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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전략…현대차 9조원 새만금도 ‘메가프로젝트’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전북이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9조원 투자도 엄청난 규모"라고 언급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만금 프로젝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현대차의 9조원 투자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수백조원 규모 반도체 프로젝트를 단순히 투자금액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규모보다 사업의 성격과 국가 산업전략에서 맡는 역할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자동차 공장 하나를 짓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로봇 제조, 수소 생산, 태양광 발전 등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미래산업 플랫폼 구축이 핵심이다. 자동차 제조기업을 넘어 AI와 에너지, 로봇을 아우르는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 전략이 집약된 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투자 구성만 봐도 AI 데이터센터가 5조8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 1기가와트(GW)급 태양광 발전, 수전해 기반 청정수소 생산시설, 로봇 제조 클러스터, AI 수소도시 등이 포함돼 있다. 단순한 공장 증설이 아니라 AI 시대를 겨냥한 새로운 산업 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새만금 프로젝트를 현대차그룹의 '알짜 투자'로 평가한다. 투자액의 상당 부분이 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AI, 피지컬 AI, 로봇, 수소, 에너지 분야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역 투자라기보다 현대차의 차세대 사업 포트폴리오를 새만금에 집약하는 전략적 투자라는 의미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는 성격이 다르다. 반도체 공장은 생산라인을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증설하는 초장기 제조업 투자다. 초기 투자 이후에도 공정 고도화와 생산능력 확대가 계속 이어지는 구조인 만큼 총투자 규모가 수백조원대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생산기지를 만드는 제조업 투자이고, 현대차 새만금은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수소를 결합한 미래산업 플랫폼 구축 사업"이라며 “둘 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프로젝트지만 사업 방식과 목표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오히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메가프로젝트의 큰 그림은 지역별 산업 특화를 통한 역할 분담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광주·전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생산거점, 전북은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로봇, 수소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이다. 충청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와 후공정, 영남은 원전과 AI 데이터센터, 조선·방산 등 첨단 제조업 중심축으로 발전시키는 구상이 제시되고 있다. 9조원이라는 투자 규모 역시 결코 작은 수준은 아니다. 전북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투자 가운데 하나이며,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로봇, 수소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은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미래 사업으로 육성하는 핵심 분야를 집약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는 투자 규모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가 메가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투자금액으로 판단하기보다 어떤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반도체와 AI, 로봇, 수소 등 지역별 핵심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국가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메가프로젝트는 투자액 경쟁이 아니라 국가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라며 “광주·전남이 반도체 중심축이라면 전북은 현대차를 중심으로 AI 모빌리티와 로봇, 수소 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하는 것이 정부가 구상하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폭우로 550여명 대피·농경지 침수…이번 주 비·폭염 동반한 궂은 날씨

지난 연휴 기간 경기 북부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최대 200㎜가 넘는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택·도로 침수와 주민 대피 등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0일 06시 기준 경북 영주(206.8㎜), 경기 파주(197.5㎜), 동두천(195.5㎜), 연천(189.5㎜) 등지에서 짧은 시간 동안 거센 비가 집중되면서 피해 신고가 속출했다. 다만 이번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국적으로 주택·도로 침수 256건, 토사·낙석 유출 572건 등 총 820여 건의 침수·안전 조치 신고가 접수됐다. 특히 경북 안동·의성·김천·예천 지역에서는 고추, 사과, 논콩 등 농작물 41.6헥타르(ha)와 농경지 7.1ha가 유실·침수되는 농가 피해가 집중됐다. 의성과 안동 일부 지역에서는 토사 유출 및 낙석으로 인해 정전과 통신 장애가 발생해 긴급 복구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안전을 위한 주민 대피도 이어졌다. 