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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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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리포트] 2050년 글로벌 건설 부문 탄소발자국 두 배로 ‘폭증’ 전망

전 세계 건설 부문에서 배출되는 탄소 발자국(온실가스 배출량)이 오는 205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더욱이 지금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건설 부문만으로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로 제한하기 위한 잔여 탄소 예산을 2030년 안에 모두 소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탄소예산은 파리기후협정의 목표를 지킬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말한다. 중국 베이징대,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 바우하우스 어스(Bauhaus Earth)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최근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다. 연구팀은 1995년부터 2022년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 건설 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을 정량 분석했고, 2050년까지의 추세도 예측했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건설 부문의 탄소 발자국은 두 배로 증가했으며, 지금과 같은 '현상 유지 시나리오(SSP2)'가 지속되면 2050년까지 다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시멘트·철강 등 재료 중심 구조가 핵심 원인 2022년 기준으로 건설 산업의 전 세계 탄소 배출 비중은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1995년(20%)과 비교하면 급격히 증가한 수치다. 특히 건설 부문 탄소 발자국의 절반 이상(55%)은 시멘트·벽돌·금속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재료에서 비롯됐다. 시멘트 단독으로 28%를 차지했고, 여기에 클링커·벽돌·점토를 합치면 40%에 이르렀다. 다시 금속류(철강·알루미늄·구리 등)를 추가하면 55% 수준이 된다. 이 다섯 가지 재료군의 비중은 1995년 39%에서 2022년 57%로 증가해, 건설 산업이 갈수록 '재료 의존형'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지금의 재료 구조는 과거보다 3.8배 더 탄소 집약적"이라며 “건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근본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탄소 예산 2025년부터 초과… “다른 산업 감축해도 역부족" 논문에 따르면 지금처럼 건설 부문 활동이 계속된다면 올해부터는 건설 부문이 배출하는 탄소량이 파리 기후협정의 '1.5°C 목표'를 지키기 위해 허용된 연간 한계선과 맞닿게 된다. 즉, 인류가 매년 배출해도 기온 상승을 1.5°C로 억제할 수 있는 '탄소 예산'을 건설 부문으로만 다 써버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2050년까지의 건설 부문의 누적 배출량은 440GtCO₂(기가톤, 1Gt=10억톤), 즉 4400억톤으로, 이는 1.5°C 목표(83% 확률 기준)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연구팀은 “건설 산업은 탈탄소화가 가장 어려운 부문 중 하나"라며 “시멘트·철강·벽돌 같은 전통 재료에 대한 의존이 깊고, 생산성 향상도 정체돼 있다"고 분석했다. 건설 산업은 또한 매년 모래와 자갈 40억 톤을 소비하고, 전 세계 담수 사용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환경 부담이 중첩돼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비중 감소, 신흥국 비중 급증 1995년에는 전 세계 건설 탄소 발자국의 절반이 고소득 국가에서 발생했다. 이 가운데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산업화 국가들이 포함됐다. 반면 2022년에는 구조가 급변해, 중국이 전체의 49%를 차지하며 단독 1위로 부상했고,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건설 부문 탄소 발자국은 절대량 기준으로는 안정세를 보였지만, '고소득국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선도적 감축 역할이 요구된다. 연구팀은 “경제력이 높은 국가일수록 순환건설, 모듈식 설계, 재료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탄소 감축의 핵심 해법으로 '재료 혁명(material revolution)'을 제안했다. 즉, 시멘트와 철강 같은 고탄소 재료 대신 바이오 기반 소재(목재·대마·흙·대나무 등)나 알칼리 활성 재료(alkali-activated materials)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벌목, 생물다양성 손실, 식량 생산과의 토지 경쟁 등 환경적 상충 관계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역별 맞춤 전략과 제도 혁신 필요 연구팀은 “전 세계에 일률적인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미국 등 고소득 지역은 순환건설(circular construction)과 재료 혁신 중심으로, 신흥국은 저비용·현지조달형 솔루션을 통해 기후 목표와 경제 성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건축법과 안전 기준을 바이오 기반 건축물도 인정하도록 개정하고, 건축가·엔지니어·정책입안자들이 지속 가능한 설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문화적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츠담연구소의 한스 요아힘 쉘른후버 박사는 “지금의 건설 방식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1.5°C 목표를 '지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며 “건설 부문에서의 근본적 전환 없이는 어느 산업의 감축 노력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낙동강 수돗물서 검출”… 과불화화합물(PFAS) 우려에 정부 본격 대응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본격 대응에 나섰다. 최근 낙동강을 비롯한 국내 주요 수계 수돗물에서 PFAS가 잇따라 검출되고, 일부 지역은 미국의 강화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김성환, 이하 기후부)는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수돗물 과불화화합물 대응 전략 포럼'을 열고, 2028년까지 수돗물 속 PFAS에 대한 수질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포럼에는 학계·업계·지자체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토론 좌장은 단국대 독고석 교수가 맡았다. ◇낙동강 수계 수돗물서 미국 기준치 초과 검출 PFAS는 탄화수소의 수소가 불소로 치환된 인공 화학물질로, 자연적으로 거의 분해되지 않아 '죽지 않는 좀비 화학물질'로 불린다. 조리기구의 테플론 코팅, 소방용 거품, 합성섬유, 전선 절연체 등에 널리 쓰이지만 인체에 축적되면 신장암·고환암·간 손상·호르몬 교란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과불화화합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최근 본지(https://www.ekn.kr/web/view.php?key=20251015023545829)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낙동강 수계 등 국내 수돗물에서 이 PFAS가 꾸준히 검출된다는 사실이다. 부산대 오정은 교수팀이 2021년 낙동강 유역 14개 정수장을 세 차례 조사한 결과, 시료의 77.8%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새 기준치(L당 4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를 초과했다. 