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중국, 새로운 글로벌 기후 리더로 부상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글로벌 리더십의 지각 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오랫동안 기후 행동을 주도해 온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정치적·경제적 난관에 부딪혀 정책의 후퇴와 정체를 겪는 사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하며 새로운 '녹색 리더십'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으로 향후 전 세계 기후 대응 체제의 방향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기점에 국제 사회에 서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미국: “녹색 사기극" 주장에 정책 기반 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은 글로벌 기후 대응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전 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green scam)"이라고 비판하며, 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정책 때문에 “파멸의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때 복귀했던 파리기후협정에서 다시 탈퇴하는 행정명령을 재집권 직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했던 미국의 2035년 국가 감축목표(NDC)는 현재 무효화된 상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너지부·내무부는 석탄 채굴 및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를 이유로 퇴역 직전이거나 퇴역 예정인 석탄발전소를 개조·재가동하는 데 3억5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6억2500만 달러(약 8800억원)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무부는 또 1300만 에이커(5만2600㎢ ) 이상의 연방 토지를 석탄 채굴에 개방하고,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 관리들은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배터리와 결합하더라도 불안정하다"며 “AI 및 산업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석탄을 포함한 기저전력원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결과로 2005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5년 일시적으로 반전돼 총 배출량이 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후퇴는 단순한 방향 전환을 넘어, 기후 정책의 기반 자체를 해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EPA는 오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던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GHGRP)'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배출량을 추적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근간(backbone)' 역할을 해온 제도인데, 이것이 중단되면 정부의 기후정책 수립 역량이 심각하게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사회단체(NGO)나 민간 부문(예: Climate TRACE, RMI)이 이 공백을 메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EPA의 법적 강제력과 데이터 표준화, 중앙 저장소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연방 차원의 퇴보는 넷제로(온실가스 순 배출 제로)를 선언한 나라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에는 넷제로를 공약한 나라를 다 합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3% 수준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77%에 머물게 됐다. ◇ 유럽연합(EU): 내부 분열로 흔들리는 리더십 미국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손을 떼는 동안, 가장 헌신적으로 기후 행동을 이끌던 EU 역시 내부적 난관에 봉착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EU는 2022년 기준으로 1990년 대비 배출량을 37% 감축하는 등 선진국 중 가장 빠른 탈탄소화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감축 목표를 두고 회원국 간 이견이 커지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5년마다 새로운 NDC를 제출해야 하지만, EU는 회원국 간 이견으로 9월 말 유엔 마감 시한을 넘겼다. 환경장관들은 목표 수준에서 합의에 실패했고, 결국 공식 NDC 대신 '의향 성명서(statement of intent)'를 채택해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66.25~72.5% 감축'이라는 범위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스페인 등은 2040년까지 90% 감축을 주장했으나, 헝가리·체코·폴란드 등은 “산업 경쟁력을 해친다"며 반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무역 긴장으로 EU의 관심이 국방과 산업 쪽으로 옮겨가면서 기후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EU의 이번 타협이 “위로상(consolation prize)"에 불과하며, “EU가 기후 리더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비판한다. EU는 제30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이전에 공식 NDC를 제출하기로 약속했지만, 리더십의 타격은 이미 불가피해졌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영국의 경우도 기후 리더십이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바데녹 대표는 이달 초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 폐지를 공약했다. 이 법은 2008년 초당적 합의 아래 만들어져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0% 줄이고, 안정적인 정책 틀과 독립적 감시기구를 통해 장기적 기후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해왔다. 법이 폐지될 경우 영국의 기후 정책에 대한 국내외 신뢰를 훼손하고, 재생에너지 투자와 국민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 중국: '녹색 기술 초강대국'으로 부상 미국이 책임을 외면하고 EU가 분열로 흔들리는 가운데,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전 세계 배출의 약 1/3)은 새로운 감축 목표를 제시하며 '녹색 리더십'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딜 24일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35년까지 중국 경제 전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CO₂뿐 아니라 메탄·아산화질소 등 모든 온실가스를 포괄한 최초의 절대적 감축 목표다. 이전까지 중국은 “2030년 이전 배출 정점 도달"만을 약속했다. 이번 목표는 중국의 '정점 이후(post-peaking)' 계획을 공식화한 것으로, 중국의 배출량 감소는 곧 전 세계 배출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 주석은 비(非)화석연료 소비 비중을 2035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풍력·태양광 발전 용량을 총 3600GW(기가와트)로 늘리며, 신에너지 자동차를 신규 판매의 주류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7~10% 감축은 파리기후협정의 1.5℃ 목표(2035년까지 최소 30% 감축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략을 “낮게 약속하고 과도하게 이행(under-promise, over-deliver)"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중국은 목표를 '정치적 약속'으로 간주하며 실제 이행을 중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2030년까지 1200GW 달성을 목표로 했던 풍력·태양광 발전 용량은 이미 6년 앞당겨 달성한 바 있다. 