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온의 건설생태계]‘10.7조 대어’ 가덕도신공항 입찰 전쟁 막 올랐다

정부가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공사기간을 늘려 입찰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건설업체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현대건설이 지난 5월 공기 부족을 이유로 자진 이탈한 후 '간을 보던' 대형 건설사들이 정부의 조율로 조건이 마련됐다. 주택 시장의 끝없는 침체로 불황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 입장에선 오랜만에 토목·인프라 공공 공사에서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일단 현대건설의 컨소시엄에 포함됐던 대우건설이 토목 1위 실적을 앞세워 경쟁에 나선 가운데, 롯데건설과 한화 건설부문도 입찰 참여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전히 공사의 본질적인 문제인 공기 부족·지반침하 가능성 등 핵심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새로 정한 2035년 개항 목표 조차 낙관적이라면서 아예 사업 타당성 검토부터 새로 해야 한다는 이들또 있다. 가덕도신공항 논의는 박근혜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 검토 끝에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했지만, 산악 관통 비행과 군·민 공역 중첩, 소음 등 안전·환경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며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무총리실 검증위가 2020년 김포공항 확장안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면서 사실상 백지화됐고 가덕도신공항 신설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국회가 2021년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하며 사실상 추진이 확정되고 사업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특별법은 예타 면제, 인허가 단축 같은 신속 추진 장치를 담고 있었고, 국토교통부는 기본계획·사업비·공사 방식을 확정하며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한 해 빠른 2029년까지 개항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문제는 지나치게 짧은 공기였다. 바다를 매립하고 그 위에 부지를 조셩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사를 이례적으로 8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마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부실공사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가덕도는 두꺼운 연약지반이 분포한 해상 매립지다. 따라서 '성토–압밀–계측–안정화' 과정이 필수임에도 기존 계획에는 안정화 계측 기간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4차례에 걸쳐 입찰이 무산된 후 지난해 12월 공사를 따낸 현대건설마저도 정부의 84개월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108개월 이상을 달라고 주장했다. 해상 매립지에서 성토 직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면 활주로·구조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국토부가 기존 계획을 유지하자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수백억 원 규모의 기본설계 권리까지 포기하며 컨소시엄을 이탈했다. 현대건설의 이탈 이후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 등 다른 참여사들도 사업성·공기 리스크를 이유로 참여 여부를 꺼리면서 사업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현 공기 기준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해졌고, 국토부 역시 일정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국토부도 기존 산정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1일 공기·공사비 조정 방침을 발표한 김정희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장은 “성토 후 안정화 계측·검증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며 “공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안정화 시간을 포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결국 84개월 공기가 비현실적이었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모처럼 10조원대 초대형 인프라 건설 공사가 시장에 나오자 대형건설업체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단 차기 주관사로 대우건설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기존 컨소시엄에서 현대건설(25.5%)에 이어 18% 지분을 가진 사실상 2대 주주였던 데다, 해상·연약지반 공사에 특화된 시공 이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거가대교 해저침매터널(총 3.7km, 180m 함체 적용)처럼 외해·대수심 조건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고난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부산항·부산신항·이라크 알 포 방파제 등 초대형 해상·항만 공사를 잇달아 성공시킨 이력도 있다. 2023·2024년 국토부 시공능력평가에서도 2년 연속 '토목 실적 1위'를 기록하며 기술력을 다시 확인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국책 초대형 토목사업은 실적과 경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며 “조건이 이전보다 나아진 만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관망하던 롯데건설·한화건설도 참여 검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롯데건설 역시 “공기 연장이 판단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며 기존 컨소 참여 방안을 논의 중이다. 두 회사 모두 공사비 10조 원대의 초대형 SOC 수주 기회를 매력적으로 평가해 왔으며, 리스크 완화로 참여 여건이 한층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롯데건설은 가덕도 접근철도 1공구를 이미 수주해 지역 인프라 공사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롯데그룹이 부산·경남권에 보유한 유통·레저·물류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공항 개항 시 직접적인 수혜도 기대된다. 한화 건설부문은 해양 매립·발파 등 대형 토목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며, 그룹의 방산·항공우주 사업 확장성과 연계한 시너지 가능성도 언급된다. 정부가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조정하며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담하다. 표면적으로는 공기 연장과 사업비 조정으로 기술적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약지반·해상매립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침하·균열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해상 매립지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단계에서 알 수 없는 변수가 시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라며 “특히 가덕도처럼 수심 변화가 급격하고 회류가 강한 구간은 장기적으로 구조물 변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가덕도 해역의 물리적 조건이 일반 매립지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덕도와 영도 사이 낙동강 하구는 물살이 돌아나가는 회류 구간이어서 성토 구조물에 지속적인 횡력(橫力)이 작용한다"며 “이런 곳에서는 활주로나 방파제 같은 중량 구조물도 장기 침하·균열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기 연장이 불가피했지만, 이 조정이 모든 기술 리스크를 해소하는 '해결책'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 같은 우려는 다른 대규모 매립·연약지반 공사에서도 이미 현실화된 바 있다.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매립지는 개항 후에도 활주로·계류장 일부에서 부등침하가 반복돼 수년간 보강·재포장을 이어왔고, 지금도 수백 개의 계측기를 통해 지반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새만금 매립지 역시 도로·항만·산업단지 곳곳에서 침하·균열·피복석 붕괴 등이 발생해 국토부와 전북도가 반복 보수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활주로와 여객청사 주변 침하로 인해 '운항 중단 → 보수 → 재운항'이 반복된 사례로 꼽힌다. 