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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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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살린 ‘숲·토양·해양’ 자본이 된다

정부가 자연환경 복원 정책의 구조를 크게 바꾸는 내용으로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을 개정함에 따라 향후 국내 생물다양성 정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 주도의 자연 복원사업을 민간 자본과 기업 참여 중심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자연자본' 개념과 자연 관련 공시 체계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0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자연환경 복원 사업에 민간 기업과 단체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19일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은 훼손된 국토를 복원하는 과정에 기업의 기부나 자산 대여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허용하고, 그 성과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기업의 ESG 경영 성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제도 개편은 단순한 환경 정책의 조정을 넘어 자연 자본 관리 체계를 바꾸는 시도로 평가된다. 기업의 환경 복원 활동을 제도적으로 인증하고, 이를 생물다양성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연결하는 정책 구조가 처음으로 마련되기 때문이다. ◇정부 중심 복원에서 '민관 협력 모델'로 전환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은 숲·토양·하천·해양·생물다양성 등 자연 생태계가 인간 사회와 경제 활동에 제공하는 자산과 그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 시스템은 식량 생산과 물 공급, 탄소 흡수, 기후 조절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제의 기반이 된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자연을 단순한 환경 요소가 아니라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자연자본'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이나 단체가 자연환경 복원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기부와 자산 대여로 나뉜다. 민간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전문기관이 참여 컨설팅과 사업 협의를 진행하고, 이후 실제 복원사업이 시행된다. 사업이 완료되면 정부가 복원 성과를 평가해 '실적 인정 서류'를 발급한다. 이 서류에는 탄소 흡수량, 생물다양성 증진 기여도, 오염물질 저감 효과 등 복원사업의 환경 성과가 정량적으로 담기게 된다. 기업은 이를 ESG 경영 성과를 입증하는 공식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실적 인정 체계는 자연자본 기반 공시 체계와 연결된다. 최근에는 자연 훼손이 기업의 생산 활동과 공급망 안정성, 재무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연자본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자연 의존도와 영향도를 평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자연자본 공시는 기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자연자본 공시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가는 추세에서 자연 복원 활동을 통해 창출된 긍정적 효과를 데이터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자연자본 관리와 TNFD 공시 대응 특히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를 공개하도록 권고하는 국제 협의체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도 등장했다. TNFD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성, 위험과 기회를 공개하도록 권고하는 국제적 프레임워크로, 기후 분야의 TCFD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TNFD는 지난 2023년에 기업의 관련 정보 공개와 관련해 첫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TNFD 가이드라인에서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뿐 아니라 자연 복원과 보전을 통해 창출한 긍정적 영향도 공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발급되는 '실적 인정 서류'는 이러한 공시에서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연환경 복원사업을 통해 확보한 탄소 흡수량이나 생물다양성 개선 효과는 TNFD 보고서에서 자연에 대한 긍정적 영향 지표로 제시될 수 있다. 정부가 발급한 공식 실적 자료라는 점에서 공시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의 제도적 기반 마련 가능성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주목받는 또 하나의 변화는 자연환경복원지원센터의 신설이다. 이 센터는 기업이 참여하는 복원사업에 대해 컨설팅과 기술 지원을 담당하고, 사업 결과를 평가해 실적을 인정·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공식적으로 '생물다양성 크레딧' 제도를 도입한다는 표현은 없지만, 정책 구조를 보면 향후 관련 시장 형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물다양성 크레딧은 자연 복원이나 보전 활동의 성과를 수치화해 인증하거나 거래하는 개념으로, 탄소배출권과 유사한 시장 메커니즘을 갖는다. 이번 개정안에서 도입되는 '복원 실적 인정' 체계는 사실상 이러한 크레딧 제도의 핵심 요소인 성과 측정과 인증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복원사업을 통해 확보된 탄소흡수량이나 생물다양성 개선 효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정부가 인증하는 구조는 향후 생물다양성 크레딧을 발행하거나 거래하는 제도가 도입될 경우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환경 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생물다양성 금융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행정 틀을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자연환경 복원 산업 시장 확대 전망 제도 개편은 자연환경 복원 산업 자체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의 자연환경보전사업 대행자 제도를 등록제로 전환해 사업 수행 업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동시에 진입 장벽도 일부 낮췄다. 대행업체의 자본금 기준을 법인은 7억 원에서 5억 원으로, 개인은 14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완화해 더 많은 전문업체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생태 복원 설계, 습지 복원, 산림 복원, 생태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업이 자연환경 복원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개발사업자가 납부하는 생태계보전부담금 반환사업과 복원사업이 연계되면서 복원 프로젝트의 재원도 확대될 전망이다. 개발사업자가 복원사업을 시행하면 부담금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어 민간 복원사업의 경제적 유인이 강화된다. 개정안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연계한 생태관광 활성화 정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생태관광 상품과 시설에 대해 '우수 생태관광 인증제'를 도입하고, 관광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연환경 복원 지역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생태관광 명소로 발전하면 기업은 환경 복원 성과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여라는 사회적 가치도 함께 창출할 수 있다. 이는 ESG 경영에서 중요한 '사회(S)' 요소와도 연결된다. ◇ESG·자연자본 경영으로 이어질 정책 실험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시행령 개정은 자연환경 복원을 단순한 환경 보호 정책이 아니라 자연자본 관리와 기업 경영을 연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환경 복원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세 가지 성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증해 기업 가치와 연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한국에서도 자연자본 관리 정책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향후 기업 공시 체계가 TNFD 기준으로 확대되고 생물다양성 금융 시장이 형성될 경우, 자연환경 복원 사업은 단순한 환경 활동이 아니라 기업 전략과 투자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결국 이번 제도 개편은 자연을 보호하는 정책을 넘어, 자연을 경제 시스템 속에서 관리하는 '자연자본 시대'에 대비한 정책 실험으로 평가된다. 향후 실제 복원 프로젝트의 규모와 기업 참여 정도에 따라 한국에서도 자연자본 기반 ESG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채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이번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으로 자연환경복원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의 창의성과 자본이 결합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며 “우수한 생태관광 상품의 확산을 통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화재 위험 없는 ‘바나듐 흐름 배터리’ 차세대 전력망 핵심으로 떠올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일 이호현 제2차관이 에이치투(H2) 사업장을 방문해 비(非)리튬계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H2는 바나듐 흐름전지 전문 기업이다. 