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빈의 경영 Scope] 대한항공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의 명암과 ‘메가 캐리어’ 밸류업 승부수

올해 1분기 글로벌 거시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최악의 경제상황)'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난 3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국지전에서 촉발된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고조로 배럴당 100달러대의 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급등이 국내외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율·고유가·고금리 등 '3고(高)의 노멀(일상화) 현상'은 유가와 환율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항공업계를 융단폭격했다. 그 여파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항공사들은 필연적으로 원가 압박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최근 공시한 1분기 보고서와 기업가치 제고 계획안을 면밀히 뜯어보면, 대외악재를 오히려 수익 극대화의 지렛대로 뒤바꾸는 압도적인 펀더멘털과 위기 관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종속회사 실적이 모두 반영된 대한항공 연결재무제표의 행간을 교차검증해 보면 외형성장의 이면에 똬리를 튼 거대한 '재무적 뇌관'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과정의 험난한 과제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 악재를 호재로 만든 '운영의 묘'와 막강한 현금 창출 능력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매출 4조5151억원, 영업이익 516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14.1%, 영업이익은 47.3% 폭증했고, 영업이익률도 11.4% 늘어 항공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항공기노선 계획에 따라 기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대한항공의 전략적 유연성의 결과다. 1분기 여객사업본부 노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2조6131억원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양적 성장을 넘어선 질적 성장이다. 국제선 탑승률(L/F)은 84.9%에서 88.5%로 3.5%포인트(p) 상승했고, 수익성의 핵심 지표인 1㎞당 운임(Yield) 역시 124원에서 128원으로 올랐다. 실적 증가의 결정적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중동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전쟁 위험에 따른 중동지역 영공의 불안정성이 극에 달하자 기존에 두바이·도하 등 중동 허브를 경유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던 글로벌 환승객들이 중동 항공사 이용을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이탈 수요는 우회항로와 안전한 직항편을 제공하는 대한항공의 유럽·동남아시아 연결 노선으로 대거 몰려드는 반사이익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타노선 대비 수익성이 월등히 높은 유럽 노선 매출은 전년 대비 18%나 늘었다. 여기에 중국의 무비자 정책 안정화와 춘절 연휴 효과가 맞물리며 중국 노선 매출이 19% 뛰었고, 역대급 엔저 현상 장기화로 폭발한 일본 노선 수요에 선제적으로 공급(ASK)을 10% 늘린 '탄력적 기재 운영'이 적중해 일본 노선 매출 또한 12% 증가했다. 수요가 둔화되는 곳의 공급을 즉각 빼서 수요가 넘치는 곳에 꽂아 넣는 수익성 방어 전략이 통한 것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여객기 밸리 카고 공급 증가로 운임 하락이 우려됐던 화물사업은 1조90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3.5% 성장을 일궈냈다. 화물수송 실적(CTK)도 1.8% 올라 완연한 반등세를 보였고, 화물 운임은 516원에서 525원으로 오히려 1.7% 상승했다. 이와 관련, 글로벌 산업계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혁명'이 일등공신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고가이면서 진동과 시간에 극도로 민감한 △반도체 △서버 랙 △첨단 배터리 등 하드웨어 장비의 항공수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불어 중동사태 여파로 홍해 항로가 막히는 등 글로벌 해운 물류망이 마비되자 촌각을 다투는 긴급 산업재와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전자상거래 초국경 물량이 해운을 포기하고 항공 화물로 대거 옮아왔다. 이 호기를 놓칠세라 대한항공은 글로벌 화주들과 고정계약 물량을 선제적으로 묶어두고 수요가 빗발치는 미주 노선 등에 전세기를 집중 투입해 화물단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대한항공 1분기 성적표에서 눈여겨볼 또다른 대목은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실적이다. 분기 매출 2522억원을 기록하며 기타수익 부문에서 전년 대비 74.0%라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글로벌 방산 수요 증가 속에 중고도 무인기 양산 1호기 출고와 군용기 창정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수주 잔고를 4조717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면 대한항공의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건전하다. 별도기준 현금성 자산은 2025년 말 3조4926억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 말 4조3648억원으로 불과 3개월 만에 25.0%(8722억원)가량 급격히 불어났다. 연결기준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무려 2조888억원에 이른다. 이는 매표 대가인 선수금이 늘어난 데에 기인한다. 별도기준 선수금은 5조6018억원에서 6조5524억원으로 17.0%(9506억 원) 급증했다. 연결재무제표 상 유동선수금·유동선수수익·유동성이연수익 등 계약부채 합계 역시 약 6조9397억원 규모로 막대한 수준이다. 