조 교수는 “이들 사례는 해상·연약지반 공사가 설계상 가능해 보이더라도, 실제 시공 단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공기가 늘어나고 유지관리비가 증가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2035년 개항 목표의 현실성을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덕도는 환경·행정·정치적 변수가 얽힌 복합사업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기를 늘렸다고 해서 일정 안정성이 확보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환경영향평가, 철새 도래지 보전, 어업권·보상 갈등, 지자체·중앙정부 간 조율 등 지연 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2035년 개항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상당히 낙관적인 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초기 설계·평가·보상 절차가 한 번만 흔들려도 수년 단위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침체된 시골 부동산…‘GPU 26만장’에 설렌다

전국 부동산 시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공급 약속에 들썩이고 있다. GPU를 활용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어디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 부동산 시장에 대대적인 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과 산업 지형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 만큼 입지에 따라 지역 경제와 부동산 시장의 흐름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해외에서도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은 토지 시장이 먼저 들썩이고 산업·상권·인구 구조가 재편되는 변화가 반복돼 왔다. 국내에서는 태양광 밀집 단지인 전남 해남·영암 일대 '솔라시도', 강원 동해안과 수도권 외곽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그러나 전자파·열섬 등 인체 유해 논란과 지자체간 갈등이 곳곳에서 표출되면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서버 보관 창고가 아니다. 생성형 AI와 초거대 언어모델이 산업·행정·금융·제조 전반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하느냐가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 인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소비하는 존재가 AI가 된 순간 데이터센터는 선택적 시설을 넘어 사실상 '국가 기반시설'로 성격이 바뀌었다. AI 특화 데이터센터는 기존 IDC(인터넷데이터센터)와는 '급'이 다르다. 수만 장의 GPU가 동시에 돌아가고, 그 열을 식히고 연결할 초고속 네트워크·냉각 시스템·전력망까지 한꺼번에 갖춰져야 한다. 정부와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이 확보한 GPU 26만 장을 실제로 돌리려면 1GW 안팎, 즉 천연가스(LNG) 발전소 두 기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지역의 산업 계획과 전력 체계가 통째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은 이미 5000~6000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북버지니아 애쉬번에는 세계 전체 용량의 70% 가까이가 몰려 있다. 중국도 '동수서산(東數西算)' 전략으로 250~300개 대형 컴퓨팅센터를 만들며 국가 단위의 AI 연산망을 확장 중이다. 반면 한국은 165곳 정도의 데이터센터 중 6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전력 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 공급망 확충도 고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이 주요국 중 데이터센터 전력 증가율이 가장 빠를 것으로 본다. 2035년에는 지금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AI 반도체 산업과 정부·기업의 AI 전환 속도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말 경주 APEC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에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혀 이미 가파르게 치솟는 전력 수요 곡선에 또 하나의 가속 페달이 밟혔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여의도멘션'에서 “데이터센터는 한 도시의 미래 산업지도를 통째로 바꾼다"며 “이 기반을 확보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일자리·부동산·도시계획까지 흔드는 '전략 인프라'가 되면서 데이터센터 입지는 이제 지역 개발 논쟁을 넘어 전국적 관심사로 번지고 있다. 인구 900만의 수도 서울은 AI 산업의 수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다. 초거대 모델 이용자도, 기업·스타트업도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하지만 서울은 정작 그 핵심 인프라를 지을 수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지을 땅도 없고 지나치게 비쌀 뿐더러 전력망 확충도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북한과 가까워 포격 한 번이면 잿더미가 된다. 비슷한 사례는 이미 해외에서 확인된다. 싱가포르는 2019년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전면 중단했다. 땅은 좁고 전력 수요는 폭증했지만 더 지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국외였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와 인도네시아 탐 지역에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따로 구축해 문제를 풀었다. 박 교수는 “도시 안에서 수요가 폭증하지만 입지는 외부에 둘 수밖에 없는 구조가 싱가포르 모델"이라며 “서울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유사하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인 북버지니아(애슈번)는 워싱턴DC 외곽에 자리한 공급기지다. 수요는 대도시에 있지만, 전력과 부지는 외곽 소도시가 떠안는 구조가 이미 굳어졌다. 이 모델을 서울에 대입하면, 데이터센터는 결국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외곽' 선정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인접 지역을 보면, 경기 남부는 인구 과밀과 높은 땅값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기 북부는 저렴하지만 군사·안보 위험이 크다. 박 교수는 “북한 포 사정거리 안에 국가 핵심 인프라를 둘 수는 없다"며 “이 때문에 전남·신안 같은 최남단 지역이 후보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은 AI 시대의 최대 수요지임에도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짓기 어려운 도시"라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대도시의 기술 수요와 외곽 지역의 입지·전력 인프라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만큼, 국가 차원의 공간 전략과 전력망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강해지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인접 지자체의 역할 분담, 보상·협력 구조, 장기 전력 수급 계획에 따라 한국 AI 산업의 속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다. 데이터센터가 어디에 들어서든 민원이 거세다.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자파·열섬·소음 같은 우려와 불신이 겹치며 사업이 잇따라 좌초되고 있다. 최근 시흥 장현지구 사례가 대표적이다. 9층 규모 데이터센터가 추진됐지만, 주민들은 “전력 케이블과 전자파 영향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며 반대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컸다. 사업자가 “국제 기준 대비 매우 낮은 수치"라고 해명했지만, 지자체의 소통 부족이 불신을 키웠고 결국 사업은 백지화됐다. 시흥 배곧 서울대캠퍼스 AI컴퓨팅센터 후보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입지 검토 소식만으로 반대가 퍼졌고, 주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가 설치한 '전자파 신호등' 같은 장치는 설명 대신 통보로 받아들여지며 갈등을 더 키웠다. 