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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미-이란 전쟁 ‘안갯속’…국내산업 파장은 ‘온도차’

지정학적 비극은 경제적 비대칭성을 동반한다. 누군가에게 생존이 걸린 처참한 전쟁이 국경 너머에서는 '로또'가 되는 게 국제 정치·경제의 냉혹한 질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효과로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패전국 일본이 전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흘린 피를 바탕으로 국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미·이스라엘의 공세가 압도적이지만, 이란의 항전 의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전면적인 지상전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중동 상황을 우리나라 산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종별 기상도는 크게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전쟁으로 '낙뢰'가 떨어진 대표적인 분야는 석유화학 업종이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중국산 저가 공세가 이어지다보니 원가가 뛰어도 이를 가격에 반영하기 힘든 실정이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원재료인 나프타 대부분을 중동 지역에서 수급하고 있다. 아직 전쟁 양상을 점치기 힘들지만 일부 기업들은 벌써부터 비상등을 켰다. 여천NCC는 최근 주요 고객사에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국내 최대 나프타분해시설을 운영하는 곳이다. 항공·여행 업계도 날씨가 좋지 않다. 중동 노선이 여객·화물 비중에서 절대적인 위치는 아니지만 유럽 등 일부 노선은 우회 운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 심리 자체가 위축돼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도 걱정할 수 있다. 제일 큰 고민거리는 유가 변동성 확대다. 국제유가가 빠르게 오르면 항공사들 유류비 지출액도 늘어난다. 유류할증료 제도를 통해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긴 하지만 이 역시 여행 심리 위축에 부채질을 한다.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서 비행기 리스료 등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건설사들도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장 공정 지연은 대표적으로 건설사의 수익성을 깎아먹는 요인이다. 가전·스마트폰 업계도 중동 전쟁 소식이 반갑지 않다. 고가 IT기기는 항공 물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길이 막히고 비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고민을 하는 와중이라 물류비 상승에 대한 압박이 더 크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국제 유가 향방을 살피고 있다. 통상 유가가 크게 오르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주요국 판매 전략을 다시 짜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 수출길 확대에 공을 들여온 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큰 악재다. 전반적으로 물류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도 자동차 업계는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향후 중동 사태 진행 방향에 따라 날씨가 달라질 수 있는 업종도 있다. 조선 업계의 경우 고유가 기조가 고착화되면 에너지 자립을 위한 액화천연가스(LNG) 및 원유 운반선 발주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이는 동시에 철강을 비롯한 원자재 값 상승 우려도 동반하고 있어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한다. 해운사들도 계약 구조나 선종에 따라 다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원유 운반이나 장기운송계약이 많을 경우 리스크가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해운사들은 주로 컨테이너선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정유 업계는 당장 재고 이익 극대화라는 화창한 날씨를 맞았다. 기존에 쌓아둔 원유 재고에 대한 가치가 높아져 단기적으로 영업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장기적으로 원자재 조달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방산 업계는 또 한 번 기회를 맞았다. 중동 전역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성능이 검증된 한국산 무기 체계에 대한 발주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중거리 요격체 등 수주 경험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추가 도입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시장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다. 큰 비가 내릴지 소나기에 그칠지는 향후 물가 변동 양상을 살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2.0%를 기록했다. 6개월 연속 2%대다. 다만 이는 중동 사태에 따른 휘발유·경유 상승 같은 지표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6일 경제주평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80달러 내외 수준으로 유지돼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4% 포인트(p) 증가시킬 것"이라며 “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가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p 올라가고 150달러면 2.9%p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국제 유가 급등은 경기 침체와 고물가로 서민들의 실질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 이 대통령 “이란 사태 계기 화석연료 줄여야”…발전업계 희비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 정세를 계기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내 발전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신규로 액화천연가스(LNG)발전 확대와 수소 혼소 발전 등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정책 방향 변화 가능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이란 사태를 언급하며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좀 더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화석연료 발전 확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6일 국회에서는 박지혜, 김정호, 서왕진 등 여권 의원들이 주도해 '신규 LNG 발전소 건설,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책 기류 변화 조짐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LNG 발전과 수소 혼소 발전을 준비해 온 발전·에너지 기업들이다. 현재 민간과 발전공기업, 산업단지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은 신규 LNG복합발전과 수소 혼소 발전 프로젝트를 다수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신규 LNG 건설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도입이 논의됐던 LNG 발전 용량시장과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CHPS) 물량도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업계에선 6월 지방선거 이후에 당초 계획보다 적은 규모로 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NG 발전과 수소 혼소 발전을 전제로 투자 계획을 세운 기업들이 많다"며 “정책 방향이 급격히 바뀌면 사업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6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는 LNG 발전 확대 정책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됐다. 