고환율·고유가 기조 장기화로 향후 유류 할증료 인상을 우려한 승객들과 미주 등 여름 성수기를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항공권을 미리 발권한 결과다. 선수금은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며 승객이 탑승하는 순간 100% 매출로 치환되는 '착한 부채'로 평가받는다. 이 유동성은 향후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천문학적 비용을 방어할 든든한 실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연결 자회사의 늪과 환율의 저주, 통제 불능 고정비의 경고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짙기 마련이다. 별도손익계산서의 화려한 숫자에 환호하기엔 종속회사를 아우르는 연결재무상태표의 하단이 보내는 경고음이 크게 들린다. 대한항공의 별도기준 1분기 영업이익은 5169억원이지만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337억원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난해 1월 당기순이익 3499억원과 비교해 무려 90.4%나 증발한 수치다. 이처럼 수익을 집어삼킨 첫 번째 주범은 '환율의 저주'다. 지난해 말 1434.9원이던 원·달러 평가환율은 올해 1분기 말 1513.4원으로 불과 석 달 만에 78.5원(5.47%)이나 치솟았다. 항공사는 대규모 기단을 구매하거나 리스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달러 빚'을 져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대한항공의 별도순외화부채만 55억 달러다. 결국 1분기에만 환율 폭등으로 연결손익계산서 상 무려 8651억원의 외화환산손실과 218억원의 외환차손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별도기준 외화환산차손은 3895억원이었다. 다행히 대한항공 재무본부는 통화·이자율 스왑과 유가 옵션 등 각종 헷징 수단을 빌어 연결기준 파생상품 평가이익 3511억원, 거래이익 395억원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연결당기순이익 337억원을 분해해 보면 더 뼈아픈 현실이 드러난다. 지배기업 소유주 귀속 순이익은 1218억원이었으나, 아시아나항공 등 기타주주 몫인 비지배 지분 순손실은 8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12월 종속기업으로 편입된 아시아나항공의 실적 때문이다. 1분기 연결감사보고서 주석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524억원, 분기 순손실 2517억원을 냈다. 노후기재 정비일수 증가로 인한 사업량 감소와 저수익 단거리 노선의 비운항, 환율·유가 타격을 독자 방어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영업이익 576억원을 낸 진에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본체가 번 돈을 아시아나항공이 까먹고 있는 형국이다. 연말 물리적 합병 전까지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은 대한항공의 연결재무제표를 끊임없이 짓누를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별도부채 비율은 2025년 말 244%에서 266%로 소폭 늘었다. 하지만 진정한 우려는 연결재무상태표에 있다. 1분기 말 연결자산은 53조3102억원, 자본은 11조2751억원, 부채 총계는 42조350억원으로 연결부채비율은 372.8%에 육박한다. 본질적으로는 11조9832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합산과 금융부채의 팽창 때문이다. 에어버스 A350·A321neo나 보잉 787-10 등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연결기준 리스 부채가 13조8987억원에 이르고, 차입금과 사채를 합친 전체 금융차입 규모는 23조9576억원이다. 3고(高) 시대의 고금리 환경에서 불어난 이 빚은 1분기에만 2163억원의 막대한 연결이자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비용의 질적 측면에서도 고민이 깊다. 연료비 자체는 중동사태에 따른 단가(82억원)와 환율 상승의 악조건 속에서도 고효율 기재 운영을 통한 소모량 절감(328억원) 덕분에 별도기준 전년 대비 1.2%인 136억원 가량 줄었다. 그러나 인건비를 제외한 '연료비외 영업비용'이 별도기준 16.2%(4068억원) 늘었다. 연결기준 감가상각·무형 자산상각비는 7433억원으로 확인된다. 장기적인 연료비 절감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대응을 위해 대거 도입한 신형 항공기들이 역설적으로 감가상각비를 별도기준 15%(698억원)나 수직상승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해외 현지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전 세계 주요 공항의 지상조업 단가·조업사 인건비·시설이용료가 일제히 오르면서 별도 공항·화객비가 10%(617억 원) 급등했다는 점이다. 연결기준 공항 관련 지출은 5719억원을 차지한다. 또한,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제조원가 상승으로 별도 기타비용이 65%(2846억원) 치솟았다. 항공 수요가 팽창하며 매출이 느는 만큼 통제 범위를 벗어난 고정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적 압박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 '메가 캐리어' 출범과 자본 구조 혁신에 기반한 올해 기업 가치 제고 계획 단기적 재무 압박과 통합의 난관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글로벌 톱티어 항공사로의 도약과 주주 가치 퀀텀 점프라는 마스터 플랜을 천명했다. 우선 과거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배당 정책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혁신했다. 기존에는 매년 12월 31일에 배당받을 주주를 먼저 확정하고 이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사후적으로 결정하는 기형적인 '깜깜이 배당' 구조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해 3월 정관을 변경해 이사회에서 배당안과 배당 기준일을 먼저 확정공시한 뒤 배당을 받을 주주를 확정하도록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투자자는 받을 배당금을 정확히 확인한 뒤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돼 주주 권익이 극대화됐다는 평가이다. 