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재계 말말말] 최태원, SK 미래 좌표로 ‘AI·지속가능 경쟁력·사회적 가치’ 던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올해 행보를 꿰뚫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그룹 리밸런싱(사업재편) 작업 등에 집중하며 조용히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지만, 글로벌 빅테크들의 행보가 빨라지기 시작하자 “AI를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며 임직원들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이행(知難而行)'이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했다.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최 회장은 “새로운 시도와 혁신은 언제나 어렵다"며 “지난해 지정학적 변수가 커지고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격변하는 경영환경을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SK그룹의 미래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본원적 경쟁력'을 꼽았다. 최 회장은 “본원적 경쟁력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본질적으로 보유한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의미한다"며 “이를 위해 운영개선(Operation Improvement)의 빠른 추진을 통한 경영 내실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SK그룹이 조직 슬림화와 운영 효율화 등을 추진하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성공적인 리밸런싱으로 내실을 다져 AI 등 미래 신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의 'AI 집중 전략'을 올해 들어 수차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하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1월 'CES 2025'가 열리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황 CEO를 만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 개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지난 10월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황 CEO가 최 회장을 찾아와 별도로 회동했다. 최 회장은 CES 2025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은 SK하이닉스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보다 조금 뒤처져 있어서 상대편(엔비디아)의 요구가 더 빨리 개발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최근에는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를 조금 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부침도 있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문제가 된 SK텔레콤(SKT) 사이버 침해 사고 관련 지난 5월7일 '데일리브리핑'에 직접 참석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SK 전 그룹사를 대상으로 보안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보보호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중립적 시각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월 열린 SK그룹 경영전략회의 키워드 역시 '반성'이었다. 최 회장과 그룹 경영진들은 “경영의 본질로 돌아가 신뢰를 회복해야"는 메시지를 공유했다. 최 회장은 8월 '이천포럼'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구성원들에게 'AI 삼매경'에 빠져들기를 촉구했다. 그는 “구성원 개개인이 AI를 친숙하게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혁신과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현재 우리가 하는 업무의 대부분이 AI 에이전트로 대체될 것"이라며 “사람은 창조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최 회장의 자신감은 지난달 열린 'SK AI 서밋 2025'에서 꽃폈다. 그는 “SK하이닉스는 초고용량 메모리 칩을 개발하거나 낸드 콘셉트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며 “기술력은 업계에서 충분히 증명됐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젠슨 황 CEO조차도 우리에게 더 이상 개발 속도 얘기는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충분히 준비돼 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지속가능 성장 위해 사회적가치 포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5'에서 “현재 자본주의 아래 우리는 환경 문제, 사회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해 얻는 사회적가치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자본주의는 재무적 측면만 집중하고 사회적가치에 대해서는 보상이나 인센티브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가치란 단순히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을 뜻한다. 최 회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회적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가치의 측정과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성원들에 대한 날 선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성과급 문제 관련 SK하이닉스에서 내홍이 발생하자 “(구성원들이) 성과급 1700%에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들었다"며 “3000%, 5000%까지 늘어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K하이닉스가 반도체 1등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불안이 존재한다"며 “보상에만 집착하면 미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도 일침했다. 최 회장은 올해 SK그룹 인사에서 '안정 속 혁신'을 택하며 내년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미국 테라파워 등 차세대 사업으로 향해 있다. 앞으로도 AI 등 신사업 관련 다양한 발언을 이어가며 임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2025 재계 말말말] 이재용 “저력 잃었다” 질타에 삼성전자 ‘체질 개선’ 심기일전

삼성전자는 올해를 '통렬한 반성'으로 시작해 '초격차 재확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메시지 역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는 통렬한 비판에서 “열심히 일하고 왔다"는 경영 성과의 기대감으로 달라졌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별도의 신년사 없이 올해 업무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전문경영인들이 임직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이 회장은 조용히 '현장 경영'을 펼치는 문화를 수년째 조성하고 있다. 이 회장은 연초부터 강렬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3월 열린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영상을 통해 말했다. 앞서 연초 열린 사장단 세미나에서도 같은 영상을 공유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임직원들을 질타했다. 이어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경쟁사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주권을 내주며 '반도체 왕좌'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걱정에 휘말렸다. 신성장동력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고 TV·가전·스마트폰 등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직면했었다. 이 회장의 의지는 3월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만난 뒤 돌아오는 공항에서도 느껴졌다. 그는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리에서 '시 주석과 회동 소감', '반도체 위기론' 등에 대한 질문을 다수 받았지만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고 귀가했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이 회장이 10년가량 이어온 '사법리스크' 족쇄를 풀고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도 다시 향상되기 시작하면서다.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를 벗는 과정에서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관련 2월 2심과 7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자 “열심히 하겠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이밖에 지난달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한미 관세협상 후속 대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면서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한 우려가 일부 있겠지만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며 “삼성은 투자 확대 및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과 상생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회장은 '현장 경영'에도 속도를 냈다. 글로벌 시장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빅테크 등 우군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지난 3월 중국 출장길에서 샤오미·BYD 등 본사를 방문했고 4월에는 일본에서 토요타 경영진들과 회동했다. 7월과 12월에는 미국 출장길에 올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과 의견을 나눴다. 이 회장은 특히 최근 보름여간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열심히 일하고 왔다"는 말을 남겼다. 상반기 '위기설'이 돌 때와는 분명 다른 행보였다. 짧은 문장 뒤에는 테슬라, AMD,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연쇄 회동하며 AI 반도체와 파운드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의 '인맥 리더십'은 실제 성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그룹 회장을 만난 뒤 삼성전자는 다양한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암바니 회장은 '아시아 최대 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7월에는 테슬라와 파운드리 단일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인 165억달러(약 22조8000억원) 딜을 성사시키는 '잭팟'을 터트리기도 했다.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한국에서 만찬을 함께 한 뒤로는 전장 부품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 관련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8월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회동한 이후 인공지능(AI) 분야 청사진을 함께 그리고 있기도 하다. 이 회장은 올해 이례적으로 일반인들과 접점을 만들며 소탈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방한한 젠슨 황 CEO와 이른바 '치맥회동'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는 당시 시민들에게 “치킨 좀 드실래요?"라고 말하고 소탈하게 '소맥'을 즐기는 모습 등을 보여줬다. 그는 또 이 대통령과 황 CEO가 회동하는 자리에 동석해 “삼성과 엔비디아는 25년 넘게 같이 일을 한 친구 관계"라며 “생전 처음으로 젠슨이 시켜서 골든벨을 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앞으로 각 사업장 '현장 경영'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 반도체 업황이 개선됐고 '트라이폴드 폰' 등 스마트폰 신제품 흥행에 성공한 만큼 연구개발(R&D) 및 인수합병(M&A) 등에 더욱 신경을 쓸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에도 경기도 기흥캠퍼스 위치한 DS부문 차세대 R&D 단지 'NRD-K'를 비롯해 메모리 사업장을 두루 살펴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는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말했다. 내년 초에는 삼성그룹 전 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새해 첫 만찬을 갖고 사업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6일(현지시각) 개막하는 'CES 2026' 참석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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