덕분에 바나듐 흐름 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바나듐 배터리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10시간 이상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LDES)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나듐 흐름 배터리, 즉 바나듐 레독스 흐름 배터리(VRFB)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와 화재 위험 최소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일까. ◇바나듐 이온의 다양한 산화-환원 상태 VRFB는 전해질 내 바나듐 이온의 가역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지난해 9월 '넥스트 리서치(Next Research)' 저널에 발표된 이란 과학기술대학교(IU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의 리뷰 논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양극 전해질의 4가와 5가 바나듐 이온 쌍, 즉 V(IV)/V(V)과 음극 전해질의 2가와 3가 바나늄 이온쌍, 즉 V(II)/V(III)이 각각 다른 산화 상태 사이를 이동하며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가역적으로 변환한다. 노르웨이 연구팀은 지난달 '저널 오브 파워 소스(Journal of Power 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VRFB의 작동 원리를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외부 탱크에 저장된 액체 전해질이 펌프에 의해 셀 스택(cell stack, 배터리에서 실제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반응 장치)으로 순환하게 된다. 셀 스택에서는 전해질이 전극과 접촉해 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이온 선택성 막(Nafion 등)이 두 전해질의 혼합을 막으면서 특정 이온만 통과시켜 전하 균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전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바나듐 배터리의 최대 강점은 압도적인 안전성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유기 용매 기반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및 열폭주 위험이 상존하지만, 바나듐 기반 전해질은 가혹한 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서도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바나듐 배터리는 물 기반의 비연소성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및 폭발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나듐 배터리의 수계 전해질은 비열이 매우 높고 에너지 방출이 제한적이어서 리튬 배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명적인 시스템 실패 위험이 거의 없다. 수계 전해질의 사용이 전압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은 있으나, 화재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한다. 여기에다 VRFB는 전력을 담당하는 셀 스택과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질 탱크가 분리된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핵심 부품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를 줄여 장기간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낮춘다. 과충전 시 가스 발생 등의 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즉각적인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적절한 전압 제어 및 관리 전략을 통해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25~30년 이상 장기 운전도 가능 VRFB는 양극과 음극 모두 동일한 바나듐 원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해질이 섞여도 용량이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교차 오염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바나듐 배터리는 장기 수명과 경제적인 확장성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기후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배터리는 2만 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할 수 있어 25~30년 이상 장기 운전이 가능해 리튬 배터리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출력(Power)과 에너지 용량(Energy)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셀 스택의 크기와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액 탱크의 크기를 분리할 수 있어 단순히 탱크 용량과 전해액 양만 늘리는 것만으로도 대규모 저장 용량을 매우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부는 이러한 장점을 기반으로 바나듐 배터리 등 비(非)리튬계 에너지저장 기술의 빠른 개발과 보급을 지원해 국가 전력망을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호현 차관은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이 되기 위해 장주기 ESS 구축이 관건"이라며 “비(非)리튬계 ESS 기술이 우리 전력망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의 중요한 실적(트랙레코드)이 될 수 있도록 시범 사업 지원과 기술 개발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中 다롄엔 100~400MWh 규모로 운영 중 한편,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VRFB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바나듐 흐름 배터리 시설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9월부터 1단계 100~400MWh 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향후 200~800MWh까지 확대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북부 풍력 지역에서는 풍력 발전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흐름 배터리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영국과 호주에서도 장주기 ESS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계속될 경우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수천 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깜깜이’ 전력망 정보…해상풍력 보급 걸림돌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해상풍력법)'이 오는 26일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국내 해상풍력 확대를 위해서는 발전 설비뿐 아니라 전력을 육상으로 전달하는 해저케이블과 송전망 구축 체계를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최근 공개한 '해상풍력 확대를 위한 해저케이블 제도정비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해상풍력 사업은 해저케이블과 전력망 구축이 발전 계획과 충분히 연계되지 않아 향후 발전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육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해저케이블과 육상 송전선, 변전소 등 전력망 인프라가 동시에 구축돼야 하지만 실제 사업 과정에서는 이해관계자 갈등과 환경 문제 등으로 구축 속도가 발전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송전망 협력 구조, 정부 주도 환경평가, 주민 참여 제도 등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계통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전망 사업자 '초기 참여' 부족…특별법에도 제한적 반영 KEI 이재혁 연구위원 등이 작성한 이 연구보고서는 국내 제도의 핵심 문제로 송전망 사업자의 참여 시점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늦다는 점을 꼽았다. 독일·영국·일본 등은 해상풍력 부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송전망 사업자가 참여해 계통 용량과 접속 지점 등을 함께 결정하지만, 한국은 전력계통 정보를 정부가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해상풍력 발전단지 개발과 전력망 구축이 따로따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발전이 시작되더라도 송전 용량 부족이나 계통 접속 지연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에서는 입지 정보망 작성 단계부터 송전망 사업자가 참여해 접속 가능 지점과 계통 용량을 제공하고, 예비지구 단계에서는 변전소 위치와 공동 접속 설비 계획을 협의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실시계획 단계에서는 발전사업자와 송전망 사업자가 사업 일정과 계통 연계 시점을 조율하고 지연 시 위약금을 부과하는 책임 구조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법법과 시행령안에는 정부가 해상풍력 개발 구역을 지정하고 전력망 연계를 요구하는 절차가 포함되기는 했다. 1기가와트(GW)를 초과하는 대규모 발전지구는 송전사업자가 접속 설비를 우선 건설해 계통 연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도록 했다. 해당 비용은 발전사업자로부터 회수하게 된다. 그러나 송전망 사업자가 입지 정보망 작성이나 예비지구 단계부터 제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규정은 명확하게 반영되지 않아 발전사업과 송전망 구축을 동시에 계획하는 협력 구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주도 환경평가 제도는 일부 반영 환경성 검토 방식 역시 보고서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분야다. 독일·영국·일본은 정부가 해상풍력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해 부지 선정과 사업 추진에 반영한다. 반면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기업이 환경성 검토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식이 중심이어서 평가 결과의 공개성과 통합적 검토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예비지구 지정 이전 단계에서 정부가 해양 생태계와 어업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사전 환경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한 뒤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부지를 확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1월 공개한 특별법 시행령안에는 정부가 해상풍력 발전지구 지정 과정에서 환경성과 입지 적합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하는 절차가 포함되면서 일부 개선이 이뤄졌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환경성과 해양 이용 현황을 함께 검토하는 체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보고서의 제안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셈이다. 