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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 전환의 그늘: 취약한 광물·원자재 공급망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1986년 말 석유 위기가 종식되자마자 국내 유일 부존 에너지원이던 무연탄 산업을 합리화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률이 50% 수준에서 3%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에너지수입의존도는 1997년 98.3%까지 상승하였으며 30여 년이 지난 2024년에도 93.6%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덕분에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2024년 보고서에 평가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정 공급(Energy Security) 부문의 점수는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그런데 높은 수입의존도 문제는 광물 등 원재료 부문으로 가면 더욱더 심각해서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주요 원재료 수요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공급망(supply chain) 이슈이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무역분쟁에 더하여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우리나라의 공급망 문제를 더욱 심각한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정책의 미래가 더 많은 광물과 원재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전환정책은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설비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설비로 바꾸는 단계와, 전기의 생산 방법을 이른바 '탄소중립발전'으로 전환하는 단계 등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경제학 분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산함수의 형태로 바꾸어 보자. 일반적인 생산함수에 사용하는 주요 투입 요소로는 자본(K), 노동(L) 및 에너지(E)와 원재료(M) 등이 있다.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방식에서 전기로 전환하는 단계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사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두 생산품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K, L, E, M 간의 변화는 매우 적다. 그러나 늘어난 전기자동차에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의 변화는 매우 다르다. 화석연료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 증가하는 것은 전기의 생산과정에서 에너지(E)가 물질(M)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실리콘, 구리 등과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은 물론 배터리 등 전력저장장치의 생산에 필요한 광물수요 역시 많이 늘어난다. 또한 전기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추가적인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필요한 구리와 철 등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화석연료 발전시설에 비하여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초기 자본(K)이 많이 투입되지만, 시설을 가동하기 위한 비용은 적게 드는 형태임을 고려하면, 에너지전환정책은 국가 단위의 에너지 생산과정에서의 투입 요소가 에너지(E)에서 물질(M)과 자본(K)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2019년 유럽의 탄소중립 선언 직후에 출간한 『Net-Zero Europe』보고서에서 유럽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탄소중립발전이 44%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현재 총에너지소비 중 21% 수준인 전력이 50%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고 또 이를 탄소중립발전으로 공급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산업, 상업, 가정에 있는 에너지 사용설비 역시 상당 부분 교체될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광물과 원재료의 양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광물 및 원재료의 공급망 문제가 매우 중요한 정책 이슈로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은 에너지 쪽보다 광물과 원자재 쪽이 더욱 취약하다. 이러한 구조적인 이슈는 정부의 재정과 예산 및 정부 구성에 아직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행인 것은 광물은 재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는 철은 물론 비철금속 분야의 리사이클링산업이 잘 발달하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하지만 옆 나라 일본은 광물 등 원재료의 확보와 재활용 부문에서도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있다. 유명한 대기업 상사조직들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자원은 미쯔이, 전력은 마루베니, 그리고 모두 다 잘하는 미쓰비시 등 여러 대기업 상사조직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도 상당하다. 일본은 왜 대기업들이 정부의 지원과 제도를 통하여 이 부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정부는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의 종점이 어떠한 모습일지 세밀하게 예측하고 분석하여야 함은 물론 구성원 모두가 차근차근 함께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허은녕

[가스 소식] 가스기술공사, 가스안전공사