고양 등 수도권 다른 지역에서도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사이 충돌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등의 핵심을 '위험성'이 아니라 '절차와 신뢰'의 문제로 본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자파는 국제 기준의 1~2% 수준으로 인체 영향은 사실상 없다"며 “문제는 주민들이 정보 비공개와 소통 부재를 반복 경험하며 행정과 사업자를 믿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입지 검토 초기부터 자료 공개, 설명회, 완충녹지, 지역 기여책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갈등의 대가는 적지 않다. 최근 3년간 무산·지연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16곳에 달한다. 추진 중인 국내 프로젝트의 약 35%가 주민 갈등으로 1년 이상 늦춰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가 '혐오시설' 인식 속에서 멈춰 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절차 개선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가 어디에 들어설지는 부동산 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1~3GW급 전력을 끌어올 전력망, 초대형 단지 규모, 재생에너지 연계, 지자체·정부 지원이 핵심 기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전남 해남·영암 '솔라시도'다. 이미 2028년까지 3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으며, 100% 재생에너지 기반 운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민간·공공 협력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BS산업은 지난 13일 한전KDN이 솔라시도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분산형 전력망과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함께 추진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AI 데이터센터 신규 구축·운영 △분산에너지 전력망 플랫폼 구축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 데이터 활용 등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솔라시도가 초대형 AI센터에 필요한 전력·인프라 기반을 갖춰가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SK 등 대기업 참여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후보지는 강원 동해안이다. 강릉·삼척·동해 전역은 전국 최고 수준의 전력 여유(총 17GW 발전설비·11GW 송전 가능 용량)를 갖춘 지역으로 평가된다. 화력·원전·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밀집해 있어 전력 안정성이 높고 송전 비용도 낮다. 다만 솔라시도처럼 '3GW급 단일 부지'를 통째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세 번째 축은 수도권 외곽이다. 접근성·인재 수급·물류 측면에서는 가장 매력적이지만, 군사·안보 변수(북한 포 사거리), 복잡한 개발 규제, 환경영향평가, 주민 민원 등 리스크가 크다. 전력망 증설도 필수라 국가 단위 전력계획과 맞물릴 때만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입지 논의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는 주택보다 토지가 먼저 움직이는 시설"이라고 말한다. 실제 미국 버지니아 북부 라우든카운티는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후 토지 가치가 급등했고, 중국 내몽골 역시 데이터센터 유치 이후 농지·산지 중심 지역에서 기반시설·토지 가치가 동시에 뛰었다. 국내에서도 솔라시도·동해안·수도권 외곽 등 후보지 일대에서 토지 문의와 산업단지 관심이 먼저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사업 추진 속도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전력망 확충이 차질을 빚거나 주민 갈등이 반복되면 시장 기대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토지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 상권 유입과 산업단지 확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나타날지는 결국 인프라 구축이 어느 속도로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유령세금’ 재초환 논란 재점화…공급 해법인가 부자 감세인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 시내 주택 공급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자 재건축·재정비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재초환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결국엔 '강남 부자 감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선 재초환 폐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고, 재초환이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핵심 규제로 지목된 것이다. 지난 4월 재초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 동의를 넘기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공식 회부됐고, 이후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완화·폐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공론화가 됐다. 국민의힘은 “국민청원이 성립된 만큼 국회가 즉각 심사에 착수해야 한다"며 폐지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김은혜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재초환 폐지 법률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상정해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은 “예측 불가능한 규제가 정비사업을 막고 있다"며 재초환을 “시장 왜곡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복기왕 의원 등 일부는 “공급 확대를 위해 대폭 완화나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논의의 문을 열었다. 다만 당 지도부는 신중한 태도다. 민주당 대변인은 “폐지·완화는 일부 의원의 개인 의견일 뿐 당론은 아니다"라며 “시장 자극과 형평성 논란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재초환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됐다. 당시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부동산 과열을 억제하고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건축으로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초과한 이익이 발생하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제도는 사실상 유예됐다. 당시 정부는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공급 확대"를 내세워 시행령을 완화했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도는 장기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10여 년간 실질적인 부과 사례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폭등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2018년 1월 재초환을 부활해 전면 시행했다. 이후 서울 강남 3구의 재건축조합들에게 억 단위의 부담금 통보서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실제 부과는 쉽지 않았다. 집값 변동과 개발비 산정, 정상 상승분 계산 방식이 복잡해 산정 기준마다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재건축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2022년 면제 기준을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올리고, 이익금 산정 시점도 조합 설립 인가일로 조정했다. 고령자 납부유예·공공기여 감면 등 완화책도 포함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단 한 건의 부과도 없었다. 올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또다시 정비사업 단지를 대상으로 재초환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재초환 부과가 예상되는 전국 단지는 총 58곳이다. 이 중 서울이 29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11곳), 대구(10곳), 부산·광주 각 2곳, 인천·대전·경남·제주 각 1곳 순이다. 