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필요한 원전④] SMR과 신규원전, 글로벌 주도권 경쟁…지금이 ‘골든타임’

지속되는 에너지 위기와 탈탄소 압력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 르네상스'가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경제성 확보라는 세 가지 시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원으로서 원자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SMR(소형모듈원자로) 과 신규 원전 건설은 한국의 에너지·산업 전략에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국회와 산업계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신규 원전 건설과 SMR 투자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탄소중립과 동시에 기업들의 전력 수요 폭증, 전력계통 부담, 해외 수출 경쟁까지 고려할 때, 원자력을 배제한 에너지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 세계적으로 SMR은 기술 주도권과 산업 주도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미래 전략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뉴스케일파워(NuScale), 테라파워(TerraPower), X-energy 등 민간 주도의 SMR 개발 기업에 연방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일부 모델은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으며, 미 에너지부(DOE)는 원전 수출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간주하고 동맹국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SMR 실증로(ACP100) 가동을 시작했으며, 자국형 소형원자로를 내륙 수력발전 대체와 수출형으로 이중 개발 중이다. 기술 개발과 사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유럽, 일본, 캐나다, 체코, 프랑스 등도 기술 확보와 실증을 병행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북극권과 내륙 등 오지 전력 공급에 SMR을 실증 중이다. 이처럼 SMR은 에너지 안보, 지역 분산형 전원,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세 가지 장점으로 인해 각국이 '차세대 원자력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기술력은 있어도 시장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국내에선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중심이 되어 SMR 기술 개발과 수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과의 협력을 통해 SMR 주기기 제작에 착수했다. 해당 협력은 기술 이전과 글로벌 공급망 참여를 동시에 겨냥한 전략으로, 향후 동남아시아·중동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수원은 자체 SMR 모델인 i-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체코·폴란드 등 유럽 진출도 모색 중이다. 정부의 수출지원책과 함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실증 허가를 준비하고 있으며, 실증로 건설지를 놓고 국내 지방자치단체와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또한 두 기관은 한국형 대형원전(APR)의 수출 재개 및 추가 수주를 위한 로드쇼도 확대하고 있다. 이는 국내 원전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신규 수요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조치로 해석된다. 국내 산업계 역시 SMR에 대한 관심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SK,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RE100(재생에너지 100%) 참여를 확대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고민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SMR + 전력직접구매(PPA)' 방식으로 자가 전력망을 구축하거나, SMR 단지를 조성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직접 연결하는 시나리오까지 검토되고 있다. SMR은 송전망이 취약한 지역에도 설치 가능하며 열병합 공급 및 수소생산과의 연계도 가능해 탄소중립과 경제성, 전력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평가된다. 현재 한국 원전 생태계는 신규 건설이 정체되면서 심각한 일감 부족에 직면해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S1코퍼레이션, 현대건설, 한전KPS, 원전 정비업체 등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SMR은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마중물이자,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특히 SMR은 기존 대형원전 대비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 지방정부들의 유치경쟁이 벌어지는 등 새로운 산업유치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이 SMR과 신규 원전에 대한 결정적 투자 시기"라고 말한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전은 단순한 발전원이 아닌, 기술, 외교, 산업경쟁력, 지역균형발전, 탄소중립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 산업이다. 정부는 과감한 정책 신호와 제도 개선을, 기업은 선제적 투자와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여전히 필요한 원전③] 탄소중립도 현실성 있게…재생에너지 한계 보완하는 ‘현실적 전원’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에너지 전환의 여정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변동성과 간헐성,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기술적 미성숙이라는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뚜렷하다. 이에 따라 출력 안정성과 계통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원자력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현실적' 해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 과정에서도 원자력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전원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서,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비용 효율성을 고려한 합리적 에너지 믹스 구성이 절실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 장차관을 원전 전문가들로 채운 것도 원전의 전략적 중요성을 공식 인정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실용적 에너지믹스 정책을 강화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에 두산에너빌리티 김정관 사장을, 1·2차관에 각각 문신학 전 대변인과 이호현 에너지정책실장을 기용한 이번 인선은 원전 정책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세 인물 모두 원전정책 또는 산업 현장을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가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원전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지만, 이들 전원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출력이 급변하는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태양광은 낮 시간에만 발전이 가능하고, 풍력은 바람 세기에 따라 출력이 들쑥날쑥하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출력 제어(curtailement)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심화되고 있다. 