경북과 경기를 중심으로 전국 6개 시·도에서 총 374세대 557명이 임시 주거시설 등으로 대피했으며 이 중 119명은 아직 귀가하지 못한 상태다. 강원 영월 지역 국도의 일부 구간 양방향 통행이 차단되고, 국립공원 61개 탐방로가 통제되는 등 도로 및 시설 통제도 잇따랐다. 문제는 이번 주에도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자주 내릴 것으로 예보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0일부터 오는 22일 사이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리겠다. 특히 20일과 21일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하고 많은 비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방은 비가 내리다 소강상태를 보이는 곳이 있겠다. 주말 사이 누적된 많은 비로 이미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국지성 강우가 이어지는 만큼 산사태, 토사 유출, 시설물 침수 등 추가 피해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비 소식과 함께 남부지방을 중심으로는 무더위가 이어지겠다.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의 최고 체감온도가 31℃ 안팎, 경상권과 제주도는 35℃ 안팎까지 치솟아 덥겠으며,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 많겠다. 금요일인 24일에는 정체전선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중부지방과 전라권, 경북권에 비가 내리겠고, 주말인 25일에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현진 기자 vrai.jin@ekn.kr

한국지멘스에너지, 서용환 신임 대표이사 선임

지멘스에너지는 한국법인(한국지멘스에너지) 대표이사로 서용환 전(前) GE에어로스페이스 한국 항공서비스 사업부 사장 겸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20일 밝혔다. 서용환 신임 대표는 경북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에너지와 전력 산업 전반에서 30년 이상 리더십 경험을 쌓아왔다. GE에어로스페이스와 GE에너지, 두산중공업 등을 거쳤고, 지멘스에너지에 합류하기 전에는 GE에어로스페이스의 한국 항공서비스 사업부 사장으로서 10년 이상 조직을 이끌었다. 서 대표는 앞으로 한국지멘스에너지의 사업을 총괄하며 회사의 성장 전략을 주도하고 국내 고객과 정부, 업계와 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한편 지멘스에너지는 모기업인 지멘스(Siemens AG)에서 분사한 후 자회사인 풍력발전 전문 기업 지멘스가메사(Siemens Gamesa)를 완전히 합병해 새로운 단일 브랜드인 '옴테라(Omtera)'로 새롭게 재출범했다. 이로써 옴테라는 지멘스에너지의 가스터빈, 송배전(그리드), 산업용 변환 장치 등 핵심 전력 인프라와 풍력 터빈의 개발, 제조 및 유지보수(O&M) 사업까지 더하게 됐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내일날씨] 중부 최고 120㎜ 폭우…남부·제주는 37도 폭염

오는 21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쏟아지겠고, 그 밖의 지역은 폭염이 이어지겠다. 20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전국에 비가 내리겠으나 남부지방에는 소강상태를 보이는 곳이 있겠다.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충청권 30~80㎜(많은 곳 수도권·강원 중북부 내륙 120㎜ 이상, 충남 북부 서해안 100㎜ 이상), 강원 동해안과 전라권, 대구·경북, 경남 서부 내륙 5~40㎜, 제주도 5㎜ 안팎이다. 특히 새벽부터 오전 사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강한 비가 집중되겠다. 수도권과 강원 중·북부 내륙에는 시간당 30~50㎜, 강원 산지·남부 내륙과 충남 북부 서해안에는 시간당 20~30㎜의 장대비가 쏟아지겠다. 비 소식에도 무더위는 이어진다. 일부 충청권과 남부지방, 제주도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전국 대부분 지역의 최고 체감온도가 31℃ 안팎, 경상권·제주도는 35℃ 안팎까지 오르겠다. 아침 최저기온은 22~26℃, 낮 최고기온은 26~37℃로 예보됐다. 이현진 기자 vrai.jin@ekn.kr

[EE칼럼] MMR 시대, 민간이 주역이어야 한다

휴대전화는 본래 전화하는 기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메라가 되고, 지갑이 되고, 길 안내자가 되었다. 통신사가 한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들이 저마다의 쓸모를 찾아낸 결과다. 특정 용도로 개발된 기술도 민간에 개방되면 그 쓰임새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원자력에도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초소형원자로(MMR) 얘기다. 지난 6월 2일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서 MMR의 군사·장비 활용 가능성을 짚고 개발 상황과 관리체계를 챙겼다. MMR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것이다. MMR은 트럭이나 비행기에 싣고 어디든 옮길 수 있는 초소형원자로다.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오지, 군사기지, 나아가 우주까지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전기는 물론 열을 공급하고, 산업 공정에도 투입할 수 있다. 전력 소비지 가까이 둘 수 있어, 갈수록 심해지는 송전망 포화 문제도 비켜 갈 수 있다. 전기만 만드는 기존 대형 원전과는 본질이 다르다. 미국은 일찌감치 민간에 문을 열었다. MMR 개발의 주역이 민간기업이다. 오클로, 안타레스, 래디언트, 웨스팅하우스 등이 저마다 다른 노형으로 경쟁한다. 이들은 원자로를 공장에서 모듈로 찍어내듯 만들어 빠르게 개량한다. 민간의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미 국방부는 군사기지용 선진원자로 프로그램에 8개 기업을 적격사업자로 선정했고, 육군은 9개 기지를 배치 후보지로 골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 공군은 알래스카 아일슨 기지에 MMR을 도입하면서 민간기업이 원자로를 설계·건설·소유·운영하고 군은 전력구매계약으로 전기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가 시장을 열어주고 민간이 그 안에서 기술과 쓸모를 다지는 구조에서, 국방 수요가 민간 생태계를 키우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제도가 이를 수용할 준비가 안 됐다는 점이다. 미국과는 거꾸로다. 