한국가스기술공사(사장직무대행 진수남)는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수소교통 복합기지 구축을 완료하고 준공식을 개최했다. 인천공항 수소교통 복합기지는 액화수소충전소 기반으로 한번의 액화수소 하역을 통해 약 2.8톤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고, 액화수소 펌프의 높은 처리량(시간당 320kg)으로 하루 최대 200대의 대형 수소버스를 충전할 수 있고 충전속도 및 Recovery 시간이 빠른 장점이 있다. 인천공항 수소교통 복합기지는 인천시, 한국가스기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에스케이플러그하이버스가 지난 2023년 1월부터 추진한 사업으로 올해 1월 상업 운전에 착수했다. 인천시는 행정적·재정적 지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부지 확보, 에스케이플러그하이버스는 액화수소 공급, 충전소 운영 및 민간투자, 한국가스기술공사는 수소교통 복합기지 구축 총괄을 담당해 성공적인 수소교통 복합기지 구축을 완료했다. 수소교통 복합기지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T2버스주차장 내 위치(인천시 중구 운서동 3234-17) 하고 있어 인천국제공항과 전국을 이어주는 교통 허브 역할을 한다. 시간당 320kg로 높은 처리량을 가지고 있어 현재 공항 셔틀버스에서 운행중인 36대의 수소버스 뿐 아니라 26년 수소버스 도입분(40대 이상)까지 처리 가능한 대용량의 시설이다. 이는 향후 인천공항과 주변 지역의 친환경 탄소중립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해외 관광객까지 한국의 교통시설에 대한 청정이미지를 남겨 줄 것으로 기대 된다. 가스기술공사 송민호 에너지사업본부장은 “민관이 협력해 구축한 성공적인 수소교통 복합기지의 준공을 축하하며, 친환경 에너지 기술 공기업으로서 친환경 수소인프라 확장에 더더욱 정진하겠다"고 전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사장 박경국)는 최근 충북 음성 본사 대회의실에서 수소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안전 생태계 조성을 위한 「K-수소차 산업지원 TF」(이하 “TF")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무공해차 전환 100% 정책에 따라 2030년까지 수소차 30만대 보급을 목표로 추진 중이며, 국내 완성차 업계는 수소트럭·버스 등 대형 수소 모빌리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초고압·극저온 시스템 등 기술의 고도화와 제도적 미비로 인해 산업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제도·기술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TF는 국내 수소차 산업이 당면한 기술적, 제도적 난제를 해소하고, 업계 맞춤형 핀셋 지원을 통해 국내 수소차 산업이 세계 1등으로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기술이사를 단장으로, 수소안전기술원장은 총괄간사로 하여 완성차 및 부품업계, 연구기관, 공사의 전문가로 구성된 4개 분과(제도·부품·용기·연료전지)와 산·학·연 전문가 자문단과 함께 Bottom-Up 형태의 One-Stop 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TF는 실증 기반의 수소차 산업 '전주기 안전관리'를 아우르는 실질적 협력 채널로 운영되며, 현장의 기술 수요와 정책 과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수소제품과 인프라에 대한 기준 정비 및 실증 기반 마련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기술검증 체계 개발 국제 인증 및 시험기준과의 정합성 강화 민관 협력 기반의 '현장 밀착형 안전관리 체계'구축 등 그 간의 현장 애로사항을 신속하게 검토 및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박희준 가스안전공사 기술이사는 “수소차 산업은 기술과 안전이 맞물리는 고도화된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공사는 소명 의식을 갖고 그간 축적해온 실증, 검사 및 인증 역량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에 도움이 되는 핀셋형 지원체계를 적극 가동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앞으로 TF 분과별 정례 회의를 통해 업계 수요를 반영한 실효성 높은 과제를 발굴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수소차 안전관리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박경국 사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가발전 리더십 대상'에서 'K-SAFETY 혁신 리더십상'을 수상했다. 박 사장은 2024년 취임 후,'인본(人本)경영'리더십을 바탕으로 국민 안전 기반을 강화해 온 공적을 인정받았다. '국민 안전과 미래 에너지를 선도하는 가스안전 책임기관'을 비전으로, 소명을 전사 공유가치로 내재화하였으며, MZ위원회를 신설하여 미래세대의 경영참여를 유도하고, 가스안전분야 기술전수와 인재 육성을 위한 가스안전 명장 제도를 신설하는 등 역동적인 조직문화를 이끌어 냈다. 또한 100년 위원회를 운영하여 공사의 지속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후 신호등] 에너지전환 시대, 원전의 출력 조절은 가능할까

지난달 26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1차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들어있는 원전 2기의 도입 추진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장관은 “전체 약 30%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발전을 2040년까지 제로화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중심으로 전력을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려나가면서 에너지 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원전의 안전성과 경직성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원자력 발전과 관련해 “기존 원전도 안전 기준을 전제로 유연 운전 가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원전 유연성'이라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전환 요구 받는 대한민국 에너지 시스템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은 이제 선언의 단계가 아니라 물리 법칙과 경제 구조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화(electrification)에 따른 구조적인 전력 수요의 증가,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고품질' 전력 수요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봄·가을 전력 수요는 줄고 태양광 발전량이 크게 상승했을 때 남아도는 전력을 어떻게 해소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는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 놓인 두 전원, 즉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합할(혹은 조화시킬) 것인가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기술 발전과 운영 방식의 변화에 따라 충분히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두 전원이 태생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무리한 공존은 전력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논쟁은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 판단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가 없다. 