영국 리즈대학 피어스 포스터 교수는 “중국이 2035년까지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 절대량은 영국 3개국이 완전히 탈탄소화하는 규모에 맞먹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중국은 오염 배출국이면서도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 청정 기술의 세계 선도국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미국의 이탈에도 국제사회는 에너지 전환을 지속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 글로벌 기후 대응의 새로운 동력 미국과 EU의 정책 불안정 속에서도, 글로벌 기후 행동은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후퇴로 전 세계 GDP 기준 넷제로 목표를 제시한 국가 범위는 줄었지만, 미국 내 주(州) 단위 목표를 포함하면 다시 83%로 늘어난다. 현재 미국 19개 주가 넷제로를 약속하고 있고, 넷제로를 공약하는 미국 기업 숫자도 증가 추세다. 넷제로는 이제 정치 논쟁이 아니라 미래 시장과 투자,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의 영역'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전 세계 GDP의 77%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넷제로 목표를 유지하고 있고, 글로벌 상장기업 대부분이 이를 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과학적 요구에 못 미친다. 현재 각국이 제출한 NDC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를 1.5℃ 이내로 억제하기 어렵다. 특히 기후 목표와 화석연료 생산 계획 사이의 불일치가 심각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30년 예상되는 화석연료 생산량은 1.5℃ 목표치보다 120% 이상 많고, 2℃ 목표와 비교해도 77%를 초과한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20대 생산국 중 17개국이 2030년까지 생산 확대를 계획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의 85%를 차지하는 G20은 이 격차를 해소할 핵심 주체로 꼽히고 있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글로벌 거버넌스 전반에 대해 정책 제언을 담당하는 싱크탱크 네트워인 '씽크20(Think20)' 그룹은 기후 대응과 관련해 긴급 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기후 적응자금 확대 및 재정 개혁 ▶핵심 광물 공급망의 공정·포괄적 거버넌스 구축 ▶모든 사회계층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추진 ▶생물다양성·기후·개발을 통합하는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확립 등이 포함됐다. ◇ 불안한 리더십 속 중국의 '이행 능력'에 주목 지금의 글로벌 기후 리더십은 불안정하고 복잡한 전환기를 겪고 있다. 미국은 국제협력을 외면하며 후퇴하고, EU는 내부 분열로 리더십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막강한 청정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녹색 리더'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비록 중국의 목표가 과학계의 권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의 목표 설정 방식(이행 가능성을 중시하는 하향식 정치문화)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는 “약속한 그 이상을 이행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결국 향후 글로벌 기후 대응의 향방은 선진국의 정치적 의지(특히 미국의 복귀 여부와 EU의 단합) 그리고 중국의 감축 속도라는 두 축에 달려 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감축 목표를 '최대치(ceiling)'가 아닌 '최저선(floor)'으로 삼고 이를 초과 달성하며, 다른 국가들이 화석연료의 '생산 격차'를 좁히는 데 동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헬싱키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에너지 및 청정 대기 연구 센터(CREA)의 중국 분석가 벨린다 셰페는 “중국의 배출량이 감소하면 전 세계 배출량도 감소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덕분에 인류는 1.5℃ 목표를 향한 좁고 도전적인 길을 계속 갈 수 있고,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런 기대가 이뤄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 추세를 나타내는 그래프 모양을 만드는 데 중국이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의 주도권 역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국이 쥐게 됐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매일 겪는 기후 위기: 한반도의 현실과 해법은

지난 19일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으로 발간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한국이 직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5년간 축적된 연구 성과(2000여 편의 논문 등)을 종합해 한반도의 기후변화 진행 상황, 현재의 충격, 미래 전망, 그리고 정책적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반도는 지구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기후 재난이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위험 수위 돌파 한반도에서 최근 10년(2013~2022) 동안 이산화탄소(CO2) 농도 증가율은 연평균 2.5ppm으로 그 이전 10년(2003~2012)의 연평균 증가율 2.2ppm보다 빠른 증가 추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동안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각각 11ppb, 1.1ppb의 연평균 농도 증가율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24년 안면도와 울릉도, 제주(고산리) 기후관측소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428~431ppm이었다. 이는 같은 해 전 지구 평균보다 5~8ppm 높다. 매년 약 3.4ppm씩 증가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산업화 이전 대비 2℃ 상승의 한계선인 450ppm까지 불과 6~7년밖에 남지 않았다. 메탄도 심각하다. 안면도에서 관측된 메탄 농도는 2030ppb로, 전 세계 평균보다 약 100ppb 높았다. 아산화질소, 육불화황 등 다른 온실가스도 모두 전 지구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들 가스는 각각 수십 년에서 수천 년 동안 대기에 남아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한다. ◇한반도는 얼마나 더워졌나 기온 상승은 기후위기의 가장 직관적인 지표다. 1912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 지표 기온은 10년마다 0.21℃씩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0.15℃/10년)보다 40% 이상 빠른 속도다. 100년 넘게 쌓인 온난화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반도는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8℃ 이상 더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구 평균 상승폭(1.2℃ 안팎)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봄과 겨울철의 온난화가 두드러진다. 