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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벤치마크 싱가포르 석유가격 폭등…그런데 韓시장에 이상한 움직임이

우리나라 기름값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의 석유제품 거래가격이 폭등했다. 전쟁 전보다 거의 2배나 올랐다. 이 가격은 환율을 거쳐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국내 기름값도 크게 올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시장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10일 현물거래 시장에서 휘발유 가격은 제한적으로 올랐고, 경유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거래량도 뚝 끊겼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이 임박하면서 벌써부터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싱가포르 거래시장의 휘발유(옥탄가 92론) 가격은 9일 기준 배럴당 139.3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23% 올랐고, 전쟁 전인 지난달 27일보다는 75% 올랐다. 같은 기간 경유(황함량 0.001%) 가격은 배럴당 185.4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19% 올랐고, 전쟁 전보다는 100% 올랐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에너지허브로, 이 지역의 거래가격은 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지표가 된다. 한국 정유사들도 싱가포르 거래가격을 공급가격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환율까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는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석유 거래시장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석유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휘발유는 제한적으로 상승했고, 경유는 오히려 떨어졌다. 전자상거래 시장은 정유사, 수출입업자, 대리점, 주유소, 일반판매소, 협동조합 등의 석유사업자들이 참여해 현물을 사고파는 곳이다. 주로 정유사와 주유소가 현물을 매매한다. 거래소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휘발유 거래가격(리터당)은 경쟁가격 기준으로 9일 1822.9원에서 10일 1916.4원으로 5.1% 올랐고, 같은 기간 경유 거래가격은 1982.4원에서 1977.1원으로 0.3% 내렸다. 거래량도 현저히 줄었다. 휘발유 거래량은 198만 리터로 전날의 594만 리터의 1/3 수준이었고, 경유 거래량은 118만 리터로, 전날의 980만 리터보다 현저히 적었다. 업계는 정부가 곧 시행 예정인 석유 최고가격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가 곧 시행될 것이라고 발표되면서 이를 기다리는 심리로 인해 거래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물가 안정을 위해 연일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최고가격제 등 물가 안정 대책과 관련해 “비상 상황인 만큼 기존 매뉴얼이나 정책을 뛰어넘는 방안과 속도로 시장 불안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며 “어떤 상황에도 국민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민하고 선제적 대처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중동 사태 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최고가격제 시행을 주문했다. 안도걸 의원(TF간사)은 브리핑에서 “최근 중동 사태에 편승해 시장에서 석유 가격이 리터당 400원 이상 급등했다. 민생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만큼 이런 가격 상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석유류 최고가격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며 “비정상적인 가격 인상을 사전에 막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으며, 조만간 제도 시행일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시장을 관장하고 있는 산업통상부는 이번 주 내로 최고가격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 고시 제정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나와 있는 정부의 권한이다. 석유의 수입 및 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부 장관이 정제업자, 수입업자, 판매업자를 대상으로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제도 참여자의 손실에 대해 정부가 보전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제도는 1970년 석유사업법이 제정된 이래 단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1997년까지는 정부 가격 고시제가 운영됐기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유가 급등 사례가 있었으나, 알뜰주유소 정책 신설, 유류세 인하 카드만 사용했지 최고가격제를 사용한 적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이 제도 사용을 회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기름값 상승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너무 성급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다른 석유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가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업계와 협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정부가 짜는 정책이지만, 시장과 깊숙히 관련이 있는 만큼 업계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추후 부작용도 적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내 세금으로 왜 고급차 기름값 지원하나”…석유최고가격제 부작용 우려

정부가 중동 정세 악화로 급등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이주 내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할 예정인 가운데 시장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사재기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제품을 다량 소비하는 소비자에 유리해 고급차 운전자를 지원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으로 빠르게 전이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이번 주 내로 기름값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일 최고가격제를 빨리 시행하라고 주무부처에 주문하고 있다. 이날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이미 열흘 이상 가격을 올려 받음으로써 취한 일종의 부당이득을 감안해야 한다"며 “실제 생산원가가 오르더라도 곧바로 정해진 최고가격을 상향하지 않고 일정 기간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쟁 전인 지난달 27일 리터당 1692.6원에서 10일 오후 3시 1907.3원으로 12.7% 올랐고, 같은 기간 경유 판매가격은 1597.2원에서 1931.9원으로 21% 올랐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최고가격제의 효과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인위적인 가격 통제 방식은 단기적인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급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사재기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될 경우 소비자들은 향후 가격 상승을 예상해 구매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과거 에너지 가격 통제 정책이 시행됐던 여러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된 바 있다. 