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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백화점의 미래: 시간과 추억을 파는 장소

백화점은 단순히 많은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사실상 수백 개의 전문 부티크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거대한 복합 상업 공간이다. 상품이 귀하던 시절, 백화점은 압도적인 쇼핑 환경과 편리함의 상징이었으며, 백화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품질과 신뢰를 보장하는 새로운 유통 포맷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백화점 또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백화점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혁신을 모색해야 할 때다. 오늘날 소비자가 쇼핑에서 얻는 가치는 크게 실용가치와 경험가치로 나뉜다. 실용가치는 상품 구매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의미하며, 이는 온라인 유통이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상품을 비교하고,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오프라인 매장이 실용가치를 내세워 경쟁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경험가치는 구매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적 만족, 즐거움, 그리고 체험의 즐거움을 포함한다. 경험가치는 온라인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며, 오프라인 유통이 앞으로도 주력해야 할 방향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쇼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거나 감각적 자극을 느끼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유통은 어떤 방식으로 경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레저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 레저산업은 본질적으로 서비스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비자들이 레저 활동에 참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물건을 구매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단순히 소비 행위를 넘어, '행복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백화점은 오랜 기간 축적된 서비스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고객 응대, 공간 구성, 편의시설 운영 등 서비스 역량은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만약 백화점이 이러한 서비스 경험을 레저산업에 접목한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 내부에 테마파크, 예술 전시 공간, 요리 교실, 혹은 웰니스 센터와 같은 경험 중심의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소비자들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목적지'로 백화점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경험 중심의 변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몰 오브 아메리카'는 테마파크와 쇼핑 공간을 결합한 성공적인 예다. 이곳은 단순히 쇼핑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독특한 경험과 추억을 제공한다. 쇼핑몰 안에 대규모 놀이공원과 수족관, 공연장 등을 결합하여 방문객들에게 쇼핑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백화점이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스타필드 는 쇼핑뿐만 아니라 영화, 서점, 카페, 체육 시설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며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문화와 여가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백화점은 여전히 전통적인 판매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 백화점이 쇼핑에 레저산업을 접목하는 것을 본격화한다면, 이는 기존 쇼핑 경험을 확장하고, 고객에게 물리적 상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백화점의 미래는 쇼핑 공간의 혁신에 달려 있다. 상품 진열 중심의 공간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과 행복한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백화점은 더 이상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닌, '시간과 추억을 파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박주영

[EE칼럼] 알래스카,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지평 될 수도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5일(현지 시간) 워싱턴에 위치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회복력 있는 동맹 간 에너지 협력' 회의가 열렸다. 필자도 발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함께 한국, 미국, 일본 간 에너지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알래스카의 댄 설리번(Dan Sullivan) 의원이 기조연설을 통해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상기 회의 직후인 6일부터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시바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양 정상이 '미·일 황금시대'를 열어가자고 한 이 자리에서도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등장했다. 일본은 약 440억 달러(한화 약 62조 원) 규모의 알래스카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며 이를 미국으로부터의 관세 압박에 대한 방패로 삼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 가스는 관세 전쟁에서의 방패, 그 이상의 지정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알래스카는 미국 에너지 자원의 보고 중 하나이다. 