미셸 김 IEEFA 에너지금융 분석가는 발표에서 한국의 전력 정책이 석탄을 LNG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지역 LNG 수요가 장기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LNG 인프라 과잉 투자와 좌초자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언 기후넥서스 대표도 “탄소중립 목표를 고려할 경우 석탄을 LNG로 단순 대체하는 방식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LNG 발전 설비가 늘어나는 반면 발전 비중은 감소하는 구조가 나타날 경우 이용률 하락과 전기요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면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CHPS) 제도의 취지 자체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CHPS는 기존 화력발전의 좌초자산을 완화하면서 단계적으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제도 취지 자체는 타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제도가 신규 LNG 발전 건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 연구위원은 “수소 혼소가 기존 설비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 수단이 아니라 신규 LNG 발전 허가의 근거로 사용될 경우 제도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먼저 LNG를 짓고 나중에 수소를 섞겠다'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탄소 배출을 고착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CHPS 제도를 폐지하기보다 수소 전소 기반 기술 실증과 무탄소 유연성 자원 확보를 위한 플랫폼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저혼소 상업 조달을 확대하는 방식보다 수소 전소 기술 실증과 운영 검증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러한 정치권 논의와 대통령 발언이 향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신규 LNG 발전 설비 규모와 CHPS 물량이 줄어들 경우 발전·집단에너지 업계의 투자 계획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전환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것은 이해하지만 산업계 투자 계획과 전력 수급 안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정책 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국제유가 100달러 코앞…직격탄 맞은 韓 경제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기간이 열흘가까이 되면서 국제유가가 100달러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중동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에너지 수급 차질은 물론 전쟁이 장기화 될 시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8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면서 쿠웨이트, 카타르 등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산유국들이 잇따라 원유, 가스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두 나라는 이란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공격을 가하자 수출이 중단된 생산물량을 임시로 저장고에 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같은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생산 중단 단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는 홍해, 이라크는 요르단, UAE는 오만 등 해협과 상관없는 인근 지역으로 연결되는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어 기존보다 공급량은 줄겠지만 생산 중단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및 가스 물동량의 20~25%가 드나드는 세계 에너지시장의 요충지이다. 해협 봉쇄 기간이 열흘가까이 되면서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국제유가(브렌트유)는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 초반에서 7일 기준 93달러까지 올랐다. 이 추세라면 며칠 안에 100달러 돌파도 예상된다. 동북아 LNG 현물가격도 전쟁 전 MMBtu당 10달러대에서 전쟁 후에는 15달러 후반대로 올랐다. 카타르 에너지장관인 사드 알 카비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계속 금지될 경우 유가가 2~3주 안에 배럴당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과 중동산 수급 차질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석유화학 업종이다.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의 가장 많은 수입처가 바로 중동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5년 중동산 나프타 수입량은 약 1400만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52%를 차지했다. 이로 인해 국내 최대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운영하는 여천NCC는 최근 주요 고객사에 공급 차질 가능성을 알리는 서한을 보냈다. 여천NCC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229만톤이다. 중동으로부터 70%의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업계는 대체 원유 도입에 나섰다. 국내에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약 208일분의 비축유가 있지만, 지난해 하루 소비량인 255만배럴을 적용하면 비축일수는 70여일로 크게 줄어든다. 즉 실질적 소비패턴으로는 세 달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미국 등 미주산 원유 도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가전·스마트폰 업계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가전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장기 봉쇄 시 해상 운임 상승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회 항로 이용 시 해상 운임이 최대 50~80% 오르고 운송 기간도 3~5일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은 항공 물류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항공 운임 상승이나 항로 제한 시 물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건설업계 역시 중동 지역 플랜트·인프라 프로젝트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충격이 산업계를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2% 수준으로 전망했지만 이는 두바이유 배럴당 약 62달러를 전제로 한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르며 한국 경제 성장률이 0.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국제유가가 연평균 80달러 수준만 유지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포인트 높아질 것"이라며 “100달러일 경우 1.1%포인트, 150달러면 2.9%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유가 급등은 가계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석유공사, 비축유 방출점검 ‘이상무’…“200만배럴 추가확보”