민간기업이 원자로를 개발하거나 운영하려 해도 길이 막혀 있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은 공기업이 운영하는 전기 생산용 대형 원전을 전제하여 짜여 있다. 그러다 보니 대형 원전과 설계 특성이 크게 다른 MMR은 인허가받기조차 어렵다. 전기 생산이 아닌 다른 용도로 원자로를 쓰는 길도 사실상 열려 있지 않다. 원자력손해배상법 역시 공기업 사업자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민간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감당할 구조가 마땅치 않다. 빗장이 겹겹이 걸려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가면 결과는 뻔하다. 기술도 있고 최고 통수권자의 의지도 있는데, 정작 뛰어야 할 민간은 출발선에 묶여 있게 된다. 그사이 미국 시장은 빠르게 무르익어 갈 것이다. 한발 늦으면 따라잡기 어려운 게 첨단 기술 경쟁이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나라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 기술 표준까지 거머쥘 것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민간이 원자로를 개발·소유·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법에 새로 마련해야 한다. 둘째,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양한 용도의 여러 원자로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마침 원자력안전위원회가 SMR 기준을 만들고 있다. 이 작업에 MMR도 함께 담을 필요가 있다. 안전기준은 생각만으로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를 담당할 전문 인력과 조직을 갖출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셋째, 원자력손해배상법을 손봐야 한다. MMR을 다양한 용도로 쓰는 사업자가 나타날 것이다. 원자력손해배상법 제2조제1항제3호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사업자들이다. 이들에 걸맞은 책임과 배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 넷째,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도 손봐야 한다. MMR은 출력이 매우 낮고, 사고가 나도 스스로 식어 멈춘다. 이런 피동 안전 특성을 반영해, 비상계획구역을 원자로 설치 지역으로 줄일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MMR을 전력 소비지 가까이 배치할 수 있다. 다만 물리적 방호는 더 촘촘해야 한다. MMR은 운반 중 위협이나 테러에 노출되기 쉽고, 외딴곳에서는 방호 인력 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간에 개방한다고 안전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을 여는 만큼 책임의 소재를 더 분명히 해야 한다.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기준을 지켜야 하는지를 법에 명확히 못 박아야 한다. 명확한 규칙이야말로 민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직접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항해할 바닷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지금이 그 길을 열 때다. 문주현

남들은 안 들리는데 왜 나만…풍력 소음 ‘초저주파’의 비밀 [환경포커스]

풍력발전소 주변에서 반복되는 민원 가운데 하나가 소음이다. 어떤 주민은 “밤새 웅웅거려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지만 바로 옆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예민함의 차이일까. 최근 사람의 귀가 초저주파를 감지하는 생리적 방식에 개인차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가 나왔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TNU) 신경의학·운동과학과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이어 인스티튜트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초저주파 감지 메커니즘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특히 16㎐(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도 충분히 강하면 사람이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범위는 일반적으로 20Hz~2만Hz(20kHz)다. ◇'안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다르게 듣는 소리' 저주파와 초저주파는 풍력 터빈뿐 아니라 대형 팬과 공조·환기 설비, 압축기, 펌프, 엔진, 발전기 등에서 발생한다. 강풍과 천둥, 파도도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만든다. 풍력 터빈에서는 날개와 공기의 상호작용으로 공기역학적 소음이 발생한다. 지난 2011년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교(KTH) 연구팀은 '환경 연구 회보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형 풍력 터빈이 소형 터빈보다 저주파 소음을 더 많이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초저주파가 일반적인 소리와 다른 방식으로 인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소리는 달팽이관의 내유모세포(內有毛細胞, Inner Hair Cell·IHC, 털이 있는 안쪽의 세포)가 기계적 진동을 신경신호로 변환해 인지된다. 반면 16㎐ 아래 초저주파에서는 외유모세포(外有毛細胞, Outer Hair Cell·OHC, 털이 있는 바깥쪽의 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적 전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연구진은 제시했다. 외유모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적 전위가 청신경을 흥분시키는 별도의 경로가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유모세포가 진동을 감지해서 전기 신호를 만들면, 이 전기 신호가 내유모세포를 자극해 청신경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가설이다. ◇조금만 커져도 갑자기 크게 느껴져 이 메커니즘은 초저주파의 독특한 불쾌감을 설명하는 단서다. 연구진에 따르면 8㎐ 소리는 음압이 20㏈ 미만 증가해도 주관적인 음량이 64배 커질 수 있다. 64㎐ 소리에서 같은 정도의 음량 증가를 느끼려면 약 40㏈의 음압 증가가 필요하다. 