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신호등] 멈춰서는 대서양 해류…영화 투모로우가 현실로?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거대한 해류가 멈추면서 북반구에 갑작스러운 빙하기가 찾아오는 기후 재난을 그려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극적인 영화적 설정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오늘날 기상학자와 해양학자들은 영화 속 재앙의 핵심 원인인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AMOC) 혹은 대서양 남북 열염(熱鹽, thermohaline) 순환의 격변을 우려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기후 임계점(tipping point)' 중 하나로 지목하며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생명체의 거대한 혈관과도 같은 이 해류 시스템이 정말로 멈출 위기에 처한 것인지,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살펴본다. ◇지구의 심장 박동, AMOC의 정체와 중요성 AMOC은 대서양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해류 시스템이다. 표층의 따뜻하고 짠 바닷물을 북쪽으로 운반하고, 북대서양 아(亞)극지 해역에서 차갑게 식어 밀도가 높아진 물이 심해로 가라앉은 후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 전 지구적인 해류 열염 순환의 일부를 말한다. 해류 열염 순환은 바닷물의 온도와 염분 차이에서 나오는 밀도 변화로 움직이는데, 이 거대한 '대양 컨베이어 벨트'가 지구 바다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대략 1000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지구의 중앙난방 시스템'처럼 작동하는데, 열·소금·영양분을 재분배한다. 특히, 유럽과 북미 지역의 기후가 위도에 비해 온화하게 유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르네 반 베스턴 박사팀은 지난해 9월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해양(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Oceans)'에 발표한 논문에서 AMOC은 북쪽으로 흐른 뒤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강력한 순환 구조에서 약하고 얕은 순환으로 '바뀔 수 있는' 기후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이가 발생할 경우 전 지구적인 기후 격변이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브레이크: AMOC이 약해지는 이유 최근 과학자들이 AMOC의 급격한 약화를 우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온난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해류의 엔진'을 방해한다. 첫째, 북극과 북대서양 표층수 온도를 높여 해수가 차갑게 식는 과정을 방해해 차가운 물이 심해로 가라앉는 동력인 '침강'을 약화시킨다. 둘째, 결정적으로 그린란드 빙상(Ice Sheet)과 북극의 해빙이 녹아 막대한 양의 담수가 북대서양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민물은 바닷물보다 밀도가 훨씬 낮아 표층수가 심해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거대한 장벽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약화 추세는 관측 데이터에서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의 발랑탱 포르망 박사팀이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21세기말까지 AMOC이 약 51%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의 많은 기후 모델이 예측했던 수치보다 훨씬 약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해류 시스템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구 역사의 기록: 과거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 과학자들이 미래의 해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근거 중 하나는 지구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지구 역사에는 해류의 변화가 기후를 어떻게 뒤바꿨는지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루카스 게르버 등 연구진이 지난해 7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만1700년 동안의 홀로세 기간 AMOC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는 급격한 변동을 겪었다. 약 1만2900년 전부터 1만1700년 전까지 지속된 영거 드라이어스(Younger Dryas) 동안, 북미 빙하가 녹아 유입된 대량의 담수가 북대서양의 염분과 밀도를 낮추면서 AMOC이 급격히 약화되거나 사실상 붕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 북반구, 특히 그린란드와 유럽 지역의 기온이 수십 년 사이 10~15℃ 가까이 급락하는 급격한 한랭화가 나타났다. 또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귀도 베토레티 박사는 지난 2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거대한 화산 분출과 같은 자연적인 충격조차 AMOC의 붕괴와 회복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베토레티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가 해류 시스템을 위험한 임계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역설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컴플루텐세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7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과거 빙하기 종료 시기에 해류가 약화하면서 아프리카 연안 해양 생태계의 산소 공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는 해류의 변화가 단순히 온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 ◇AMOC 붕괴가 가져올 대재앙: 영화는 현실이 된다 만약 AMOC이 실제로 붕괴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영화 '투모로우'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첫째, 온도 체계의 붕괴다. 북서유럽의 기온은 최대 15℃ 급격히 떨어지면서 혹독한 겨울과 강력한 겨울 폭풍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남반구는 열을 북쪽으로 보내지 못해 더 심한 온난화에 시달리게 된다. 멕시코 만류(Gulf Stream)의 경로가 북상하면서 미 동부 연안은 국지적인 기온 급등과 해수면 상승을 겪게 된다. 위트레흐트대학교 연구팀은 “미국 케이프 해터러스 인근 해역(북위 35도 부근)의 상층 온도가 단 2년 만에 약 6.5℃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 탄소 순환의 역습이다. 독일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PIK) 연구팀이 지난달 '커뮤니케이션즈 지구 및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AMOC 붕괴는 남극 주변 심해의 대류를 자극해 심해에 저장돼 있던 막대한 양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구 기온이 약 0.2℃가량 추가로 상승하는 가혹한 피드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는 '물폭탄'이 쏟아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AMOC 약화는 동아시아 지역의 대기 강(atmospheric rivers, 비구름의 흐름) 빈도를 연중 내내 높여 연간 강수량을 최대 470㎜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반도에 지금보다 훨씬 잦고 강력한 집중호우와 대홍수의 위험이 일상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학계의 뜨거운 쟁점: 언제, 어떻게 붕괴할 것인가? AMOC의 미래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의 전망은 다소 엇갈리며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KNMI) 연구팀은 지난해 9월 '환경 연구 회보(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SSP5-8.5) 하에서는 2100년 이후를 기간으로 분석한 모든 기후 모델에서 AMOC이 완전히 중단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저탄소 배출 시나리오에서도 AMOC이 붕괴 확률이 21%나 존재한다고 KNIM 연구팀은 덧붙였다. 서울대 국종성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논문에서 '소음 유도 붕괴(Noise-induced tipping)' 이론을 내놓았다. 국 교수팀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특정 수준에서 안정화하더라도, 대기 시스템 내부의 무작위적인 변동성(노이즈), 즉 지속적인 고기압 이상 현상 등이 축적되면 AMOC이 예기치 않게 임계점을 넘어 붕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리가 탄소 중립에 성공하더라도, 시스템이 이미 취약해진 상태라면 단순히 '운 나쁜 기상 현상의 연속'만으로도 거대 해류가 멈춰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노르웨이 비에르크네스 기후연구센터의 셰틸 보게 박사와 같은 연구자들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대서양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근거로, 그린란드 인근의 바다 얼음 감소가 오히려 바다를 차가운 극지 대기에 노출시켜 해수의 냉각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해류를 유지시키는 복원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사샤 시네 박사팀이 지난해 1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다. 이들은 서남극 빙상의 붕괴로 인한 담수 유입이 오히려 북대서양의 해류 붕괴를 억제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빙상 간 상호작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지구가 가진 복잡한 피드백 시스템을 보여주지만, 해류의 유지가 또 다른 재앙(남극 빙하 붕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인류에게는 여전히 가혹한 시나리오다. ◇AMOC 붕괴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AMOC이 약해지고 있다는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중국 과학원의 렌 치우핑 박사팀은 지난해 11월 '커뮤니케이션즈 지구 및 환경'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류 약화의 신호가 이미 적도 대서양 1000~2000m 깊이의 중층 수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의 싱첸장 박사는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연구를 통해 지난 20년간 북대서양 서쪽 경계 해류의 수송량이 일관되게 감소했음을 관측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AMOC의 붕괴가 이미 진행 중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 '투모로우'의 빙하기가 내일 아침 당장 창밖의 풍경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신 과학 연구들은 지구의 거대한 혈류인 AMOC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한계점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시나리오에서도 AMOC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기후시스템이 취약하다면, 향후 각국의 노력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고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음의 배출, 즉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 자체를 빠르게 떨어뜨리지 않은다면 파국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기후 대응이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해류 시스템의 복원력을 유지하기 위한 훨씬 더 정교하고 긴급한 수준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신호등] 유럽 식민지배의 ‘보이지 않는 유산’…사라진 언어, 무너진 생태계

21세기 인류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전례 없는 환경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는 이 위기의 뿌리가 단지 산업화나 현대 경제 시스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역사적 과정, 즉 식민지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한 국제 공동 연구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연구팀은 최근 '사람과 자연(People and N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식민지배가 오늘날의 생태계와 문화 다양성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의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유럽 식민세력의 지배 기간이 길수록,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이 동시에 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100만 종이 사라질 수 있다"… 이미 시작된 붕괴 현재 지구 생태계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생물 멸종 속도는 인간이 지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이전과 비교해 100배에서 많게는 1000배까지 증가했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로 인해 약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추정도 제시된다. 언어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 세계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이 가운데 최소 40%가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으며, 지난 500년 동안 수천 개의 언어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생물 다양성 위기와 언어의 소멸이라는 두 현상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연구진은 이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다. 바로 '생물문화 다양성(biocultural diversity)'이다. 이는 특정 지역의 생물종 다양성과 언어·문화 다양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토착 언어는 지역 생태계에 대한 지식, 약용 식물 활용법,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 방식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의 상실이 아니라 생태 지식 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176개국 분석… “식민지배 기간이 핵심 변수" 연구팀은 전 세계 176개국을 대상으로 생물과 언어의 위협 수준을 동시에 분석했다. 생물다양성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Red List) 데이터를 활용해 양서류·조류·포유류·파충류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언어 다양성은 전 세계 6921개 언어를 포함한 '민족학(Ethnologue)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한 '적색 목록 지수(Red List Index, RLI)'를 활용, 각 국가의 위협 수준을 0과 1 사이의 값으로 환산했다. 