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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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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포커스] 녹조 독소, 바람 타고 콧속으로…美 플로리다에서 확인

“녹조는 물에서 생기는 것이고, 독소가 많아도 공기로는 전파 안 된다." 이 같은 상식에 의문을 던지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물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녹조 독소가 공기 중에 떠다니며 사람이 호흡을 통해 콧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물속 녹조가 사라져도 공기 중에는 독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최근에는 공기 중 녹조 독소를 직접 측정하는 장치까지 개발되면서 녹조 문제가 단순한 수질오염을 넘어 대기환경과 공중보건 문제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강을 따라 대도시가 형성된 낙동강 유역과 같은 지역에서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기 중 독소를 직접 잡아낸 'ADAM' 가장 주목받는 연구는 미국 브레인 케미스트리 연구소와 환경단체인 칼루사 워터키퍼(Calusa Waterkeeper) 연구팀이 플로리다 남서부 지역의 강 하류와 하구, 연안 지역의 대기 독소를 정밀 조사해 그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독소(Toxins)'에 발표한 논문이다. 연구진은 ADAM(Aerosolized Dust Associated Microcystin, 에어로졸 먼지 속의 마이크로시스틴) 이라는 새로운 공기 시료채취 장치를 개발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남세균(cyanobacteria) 독소의 일종이다. 기존에는 강이나 호수의 물을 떠서 독소 농도를 분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사람이 실제로 호흡을 통해 얼마나 독소에 노출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ADAM은 공기를 강제로 빨아들여 그 안에 떠다니는 미세먼지와 에어로졸을 특수 필터에 포집한 뒤, 필터에 붙은 마이크로시스틴을 실험실에서 정밀 분석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물속 독소를 측정하는 장비'가 아니라 '1.5~1.8m 높이에서 사람이 실제 들이마시는 공기를 분석하는 장비'​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 장치를 미국 여러 호수 주변에 설치해 장기간 공기를 채취했다. 그 결과 녹조가 심하게 발생한 시기뿐 아니라 육안으로 녹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시기에도 공기 중에서 BMAA와 그 이성질체(AEG, DAB)와 같은 신경독소가 정기적으로 검출됐다. 특히 독소는 호수에서 최대 약 30㎞ 떨어진 지역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바람과 기상 조건에 따라 독소가 상당한 거리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주민들이 녹조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흡입 노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플로리다 지역 공기에서는 여러 종류의 녹조 독소 중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은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 2023년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에 게재된 논문에서 미시건 대학 연구팀은 오하이오주 호수 근처 공기에서 마이크로시스틴 검출이 보고된 바 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장비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녹조 독소가 공기 중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넘어 실제 생활환경에서 사람이 마시는 공기 속에 독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세균은 어떻게 공기로 올라올까 녹조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대량 증식하면서 발생한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환경공학부 연구팀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환경오염 (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 이동 과정을 규명했다. 호수나 강에서 파도가 치거나 거품이 터질 때 수면에서는 매우 작은 물방울인 '호수 분무 에어로졸(Lake Spray Aerosol)'이 만들어진다. 이 물방울 속에 남세균 세포와 독소가 함께 갇혀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보트 운항이나 수상레저 활동도 이런 에어로졸 발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중국 칭다오대학교 환경 및 지리학부 연구팀도 지난해 국제학술지 '미생물(Microorganism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에어로졸이 바람을 타고 수십 ㎞ 이상 이동할 수 있으며 기상 조건에 따라서는 1000㎞ 이상 장거리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독소' 저널에 게재된 논문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실제 현장에서 검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흡입'이다 남세균이 만드는 대표적인 독소는 마이크로시스틴과 BMAA다. 마이크로시스틴은 간독성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호흡기를 통한 노출도 주목받고 있다.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은 공기 중 에어로졸이 대기에서 산화되면서 일부 독성은 감소하지만 반응성산소종(ROS)이 증가해 호흡기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 미국 볼링그린주립대학교 생물과학과 연구팀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분자(Molecules)'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세균 독소인 BMAA가 루게릭병(ALS),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 관련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연구진은 BMAA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할 수 있으며 공기를 통한 흡입이 중요한 노출 경로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러한 연구들은 독소 노출의 가능성과 생물학적 기전을 제시한 것으로, 실제 장기간 노출이 사람에게 어떤 질환을 얼마나 증가시키는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역학 연구가 필요하다. ◇국내 낙동강에서도 에어로졸에서 남세균 독소 확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환경운동연합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김동은 교수팀, 국립부경대학교 이승준 교수팀은 지난 2024년 낙동강 유역 주민들을 조사한 결과 주민 22명 가운데 절반인 11명의 비강에서 마이크로시스틴 생성 유전자(mcyE)를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또 낙동강에서 약 1㎞와 3.7㎞ 떨어진 아파트 실내에서도 조류독소가 검출되면서 독소가 생활권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민사회와 함께 낙동강 조류독소 공동조사에 착수했다. 올해는 조사 대상도 원수뿐 아니라 공기와 주민 비강까지 확대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이 실제 얼마나 독소를 흡입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문가들은 낙동강은 다른 하천보다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구와 구미, 김해, 양산, 창원, 부산 등 수백만 명이 강을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취수장과 산업단지, 공원, 산책로도 대부분 강변에 집중돼 있다. 논문에서 확인된 것처럼 공기 중 독소가 녹조 발생 지역을 벗어나 수십 ㎞까지 이동한다면 낙동강 주변의 광범위한 생활권도 잠재적인 노출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공기 중 조류독소의 농도와 계절별 변화, 주민들의 실제 노출 수준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정밀한 조사와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조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ADAM과 같은 공기 시료채취 기술을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하고, 강변 지역의 공기 중 조류 독소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주민 건강에 대한 장기적인 역학조사를 통해 실제 위험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물에너지 포럼] 양수부터 조력·수열까지… 물에너지, 탄소중립·RE100 솔루션으로 떠올라

