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주가 누르기 방지법’…금융당국 “취지는 공감, 설계는 신중해야”[자본법안 와치]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가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자회사가 수백 개에 이르는 대기업집단은 순자산가치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상속세에 해당하는 지분을 시장에 팔지 않고 신탁에 담아 배당으로 세금을 나눠 내는 방안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VIP자산운용은 상·증세법 개정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최근 대통령이 직접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발언한 만큼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기 위해 풀어야 할 쟁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시장 가격이 있는데도 세법으로 다르게 평가하는 게 맞는지, 세법 개정만으로 저평가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지배구조가 복잡한 대기업은 순자산가치를 어떻게 계산할지, 기준선을 살짝 피해 가는 편법은 어떻게 막을지가 앞으로도 계속 다뤄질 쟁점으로 꼽혔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장주식 가치를 평가 기준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평균 시가로 매긴다. 회사 자산보다 시가가 낮아도 그대로 인정된다. 그러다 보니 상속·증여를 앞둔 대주주는 그 시기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게 세금을 줄이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배당을 줄이거나 자사주를 외부에 넘기는 식으로 주가 상승을 억제해도, 시세조종과 달리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소영 의원이 지난해 5월 상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핵심은 상장주식에도 비상장주식처럼 순자산가치의 80%를 하한선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순자산가치 대비 시가 비율(PBR)이 0.8배 미만인 상장기업은 전체의 약 40%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 하한선 아래로는 시가가 아무리 낮아도 순자산가치의 80% 수준으로 평가해 세금을 매긴다. 다만 법안은 발의 후 1년 넘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최근 정부의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관련 검토 내용이 담기고 대통령도 신속 입법을 주문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발제자로 나선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투자 현장 사례를 소개했다. 코스피 지수는 1년 전에 견줘 3200에서 6500으로 2배 뛰었지만, 개별 종목으로 보면 오히려 저평가된 기업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수 상승 자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 착시를 주지만, 개별 종목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싼 회사들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련 5개 종목을 빼고 계산하면 지수는 1년 전보다 낮다고도 지적했다. 김 대표는 배당 없이 현금만 쌓아두거나, 승계를 앞두고 갑자기 실적이 나빠지거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상장사 밖으로 빼내는 사례를 들며 낮은 주가가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를 설명했다. 부동산을 다량 보유한 회사, 가족 회사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는 회사, 대주주 사망 전후로 실적이 급락했다가 상속이 끝나자 회복된 회사 등 기업명을 밝히지 않은 네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 개별적으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결국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구조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항상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되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대주주는 노를 저었는데 소액주주는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은 셈, 한 배를 탄 동상이몽"이라고 비유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적 배경을 짚었다. 비상장주식은 이미 2017년부터 순자산가치 80% 미만으로는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한선이 적용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같은 원칙을 상장주식에도 적용하자는 것으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낮은 주가를 처벌하고 그 주가를 억지로 어딘가에 맞추자는 게 아니라, 상속·증여 이벤트가 발생할 때 주가를 떨어뜨리는 게 유리하다는 인센티브 자체를 없애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가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본시장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고도 짚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처럼, 합병 비율을 정할 때도 단순 시가가 아닌 공정가치를 반영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상·증세법이라는 게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자본시장의 문제 해결을 조정하기 위해서 세법을 고치는 것이 맞느냐"며 세법 개정만으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심혜섭 변호사는 '시가 평가' 문제를 지적했다. 지주회사 구조를 가진 대기업일수록 자회사의 저평가가 지주회사로 그대로 전이되는 '이중 할인' 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회사 가치가 지주회사 장부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고, 그 자회사 밑의 손자회사 가치 역시 자회사 장부에 반영되지 않아서다. 그는 “호화 빌딩을 보유한 자산가나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중산층은 모두 엄격한 시가 평가를 받는데, 왜 상장주식만 이런 구조적 왜곡 요인을 남겨둔 채 평가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삼성물산을 예로 들었다. 거래소가 집계하는 명목상 PBR은 1.13배로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는 자사주를 자산에서 빼지 않은 수치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생명 지분의 실제 가치를 반영해 다시 계산하면 실질 PBR은 0.54배까지 낮아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SK도 비슷한 구조로, SK스퀘어가 자체 공시한 주당 순자산가치는 약 230만원이지만 실제 주가는 100만원대 초반이라고 설명했다. 법 적용 대상을 지주회사 한 곳에만 한정하지 않고 그 아래 자회사에도 같은 기준을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운영하는 이상목 대표는 “저평가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울분은 매일 들어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다"며,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각도의 우려를 제기했다. 현재 논의되는 납부 방식(현금, 주식 매각, 물납)은 모두 대주주 지분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는 '오버행' 문제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주주 지분이 30%인데 세금으로 절반 넘게 내야 한다면, 나머지 지분이 대거 매물로 나와 오히려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 대표는 대안으로 세금에 해당하는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신탁에 담아, 대주주는 의결권과 경영권을 유지하고 신탁에서 나오는 배당으로 세금을 나눠 내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또 PBR 0.8배라는 단일 기준선이 정해지면 규제를 피하려 0.81배에 맞추는 식의 편법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은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 방안에는 신중했다. 조진우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장은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도입 이후 자사주 매입·소각이 지난해 각각 20조원, 21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소개하면서도, “PBR이라는 건 업종별 편차가 매우 크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일본식 자기자본이익률(ROE) 8% 기준도 경기를 많이 타는 한국 산업 구조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최대주주의 사익 목적 주가 누르기라는 의도와 목적을 구별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해외처럼 장기 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이 없어, 투자자들이 기업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는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 보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주가 누르기가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이라고 하면, PBR이 낮은 기업만 그럴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적용 대상을 정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 해도 자회사·손자회사가 수백 개에 이르는 대기업은 계산 자체가 방대하고 복잡하며, 정부가 시가를 부인하는 모양새가 되면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시장 신뢰도에 부정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다뤄야 할 쟁점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정부 세법 개정안이 나오면 이소영 의원 발의안을 포함한 국회에 올라온 여러 안과 병합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 과정에 적용 대상의 범위, 대기업 순자산가치 산정 방법, 오버행을 막기 위한 납부 방식 다변화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상장주식 평가 문제뿐 아니라 중복 상장, 인수합병(M&A) 시 공정가액 산정 등 자본시장법 전반의 개정 논의와도 맞물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특별위원회·이훈기·이소영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좌장을 맡고 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와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가 발제를 맡았다. 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이상목 주식회사 컨두잇 대표, 조진우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장,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과장, 김만수 재정경제부 재산세제과 과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정부·여당, 디지털자산기본법 연내 통과 목표…업계 “서둘러 시장 생태계 만들어야”[자본법안 와치]

