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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원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장박원 기자 입니다.
  • 편집국장
  • jangba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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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피’에 가려진 진실

연초부터 '국장'(국내 주식시장)이 불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불장'에도 자산 증식에서 소외된 이들이 더 많다. 서민들은 높은 물가에 생활비도 빠듯하다. 이들에게 주식 투자를 하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주식에 투자할 돈이 어디 있냐!" 이재명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코리아 프리미엄(한국 증시 고평가)'으로 바꿔 오천피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새해 들어 코스피 지수는 파죽지세로 오르고 있다. 6일에는 4500을 돌파하며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승세라면 '오천피' 달성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국장'에 대한 기대감은 작년 말부터 형성됐다. 본지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9~30일 실시한 현안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절반 가까이(48.7%)가 올해 안에 코스피 지수의 5000 돌파 가능성에 대해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증권사들도 올해 코스피 상단을 5000선 위로 열어놓고 있다. 주요 상장사 실적 전망이 괜찮은 데다 정부의 증시 부양책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국내 주식시장으로 투자금이 들어오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주가 상승이 궁극적으로 빈부 격차를 심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경제학자인 모리구치 지아키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증시 부양책으로 상위 0.01%의 소득 점유율이 10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1.19%에서 2023년 2.28%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만~2만대였던 닛케이225 평균 주가(닛케이지수)도 5만대로 급등했다. 주식을 포함한 자산 소득을 빼면 2023년 상위 0.01%의 소득 점유율은 0.82%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는 주가 상승이 빈부 격차를 확대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증시는 장밋빛이지만 실물 경제는 살얼음판이다. 작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했으나 그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고 있다. 수출 증가와 '불장' 모두 반도체가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극소소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혹한기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올해 실적 전망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관세율 상승, 고환율 등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오른 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 외식은 언감생심이고 마트나 시장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물가 오른만큼 임금이 인상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실직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고용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늘어나는 건 고령층을 위한 임시 일자리 뿐이다. 사회에 첫발을 떼야 하는 20대와 우리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40대를 위한 좋은 일자리는 사실상 줄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현재 경기가 좋지 않고 전망도 불투명하다 보니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 장기화로 소상공인 폐업이 늘고 있는 것 역시 고용 한파의 원인이다. 작년 한 해 문을 닫은 소상공인은 100만 명이 넘는다. 그 결과 고용 시장엔 찬바람만 불고 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쉬는 청년은 계속 늘고 있다. 구직 활동을 포기한 20대와 30대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각각 41만 명과 33만 명에 달했다. 한창 일해야 할 청년 74만 명이 취업을 포기했다는 건 우리 경제 전체로 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코스피 지수 5000 달성 가능성에 환호할 때가 아니다. '오천피'에 가려진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불장'에 집착하다가는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지금은 증시 부양책에 앞서 주식 투자는커녕 하루하루 살기 바쁜 서민들과 가난한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고, 11월엔 미국 중간 선거가 있다. 정치적으로 작년 못지 않은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역시 경제이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인 만큼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며 뜨겁게 타오르기를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수 침체의 장기화와 높아진 관세 장벽에 고환율까지 악재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에 올라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AI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UP) 등 핵심 AI 기술은 주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에 AI를 성공적으로 접목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24년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5년 뒤인 2030년 세계 AI 시장은 지금보다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 배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거품론도 투자액 대비 수익 실현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나온 것이지, AI 시장의 성장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AI 시장에서 어느 한 분야에서만 주도권을 잡는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반도체(HBM)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컴퓨팅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 AI를 성장동력으로 삼기 힘들다는 뜻이다. AI 경제에서는 '에너지 집약'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게 분명하다. 챗GPT와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모델은 기존 포털 검색할 때와 비교해 최대 3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2년 약 460TWh(테라와트시)에서 올해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약 30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에는 1500TWh로 5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AI 기술과 반도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이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이 '약한 고리'라고 조언했다. 옳은 지적이다. 한국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수입한다. 글로벌 물류가 마비되면 곧바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 등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계통의 불균형도 너무 심하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전국 전력의 40%를 소비하면서도 전력 자급률은 60%대에 불과하다. 