음압(Sound pressure)은 공기 중에 전달되는 소리가 대기압을 기준으로 얼마나 압력을 변화시키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을 말한다. 음량(Loudness)은 사람이 귀로 느끼는 소리의 크기로, 같은 음압이라도 주파수와 개인의 청각 특성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음압은 소리가 공기를 흔드는 물리적인 세기이고, 음량은 사람이 귀로 느끼는 소리의 크기다. 초저주파는 감지 역치를 넘는 순간 외유모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신호가 여러 청신경 섬유를 동시에 활성화하기 때문에, 음압은 조금만 증가해도 사람은 소리가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역치(Threshold)는 사람이 소리를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 수준을 말하는데, 청각에서는 청각 역치(hearing threshold) 또는 감지 역치(detection threshold)라고 한다. 한편, 12㎐ 이하에서는 연속적인 음보다 개별 진동이 분리된 듯한 감각이 나타날 수 있다. 저주파 소음을 “웅웅거린다"거나 “덜컹거린다"고 표현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왜 어떤 사람만 괴로운가 연구팀은 500㎐ 소리를 함께 들려줬을 때 4~16㎐ 초저주파의 감지 역치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 소음이 함께 있을 때 초저주파를 들으려면 초저주파의 음압이 더 커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고주파 소리가 달팽이관 내부의 초저주파 관련 전기적 반응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억제 효과의 생리적 효율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일부 사람만 초저주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를 입증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풍력 소음 민원을 단순히 '예민한 주민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대로 초저주파가 특정 질병을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근거도 아직 부족하다. 2021년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원(RIVM) 연구진 등이 발표한 연구에서는 풍력 터빈 소음의 가장 일관된 영향으로 소음 불쾌감과 자가보고 수면 방해가 제시됐다. ◇평균 데시벨만 재서는 부족 이번 연구는 다양한 주파수의 배경 소음이 적은 조용한 환경에서는 풍력 터빈의 초저주파가 상대적으로 더 잘 인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도 50㎐ 이상의 주파수 성분이 부족한 환경에서의 저주파 소음이 다양한 소음이 존재하는 지역보다 더 큰 불쾌감과 민원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실제 민원은 지형과 풍속, 터빈의 운전 조건, 심리적 요인 등도 함께 영향을 미치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대책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전체 평균 데시벨뿐 아니라 주파수별 소음 스펙트럼과 저주파·초저주파 성분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지 단계에서도 주거지와의 거리만 따질 게 아니라 지형과 바람 방향, 야간 배경소음, 주택 내부의 주파수 특성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블레이드 형상과 구조 개선, 운전 조건 조절 등 풍력 터빈 소음 저감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중동 전쟁 격화에 브렌트유 90달러 넘어…국내 경유가격 비상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이 격화되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약 40일만에 다시 배럴당 90달러를 넘었다. 특히 경유의 빠듯한 수급으로 경유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다음 기름값 최고가격제에서 경유 가격이 다소 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 휘발유, 경유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트럼프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영국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기준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3.19% 오른 배럴당 90.91달러를 기록 중이다. 브렌트유 가격이 90달러를 넘기는 6월 11일 이후 약 40일만이다. 브렌트유 가격은 2월말 중동 전쟁 직전에 72.5달러에서 전쟁 후 최고 118.4달러까지 올랐다가 6월 종전 합의로 70달러 초반까지 내려갔었다. 하지만 이달 초부터 전쟁이 다시 격화되면서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79% 오른 84.8달러, 중동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76.9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기름값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0일 오전 8시 30분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일보다 0.05원 오른 1873.4원, 경유 판매가격은 전일보다 0.07원 내린 1857.6원을 기록했다. LPG 판매가격은 0.01원 오른 1135.7원이다. 앞으로 경유 가격이 특히 더 오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막힌데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정유시설을 집중 공격하면서 석유제품 수급이 빠듯해진 러시아가 경유 수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 석유제품 도매가격에서 경유(황함량 0.001%)는 7월 10일 배럴당 125.6달러에서 14일 154달러로 급등했으며, 17일에는 다소 내린 148.5달러를 보이고 있다. 휘발유(옥탄가 95RON) 가격은 10일 94.6달러에서 14일 107.2달러로 오른 뒤 17일에도 유지하고 있다. 한화로는 휘발유 1002.1원, 경유 1391원이다. 현재 유류세는 리터당 휘발유 634.5원, 경유 396.2원이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26일 지정된 최고가격제 상한가격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에서 경유 가격이 다소 오를 가능성이 있다. 