서울의 겨울철 평균기온은 100년 전보다 3℃ 가까이 상승했고, 눈 내리는 날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강원 산간 지역에서조차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잦아졌고, 겨울 스포츠 산업과 산림 생태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 미래 전망: 지금보다 7℃ 더 뜨거워질 수도 보고서는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AR6)기반의 공유사회경제경로(SSP) 시나리오를 적용해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단기(2021~2040년 이전) 및 장기(2081~2100년) 기후 전망을 제시했다. 온실기체 고배출 시나리오(SSP5-8.5)에서 전 세계 평균 기온이 단기적으로 1.5°C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중간 및 높은 배출 시나리오(SSP2-4.5, SSP3-7.0)에서도 1.5°C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2081-2100년 장기적 전망에서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1.5°C를 초과해 SSP1-2.6에서 1.8°C, SSP2-4.5에서 2.7°C, SSP3-7.0에서 3.6°C, SSP5-8.5에서는 4.4°C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특히 SSP5-8.5 시나리오 하에서는 2100년까지 한반도 기온이 최대 7℃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기온이 7℃ 상승한다면, 폭염 일수는 현재보다 9배, 열대야는 21배 늘어난다. 5일 단위 최대 강수량은 31% 증가해, 서울 같은 대도시는 매년 침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바다의 경고: 뜨거워지고 높아지는 해역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의 변화는 육지 못지않게 심각하다. 1968~2023년 동안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1.4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0.7℃)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다. 특히 동해에서는 표층 수온이 1968년부터 2023년까지 약 1.9℃ 상승했고, 중층 수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울릉분지에서는 최근 18년간 중층 수온이 1.075℃ 상승하는 등 심층 및 중층 해수의 열, 염분, 산소 특성 변화가 관측됐다. 해양 극한 현상도 증가 추세에 있었다. 해양열파는 해수온이 과거 평균 대비 매우 높게 오르는 현상으로, 국내 해역에서 특히 자주,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1982~2020년 동안 동해는 전 세계 해역 중 해양열파 누적강도가 세 번째로 높았으며, 여름철 발생일수는 다른 계절보다 65% 이상 많았다. 해수면 상승도 빠르다. 동해 일부 해역은 연평균 7㎜ 이상 해수면 상승을 기록하며, 세계 평균(3.7㎜)보다 거의 두 배 높았다. 2100년까지 해수면은 최대 82㎝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에 해당하는 연안 지역이 침수 위기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천·군산·부산 등 항만과 어촌 마을은 장기적으로 거주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일상화된 극한기상 기후위기는 평균 기온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체감하는 극한 날씨로 나타난다. 2025년 여름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보였다. 기후 보고서가 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기온 상승이 가파르고 극한호우도 심해지고 있다. ▶폭염: 최근 10년간(2015~2024년) 연평균 폭염 일수는 15.6일로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0년대 평균(7일)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2018년과 2023년 여름에는 일부 지역에서 체감온도 40℃를 넘는 날이 잇달아 발생했다. ▶열대야: 열대야(밤 최저기온 25℃ 이상)는 폭염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1970년대 연평균 2.5일에서 최근 10년간 20일 이상으로 늘었다. ▶집중호우: 강수 패턴이 변해 6월 강수량은 줄고, 7~8월에는 국지성 호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장마 시작일과 2차 장마 시작일이 모두 앞당겨지면서 여름철 평균 강수량과 호우 빈도가 증가했다. 장마가 물러나는 날은 2000~2014년의 기간 동안 약 10일 늦춰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2020년 충청지역 기록적 폭우, 2022년 서울 강남 도심 침수, 2023년 경북 지역 산사태는 모두 이 같은 흐름의 단면이다. 2022년 수도권에서는 시간당 141.5㎜의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다. ▶태풍: 북태평양의 폭풍 수는 최근 증가하며 생애 주기가 길어졌고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반도에 도달하는 태풍은 과거보다 강력해졌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태풍이 세력을 유지한 채 북상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하이선', 2022년 '힌남노'가 대표적 사례다. ▶가뭄: 여름철 폭염과 겹치면서 '폭염형 급성가뭄(돌발가뭄)'이 늘고 있다. 2022년 제주도의 경우 50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었다. 2022년 수도권에서 극한강수현상이 발생하는 동안 남부 지방은 역대 최악의 기상 가뭄을 겪는 등 지역 간 차이가 두드러졌다. ▶한파: 극한저온현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감소하다가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해 해빙 감소, 음의 북극진동 발달, 성층권 극와도 순환 약화, 우랄 블로킹의 빈도 증가 등에 기인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1973~2023년 한반도 한파일수는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후위기의 사회·생태적 충격 ▶수자원: 지난 40년간 제주 지역 연강수량은 206㎜ 증가했지만, 충남은 120㎜ 감소했다.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며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늘고 있다. 물 부족에 있어서는 한강권의 임진강 하류와 주변 낙동강권역이 위험한 것으로 분석됐다. ▶생태계: 일찍 개화하는 식물 종의 개화 시기가 더 빨라질 것으로 분석됐다. 아고산 침엽수 구상나무는 집단 고사 중이며, 남방계 나비와 야생벌은 북상하고 있다. 반대로 양서류와 민물고기는 서식지를 잃고 있다. 외래종인 뉴트리아, 붉은불개미, 작은입배스의 서식지가 확대돼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산림: 지난 40년간 매해 약 400㏊의 산사태가 발생했고, 발생면적과 피해액이 지속해서 증가했다. 산사태 발생 원인으로는 강우, 지형, 지질, 식생 등의 자연적 요인과 토지이용, 산림관리, 벌목 등의 인위적 요인이 존재한다. 산불은 매해 약 4004㏊의 피해가 발생했고, 2020년대 피해면적이 2010년대보다 10배 증가했다. 산불 증가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원인과 평균기온 증가와 습도 감소 등으로 나타났다. ▶농업: 벼의 출수 한계기가 늦어지고 보리의 유수형성기가 빨라지는 등 이상기상의 피해가 발견됐다. 채소와 과수의 수량성과 품질도 낮아지고 있다. 사과 재배지는 북상하거나 축소되고 있다. 사과 최대 산지인 충북 일부 지역은 앞으로 재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밭작물의 생산성과 품질도 이상기상으로 감소세다. 열대거세미나방 등 외래 병해충도 확산 중이다. ▶수산업: 수온 상승으로 명태는 거의 사라졌고, 오징어·고등어 어획량도 감소 중이다. 