하지만 환경 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기조 속에서 그 잠재력은 봉인되어 왔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다양한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의 개발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첫 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NPR-A: National Petroleum Reserve of Alaska) 및 주 내 다른 지역의 자원 제한 문제를 해결하며,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NWR: 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서 불법적으로 취소된 석유 및 가스 임대 계약을 복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을 사인했다. 이미 트럼프 취임 직전인 1월 10일, 알래스카주의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공사(AGDC: Alaska Gasline Development Corporation)는 LNG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개발 업체인 글렌판(Glenfarne)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었는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알래스카의 가스 개발 및 수출 프로젝트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나 일본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에너지 공급에 있어 절대적인 부분을 수입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공급받아 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한국과 일본에게는 지속적인 고민거리였다.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탈(脫) 중동산 석유·에너지 다변화를 위해 가스와 원자력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스는 파이프라인으로 도입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1969년 11월 4일, 일본이 알래스카로부터 LNG를 도입한 것이 세계 최초의 LNG 사업이 되었으며, 대륙으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LNG 시장에 있어서 줄곧 높은 지위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이에 더해 최근에는 탈 러시아산 가스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들이 LNG 수입을 늘리면서 글로벌 LNG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이 도입하고 있는 사할린산(産) LNG 계약도 순차적으로 만료될 예정이니 만큼, 향후 10년 내에 이를 대체할 공급원을 마련할 필요도 커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래스카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각광 받을 가능성이 있다. 중동 지역에 비해 운송 기간이 절반 내지 3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송로 상 호르무즈 해협이나, 말라카 해협 같은 초크포인트(choke points)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절한 가격에 도입할 수만 있다면 이를 가공하여 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국 시장에 되파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대지에서 시작되는 가스 개발이 한미일 삼각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마침 19-20일 동안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민간 경제사절단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 정부와의 통상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니 만큼, 알래스카 가스 개발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바이다. 임은정

[기자의 눈] ‘한국형 AI’의 개념·방향성 재점검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에서 따온 이 문장은 우리 고유 개성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함축한다. 오랜 기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가치는 이른바 'K-○○'로 치환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K-팝(POP)과 K-콘텐츠는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국제적 위상과 품격을 높였다. 이제 K-게임, K-반도체, K-푸드, K-스포츠, K-문학 등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한강 작가, 손흥민 선수, 불고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적(K) 인공지능(AI)의 정의는 아직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 떠나서 추상성을 물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큰 틀이 없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AI 기본법엔 '한국형 AI'의 개념과 기준이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AI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구상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의 감정을 가장 섬세히 고려한, 한국 문화·법규 등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의 일상에 가장 최적화된… 일견 엇비슷한 듯 보여도 추구하는 결과값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다른 국가와의 차별점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기능 구성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한 탓이다. 우리나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대표주자를 떠올리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대중은 '한국적이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닌 '성능 좋은' AI를 찾게 되고, 국내 기업의 AI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체 모델과 외부 모델을 동시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류가 된 양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합종연횡을 통한 비용 절감·기능 고도화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빅테크의 AI를 활용한 앱 서비스를 개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란 비판도 적잖다. 이는 AI 개발 방향이 성과와 편의에 치우쳐진 결과다. AI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면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 준비 없이 진행되다 보니 갈피를 못 잡게 된 것이다.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단 빅테크의 움직임에 편승한 모양새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K-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창적인 매력에 진정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K-AI'를 새기기 위해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보다도 '한국만의 AI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BYD부터 딥시크까지… ‘반중 감정’ 아닌 ‘기술’이 필요