이 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위협이 낮고, 0에 가까울수록 위협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후 연구진은 다양한 변수—도시화, 농업, 경제 수준, 교육 수준, 기후 조건—를 함께 분석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과가 도출됐다.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 모두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는 '유럽 식민세력의 점유 기간(occupation time)'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식민지배 기간이 길어질수록 언어 다양성 위협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회귀계수 -0.21, p=0.004), 생물다양성 위협 역시 강하게 증가했다(회귀계수 -0.18, p=0.001). 두 요소를 합친 생물문화 다양성 위협도 증가했다(회귀계수 -0.10, p=0.033). 이 수치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식민지배가 장기적으로 생태계와 문화 모두를 훼손하는 구조적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왜 식민지배는 두 영역을 동시에 파괴했나 식민지배가 생물과 언어를 동시에 파괴한 이유는 그 구조에 있다. 식민주의는 단순한 정치 지배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환경을 총체적으로 재편하는 시스템이었다. 먼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식민지배는 대규모 자원 착취를 동반했다. 설탕·면화·고무와 같은 상품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숲과 초지가 농지로 전환됐고, 이는 서식지 파괴와 생태계 단절로 이어졌다. 또한 유럽에서 유입된 외래종은 토착 생태계를 교란시켰고, 대형 포유류와 조류는 식량·모피·장식품 등의 목적으로 대량 사냥됐다. 언어와 문화 측면에서도 상황은 유사했다. 식민지배 과정에서 원주민 공동체는 전쟁과 질병으로 급격히 감소했고,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로 공동체 기반이 붕괴됐다. 여기에 더해 교육과 행정에서 토착 언어 사용이 금지되고 제국 언어가 강요되면서 언어 소멸이 가속화됐다. 결국 식민지배는 자연과 인간 공동체를 동시에 해체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과거"… 수십 년 지속되는 '지연 효과' 이 연구가 특히 강조하는 개념은 '지연 효과(time-lag)'다. 이는 과거의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식민지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은 여전히 현재의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 위협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는 생태계와 문화 시스템이 한 번 붕괴되면 쉽게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에 담긴 전통 지식도 함께 사라지며, 멸종된 종은 다시 복원할 수 없다. 또한 사회 구조와 경제 시스템 역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경로를 따라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과거의 인간 활동이 현재의 위기를 구조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사례: 식민지배가 남긴 생태와 언어의 상처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연구진은 전 지구적 통계 분석을 수행했지만, 유럽 식민주의를 대상으로 수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역사에도 그래도 적용된다. 일본의 식민 지배 역시 유럽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동일한 역사적 인식과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 지배라는 대규모 사회·정치적 사건이 지배 주체와 상관없이 생태계와 문화에 장기적인 지연 효과를 남긴다는 연구의 핵심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생태 파괴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호랑이의 박멸이다. 일본 제국은 '유해조수 구제'라는 명목으로 포획 보상금을 지급하고 군경과 사냥꾼을 동원해 조직적인 사냥을 벌였다. 그 결과 조선호랑이는 20세기 중반 사실상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산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와 일본 학계는 '연구'와 '개발'을 명분으로 백두대간 일대의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30년 이상 체계적으로 벌목했다. 이는 단순한 산림 이용을 넘어, 식민지 경제 구조에 맞춘 자원 수탈이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억압도 심각했다. 창씨개명 정책을 통해 한국인의 이름이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뀌었고, 학교와 공공 영역에서는 한국어 사용이 금지됐다. 이는 언어 다양성 억압의 전형적인 사례로, 연구에서 지적된 식민지 동화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21세기엔 다국적 기업이 문제를 일으켜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 환경과학기술연구소(ICTA-UAB)의 마르셀 야베로-파스키나 교수는 지난해 5월 '글로벌 환경 저널(Global Environmental Chang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환경 갈등을 유발하는 100여 개의 글로벌 대기업, 이른바 '슈퍼갈등기업(superconflictive companies)'을 고발했다. 베로-파스키나 교수는 세계 최대 환경 갈등 데이터베이스인 '환경정의 아틀라스 세계지도 (Global Atlas of Environmental Justice, EJAtlas)'의 데이터를 활용해, 총 3388건의 환경 분쟁과 함께 이에 연루된 5589개 기업을 분석했다. 그 결과, 2%에 불과한 104개 기업이 전체 갈등의 무려 20%에 연루돼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금·은·리튬 등의 광물과 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 채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 세계 환경 갈등 가운데 5분의 1을 이들 100여 개 다국적 기업이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들어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이 중저소득 국가에 진출해 자원을 개발하는 방식은 과거 식민지배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광산 개발, 플랜테이션 농업,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은 열대우림과 자연 서식지를 빠르게 농지와 산업용지로 전환시키며, 이는 생물다양성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러한 개발이 현지 생계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위한 수출 구조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과거 식민지 시기의 원자재 수탈 경제와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식민지배가 정치·군사적 강제에 기반했다면, 오늘날은 시장과 투자, 고용이라는 경제적 유인을 통해 변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로 인한 공동체 해체와 도시화, 노동 이동은 소수 언어의 약화를 불러오는 간접적 효과까지 낳고 있어, 현대의 자원 개발 역시 생태계뿐 아니라 문화 다양성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생태와 문화는 하나다 오스트리아 연구팀의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특히 토착 공동체가 관리하는 지역은 전 세계 육지의 약 30%를 차지하며, 보호구역의 최소 40%가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생태계 보전과 문화 보전이 동일한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 자체를 함께 보호해야 한다. 연구진은 향후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토지 및 자원 관리권을 강화할 것 △소수 언어를 보호하는 교육과 정책을 펼칠 것 △집약 농업과 무분별한 도시화를 제한할 것 △국제 생물다양성 협약과 언어 보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고려하는 정책 설계다. 식민지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이 현재의 위기를 만든 만큼, 이를 무시한 채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결국 식민지배는 끝난 역사처럼 보이지만, 그 영향은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라져가는 언어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은 그 흔적을 지금도 증언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호르무즈 사태, 인류의 석유중독을 드러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불러온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에너지 위기로 그치지 않고 있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질소 비료인 요소,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의 공급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산업과 농업, 식량 체계, 나아가 일상 생활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치솟는 자동차 연료비는 물론 종량제 쓰레기 봉지 품귀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지난 80년 동안 인류가 구축해온 산업 문명의 구조적 취약성을 한순간에 드러낸 사건이다. 우리가 '성장'이라 부르며 쌓아올린 시스템, 편리함에 익숙해진 결과다. 그 중심에는 화석연료와 플라스틱, 질소 비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자리하고 있다. ◇'대가속' 80년…수직 상승한 소비량 현대 문명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주국립대학교와 스톡홀름 회복력센터 소속 소속 윌 스테펀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5년 학술지 '인류세 리뷰(The Anthropocene Review)'에 발표한 논문 '인류세의 궤적: 대가속'에서 1950년 이후 인류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에너지 소비, 비료 사용량, 물 사용량 등 거의 모든 지표가 195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농경을 시작한 이래 지난 1만1000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가 갑자기 수직 상승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대가속(大加速)'이라 불렀다. 또한 국제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IGBP)이 2004년 발표한 보고서와 2015년 스톡홀름 회복력센터의 '지구시스템 대시보드(Planetary Dashboard, 지구 행성 계기판)' 역시 동일한 결론을 제시한다. 즉, 인간 활동은 더 이상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지구 시스템 자체를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전쟁과 인류세…인간이 닦은 기반 붕괴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산업화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뒤흔드는 지질학적 전환으로 이어졌다. 스테펀 교수는 2011년 논문 '인류세: 전 지구적 변화에서 행성 차원의 관리로'에서 인간 활동이 기후, 생물다양성, 질소·탄소 순환을 지배하고 있고, 따라서 인류가 새로운 지질시대의 문을 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새로운 지질시대가 '인류세(人類世)'다. 인류세는 인간이 단순히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넘어, 지구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스테펀 연구팀은 더 나아가 2018년 미국 국립 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 시스템이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이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지속 가능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인류세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에너지 공급을 끊고, 물류를 마비시켰고, 식량 생산 기반을 흔들었다.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산업 문명의 물질 순환 자체를 교란했다. 관련 기관들은 전 세계 원유와 LNG의 20~25%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글로벌 공급의 10% 이상이 즉각적으로 차질을 빚게 된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10%의 부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증폭돼 큰 해일이 되고 있음을 인류는 목격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인류 사회가 전쟁이 하나로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구조임을 드러낸 것이다. ◇화석연료 소비: 문명의 토대가 된 에너지 현대 사회는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지난달 보도에서 석유가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플라스틱·섬유·의약품·화학제품 등 6000여 종 이상의 제품의 원료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전체 화석에너지 소비는 1950년대에 비해 약 3배로 늘었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1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의존이 기후위기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는 2023년 제6차 평가보고서(AR6)에서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의 명백한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 경로를 유지할 경우 1.5℃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3년 연설에서 “화석연료는 인간 생존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OUP)가 발행하는 기후변화 분야의 오픈액세스(Open Access) 학술지인 '옥스퍼드 오픈 기후변화(Oxford Open Climate Change)'에 발표된 논문에서 각국의 전문가들은 화석연료가 기후변화뿐 아니라 공중보건 위기, 생물다양성 붕괴, 화학 오염을 동시에 야기하는 '복합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플라스틱 남용: 편리의 대가로 생태계 훼손 플라스틱은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산물이자, 현대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플라스틱이 단순한 폐기물 문제가 아니라 지구 시스템을 교란하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약 200만 톤이었는데, 2022년에는 연간 약 4억 톤 이상으로 약 200배로 증가했다. 1950년 이후 총 생산량(누적생산량)은 90억 톤이 넘는데, 이 중 약 9%만 재활용됐다. 미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 공익 재단인 퓨 자선신탁(Pew Charitable Trusts)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전체 플라스틱 오염의 약 13%를 차지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세플라스틱이 해양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방해해 탄소 흡수 기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기후변화를 가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체 영향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연구들은 미세플라스틱이 혈액과 폐, 장, 심지어 뇌에서도 검출된다고 보고했다. 