김·다시마 양식장은 고수온 피해로 막대한 경제 손실을 입고 있다. SSP5-8.5 시나리오 하에서의 어획량 변화는 최대 2923억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양식업 중에서는 멍게와 해조류가 높은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보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는 2018년 여름 한 해에만 4000명 이상 발생했다. 대기오염과 알레르기 질환, 감염병 확산도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 말라리아 국내 연평균 환자 수는 2016~2019년 310명에서 2020~2023년 370명으로 늘었고, 특히 2023년에는 673명으로 급증했다. ◇결론: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한국은 이미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가뭄은 더 이상 '이례적 현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됐다. 경제와 안전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는 분명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적응 전략을 강화한다면 피해를 완화할 수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기후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재이자, 우리의 미래다. 이제는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가 행동해야 할 때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19세기 극심한 가뭄이 주는 경고…‘기후공학’ 도입에 신중하라

200여 년 전 조선은 유례없는 대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 끔찍한 재앙의 뒤에는 다름 아닌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늘날 인류는 기후 변화라는 또 다른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과거의 화산 폭발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려는 '지구공학' 혹은 '기후공학'(Geoengineering)기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과거의 비극은 이처럼 지금의 기후 위기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 대응 만큼은 과학적이고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역사의 경고: 소빙하기 화산 폭발과 조선의 비극 소빙하기(Little Ice Age, 약 1350~1850년)의 마지막 시기였던 1809년과 1814년 조선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두 차례의 대기근에 시달렸다. 특히 1809년의 미지의 화산 폭발과 1815년 4월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 그리고 그 사이의 세 차례 소규모 화산 폭발(1812년 카리브해 세인트빈센트섬의 라수프리에르, 1813년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스와노세지마, 1814년 필리핀 루손섬 마욘 화산)은 지구 기후를 심각하게 교란했다. 특히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은 화산폭발지수(VEI)가 7에 이르는 엄청난 폭발이었다. VEI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스미스소니언 연구소가 제안한 화산 분출의 규모를 나타내는 지수다. 0에서 8까지 등급으로 나뉘며, 분출된 화산재·화산쇄설물의 양, 기둥 높이, 폭발 강도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 역사상 기록된 가장 큰 폭발 가운데 하나로,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황 에어로졸을 방출해 '여름이 사라진 해(1816)'라는 기후 재앙을 일으켰다. 탐보라를 포함한 연쇄적인 화산 폭발은 두꺼운 화산 먼지와 화산재를 성층권으로 뿜어 올려, 지구 곳곳에 다양한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몬순 기후대는 매우 건조한 여름을 보냈는데, 이는 쌀 수확량을 크게 떨어뜨려 심각한 기근으로 이어졌다. ◇다산 정약용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등으로 본 기근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김성우 교수는 최근 국제 저널인 '과거 기후 연구 (Climate of the Past)'에 발표한 논문에서 소빙하기 마지막 시기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심각한 기근을 자세히 다뤘다. 논문에서 언급한 두 차례 기근은 순조 재위 기간(1800~1834년)과 겹치는 1809~1810년, 1814~1815년에 발생했다. 김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과 『경세유표(經世遺表)』,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로 당시 심각한 기근 상황을 정리했다. 『다산시문집』은 정약용의 전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중에서 시문집 22권을 국역서 10책(색인 1책 포함)으로 간행한 것이다. 『경세유표』는 정약용이 조선 후기의 혼란한 상황을 바로잡고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 『서경(書經)』과 『주례(周禮)』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여 조선 사회의 개혁안을 저술한 책이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1809년 여름 전라도 남서쪽 해안의 강진에서는 2월 초부터 8월 초까지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가뭄이 너무 심해 대나무는 새순을 돋우지 못하고 소나무는 솔방울을 맺지 못했으며, 모든 수원(水源)이 말라 주민들은 마실 물 부족에 허덕였다. 논의 70~90%에서 벼가 시들어 말라 죽었고, 강진 전체 논 면적의 1.7~10%에서만 벼를 수확할 수 있었다. 나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과 조선 전체의 상황도 비슷했다. 6년 후인 1814년에 또 다른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7월 하순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보리 농사는 완전히 실패했고, 모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늦은 장마로 강변 저지대에 홍수가 발생했는가 하면, 서리가 유난히 일찍 내려 가을 농작물마저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경상도 지역의 곡물 가격 변동으로 미루어 볼 때, 1814년의 기근은 1809년보다 1.5~2배 더 심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근으로 생지옥으로 변한 조선 사회 두 차례의 대기근은 조선 사회를 말 그대로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당시 약 1400만 명의 조선 인구 중 약 24%에 해당하는 340만 명 이상이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이질·발진티푸스·,천연두·홍역과 같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부 지방에 피해가 집중되었으며, 강진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거의 30%가 목숨을 잃었다. 유배지인 강진에서 이를 겪은 다산은 “백성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관청은 이주민으로 붐볐다"고 기록했다. 곡식을 구하기 위해 금과 은을 들고 시장에 가도 살 수 없었고, 겨울이 오기도 전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해적 행위와 산적이 만연했다.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이주민들 사이에서 홍역 등 전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1810년 봄 사망자수는 더 늘었다. 