자동차부터 AI까지 중국 기업들의 파죽지세가 연일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 기업, 정부는 뚜렷한 대비책보단 '반중감정'을 활용한 민심잡기 수준의 대응책만 내놓고 있다. 우리 국민 뼛속 깊이 박힌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을 통해 내수 시장을 아직까진 지키고 있지만, 이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막아도 싸고 좋은 제품은 시장에서 승리하기 마련이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산업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자동차, AI 쪽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전기차 브랜드 BYD와 최근 AI 시장을 뜨겁게 달군 딥시크다. 전기차 브랜드 BYD는 지난해에도 친환경차 판매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테슬라, 현대차 등 유려한 기업들을 제치고 달성한 성과다. 이들의 경쟁력은 단연 가격이다. 100만명이 넘는 직원, 정부의 든든한 지원, 완벽하게 지은 자동화 공장까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BYD는 지난 1월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고 2000만원대 전기차 아토3 출시를 확정했다. 딥시크는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기술이다. 딥시크가 주목받은 것은 약 8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개발비용 때문이다. 오픈AI 등 기존 업계에선 수천억원을 투자해 만들던 것을 이들은 10분의 1 수준의 금액을 투자해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최첨단 기술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한국 업계는 '중국은 위험해'란 감정으로 방어에만 급급하다. BYD 전기차에 대해 소비자 및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산을 어떻게 믿냐, 목숨걸고 타다 죽을 일 있냐 등 추상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BYD의 배터리 기술이 한국 기업보다 뛰어나고, 이미 이들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흐린 눈으로 보고 있다. 딥시크는 정부가 나서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서비스를 제한했다. 우리 기술이 더 뛰어나고 우리가 먼저 개발했다면 국가적으로 나서서 이런 제한을 걸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중국을 넘기 위해선 한국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BYD 전기차는 못미더워", “딥시크 쓰면 개인정보 다 털려" 같은 회피적인 태세를 취할 때가 아니라, “BYD, 딥시크보다 더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해"라는 혁신적인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기업의 적극적인 R&D, 소비자들의 깨어있는 인식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E칼럼] 전기료 누더기화: 공공 정책의 쓰레기통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한국의 전기요금은 이제 정치적 기회주의와 비효율성, 그리고 왜곡된 인센티브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한때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필요한 비용을 회수하는 단순한 구조였던 전기요금은 이제 여러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해결하려는 만능 도구로 변질되었다. 이로 인해 전력 시장의 본질은 훼손되고 투자자들은 투자목적과 상관없는 비용부담을 떠안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전력 소비자들도 내가 뭐에 대해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불투명하고 정당하지 않은 비용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몇일 전 KBS, EBS 공영방송의 수신료가 다시금 전기요금에 포함되게 되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 이후 난산 끝에 분리징수가 작년에 결정 공시되었으나, 올해 다시 전기요금에 통합되게 된 것이다. 정말 (주)한국전력에게 별걸 다 짊어지게 한다는 생각이 안들 수 없다. 징수의 편의성 측면에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겠지만, 사실 이는 본질적으로 전기요금의 근본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다. 당연히 공영방송의 재정 안정성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이들은 지원되어야 할 공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전력 소비와 무관한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얹어, 전기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의 소비와는 관계없이 수신료까지 전기사용으로 인한 비용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또 다른 사례로서, 한전공대 운영비를 전기요금에서 충당하는 문제 역시 소비자로서 매우 심각하게 본다. 한전의 총괄원가는 한전이 전력 생산, 송배전, 관리, 기타 사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포함한 총액이다. 따라서 한전공대 운영비가 공익사업 비용으로 계상되면, 전력 공급 비용에 포함되어 총괄원가 반영되는데 이는 당연히 전기요금 책정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한전공대 운영비도 사실은 분리 공시를 해야한다. 전기요금에서 섞어버려 징수를 할 것이 아니라 KWH 당 얼마의 한전공대에 투입되는 비용이 소비자들에게 명백히 전가되는가를 계산해서,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기존에 전력산업에 대해 연구하는 많은 인력들이 각 대학 및 연구소에 산적해있는데도 한전공대의 운영을 전기 소비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면, 그 정보라도 공개되어야 할게 아닌가. 정치적인 이유로 (주)한국전력이 원치도 않은 출자출연을 하게 하니,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은 주식회사의 주주들이요 전기소비자도 편익과 관계없는 비용지출을 강요당한다. 