이 때문에 구매량을 제한하기도 한다. 공급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국내 판매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아질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해외 시장으로 수출을 늘리는 유인이 생긴다. 최고가격제가 내수 공급을 줄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정책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최고가격제가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면 상대적으로 연료 소비가 많은 상업용 차량뿐만 아니라 고급차도 더 큰 혜택을 보게 된다. 업계에서는 “고가 외제차나 대형 SUV를 운행하는 소비자한테까지 세금으로 기름값을 지원하는 구조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국제 가격대비 국내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해 놓으면 소비가 줄지 않아 결국 원료 수입 확대로 이어져 외화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동산 원유, 가스 수입이 막힌 상황이라서 수급 자체도 쉽지 않다. 2022년 러-우 사태때 전력도매가격(SMP)을 제한하는 가격상한제가 실시되자 전력소비량이 전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이로 인해 가스를 수입하는 한국가스공사와 전력 도매사업자인 한전이 천문학적인 손실과 부채를 떠 안게 됐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통제한다고 해서 물량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수입 원유 확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가격 상한제만으로는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격 통제 방식보다는 선별 지원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일정 규모 이하 영업용 차량이나 물류·운송 업종 등 연료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산업에 한해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택시, 화물차, 농업용 차량 등 특정 업종에 한해 연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은 단기적인 물가 안정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라는 부작용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며 “취약 계층과 영업용 차량 중심의 선별 지원 정책이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 정세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불확실성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의 에너지 가격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석유는 208일 비축하는데, 왜 LNG는 9일밖에 안하냐”는 국회 지적

중동 정세 악화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천연가스 비축 수준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에너지 업계에서는 한국의 천연가스 비축 물량이 약 9일 수준에 불과하다는 국회의 지적이 나왔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오해이며 단순히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은 최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점검하고 정부의 단기 대응과 중장기 근본적 대책을 촉구했다. 안 의원은 “우리나라 액화천연가스(LNG) 비축량은 약 9일 수준으로 원유 비축량 208일분에 비해 크게 낮다"며 “일본의 약 3주분, 유럽의 약 5주분과 비교해도 부족한 수준으로 공급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천연가스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공급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현물 물량 확보 등 조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안 의원의 지적에 다소 오해가 있다고 보고 있다. LNG는 기체 상태인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얼린 액체 상태로, 상온에서는 기화돼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는 손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가급적 수입을 하자마자 사용해야 한다. 의무 비축일수가 9일인 이유도 이 같은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LNG를 지상 저장탱크에 저장하고 있다. 일본은 수입업자에 비축 의무가 없으며, 2월 중순 현재 재고량은 약 200만톤으로, 이는 지난해 일본의 LNG 수입량 약 6600만톤의 11일분이다. 유럽은 지하 동굴에 기체 상태로 가스를 저장하고 있어 상대적을 저장일수가 길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법적으로 약 9일 수준의 천연가스 비축 의무가 있지만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천연가스 저장 구조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며 “가스는 기체 상태로 저장하면 증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원유처럼 장기간 대량 비축을 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LNG 수급 안보를 높이기 위해서는 비축 기준을 강화하기 보다는 한쪽의 수입선이 막힐 경우 최대한 빨리 다른 쪽에서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의 지난해 LNG 수입량 4668만톤 중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물량은 카타르산 700만톤으로 14.9%이다. 호주, 미국,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도입하고 있어 원유보다 중동 사태 충격이 덜하다. 다만 국내 가스 시장의 제도적 구조는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LNG 열량 규제 문제를 두고 업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유 교수는 특히 천연가스 열량 규제가 수입 다변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마다 생산되는 LNG의 열량은 차이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일정 범위의 열량 기준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부 저열량 가스 도입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가스 열량이 기준보다 낮더라도 LPG 등을 혼합해 열량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불필요하게 엄격한 열량 규제가 유지되면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수입선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 만큼 열량 규제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전력시장뿐 아니라 가스 시장에서도 가격 통제 정책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에너지 위기 당시 전력시장에서는 SMP 상한제가 도입된 바 있어, 가스 시장에서도 유사한 가격 통제 정책이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일수록 시장 구조와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전력과 가스 시장 모두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급 투자와 수급 안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제도 설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화재 위험 없는 ‘바나듐 흐름 배터리’ 차세대 전력망 핵심으로 떠올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일 이호현 제2차관이 에이치투(H2) 사업장을 방문해 비(非)리튬계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H2는 바나듐 흐름전지 전문 기업이다. 