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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100세 수명 시대 범국가적 유디 시스템이 시급하다.

100세 시대의 수명연장은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기간의 연장이 될 수도 있고 노쇠 기간의 연장이 될 수도 있다. 활동 수명의 연장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사회 시스템의 유디화다. 유디(UD: 유니버살 디자인)는 휠체어 장애인이었던 미국인 로널드 메이스가 1980년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나이·장애·언어 등으로 제약을 받지 않도록 제품·시설·서비스를 설계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다. 유디는 장애인 중심의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개념에서 시작되어 최근에는 고령화·다문화 등 사회환경의 변화로 인해 모두에게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한 설계 기법이다. 2012년 버팔로대 연구진은 “인간의 활동과 보건·건강·사회 참여를 증진함으로써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디자인 과정"으로 정의했다. 일반 디자인을 1.0 버전이라고 한다면, BF 디자인은 2.0 버전, 유디는 3.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유디 개념이 법제화된 것은 1997년「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다. 2006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이 제정되어 노약자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에 공헌하고 있다. 특히, 2007년에는 'BF 인증' 제도를 법제화하였고 2008년부터 노약자들의 BF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2015년 공공 건축물에 대한 BF 의무 인증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범국가적 BF 인증은 걸음마 단계다. 2022년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디 기본법안은 폐기되었다. 2024년 기준 한국 인구는 5,122만 명이다. 그중 국토교통부가 추계하는 교통약자는 1,613만 명으로 31.5%에 달한다. 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도 교통약자 이동 편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유디 도입 실태는 선진국에 비해서 빈약하다. 예를 들면 저상 버스 전국 보급률은 44.4%에 불과하다. 특히, 장애인의 생활환경 이용성 측면에서 보급률에 비해 그 만족도나 노약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더욱이 빈약하다. 2024년 고령 운전자 비율은 전체 운전자의 14.9%다. 그러나 이들에 의한 교통사고는 일반보다 50% 높은 21.6%에 달한다. 더욱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한다. 정부 대책은 규제 위주다.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 주기 의무교육 대상이고 운전면허 갱신 시 교통안전교육도 2시간씩 받아야 한다. 신체장애나 정신질환 발생 시 수시 적성검사도 받아야 한다. 또한 고령자의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권유한다. 지자체에 따라서 십만 원 전후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반납률은 2% 초반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운전면허를 반납할 수 없는 '생계형 고령 운전자'가 많기 때문이다. 과제는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를 예방할 범국가적 유디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본 도요타사의 연구소를 방문해 보고 놀라는 것은 자율주행이나 피지칼 AI 등 첨단연구가 아니라 유디 등 인간공학적 연구가 대세다. 이것이 일본의 노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한국에 비해서 절반 이하인 것을 설명한다. 선진국들은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발전을 위한 요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기조 등을 반영해 유디를 법제화하는 데, 환경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개발과 보급, 적용 등과 관련된 사항도 포함하여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 유디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유디센터가 제시한 7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①공평한 사용, ②사용상 유연성, ③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④인지 가능한 정보, ⑤오류에 대한 포용력, ⑥적은 물리적 노력, ⑦접근과 사용을 위한 충분한 공간으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수강생에 고학력자와 저학력자가 혼재할 때 명강사는 저학력자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이, 유디는 노약자에게 공평한 '최악치 설계'를 대전제로 한다. 100세 수명 시대 범국가적 유디 시스템이 완성될 때 참다운 공평 사회가 된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중국 진출 한국계 기업의 생존법

중국은 한 때 우리나라 기업에 기회의 땅이었으며, 우리나라에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안겨주는 나라였다.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 내수시장에서 히트 상품을 출시하게 되면 국내에서는 중견기업에 불과하였지만 단번에 대규모 기업으로 도약하기도 하였으며, 대기업도 국내 매출보다 중국 매출이 훨씬 큰 경우도 있었다. 오리온, 농심, 락앤락, 이랜드,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베이징현대차, 기아 등 식품, 의류, 화장품, 생활용품, 자동차류 등 다양한 업종에서 한국계 기업들은 승승장구하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면 한국에서 부품, 원자재 등 중간재를 가져가면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을 증가시켜 무역흑자를 확대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하고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생존을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한 때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던 베이징현대차는 점유율 1% 미만의 초라한 모습으로 추락하였다. 