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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효의 에·바·다] 완전히 꺾인 해외자원개발 의지…융자 집행액 5년째 ‘제로’

에너지는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재이다. 하지만 에너지 시설은 배출물질을 과도하게 내뿜는다는 선입견으로 지역주민들로부터, 심지어는 국가로부터도 기피되고 있다. 이러한 선입견은 에너지의 실제에 대한 여러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에·바·다는 '에너지를 바로 보니 다르네'라는 의미로, 이 코너를 통해 독자들에게 에너지의 실제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다. 한국에 자원개발 의지는 완전 상실됐다. 정부가 저리로 지원하는 해외자원개발 융자를 받은 기업이 2020년부터 5년째 제로다. 전문가들은 약 20년간의 자원개발 실책이 누적된 총체적 난국이라고 지적하며,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실용적인 자원확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1일 한국광해광업공단의 '2025 광업요람' 자료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에서 민간기업에 저리로 지원하는 융자지원금의 집행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2015년 24억8300만원, 2018년 12억9200만원, 2019년 10억2300만원이 있을 뿐, 2016년과 2017년에도 집행액은 0원이었다. 정부는 매년 해외자원개발 융자지원 예산으로 수백억원을 책정하고 있다. 올해도 31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로 융자를 신청한 기업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융자지원이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까지 누적 집행액은 총 1조2430억원이다. 2014년 이전 집행기간을 30년으로 계산해도 연간 414억원이 지원됐다. 해외자원개발 융자 신청이 전혀 없게 된 배경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우선은 까다로운 신청 조건과 별로 특별하지 않은 혜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융자 규모가 작고, 혜택도 산업은행 금리와 별 차이 없으며, 신청조건은 매우 까다롭다"며 “해외자원개발을 하겠다는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인데, 이들 입장에선 최소 수백억원이 드는 프로젝트에 별 도움도 안되는 융자지원을 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자원개발 주도자가 실종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해외자원개발은 공기업이 주도했다. 석유는 한국석유공사, 가스는 한국가스공사, 광물은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주도했다. 하지만 현재 3곳 모두 해외사업을 중단했다. 특히 광해광업공단은 아예 공단법에 해외사업 금지가 명시돼 있다.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기 때문에 국가 자원안보 차원에서 공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자원확보에 나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의 자원개발 실기 이후 지금까지 공기업의 해외사업이 전면 중단됐고, 이로 인해 민간 자원개발 사업도 중단됐다"며 “이제 우리나라에 해외자원개발 의지는 완전히 상실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자원업계는 실용적 관점에서 모든 자원정책을 새로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자원개발에는 주홍글씨가 박혀 있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때 국제 에너지 및 광물 가격이 치솟자 이 정부는 대대적인 자원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자원가격 폭락으로 자산가치도 폭락하게 됐고, 급하게 확보하다 보니 부실 계약이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해외자원개발은 게이트급으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박근혜 정부(2013~2017년)는 이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대적 감사를 지시했고, 관련 사업예산도 중단하거나 대폭 감축시켰다. 자산 부실화 및 논란은 문재인 정부(2017~2022)에서도 계속 이어져 국감때만 되면 자원개발 공기업들은 항상 가장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자원개발 공기업들은 해외사업을 잠정 중단했고, 맏형 격인 공기업이 사업을 중단하자 믿고 따르던 민간기업에서도 아예 사업부서들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이다. 제조업은 대규모 광물 공급이 필수적이다. 기업들이 해외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해외 의존도가 커지게 됐고, 중국 의존도가 커지게 됐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에 나서자 정부가 부랴부랴 관련 TF를 구성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이제 와서 희토류 등 해외자원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기업에 해외사업을 다시 허가해 공기업 중심의 해외 자원확보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해외자원개발이 실종된 배경에는 광물공사의 폐지합병 이후 해외 광물자원 개발에 앞장설 수 있는 공기업이 없다는 것과 민간이 주도적으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융자금액 규모와 지원조건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공기업의 해외사업과 지원규모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도 “우리나라는 국가 전략적으로 자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 중심의 자원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공기업이 나서야 민간기업도 따라 나설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개발에 주홍글씨를 없애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자원개발 정책과 사업을 맡았던 공무원과 담당자들은 지독하게 감사 등에 시달리면서 아무도 이 일을 맡으려 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도 더 이상 자원개발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롤모델로 일본의 금속에너지안보기구(JOGMEC)가 있다. 일본 역시 자원개발 공기업의 부실사태를 겪으면서 모든 공기업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부실자산을 처분하고 밑바닥부터 새롭게 자원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이 기관은 독립행정기구로,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이 제한적인 것이 특징이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도 조그멕처럼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을 모두 통합한 항공모함급 자원개발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본지 2025.08.04/[인터뷰] “석유·가스·광물 통합해 항공모함급 자원기관 만들자…그것만이 한국이 살 길")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E칼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