이에 더해,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연구개발용' 전기요금 체계 마련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기존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등으로 구분되어있던 요금체계에 연구개발용을 추가 신설해 이를 농사용 전기요금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연구개발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기요금 갈라치기는 또다른 비효율을 초래한다. 연구개발 비용을 절감시켜주려면 다른 방식으로 해야지 왜 또 전기요금으로 지원하나.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세금은 걷기 힘드니, 전기 소비자들이 나눠 부담하라는 말 밖엔 안된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 정책의 짐을 죄다 전기요금에 얹고 있다. 농어촌 지원, 저소득층 할인, 도서산간 지역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목적을 수행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전력산업과 시장과는 관계없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전기요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은 전력산업의 비효율적을 가져오고,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공영방송 지원, R&D, 농어촌 및 저소득층 지원, 교육사업 출자에 대한 가치평가를 절하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기를 포함한 모든 상품 및 서비스 요금의 핵심 원칙은 비용과 편익의 반영이라는 기본이 자꾸 흐려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들을 전기료에 붙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그냥 순수하게 다른 사회적인 목표가 아닌 전력 생산, 송배전, 그리고 환경 외부비용만이 그 포함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도 본인들이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전기사용에 따른 기회비용을 온연하게 느낄 수 있다. 전기를 사용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석탄과 천연가스 그리고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느껴야 스스로 더 많은 양을 쓰거나 절약하는 등 경제논리에 따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는 누더기나 다름없어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정책 결정자들도 전기요금을 기타 별개의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영방송, 교육, 연구개발, 사회복지 등은 모두 중요한 덕목이지만, 전기요금과는 분리된 별도의 재정 구조를 통해 지원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향은 공공 신뢰를 훼손하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조장하며 재정 투명성을 해친다. 전기요금 체계를 본래의 역할로 되돌리고 소비자들에게 명확하고 공정한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 유종민

[데스크 칼럼] 추경, 정쟁에 휘둘릴 시간이 없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다시 여야 정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13일 35조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제안한 이후 정치권에서는 찬반의 목소리가 거세지며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이번 추경에서 갈등이 첨예한 대목은 '국민 1인당 25만원 소비쿠폰(지원금)' 부분이다. 민주당의 안을 들여다보면 '소비 진작 4대 패키지' 가운데 국민 1인당 25만원의 소비쿠폰을 지급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및 한부모 가족에 추가 1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전체 추경의 3분의 1 가량인 13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민주당의 추경안이 발표되자마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라벨갈이 추경"이라며 몰아세웠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재명 대선용" “나라를 망친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까지 불사하고 있다. 이는 1인당 25만원 지원금을 현금살포의 또 다른 형태이자 조기대선의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탄핵 국면 이후 조기대선으로 정치적 환경이 급변할 경우 가뜩이나 불리한 선거 환경에서 민주당에 표심을 도와주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내심이 작용했을 법 하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추경 편성에 공감대를 이루는 듯 보였던 상황이 급반전 한 데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말 바꾸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불과 보름 만에 이를 뒤집는 추경안을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등 당내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있다. TK(대구·경북)를 찾은 김부겸 전 총리는 “숨넘어가는 환자 앞에서 치료방식을 두고 의료진이 싸우는 꼴"“이라며 “민주당이 통 크게 양보하자"고 호소했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민생회복 소비쿠폰만 포기하면 (국민의힘이)즉각 추경을 할 수 있나"라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진 위원당의 달라진 말이 원래의 의도라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지원금을 당대표의 말 바꾸기 논란까지 부르며 주장한 진의가 의심스러워진다. 게다가 35조로 추경의 규모가 갑자기 늘어난 것과 관련해서도 의구심은 피하기 힘들다. 국민의힘의 무조건 적인 반대를 전제로 한 민주당 일부의 수읽기가 아니였냐는 궁색함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결국 민주당이 추경에 대한 절심함이 최우선이라면, 이제는 행동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통큰 양보'가 됐건 '대의를 위한 절심함'이 됐던 민주당은 한발 물러서는 협치로 여당인 국민의힘에 공을 넘기고 압박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트럼프 2기의 관세압박과 국내 경기둔화 등이 이어지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삶은 생존의 문제로까지 추락해있다. 민주당 추경안이 발표되던 13일, 국회 앞에서는 소상공인연합회 주최의 추경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들의 플래카드에는 “소상공인 다 죽는다"라는 호소가 적혀있었다. '살려달라'는 그들의 애원에 화답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몇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20일 최상목·우원식·권영세·이재명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 4자 회담이 열린다. 이날만큼은 추경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협의가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윤석열 대통령 형사재판의 첫 공판준비 기일이자, 헌재의 탄핵심판 10차 변론 기일이다. 정치권의 탄핵 찬반 주장들과 아스팔트의 목소리가 얼마가 거세질지 두려워진다. 그 목소리에 묻혀 추경을 정쟁의 대상으로 되풀이하거나 '찻잔 속 태풍'으로 위축시키는 4자회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김현우 기자 kimhw@ekn.kr