다음 고시 주기는 7월 24일이다. 미국 기름값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주유가격 웹사이트인 AAA에 따르면 현재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998달러로 전주보다 0.122달러 올랐다. 경유 가격은 5.101달러로 전주보다 0.221달러 올랐다. 지난해 평균가격은 휘발유 3.146달러, 경유 3.730달러였다. 미국 기름값이 계속 높게 형성될 경우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기준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자원의 힘”…포스코인터·LX인터, 원자재 값 상승에 2분기 실적 ‘방긋’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자원 부자'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의 2분기 실적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양사 모두 LNG, 유연탄, 니켈 등 핵심 자원 사업의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완연한 실적 반등세를 증명해 내고 있다. 20일 금융정보기업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360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8% 증가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매출은 3.6% 증가한 8조4362억원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LX인터내셔널은 연결기준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조3356억원과 1138억원으로 13.2%, 106.8%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실적은 LNG와 유연탄, 리튬 등 자원 가격이 세계 시장에서 상승세를 탄 영향으로 풀이된다. 동북아시아 가격 지표 역할을 하는 LNG 일본∙한국 기준가(JKM) 선물 가격은 지난 17일 MMBtu(100만 영국 열량 단위, 약 293kWh)당 20.985달러를 기록했다.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을 받은 지난 3월 20달러선을 넘어선 이후 15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말까지는 10달러 전후 수준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다. 유연탄은 kg당 열량 5500kcal급 친황다오항 연료탄 기준으로 톤당 123.8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만 해도 톤당 90달러를 하회했으나, 올해 들어서 100달러를 넘었고 지난달에는 130달러선에 가까워졌다. 같은 날 니켈 가격도 톤당 1만6506달러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12월 1만4625달러로 저점을 찍은 뒤 올해 들어서는 1만5000달러선을 상회하고 있다. 이 같은 자원 가격 상승 움직임이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에 긍정적인 이유는 자원 사업의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기준 에너지 사업과 소재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이 각각 12.3%(3조9916억원)와 87.7%(28조3820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53.8%(6266억원)와 46.2%(5387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자원 부문의 매출이 1조2176억원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했지만 영업이익은 619억원으로 비중이 21.2%에 달했다. 지난 1분기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 에너지 사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1166억원과 1732억원으로 전체의 13.3%, 48.4%를 차지했다. 특히 미얀마 가스전에서는 가스를 전년 동기와 같은 수준인 462억 ft³(세제곱피트)를 판매했고, 호주 세넥스 가스전은 증산 효과에 힘입어 35.1% 늘어난 100 억ft³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특히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올해 하반기 중 전남 광양 LNG터미널에 20만킬로리터(㎘) 용량 저장탱크 2기를 완공하고 내년 또는 내후년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광양 LNG터미널 용량은 기존 93만㎘에서 113만㎘로 늘어난다. 광양 LNG터미널은 전국 LNG 기지 가운데 호남에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향후 활발한 상업적 활용이 예상된다. 이 기간 LX인터내셔널 자원 부문은 각각 3238억원과 321억원으로 각각 비중이 7.7%, 29.5%였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주에 위치한 석탄광산 PT GAM과 중국 신전 유연탄 광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 위치한 니켈 광산 PT AKP를 운영 중이다. 유연탄은 탄소중립으로 수요가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AI 시대의 전력 수요 급증과 중동 위기 장기화로 다시 수요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승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LNG, 팜, 식량, 전략광물 등으로 공급망 확보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 중개 기능이 아니라 글로벌 자원 공급선과 수요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로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글로벌 네트워크의 가치가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LX인터내셔널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 ICI4 연료탄 가격이 상승하고, 가스-석탄 전환 수요와 중국∙인도네시아 같은 주요 산지에서의 공급 차질이 실적 개선의 주요 배경"이라며 “실적 개선과 함께 연내 보크사이트, 니켈 광산 인수 계획 가시화 및 증익에 따른 배당 확대 기대감은 추가 상승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EE칼럼] 요동치는 기후부의 전력 수급 정책

