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특별 기고] 이젠 전문화 된 항공 안전 전담 기관을 생각해야 할 때다

2025 을사년 새해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28일, 김해국제공항에서 아찔한 에어부산 391편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후미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번져 승무원 포함 총 176명의 탑승 인원이 비상 탈출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소방 당국의 침착한 대응과 적극적인 진화 노력으로 항공기만 소실되는 선에서 인명 피해 없이 참극을 막은 건 정말 기적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는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로 무고한 179명이 희생된 참사가 벌어졌다. 이처럼 연달아 발생한 대형 항공 사고에 모든 국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초동 조사 결과 조류 충돌 등 여러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고, 에어부산 화재 사고의 발화점은 승객의 짐 속에 있었던 보조 배터리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두 건의 공통점은 항공사의 통제 가능 범위 밖의 요소가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같은 일이 다른 항공사에서 일어났다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나 확신이 없다. 항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정책이 적용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아직도 존재하고, 이들의 위험성 정도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위험 요소를 제거·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발생 시 필연적으로 규모가 클 수 밖에 없는 항공 사고의 속성에 비춰 볼 때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항공업계의 경제적 규모는 현재 36조원 수준이나, 2030년 경 58조원으로 급성장하고 2만5000개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돼 전망이 밝다. 그런 만큼 생태적으로 구조가 매우 복잡해 톱니 바퀴가 매우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참여자들의 높은 이해도와 안전 의식,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매우 중요한 분야다. 바로 이 부분이 국토교통부를 위시한 모든 업계 관계들이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는 마음으로 항공 산업과 안전을 위해 힘을 모아 나아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작금의 사고들을 바라보며 항공 산업의 중요한 요소인 안전에 대한 접근 방법과 시각을 새로이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간 양적 팽창에 치중했던 업계 전반을 돌아보고 이번 사고들로 드러난 여러 불안전한 요소들을 저인망식으로 점검해 국제 기준에 비해 미비했던 부분을 찾아 시정함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국토부 산하로 집중된 항공 관련 조직들의 구성과 기능, 독립성·전문성을 점검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전문 인력의 양성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 업계 기반을 새롭게 다지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항공 사고의 위험 요소는 현장 최일선의 종사자가 가장 잘 안다. 정책을 입안하는 조직들은 인지하기 어려운 위험 요소들을 현업자들과 '안전 보고 제도의 운영'이라는 상호 작용을 통해 공유하고, 정책화하는 공고하고도 선진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항공 안전 보고 제도 자체는 존재하지만 항공사나 업계 종사자의 신뢰와 참여가 결여된 속 빈 강정이다. 국내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조직에서 찍힌다거나 관리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현장을 지키는 종사자는 안전 문화 창달을 위한 참여자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라는 수동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보고를 한다고 해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없을진대, 하물며 굳이 처벌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경험담과 위험 요소를 보고할 분위기 형성이 안 돼있어서다. 종사자의 실수를 숨기게 만드는 종래의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고, 현업자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은 항공 안전 시스템 개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실질적이고 강력한 면책 기반의 보고 제도 운용과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 안전 정책으로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이러한 비 처벌 공정 문화(Just Culture)와 신뢰에 기초한 보고 체계의 안전 문화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항공 안전 대책이라고 강조한다. ICAO 36개 이사국 중 33개국은 이미 별도의 항공 안전 관리와 사고 조사에 관한 전문 기관을 독립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없다. 항공 사고 조사 전문 기구의 독립과 함께 전문 인력이 항공 안전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항공안전청' 설립은 한시가 급하다. 여러 사고로 혼란스러운 지금이야말로 항공 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이해와 종사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현장을 잘 이해하고 전문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 독립 기관을 설립하기 좋은 때다. 또한 항공 안전을 위한 총체적인 점검과 과감한 제도 정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또 항공 안전 문화가 정착돼 '누가 했느냐?'는 추궁보다는 '무엇이 부족했나?' 하는 자성에 가까운 질문이 먼저 나오는 항공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이상한 나라, 이해할 수 없는 국민

이상한 나라, 이해할 수 없는 국민. 외국에서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평가하는 말이다. 남들은 수백 년 걸린 경제발전을 불과 30년 만에 해치운 나라, 그것도 가진 것이라곤 먹여 살릴 국민밖에 없는 나라, 전 국토가 잿더미로 변한 참혹한 전쟁을 겪어 아무 희망이 없던 나라. 그런 나라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과 첨단산업에 도전했고,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에 우뚝 섰다. 그것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시민의 힘으로 군사독재를 무너뜨리더니 마침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일구어냈다. 이제 세계인은 대한민국을 알고 싶어하고, 이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 한다. 즉석 라면의 매운 맛에 반해 눈물을 쥐어짜며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을 먹는다. 한글을 공부하고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 유학을 온다. 입으론 BTS나 블랙핑크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으론 그들의 춤을 따라 둠칫거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발달과 유튜브 등 SNS의 보편화에 올라탄 우리의 문화예술가와 창작가들은 세계인을 대한민국의 문화영토에 초대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국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80년을 살아온 우리가 자해를 통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빠져 30여 차례 탄핵으로 윤석열 정부를 흔들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초년생 윤석열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윤석열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다혈질의 고집쟁이였다. 불과 0.73%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운명이었다. 더욱이 그 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국회에 지방권력까지 쥐고 있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첫 시험은 인수위 시절 맞은 지방선거였다. 