서로 다른 연구진이, 서로 다른 전력 시스템을 가정해 수행한 정량적 모델링과 실증 연구에서 출발한, 매우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논쟁이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은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라는 단순한 구호로 정리될 수 없고, 특히 한국과 같이 전력망 구조가 특수한 국가에서는 더욱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앞선 해외에서는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 “원전의 경직성은 오해"…유연 운전 기술의 진화와 재평가 원자력 발전은 오랫동안 '한 번 가동하면 멈출 수 없는 기저부하 전원'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에너지 시스템 연구는 이 인식이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 운영 전략과 제도 설계의 산물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에너지 이니셔티브 소속 연구팀은 2018년 3월 국제 학술지 '응용 에너지(Applied Energy)'에 발표한 논문에서 현대적인 3세대 원자로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부하 추종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정리했다. 부하 추종 능력이란 전력 수요나 다른 발전원의 출력 변화에 맞춰 발전기가 자신의 출력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제어봉 조작과 냉각재 유량 조절을 통해 원전은 분당 정격 출력의 2~5% 수준까지 출력을 증감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은 유연성이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원전의 '경직성'이 물리적으로 불변의 속성인지, 아니면 경제성 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운영 방식인지를 구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원전이 항상 최대 출력으로 운전돼 온 이유는 그렇게 할 때 단위 전력당 비용이 가장 낮아지는 구조 때문이지, 기술적으로 출력 조절이 불가능해서는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국이 보유한 APR1400 노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재조명된다. APR1400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일정 범위의 출력 조절을 고려해 개발됐으며, 실제로 해외 수출 노형에서는 부하 추종 운전에 대한 검토가 지속돼 왔다. 다만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았고, 전력시장 제도 역시 원전의 유연성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능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 제논 과도와 연료 주기…유연 운전의 물리적 한계와 '함대 운영' 논리 원전 유연성에 대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프랑스 첸트랄쉬펠레크공대 연구팀은 2022년 3월 '응용 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원전의 출력 조절을 가로막는 핵심 물리 현상으로 ▶제논(Xe)-135 과도 현상 ▶연료 주기 말기의 반응도 감소 등을 명확히 지적했다. 제논-135는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강력한 중성자 흡수 물질로, 원자로 출력을 낮출 경우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로 인해 출력을 다시 높이려 할 때 일정 시간 동안 반응도가 억제되며, 이는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전력망 운영에서 치명적인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료 교체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2018년 '응용 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MIT 연구팀은 원전 유연 운전이 단순한 기술 옵션이 아니라 운영 리스크를 동반하는 선택임을 분명히 했다. 제논 과도 현상으로 인한 출력 회복 지연은 재생에너지 출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계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연료 주기 말기의 반응도 저하는 안전 여유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연구팀 연구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한계를 이유로 유연 운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운영 단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다수의 원전을 보유한 국가의 경우 개별 원자로가 아니라 '원전 함대(nuclear fleet)'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연료 교체 주기를 전략적으로 엇갈리게 배치(staggering)함으로써 항상 유연 운전이 가능한 원전을 계통에 남겨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함대 운영 개념은 특히 한국처럼 원전 비중이 높고, 다수의 동일 노형을 운영하는 국가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출력 제한(curtailment)이 증가하는 문제를, ESS만으로 해결하지 않고 기존 원전 자산의 운영 방식을 바꿔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 회전 관성과 '에너지 섬' 한국…구조적 조건이 만드는 필연성 재생에너지 확대 논의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전력망 안정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물리적 회전 관성(Inertia)이다. 발전기 터빈처럼 회전하는 질량이 갑작스러운 전력 수급 변화가 발생해도 관성에 의해 속도 변화를 늦추며 전력망 주파수를 버텨주는 성질을 말한다. 스페인 세비야대학교 연구팀은 2022년 1월 '응용 에너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약 39%를 넘어서는 전력 시스템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성상수를 가진 동기 발전기가 계통에 연결돼 있지 않으면 주파수 안정성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는 원전과 화력 발전이 제공하는 회전 관성이 단순한 '부가 기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의 전제 조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인버터 기반 전원으로 물리적 회전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사고나 수급 불균형 발생 시 주파수 변동을 완충할 수 있는 물리적 에너지를 직접 제공하지 못한다. 이 문제는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 이웃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계통이며, 국토가 좁아 태양광 출력이 지역적으로 분산되지 않고 동시에 급증하거나 급감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원전이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안전하게' 늘어날 수 있도록 전력망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 “기술은 가능해도, 경제는 다르다"…유연 원전에 대한 냉혹한 반론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가?" 