덕분에 바나듐 흐름 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바나듐 배터리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10시간 이상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LDES)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나듐 흐름 배터리, 즉 바나듐 레독스 흐름 배터리(VRFB)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기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와 화재 위험 최소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일까. ◇바나듐 이온의 다양한 산화-환원 상태 VRFB는 전해질 내 바나듐 이온의 가역적인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지난해 9월 '넥스트 리서치(Next Research)' 저널에 발표된 이란 과학기술대학교(IU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의 리뷰 논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양극 전해질의 4가와 5가 바나듐 이온 쌍, 즉 V(IV)/V(V)과 음극 전해질의 2가와 3가 바나늄 이온쌍, 즉 V(II)/V(III)이 각각 다른 산화 상태 사이를 이동하며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가역적으로 변환한다. 노르웨이 연구팀은 지난달 '저널 오브 파워 소스(Journal of Power 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VRFB의 작동 원리를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외부 탱크에 저장된 액체 전해질이 펌프에 의해 셀 스택(cell stack, 배터리에서 실제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반응 장치)으로 순환하게 된다. 셀 스택에서는 전해질이 전극과 접촉해 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이온 선택성 막(Nafion 등)이 두 전해질의 혼합을 막으면서 특정 이온만 통과시켜 전하 균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안전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바나듐 배터리의 최대 강점은 압도적인 안전성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유기 용매 기반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및 열폭주 위험이 상존하지만, 바나듐 기반 전해질은 가혹한 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서도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바나듐 배터리는 물 기반의 비연소성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및 폭발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나듐 배터리의 수계 전해질은 비열이 매우 높고 에너지 방출이 제한적이어서 리튬 배터리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명적인 시스템 실패 위험이 거의 없다. 수계 전해질의 사용이 전압 범위를 제한하는 측면은 있으나, 화재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한다. 여기에다 VRFB는 전력을 담당하는 셀 스택과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질 탱크가 분리된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핵심 부품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를 줄여 장기간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낮춘다. 과충전 시 가스 발생 등의 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즉각적인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적절한 전압 제어 및 관리 전략을 통해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25~30년 이상 장기 운전도 가능 VRFB는 양극과 음극 모두 동일한 바나듐 원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해질이 섞여도 용량이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교차 오염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바나듐 배터리는 장기 수명과 경제적인 확장성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기후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배터리는 2만 회 이상의 충·방전 수명을 확보할 수 있어 25~30년 이상 장기 운전이 가능해 리튬 배터리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출력(Power)과 에너지 용량(Energy)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셀 스택의 크기와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해액 탱크의 크기를 분리할 수 있어 단순히 탱크 용량과 전해액 양만 늘리는 것만으로도 대규모 저장 용량을 매우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부는 이러한 장점을 기반으로 바나듐 배터리 등 비(非)리튬계 에너지저장 기술의 빠른 개발과 보급을 지원해 국가 전력망을 보다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호현 차관은 “재생에너지가 주력 전원이 되기 위해 장주기 ESS 구축이 관건"이라며 “비(非)리튬계 ESS 기술이 우리 전력망 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의 중요한 실적(트랙레코드)이 될 수 있도록 시범 사업 지원과 기술 개발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中 다롄엔 100~400MWh 규모로 운영 중 한편,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VRFB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바나듐 흐름 배터리 시설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9월부터 1단계 100~400MWh 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향후 200~800MWh까지 확대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북부 풍력 지역에서는 풍력 발전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흐름 배터리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영국과 호주에서도 장주기 ESS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계속될 경우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수천 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중동 위기에 민간발전사까지 긴급 소집…“평소엔 LNG 억제, 위기땐 역할 기대”