대선 승리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 추문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인구 1,430만 명의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지사 선거에 국민의힘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국힘 후보 중 가장 중도와 청년세대 확장성이 큰 유 후보는 그대로 두면 국힘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용산이 개입해 인수위 대변인이었던 김은혜를 억지로 밀어 후보로 만들었고, 결국 민주당 김동연 후보에 패했다. 누구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유 후보에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으로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치명상을 입었다. 만일 유승민 후보를 선택했다면 수도권을 모두 국힘이 가져올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유 후보가 경기도지사가 됐다면 이재명 대표의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날 경기도의 모든 자료가 모두 쉽게 공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국힘 내부의 파워 게임에 어설픈 개입으로 용산은 점점 더 진흙탕 속에 빠져들었다.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이나 당 대표 경선에서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는 과정, 김기현 대표의 사퇴와 연이은 비대위 체제의 불안정성, 한동훈의 비대위원장 차출과 그와의 끝없는 갈등 등. 윤석열의 선택은 항상 갈등을 잉태했고, 결국 22대 총선은 민주당에 패배하기 전에 이미 내부가 스스로 무너진 결과였다. 국내정치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활용한 국제정치경제체제의 변화 시도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다. 세계 일류로 성장한 기업들의 노력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오직 단합된 힘이 필요하지만, 내부는 또 헌법재판소를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한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이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저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다. 쓰레기라면 일거에 쓸어버렸을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이 나라를 맡겨 둘 것인가. 우리가 무너진다면 세계인들은 또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토록 잘살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을까. 정말 이상한 나라고 이해할 수 없는 국민이라고. 홍성걸

[특별 기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을 이야기하자

최근 연이어 발생한 두 건의 항공기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조위는 항공과 철도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을 방지하며 안전 개선책을 마련하는 핵심 기관이다. 현재 사조위는 조직 구조상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운영돼 사고 조사 과정에서 이해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국민 신뢰 확보는 물론 대외적인 신인도 측면에서도 구조적 한계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공정하고 객관적 조사의 진행을 위해 시급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항공 산업의 급속한 양적 팽창과 더불어 다양한 항공 사고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문적인 조사와 대응을 위해 이제는 독립적인 사고 조사 기관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를 해외 선진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은 독립적 사고 조사 기관을 운영하고 있어 높은 신뢰도를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7년 설립된 미국의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연방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관으로, 업계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공정한 항공·철도·도로·해양 사고 조사 역할을 진행해 왔다. 이곳은 연방항공청(FAA) 등 정책 집행 기관과의 이해 충돌을 방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사고 원인 분석과 안전 권고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NTSB는 전 세계 항공 사고 조사 조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항공사고조사위원회(AAIB)는 교통부(DfT) 산하에 있지만 법적으로 독립된 권한을 보장받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속서 13에 따라 사고 조사의 목적이 책임 추궁이 아닌 안전 개선에 있음이 명확히 규정돼 있어 정부나 기업 등 외부의 개입을 불허한다. 또한 조사 보고서와 권고 사항은 AAIB 외의 어떤 기관도 수정할 수 없고, 사고 조사 방법과 범위를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 같은 독립성 보장 체계 덕분에 AAIB는 사고 조사 과정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항공사고조사국(BfU)과 호주의 교통안전국(ATSB) 역시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고 조사 기관으로 운영된다. 특히 ATSB는 조종사가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하는 구조를 채택해 사고 분석 과정에서 현장 경험을 지닌 전문가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위의 사례와 같이 사고 조사 기관이 정책 집행 기관과 분리되면 이해 관계에 따른 유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객관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만일 사조위가 국토부로부터 독립할 경우 사고 조사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또한 사고 원인 분석의 신뢰도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각종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국민 모두가 납득할만한 조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성을 갖춘 사조위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토부와 관련 기관에 좀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안전 개선 권고를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정책 집행 기관이 조사 결과를 수정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안전 대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조종사와 항공 전문가가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하면 실제 비행 중에 발생하는 문제와 조종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심층적이고 실질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더불어 조종사의 심리·생리적 상태를 고려한 선진적인 조사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사고 예방을 위한 더욱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ICAO와 국제철도연맹(UIC) 또한 독립적인 사고 조사 기구의 운영을 강력히 권고한다. 사조위의 독립은 우리나라가 국제 기준을 준수하는 국가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해외 사례를 참고할 때 독립 기관을 운영하는 국가일수록 사고 발생 후 개선 조치의 효과가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항공 사고 조사는 단순한 원인 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정이다. 사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더 미뤄져서는 안 된다. 정부와 항공 관계 당국이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즉각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해 국민이 신뢰하고 안심하는 선진화된 안전한 운항 환경이 구축될 날을 기대해 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신연수 칼럼] 대한국민, 폭싹 속았수다