기후부가 갑자기 신규 대형 원전 4기와 소형모듈원전(SMR)의 건설로 급한 변침(變針)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야심 차게 내놓은 '3대 메가프로젝트'에 다급해진 탓이다. 오로지 탄소중립에만 매달려서 감(減)원전·탈(脫)석탄과 함께 재생에너지 확대만 고집하던 기후부의 갑작스러운 변신은 반가운 것이다. 이제라도 원전의 사회적 가치와 태양광·풍력의 간헐성·비효율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후부의 입장이 난처한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말로만 걱정하던 반도체·인공지능(AI)에 의한 전력 수요 폭증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추진 중인 기흥·용인에 이어 광주공항에도 세계적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도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인공지능에 필요한 최고급 품질의 전력 수요가 2040년에는 최대 40GW에 이른다. 기후부가 탄소중립을 앞세워 성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전기화'(電氣化)도 부담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로의 확대 개편에 들뜬 기후부가 자신만만하게 강화했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기후부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35년까지 신차 판매의 70%를 전가치로 채워야 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이재명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난방용 히트펌프도 보급해야 한다. 2040년까지 탄소중립 때문에 늘어나는 전력 수요도 10GW나 된다는 것이 기후부의 입장이다. 결국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2040년의 추가 전력 수요는 무려 50GW나 된다. 2년 전에 수립했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했던 11.3GW의 4.4배가 넘고, 현재 발전 설비의 30%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 상황이 만만치 않다. 기후부가 현재 전력 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2040 탈석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의 수명을 다해서 순차적으로 퇴출하겠다는 석탄화력 40기의 설비 용량이 20GW나 된다. 다행이 잔여 수명이 남아있는 21기의 석탄발쩐은 '안보 예비 전원“으로 남겨둔다. 작년 연말 브라질 밸랭에서 열린 COP30에서 탈석탄동맹에 가입하면서 공식화한 정책이다. 원전의 사정도 불안하다. 현재 가동 중인 26기의 원전 중 2030년까지 운영허가 기간이 끝나는 10기도 8.45GW다. 2023년에 40년의 설계 수명을 다한 월성 2호기가 지난 4월에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설계수명 연장에 3년이 걸렸다. 이제 남은 설계 수명은 7년뿐이다.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 6기의 가동도 보장된 것이 아니다. 1호기는 작년 12월부터 가동이 중단됐고, 2호기도 올 9월부터 멈춰 선다. 나머지 4기도 2034년부터 순차적으로 멈춰 서게 된다. 기후부가 지난 5월에 요란하게 내놓았던 '제1차 재생에너지기본계획'은 탄소중립과 반도체·인공지능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2030년까지 설치하는 100GW의 태양광·풍력으로는 탈석탄과 노후 원전의 가동 중단으로 줄어드는 발전 설비도 보충하지 못한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이 하나의 송전망으로 묶여 있는 우리에게 전남 지역에 한정된 현재의 설비용량에 대한 어설픈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가 3대 메가프로젝트와 탄소중립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발전 설비와 송전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수급과 기후 위기 대응에 관한 기후부의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비효율은 기후부가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환경과 햇빛·바람 소독과 같은 억지 구호로 국민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기후부가 영국 민간단체인 기후그룹의 마케팅 전략인 RE100의 홍보에 앞장서는 것도 볼썽사납다. 더욱이 기후그룹은 최근에 원전을 수용하는 '무탄소 에너지 이니셔티브'(CFE) 캠페인도 시작했다. 원전은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술이다. 원전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도 위험하고, 비행기는 더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포기하는 비겁한 자세로는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 안전을 강화하는 기술과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뿐이다. 어설픈 선무당급의 상식과 이념적·당파적 편견에 사로잡힌 행정력으로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력 수급도 불가능하고, 탄소중립의 꿈도 실현할 수 없다. bienns@ekn.kr

원전은 ‘육성 산업’이자 ‘집중관리 갈등 과제’…두 목소리 내는 기후부[기후 신호등]

기후와 환경, 에너지를 한 부처에 모으면 정책도 조화를 이루면서 한 방향으로 움직일까.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최근 펴낸 '2025 기후에너지환경백서'를 들여다보면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존 환경 부문의 기후·환경 정책과 에너지 부문의 전력·산업 정책이 '백서'라는 한 권의 책에 담기면서 서로 다른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지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폭 늘리기 위해 입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히고, 다른 쪽에서는 국토의 30%를 보호·보전하겠다고 한다. 극한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 신규 댐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하천 자연성 회복과 4대강 재자연화를 검토한다. 