강변여과수를 이용해도 농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23년 전국 140개 정수장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PFAS의 일종인 PFOA 검출율이 82.9%, PFOS 검출율이 31.4%에 이르렀으며, 일부 정수장에서는 미국 기준치(4ng/L)의 두 배를 넘는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낙동강의 PFAS 오염이 상류 공단 폐수, 매립지 침출수, 미군 부대 지하수 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외 연구 “암 위험 증가"… 국내 연구도 신경 발달 영향 확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올해 초 '노출 과학과 환경 역학(Journal of Exposure Science & Environmental Epidemi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돗물 내 PFAS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구강·인두암, 소화기계·호흡기계 암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EPA의 새 기준(4ng/L 이하)을 초과할 경우 매년 6,800건 이상의 암이 PFAS 노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PFAS의 태아 및 아동기 뇌 발달에 대한 영향도 우려된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임신부 혈액 속 PFAS 농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뇌 신경회로 형성과 인지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하지만 수돗물 정수과정에서 PFAS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이윤호 교수는 “활성탄이나 이온교환수지로는 PFAS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며 “막여과 등 고비용 기술을 현실화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현장 정수장의 기술 여건을 반영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정수장 427곳으로 모니터링 확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기후부는 이번 전문가 포럼에서 PFAS 관리 강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현재 101곳인 대규모 정수장 모니터링을 전국 427곳으로 확대하고, ▶PFAS 분석 정밀도를 5ng/L에서 1ng/L 수준으로 향상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 독성 참고값을 반영한 인체 위해성 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후부는 '상수도 과불화화합물 대응 기술개발' 연구개발사업을 2026년 예산안에 신규 편성(37억 원)하고, 2030년까지 총 384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하이브리드 멤브레인, 고효율 흡착소재, 전기화학·플라즈마 등 고도 정수처리 기술 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포럼이 단순히 수질 기준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내 먹는 물 안전체계 전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이 오염된 뒤 정수장에서 정수하려고 얘쓰기보다는 오염원을 추적해 배출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김효정 기후부 물이용정책관은 “PFAS와 같은 유해물질을 사전 예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자체·학계·산업계가 과학적 협력 거버넌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관련 정보와 기술개발 성과를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숨 쉬는 독성물질 BTEX, 한국도 사망 위험 높은 편”

대기 중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인 BTEX 노출이 사망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국제 연구를 통해 확인돼 오염을 줄이기 위한 각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BTEX는 벤젠(benzene), 톨루엔(toluene), 에틸벤젠(ethylbenzene), 자일렌(xylene) 등 네 가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혼합물을 말한다.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나 주유소 증발가스, 도시 난방연료, 산업용 용제 등이 배출원이다. 이와 관련 최근 '랜싯 지구 보건(The Lancet Planet Health)' 저널을 통해 발표된 국제 공동연구는 “대기 중 BTEX 노출이 일일 사망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처음 입증했다. 이 연구는 중국 푸단대,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등 46개국 757개 지역의 자료를 모은 다국가·다도시 연구(multi-country multi-city, MCC) 네트워크에서 수행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와 부산대 의생명융합공학부 이환희 교수도 참여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BETX를 '보이지 않는 호흡 독(毒)'이라고 지칭하면서, 대기오염 중에서도 아직 규제가 미비한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 62만 명 분석… 노출 3일 이내 사망률 '즉각 상승' 이 연구에서는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총 6238만 건의 사망 사례와 대기오염 자료, 기상 데이터를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BTEX 농도가 하루 또는 이틀 전보다 IQR(사분위 범위)만큼 높을 때 전체 사망률이 0.57% 증가했다. 특히 호흡기 질환 사망률은 0.68%, 심혈관 사망률은 0.42% 늘었다. IQR(사분위 범위)만큼 높다는 말은 BTEX 농도가 하위 25% 수준에서 상위 25%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호흡기 사망 위험이 특히 높게 나타난 이유는 BTEX가 호흡기를 통해 직접 흡입되어 염증과 폐 기능 저하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역치(threshold)가 없었다'는 점이다. BTEX 농도가 매우 낮은 수준에서도 사망률이 선형적으로 증가했고, 오히려 저농도 구간에서 곡선의 기울기가 더 가팔랐다. 농도가 높아질수록 사망률이 빠르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BTEX는 '어느 농도 이하에서는 안전하다'는 식으로 기준선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아직 BTEX에 대한 대기환경 기준을 정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도 벤젠에 대해서만 연평균 m³당 5㎍(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제한치를 두고 있고, 나머지 톨루엔 등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한국, 세계 평균보다 사망 위험 높아 이번 연구에는 한국의 도시(2001~2018년 자료)도 포함됐다. 분석 결과 한국의 BTEX 평균 농도는 1.59ppb(ppb=10억분의 1)로, 글로벌 평균(1.86ppb)보다 다소 낮거나 비슷했다. 하지만, BTEX 농도가 IQR만큼 오를 때 전체 사망률은 0.77% 증가해 증가폭이 세계 평균(0.57%)보다 높았다. 개별 성분별로 보면, 벤젠은 0.71%이 증가했고, 톨루엔은 0.77%, 자일렌(에틸벤젠 포함) 0.73% 증가해서 모두 글로벌 평균을 웃돌았다. 사망률은 단순히 오염 농도뿐 아니라 도시 밀도와 교통량, 소득 불평등, 의료 접근성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결합해 인구의 건강 취약성을 높인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은 산업화된 교통 중심 국가이면서도 주유소·차고지·도로변 등 생활 근접지역의 BTEX 관리가 미흡해, 측정치로 보고된 농도보다 실제로 더 높은 농도에 노출돼 사망률이 높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 인천, 울산, 여수 등 대도시와 산업도시에서는 국가 대기오염 측정망을 통해 BTEX 성분이 주기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EU처럼 국내에서는 벤젠에 대해서만 대기 환경기준치 (연평균 5㎍/m³)가 설정돼 있고, 나머지는 기준이 없다. 이에 따라 학계는 “미세먼지·이산화질소처럼 BTEX도 대기질 관리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한다. ◇ “BTEX 줄이기 위한 정책 즉각 시행해야" BTEX는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조차 희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기 노출만으로도 인체 내 염증 반응, 자율신경 교란, 폐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장기 노출 시에는 백혈병, 신경계 손상, 불임, 간·신장 질환 등 심각한 독성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 저자들은 BTEX 노출을 줄이기 위해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산업시설과 정유공장, 교통 부문에서 BTEX 배출 저감 설비 의무화하는 등 배출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청정연료 사용을 확대하고, BTEX 함량 제한 표준을 도입하는 등 연료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유소에서는 증기 회수 시스템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해서 연료 주입 시 증발되는 가스를 재포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도심 및 공단 지역에 BTEX 감시망을 구축하고, 고농도 시기에는 건강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조치도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BTEX는 미세먼지보다도 더 은밀하고 치명적인 생활 속 독성물질"이라며 “이제는 '숨 쉬는 독'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 감시체계와 규제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테크] 콘크리트에 검댕 뿌리니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대변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건축 자재인 콘크리트가 이제는 전기를 저장하는 '슈퍼 배터리' 역할을 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연구진이 개발한 '전자 전도성 탄소 콘크리트(ecˆ3, electron-conducting carbon concrete)' 기술은 건축물의 기둥, 벽, 슬래브 등 구조 요소 자체가 에너지 저장 장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으로, 건축과 에너지 시스템의 융합이라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으로 발표된 이 기술은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건축 환경에 적용가능한 확장성과 안정성을 입증, 청정에너지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잠재력을 보여줬다. ◇획기적인 기술: 구조적 강도와 에너지 저장을 동시에 ecˆ3는 기계적 강건함과 전기화학적 에너지 저장 능력을 결합한 다기능성 시멘트 기반 복합 재료다. 