서울의 1인당 평균 부담금은 약 1억4700만원으로, 전국 평균(1억300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예상 부담금이 1억원을 넘는 단지는 24곳에 달해 부과 대상이 주로 고가 단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기준보다 다소 줄어든 수치다. 당시에는 전국 68개 단지, 1인당 평균 1억500만원이었으나 올해는 단지 수와 금액이 모두 소폭 감소했다. 국토부는 집값 상승폭 둔화와 공사비 인상 등으로 초과이익이 줄어들면서 예상 부담금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초환 제도를 두고 팽팽히 맞선다.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실질 부과 사례가 거의 없는 만큼 “사실상 유령세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폐지를 추진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거세다. 제도 폐지 혹은 대폭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정부가 공급 의지를 시장에 명확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조합이 실제로 이익을 실현하기도 전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지자체가 부담금을 부과할 기준도, 역량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라리 과감히 폐지하고 정비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게 해야 한다"며 “정부가 공급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폐지를 선언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재초환은 본래 재건축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지금은 주택공급 확대가 정책의 핵심 목표"라며 “정책 목표가 바뀌었으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후 단지가 급증한 상황에서 억제형 규제를 그대로 두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폐지가 부담스럽다면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완화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유지론자들은 재초환을 손댈 경우 강남 고가 단지 중심의 '부자 감세'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공사비가 급등해 재건축으로 남는 이익이 거의 없다"며 “재초환 때문에 사업이 막힌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익이 남지도 않는데 제도를 없애자고 하면 결국 강남 고가 단지 세금만 깎아주는 결과가 된다"며 “재초환 완화는 공급 확대보다 특정 계층의 감세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책학과 교수도 “지금은 제도를 손댈 때가 아니다. 논의는 많지만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며 “재건축·재개발 촉진책으로 삼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사실상 사익에 가까운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초환을 조금 손본다고 공급이 늘어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런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하반기부터 재초환 제도를 완화했지만, 뚜렷한 공급 확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국토정책 Brief'(2024년 4월 22일자)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주택공급 실적은 인허가 42만9000호, 착공 24만2000호, 준공 43만6000호였다. 2005~2022년 평균과 비교하면 인허가는 81.8%, 착공은 54.7% 수준에 불과하다. 수도권으로 좁히면 착공 비율은 54.3%, 서울은 44.3%로 더 낮았다. 완화 이후에도 공급 지표는 반등하지 못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 2년(2022년 6월~2024년 5월) 동안 전국 주택 인허가 실적은 86만7000가구로, 문재인 정부 초기 2년(2017년 6월~2019년 5월)의 116만 가구보다 약 30만 가구 줄었다. 착공 실적은 58만3000가구로, 전 정부 초기의 100만 가구에 한참 못 미쳤다. 서울의 인허가는 18만 가구에서 7만3000가구로 60% 가까이 감소했고, 수도권 전체 공급량도 크게 위축됐다. 이는 고금리 기조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부담 등으로 공사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재초환이 실제 폐지되더라도 공급 지표에서 의미 있는 상승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외부 변수의 영향이 컸다 하더라도, 정책 효과만 놓고 보면 재초환 완화가 공급 확대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합원 부담이 일부 줄었지만 금융비용과 분양가 규제, 시공비 상승 등 구조적 요인이 사업 추진 여력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재초환 완화가 정비사업의 상징적 걸림돌을 해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공급 확대를 이끌 만큼의 추진력으로 작용하진 못했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재초환 논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10·15 대책 이후 부동산 민심이 악화하자 정부와 여당은 공급 확대 방안을 검토했지만, 동시에 “강남 부자 감세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재건축 단지에 유리한 제도 개편을 추진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부에서는 일단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을 지켜보자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공급 확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섣부른 제도 변경이 자칫 정책 신뢰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지금은 제도를 손댈 타이밍이 아니다"며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부자 감세 논란이 커질 경우 정치권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업 촉진을 내세운 일부 주장은 사익적 동기가 강하지만, 경기와 시장 분위기에 따라 논의가 다시 열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 “텅 빈 상가를 주택으로”…도심 공급 ‘대안’ 급부상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상가·오피스·지식산업센터 등 비어 있는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사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건축·재정비나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공급에는 최소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지만 공실 상태의 비주거 건물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입주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과잉 공급 여파로 상업용 건물들의 공실률이 높아진 상황도 이 같은 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한차례 추진됐으나, 제도적 한계와 비용 부담 등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만큼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개선과 안전 기준이 관건"이라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서울 도심의 상가와 오피스 공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집합상가의 공실률은 9.27%로, 최근 1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유동인구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강동구 대단지 아파트 상가와 동대문 쇼핑몰 등 한때 '불야성'이던 상권조차 임대 문의가 끊겼고, 연남동·서촌 등 MZ세대(1980년~2000년 초반 출생)가 주도하던 골목상권에서도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오피스 시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올해 1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 등 도심권(CBD)은 2년 만에 4%대로 진입했고, 강남권(GBD)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신축 빌딩의 공실률은 오히려 높았다. 8월 기준 서울 오피스 거래량은 급감했고, 꼬마빌딩 거래액은 3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고금리와 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공실이 늘고 거래는 줄어드는 '이중 침체'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도심 공간 구조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비어 있는 건물을 단순한 '유휴공간'이 아닌 '주거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이미 5년 전부터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8·4 대책(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민간사업자도 공실 오피스·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리모델링 비용 융자 지원과 주차장 증설 면제 등 규제 완화책을 담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결과 실제 사업도 추진됐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안암생활'은 기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 청년 임대주택으로 바꾼 대표 사례다.