반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해안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장기간 지연되기 일쑤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와 주민 반발 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석 연료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자원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싼값의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 센터에 공급할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구 폐쇄됐던 쓰리마일 섬 원전을 재가동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시대에는 에너지가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값싼 에너지 확보와 전력망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가격 경쟁력과 공급의 안정성, 탄소 감축 등 상충하는 목표를 모두 충족하는 에너지 믹스의 '황금 분할선'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신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을 포함해 모든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비상하는 AI의 날개를 달고 우리 경제가 붉은 말처럼 다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아직도 요원한 윤석열 청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이 오는 14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상식적 차원에서 너무나도 명백한 위헌, 위법적인 범죄다. 그런데 내란 재판은 1년 넘게 어이지고 있다. 이러다가 윤석열이 다시 풀려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책임이 막중한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반성과 사과는커녕 모든 잘못이 민주당에 있다고 강변한다. '친윤'이 말려도 막무가내다. 국민의힘 당원 중에는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은 대다수 국민에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남긴 폐단은 한둘이 아니다. 부자 감세로 세수 부족 사태를 유발했고, 연구개발(R&D) 예산을 깎는 바람에 인재가 이탈하며 과학기술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국가 공동체를 위협하는 극우 세력의 발호다. 예전엔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극우주의자들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주류 행세를 하고 있다. 무자격자가 권력을 잡아 국가 위기를 초래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은 주나라(서주) 말기 여왕, 유왕과 많이 닮았다. 여왕은 '입틀막'의 고사를 남겼고 유왕은 애첩을 위해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여왕은 비밀경찰을 대거 풀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마구 잡아들여 죽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길에서도 입을 열지 않고 눈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도로이목(道路以目)'이라는 고사가 나온 연유다. 지난해 2월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에서 윤석열이 축사하는 도중에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했다. 경호원은 그의 입을 손으로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 '입틀막' 장면은 윤석열의 불통과 언론 탄압의 상징이 됐다. 김건희 방탄을 위한 '권력 사유화'는 더 심각한 문제다. 이는 서주를 망하게 한 유왕을 연상케 한다. 유왕은 후궁인 포사를 위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웃지 않는 포사를 웃기려고 봉화를 올렸다. 당시 봉화는 국가 존립의 최후 보루였다. 이민족이 침입했을 때 지방에 있는 제후국 군대를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귀중한 공적 자산을 연인의 미소를 보려고 남용한 것이다. 윤석열은 구치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변호인에게 김건희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특검은 불법 계엄의 동기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뇌물 수수 등으로 처벌 위기에 처한 김건희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비상계엄은 유왕이 포사를 웃게 하려고 봉화를 올린 것과 다름없다. 유왕은 또 후궁인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적장자를 제거하려 했다. 이는 윤석열이 정권 초기에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을 몰아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당대표를 바꾼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여왕과 유왕의 말로는 비참했다. 여왕의 폭정에 백성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주나라판 '빛의 혁명'이었다. 여왕은 수도에서 탈출해 '체'라는 지역으로 도주했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유왕은 전쟁 중에 비명횡사했다. 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의 군대는 오지 않았다. 포사를 위해 봉화를 올린 장난이 부메랑이 됐다. 주나라판 '양치기 소년'이 된 셈이다. 윤석열의 끝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도자의 몰락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왕이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 주나라는 14년 동안 군주가 없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다. 중국 역사에서 이 시기를 '공화'라고 한다. 이때 주나라의 정통성과 국력은 급격히 추락했다. 그 이후 여왕의 아들 선왕이 쇠락한 국가를 다시 살리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가 죽고 권력을 잡은 이가 바로 유왕이다. 우리 국민은 목숨을 걸고 불법 계엄을 막았다. 하지만 내란의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두고두고 국가를 쇠락시키는 독소가 될 게 분명하다. 윤석열 청산은 사법적 심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 사회,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친 개혁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놓아야 가능하다. 정파적 이익을 앞세워 극단적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낡은 규제와 제도에 포획된 경제 체제를 극복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고환율의 묵시록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향해 질주 중이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7개월 만에 1470원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환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은 물론 달러가 완전히 고갈되며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에도 연평균 환율은 1400원을 넘지 않았다. 경제 위기가 아닌데도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건 분명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앞으로 고환율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 경제는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센 와중에도 양호한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이 선방하며 올해도 경상수지 흑자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증시도 변동성이 크기는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주가 부양책에 힘입어 많이 올랐다. 시중 유동성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이 돈줄을 조이던 때와 비교하면 좋아졌다. 원화 가치가 이렇게까지 떨어질 상황은 아닌 것이다. 물론 수급 측면에서 고환율 흐름을 설명할 수는 있다. 기업과 연기금, 개인이 모두 해외 투자를 급속히 늘리며 달러 수요가 폭증한 건 분명하다. 특히 엔비디아 같은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10년 순대외자산은 100배가량 증가했다. 달러 수요가 늘어나니 환율이 높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고환율로 우리 경제가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재정 적자와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국가 신용등급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환율 문제는 수급 측면에서만 볼 사안이 아니다. 