이 기술은 수퍼커패시터(supercapacitor) 원리를 이용하는데, 기존 콘크리트 혼합물에 나노-탄소검댕(nano-carbon black, nCB) 입자를 뿌려 전기가 통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도 ecˆ3가 있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수퍼커패시터의 에너지 밀도를 10배나 증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상업용 슈퍼커패시터에 사용되는 유기 전해질을 적용, 단일 셀에서 최대 2.7V의 고전압을 달성했다. 이는 기존의 수계 전해질 시스템보다 거의 7배 높은 에너지 밀도(최대 2207Wh/㎥)를 기록했다. 에너지 저장 능력의 핵심은 콘크리트 내부의 나노 탄소 네트워크 구조다. 핵심은 전도성 재료를 시멘트에 섞는 과정이다. 기본 바탕은 일반 포틀랜드 시멘트지만, 여기에 nCB를 약 13% 비율로 넣어 콘크리트 내부에 전도성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미세한 탄소 입자들이 시멘트 매트릭스 전체에 분산되면서, 전기가 통하는 길이 생긴다. 또한 연구진은 전해질 침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 주입(cast-in)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처럼 콘크리트를 굳힌 뒤 전해질에 담그는 대신, 염화칼륨(KCl) 용액을 혼합수에 미리 섞어 타설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전해질이 콘크리트 속 기공에 자연스럽게 퍼지며, 제조 시간도 단축된다. 마지막으로 모르타르(시멘트+모래)를 추가해 기계적 강도를 높였다. 모래는 전기화학적으로는 중립이지만 구조적 강성을 강화해, 실제 건축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용 슈퍼커패시터' 재료로 발전시킬 수 있게 했다. 연구팀이 이 네트워크를 3차원 나노 규모로 시각화한 결과, nCB 입자는 섬유 모양의 프랙탈 구조(fractal-like structure)를 형성했다. 시멘트 매트릭스를 관통하고, 전해질이 침투할 수 있는 기공 공간 근처에 우선적으로 위치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러한 '기공 네트워크 인접성'은 이온-전자 결합 효율을 높여 강력한 에너지 저장 능력을 보장한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건물 벽, 다리, 도로 등 모든 구조물이 전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조물에 내장된 '스마트' 기능과 안전성 문제 해결 이 기술은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미래 인프라의 중요한 요구 사항인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현재 널리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자랑하지만, 높은 비용, 안전 문제(화재 위험 등), 상대적으로 짧은 수명, 그리고 리튬·코발트·니켈과 같은 희소 자원에 대한 의존성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ecˆ3는 풍부하고 저렴한 원자재(시멘트 및 탄소 검정)를 사용한다. 수퍼커패시터로서 급속 충방전 주기와 긴 사이클 수명이라는 장점도 제공한다. 연구팀은 중성 염 용액(염화칼륨, KCl) 외에도, 해안 지역 적용을 위한 해수와 유사한 염화나트륨(NaCl)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높은 pH를 유지해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부식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수산화칼륨(KOH) 전해질도 호환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는 특정 부식 위험이 있는 환경에서 콘크리트의 내구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구팀은 실제 하중을 지탱하는 아치형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 아치 구조물은 하중을 지탱함과 동시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에 전력을 공급하도록 했다. 특이하게 이 아치에 기계적 하중(압축 하중)을 가했을 때 LED의 밝기가 변동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은 응력으로 인한 장치 내 접촉 저항 또는 전하 분포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구조적 수퍼커패시터가 잠재적으로 실시간 구조물의 건전성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고대 로마의 건축 혁신을 미래 기술로 ecˆ3 기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확장성이다. 연구팀은 전극 두께와 셀 개수에 따라 에너지 저장 용량이 선형적으로 비례하고, 예측 가능하게 확장된다는 것을 광범위한 실험 데이터로 검증했다. 연구팀은 전극 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전해질을 미리 혼합수에 넣어 주조하는 '주입형 전해질(cast-in electrolyte)'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두꺼운 모놀리식(monolithic) 전극을 제조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대규모 적용의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여기서 모노리식 전극이란 콘크리트 자체가 전극 역할을 하게 만든 구조를 말한다. 금속 집전체나 별도 코팅층이 필요 없는, 콘크리트가 구조체이자 전극인 '일체형 전극 구조'인 셈이다. ecˆ3 기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 혁신 중 하나였던 고대 로마의 건축 원리를 현대에 되살려냈다. 로마인들은 철근이나 강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돌과 콘크리트의 압축력만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다. 돔과 아치, 기둥 구조를 통해 재료가 가장 잘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하중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최소한의 재료로도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ecˆ3 기술 역시 이러한 원리를 현대 기술과 결합해, 재료의 효율성과 건축적 비전을 함께 구현하고 있다. 즉, 콘크리트의 물리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ecˆ3는 전 세계적으로 풍부한 원자재를 활용하여, 하중을 지탱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저장하는 다기능성 건축 자재 시스템을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예고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포커스] 당신 발톱에 오염물질 노출 이력이 담겨 있다