정부와 여당이 한목소리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연내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8월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선출된 뒤 당정 협의를 거쳐 9월에 당정 통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지니어스법과 클래리티법으로 디지털 달러 체계를 완성하고 있다며 서둘러 시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6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연내 디지털자산 입법을 완료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법안에는 △디지털자산업 정의·규율 △공정·효율적 시장 조성 △이용자 보호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아울러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 관련 제도화도 추진한다. 더불어민주당도 8월 지도부 개편 이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연내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방미 국회의원단 초청 2026 하반기 입법 전망 세미나'에 참석해 “민주당 전당대회가 8월 17일 열리고 이후 정책위의장 인선도 이뤄질 예정"이라며 “새 지도부와 정책위의장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TF를 다시 구성하고 정부와 협의를 거쳐 디지털자산기본법의 9월 발의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디지털자산TF를 재정비한 뒤 당정 협의를 통해 정부안과 민주당안을 조율해 법안 발의 절차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박 의원은 “9월 중 어떤 형식으로든 법안이 발의되기를 바란다"며 “올해 하반기 법안 통과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처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논의가 미뤄졌다. 올해 초 주요 쟁점을 조율하다가 3월 이후부터는 지방선거 일정이 겹치면서 정부안 공개와 국회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난해 6월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최초 발의한 이후 10여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전날 방미 국회의원단이 참석한 2026년 하반기 입법 전망 세미나에서 '미국의 디지털자산 패권 전략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세미나는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와 디지털자산 전문 연구기관 MRI(Monetary Research & Initiatives) 주최로 열렸다. 민병덕 의원은 세미나 축사에서 미국의 전략을 “겉으로는 디지털자산 규제 정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본질은 금융질서를 디지털 영역까지 확장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도 지니어스법을 "내년 1월 18일 시행“이 사실상 확정된 법으로, 클래리티법을 "산업 구조의 전면적인 재편성“이라고 짚었다. 미국은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지니어스법을 지난해 7월 공포했다. 발행자를 예금취급기관 자회사·통화감독청 승인 발행자·주 적격 발행자로 나누고, 준비자산 100% 이상 고유동성 자산 보유, 즉시 상환권, 발행자의 이자 지급 금지를 의무화했다. 외국 발행자도 자국 규제가 미국 기준에 상응한다고 인정받으면 3년 유예를 두고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늦어도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반면 시장구조를 다루는 클래리티법은 지난해 7월 하원을 294대 134로 통과했지만, 상원에서는 윤리 조항, 비수탁 개발자 보호(제604조), 스테이블코인 보상(이자) 허용 범위라는 세 쟁점에 막혀 필리버스터 종결에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8월 휴회 전이 사실상 마지막 처리 시한이다. 실패하면 오는 11월 중간선거로 입법 동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방미 국회의원단이 만난 백악관 크립토 카운슬 등 워싱턴 현지 인사들은 두 법의 목적이 시장 정비가 아니라 달러 지배력 유지, 스테이블코인의 결제·담보 인프라 편입, 미국 국채 수요 창출이라고 밝히고 있다. 두 법을 합치면 결국 달러 유동성과 규제 인정 심사, 실무 관행이 결합된 '글로벌 표준 체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변호사는 두 법의 함의를 '온쇼어링'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한 변호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에게는 이익을, 나가는 자에게는 불이익을 줌으로써 온쇼어링을 유도하는 게 클래리티법안의 함의"라며 “규제 명확성이 가져오는 결과는 규제 체계를 준수하면 편익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비용을 더 지불하게 해서 온쇼어링을 더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지니어스법이 시행되면 1월부터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에서 만들어진 지니어스 컴플라이언트 스테이블코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크게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국내 망분리 규제로 은행권이 퍼블릭 블록체인 접속 경험을 쌓지 못하고 있어, 내년 1월 무역대금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유입될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취급해서 받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아이유와 BTS를 닮은" 구조로 설명했다. “아이유 팬과 BTS 팬은 충돌하지 않는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국내에서는 국민에게 친숙하게 쓰이고, 해외에서는 K-콘텐츠·K-커머스·K-관광·K-제조와 함께 뻗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며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낸다면 대한민국은 디지털 금융시장을 여는 선도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금융위, ‘경영권 프리미엄 주주 공유’ 27년만 재추진…핵심쟁점은?[자본법안 와치]

금융위원회는 하반기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우선 입법과제로 선정했다. 1997년 처음 도입됐다가 이듬해 외환위기 속에 폐지된 지 27년 만이다. 어떤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와 합동회의를 열고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우선순위 정책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날 열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M&A 제도 개선 방향'에서도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주식 양수도 방식의 M&A에서 발생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 주주가 같이 누릴 수 있도록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는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 인수자가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사들이면 나머지 모든 주주에게도 같은 가격에 주식을 살 기회를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규정이다. 도입 취지는 주주 평등 대우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지배주주나 일반주주주 모두 공평하게 팔 기회를 주고, 같은 가격에 팔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주주 평등 원칙을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없는 상황에선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차지하는 사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국내 M&A 과정에 지배주주가 장외에서 주식을 양도하면서 프리미엄을 독점하는 거래 방식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IMM PE가 한샘 경영권을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7명이 받은 주당 매각가는 22만2550원으로 거래 당일 종가 11만6500원 대비 91%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다. 창업주 일가는 지분 27.7%를 총 1조4500억원에 매각했다. 나머지 72%를 보유한 일반주주는 이 가격에 팔 기회가 없었다. 인수 이듬해 한샘 주가는 3만원대로 폭락했고, 이후에도 4만원 중반대에 머물렀다. 증권업계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2016년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 지분 22.56%를 인수할 때 지배주주는 주당 2만3182원에 매각했지만, 소액주주에게는 주당 6737원의 주식매수청구권만 부여됐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도 지배주주에게는 주당 1만6518원을 지급했지만, 소액주주에게는 그 절반도 못 미치는 7999원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줬다. 