기후부나 해양수산부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해상풍력발전 예비지구'로 지정한다.다만 평가 결과의 공개 범위나 환경정보의 통합 관리 체계는 아직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민 참여 확대 규정 도입…협의체 운영은 과제 해상풍력 개발 과정에서 주민 참여와 지역사회 협의체를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연구에서 제기됐다. 해외에서는 정부·전문가·지역 대표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해저케이블 경로와 접속 지점, 송전선로 등을 논의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독일과 영국은 전문가 중심 위원회가 대안을 마련한 뒤 공론화 절차를 통해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정부와 기업, 지역 대표가 참여하는 공공·민간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 제도에서는 어민이나 송전선로 인근 주민 대표의 참여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연구에서는 어업단체와 지역 주민을 포함한 공공·민간 협의체를 단계별로 운영해 해저케이블 상륙 지점과 송전선로 계획을 논의하고, 설치 이후에도 환경 변화와 어업 영향 등을 공동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별법 시행령안에는 해상풍력 개발 과정에서 지역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 절차를 운영하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돼 주민 참여 제도는 일정 부분 강화됐다. 다만 해저케이블 경로 선정이나 송전선로 계획까지 포함한 구체적인 지역 협의체 운영 구조는 아직 제도적으로 명확하지 않아 향후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해상풍력·수소 연계 등 장기 전략 필요 연구에서는 해상풍력 확대와 함께 전력망과 에너지 산업을 연계하는 장기 전략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럽에서는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저장·운송하는 '파워투엑스(Power-to-X)' 방식이 확대되고 있도, 해저케이블과 수소 인프라를 함께 고려한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해저케이블뿐 아니라 수소 생산시설과 연계한 에너지 운송 체계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해상풍력과 전력망, 산업단지를 연계하는 에너지 공간계획과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 등 중장기 전략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해상풍력이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발전 설비 확대뿐 아니라 송전망 협력 구조, 환경평가 체계, 주민 참여 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정비하는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세계 곳곳 전쟁-군사행동, 기후 위기 부추기는 그림자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 등에 공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의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이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군사행동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았고, 동시에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도 다량 배출했다. 군사 활동과 무력 충돌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국가 안보와 작전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그 실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산업·에너지·교통 부문을 중심으로 한 탄소 감축 노력은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오염원 중 하나인 군사 부문은 여전히 국제적 감시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 악화 우려 만 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는 2010년대 이후 기후 행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고, 환경 전략을 유럽연합(EU) 기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공개된 유럽 ​​위원회의 공동 연구 센터(JRC) 보고서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군사 활동은 환경 변화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탓에 산업 생산 감소와 에너지 시설 파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22년 배출량은 2021년 대비 23~26% 감소했다. 하지만 군사 작전과 관련된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최초 18개월 동안 군사 작전으로 7700만톤의 CO2가 배출됐다. 지난해 2월 비영리단체인 '전쟁으로 인한 온실가스 산정 이니셔티브'가 유럽기후재단과 국제기후이니셔티브 등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이후 3년 동안 전쟁과 건물 복구, 경관 화재, 에너지 기반시설 피해, 난민과 민간 항공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CO2) 배출량이 모두 2억3000만톤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탱크·전투기 등이 사용하는 화석연료와 포탄 사용 등 전쟁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전쟁'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36%(8200만톤)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건물 복구 등 '재건' 배출량은 6200만톤으로 27%를, 산불 배출량은 4800만톤으로 21%를 차지했다. ◇파괴력에 가려진 에너지 효율, 군사 장비의 구조적 기후 파괴성 현대 군사 전략과 무기 체계의 핵심 기준은 에너지 효율이나 탄소 감축이 아니라, 압도적인 파괴력과 즉각적인 작전 수행 능력에 있다. 전투기와 폭격기·전차·군함은 극단적으로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평시 훈련과 대규모 군사 기지 운영만으로도 막대한 배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군수 산업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고무·화학물질 등 경제 전반에서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원자재들을 사용한다. 군비 확장은 국가 전체의 배출 강도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2024년 공개된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진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에서 1%포인트 상승할 때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0.9~2% 증가하고,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강도 역시 1% 증가한다. 특히 생산 구조가 탄소 집약적인 국가일수록 군사화의 환경적 비용은 더욱 증폭된다. 군대가 사용하는 연료와 장비는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군사 부문은 구조적으로 탄소 감축이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통계의 사각지대, '군사 배출량 격차'의 형성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그 양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 기후 협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보고체계의 구멍(reporting loophole)' 때문이다. 현재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에서 각국은 매년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제출하지만, 군사 연료 사용과 해외 작전에서 발생한 배출량은 보고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 협상 당시 미국 등 주요국의 요구로 군사 부문의 배출량 보고를 의무가 아닌 자발적 항목으로 분류한 탓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가 군사 배출을 누락하거나 민간 부문 수치에 통합해 발표해 실제 오염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Germanwatch) 등이 공동으로 운영·발표하는 '기후변화 성과지수(CCPI)'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군대를 하나의 국가로 가정할 경우 해당 '국가'는 세계 4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전쟁의 직접적·간접적 환경 비용 무력 충돌은 단순한 전투 행위 이상의 환경적 비용을 수반한다. 전쟁 중 발생하는 연료 소비뿐 아니라, 폭격과 교전으로 인한 대규모 화재, 석유·가스 시설 파괴, 파손된 도시와 기반 시설의 재건 과정이 모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여기에 분쟁 지역을 우회하는 민간 항공 노선 증가, 의료·구호 활동 확대, 군수품 공급망 유지까지 포함하면 전쟁의 탄소 발자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2년 동안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약 2억3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네덜란드나 스페인의 연간 배출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CCPI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 역시 약 15개월 만에 크로아티아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약 3200만 톤의 배출을 초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에는 향후 재건 과정에서 발생할 시멘트와 철강 생산 배출량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후 위기와 무력 충돌의 악순환, 그리고 난민 문제 기후 변화와 무력 충돌은 일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스위스 취리히공대 등 국제연구팀이 2024년 8월 '혁신과 녹색 발전 (Innovation and Green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연구팀에 따르면 가뭄·홍수·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적 충격과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존의 정치·종족 갈등을 군사적 폭력으로 전환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자원 부족으로 인한 '환경적 희소성'은 국가 내부의 분쟁을 넘어 주변국 개입을 불러오고, 분쟁을 국제화된 내전으로 확대시키는 경로가 된다. 