm CEO는 개발 중인 AI 반도체에 삼성 파운드리를 사용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삼성은 훌륭한 파트너라는 점만 말씀드린다"고 평가했다. Arm은 소프트뱅크가 지분 90%를 보유한 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스타게이트 참여가 예정돼 있다. 한국의 AI 경쟁력에 대해 손 회장은 “훌륭한 엔지니어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미래가 밝다"며 “AI는 현재 모든 국가에서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3자 회동은 각각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온 삼성전자, 오픈AI, 소프트뱅크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한국, 미국, 일본의 AI 및 반도체 분야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카카오·오픈AI ‘AI 동맹’…올트먼 “韓과 협력할 일 많을 것”

“한국의 인공지능(AI) 기술은 놀라운 수준이다. AI 메시징에 관심이 많고, 사용자 접점을 지속 탐구하는 카카오는 장기적 관점에서 비전을 공유할 수 있어 앞으로 협력할 일이 많을 것으로 본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카카오의 AI 미디어데이에서 이같이 말했다. 카카오는 이날 AI 서비스 대중화 청사진과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AI 모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통해 초개인화 서비스를 확대하고, 관계 기반 커뮤니케이션이란 강점을 활용해 이용자 중심 서비스로 실용성을 높이는 게 골자다. 사용자들이 각각의 AI 모델 특성을 일일이 파악하고 선택할 필요 없이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자동으로 최적의 결과를 받아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연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AI 에이전트 '카나나(Kanana)'를 통해 이를 구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카나나를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에 자체 거대언어모델(LLM)과 함께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최신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오픈AI의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와 함께 챗GPT 엔터프라이즈도 도입키로 했다. 많은 이용자가 AI 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기술 협력과 공동 상품 개발을 추진해 대중화 시점을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국내 기업 중 오픈AI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건 카카오가 처음이다. 양사는 지난해 9월부터 기술 및 서비스, 사업 등 다양한 범위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 중심 서비스 및 에이전트 개발 방향 측면에서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오픈AI와의 협업 이유에 대해 “비용 부담을 지속 줄이면서 다양한 시도를 펼치는 오픈AI의 도전적 DNA와 카카오의 사용자 접점 측면에서 최적의 AI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카카오의 DNA가 굉장히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픈AI가 최근 개발한 '딥 리서치' 도입 계획에 대해선 “챗GPT 내에서 다양한 AI 모델을 제공하는 것처럼, 이용자가 카카오톡 내에서 챗GPT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트먼 CEO는 “한국은 에너지·반도체·인터넷 기업 등 강력한 AI 도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며 “AI 기술 개선 속도가 빠른 만큼 추론 가능한 영역도 점차 넓어질 것이다. 카카오와 모든 측면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할 일은 인공범용지능(AGI)의 강점을 모든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연구뿐 아니라 좋은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며 “앞으로 공동 제품을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 과학적 발견도 함께 이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I 안전성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개발 단계부터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라며 “에이전트 개발 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질 가치이며, 공동 상품 개발과 같은 선상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중국 딥시크 등장으로 촉발된 개발 비용 이슈에 대해선 “모델의 발전과 함께 비용이 낮아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며 “비용 측면에서 지난해 대비 올해 10배 가량 줄였다.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환상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내 시장 공략 및 카나나 정식 출시 시점, AI 사업 매출 목표 등에 대해선 두 대표 모두 말을 아꼈다. 올트먼 CEO는 오픈AI 한국지사 설립 시점과 국가 AI 컴퓨팅센터 건설 참여 계획에 대해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한국은) 좋은 시장이라 생각한다"며 “컴퓨팅 센터 역시 늘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오라클이 공동 추진하는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국내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파트너십 관련 내용은 기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발표 전까지는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글로벌 공급망에 있는 회사들이 참여해야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고 한국 기업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정 대표는 카나나의 정식 출시 시점에 대해 “지난 연말 비공개 베타 테스트(CBT) 결과 바꿀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서비스고, 카카오톡이라는 관점 때문에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내야 하기 때문"이라며 “연내 출시를 생각하고 있지만, CBT를 지속하면서 서비스 방향을 수정해갈 것"이라고 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샘 올트먼, 삼성·SK·카카오와 ‘AI 초협력’ 시동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한국을 찾아 삼성, SK 등과 AI 협력을 모색하고 나섰다. 올트먼 CEO는 4일 오후 서울 서초 삼성전자 사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만나 AI 협력을 논의했다. 이는 전날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용 회장의 첫 글로벌 행보이자, 한미일 AI 동맹 강화를 위한 상징적인 만남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동의 핵심 의제는 5000억달러(약 72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협력이라고 전해졌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미국 전역 AI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로, 텍사스를 시작으로 20개의 대규모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첫 데이터센터는 뉴욕 센트럴파크 크기인 약 3.54㎢ 규모로, 2026년 8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와 AI TV, AI 전용 단말기 개발 등에서 오픈AI의 최적 파트너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AI PC용 메모리인 HBM과 기업용 SSD, GDDR7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AI 자체 칩 제조를 위한 파운드리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올트먼 CEO는 스마트폰을 대체할 AI 전용 단말기 개발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주목된다. 올트먼의 이번 방한은 치밀하게 계획된 일정으로 진행됐다. 3일 오후 11시 40분경 김포 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입국한 그는 4일 오전 9시 40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김주선 SK하이닉스 AI인프라 사장 등이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에서 심도 있는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올트먼 CEO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제휴를 통한 AI 반도체 직접 개발 계획을 시사한 바 있다. 오픈AI는 이미 브로드컴과 협력해 자체 AI 칩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 칩에도 SK하이닉스의 HBM이 탑재될 가능성이 있다. 이어 올트먼 CEO는 국내 주요 기업과 스타트업 개발자 100여 명이 참석하는 '빌더랩 서울'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공식적인 올트먼 CEO의 방한 이유다. 오픈AI가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개발자 워크숍으로, 루턴테크놀로지스와 업스테이지 등 국내 주요 AI 스타트업들이 참여했다. 행사장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으며,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취재가 엄격하게 통제됐다. 이어 카카오가 주최한 카카오-오픈AI 공동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카카오톡, 카나나 등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에 오픈AI 최신 AI 기술 API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트먼 CEO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의 대담도 진행하며 “AI 개선 속도는 매우 빠르고, 중요한 것은 빠르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모델이 발전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 생산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AI 생태계를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에너지, 반도체, 인터넷 회사 등 AI가 적합한 영역들이 많아 강력한 AI를 채택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관련해 “18개월마다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AI의 과학 발전 기여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오픈AI는 현재 아시아에서 일본과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다. 올트먼 CEO는 서울 방문 이후 인도, 두바이, 독일 등을 순차 방문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방한은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약진으로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딥시크가 최근 공개한 오픈소스 기반의 AI 모델이 미국 기업들의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보이면서도 운영 비용이 현저히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미국 AI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올트먼 CEO는 이날 로봇 공학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로봇 분야 협력"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로봇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의료용 챗GPT 개발 검토 계획도 밝혀, 향후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전날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그룹과 'SB 오픈AI 재팬'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독점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한국, 인도를 잇달아 방문하며 아시아 AI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이태민·김윤호·강현창 기자 etm@ekn.kr