현 정부가 원전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원자력계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여러 차례 말 바꾸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과정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실용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영광지역의 지방선거에서는 한빛원전의 계속운전이 실용적 선택임을 강조한 바 있으며 공약에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조화'도 강조된 바 있다. 또 원자력이 아니면 성립되기 어려운 AI(인공지능) 산업의 발전 등을 공약했다. 따라서 원자력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정책, 실용적인 정책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지난 4개월 동안의 행보는 다시 탈원전정책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원전2기와 SMR 건설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처리해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발표했다. 또 원전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고 안전이 담보되어야 신규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신규원전 부지가 없기 때문에 원전건설이 어렵다는 주장도 한 바 있다. 또 신규원전 건설은 제12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였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원전건설에 15년이 필요한데 전력은 그보다 빨리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건설이 어렵다는 얘기도 있었고 더불어민주당의 다수의 힘으로 에너지 부문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떼어내어 환경부로 보낸 것도 큰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발언들이 우려스러운 것은 아마추어적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부문을 총괄하는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대해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정권에서 수립되었던지 현존하는 국가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미 공청회와 국회심의라는 과정을 통해서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 대해서 국민의 의견을 다시 묻겠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주장이다. 물론 제12차 전기본에서 어떤 전원이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제12차 전기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11차 전기본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현행 장관의 태도여야 한다. 물론 존중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에 따라서 이행을 하는 것까지가 존중이다. 신규 원전 부지가 없어서 원전건설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제11차 전기본에서 계획되어 있다면 그 부지를 확보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 장관이다. 본인이 장관인지 국회의원인지 헤깔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문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위험하다고 말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정부의 각료 그리고 특정 부처를 담당하고 있는 수장의 입장에서는 타 부처의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원전의 안전성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타 부처의 공무원은 자기 입장을 주장하면 안된다. 개인적 자리에서는 괜찮겠지만 공적 자리에서는 그런 주장은 안하는 것이 상식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판단하는 안전도 마찬가지이다. '원전의 건설과 운영으로 인하여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의 안전철학이다. 즉 부당한 위험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한 위험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 정당한 위험은 사회구성원이 공감할 수준의 위험이어야 한다. 원전으로 인한 위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위험총량의 1/1000 수준이하로 유지된다. 또 이 위험은 모든 위험이 아니라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위험이다. 그 외의 사업상의 위험이나 종사자의 위험 역시 규제의 범위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을 고려하면 되는 것이다. 공인 특히 정부부처를 관장하는 장관은 타부처의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소관하는 것이므로 안전성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본인이 소관하는 제11차 전기본에 대해서 적어도 다음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존중해야 한다. 제12차 전기본에 대해서도 전기본 수립위원회가 미래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전원공급계획을 수립하기도 전에 개인적 취향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본인이 소관해야 할 원전 신규부지 마련에 대해 남의 일처럼 얘기해서도 안된다. 환경운동가는 아마추어여도 그만이지만 장관은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 정범진