나아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합병 과정 속에서도 주주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미실현 손익과 일회성 비경상 손익을 제외한 '별도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30% 이내 주주 환원'이라는 중장기 배당 정책을 아시아나항공 합병 완료 시점인 2026년 회계연도까지 흔들림 없이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기관 투자자들이 이번 밸류 업 공시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점은 올해 12월 17일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과의 최종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적 마법'이다. 대한항공은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63.9%를 인수해 이미 자회사 편입을 마쳤다. 올해 말 합병 비율 1대 0.2736432로 두 회사가 법적으로 완전히 통합될 때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따라 대한항공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주식에 대해서는 합병 신주가 전혀 발행되지 않는다. 통상 대규모 흡수 합병은 피합병 법인의 주식만큼 막대한 신주가 쏟아져 나와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극심하게 희석되는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전체 아시아나항공 보유주식에 대해 신주를 찍어내지 않음으로써 시장에 유통될 주식 수를 원천 차단했다. 이는 회사 자본으로 시장의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영구 소각하는 것과 동일한 '대규모 자사주 소각 효과'를 창출한다. 합병 리스크가 오히려 기존 주주들의 주당 순이익(EPS)과 주당 가치를 상승시키는 구조적 안전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2026년 말 통합 항공사가 출범하면 연 매출 23조원 이상, 보유기재 230여 대, 운항 도시 120개를 아우르는 '글로벌 메가 캐리어'가 탄생한다. 통합 대한항공의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37%로 올라 환승 수송객을 70% 이상 증대시키고, 아시아-북미 노선 좌석 공급력 2위로 올라서 여객 공급을 55% 이상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대한항공은 글로벌 탄소규제라는 경영 리스크에 대응해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을 단행한다.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탄소 배출량을 최대 25% 줄이는 고효율 친환경 항공기 138대를 오는 2033년까지 대거 도입한다. 특히, 항공업계의 차세대 생존 필수재인 지속가능 항공유(SAF) 확보를 위해 삼성E&A와 전략적 협력(MOU)을 맺고 해외 SAF 생산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한다. 또한, 지난해부터 적용된 유럽연합(EU)·영국 출발편 SAF 2% 의무 혼합규제를 차질 없이 이행하며 글로벌 환경 페널티를 피해가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 통합 등급 A를 획득하며 ESG를 최우선 척도로 삼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해자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 역시 지난해 5월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A0(안정적)로 상향하며 이러한 체질 개선을 공인했다. 류연주 한국신용평가 수석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의 연결 편입 이후 대한항공의 차입 부담이 크게 증가했고, 이 외에도 항공기 도입·영종도 엔진정비공장 설립·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웨스트 젯 등 해외 항공사 지분 매입과 같은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도 계획돼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류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이 수년 간 확충해 온 재무 여력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비용 부담 절감과 통합 시너지 기반의 영업 현금 창출력 제고 등을 감안하면 순차입금 의존도 30% 내외의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한진칼 ‘자산 매각·빚 청산’ 축포 이면에 가려진 비항공 계열사들 ‘민낯’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이 과감한 유휴 자산 매각과 선제적인 부채 청산을 통해 폭발적인 현금 창출력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미-이란 전쟁 같은 통제 불가능한 거시경제 악재에 취약한 수익 구조와 비(非)항공 자회사들의 뼈아픈 구조적 적자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체질 개선' 후속 과제가 요구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1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1002억원, 영업이익은 898억원을 기록했다. 2025년 전체 연간 영업이익 417억원을 감안하면 단 3개월만에 지난해 한 해 이익의 2배 이상을 거둬들인 '어닝 서프라이즈'다. 한진칼 호실적의 원천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한항공의 배당과 신규 상표권 수익의 안착이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은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중동발 악재 속에서도 이탈한 여객 수요를 유럽 직항 노선으로 기민하게 흡수했고, 글로벌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증설 붐을 타며 고단가 특수 화물을 유치해 막대한 영업이익을 창출했다. 그 결실이 1분기에만 862억원이라는 거액의 배당금 수익으로 한진칼에 유입됐다. 지난해 전체 배당금 수익은 880억원 수준인데 한 분기만에 이에 필적하는 실적을 거둔 셈이다. ◇지주사 본연의 수익 모델 완성 '이자 굴레의 해방' 여기에 그룹 창립 80주년과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도입한 신규 기업 아이덴티티(CI) 출시에 따라 계열사들로부터 수취한 상표권(브랜드) 수익 120억원이 더해지며 지주사로서 가장 이상적인 무형자산 수익 모델을 완성했다. 한진칼이 재무 구조를 단숨에 초우량 상태로 끌어올린 결정적 한 방은 올해 1월 6일 종속기업인 ㈜칼호텔네트워크가 소유했던 영종도 핵심 부동산인 그랜드 하얏트 인천 웨스트 타워 건물 등을 파라다이스 세가사미에 매각한 것이었다. 