이제 플라스틱은 “전 생애주기에서 인간 건강에 해를 끼치는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질소 비료 중독: 취약해진 식량 시스템 현대 농업은 화석연료 기반 시스템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등에 따르면 질소 비료 생산량은 1950년 약 1000만 톤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약 1억 5000만 톤 이상에 이른다. 15배로 증가한 셈이다. 질소 비료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하는 하버-보슈 공정을 통해 생산되며,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약 절반이 이에 의존하고 있다. 대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데 천연가스에서 얻은 수소를 사용한다. 문제는 이 공급망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는 데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요소 수출의 약 34%, 암모니아 교역의 약 23%가 해협 봉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료 가격 상승은 곧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보도에서 식료품 가격이 최대 18%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질소 비료의 과잉 사용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스톡홀름 회복력센터의 요한 록스트룀 교수는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 연구에서 질소 순환이 이미 안전 한계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현재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산하는 연간 약 1억5000만 톤의 암모니아 등 반응성 질소는 자연계에서 생성되는 것의 두 배가 넘는다. 그 결과 담수와 해양에서는 부(富)영양화와 녹조·적조가 발생하고, 저산소 수역인 '죽음의 구역'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제임스 갤러웨이 교수는 “질소는 인류에게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환경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원소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 가지 중독'이 만든 순환고리 화석연료는 에너지원이자 원료다. 그 원료는 플라스틱과 비료로 전환되고, 그 비료는 다시 식량을 만들고, 플라스틱은 생활용품과 공업 원료를 만든다. 즉, 현대 문명은 '에너지 → 화학 → 의식주'라는 단일 시스템 위에 구축되어 있다. 이 구조 속에서 화석연료와 플라스틱, 질소 비료는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순환 고리를 이룬다. 인류는 지난 80년 동안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해 성장했고, 플라스틱으로 생활의 편의를 극대화했으며, 비료로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1950년 이후 인류의 화석연료와 질소 비료가 증가하고, 플라스틱 소비가 폭증한 것은 단순한 산업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에너지·화학·식량이 결합된 '대가속' 구조의 산물이다.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서로의 소비를 부추기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겪으면서 이런 구조가 위기를 맞았고,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특정 자원과 시스템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드러나고 말았다. ◇탈중독 사회로의 전환 전략 수립 필요 미국과 이란 사이에 휴전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지금의 위기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유조선의 통행료가 거론되는 만큼 전쟁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에너지 확보나 공급망 복원을 목표로 할 것 아니라 화석연료·플라스틱·비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문명 대전환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세 가지 중독(화석연료·플라스틱·질소 비료)을 끊는 것이 아니라,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고 시스템을 분산·순환형으로 전환하는 것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과 더불어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일 필요가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이미 비용 경쟁력을 확보했다. IEA는 2022년 보고서에서 효율 개선만으로도 203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약 30%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플라스틱 남용에서 탈피하려면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보완 방향' 토론회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라스틱과 화석연료의 상호의존적인 구조를 지적했다. 중동발 공급 충격은 이런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라는 것이다. 홍 소장은 “탄소배출 저감, 공급망 관리, 미세플라스틱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국내 시장에 출시되는 플라스틱 제품에 '플라스틱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질소 비료 문제는 식량 생산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제임스 갤러웨이 교수는 2021년 '환경·자원 연례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서 질소 문제 해결을 위해 '효율 개선과 순환 회복'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센서와 데이터 기반으로 비료 사용량을 최소화하는 정밀 농업 △생물학적으로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科)식물 활용 △가축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강화 등을 제시했다. 결국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문명에서, 덜 의존하고 더 견디는 문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호르무즈 해협 만들고 엄청난 석유 저장한 5억년 역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 달을 넘기고도 끝날 줄을 모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군쇄적으로 봉쇄하고, 선박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통행료를 걷겠다고도 한다. 여기에 예맨의 후티 반군까지 이란 편에서 서서 참전하겠다고 나서면서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항로마저 위협받고 있다. 치솟는 석유 가격에 전 세계는 조바심을 내며 중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싼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는 단순한 해상 통로를 넘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쥔 공간이 됐다. 그렇다면 좁은 항로를 가진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유독 원유가 집중적으로 매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곳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지질학적 사건들이 중첩된 공간이고, 그 사건들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집중적으로 매장됐다. 그런 지질학적 '특이점'이 지금과 같은 지형을 형성하게 한 원인이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라비아 반도 주변 지역에 지질학적 역사를 살펴본다. ◇테티스해(海): 모든 것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중동 지역의 석유 이야기는 고대 해양 '테티스해(Tethys Sea)'에서 시작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크리스토퍼 G. 켄달 교수 등이 2014년 편집한 '미국석유지질학회 연구총서(AAPG Memoir)' 106호 내용에 따르면, 아라비아 판(板, plate)과 북아프리카는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약 5억 41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 사이) 테티스 해의 연안 환경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퇴적과 석유 시스템을 형성했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따뜻하고 얕으며, 생물이 폭발적으로 번성하는 생산성이 매우 높은 해양 생태계였다. 온도가 높고 햇빛이 풍부한 이 환경에서 식물플랑크톤인 조류(algae)와 남세균(cyanobacteria)은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면서 대량으로 성장했고, 죽은 뒤에는 해저에 쌓였다. 중요한 점은 당시 해저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플랑크톤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보존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탄화수소의 원천이 되는 근원암(source rock)으로 변화했다. 근원암은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모암으로, 주로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석유 시스템의 첫 단계, 즉 '석유를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일어났다. ◇실루리아기 '핫 셰일': 에너지의 원천이 된 지층 이 지역 석유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실루리아기(4억 4380만 년 전~ 4억 1600만 년 전)의 '핫 셰일(hot shale)'이다. 혈암(頁岩)이라고도 불리는 셰일은 주로 작은 자갈이 퇴적돼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단단하게 굳어져 형성된 퇴적암이다. 아랍에미리트 대학의 압둘라만 S. 알샤르한 교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켄달 교수는 2021년 '미국석유지질학회 회보(AAPG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핫 셰일'이 아라비아 판 전역의 주요 탄화수소 공급원임을 강조한다. 이 셰일층은 유기물이 매우 풍부하고 높은 방사선(감마선) 수치를 보이기 때문에 '핫 셰일'이라 불린다. 핫 셰일은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고,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침수되는 시기에 형성되는데, 넓은 지역에 걸쳐 균일하게 분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실루리아기를 포함한 고생대(5억4100만년 전부터 2억5190만년 전 사이)퇴적층이 해수면 변동(eustatic sea-level change)과 빙하기, 그리고 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산 운동(造山運動)은 지구 표면을 덮은 약 10장의 강한 판이 서로 부딪치거나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말한다. 조산 운동을 통해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대산맥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라비아판은 단순히 유기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으로 유기물이 축적되고,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침식과 구조가 형성되는 단계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석유 생성과 저장에 최적화된 지층 구조가 만들어졌다. 핫 셰일은 바로 이 복합적인 환경에서 형성된 '지질학적 엔진'인 셈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이 동력의 근원이듯 유기물이 고온·고압을 받아 중동 고생대 석유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밀어 넣어주는 에너지 생산의 본체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아라비아 판: 이동하는 대륙이 만든 구조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땅속 석유는 어떻게 모였을까. 그 답은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있다. 아라비아 판은 원래 남반구의 곤드와나(Gondwana)대륙에 속해 있었으나, 수억 년에 걸쳐 북쪽으로 이동했다. 곤드와나 대륙은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에 걸쳐 남반구에 분포했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다. 현재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 이외에 마다가스카르, 인도대륙까지 하나의 대륙, 즉 곤드와나 대륙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판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핵심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는 판의 분리와 홍해의 탄생이다.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과 갈라지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홍해다. 홍해는 지금도 진행 중인 리프트(rift) 구조다. 거대한 지각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면서 지각이 찢어지고 벌어지는 지질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란 의미다. 두번째는 판이 충돌하면서 자그로스 산맥과 페르시아만이 형성됐다. 아프리카 판과 갈라진 아라비아 판은 이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 판과 충돌하게 된다.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우주환 연구원과 이철우 교수가 2021년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충돌은 튀르키예에서 호르무즈까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이 약 2000㎞에 이르는 자그로스 습곡대를 형성했다. 습곡대는 지각 변동으로 지층이 주름이 진 형태가 된 곳을 말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산맥 형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층이 휘어짐(습곡 형성)과 단층 형성, 복잡한 지하 구조 형성 등을 통해 석유를 땅속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세번째 사건은 아라비아 판의 시계 반대 방향 회전이다. 알샤르한 교수와 켄달 교수의 2021년 논문은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에 대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6~7도 회전하며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회전 운동은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지각 경계선을 재설정하고, 서쪽의 사해(Dead Sea) 변환 단층과 같은 복잡한 단층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세 가지 역동적인 사건이 결합해 현재 아라비아 반도의 지형과 세계 최대의 에너지 매장지를 동시에 탄생시켰다. ◇배사구조: 석유를 모으는 자연의 저장고 석유는 가벼운 물질이기 때문에 생성되면 위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를 '잡아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사구조(背斜構造, anticline)다. 