발전사업자 1000배 증가했는데, 제도는 20년전 그대로…발전업계 “근본적 개편 필요”

“국내 도매전력시장 제도와 관련 규정들은 서른 살 성인이 초등학교 때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민간발전업계가 전력시장 제도의 낙후성과 절차적 불투명성에 대한 전면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20일 한국자원경제학회와 한국에너지법학회가 공동 개최한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법적 기반 강화방안' 세미나에서는 연간 70조원 이상 거래되는 도매전력시장의 법적·제도적 틀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2001년 전력거래소 출범 당시 발전사업자는 6개 발전공기업뿐이었으나, 2024년 말 기준 6617개로 25년 새 1000배 이상 증가, 그중 95%가 민간 신재생사업자로 구성되는 등 시장 구조가 급변했다. 그러나 시장 운영 규범은 한전과 발전공기업 간 거래만을 전제로 만들어진 2001년 체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민간발전사들이 제기한 '연료비 소송' 등 분쟁이 늘면서 전력시장운영규칙과 하위 규정(비용평가세부운영규정)의 법적 성격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일부 판결에서 이 규정이 “법규명령적 성격을 가진다"고 봤지만, 학계에서는 법적 근거와 절차적 통제가 미비하다면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백옥선 교수는 “전력거래소는 행정기관이 아니므로 해당 규칙을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고, 전력거래소를 거래 당사자로 볼 수도 없어 약관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전력시장운영규칙은 '규제적 자치규범'으로서 비례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박진표 변호사는 “전력거래소의 운영이 한전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민간 회원사의 참여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며 “비용평가 규정·송전제약·정산계수 등 주요 결정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용평가 세부운영규정의 개정 제안권이 정부·한전·전력거래소에만 부여되어 있어 회원사의 절차적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민간 발전사들이 상위 규정인 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세미나는 AI 시대와 재생에너지 확대, 계통 불안 심화 등으로 시장환경이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과거 한전 중심의 제도에 머물러 있는 전력시장 운영 규범의 한계를 정면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전력시장운영규칙의 법적 성질에 대한 해석이 다르더라도, 전력거래소의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투명성과 회원사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민간발전사들이 시장운영규칙 개정 제안서를 공식 제출한 상황이어서, 향후 전력거래소의 대응이 주목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전력망 확충 독일에선…“소통·설득으로 주민 신뢰·공감부터 얻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위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가운데 전력망이 통과하는 지역의 주민과 자치단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월 제정되고, 지난달 26일 시행된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하 전력망법)'에서 주민의견수렴 절차 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일 국회에서는 서왕진(조국혁신당)·박지혜(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환경연구원, 프리드리히애버트재단, 기후시민프로젝트 등이 주최하고 주한 독일대사관이 후원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독일 전력망 정책의 시사점과 한국의 전력망 갈등 해법'이 심포지엄 주제였다. 이날 발제는 독일 연방네트워크청(FNA) 소속으로 연방부문 계획 승인 및 전력망 확장 부서장인 보도 헤르만 박사가 맡았고, 그는 FNA의 전력망 확충 사업을 소개했다. FNA는 전기(전력망)뿐만 아니라 가스·통신·우편·철도까지 담당하는 독립된 연방기관이다. 독일에서는 '연방요구사항계획법(BBPlG)'에 따라 전력망 확충과 관련한 9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 가운데 주 경계를 넘는 36개 프로젝트를 FNA이 관할하고 있다. ◇독일, 원전 폐쇄한 남쪽으로 전력공급 헤르만 박사는 “독일에서는 에너지 전환이 2010년 시작됐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속화됐다"면서 “원자력 발전소 폐쇄로 전력이 부족해진 남쪽으로 북쪽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전력망 보강과 확장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37년까지 3000억유로(약 500조원), 2045년까지 모두 6000억유로에 이르는 투자가 필요하다. 헤르만 박사는 “독일에서는 전력망(주로 고압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 시민·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네트워크 확장의 5단계'라는 체계를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5단계는 ▶장기적 전망을 통해 수요를 예측하는 시나리오 프레임 단계 ▶전력망 개발계획 및 환경보고서 작성 단계 ▶BBPlG법에 프로젝트를 반영하는 단계 ▶노선에 대한 공간적·환경적 타당성 평가 단계 ▶구체적인 허가·승인 절차 단계 등이다. 의회에서 진행하는 3번째 단계를 제외한 나머지 단계에서는 모두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된다. 헤르만 박사는 BBPlG법 프로젝트 1호인 '엠덴/오스트-오스테라트'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했다. 해상풍력 전력을 서부 및 남부 독일에 공급할 이 전력망은 2027년 가동 예정이며, 직선거리는 300㎞에 이르는 고압 직류 송전망이다. 2018년 처음 계획이 신청된 이래 2020년까지 4차례 설명회, 4차례 공개 청문회가 열렸다. 지금은 계획 승인 절차가 완료됐다. 헤르만 박사는 “소통이 신뢰를 창출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가져온다"면서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설득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의견수렴 절차 법률에 담아야 두 번째 발제는 독일 에너지 분야 씽크탱크인 '아고라 에너르기벤데'의 선임연구원인 염광희 박사가 맡았다. 