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0년부터 1인 청년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했으며, 개인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형 구조에 공용 라운지·세탁실을 결합한 도시형 생활주택 모델로 주목받았다. 입주 경쟁률은 10대 1을 넘길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LH는 또 서울도시주택개발공사(SH공사)와 함께 2020~2021년 서울 등 수도권 도심의 공실 오피스·상가를 매입해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종로·영등포·중구 등 10개 사업지에서 총 1200가구, 즉 노후 업무시설과 상업용 건물을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원룸형 주택으로 바꿔 공급했다. 교통과 생활 인프라 접근성이 높고 임대료가 낮아 사회적 반향도 컸다. 그러나 이러한 비주거 건물 주거 전환 실험은 기대만큼 확산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구조 변경 비용과 안전 규제 부담이었다. 바닥 난방과 욕실 설치 등 개조에 수천만 원이 들고, 구분소유자와 임차인 동의 절차도 복잡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저조했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지만, 실제로 '사업성이 보장되는 모델'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보완과 안전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이제 땅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비주거 건물을 주거로 전환할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면서 “현장의 인식과 해석, 사업성 판단이 운동장 차이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제도만큼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송파구 가든파이브처럼 공실이 많은 상업시설이나 도봉구 성균관대 야구장 등 활용도가 낮은 부지는 복합용도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 전환의 핵심 변수는 안전 규제 완화 여부"라며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소방·피난·주차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도 변경 시 구조 하중이나 정화조 용량까지 바꿔야 해 비용이 크게 늘 수 있다"며 “공공이 주도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적 검증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 전환에는 건축적으로 까다로운 기술 기준 충족이 필수적이다.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화재감지기·비상등·피난구 설치 등 소방설비와 피난·방화 구조, 주차장 기준, 정화조 용량 산정 등 추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정화조는 업종별 예상 오수 발생량과 저장일수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고 건축허가 단계에서 설계도면 반영과 보건소·지자체 기준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용도 변경에는 구조 안정성·위생·화재안전·주차 등 다각도의 기술 검증이 뒤따라야 하며, 그만큼 추가 비용과 공사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실이 늘고 있지만 지역별 용도지구 구조가 달라 모든 건물이 전환 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등 이미 복합용도가 가능한 곳부터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국토부도 다시 적극적인 검토에 나서고 있다. 최근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의 주거 전환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용도변경 절차 완화'를 주제로 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문석준 국토부 건축정책관 과장은 “공실 상가나 오피스를 주거로 바꾸는 절차가 복잡해 실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 초 착수했고 내년 1월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존 생활형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환할 때 적용했던 성능설계, 외부 주차 인정, 피난·소방 기준 보완 방식 등을 오피스·상가 전환에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며 “안전 기준은 유지하되 절차적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LHRI)은 지난 9월 발간한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동향과 추진 여건' 보고서를 통해 “LH가 비주택 리모델링 임대주택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도심 오피스·상가의 공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을 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향후 5년간 전국 1만 가구, 서울 4600가구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세부적으로는 숙박시설 1740가구, 업무시설 2440가구, 상가 190가구, 노유자시설 230가구 등으로 전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LHRI는 “역세권 반경 250m 내 상업용 건물의 전환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청년층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해외 사례로 뉴욕·런던 등의 오피스 전환 정책을 인용했다. 미국 뉴욕시는 팬데믹 이후 '오피스 투 레지던셜(Office to Residential)' 프로그램을 통해 세금 감면, 용적률 상향, 신속 인허가를 제공하며 현재까지 약 2만8500가구를 공급했고, 2030년까지 7만 가구 추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LHRI는 “국내에서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공급 확대와 도심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땅 없고 속도 느려…서울 집값 잡을 획기적 공급 대책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집값 불씨는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의 근본 안정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어렵다며, 공급 확대 로드맵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서울의 현실이다. 남는 땅이 거의 없고, 재개발·재건축은 주민 반대와 절차 지연에 가로막혀 있다. 속도를 낸다 해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철거와 공급 공백이 불가피하다. 