이러한 충돌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초래해 수많은 기후 난민을 발생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강제 이주는 이동 과정과 임시 거주지 건설에서 추가적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난민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통은 다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분쟁의 환경적 비용까지 떠안는 구조는 기후 정의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낸다. ◇ 녹색 전환을 가로막는 군수 산업의 '구축 효과' 군비 확장은 단지 배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원과 혁신 역량을 잠식한다.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이 급증한 이후, 기후 변화 완화와 관련된 녹색 특허 활동은 10~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정된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이 군사 기술로 쏠리면서 환경 기술 혁신이 억제되는 전형적인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다. 구축(驅逐)은 밀어내기를 의미한다. 또한 군비 증강은 전력(電力)·유틸리티 부문 투자를 위축시키는데, 이 부문 투자의 절반 이상이 재생 에너지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긴장은 에너지 전환 속도를 직접적으로 늦추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철강·화학·석유 산업 등 에너지 집약적 군수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면 탄소 가격제나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지게 된다. ◇“나토 국방비 증가로 온실가스 연간 최대 2억 톤 증가" 지난해 5월 영국에 기반한 '분쟁과 환경 관측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을 제외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31개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경우 연간 8700만∼1억9400만 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보코니대학교 연구팀에서 사용한 계산법을 이용해 이같이 추산했다. 나토 회원국이 2023년 배출한 온실가스가 모두 48억6100만 톤이란 점을 고려하면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때 배출량이 최대 2억 톤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군비 증강이 기후 위기를 가속할 뿐 아니라 평균 기온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1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사회적 탄소 비용(배출량 1톤당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 비용)을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톤당 1347달러로 추산했는데,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나토의 군비 증강에 따른 부수적 경제비용은 최대 2600억 달러(약 383조 원)에 달할 수 있다. ◇군사비 증가, 기후 목표 달성에 '숨은 장애물' 중국 중산대학교 등 연구진은 지난해 6월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군사비 증가가 기후 목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95~2023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MILEX)과 이산화탄소 배출 강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군사비가 글로벌 GDP 대비 1%포인트 증가할 때 CO₂ 배출 강도는 GDP 1달러당 약 0.04kg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 배출 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해 왔지만, 군사비 지출 변화는 배출 강도 변화의 약 27%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분쟁이 군사비 비중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됐다. 미래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군사비 비율이 높아질수록 기후 목표 달성이 늦어질 가능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군사비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또는 2°C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 달성이 최대 수십 년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 정의를 위한 평화와 군축의 선택 군사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기후 변화 완화 정책에 할당될 자원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해 해외 원조 예산을 깎아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도 유사한 조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 부문에 대한 근본적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공격적 군사 전략에서 벗어나 방어 중심의 군축이 이루어질 때만, 군사 부문의 탄소 발자국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군비 축소로 확보된 재원을 재생 에너지 인프라와 기후 적응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녹색 평화 배당금(Green Peace Dividend)'은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안보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 사회는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표준화된 보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기후 위기로 인한 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취약국의 회복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평화 구축은 더 이상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전쟁의 부재를 넘어,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군축을 통해 녹색 전환의 여지를 넓히는 것, 그것이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폭염-가뭄 ‘복합 재난’ 8배 폭증…국내 연구진 밝혀내

폭염과 가뭄이 연달아 발생하는 복합 기후 재난이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폭염이 먼저 발생한 뒤 가뭄이 이어지는 유형의 재해는 2000년대 초반을 전후해 약 8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예상욱 교수와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김용준 연구원 등은 7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이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1980~2023년 전 세계 일일 기상 재분석 자료를 이용해 폭염과 가뭄이 어떤 순서로 발생하고, 어떻게 공간적으로 확산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복합 폭염-가뭄 이벤트(CDHE)의 전 지구적 발생 패턴과 시간에 따른 변화 추이,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따른 비선형적 증가 양상을 시각화해 설명하고 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CDHE가 단순한 기온 상승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지표면과 대기 사이의 상호작용이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농업 생산성 저하와 산불 증가, 공중보건 위기 등 연쇄적인 사회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각국이 재난 대응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폭염-가뭄 순서의 복합 재해 8배 증가 연구진 분석 결과, 지난 44년(1980~2023년) 동안 남미 북부와 미국 남부, 동유럽, 중앙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에서 CDHE가 자주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이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가속적인 방식으로 늘어나는 비선형적 패턴을 보이고 있다. CDHE의 전 지구적 발생 면적(spatial extent)은 해당 연도에 CDHE의 영향을 받은 육지 면적의 비율(%)로 표시했다. 이를 연도별로 나타냈을 때, 1980~2001년(과거)에는 변화의 기울기가 0.31%였는데, 2002~2023년(최근)에는 0.94%로 가팔라졌다. 최근 들어 세계 육지 면적의 약 0.94%에 해당하는 지역이 매년 새롭게 재해 영향권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폭염이 가뭄보다 앞서는 폭염 선행형 재해의 경우 기온이 1°C 상승할 때마다 영향을 받는 면적의 비율이 과거 1.6%에서 최근에는 13.1%로 약 8배 급증하는 비선형적 반응을 보였다. 지구 연평균 기온이 약 14.3°C(2000년경)를 넘어서면서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됐다. 폭염 선행형 재해의 발생 면적은 최근 기간에 약 109.8% 증가한 데 비해, 가뭄 선행형 재해 증가율 59.2%보다 훨씬 높았다. 가뭄 선행형 재해 역시 온난화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폭염 선행형과 달리 증가 기울기(민감도)의 유의미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핵심 원인은 '지표면–대기 결합'의 강화 이같은 결과는 2000년대 초반 이후 폭염 선행형 복합 재해가 단순한 온난화 추세를 넘어 지표면-대기 상호작용 강화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폭염이 발생하면 강한 태양 복사가 증발산을 촉진해 토양 수분을 빠르게 고갈시킨다. 이로 인해 토양이 건조해지면 지표면에서 대기로 전달되는 잠열이 줄어들고 대신 현열이 증가하면서 지표면 온도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잠열은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열(에너지)을 말하는데, 수증기를 만드는 데 에너지가 투입되면 주변 온도는 오히려 내려간다. 현열은 곧바로 주변 온도를 올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표층 열 방출 증가 → 총 구름량 감소 → 토양 수분 증발 강화 → 잠열 방출 감소 → 현열 방출 증가 → 지표면 온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과정으로 설명된다. 가뭄이 먼저 발생할 경우에도 토양 수분 부족이 열 축적을 촉진해 폭염을 강화할 수 있다. 