염 박사는 “독일은 산업구조나 에너지 해외의존도 등에서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 대해 한국이 배울 점이 많다"면서 “전력망 확충과 관련해 독일은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구체적인 사항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회 의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행사하고, 재량권이란 명목으로 행정기관에 책임을 미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 박사는 “BBPlG법에서는 이 법에 포함된 전력망 프로젝트를 공익사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신속한 절차가 가능하다"면서 “이에 따라 지역 주민 등이 소송을 제기해도 프로젝트 추진이 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노선을 정할 때 사전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법률로 정해 놓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염 박사는 “한국의 경우 한국전력이 제안하고 전기위원회가 승인하면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이 확정되는 시스템이라 국회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면서 “계획 확정 뒤에야 주민 의견수렴을 진행하는데, 공청회도 생략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사업이 확정된 후에 지자체와 주민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염 박사는 “개별 보상을 뛰어넘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전력망이 통과하는 지역 지자체에 수수료를 납부하고, 지역별 차등 전력 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 전력망 설치 국민 부담 가중 우려 이날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나선 국회입법조사처 유재국 입법조사관은 용인 전력망 추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유 조사관은 “수도권 좁은 부지에 많은 전력망 회선과 대규모 변전설비를 설치하면 과밀 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력망 지중화를 진행할 경우 공사기간과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용인 전력망은 전력망법에 따라 국가 재정이 투입되고 결국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것인데, 편익과 수익은 전력망 끝단의 산업체가 모두 가져가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원인자 부담 원칙과도 상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조사관은 “용인반도체산업단지 조성은 에너지 정책과 공공자산 운영 정책, 공공기관 운영 정책, 지방자치제도, 산업정책, 기후정책 등 모든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제각각 추진되는 대표적인 국가사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측에서 나온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망정책과 유용상 사무관은 “전력망법은 독일 사례를 반영했고, 국무총리 주재로 범부처 관계자와 전문가, 지자체가 참여하는 전력망위원회가 기본계획을 심의 의결하도록 하고 주민 의견을 더 듣는 식으로 개선했다"면서 “부족한 부분은 소통을 통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력망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개선된 점은 있다는 것이다. 유 사무관은 “한전의 경우도 업무 관성이나 인력 부족 때문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점차 그런 관성도 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025 국감] 송병억 수도권매립지공사 사장 “명칭, 수도권자원순환공사로 바꿔야”

송병억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이 공사 명칭을 '수도권자원순환공사'로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통해 공사의 주요 사업을 폐기물 매립에서 폐기물로 전기·가스 등을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중심 사업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련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4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명칭을 수도권자원순환공사로 변경하고, 신재생에너지 설비 및 탄소감축시설 등 확대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의 수도권매립지공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내년부터 수도권매립장에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됨에 따라, 수도권매립지공사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 의원은 “수도권매립지공사는 매립사업 외에도 하수슬러지 자원화, 폐수 바이오가스화, 공원·체육문화시설 운영,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전담기관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며 “정부의 매립 축소 정책을 잘 따르고 있지만, 이에 따라 수입이 50% 이상 감소했다. 순환경제사회 촉진법의 취지에 따라 공사법 개정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송 사장도 “공사법 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폐기물 반입 수수료가 공사의 주수입원인데, 운영에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적 과제인 만큼,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 생산시설 확충으 공사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매립지공사 명칭이 쓰레기 처리기관으로 인식돼 시대에 맞는 사명이 필요하다 느끼고 있다"며 “수도권자원순환공사라는 명칭으로 바꿨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호현 기후부 2차관 “가상발전소(VPP), 경쟁력 있는 전력망의 핵심” 강조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이 가상발전소(VPP)를 차세대 전력망의 핵심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차관은 20일 페이스북에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각종 수요감축자원들을 활용 지역 단위에서 전력수급의 균형을 