이는 한국계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며,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이 각 업종에서 전반적으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중국 로컬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외자기업을 밀어내고 있다. 중국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수준에서도 외자기업과 격차를 대폭 좁히거나 넘어서고 있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자면 중국 자동차 시장이 내연 기관차에서 빠르게 전기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로 전환하면서 중국 로컬 자동차 기업이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자동차시장에서 한국계 자동차의 추락이 두드러지지만, 미국계나 독일계 자동차 기업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중국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공세로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이 2010년대 90% 정도에서 지난해(1~10월)에는 70% 미만으로 떨어졌다. 유럽에서도 중국차의 거센 공세로 독일 자동차의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자동차 위상이 큰 독일 제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 베이징현대차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 베이징현대차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1.7% 상승한 1만 2,016대를 판매하였다. 덕분에 베이징현대차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중국 법인)도 매출 4조원을 회복할 전망이다. 내수 판매 이외에 베이징현대차는 지난해 1~11월 전년 동기 대비 55.4% 증가한 6만 573대를 수출하였다. 즉 수출이 베이징현대차의 판매량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기아(중국 법인) 역시 중국 내수 판매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였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의 거센 무역장벽에도 불구하고 1~11월 1조 759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하였다. 중국의 막강한 수출경쟁력에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도 있지만 규모의 경제 효과에 따른 생산비용 하락이 작용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들도 중국 내수시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제조하여 제3시장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구기보

[이슈&인사이트]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가짜 뉴스-사법부 앞에 선 ‘표현의 자유’의 한계

한 사람은 소셜미디어 X에 “브리지트의 (sic) 사타구니가 남자처럼 불룩한 파란 수영복"이라는 문장을 올렸다. 또 다른 이는 프랑스 영부인을 “풍선 가슴을 단 늙은 원숭이"라고 불렀다. “브리지트의 '성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나?"라는 질문도 공개적으로 게시되었다. 이처럼 브리지트 마크롱의 성별과, 남편과의 나이 차이를 근거로 한 '소아성범죄 연루 의혹'이라는 루머를 퍼뜨린 이들 가운데 다수가, 지난 1월 5일 파리 형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 10명은 IT 기술자, 작가, 갤러리스트, 체육 교사, 은행 중개인 등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진 41세에서 65세 사이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사이버 괴롭힘 혐의로 최대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중 8명은 징역 4~8개월의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고 1 명에게만 실형(징역 6개월)이 선고되었는데, 그는 2025년 10월 27~28일 열린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과의 뜻을 밝힌 1명은 벌금과 함께 사이버 괴롭힘 인식 개선 교육 이수 명령만을 받았다. 이 교육 이수는 다른 피고인 전원에게도 공통적으로 부과되었다. “악의적이고 인격을 훼손하는 표현" 파리 형사법원 재판장 티에리 도나르는 평결에서, 피고인들이 “악의적이고, 모욕적이며, 인격을 훼손하는 표현"을 사용해 영부인의 성별을 문제 삼고, 이를 남편과의 나이 차이에 결부시켜 '소아성범죄 연루 의혹'이라는 루머를 게시·유포함으로써 고소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법원은 특히 이러한 행위가 개별적 발언의 나열이 아니라, 반복되고 조직적인 온라인 공격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무거운 형량 중 하나인 집행유예 8개월은, 검찰이 “온라인 집단 공격의 선동자"로 지목한 인물에게 내려졌다. 그는 X에서 '조에 사강(Zoe Sag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온 작가이자 광고인이다. 그는 '문학적 실험'이라는 외피를 두른 계정을 통해 파리 사교계의 온갖 소문을 확산시켜 왔으며, 마크롱 부부의 24세 나이 차이를 “국가가 묵인한 소아성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역시 다른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풍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음모론의 확산과 '선동자'들 브리지트 마크롱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묘사하는 음모론의 또 다른 핵심 인물로 지목된 영매 델핀 J.('아망딘 루아'라는 이름으로 활동) 역시 집행유예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2021년 유튜브 채널에 자칭 '아마추어 기자' 나타샤 레이를 초대해 자신의 '발견'을 공개하도록 하며 루머 확산에 기여했다. 4시간 분량의 이 영상에서 그녀는 브리지트 마크롱이라는 인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존재하는 80세의 오빠 장미셸 트로뇌가 성전환 후 그의 정체성을 차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선동자'에게는 6개월간 소셜미디어 계정 사용 금지 조치도 함께 내려졌다. 2024년 8월 고소 당시, 브리지트 마크롱은 이 루머가 자신과 가족에게 “매우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특히 손주들이 “할머니는 남자래"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점은, 이 사안이 단순한 명예훼손을 넘어 가족의 일상과 사적 삶을 파괴하는 폭력이었음을 드러낸다. 