사람의 발톱이나 동물의 비늘, 거북의 등딱지 속에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케라틴(keratin) 조직이 수년, 수십 년에 걸친 환경오염 노출 이력을 기록하는 '생체 타임캡슐(bio-archive)'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조직을 초정밀 분석하면, 개인의 건강 위험을 평가하거나 지역별 오염을 장기적으로 감시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주사로 혈액을 채취하거나 피부를 절개하는 등 사람의 피부나 신체 내부를 손상시키지 않고 생체 시료를 얻을 수 있는 '비침습적' 방법이다. ◇뱀 비늘: 도시 속 중금속 오염 지도 남아프리카 더반(Durban)에서 서식하는 뱀인 블랙맘바(Black mamba)는 도시 환경의 '살아 있는 오염계측기'로 주목받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 대학 연구진이 이 뱀의 배쪽 비늘(ventral scale)을 분석한 결과, 비소(As)·카드뮴(Cd)·납(Pb)·수은(Hg) 등 중금속이 높은 농도로 검출됐다.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비늘의 주성분인 케라틴은 중금속과 결합하는 힘이 매우 강하다. 실제로 간이나 근육보다 비늘에서 중금속 농도가 더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뱀이 몸속 독성 물질을 비늘에 격리해 해독하는 일종의 생리적 메커니즘으로 추정된다. 도시 외곽의 녹지 지역에서 잡힌 뱀은 공업지대나 상업지대에서 잡힌 뱀보다 비소·납·카드뮴 농도가 확실히 낮았다. 즉, 뱀의 비늘만 분석해도 도시의 오염 패턴과 토지 이용 변화를 정밀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발톱: 라돈에 노출된 세월을 기록하다 실내 공기를 오염시키는 라돈(²²²Rn)은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문제는 오랜 기간 머물렀던 집이나 직장에서 얼마나 라돈에 노출되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캐다다 캘거리대학 연구팀은 이 한계를 발톱 속 방사성 납(²¹⁰Pb) 으로 해결했다. 이달 초 '국제 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l)' 저널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라돈이 공기 중에서 붕괴하면 ²¹⁰Pb가 생성되고, 이 물질은 몸에 흡수되어 머리카락·손톱·발톱 등 케라틴 조직에 천천히 쌓인다. 연구팀은 동위원소 질량분석법(IDMS)을 이용해 발톱 속 ²¹⁰Pb와 안정 납(Pb)의 비율을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라돈 농도가 높은 환경(평균 ㎥당 354.9 Bq(베크렐, 방사능 측정 단위))에서 26년 이상 거주한 사람의 발톱에서는 낮은 노출 그룹(평균 28.4Bq/m³, 22년 노출)에 비해 ²¹⁰Pb/Pb 비율이 약 4배(397%)로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6년 전에 라돈 저감 조치를 취한 사람의 발톱에서도 여전히 높은 수치가 검출됐다. 즉, 발톱은 수년간의 라돈 노출 이력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거북 등딱지: 핵실험의 흔적을 품다 거북의 등딱지 역시 오염의 역사를 기록한다. 등딱지는 케라틴으로 이루어진 층이 해마다 덧붙으며 '나이테' 같은 성장 고리를 만든다. 각 고리를 분석하면 그 시기의 오염 상태를 연대별로 복원할 수 있다. 미국 태평양-북서부 국립 연구소와 뉴멕시코 대학 등 연구팀은 지난 2023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넥서스(Nexus)' 저널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연구팀은 핵무기 제조와 원자로 연료 생산이 이뤄졌던 지역의 거북 표본에서우라늄-235, 우라늄-236 등 인공 방사성 물질을 검출했다. 1940~50년대 핵실험이 집중됐던 마셜제도 에네웨탁 환초의 푸른바다거북 등딱지에는1978년(실험 종료 후 20년 뒤)에 채집된 표본에서도 여전히 인공 우라늄이 남아 있었다. 미국 오크리지 보호구역의 거북 등딱지에서는 1955~1962년 사이 핵물질 유출량에 따라우라늄 동위원소 비율이 연도별로 달라지는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거북 등딱지의 성장 고리는 수십 년 전의 오염사건까지 추적할 수 있는 '환경 연대기' 역할을 한다. ◇개인 건강과 환경정책의 새 도구 발톱의 ²¹⁰Pb 분석 기술은 향후 비흡연자 폐암의 새로운 위험 평가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캐나다에서는 폐암 환자 5명 중 2명이 기존 검진 기준(흡연 이력 중심)에 해당하지 않는데, 이 기술이 라돈 노출 비흡연자까지 조기 검진 대상에 포함시키는 길을 열 수 있다. 또한 개인의 나이·유전적 감수성에 맞춘 '맞춤형 라돈 저감 기준치'를 제시하는 데도 응용될 전망이다. 뱀 비늘 분석은 도시별·지역별 중금속 오염도를 정밀하게 파악해 환경정책 수립에 도움을 준다. 거북 등딱지 분석은 과거 핵실험은 물론 체르노빌(1986), 후쿠시마(2011) 같은 원전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거북 등딱지 외에도 조개껍질, 산호, 선인장 가시, 상어의 눈 수정체, 물고기 이석(耳石), 새 깃털, 포유류 치아 등도 오염의 흔적을 남기는 잠재적 생체 지표로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 최근 자연사 박물관 등에 보관된 옛 표본을 분석해 과거의 오염 상태를 추적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리카락과 발톱, 비늘과 등딱지는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고, 그 속에는 우리가 숨쉬고 살아온 환경의 역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오염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이제 버려지던 흔적으로부터 개인의 건강을 체크하고, 지구 환경의 변화까지 읽어내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온실가스 감축 앞당기면 건강· 경제 손실 크게 줄여”

지구 온도 상승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리는 이른바 '기후 오버슈팅(Overshooting)' 경로가 현실화하면 실외 대기오염으로 인한 보건 및 경제적 피해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완화 정책을 시급히 추진하고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바스크 기후변화센터와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제연구팀은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온도 목표 초과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 추정'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 온도 목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한계선(저지선)을 말하는데, 온도 목표 초과는 이 기후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리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왕 온실가스를 줄일 것이라면 앞당겨 서둘러 줄인다면, 지구온난화도 예방하면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과 경제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실외 대기오염은 전 세계 공중 보건에 가장 큰 환경 위험 요소로 꼽힌다면서 2021년에만 세계적으로 470만 명 이상이 대기오염 탓에 조기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기오염은 인명 손실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 완화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초미세먼지(PM2.5)와 오존(O3) 같은 유해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공동편익(cobenefits,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저지선 초과 달성의 함정: 대기 오염 피해 증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보고서(AR6)에서 제시된 시나리오 중에는 '초과 달성(EoC)' 궤적, 즉 기후 저지선이 일시적으로 밀려나는 오버슈팅 궤적이 포함돼 있다. 지구 온도가 설정된 한계를 일시적으로 초과한 후 21세기 후반에 '넷네거티브 배출(net-negative emissions)'을 통해 한계 안으로 기온이 낮아져 안정화되는 시나리오다. 이 EoC 경로는 종종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연시키고, 예방보다는 사후처리인 탄소 제거(CDR) 기술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기후 관련 위험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1.5°C 목표치 초과를 피하도록 설계된 '넷제로(NZ) 경로'는 CO2 배출량을 넷제로로 조기에 감축하고, 이를 통해 온도 상승을 최대한 막는 시나리오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오버슈팅을 피하는 것이 기후 완화 노력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초기에 (특히 2030년에) 훨씬 더 큰 대기오염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NZ 경로는 EoC 경로에 비해 일관되게 더 낮은 조기사망 예측치를 제시한다. ◇엄격한 넷제로 정책, 막대한 편익으로 돌아와 오버슈팅을 피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2°C 미만으로 유지하는 엄격한 기후 정책(NZ)은 막대한 보건 및 경제적 공동 혜택을 제공한다. 