옆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지층이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올라간 습곡 구조를 말한다. 최근에 쌓인 지층은 위로 휘어져 올라가고, 중심부에는 오래된 지층이 위치하게 된다. 배사구조는 지층이 위로 휘어지면서 가장 아래쪽에 있던 오래된 지층이 습곡의 중심부(핵)에 위치하게 된다. 즉, 지표면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더 오래된 암석이 나타나는 구조다. 배사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두는 '트랩(trap)'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보다 가벼운 원유와 가스는 지층 사이를 따라 위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배사구조의 볼록한 꼭대기 부분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위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형 유전이 형성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철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란의 자그로스 습곡대 전면부에는 이러한 배사구조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어 이곳에만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8%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저류암(reservoir rock)의 역할도 중요하다. 저류암은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와 가스가 이동해와 실제로 저장되는 암석층이다. 탄산염암처럼 암석 내부에 미세한 구멍(공극)이 많아 석유를 품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중동 지역의 석유 시스템에서 배사구조와 저류암의 관계는 '그릇'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의 관계와 같다. 저류암이라는 우수한 저장 물질이 배사구조라는 효율적인 저장 구조를 만났기 때문에 중동 지역에 세계적인 규모의 유전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거대한 천연 석유 저장고인 트랩(trap)을 형성하게 된다. ◇소금 돔: 석유를 지켜주는 '완벽한 밀봉' 그러나 배사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석유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밀봉층(sealing layer), 또는 덮개암(cap rock)이다. 밀봉층은 지층 속에서 생성된 석유나 천연가스가 지표면으로 새 나가지 못하도록 그 위를 단단히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치밀한 암석층을 말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과거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형성된 증발암(Evaporite)이 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증발암의 주성분인 소금(암염)이나 무수석고(Anhydrite)는 입자가 매우 치밀해 액체나 기체를 거의 통과시키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하부 저류층에 모인 석유와 가스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지층 속에 고여 있을 수 있다. 페름기 후기(약 2억 5000만 년 전)에는 광범위한 해수면 상승 이후 대규모의 탄산염-증발암 퇴적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현재의 주요 밀봉층이 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는 이러한 두꺼운 소금층이 지각 운동의 압력을 받아 위로 솟구치며 소금 돔(salt dome) 구조를 형성했다. 소금 돔은 지하에 층상으로 넓게 깔려 있던 증발암(특히 소금층)이 지각 운동이나 밀도 차이에 의한 압력을 받아 위로 볼록하게 밀려 올라오며 형성된 기둥이나 돔 모양의 구조를 말한다. 이 구조는 석유를 특정 구역에 더욱 효과적으로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천연 저장 탱크' 역할을 한다. 덕분에 석유는 수백만 년 동안 그 안에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고, 이 지역이 세계 최고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소금 돔은 석유 시스템에서 '보존'과 '집적'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완전한 석유 시스템'이 에너지 저장소로 만들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중동 지역은 △근원암 (핫 셰일) △저류암 (탄산염암, 사암) △트랩 (배사구조) △밀봉층 (증발암, 소금 돔) 등 네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된 '완전한 석유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 네 요소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판의 이동과 해수면 변화라는 하나의 지질학적 흐름 속에서 동시에 형성됐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다. 그 본질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지질학적 자산, 즉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이다. 아라비아 판의 이동, 테티스해의 퇴적, 빙하기와 해수면 변화, 판의 분리와 충돌. 이 모든 과정이 겹겹이 쌓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지질학의 역사는 중동 일부 국가와 세력이 병목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형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지형은 오늘날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중동'이라는 지정학을 낳은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균형 잃은 지구에너지, 모든 게 무너진다

2015년 말 전 세계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 기후 협정'을 채택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마주한 기후 현실은 참담하다.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와 기후 과학 분야의 석학들이 내놓은 통찰력 있는 연구를 종합하면, 인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기후 국면에 진입해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지구 시스템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고, 온난화는 기존 예상보다 빠르게 가속화하고 있다. 인류에게 '오버슈트(overshoot, 목표 온도 1.5℃의 일시적 초과)'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오버슈트의 수준, 오버슈트의 기간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인류는 이제 역사상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여정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속화하는 온난화와 '지구 에너지 불균형' WMO는 지난 23일 '2025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통해 2015~2025년 사이 11년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따뜻한 기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2024년은 강력한 엘니뇨 영향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55°C의 기온 상승을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난화의 '속도' 역시 주목된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최근 출판된 논문에서 2015년 이후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자연 변동성(엘니뇨, 화산 활동, 태양 복사 변동 등)을 제거했을 때, 1980~2000년대 10년당 약 0.15~0.2°C였던 지구 기온 상승 폭이 최근 0.4°C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속화의 배경에는 '지구 에너지 불균형(Earth's Energy Imbalance, EEI)'이 있다. 영국 레딩 대학교의 리처드 P. 앨런 교수 등 75명의 과학자가 지난달 학술지 '글로벌 지속가능성 (Global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2년 중반부터 2023년 중반까지 EEI는 1.9 W/m², 즉 지구 표면 1㎡당 1.9W를 흡수해 2006~2020년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는 지구가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흡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와 빙권: 축적되는 열과 붕괴의 신호 지구에 축적된 과잉 에너지의 약 91%는 해양이 흡수한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25년 사이 해양 온난화 속도는 1960~2005년 대비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이로 인해 2025년에는 전 세계 해양의 90% 이상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해양 열파(폭염)를 경험했다. 이러한 변화는 산호초 백화, 어종 이동 등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한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 속도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2~2025년에는 연평균 4.75㎜에 달했다. 동시에 바다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29%를 흡수하면서 산성화가 진행돼 해양 생물의 생존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빙권의 변화 역시 급격하다. 전 세계 '참조 빙하(reference glaciers)'는 2016년 이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질량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이슬란드와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두드러졌다. 참조 빙하란 세계 빙하 모니터링서비스(WGMS)에 매년 보고되는 전 세계 약 170개의 빙하 중에서 30년 이상의 장기적인 질량 변화 관측 데이터가 축적된 특정 빙하 그룹으로, 전 세계 빙하 상태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후 변화의 영향을 평가하는 표준 지표 역할을 한다. 북극 해빙은 2025년 3월 관측 사상 가장 낮은 면적을 기록했고, 남극 해빙 역시 최근 4년간 최저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약화되는 탄소 흡수원과 생물다양성 위기 자연 생태계의 탄소 흡수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지난달 실린 논문(위에서 언급한)은 그 동안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북반구 아한대림(boreal forest)과 영구동토층 생태계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뭄, 산불, 해충 확산 등으로 인해 아한대림의 탄소 흡수 능력은 지난 10년간 약 36% 줄었고, 일부 영구동토층 지역은 숲이 흡수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 간 상호작용도 심각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연구팀이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식물 종 손실은 육상 탄소 저장 능력을 저하시켜 향후 최대 145 PgC(페타그램), 즉 1450억 톤의 탄소를 추가로 배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후 재난의 현실화: 건강과 경제의 충격 WMO가 내놓은 '2025년 주요 기상 기후 사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 기상현상의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몬순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베트남 역시 연이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노동 생산성 저하가 치명적이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3°C 상승할 경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고온 노출 산업(농업, 건설 등)에서 노동 생산성이 각각 33%,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4.5%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기상청은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기후 위기의 시대'가 이미 심화되다고 지적했다. 가장 충격적인 기록은 산불이었다. 지난해 3월 21~26일 고온·건조·강풍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전국 5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 발생해 역대 최대인 축구장 약 14만 7000개 면적에 달하는 10만5084㏊의 산림이 소실됐다. 또한 지난해 여름철 전국 평균 기온은 25.7°C를 기록, 1973년 체계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됐다. 반면 강원 영동 지역은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극심한 식수난과 농작물 고사 피해를 입었다. ◇오버슈트와 '핫하우스 지구'의 위험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모두 이행되더라도 세기말 기온 상승은 2.6~2.8°C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하나의 지구 (One Earth)'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가 '온실 지구(Hothouse Earth)' 궤도에 진입할 위험을 경고했다. 특히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치) 문제는 심각하다. 그린란드 빙하 붕괴, 대서양 역전 순환(AMOC) 약화, 아마존 열대우림 사바나화 등 16개 주요 시스템이 임계치에 근접했거나 이미 초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일시적인 오버슈트조차도 티핑 포인트 발생 위험을 최대 72%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비록 온난화가 2°C 수준에서 억제되더라도 특정 부문에서는 훨씬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식량 안보의 핵심인 주요 곡창지대(breadbasket)의 경우, 2°C 온난화 상황에서도 가뭄 빈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5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1.5~2°C 이내로 제한하려는 노력은 통제 불가능한 극단적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만, 이제 그 안전장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틴달 기후변화연구소의 레이첼 워런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가장 가능성 높은' 평균값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확률이 낮더라도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응 전략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 연구팀은 지난 2월 '네이처 기후변화' 에 발표한 논문에서 1.5°C 오버슈트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기후 정책의 초점을 '예방'에서 '회복(recovery)'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안정화를 위한 해법: 36개의 전략과 CDR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 수단은 존재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환경정책센터 연구팀은 이달 초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36개의 기후 안정화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해법은 에너지, 산업, 수송, 건물, 토지 이용 등 전 부문을 포괄하는데, 각각 연간 약 2Gt(기가톤), 즉 20억톤 규모의 감축 효과를 갖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동화, 산업 공정 혁신뿐 아니라 식단 변화, 음식물 쓰레기 감축, 산림 보전 등 행동 변화와 자연 기반 해법도 포함된다. 