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의 생명들을 기각하지 마십시오." 11일 오후 5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 광장. 녹색당과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관계자,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하루 뒤인 12일 열리는 가덕도신공항 건설 기본계획 취소소송 6차 변론을 앞두고 재판부에 사건을 각하하지 말고 본안에서 사업의 적법성을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날 열린 시민문화제와 정당연설회의 화두는 가덕도신공항 자체의 찬반보다 '원고적격' 문제에 집중됐다.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이날 에너지경제신문을 만나 “내일 재판에서는 사업의 위법성 자체보다 원고적격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환경소송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는데 공항 건설의 경우 소음 영향 범위가 제한적으로 설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업 타당성이 검증된 뒤 부지 보상 등이 이뤄지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 아니겠느냐"며 “그런데 가덕도에서는 주민 보상이 먼저 이뤄져 주민들이 떠난 상황에서 다시 주민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적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가덕도의 생명들을 기각하지 말라", “원고는 모든 생명과 모든 시민이다", “가덕도는 공항이 아니다. 생명이다" 등의 구호를 반복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법원이 원고적격을 이유로 사건을 각하할 경우 신공항 사업의 안전성과 경제성, 환경성 등을 재판에서 실질적으로 따질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 나선 참가자는 “가덕도의 생태계 파괴와 조류 충돌, 불안정한 지반에 따른 중대재해 가능성 등을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원고적격이라는 장벽 앞에 섰다"며 “3㎞ 이내 주민만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토지를 팔고 떠난 주민들이 있고 그 밖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있다. 이 때문에 재판의 문이 닫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덕도 일대가 수천㎞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서식·중간 기착지라는 점과 연약지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생명과 안전에 관한 검증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대 단체는 가덕도신공항의 조류 충돌 위험도가 무안공항보다 353배 높다는 자체 분석과 최대 60m 안팎의 연약지반 문제 등을 들어 사업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의 사업 참여 철회와 후속 사업자 선정 난항 등도 사업 리스크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했다. 이날 김 공동대표는 직접 가덕도를 찾았던 경험을 소개하며 생태 문제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처음에는 저도 가덕도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신공항 반대 집회를 조직하고 서명운동을 했다"며 “그런데 직접 가보니 제가 가덕도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덕도에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고 숲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는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었다"며 “길을 걷다가 바위 근처에 팔색조 둥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조용히 지나갔다.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는 한편에서는 산을 발파해 없애고 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김 공동대표는 신공항 건설 과정에서 국수봉 등 산지가 훼손되는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가덕도를 걸으면서 수많은 생명체를 보는데 큰 산을 발파해 없앤다는 생각 자체가 끔찍했다"며 “팔색조 둥지나 커다란 민달팽이를 직접 봤다면 이런 계획을 쉽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항을 지어서는 안 될 땅에 공항을 짓겠다는 것은 거창한 이념의 싸움이라기보다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경제성도, 생태성도, 안전성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사 전 인터뷰에서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가덕도신공항의 경제성 문제를 알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바 있다"며 “경제적 이유와 생태적 이유 모두에서 근거가 부족한 사업이라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끌고 갈 것이 아니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정치권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의 발언만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훌라 공연과 시 낭송, 인디뮤지션 공연 등이 이어지면서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소속 작가들은 가덕도를 소재로 쓴 시와 동시를 낭송했다. 한 작가는 “여기는 살아 있는 곳"이라며 나무와 버섯, 벌레와 바닷바람 등 가덕도에서 마주한 생명을 표현했다. 이어 “가덕도에 공항이 생기면 경제가 부흥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곳은 이미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또 다른 작가는 가덕도에 사는 생명들을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에 빗댄 동시를 낭송했다. 그는 “섬이 없어지면 우리는 서로 무엇을 선물할 수 있나요. 섬이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서 사랑을 배우나요"라며 “섬이 없어지면 우리는 풍요로울 수 없고 자라날 수 없다"고 낭송했다. 인디가수 미어캣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 개발 문제를 계기로 만든 노래와 가덕도의 생명을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였다. 경주에서 행사장을 찾은 환경활동가는 기후위기 문제를 들어 공항 건설 필요성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조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영향을 받는 범위를 지나치게 좁혀서는 안 된다"며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는 시민도 결국 이 사업의 당사자"라고 말했다. 이어 “일상에서 탄소배출을 줄이자고 하면서 한편에서는 항공 수요를 늘리는 새로운 공항을 계속 건설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녹색당과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지난해부터 대통령 집무실과 청와대, 부산시청 앞 등에서 가덕도신공항 백지화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반대와 특별법 폐기를 요구하는 10만명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시민행동은 12일 오전 11시부터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108배와 종교인 기도회를 진행하고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연다.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가덕도신공항 건설 기본계획 취소소송 재판을 방청할 예정이다. 김 공동대표는 “기후위기 앞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원고적격만을 따져 사건을 끝낼 것이 아니라 최소한 본안 심리를 통해 가덕도신공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법정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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