우선, NZ 경로를 따를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0만7000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NZ 정책은 또한 모든 지역에서 극도로 높은 조기 사망이 나타날 가능성도 상당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혜택도 크다. 2030년까지 총 2조2690억 달러(2020년 기준, 약 3267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EoC에 비해 NZ 정책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모든 지역에서 일관되게 더 많은 공동 편익을 얻게 된다. ◇중국,인도가 가장 큰 혜택 예상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이러한 비(非)오버슈팅 기후 정책으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까지 NZ 경로를 따를 경우, 중국은 8만4000명, 인도는 7만3000명의 대기 오염 관련 조기 사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2030년에 8490억 달러에서 1조770억 달러에 이르는 가장 큰 경제적 공동 편익(중앙값 9220억 달러)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중국과 인도가 현재 전 세계 배출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대기 오염으로 인한 가장 높은 보건 부담을 겪고 있다"면서 파리 기후 협정 제6조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재정 및 기술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들 지역의 탈탄소화와 대기질 개선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리협정 제6.2조는 국가 간 감축량 이전을, 제6.4조는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을, 제6.8조는 비시장적 접근으로 거래가 아닌 정책·기술 협력·재정 지원 형태의 감축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 완화 노력을 앞당기는 비오버슈팅 시나리오가 가까운 미래(2030년)와 세기 중반(2050년)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입증했다"면서 “이러한 전략은 기후 변화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공중 보건을 개선하고 경제적 번영도 증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생분해성 플라스틱, ‘환경 구원투수’인가 ‘또 다른 재앙’인가?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대안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s, BP)이 급부상하고 있다. BP는 보통 미생물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물(H₂O), 바이오매스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제조사와 많은 소비자는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 줄 '녹색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에 따라 음식물 포장재나 일회용품, 농업용 멀칭 필름 등 환경 유출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BP가 과연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과학계의 비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표된 관련 연구를 종합하면, BP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플라스틱(MNPs) 문제, 독성물질 배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관리의 어려움 등 여러 면에서 심각한 도전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분해(biodegradable)'라는 함정 BP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제품에 '생분해성'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든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오해는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의 과도한 소비를 장려하고, '생분해성'이라고 표시된 제품을 무단으로 투기하는 행위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생분해가 일어나려면 환경 조건이 맞아야 한다. 생분해는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세균·곰팡이 등)의 효소 작용을 통해 고분자가 분해되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생분해 속도는 산소 함량, 주변 온도, 산성도(pH), 수분 함량, 미생물의 종류와 풍부도, 고분자 특성(결정성·분자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대표적인 BP인 폴리젖산(polylactic acid, PLA)의 분해는 산업 퇴비화 시설의 조건(높은 온도, 높은 습도, 충분한 산소)을 전제로 한다. 환경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온도에서는 토양에 버려질 경우 분해가 되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반면,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olyhydroxyalkanoates, PHA)와 전분 블렌드(starch blends)는 산업 퇴비화 조건에서는 물론 토양이나 해양 환경 등 다양한 환경에서 분해 가능성을 보인다. 그렇지만 PHA나 전분 블렌드조차도 해양 환경에서는 분해가 느리거나 제한적일 수 있다. 실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해양 환경에서의 분해율(중앙값)은 전분 블렌드가 43%, PHA가 9.0%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PHA는 토양 환경에서 분해 잠재력(중앙값 38%)을 보였으나, 해양 환경에서는 낮은 온도와 낮은 용존산소 농도로 인해 분해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파항대학의 타오픽 모스후드 교수 연구팀은 2022년 '녹색 및 지속가능 화학 분야 최신 연구(Current Research in Green and Sustainable Chemistr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부분의 BP는 특정 조건에서만 분해되며, 자연 상태에서는 수십 년간 잔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에 섞여 들어간다면 BP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재활용 시스템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물질이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면, 재활용된 물질의 특성이 바뀌어 제품 불량을 초래할 수 있다. PLA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 PET) 재활용 공정에 섞여 들어가더라도 재활용된 PET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PLA 오염 수준이 0.1% 미만이어야 한다. 폴리프로필렌(PP) 재활용에서는 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BP는 재활용될 수 있지만, 기존 플라스틱과는 별도의 흐름으로 분리돼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는 BP를 기존 플라스틱과 분리해 수거할 수 있는 전용 인프라가 미흡하다. 이로 인해 BP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매립 또는 소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P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재활용 및 퇴비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품 회수 및 재활용에 대한 생산자 책임제도(EPR)를 도입하는 정책적 책임이 필수적이다. ◇분해돼도 문제: 미세 플라스틱 및 독성 물질 배출 BP가 기존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덜 유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성물이 생태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BP는 특정 환경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빠르게 쪼개져서 미세 플라스틱(MNPs)과 나노 플라스틱(NPs)을 생성한다. 중국 칭화대와 시안교통대 연구팀은 2020년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자외선이 내리쬐는 담수 및 해수 환경에서 생분해성인 폴리부틸렌 아디페이트 테레프탈레이트(polybutylene adipate terephthalate, PBAT)의 미세·나노플라스틱 생성률이 비(非)생분해성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보다 2.6배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이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노화(aging) 과정에서 표면 균열과 구멍이 생겨 더 빨리 붕괴하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은 기존 미세·나노 플라스틱과 유사하거나 더 큰 독성을 나타내고, 생태계에 축적될 가능성도 있다. PLA 및 PBS(polybutylene succinate)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조류 일종인 클로렐라(Chlorella vulgaris)의 성장을 억제했는데, 성장 억제 효과가 기존 폴리에틸렌(PE) 및 폴리아미드(PA, 나일론)와 비슷했다(PLA는 48%, PE 는 47%). PLA 미세플라스틱은 에쁜꼬마선충(C. elegans)의 번식 능력을 감소시키고 DNA 및 생식선 발달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노화된 BP는 표면에 산소(O)를 함유한 작용기가 늘어나게 돼 기존 플라스틱보다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생분해성 미세·나노 플라스틱이 유해물질을 생물체로 운반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PLA 미세 플라스틱은 구리·납 이온을 흡착해 메기 조직에 축적됐고, 성장 억제와 면역 억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BP의 또 다른 위협은 단량체(monomers)와 올리고머(oligomers, 2~40개의 단량체가 붙어 있는 형태)다. BP는 분해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분해 중간 생성물을 환경에 고농도로 방출할 수 있다. 