같은 회사 주식 한 주가 거래 구조에 따라 최대 3.4배 다른 가격에 팔리는 셈이다. 이런 구조가 굳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지배주주 지분만 사면 충분하다. 소수 지분만으로 회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에서 인수자는 지배주주에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사고 나머지 소액주주에게는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1972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2026년 초 기준, OECD 38개국 중 29개국이 채택했다. 제도 설계는 크게 영국형과 일본형으로 나뉜다. 영국은 의결권 30% 이상 취득 시 잔여 전 주주에게 12개월 내 최고 지급가로 전량 매수 청약을 의무화한다. 소수주주에게 회사를 떠날 권리, 즉 '퇴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연합(EU) 대부분 국가가 이 모델을 따른다. 일본은 3분의 1 초과 지분 취득 자체를 공개매수로 강제하되 전량 매수 의무는 없다. 지배권 거래의 투명성 확보가 목적이어서 소수주주의 실질적인 퇴출권 보장 면에서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시장 거래나 제3자 배정으로 3분의 1을 초과해도 공개매수 의무가 없어 규제 회피가 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제도 자체가 없다. 대신 이사회의 신의성실 의무와 주(州) 회사법 판례가 소수주주를 간접적으로 보호한다. 1998년 한국이 의무공개매수를 폐지하면서 미국 모델을 따른 셈이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은 회사법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아직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2022년 12월 당시 발표한 도입 방안은 발동 기준 25%, 매수 범위 50%+1주를 골자로 한다. 학계에서는 이 방안의 설계 수준에 이견을 제시한다. 김우찬 교수는 전날 세미나 발표에서 제도 도입 시 '50%+1주'가 아닌 '잔여 주식 전량'을 공개매수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정 주주가 상장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수준에 도달할 경우 매수를 원하는 잔여 주주들의 주식 전량에 대해 공개매수 제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며 “프리미엄을 낮출 수 있는 유인을 높이기 위해서도 전량 인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가 검토 중인 '50%+1주' 방안에 대해 지배주주로부터 지분 40%를 인수한 뒤 10%만 공개매수하는 경우 일반주주 중 16.7%만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무공개매수 가격 산정 기간을 과거 12개월로 길게 설정하고, 발행주식 50%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개매수를 무효화하는 인수 수락 조건을 둘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발동 기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순석 교수는 논문에서 “국내 상장회사 최대주주의 평균 지분율이 41.2%로 높고, EU 11개국이 30%를 채택하고 있어 발동 기준을 25%에서 30%로 상향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위 현행안과 다른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M&A 시장 위축 우려를 두고는 '실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김우찬 교수는 “의무공개매수가 도입되면 일반주주에게도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해 인수 비용이 늘고 M&A 건수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실제로는 지배권 프리미엄이 낮아지면서 주당 인수 비용이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한 차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했다가 스스로 폐지했다. 1997년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도입했지만, 1998년 1년 만에 사라졌다. 당시 IMF 외환위기 속에 기업 구조조정 촉진을 이유로 폐지 요구가 있었다. 이후 2020년대 들어 도입 논의는 이어졌지만, 입법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12월 발동 기준 25%, 매수 범위 50%+1주를 골자로 한 도입방안을 발표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하반기 핵심 입법 과제로 못 박았다. 상장사 합병가액 산정 기준을 공정가액 방식으로 변경하는 법안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고,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은 아직 정무위에 계류 중이다. 사모펀드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 입장에서 의무공개매수제도로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선 상장폐지까지 용이하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M&A가 더 활성화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중복상장 7월 시행 초읽기…‘3%룰’ 유력, MoM은 난관 [자본법안와치]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원칙 금지·예외 허용 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 장치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 적용 일반결의'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계와 기관투자자는 소수주주 다수결(MoM·Majority of Minority) 도입을 주장하지만 법무부가 부정적 견해를 밝힌 가이드라인 때문에 현실적으로 채택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이르면 이번 주 중복상장 관련 규정 개정 예고를 발표한다.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 특례를 마련해 7월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상장 규정 개정 예고와 의견 수렴, 금융위원회 승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제도 골격은 이미 잡혔다.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만 허용하는 방향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사가 종속회사나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를 상장하려면 영업·경영 독립성과 투자자 보호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영업과 경영 독립성은 재무제표와 공시 등을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투자자 보호는 정량화가 쉽지 않은 만큼 거래소 심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는 모회사 주주를 충분히 설득하고, 일반주주 의견을 의사결정에 반영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심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중복상장 제도개선 3차 세미나에서 “일반주주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에 방점을 두고 모든 사안을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거론되는 주주 동의 방식은 특별결의, 3%룰 적용 일반결의, MoM 등 세 가지다. 특별결의는 주주총회 출석 주식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합병·분할, 정관 변경 등 회사의 근간을 바꾸는 안건에 적용되는 가장 강력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다만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국내 기업 구조에서는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총회 출석률을 50%로 가정할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33.4%를 넘으면 사실상 다른 주주의 반대와 무관하게 특별결의를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중 감사위원 선임에 적용하고 있는 '3%룰을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각각 또는 합산해 3%로 제한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자회사 상장을 위한 주총 결의에 준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 의결권을 각각 3%로 제한할 것인지, 합산해 3%로 묶을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개별 적용 시에는 지배주주 일가가 여러 명에 걸쳐 지분을 보유한 경우 의결권 합이 합산 적용보다 커져 규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3%룰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김규식 변호사는 지난 4일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세미나에서 “지배주주는 주식 쪼개기나 차명 거래를 통해 얼마든지 이 룰을 우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3%룰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도 지분을 5%, 10% 보유해도 의결권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어 오히려 제약을 받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학계와 기관투자자는 MoM이 일반주주 보호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MoM은 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중복상장, 상장폐지 등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거래에서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제외한 일반주주 표를 별도로 집계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상위 200대 기업 중 93%에 지배주주가 있는 구조에서는 주총에서 MoM을 통해 주주 권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성윤 달톤인베스트먼트 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가족기업 비중은 73%로 미국(6%)·일본(4%)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며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한 한국에서는 독립적인 특별위원회만으로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MoM이 한 주 한 표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두고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거래로 다른 주주보다 큰 이익을 가져가는 특정 거래에만 적용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적 근거 부족은 MoM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법무부는 지난 2월 발표한 '기업 조직개편 시 이사의 행위규범 가이드라인'에서 MoM이 주주평등 원칙과 충돌할 수 있고, 의결권 포기로 의사정족수 충족이 어려울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일반적인 공정성 강화 조치로 권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 가이드라인이 실제 거래에서 MoM을 좌절시킨 사례도 있다. 