독일 베를린공대 연구팀은 지난해 7월 '에너지 전략 리뷰(Energy Strategy Review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팀은 유럽 전력 시스템을 대상으로 한 모델링을 통해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맞춰 원전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이 원전 자체의 총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는 원전의 경우 건설비와 금융비가 원가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데 주목한다. 원전은 높은 가동률을 전제로 설계된 자본 집약적 설비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맞춰 가동률을 낮추는 순간, 단위 전력당 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 연구팀은 이로 인해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보완 관계라기보다 동일한 전력 시장에서 서로의 경제성을 잠식하는 대체 관계에 가까워진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원전은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90%에 가까운 가동률로 유연하게 운영해야 하므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운영 유연성은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서 “결과적으로 전력망 인프라, 다중 에너지 시스템의 유연한 수요, 그리고 에너지 저장 장치가 변동성이 큰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을 통합하는 데 더 효율적인 선택지"라고 지적했다. 중국 화베이전력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12월 '프로세시스(Processe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전력 시장에서 원전이 반복적으로 출력 제한을 받을 경우 연료비 절감 없이 매출만 감소하는 구조적 손실이 발생해 원전이 '마이너스 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대신 고체 열 저장 장치가 원전의 유연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세라믹·콘크리트·내화벽돌 같은 고체에 열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를 도입하면 심층적인 피크 부하 감소 수요를 충족하면서 원전의 수익 구조를 크게 개선, 프로젝트의 정적 투자 회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경고: “한국은 아직 검증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기후부 주최로 열린 두 차례의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 공개 토론회에서 전력계통 전문가나 전력시장 관계자들은 공통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국은 원전 유연성에 대해 찬반 논쟁은 치열하지만, 정작 한국 계통에서의 실증 데이터는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한 전력계통 전문가는 토론회에서 “논문에서 가능한 것과 실제 계통에서 허용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출력 조정이 주파수 안정성, 예비력 운영, 사고 복구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한국 조건에서 직접 검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토론자는 “유연 운전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안전 규제, 운전 인력, 시장 보상 체계까지 포함한 전력 시스템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원전 유연성 논쟁이 더 이상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정책 결정 이전에 반드시 넘어야 할 실증의 문턱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검증이다. 실제 원전에서, 실제 전력망 조건 하에서, 어느 정도의 출력 조절이 가능한지, 그 비용과 위험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과 ESS 투자 규모를 얼마나 줄여주는지를 투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기후부에서도 '원전 탄력운전 기술개발' 관련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다수기관이 참여하는 이 연구에는 모두 503억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한수원 측은 “오는 2032년이면 원전 출력을 시간당 10%씩 50%까지 줄이는, 1년에 100회 이상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국내 전력 시스템 앞에 놓인 신호등은 아직 녹색도, 적색도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실증을 요구하는 노란불이다. 이 노란불 앞에서 충분히 멈춰 서서 데이터를 쌓고, 가정이 아니라 현실 위에서 판단하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가야 할 가장 합리적인 에너지 전환의 경로인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에너지 지정학] 한일에서 본 북한 ‘두 국가론’…경제 취약성과 핵 전략의 교차점

(도쿄=전지성 기자) 한일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 체제가 경제적 취약성과 강력한 통치가 맞물린 '깨어지기 쉬운 균형(fragile equilibrium)' 상태에 놓여 있으며, 향후 에너지·자원 공급망과 국제 지정학 환경 변화가 체제 안정성을 흔드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을 제기했다. 또한 북한이 남한과 일본을 적대시하는 '두 국가론'을 내세워 체제 안정을 강화했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향후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해법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다. 와세다대학교 일미연구소는 31일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구축을 위한 미·일·한 협력: 북한의 두 국가론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강연회 및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애리아 와세다 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와세다대 첨단사회과학연구소와 공동 주최됐으며,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 후원했다. 