즉 토양 건조와 고온이 서로를 강화하는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러한 지표면–대기 결합이 비선형적으로 강화되는 '체제 변화(regime shift)'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 변화로 인해 과거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던 지역에서도 폭염과 가뭄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민감도가 크게 높아졌다. ◇농업과 공중보건에 치명적 연쇄 반응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또는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CDHE는 단일 재해보다 훨씬 큰 피해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수확량 감소가 대표적인 피해다. 2021년 북미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염은 극심한 건조 조건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앨버타 지역의 봄 밀 생산량이 약 31% 감소했다. 보리와 캐놀라, 과일 생산량 역시 크게 줄었다. 공중 보건 피해도 심각하다. 2010년 러시아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발생한 뒤 대형 산불이 이어지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복합 재해가 농업, 생태계, 공중 보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복합적 위험을 증폭시키는 대표적인 기후 위험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복합 재해 가운데에서도 폭염 선행형이 특히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폭염이 토양 수분을 빠르게 고갈시키면서 가뭄을 촉발하기 때문에 재해가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 또한 후속 가뭄의 강도 역시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폭염 선행형 재해는 대응 시간이 짧고 피해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연구진은 이러한 유형의 재해가 앞으로 복합 기후재난의 주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기후 재난 관리 전략 전면 재검토 필요"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기존의 재난 대응 체계가 새로운 기후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폭염과 가뭄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복합 재해는 기존의 단일 재난 대응 체계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발생 순서와 상호작용을 고려한 새로운 분석과 위험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상욱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온 상승 수준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약 0.6~0.7°C 수준(2000년대 초반)에서도 폭염 선행형 복합재해의 급격한 증가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는 일부 극한 기상 현상의 경우 (파리 기후협정 목표인) 1.5°C 상승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서 급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폭염 선행형 CDHE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폭염 이후 가뭄이 급격히 강화되는 특성을 보이는데, 예측과 대응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사회적 피해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복합 위험을 고려한 재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일상화된 ‘동시다발’ 극한 기상, 세계 경제 구조적 리스크로 등장

지난 2022년 여름 유럽 전역과 중국 양쯔강 유역, 북미 중부에서 사상적인 폭염이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자력발전소 냉각수 부족 문제가 불거졌고, 중국에서는 강수량 감소로 수력발전량이 급감해 제조업 생산 차질이 이어졌다. 미국 중부 역시 고온과 가뭄의 영향으로 농작물 피해가 커지고 물류 차질이 겹쳤다. 2023~2024년에는 가뭄이 세계 곳곳에 피해를 입혔다. 이 시기 파나마 운하는 수위가 크게 낮아졌고, 미국 미시시피강도 수량이 크게 줄었다. 유럽 주요 내륙 수로에서도 가뭄이 동시에 나타났다. 개별적으로 보면 각 지역의 폭염과 가뭄 문제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같은 시기에 발생하면서 글로벌 해운과 곡물, 에너지 물류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동시다발 극한 기상 사례다. 기후 변화가 만들어내는 폭염·홍수 등의 재난은 더 이상 특정 지역, 특정 국가의 피해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극단적 기상 현상이 동시에 발생해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른바 '공간적 복합 극한 현상'이라는 새로운 단계의 위험이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의 대기·기후과학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동시다발적 기상이변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기후 위기는 이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구조적 리스크'"라고 강조한다. ◇재난이 겹칠수록 경제 충격은 증폭된다 연구팀이 주목한 핵심 개념은 '공간적 복합 극한 현상(spatially compounding climate extremes)'이다. 이는 폭염·폭우·가뭄·수자원부족과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같은 해, 혹은 같은 시기에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을 뜻한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의 경제적 충격이 비교적 국지적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경제는 무역과 금융, 에너지·식량 공급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 결과 여러 생산·물류 거점이 동시에 타격을 받을 경우 충격은 단순히 “몇 곳이 더 피해를 입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를 계통적 위험(systemic risk)이라고 설명한다. 즉, 개별 피해의 합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경제적 충격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 세계 주요 곡창지대에서 동시에 가뭄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한 농업 생산 감소는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식량 수입국의 물가 불안, 사회적 갈등, 정치적 불안정으로 확산된다. 단일 기상이변이 아니라 동시다발적 재난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기후 재난과 GDP 손실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기상 재해로 인한 전 세계 평균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연간 약 0.14% 수준이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발생한 피해만을 기준으로 한 값이다. 미래 전망은 전혀 다르다. 연구팀은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3°C 상승할 경우 전 세계 경제가 입을 누적 손실이 글로벌 GDP의 약 10%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저위도·저소득 국가에서는 손실 규모가 최대 17%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현실적인 온실가스 배출 경로로 평가되는 시나리오(SSP2-4.5)를 기준으로, 21세기 중반(2041~2060년)에 추가로 위험에 노출되는 경제 규모는 ▶폭염: 약 93조 달러(전 세계 GDP의 약 37%) ▶토양 수분 가뭄: 약 20조 달러(GDP의 약 5%) ▶폭우·홍수: 약 16조 달러(GDP의 약 4.5%) ▶수자원 부족: 약 17조 달러(GDP의 약 3.7%) 등이다. 이 수치는 '실제 손실액'이 아니라, 기상이변에 노출되는 경제 활동의 규모를 의미한다. 하지만 연구팀은 “노출 규모가 커질수록 실제 피해가 발생할 확률과 피해 강도 역시 크게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기상이변에 영향을 받는 경제 활동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실제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한 번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입는 손실의 크기 또한 훨씬 커진다는 뜻이다. ◇기온 상승 폭 크면 경제적 위험 더욱 가팔라져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기온 상승이 2°C를 넘어설 경우 경제적 위험은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즉, 1°C에서 2°C로 갈 때보다 2°C에서 3°C로 갈 때 위험 증가 속도가 훨씬 가파르다. 극단적 기상 현상의 동시 발생 확률이 비선형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폭염·가뭄·폭우가 각각 더 자주 발생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 결과 공급망·금융·보험 시스템이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되고, 복구 비용과 경제적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공간적 복합 극한 현상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공급망을 통해 충격이 확산된다는 점이다. 한 지역에서 폭우로 공장이 멈추고, 다른 대륙에서는 가뭄으로 항만과 내륙 수로가 마비되는 일이 동시에 발생하면, 기업들은 대체 공급처를 찾지 못한 채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를 “동시 충격에 따른 연쇄 붕괴 효과"로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간 격차도 극명해진다. 저소득 국가는 단일 기상 재해만으로도 GDP의 5~30%에 달하는 손실을 입는 사례가 빈번한 반면, 고소득 국가는 대부분 0.1% 미만의 손실에 그친다. 기후 위험 지역에 경제 성장이 집중되고, 그 지역들이 동시에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키운다. ◇폭염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인가 연구 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소득 계층 간 피해 격차다. 폭염의 경우 저소득층의 1인당 GDP는 매년 평균 8% 감소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3.5% 감소에 그쳤다. 피해 강도가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더 덥기 때문'이 아니다. 저소득 지역일수록 냉방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산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크며, 기후 충격 이후 회복을 위한 재정·제도적 여력이 제한적이다. 