태양광과 풍력 등 변동성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 불안정을 해결할 핵심 대안으로 양수발전과 수상태양광, 수열에너지, 조력발전 등 '물에너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주최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후원한 '대한민국 물에너지 산업 포럼 2026'이 2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 B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기후부를 비롯해 한국전력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수력원자력·한국농어촌공사·한국전력거래소 등 유관기관 관계자와 산·학·연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물에너지 산업의 발전 전략과 정책 과제를 논의했다. 행사장에는 양수·수열·조력 등 물에너지 분야뿐만 아니라 건설, 데이터센터 등 연관 산업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보였다. 이날 포럼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계통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물에너지의 역할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정우진 에너지경제신문 부사장은 개회사에서 “저희 에너지경제신문은 수력 발전은 물론이고 재생에너지로 인정 받기 전부터 수열 에너지 관련 전문가 포럼을 진행하는 등 물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한정애 국회물포럼 회장(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넘어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계통에 연계하고 수요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며 “양수발전과 조력, 수열에너지 등 물에너지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에너지 자원이고 국제 경쟁력도 갖춘 부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정미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이용정책과장은 기조연설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을 계기로 물관리와 에너지 정책의 연계를 강화하고, 청정에너지원인 물에너지 산업 육성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 과장은 특히 △가성비 높은 물 배터리인 양수발전 확충 △수열에너지 확산 △하수처리장 태양광 확대 △다목적댐 발전 효율화 등 지난 2월 출범한 '물-에너지 융합 포럼'에서 진행 중인 12개 추진과제의 구체적인 로드맵도 공개했다.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황태규 한국수력산업협회 수석연구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양수발전의 역할과 필요성'을 발표했다. 황 연구원은 “양수발전은 상·하부 저수지를 이용해 대용량 전력을 장시간 저장할 수 있는 현재 유일한 상용 기계식 에너지저장 기술"이라며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과 달리 동기 관성을 직접 제공하고 블랙스타트와 장주기 저장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시대 필수 유연성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국내 양수발전 핵심설비 국산화 확대와 이에 걸맞은 시장 보상체계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최홍열 한국수자원공사 에너지사업처장은 '빛과 물의 시너지-수상태양광 및 수열 확산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 처장은 “수상태양광은 유휴 수면을 활용해 산림 훼손 없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고 수면 냉각 효과로 발전효율도 높일 수 있는 융복합 에너지"라며 현재 전국 82개소에서 603MW 규모가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기존 수력발전 송전선을 활용해 낮에는 수상태양광, 밤에는 수력발전 전력을 보내는 '교차송전(Cross-transmission)' 기술을 통해 계통 포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소양강댐 심층수를 활용한 RE100 수열 클러스터 조성과 데이터센터, 공동주택 등으로 수열에너지 보급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마지막 발표에서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새만금 조력발전의 성공 조건'을 주제로 조력발전 활성화 전략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새만금 조력발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간 명확한 역할 분담과 함께 발전, 수질, 수위관리를 통합하는 운영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업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액지원계약(CfD) 등 안정적인 지원제도 마련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주제발표 뒤 이어진 종합토론은 황진택 제주대 명예교수(전 에너지기술평가원장)가 좌장을 맡았고, 최준원 한국전력공사 전력시장처 전력거래실장과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김광철 한국전력거래소 전력시장운영처장, 기후부 물이용정책과 김창우 사무관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물에너지가 탄소중립과 RE100(재생에너지 100%) 시대를 뒷받침할 핵심 전력 인프라라는 데 공감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계통 안정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수발전과 수상태양광, 수열, 조력 등 다양한 물에너지 기술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재생에너지 늘렸는데 탄소배출 안 줄어… 핵심은 ‘보급’ 아닌 ‘계통’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설비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재생에너지로 실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부산대 연구는 냉정한 답을 내놓는다. 현재의 전력 시스템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대했던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국내 연구 “재생에너지 감축 효율성, 통계적으로 0"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김영덕 교수는 '한국기후변화학회지(Journal of Climate Change Research)' 최근호에 발표한 '전력부문에서 신재생발전의 온실가스 감축 효율성에 대한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국내 재생에너지 정책의 성과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2015~2024년 국내 5개 발전공기업 자료를 이용해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 발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체했는지를 계량적으로 추정했다. 발전공기업의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체 평균으로 각 기업은 26만9000 kW의 신재생 발전 설비를 보유했고, 여기서 생산한 전력은 기업별로 연평균 106만2000 kWh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설비 용량은 업체당 평균 1028만 kW, 발전량은 평균 4771만 kWh 수준이었다. 신재생 발전 설비는 화석 연료 발전 설비의 2.6%에 그쳤고, 발전량도 2.2% 수준이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 효율성 파라미터(ϕ)'​다. 이는 신재생발전이 전력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 발전을 대체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감했는지를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이론적으로 이 값이 0보다 커야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늘어날수록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면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실증 분석 결과는 달랐다. 연구에서 추정한 ϕ는 통계적으로 0과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 이는 재생에너지가 전혀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와 발전량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했지만, 현재의 전력 시스템에서는 그 증가가 독립적으로 확인 가능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양적인 면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있었지만, 그 확대가 화석연료 발전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면서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그 배경으로 현재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지목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하는 간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가스복합발전과 같은 유연성 자원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거나 예비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송전망 부족이나 계통 운영상의 제약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출력 자체를 줄이는 발전 제약(Curtailment)​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장부상으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나 화석연료 설비를 일부 대체했지만,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화석연료 발전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고, 계통 제약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마저 제한되면서 기대했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됐다는 것이다. 연구는 이를 현재 전력 시스템에서 투입된 투자와 설비 확대에 비해 탄소 감축 성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연구는 또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비용조정계수(θ)가 1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는 설비 규모가 커질수록 한계비용이 낮아지는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기보다 오히려 비용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구조가 형성됐음을 시사한다. 결국 현재의 전력 시스템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화석연료 발전의 실질적 축소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탄소 감축 효율도 기대만큼 높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MIT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입지와 계통"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리잉 치우, 마이클 F. 하울랜드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발표한 논문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미래 기후 변화와 전력 수요, 송전망 구조를 함께 고려하는 '기후 정보 기반 공간 계획(Climate-informed spatial planning)'​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발전량이 가장 많은 곳이 아니라 전력망 전체 효율이 가장 높아지는 곳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고해상도 기후모델과 전력계통 모델을 결합해 풍속, 일사량, 미래 전력수요, 송전망 혼잡도 등을 동시에 분석했다. 