올리고머와 단량체는 분자량이 작아 세포막을 더 쉽게 통과해 조직과 장기로 이동할 수 있다. PCL가 분해된 올리고머는 담수 미생물과 해양 조류·포유류 세포에 대해 PCL 입자 자체보다 더 큰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BP도 기존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기능성 향상을 위해 안정제·가소제·색소 등첨가제를 사용한다. 첨가제가 환경에 용출되면 유해성을 유발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과 폐기물 처리의 딜레마 BP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CF)은 원료 조달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로 파악할 수 있다. 바이오매스에서 유래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예: PLA)은 원료 조달 단계에서 CO₂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이는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PE, PP)이 원료 단계에서 탄소 흡수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생산 단계는 일반적으로 모든 플라스틱 제품의 전 과정(life cycle) 중 탄소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과정이다. PLA와 같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모노머 생산과 중합 공정에 천연가스·전기 등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PBAT는 부분적으로 석유 기반 원료를 사용하고 생산 공정이 복잡해 탄소 배출량이 높은 편이다. 어쨌든 생산단계까지 PLA 제품의 총 탄소 배출량은 PP 플라스틱 제품보다 61.43%~73.75% 낮아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폐기 단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온실효과가 큰 메탄(CH₄) 배출 가능성이다. 매립지(landfill) 땅속에서 산소가 없는 혐기성 조건에서 분해될 때 메탄이 발생하는데, 메탄은 CO₂보다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20배가 넘는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매립될 경우, 기존 플라스틱보다 더 심각한 기후 변화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업용 멀칭 필름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주요 응용 분야 중 하나다. LCA 기반 연구에 따르면,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멀칭 필름보다 탄소 발자국이 낮다. 이는 생분해 멀칭 필름의 생산과정에서 화석연료 소비가 적고, 폐기 때 수거할 필요가 없어 인력 투입 비용과 관련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용 필름 사용이 늘면 그 자체가 토양 환경을 변화시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킨다. 필름 멀칭 처리는 토양의 온도와 수분을 높여 미생물 활동을 촉진하고, 이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N₂O) 배출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생분해성 멀칭 필름은 기존 플라스틱 필름보다 N₂O 배출량을 낮출 수 있지만, 필름을 남용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비싼 가격도 장벽으로 작용 BP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높은 생산 비용이다. 현재 BP의 가격은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의 3~10배에 이르고 이로 인해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원료 혁신, 생산 공정 최적화 및 생산 규모 확대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BP는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과 환경적 한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의 투명성,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론의 확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연구가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standard test method)을 따르지 않거나, 동일한 환경(예: 퇴비화)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표준을 사용하고 있어 결과의 비교 가능성이 떨어진다. 또, 대부분의 BP의 분해도 테스트는 실험실 조건에서 최적화된 조건으로 진행되고, 실제 환경 조건(field conditions)에서 이뤄지는 테스트는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이 순수 고분자 상태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아, 첨가제까지 포함된 실제 최종 소비자 제품의 분해도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분해 연구는 반드시 생태독성 연구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BP도 마찬가지다.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 플라스틱, 올리고머와 단량체 등 분해 중간 생성물의 독성을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근본 해결책으로 기대하긴 어려워 BP가 기존 플라스틱의 대안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PLA와 PHA와 같은 제품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에너지를 회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BP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기존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BP의 도입이 마치 환경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처럼 오인되고, 무단 투기 행위를 장려하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생분해성 제품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부적절하게 폐기된다면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명확한 라벨링 시스템을 개발하는 한편, 소비자가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고, 사용한 플라스틱을 올바르게 폐기하도록 행동 변화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결국, BP는 문제 해결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BP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소재 개발과 함께 폐기물 분류 기술에 대한 투자, BP와 음식물쓰레기 등 유기 폐기물 처리 시설의 확충,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환경적 책임 의식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알래스카 덮친 태풍 ‘할롱’의 경고: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