국가 석유 비축업무를 맡고 한국석유공사가 중동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방출 준비를 완료했다. 8일 석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취임한 손주석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바로 다음 날 울산 석유비축기지를 방문해 비축유 방출 준비를 점검했다. 손 사장은 “공사는 석유수급 위기 발생시 국민 경제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비축유 방출 등 여러 방안을 통해 수급 안정화에 기여해야 한다"며 “반복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매뉴얼에 명시된 프로세스대로 비축유 방출이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공사는 2월말 현재 울산, 거제, 여수 등 전국 9개 비축기지에 1억46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시설을 확보하고 있고, 여기에 총 1억 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우리나라가 약 120일 가량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또한 때마침 이날 울산 비축기지에는 200만 배럴의 쿠웨이트 국영석유사 KPC(Kuwait Petroleum Corporation)의 국제공동비축 물량이 도착해 원유 입고를 진행했다. 200만배럴은 우리나라가 거의 하루를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국제공동비축이란 석유공사의 비축시설을 국영 석유사 등에 임대해 평상시에는 임대수익을 올리고 비상시에는 해당 원유를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제도이다. 손주석 사장은 전주고와 경희대 정치외교를 전공했으며, △16대 노무현 후보 선대위 행정지원실장 △한국환경공단 관리이사(2003~2006년) △환경공단 이사장(2006~2008년) △석유관리원 이사장(2018~2021년)을 지냈다. 손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중동 상황 급변의 엄중한 시기에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를 책임지는 석유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게 돼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서, 에너지 안보라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재무 건전성 회복과 석유개발 사업의 질적 고도화 △재무건전성 회복 △석유비축사업의 운영 효율성 최적화 △신성장 동력의 육성 △안전경영 △AI혁신 및 조직문화 혁신 등에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손 사장은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심해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광개토 프로젝트와 그 일환인 동해심해가스전 탐사는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객관적 타당성 검증과 이해관계자와의 투명한 소통을 거쳐 최적의 방향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E칼럼] 작금의 중동사태와 IEA의 원유비축 요구량이 90일분인 이유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잘 알고 있는 아일랜드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멀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던 4년 전에, 그리고 가깝게는 작년 6월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했을 때, 지금과 같은 사태가 있을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전쟁 전문가들 말대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고 언제,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의 문제였다. 당장에 우리 군의 참전 문제나 국민의 직접적인 피해가 있지는 않으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및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피해는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러면 그동안 잘 준비하고 있었나? 먼저,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을 보자. 2025년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약 69%로 숫자로는 낮은 숫자는 아니지만 일본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9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여 년간 미국산 셰일가스/석유 및 카자흐스탄 원유 등의 수입을 늘려 온 반면 일본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린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로 다시 중동에서 수입량을 늘려야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2021년에는 60% 아래로 까지 떨어졌었으나 지난 4년 동안 70% 수준으로 다시 올라온 것이다. 미국산 원유 가격이 유럽이나 중동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우리나라의 미국산 원유 도입 증가는 중동 의존도도 줄이고 동시에 도입 가격도 낮출 수 있었던 좋은 정책이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이 앞다투어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리자, 그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원유 비축분은 얼마나 있을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선진 각국 (또는 수입국) 에 90일분의 원유를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일 우리나라의 원유 비축량은“정부 비축량 7천648만 배럴과 민간 업계 비축량 7천383만 배럴을 합치면 즉시 사용 가능한 물량이 약 1억 5천700만 배럴 수준"이라고 발표하였다. 정부 비축량과 민간 비축량이 대략 각각 85일분, 80일분, 합하면 165일분이다. 정부와 민간을 합친 전체 원유 비축량이 거의 6개월분에 다다르고 있으니 단기적인 전쟁으로 인한 충격은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다. 정부는 추가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양을 합치면 약 208일분의 원유가 사용 가능하다고 발표하였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정부 규정으로 국가 원유 비축량이 145일 수준이며, 석유회사들은 9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원유를 비축하여야 한다. 언제나 235일분의 비축이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 이후 밝힌 일본의 비축량은 254일분이다. 대만은 120일분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2023년 3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정부 비축량은 IEA 기준으로 106일분이었다. 일본은 129일분, 독일은 116일분을 비축하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의 정부 비축분 원유량이 무려 20일분가량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동 의존도 및 원유 비축량은 분명 세계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충분히 안전한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추세는 더욱더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 그리고 여러 학술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2차 석유 위기를 불러온 이란-이라크 전쟁과 같은 중동 산유국 간에 벌어지는 장기적인 전쟁이 아니라면, 전쟁으로 인한 국제 석유 시장 가격의 급등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정도일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 걸프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경우 모두 전쟁 발발 2~3개월 안에 국제원유 가격이 기존의 수준으로 회복하였다. 이는 세계에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가 중동 국가들 이외에도 많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그리고 조금 더 비싸겠지만, 순차적으로 다른 국가로 수입원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다른 양이 아닌 90일분의 원유를 비축할 것을 권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충분한 것 같지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우리의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잘 나갈 때 더욱 더 잘 준비하여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코 다친다. 우리 국민이. bienns@ekn.kr

“중국산 배터리 아웃”…EU 초강수 철퇴에 K-배터리 ‘역전 잭팟’