영부인 본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대신, 딸 티펜 오지에르가 증인으로 나서 이러한 “대규모 온라인 공격"이 남긴 상처를 증언했다. 평결을 하루 앞둔 일요일 저녁, TF1 방송의 '20시 뉴스'에 출연한 브리지트 마크롱은 직접 입장을 밝혔다. “저는 늘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이 괴롭힘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프랑스에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가짜 뉴스는 지난 4년간 반복된 부인과 반박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대통령 부부는 2025년 여름 법적 투쟁의 무대를 미국으로까지 넓히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모론 인플루언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칸다스 오웬스(Candace Owens)가 2024년 3월 이 루머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유튜브 구독자 570만 명, X 팔로워 750만 명을 보유한 그녀는 '브리지트 되기(Becoming Brigitte)'라는 일련의 영상에서 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스캔들"이라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에 훨씬 관대한 법적 틀을 가진 미국 사법부가,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비방 캠페인으로부터 공적 인물을 보호하려는 프랑스 사법부의 판단과 같은 결론에 이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사이버 시대에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며, 거짓과 혐오가 조직적으로 유통될 때 민주사회는 어떤 선을 그어야 하는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성일권

[이슈&인사이트]양극화가 일상이 된 아파트시장, 올해도 상승장은 계속될까

지난해 아파트시장의 화두는 양극화였다.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성동, 마포, 강동, 광진, 동작 등 서울의 한강벨트와 과천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 경기도 경부벨트의 아파트 가격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 솟았다. 2월 잠.삼.대.청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면서 3월까지 강남3구와 용산구를 중심으로 1차 상승을 했고 5월 조기대선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6월 송파구와 성동구, 마포구, 강동구, 동작구 등 한강벨트 아파트 가격이 2차 상승을 했다. 6.27대책으로 수도권 대출을 6억원으로 제한하면서 잠시 주춤하던 서울아파트시장은 9.7 공급대책이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사자로 돌아서면서 9월과 10워 3차 상승을 했다. 집값 상승이 일상이었던 문재인 정부시절에도 1년에 3번이나 큰 상승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곳을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대책 이후 거래량은 줄어들면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신고가가 나오면서 상승흐름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전국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서울의 상승으로 살짝 움직임이 있을 뿐 서울을 제외하면 사실상 보합흐름에 가깝다. 한마디로 양극화가 그대로 나타났다. 양극화의 원인은 다주택자 규제와 저성장, 서울과 지방의 자산격차로 확실한 안전자산을 확보하자는 불안심리 때문이다. 올해 아파트시장은 상승가능성이 높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택 매매 가격은 전국 1.3%, 서울 4.2% 상승, 수도권 2.5% 상승, 지방 0.3% 상승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전월세 가격은 전국 2.8%, 서울 4.7%, 수도권 3.8%, 지방 1.7%, 상승으로 전망했다. 지방보다 서울이 매매보다는 전세가 더 상승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부동산R114나 직방 등 민간기관의 조사결과도 하락전망은 찾기 어렵다. 지난해 상승흐름을 주도한 서울 한강벨트와 경기 경부벨트 아파트는 거래량은 많지 않겠지만 여전히 신고가 행진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상승흐름에 소외되었던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도 키 맞추기 상승이 가능하고, 바닥을 찍은 지방 역시 입주물량 감소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상승폭은 높을 것 같다. 오피스텔 등 비 아파트는 서울처럼 아파트의 높은 가격과 규제를 피해 풍선효과가 생기는 지역은 강세가 될 것 같다. 집값 상승의 근거는 입주물량과 유동성에서 찾을 수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약 21만 가구로 2025년 27만 가구 대비 28%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공급부족이 가장 심각한 서울은 2만8984가구로 2025년 4만2684가구 대비 32% 감소하는데 임대를 제외하면 1만7687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7년 1만113가구, 2028년 8337가구로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입주물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매매와 전세시장 모두 상승압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동성 증가는 집값, 주식, 금값 등 대부분 자산가치 상승을 이끌어 간다. 높은 환율로 수입물가가 올라가면서 분양가 상승행진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집값 하락 요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집값이 하락하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돈을 너무 풀어 물가가 급등하면서 기준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새로운 QT(양적긴축)가 시작하면 불확실성이 커져 공포가 투자심리를 집어 삼키는 경우밖에 없다. 몰론 2올해 기준금리 동결가능성이 높고 하반기 인하 가능성도 열려 있다. 강력한 규제와 경기침체, 높은 집값 때문에 매수세가 약화되면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하락전망은 거래량 감소에는 영향을 주지만 주택가격 하락의 원인은 되지 못한다. 