[기자의 눈] 유가족 요구가 전문성 삼킨 제주항공 2216편 사고 조사

어제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사망자 179명에 대한 49재가 열렸다. 유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강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해당 사고 조사를 이끌어야 할 장만희 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이 “건설교통부·부산지방항공청장 출신이어서 셀프 조사의 우려가 있어 이해 관계가 의심된다"는 유족 측 주장을 국토교통부가 적극 받아들여 제척됐다는 점이다. 항공기계공학을 전공한 장 전 위원장은 대한항공 정비본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건교부에서는 항공기 안정성·항공사 안전 감독·사고 조사 등을 담당한 바 있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 위원 활동 이력이 있다. 그런 만큼 일평생 항공 사고와 예방 분야에 몸 바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도 “국내 최고 전문가를 배척하면 조사를 어떻게 하느냐"며 말이 많았다. 항공 사고 조사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고도의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어서 △기계적 결함 △조종사 과실 △정비 문제 △기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관련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데, 논리나 합리성이 아니라 유가족의 일방적 요구가 전문가를 밀어낸 꼴이다. 국토부는 항공 산업 진흥·규제·사고 조사까지 전권을 가진 기관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 개선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토부가 모든 인력 풀을 가진 상황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단순한 출신 배경 하나로 배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심지어 유가족은 국토부를 못 믿겠다며 사고 조사에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넣어달라고까지 했지만 당국이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며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항공 선진국들은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기하고자 전문가를 투입해 철저히 검증한다. 그 덕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세계 최고의 항공 사고 조사 기관이라는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누가 조사하느냐를 두고 예송 논쟁이 벌어지고, 정작 중요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항공 사고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 원인 분석이 아니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정서가 개입해 조사 과정을 좌우한다면 결과의 공정성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 지성주의적 사회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사고 조사에서 중요한 건 당국을 믿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다음 번 사고에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김한성 칼럼] AI 시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우리는 AI 기반 추천 알고리듬을 통해 개인화된 뉴스와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콘텐츠 모더레이션 과정은 점차 사람에서 AI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정보를 접하고 비교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즉각 답을 내놓고, 온라인 쇼핑몰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먼저 제안해 준다. 하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놓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질문이 소멸되면 사고가 정체되고 선택의 폭도 제한된다. 일부 디스토피아적 상상 속에는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통제되거나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결과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지듯, 현실에서도 우리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이 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같은 물음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을 지키는 핵심 열쇠다.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 해소에 그치지 않고 사고를 심화하는 이유는, 학습 자체가 '물음표'에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난다는 통찰과 맞닿아 있다. “왜?"라는 물음을 던질 때 원인을 찾게 되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방법을 모색하게 되며, “그래서?"라는 의문을 통해 결과를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길 계기를 마련한다. 이렇듯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사고의 동력을 확보해 주며, 그 과정에서 창의성, 지적 호기심,그리고 비판적 사고가 함께 자라난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AI 활용과 질문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대다수가 AI를 도입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현재,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이 기업의 성공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AI 도입 전 필수적인 질문으로 “이 기업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ROI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가?" 