거래 금액만 2100억원이었다. 호텔업은 막대한 유지·보수비가 끊임없이 투입되는 자본 집약적 산업이다.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시점에 유형 자산인 유휴 부동산을 과감히 처분해 564억원의 장부상 매각 차익을 남긴 것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것이었다. 한진칼은 매각 대금 중 1600억원을 고금리 예금에 예치해 단기금융상품이 전년 말 대비 1680억원 급증하는 등 이자 수익을 챙겼고, 500억원에 이르는 만기도래 유동성 사채를 외부 차입 없이 자체 현금으로 즉시 상환하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과시했다. 한진칼의 올해 1분기 재무지표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금융비용의 소멸'이다. 1분기 연결 기준 금융비용은 약 46억원으로 전년 동기 182억원보다 무려 74.84%나 급감했다. 이자 비용만 놓고 봐도 178억원에서 43억원으로 75.70% 줄어들었다. 이는 과거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지원을 위해 한국산업은행을 대상으로 발행했던 3000억원 규모의 대형 교환 사채(EB)를 지난해 말 전액 상환한 결과다. 매분기 175억원의 재무 부담으로 작용하던 이자 비용이 사라진 것은 물론, 사채가 주식으로 교환될 경우 산업은행에 대한항공 지분이 넘어가 한진칼의 지배력이 희석될 수 있었던 치명적 뇌관마저 원천 제거하면서 핵심 자회사에 지배력을 굳히게 됐다. ◇거시 경제의 역습과 '대한항공 원 툴'의 한계 하지만 지주사 별도 기준 실적의 축포 이면에는 연결 포괄손익계산서에서 '관계 기업 투자 손익(지분법 이익)'이 전년 동기 725억원에서 228억원으로 68.56%나 쪼그라들었다는 우울한 지표가 자리잡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거시 경제에 대한 대한항공의 취약성이다. 대한항공이 짊어진 순외화 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약 55억달러 수준으로, 환율이 10원만 올라도 고스란히 약 55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을 입는 구조다. 중동 전쟁발 유가 급등과 초강달러 기조는 대한항공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장부상 환손실로 깎아내렸고, 이는 보유 지분율 26.05%만큼 한진칼의 지분법 이익 감소로 직결됐다. 영업을 잘해도 외부 변수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지주사의 치명적 아킬레스 건이 노출된 셈이다. 물류 자회사 ㈜한진 역시 과거 발행한 전환 사채(CB)의 주식 전환에 따른 지분율 하락으로 약 65억원의 지분 감액 손실을 반영하며 타격을 더했다. ◇㈜한진 택배 부문 '적자 전환', 한진트래블·㈜칼호텔네트워크 '벼랑 끝' 비항공 종속회사들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핵심 물류 관계사인 ㈜한진은 물류 외형 성장을 이뤘으나 캐시카우 역할을 해야 할 '택배 부문'이 3284억 원의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도 2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뼈아픈 역성장을 기록했다. 알리·테무 등 중국발 C-커머스 물량 폭증으로 물동량 파이는 커졌지만 전형적인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다. 1위 사업자 CJ대한통운·쿠팡과의 치열한 단가 후려치기 경쟁으로 택배 단가는 2021년부터 동일권역 6000원, 타권역 7000원, 제주권 9000원에서 단 한 푼도 올리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에 대전 메가허브 터미널 등 초대형 인프라 투자에 따른 무거운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상승이 수익성을 갉아먹는 '성장통 속 적자' 딜레마에 갇혀버렸다. 포스트 코로나로 여행객이 넘쳐나는 호황기임에도 여행업 자회사 ㈜한진트래블(구 한진관광)은 1분기 20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내며 자본 총계 마이너스(-) 10억원의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 회사는 거대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과의 출혈 경쟁에서 밀린 데다가 초강달러 현상으로 미주·유럽 노선의 호텔·버스 대절 원가 등 현지 투어 지상비가 폭등해 팔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적 늪에 빠졌다. 호텔업의 ㈜칼호텔네트워크 역시 자산 매각으로 일회성 순이익은 챙겼으나 정작 호텔 본업의 영업이익은 약 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식음료·인건비·수도광열비 등 고정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반면 '엔저 현상' 장기화로 내국인 호캉스 수요가 일본으로 대거 이탈하며 객실단가 방어에 실패한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평균 객실요금은 그랜드하얏트 인천 20만3205원, 서귀포 KAL호텔 16만2201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 각각 17만2123원, 14만3209원으로 내려앉았다. ◇한진칼, 기업 가치 제고 청사진 제시 비항공 계열사들의 부진이라는 뼈아픈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진칼은 1분기에 쏟아져 들어온 '현금 실탄'과 재무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본 시장을 향해 매우 공격적인 '2026년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했다. 한진칼은 이미 지난해에 스스로 내건 약속을 초과 달성했다. 당초 '주가 장부 가치 비율(PBR) 1배 유지'라는 소극적 목표를 뛰어넘어 2025년 말 기준 PBR 2.5배라는 압도적 재평가를 받았다. 이는 코스피 평균의 1.6배를 상회한다. PBR은 주식 1주 시장 가격을 주당 장부 가치로 나눈 비율을 뜻한다. 이 가운데 한진칼은 '밸류업'이 자본시장에서 일회성 테마 아닌 영속적 프리미엄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자산 매각이라는 임시 처방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붕괴된 비항공 자회사들의 수익모델을 재건하고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체질 개선도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배당 역시 부동산 매각 등 일회성 이익을 철저히 배제한 순수 펀더멘털 기반의 '조정 당기순이익(495억원)'을 기준으로 약 50% 수준인 241억원을 현금 배당하며 투명성을 입증했다. 