연구진은 미국 텍사스 전력시장(ERCOT)을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직관적으로는 풍력이 가장 강한 해안 지역에 풍력발전단지를 집중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미래 기후를 반영한 최적화 분석에서는 송전망 병목이 적고 지역 수요가 증가하는 텍사스 서부 지역에 풍력 설비를 우선 배치하는 것이 전력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전략을 적용하면 미래 기후 변화에 따른 전력공급 위험을 크게 줄이면서도 추가 비용은 약 0.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뉴잉글랜드에서도 수요지 인근으로 태양광과 송전망을 함께 확충하는 방식이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MIT 연구는 “발전소와 송전망은 따로 계획하는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설비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해야 두 연구의 내용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된다. 김영덕 교수의 연구가 현재 전력 시스템의 비효율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면, MIT 연구는 그 비효율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설계 방법을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도 이제 재생에너지 정책의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단순한 보급 용량 경쟁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가 실제 화석연료 발전을 얼마나 대체하고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를 정책 성과의 핵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탄소 감축이라는 결과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태양광과 풍력을 설치하느냐보다, 그 설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력망과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생에너지 정책도 '보급 중심'에서 '성능 중심', '입지 중심', '계통 중심'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발전단지 조성 단계부터 기후정보와 전력수요, 송전망 여유 용량을 함께 분석하는 공간계획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발전소와 송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관리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탄소 폭탄’ 오명 쓴 2026 월드컵…범인은 ‘관객 이동’

사상 최대 규모의 2026년 북중미 FIFA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48개국 선수단이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 16개 도시에서 한 달 넘게 경기를 펼쳤고,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산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숀 T. 라컴 교수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포트폴리오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서스테이너빌리티(Communications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규모 스포츠·문화행사의 기후 비용과 경제적 편익을 함께 평가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2026 FIFA 월드컵과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월드투어를 사례로 분석해, 메가 이벤트의 탄소배출은 경기장이 아니라 관객의 이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월드컵 탄소배출량 423만 톤…아이슬란드 연간 배출량 수준 연구진은 2026년 월드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약 423만 톤(CO₂e)​으로 추정했다. 이는 기존 32개국 체제 월드컵보다 약 59만 톤(16%) 증가한 규모로, 아이슬란드의 연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른 연구기관들은 이보다 더 많은 500만~900만 톤의 배출량을 예상하기도 한다. 추정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참가국 확대와 개최 도시 증가로 이번 월드컵이 역대 가장 탄소집약적인 스포츠 행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배출량 82%는 '팬들의 하늘길' 흥미로운 점은 탄소배출의 대부분이 경기장 운영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배출량의 82%(약 348만 톤)​는 관중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국제선 항공편 이용이 307만 톤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숙박시설(7%), 임시 경기장과 시설 건설(5%), 음식·음료(2%) 순이었다. 이는 태양광을 설치하거나 경기장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월드컵의 탄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주최 측이 직접 관리하는 경기장 운영보다, 통제하기 어려운 스코프3(Scope 3, 간접배출)​이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콜드플레이가 보여준 해법…“팬의 행동이 탄소를 줄였다" 연구진은 대안으로 콜드플레이의 2024년 유럽 투어를 제시했다. 콜드플레이는 공연장 운영뿐 아니라 팬들의 이동까지 함께 줄이기 위해 전용 앱을 개발했다. 앱에서는 기차와 대중교통, 카풀 등 저탄소 이동수단을 비교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한 팬들에게는 공연 상품 할인과 티켓 환급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관객 이동에서 발생한 탄소배출은 48% 감소했고, 투어 전체 배출량도 일반적인 투어보다 46% 줄었다. 연구진은 메가 이벤트에서 가장 큰 감축 잠재력은 친환경 경기장이 아니라 관객의 이동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탄소도 함께 부담"…새로운 공동 책임 모델 연구진은 이를 위해 '공동 책임(Shared Responsibility)' 모델을 제안했다. 경기장 운영이나 무대 설치처럼 주최자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배출(Scope 1·2)은 주최 측이 책임지고, 관객의 항공여행처럼 간접배출(Scope 3)은 주최자와 관객이 함께 줄여 나가자는 개념이다.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월드컵의 탄소 비용을 현장 관람객에게만 부담시키면 티켓 한 장당 평균 114달러(약 16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전 세계 시청자에게 1인당 약 4.5달러(약 6000원)의 방송료를 부과하면 약 7억8700만 달러에 이르는 전체 기후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은 지속가능항공연료(SAF) 개발이나 항공기 저탄소 기술, 탄소 제거 기술 등에 투자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또 모든 관객에게 동일한 탄소 부담금을 부과하면 저가 티켓 구매자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만큼, VIP 등 고가 티켓 구매자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차등 부담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 세계 시청자로부터 방송료를 걷는 방법은 프랑스 사례처럼 국가가 시청료를 징수하거나 스포츠 연맹이 방송 중계권 계약 때 탄소 비용을 포함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탄소중립 경기장보다 이동 혁신이 먼저" 연구진은 앞으로 월드컵과 올림픽, 대형 콘서트 등 국제 행사의 지속가능성은 경기장 설계보다 사람을 어떻게 이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관람객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개최지로 선정하거나, 철도와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하고, 카풀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탄소 감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라컴 교수는 “영향력이 큰 블록버스터 행사조차 스스로 배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다른 산업에서의 기후 행동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주최자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운영 방식이 메가 이벤트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EU 탄소시장 대수술…‘규제’에서 ‘산업투자’로 무게중심 옮긴다

유럽연합(EU)이 세계 최대 탄소시장인 배출권거래제(EU ETS)를 전면 개편한다. EU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배출권거래제 개편안을 발표하는 등 탄소 규제 중심의 정책을 산업 경쟁력과 탈탄소 투자 지원을 결합한 새로운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개편은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까지 함께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해운·항공 규제 확대, 대규모 탈탄소 투자 지원이 함께 추진돼 한국 수출기업의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1. EU는 왜 지금 배출권거래제를 다시 손질하려는 것인가. EU ETS는 2005년 도입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탄소시장으로 평가받아 왔다. 실제로 대상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5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배출권 판매 수익은 청정에너지와 혁신기술 투자에 활용됐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과 중국이 대규모 산업 지원 정책을 펼치면서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2040년 온실가스 90% 감축 목표까지 제시되면서 기존 제도를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번 개편은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Q2. 