겐마 마사히코(Gemma Masahiko)와세다대 국제부문총괄겸 일미연구소장은 개회사에서 “와세다대 일미연구소는 2008년 미·일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를 학문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출범했으며, 이후 지역 간·지역 내부의 정치·경제적 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연구기관으로 발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안정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미·일 협력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지역 협력의 틀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한일 관계는 동북아 지역 질서의 형성과 안정적 유지에 있어 중요한 변수"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두 국가론' 제기와 한반도 정세 변화는 평화체제와 지역 협력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북한의 최근 경제·정치 동향과 한반도의 미래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향후 일미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토요일 아침임에도 양국에서 100여명이 넘는 인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최근 동북아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며 강의와 토론을 경청하고 수준 높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선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와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가 한국 측 발표자로 나서 북한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두고 서로 다른 분석을 제시했다. 김병연 교수는 북한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에너지·자원 제약을 중심으로 체제 불안정성을 진단한 반면, 남성욱 교수는 '두 국가론'과 핵 전략을 축으로 한 권력 안정과 내부 통제 논리에 주목했다. 두 교수의 발언은 북한 체제가 경제적 한계와 강력한 통치 구조가 교차하는 복합적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며, 향후 미·일·한 협력이 어떤 전략적 접근을 취해야 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졌다. 특별강연에 나선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북한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짚으며 “김정은 정권은 핵 개발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경제 특히 주민 생활 개선에는 명백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최근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북한이 2013년 제시한 '핵·경제 병진노선'과 관련해 “핵은 목표를 달성했지만, 김정은이 약속한 '쌀밥과 고깃국'은 실현되지 않았다"며 “2017년 이후 유엔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감소했고, 주민 소득은 약 25%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이 추진 중인 국영기업 임금 대폭 인상, 시장 통제 강화, '지방발전 20×10 정책'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 평가가 이어졌다. 김 교수는 “공장 가동과 지방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에너지·설비·자본재 수입이 필수적인데, 현재 북한의 대외 환경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조달하기 어렵다"며 “특정 지역의 발전이 다른 지역의 자원 고갈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제로섬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에너지·자원 문제와 국제 지정학 변화가 북한 체제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김 교수는 '미국의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재편 전략이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 변화가 간접적으로 북한에 파급될 수 있냐'는 질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될 경우 북러 관계는 현재의 군사 협력 중심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중국 역시 북한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관리하는 전략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에너지나 자원 협력이 북한 체제를 안정시킬 만큼 충분히 제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이 향후 미·중·러 관계 변화 속에서 중국·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전략적 공간을 넓힐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 교수는 “북한이 단기간에 진영을 전환할 가능성은 낮지만, 지정학 환경 변화는 체제의 취약한 균형을 흔들 수 있다"며 “김정은 개인 변수, 경제 충격, 국제 정세 변화가 동시에 작용할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전환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북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관여(engagement)가 장기적 방향이 될 수는 있지만, 타이밍이 핵심"이라며 “제재·압박·협상·정보 유입을 단일 수단이 아닌 '코스 요리'처럼 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급한 협상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북한 체제 변화의 가능성을 단기적 붕괴나 급격한 전환보다는 중장기적 구조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체제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제적 취약성과 강한 통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며 “이런 체제는 외부 충격이 누적될 경우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 유입 확대와 시장 경험의 축적, 세대 교체 등이 장기적으로 체제 인식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북한 문제는 단기간에 해법이 나올 사안이 아니라, 에너지·경제·안보를 아우르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한 과제"라며 “미·일·한 협력 역시 군사적 억지에 머무르지 않고 중장기적 질서 재편 전략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어진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구축을 위한 한미일 협력'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북한이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른바 '두 국가론'의 배경을 체제 안정과 권력 유지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남 교수는 “김정은은 집권 15년 동안 내부 권력 장악에 성공했고, 고모부 장성택 처형은 오히려 체제 불안이 아니라 안정의 신호였다"며 “처형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북한 체제는 더 불안해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국가론'을 체제 붕괴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 안정과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란 해석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권력 장악은 상당 부분 마무리됐으며, 핵 무력 고도화는 체제 억지와 내부 결속을 동시에 겨냥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북한의 적대국 노선이 돌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2000년대 이후 남한 물자·문화 유입에 대한 체제 위기의식이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북 지원과 함께 한류와 남한 문화가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이를 체제 위협으로 인식했고 2020년 이후 '3대 악법'을 제정하며 남한식 표현과 문화 유입을 강력히 차단했다"며 “2024년 1월 남북 관계 단절 선언은 이러한 흐름의 종착점"이라고 말했다. 