이마트가 지배주주로 있는 신세계푸드를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완전 자회사화하는 과정에서 신세계푸드 특별위원회는 MoM 표결을 검토했으나 “현행 상법상 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할 근거가 없고, 법무부 가이드라인도 실현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이유로 도입을 포기했다. 대신 매수청구권 가격을 4만8800원에서 6만3348원으로 약 30% 상향하는 방식으로 봉합했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를 세 차례 반려한 끝에 나온 결과다. 벤처투자업계는 중견·중소기업 계열사에 대한 중복상장 심사 제외나 완화를 요구해왔다. 대기업은 IPO 외에 다른 자금 조달 수단이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은 기술 M&A나 IPO가 성장과 혁신을 위한 핵심 경로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거래소는 기업 규모에 따라 주주 보호 기준을 달리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상무는 3차 세미나에서 “주주 보호에 대한 부분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며 “예외적으로 벤처·중견 기업이기 때문에 트랙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관점은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 실효성과 법적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MoM보다는 3%룰을 활용한 방식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거래소는 의견 수렴 결과를 반영해 최종 개정안을 마련한 뒤 이르면 7월부터 새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어떤 안이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IPO를 준비하는 기업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세 차례 중복상장 토론에도 입장 차 ‘여전’…주주 동의 방식·예외 범위서 이견[자본법안 와치]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제도개선을 위한 세 차례 공개 세미나를 열었지만, 핵심 쟁점을 둘러싼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모회사 일반주주 동의를 의무화할 건지, 어떻게 받을지를 두고 기관 투자자는 일반주주 다수결로 동의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기업과 벤처캐피탈(VC)·사모펀드(PE) 업계는 투자와 기업공개(IPO)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며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한국거래소는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중복상장 제도개선 3차 세미나'를 열고 중복상장 과정에서의 일반주주 보호 방안을 논의했다. 제도의 큰 방향인 '중복상장 원칙 금지·예외 허용'과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설계로 들어가자 이견이 드러났다. 거래소는 “상장 자체를 막기보다 주주의 실질적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7월 제도 시행을 목표로 금융당국과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왕수봉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 보호 의무를 부과하고 특별위원회를 통해 의사결정 공정성을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모회사 이사회의 의무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주주 영향 평가 ▲현금배당·자기주식 소각·자회사 주식 배분 등 보호 방안 마련 ▲간담회·설문·임시주총 등 주주 소통 ▲찬반 결의와 자회사 통지 ▲공시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일반주주 동의 방식으로는 특별결의보다 '소수주주 다수결(MoM·Majority of Minority)'이나 '3%룰'이 일반주주 보호 취지에 더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MoM은 최대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 다수의 동의를 받는 방식이다. 3%룰은 감사위원을 선출·해임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왕 교수는 “특별결의는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에서는 가결이 너무 쉬워 기존과 차이가 없다"며 “일반주주 보호라는 취지에는 MoM이나 3%룰이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개정된 상법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강조되면서 모회사 이사회가 일반주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근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자회사 상장은 자회사 이사회가 결정해 왔기 때문에 모회사 일반주주 의견은 사실상 반영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기관 투자자 측은 소수주주 다수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성윤 달튼인베스트먼트 한국 대표는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핵심 사안"이라며 “기존 중복상장 구조를 해소하고 신규 중복상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도입됐지만 자율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완벽하게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결국 일반주주 다수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 이후에도 일부 기업에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외부 평가기관 산정 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사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패밀리마트–이토추 상사 사례를 언급하며 특별위원회만으로는 독립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는 미국식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나 상사 전문법원이 없어 사후 소송만으로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중복상장을 예외 없이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의장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중복상장은 예외 없이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맞다"며 “상장이 필요하다면 인적분할로 처리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코스피 시가총액이 9.4배 늘었으나 지수는 5.6배에 그친 점을 근거로 자사주 소각 부재와 중복상장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IPO 이후 남은 자회사 지분을 모회사 주주에게 배분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벤처캐피탈(VC)·사모펀드(PE)·증권사는 중복상장 원칙 금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중소·벤처기업은 별도 예외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이 이사회나 특별위원회를 갖추기 어렵고, 투자 위축이 우량기업의 IPO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박병건 대신프라이빗에쿼티 대표는 순수 지주회사에 대한 완화된 접근과 기존 투자 건에 대한 소급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체 사업이 없는 순수 지주회사가 새 사업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는 사업부문을 분리하는 물적분할과 성격이 다르며, 제도 도입 전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의 회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태식 NH투자증권 본부장은 국내 기업의 구조적 특성을 감안한 '열린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왕 본부장은 “해외와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보다 국내 기업의 특성을 감안해 열린 관점에서 심사하고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후 정부가 지주회사 제도를 과세이연 특례 등으로 장려한 결과 대기업 상당수가 투자 여력이 제한된 순수 지주회사 형태가 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주주명부 폐쇄 없이 진행되는 소액주주 간담회가 실제로 의결권 있는 주주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실무상 한계도 지적했다. 왕 본부장은 “간담회를 진행하면 참석하는 소액주주가 굉장히 소수이고 참석한 주주가 실제로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인지도 불분명하다"며 “목소리 큰 몇몇 주주가 의견을 주도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은 “우선 이번 논의가 실체법적 규제인지, 절차적 의무 부과인지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MoM·3%룰·특별결의 방식이 현행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위반 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조달 비용은 연 1.4% 수준인 반면 차입·회사채 조달 비용은 3.29% 수준이라며 상장 제한이 기업 투자와 배당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부회장은 법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도 MoM 방식을 권고하지 않았고, 일본 역시 인위적인 규제 없이 중복상장이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상무는 이번 제도가 상장 금지가 아닌 주주의 실질적 보호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밝혔다. 임 상무는 “기조 자체의 변화를 꾀한다기보다는, 그동안 디스카운트됐던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주의 실질적 보호라는 부분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제도 개선이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간담회를 거친 사안이라며 “의견들이 조금씩 좁혀가는 느낌은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 확정까지 금융당국과 추가 협의를 거쳐 7월 시행 목표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중복상장, 주주 동의 어떻게 받을까?…‘MoM’ 놓고 기관과 PE·증권사 격돌[자본법안 와치]