특히,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주주가 배당금을 먼저 확인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결산 배당일 유연화' 제도를 안착시켰다. 이른바 '깜깜이 배당'을 없앰으로써 지배구조 핵심 지표 준수율을 67%에서 73%로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진칼은 올해 강화된 현금 창출력을 무기로 코스피 평균에 근접하는 1.3배 이상을 최저 방어선으로 상향 제시하며 밸류업의 허들을 대폭 높였다. 올해 1분기 하얏트 매각차익 564억원 등 일회성 이익을 제외한 순수이익의 50% 배당 기조를 올해도 일관되게 유지한다. 아울러 2024년부터 올해 말까지 유지되는 현행 배당 정책이 만료되는 결산 이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중장기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 70% 준수 목표도 80% 이상으로 대폭 높였다. 지난 3월 26일 한진칼은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규모 슬림화(11인→9인) △전자 주총 전격 도입 △경영권 방어용 꼼수로 비판받던 '집중 투표제 배제 조항' 전격 삭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1명→2명) 등 소액 주주 권익을 대폭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며 목표 달성을 자신했다. 또한, 25.7%에 이르는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영문 공시 확대와 연 1회 그룹 통합 ESG 보고서 발간 등 IR 및 ESG 소통 강화도 공언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수주 27조’ KAI, 현금흐름 9천억 마이너스·부채비율 446% 내막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2025년도 연결기준 사업보고서에는 당기순이익 증가와 27조 원 규모의 수주잔고 달성이라는 실적 지표와,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대규모 순유출 및 부채비율 급등이라는 재무 지표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 이익이 증가했음에도 9000억 원 이상의 현금이 영업활동에서 유출되고 부채비율이 446%를 상회한 재무 수치의 이면에는, 회계 장부상 부채로 계상되는 대형 수출 계약의 선수금 유입과 KF-21 및 LAH 양산을 앞두고 원부자재를 매입한 사업적 현황이 존재한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KAI는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3조6964억원, 영업이익 2692억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1.7%, 11.8%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187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1709억원) 대비 164억 원 늘었다. ◇재공품·원재료 증가, 영업활동 현금 흐름 적자 확대 원인 이러한 실적과 함께 작년 말 기준 KAI의 전체 수주잔고는 27조343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KAI는 폴란드 군비청과의 4조2080억 원 규모 FA-50PL 실행 계약과 말레이시아 국방부와의 1조1952억원 규모 FA-50M 계약, 이라크 정부와의 1357억원 규모 수리온 수출 계약 등을 이행 중이다. 또한 방위사업청과는 총 4조3579억 원 규모의 KF-21 최초 양산, 1조4053억원 규모의 소형 무장 헬리콥터(LAH) 2차 양산 계약을 체결해 수주 잔고에 반영했다. 손익계산서상 실적지표와 달리, KAI의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 흐름은 -9033억원을 기록해 전년 -7282억원 대비 순유출 규모가 확대됐다. 순이익이 발생했음에도 대규모 현금 유출이 기록된 주요 원인은 재고자산의 증가에 있다. KAI의 재고 자산 장부상 금액은 2024년 말 2조3590억원에서 2025년 말 3조6370억원으로 1조2780억원으로 54.2%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조립 공정에 투입된 '재공품'이 9837억원에서 1조8731억원으로, 부품 등 원재료가 1조863억원에서 1조5068억원으로 늘어났다. 반면 완성된 제품 재고는 436억원에서 347억원으로 감소했다. 경영진은 당기 현금 흐름 변동 요인으로 KF-21·LAH 양산을 위한 재고 투자 확대를 언급했다. KAI가 이행 중인 양산 계약의 향후 인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원부자재를 구매하고 조립 공정을 진행하며 투입된 현금이 재고 자산의 형태로 회계상 반영된 것이다. ◇부채 비율 446.6% 기록, 수출 선수금 유입·외부 자금 조달 탓 KAI의 총부채도 2024년 6조2984억원에서 2025년 8조4729억원으로 2조1745억원 크게 불어났다. 이에 따라 부채 비율은 전년 364.7%에서 지난해 446.6%로 81.9%p 상승했다. 부채 증가의 세부 내역은 고객사로부터 수취한 선수금인 계약 부채와 외부 차입금 확대로 구성된다. 유동 계약부채와 유동 선수금 합계는 전년 대비 대폭 증가해 4조4024억원에 달한다. 해외 무기 수출 계약 특성상 고객사로부터 수령하는 착수금 및 중도금은 수익 인식 시점인 기체 인도 전까지 장부상 부채로 계상된다. 대형 수출 계약이 집중됨에 따라 관련 선수금 유입이 장부상 부채 수치를 높인 것이다. 동시에 운전자본 소요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 조달도 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KAI는 2025년 1월과 7월에 제28회·제29회 공모 사채를 통해 총 1조원 어치의 무보증 회사채를 신규 발행했다. 재고 확충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 결과 총 차입금과 사채 규모가 전년 대비 1조1113억원 증가한 2조1470억 원으로 집계됐다. 재무상태표의 비유동자산 중 무형자산 항목에는 전년도에 없었던 339억1300만 원 규모의 '영업권'이 새롭게 계상됐다. KAI는 2025년 7월 코스닥 상장사 ㈜제노코의 경영권 지분 37.95%를 545억원에 취득해 종속기업으로 편입했다. 회사는 해당 지분취득 목적으로 '우주 통신 탑재체 및 항공 전자 사업 역량 강화'라고 밝혔다. 취득가액 545억원 중 제노코의 식별가능한 순자산 공정가치 몫을 제외한 차액이 무형자산 내 영업권으로 장부에 반영됐다. ◇올해 매출 전망과 1조 원 추가 자금 조달 KAI는 올해 별도 기준 매출액 전망치를 5조7306억 원으로 공시했다. 주요 매출 증가 요인으로는 △KF-21 양산 전환 △LAH 납품 본격화 △폴란드·말레이시아향 FA-50 생산 진척을 명시했다. 이같은 양산 일정과 관련, KAI는 올해 1월 27일 5000억원 상당의 공모사채를 발행했고, 이어 3월 4일 표면 이자율·만기보장 수익률 0% 조건으로 5000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CB)를 추가 발행해 1분기에만 총 1조원의 유동성을 추가 확보했다. 