유럽연합(EU)이 무섭게 밀고 들어오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를 향해 마침내 '보조금 차단'이라는 피 묻은 칼을 빼 들었다. 노골적으로 “유럽에서 만들지 않으면 단 한 푼의 보조금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일찌감치 유럽 한복판에 거대한 생산 요새를 구축해 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K-배터리 3사가 반사이익을 거머쥐게 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최근 '산업 가속화법(IAA)' 초안을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경제 제재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으려면 차량 자체를 무조건 EU 내에서 조립해야 하는 것은 물론, 셀·모듈·팩·양극재·분리막·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등 배터리 핵심 부품 중 최소 3개 이상을 반드시 유럽 땅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당장 3년 뒤인 2030년부터는 이 기준이 '5개 이상'으로 상향된다. 보조금 없이는 차를 팔 수 없는 완성차 업체들 입장에선 유럽에 공장을 가진 배터리사를 선택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EU의 이번 철퇴에 K-배터리 3사는 남몰래 쾌재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유럽에 초대형 생산 기지를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연간 90GWh(기가와트시)라는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내고 있고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40GWh), SK온은 헝가리 코마롬과 이반차(47.5GWh)에 이미 탄탄한 진지를 구축했다. EU가 요구하는 역내 생산 조건을 충족하며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을 독식할 절대적인 유리함을 선점한 것이다. 반면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무기로 유럽 시장 점유율을 60% 이상까지 끌어올리며 폭주하던 중국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 최대 배터리 공룡 CATL이 부랴부랴 헝가리 데브레첸에 100GWh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고 삽을 떴지만 유럽의 환경 규제에 발목이 잡혀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당장 유럽 내 생산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보조금 명단에서 싹쓸이로 퇴출당할 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만 싸다고 밀어붙이던 중국의 무식한 공세가 EU의 룰 변경으로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수년간 혹독한 유럽 현지 생산 노하우를 쌓아 올린 K-배터리 기업들이 빼앗겼던 점유율을 단숨에 되찾아올 판이 깔렸다"고 평가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후 신호등] 세계 곳곳 전쟁-군사행동, 기후 위기 부추기는 그림자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 등에 공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의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이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군사행동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았고, 동시에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도 다량 배출했다. 군사 활동과 무력 충돌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국가 안보와 작전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그 실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산업·에너지·교통 부문을 중심으로 한 탄소 감축 노력은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오염원 중 하나인 군사 부문은 여전히 국제적 감시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 악화 우려 만 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는 2010년대 이후 기후 행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고, 환경 전략을 유럽연합(EU) 기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공개된 유럽 ​​위원회의 공동 연구 센터(JRC) 보고서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군사 활동은 환경 변화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탓에 산업 생산 감소와 에너지 시설 파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22년 배출량은 2021년 대비 23~26% 감소했다. 하지만 군사 작전과 관련된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최초 18개월 동안 군사 작전으로 7700만톤의 CO2가 배출됐다. 지난해 2월 비영리단체인 '전쟁으로 인한 온실가스 산정 이니셔티브'가 유럽기후재단과 국제기후이니셔티브 등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이후 3년 동안 전쟁과 건물 복구, 경관 화재, 에너지 기반시설 피해, 난민과 민간 항공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CO2) 배출량이 모두 2억3000만톤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탱크·전투기 등이 사용하는 화석연료와 포탄 사용 등 전쟁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전쟁'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36%(8200만톤)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건물 복구 등 '재건' 배출량은 6200만톤으로 27%를, 산불 배출량은 4800만톤으로 21%를 차지했다. ◇파괴력에 가려진 에너지 효율, 군사 장비의 구조적 기후 파괴성 현대 군사 전략과 무기 체계의 핵심 기준은 에너지 효율이나 탄소 감축이 아니라, 압도적인 파괴력과 즉각적인 작전 수행 능력에 있다. 전투기와 폭격기·전차·군함은 극단적으로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평시 훈련과 대규모 군사 기지 운영만으로도 막대한 배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군수 산업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고무·화학물질 등 경제 전반에서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원자재들을 사용한다. 군비 확장은 국가 전체의 배출 강도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2024년 공개된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진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에서 1%포인트 상승할 때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0.9~2% 증가하고,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강도 역시 1% 증가한다. 특히 생산 구조가 탄소 집약적인 국가일수록 군사화의 환경적 비용은 더욱 증폭된다. 군대가 사용하는 연료와 장비는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군사 부문은 구조적으로 탄소 감축이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통계의 사각지대, '군사 배출량 격차'의 형성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그 양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 기후 협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보고체계의 구멍(reporting loophole)' 때문이다. 현재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에서 각국은 매년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제출하지만, 군사 연료 사용과 해외 작전에서 발생한 배출량은 보고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 협상 당시 미국 등 주요국의 요구로 군사 부문의 배출량 보고를 의무가 아닌 자발적 항목으로 분류한 탓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가 군사 배출을 누락하거나 민간 부문 수치에 통합해 발표해 실제 오염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Germanwatch) 등이 공동으로 운영·발표하는 '기후변화 성과지수(CCPI)'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군대를 하나의 국가로 가정할 경우 해당 '국가'는 세계 4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전쟁의 직접적·간접적 환경 비용 무력 충돌은 단순한 전투 행위 이상의 환경적 비용을 수반한다. 