집을 팔려는 매도자들은 상승기대에 호가를 내리지 않고,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필요하고 자금이 되는 분들은 기다린다고 더 좋은 답안을 찾기는 어렵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여 설사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내 집 마련을 쉽게 하리라는 낙관적 생각은 버려야 한다.막상 집값이 떨어지면 언제까지 얼마나 더 떨어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결코 용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필수재인 집은 선택재인 주식과 접근방법과 투자전략이 다르다. 집값하락을 주장하는 분들은 호흡이 짧은 주식투자 방법을 호흡이 긴 부동산에 적용하다 보니 부동산시장을 매우 고 평가 되어있고 손절매(損切賣)를 해야 하는 왜곡된 상품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집은 한번 사면 10년은 보유한다는 마음으로 10년 후를 바라보고 사는 장기보유 상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단, 언제든 대외적 변수로 2-3년 정도의 하락구간은 발생할 수 있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대출을 받는 것은 언제나 주의가 필요하다. 김인만

[이슈&인사이트] 발트 3국과 한국: 안보·방산·디지털 협력의 전략적 가능성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HUFS-Jean Monnet EU Centre 소장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는 흔히 '발트 3국'으로 불린다. 이들 국가는 1990년대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이후 유럽 통합 체제에 편입되었으며, 2004년 EU와 NATO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탈러시아화(de-Russification)' 그리고 '유럽화(Europeanization)'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후 발트 3국은 에너지 자립, 디지털 전환, 안보 기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축적하며 EU 내부에서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는 EU 내 소국에 속하지만, 정치적 안정성, 제도 개혁 성과, 그리고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오늘날 EU와 NATO의 전략적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발트 3국은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부패 방지, 언론의 자유 보장 등에서 유럽에서 모범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들 국가가 EU 가치 체계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지정학적으로 발트 3국은 NATO의 동부 전선에 위치하며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위치한 수왈키 갭(Suwalki Gap)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와 벨라루스(Belarus) 사이를 잇는 전략적 회랑으로, 이 지역이 차단된다면 발트 3국은 EU 및 NATO로부터 지상 연결이 단절되는 위험에 직면한다. 이러한 안보 환경에서 발트 3국은 NATO 사이버방위협력센터 유치, 공중감시 체계 참여 등 적극적인 기여를 통해 단순한 안보 수요국을 넘어 안보 제공국이자 기여국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전략적 자율성과 집단안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EU의 안보 기조와도 부합한다. 경제·기술 분야에서도 유럽에서 발트 3국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Rail Baltica, Baltic Connector 등 탈러시아·친유럽형 초국경 인프라 및 에너지 연계망 구축을 통해 EU의 구조적 통합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전자정부, e-Residency와 같은 디지털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전환과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했으며, 이는 EU의 디지털 주권 전략 수립에 있어 제도적 참고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발트 3국이 더 이상 EU의 단순한 수혜국이 아니라, 정책 형성과 집행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행위자로 전환되었음을 증명한다. 발트 3국의 위상 변화는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확대한다. 발트 3국은 NATO 무기체계와의 상호운용성 확보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며, 이미 폴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에 도입되어 성능과 신뢰성이 입증된 한국의 무기체계에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한국산 K9 자주포를 이미 도입한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발트 3국은 한국의 무기체계가 자국군 현대화와 NATO 신속대응군 운용을 위한 고기동·정밀 타격 전력 확보에 있어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 방산기업의 발트 지역 진출 가능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방위기금(EDF) 참여를 기반으로 한 공동 기술 개발, 현지 생산, 기술 이전과 같은 중·장기적 파트너십 모델로의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발트 3국 모두 전투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공군 전력 전반에 대한 구조적 보완 필요성을 의미하며, 이 분야에서 한국과의 장기적 협력 여지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이버 안보와 디지털 분야에서도 협력 잠재력이 크다. 한국은 AI 기반 전자정부, 디지털 보안, 정보 인프라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발트 3국은 디지털 주권과 사이버 방어 전략의 실증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양측은 플랫폼 연계, 제3국 공동 진출, NATO 사이버 훈련 참여 등을 통해 디지털 협력 외교의 다자화를 추진할 수 있다. 한편, Rail Baltica 프로젝트는 한국의 스마트 인프라, 물류 자동화, 방산 수출망 구축 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전략적 접점으로, 디지털 물류 체계와 군사 기동성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 모델을 창출할 가능성을 지닌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2026년  ‘K자 지갑’의 한국: 금리·부채·초저가가 변수