다산은 “길과 들판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라고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서는 집의 담이 허물어지고, 문은 뜯겨 나가고, 마당에는 쑥이 무성했다. 1809년 여름에 시작된 대기근은 1810년 6월 말 보리 수확 직전에 절정에 달했다. 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은 겨와 모래를 섞은 보리죽을 먹었야 했다. 조선왕조는 3년마다 전국 인구를 조사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의 초과 사망자는 1809~1810년 102만명, 1814~1815년에는 232만명이었다. 두 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약 3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4.3%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후 재앙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은 농민들에게 이전 수준의 높은 세금을 강요했다. 이에 다산은 토지 개혁(정전제(井田制)) 방안을 제시했지만, 부패한 권력층의 반대와 무관심 속에서 좌절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 대기근의 충격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조선 왕조의 무능과 무책임은 왕조의 멸망과 한일합방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위험한 유혹: 기후 공학에 대한 우려 과거의 화산 폭발이 지구 기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듯이,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 SAI)이라는 기후공학 기법을 통해 기후변화 영향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는 화산 폭발이 성층권에 뿜어내는 황산염 에어로졸과 유사한 물질(주로 이산화황, SO2)을 대량으로 주입하는 방식이다. 태양에너지가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않도록 차단해 지구 기온을 낮추려는 것이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당시 약 1700만 톤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분출되어 약 2년간 전 지구적으로 0.5°C 가량의 기온 하강 효과를 보인 사례가 이러한 아이디어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SAI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전문가들은 SAI와 같은 지구공학 기법들이 기후 관련 위험을 제한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접근 방식으로 간주될 필수 기준(예: 실현 가능성 및 성공 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도 기후과학 전문가들은 기후공학이라는 '꼼수'로는 온난화를 막을 수 없을 뿐더러 환경에도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전문가 42명은 9일(현지시간) 학술지 '프런티어즈 인 사이언스'에 '위험한 기후공학으로부터 극지방 보호하기: 제안된 개념들과 미래 전망에 대한 비판적 평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기술을 통한 환경 개입으로 제안된 방안 중 비교적 널리 거론되는 것을 검토한 결과, 모두 실현가능성과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환경에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검토한 것으로는 ▶에어로졸을 성층권에 살포하는 것 ▶그린란드나 남극 등 대륙빙하에 따뜻한 바닷물이 닿지 못하도록 '바다 커튼'을 설치하자는 주장 ▶해양 빙하가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바다 얼음에 유리구슬을 뿌려 반사율(알베도)을 높이거나, 펌프로 바닷물을 그 위에 뿌려 해양빙하의 두께를 늘리자는 방안 ▶철분 등 영양분을 바다에 뿌려 식물플랑크톤 번식을 촉진,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토록 하자는 제안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제안은 급격하고 깊이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외에 다른 수단으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의사 결정자들이 입증된 탈탄소화 전략 대신 기후공학에 집중하게 만들고, 심지어 화석 연료 산업과 같은 '약탈적 지연(predatory delay)' 행위자들이 기후 행동을 가장하여 지속적인 배출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의 진정한 해법: 경각심과 실질적인 행동 과거 조선의 비극은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 현상에 의해 촉발된 기후 재앙이었다. 당시 인류는 그 원인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후 변화의 주범이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SAI와 같은 기후공학 기법은 과거의 화산 폭발처럼 성층권에 먼지를 뿌려 일시적인 냉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지금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기술적 해결책에 자원과 노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고, 오히려 기존에 입증된,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과 전략에 집중하고 이를 신속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의 확대를 제한하는 유일하고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접근 방식은 '넷 제로(net-zero)' 배출 달성을 위한 즉각적이고, 신속하고, 심층적인 탈탄소화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깊은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만 불확실한 기후공학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공학 접근법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점과 이러한 기술에 대한 추가 연구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이러한 아이디어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우선순위나 극지방에서 기초 연구를 수행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직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검증된 행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폭염과 가뭄의 악순환…그 치명적인 사슬

올여름 한반도는 폭염으로 달아올랐다. 6~8월 전국 평균기온이 25.7℃로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전국의 폭염일수(낮최고기온 33℃ 이상)는 28.1일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강원도 강릉에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강원 영동 지역은 올여름 강수량이 232.5㎜로 평년(679.3㎜)의 34.2% 수준에 그쳤다. 여름철 강수량으로는 역대 최저다. 가뭄은 점차 다른 지역까지 번져나갈 기세다. 지난 4일 환경부는 안동·임하댐의 가뭄 단계를 '주의'로 격상했다. 