그리고 AI 운영시 검증 질문으로 “알고리즘의 판단 기준은 투명한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질문은 이제 인간만의 소통방식이 아니다. AI와의 소통도 결국 질문에서 비롯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은 AI에게 보다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서 예산을 20% 절감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제안해 달라"는 식으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면 훨씬 더 정밀한 결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즉,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어떤 답을 얻느냐를 결정한다." 이는 AI 시대의 핵심이 기술자체라기 보다는 질문을 다루는 방식이며, 질문하는 능력이 AI시대의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자동화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만약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기술의 편의에 휩쓸려 핵심 가치를 놓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옳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크고 작은 혁신이나 변혁은 언제나 “왜?"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기존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새로운 해결책이 모색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계속해야 된다. “내가 접하는 정보는 어떻게 선택된 것인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AI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었는지, 특정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수 있다. “AI가 내린 이 결정은 어떤 기준을 따랐는가?"라고 질문하면, AI 시스템이 활용한 데이터의 출처와 분석 방식에 대해 검토할 기회를 얻는다. 또한, “기존의 방식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때,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놀랍게도 이러한 질문들이 쌓이면서, AI 기술은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비판적으로 AI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검토할 때, 우리는 데이터의 편향을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며,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의 AI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AI에게는 물론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이때 생겨나는 다양한 물음들은 2025년 2월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여러 색과 무늬가 어우러진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로 직조해낼 것이다. 이 타피스트리는 우리가 어떤 고민을 나누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성찰하고 성장했는지를 머지않아 선명하게 기록해 줄 것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따르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김한성

[이슈&인사이트] 대내외 경제환경 초비상…국정책임자 공백상태 대응에 한계

이강윤 정치평론가 내란 충격과 사법 처리로 두 달 넘게 국정이 사실상 스톱 상태다. 그러나 국제경제환경은 격변중이다. 미국 트럼프정권 발 관세전쟁과 이차전지-에너지-자동차산업정책 전환 등 대내‧외 경제환경이 연일 초비상인데 국정 컨트롤타워 부재상태여서 대응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경제구조는 대외의존도가 심하기 때문에 매우 엄중한 국면이다. 정치권은 사법적 판단과 결정은 일단 사법부에 맡기고, '경제 비상대응'을 선언, 여야 불문 공동 대처하는 게 절실하다. 경제는 특히나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 심리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보다 훨씬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내란의 충격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헌재 심리가 녹화중계되면서 법정 장면도 국민들이 속속들이 알게 됐다. 몇몇 장면을 점검한다. 재판정 예의와 정중함 눈길…모르쇠 답변태도는 유감 먼저 김형두 헌법재판관. 부드럽고 나즈막히 그러나 또박또박 묻는 태도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예의갖춰 질문하고 치밀하게 신문했다. 핵심만 간결하게. 물론 예단은 없이. 문형배 소장대행도 맥점을 짚는 질문으로 국민들이 헌재 심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흰 머리에 흰 눈썹이 눈에 띈 정형식 재판관은 집요함과, '칼같이 각잡힌 깐깐함' 그 자체였다. 다른 재판관들도 정중하게 극존칭으로 묻고 말했다. 증인과 참고인, 그리고 이들을 압박하거나 캐물어야 하는 양측 대리인단 변호인들도 예의갖추려 애쓰는 게 확연했다. 피소추인(윤석열)이 그렇게 공손한지, 공손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재판정의 이런 정중함과 격조는 헌재여서 그런 건지, 헌재만 그런 건지 긍금했다. TV 녹화중계를 의식해 예의를 차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건 일반 민‧형사 법정과는 사뭇 다른 상호 정중함이 눈길을 끌었다. 전반적으로는 이렇게 정중한 가운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신문이 진행됐지만, 실망스러운 대목도 있었다. 내란 혐의 형사재판을 이유로 “답변이 제한됩니다"라는 비문법적 한국어를 계속 되뇌며 묵비로 일관하는 사령관들과, “계엄이 겨우 두 시간 만에 끝났고, 피해도 없었으니 내란은 더더욱 아니"라는 피소추인의 변명과 책임떠넘기기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홍장원 증인-정형식재판관 신문 때 긴장 최고조…尹도 가세 양측 소송대리인(변호인)보다 더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발음과 문장도 똑 부러진 홍장원(전 국정원 1차장) 증인도 시선을 모았다. 등허리를 직각으로 세워 꼿꼿하게 앉아 AI급 기억력과 빈 틈 없는 논리로 대통령측 추궁에 대응해 화제가 됐고, 피소추인(윤석열)이 직접 나서 홍장원 증언을 공박하기까지 했다. 홍장원 증인을 보고있자니, 다리미질 자국이 칼같이 서있는 제복의 바지가 연상됐다. 홍 증인이 정형식 재판관과 벌인 국어사전급 설전은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지만, 결론은 조금 김이 빠졌다. “방첩사령관의 이재명 한동훈 등 14~16인에 대한 검거 요청이 아니라 검거 지원요청인데 왜 '지원' 두 글자를 빼고 메모했느냐"는 정 재판관의 추궁은 집요했다. 