이번 개편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화는 배출권거래제를 단순한 규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탈탄소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EU는 배출권 공급 감소 속도를 일부 조정해 산업계의 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1000억 유로(약 160조 원) 규모의 산업탈탄소화은행(IDB)을 신설하고 청정기술 투자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탄소 제거 기술을 제도 안으로 편입하고, 해운과 항공 등 적용 대상도 확대해 탄소 감축을 위한 투자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배출권 감축 속도 조절의 경우 매년 배출권 공급량을 줄이는 비율(선형감축률, LRF)을 2031~2035년에는 3.7%, 2036~2040년에는 1.7%로 설정했다. 이는 기존의 가파른 감축 경로보다 완화된 것으로, 산업계에 보다 점진적인 적응 기간을 제공한다. CBAM 적용 업종에 대한 무상할당 폐지 시점을 기존 2034년에서 2038년까지로 연장해 기업 부담을 늦춰준다. 대신 무상 배출권을 받으려면 반드시 탈탄소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부 무상할당' 원칙을 강화했다. 아울러 항공 및 해운 부문 규제를 강화하고, 생활폐기물 소각 시설까지 ETS 적용 범위를 넓혀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더 촘촘히 묻기로 했다. 이밖에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 등으로 확보한 '탄소 제거 크레딧'을 ETS 체제 안에 편입시켜 기업들에 유연성을 제공하기로 했다. Q3. 탄소 제거 기술을 EU ETS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앞으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해 영구적으로 저장한 실적도 일정 범위에서 배출권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했다면 배출권 1장을 제출하는 대신, 직접공기포집(DACCS)이나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ioCCS) 등을 통해 대기 중 탄소 1톤을 제거했다는 공식 인증(CRCF)을 받으면 같은 효과를 인정받는 방식이다. 탄소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이미 배출된 탄소를 없애는 활동까지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다. EU는 이를 위해 '제거 기반 배출권(Removal-backed Allowances)'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도입할 계획이다. 우선 탄소 제거 물량만큼 배출권 총량을 늘린 뒤 이를 경매하고, 경매 수익으로 고품질 탄소 제거 프로젝트를 직접 지원하는 구조다. 현재 탄소 제거 기술은 비용이 배출권 가격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EU가 초기 시장을 만들어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제도는 철강과 시멘트, 화학처럼 공정 특성상 탄소를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산업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배출권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완화하고, 탄소 제거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육성하려는 목적도 담고 있다. 탄소 제거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Q4. 한국 수출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가장 클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CBAM에 따른 탄소 비용 증가다. 현재 EU 배출권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 화학 등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더욱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배출량이 많을수록 추가 비용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탄소배출 관리 능력이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Q5. EU 기업은 보호받고 한국 기업은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 EU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무상 배출권 지급을 기존 계획보다 4년 연장했다. 그러나 무조건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반드시 '유럽 내 탈탄소 투자 계획'을 제출하고 실제 투자까지 완료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배출권을 지원받는 대신 그만큼 유럽 안에서 친환경 설비에 투자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이러한 혜택을 받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Q6. 유럽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가능성이 충분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 SK 등 유럽 현지 생산기지를 보유한 기업들은 EU 혁신기금이나 산업탈탄소화은행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EU 혁신기금은 기업의 국적과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는 반드시 EU 역내에서 수행돼야 한다. 따라서 유럽 현지 공장의 저탄소 설비 투자나 신기술 도입은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Q7. 해운업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번 개편으로 가장 큰 변화를 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해운이다. EU ETS는 유럽경제지역(EEA) 항만을 오가는 선박에 대해 항해 중 발생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고, 그 배출량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구매·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존에는 5000GT(선박 내부 공간의 크기를 나타내는 총톤수 기준으로 5000톤) 이상 대형 선박이 대상이었지만 앞으로는 400GT 이상의 중소형 선박까지 관리 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국내 해운사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모니터링과 보고(MRV), 배출권 구매, 연료 사용 관리 등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유럽 항만을 자주 이용하는 선사일수록 행정 비용과 운영 비용이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Q8. 항공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국내 항공사들도 탄소 비용 증가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U는 국제선에 대한 ETS 적용을 확대하고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배출권 구매뿐 아니라 SAF 사용 비용까지 함께 부담해야 한다. 결국 연료 효율 개선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이 비용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Q9.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도 영향을 받게 될까.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개편이 한국 배출권거래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미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을 시작하면서 유상할당 확대와 시장안정화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EU ETS 개편으로 배출권 공급은 줄어들고 국내 배출권 가격이 점진적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높아 기업들의 배출권 구매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Q10. 한국 기업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전문가들은 탄소 규제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정밀하게 관리하고,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설비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EU 현지 생산기지 확대 여부와 혁신기금 활용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제품 가격뿐 아니라 탄소 경쟁력이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Q11. 이번 개편안은 언제부터 시행되나. 이번 개편안은 곧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약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입법 협상을 거쳐 2027년 1분기 최종 법안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회원국들은 2028년까지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일부 조항을 먼저 시행하게 된다. 개정된 EU ETS의 대부분 규정은 2029년부터 본격 적용되며, 해운 부문 적용 확대와 경매수익 사용 강화 등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개편안의 핵심인 '투자 조건부 무상할당제'는 2031년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EU 내 기존 생산시설이 무상 배출권을 계속 받으려면 2029년 9월까지 탈탄소 투자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실제 투자 여부에 따라 무상할당 규모가 결정된다. 같은 해 생활폐기물 소각시설도 EU ETS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한국 기업들도 향후 2~3년을 유럽 시장 대응 전략을 재정비할 마지막 준비 기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Q12. 이번 개편은 기후위기 대응의 후퇴일까, 아니면 진전일까. 평가는 엇갈린다. 환경단체들은 무상할당 연장과 감축 속도 조절이 기후 대응을 늦출 수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EU는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해야 지속적인 탈탄소 투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개편이 규제를 완화한 것이 아니라 투자 중심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탄소를 배출하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빠르게 저탄소 설비에 투자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EU ETS 개편은 탄소 규제가 환경정책을 넘어 산업정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Q13. EU ETS는 얼마나 큰 시장인가. 2005년 출범한 세계 최대 탄소시장으로, EU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를 관리하고 있다. 발전소와 철강·시멘트·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항공, 해운을 포함해 1만 개 이상의 시설과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 기반 온실가스 감축 제도로 평가받는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2,700억 유로(약 430조 원)의 수익을 창출했고, EU 통합 레지스트리에 등록된 배출권 자산 가치는 2,000억 유로(약 320조 원)를 넘는다. 최근 배출권 가격은 이산화탄소 1톤당 약 80유로(약 13만 원) 수준이며, 매년 약 80억 개의 배출권이 거래되는 등 연간 거래 규모만 약 2,000억 유로에 달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남들은 안 들리는데 왜 나만…풍력 소음 ‘초저주파’의 비밀 [환경포커스]