정부가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에너지 수급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민간 발전사까지 포함한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전력공사 남서울본부에서 장관 주재로 '중동 정세 에너지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국제 정세가 국내 전력과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는 한전과 발전5사,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함께 SK이노베이션, GS EPS,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민간 발전사도 참석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회의에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동향, 연료 수급 상황, 전력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특히 회의에서는 한전의 전기요금 영향과 발전 공기업 및 민간 발전사의 연료 수급 상황, 해외 사업 영향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참석해 중동 정세가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회의 구성을 두고 정부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소에는 탄소중립을 위해 LNG 발전 신규 사업을 억제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위기 상황에서는 민간 발전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모습이 정책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LNG 발전 확대를 제한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규 LNG발전을 대상으로 한 용량시장 도입과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CHPS)개설이 당초 일정보다 지연되고 있으며 물량 대폭 축소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가 다시 민간 발전사들을 불러 대응을 논의하는 것은 정책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평소에는 LNG 발전을 줄여야 한다며 신규 투자 환경을 위축시키다가 위기가 발생하면 다시 공급 안정의 핵심 자원으로 언급하는 상황"이라며 “전력시장에 일관된 정책 신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전력 수급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고려한 현실적인 전원 믹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미국의 의도된 전략”

세계 최대 에너지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봉쇄된 가운데, 이는 미국의 의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협 봉쇄로 동북아 국가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중국에 가장 큰 타격을 미치려고 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일종의 폭탄 파편을 맞은 것이다. 10일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중동 호르무즈 해협 봉쇄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예측한 책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경제안보 전문가인 안세현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출판한 저서 '에너지 그레이트게임'에서 “미국은 자국에 대한 경제적 피해 없이 중국의 취약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안 교수는 이어 “예를 들어 미 의회가 이란 핵 협상을 거부하거나,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묵인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보복할 경우, 페르시아만에서 대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해상 통로가 막히게 된다"고 예측했다. 안 교수의 예측이 그대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얼추 맞아 떨어졌다.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미국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이 진행됐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란 시간으로 6월 21일 새벽 2시 미국은 '한밤의 망치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을 통해 폭격기로 이란의 여러 핵 시설을 타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자찬했지만, 핵 시설을 완전히 파괴하진 못했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식으로 반격할 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진 않았다. 그러자 지난달 28일 미국은 직접 이란 인근에 함대를 배치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전면 타격하기 시작했다. 첫 날 공습에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핵심 지도자들이 다수 사망했고, 주요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에 무제한 반격을 선언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드는 선박에까지 무차별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가스 물동량의 20~25%가 운송되는 핵심 요충지로, 세계 에너지시장의 대동맥이자 초크포인트로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 물동량 중에서 원유 및 석유제품의 80%, 그리고 LNG의 90%가 아시아로 향한다. 안 교수는 “이 경우(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중국은 석유 수요를 충족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인플레이션 급등, 위안화 가치 폭락 등 경제 붕괴가 현실화 될 수 있다"며 “요컨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최대 피해자는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전까지만 해도 석유 소비량이 자체 생산량보다 많아 중동의 석유 수입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중반부터 수평시추 및 수압파쇄 기술 개발로 셰일층에서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세계 최대 석유, 가스 수출국이 됐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석유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안 교수는 이 지점이 이란으로 하여금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게끔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특수부대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 체포해 본국으로 압송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에 값싼 원유를 공급하는 한 곳으로 지목된 나라다. 이란과 러시아가 또 다른 중국 공급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안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결국 미국의 모든 칼날은 중국을 때리기 위한 하나의 전초전이다. 결국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뭔가를 할 것이다.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에너지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고 가격을 올리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중국 경제에 굉장히 큰 타격이 갈 것이다. 지금 이걸 진행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와 동시에 물리적 방법도 쓸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덫을 놓을 것이다. 