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울진의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12일 전쟁이 휴전 상태에 상태에 들어가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락했지만, 이번 사태는 중동산 석유 70% 비중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 본질적인 취약성이 다시금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원유 공급의 3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일시 봉쇄되거나 무력 충돌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5% 안팎의 변동성을 보였고, 한국을 비롯한 원유·LNG 수입국들은 즉각 위기대응에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며 “대통령실을 비롯해 전 부처가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불확실성 확대 때문에 경제 상황, 특히 외환·금융·자본시장이 상당히 많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필요한 조치를 최대한 찾아내 신속하게 이행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확장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지금 물가 때문에 우리 서민들, 국민들의 고통이 큰데 유가 인상과 연동돼 물가 불안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합당한 대책들을 충분히 강구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
다행히 12일간 치러진 이란과 미국·이스라엘간 전쟁은 휴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이 12시간씩 휴전 시간을 가진 뒤 24시간 뒤에는 종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휴전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배럴당 79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69~70달러로 급락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일시적 이변'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현실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부터 1990년 걸프전,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국제 에너지 가격을 뒤흔든 사건들은 늘 지정학적 충돌과 함께 찾아왔다.
한국처럼 1차 에너지원의 93%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전력생산의 60% 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국가에게 이런 리스크는 상존하는 불안요소다.
언제든 반복되는 유가 급등…전력시장 안정장치 필요한 시점

주요 에너지원별 국내 생산여부, 저장력, 지정학 갈등 영향.
에너지업계는 이번 중동 위기와 맞물려, 과거 러-우 전쟁 당시 도입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의 재도입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제 LNG 가격이 폭등하며 SMP가 kWh당 200원을 돌파하던 2022년, 민간 발전사의 수익은 급등하고, 한국전력은 유가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수십조 원의 적자를 감수했다.
결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 상한제를 도입했고, 이는 또 다른 시장 왜곡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지정학적 충격은 단지 연료비 상승뿐 아니라 전기요금 체계, 발전사 수익구조, 정부 재정 전반에 충격파를 미치며,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의 휴전 가능성으로 SMP 상한제가 도입되진 않을 것으로 보이나, 언제든 상황은 재발될 수 있다.
외부 리스크에 가장 강한 전력원, 여전히 원자력...전략적 에너지믹스 핵심
이처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전력원이 있다. 바로 국내 기술과 인프라로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력은 연료비 비중이 낮고, 연료 구매 시 장기계약이 가능하며, 몇 년치 연료를 국내 저장시설에 미리 확보해 둘 수 있어 수입선 봉쇄 등의 리스크에 가장 적게 노출된다.
또한 발전원가 변동이 작아 전기요금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고, 탄소 배출이 없으므로 기후 대응 전략에도 부합한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화석연료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SMP가 요동치고, 그때마다 요금 조정과 적자 보전을 반복하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그 공백을 안정적으로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원자력"이라고 말했다.
물론 원전이 만능은 아니다. 안전 문제, 사용후핵연료 처리, 사회적 수용성 등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라는 국가 생존의 차원에서 봤을 때, 원전은 에너지원, 전력원에서 뺄 수 없는 핵심 자산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LNG를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믹스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중동 위기는 원자력의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속도감 있는 이행이 절실하다.
위기는 반복된다, 그러나 원전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정학적 위기는 예고 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늘 에너지의 덫에 걸린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기적 요금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흔들림 없는 에너지 체계다. 그 중심에 '원전'이 여전히, 그리고 반드시 자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편에서는 '국제 유가와 LNG 가격 급등 속 원전의 경제성'을 중심으로 원전의 비교우위를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