'자회사를 주식시장에 새로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들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하나.' '받는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 세미나'의 주제다. 금융당국이 자회사 신규 상장에 대해 '원칙 금지, 예외 허용' 방침을 정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주주 보호 절차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두고 자산운용사·증권사·사모펀드(PE)·법조계·학계 전문가 10여 명이 토론을 벌였다. 발제자인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주주 동의 필요성에 대해 이사회 자율(1안)·거래소 판단에 따른 조건부 의무화(2안)·원칙적 전면 의무화(3안) 세 가지 안을, 동의 방법으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지배주주 의결권 3% 제한·지배주주 배제 소수주주 다수결(MoM·Majority of Minority) 세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토론에서 기관투자자 측은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해 전면 의무화와 MoM 도입을 강하게 요구한 반면, 사모펀드·증권사 등은 과도한 규제가 투자 생태계를 위축시킨다며 이사회 중심의 자율 판단과 특별결의를 지지하며 첨예하게 맞섰다. 법조계는 현행 상법 체계와의 정합성을 이유로 강한 규제에 제동을 걸었다. 발제를 맡은 남길남 박사는 논의를 두 축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축은 주주 동의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절차를 거칠 것인가다. 남 박사는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1안은 이사회가 주주 영향 평가, 보호 방안 마련, 소통, 결과 공시 등 충분한 절차를 거쳤다면 이사회 결정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기업 자율성을 보장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국내 상장사 이사회가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되어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주주대표 소송이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단점으로 꼽힌다. 2안은 거래소가 개별 사안을 보고 모회사 주주 권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할 때만 주주 동의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규모가 작거나 독립성이 높은 자회사 상장에는 적용하지 않아 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다만 거래소의 자의적 판단 우려, 기준의 불명확성이 약점이다. 3안은 자회사의 자산·매출·이익이 모두 모회사의 10% 미만인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전부 주주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홍콩은 자산·매출·이익 중 하나라도 25% 이상이면 주주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참조해 구성했다고 남 박사는 설명했다. 일관성과 보호 효과가 명확하지만, 중소기업도 수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치러야 하고 기업공개(IPO) 시장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두 번째 축은 주주 동의를 받기로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받을 것인가다. 남 박사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특별결의는 출석 주식의 3분의 2 이상, 전체 발행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는 방식이다. 합병·분할·정관 변경 등 기업의 중대 사안에 50년 이상 활용돼 온 검증된 제도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내 상장사 지배주주의 평균 지분율이 4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허들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3% 룰은 지배주주가 아무리 많은 지분을 보유해도 의결권을 3%만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미 감사위원 선임 시 적용 중인 제도를 활용한다. 지배주주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의결 정족수 미달 문제와 차명·우호 지분을 활용한 우회 가능성이 단점으로 제기됐다. 소수주주 다수결(MoM)은 지배주주를 의결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일반 주주끼리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방식이다. 미국·영국·홍콩·호주 등 주요국이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충돌이 극심한 거래에 활용하는 국제적 모범 사례로, OECD도 15개 회원국이 유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일반 주주 보호 효과는 가장 강력하지만, 일반 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이 낮은 현실에서 안건 통과가 사실상 어렵고 의결권 확보 비용이 최소 4억~5억 원, 대기업은 15억 원 이상에 달할 수 있다는 점이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기관투자자 측은 전면적 주주동의 의무화와 MoM을 지지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상무는 “특별결의는 지배주주 지분이 40%에 달하는 한국 현실에서 통과 허들이 낮아 사실상 주주 보호 효과가 없다"며 “이사회 자율에 맡기는 1안은 충실 의무 관행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3안의 예외 기준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제에서 제시한 매출·자산·이익 10% 기준보다 예상 시가총액 기준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가 상장 당시 카카오 대비 매출 비중은 6%에 불과했지만 시장에 미친 충격은 컸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사모펀드(PE)·증권사 IB·벤처캐피털(VC) 측에서는 이사회 중심의 1안 또는 거래소 판단에 따른 2안을 지지하며 MoM은 반대했다. 임신권 IMM PE 최고법률책임자(CLO)는 “MoM이 도입되면 몇 년 전부터 이런 방식의 투자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재무적 투자자는 자회사 IPO를 전제로 투자 계약을 체결하는데, 상장이 막히면 투자 회수 자체가 봉쇄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법무부 이사회 지원 가이드라인도 소수주주 다수결 요건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 낸 점을 근거로 들었다. 김경순 대신증권 IPO 본부장은 임시 주주총회 실무 경험을 들어 MoM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기관투자자도 임시 주총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의결권 자문기관 의견을 그냥 따르는 경우가 많다. 주소 갱신이 안 된 개인 주주까지 감안하면 소수주주 다수결은 사실상 통과 불가능한 기준"이라고 했다. 참여하지 않는 것이 반대로 간주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법조계는 법 체계 정합성을 이유로 이사회 중심과 특별결의를 지지했다. 황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현행 상법상 자회사 상장은 주주총회 결의 사항이 아닌데, 거래소 규정만으로 일반 주주에게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하면 법 체계상 논란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3% 룰도 원래 감사 선임이라는 특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 중복 상장에 적용하면 목적과의 정합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남궁주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5년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충실 의무 대상이 이미 주주로 확대된 만큼, 추가 규제는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이사회 충실 의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현물 배당 같은 보완 수단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지, 거래소 심사의 독립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를 거래소와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회사 주주 보호 외에 자회사 영업·경영의 독립성도 심사 기준의 또 다른 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주주 보호 원칙을 유지하되, 다양한 사안을 단순화할 수 있는 기준안을 빠른 시일 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3월 발표된 '중복상장 원칙금지 방안' 관련 업계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두 번째 세미나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한 차례 세미나를 더 개최할 계획이다. 그 이후 중복상장 규정을 마련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네번째 손 볼 상법…‘주가 누르기’와 ‘고의 상폐’ 어떤 꼼수있나?[자본법안 와치]