중국은 그 덫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라고 해도 한국 역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원유 수입의 70%, 가스 수입의 15%를 의존하고 있는데, 현재 수입이 차단돼 에너지 요금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안 교수는 한국이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로선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및 협력을 강화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것이 경제 안보 차원에서 가장 좋은 전략"이라며 “7광구도 한국, 미국, 일본이 협력으로 공동 개발에 나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원유 수입량 중 미국산은 2024년 2151만톤에서 2025년 2232만톤으로 3.7% 늘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LNG 수입량 중 미국산은 2024년 564만톤에서 2025년 438만톤으로 22.2% 줄었지만 올해 1월 수입량은 60.6만톤으로 전년보다 55.2% 증가했다.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겸 에너지안보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는 안 교수는 코넬대 국제관계학 학사, 조지타운대 대학원 외교학 석사, 런던정경대 대학원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윤석열 정부) 등을 역임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노란봉투법 내일 정식시행…산업계 ‘하청 쟁의’ 긴장

10일부터 '노란봉투법'을 불리는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법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정식 시행된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수탁)기업 노조의 원청(위탁)기업과 임단협 교섭권 허용, 정당한 노조활동으로 발생한 기업 손해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쟁의 대상에 구조조정·정리해고·배치전환 포함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는 법 시행에 따른 새로운 교섭 및 쟁의 양상을 가늠할 수 없는데다 시행 전 반년 유예기간에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 후폭풍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경영계는 불법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노동계에 호소하는 동시에 정부·노동위원회에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 달라고 당부하며 노란봉투법 부작용 최소화에 힘쏟고 있다. 9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사용자 범위를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교섭 대상이 기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바뀐다. 이에 따라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이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주요 대기업 대부분이 수많은 협력사들과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8월 국회의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하청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통해 합법적 권리를 관철시킨 사례가 나왔다. 한국지엠은 세종물류센터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세중물류센터의 1차 벤더(협력업체)인 우진물류 직원들이 노란봉투법을 앞세워 사측에 고용을 승계하라고 압박했고, 결국 한국지엠은 지난달 6일 이를 수용하며 갈등이 일단락됐다. 현대제철도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일부가 지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뭉쳐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단체행동을 벌인 끝에 최근에 파업권을 따냈다. 한화오션 역시 협력사 직원 상당수도 금속노조를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지난해 12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아냈다. 한화오션이 비정규직 조합원의 실질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노동중재기관이 확인시켜준 셈이다. 반면에 하청과 원청간 힘겨루기가 진행되면서 총파업 돌입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사례도 있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는 지난해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IT기업 NHN 노조는 고용안정을 촉구하며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자회사 NHN에듀 등을 대상으로 '깜깜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모회사가 전환 배치 등을 실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회원들은 지난 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간접고용노동자 원청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로 농협 자회사, 택배업 종사자, 공공기관 콜센터 근무자, 대형마트 판매 및 배송 담당자 등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노조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10일 오전 원청에 대화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하청 업체의 요구를 회피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강경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미리 염두에 두고 7월15일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청과 원청 간 노사 갈등이 아닌 노동조합간 '노노 갈등'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천공항공사와 한전KPS 등 정규직 노조들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여 노동자간 이해관계 충돌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계는 노란봉투법이 노동쟁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올해 임금협상을 두고 벌써부터 갈등을 빚고 있는 삼성전자나 해외투자·로봇도입 등으로 기싸움을 벌이는 현대자동차 등은 노조의 투쟁 강도가 평소보다 더 높아지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경영계는 법 시행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 범위와 교섭 의제를 두고 노사간 분쟁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노동계는 원청 기업과 단체교섭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거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는 자제해야 하며 교섭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시에 경총은 “정부와 노동위원회는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노동계의 교섭요구나 쟁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고 엄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1970년 제정 이래 한번도 안 쓴 ‘석유 최고가격제’, 과연 효과 있을까