특히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방법(Carbon Dioxide Removal, CDR)은 필수적 수단으로 강조된다. 다만 이는 화석연료 배출량을 줄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오버슈터 상황에서 기후 안정화 상황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수단으로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믹스'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이 202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41개국 1500개 정책 분석 연구에 따르면, 탄소 가격제와 규제, 보조금 등의 정책 수단이 결합될 때 실질적인 감축 효과가 나타났다. ◇ 법적 의무와 되돌릴 수 없는 변화 기후 대응은 이제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5년 7월 기후 변화가 인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며, 국가들이 이를 방지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버슈트 이후의 회복은 결코 대칭적 과정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트리소스 박사는 온도가 다시 낮아지더라도 이미 붕괴된 생태계와 멸종한 종은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핵심은 오버슈트의 폭과 지속 기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뜨거운 남비를 만졌다면 손을 재빨리 떼고 차가운 물에 담궈야 화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인류는 기후 교차로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수단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축적되어 있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우리의 행동에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이 달려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인류세의 경고: ‘물 위기’ 넘어 ‘물 파산’의 시대 맞았다

22일은 점차 고갈되어 가는 수자원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UN이 제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2026년 인류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히 물을 아껴 쓰자는 캠페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유엔대학교 물·환경 및 보건 연구소(UNU-INWEH) 소속 카베 마다니 소장은 지난 1월 발표한 '글로벌 물 파산: 위기 이후 시대의 수문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삶'이란 보고서에서 현재의 상황을 '물 위기(water crisis)'가 아닌 '물 파산(water bankruptcy)'로 정의했다. 이는 인류가 매년 자연이 보충해주는 수자원 '수입'보다 훨씬 많은 양을 소비함으로써, 지하수와 빙하라는 지구의 '비상 저금'까지 모두 탕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후 신호등]에서는 기후변화와 물 문제의 필연적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전 세계 주요 분쟁 지역의 실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국제적 해결책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기후변화와 물의 상관관계: 가속화되는 수문 순환의 붕괴 기후변화는 수자원 부족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근본적인 동력이다. 핵심 원인이라는 얘기다. 기온 상승은 증발산을 촉진해 토양의 습기를 앗아가고, 강수 패턴을 불규칙하게 만들어 가뭄과 홍수의 극단적인 순환을 가속화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글로벌 가뭄 전망: 더 건조해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추세, 영향 및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2022년 유럽 본토의 가뭄 발생 가능성은 이전보다 20배 이상 높아졌다. 특히 1900년에서 2020년 사이 가뭄에 노출된 전 세계 지표면 면적은 두 배로 증가했고, 인류세의 수문 시스템은 과거의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irreversible)' 상태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cene)는 인구 증가와 산업 발달로 인류가 지구 생태계 자체를 크게 변화시킨 탓에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발표한 '2023년 전 세계 수자원 보고서(State of Global Water Resources 2023)'에서 지구 기온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빙권(氷圈, Cryosphere)의 손실이한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2023년에만 전 세계 빙하 가운데 6000억톤 이상이 사라졌다. 이는 지난 50년 사이 연간 손실 규모로는 가장 큰 것이다. 빙하와 눈은 하천 유량을 채우는 중요한 공급원인데, 이들이 갑작스럽게 녹아내리면 단기적으로는 홍수를 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억 명이 식수원이 영구적으로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자원 부족 및 수질 오염의 글로벌 핫스팟 실태 물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지만, 그 피해 정도는 지경학적 위치(geoeconomic location)와 사회적 취약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난해 7월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낸 '2023~2025년 전 세계 가뭄 취약지역 보고서'는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에 기여한 정도는 가장 작지만, 수자원 문제로 인한 고통은 가장 심하게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에이몬 맥거크와 시카고대학교 네이선 넌 교수가 지난해 8월 '경제 연구 리뷰(Review of Economic Studies)' 저널에 발표한 '기후변화와 아프리카의 갈등' 논문에 따르면, 가뭄으로 목초지가 부족해진 유목민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정착 농민과의 자원 갈등이 벌어지고 끝내는 폭력적인 충돌을 야기한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2300만 명이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UNCCD 보고서는 스페인을 포함한 지중해 지역의 강수량이 2050년까지 최대 20%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OECD 보고서는 2022년 독일 라인강의 수위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물류 운송 능력이 25~35%로 급감한 사례를 들면서, 물 문제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유량 감소는 오염 물질의 농도를 높이고 수질을 악화시키는데, 2018년 가뭄 당시 라인강의 의약품 잔류물 농도는 30%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은 무분별한 지하수 취수로 인해 지반 침하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네이처 지속가능성 (Nature Sustainabili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도의 주요 대도시는 과도한 지하수 사용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매년 상당한 속도로 가라앉고 있고, 이로 인해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홍수 위험이 크게 늘고 있다. 인도의 콜카타 시는 전체 면적의 92.56%가 지반 침하를 겪고 있고, 델리 시는 연간 15.19㎜에 달하는 침하율을 기록했다. 멕시코시티는 기반 시설의 노후화로 공급되는 물의 40%가 누수로 사라지는 있다. UNCCD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시스템 용량이 39%까지 떨어져 도시의 물이 완전히 고갈되는 '데이 제로(Day Zero)' 직전까지 몰렸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역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은 남미의 아마존 분지 역시 강 수위가 기록적으로 낮아졌고, 이로 인해 분홍돌고래 등 수많은 수중 동물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숨겨진 물 소비: 산업 생산과 가상수 무역의 불평등 물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마시는 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소비된다. 중국 둥베이(東北)대학교와 유엔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11월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철강·시멘트·종이·플라스틱 등 주요 재료 생산을 위한 전 세계 '블루 워터' 사용량(물 발자국)은 1995년 251억 ㎥에서 2021년 507억 ㎥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블루워터(blue water)는 강·호수·지하수처럼 눈에 보이고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상수(virtual water)' 무역을 통한 수자원의 착취와 불평등이다. 베이징대학교와 유엔대학교 연구진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글로벌 농업 무역에서의 물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물 집약적인 농산물을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함으로써 자국의 물 부족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 국가의 취약 계층은 자국의 농산물을 수출하는 동안 정작 본인은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물 부정의(injustice)'를 겪고 있다. 국제 무역을 통해 가상수가 이동하는 양을 1995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공산품 생산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해결을 위한 기술적·전략적 대안 지속가능한 물 관리를 위해서는 수요 감소와 공급 다변화를 결합한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자연 기반 해결책(NbS)과 관리형 대수층 충전(MAR)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OECD 보고서는 강조한다. 습지를 복원하고, 투수성 지표면을 확대해 빗물이 지하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함으로써 지하수 수위를 회복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홍수 예방과 수질 개선이라는 다각적 이득을 동시에 제공한다. UNCCD 보고서는 누수 차단 및 효율적 물 수송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멕시코시티나 미국 일부 도시에서 발생하는 40~60%의 수돗물 누수율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수 재이용과 해수담수화 기술의 고도화할 필요도 있다. 싱가포르의 '뉴워터(NEWater)' 사례처럼 하수를 고도로 정수해 공업용이나 식수로 재활용하는 기술은 물 부족 국가의 필수 생존 전략이다. OECD 글로벌 가뭄 전망 보고서는 “다만, 해수담수화 기술은 에너지 소비가 많고, 농축된 소금물 배출로 인해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의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정밀 농업을 도입하고, 가뭄 저항성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 세계 담수 소비의 70~80%가 농업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물 소비가 적은 토착 작물을 육종하고 점적(點滴, drip) 관개 시스템을 도입하여 농업용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점적 관개 시스템은 작물 뿌리 주변에만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공급하는 고효율 관개 방식이다. ◇국제사회 협력 방안: 초국경적 공유와 물 외교의 필요성 물은 국경 내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전 세계 수자원의 60%는 국경을 넘나드는 하천 유역(transboundary river basins)에 위치해 있다. 중국 칭화대 연구팀은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41~2050년 사이 전 세계 초국경 유역의 40%가 물 부족으로 인한 갈등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다양한 협력이 시급하다. UN대학교의 '글로벌 물 파산' 보고서는 “초국경 수자원 협정의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944년 체결된 미국-멕시코 수자원 조약처럼 수십 년 전의 풍부했던 강수량을 기준으로 한 조약은 현재의 기후 현실에 맞지 않다. 변화된 하천 유량을 반영, 상·하류 국가 간의 이익을 공유하는 유연한 메커니즘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공유와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상류 국가의 댐 건설이나 물 전용 현황이 하류 국가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그래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도 가능하다. WMO 보고서는 “글로벌 수문 상태 및 전망 시스템(HydroSOS)과 같은 국제적 플랫폼에 모든 국가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물 금융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 가뭄 피해가 극심한 개도국이 기후 적응을 위한 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선진국은 기후 기금을 물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농산물 무역 등을 통해 개별 국가가 떠넘긴 '수문학적 부채'를 갚는 과정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게 '물 평등 보고서'의 시각이다. 부산대학교 및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 크리스티안 프란츠케 교수팀이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인류세 전례 없는 글로벌 물 부족의 첫 출현' 논문은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대 이전에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물 부족, 즉 '데이 제로 가뭄'이 상시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의 날을 맞아 인류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명확하다. 물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며, 이미 지구의 자본을 상당 부분 소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인류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다음 세대의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시급한 정치적·윤리적 과업이라는 사실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전쟁이 몰고온 고유가…탄소 배출 늘릴까,  줄일까?