세 차례 상법 개정으로 일반주주 보호 장치가 대폭 보강됐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제도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 개정 이후 남은 주주 보호의 과제' 토론회에서 대주주와 경영진의 '주가 누르기' 유인을 줄이기 위한 자본비용(COE) 공시 강화와, 감사의견 미달을 활용한 '고의 상장폐지' 차단 방안이 상법 개정 이후의 후속 입법 과제로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는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했다. 김승철 삼일PwC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과 김광중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가 발제를 맡았고, 토론에는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김미정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 편은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홍동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참여했다. 이정문 의원은 개회사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적 성과가 있었지만 최근 정기주주총회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정관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취지를 우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승철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며 '주가 누르기 방지'의 핵심은 “자본비용(COE)을 의식한 경영과 공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이 회사를 평가할 때 회사가 보유한 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내는지 본다"고 짚었다. 이때 활용하는 지표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이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에 비해 주가가 몇 배로 평가받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ROE(자기자본이익률)을 COE(자본비용)로 나눈 값이다. ROE는 회사가 자본으로 실제 얼마나 이익을 내는지, COE는 투자자가 그 회사에 요구하는 최소 수익률을 뜻한다. 결국 회사의 수익성(ROE)이 시장의 기대수익률(COE)를 웃돌아야 PBR이 1배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반대면 저평가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김 연구위원 설명이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는 '자본비용과 주가를 고려한 경영'을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의 우수 공시 사례를 보면 자본비용 공개, 동종업계 비교, 사업부별 분석, 자본배분 전략, 투자자 피드백 반영 등이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소영 의원안은 PBR 0.8배 미만 상장사에 대해 상속·증여세 산정 시 주가 대신 자산·수익가치를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현정 의원안은 PBR이 2개 사업연도 이상 1배 미만인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미제출 시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다만 토론에서는 제도 설계의 실효성을 두고 보완책도 제기됐다. 편은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김현정 의원안에 관해 “과태료만으로 충분한 강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시장 압력과 다른 제도적 장치가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4년 도입된 자율공시 가이드라인에는 자본비용, 동종업계 비교 등이 이미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공시에서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계획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의무화 여부 못지않게 공시 내용의 실질성과 이사회 심의 구조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홍동균 김앤장 변호사는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변호사는 “금융, 건설, 유통 등 업종별 특성에 따라 PBR 수준이 구조적으로 다를 수 있다"며 “일률 규제보다는 산업별 기준을 감안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산업은 자본적정성 규제에 따라 위험이 낮은 우량자산 위주로 보유할 수밖에 없어 PBR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임흥택 본부장보는 “거래소는 저PBR 공표 방안을 마련해 기업 스스로 PBR을 높일 수 있게 노력하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는 '고의 상장폐지' 문제를 다뤘다. 김광중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대동전자를 사례로 들며 “재무상태가 우량했던 중견기업이 3년 연속 감사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정의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동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 10% 미만, 현금성 자산 1200억원, 순자산 2600억원, 연 매출 300억원 규모의 우량기업이다. 홍콩에 있는 관계사 관련 감사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3년 연속 같은 사유로 한정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김 변호사는 “2년 연속 한정의견으로 이미 개선기간이 부여된 상황에서 같은 사유가 반복됐다"며 “관리종목 지정 뒤 회사가 자사주 약 7%를 추가 취득하면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과 자사주를 합한 우호지분이 93% 수준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은 고의 상장폐지가 자진 상장폐지처럼 높은 가격의 공개매수를 거치지 않고 정리매매나 상장폐지 이후 저가 매수를 통해 지분을 정리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만 회사 측은 회계법인이 요구한 자료를 모두 제출했으며 고의 상장폐지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감사의견 미달을 활용한 상장폐지가 대주주에게 경제적 유인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장폐지 뒤에는 현금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 주식병합과 단주처리 등을 통해 소액주주를 낮은 가격에 축출할 수 있고, 이후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배당으로 회수하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법원이 상장폐지에 따른 주가 하락 손해를 '간접 손해'로 보는 경향이 강해 손해배상 청구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간접 손해는 회사 재산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주주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제적 손실이다. 이에 김 변호사는 “감사의견 미달로 인한 상장폐지 손해에 대한 별도 배상책임 규정 신설, 관련 기업의 재상장 제한, 현금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 폐지 또는 제한, 주식병합 비율 제한, 지배주주·소액주주 매수청구권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문제의식에 공감했지만, 제도화 방식에 대해선 신중한 의견을 밝혔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본부장보는 “대동전자 사례처럼 감사의견이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가 된 경우 거래소가 규정상 고의성까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편은비 입법조사관도 “고의 상폐 차단을 위한 입법 논의가 상대적으로 더딘 데는 고의 상폐와 자발적 상폐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상장폐지 이후의 가격 공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시가뿐 아니라 순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함께 고려하는 매수가액 결정 제도 개선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대동전자 사례를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상충 사안으로 규정하면서 “재무 상태가 우량한데도 불투명한 사유로 감사의견이 변경되는 경우 기관투자자의 모니터링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RWA 결제통화, 세계시장은 이미 전쟁 중…“韓, 스테이블코인 입법 더 늦으면 고립”[자본법안 와치]