기우였다. 헌법재판소가 5대 3으로 갈려 탄핵 선고를 하지 못한다는 우려, 4대 4로 기각되리라는 예상, 모두 빗나갔다. 재판관 8명의 성향은 각기 달랐지만,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해 파면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원일치였다. 돌아보면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재판관들이 진영으로 갈렸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헌재 폐지론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개인적 정치 성향보다 공적 책임과 법리를 우선했고,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행스런 일이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들이 많이 드러났다. 그 중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가 사법체계에 대한 조롱과 불신이었다. 대한민국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윤석열의 헌법 무시와 아전인수식 법 해석은 심각했다. 법치주의를 제일 중시해야 할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대놓고 법원과 판사를 공격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재판을 지연시키고, '정치 검찰'이란 비판 뒤에 숨어 여러 가지 범죄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은 국민들에게까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헌재의 이번 선고로 가장 첨예했던 불신이 해소됐다고 해서, 모든 걸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흔들었던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논란이 많은 헌재 재판관 임명 제도나, 문재인 정부 시절 졸속한 공수처 입법으로 대통령 수사와 기소에 혼란을 일으킨 사법체계도 세심하게 손봐야 할 것이다. 123일간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아픔 두 번째는 극단적인 사회 분열이다. 헌재 근처와 용산, 광화문 일대는 날마다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등을 지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엔 회복하기 어려워 보이던 극심한 갈등도 다행히 선고 이후엔 잦아들고 있다. 아직 일부 극단층이 현실을 부정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77% 라는 압도적 다수가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동안 불거진 분열과 갈등을 긍정적 참여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세 번째로 아픈 부분은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에 대한 깊은 회의다.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삼각대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발목을 잡는 지옥도를 우리는 3년 가까이 지켜봤다. 민주당과 국힘은 내가 잘해서 표를 얻기보다 상대방의 잘못에서 이득을 얻는 '적대적 공생'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관용과 자제, 타협이 없는 양당 대립이 줄탄핵과 줄거부권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이없는 파국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론 같은 가짜뉴스들이 언론자유의 틈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기생했다. 얻은 것도 있었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줄 알았던 젊은이들이 광장 전면으로 나왔다. 계엄령 시행에 소극적이었던 군인들, 그리고 촛불혁명을 '빛의 혁명'으로 이어받은 청년들은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한 MZ세대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청년들의 참여를 좋은 정치 문화로 이어갈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 유튜버나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단물만 빼먹는 가짜뉴스에는 책임을 묻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정책이 아니라 정당과 인물에 대한 호감도로 뽑는 미인대회 식 선거제도와 정치체제를 보완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고 뽑았다가 다시 파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아픔을 도약의 기회로 전환할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는 저서 에서 독재 국가와 무정부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있다고 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지만,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려면 강력한 시민사회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1987년 민주화를 이루고도 계속 고단한 길을 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한 회복력을 가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동안 동네 식당들은 텅텅 비고 직장인들은 불안감에 일손을 놓았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통과 갈등, 눈물과 환호를 거치며 우리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맬 힘을 얻었다. 최근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제주도 사투리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위로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이슈&인사이트]트럼프 관세 드라이브, 미국에 부메랑 될 것

전통적으로 미국은 '위대하고 특별한 나라'라는 신념에 입각하여 자유와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이타적인 정책을 전개해 왔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로서 역할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하여 관세 드라이브를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방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공세적인 정책을 전개해고 있는데, 먼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위반하면서까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다. 더구나, 불법이민자 축소 등 특정 정책목표와 연계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는데, 콜롬비아에 대한 관세부과는 대표적인 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이어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 미국은 드디어 2일(미국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발효일인 9일부터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국가별 상호 관세율은 한국 25%, 중국 34%, 유럽연합(EU) 20%, 일본 24%, 인도 26%, 베트남 46%, 대만 32%이다. 또 태국에는 36%, 스위스 31%, 인도네시아 32%, 말레이시아 24%, 캄보디아 49%, 영국 10%, 남아프리카공화국 30% 등이 적용된다. 중국, EU 등이 맞대응을 예고하면서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했던 글로벌 통상 질서가 급변할 전망이다. 관세 부과는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데,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선거 운동 중 '임기 첫날'에 물가를 잡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이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관세를 매기는 목적은 제조업·첨단산업 등을 육성하고 관세를 통해 증가된 세수는 법인세 인하 등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것이라고 하나, 벌써 경제 침체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상대 국가들이 맞대응하게 되면서 수출 타격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드라이브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 경제는 나쁘지 않다.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고용지수도 좋으며, 주가는 매우 높다. 