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서소문고가차도 철거공사 붕괴 사고에 앞서 교량 핵심 구조물인 거더(Girder)에서 29㎜ 규모의 처짐 현상이 발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이상 징후 발견 직후 공사를 중단하고 긴급 안전점검에 착수했지만, 점검 과정에서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감리단장과 현장소장, 외부 전문가 등 3명이 숨지고 서울시 공무원과 서대문구 직원 등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특히 사고 발생 약 12시간 전 이미 구조물 이상 징후가 확인됐음에도 도로와 철도 운행이 계속 이뤄졌다는 점에서 당시 안전 판단 과정과 대응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임춘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27일 서울시청 기자실 브리핑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유가족과 부상자들에 대해 가능한 모든 행정적 지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소문고가 철거공사는 지난해 4월 30일 착공해 오는 7월 29일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다. 총사업비는 202억7400만원이며 사고 발생 시점 기준 전체 공정률은 88.49%였다. 교각 18개 가운데 15개, 슬래브 19개 가운데 17개가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 서소문고가는 1966년 준공된 노후 교량이다. 2019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 판정을 받았으며, 당시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고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서울시는 철거 후 재설치 방침을 결정하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거쳐 철거공사를 진행해 왔다. 서울시가 공개한 사고 경위에 따르면 사고는 26일 오후 2시33분 철도 횡단구간인 S9 슬래브 철거 작업 과정에서 발생했다. 슬래브는 차량이 통행하는 콘크리트 바닥판을 의미한다. 당시 현장에서는 S9 슬래브를 절단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슬래브 아래에는 교량 상부를 지탱하는 철제 대들보 역할의 거더가 설치돼 있는데, 서울시는 작업 도중 거더에서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시공사는 이날 오전 1시30분부터 S9 슬래브 절단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작업 시작 약 1시간 뒤인 오전 2시30분께 G14열과 G15열 사이 중간 지점에서 29㎜ 규모의 거더 처짐 현상이 확인됐다. 거더는 교량 하중을 교각으로 전달하는 핵심 구조물이다. 거더에 처짐이 발생했다는 것은 구조 안전성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에 책임감리는 즉시 공사 중지를 지시하고 추가 처짐을 막기 위한 보강 조치를 실시했다. 현장 관계자는 오전 7시30분 서울시에 유선 보고했고 오전 9시30분에는 대면 보고가 이뤄졌다. 이후 오전 10시50분 감리단장과 현장소장, 정밀안전진단업체, 구조분야 비상주 감리,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한 긴급 대책회의와 현장점검이 진행됐다. 당시 현장에는 서울시 관계자와 안전진단 전문가, 외부 전문가, 감리단장, 현장소장 등 총 9명이 참여해 구조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2시33분 구조물이 갑자기 붕괴했고 현장에 있던 감리단장과 현장소장, 외부 전문가가 숨졌다. 서울시 공사 담당 과장과 담당 주무관, 서대문구 직원 등 3명은 중상을 입었다. 붕괴 직후 오후 2시37분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고 오후 4시22분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다. 서울시는 이후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 고용노동부, 경찰, 국토안전관리원 등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잇달아 열어 사고 수습과 철도 복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브리핑 이후 이어진 백브리핑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이 사고 원인 자체보다 '29㎜ 처짐 발견 이후 서울시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에 집중됐다. 가장 많이 제기된 질문은 “새벽 2시30분 구조물 이상이 발견됐는데 왜 철도와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당시 상황이 즉각적인 붕괴가 확인된 상태가 아니라 위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한 긴급 안전점검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거더 처짐은 구조물 이상 신호가 맞지만 곧바로 붕괴 위험을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통제 필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긴급 안전진단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긴급 안전점검 실시를 누가 결정했는지 여부였다. 서울시는 법적으로 긴급 안전점검 필요 여부는 책임감리 판단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책임감리가 처짐 현상을 확인한 뒤 긴급 점검 필요성을 제기했고 서울시는 이를 공유받아 전문가 참여와 후속 조치를 지원한 것"이라며 “별도의 승인 대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붕괴 당시 감리단장과 외부 전문가 등이 구조물 인근에서 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있었던 점도 백브리핑에서 집중 질의가 이어진 부분이다. 서울시는 사고 당시 현장 점검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거더 상태를 확인하려면 구조물 하부를 직접 봐야 하는데 공중비계가 설치돼 있어 외부에서는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공중비계는 철도 상부에 설치된 임시 작업 발판이다. 철거 작업자와 장비가 철도 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로, 교량 하부 전체를 덮고 있어 외부에서는 거더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서울시는 이 때문에 감리단장과 전문가들이 공중비계 내부로 들어가 구조물 상태를 점검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책임감리가 현장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구조물 인근으로 진입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경위는 향후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철도 횡단구간 철거가 예상보다 장기간 진행된 배경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서울시는 당초 철도구간에 대해 24시간 연속 작업을 요청했지만 철도 운영기관과 협의 결과 철도 운행이 없는 새벽 시간대에만 작업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실제 철도 횡단구간 철거 작업은 오전 1시30분부터 오전 4시30분까지 하루 약 3시간만 허용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철도 안전 문제 때문에 한 달 평균 17~18일 정도만 작업이 가능했다"며 “철도 인접 공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철도 외 일반 구간 철거를 완료했고 올해 3월 전차선 이설을 마친 뒤 철도 구간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임 본부장은 “철도 운행 중 공사를 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작업 여건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며 “철도구간 철거는 사실상 새벽 시간에만 반복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철거공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서울시는 설계 단계에서 거더의 구조 안전성을 전제로 순차 절단 후 개별 인양 방식의 철거 공법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개별 거더를 순차 절단한 뒤 인양하는 방식으로 설계됐고 이는 거더 자체가 안전하다는 전제 아래 수립된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 붕괴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향후 조사에서는 △29㎜ 처짐 발생 이후 대응이 적절했는지 △철도·도로 통제 판단에 문제가 없었는지 △긴급 안전점검 과정이 적절했는지 △철거공법과 구조 안전성 검토에 문제가 없었는지 △감리단·시공사·발주처의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서울시는 고용노동부에 작업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계획에 따르면 공중비계 철거에 6시간, 사고 구간인 S9 철거에 24시간, 전차선 복구에 10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복구 작업은 약 40시간 규모다. 서울시는 고용노동부 심의를 거쳐 잔여 구조물 철거와 철도 복구 작업을 재개할 방침이다. 유가족에 대해서는 장례비와 재난지원금, 심리상담,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지원하고, 부상자에게는 치료비와 심리상담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시민의 경우 시민안전보험 적용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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