원전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고 소형모듈원전(SMR)을 육성하겠다는 정책도 제시했지만, 원전 계속 운전은 정부가 특별히 관리해야 할 '집중관리 갈등과제'로 분류했다. 1095쪽에 이르는 백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런 '정책의 접합선'은 새 통합인 기후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100GW와 '국토 30% 보호'의 충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의 긴장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기가와트)로 확대하고 태양광·풍력 보급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른 태양광·풍력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려는 것도 발전시설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다(백서 249쪽, 254쪽). 그러나 환경 정책은 반대 방향의 목표도 제시한다. 정부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따라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보전하는 '30×30'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614쪽). 습지를 보전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한편 백두대간 등 핵심 생태축의 연결성도 지켜야 한다(619쪽).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할 땅은 확보해야 하는데, 개발하지 않고 보존해야 할 땅도 늘려야 하는 셈이다. 정부는 산업단지와 공장 지붕, 주차장 등 이미 개발된 공간을 활용하고 계획입지를 통해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피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100GW라는 대규모 목표를 추진하면서 이런 원칙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과제로 남는다. ◇해상풍력과 전력망…탄소중립 두고 갈등 재생에너지의 하나인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도 새로운 환경갈등이 발생한다. 정부는 해상풍력을 에너지 전환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조업 구역 축소와 어획량 감소를 우려하는 어민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280쪽).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조성이 해양 생태계 건강성 유지라는 환경 정책의 목표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따져봐야 한다(550쪽). 에너지 부서는 해상풍력을 '무탄소 전원'으로 바라보지만, 환경 부서는 이를 '대규모 해양 개발사업'으로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망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하려 한다(895쪽). 그러나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는 경과 지역 지자체와 주민의 반발이 발생하고, 입지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895쪽). 국가 전체의 탄소중립을 위해 특정 지역이 환경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환경정의' 문제도 제기된다. 주민의 쾌적한 환경권을 강조하는 정책 방향(848쪽)과 전력망의 신속한 확충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원전은 육성하면서 '집중관리 갈등과제' 원전 정책에서는 통합 부처의 긴장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백서는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과 SMR 기술 확보, 원전 수출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다(10쪽, 298쪽).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전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갈등관리 분야에서는 '원자력발전소 계속 운전'을 정부의 '집중관리 갈등과제'로 분류했다(894쪽). 한 부서에서는 원전을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위한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대규모 사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관리 대상으로 보는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있다. 원전 계속 운전이 늘어날수록 사용후핵연료 발생량과 저장 부담도 커진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상호 간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고, 공정한 중재도 필요하다. 원전 진흥을 강조하는 기후부, 즉 갈등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후부가 중재를 맡을 경우 갈등이 풀리기 쉽지 않다. 같은 기후부 안에서 한쪽은 원전 산업 확대를 추진하고, 다른 한쪽은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면 정책의 긴장과 충돌은 결국 부처 내부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기후부 스스로가 원전 활용에 따른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에너지 정책 속에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전력 수요는 급증, 석탄발전 40기는 폐지 전력 수급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 사이의 긴장도 뚜렷하다. AI와 데이터센터,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폭염과 한파 등 이상기후 때 전력 부족을 막기 위해 정부는 5.5GW 이상의 안정적인 예비력 확보를 얘기하고 있다(220쪽). 극한 기상 현상 시에는 전력 수요가 예측치를 상회하므로, 수급 안정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 발전기(석탄, 가스 등)를 최대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강화하고 석탄발전소 40기를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245쪽). 탄소 중립을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다. 