무리하게 관세라는 구닥다리 무기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가? 그것은 경제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싸구려 부동산 업자 출신 트럼프의 보여주기식 과시욕 때문이다. 우방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국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 반미 정서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 가는 여행객이 감소하고 있어, 여행수지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지도적 위치가 흔들릴 것이다. 그로 이로 인한 빈자리를 중국이 노릴 것이다. 지난 3일 세종연구소 개최 포럼에 참석한 찰슨 플린 전 미대평양육군사령관이 트럼프 정책으로 “America is not alone."(미국이 외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세계 지도 국가에게 이러한 우려가 제기된 것만 해도 심각한 것이다. 우리가 더 걱정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되고 국제 교역은 '빙하기'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인 한국으로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 영향으로는 대미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은 자동차, 반도체, 석유제품, 배터리 등인데, 특히 자동차 수출이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캐나다·베트남 등 한국기업이 다수 진출한 지역에 고관세가 부과되어 한국 기업 수출에 영향을 받음은 물론, 중간재 수요 감소에 따른 한국산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국가적 리더십 공백인 상황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까지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의 새로운 통상 규칙을 수립해야 하는 동시에, 글로벌 관세전쟁 격화 대응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 상호관세율이 일본은 24%인 데 비해 한국은 25%로서 1% 더 높다. 관세전쟁 상황에서 리더십 부재는 뼈아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업계, 노동계 모두가 비상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야당 등 정계도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성조기를 흔든다고 해서 미국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

광장에서 그들은 외쳤다. “대통령을 지켜라!" “공산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구하자!" 그들의 손에는 두 개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한쪽에는 태극기, 다른 한쪽에는 성조기. 그 깃발이 흔들릴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논리는 더욱 허약해졌다. 극우는 늘 그랬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도덕적 자산이 없을 때, 외세의 이름을 빌린다. 그것이 1980년 광주 학살 당시 '반공'을 외치던 전두환의 논리였고, 2025년 탄핵 직전 계엄령을 검토한 윤석열의 마지막 언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에 그 손에 들린 성조기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백악관은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헌법기관이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 국무부는 덧붙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헌정 절차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확고하다." 즉, 미국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헌법재판소 파면 사태를 두고 어느 한 인물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과 제도, 그 민주적 절차를 지지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성조기를 휘두르는 군중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 깃발은 더 이상 광장의 선동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1961년, 1980년, 2025년,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세 명의 권력자는 공통된 궤적을 그린다. 자유와 정의, 반공을 기치로 등장했으나,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헌법을 짓밟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며, 군 혹은 검찰 권력을 동원해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 박정희는 1961년, 장면 내각을 탱크로 밀어버렸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하고 1980년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하며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윤석열은 2025년, 자신의 일방적인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거대 야당을 손보고, 자신의 범법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계엄령 선포와 군 동원을 은밀히 논의했다. 그들의 언어는 항상 비슷했다. “혼란을 수습하겠다."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 그러나 그 실체는 헌법의 절차를 부정하고, 권력 연장을 위한 체제 전복 시도였다. 미국은 항상 그들을 지지했는가? 박정희 쿠데타 당시 미국은 분명히 반대했다. 매그루더 장군은 한국군에 장면 총리 정부만을 따르라고 명령했고, 대리대사 마셜 그린은 헌정질서를 지지하는 공개 성명을 냈다. 그러나 냉전 속에서 미국은 곧 박정희 정권과 손을 잡았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타협이었다. 1980년,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학살했을 때, 미국은 침묵했다. 카터 행정부는 인권을 중시했지만, 한반도에서의 정권 안정이라는 명분에 밀려 비극을 묵인했다. 그 침묵은 미국의 오점으로 남아 지금도 비판받는다. 그리고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고, 헌법재판소가 그의 탄핵을 결정하자, 미국은 이번엔 확실히 말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헌법의 편에 서겠다고.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침묵과 타협을 반성한 메시지이며, 한국의 시민들이 세운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존중이다. 윤석열을 지지한 극우 군중은, 자신의 주장이 미국의 가치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고 흔든 성조기는, 사실상 그들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 깃발이 상징하는 것은 헌정질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 아닌, 민주주의와 절차에 대한 신뢰였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흔든다고 미국이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태극기를 두른다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헌법을 지키고, 국민의 뜻을 따르며, 법과 제도에 따라 권력을 이양하는 것. 그것이 미국이 한국에게 바라는 동맹의 조건이며, 대한민국이 스스로 쟁취한 민주공화국의 핵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윤석열까지 헌법을 파괴한 자들은 권력을 가졌을지언정, 역사의 편에 서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제, 그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성일권