태평양 괌 북쪽에서 발생한 제22호 태풍 '하롱(Halong)'이 멀리 알래스카까지 진출해 큰 피해를 남겼다. 태풍이, 그것도 10월 중순에 알래스카까지 진출해 피해를 낸 사례가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기후 변화의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1~12일 (현지시간) 알래스카 유콘-쿠스코크윔 삼각주 지역에 최대 풍속이 시속 161㎞(초속 45m)에 이르는 태풍이 밀어닥쳤다. 특히 해안 마을인 킵눅과 크위길링옥이 직격탄을 맞았다. 초기 피해 조사에 따르면, 킵눅에서는 구조물 90%가 파괴되거나 거주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크위길링옥에서도 주택 3분의 1 이상이 파괴됐다. 이 재난으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고, 1500~2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군용기를 통해 앵커리지와 벳헬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방 재난 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피해가 워낙 막심하여 많은 이재민이 최소 18개월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던리비 주지사는 특히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피해 지역의 일부 공동체는 혹독한 북극 기후 속에서 겨울철 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대성 저기압 변질 후에도 세력 유지: 이례적 현상 알래스카 도달 시점에 '할롱'은 이미 '전(前)태풍(ex-typhoon)', 즉 열대성 특성을 잃은 온대저기압이었지만, 중심 부근 풍속은 여전히 허리케인 2등급 수준(시속 약 160km, 초속 45m)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롱'은 원래 북서태평양(경도 100°E~180°E) 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태풍이었다. 한국 기상청에 따르면, 하롱은 지난 5일 오전 3시 괌 북쪽 해상에서 태풍으로 발달했다. 발생 당시에는 초속 18m였는데, 서진 후 북진을 계속했다. '하롱'은 지난 9일 일본 도쿄 남쪽 해상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당시에는 최대풍속이 초속 45m에 이를 정도로 매우 강한 태풍이었다. 기상청은 10일 오후 3시에 태풍 '할롱'이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됐다고 밝혔다. 이후 '하롱'은 북태평양의 따뜻한 해수면 위를 지나며 에너지를 흡수한 뒤, 제트기류를 타고 북동쪽으로 치달았다. 이동 경로는 일본 동쪽 → 알류샨 열도 → 베링해 → 알래스카 서부 해안이었다. 기상학적으로 태풍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구조적 변화(열대성 온난핵을 잃고 전선을 동반)를 의미할 뿐, 반드시 세력이 약해졌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하롱의 잔해는 알래스카에 허리케인 2등급 수준의 강풍을 동반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온대 저기압은 북위 30°부터 60° 사이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이름에 온대가 붙는다. 처음부터 중위도에서 형성됐다면 중위도 저기압, 열대 저기압이 중위도로 진입하여 생겨났다면 잔존 저기압이라고 부른다. 알래스카대학 기상학자 릭 토먼은 “이러한 현상이 이례적이지만,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022년 알래스카를 강타했던 태풍 '메르복(Merbok)' 역시 온대저기압으로 전환된 상태에서 강력한 강풍을 유지한 바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 따뜻한 바다가 폭풍을 키웠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풍은 해수면 온도 상승 등 기후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북극권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이라는 것이다. 이번 폭풍이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며 북쪽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북태평양의 비정상적인 해수면 온도 상승이다. 하롱이 알류샨 열도에 도달하기 전 통과한 북태평양 대부분 해역의 수온은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으며, 이 따뜻한 바닷물이 폭풍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실제로 태풍이 지나간 후 알류샨 열도 동쪽의 우날래스카에서는 10월 사상 최고 기온인 20℃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폭풍은 기후변화의 또 다른 결과인 해빙 감소와 해수면 상승, 연안 침식 등과 결합하면서 피해를 증폭시킨다고 설명한다. 특히 피해 지역인 서부 알래스카의 지반은 매우 평탄한데,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침하하고 있어, 폭풍 해일에 더욱 취약한 상태였다. 한편, 태풍이 세력을 유지한 채 북위 60도 알래스카까지 북상했다는 것은 한반도에도 '경고'가 될 수 있다. 최근 해수온도가 크게 상승한 상태여서 슈퍼태풍이 북위 35도인 한반도 남해안까지 세력을 잃지 않고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는 다행스럽게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가을까지 강하게 유지되면서 한반도로 접근한 태풍은 하나도 없었다. ◇예보의 한계와 관측 데이터 부족 문제 제기 이번 재난을 겪으며 기상 예보 및 대비 대응 시스템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기상 예보 모델은 폭풍이 베링해 진입하는 경로는 비교적 잘 예측했으나, 알래스카에 접근한 이후에는 예측이 빗나갔다. 태풍 이동이 빨라지고 매우 이례적인 경로로 바뀐 탓이었다. '하롱'의 최종 경로와 강도는 알래스카 해역을 가로지르기 불과 36시간 전까지도 명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대피할 시간이 부족했다. 특히, 상공 기상관측용 풍선 발사 횟수가 줄어드는 등 알래스카 서부와 원격지에서의 기상 관측 데이터 부족 문제가 제기됐다. 예를 들어, 베링해의 세인트 폴 섬에서는 8월 말 이후, 코체부에서는 2월 이후 상공 관측이 없었고, 폭풍이 접근하던 시기 노움에서는 이틀 동안 기상 관측 풍선이 없었다. 이러한 데이터 부족은 수치 모델 예측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특히 열대성에서 온대성으로 전환되는 복잡한 과정에서 예측 오차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던리비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초기 2500만 달러의 연방 지원금을 할당했으나, 2022년 메르복 피해액(2,800만 달러)을 고려할 때, 이번 복구 비용은 이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주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건물 스스로 실내공기 CO₂ 흡수·저장하는 기술 나왔다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길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와 듀크대, 아르곤국립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건물 그 자체가 탄소를 흡수하는 구조물로 바뀔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다. 미국 시카고대학과 듀크대학, 아르곤국립연구소, 중국 난양공대 등의 연구팀은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탄소 나노섬유 공기 필터를 이용한 분산형 직접 공기 포집'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탄소 나노섬유(Carbon Nanofiber, CNF) 위에 폴리에틸렌이민(PEI)을 코팅한 새로운 공기 필터를 개발, 건물 환기 시스템에 장착함으로써 실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직접 포집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이 바로 탄소 싱크로 변신" 연구를 이끈 포춘 슈 시카고대 교수는 “모든 건물의 환기 시스템이 바로 직접 공기 포집(Direct Air Capture, DAC) 장치가 될 수 있다"면서 “이는 탄소중립을 향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앙집중식 대형 발전소가 태양광 덕분에 옥상 패널로 분산된 것처럼, 탄소 포집도 이제는 분산형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필터는 표면적이 넓고 다공성인 CNF 구조 위에 PEI를 입혀 만든 일종의 '탄소 스펀지'다. 대기 중 농도(약 400ppm)에서도 CO₂를 빠르게 흡수하며, 습한 조건에서는 더 잘 흡착이 되는 구조다. 연구팀은 전 세계 건물 환기 시스템에 이 기술이 적용될 경우 연간 5억9600만톤의 CO₂를 제거, 즉 2020년 기준 전 세계 연간 배출량의 약 1.8%를 상쇄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24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6억9158만톤과 맞먹는 양이기도 하다. ◇태양열과 전기열로 '스스로 정화' 기존 DAC 시스템은 CO₂ 흡착제의 재생에 막대한 열 에너지가 필요했으나, 이번 CNF 기반 필터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재생이 가능한 '저탄소' 기술이기도 하다. CNF는 태양에너지 흡수율이 94.4%에 달해, 단순히 햇빛만으로도 재생 온도인 약 80℃에 도달할 수 있다. CNF는 열 전도성이 높아 열 손실 없이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빠르게 가열할 수 있다. 덕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전 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에서도 순 탄소 제거 효율이 92.1%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태양열 재생 방식은 CO₂ 1kg 제거당 0.073kg의 탄소만 배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성까지 확보 - “CO₂ 톤당 209달러면 가능" 기술경제성 분석(Techno-Economic Analysis, TEA) 결과를 보면, 이 필터로 공기 중 CO₂ 1톤을 포집·저장하는 데 드는 총비용은 209~668달러 수준이다. 이는 현재의 대형 DAC 설비(톤당 100~1000달러)에 비해 경쟁력이 있으며, 특히 태양열 재생 방식만 고려할 경우 포집 비용은 톤당 약 362달러로 낮아진다. 