결국 기후 위기는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산업별로도 차이가 나는데, 기상이변에 가장 취약한 산업은 ▶가뭄·폭염·폭우에 직접 노출되는 농업·식품 산업 ▶발전용수·냉각수 부족이나 송전망 피해를 볼 수 있는 에너지 산업 ▶글로벌 부품 공급망 차질이 우려되는 제조업 ▶항만·내륙 수로나 철도 마비에 따른 피해가 예상되는 물류·운송업 등이다. 특히 글로벌 가치사슬에 깊이 편입된 산업일수록 한 지역의 피해가 곧바로 세계 전체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5°C 목표는 '환경 구호'가 아니다 연구팀은 파리협정이 제시한 1.5°C 목표를 단순한 환경적 이상이 아니라 경제적 안전선으로 규정한다. 기온 상승을 이 범위 안에 묶을 경우 위험에 노출되는 글로벌 GDP 규모는 크게 줄어든다. 반대로 2°C를 넘어서면 경제적 노출과 복구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기후 위기는 이미 세계 경제의 구조를 시험하고 있다"면서 “온실가스 감축과 국제적 리스크 관리 실패는 곧 경제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으로 되돌아온다"고 경고한다. 공간적으로 연결된 세계 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후 대응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글로벌 재난 리스크 풀링(global catastrophe risk pooling)'을 제안했다. 여러 국가가 공동 기금을 조성하고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자동으로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는 보험 원리를 국가 단위로 확장한 개념으로, 특정 국가가 재난을 겪을 때 다른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다만 연구진은 공간적 복합 극한 현상이 심화할수록 전통적인 '지역 분산' 전략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대륙이 동시에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기금 조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후 상관관계를 고려한 정교한 지역 묶음과 국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폭염·홍수·가뭄을 동시에 겪을 확률이 낮은 국가들끼리 묶는 방식, 즉 지리 기준이 아니라 '기후 통계' 기준으로 국가 블록을 재설계하고, 이에 맞춰 재난 금융과 공급망, 보험 체계를 공동으로 구축하자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사라진 새들의 노래…1962년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현실로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카슨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는 ≪침묵의 봄≫을 통해 살충제 남용이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고, 결국 새들의 노랫소리를 사라지게 만드는지를 경고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다시 한 번 새들이 침묵하는 봄을 마주하고 있다. 다만 이번 '침묵의 봄'은 단일 원인이 아닌, 기후 변화와 농업 구조의 변화, 대형 산불, 그리고 생태계 내부의 사회적 학습 붕괴가 겹쳐 만들어진 복합 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아마존 원시림에서 확인된 기후 변화의 조용한 충격 인간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여겨졌던 열대 우림조차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25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 보도에서 과학전문기자 워런 콘월은 아마존 깊숙한 지역에서조차 새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미시간 공대 야생동물 생태학자 자레드 울프와 브라질 아마조나스 연방대(UFAM)의 조류학자 스테파노 아빌라가 아마존 중부에서 현장 조사를 벌였는대, 흔히 들리던 특정 숲새의 노래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에콰도르 야수니 생물권 보전지역에서 2001년에서 2014년 사이 그물에 포획된 조류 수가 40% 급감했고, 시각 및 청각 조사 결과에서는 조류 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특히 곤충을 먹는 조류는 2001년부터 2024년 사이 포획량이 83%나 줄었다. 연구팀은 살충제가 아닌 기후 변화가 원시림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쳐 곤충 개체수를 감소시키고, 그 결과 곤충을 주 먹이로 삼는 새들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구조적 '조류 감소' 북미 대륙에서는 이 같은 침묵이 장기적 추세로 확인되고 있다. 체코 생명과학대학교의 생태학자 프랑수아 르루아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공간생태학자 마르타 A. 자르지나가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지난달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1987년부터 2021년까지 북미 지역 조류 261종의 개체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122종(47%)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감소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 가운데 63종은 감소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가속화' 현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살충제와 비료 사용 증가, 대규모 단작 재배, 경작지 확대 등 이른바 '농업의 집약화'가 조류 감소를 구조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새들의 생존과 번식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산불과 미세먼지가 빼앗은 새소리 기후 변화가 초래한 대형 산불 역시 새들을 즉각적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미국 코넬대학교 소속 생태학자 트리포사 I. 시마모라와 행동생태학자 티모시 J. 보이콧 연구팀은 지난달 '생물학적 보전(Biological Conservation)'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3년 캐나다 대형 산불로 연기가 미국 동북부까지 확산됐을 당시 초원에 서식하는 조류의 노래 활동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8개 핵심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높아질수록 새들의 발성 빈도는 급격히 줄었다. PM2.5 평균 농도가 76μg/m³에 이르렀을 때 5개 종에서 유의미한 발성 활동 감소가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짝짓기와 영역 방어라는 핵심 행동을 방해하는 '행동적 침묵'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멸종 위기 조류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붕괴 더 심각한 문제는 개체수 감소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새들의 '노래 문화'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국립대의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애플비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멸종위기 조류를 사례로 삼아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멸종'으로 규정했다. 리전트 꿀빨기새(regent honeyeater)의 어린 수컷들은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큰 무리에 합류해 노래를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야생 개체수가 극도로 줄어들면서 어린 수컷 새들이 성체로부터 고유한 노래를 학습할 기회를 잃고, 다른 종의 노래를 흉내 내거나 단순화된 소리를 내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짝짓기 성공률을 떨어뜨려 다시 개체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하며, 보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개체 보호'에서 '행동과 문화의 복원'으로 확장해야 함을 시사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연구팀은 개체수 감소로 고유의 노랫소리를 잃어버린 리전트 꿀빨기새를 대상으로 3년간의 적응형 노래 교육을 진행한 결과, 야생 노래를 익힌 유조(어린 새)의 비율이 42%까지 증가했다. ◇국내에선 참새·제비는 회복, 다른 조류는 감소 국내에서도 조류 감소는 일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의 '2024년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당 29.3마리였던 박새는 2024년 21.5마리로 줄었다. 직박구리도 같은 기간 서식밀도가 21.3마리/㎢에서 17.5마리/㎢로 줄었다. 까마귀는 2016년 4.8마리에서 2024년 4.5마리로, 까치는 2016년 17.5마리에서 2024년 15.8마리로, 어치는 같은 기간 9.7마리에서 6.4마리로 줄었다. 꿩과 멧비둘기, 꾀꼬리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제비는 2011년 19.8마리에서 2024년 26.2마리로 증가했고, 참새는 2011년 110.1마리에서 2024년 157.4마리로 늘어났다. 농약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포획이 금지된 덕분에 제비와 참새의 서식 환경이 개선된 덕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고시한 멸종위기 조류의 경우 2016년에는 전국에서 27종이 국내에서 관찰됐으나, 2020년에는 26종, 2024년에는 23종만이 관찰됐다. ◇두 번째 '침묵의 봄'이 던지는 경고 오늘날 다시 거론되는 '침묵의 봄'은 60여 년 전 레이철 카슨이 경고했던 살충제 문제를 넘어선다. 기후 변화, 토지 이용의 급격한 전환, 대기오염, 그리고 생태계 내부의 사회적 학습 붕괴가 중첩되면서 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점점 노래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새들의 침묵은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지구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1960년대 '침묵의 봄'이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듯 오늘날의 두 번째 '침묵의 봄'은 기후와 생태 위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경고음으로 다시 울리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호르무즈해협 14일 이상 봉쇄 땐…세계경제, 구조전환 국면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이후 이란군은 이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주요 항공 허브도 운영을 중단했다. 이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IRGC)가 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다. IRGC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직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선 상태다. 