[박원주 칼럼]관세 폭탄, 대한민국이 트럼프에 대처하는 법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쏘아 올린 관세 폭탄이 드디어 터졌다. 2025년 4월 5일부로 모든 수입 대상국에 적용되는10%의 기본관세가 시행되었다. 9일부터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소위 '최악의 침해국'으로 분류된 60 여개국에 국가별 상호 관세가 발효된다. 우리나라가 적용 받게 되는 최종 관세율은 25%, 미국과 FTA가 체결된 국가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2012년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 양국간 교역 품목에 대한 관세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한국이 비관세 장벽과 환율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무역 흑자를 유지해 왔다며, 한국이 사실상 미국에 대해 50%의 관세율을 유지해 왔지만 이중 절반만을 이번 관세율 계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부과했다는 50% 관세율의 계산 근거를 보면 좀 어이가 없다. 실제 우리나라의 비관세 장벽이 수출입에 미친 영향을 본 것도 아니고, 대한무역적자 총액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총금액으로 나눈 것을 관세율이라고 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에게 미국을 상대로는 무역흑자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관세가 아니라 '흑자세(Trade Surplus Tax)'이다. 이렇게 해서 2012년 FTA 체결 이후 활발하게 성장해 온 한미간 교역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더해서 18세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세계 인류가 유사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물질적 성장을 구가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의 역사와 상호신뢰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금이 갔다. 2차 세계대전 후 솔선해서 전 세계의 자유무역 질서를 만들고 지켜왔던 그 미국이 바로 그 파괴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당장 미국이 직면한 어마어마한 재정적자와 누적부채, 미국 제조업벨트 근로자들의 일자리 등 지금까지 쌓여 온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미국도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번 조치가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미국 국민들은 관세로 인해서 높아진 수입 물가를 직면해야 한다. 관세가 직접 원인은 아니라지만 이미 계란값을 비롯한 필수 소비재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입 원자재를 생산에 투입하는 미국 기업들도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수요 위축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에 악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은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를 더 위축시킬 것이고 기업들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대공황 때처럼 교역 상대국들도 보복 관세로 대응한다면 전 세계가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 뻔한 스토리다. 트럼프도 바보가 아닌데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자국민 상대 모종의 딜(Deal)을 건 트럼프 당장 드는 생각은 트럼프가 전 세계, 그리고 미국 국민들을 상대로 모종의 딜(Deal)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예전 경험 한 자락을 꺼내 보려 한다. 1996년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 부서 실무자였던 필자는 연 2조원 규모에 약간 못 미쳤던 에너지특별회계 예산의 편성을 맡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돈인데, 늘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사업이라서 그런지 업무를 맡게 된 첫 주 필자에게 와서 자기 사업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와 달라 해도 다들 바쁘다며 소식이 없었다. 사업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세출과 세입의 아귀도 맞추어야 하는데 아무도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협상도 불가능. 답답할 지경이었다. 생각 끝에 각 기관에 통보했다. 세입 여건이 좋지 않아 다음해 각 기관의 사업비 예산을 일률적으로 절반씩 삭감하겠노라고. 다음 날 아침, 일요일이었는데, 출근하면서 보니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 바깥 복도까지 사람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사무실 안쪽으로도 필자의 책상앞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두 자기 기관의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반을 삭감하면 어떤 큰 일이 나는지 절절하게 설명하러 온 분들이었다. 의도치 않았던 갑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덕분에 몇 주만에 깔끔하게 차년도 예산편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증액 요구를 거절 당했어도 감액 안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라 고객 만족도가 의외로 높았다는 것은 덤이었다. 일대다의 협상에서 막무가내 전략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럼프는 이번에 막무가내식 관세 폭탄을 던져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관세를 많이 거둬 재정을 충실하게 해서 미국인들이 내는 세금을 줄여준다는 거지만 계속 이러다가는 다 망할 거라는 걸 트럼프도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투자다.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영토에 공장을 짓고 근로자들을 고용해서 생산 활동을 하면 된다. 우리 반도체 기업과 2차전지 업체들이 미국에 투자했고 이번에는 자동차 업체도 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없는 게 당연한데 자동차 생산시설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No Tariff'라며 생색내듯 말하는 트럼프의 모습이 참 '거시기'했다. 트럼프는 이렇게 해서 외국의 고부가가치 산업과 일자리를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가져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예의 '상호 관세'를 때려 맞지 않으려면 흑자가 최소화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미국에서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해야 한다. 늘어난 수요는 미국 국내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고, 경제 활동이 늘면 세금도 늘어날 것이니 일석이조처럼 보이기는 한다. 또 하나는 미국의 많은 국제관계 이슈를 푸는 것이다. 멕시코 등으로부터의 고질적인 불법이민과 국경경비 문제, 중국에서 대량으로 밀반입되는 신종마약 펜타닐, 우방국들과의 군사비 분담 문제, 우크라이나나 중동 등의 국제 분쟁, 중국의 반도체 굴기, 그린란드의 희토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의 버킷 리스트들을 이거 한방으로 해결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트럼프와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은 달러만 찍어내도 전 세계가 상품을 만들어서 보내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물가가 저렴한 나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국의 고질적인 무역 적자는 이러한 발권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기축 통화국 미국의 위상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엔이나 위안, 심지어는 금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인들은 더 비싼 물가를 감수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더 싼 임금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누적된 재정적자의 큰 원인으로 방만한 사회보장지출을 꼽고 있는 트럼프라면 국민들이 놀고 먹는 것을 그대로 둘 생각도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특유의 '예측불가능성'이다.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부동산 기업인이었고 리얼리티쇼의 쇼호스트이기도 했다. 연간 매출액 6,000만 달러 이상인 트럼프 브랜드의 주인이며 세계 도처에 골프장을 소유한 스포츠 재벌이기도 하다. 요컨데 그는 평생을 딜과 배팅을 통해 성장한 승부사이다. 지금의 관세폭탄 또한 세계를 상대로 한 그의 승부수이며 그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사방에 관세의 깃발을 휘둘러 댈 것이다. 트럼프발 관세폭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1,280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수출의 18.7%에 달했다.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에 버금가는 규모이며, 무역수지는 557억 달러 흑자로 우리 전체 흑자보다도 컸다. 이처럼 우리의 거대 무역 파트너인 미국의 시장 문이 닫힌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의 수출 규모가 뭉터기로 깍여 나갈 것이고, 납품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다. 