연구진은 “필터 생산 비용이 총비용의 64%를 차지하는데, 필터의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 포집 비용의 추가 하락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절약과 건강까지 이 시스템은 단순한 탄소 포집을 넘어 건물 에너지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기존 환기 시스템은 실내 공기질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를 지속적으로 들여와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냉난방 에너지가 낭비된다. DAC 필터가 실내 CO₂를 실시간으로 제거하면 외기 유입량을 줄일 수 있어 난방·환기·공조(HVAC) 에너지 소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HVAC 부문은 전 세계 에너지 사용의 30%, 온실가스 배출의 10%를 차지한다 또한 실내 CO₂ 농도가 1000ppm을 넘으면 인지 능력 저하, 두통, 피로 등의 문제가 보고된 바 있다. 이 필터는 쾌적한 실내공기를 유지함으로써 건강과 생산성을 함께 높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은 중앙집중식 DAC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건물 인프라를 활용해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형 기후대응 기술의 전환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이 더 이상 거대한 플랜트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건물·학교·사무실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춘 슈 교수는 “도시의 모든 환기구가 작은 DAC 장치가 된다면, 인류는 '건물이 숨 쉬는 도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탄소중립 사회에 한 발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Wu, R. et al. Science Advances, 11(42), eadv6846 (2025). DOI: 10.1126/sciadv.adv6846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리포트] 파리협정 10년…경제성장 탓에 탄소배출량은 더 늘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정 채택 이후 10년이 됐다. 전 세계는 탄소 배출의 효율 측면에서는 분명한 진전을 이뤘지만, 그 성과는 급격한 경제 성장에 의해 거의 상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워싱턴대학교 애드리언 래프터리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이 최근 네이처 자매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연구팀은 전 세계 157개 국가를 대상으로 2015~2024년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탄소집약도는 연평균 3.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집약도는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말한다. 연평균 3.1% 감소는 파리 기후협정 이전(1960~2015년)보다 세 배 가까운 속도다. 하지만 2015~2024년 세계 GDP가 41% 급증하면서 총 CO₂ 배출량은 오히려 5.6% 증가했다. ◇탄소 효율은 높아졌지만, '성장의 역설'에 막혀 이번 연구는 탄소 배출량을 '인구 × 1인당 GDP × 탄소집약도'의 곱으로 분석한 확률통계모델(IPAT 방정식 기반 베이지안 접근법)을 활용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각국이 기술혁신과 정책으로 탄소 효율을 개선했음에도, 전 세계 경제 성장 속도가 이를 압도했다. 연구를 이끈 래프터리 교수는 “파리협정 이후 탄소 효율이 빠르게 개선된 것은 분명한 성과지만, 세계 경제의 고속 성장으로 그 효과가 완전히 상쇄됐다"며 “이는 기후변화가 왜 '초복합 난제(super wicked problem)'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초복합난제라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시급하며 이해관계가 얽혀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다. 탄소집약도 개선 덕분에 3°C 이상 온난화가 일어날 확률은 2015년 26%에서 2024년 9%로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C 이하로 억제할 확률은 17%로, 10년 전과 거의 변하지 않았다.2100년 예상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은 2.6°C에서 2.4°C로 소폭 하락했을 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온난화의 최악의 가능성은 줄었지만, 목표 달성에는 여전히 빨간불이 켜져 있다"면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가 누적되고 있는 탓에 현재의 개선 속도는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2°C 목표' 달성 위해 국가감축목표 상향 필요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5년마다 국가별 기여방안(NDC)을 갱신해야 한다. 논문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2015년에 제출한 첫 번째 NDC(NDC-1)를 달성하더라도 2°C 이하로 유지될 확률은 34%, 두 번째 NDC(NDC-2, 2021년에 제출한 상향 목표)를 모두 달성하면 53%로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기후안정을 '매우 가능성 있게(80%)' 달성하려면 2100년까지 누적 배출량을 845Gt CO₂(8450억톤)로 제한해야 하고, 매년 4.2%씩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지금보다 두 배 빠른 감축 속도 없이는 2°C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5~2024년 사이 중국은 탄소집약도를 37% 줄여 목표(36%)를 초과 달성했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총 배출량이 오히려 18% 증가했다. 미국은 탄소집약도 32% 개선, 총 배출량 10% 감소로 협정 효과를 일부 입증했으나, 여전히 독일보다 탄소 효율이 50% 낮다. 독일은 배출량 28% 감소, 탄소집약도 37% 감소로 NDC-1을 초과 달성하며 가장 낮은 탄소집약도를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취임 직후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는데, 실제 탈퇴는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2100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은 2.1°C에서 2.2°C로, 2°C 이하로 억제할 확률은 34%에서 27%로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의 감축 중단이 글로벌 기후 안정 목표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임을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NDC-1 달성 확률은 약 40~50%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는 선진국 중 중간권에 해당하며,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절반 정도지만 추가 정책 강화 없이는 진전이 어렵다고 분석됐다. 한국의 탄소집약도는 2015년 대비 2024년 약 28%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정점인 2018년에 비해서는 11.4% 감소했고, 2015년보다는 4.8% 줄이는 데 그친 것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집계했다. ◇10년의 교훈 — '성장의 방식'을 바꿔야 이번 '파리협정 10년 성적표'는 “기술의 진전이 반드시 배출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운다. GDP 중심의 성장 모델이 유지되는 한, 탄소 효율 개선은 배출 총량 증가를 막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래프터리 교수는 “탄소 효율이 아무리 개선돼도 무한한 경제 성장은 결국 그 효과를 삼켜버린다"며 “이제는 감축 목표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성장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성장을 기후정책과 조화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 없이는, 2°C의 문턱은 여전히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곧 전 세계는 파리협정의 '두 번째 10년'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기후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위험은 줄었지만, 협정의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회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열심히 노력한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감소 성과를 거둬야 할 때라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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