그러나 번짓수가 조금 빗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자구(字句) 천착이 지나쳐 활자에 매몰된 훈고학자같달까. '지원이라는 두 글자가 대통령 탄핵여부를 가를 만큼 중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의 긴장은 결국 홍장원 증인이 '네…그 말씀이 옳으십니다'라는 듯, “급박했더라도 메모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서야 비로소 국어논전은 끝났다. 각 당 경제대응방안이 수권능력 테스트이자 국민들 채점포인트 헌법재판소가 엄정하면서도 신속한 결론을 내려, 나라와 국민이 비상계엄내란의 충격을 “싹 다 정리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경제 쪽에서 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어보이는 '국정 겨울잠' 상태가 두 달 넘게 지속중인데, 문제는 앞으로도 최소 석 달은 더 갈 것 같다는 점이다. 여야의 각성과 공동 대응을 촉구한다. 그게 수권 능력 테스트이자 국민들의 채점 포인트라는 것을 각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걱정인 것은,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서 장기 교착상태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법난동 등 극우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극우 시위대의 인권위 점거 등 곳곳에 불안 사태가 지속중이다. 서울 북촌 가회동 헌법재판소 마당에는 흰 소나무, 백송(白松)이 한 그루 있다. 백송은 기상과 고절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진다. 심각하게 훼손될 뻔한 민주공화국의 정체와 기상을 다시 세우는 명징한 결정문이 헌재에서 곧 낭독되기를 기대한다. 비상계엄령 발동 이후, 나라와 국민의 일상이 신진대사를 최소화하며 겨우 생명현상만 유지하는 겨울잠과 흡사하다. 겨울잠에서 깨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곧 봄이다. 새로운 봄을 맞아야 한다. 이강윤

[신율의 정치 칼럼]또다시 국민 소환제?

지난 2월 10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 대표 연설에서 '국민 소환제' 도입을 제안했다. 국민 소환제란, 국회의원을 임기 중에라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주민 소환제를 실시하고 있다. 주민 소환제는 선출직 지자체 단체장을 포함해 시의원, 도의원. 군의원 등을 임기 중에 소환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소환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를 꼽자면, 영국, 대만,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키리바티, 키르기즈스탄, 나이지리아, 에디오피아, 팔라우 정도다.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는 국가들 중에,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라는 영국과 대만 정도다. 영국의 경우, 하원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이 가능한데, 소환 절차를 보면, 소환 원인 발생 6주 이내에 지역 유권자의 10% 이상만 소환 청구에 서명하면 국민소환이 가능하다. 투표 절차는 필요 없다. 투표가 필요 없는 이유는, 소환 대상이 형사 문제로 기소돼 실형이 확정된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즉, 범법을 저지른 의원에 대한 실형 선고가 '확정'되면 비로소 소환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이를 보면, 영국식 국민 소환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원들이 범법 행위로 인해 실형이 확정되면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민 소환제는 이런 영국식이 아니라, 해당 지역구 주민의 '일정 수'가 소환 청구를 하면 투표를 통해 소환을 결정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런 국민 소환제 도입 주장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민주당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국민 소환제를 약속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그 실현을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개헌안을 공개하며 국민 소환제 도입을 주장했고, 2020년 21대 총선 공약으로 국민 소환제를 내세웠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도, 민주당의 이낙연 당시 후보와 이재명 당시 후보 모두 국민 소환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았었다. 이런 수차례에 걸친 대국민 약속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태 국민 소환제를 입법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었다.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들을 자주 단독으로 통과시켰는데, 왜 국민 소환제는 '예외'였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실현 의지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지역구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소환 청구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할 수 있지만, 비례 대표 의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궁금하다는 점이다. 비례 의원들을 소환하겠다고 국민 투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민 소환제 도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도 병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말고도,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가 판치는 정치판 속에서 국민 소환제를 도입하면 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 소환제를 실시하면, 국민 소환제가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압도적 다수당의 국회 독주를 보면서, 국민 소환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난관이 있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국민 소환제를 위해 개헌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그런 고민 중 하나다. 이재명 대표가 국민 소환제를 약속한다면,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표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허언이 아니기를 바란다. 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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