기업 생태계가 위축되면 그 여파는 내수시장으로 이어져 서민과 소상공인의 삶에도 큰 주름이 잡힐 것이다. 일자리에도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관세 전쟁이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초래된다면 미국 시장만이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 수출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작은 개방경제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그저 트럼프가 빨리 원하는 것을 이루고 이 광기의 행진을 멈추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트럼프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친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구별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무역 상대국은 돈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만큼 우리 경쟁국들도 어렵다는 이야기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맞춰줄 수 있다면 어느 나라든 그의 공격의 사각(안전지대)에 머무를 수 있다. 트럼프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적아를 구별할 것을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리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사실상 단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통해 전략 물자가 아닌 상품이라도 미국 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면 러시아에 수출하지 못하게 했고, 러시아에서 운영중이던 우리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도 철수해야 했다. 러시아 발주로 짓고 있던 선박들의 인도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외에 중국 내에서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투자, 북한과의 경제 협력 등 많은 잠재적 비즈니스 기회들이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가치동맹의 틀 안에서 심각하게 제약되었다. 반면 트럼프의 미국은 자기가 앞장서서 이러한 국가들과의 협상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위기 속에서 미국이 저러고 있다면 우리도 새로운 경제협력의 프론티어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의 미국은 WTO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지금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부당무역행위에 대한 국제기구의 중재와 판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자유무역체제의 요람속에서 성장한 우리에게는 뼈아픈 일이지만 생각을 바꾸어 보면 사소한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중상주의적인 산업정책이 어느 정도는 묵인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유효한 산업정책의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에 더해서, 트럼프가 멋대로 관세 폭탄을 던져댈 수 있는 '별의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칼질은 세계시장 만큼이나 미국 경제에도 큰 상처를 내고 있고 결국 언젠가는 그 부작용이 이익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진 카드중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해야 할 일은 발상의 전환이다. 미국은 우리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핏대를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 비관세 장벽이 수출입 규모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산 소고기나 쌀 수입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이를 풀어도 수입 규모가 크게 늘어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쌀 소비량 자체가 크게 줄고 있고, 소고기 월령제한을 푼다 해서 지금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더 소비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의 규제는 경제적인 것보다는 농민과 축산농가의 우려를 신경쓰는 정무적인 제스쳐에 가깝다. 한중 FTA 등 여타 양자 무역협상에서도 국내 농어민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각종 기금들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집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제는 업종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그 업종에 속한 사람을 보호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길 때가 되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시장을 열어주고 그 업종에서 피해보는 국민들에겐 충분한 소득 보전을 해준다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다. 쓸데없이 행정력을 낭비하고 피해 업종의 국민들에게는 보상도 못해 주면서 무역 상대국으로부터는 대단한 보호무역조치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 더 손해다. 차제에 무의미한 비관세 장벽들을 정비하고 털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신경 쓴다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구매하면 될 일이다. WTO가 제 역할을 하던 때에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교역상대방을 바꾸는 정책이 금기시되었다. 우리의 석유 도입선 전환 보조금이 여러 차례 문제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금은 그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외 국가로부터 도입하고 있는 에너지, 원자재, 첨단기술 제품 등을 조금 멀더라도 미국에서 사 오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약간의 물류비 보조만으로도 도입선 전환의 유인은 충분하다. 사실상 우리 정부가 미 국민들의 생산단가를 보조해 주는 셈이지만 그렇게 해서 관세율 산정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미국외 교역국들과의 협력강화에 주력 미국 이외 교역 상대국들과의 협력을 지금보다 더 심화시켜야 한다. 이번 트럼프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은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 미국 등 특정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방식으로 수출의 볼륨을 키워왔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난 시장접근 방법이긴 했지만 위험도 적지 않았다. 중국의 한한령 등 해당 국가의 변심만으로도 우리 수출의 규모가 널뛰기를 하는 불안정성을 피할 수 없었다. 당장은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해야겠지만 미국 이외의 다양한 시장으로 교역의 폭과 깊이를 키우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 한 갈래로서 우리 이웃 국가들,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데 지금은 잇몸이 서로 깨무는 모양새라 역내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게 사실상 어렵다. 산업협력과 시장 개방을 매개로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새로운 부가가치의 기회를 확산시키는 것이 위기에 대항할 수 있는 유효한 처방이다. 지금 트럼프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립주의에 가깝다. 미국 시장은 앞으로 점차 닫혀갈 것이고 그 시장 잠재력도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장을 다각적으로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우리 위기는 단순한 위협이 아닌 파국이 될 것이다. 첨단산업의 대외 이전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의 수출 시장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두는 전략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자동차업체의 제품이 제 3의 시장에서 국내 수출품과 경합하는 구도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우리 일자리를 미국에 줄 수는 없지 않나? 