중동 사태로 기름값이 크게 오르자 정부가 가격에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제도의 선제적 도입 논의만으로도 시장을 압박하면서 유가 급등에 따른 소비자 우려를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다만 실제로 가격이 상한제 이상으로 올라 버릴 경우 손실을 보는 당사자가 발생하는 만큼 손실이 특정업계에 쏠리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유류세 인하 카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중동 상황과 관련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고 “향후 전개 양상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에 대해선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가 곧 제도를 도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장관은 “거의 준비를 다 마쳤다.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고, 시행하게 되면 바로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나와 있는 정부의 권한이다. 석유의 수입 및 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부 장관이 정제업자, 수입업자, 판매업자를 대상으로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1970년 석유사업법이 제정된 이래 단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1997년까지는 정부 가격 고시제가 운영됐기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유가 급등 사례가 있었으나, 이 제도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업계에서는 상한가격을 얼마로 할지, 어느 유통단계에 적용할지, 기간은 얼마로 할지 등 세부 사항을 놓고 상당히 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도 도입에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는 최고가격제 도입에 찬성하다"며 “다만 소매가격에만 제도를 적용하면 주유소업계가 일방적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유사 공급가격에도 동시에 적용이 필요하고, 고통분담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인 만큼 추후 정부의 손실보전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이익단체인 석유협회 관계자는 “제도는 법에 근거한 고유한 정부의 권한인 만큼 업계는 그 정책에 따를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 제도를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고, 법에도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부와 업계가 소통을 통해 세부 내용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은덕 한국에너지학회 회장(아주대 화학공학과 교수)은 “국제유가 급등으로 국민들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 같은 정부의 선제적 논의만으로도 불안감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석유 산업용의 경우 수출시장과도 연결돼 있어 산업용은 제외하고 적용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고가격제가 소비 시장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국제 가스가격이 크게 올라 발전단가가 급등한 적이 있다. 정부는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한전의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자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도입했다. 이 상한제로 한전 부담이 더 이상 늘어나는 것은 막았지만, 급등한 국제 가격이 국내 요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아 전력 소비가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소비량은 2021년 53만3431GWh에서 2022년 54만7933GWh로 2.7% 늘었다. 전력소비 증가는 연료인 가스 수입 증가로 이어져 결국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한전이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게 됐다. 박 회장은 “최고가격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며 “중동 사태가 더 길어지면 석유시장뿐만 아니라 가스, 전력 등 모든 에너지 분야에 최고가격제가 필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처럼 정부와 업계, 전문가가 함께 대책과 실행방안을 짜는 위원회를 두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정부가 아직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는데, 유류세는 변동 상황에 대비해 탄력적으로 운용하게 설계돼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지역별 전기요금제 공감대 확대…유권자 63.5% 찬성

지역별 전력자립률에 따라 전기요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지역별 전기요금제에 대해 유권자 63.5%가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력자립률이 낮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절반 이상 유권자가 지역별 요금제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녹색전환연구소·더가능연구소·로컬에너지랩으로 구성된 '기후정치바람'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유권자 1만7865명을 대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기후위기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광역시도별 전력 소비 대비 생산 비율이 높은 지역은 요금을 낮추고, 반대로 전력 생산이 적은 지역은 요금을 높이는 방안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63.5%가 찬성했고 18.1%가 반대했다.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18.4%였다. 전기요금 차등화에 대한 찬성 비율은 원전이 밀집한 부산에서 69.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시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에서도 찬성 비율이 59.7%에 달했다. 경기도는 62.8%, 인천은 64.0%로 수도권 주민들도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이 수도권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 지역 반대가 거센 만큼 문제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송전탑 설치 갈등과 관련해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를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3.5%였다. 반면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21.1%,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5.5%로 집계됐다. 유권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기후위기 대응 관련 공약에 따라 투표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3.5%는 '평소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공약과 관계없이 지지하던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2.4%,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3.0%였다. 에너지 전환 문제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광역단체장의 에너지 공약 중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선호도는 64.5%로 가장 높았고, 원전은 33.1%, 화석연료는 23.6%로 나타났다. 정부가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54.9%가 찬성했고 26.1%가 반대했다. 다만 거주지 인근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반대가 46.7%, 찬성은 38.5%로 나타났다. 정부의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지하겠다는 목표에 대해서는 72.2%가 찬성했다. 이는 새로운 광역자치단체장에게 화력발전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길 바라는 여론으로 해석된다. 이번 여론조사는 로컬에너지랩이 여론조사기관 메타보이스와 피앰아이에 의뢰해 이메일로 설문 링크를 발송한 뒤 응답을 듣는 방식으로 지난달 2∼23일 이뤄졌다. 응답률은 3.1%,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0.7%포인트(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원희의 기후兵法] 에너지 권한 커진 지자체…지방선거, 기후위기 대응 시험대