풍력발전소 주변에서 반복되는 민원 가운데 하나가 소음이다. 어떤 주민은 “밤새 웅웅거려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지만 바로 옆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예민함의 차이일까. 최근 사람의 귀가 초저주파를 감지하는 생리적 방식에 개인차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가 나왔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TNU) 신경의학·운동과학과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이어 인스티튜트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초저주파 감지 메커니즘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특히 16㎐(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도 충분히 강하면 사람이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범위는 일반적으로 20Hz~2만Hz(20kHz)다. ◇'안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다르게 듣는 소리' 저주파와 초저주파는 풍력 터빈뿐 아니라 대형 팬과 공조·환기 설비, 압축기, 펌프, 엔진, 발전기 등에서 발생한다. 강풍과 천둥, 파도도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만든다. 풍력 터빈에서는 날개와 공기의 상호작용으로 공기역학적 소음이 발생한다. 지난 2011년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교(KTH) 연구팀은 '환경 연구 회보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형 풍력 터빈이 소형 터빈보다 저주파 소음을 더 많이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초저주파가 일반적인 소리와 다른 방식으로 인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소리는 달팽이관의 내유모세포(內有毛細胞, Inner Hair Cell·IHC, 털이 있는 안쪽의 세포)가 기계적 진동을 신경신호로 변환해 인지된다. 반면 16㎐ 아래 초저주파에서는 외유모세포(外有毛細胞, Outer Hair Cell·OHC, 털이 있는 바깥쪽의 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적 전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제시했다. 외유모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적 전위가 청신경을 흥분시키는 별도의 경로가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유모세포가 진동을 감지해서 전기 신호를 만들면, 이 전기 신호가 내유모세포를 자극해 청신경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가설이다. ◇조금만 커져도 갑자기 크게 느껴져 이 메커니즘은 초저주파의 독특한 불쾌감을 설명하는 단서다. 연구진에 따르면 8㎐ 소리는 음압이 20㏈ 미만 증가해도 주관적인 음량이 64배 커질 수 있다. 64㎐ 소리에서 같은 정도의 음량 증가를 느끼려면 약 40㏈의 음압 증가가 필요하다. 음압(Sound pressure)은 공기 중에 전달되는 소리가 대기압을 기준으로 얼마나 압력을 변화시키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을 말한다. 음량(Loudness)은 사람이 귀로 느끼는 소리의 크기로, 같은 음압이라도 주파수와 개인의 청각 특성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음압은 소리가 공기를 흔드는 물리적인 세기이고, 음량은 사람이 귀로 느끼는 소리의 크기다. 초저주파는 감지 역치를 넘는 순간 외유모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신호가 여러 청신경 섬유를 동시에 활성화하기 때문에, 음압은 조금만 증가해도 사람은 소리가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역치(Threshold)는 사람이 소리를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 수준을 말하는데, 청각에서는 청각 역치(hearing threshold) 또는 감지 역치(detection threshold)라고 한다. 한편, 12㎐ 이하에서는 연속적인 음보다 개별 진동이 분리된 듯한 감각이 나타날 수 있다. 저주파 소음을 “웅웅거린다"거나 “덜컹거린다"고 표현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왜 어떤 사람만 괴로운가 연구팀은 500㎐ 소리를 함께 들려줬을 때 4~16㎐ 초저주파의 감지 역치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 소음이 함께 있을 때 초저주파를 들으려면 초저주파의 음압이 더 커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고주파 소리가 달팽이관 내부의 초저주파 관련 전기적 반응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억제 효과의 생리적 효율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일부 사람만 초저주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를 입증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풍력 소음 민원을 단순히 '예민한 주민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대로 초저주파가 특정 질병을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근거도 아직 부족하다. 2021년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원(RIVM) 연구진 등이 발표한 연구에서는 풍력 터빈 소음의 가장 일관된 영향으로 소음 불쾌감과 자가보고 수면 방해가 제시됐다. ◇평균 데시벨만 재서는 부족 이번 연구는 다양한 주파수의 배경 소음이 적은 조용한 환경에서는 풍력 터빈의 초저주파가 상대적으로 더 잘 인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도 50㎐ 이상의 주파수 성분이 부족한 환경에서의 저주파 소음이 다양한 소음이 존재하는 지역보다 더 큰 불쾌감과 민원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실제 민원은 지형과 풍속, 터빈의 운전 조건, 심리적 요인 등도 함께 영향을 미치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대책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전체 평균 데시벨뿐 아니라 주파수별 소음 스펙트럼과 저주파·초저주파 성분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지 단계에서도 주거지와의 거리만 따질 게 아니라 지형과 바람 방향, 야간 배경소음, 주택 내부의 주파수 특성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블레이드 형상과 구조 개선, 운전 조건 조절 등 풍력 터빈 소음 저감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원전은 ‘육성 산업’이자 ‘집중관리 갈등 과제’…두 목소리 내는 기후부[기후 신호등]

기후와 환경, 에너지를 한 부처에 모으면 정책도 조화를 이루면서 한 방향으로 움직일까.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최근 펴낸 '2025 기후에너지환경백서'를 들여다보면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존 환경 부문의 기후·환경 정책과 에너지 부문의 전력·산업 정책이 '백서'라는 한 권의 책에 담기면서 서로 다른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지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폭 늘리기 위해 입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히고, 다른 쪽에서는 국토의 30%를 보호·보전하겠다고 한다. 극한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 신규 댐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하천 자연성 회복과 4대강 재자연화를 검토한다. 원전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고 소형모듈원전(SMR)을 육성하겠다는 정책도 제시했지만, 원전 계속 운전은 정부가 특별히 관리해야 할 '집중관리 갈등과제'로 분류했다. 1095쪽에 이르는 백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런 '정책의 접합선'은 새 통합인 기후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100GW와 '국토 30% 보호'의 충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의 긴장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기가와트)로 확대하고 태양광·풍력 보급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른 태양광·풍력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려는 것도 발전시설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다(백서 249쪽, 254쪽). 그러나 환경 정책은 반대 방향의 목표도 제시한다. 정부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따라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보전하는 '30×30'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614쪽). 습지를 보전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한편 백두대간 등 핵심 생태축의 연결성도 지켜야 한다(619쪽).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할 땅은 확보해야 하는데, 개발하지 않고 보존해야 할 땅도 늘려야 하는 셈이다. 정부는 산업단지와 공장 지붕, 주차장 등 이미 개발된 공간을 활용하고 계획입지를 통해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피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100GW라는 대규모 목표를 추진하면서 이런 원칙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과제로 남는다. ◇해상풍력과 전력망…탄소중립 두고 갈등 재생에너지의 하나인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도 새로운 환경갈등이 발생한다. 