이같은 봉쇄로 글로벌 시장에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경제권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한 위협에 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감소는 산업 정체와 국내 에너지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14일 이상 봉쇄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면 세계 경제는 단기 충격을 넘어 구조적 변동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 기관인 '스페셜유라시아(SpecialEurasia)'는 이 기관의 공동 설립자이자 리서치 매니저인 줄리아노 비폴키 박사 명의로 2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글로벌 경제 충격'이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스페셜유라시아는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지정학·국제정세 분석 및 리스크 평가 기관으로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2,000만 배럴 증발…에너지 시장의 '급소' 보고서에서 비폴키 박사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국제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6년 초 기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LNG 공급량의 약 20%도 동시에 차단되면서 전력·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전반이 심각한 공급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봉쇄가 72시간만 지속돼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봉쇄가 14일 이상 장기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가격 급등을 넘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의 구조적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의 전략 비축유(SPR) 방출이 단기 완충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물류 병목과 가격 급등까지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약 하루 700만 배럴)과 UAE의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약 하루 150만 배럴)을 모두 최대치로 가동하더라도, 봉쇄로 사라지는 하루 2000만 배럴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항공·해상 물류 동시 마비…공급망 비용 폭증 에너지 충격과 함께 물류 부문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 내 주요 항공 허브의 운영 중단으로 서구와 아시아를 잇는 항공 화물 네트워크가 흔들리고, 고부가가치 전자제품·의약품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두바이 국제공항의 기능이 제한될 경우 글로벌 환승 및 항공 물류 흐름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 부문에서는 페르시아만 항로의 전쟁 위험 보험료가 약 50% 급등하고, 일부 보험사는 보장 자체를 중단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의 병목 현상이 벌어지면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운송 기간이 10~15일 늘어나며 연료비와 운임이 동시에 상승하게 된다. 보고서는 이를 “전 세계 물류 비용의 급격한 상승(precipitous increase)"으로 표현했다.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80% 이상이 한국·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국가로 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봉쇄가 2주를 넘길 경우 이들 국가에서는 산업 생산의 '눈에 띄는 위축(marked contraction)'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원유 수입량의 약 50%를 이 경로에 의존하고 있어 장기 봉쇄 시 제조업 생산 차질과 국내총생산(GDP) 성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14일 이후에는 '충격'에서 '전환'으로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14일을 넘길 경우 세계 경제가 단기 위기 대응 단계를 넘어 구조적 전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시점부터 시장은 봉쇄를 일시적 충격이 아닌 장기 공급 단절로 인식하게 되고,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페르시아만의 신뢰성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재고 확대와 공급망의 지리적 분산, 특정 항로 의존도 축소 전략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14일이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적 공급 손실 규모다. 하루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차단되면 2주 동안 약 2억800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지는데, 이는 전략비축유로도 단기간에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류 측면에서도 해상 보험료와 운임이 급등하고, 유럽–아시아 노선의 우회 운항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운송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한다. 산업 현장 역시 14일을 넘기면 대응 방식이 달라진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운영 재고는 통상 7~14일 수준에 불과해, 이 시점을 지나면 감산을 넘어 라인 중단이나 휴업이 현실적 선택지로 떠오른다. 특히 한국·일본·중국처럼 연속 공정 비중이 높은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의 취약성이 빠르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가스 위기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유럽은 전쟁 발발 후 2~3주 만에 러시아 가스 중심의 기존 에너지 체제를 포기하고 LNG 기반 구조로 전환했으며, 이후 공급 여건이 일부 개선됐음에도 과거 체제로 돌아가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 경험을 근거로 14일을 넘긴 봉쇄는 '충격'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며, 봉쇄 해제 이후에도 과거의 저비용·고효율 에너지·물류 시스템으로의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대기 중 CO2 증가, 혈액 성분 바꿔 신장결석 초래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의 급격한 상승이 인류의 혈액 화학 성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고,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약 50년 이내에 인체의 생리적 조절 능력이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개별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건강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온실가스 증가가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 그리고 미래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당장 현세대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호주 커틴대학교의 알렉산더 N. 라콤 교수와 호주 국립대학교의 필 N. 비어워스 박사가 공동으로 수행했고, 최근 국제학술지 '대기질, 대기, 건강(Air Quality, Atmosphere & Health)'에 게재됐다. ◇이산화탄소가 늘자, 혈액 속 중탄산염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 수집된 미국 국가 건강 및 영양 조사(NHANES) 자료를 활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인간의 혈액 성분 변화와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 환경 변화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혈액 화학 조성의 장기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 분석 결과, 미국 성인의 평균 혈중 중탄산염(HCO₃⁻) 농도는 1999~2000년 약 23.8 mEq/L에서 2019~2020년 약 25.3 mEq/L로 약 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mEq/L는 혈액 1 L당 이온이 몇 밀리 당량(mili-equivalent) 들어있느냐를 나타내는 단위다. 혈액 속 이온이 '얼마나 강하게 생리 작용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산–염기 균형과 전해질 조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지표다. 연구진은 중탄산염 농도 상승을 인체가 점점 더 산성화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완충 물질을 동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인체가 흡입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증가하고, 이는 혈액 내 이산화탄소 부하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인체는 혈액의 산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장을 중심으로 한 보상 기전을 작동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 혈중 중탄산염이다. ◇뼈에서 빠져나오는 칼슘과 인, '조용한 대가' 문제는 이러한 보상 과정이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 흡수로 인해 혈액의 산성도가 높아질수록 인체는 이를 중화하기 위해 뼈에 저장된 칼슘과 인산염을 혈액으로 끌어오게 된다. 연구 결과, 같은 기간 동안 혈중 칼슘 농도는 약 2%, 인 농도는 약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영양 섭취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기 환경 변화가 장기간 누적될 경우 인체 내부에서 뼈 대사와 무기질 균형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혈액과 장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면 1000ppm 미만의 비교적 낮은 농도에서도 집중력 저하, 의사 결정 능력 감소, 학습 효율 저하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이는 실내 환경에서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을 위험 신호로 감지하도록 설계돼 있어 농도가 높아질수록 불안 반응과 공황 반응이 촉진될 수 있다.