전쟁 중 발생하는 연료 소비뿐 아니라, 폭격과 교전으로 인한 대규모 화재, 석유·가스 시설 파괴, 파손된 도시와 기반 시설의 재건 과정이 모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여기에 분쟁 지역을 우회하는 민간 항공 노선 증가, 의료·구호 활동 확대, 군수품 공급망 유지까지 포함하면 전쟁의 탄소 발자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2년 동안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약 2억3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네덜란드나 스페인의 연간 배출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CCPI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 역시 약 15개월 만에 크로아티아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약 3200만 톤의 배출을 초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에는 향후 재건 과정에서 발생할 시멘트와 철강 생산 배출량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후 위기와 무력 충돌의 악순환, 그리고 난민 문제 기후 변화와 무력 충돌은 일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스위스 취리히공대 등 국제연구팀이 2024년 8월 '혁신과 녹색 발전 (Innovation and Green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연구팀에 따르면 가뭄·홍수·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적 충격과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존의 정치·종족 갈등을 군사적 폭력으로 전환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자원 부족으로 인한 '환경적 희소성'은 국가 내부의 분쟁을 넘어 주변국 개입을 불러오고, 분쟁을 국제화된 내전으로 확대시키는 경로가 된다. 이러한 충돌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초래해 수많은 기후 난민을 발생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강제 이주는 이동 과정과 임시 거주지 건설에서 추가적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난민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통은 다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분쟁의 환경적 비용까지 떠안는 구조는 기후 정의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낸다. ◇ 녹색 전환을 가로막는 군수 산업의 '구축 효과' 군비 확장은 단지 배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원과 혁신 역량을 잠식한다.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이 급증한 이후, 기후 변화 완화와 관련된 녹색 특허 활동은 10~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정된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이 군사 기술로 쏠리면서 환경 기술 혁신이 억제되는 전형적인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다. 구축(驅逐)은 밀어내기를 의미한다. 또한 군비 증강은 전력(電力)·유틸리티 부문 투자를 위축시키는데, 이 부문 투자의 절반 이상이 재생 에너지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긴장은 에너지 전환 속도를 직접적으로 늦추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철강·화학·석유 산업 등 에너지 집약적 군수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면 탄소 가격제나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지게 된다. ◇“나토 국방비 증가로 온실가스 연간 최대 2억 톤 증가" 지난해 5월 영국에 기반한 '분쟁과 환경 관측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을 제외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31개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경우 연간 8700만∼1억9400만 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보코니대학교 연구팀에서 사용한 계산법을 이용해 이같이 추산했다. 나토 회원국이 2023년 배출한 온실가스가 모두 48억6100만 톤이란 점을 고려하면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때 배출량이 최대 2억 톤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군비 증강이 기후 위기를 가속할 뿐 아니라 평균 기온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1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사회적 탄소 비용(배출량 1톤당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 비용)을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톤당 1347달러로 추산했는데,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나토의 군비 증강에 따른 부수적 경제비용은 최대 2600억 달러(약 383조 원)에 달할 수 있다. ◇군사비 증가, 기후 목표 달성에 '숨은 장애물' 중국 중산대학교 등 연구진은 지난해 6월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군사비 증가가 기후 목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95~2023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MILEX)과 이산화탄소 배출 강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군사비가 글로벌 GDP 대비 1%포인트 증가할 때 CO₂ 배출 강도는 GDP 1달러당 약 0.04kg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 배출 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해 왔지만, 군사비 지출 변화는 배출 강도 변화의 약 27%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분쟁이 군사비 비중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됐다. 미래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군사비 비율이 높아질수록 기후 목표 달성이 늦어질 가능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군사비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또는 2°C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 달성이 최대 수십 년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 정의를 위한 평화와 군축의 선택 군사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기후 변화 완화 정책에 할당될 자원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해 해외 원조 예산을 깎아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도 유사한 조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 부문에 대한 근본적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공격적 군사 전략에서 벗어나 방어 중심의 군축이 이루어질 때만, 군사 부문의 탄소 발자국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군비 축소로 확보된 재원을 재생 에너지 인프라와 기후 적응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녹색 평화 배당금(Green Peace Dividend)'은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안보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 사회는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표준화된 보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기후 위기로 인한 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취약국의 회복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평화 구축은 더 이상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전쟁의 부재를 넘어,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군축을 통해 녹색 전환의 여지를 넓히는 것, 그것이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전력정책 책임자의 현실진단 “LNG 없이 전력 시스템 가능? 아직은 어렵다”