정부는 해상풍력을 에너지 전환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조업 구역 축소와 어획량 감소를 우려하는 어민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280쪽).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조성이 해양 생태계 건강성 유지라는 환경 정책의 목표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따져봐야 한다(550쪽). 에너지 부서는 해상풍력을 '무탄소 전원'으로 바라보지만, 환경 부서는 이를 '대규모 해양 개발사업'으로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망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하려 한다(895쪽). 그러나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는 경과 지역 지자체와 주민의 반발이 발생하고, 입지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895쪽). 국가 전체의 탄소중립을 위해 특정 지역이 환경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환경정의' 문제도 제기된다. 주민의 쾌적한 환경권을 강조하는 정책 방향(848쪽)과 전력망의 신속한 확충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원전은 육성하면서 '집중관리 갈등과제' 원전 정책에서는 통합 부처의 긴장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백서는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과 SMR 기술 확보, 원전 수출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다(10쪽, 298쪽).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전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갈등관리 분야에서는 '원자력발전소 계속 운전'을 정부의 '집중관리 갈등과제'로 분류했다(894쪽). 한 부서에서는 원전을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위한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대규모 사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관리 대상으로 보는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있다. 원전 계속 운전이 늘어날수록 사용후핵연료 발생량과 저장 부담도 커진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상호 간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고, 공정한 중재도 필요하다. 원전 진흥을 강조하는 기후부, 즉 갈등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후부가 중재를 맡을 경우 갈등이 풀리기 쉽지 않다. 같은 기후부 안에서 한쪽은 원전 산업 확대를 추진하고, 다른 한쪽은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면 정책의 긴장과 충돌은 결국 부처 내부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기후부 스스로가 원전 활용에 따른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에너지 정책 속에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전력 수요는 급증, 석탄발전 40기는 폐지 전력 수급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 사이의 긴장도 뚜렷하다. AI와 데이터센터,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폭염과 한파 등 이상기후 때 전력 부족을 막기 위해 정부는 5.5GW 이상의 안정적인 예비력 확보를 얘기하고 있다(220쪽). 극한 기상 현상 시에는 전력 수요가 예측치를 상회하므로, 수급 안정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 발전기(석탄, 가스 등)를 최대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강화하고 석탄발전소 40기를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245쪽). 탄소 중립을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다. 이는 전기는 더 많이 필요한데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소는 빠르게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태양광과 풍력을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유연성 전원, 수요반응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전력 부서는 '정전을 막아야 한다'고 하고 기후 부서는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책 성공은 석탄발전 폐지와 대체 전원·전력망 확충의 시간표를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에 달려있다. ◇신규 댐 짓고, 강은 다시 자연으로? 물 정책에서도 서로 다른 철학이 공존한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극한 홍수와 가뭄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발표하는 등 '물그릇'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895쪽). 반면 백서에서는 4대강 재자연화 검토와 하천 자연성 회복도 강조한다. 4대강 재자연화 검토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895쪽), 지류·지천을 친환경적으로 정비해 자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댐은 강의 흐름을 막고 상·하류 생태계를 단절할 수 있다. 반대로 하천 재자연화는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생태적 연결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백서가 강조하는 생태계 건강성 회복이라는 목표(11쪽)와도 맞닿아 있다. '물을 더 가두겠다'는 정책과 '강을 다시 흐르게 하겠다'는 정책이 한 백서에 함께 담긴 셈이다. 이런 충돌은 이전에 환경부 때도 있었고, 두 정책이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신규 댐에 앞서 기존 댐 운영 개선과 유역 간 연계, 누수 저감, 물 재이용 등 대안을 얼마나 검토했는지가 중요하다. 신규 구조물(댐) 건설을 최후의 수단으로 둘 것인지가 정책의 일관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물 정책에서는 지역 간 이해 충돌도 나타난다. 정부는 낙동강 유역 먹는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수원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 이용과 안동댐 물을 활용하는 '맑은물 하이웨이' 등이 대표적이다(480쪽). 그러나 취수 지역 주민과 일부 지자체는 추가 취수에 따른 물 이용 장애와 본류 수질 악화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480쪽). 물을 공급받는 지역에서는 '안전한 먹는물 확보' 문제지만 물을 내주는 지역에서는 '지역의 수자원 권리' 문제다. 통합 물관리를 강조하는 정부가 수량과 수질, 수생태뿐 아니라 지역 간 물 배분 갈등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포장 규제는 강화, 시행은 2년 유예 자원순환 정책에서도 환경 규제와 산업 현장의 현실 사이에 긴장이 나타난다. 정부는 택배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포장 기준을 신설하고 2024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895쪽). 과대 포장을 줄여 폐기물 발생 자체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다양한 제품과 물류 환경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이행 부담을 호소했다. 결국 정부는 현장 여건을 고려해 2년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895쪽). 환경 정책의 관점에서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반면 산업 현장에서는 비용과 적용 가능성, 기업의 규제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백서 역시 다른 한편에서 기업 불편 해소와 규제 합리화를 강조하고 있다(1052쪽).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현장 수용성을 고려해 시행을 늦추면 환경 정책의 효과는 그만큼 늦어진다. 기후·환경 정책과 산업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 역시 통합 부처가 풀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충돌이 아니라 '조정의 원칙' '2025 기후에너지환경백서'는 기후·환경·에너지 정책을 한 책에 담았다. 통합 부처의 청사진인 동시에 아직 봉합되지 않은 정책의 접합선을 보여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백서에서 나타나는 정책 간 긴장과 충돌을 모두 모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책 충돌 자체가 아니다. 두 정책이 부딪힐 때 어느 가치를 우선하고 어떤 기준으로 절충할 것인지가 명확하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입지와 보호지역이 겹칠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신규 댐과 하천 복원 가운데 어떤 대안을 먼저 검토할 것인가, 석탄발전 폐지 속도와 전력망·ESS 확충 속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기후부 출범이 갖는 의미는 기존 환경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한 조직에 모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과거 환경 부처와 개발·에너지 부처 사이에서 벌어졌던 충돌이 이제 한 부처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할 것인가, 보전할 것인가',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 탄소를 줄일 것인가'라는 오래된 갈등을 더 이상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해결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후부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정책으로 조율하는 일이다. 백서는 정책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관 협의체와 갈등조정협의회 운영 등을 제시하고 있다(894~896쪽). 이런 외부 조직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기후부 내 의견 교환과 소통이 중요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먹고 마시고 숨 쉬고, 피부로도”…인간 몸 파고드는 미세·나노플라스틱