2025년 한국의 소비지표는 '회복'과 '불안'이 교차하는 장면을 반복했다. 하지만 경제는 “그 반등이 체질 개선인가, 착시인가"를 묻는다. 심리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실질 구매력은 별개다. 체감경기가 '바닥 탈출'에 성공해도, 가계와 자영업, 유통 생태계의 비용구조가 그대로라면 회복은 이어지지 않는다. 2026년 한국경제를 관통할 키워드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가계·기업의 현금흐름과 비용 구조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세 갈래로 전개된다. 금융·부동산: 주거비·부채 압력 속 소비 양극화(=K자 지갑) 2026년 한국 소비의 첫 키워드는 '가처분소득의 양극화'다. 고금리의 충격은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수준'보다 '기간'이다.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누적된 이자 부담은 가계 현금흐름을 압박한다. 전세·월세 구조 변화, 주거비 부담의 고착화가 겹치면 소비는 더 경직된다.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본 계층은 소비를 유지하거나 프리미엄으로 이동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층은 지출을 방어한다. 총소비가 늘기보다 소비의 구성이 바뀐다. 필수재 비중이 높아지고, 대체재·가성비 소비가 강화된다. 한쪽은 브랜드와 경험을 사고, 다른 한쪽은 할인·묶음·최저가를 탐색한다. 2026년 소비는 '증가'보다 '양극화된 재편'이 먼저 온다. 기업·자영업: 대위변제율 쇼크, '금융 연착륙'의 골든타임 두 번째 키워드는 '재무적 임계점'이다. 경기 회복이 통계에 잡히는 것과 현장 체력이 살아나는 것은 시차가 있다. 그 시차 동안 가장 먼저 터지는 것은 매출이 아니라 부채다. 금리 부담이 길어질수록 “버티는 힘"은 소진되고, 연체와 폐업은 늘어난다. 이때 위험 신호가 보증기관의 대위변제율이다. 보증기관이 빚을 대신 갚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건, 개별 사업자의 실패가 누적되어 지역·금융 시스템의 건전성 문제로 전이될 수 있음을 뜻한다. 2026년의 정책 목표는 무조건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질서 있는 연착륙'이어야 한다. 핵심은 “살릴 기업을 살리는 것"이다. 소비심리가 개선될 때, 그 심리가 실제 매출로 이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금리 악성부채를 저금리 대환으로 전환하는 장치를 확대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의 충격을 줄이고 흑자 도산을 막아야 한다. 지금은 응급처치가 아니라 금리 구조를 바꾸는 처방이 필요한 구간이다. 유통·산업: 초저가·플랫폼 경쟁의 일상화, 수익성 붕괴의 시작 세 번째 키워드는 '가격 하한선의 붕괴'다. 2026년은 C-커머스의 공세, 플랫폼 지배력이 가격 경쟁을 넘어 유통 생태계의 비용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이미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더 싸도 된다"는 학습을 끝냈다. 이 환경에서 단기 쿠폰·판촉은 '진통제'일 뿐이다. 소비자는 동일 예산으로 효용을 극대화하는 체리피킹을 일상화한다. 그때 살아남는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플랫폼 종속을 줄이는 자체 브랜딩·직접 고객 기반(D2C) 역량. 둘째, 오프라인만이 제공하는 즉시성·체험·신뢰. 셋째, 출혈경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마진 구조. 이 세 가지를 확보하지 못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빨라질 것이다. 2026년의 유통 전쟁은 매출 경쟁이 아니라 수익성 전쟁이다. 소비자는 더 똑똑해지고, 공급자의 생존 경쟁은 더 거칠어진다. 맺음말: 2026년은 '회복'이 아니라 '룰 체인지'의 해 2026년 한국경제의 핵심 질문은 “얼마나 더 소비할까"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어떤 구조에서 소비할 것인가다. 가계는 이자와 주거비가 지갑을 누르고, 자영업은 대위변제율이 임계점을 알리며, 유통은 초저가와 플랫폼이 마진 구조를 흔든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낙관론도 비관론도 아니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한국의 소비는 K자형으로 재편되고, 정책의 역할은 '연착륙의 시간'을 확보하며, 산업은 '가격'이 아니라 '수익성'으로 승부를 다시 짜야 한다. 2026년은 소비가 단순히 회복되는 해가 아니라, 경제의 룰이 바뀌는 해다. 박주영

[김한성의 AI시대] 2026년, AI 거버넌스는 통제가 아니라 공존의 기술이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보고서를 대신 써주고, 상담을 도와주며, 복잡한 판단을 정리해 주는 일은 이미 일상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2026년을 막들어선 지금, AI 논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가 AI를 대하는 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질문은 의의로 간단하다. “AI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AI와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AI는 인간처럼 말한다. 질문을 이해하고, 맥락을 읽고, 때로는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이런 점에서 AI는 우리와 매우 가깝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의도를 갖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스스로 목적을 세우지 않고, 결과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AI는 분명히 우리와 다르다. 이 '가깝지만 다른 존재'라는 특성 때문에 AI는 늘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간다. 너무 믿어서 모든 판단을 맡기거나, 반대로 아무 책임 없는 도구처럼 써버리는 것이다.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면, AI에 대한 논의는 낙관과 공포를 오가는 감정 싸움에 머물수 밖에 없다. 이제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뜻밖의 인물이 떠오른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이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도구를 사용하고, 무리를 이루고 나름의 사회적 위계도 갖으며, 배운 행동을 서로에게 전한다. 기쁨과 분노 같은 감정도 분명히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인간과 꽤 닮아 보인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간이 아니다. 