이란사태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 전력정책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현재 기술 수준에서 LNG 없이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문양택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산업정책과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대규모 LNG 신규 건설 이대로 괜찮나' 토론회에서 이례적으로 약 30분에 걸친 발언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설명하며 균형과 현실성 있는 정책 수립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LNG 발전 신규 건설을 제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 속에 열렸지만, 문 과장은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실적인 전력 시스템 운영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과장은 먼저 최근 전력부문 온실가스 배출 감소의 배경을 설명하며 “한국의 전력부문 온실가스 배출은 실제로 감소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석탄 발전을 LNG로 전환한 효과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 전력 시스템에서 LNG가 수행하는 역할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 과장은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현재 LNG가 수행하는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져올 전력 변동성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태양광 설비가 100GW 수준까지 늘어날 경우 봄철 맑은 날 낮과 밤의 전력 공급량 차이가 약 70GW에 달할 수 있다"며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수요 조정, 에너지저장장치(ESS), LNG 발전 등 다양한 수단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과장은 LNG 발전의 경제성 문제도 언급했다. 재생에너지와 ESS 조합이 장기적으로 확대될 수는 있지만 현재 기술과 비용 구조를 고려하면 LNG의 경쟁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LNG 발전이 태양광과 ESS 조합보다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며 “온실가스 비용이 상당히 높아지지 않는 한 이 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LNG 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문 과장은 “10차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규 LNG 발전 허가는 사실상 한 건도 없었다"며 “정부는 신규 LNG 건설을 사실상 막아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12차 전기본 또한 전력 믹스가 특정 전원 중심으로 단순화되기보다는 다양한 전원을 조합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문 과장은 “탄소중립 시대에 특정 전원 하나만으로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기는 어렵다"며 “태양광·풍력과 ESS, LNG에 탄소포집(CCS)을 결합한 방식, 소형모듈원전(SMR) 등 다양한 전원을 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기적으로 LNG 없이 전력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재 기술 수준에서는 쉽지 않다"며 “지금 LNG를 당장 없애자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력 시스템 안정성과 비용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정책 당국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전력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LNG 축소라는 두 정책 목표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재벌승계지도] LG그룹 ‘장자 우선 원칙’ 구광모 체제서 분기점 맞나

LG그룹 승계지도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그려볼 수 있다. 지배구조는 투명하다. 지주사 체제를 일찍부터 확립했고 총수 일가 지분율도 높은 편이다. 다음 세대로 증여·상속을 해도 소유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외에도 26명이 지주사 주식을 들고 있어 '가족 소유' 성격이 강하다. 경영권 측면에서는 50년 넘게 이어온 '장자 승계' 원칙이 기로에 선 상황이다. 4세인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G그룹 지배구조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인 ㈜LG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LG 최대주주(이하 3일 기준)는 구광모 회장(16.27%)이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합치면 ㈜LG 지분율은 42.54%가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6.87%를 가지고 있어 이를 합산하면 과반에 육박한다. 영국에 본사를 둔 자산운용사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엘엘피'(Silchester International Inv)가 ㈜LG 지분 7.17%를 들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잡는다. 주요 계열사들은 ㈜LG 영향력 아래에 있다. LG전자(35.27%), LG화학(34.95%), LG유플러스(38.25%), LG생활건강(34.74%), LG CNS(44.95%) 등이다. LG전자는 LG이노텍(40.79%), LG디스플레이(36.72%), 엘지마그나이파워트레인(51%) 등을 아래에 두고 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79.38%를 지니고 있다. LG유플러스는 LG헬로비전 주식을 58.61% 보유 중이다. 이밖에 손자 또는 그 아래에 있는 회사들도 각 계열사들이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편이다. LG전자의 100% 자회사로는 하이프라자, 하이엠솔루텍, 하이케어솔루션, 하이텔레서비스, 에이스냉동공조 등이 있다. 씨에스리더, 아인텔레서비스, 씨에스원파트너, 위드유, 유플러스홈서비스 등은 LG유플러스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LG생활건강 아래로는 코카콜라음료(지분율 90%)와 해태에이치비(100%) 등이 있다. LG화학은 100% 자회사로 팜한농을 두고 있다. ㈜LG 지분을 확보하면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 셈이다. 첫 번째 변수는 실체스터의 행보다. 이 회사는 주로 저평가된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2023년 ㈜LG의 5% 이상 지분 보유 주주로 이름을 올린 뒤 지난해까지 꾸준히 주식을 사들였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최대주주와 경영 보폭을 맞추고 있다. 5% 확보 이후 공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LG그룹에 '외국계 감시자'가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주주가치 제고 기대에 지주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는 ㈜LG 이사회 측이 제안하는 주주 환원 정책에 우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체스터가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와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달 ㈜LG 정기주주총회 역시 이변 없이 넘어갈 전망이다. ㈜LG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전자주총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상향 등 대대적인 정관 변경에 나선다. 더 큰 관전 포인트는 ㈜LG 지분 소유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LG그룹 경영은 '구광모 체제'가 사실상 완성된 상태다.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탄탄한데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던지며 비주력사업에서 손을 떼고 신성장동력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 스마트폰·태양광 패널 등 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전장,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역량을 쌓는데 집중했다. 