트럼프가 그토록 원하는 첨단 산업의 미국 투자는 미국 내수용으로 묶어 두는 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무역 규제 염두...전략적 전개 필요 반면, 트럼프의 억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묶어 놓을 수 없는 AI, IT, 플랫폼 등 글로벌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를 지향하는 산업의 경우 적극적인 미국 진출을 통해 더 큰 시장의 이익을 최대한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도 부합할 것이다. 우리 산업의 주력을 이루어 왔던 중후장대 에너지다소비형 제조업에 대해서는 기후위기, ESG 시대의 글로벌 무역 규제를 염두에 둔 전략적 전개가 필요하다. 최첨단의 친환경 생산인프라는 최대한 국내로 유치하되 과다한 탄소컨텐츠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분야나 설비의 경우 우리보다 저렴한 재생에너지 대안이 풍부하고 기후 변화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을 새로운 비즈니스 무대로 삼는 것도 생각해 볼 만 할 것이다.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흑사병에 버틸 수 있는 강건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살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사멸을 피할 수 없었다. 트럼프가 시작한 21세기 관세전쟁은 각국 경제의 건실함과 복원력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흑사병이 될 지도 모른다. 강건하게 버티고 살아 남는다면 또 다른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다. 'Perish or Live & prosper'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박원주

[이슈&인사이트] ‘윤석열 파면’이 남긴 숙제

8년 만이다. 대통령이 또 파면됐다. 사유는 위헌 불법계엄. 군대를 동원해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려 한 내란이었다. 전 국민이 중계방송을 통해 지켜봤고 파면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파면 결정을 마음 졸이다가 환영해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암담하고 참담했다. 헌법재판소 선고문이 명문이라고들 한다. 동의한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법리 해석이나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갖고 있는 상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위치와 과제를 직시하게 한 넉 달이었다. 과제는 상식과 원칙, 합리의 회복이다. 과제가 너무 당연하고도 평범해서, “이미 다 이룬 것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그 상식과 원칙, 합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한 넉 달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현 주소다. 헌재 선고 두 시간 후 윤석열 피소추인은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승복도, 사죄도 아니었다. 누구의 무슨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건가? 애매하다. 일부러 애매하게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과는 한국말 깨우친 삼척동자도 의심의 여지없이,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사과다. 다 떠나서, “야권이 못살게 굴며 빌미를 제공했고 대통령으로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군대를 동원한다? 헌재 선고문이 지적했다시피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식의 변화가 없다. 계엄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은 일점일획도 없었다.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보겠다는 뉘앙스마저 읽힌다. 그래서 더 암담하고 참담하다. 아직도 국민이 만만한가…승복도 사죄도 아닌 '윤석열 입장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힘은 철처하고도 무조건적인 사과와 승복을 천명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자신들 지지자들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헌재결정 승복과 폭력적 대응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게 공동체 속에 존재하려는 정당의 기본 모습이다. 헌재의 파면 선고 순간부로 대선 모드에 돌입했다. 국힘은 윤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내란 옹호/선동에 앞장 선 의원들에 대해 출당 등 징계에 나서야 한다. 그게 사과와 거듭남의 행동표현이다. 사과란 사과받을 국민들이 “됐다, 그만 사과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과 추종세력의 축출 없이, 사과와 선 긋기 없이, 무슨 염치로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소속 대통령이 8년 새 두 번씩이나 파면당했으면서 아직도 주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계엄내란후유증 정리해야 파면 전까지는 '야권'으로 불리운 제 정파도 각종 정치적 식언과 정당 운영의 비민주성, 극단적 지지자들의 훌리건적 언행/편가르기 등에 대해 반성하고 수권 세력의 정책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게 내란 후 치르는 대선의 기본 모습이다. 임기를 조기 강퇴당한 전임자의 후임자를 뽑는 '단순 보궐선거'가 돼서는 안된다. 주권자들이 넉 달 간 거리와 광장에서 외친 것은 내란수괴척결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파면으로 리셋은 끝났다. 다음 정권은 당연히 나, 우리"라며 전리품 획득자처럼 군다면, 미안하지만 번짓수가 틀렸다. 계엄내란의 후유증 청소는 확실히 하되,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극단주의자들의 정치보복 트집을 제압할 수 있다. 계엄내란의 한 원인이었던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음모론을 제어해야 한다. 사회의 성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분파성과 적대성의 위험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도록 지루함을 견디며 끈기있게 대화하고 인식을 모아나가야 한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상식과 합리가 존중받는 풍토, 극단 과격주의자들에게 좌우되지 않는 지적 토대와 의사결정과정 구축이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는 '역사적인 숫자'가 있다. 3‧1, 8‧15, 4‧19, 5‧16, 10‧26, 12‧12, 5‧18, 87년 6월, 4‧16…. 여기에 12‧3이 추가됐다. 12‧3 비상계엄. '역사의 모르스 부호'가 된 숫자들을 열거하고 보니 쿠데타가 세 번이나 된다. (참고 : 물론 이승만 시절에도 계엄이 여러 번 발령됐지만, 전시거나 준사변일 때도 있어 숫자에서는 일단 제외.) 리셋이 필요한 대한민국…상식과 합리 회복 절실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 장기 교착돼있기 때문이다. 윤석열비상계엄내란을 제대로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수록 상식과 원칙, 합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는 아직 원칙과 상식, 합리가 시대정신이어야 하는 수준이다. 현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런 인식에 기초해 양극화해소와, 공교육회생, 저출생극복으로 나아가는 첫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가족들 건강과 취업걱정, 학비걱정, 물가걱정, 노후걱정…들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다행인 걱정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기간이었다. 두 번째 파면이다. 같은 문제로 수업료 두 번 내지 말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전 영역에서 확인되는, 아니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통합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이강윤