구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VPP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VPP는 여러 곳에 분산된 발전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해 제어·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소규모 전력원을 IT 기술로 묶어 전력공급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규모 발전소 건설이나 송전선 증설을 줄일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즉, 중앙집중형 전력망 대신 지역 단위에서 전력수급을 스스로 조절하는 '지산지소형 분산전력망'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 차관은 “VPP는 지산지소형 분산전력망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면서, 대규모 송전망이나 발전소 건설을 회피할 수 있는 분산편익을 제공하는 유연성 기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 차관은 파이낸셜타임즈(FT)의 'Could virtual power plants ease the strain on US power grids?' 기사를 공유했다. VPP가 미국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이 차관은 “(기사에 따르면) 최근 수천개의 테슬라와 Sunrun 배터리를 활용한 VPP 실증사업으로 샌프란시스코 전력수요의 50%에 해당하는 535메가와트(MW)의 전력을 2시간 동안 공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부는 유연하고 똑똑하며, 가격경쟁력도 있는 새로운 전력망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VPP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주 재생에너지입찰시장을 통해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VPP들이 출현하고 있다"며 “차세대 지능형전력망 실증사업이 본격화되면 우리 전력산업 지형도에도 꽤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2025 국감] 수공, 우크라 재건사업 MOU 논란…“주가조작 이용” vs “해외수출 잘한 일”

한국수자원공사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MOU)을 두고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 수자원공사의 MOU가 삼부토건 주가조작에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지시가 아닌 자율적인 해외사업 진출이었다며 맞섰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윤석대 수자원공사 사장에게 11건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MOU를 두고 삼부토건 주가조작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윤석열 정부 당시 삼부토건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MOU 홍보하며 주가를 조작했다고 특검 조사로 드러나 기소된 상태"라며 “공공기관 중 수자원공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재건사업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7월까지 카호우카댐, 이르핀강 댐 재건 등 총 11건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윤 사장에게 “대통령실과 별도 협의한 적이 있느냐, 그리고 사업이 실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윤 사장은 “공식적으로 별도 협의한 적은 없다"며 “성과는 전쟁 종료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예산 낭비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도 재건사업 MOU 관련 용역의 투명성이 부족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쟁 중 사업 참여의 배경과 경비 집행 과정 등을 포함해 총체적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수자원공사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군사적 지원은 불가능했기에 비군사적 지원 형태로 재건사업에 참여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 진출을 확대하는 건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도 “수자원공사는 세계적으로 물 관리 역량이 뛰어난 기관"이라며 “재건사업에서 선진국들이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만큼, 수자원공사의 참여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방산 수출을 위해 유럽을 방문한 상황을 언급하며 “수자원공사의 재건사업 진출을 문제 삼는 것은 여당과 정부의 엇박자"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태선 민주당 의원은 “삼부토건의 주가조작에 수자원공사가 이용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원전 확대 찬성 40%, 축소 11%…7년 전과 여론 뒤바껴

국민 10명 중 4명은 원자력발전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소'는 11%에 그쳐, 7년 전과 비교할 때 원전에 대한 여론이 뒤바뀐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에 관해 물은 결과, '확대'가 40%, '현재 수준 유지'가 37%, '축소'가 11%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12%는 의견을 유보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22년 6월 조사와 비교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진보 성향에서도 '축소' 대신 '유지' 의견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원전 확대와 축소 의견이 각각 22%로 동일했다. 과거 흐름과 비교하면 변화가 뚜렷하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밝힌 직후인 지난 2018년 6월에는 '확대' 14%, '축소' 32%로 축소론이 우세했다. 이후 2019~2021년까지는 양론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2022년부터 확대론이 우세로 돌아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수급난,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등으로 인식이 달라진 것으로 진단된다. 국내 원전의 안전성 인식도 달라졌다. '매우 안전' 28%, '약간 안전' 36%로 전체 64%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면 '약간 위험' 18%, '매우 위험' 4% 등 22%는 위험하다고 봤으며, 13%는 의견을 유보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5년 뒤인 1991년 조사에서는 '안전하다'는 응답이 23%에 불과했으며, 후쿠시마 사고 6년 후인 2017년에도 30%대에 머물렀다. 