이같은 결정은 LG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유 관련 지도는 쉽게 그리기 힘든 상황이다. LG그룹은 55년여간 맏아들이 그룹 지배권을 물려받고, 경영에 참여했던 나머지 형제들은 독립한다는 기조를 지켜왔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떠나자 동생인 구철회 회장은 LIG그룹을 차려 나왔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세 형제는 힘을 모아 LS그룹을 만들었다. 구인회 회장(1969년 별세)의 장남인 구자경 회장(2019년 별세)은 1995년부터 LG그룹 2세대를 이끌었다. 구자경 회장의 동생들은 아워홈(구자학), LF(구자승), LB인베스트먼트(구자두) 등을 맡았다. 2018년 취임한 3대 구본무 회장의 형제들도 경영을 돕다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약속대로 LG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LX그룹(구본준), 희성그룹(구본능) 등이다. 현재는 구광모 회장 체제다. 구광모 회장은 구자경 회장의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양자로 입적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다. 총수 일가들은 혈통보다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법적 절차까지 밟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보수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은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형제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LG그룹은 4대에 걸쳐 상속을 이어온 탓에 지주사 지분을 지닌 가족 수도 크게 늘었다. 구광모 회장과 엮여 있는 ㈜LG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2.54%다. △LG연암학원(2.17%) △LG연암문화재단(1.14%) △LG상록재단(0.49%) △LG복지재단(0.23%)을 제외하면 모두 개인이다. 구본무 회장의 막내동생이자 LT그룹을 가지고 독립한 구본식 회장이 아직 ㈜LG 지분 4.57%를 가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지분율도 3.11%에 달한다.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4.29%)를 포함해 △구본무 회장의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2.97%) △구본무 회장의 차녀인 구연수씨(0.73%) △구형모 LX엠디아이 사장(1.64%) △구본준 LX그룹 회장(1.06%) 등도 의미 있는 수준의 ㈜LG 주식을 보유 중이다. 이밖에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씨(0.69%)를 포함한 18명의 친척 및 방계 구성원들이 ㈜LG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게 '세 모녀의 난'으로 불리는 가족간 상속분쟁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대표, 구연수씨는 지난 2023년 2월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며 소송에 나섰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골자로 한 2조원가량이다. 구광모 회장은 해당 지분 11.28% 중 8.76%를 물려받았다. 구연경 대표는 2.01%, 구연수씨는 0.51%를 각각 상속받았다. 세 모녀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지 4년이 지나 '가족간 합의가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구광모 회장이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앞선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구광모 회장 손을 들어줬다.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지난달 원고 패소로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원고 측이 재산분할과 관련해 주장한 핵심 쟁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할 협의서는 유효하게 작성됐고, 선대 회장이 남긴 유지에 따라 협의서 작성 과정에서 기망 행위는 없었다고 봤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결과보다 소송전 자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목을 끈다. LG그룹이 50년 넘게 지켜온 '장자 승계' 원칙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일단 세 모녀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더라도 '구광모 체제'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세 모녀가 승소해 법정 상속비율로 지분을 재분배해도 합산 지분은 15%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회장 힘까지 모아 14%가량 지분 확보가 가능해 보인다. 특수관계인에 그룹 내 공인재단들이 있는데다 다른 가족들도 '원칙을 깬' 세 모녀 쪽보다는 구광모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5세 경영체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구광모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친척들이 지분을 조금씩 쪼개 '가족경영'을 펼치는 와중에 16.27%는 충분한 지분율이 아니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LG그룹과 비교해 훨씬 복잡하고 불완전한 지배구조를 갖춘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은 특정인에게 경영권과 지분을 모두 몰아주며 '소유와 경영'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LG그룹의 평화로운 세대 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장자 승계' 원칙이 계속 지켜질지 여부에 재계 시선이 쏠리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LG그룹의 '가족 소유' 전통은 이어져도 '1인 경영' 체제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가족경영이 한국적 특수성 안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환경에서 주주들이 '장남에게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LG가 전통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을 지가 쟁점이다. LG가 '인화(人和)'를 강조하며 가족 간 합의로 일을 처리해온 전통에도 금이 갔다. 가족 사이에서 '유언장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이는 LG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힘을 보태주는 요소다. ESG 경영이 중요해진 시대에 '불투명한 거버넌스(G)'는 기업 가치를 깎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구광모 회장이 LG그룹 '퀀텀점프'를 이끌 수 있을지다. 지금까지는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5세 체제를 감안한다면 보다 눈에 띄는 도약이 필요해 보인다. 구광모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과거와 같은 구본무 회장을 뛰어넘는 LG그룹의 전성기를 열고, 자녀는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소유 측면에서는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에 대한 그림을 아직 그리기 힘든 단계다. 구광모 회장은 약 7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모두 납부했다. 