다목적댐 가뭄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강원도 삼척·정선·태백에 물을 공급하는 광동댐도 곧 가뭄단계가 '주의'가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소양강댐과 충주댐도 가뭄단계가 '관심'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구 온난화가 가뭄과 폭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들이 서로를 부추기는 치명적인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특히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돌발 가뭄(flash droughts)'은 극심한 폭염과 결합할 때 그 피해가 훨씬 커지고, 폭염 역시 가뭄으로 인해 더욱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전 세계적인 식량 안보와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강원대 전자⋅AI시스템공학과 김병식 교수는 강릉 지역의 가뭄 상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27일과 7월 25일을 전후해 '표준화 강수-증발산 지수(standardized precipitation evapotranspiration index, SPEI)'가 급감, 돌발 가뭄이 나타난 것이 확인됐다고 7일 본지에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심각한 돌발가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뭄과 폭염이 어떻게 서로를 증폭시키며,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가뭄이 폭염을 악화시킨다 가뭄은 폭염의 강도를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토양 수분 부족이 지표면의 에너지 분배 방식을 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토양에 수분이 충분할 때는 증발산(evapotranspiration)을 통해 많은 양의 '잠열(latent heat)'이 대기로 방출된다. 잠열은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열(에너지)을 말하는데, 수증기를 만드는 데 에너지가 투입되면서 주변은 온도는 오히려 내려간다. 그러나 가뭄으로 인해 토양 수분이 고갈되면, 식물은 잎의 기공을 닫아 증산 작용을 줄이고, 토양 자체의 증발도 감소한다. 이로 인해 잠열의 방출이 줄어들고, 대신 현열(sensible heat)의 형태로 에너지가 지표면과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수분이 부족할 때 방출된 에너지(현열)는 그대로 주변 공기를 끌어올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표면 온도가 상승하고 대기 온도가 더욱 가열되어 폭염이 심화된다. 이를 '토양 수분-온도 결합(soil moisture-temperature coupling)' 또는 '육지-대기 피드백(land-atmosphere feedback)'이라고 부른다. ◇온난화가 가뭄 피해를 키운다 1901년부터 2022년까지의 고해상도 전 지구 가뭄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이 지난 6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뭄 심각성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뭄 심화의 핵심 동력은 바로 '대기 증발 수요(atmospheric evaporative demand, AED)'의 증가다. AED는 대기 조건(온도·습도· 바람·일사량 등)에 의해 잠재적으로 증발산될 수 있는 물의 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 상승하면, 대기는 수증기를 7% 더 지닐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AED가 증가하면, 토양과 식생으로부터의 증발이 촉진돼 가뭄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AED의 증가는 전 지구적 가뭄의 심각성을 평균 40%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가뭄 피해 면적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간(2018-2022년) 전 세계 가뭄 피해 면적은 1981-2017년 대비 평균 74% 확장됐고, 이 중 58%가 AED 증가 탓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22년은 기록적인 해로, 전 세계 육지 면적의 30%가 중간 정도 또는 극심한 가뭄의 영향을 받았다. 이 중 42%가 AED 증가 때문으로 지목됐다. 유럽의 경우 2022년에는 육지 면적의 82%가 가뭄을 겪었는데, 50%는 중간 정도 혹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이는 강수량이 35% 줄어든 것과 AED가 40% 증가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지역적으로 보면 아프리카, 호주, 북아메리카 서부 및 남아메리카의 건조 지대에서는 AED가 가뭄 추세에 최대 65% 기여하는 등 그 영향이 특히 두드러졌다. 아프리카는 가뭄 추세의 44%, 호주는 51%에 AED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가뭄의 상호 증폭 작용: 악순환의 고리 최근의 상황은 기후변화가 극심한 더위를 낳고 극심한 더위는 가뭄을, 가뭄이 다시 폭염을 부추기는 상호 증폭 작용, 악순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돌발 가뭄이 발생하는 것은 강수량 부족과 더불어 극심한 더위로 인한 AED 증가가 토양 수분을 빠르게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대기기후과학연구소는 지난 6월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돌발 가뭄을 폭염 관련성에 따라 구분했다. '복합 폭염 돌발 가뭄(compound heat flash droughts, CHFDs)'은 극심한 더위를 동반하는 돌발 가뭄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非) 폭염 돌발 가뭄(non-heat flash droughts, NHFDs)'으로 분류했다. NHFDs와 비교했을 때 CHFDs는 피해 정도가 최대 90.8% 더 심각하며, 회복 시간도 8.3%에서 최대 114.3% 더 길다고 보고됐다. CHFDs는 증발산이 심하고 토양 수분을 극심하게 고갈시키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뭄으로 인해 건조해진 토양은 지표면 냉각 효과를 감소시켜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도 한다. 토양에 수분이 부족하면 잠열이 줄어들고 대신 현열 형태로 열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지표면 근처 공기 온도를 상승시킨다. 이는 온도가 더 상승하고 AED가 더 높아지는 '양(+)의 되먹임 루프(positive feedback loop)'를 형성해 가뭄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2023년 여름 중국 북부 폭염-가뭄 사례 2012년 미국, 2010년 러시아, 2015년 남아프리카, 2018년 호주 동부, 2022년 중국 남부 등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이 농업 및 사회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중국과학원 대기물리학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지구의 미래 (Earth's Futur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가뭄-폭염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바로 2023년 여름 중국 북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 사례다. 2023년 6월 22~24일 이 지역의 일(日)최고기온은 35°C를 넘어섰고, 64년 만에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이 폭염은 대기 순환(이상 고기압)과 토양 수분-온도 결합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23년 폭염이 발생하기 전, 5월부터 6월 초까지 중국 북부의 누적 강수량은 1979년 이래 가장 적었다. 이러한 이른 건조한 토양 조건은 육지-대기 되먹임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이상 고기압으로 인한 하강 기류가 공기를 가열하면서 폭염이 촉발됐고, 이에 건조한 토양은 증발 냉각을 감소시키고 현열 방출을 증가시켜 폭염의 강도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표층 열 방출 증가 → 총 구름량 감소 → 토양 수분 증발 강화 → 잠열 방출 감소 → 현열 방출 증가 → 지표면 온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과정으로 설명된다. ◇돌발 가뭄 피해 국내 사례도 국내에서도 2022~2023년 호남지역에서 발생한 극심한 가뭄은 돌발 가뭄으로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강원대 김병식 교수팀은 최근 한국방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강원도 지역의 11개 기상관측소의 2015~2024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돌발가뭄과 일반가뭄의 발생특성을 분석한 결과, 10년 동안 39회의 돌발가뭄과 96회의 일반가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강원도 지역의 돌발가뭄은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해안지역보다는 내륙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되는 것이 분석됐다. 