美 눈치보고 中에 쫓기고···반도체 업계 “정부·국회 지원 절실” 한 목소리

정부·국회가 특별법 통과를 포함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미국이 시작한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경영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진데다 중국의 공세까지 거세져 자칫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과 관세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타깃으로 '반도체', '철강', '유럽연합(EU)' 등을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 등 관련 부처에 오는 4월1일까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미국으로 향하는 메모리 반도체 등에 관세 장벽이 생기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중국산 전자제품 수출길이 막히는 것도 현지에 반도체를 다량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악재다. 다른 나라가 보복 조치를 시행해 '글로벌 무역 난타전'이 벌어질 경우 전체 교역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조성돼 있다. 양사가 미국에 공장을 지으며 받기로 한 보조금이 없어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중국도 신경 써야 한다. 정보통신(IT) 기기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어서다. 중국산 레거시(범용) D램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푸젠진화(JHICC) 등은 DDR4 8Gb D램을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밀어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 7월 평균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넉 달 사이 35.7% 급감했다. '중국산 반도체' 기술력은 무섭게 향상되고 있다. CXMT는 최신형 제품인 DDR5 D램 양산을 최근 시작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화웨이는 지난 2023년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 7나노 공정에서 제조된 칩셋을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하기도 했다. 미국 눈치를 보고 중국에 쫓기는 가운데 기업 실적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2조9000억원에 그치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조단위 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범용 제품 마진율이 떨어지며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적자를 낼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정부·국회에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는 배경이다. 기업들은 당장 '반도체 특별법'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분야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노사 서면합의로 주52시간 상한제를 초과하는 기준을 적용하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토론회'에서 법안 통과 가능성을 거론하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은 내부 검토를 거쳐 조만간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다만 노동계 반발이 거세 주52시간제 자체를 거스르지 않는 '절반뿐인 특별법'을 여당에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해당 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기술 중심의 산업으로 첨단 기술이 바탕이 된다"며 “이 중심에 기술 개발이 있고, 그 중심에 연구자가 있는데 시간을 기준으로 연구·개발을 하면 성과가 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특별법 통과는 물론 우리 정부·국회가 보다 파격적인 지원책을 의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는 만큼 우리 역시 경제 버팀목이 반도체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수준을 넘어 투자금을 직접 환급하거나 반도체 및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재정지원책 등이 거론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6838억달러)에서 반도체(1419억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7%에 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해 '한국판 칩스법'을 만드는 방법 등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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