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사회에서는 인구 전체의 불안 수준이 만성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2070년대, 인체 보상 능력의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의 증가 추세가 유지될 경우 2070년대 중반에는 평균 혈중 중탄산염 농도가 정상 상한선으로 여겨지는 30 mEq/L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람의 몸은 더 이상 산-염기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대사성 산증과 유사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 경우 수소 이온을 대신해 칼슘 이온이 과도하게 동원되는데, 이 칼슘이 탄산염 형태로 신장이나 혈관 벽에 달라붙어 신장 결석이나 혈관 석회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조직 석회화가 관찰된 동물 실험 결과들을 함께 제시하면서 인간에게도 장기적 노출 시 유사한 부담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장 결석은 지난 수십 년간 증가 추세를 보여왔고, 특히 기존 위험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구집단에서도 증가가 관찰되고 있다. 현재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신장 결석 증가의 직접 원인임을 입증한 단일 연구는 없지만, 생물학적 개연성과 역학적 추세는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누적될 경우 신장 결석이 특정 생활습관병이 아니라 환경 노출과 연관된 보편적 건강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혈액 속에서 진행 중" 이번 연구는 기후 위기가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재 세대의 혈액과 신체 내부에서 진행 중인 변화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인류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혈액 화학 성분이 변화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체 항상성(일정한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는 눈에 띄는 증상 없이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건강 부담으로 축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맑으면 햇빛으로, 비 오면 빗방울로…‘전천후 발전’ 태양광 패널

맑은 날에는 태양빛으로, 비가 오는 날에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힘으로 전기를 만든다면…. 여기에다 흐린 날에도 발전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말 그대로 전천후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 패널이 되는 셈이다. 날씨에 따라 출력이 크게 흔들렸던 기존 태양광의 약점을 보완하는 하이브리드 에너지 기술이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 산하 세비야 재료과학연구소와 세비야 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최근 태양광과 빗물을 동시에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발전 소자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에너지 소재 분야의 대표 학술지인 '나노 에너지(Nano Energy)' 저널에 게재됐다. ◇태양전지 위에 '빗방울 발전기'를 얹은 구조 이 발전 설비는 태양빛을 전기로 바꾸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PSC) 위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생기는 마찰과 정전기 현상으로 전기를 만드는 액적 기반 마찰전기 나노발전기(D-TENG)를 결합한 구조다. 하나의 '패널'이 두 가지 발전 방식을 동시에 수행하는 셈이다. 태양광 발전은 전지 내부의 흡수층이 빛을 받아 전자를 이동시키는 광전 효과를 이용한다. 반면 빗방울 발전은 빗방울이 표면에 닿고 퍼졌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전하가 분리되고, 이때 생기는 전위차를 전기로 끌어낸다. 연구팀은 두 장치가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투명 전극(FTO)을 태양전지의 전극이자 빗방울 발전기의 하부 전극으로 공유하도록 설계했다. 연구팀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CFx 박막이다. CFx 박막은 불소(F)가 풍부한 고분자 물질로, 테플론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 물을 거의 튕겨내다시피 하는 강한 소수성(hydrophobic)을 띠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박막은 플라즈마 화학 기상 증착법(PECVD)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기체 상태의 재료를 플라즈마로 활성화해 아주 얇고 균일한 막으로 표면에 입히는 기술이다. 상온에서, 액체 용매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열과 화학물질에 약한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CFx 박막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첫째, 태양전지를 수분과 산소로부터 보호하는 봉지재(encapsulation) 역할이다. 봉지재란 태양전지의 핵심 재료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감싸 보호하는 일종의 방수·방습 보호막을 뜻한다. 둘째, 이 박막은 빗방울이 닿을 때 마찰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층으로도 작동한다. 보호막이 곧 발전 장치가 되는 셈이다. ◇비 오는 날뿐 아니라, 흐린 날에도 발전은 계속된다 이 하이브리드 설비의 강점은 비 오는 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 흐린 날에도 발전은 이어진다. 그 이유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perovskite solar cell)가 약한 빛과 확산광에 특히 강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흐린 날에는 직사광선은 줄어들지만, 구름에 의해 산란된 빛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이런 조건에서 출력이 크게 떨어지는 반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상대적으로 효율 저하가 적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후계자'로 자주 언급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물질군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빛을 매우 잘 흡수하고 전하 이동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이 덕분에 얇은 두께로도 높은 발전 효율을 낼 수 있고, 제조 공정이 비교적 단순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또한 유연한 기판에도 만들 수 있어, 창문이나 건물 외벽, 이동형 전자기기 등에 적용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결정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물과 습기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수분이 스며들면 결정 구조가 빠르게 무너져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로 '내구성' 문제가 지적돼 왔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된 태양전지는 낮은 조도에서도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흐린 날이나 비가 오기 직전처럼 빛이 약한 조건에서도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즉, 맑은 날에는 태양광, 비 오는 날에는 태양광과 빗방울, 흐린 날에는 확산광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으로 에너지 공백 구간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빗방울 발전은 순간적으로 높은 전압을 만들어내지만 전류가 작고 신호가 불규칙하다. 이를 그대로는 전자기기에 쓰기 어렵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스트 컨버터를 결합했다. 부스트 컨버터는 낮고 들쭉날쭉한 전압을 끌어올려, LED(발광다이오드)나 센서 같은 전자기기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으로 바꿔주는 장치다. 이 회로를 통해 연구진은 하이브리드 소자로 LED 어레이를 성공적으로 점등시켰다. 이는 이 기술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저전력 기기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맑은 날에도 발전 효율 저하 없어 이 같은 하이브리드 구조에 대해 중요한 질문은 “이중 구조 때문에 맑은 날 태양광 효율이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것이다. 우려와 달리 실험 결과는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CFx 박막을 적용한 뒤에도 태양전지 효율은 약 16.4~17.9%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보호막을 적용하지 않은 일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약 16.9~17.1%)과 거의 차이가 없다. 조건에 따라서는 미세한 효율 향상도 관측됐다. 즉, 맑은 날 발전 성능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비와 흐린 날까지 발전 시간을 확장한 셈이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연구진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이미 낮은 제조 비용과 대(大)면적 발전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추가되는 CFx 박막은 매우 얇고 공정이 단순해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무엇보다 장점은 발전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맑은 날에만 의존하던 태양광과 달리, 흐린 날과 비 오는 날에도 일정 수준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면, 단위 면적당 연간 발전량은 분명히 증가한다. 이는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은 센서, 사물인터넷(IoT) 기기, 스마트 인프라처럼 항상 소량의 전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특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태양광의 약점이었던 '날씨 의존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태양전지의 최대 적이었던 물과 습기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차세대 분산형·지속가능 에너지 시스템의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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