김 교수는 4주 이내에 SPEI가 -2 이상 급감하고 최종 지수가 -1.5 이하에 도달하는 경우를 돌발 가뭄으로 정의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돌발 가뭄의 발생이 기상학적, 증발산 조건 그리고 지형특성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생태계 및 식량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 폭염과 가뭄의 연쇄 작용은 전 세계 생태계와 식량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은 생태계 생산성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경작지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져 전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복합 폭염 돌발 가뭄은 식생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탄소 흡수를 감소시키고, 장기적인 토양 수분 고갈과 산림 화재 증가, 나무 고사 등의 현상으로 이어진다. 농작물의 주요 성장 시기와 가뭄이 발생하는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농작물은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에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농업 위험은 지난 수십 년간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에서 크게 증가했는데, 중국·인도·인도네시아와 같은 취약 국가들이 복합 폭염 돌발 가뭄 발생 가능성 증가로 인한 인구 및 농업 위험에 직면해 있다. ◇돌발 가뭄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기온 상승에 따른 대기 증발 수요(AED)의 증가는 미래의 온난화 시나리오에서도 심각한 가뭄을 유발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가 지금 추세로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2023년 중국 북부 폭염과 같은 극단적인 온도가 '일상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반대로 중국 북부의 경우 세기 말에는 육지-대기 결합의 영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없지는 않다. 이는 동아시아 여름 몬순 시기에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토양 수분도 증가해 육지-대기 결합의 강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근에 발표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미래에 폭염을 동반한 돌발 가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대비가 시급함을 강조한다. 수자원 인프라를 확충하고, 생태계 회복력을 높이면서, 더 나은 사회경제적 및 환경적 적응 조치 등을 강구해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 세계 식량 안보에 직결되는 만큼 가뭄에 취약한 경작지의 철저한 관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 한국 2035년까지 온실가스 60% 줄일 수 있다

[편집자 주] 지난 여름 시민들은 폭염과 폭우가 교차한 극단적인 날씨를 경험했다. 기후변화가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전 세계 인류 역시 열병을 앓고 있는 지구를 몸으로 겪고 있다. 본지는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국내외 기후 관련 과학기술과 정책을 점검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짚어보는 '강찬수의 기후 신호등'을 주 1회 연재한다. 지구가 되돌려주는 경고를 전하고,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을 제시하며, 위기를 극할 수 있는 희망을 소개할 예정이다. “한국은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60% 감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는 것도 힘겹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2035년까지 6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상인 교수와 최현태 연구원, KAIST 녹색성장 지속가능대학원(GGGS)의 전해원(해원 맥전)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저널인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제출한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주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2035년 국가 감축 목표(2035 NDC)를 마련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지난 8월 18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NDC 초안을 9월 중에 만들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10월에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정에 가입한 세계 각국은 협정에 따라 2035년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감축할 것인지 계획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2035년 NDC의 제출 기한은 당초 지난 2월 10일이었으나, 9월로 연장됐다. 지난달 4일 기준으로 제출한 나라는 27개국에 불과하다. 박 교수팀의 논문은 현재 동료 검토(peer review)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정부가 2035 NDC를 한창 마련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해 본지는 저자에게 양해를 구해 논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 미국 태평양북서부 국립연구소(PNNL) 등에서 연구하다 2년 전부터 KAIST로 옮긴 전해원 교수는 “이번 연구가 정부의 2035년 NDC 수립에 참고가 됐으면 한다"면서 “제시한 시나리오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부문에 걸친 체계적인 전환, 제도적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행 정책으로는 2030년 목표 달성도 불충분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대비 1.55℃가 상승했다. 파리기후협정이 제시한 지구 기온 상승 마지노선인 1.5℃를 초과한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는 3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평균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어서 한 해 기온이 1.5℃를 초과했다고 해서 당장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져온 추세를 본다면 1.5℃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상황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 각국은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2030년 감축목표를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UNFCCC)에 지난 2016년에 제출했다. 당시 각국이 제출한 감축목표를 다 이행하더라도 지구 기온이 2.7℃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고, 파리기후협정의 마지노선은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각국은 2020~2021년 파리협정 이행점검(Global Stocktake)에 맞춰 2030 NDC의 목표를 상향해 제출했다. 