[이슈&인사이트] 상호 관세 발효로 사라진 트럼프 풋 기대감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언론에서 잠시 흘러나왔던 보편 관세 발표가 아닌 원래대로 나라별 상호 관세로 발표되었다.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 10%를 부과하고 EU 20%, 중국 34%, 한국 25%, 일본 24%, 대만 32%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현재 미국 무역 대표부(USTR)의 300명도 안되는 인원을 가지고는 국가별 관세를 정하는데 물리적 시간이 짧아 보편 관세가 발표될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을 깬 상호 관세 형태 였다. 관세 발표 후 금과 채권 가격은 오르고 주식은 하락하면서 안전 자산으로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불확실성이었던 관세는 변수에서 상수가 되었다. Yale Budget Lab 연구소에 의하면 20% 관세를 기준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 증가하고 가구당 구매력은 $3,400-$ 4,200로 줄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상호 관세와 자동차에 25% 부과한 관세로 인해 6조 달러의 관세 수입이 생길 것이며 이는 차후 감세 발표안의 재원이 될 거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Liberation Day"에 발표한 관세 부과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감세로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을 회복시킨다는 그의 생각이 들어 맞을 지 아니면 시장이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를 가져올 지 이제는 지켜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만을 겨냥한 관세 정책이 이제는 친구도 적도 구분없이 모두에게 그 화살이 날라왔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팃포택(Tit-for-Tat)으로 세계 각국은 보복을 할 거라 예상한다. EU와 캐나다, 중국, 일본, 우리도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그나마 관세 발표 전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의원 회의에서 “이번 관세가 상한선이 될 것이고 이후에는 협상을 통해 낮출 수만 있다"라는 발언으로 일단 관세를 높게 부르고 깎아 주는 'elevate to deelevate' 전략을 쓰겠다는 힌트를 준 희망 고문은 그나마 다행이다. 주식 시장에 관세 영향이라는 불확실성이 다시 생겨났다. 앞으로의 영향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 주식 시장 참가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는 아이 떡 준다'는 전략을 써서 항상 떡을 얻어먹었다. 우리가 말하는 풋을 끌어냈었던 것이다. 금리를 낮추어 주는 연준 풋(파월 풋), 재정을 푼 옐런 풋이 그 좋은 예다. 풋은 옵션 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걸 방어하는 데 쓰이는 상품의 명칭이다. 이처럼 시장은 관세 발표전까지도 트럼프 풋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주 베센트 장관의 “빚을 키우면서 소비를 늘려가는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무리"라는 발언과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주식시장은 한 시점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며 1기 행정부 때 그랬듯이 월가는 이번 행정부에서도 괜찮을 것"이라는 발언에 덧붙여 결정적으로 상호 관세의 발효로 트럼프 풋 기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받아 든 성적표는 25% 관세다. 한미 FTA로 사실상 무관세였던 우리 수출품의 가격이 이제는 미국에 수출할 때 25% 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쟁국도 비슷하게 관세가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한 나라와 불리한 나라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베센트 장관의 말처럼 이번 관세가 최고치이고 협상을 통해 관세울을 낮출 수 있다지만 우리는 4월 4일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관세 협상은 6월초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을 거다. 기각이 되어도 국정 공백으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할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동안 예샹되었던 관세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얼마나 이에 대한 준비를 잘 하고 있었는지 그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 되었다. 최용

[이슈&인사이트] 국민연금 당면과제는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정치 기반 구축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5년 3월20일 18년 만의 국민연금 모수 개혁안에 합의했다. 연금 개혁 관련 국민연금 중 모수개혁 합의문의 요지는 연금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13%(…26년부터 매년 0.5%씩 8년간)로, 소득대체율은 기존 40%에서 43%(…26년부터)로 인상하는 것이다. 이 합의안에 대해서 여야가 서로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겉으로 보면 국민의 미래세대를 위해서 여야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지만 30·40대 여야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모수 조정안을 요약하면 당장의 보험금 혜택을 인상하고 후세대의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라며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 문제를 외면한 채 추계의 통계적 오차범위에 있는 오십보백보의 개혁안을 갖고 별것이나 하는 듯이 시간을 끌어왔다는 주장이다. 개혁의 본질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의 수익률 제고다. 국민연금공단은 2022년 수익률 –8.22%로 79.6조 원의 적자를 실현했다. 2023년에는 수익률 13.59%, 수익금 126.7조 원에 이어 2024년 기금 적립금 1,213조 원, 수익금 160조 원, 수익률 15%를 기록했다. 1988년 창립 이래 2024년까지 연간 평균 수익률이 6.82%다. 여기서 개혁의 본질을 발견한다. 대체 소득대체율 43%냐 44%냐라고 1%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연간 평균 투자 수익률 1%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논의할 때다. 2024년의 수익금 160조 원은 그해 지급액 40조 원의 4년분이다. 평균 투자 수익률이 1% 올라갈 때 기금 소진 시점은 5년 정도 연장된다. 개혁의 기본 방향은 첫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지배구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산규모 기준 해외 5대 연기금(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CalPERS, 네덜란드 ABP 등을 대상으로 지배구조와 의결권 행사 방식을 조사한 결과,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소속인 경우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둘째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다. 해외의 경우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들이 맡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돼 있고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보면 임기를 다 채운 수장은 30% 내외다. 1988년 창립 이래 36년 동안 18명의 이사장이 취임하여 평균 재임 기간 2년이다. 이는 정권 교체 시마다 임기를 조기 마감한 결과다. 출신별로 보면 관료·정치인·군 출신이 대부분이다. 셋째가 기금운용 베테랑인 실장급 운용역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기금운영본부의 서울 이전이 필수적이다. 대체투자 전문가 등 관련 인재를 위한 적절한 인센티브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넷째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투자 기법의 과학화다. 작년에 작고한 미 버클리대 수학박사인 사이먼의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이공학박사 등 퀀트들로 창립했다. 당사의 메달리언 펀드는 1988~2018년의 30년간 평균 수익률 39%를 달성했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기금 규모가 1,200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이 기금이 고갈될 경우, 근로자는 월 소득의 1/4을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의 실패는 다음 세대에 대한 악몽이다. 본질적인 국민연금의 개혁을 위한 첫 단추는 국민연금이 미래 한국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국민 합의다. 최우선, 최소한의 과제는 “정치적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이사장만은 탁월한 전문가를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는 여야 합의 선언이다. 윤덕균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