향후 재무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외변수도 공시됐다. 미국 정부가 지난 2월 24일 발표한 10% 수준의 한시적 보편관세를 언급하며 “향후 미국의 행정·입법 동향에 따라 관세 정책과 실질 부담이 변동될 수 있어 현 시점에서 재무 상태·손익에 미치는 영향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다"고 언급한 부분도 존재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현미경] “빚 쌓일수록 현금 넘친다”…현대로템, 6.3조 부채에도 웃는 이유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단 1년 만에 부채가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면 대체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나 무리한 차입 경영을 알리는 '적색 경보'로 해석된다. 늘어난 부채만큼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최악의 경우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K-방산과 철도 인프라 수출의 최전선에서 글로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로템이 최근 공시한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장부상 빚이 산더미처럼 쌓일수록 오히려 기업의 현금 곳간이 터질 듯이 넘쳐나고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는 수주산업이 만들어낸 '재무적 마법' 덕분이다. 현대로템의 2025년 말 기준 총 자산은 9조3180억원으로 전년 5조2854억원보다 약 4조326억원이나 급증했다. 기업의 덩치가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커진 것이다. 자산 팽창의 원인으로는 자본은 약 1조321억원 늘어나면서도 총부채가 3조2763억원에서 6조2768억원으로 약 91.6% 폭증한 결과로 분석됐다. 하지만 자본시장과 신용평가사들은 이같은 부채 급증에 전혀 우려를 표하지 않는다. 늘어난 부채의 핵심이 은행에서 빌려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차입금이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가 물건을 만들어달라며 먼저 앞당겨 준 '계약 부채'이기 때문이다. ◇ 이자 없는 '착한 빚'…영업 현금 흐름 6.3배 폭증 따른 순현금 체제 진입 2024년 말 1조7942억원이었던 현대로템의 계약부채는 2025년 말 3조9720억원으로 2조1778억원이나 늘었다. 당기에 늘어난 전체 부채 3조원 중 72% 이상이 계약부채 증가분인 셈이다. 수주산업에서 계약부채는 발주처로부터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받았지만 아직 제품을 제작·인도하지 않아 '매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임시로 부채에 잡아둔 금액인 선수금을 말한다. 이는 이자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무이자 자금일 뿐만 아니라, 향후 공정이 진행됨에 따라 전액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전환되는 '착한 빚'이다. 즉, 장부상 선수금 계정의 액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돈을 벌 일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계약부채의 팽창은 현대로템이 2025년에 연달아 터뜨린 초대형 잭팟 수주들의 결과물이다. 현대로템은 2025년 8월 폴란드 군비청과 무려 8조9814억원 규모의 K-2 전차 2차 이행 계약을 맺었다. 앞서 2월에는 모로코 철도청과 2조2027억원 규모의 초대형 전동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국가 간(G2G) 초대형 프로젝트가 성사되고 총 계약금의 일부가 막대한 선수금으로 현대로템의 계좌로 쏟아져 들어오며 장부상 부채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제품이 순차적으로 인도되면서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한 매출채권 역시 2024년 9094억원에서 2025년 3조3919억원으로 2조4825억원(약 273%)이나 급증했다. 주요 거래 상대방이 폴란드 정부·모로코 철도청, 한국철도공사 등 국가 기관이기에 돈을 떼일 대손 위험은 제로에 가깝다. 막대한 무이자 선수금의 유입과 성공적인 수출 프로젝트의 진행은 현대로템의 수익성과 현금 창출력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현대로템의 2025년 매출액은 5조8390억원으로 전년 대비 33.4% 성장했다. 이보다 훨씬 극적인 것은 이익 지표다. 영업이익은 1조5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4566억원 대비 120.3%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과거 10%대 초반에 머물던 영업이익률은 마진이 압도적으로 높은 폴란드향 K-2 전차 수출 물량 인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며 17.2%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과거 오랜 기간 회사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던 레일 솔루션(철도) 부문의 화려한 부활이다. 2024년 1231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던 철도 부문은 미국 LA 메트로·우즈베키스탄 고속 전철·이집트 전동차 등 양질의 해외 프로젝트 공정이 안정화되고 저가수주 물량이 해소된 덕분에 2025년 매출 2조896억원, 영업이익 292억원을 기록하며 극적인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장부상 이익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현금 흐름표는 기업의 실제 현금 창출 능력을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다. 2024년 1425억원이었던 '영업 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은 2025년 9043억원으로 1년 만에 약 6.3배(7618억원) 증가세를 보였다. 곳간이 두둑해지자 현대로템은 과거의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했던 차입금과 사채를 대거 상환하기 시작했다. 2025년 현금 흐름표의 '재무 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출액'을 보면 유동성 장기부채 약 2556억 원과 사채 1150억 원을 상환하는 등 빚 갚는 데에만 막대한 자금을 썼다. 