지난달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보름을 넘겼지만 여전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세계적으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에 비상이 걸렸고, 유가도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고 있다. 이처럼 유가가 급등할 경우 탄소 배출량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어들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유가 급등이 탄소 배출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최신 연구들은 상반된 수치들을 내놓고 있다. 원유 가격의 상승이 반드시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을 넘어 각국의 에너지 의존도와 경제 구조에 따라 탄소 배출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와 온실가스 배출량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해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살펴본다. ◇고유가가 견인하는 탄소 감축: 가격 기제의 실질적 효과 많은 연구는 유가 상승이 화석 연료 소비를 억제하고 대체 에너지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강력한 가격 기제로 작용함을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중국 구이저우 재경대학교 연구팀은 2024년 '에너지(Ener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국의 1990-2019년 데이터를 모델로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1% 상승할 때 탄소 배출량은 단기적으로 0.351%, 장기적으로는 0.13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고유가가 기업과 가계의 에너지 소비 행태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고, 장기적으로도 중국의 탄소 배출 수준에 유의미한 부정적(감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중국 하이난 대학교 연구팀이 2023년 '환경 과학과 오염 연구 (Environmental Science and Pollution Research (ESPR))'에 게재한 논문은 교통 부문에 집중했다. 이 연구는 유가가 1% 상승할 때 교통 부문의 탄소 배출 강도가 단기적으로는 0.121%, 장기적으로는 0.141% 감소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특히 고유가가 혁신적이고 에너지 효율적 기술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면서, 가계가 유류 차량에서 전기차와 같은 대체 수단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만들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감축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 이공대학교 연구팀이 2022년 같은 저널(ESPR)에 발표한 유럽 30개국 대상 연구에서도 유가 상승의 '긍정적' 영향이 확인됐다. 회귀 분석 결과, 유가가 1% 상승할 때 전체 탄소 배출량은 약 0.0036%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가 상승 시 소비자들이 즉각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대체 에너지원으로 이동해 결과적으로 전체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작아 보이지만, 유럽 전역의 에너지 소비 규모를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중국 창저우 정보직업기술대학 연구팀은 지난 2018년 '자연과 사회에서의 이산 동역학 (Discrete Dynamics in Nature and Society)'에 미국 사례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유가 상승이 탄소 배출량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다는 점을 증명했다. 고유가가 석유 수요의 증가 속도를 늦추고 에너지 구조에서 석유의 비중을 낮춰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연료 대체와 산유국의 역설: 탄소 배출이 급증할 위험성 반면, 고유가가 오히려 환경에 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유가 상승 시 비싼 석유 대신 저렴하지만 탄소 집약도가 높은 '석탄'으로 에너지를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튀니지 젠두바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2018년 '경제학 회보(Economics Bulletin)'에 게재한 논문은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 제시한 중국의 사례를 보면, 유가가 1% 상승할 때 탄소 배출량은 단기적으로 25%, 장기적으로는 무려 49%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중국은 석탄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 구조여서 유가가 치솟을 경우 자국에 풍부한 석탄으로 에너지를 급격히 대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석탄 소비가 1% 증가할 때 탄소 배출량은 112% 폭증하는 상관관계가 관찰되기도 했다. 유가 상승은 결과적으로 배출량이 유가 하락 시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 구조에 따른 차이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나이지리아 라피아 연방대학교 연구팀이 2023년 '자원 정책(Resources Policy)'에 발표한 아프리카 30개국 대상 연구에 따르면, 석유 순수입국에서는 유가 1% 상승 시 탄소 배출량이 0.081% 감소하지만, 석유 수출국에서는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0.038%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연구팀은 석유 수출국에서는 유가 상승이 국가 수입 증대와 경제 성장을 더 늘리는 자극제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의 사례는 더욱 뚜렷하다. 카자흐스탄 알-파라비 국립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에너지 경제학과 정책 국제 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Energy Economics and Polic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가가 1% 상승할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단기적으로 0.373%, 장기적으로 1.55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제 성장은 탄소 배출량을 단기 0.101%, 장기 0.424%만큼 동시에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에서 유가 상승이 경제 발전에는 긍정적이지만, 탄소 배출량 역시 동시에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의 '원인'과 '내부 역량'에 따른 차별화된 결과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상승의 원인과 기업의 대응 능력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단순히 유가의 높고 낮음보다, '왜 유가가 올랐는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칠레 산 세바스티안 대학교 연구팀은 2024년 '에너지 리포츠(Energy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서 유가 상승의 원인을 두 가지로 구분한 뒤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했다. 공급 감소로 인해 유가가 10% 급등할 경우(공급 충격), 당해 연도 탄소 배출량은 1.3% 감소하고 2년 뒤에는 1.8%까지 감축 효과가 확대됐다. 그러나 세계 경제 호황에 따른 수요 증가로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수요 충격)에는 오히려 당해 연도 배출량이 2.4%, 2년 뒤에는 8.9%까지 대폭 증가하는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경제 활동 자체가 팽창하면 유가가 상승해도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하일 대학교 연구팀은 2023년 '에너지 (Ener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고유가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발하는 규모를 수치화했다. 논문에서는 유가 상승 시 중국의 재생 에너지 소비는 단기적으로 28%, 장기적으로는 232%나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우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 석탄 소비를 자극해 탄소 배출이 일시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저탄소 구조로의 체질 개선을 강력히 이끌게 된다는 점을 입증했다. 중국 칭다오 대학교 연구팀이 2022년 '자원 정책'에 발표한 논문은 유가와 같은 외부 가격 변수보다 '인적 자본 효율성(human capital efficiency, HCE)' 같은 내부 역량이 탄소 감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HCE가 1단위 높아질 때 유가 변동 주기와 상관없이 탄소 배출량은 0.567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숙련된 인적 자원을 보유한 기업일수록 고유가 상황에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서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가 주기와 관계없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국내에서도 석탄화력발전 가동률 높아질 수도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1일 김성환 장관 주재로 에너지대책 점검 회의를 열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 가동률을 높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가속화할 방침이다. 원전의 경우 현재 15기(설비용량 16.45GW)가 가동 중인데, 이달 내로 2기를 재가동하고, 5월 중순까지 추가로 4기를 재가동할 계획이다. 특히 LNG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석탄발전 가동률도 높일 방침이다. 3월 말까지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기간이어서 주중에는 전체 60기의 석탄발전기 중 15기의 출력을 80%로 낮추고 있고, 주말에는 최대 29기까지 발전기를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부는 향후 황사와 미세먼지 영향이 적은 시기에는 석탄발전 가동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후부는 미세먼지 오염을 줄이기 위해 저유황탄 사용과 대기오염방지시설의 가동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 가동률을 높일 경우 LNG 발전소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30~50% 증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편, 기후부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올해 재생에너지 보급·융자 사업예산을 신속히 집행하고, 재생에너지 설비의 조기 가동을 위해 사업의 인허가 및 계통연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장의 어려움을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신속히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 돌파, 온실가스 감축의 기회인가?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고유가 상황은 대체로 온실가스 감축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높은 비용 부담은 화석 연료 소비에 대한 강력한 억제책이 되고, 재생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기술에 대한 투자 수익성을 높여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첨단 교통 시스템을 갖춘 지역에서는 1% 유가 상승 시 0.003%에서 0.14% 수준의 배출량 감소가 실질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공급 부족에 따른 유가 급등 시에는 최대 1.8% 수준의 누적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수치는 고유가가 환경에 주는 혜택을 방증한다.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라는 가격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무엇보다 유가 상승이 석탄 사용의 폭증으로 이어지는 '역행적 연료 대체'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탄소세 등과 같은 규제를 도입하거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같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산유국들이 고유가로 얻은 막대한 부를 다시 화석연료 시추가 아닌 재생 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국제적 공조도 병행돼야 한다. 결국 100달러의 유가는 탄소 감축을 위한 강력한 '채찍'이 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각국이 보유한 기술 혁신 역량과 인적 자본의 효율성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국가든, 기업이든 유가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세계 곳곳 전쟁-군사행동, 기후 위기 부추기는 그림자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 등에 공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의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이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과 군사행동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았고, 동시에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도 다량 배출했다. 군사 활동과 무력 충돌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국가 안보와 작전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그 실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산업·에너지·교통 부문을 중심으로 한 탄소 감축 노력은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오염원 중 하나인 군사 부문은 여전히 국제적 감시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 악화 우려 만 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는 2010년대 이후 기후 행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고, 환경 전략을 유럽연합(EU) 기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공개된 유럽 ​​위원회의 공동 연구 센터(JRC) 보고서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군사 활동은 환경 변화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탓에 산업 생산 감소와 에너지 시설 파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22년 배출량은 2021년 대비 23~26% 감소했다. 하지만 군사 작전과 관련된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최초 18개월 동안 군사 작전으로 7700만톤의 CO2가 배출됐다. 지난해 2월 비영리단체인 '전쟁으로 인한 온실가스 산정 이니셔티브'가 유럽기후재단과 국제기후이니셔티브 등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이후 3년 동안 전쟁과 건물 복구, 경관 화재, 에너지 기반시설 피해, 난민과 민간 항공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CO2) 배출량이 모두 2억3000만톤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탱크·전투기 등이 사용하는 화석연료와 포탄 사용 등 전쟁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전쟁'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36%(8200만톤)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건물 복구 등 '재건' 배출량은 6200만톤으로 27%를, 산불 배출량은 4800만톤으로 21%를 차지했다. ◇파괴력에 가려진 에너지 효율, 군사 장비의 구조적 기후 파괴성 현대 군사 전략과 무기 체계의 핵심 기준은 에너지 효율이나 탄소 감축이 아니라, 압도적인 파괴력과 즉각적인 작전 수행 능력에 있다. 전투기와 폭격기·전차·군함은 극단적으로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평시 훈련과 대규모 군사 기지 운영만으로도 막대한 배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군수 산업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고무·화학물질 등 경제 전반에서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원자재들을 사용한다. 군비 확장은 국가 전체의 배출 강도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2024년 공개된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진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에서 1%포인트 상승할 때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0.9~2% 증가하고,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강도 역시 1% 증가한다. 특히 생산 구조가 탄소 집약적인 국가일수록 군사화의 환경적 비용은 더욱 증폭된다. 군대가 사용하는 연료와 장비는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군사 부문은 구조적으로 탄소 감축이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통계의 사각지대, '군사 배출량 격차'의 형성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그 양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 기후 협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보고체계의 구멍(reporting loophole)' 때문이다. 