한국은 화석연료 사용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의 배출국인데, 당시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하지만 서울대·KAIST의 이번 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34%(30~41% 범위)의 배출량 감소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이 현재 정책 프레임워크인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탄소중립 핵심기술 개발사업' 등을 분석한 결과다. 이러한 결과는 2035년에 이르러서도 2030년 목표치(40% 감축)를 달성하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에서 못 줄인 온실가스를 해외에 나가 줄이겠다는 국제 상쇄 메커니즘이 제대로 이행되더라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은 2030년 NDC가 국제 탄소시장 메커니즘에 상당 부분(37.5MtCO₂e)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 상황에 따라 이행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37.5MtCO₂e는 CO₂로 환산한 온실가스 배출량 3750만톤으로, 2030년 전체 감축량의 12.9%이다. 이제 2035 NDC를 제출해야 하는 세계 각국은 더 강화된 감축목표를 제시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목표도 감축하기 어려운데, 얼마를 더, 어떻게 줄여야 할까. ◇강력한 정책 도입하는 '야심찬 시나리오' 적용해야 연구팀은 기존 시나리오로는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만큼 '강화된 야심찬 시나리오(Enhanced Ambition scenario)'를 모든 부문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로 야심차고 실현 가능한 조치들을 각 부문에 반영해서 실행한다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60%(54~64% 범위)의 배출량 감축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면 국제 탄소 상쇄에 의존하지 않고도 2030년 NDC를 초과 달성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연구팀이 제시한, 야심찬 시나리오에 따른 부문별 주요 감축 동력은 다음과 같다. ▶전력 부문: 전체 감축량의 가장 큰 비중(약 50.3%)을 담당하게 된다. 2035년까지 암모니아 혼합소각을 포함한 석탄발전의 완전한 단계적 폐지를 해야 한다. 또한, 연간 4GW(기가와트)의 해상풍력 발전 용량 확대, 2030년까지 태양광 발전 용량 3배 증대 등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장이 중요한 몫(2035년 41%)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달성한다면 2035년에는 탄소 없는 전력 비중이 69%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탄소포집저장(CCS) 기술도 일부 확대 적용되지만, 경제성·사회적 수용성 문제로 불확실성 존재하므로, CCS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를 더 높여야 안정적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업 부문: 전력 부문 다음으로 많이 줄여야 하는 부문이다. 수소환원제철을 도입하면서 기존 제철 고로(용광로)는 수명 연장을 제한하면서 2035년까지 완전 폐지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 탄소차액계약(CCfD)을 통해 탄소가격을 CO₂ 1톤당 8870원에서 3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CCfD는 기준(약정) 탄소가격을 정부와 기업이 미리 정한 다음, 실제 탄소가격이 약정보다 낮으면 정부가 보전금 지급(지원)하고, 실제 탄소가격이 약정보다 높으면 기업이 초과분을 정부에 환급하는 방식이다. 또, 저탄소 시멘트 확산, 바이오 기반 화학 원료 사용, 플라스틱 재활용 확대 등도 주요 내용이다. 저탄소 시멘트(Limestone Calcined Clay Cement, LC3)는 석회석과 소성 점토(칼시네이티드 클레이)를 혼합해 클링커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 시멘트를 말하는데, 클링커 함량 약 50%로 기존 포틀랜드 시멘트보다 CO₂ 배출을 최대 40% 절감할 수 있다. ▶수송 부문: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ICEV) 판매 전면 금지를 포함한 제로 배출 차량(ZEV)의 급속한 보급(승용차 신규 판매의 55.3%, 화물차 신규 판매의 60.7%), 연료 효율 표준 강화, 대중교통 보조금 확대 등이 주요 감축 수단으로 제시됐다. 이를 위해 ZEV 보조금을 2035년까지 연장하고, 충전 인프라 지원을 확대할 것을 제시했다. ▶건물 부문: 강화된 제로에너지빌딩(ZEB) 표준의 적용, 전기화 장려, 에너지 효율 자원 기준 강화, 제로 배출 가전제품 의무화 등을 시행한다면 이 부문에서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48.5%의 배출량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타 부문 (농업, 폐기물, 불화가스): 벼논의 물 관리를 개선해 메탄 발생을 억제하고, 질소 비료 사용 감소, 저메탄 사료 보급, 전국적인 매립 금지, 메탄 및 수소불화탄소(HFC) 세금 부과, 직접 공기 포집(DAC) 용량 증대 등이 포함된다. ◇한국의 감축 목표 상향 요구하는 압력 거세 연구팀의 최현태 연구원은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감축목표 상향을 요구받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한국의 공정한 감축량으로 60% 후반대의 목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감축 수준과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감축량 사이의 격차를 정량적으로 산정한 첫 번째 시도"라고 설명했다.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끌어모아 국제적 요구와 국내 역량 간의 간극을 최대한 좁힐 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전해원 교수는 “한국이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감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면서 “이러한 2035년 감축목표는 2050년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전력부문 석탄 완전 퇴출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산업부문 기술혁신과 제도개혁 △수송·건물 전기화 △메탄·불소가스 대응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화된 시나리오'를 채택하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고, 막대한 재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계의 반발이나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계획만 세우고 책임은 다음 정권에 떠넘기는 식이라면 온실가스 감축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사용한 분석방법은 서울대와 KAIST 연구팀은 이번 분석에서 GCAM-ROK 모델(전 지구적 변화 분석 모델(GCAM)의 국가 맞춤형 버전)을 사용했다. 개별 정책 수단과 기술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상세하게 분석한 뒤 이를 통합하는 '부문별 상향식 정책 정량화 프레임워크'를 적용했다. GCAM은 미국 태평양 북서부 국립연구소(PNNL)의 공동 지구 변화 연구소(Joint Global Change Research Institute)에서 개발한 오픈 소스 다부문 모델이다. 온실가스 및 대기 오염 물질 배출량, 지구 농도, 복사 강제력 및 기온 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포함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GCAM-ROK 모델을 업데이트해 2020년 국가 통계에 맞춰 보정하고, 에너지 및 산업 분야의 최근 부문별 결과를 반영했다. 강찬수 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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