그 결과 회사의 '유동성 장기부채'는 전액 상환돼 장부에서 자취를 감췄다. ◇ '토지 자산 재평가'로 부채 선제관리 반면에 기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전년 4723억원에서 9084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는 현대로템이 지급해야 할 이자부 차입금보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훨씬 더 많은 완벽한 '순현금(Net Cash)' 경영 체제에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빚(선수금)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진짜 빚(차입금)은 갚고 현금은 넘쳐나는 마법이 실현된 것이다. 기업의 재무를 총괄하는 CFO 입장에서 선수금이 아무리 이자가 없는 '착한 빚'이라 하더라도 회계상 부채 총액이 6조 원대로 단기간에 급증하게 되면 재무 건전성의 대표 지표인 부채 비율이 치솟는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막대한 대규모 선수금 유입의 여파로 현대로템의 장부상 부채 비율은 전년 163.1%에서 2025년 말 206.4%로 43.3%p나 껑충 뛰어올랐다. 통상 부채 비율 200% 초과는 재무적 주의 단계로 여겨지며, 자칫 금융권 차입 한도 축소나 해외 대형 프로젝트 입찰 시 표면적인 재무구조가 악화한 것으로 오인받을 소지가 있었다. 이에 현대로템 경영진은 2025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창원 공장 등 핵심 보유 토지에 대한 대대적인 자산 재평가를 실시했다. 과거 원가법으로 낮게 묶여 있던 5485억원 어치의 공장 부지의 가치를 공시지가 기준법 등을 활용해 현재 시가인 1조2982억원으로 재평가한 결과, 4364억원의 막대한 평가 차액이 발생했다. 회사는 여기서 향후 발생할 1284억 원 규모의 법인세 효과 등을 차감한 약 3081억 원을 '자산 재평가 이익' 명목으로 자본 항목인 '기타 자본 구성 요소(재평가 잉여금)'에 편입시켰다. 외부에서 유상증자 등으로 주주 가치를 희석하며 자금을 끌어오지 않고도 회사가 본래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가치를 현실화해 분모인 '자기 자본'을 단숨에 대폭 확충한 것이다. 당기순이익 7705억원 달성에 따른 이익 잉여금 증가와 자산재평가 효과가 강력한 시너지를 내며 2024년 2조90억원이던 총자본은 1년 만에 3조412억원으로 1조 원 이상 급증했다. 한발 앞을 내다본 회계적 묘수가 3조 원의 선수금 유입으로 인한 부채 비율 상승 충격을 선제적으로 억제하고, 향후 차세대 전차·수소 철도 모빌리티 생산 설비 등 대규모 시설 투자를 위한 든든한 재무적 융통성을 확보해 낸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 배당금 300% 파격 인상과 중장기 환원책으로 주주 가치 제고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자 과실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사상 최대 실적과 전례 없는 잉여현금 흐름(FCF)을 확보한 현대로템 이사회는 2025년 결산 배당금을 보통주 1주당 600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2024년 주당 배당금 200원에서 3배 인상된 결정으로, 총 현금 배당금 지급액만 655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로템은 이번 사업 보고서를 통해 주주들의 배당 예측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선진적인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을 공식 천명했다. 회사는 공시를 통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 성향 8% 수준을 핵심 타겟으로 유지하며, 2025년 결산 배당부터 2027년 결산 배당까지 향후 3년간 매년 주당 배당금(DPS)을 10~50% 상향하겠다"는 강력한 우상향 배당 플랜을 확정 지었다. 장기적인 미래 투자 재원 확보와 주주 환원을 동시에 이뤄내겠다는 약속으로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대목이다. 이 배경에는 29조7735억원에 달하는 경이로운 수주 잔고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전년 대비 59%나 폭증한 수치로, 이는 2025년 연간 매출액 5조8390억원을 기준으로 5년 치가 넘는 넉넉한 일감을 창고에 가득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EC2 K-2PL·계열 전차와 그리고 EC1 군수품·탄 등 폴란드 물량만으로도 올해와 유사한 수준의 실적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라크·페루·루마니아 건 수주 시 무난하게 탑 라인·이익 모두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사상 최대 실적 LIG D&A의 ‘성장통’…현금 흐름 적자·로봇 자회사 811억 손실

K-방산의 핵심 주역 LIG 디펜스 앤 에어로스페이스(LIG D&A, 구 LIG넥스원)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4조 원 시대를 열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표 이면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결과 수조 원대 초대형 프로젝트를 소화하기 위한 '유동성 경색'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미국 로봇 기업 인수에 따른 '뼈아픈 상흔'이 곳곳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상 최대 이익의 역설…영업 활동 현금 흐름 1.5조 원 '증발' 23일 LIG D&A가 최근 공시한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매출 4조3069억원, 영업이익 319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1.4%, 43.0% 증가한 어닝 서프라이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이 영업을 통해 실제 벌어들인 현금을 보여주는 '영업 활동 현금 흐름' 계정은 2024년 9519억원 흑자(순유입)에서 2025년 -5843억원(순유출)으로 1조5000억원가량 급감하며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이로 인해 곳간에 쌓여있던 현금성 자산은 1년 만에 5469억원에서 1251억원으로 77%나 쪼그라들었다. 이는 기업의 펀더멘털 훼손이 아닌 방위산업 특유의 수주 사이클에 기인한다. 2024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규모 수출 계약에 따른 선수금이 쏟아지며 현금이 넘쳤지만 2025년부터는 본격적인 무기 양산에 돌입하면서 수많은 하청·협력사에 부품 대금을 선지급하느라 막대한 현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실제로 재무제표 주석을 보면 협력사 선급금 지급(5429억원 유출), 재고 자산 증가(2344억원 유출), 미청구 상태인 계약자산 증가(7701억원 유출) 등 무기를 만들기 위한 막대한 운전 자본이 투입됐다. 