사람의 뇌 속에 플라스틱이 쌓이고 있다. 음식과 물로 먹고 공기로 들이마시는 데 이어 피부를 통한 나노플라스틱 노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뉴멕시코대학교 보건과학센터 약학대학 매튜 J. 캠펜 교수는 1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철 카슨 홀에서 '미세플라스틱의 뇌 침투와 잠재적인 건강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은 서울대 의과, 분당서울대병원, 한국뇌연구원, 한국분석과학연구소가 공동 주관하고 환경재단이 후원했다. 캠펜 교수는 사람의 뇌에서 간이나 신장보다 훨씬 많은 미세·나노플라스틱을 검출해 주목받은 연구자다. 그의 연구는 플라스틱 오염이 바다와 토양을 넘어 인간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환경보건 문제임을 보여준다. ◇뇌 1g당 플라스틱 약 5000㎍…8년 새 50% 증가 이날 강연에서 캠펜 교수는 지난해 2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했던 '사망자 뇌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생물축적'이란 제목의 논문을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부검 대상자의 뇌와 간, 신장 조직을 분석한 결과, 뇌의 미세·나노플라스틱 농도는 다른 장기보다 7~30배 높았다"면서 “2024년 뇌 시료의 농도 중앙값은 조직 1g당 4917㎍(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이었다"고 밝혔다. 2016년과 2024년 시료를 비교했더니 뇌 속 플라스틱 농도는 약 50% 증가했다. 대부분 나노 크기의 파편이었고 비닐봉지와 포장재 등에 널리 쓰이는 폴리에틸렌(PE)이 가장 많았다. 치매 환자의 뇌에서는 플라스틱 농도가 더 높았다. 다만 캠펜 교수는 미세플라스틱이 치매의 원인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플라스틱이 신경계 질환을 악화시키는 것인지, 질병으로 혈액뇌장벽과 노폐물 제거 기능이 약해진 뇌에 플라스틱이 더 쉽게 쌓이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캠펜 교수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캠펜 교수의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뇌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2016년에서 2024년 사이 뇌 속 플라스틱 농도가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날 강연에서도 캠펜 교수는 1966년에 채집한 캥거루쥐 시료(박물관 보관)와 2025년에 채집한 시료를 비교한 결과도 소개했다. 1966년에 채집한 시료의 뇌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지만, 2025년 시료에서는 다량 검출됐다. 캠펜 교수는 “인간이 배출한 플라스틱이 자연계에서 수십 년 동안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된 다음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 84%에서 미세플라스틱 미세·나노플라스틱은 심장으로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 혈액에서도 확인됐다. 이탈리아 캄파니아 루이지 반비텔리대학과 로마 사피엔차대학 등 국제 연구팀은 최근 '유럽 심장 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관상동맥 질환과 미세·나노플라스틱의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에는 급성 심근경색 환자 19명, 만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 20명, 정상 관상동맥 대조군 22명이 참여했다. 분석 결과,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84.2%에서 미세·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만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는 40%, 대조군은 31.8%였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서는 플라스틱 종류도 더 다양했다. 검출된 플라스틱 가운데 폴리에틸렌이 가장 흔했다. 미세·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된 환자의 97%에서 확인됐다. 같은 환자에서는 말초 혈액과 관상동맥 혈액에서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이 검출됐지만 농도는 관상동맥 혈액에서 더 높았다. 특히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염증을 나타내는 인터루킨-6(IL-6)와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농도가 높았다. 관상동맥 혈액에서 미세·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된 환자 역시 이들 염증 지표가 더 높게 나타났다. 미세먼지와 흡연도 관련성이 관찰됐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시술 당일과 이전 2년 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초미세먼지(PM2.5)에 노출됐고, 흡연자와 PM2.5 농도 ㎥당 15㎍ 초과 지역 노출자에게서 미세·나노플라스틱 검출 빈도가 높았다. 다만 여러 변수를 함께 분석했을 때 미세·나노플라스틱 검출의 독립적인 예측 요인은 흡연 경력이었다. 연구팀은 미세·나노플라스틱이 심근경색의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관상동맥 혈액에서 플라스틱 부담이 크고 염증 지표, PM2.5 노출, 흡연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환경 노출과 관상동맥 질환의 연관성을 추가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땀이 나노플라스틱 피부 침투 좌우 최근에는 피부도 새로운 노출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 난카이대와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지난달 미국화학회 학술지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인간의 땀이 매개하는 나노플라스틱 응집과 피부 노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폴리에틸렌 나노플라스틱이 피부에 닿아 땀과 만났을 때 입자가 뭉치는 정도에 따라 피부 침투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험과 머신러닝 분석 결과 입자 농도와 광노화, 땀 속 유기성분이 나노플라스틱 응집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나타났다. 나노플라스틱 농도가 높으면 입자끼리 뭉쳐 피부 침투 가능성이 낮아졌다. 반면 햇빛에 노출돼 광노화된 플라스틱은 더 잘 분산돼 모낭과 땀샘을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예상되는 침투 경로는 모낭, 땀샘, 피부 각질층 순이었다. 연구팀은 광노화되지 않은 나노플라스틱만 연구한 기존 연구가 실제 피부 침투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땀의 성분도 영향을 미쳤다. 젖산과 요소는 나노플라스틱이 뭉치는 것을 억제해 입자를 잘 퍼지게 했고 모낭과 땀샘을 통한 침투 가능성을 높였다. 연구진의 모델에서는 여성과 과체중인 사람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은 침투 가능성이 예측됐다. 신체 부위별로는 몸통이 얼굴이나 손보다 침투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이는 실제 사람의 피부에서 나노플라스틱 침투량을 측정한 임상 연구가 아니라 실험과 머신러닝을 이용해 '침투 가능성'을 예측한 연구라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씻는 것만으로 해결 안 돼…발생원 줄여야 최근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미세·나노플라스틱에 여러 경로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먹고 마시고 숨 쉬는 데 이어 혈액을 타고 이동하고 피부를 통한 노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땀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은 땀을 많이 흘린 뒤 피부를 신속히 씻을 것을 권고했다. 화장품과 스포츠 의류의 나노플라스틱 관리 기준, 생활하수 처리 대책도 제안했다. 그러나 개인이 피부를 씻고 플라스틱 용기를 덜 쓰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화장품과 섬유, 타이어 마모, 플라스틱 포장재 등 주요 발생원을 관리하고 식품·음용수·공기와 인체 조직의 미세·나노플라스틱 표준 분석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과학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플라스틱이 사람 몸에 들어오는가'에서 '이미 들어온 플라스틱이 우리 몸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된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열대야 다음 날 유독 빵빵거리는 도로…범인은 ‘대중 수면 부족’

밤새 무더위에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어느새 아침이다. 피곤한 몸으로 출근길 운전대를 잡는다. 신호가 바뀐 것을 늦게 알아차리고, 앞차가 급정거해도 평소보다 반응이 한 박자 늦다. 폭염과 열대야가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에서 이런 운전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열대야 다음 날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아직 이를 직접 확인한 연구 결과는 없다. 하지만 최근 미국 연구진이 제시한 '대중 수면(public sleep)' 개념은 이런 가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잠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현상' 미국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 수면·인지센터와 하버드대 의대 수면의학부 연구팀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클락 앤드 슬립(Clocks & Sleep)'에 '잠 못 드는 사회: 대중 수면 개념의 도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이 말하는 '대중 수면'은 특정 사건을 함께 경험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수면 시간과 질이 집단적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선거와 전쟁, 코로나19 팬데믹, 자연재해,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경기 등이 대표적이다. 수면을 침실 안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일정과 감정, 공동의 경험에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본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머타임이다. 