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화면에 표시된 코스피.
글로벌 AI 산업의 성장 기대에 균열이 생기자 국내 증시도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장 초반 10% 안팎으로 밀리면서 코스피는 5000선을 내줬고, 매매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미국 기술주에서 시작된 투매가 국내 반도체주와 증시 전반으로 번지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는 모습이다.
◇ 삼전닉스 10% 안팎 폭락...저평가가 버팀목 될까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오전 10시 16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393.645포인트(7.31%) 떨어진 4990.16을 나타내고 있다. 장중 50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월 6일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지수는 개장과 함께 5263.26으로 출발했으나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낙폭을 빠르게 키웠다.
급격한 하락에 오전 9시 3분께 유가증권시장에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피가 전일 종가보다 8% 이상 떨어진 상태가 1분간 지속된 데 따른 조치로, 이후 20분 동안 거래가 중단됐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이번이 11번째다.
▲최근 1년간 코스피 지수 추이.
반도체주가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서킷브레이커 발동 직후 9.98% 하락한 18만1400원까지 밀리며 20만원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1.71% 떨어진 111만6000원으로 내려앉았다. 두 종목 모두 개장 직후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가 발동될 정도로 매도 주문이 집중됐다. 김도준 지안자산운용 대표는 “결국 패닉셀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오늘 같은 장에서는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가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주의 급락은 간밤 미국 시장에서 확인된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 폭락과 맞물려 있다. 뉴욕증시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를 둘러싼 회의론이 커진 데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 이후 빅테크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우려까지 겹치며 기술주 매물이 쏟아졌다.
샌디스크가 22.26% 떨어졌고 마이크론은 17.46% 하락했다. SK하이닉스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역시 13.40% 급락했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5.52% 하락해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12.25% 추락하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이후 최대 하락률을 나타냈다.
미국 정치권의 권력 구도 변화가 AI 산업의 투자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심리를 압박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주도권을 확보한 가운데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가능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기술기업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집중해온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지나 히노호사가 승리한 점이 시장의 경계심을 키웠다.
▲지나 히노호사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
히노호사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적으로 유예하고 관련 기업에 제공되는 일부 세제 혜택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구글과 메타, 오라클, 오픈AI 등이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를 진행해온 지역에서 규제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자 AI 인프라 산업의 성장 속도와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주가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매도 압력이 추가로 확대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한국투자증권 하장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가총액 대비 20거래일 누적 순매도 규모는 지난 6월 고점의 절반 아래로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수급을 좌우하는 AI 투자 우려도 정점을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 네오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주요 변수로 제시했다. 하 연구원은 “하반기 코스피에서 외국인 수급은 미 네오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과 거울상처럼 움직이는 중"이라며 “코어위브 CDS가 지난달 22일 고점 이후 후퇴했으며, 고점 경신이 없다면 (AI 투자 관련) 우려가 정점은 지났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대형주의 밸류에이션 매력도 주목할 요인으로 꼽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마이크론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은 마이크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하 연구원은 외국인 자금이 돌아올 경우 반도체주가 주요 유입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관련 종목의 비중 확대를 권고했다. 이익의 지속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줄이려면 주주환원 정책도 뒷받침돼야 하며, 환원 속도가 빠른 SK하이닉스가 주가 회복에서 상대적으로 앞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트럼프 “증시 폭락은 민주당 탓"…빅테크는 AI 투자 실탄 확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민주당의 선거 승리가 AI 산업 규제 강화 우려로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증시 급락의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그는 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선거 결과에 따라 주식시장은 역사상 최악의 날 중 하나를 겪었다"며 “정말 지켜보기에 슬픈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인들의 퇴직연금 계좌인 401k의 평가액까지 하락했다면서 이번 사태가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이 곧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함께 내놨다. 중간선거 직후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이란 전쟁 조기 종식 기대감으로 급등했던 뉴욕증시가 하루 만에 급락한 배경에는 AI 산업에 대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도 나서고 있다. 애플은 이날 2년물부터 10년물까지 총 75억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 메타도 최근 500억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AI 인프라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성장성 검증 요구와 금융시장의 경계심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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