한국 역시 2023년 기준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잉여 출력 제한 횟수가 연간 100건을 넘겼으며, 일부 시간대에는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재생 전원의 간헐성 문제는 △전력시장 가격 왜곡 △전력계통 안정성 저하 △예비력 증가에 따른 비용 상승 등 다양한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은 여전히 비용, 효율, 화재 안전성 등에서 기술적 과제가 많다. 이와 달리 원자력은 연중 무휴 24시간 가동 가능한, 출력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에서 현존 최강의 전원으로 꼽힌다. 전력계통의 주파수 안정화, 급변하는 수요에 대한 즉각 대응 등의 측면에서도 원전은 탁월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계통 운영에 필요한 유연성 자원과 예비력 비용이 급증하는 반면, 원전은 이러한 '시스템 비용(system cost)'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및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60%를 넘을 경우 추가 계통 안정 비용이 전체 전력요금의 15% 이상 증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비용 상승을 억제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저 전원 확보가 필수적이며 그 중심에 원자력이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한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역시 원자력의 지속적 활용을 전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EU의 'REPowerEU' 전략에서는 프랑스,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등 10여 개국이 원전을 저탄소 베이스로드 전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도 기존 원전 운영 지원 및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확대가 포함돼 있다. 일본은 2050 탄소중립 계획에서 기존 원전의 재가동과 수명 연장, 신형 원전 건설까지 명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비율'의 문제를 넘어, 전체 전력시스템의 안정성과 비용 효율성, 기술 실현 가능성까지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은 재생과 원전의 조화로운 병행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향후 한국 역시 2030 NDC 달성,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하지만, 동시에 출력 안정성과 계통 안전성을 책임질 전원으로 원전의 활용을 지속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와 원전, 가스발전 등의 역할을 '역할과 책임 중심의 이원적 접근'으로 재정립한다면, 보다 균형 잡힌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여전히 필요한 원전②] 연료비 폭등 시대…값싸고 예측 가능한 원전의 경제성

중동 지정학 리스크와 유가 급등 가능성이 재부상한 가운데,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한국처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연료비가 전력 생산 비용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에서는 '예측 가능한 저비용 전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원전이다. 연료비 비중이 낮고, 장기계약을 통해 가격 예측이 가능하며, 수입선 다변화도 상대적으로 용이한 원전은 국제연료 가격 급등기에 국가 전력 체계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단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9% 수준이다. 반면 LNG 발전은 연료비가 전체 단가의 60~70% 이상을 차지한다. 석탄도 40% 안팎이다. 즉, 국제연료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화력 중심의 발전 구조는 단가가 대폭 오르며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 한국전력의 연료비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상승하며 한 해 30조원 넘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해 원전 단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현재 한국의 전력도매가격(SMP)은 LNG 단가를 반영한 가격 구조에 연동돼 있다. LNG 가격이 오르면 SMP가 상승하고, 이는 한전이 발전사에 전력을 더 비싸게 사오는 구조로 이어진다. 최근 4년간의 전력도매가격(SMP) 변동은 사실상 LNG 발전단가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분석이 뒷받침됐다. 반면, 원자력 발전단가는 연평균 50원대 초중반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국내 전력체계 내에서 '경제적 완충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LNG 수급 불안으로 LNG 발전단가는 200원/kWh까지 폭등, SMP도 196.04원으로 함께 치솟았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소비자 전기요금도 1년 만에 급등하는 등 에너지 가격 리스크가 경제 전반에 파급됐다. 문제는 이 부담이 요금으로 전가되지 않을 경우 한전 적자로, 요금으로 전가하면 국민과 기업의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반면, 같은 기간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50원 초반대를 유지했다. 이는 연료비 비중이 작고 가격 변동성이 낮은 원자력의 구조적 장점 때문이다. 원전은 연료비가 고정되어 있어 SMP와 무관하게 단가가 안정적이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안정성과 한전 재무구조 개선, 소비자 부담 완화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LNG에 연동된 SMP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선 원전 중심의 기저전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SMP 구조가 LNG 가격에 지나치게 연동돼 있어 요금 안정성이 떨어진다"며 “원전은 단가가 낮고 예측 가능해 중장기적으로 SMP 안정화, 한전 재무구조 개선, 국민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에너지 믹스가 여전히 LNG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국제 연료시장 불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인 원자력의 역할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단순히 저렴한 전원일 뿐 아니라, 고정비 중심의 구조로 장기적으로 가격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가 에너지 계획의 기반이 된다. 