전 세계 실물자산(RWA) 토큰화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스테이블코인이 토큰화 금융시장의 핵심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아시아 주요국은 발행·유통·결제 체계를 함께 설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제도 도입 여부와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에선 입법 지연을 더 기다리기 어렵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실험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를 위한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와 타이거리서치가 공동 주관했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 서상민 카이아재단 의장, 김수민 플룸네트워크 한국 총괄이 발표자로 나섰다. 이후 종합토론까지 세미나는 약 3시간30분 이어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코인이 아니라 토큰화 금융을 굴리는 결제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산만 토큰화해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자산 이전과 결제가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져야 속도와 비용 절감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섭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거래소 주변부의 빵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달러 유동성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짚었다. 시장 규모는 이미 빠르게 커졌다. 지난달 기준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3080억달러(약 440조원) 수준으로, 달러 연동 비중은 95%에 달한다. 토큰화 미국 국채 시장도 11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미국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먼저 온체인 결제 수단으로 깔고, 그 위에 국채와 펀드, 담보, 대출 등 자산 토큰화를 넓혀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기관이 온체인 위에서 상품을 운용하는 블랙록의 BUIDL, 프랭클린템플턴의 BENJI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움직임은 산업 육성을 넘어 통화 패권 전략과도 연결된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5~99%가 달러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를 단순한 결제 혁신이 아니라 달러 영향력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미국 국채의 대형 매수 주체가 되고 있다. 이종섭 교수도 “토큰화 금융시장의 주도권은 결국 지급·결제 인프라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더 늦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강했다. 민병덕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이미 열렸고 현실의 금융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도입 여부가 아니라 활용과 경쟁력"이라고 했다. 김규진 대표는 “달러는 페라리를 타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도로 공사를 누가 맡을지, 도로는 어떤 걸로 짜야할지 논의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종섭 교수는 한국형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목표를 '원화 기반 토큰화 경제의 최소 구조를 먼저 만드는 것'으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우선 제도화하는 머니 레이어, 머니마켓펀드(MMF)·국채·수익증권 등으로 토큰화 자산을 단계적으로 넓히는 자산 레이어, 그리고 처음부터 국내 실증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 연결을 염두에 둔 네트워크 레이어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현실적인 주문이 나왔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그래서 더 빨리 실제 사용처를 만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상민 카이아재단 대표는 “미국과 같은 전략, 달러와 같은 전략을 택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원화가 달러처럼 널리 쓰이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형 용처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꼽은 분야는 정산이다. 주식 결제, 기업 간 대금 지급,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판매 대금 정산처럼 “빨리 받아야 하는 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스테이블코인이 쓸모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외 결제도 예로 들며, 카드나 QR결제의 겉모습은 그대로 두더라도 뒷단 정산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면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법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늦는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 필요성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김경업 오픈에셋 대표는 “한국은행의 CBDC는 파일럿까지 갔지만 민간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실증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내 입법이 어렵다면 혁신금융서비스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라도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민 총괄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규제가 만들어지지 않고 법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게 굉장히 무섭다"면서도 “올해 안에 제도 정비가 어렵다면 규제 샌드박스 형태의 시도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제도 도입 못지않게 보안과 자금세탁방지(AML), 준비금 검증 문제도 주요 과제로 거론됐다. 임주영 안랩블록체인컴퍼니 사업총괄은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서 보안 사고가 나면 곧바로 실물 자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설계 단계부터 제로트러스트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라클, 브리지, 준비자산 검증,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원화 가치와 준비금 정보가 정확해야 하고, 체인 간 이동 과정이 안전해야 하며,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곧바로 탐지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원호 람다256 CBO는 “AML과 이상거래 탐지가 기존 금융권보다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스테이블코인과 온체인 거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사후 추적만으로는 늦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 통제와 사후 모니터링의 시간 차를 최대한 줄여 사실상 준실시간 수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은행과 발행사, 유통사, 금융기관 간 데이터 연동과 위험 지갑 정보 공유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행 구조를 어떻게 짤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김경업 대표는 “준비금을 실시간에 가깝게 공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 주요 스테이블코인보다 더 엄격한 체계를 한국이 설계할 수 있다고 봤다. 발행사가 혼자 코인을 발행하는 구조보다, 예치금을 관리하는 은행과 발행사가 공동 승인 구조를 통해 발행을 통제하는 방식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정무위 파행에 자본시장6법 ‘발목’…통과되면 기업·투자자 득실은? [자본법안 와치]

국회 정무위 파행이 장기화해 자본시장 선진화를 추동할 핵심 법안들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계류된 자본시장 관련 6대 법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증시 부양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국회사무처로 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2대 국회 개회 후 2월말까지 14개 정무위 법안 중 전체회의를 통과한 비율은 17.6%에 그쳤다. 전체 상임위 평균은 26.9%다. 정무위가 같은 기간 법안심사2소위를 연 것은 8회에 그쳤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부처를 담당한다. 정무위 파행으로 자본시장 관련 법안이 멈춰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중 자본시장 관계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20일 국회 소식통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에 대한 입장정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지방선거 국면에 빠져 같은 당 소속 윤한홍 정무위원장이 법안심사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 20일 현재 정무위에 계류된 자본시장법 관련 개정안은 크게 6가지다. 주로 경영권 시장의 룰을 바꾸고, 신사업 동력을 부여하며, 소액주주의 권리를 격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번째,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다. 인수합병(M&A) 시장의 룰을 바꾸는 법안으로 여야 공감대가 형성된 1순위 법안이다. 윤한홍 위원장 등이 2024년 10월과 11월에 걸쳐 집중 발의했다.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 최대주주가 될 때(경영권 인수), 잔여 주주를 대상으로 '총 지분의 50%+1주' 이상을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동일 가격에 매수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M&A 셈법이 완전히 달라지만. 지배주주 지분만 웃돈을 주고 사던 관행이 막힌다. 매수 자금 부담이 최소 두 배 이상으로 폭증한다. 막대한 재무적 부담으로 딜이 무산되거나, 국내 M&A 시장 자체가 빙하기를 맞을 수 있다. 반대로 매물로 거론된 기업은 적대적 M&A 방어막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 소액주주에겐 강력한 호재다. 경영권 교체기마다 철저히 소외됐던 일반 주주들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다. 잠재적 피인수 대상인 중소형주나 지주사의 주가 상승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다만 규제로 M&A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으면 프리미엄 수취 기회도 사라진다.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시 공모신주 우선 배정'이다. 알짜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별도 상장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2024년 12월 10일)과 민병덕 의원(2024년 12월 11일)이 각각 발의했다. 