다주택자 보유분 역시 시장에 나오지 않고, 현행 보유세 체계로는 실질적인 매물 유도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실질적 공급 대안이 무엇인가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보유세를 '장기보유'에서 '장기거주' 중심으로 전환하는 세제개편 △정비사업 병목 해소 △비주거시설의 주거용 전환 △장기모기지형 공공분양 등 현실적인 공급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4개월 여 동안 세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뚜렷한 공급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이 규제 강화로 발목이 잡히면서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공급 차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월세 시장도 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이에 무주택 실수요자와 세입자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추가 공급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SNS에 글을 올려 연내 공급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그는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공급 확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6·27과 10·15 대책이 벌어준 시간 안에 시장 안정을 이끌 실질적 공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책임자로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같은 입장이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10·15 대책 발표 때 “연내 명확한 입지와 규모를 포함한 공급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12월 중 구체적 방안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10·15 대책의 부작용·시장 불안을 잠재울 '특단의 공급 대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장 혼란을 막고 청년·서민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양질의 주택을 합리적 가격으로 공급하는 실효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같은당 이언주 최고위원 역시 “갭투자 억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급 지체와 건설 경기 위축을 감안할 때 착공·분양 일정이 포함된 로드맵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 내에서 뚜렷한 공급 대책을 내놓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7 대책에서 향후 5년간 135만가구 공급을 약속했지만 대부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서울 시내에선 수천가구의 신규 공급만 약속해 시장을 실망시켰다. 이에 따라 다주택 보유자들이 세제 개편을 통해 집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거나, 양도소득세·취득세 등을 조정해 시장에 매울을 공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있다. 이와 관련 최경영 전 KBS 기자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장기거주 특별공제'로 전환하자"면서 “보유가 아니라 실거주 기간이 길수록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정기간이 지나면 세율을 올리겠다는 신호를 주는 일몰형 세제, 주택 구입시 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제를 매기는 제도 등의 아이디어도 내놔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주택 보유자들이 향후 주택 가격 상승을 예상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전문가들 중에는 서울 도심 공급의 핵심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택지 개발로는 속도가 나기 어렵고, 도심 공급은 정비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분양가상한제 같은 병목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며 “공공부지 개발도 필요하지만 중앙·지방·공공기관 간 협의 절차가 복잡해 속도를 내기 어렵 다"고 진단했다. 또 “공공은 영구임대나 사회주택처럼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고, 민간은 정비사업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김제경 투미컨설팅 대표 역시 “서울 수요는 도심에 집중돼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신도시와 한국토지주택개발공사(LH) 중심"이라며 “실질적 공급 해법은 재개발·재건축 외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0·15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이주비·중도금 대출 제한이 동시에 시행돼 정비사업이 사실상 역행 신호를 받았다"며 “재초환 완화와 금융 예외 적용이 병행돼야 공급 신뢰 회복의 단초가 열린다"고 분석했다. 핵심 변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와 금융라인 복원이다. 김 대표는 “이주비·중도금·분양보증 등 자금 흐름을 풀어주지 않으면 착공과 분양 일정 모두 막힌다"며 “자금 흐름이 막히면 정책도 멈춘다. 금융 병목 해소가 공급정책의 전제"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주거용 건물의 용도 전환을 가장 빠른 공급 해법으로 꼽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공실이 늘고 있는 지식산업센터나 대형 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하면 리모델링만으로 두세 달 안에 수만 세대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임대나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전환해 사회적 요구를 채우면서도 시장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며 “신규 착공 없이도 공급을 늘리는 전환형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매입할 때는 취득세 감면과 대출 지원을, 다주택자가 그 주택을 팔 때는 양도세 완화를 병행하면 '기존 주택 순환형 공급 구조'로 전세시장 과열과 갭투기 위험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쉽게말해 정책의 초점을 '새로 짓는 공급'에서 '움직이지 않는 기존 주택을 순환시키는 공급'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이다. 3기 신도시 조기 완공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기존 공급 계획을 더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공급대책을 또 짜는 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격"이라며 “이미 3기 신도시, 공공재건축, 도심복합사업 등 다양한 대책이 발표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집행 속도와 실효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정부가 전략을 자주 바꾸면 시장이 불확실성으로 피로해진다. 일관된 메신저와 빠른 속도가 신뢰를 만든다"면서 “시장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대책'이 아니라 약속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는 정부의 실전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생존 모드’에 ESG 줄매각…원전·하이테크 ‘새 먹거리’

“생존을 위해선 일단 살 돈부터 마련해야 한다." 주택 경기가 식고 금리 인하가 늦춰지고 있다. 6·27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건설 불황이 끝날 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알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생존을 위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수익 변동성이 큰 환경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하고 대신 원전·반도체·복합개발 같은 비주택·미래 산업으로 무게를 옮기는 모습이다. 불과 몇 해 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외치던 기조와는 결이 달라졌다. 업계는 이를 “포기라기보다 단기 생존을 위한 조정"으로 설명하면서도 “장기적으론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건설업계가 한때 앞다퉈 '친환경'을 외쳤던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규범이 강화되고, 탄소중립은 기업의 새로운 의무이자 또 하나의 시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형사들은 수처리·폐기물·재생에너지 사업을 '미래 먹거리'라 부르며 투자를 늘렸다. 하지만 불과 몇 해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고금리와 주택시장 불황이 장기화되자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불확실한 수익을 요구하는 친환경 사업이 가장 먼저 '정리' 대상으로 떠올랐다. 