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갈등을 줄이는 비전의 조건](http://www.ekn.kr/mnt/thum/202607/news-p.v1.20240325.a19a6b33fb5c449cadf8022f722d7923_T1.jpg)
선거철마다 정치권은 '비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비전이 정작 사회의 갈등을 줄이기는커녕 키우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반복되는 이 패턴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문제는 비전의 유무가 아니라 비전의 '설계 방식'에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설계가 정교한 사람이 결국 신뢰를 얻는다는 사실을, 정치는 자주 잊는다. 갈등을 키우는 비전과 줄이는 비전은 대개 하나의 질문에서 갈린다. “누가 문제인가"를 규정하느냐, “무엇이 문제인가"를 규정하느냐다. 전자는 결집력은 있지만 필연적으로 상대 진영을 적으로 세우고, 후자는 합의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갈등을 완화하며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이어진다. 이 차이는 이념의 좌우 문제가 아니라 정치 기술의 문제에 가깝다. 1987년 재정위기에 몰린 아일랜드는 정부와 노동계, 재계가 함께 '국가회복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노동계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정부는 세제 개편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한쪽이 상대를 굴복시킨 결과가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특정 계층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규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합의였다. 이 협약은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지며 아일랜드 경제 회복의 토대가 됐다. 한국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기업의 정리해고 유연화와 실업급여 확대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각각 고통과 안전판을 동시에 제시하는 합의를 끌어냈다. 갈등을 줄이는 비전은 이렇듯 손실을 감수해야 할 집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보상받는지를 명확히 밝힐 때 합의의 정당성이 생긴다. 독일의 사례는 반대로 그 대가를 보여준다.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어젠다 2010'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실업급여 축소를 밀어붙였다. 단기적으로는 지지층의 반발을 불렀고 본인은 정권을 내주는 대가를 치렀지만, 이후 10여 년간 독일 경제의 고용률과 산업 경쟁력을 지탱하는 뼈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구조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문제를 규정하는' 비전의 한 형태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도 같은 원리다. 기업의 해고는 쉽게 하되, 실업자에게는 관대한 실업급여와 적극적인 재훈련을 제공한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게 '내가 손해 보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노사가 함께 설계에 참여했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정치적 지형이 바뀌어도 골격이 유지되고 있다. 시간의 축을 정치 주기 너머로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다. 영국은 2008년 기후변화법을 여야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키며 탄소 감축 목표를 법적 구속력으로 못 박았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뒤집기 어려운 장치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요동치며 발생하는 소모적 갈등 자체를 원천적으로 줄인 것이다. 싱가포르가 국가 인재 재교육 체계인 '스킬스퓨처'를 5년, 10년 단위 국가계획으로 못 박아 여러 총리를 거치며 흔들림 없이 이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이 선거 결과에 따라 매번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신뢰 자체가, 사회 갈등을 줄이는 자산이 된다. 정리하면 갈등을 줄이는 비전에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적이 아니라 문제를 규정한다. 둘째, 손실과 보상의 주체를 숨기지 않고 명시한다. 셋째, 정치적 손실을 감수할 각오로 구조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넷째, 정치 주기를 넘어서는 시간 설계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리더십은 이 네 조건을 실행 설계 수준까지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정교하게 손실과 이익을 설계하느냐가 비전의 진정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 설계가 구체적일수록 유권자는 막연한 구호와 실질적 정책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도 함께 줄어든다. 여야 어느 쪽이든, 이 능력을 먼저 증명하는 쪽이 다음 시대의 리더가 될 것이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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