현재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에서 각국은 매년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제출하지만, 군사 연료 사용과 해외 작전에서 발생한 배출량은 보고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 협상 당시 미국 등 주요국의 요구로 군사 부문의 배출량 보고를 의무가 아닌 자발적 항목으로 분류한 탓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가 군사 배출을 누락하거나 민간 부문 수치에 통합해 발표해 실제 오염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Germanwatch) 등이 공동으로 운영·발표하는 '기후변화 성과지수(CCPI)'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군대를 하나의 국가로 가정할 경우 해당 '국가'는 세계 4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전쟁의 직접적·간접적 환경 비용 무력 충돌은 단순한 전투 행위 이상의 환경적 비용을 수반한다. 전쟁 중 발생하는 연료 소비뿐 아니라, 폭격과 교전으로 인한 대규모 화재, 석유·가스 시설 파괴, 파손된 도시와 기반 시설의 재건 과정이 모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여기에 분쟁 지역을 우회하는 민간 항공 노선 증가, 의료·구호 활동 확대, 군수품 공급망 유지까지 포함하면 전쟁의 탄소 발자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2년 동안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약 2억3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네덜란드나 스페인의 연간 배출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CCPI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 역시 약 15개월 만에 크로아티아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약 3200만 톤의 배출을 초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에는 향후 재건 과정에서 발생할 시멘트와 철강 생산 배출량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후 위기와 무력 충돌의 악순환, 그리고 난민 문제 기후 변화와 무력 충돌은 일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스위스 취리히공대 등 국제연구팀이 2024년 8월 '혁신과 녹색 발전 (Innovation and Green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연구팀에 따르면 가뭄·홍수·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적 충격과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존의 정치·종족 갈등을 군사적 폭력으로 전환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자원 부족으로 인한 '환경적 희소성'은 국가 내부의 분쟁을 넘어 주변국 개입을 불러오고, 분쟁을 국제화된 내전으로 확대시키는 경로가 된다. 이러한 충돌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초래해 수많은 기후 난민을 발생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강제 이주는 이동 과정과 임시 거주지 건설에서 추가적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난민이 겪는 사회경제적 고통은 다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분쟁의 환경적 비용까지 떠안는 구조는 기후 정의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낸다. ◇ 녹색 전환을 가로막는 군수 산업의 '구축 효과' 군비 확장은 단지 배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원과 혁신 역량을 잠식한다. 이탈리아 보코니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이 급증한 이후, 기후 변화 완화와 관련된 녹색 특허 활동은 10~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정된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이 군사 기술로 쏠리면서 환경 기술 혁신이 억제되는 전형적인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다. 구축(驅逐)은 밀어내기를 의미한다. 또한 군비 증강은 전력(電力)·유틸리티 부문 투자를 위축시키는데, 이 부문 투자의 절반 이상이 재생 에너지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긴장은 에너지 전환 속도를 직접적으로 늦추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철강·화학·석유 산업 등 에너지 집약적 군수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면 탄소 가격제나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지게 된다. ◇“나토 국방비 증가로 온실가스 연간 최대 2억 톤 증가" 지난해 5월 영국에 기반한 '분쟁과 환경 관측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을 제외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31개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경우 연간 8700만∼1억9400만 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보코니대학교 연구팀에서 사용한 계산법을 이용해 이같이 추산했다. 나토 회원국이 2023년 배출한 온실가스가 모두 48억6100만 톤이란 점을 고려하면 국방비 지출을 2%포인트 올릴 때 배출량이 최대 2억 톤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군비 증강이 기후 위기를 가속할 뿐 아니라 평균 기온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1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사회적 탄소 비용(배출량 1톤당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 비용)을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톤당 1347달러로 추산했는데,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나토의 군비 증강에 따른 부수적 경제비용은 최대 2600억 달러(약 383조 원)에 달할 수 있다. ◇군사비 증가, 기후 목표 달성에 '숨은 장애물' 중국 중산대학교 등 연구진은 지난해 6월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군사비 증가가 기후 목표 달성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95~2023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MILEX)과 이산화탄소 배출 강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군사비가 글로벌 GDP 대비 1%포인트 증가할 때 CO₂ 배출 강도는 GDP 1달러당 약 0.04kg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 배출 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해 왔지만, 군사비 지출 변화는 배출 강도 변화의 약 27%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분쟁이 군사비 비중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됐다. 미래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군사비 비율이 높아질수록 기후 목표 달성이 늦어질 가능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군사비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C 또는 2°C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 달성이 최대 수십 년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 정의를 위한 평화와 군축의 선택 군사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기후 변화 완화 정책에 할당될 자원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해 해외 원조 예산을 깎아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도 유사한 조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 부문에 대한 근본적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공격적 군사 전략에서 벗어나 방어 중심의 군축이 이루어질 때만, 군사 부문의 탄소 발자국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군비 축소로 확보된 재원을 재생 에너지 인프라와 기후 적응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녹색 평화 배당금(Green Peace Dividend)'은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안보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 사회는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표준화된 보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기후 위기로 인한 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취약국의 회복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평화 구축은 더 이상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전쟁의 부재를 넘어,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군축을 통해 녹색 전환의 여지를 넓히는 것, 그것이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강대국간 자원 전쟁, 지구 마지막 유산 ‘심해’마저 훼손

지구 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류에게 여전히 낯선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수천 m 수심 아래의 심해저는 인간이 직접 관측한 면적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이 미지의 공간이 이제 전 지구적 에너지 전환과 자원 안보 경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기차, 재생에너지 설비, 전력 저장 장치에 필수적인 니켈·코발트·구리와 희토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은 최근 태평양 미나미토리시마 인근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수심 약 5700~6000m 해저에서 희토류를 함유한 진흙을 실제로 채취·인양하는 시굴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성취를 넘어 중국의 희토류 '자원 무기화' 전략에 대응해 독자적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일본의 강력한 국가 전략을 상징한다. 동시에 인류가 지금까지 거의 손대지 않았던 심해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산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국제 사회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도 지난해 7월 최첨단 물리탐사연구선 탐해3호로 서태평양 공해상 첫 대양 탐사에 나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수심 5800m 지점의 코어링 시추를 통해 얻은 시료에서 최대 3100ppm, 평균 2000ppm의 고농도 희토류 부존을 확인한 것이다. KIGAM은 정밀 자원 탐사를 위해 오는 4월 2차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심해저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 광물들 심해저에는 육상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전략 광물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해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자원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망간단괴(polymetallic nodules)다. 수심 4000~6000m의 심해 평원에 감자 크기의 둥근 형태로 흩어져 있는 이 광물에는 니켈·코발트·구리·망간이 고농도로 함유돼 있다.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필수적인 금속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돌 속의 배터리'로 불린다. 둘째는 코발트 리치 크러스트(cobalt-rich crusts)다. 해저산의 사면과 정상부를 얇게 덮고 있는 이 광물층은 코발트뿐 아니라 희토류와 백금족(族) 금속까지 포함하고 있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암반에 단단히 부착돼 있어 채굴 과정에서 해저 지형 훼손이 불가피하다. 셋째는 해저에 형성된 대규모 황화물 광상(seafloor massive sulfides)이다. 해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이 열수광상(熱水鑛床)에는 구리·아연·금·은이 고품위로 농축돼 있다. 지형이 급경사이고 열수 분출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기술적 위험성이 크다. 이 가운데 일본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미나미토리시마 인근 EEZ에 분포한 희토류 함유 심해 진흙(퇴적토)이다. 일본 정부와 연구진은 이 지역에 약 680만 톤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연간 소비량을 기준으로 수백 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평가된다. 특히 디스프로슘·네오디뮴 등 고성능 자석에 필수적인 중희토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수심 6000m 아래에서 기계 작동해야 심해 자원의 존재가 곧바로 개발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해 채굴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극한의 공학적 도전 중 하나다. 수심 6000m에서는 수압이 약 600기압에 달하고, 수온은 1~2℃에 불과하다. 염분과 황 성분으로 인해 금속 부식도 빠르게 진행된다. 태양광은 물론 일반적인 통신 신호도 도달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채굴 장비는 완전 무인 상태로 작동해야 한다. 일본은 수심 7000m까지 조사 가능한 자율형 무인탐사기(AUV)와 원격 조종 채굴 차량을 국산화했고, 해저 진흙을 흡입해 선박으로 끌어올리는 수직 양니관(揚泥管 혹은 洋泥管, riser-pipe)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이 관은 수 ㎞에 걸쳐 설치되기 때문에 파손 시 대규모 해양 오염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채굴 이후의 제련 과정 역시 난제다. 심해 진흙은 희토류 농도가 낮고 불순물이 많아 기존 방식으로는 에너지 소모와 탄소 배출이 과도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지속가능한 재료 연구소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Science Advances)' 저널에 수소 플라즈마 환원 공정(HPSR)을 제시했다. 이 공정은 화석 연료 대신 그린 수소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대 90%까지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약 18%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보이지 않는 파괴'에 대한 과학적 경고 심해 채굴을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환경 문제다. 특히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적물 플룸(sediment plumes)'이다. 해저를 긁거나 진흙을 흡입하는 순간 미세 입자들이 거대한 구름 형태로 확산돼 수십~수백 ㎞까지 퍼질 수 있다. 논바닥을 발로 딛고 다니면 진한 흙탕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미국 하와이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퇴적물 구름 속의 미세 입자가 동물플랑크톤의 여과 섭식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소형 어류를 거쳐 참치와 상어 같은 상위 포식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해양 먹이사슬 전체를 교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굴 장비의 소음 문제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텍사스 A&M대학교 연구팀은 채굴 소음이 수백 ㎞까지 전달돼 고래와 돌고래의 의사소통과 이동 경로를 방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해양 오염 회보(Marine Pollution Bulletin)'에 보고했다. 또한, 영국 자연사박물관과 사우샘프턴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네이처 생태학·진화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실제 채굴 시험 구역에서 대형 무척추동물의 밀도가 37% 감소하고 종 풍부도가 32% 하락했다. 연구진은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구역(Clarion-Clipperton Zone, CCZ)에서 발견된 5000종 이상의 생물 중 90%가 아직 이름조차 없는 신종임을 경고하며, 무분별한 개발이 이들을 발견하기도 전에 멸종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해 생태계 복원의 냉혹한 현실 심해 채굴의 또 다른 문제는 복원 가능성이다. 심해 생태계는 한 번 파괴되면 '인간의 시간 척도' 내에서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CCZ는 심해 채굴이 초래할 생태계 훼손과 회복 불가능성 문제로 인해 환경 논쟁의 중심지다. 영국 국립해양센터 연구팀은 1979년 CCZ에서 실시된 시험 채굴 지역을 40여 년 뒤 재조사해 그한 결과를 지난해 3월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공개했다. 해저에는 여전히 채굴 장비의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고, 대형 부착 생물은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CCZ는 태평양 중·동부 적도 해역에 위치한 수심 4000~6000m의 광대한 심해 평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망간단괴 분포 지역이다. 이 단괴에는 망간·니켈·코발트·구리 등이 포함돼 에너지 전환과 첨단 산업의 핵심 원료 공급지로 주목받아 왔다. CCZ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국가 관할권 밖 해저에 해당해 어느 국가도 소유할 수 없으며, 자원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탐사와 개발은 국제해저기구(ISA)의 관리 아래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상업 채굴은 아직 전면 승인되지 않았다. 