건설업체들의 '레거시' 먹거리인 주택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최근 주택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인허가 누적 실적은 15만4571가구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착공(12만4547가구), 분양 승인(9만717가구), 준공(23만1172가구)도 일제히 감소했다. 2021~2022년 공급 확대로 한때 '과열' 논란까지 일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준공 후 미분양 이른바 '악성 미분양'은 2만7057가구로 전월 대비 1.3% 늘었으며 대구(3707가구)·경남(3468가구)·경북(3235가구)·부산(2557가구)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수도권 외곽에서도 미분양이 서서히 늘며 '지방발 공급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 청약시장도 급격히 식었다. 6·27 대출 규제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자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는 청약에서 밀려났다. 리얼하우스 분석에 따르면 7월 전국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9.08대 1로 21개월 만에 최저다. 서울은 평균 99대 1에서 88대 1로 낮아졌다. 다만 이는 평균치여서 단지별 편차가 크고 일부 인기 단지는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송파 잠실 '르엘'처럼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도 중도금 14억원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단지는 사실상 현금 부자만 접근 가능한 단지로 평가된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얼어붙은 주택시장은 건설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게 만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사업만 바라보기엔 위험이 커지면서 비주택·비환경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서둘러 바꾸는 분위기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건설사들은 ESG 관련 산업 등을 신성장 분야로 여기고 적극 진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ESG 분야의 비중을 줄이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모든 건설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대형사에서는 특히 뚜렷하다. 단순히 '돈 안 되는 사업을 접는다'는 차원을 넘어 기업 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GS건설은 2012년 인수했던 스페인 수처리 자회사 GS이니마를 올해 8월 아랍에미리트 국영 에너지기업 TAQA에 약 1조6700억 원 규모로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물사업이 장기 성장 영역으로 꼽히지만 환율 변동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익성 불안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SK에코플랜트도 지난 8월 글로벌 투자사 KKR에 자회사 리뉴어스·리뉴원·리뉴에너지충북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회사 측은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에 맞춰 환경사업 재조정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반도체·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태영건설은 지난해 8월 부동산 PF 부실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뒤, 채권단 요구에 따라 국내 1위 종합 폐기물 처리업체 에코비트 지분 전량을 약 2조700억 원에 IMM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대금은 대부분 고금리 차입금 상환과 재무 구조 개선에 투입됐다. 사실상 환경사업 매각이 생존을 위한 필수 조치가 됐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단기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환경사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는 건 모두 알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손대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환경 산업 외에 원전·하이테크 등은 여전히 건설사들의 포트폴리오로 편입되고 있다. '버티기'가 아니라 새로운 수익 축을 마련해 향후 경기 반등기에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 설계 계약을 이미 확보했고, EPC(설계·조달·시공) 계약 수주에도 도전 중이다. EPC까지 따낼 경우 총 19조 원 규모 사업의 상당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슬로베니아 JEK2 신규 원전, 핀란드 포툼 원전, UAE 원자력공사(ENEC)와의 협력 등도 추진하며 2030년까지 에너지 부문 매출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H-Road' 전략을 내놨다. 대우건설 역시 체코 신규 원전 시공 참여를 계기로 원자로 설계·시공·유지보수·해체·방사성폐기물 처리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역량을 강화해 유럽·미국·중동·아시아로 수주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SK에코플랜트는 환경사업 매각 대금을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인프라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SK머티리얼즈 산하 자회사를 편입해 포토·식각·증착 등 핵심 공정 소재 밸류체인을 확보하고, 청주 M15X·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화건설부문과 HDC현대산업개발은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을 통해 주거·상업·업무·의료 등 다양한 기능을 결합한 미래 도시 모델을 구현하고 있다. HDC현산은 약 4조8000억 원 규모의 '서울원 아이파크' 프로젝트에서 3000가구 주거단지와 웰니스 레지던스, 5성급 호텔, 프라임 오피스 등을 집약한 복합도시를 조성한다. 한화건설도 서울역 북부·수서역 환승센터·잠실 MICE·대전역세권 등에서 그룹 차원의 디벨로퍼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개발·운영까지 책임지는 모델이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흐름은 위기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지 다시 건설사들의 ESG 분야 투자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건설사들의 ESG 사업 매각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 기조 등 국제·산업 환경의 도전, 단기 유동성 확보 필요성 등에 따른 '일시적 후퇴'라는 것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줄이는 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안전·환경 중심으로만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 투자 여력이 줄어 ESG 실현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환경사업 매각은 단기 재무 대응일 뿐"이라며 “기후변화와 탄소 감축은 국제사회 규범과 직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연합(EU)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을 시행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미국도 청정에너지 투자 활성화와 기후위험 공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ESG 평가 기관인 MSCI는 2025년을 ESG 경영 전환점으로 규정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실현 가속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은 ESG가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재무를 안정시킨 뒤 친환경 투자를 다시 확대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이 분명한 만큼 결국 ESG는 기업 생존을 위해 다시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망할 각오해라”…초강경 산재 대책에 건설사들 “존폐 위기” 호소