분할된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집하는 신주의 일정 비율을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도록 강제한다. 여당(15% 이내 자율)과 야당(50~70% 의무 배정) 간 비율 쟁점이 남아 있다. 기관 투자 입장에서 보면, 자금 조달 생태계에 적신호다. 신주 물량의 절반 이상을 모회사 주주에게 떼어주면, 정작 기관 투자자나 일반 청약자에게 돌아갈 몫이 급감한다.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 저조는 적정 공모가 산정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라는 분할 상장의 본래 취지가 퇴색된다. 모회사 주주에게는 확실한 안전판이다. 핵심 사업부 이탈로 모회사 주가가 폭락하는 '더블 카운팅' 사태의 피해를 보상받는다. 대어급 자회사 공모주를 선점할 기회다. 반면, 해당 자회사의 신규 상장에 순수하게 참여하려는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배리어(진입 장벽)로 작용한다. 세번째는 '토큰증권(STO) 법제화'다. 부동산, 미술품 등 비정형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증권'으로 발행·유통하는 근거법이다. 2024년 9~10월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강준현·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투자업계에는 대형 호재이자 신규 먹거리다. 위축된 전통 브로커리지 수익을 대체할 '조각투자' 시장이 열린다. 증권사들은 발행 주관 및 장외 유통 플랫폼 운영으로 파이를 키울 수 있다. 핀테크 업계와의 제휴 등 신사업 확장의 교두보로 볼 수 있다. 개미투자자에게도 기회다. 소액으로도 상업용 빌딩, 음원 저작권 등 대체 자산에 투자할 길이 열린다. 반면, 위험도 높다. 비정형 자산은 본질 가치 평가가 어렵고, 초기 장외 시장 특성상 거래량이 적어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가격 변동성도 매우 큰 편이다. 네번째는 '가상자산 현물 ETF 허용'이다. 미국과 홍콩 등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을 뒤따르는 법안이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이 2025년 상반기 대표 발의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기초로 하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과 거래를 국내에서 법적으로 허용한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의 수익 창출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막대한 자금이 몰리는 글로벌 가상자산 펀드 수요를 국내 제도권 계좌로 끌어올 수 있다. 반면 기존 코인 거래소 입장에서는 직접 투자 자금이 증권사 ETF로 이탈할 수 있어 수수료 수익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가상자산 투자의 편의성과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복잡한 지갑 생성이나 해킹 위험 없이 기존 주식 계좌로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편입이 허용되면 절세 효과까지 누린다. 다만 기초자산 특유의 극심한 시세 변동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다섯번째는 '합병 가액 산정 기준 폐지(외부평가 공정가치 도입)'다. 대주주 입맛에 맞춘 불공정 합병을 막는 법안이다. 금융위 발표를 바탕으로 2024년 12월 여당 간사안으로 발의됐다. 과거 주가 추이만을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평균 내던 합병가액 산정 방식을 폐지한다. 대신 외부 평가기관의 공정가치 산정을 의무화한다. 합병 시 이사회의 의견서 공시 의무도 명시했다. 기업 합병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대주주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억누른 뒤 싼값에 합병을 강행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외부 기관 선임과 실사 비용이 증가한다. 이사회의 의견서 공시는 향후 배임 등 주주 대표 소송의 표적이 될 법적 리스크를 키운다. 투자자에겐 주주가치 훼손을 막는 강력한 방패로 작용한다. 특정 시점의 왜곡된 주가를 핑계로 불리한 합병 비율을 강요받는 피해가 차단된다. 회사의 본질 가치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비율로 자산을 보호받을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여섯째, '상장사 주가누르기 방지' 법안이다. 2026년 3월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 시동이 걸렸다. 상속세 마련이나 증여를 앞두고 대주주가 인위적으로 실적을 감추거나 공시를 늦춰 주가를 억누르는 행위를 차단한다. 거래량과 유동 주식 비율 축소 등을 정밀 모니터링해 제재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징벌적 상속세 부담을 덜기 위해 은밀히 행해지던 편법적 꼼수 경로가 막힌다. 엄격한 모니터링 규제 탓에, 정당한 경영 판단(투자 지연 등)조차 '주가 억누르기'로 의심받아 금융당국의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투자자에겐 빼앗겼던 권리를 돌려받을 기회다. 억울한 기회비용 상실을 막기 때문이다. 기업 펀더멘털이 훌륭해도 오너 일가의 세금 사정 탓에 주가가 장기간 횡보하거나 박스권에 갇히는 불합리를 방지한다. 자본시장의 공정성이 높아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상법 개정에 떨고 있는 자사주 고비율 기업들…인포바인·신영증권·롯데·SK 등 [자본법안 와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본회의 표결을 앞두면서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상장사들의 주주환원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매입보다 소각 규모가 더 커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관련 종목들의 수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차 상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 후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될 전망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 24시간이 지나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이를 종료할 수 있다는 국회법 규정을 근거로 이날 오후 필리버스터를 마무리하고 법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이 신규 취득한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한 것이다. 기존 보유 물량은 일정 유예 기간이 부여되며 외국인 지분 제한 기업은 최대 3년까지 소각을 미룰 수 있다. 그간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전략적으로 활용해 온 관행에 구조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법 개정을 앞두고 상장사들의 자발적 자사주 소각도 빠르게 늘고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소각된 자기주식은 4억1500만주로 전년 대비 110% 이상 급증했다. 자사주 매입 금액이 2024년 18조8000억원에서 2025년 20조1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한 반면, 소각 금액은 같은 기간 13조9000억원에서 21조4000억원으로 50% 이상 늘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증가한 공급 금액보다 소각 규모가 더 커지면서 2년 연속 순공급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시장의 관심은 자사주 비율이 높은 기업들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자사주 비중이 10%를 넘는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금융사와 지주사, 전통 제조업 기반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는 기업은 인포바인으로, 발행주식의 54.2%를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다. 이어 △신영증권(51.2%) △일성아이에스(48.8%) △조광피혁(46.6%) △텔코웨어(44.1%) △부국증권(42.7%) 등이 40~50%대 자사주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주사 가운데서는 △롯데지주(27.5%) △SK(24.8%) △하림지주(13.2%) △LS(12.5%) 등이 두 자릿수 자사주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합병·교환·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돼 왔다. 의무 소각 제도가 시행되면 이러한 활용 여지가 줄어들 수 있어 향후 지배구조 전략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보험 등 금융업종에서도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다. △미래에셋생명(26.3%) △미래에셋증권(23.3%) △DB손해보험(15.5%) △한화생명(13.5%) △삼성화재(13.4%) △삼성생명(10.2%)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사의 자사주 매입은 주당순이익(EPS) 개선과 주가 안정, 주주환원 강화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의무 소각이 정착될 경우 실질적인 유통주식 수 감소 효과가 더해지며 밸류에이션 재평가 기대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가는 단기적으로는 정책 기대감이 선반영되며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자사주 소각 확대가 구조적인 공급 축소로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 체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개별 기업의 자사주 보유 구조와 세제 이슈에 따라 재무적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모멘텀이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로 일단락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짚었다. 그는 “관련 타법 개정 여부와 상반기 세제 개편안 방향까지 함께 확인해야 자사주 소각 수혜주를 가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합병 과정에서 사업상 활용을 전제로 과세이연 특례를 적용받은 기업의 경우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연된 법인세가 한꺼번에 부과될 수 있다"며 “일부 기업에는 재무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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