기후위기 대응이 6월 지방선거의 중심 의제로 떠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법 개정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 전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새로운 지자체장이 기후위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기후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전망했다. 9일 녹색전환연구소·더가능연구소·로컬에너지랩으로 구성된 '기후정치바람'이 유권자 1만78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방선거 기후위기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기후위기 대응 공약에 따라 누구를 뽑을지 결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53.5%는 '평소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공약과 관계없이 지지하던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2.4%,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3.0%였다. 기후정치바람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근 기후·에너지 관련 이슈가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역별 전기요금제는 수도권 외 지역에 발전소가 집중돼 있는 만큼 전기요금을 낮춰달라는 요구와 맞물리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이전 논의와 함께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정치바람 여론조사에서도 전기요금 차등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3.5%로 나타났다. 또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가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본 응답자도 53%에 달했다. 지역에는 주민 기피시설인 발전소와 송전선로만 들어서고 수도권의 전력 공급지로만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송전비용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차등화하고, 지역에는 전기요금을 낮춰 기업 이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기남 충남에너지전환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수도권 중심으로 주요 인프라로 보내고 비수도권은 환경오염산업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충남에서는 이해하고 있다"며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자원을 끌어오르기 위해 지역과 어떤 협의도 없다. 에너지는 생산지에서 소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법 개정으로 전남·광주특별시 출범 논의가 진행되면서 지역 권한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주요 권한으로는 설비용량 20메가와트(MW) 이하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발전사업 허가권을 지자체가 갖게 되는 점이 꼽힌다. 기존에는 지자체가 3MW 이하 설비에 대해서만 발전사업 허가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지방에서는 대규모 태양광 사업이나 육상풍력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경북·대구와 충남·대전 특별법에도 20MW 이하 설비에 대한 허가권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전남·광주와 달리 특별법 통과가 지연된 상태다. 전남·광주 특별시 출범에 그치더라도 해당 사례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행정통합에 따라 지역별 탄소중립 정책을 다시 짜야 할 가능성이 높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윤희철 생태도시리빙랩 소장은 “전남·광주 통합은 기후 전환을 위한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소장은 “행정통합이 지금은 기후 의제와 무관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상 기후 의제와 매우 밀접한 사안"이라며 “시도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서로 달라 통합이 이뤄질 경우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설치구역을 제한하는 지자체의 이격거리 조례도 법 개정으로 설정이 어려워졌다. 이격거리란 도로와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도록 한 지자체 조례다. 지자체는 발전사업 허가권 다음 단계인 개발행위 허가 권한을 가지고 있어 이격거리 조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개발행위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설치를 제한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문화재보호구역과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제외하고는 이격거리를 일정 거리 이상으로 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됐다. 주민이 발전사업에 일부 참여하는 주민참여형 설비에는 이격거리 적용도 제한된다. 그동안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근거로 이격거리 조례를 운영해왔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주민 반대를 이유로 사업을 막기보다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에 놓이게 됐다. 이에 지역에서 에너지 전환을 단순히 강조하기보다 지역 복지 사업과 연계해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기후 공약은 단독으로 고립돼 제시되기보다 복지 공약과 연계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사례로 '햇빛소득마을'을 소개했다. 햇빛소득마을은 마을이 직접 태양광 발전을 하고 그 수익을 마을 복지 등에 활용하는 사업이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이번 지방선거를 에너지 전환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는 이유다. 위 여론조사는 로컬에너지랩이 여론조사기관 메타보이스와 피앰아이에 의뢰해 이메일로 설문 링크를 발송한 뒤 응답을 듣는 방식으로 지난달 2∼23일 이뤄졌다. 응답률은 3.1%,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0.7%포인트(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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