가파른 환율 상승을 방치하면 실물 경제에 멍이 든다. 고환율이 고물가와 고금리,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통화 가치는 해당 국가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척도 중 하나다. 선진국 돈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화폐보다 비싸다. 그 비율이 환율이다. 원화 가격의 달러 대비 하락 폭은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큰 편이다. 이는 달러 수요가 늘어난 현상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졌고 앞으로 더 약해질 것이라는 시장 컨센서스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저출생 고령화로 노동력이 줄고 자본 투입과 혁신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갈수록 뚜렷해지는 성장률 둔화는 우리 경제가 앓고 있는 중병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보다도 경제 성장률이 낮아졌다.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성장하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기업 뿐 아니라 개인도 투자 수익을 올릴 기회를 찾기 어렵다.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자 수익률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이런 한국 경제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와 국민은 빈곤해질 것이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눈 떠보니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고환율이 던지는 경고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자기 치솟은 환율은 이미 실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야 하기에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높은 환율은 수입품 가격을 밀어 올려 국내 물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고환율 고물가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금융당국은 가파른 환율 상승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겠지만 뒷북 대응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눈덩이처럼 커지는 기업 부담을 덜어주고 투자 자금의 국외 유출도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각 분야의 구조 개편을 통해 효율적인 사회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을 보호하는 시대착오적인 제도와 규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이것부터 제거해야 한다. 규제 개혁 외에도 노동 개혁과 대기업 쏠림 완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도록 교육 분야의 대개혁도 시급하다.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인 혁신의 화수분은 교육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환율은 이런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묵시록일 수 있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대기업 역대급 투자 이행되려면

“국내에 1000조 원 이상 투자" 대기업 총수들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후속 대책을 논의하며 우리 경제에 통 큰 선물을 선사했다. 천문학적 대미 투자로 국내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씻어내는 발표였다. 기업인들은 한미 관세 협상을 잘 마무리한 정부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의 막무가내 압박 속에서도 나름 선방했고, 그 결과 기업 부담을 줄여줬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외환시장 충격을 차단하기 위해 연간 200억 달러로 현금 투자를 제한했으나 대미 투자 총액인 3500억 달러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만약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결렬됐다면 우리 기업들이 받을 타격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불확실성이 제거됐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책 회의를 생중계한 동영상을 보면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약속한 투자를 이행할지는 두고 볼 문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같은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본지를 포함해 거의 모든 매체는 '재계, 1000조 원 통 큰 투자'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그러나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은 기시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정권 초기 적게는 수조 원, 많게는 수백조 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3년 6개월 전에도 똑같은 기사를 봤다. 주연은 그대로이고 조연만 바뀌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 주연은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성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다. 투자 명분이 달라지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때는 '민간 주도 성장'에 부응한다는 점이 부각됐고, 지금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우려되는 국내 투자 위축을 막겠다는 점이 강조됐다.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에 대한 약속을 지켰는지는 이재명 정부 후반이 돼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투자는 총수 의지만으로는 실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국내도 해외 못지않은 투자 리스크가 상존한다. 무엇보다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낡은 규제와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과거 정부는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그렇게 하려는 의지는 빈약했고 그럴 역량은 더 부족했다. 실용과 능력을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기업이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을 보면 회의적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기업 하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투자 여건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투자는 실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낡은 규제를 걷어내고 구조 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마음껏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투자 약속은 빈말이 되고 말 게 뻔하다. 다시 정권이 바뀌고 대기업 총수들이 또 통 큰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도돌이표'는 무한반복될 것이다. 물론 정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들도 정부 눈치를 보며 투자 계획을 급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전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짝 바꿔 재탕한 부분도 눈에 띈다. 전반적인 투자 내용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일정과 금액은 외부인이 알기 어렵다. 영업 비밀이 포함돼 불가피한 점도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확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이제 '덤앤더머'를 연상하게 만드는 정부와 기업의 '투자 발표 쇼'는 끝나야 한다. 성장률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근간인 대기업의 국내 투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기업은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부도 수시로 투자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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