지금부터는 ㈜LG 등 배당 확대나 보수가 주요 수입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LG에서만 47억1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구광모 회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탓에 ㈜LG 외 주요 계열사 주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LG CNS는 미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97만2600주(지분율 1%)를 아직 들고 있다. LG CNS의 시가총액은 3일 종가 기준 약 7조2000억원이다. LX그룹 독립이 LG 승계 역사의 마지막 '전통적 이별'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경영에 참여 중인 동생들이 없는데다 이제 떼어낼 수 있는 '적당한' 사업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LX그룹 분할 당시에도 판토스 등 알짜자산 배분을 두고 가족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결론적으로 LG그룹의 승계지도는 앞으로 경영권보다 소유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과거 LG의 계열 분리가 현장에 있던 삼촌들에게 사업체를 떼어주는 방식이었다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4세 이후 친척들간 갈등은 지분 분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LG그룹이 고수해온 '장자 승계' 원칙은 재산권 행사라는 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충돌하며 시험대에 올라선 모습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에너지안보 점검] 우선협상대상자 승인 기다리는 BP, 대왕고래 이대로 끝낼건가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에너지안보 리스크가 커지면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총 7개의 구조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 가스가 탐지돼 이를 확인하는 탐사시추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발견으로 이어진다면 석유, 가스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에너지 안보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전 정부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현 정부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사업의 잠재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글로벌 석유공룡 BP에 대해 최종 승인을 허가해 BP의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7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이란 간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당장 우리나라에 석유, 가스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동으로부터 석유 70%, 가스(LNG) 15%를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이란군이 해협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공격을 가하고 있어 글로벌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가 운항 중단을 선언하는 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선박의 운항이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정부는 석유 비축량이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한국석유공사가 담당하고 있는 정부 석유 비축량은 약 1억배럴, 민간 석유 비축량은 약 9000만배럴로, 이에 따른 비축일수는 정부 발표 기준 208일분이다. 하지만 실질적 소비량을 적용하면 비축일수는 크게 줄어든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량은 9억3158만배럴로, 일평균으로는 255만배럴이다. 이를 비축량에 적용하면 비축일수는 약 80일분밖에 안된다. 즉, 일상적 석유 소비패턴으로는 세 달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미국 등 다른 지역에서 석유, 가스를 조달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에너지 안보 대책은 우리 땅에서 석유, 가스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 시작하고 현 정부에서 중단된 동해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북 포항 앞바다에 위치한 심해 7개의 유망구조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 가스 자원량을 개발하는 것이다. 자원량의 30%만 확보해도 국내 소비량의 4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사업 주관사인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발견가능성이 가장 높게 평가된 대왕고래 구조를 대상으로 탐사시추를 진행했지만 아쉽게도 경제성 있는 물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추비는 총 124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석유공사는 나머지 6개 구조에 대한 추가 탐사시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조가 서로 연결돼 있어 가스가 다른 구조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사실상 이를 거부하고 있다. 1차 시추비 예산에 이어 추가 시추비에 대한 예산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이 사업에 대해 “그 돈(시추비)이면 AI용 GPU(그래픽카드) 수천장을 살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반면 글로벌 석유업계는 이 사업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석유공사가 지난해 실시한 투자유치 입찰에 복수의 글로벌 석유기업이 참여했고 10월 잠재적 우선협상대상자로 BP를 선정했다. 영국계 글로벌 석유공룡인 BP는 미국 엑슨모빌에 이어 세계 2위 석유기업이다. 브라질 등 다수의 심해 유가스전 개발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세계 최고의 석유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BP가 최종 선정되기 위해서는 주무장관인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김 장관은 4달이 지난 현재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와 10월 국정감사에서 동해심해가스전 개발사업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랬던 김 장관이 아직까지 BP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청와대와 여당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 역량을 가진 BP가 동해심해가스전 개발사업에 참여한다면 그만큼 실패리스크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BP가 개발사업에 참여한다 해도 바로 시추에 들어갈 순 없다. 탐사자료와 시추지질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하고, 이를 토대로 정밀한 시추 계획을 짜야 하는데 그게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만큼 실패리스크는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도 정치적 부담은 크게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확실한 에너지안보 대책 차원에서 국내 대륙붕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며, 정권 교체때마다 반복되는 소모적 논쟁을 없애기 위해 관련 예산과 조직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에너지와 광물 수입에 한해 200조원 이상을 사용하면서 자원확보 예산에는 0.1%도 쓰지 않는 나라"라고 지적하며 “석유수입업자와 판매업자한테서 걷는 석유사업기금의 일부를 자원개발에 사용토록 하고, 자원개발 사업과 조직도 정치적 영향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독립적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에너지 및 금속광물 수입액은 1724억달러로, 약 254조원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되자 RE100 캠페인의 발원지인 영국에서도 에너지안보를 위해 유전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너지 신산업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세계적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한 영국 옥토퍼스의 설립자이자 정부 자문위원인 그렉 잭슨은 현지 언론 기고글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폐쇄한 이후 전 세계 가스 가격이 두 배로 올랐고, 영국의 도매 전력 가격은 약 50% 상승했다. 에너지 가격 인상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결국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경제적 피해를 더욱 악화시킨다"며 “우리는 북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가스가 있는데 굳이 지구 반대편에서 가스를 수입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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