성별·연령별로는 남성(75%)이 여성(53%)보다 안전 인식이 높았고, 20·30대는 70%대, 70대 이상은 53%로 세대 차도 뚜렷했다. 원전 정책 입장에 따라서는 확대론자(82%), 유지론자(66%)가 대체로 '안전하다'고 본 반면, 축소론자(57%)는 '위험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번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접촉률은 43.8%, 응답률은 12.1%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우리에게 원자력 기술이 의미하는 것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의 향방이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것 같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새 정부가 이러한 국가적 기간산업에 대해 새로운 틀을 짜고 추진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수립하고자 하는 계획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우에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과학에 입각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이라는 것은 자타가 동의하는 바이니 여기서 다시 반복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특히 이 결정의 궁극적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오는 것인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거대 국가 담론에 있어서 실제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방법이 없다. 결국 국민의 책임이 된다. 따라서 국민들이 당면한 현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현재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외부 환경은 어떤 상황에 와 있는 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내부자의 시각에서는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으니 뒤로 물러서서 그림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면 일부 의도된 주장에 현혹되어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다수 국민들이 복잡한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을 회피하게 되면,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고 오고 싶은 입장에서는 자기 쪽으로 편향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 유혹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자력이라는 중요한 산업분야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소비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국가와 국민에게 미래가 없다. 원자력 기술과 산업이 우리나라에 과연 필요한지 어떻게 기여하는지부터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점차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지만, 이런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외부 경제와의 협력과 경쟁을 불러오게 된다. 국내 산업만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게임의 룰과 국제 무대의 게임의 룰은 당연히 다르다. 상대를 도태시켜야 할 상황이라면 무서운 경쟁을 하지만 그게 아니라 상호 유익이 있다면 협력을 하는 것인데, 여기서도 받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규칙이 적용된다. 원자력 산업에 대해 짚어 볼 때에도 이런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원자력이 국제 무대에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인가? 본원 경쟁력은 무엇인가? 어떻게 협력하고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 먼저, 우리나라가 강력한 원자력 기술 능력을 보유할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단순히 저렴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하고 핵보유를 공인받고 싶어하는 현 상황에서, 고도의 원자력 산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미래에 만약 필요한 경우가 생기고 국민이 결정을 내리게 되면, 즉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수조원 수십조원의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원자력은 패키지 바구니의 제일 위에 놓이는 얼굴 상품이 된다. 대표 상품이 경쟁력이 있어야 거래가 성립될 테고, 일단 성사되면 수많은 교류가 함께 일어나게 되고,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는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UAE에 원자력이 수출된 이후, 한국 외교관이 한국 기업들의 건설 수주를 늘여주도록 부탁했더니 '이미 팔구십 퍼센트는 한국기업에게 주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늘일 수가 있습니까'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체코 원자력 프로젝트를 통해 EU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크게 확장하고 다른 산업들도 함께 진출할 호기를 맞았다. 원자력 에너지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 주면서 국산 에너지 수급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는 최상이자 유일한 옵션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한 가스와 석유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언제부터인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마치 대결구도인 것처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과학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것 또한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반드시 필요한 국산 에너지원이다. 지금 한국의 원자력 설계 능력과 제조 능력이 서방세계에서 최상의 위치에 와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기술을 한국기업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에서 이미 다 개발한 기술을 우리가 처음부터 개발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다. 