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탄소중립은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라, 동시에 달성해야 할 과제입니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전력산업 구조와 전력망이 준비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기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 수급·시장 체계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올해 학회 슬로건을 'AI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대한전기학회'로 정한 배경에 대해 “AI도, 탄소중립도 결국 해답은 전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AI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능력이고, 탄소중립 역시 전기화와 저탄소 전원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2030년이 승부…비수도권 2단계 전략 필요" 박 회장은 AI 산업의 시간표가 촉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AI 산업의 1차 승부는 2030년 이전에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그 시기까지 국내 AI 인프라, 특히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AX(인공지능 전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도권 입지 한계도 분명히 짚었다. “수도권은 이미 계통 여력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며 “개통 영향 평가로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당분간은 비수도권으로 AI 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남처럼 원자력과 LNG가 풍부한 지역, 호남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을 활용해 2030년까지는 비수도권 중심 전략을 취하고, 이후 송전망이 보강되면 수도권도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2차 전기본, AI 수요부터 다시 써야" 박 회장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AI 전력 수요 재산정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1차 전기본은 2023년에 착수되어 AI 수요를 예측했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산 속도는 당시 가정을 완전히 뛰어넘고 있다"며 “2038년 기준 6.2GW 수준이었던 기존 전망은 현재 추세를 보면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산업계에서 거론되는 'AI 전력 수요 20GW' 전망에 대해 그는 “실현 여부를 떠나, 수요 상향 가능성을 전제로 전력 시스템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산업의 전력 수요는 줄고 있지만, AI·반도체·전기화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며 “12차 전기본은 이 구조 변화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생·원전·LNG·ESS…네 축 모두 필요" 에너지 믹스에 대해서는 명확한 '병행론'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두 축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며 “여기에 LNG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유연성 축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35년 이전에는 신규 원전의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고, 이후에는 SMR을 포함한 원전 옵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LNG는 완전한 탄소중립 전원은 아니지만, 과도기적 유연 전원으로 적절한 보상을 전제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S와 양수발전 확대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전력시장 구조, 이대로는 안 된다" 박 회장은 현행 전력시장 구조에 대해 “에너지 전환과 AI 시대를 감당하기에 구조적으로 너무 낙후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입찰제 도입 ▲유연성 보상 메커니즘 강화 ▲실시간 전력시장 조기 도입 ▲지역별 가격 체계 검토를 도매시장 개편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특히 현재 전력시장 운영 기관과 당국이 너무 국내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등 간헐성 자원의 비중이 높은 해외의 전력시장 진화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특히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에는 지금의 예비력·보조서비스 체계로는 계통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출력 제어와 유연 운전을 제대로 보상하는 시장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매 요금과 관련해서는 “전기요금 결정의 독립성과 거버넌스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전망, 민간 역할 확대 검토할 시점" 송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는 민간 참여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회장은 “해외에서는 민간이 HVDC 등 기간 송전선로를 건설하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모델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민간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HVDC, 인버터, 해상풍력 핵심 장비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단기 비용만 보고 해외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통한 북미 수출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정답 제시보다 토론의 장 만드는 학회 역할 강화" 대한전기학회 회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박 회장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찬반이 공존하는 토론의 장을 만드는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기공학을 넘어 경제·법·행정·AI 등 인접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 논의의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전력·에너지 문제는 이제 특정 학문이나 이해관계자만의 영역이 아니다"며 “전문가 집단의 집단지성이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학회가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내 산업을 키우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요금 체계와 장기적 관점의 정책 설계가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