망간단괴는 백만 년에 수 ㎜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괴 제거가 단순한 자원 채취가 아니라, 생물 서식 기반 자체를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망간단괴가 햇빛 없이도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산소를 생성하는 이른바 '어두운 산소(Dark oxygen)' 현상과 관련돼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이는 단괴 제거가 심해 생명 유지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인류 공동의 유산'을 둘러싼 외교 전쟁 심해저 자원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관리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가장 많은 탐사 계약을 보유하며 ISA 규칙 제정을 주도해 왔고, 태평양 공해에서 대규모 시험 채굴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SA 절차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ISA 사무총장 레티시아 카르발류는 “어떠한 국가도 인류 공동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미국과 '핵심 광물 프레임워크'를 체결하며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다자주의 질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7년 이후 하루 최대 350톤 규모의 심해 진흙 채취 실험을 통해 상업적 채산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일부 연구는 심해 광물 개발의 내부수익률(IRR)이 17~27%에 이를 수 있어 육상 광산보다 경제성이 높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태평양 도서국 사이에서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나우루와 쿡 제도는 새로운 경제적 수입원을 위해 채굴 찬성 입장인 반면, 팔라우·피지·사모아 등은 생태계 파괴를 이유로 10년 이상의 채굴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폴리네시아의 모에타이 브로더슨 대통령과 팔라우의 수랑겔 휩스 주니어 대통령은 '네이처'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심해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인류 공통의 유산이며, 불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해 채굴에 앞서 기존 자원 재활용부터 검토해야 지난해 6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유엔 해양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했던 리사 레빈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교수는 “결국 경제성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며 테슬라 등 주요 업체들이 이미 니켈과 코발트가 필요 없는 LFP 배터리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심해 채굴에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지속 가능한 금융 싱크탱크 '플래닛 트래커' 역시 국가가 얻을 로열티 수익은 제한적인 반면, 자원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기존 육상 광산과 지역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해 채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도시 광산(urban mining)'과 '순환 경제'가 강력히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인류가 매년 버리는 가전제품 폐기물에서 회수할 수 있는 코발트와 구리의 양이 심해 채굴 예상량을 상회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전문가들은 “심해를 파헤치기 전에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재활용하고 수리해서 쓰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2026년은 심해 채굴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공해 해양생물다양성 협정(BBNJ)이 발효됐다. 이 협정은 공해상에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의무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향후 심해 채굴 활동에 강력한 법적 규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자원 패권을 선점하려는 국가들이 당장 속도전을 멈추지는 않을 전망이다. 심해저를 둘러싼 이 '총성 없는 전쟁'의 결말은 기술이 아니라, 인류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지구 마지막 미개척지인 심해를 희생시킬 것인지, 아니면 기술 혁신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기로에 인류가 서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일자리 위협 산업로봇…탄소중립 앞당길 수는 있을까

글로벌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지난달 자사의 인공지능(AI) 챗봇이 한 달 동안 230만 건의 고객 상담을 처리하며 정규직 상담원 700명의 업무량을 대체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IBM 역시 향후 5년 내 백오피스 인력의 30%를 AI와 자동화로 대체하겠다며 신규 채용 중단을 선언했다. 영국의 BT그룹은 2030년까지 최대 5만5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육체노동자를 대체하던 자동화의 물결이 이제 전문직 화이트칼라와 숙련 공정까지 정조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생산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자 노조가 “합의 없는 도입은 결코 안 된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이른바 '신(新) 러다이트 운동'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아틀라스는 지난달 초 미국 라이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 가전제품 전시회) 2026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과 '피지컬 AI'의 결합은 고용 시장을 뒤흔드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할 결정적 열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들이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하는 산업로봇이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 최근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한국 제조업의 풍경을 바꾸는 로봇: '생존'과 '그린'의 결합 한국은 로봇 강국이다.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밀집도가 1012대에 달해 2023년 기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의 도시·지역계획학과 연구팀은 'SSRN'에 공개한 논문에서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SMMs)들은 인건비 상승,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협동로봇(Cobots) 도입을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로봇화는 탄소중립 목표와 결합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5만 개의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탑재한 '반도체 인공지능(AI) 팩토리'를 구축했다. 여기서는 실시간 데이터 학습을 통해 제조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소모를 최적화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 당진 특수강 공장에 태깅 로봇을 도입해 오부착 오류를 최소화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줄이고 안전성을 높였다. 포스코는 4족 보행 로봇을 활용해 제철소 용광로 등 위험 설비를 정밀 진단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 대형 사고로 인한 환경 오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인텔리전트 팩토리'로 진화 중이다. 한화오션은 조선소 자동화율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로 용접 협동 로봇을 대거 투입해 작업 준비 시간을 60% 단축하고 정밀도를 높여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 산업로봇 도입 확대: 온실가스 감축의 강력한 동력 산업로봇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지능형 제조의 핵심이다. 중국 쓰촨대학교 경제학부의 왕젠룽 교수팀은 2023년 '사회 속 기술 (Technology in Socie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업로봇의 확산이 기업의 탄소 배출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동난대학교 경제관리대학의 야오웨이지 교수 등은 2024년 3월 '청정 생산 저널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산업로봇 사용량이 1% 증가할 때 탄소 배출량은 약 0.24%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브릭스(BRICS)에 속한 40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이러한 감축 효과가 로봇이 정밀 제어를 통해 에너지 낭비를 막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생산성 향상 효과'와 청정 제조 기술의 발전을 유도하는 '기술 진보 효과'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과 무역 구조의 고도화 로봇 도입은 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도록 도와 간접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중국 광업기술대학교 경영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7월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로봇을 통한 지능형 제조는 가공·조립 위주의 저부가가치 공정에서 연구개발(R&D)과 설계 중심의 고부가가치 단계로의 이전을 촉진하는 '가치사슬 등반 효과'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집약적 공정이 줄어 전체 탄소 배출량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샤오싱대학교 경영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데이터 과학 및 관리 (Data Science and Management)'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산업로봇의 적용이 수출 제품에 포함된 탄소 배출 강도(CIE)를 유의미하게 감소시켜, 국제 시장의 엄격한 환경 규제를 준수하는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CIE(intensity of CO2 emissions embodied in manufacturing exports)는 제조업 수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의 집약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수출 무역에 포함된 전체 탄소 배출량을 수출을 통해 창출된 총 부가가치로 나눈 비율로 계산한다. 이 지표는 특정 국가나 산업의 수출 제품이 얼마나 탄소 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국제적인 환경 규제 준수나 수출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고숙련 인적 자본: 로봇의 탄소 감축 효과를 완성하는 열쇠 로봇 도입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운영하는 인적 자본의 고도화가 필수다. 중국 시안교통대학교 경제금융대학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연구팀은 2024년 6월 '혁신과 녹색 발전 (Innovation and Green Development)'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고숙련 노동력이 로봇의 정밀 조작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함으로써 탄소 감축 효과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서 언급된 고소득 전문직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행이 특허 데이터와 직무 데이터를 결합하여 산출한 'AI 노출 지수'를 분석한 결과, 의사(일반의 및 전문의),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AI 대체 위험이 높은 직업군은 역설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임금 수준도 높은 전문직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의 핵심 업무인 방대한 전문지식 학습, 문서 및 보고서 작성, 논리적 추론, 규정 및 판례 검색 등의 영역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이 가장 빠르게 능력을 향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노출 직종 내에서도 단순 정보 전달이나 기초 자료 조사 같은 정형적 업무는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기획, 심층 해설, 관계 형성 등 '기계가 하기 어려운 역할'로 이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AI나 로봇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도구로 부려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유연성이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피지컬 AI(산업로봇 등) 시대에 노동 유연성은 기술 도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산업 구조를 저탄소 기반으로 재편하는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로봇 도입은 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노동 요소가 지역이나 산업 간에 자유롭게 흐를 때 더욱 강화된다. 특히 인력 수급이 어려운 지역으로 숙련된 인재가 유연하게 유입될 때 산업로봇의 탄소 감축 기여도는 극대화된다. 로봇은 단순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수작업을 대체하는 '노동 대체 효과'를 유발한다. 이때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돼 더 가치 있고 지능화된 직무로 유휴인력이 신속하게 재배치(Reallocation)되면, 산업 전체의 에너지 효율과 노동 생산성이 동시에 향상된다. 피지컬 AI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노동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직무를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훈련 체계는 필수적이다. 노동자가 로봇을 도구로 부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때, 기업은 단순 생산량 확대를 넘어 공정의 '청정화'와 녹색 기술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피지컬 AI 시대에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는 단순히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지능형 제조 기술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탄소중립의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에너지 반등 효과'와 정책적 해법 그러나 로봇 도입이 생산 효율을 높여 오히려 생산 규모를 급격히 확대시키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이른바 '에너지 반등 효과(energy rebound effect)'는 탄소중립의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쓰쵠대학교 왕젠룽 교수는 로봇 가동에 필요한 전력이 여전히 화석 연료에 의존할 경우 감축 성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반등 효과'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재생 에너지 인프라의 통합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 공장 지붕 등에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해 로봇 가동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녹색 기술 혁신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터키 오스팀 기술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AI 기반 청정 에너지 특허와 로봇 기술이 결합될 때 탄소 감축 효과가 극대화되므로, 정부는 '더러운(Dirty)' 혁신 대신 '녹색 혁신'에 R&D 자금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로봇 도입을 통해 얻은 탄소 감축 성과를 탄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저탄소 기술을 채택하게 될 전망이다. ◇ESG 경영과 산업로봇의 시너지 효과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는 산업로봇 도입을 가속화하는 비료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 충칭 메카트로닉스 직업기술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사이언티픽 리포츠'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일수록 정밀 제조와 폐기물 감소가 가능한 로봇 기술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를 통해 환경적(E) 성과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ESG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중소기업이 초기 투자비가 비싼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금융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로봇은 다시 실시간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해 기업의 탄소 배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도와 ESG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인지 역량과 지능형 로봇의 협업이 여는 저탄소 미래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의 산업 현장 투입 추진이나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감축 사례에서 보듯이 산업로봇과 AI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중국 난징항공우주대학교 경제경영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4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AI와 로봇을 통해 경제 구조를 '가볍고 깨끗하게'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로봇 도입으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노동자 재교육과 재생 에너지 전환에 재투자함으로써, 일자리 위기를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이라는 인간 특유의 인지 역량을 로봇의 정밀함과 결합할 때, 비로소 기술은 일자리를 뺏는 기계가 아닌 탄소중립 시대를 여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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