산업계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주고 받는 협력이 얼마나 경쟁력을 높여주는지 잘 알 것이다. 이것은 효율의 문제일 뿐이고 계약의 문제일 뿐이다. 만약 우리 기업이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한다면 이건 당연히 기존 도입 계약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ARP1400이나 APR1000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처럼 프레임을 고정할 필요가 없고, 다음 수준의 협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신형 원자로를 개발하여 원자력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AI로 촉발된 전력난과 에너지 분야 투자 열기와 결합하면서 엄청난 동력을 얻고 있다. 유럽에서도 대부분의 국가가 친 원자력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런 대외적인 환경 변화도 우리 국민이 판단을 내릴 때 제대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이러 기회의 문이 언제까지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외 여건상 지금이 중요한 타이밍이다. 국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우리 원자력산업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밤낮으로 온갖 방면으로 노력할 때이다. 이런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애국자이다. 강현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기획] “에너지 선두주자 제주” 대한민국 대표 재생에너지 메카로 거듭난다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었다. 2012년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을 공식 선언한 이래, 제주도는 단순한 정책 선언을 넘어 실제 계통 전력망 속에서 풍력·태양광 비중을 높이며 전국 최초의 '에너지 전환 실증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제주도는 '에너지 자립섬'에서 'RE100 산업단지', '그린수소 전진기지' 등으로 진화하며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내일을 선도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제주도의 전체 발전 설비 용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96%에 달한다. 2023년 기준 풍력중심의 발전 비중은 전국 평균의 2.5배에 달하며, 특히 제주도에만 전국 풍력 설비의 15%이상이 집중돼 있다. 제주 서부의 한경·한림지역에는 크고 작은 육상풍력단지가 밀집해 있으며, 국내 첫 상업용 해상풍력인 '탐라해상풍력'도 제주 앞바다에서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농형 태양광, 소규모 분산형 태양광 발전소도 마을 곳곳에 설치돼 도민들이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모델도 확산 중이다. 정부와 제주도는 2035년까지 전체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에너지대전환을 통한 2035탄소중립' 정책을 바탕으로 수소·ESS·V2G 등 미래 기술도 함께 실증하고 있다. 제주의 지리적 조건은 한편으로 위기였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육지 전력망과 분리된 계통 특성은 한전, 에너지공기업, ICT 기업들이 제주에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조성하게 만든 배경이 됐다. AI 기반 수요예측, 전기차의 전력망 연계(V2G), 대용량 ESS 운영, 분산형 전력망 기술 등은 제주에서 세계 최초로 실증된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전력 수요와 공급의 실시간 최적화"라는 새로운 전력체계 모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실제 정부는 제주를 '전국 에너지전환의 교과서'로 삼고, 여기서 실증된 기술과 정책 모델을 향후 전국 RE100 산업단지, 지역 에너지 자립마을 등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잇단 주민 반대에 막히고 있는 사례들이 있지만, 제주는 도민과 함께하는 정책 모델을 통해 주민과 상생하며, 순조롭게 에너지 전환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공공주도 풍력개발 정책'이 있다. 제주도는 2011년부터 바람을 공공의 자원으로 인식하고 제주에너지공사를 국내 최초로 설립하여 풍력자원의 체계적인 관리체계(난개발방지, 환경훼손최소화 등)를 마련하고, 개발이익은 도민과 공유하는 개발이익공유화 제도 도입(풍력공유화 기금 조성) 등 공공주도 풍력개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공공의 바람을 정의롭게 나누고 상생한다'는 기조 아래 풍력자원 공공적 관리기관 지정, 주민수용성 확보 가이드라인 마련, 공정·상생 풍력자원 개발지표 도입 등을 통해 도민이 주인되는 풍력개발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제주도는 이러한 공공주도 정책 기반을 토대로 사업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사업 종료 시까지 모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도민과 함께하는 구조를 통해 이른바 '에너지 민주주의'의 실천적 모델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또한 제주도의회는 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직접 중재에 나서는 조정 기능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합리적 조정 시스템이 수용성 확보의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제주는 가장 먼저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해소하는 안정적 체계 구축이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단순한 지역의 정책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는 △계통 안정성 확보 방안 △에너지 주권 실현 모델 △지역 공감대 확보 방식 등에서 향후 전국 확산 가능성을 가늠하게 하는 정책적 선도모델이다. 제주도는 향후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 구축, RE100 산업단지 조성 준비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명실상부 이재명정부의 K-탄소중립 이니셔티브를 준비하고 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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