막힌 현금 혈관을 뚫기 위해 LIG D&A는 단기 차입금 등 유동 차입금을 2034억원에서 6036억원으로 3배나 늘렸다. 결산 직후인 올 2월 11일에는 3400억원 규모의 무보증 공모 회사채를 추가 발행하며 긴급히 유동성을 수혈하기도 했다. 이 같은 대규모 현금 유출 및 자금 조달에 대해 LIG D&A 측은 본지의 질의에 “사업 및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영업 활동을 지속함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이며, 유관 협력사의 상생경영 지원 차원에서 선급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하청·협력사 선급금 부담이 정점을 찍고 현금 흐름이 흑자로 턴어라운드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막대한 운전 자본 충당을 위한 향후 유상증자 등 추가 자본 확충 계획 여부에 관해서도 “현재 답변이 제한된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상흔…811억원 '영업권 손상차손' 인식 영업이익이 43%나 뛰었음에도 당기 순이익(2374억원) 증가율이 11.6%에 그친 점도 눈에 띈다. 손익계산서 상 '기타 손실'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폭증한 1181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내막에는 2024년 약 3260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경영권을 인수한 미국 4족 보행 로봇 기업 '고스트로보틱스(Ghost Robotics)'가 있다. 고스트로보틱스를 품고 있는 해외 법인 LNGR LLC는 지난해 833억원의 막대한 당기순손실을 냈다. 미 정권 교체기로 인해 미군 무기 납품 계약이 지연된 데다 경쟁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특허 침해 소송 합의 결과 향후 10년간 매출의 10%를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한 치명적인 악재가 직격탄이 됐다. 결국 LIG넥스원은 인수 당시 비싸게 지불했던 경영권 프리미엄(영업권)의 가치 하락분을 인정하고, 811억원을 일시에 장부상 손실로 털어내는 '빅 배스(Big Bath)'를 1년여 만에 단행했다. 인수 직후 거액의 손실 처리로 일각에서 불거진 '오버 페이' 지적에 대해 사측은 “결과론에 입각한 평가일 뿐,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는 미래 무인체계 사업 확장성을 고려한 투자"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외부 환경의 변화가 실적 및 중장기 목표 시점 지연으로 이어져 일회성 영업권 손상을 회계상 반영한 것일 뿐, 기업 가치 자체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회사는 로봇 사업의 굳건한 성장 가능성을 내비쳤다. LIG D&A 관계자는 “전 세계 각국이 무인체계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UAE 등에서 열린 방산전시회 'UMEX 2026'에 대표 제품인 '비전60'을 전시하며 적극적인 프로모션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각종 임무 수행이 가능한 '매니퓰레이터 암(Manipulator Arm)'을 상부에 통합한 모습을 공개해 재난 현장 지원이나 폭발물 처리 등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고, 미 공군 순찰 임무 수행 실적을 바탕으로 납품 계약을 지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늘과 땅, 바다는 물론 우주와 사이버 공간을 아우르는 'All-Domain' 솔루션을 바탕으로 고스트로보틱스가 종합 무인 솔루션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울러 로열티 지급 등 원가율 상승 악조건 속에서 수익성 방어 전략 및 흑자 전환 시점과 관련해서는 “올해 안정화 단계를 거쳐 내년도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대형 수주의 숨은 청구서…'에이전트 수수료' 등 6400억원 폭증 중동발 '수주 잭팟'의 막대한 규모를 짐작게 하는 대목도 발견됐다. 유동 자산 중 '계약 체결 증분 원가'가 2024년 1839억원에서 2025년 8243억원으로 6404억원이나 폭증했다. 이와 거울처럼 짝을 이루는 유동 부채 항목인 '단기 미지급 비용' 역시 2163억원에서 7596억원으로 5400억원 가까이 치솟았다. '계약 체결 증분 원가'는 대형 사업을 따내기 위해 지불하는 해외 에이전트 성공 보수·마케팅 커미션 등을 자산화해 놓은 계정이다. 사우디(약 4조3000억원), 이라크(약 3조7000억원) 등 천궁-II(M-SAM)의 연이은 초대형 수출 계약이 성사되면서 현지 에이전트 등에 지급해야 할 막대한 수수료가 장부에 반영된 것이다. 이 거액의 자산은 향후 무기가 실제 수출돼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쪼개져 비용으로 상각될 예정이다. 이러한 막대한 수수료 비용 상각이 향후 본격적인 수출 매출 인식 시기에 당초 기대했던 영업이익률(OPM)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LIG D&A 측은 구체적인 해명 대신 “2025년 4분기 기준 26조 원 규모의 수주 잔고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매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수출 비중 하락' 착시 현상 넘어…26조 수주 잔고로 수익성 퀀텀 점프 예고 K-방산 초호황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지난해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19.9%로 전년(23.6%) 대비 3.7%p 하락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다만 이는 실제 수출이 부진해서가 아닌 특정 요인에 따른 '착시 현상'이다. 2024년 인도네시아 경찰청 통신망 구축 사업(약 2000억원 규모)에 따른 대규모 일회성 매출이 집중 인식됐던 기저 효과가 작용했다. 또한, 2025년에는 국내 무기 양산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수출 비중이 줄어 보인 것이다. LIG넥스원의 기말 수주 잔고는 26조2526억원에 달한다. 사측은 사업 보고서 내 경영 진단을 통해 “2026년에는 견고한 수출 사업 수주 잔고를 기반으로 수출 비중과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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