추상적이고 명문화된 법적 체계를 갖지 못하며, 행동에 대한 '자기 성찰적 책임'도 지지도 않는다. 제인 구달의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침팬지를 인간처럼 대하지도 않았고, 단순한 실험 대상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대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자율성).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 (책임). 얼마만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 (존중). 여기서 핵심은 통제냐 방임이 아니었다. 침팬지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우하며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였다. 제인 구달의 질문은 우리가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자율성을 가진 에이전트'를 설계할 때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과 맞닿아 있다. 이 관점에서 각국의 AI 정책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한국, EU, 미국, 중국, 일본의 접근 방식은 제각각이다. 규제의 강도도, 표현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모두 닮아 있다. 어느 나라도 AI를 그냥 놔두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람과 똑같이 취급하지도 않는다. 자율성과 영향력을 인정하되, 규칙과 책임의 틀 안에 두려 한다. 한국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AI를 국정 차원의 문제로 다룬다. 기술, 산업뿐 아니라 윤리와 안전을 함께 논의하고 조정하며, AI를 단순한 기술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계 문제로 바라본다. EU는 AI 법을 통해 고위험 AI에 대한 책임과 감독을 명확히 한다. 인간의 개입과 기록을 요구함으로써, AI와 인간 사이의 경계를 법으로 그어 놓는다. 미국은 표준과 안전 기준, 인프라 투자를 통해 AI를 국가운영 능력의 일부로 흡수하여. 강한 단일 규제보다는 실질적 관리에 초점을 둔다. 한편 중국은 등록과 책임을 통해 AI를 예측 가능한 질서 안에 두려한다. 일본은 강한 규제 보다는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AI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다. 이들 정책은 방식은 달라도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다. “이 가깝지만 다른 존재를 사회 안에서 어디에 둘 것인가?" 각국의 AI 거버넌스는 제인 구달의 태도를 각자의 제도와 문화로 옮겨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흐름 속에서 AI와 공존하기 위한 원칙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첫째, AI를 사람처럼 대하기 보다 명확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둘째, 결과만 보지 말고 왜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셋째, 스스로 움직이는 기능이 강할수록 승인과 기록은 더 분명해야 한다. 넷째, AI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정확도보다 책임질 수 있는 구조인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원칙들은 AI를 두려워하자는 말도, 무작정 믿자는 말도 아니다. A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리와 질서를 정하자는 제안이다. 결국 AI 거버넌스란 기술을 얼마나 세게 붙잡아 둘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자신과 닮았지만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오며 익혀 온 방식을, 오늘의 기술 환경에 맞추어 다시 다듬는 과정에 가깝다. AI는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라기보다, 우리가 타자와 어떤 거리에서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2026년의 AI 논의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사회가 언제나 반복해 온 '공존의 질문'을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 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김한성

[이슈&인사이트] 다크 팩토리와 어쩔수가 없다

2025년의 화제작 중 하나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는 제목부터 체념과 강박 정서를 드러낸다.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구직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중산층 가장의 폭주를 그린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그 폭주보다 다른 데에 주목할 법하다. 주인공의 살의보다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산한 풍경에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해 인간의 숨결이 사라진 공간, 즉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연상시키는 곳을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거니는 묵시록적 마감에서 말이다. '다크 팩토리'는 '다크' 자체에서 뭔가 음울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다크'는 원래 '스마트'에서 시작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효율적이고 깨끗하며, 데이터가 흐르는 지능형 공장이다. 하지만 '스마트'는 종국에 '다크'를 지향한다. '스마트'의 본질은 '다크'이다. '다크 팩토리'는 “불 꺼진 공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말이다. 기계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조명이 필요 없다. 적외선 센서와 데이터 전송으로 움직이는 공장에서 조명은 불필요한 비용이다. 1980년대 GM의 로저 스미스 회장은 '라이츠 아웃(Lights-out)' 제조 공정을 꿈꾸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기계들끼리의 충돌을 막지 못해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반 세기가량이 지나면서 지금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은 그 '어둠'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마트'가 경영의 언어라면, '다크'는 실존의 언어다. 