재생에너지는 출력단가가 낮아 보이지만, 계통 연계 비용, 출력 변동성 보완 비용, 추가 인프라 투자까지 포함하면 실질 비용은 급증한다. LNG는 유연하지만 단가가 높고, 유가 변동성에 휘둘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원전은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전력믹스의 안정성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지금처럼 국제 유가가 언제든 급등할 수 있는 불안정한 시대에는 예측 가능한 가격, 고정된 공급 구조, 장기적 계약 안정성을 갖춘 전원이 필요하다. 원전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경제적이고 전략적인 발전원이다. 단지 싼 전기라는 차원을 넘어, 국민경제 전반의 안정성과 정부 재정 부담 완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원전의 경제성이 지금 다시 조명받고 있다. *3편에서는 '탄소중립 현실화에 필요한 안정적 저탄소 전원으로서의 원전'을 중심으로 기후 대응 관점에서 원전의 필요성을 살펴봅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여전히 필요한 원전①] 지정학 갈등도 끄떡없고, 무탄소…에너지믹스의 핵심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12일 전쟁이 휴전 상태에 상태에 들어가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락했지만, 이번 사태는 중동산 석유 70% 비중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 본질적인 취약성이 다시금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원유 공급의 3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일시 봉쇄되거나 무력 충돌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5% 안팎의 변동성을 보였고, 한국을 비롯한 원유·LNG 수입국들은 즉각 위기대응에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며 “대통령실을 비롯해 전 부처가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불확실성 확대 때문에 경제 상황, 특히 외환·금융·자본시장이 상당히 많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필요한 조치를 최대한 찾아내 신속하게 이행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확장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지금 물가 때문에 우리 서민들, 국민들의 고통이 큰데 유가 인상과 연동돼 물가 불안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합당한 대책들을 충분히 강구해달라"고 지시했다. 다행히 12일간 치러진 이란과 미국·이스라엘간 전쟁은 휴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이 12시간씩 휴전 시간을 가진 뒤 24시간 뒤에는 종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휴전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배럴당 79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69~70달러로 급락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일시적 이변'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현실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부터 1990년 걸프전,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국제 에너지 가격을 뒤흔든 사건들은 늘 지정학적 충돌과 함께 찾아왔다. 한국처럼 1차 에너지원의 93%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전력생산의 60% 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국가에게 이런 리스크는 상존하는 불안요소다. 에너지업계는 이번 중동 위기와 맞물려, 과거 러-우 전쟁 당시 도입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의 재도입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제 LNG 가격이 폭등하며 SMP가 kWh당 200원을 돌파하던 2022년, 민간 발전사의 수익은 급등하고, 한국전력은 유가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수십조 원의 적자를 감수했다. 결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 상한제를 도입했고, 이는 또 다른 시장 왜곡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지정학적 충격은 단지 연료비 상승뿐 아니라 전기요금 체계, 발전사 수익구조, 정부 재정 전반에 충격파를 미치며,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의 휴전 가능성으로 SMP 상한제가 도입되진 않을 것으로 보이나, 언제든 상황은 재발될 수 있다. 이처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전력원이 있다. 바로 국내 기술과 인프라로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력은 연료비 비중이 낮고, 연료 구매 시 장기계약이 가능하며, 몇 년치 연료를 국내 저장시설에 미리 확보해 둘 수 있어 수입선 봉쇄 등의 리스크에 가장 적게 노출된다. 또한 발전원가 변동이 작아 전기요금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고, 탄소 배출이 없으므로 기후 대응 전략에도 부합한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화석연료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SMP가 요동치고, 그때마다 요금 조정과 적자 보전을 반복하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그 공백을 안정적으로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원자력"이라고 말했다. 물론 원전이 만능은 아니다. 안전 문제, 사용후핵연료 처리, 사회적 수용성 등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라는 국가 생존의 차원에서 봤을 때, 원전은 에너지원, 전력원에서 뺄 수 없는 핵심 자산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LNG를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믹스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중동 위기는 원자력의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속도감 있는 이행이 절실하다. 지정학적 위기는 예고 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늘 에너지의 덫에 걸린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기적 요금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흔들림 없는 에너지 체계다. 그 중심에 '원전'이 여전히, 그리고 반드시 자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편에서는 '국제 유가와 LNG 가격 급등 속 원전의 경제성'을 중심으로 원전의 비교우위를 살펴봅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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