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연간 3명 이상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고, 반복 위반 시 건설사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초강경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기업의 안전 리스크를 대출·투자, 분양보증 등 금융시장 전반에 반영해 '안전투자 없이는 생존도 없다'는 신호를 던졌다. 반면 건설업계에선 중견사들을 위주로 이윤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를 저가에 수주하는 기존의 사업 방식이 흔들리면서 또 다른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특히 처벌 강화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전문가들은 안전비용의 사회적 분담과 구조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이번 대책은 산재 피해자 출신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 처벌 대신 최대한의 경제적 불이익' 기조에 따른 조치다. 연간 산재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에 법인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3년 안에 두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관계 부처에 건설사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최소 30억 원 이상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 '사고=기업 존립 위기'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된 셈이다. 또한 정부는 대출·투자·분양보증 등 금융 거래에도 중대재해 이력을 반영하기로 했다. 예컨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을 때 안전 관리 수준이 낮으면 금리가 오르거나 한도가 줄어들 수 있고, 상장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형사 판결을 받는 즉시 공시해야 한다. 산업재해가 단순한 현장 리스크가 아니라 곧바로 재무적 리스크로 연결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정책자금과 산재보험기금 투자 제한까지 걸어 건설사가 안전을 소홀히 할 경우 자본시장 전반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른바 '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 아래 산업안전 감독 인력을 3000명까지 늘리고 지자체·민간 전문기관과 협업해 상시 점검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노동부는 “법인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해 안전을 경영진 책임으로 명확히 한 것"이라며, “예방에만 충실하면 과징금은 피할 수 있다"(권창준 차관)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규제의 강도가 워낙 높아 제도의 취지를 넘어 기업 활동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저가수주·하도급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진 중견건설사들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SOC 사업은 사업성이 낮아 이미 유찰이 잦은데 과징금과 선분양 제한까지 겹치면 참여 의지가 더 떨어질 것"이라며 “공공사업 의존도가 높은 중견사들은 민간으로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요율을 현장의 위험도에 맞게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중건설공사 기준(50억 원 이상) 안전관리비 요율은 2007년 2.26%에서 2013년 2.44%, 올해 3.11%로 올랐지만 공종별 위험을 더 세밀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게 실효성이 클 것"이라고 제안했다. 중견 건설사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공 SOC 사업을 주력 시장으로 삼아왔다. 공사 대금이 좀 싸더라도 따박 따박 받을 수 있고 절대 부도 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공공 발주 현장에서 산재를 낼 경우 큰 불이익을 받게 되면 SOC 공사에 의존해온 중견사들에겐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건축·재개발 등 상대적으로 규제 부담이 덜한 민간 건축 시장의 경우 여전히 부도 등 위험성이 더 크고 산재에 대한 처벌도 비슷해 '올인'하기 힘들다. 반면 대형 건설사들의 표정은 애매하다. 대체로 규제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처벌 강도만으로는 실효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사고 한 번으로 영업이익 5% 과징금과 등록 말소까지 거론되면 건설업은 사고 리스크가 곧 기업 존립 리스크로 이어지는 산업이 된다"며 “단순히 처벌 강도만 높이는 방식이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형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미 안전관리 조직을 확대하고 안전 예산을 늘렸지만 현장에는 숙련공 부족·외국인·고령 근로자 비중 증가·하도급 다단계 구조 등 구조적 제약이 남아 있어 사고를 완전 제로로 만들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다. 또 다른 대형사 관계자도 “대통령이 강한 메시지를 냈음에도 인명사고가 잇따랐다. 강력한 메시지만으로는 산재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라며 “현장의 실질적 원인을 찾아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정책 전문가들도 처벌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처벌 일변도의 접근은 한계라고 경고한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노동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이미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하고 있는데, 여기에 회사 영업이익의 5% 과징금과 등록말소까지 추가하는 것은 기업 존립에 가까운 제재"라며 “사망사고를 100%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처벌만 겹겹이 쌓는 것은 포퓰리즘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구조적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정 공기와 적정 공사비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뒤에도 미흡하면 강력히 처벌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상당수는 여전히 '공사비를 낮춰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안전 확보 비용은 결국 사회가 감수해야 할 사회적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즉, 안전비용의 사회적 분담과 발주·입찰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 선진국들은 건설현장 안전을 '사고 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제도적 장치로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규정을 도입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관리까지 전 과정에 안전을 제도화했다. 발주자·설계자·시공자 등 모든 주체에게 단계별 책임을 부여하고, 시공 전부터 위험요소를 진단해 안전계획을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뒤 영국 건설현장의 사망률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단순히 사고 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설계·시공 단계에서 안전을 통합하고 이해관계자에게 책임을 분산하는 방식이 실질적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사고 발생 시 벌칙과 함께 현장별 안전개선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하고, 우수 기업에는 규제 일부를 면제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전국 단위의 '추락 방지 캠페인'을 비롯해 근로자 교육과 상시 감독을 강화해 기업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미국은 처벌에만 의존하지 않고 예방적 개선·교육·인센티브 정책을 병행해 산업현장의 자발적 안전문화를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건설업 전용 '코어트레이드(CoreTrade)' 제도를 통해 숙련공과 관리자를 국가가 인증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현장에는 반드시 인증 인력을 배치하도록 했다. 설계 단계에서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과징금·벌점을 부과하는 한편, 외부 전문가 감사와 안전경진대회 등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장 전체의 안전문화를 제도적으로 끌어올렸다. 예방적 제도 강화와 숙련 인력 인증이 그 핵심이었다. 한 시장 전문가는 “해외는 설계·시공·관리 전 과정에 안전을 통합하고 숙련 인력을 제도적으로 육성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며 “정부도 처벌 일변도에서 벗어나 인센티브와 예방 중심의 지원책을 병행해야 '산재 왕국'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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