노동자의 눈을 위해 켜두었던 불이 꺼지는 상황은, 그 공간에서 인간의 자리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하는 섬뜩한 선언이다. 로봇은 야근이나 잔업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어둠도 상관하지 않는다. 한데 이 대목에서 다급한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생존이다. '다크 팩토리'는 인간 존재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불러올 테지만, 당장은 에너지 충당을 발등에 불로 떨어뜨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어두운 공장은 전기라는 뜨거운 문제로 야기한다. 노동자는 밥을 먹지만, AI와 로봇은 전기를 먹어 치운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결합한 현대의 '다크 팩토리'는 과거의 공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불 꺼진 공장이 불을 켠 공장보다 전기를 더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의 곤란을 예감한다. 글로벌 시장은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며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를 강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AI와 '다크 팩토리' 시대를 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전력를 갈망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세계 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숙제와, 폭증하는 산업용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화석 연료를 줄이면서도,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불 꺼진 공장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하는 현실은 연극 같다. 박찬욱의 영화 속 주인공이 직장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일터가 결국 인간의 빛이 꺼진 '다크 팩토리'라는 설정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AI를 도입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을 지워내는 '다크 팩토리'를 건설한다. 국가적으로는 이 거대한 기계 장치를 돌리기 위해 에너지 전쟁을 벌인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 AI 주권과 제조 경쟁력을 확보해 4차산업 혁명에서 살아남는 것은 국가의 과제다. 그러나 AI, 빅데이터,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결합한 '다크 팩토리'에 더 없이 인간적인 전력인 재생에너지를 공급해 마주할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아름다운 곳일까. 당장은 공장의 불을 꺼야 하는 처지이긴 하다. 그것도 남보다 빨리.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일단 가야 하는 길일까. 안치용

AI 시대, 에너지가 경제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고, 11월엔 미국 중간 선거가 있다. 정치적으로 작년 못지 않은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역시 경제이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인 만큼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회복하며 뜨겁게 타오르기를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수 침체의 장기화와 높아진 관세 장벽에 고환율까지 악재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급성장하는 인공지능(AI)에 올라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AI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UP) 등 핵심 AI 기술은 주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에 AI를 성공적으로 접목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24년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5년 뒤인 2030년 세계 AI 시장은 지금보다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 배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거품론도 투자액 대비 수익 실현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나온 것이지, AI 시장의 성장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AI 시장에서 어느 한 분야에서만 주도권을 잡는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반도체(HBM) 시장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값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AI 컴퓨팅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면 AI를 성장동력으로 삼기 힘들다는 뜻이다. AI 경제에서는 '에너지 집약'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게 분명하다. 챗GPT와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모델은 기존 포털 검색할 때와 비교해 최대 3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2년 약 460TWh(테라와트시)에서 올해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약 30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에는 1500TWh로 5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AI 기술과 반도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이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이 '약한 고리'라고 조언했다. 옳은 지적이다. 한국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수입한다. 글로벌 물류가 마비되면 곧바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 등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계통의 불균형도 너무 심하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전국 전력의 40%를 소비하면서도 전력 자급률은 60%대에 불과하다. 