이는 전기는 더 많이 필요한데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소는 빠르게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태양광과 풍력을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유연성 전원, 수요반응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전력 부서는 '정전을 막아야 한다'고 하고 기후 부서는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책 성공은 석탄발전 폐지와 대체 전원·전력망 확충의 시간표를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에 달려있다. ◇신규 댐 짓고, 강은 다시 자연으로? 물 정책에서도 서로 다른 철학이 공존한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극한 홍수와 가뭄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발표하는 등 '물그릇'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895쪽). 반면 백서에서는 4대강 재자연화 검토와 하천 자연성 회복도 강조한다. 4대강 재자연화 검토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895쪽), 지류·지천을 친환경적으로 정비해 자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댐은 강의 흐름을 막고 상·하류 생태계를 단절할 수 있다. 반대로 하천 재자연화는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생태적 연결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백서가 강조하는 생태계 건강성 회복이라는 목표(11쪽)와도 맞닿아 있다. '물을 더 가두겠다'는 정책과 '강을 다시 흐르게 하겠다'는 정책이 한 백서에 함께 담긴 셈이다. 이런 충돌은 이전에 환경부 때도 있었고, 두 정책이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신규 댐에 앞서 기존 댐 운영 개선과 유역 간 연계, 누수 저감, 물 재이용 등 대안을 얼마나 검토했는지가 중요하다. 신규 구조물(댐) 건설을 최후의 수단으로 둘 것인지가 정책의 일관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물 정책에서는 지역 간 이해 충돌도 나타난다. 정부는 낙동강 유역 먹는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수원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 이용과 안동댐 물을 활용하는 '맑은물 하이웨이' 등이 대표적이다(480쪽). 그러나 취수 지역 주민과 일부 지자체는 추가 취수에 따른 물 이용 장애와 본류 수질 악화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480쪽). 물을 공급받는 지역에서는 '안전한 먹는물 확보' 문제지만 물을 내주는 지역에서는 '지역의 수자원 권리' 문제다. 통합 물관리를 강조하는 정부가 수량과 수질, 수생태뿐 아니라 지역 간 물 배분 갈등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포장 규제는 강화, 시행은 2년 유예 자원순환 정책에서도 환경 규제와 산업 현장의 현실 사이에 긴장이 나타난다. 정부는 택배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포장 기준을 신설하고 2024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895쪽). 과대 포장을 줄여 폐기물 발생 자체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다양한 제품과 물류 환경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이행 부담을 호소했다. 결국 정부는 현장 여건을 고려해 2년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895쪽). 환경 정책의 관점에서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반면 산업 현장에서는 비용과 적용 가능성, 기업의 규제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백서 역시 다른 한편에서 기업 불편 해소와 규제 합리화를 강조하고 있다(1052쪽).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현장 수용성을 고려해 시행을 늦추면 환경 정책의 효과는 그만큼 늦어진다. 기후·환경 정책과 산업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 역시 통합 부처가 풀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충돌이 아니라 '조정의 원칙' '2025 기후에너지환경백서'는 기후·환경·에너지 정책을 한 책에 담았다. 통합 부처의 청사진인 동시에 아직 봉합되지 않은 정책의 접합선을 보여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백서에서 나타나는 정책 간 긴장과 충돌을 모두 모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책 충돌 자체가 아니다. 두 정책이 부딪힐 때 어느 가치를 우선하고 어떤 기준으로 절충할 것인지가 명확하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입지와 보호지역이 겹칠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신규 댐과 하천 복원 가운데 어떤 대안을 먼저 검토할 것인가, 석탄발전 폐지 속도와 전력망·ESS 확충 속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기후부 출범이 갖는 의미는 기존 환경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한 조직에 모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과거 환경 부처와 개발·에너지 부처 사이에서 벌어졌던 충돌이 이제 한 부처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할 것인가, 보전할 것인가',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 탄소를 줄일 것인가'라는 오래된 갈등을 더 이상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해결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후부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정책으로 조율하는 일이다. 백서는 정책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관 협의체와 갈등조정협의회 운영 등을 제시하고 있다(894~896쪽). 이런 외부 조직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기후부 내 의견 교환과 소통이 중요하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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