봄철 서머타임 전환 직후 사람들의 수면 시간은 평균 30~40분 줄어든다. 미국수면의학회(AASM)는 축적된 연구를 토대로 이 시기에 심혈관 질환과 기분 장애, 자동차 사고 위험 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17~19시간 깨어 있으면 '술 마신 것과 비슷' 수면 부족의 위험은 단순히 졸린 데 그치지 않는다. 뇌가 주변 자극을 알아차리고 판단한 뒤 몸을 움직이는 일련의 기능이 떨어진다. 논문이 인용한 기존 연구에 따르면 17~19시간 연속 깨어 있을 경우 인지·운동 기능 저하 정도가 혈중알코올농도 0.05% 상태와 비슷해질 수 있다.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느려지며,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도 손상된다. 2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기능 손상은 혈중알코올농도 0.1% 상태에서 예상되는 수준과 비슷해진다. 예를 들어 오전 6시에 일어난 사람이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깨어 있다면 이미 17~19시간 연속 각성 상태다. 밤을 꼬박 새워야만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운전에서는 작은 기능 저하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신호 변화를 알아차리는 시간이 늦어지고, 앞차의 급정거나 보행자의 갑작스러운 진입에 반응하는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여러 상황을 동시에 살피고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능력도 둔해진다. ◇잠 못 잔 사회, 사고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집단적인 수면 부족의 영향은 안전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논문은 만성적인 수면 장애가 우울증과 불안 위험 증가, 감정 조절 능력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재해나 대규모 사회적 충격 이후의 수면 장애는 외상후스트레스 증상의 발생과 지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돕는 행동도 줄어들 수 있다. 단 하룻밤의 수면 부족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친사회적 행동'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봄철 서머타임 전환으로 잠이 1시간 줄어든 뒤 자선 기부가 10% 감소했다는 분석도 논문은 소개했다. 수면 부족은 투표와 시민적 의무 수행, 사회적 협력 행동 감소와도 관련이 있었다. 경제적 손실도 크다. 국제 정책연구기관인 'RAND 유럽'은 수면 부족으로 미국 경제가 입는 손실을 연간 약 4110억 달러(약 615조 원), 국내총생산(GDP)의 2.28%로 추산했다. 생산성 저하와 결근, 사망 위험 증가 등을 합산한 결과다. 수면 부족으로 사라지는 노동일도 미국에서만 연간 약 120만 일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열대야 다음 날 사고 늘까…한국에서 확인해볼 가설 이번 논문은 열대야를 직접 연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열대야가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를 늘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처럼 여름철 열대야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에서는 충분히 검증해볼 만한 가설이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수많은 시민이 같은 밤에 잠을 설치고,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고 운전한다. 개인의 수면 부족이 수십만·수백만 명 규모로 겹칠 수 있는 셈이다. 폭염 시대의 열대야는 단순히 “밤잠을 설쳤다"는 불편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다음 날, 도로와 일터, 사회 전체는 평소보다 위험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상청의 열대야 자료와 경찰의 시간대별 교통사고·신호 위반·과속 자료를 결합하면 열대야 다음 날 사고와 법규 위반이 실제로 증가하는지 분석할 수도 있다. 요일과 강수량, 휴가철, 교통량 등의 영향을 보정하는 방식이다. 연구진도 '대중 수면'을 측정 가능한 집단 현상으로 파악하면 위험 시기를 감시하고 조기경보 체계를 구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하천수 너무 뜨겁다”…프랑스, 기록적 폭염에 원전 가동 줄여

프랑스 국영 에너지 기업 EDF가 최근 국가 전역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일부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출력을 낮추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기후 변화로 인해 뜨거워진 하천의 수온을 조절해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환경 규제에 따른 것이다.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 중에는 원자로 냉각을 위해 인근 하천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냉각 과정에서 따뜻해진 물을 다시 하천으로 방류한다. 이른바 온배수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해 하천 수온이 이미 크게 높아진 상태에서 뜨거운 냉각수가 추가로 유입될 경우, 수온이 환경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EDF 대변인은 “원자로 자체는 고온 조건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므로 원전 안전의 위험은 없다"면서 “이번 조치는 물고기와 수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방류되는 냉각수의 온도를 제한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높은 취수 온도는 복수기의 냉각 효율을 떨어뜨리고 발전 효율과 출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원전의 감발과 정지를 직접 촉발한 것은 대부분 하천의 열 방류 규제다. ◇원전 3기 가동 중단 7~8기 출력 제한 현재 프랑스 내에서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원전은 총 3기다. 구체적으로는 가론강 유역의 골페슈(Golfech) 2호기(1,300MW(메가와트)), 론강 유역의 뷔제(Bugey) 3호기(900MW), 그리고 뫼즈강 유역의 슈(Chooz) 2호기(1,450MW)가 가동을 멈췄다. 가동이 중단된 원자로 3기의 총 용량은 약 3.65 GW(기가와트)로, 이는 프랑스 전체 원전 설비 용량(약 61GW)의 약 6%에 해당한다. 흔히 '폭염으로 하천수가 뜨거워져 원전을 냉각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차이가 있다. 상당수 원전은 기술적으로 냉각이 불가능해져 멈춘 것이 아니다. 원전을 계속 가동할 경우 냉각에 사용한 물이 하천으로 되돌아가면서 수온을 더 높여 수생태계 보호를 위한 환경 기준을 넘을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 원자로 3기 외에도 약 7~8기의 원자로가 추가적으로 출력을 낮춰 운전하며 상황에 따라 가동 수준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로의 출력을 낮추면 발생하는 열도 줄고, 냉각계통이 하천으로 배출하는 열의 양도 감소한다. ◇전력 공급 위태로울 때는 일부 기준 완화도 프랑스 원전의 수온 기준이 발전소마다 다르다. 하천의 유량과 수온, 냉각 방식, 지역 생태계 등을 고려해 원전별로 열 방류 기준을 정하기 때문이다. 가동이 중단된 골페슈 원전은 가론강 물을 이용하는데, 골페슈 원전은 지난 9일 2호기를 정지했다. EDF는 가론강 수온이 10일 2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원자로를 멈췄다. 특히 EDF에 따르면 골페슈 원전에서 사용된 물은 대부분 가론강으로 되돌아가며, 원전 가동으로 높아지는 강의 수온은 평균 0.2℃ 정도다. 하류의 일평균 수온이 28℃를 넘으면 원전 출력을 조절하거나 일시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강물이 이미 28℃에 육박한 상황에서는 원전 온배수가 수온을 0.2℃만 더 높여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냉각수가 원자로를 식힐 능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니라 하천이 추가적인 열을 받아들일 환경적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론강변 뷔제 원전도 비슷하다. EDF는 지난달 25일 론강 수온이 2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3호기를 정지했다. 이 원전의 환경 기준은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하류의 평균 수온이 26℃ 이하, 원전에 의한 평균 수온 상승 폭은 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각각 24℃와 7℃가 적용된다. 전력 공급이 위태로운 예외 상황에서는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추가적인 환경 감시를 실시해야 한다. ◇대응 방안 및 향후 대책 EDF는 높은 하천 수온과 낮은 유량 때문에 발생한 원전 발전 손실이 2000년 이후 연평균 전체 원전 발전량의 0.3%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아직 전체 원전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잦아지면서 하천을 냉각수원으로 사용하는 원전의 '열적 한계'는 새로운 기후 적응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 정부와 EDF는 단기적인 전력 수급 안정과 장기적인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몇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첫째는 한시적 규제 예외 승인이다. 프랑스 경제부는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뷔제 원전 인근 론강에 대해 오는 20일까지 한시적으로 수온 제한 예외 조치를 승인했다. 이는 폭염 속 냉방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 안보를 우선시한 조치다. 둘째는 87억 유로 규모의 '적응 계획'이다. EDF는 향후 15년간 87억 유로(약 13조 원)를 투입해 기후 변화에 대비할 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방류 전 냉각수 온도를 미리 낮추는 시스템 도입이 포함돼 있는데, 현재 시보(Civaux) 원전에서 이미 이와 유사한 냉각수 온도 저감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셋째는 수력 및 전력망 강화다. 수력 발전의 물 관리 능력을 높이고, 기상 이변에 대비해 섬 지역의 전력망 인프라를 강화하는 내용도 계획에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지난 5월 이후 프랑스를 강타한 세 번째 폭염에 따른 것으로, 기후 변화가 국가 핵심 에너지 인프라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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