반면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해안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망을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장기간 지연되기 일쑤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와 주민 반발 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에너지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석 연료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자원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싼값의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 센터에 공급할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구 폐쇄됐던 쓰리마일 섬 원전을 재가동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시대에는 에너지가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값싼 에너지 확보와 전력망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가격 경쟁력과 공급의 안정성, 탄소 감축 등 상충하는 목표를 모두 충족하는 에너지 믹스의 '황금 분할선'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신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을 포함해 모든 자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비상하는 AI의 날개를 달고 우리 경제가 붉은 말처럼 다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이슈&인사이트] 환율 불안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도전

과거에는 화폐가 물건 또는 서비스 등을 주고받으면서 이에 따른 가치 교환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스마트 머니(smart money)이자 국경을 초월하여 데이터와 가치를 동시에 전송하는 핵심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민간 기업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종류의 첨단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에 1:1로 연동,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여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지칭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이 급등락하는 다른 암호 자산과 달리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최초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1 USDT가 항상 미화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직접 빠르게 전송할 수 있어 속도가 느리고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은행 대신 효율적인 해외 송금·결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마약 밀매, 해킹, 테러 자금 조달, 자금세탁 등 국제 불법 자금 거래에 사용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거래 확산은 다양한 암호 자산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안정된 투자 환경을 조성해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주식시장에 못지않은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주도하는 게 미국 달러(USD) 표시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재 국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으로 운용되며,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이에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법'을 입법하며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여러 국가의 통화를 잠식하여 이들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기축통화국 아닌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 자금 결제 및 송금 시장을 잠식할 경우, 원화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고 위기 시 급속한 자본 유출을 통제하지 못해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되면서 과거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만약 원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면 기업과 개인의 환전 욕구가 확대될 것이고, 금액 제한이 없고 빠른 구매가 가능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 수요가 쏠린다면 환율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이 원화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면 과거 IMF보다 더한 외환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국내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현재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다. 디지털 통화의 국제적 확산은 단순한 금융 기술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의 통화 정책과 경제 주권을 위협한다. 보유, 증여, 송금 등의 제한을 받지 않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대안 없이 방치한다면 국내 금융 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빠른 대규모 자본 유출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범국가적인 차원의 실존적 위협이다. 이는 금융, 기술, 안보가 융합된 복합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한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위상과 위력에 대항하기 쉽지 않더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 자체적인 디지털 통화 역량을 확보하여 급변하는 국제 자본과 금융시장의 도전에 대응해야 할 때이다.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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