핵 정책과 관련해서는 “북한은 이미 핵 보유를 전제로 체제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핵을 쓰지 않는다'는 논리를 사용했지만,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을 핵 사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내부 단속과 대외 억지를 동시에 겨냥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향후 북한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그는 “북한 외교의 약 70%는 러시아에 집중돼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이후 군사·기술·경제적 이득을 얻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남북 대화나 본격적인 대미 협상이 재개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군축 회담 차원의 접근을 시도할 경우 북한이 협상에 나설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두 발표는 같은 북한 체제를 두고도 경제적 취약성과 권력 안정이라는 상반된 축을 강조했지만, 공통적으로 북한 문제가 단순한 군사·외교 사안이 아니라 구조적·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과제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참석한 양국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이러한 상반된 분석이 오히려 미·일·한 협력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고 평가했다. 군사적 억지와 제재뿐 아니라 에너지·경제·정보 유입을 아우르는 입체적 접근 없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구축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 무로오카 데쓰오 전 일본방위연구소 이론연구부장은 북한의 '2국가론'과 핵 전략을 단순히 남북관계 차원의 문제가 아닌, 동북아 질서 전반을 재편하려는 전략적 신호로 해석했다. 그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적 공존 관계'로 재정의함으로써, 향후 미·일·한 안보 협력 구도에 균열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부 일본 측 토론자는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체제 생존 수단을 넘어 협상 지렛대이자 국제 질서 내 지위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북한이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의 복합 위기를 활용해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일본·미국 간 정책 공조의 빈틈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측에서는 또 대북 접근법을 둘러싼 한·미·일 간 시각 차이 역시 주요 변수로 언급됐다. 군사적 억제와 제재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위기 관리와 오판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대화 채널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는 김병연 교수의 '경제 제재의 구조적 효과' 분석, 남성욱 교수의 '북한 권력 구조와 전략 계산' 분석과 맞물리며,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접근법의 다층성을 부각시켰다. 토론에 참여한 전인범 예비역 육군 중장(전 특수전사령관)은 에너지와 안보를 결합한 전략적 시각에서 한미일, 나아가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장군은 “AI 시대의 핵심은 결국 에너지이며, 북극항로 대응과 해양 안보를 고려하면 핵추진잠수함과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도 자원과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전략적 판단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파나마운하 영향력 확대와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 역시 미국의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장군은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우선' 기조를 보이고 있지만 동북아를 포기한 것은 아니며, 다만 아시아 국가들과의 직접적인 전쟁은 극도로 꺼린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과는 다르고 일본과는 전략적·제도적으로 유사한 국가"라며 “미국의 중재 없이도 한일이 안정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과거의 피해의식에 머물러 있지만, 상징적 화해와 미래지향적 결단이 이뤄진다면 한일 협력은 미국을 능가하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장기적 목표로서의 한일 협력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의 폐회 발언에서는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일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이 강조됐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후원한 이종원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상임이사는 “그동안 한일 관계는 항상 미국이 가운데 있는 구조였고, 상호 불신 속에서 미국이 없는 한일 협력은 거의 없었다"며 “국가 간 협력은 공동의 문제나 이익이라는 절박한 계기가 있을 때 이뤄지지만, 지금까지 한일 간에는 그러한 계기가 분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이사는 최근 국제질서가 다자주의에서 자국우선주의, 미·중 패권 경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다자주의의 쇠퇴는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킬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한일 협력을 강화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의 '두 국가론'과 남한 문화 차단, 내부 통제 강화 움직임을 두고 “체제 내부의 불안정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을 반드시 포함하지 않더라도, 북한 체제 변화라는 변수를 염두에 두고 일한·한일 간 협력의 기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총괄 기획한 이애리아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은 북한 문제를 군사·외교 차원을 넘어 경제, 에너지, 지정학을 아우르는 구조적 문제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와세다대 일미연구소라서 개최할 수 있었던 뜻깊은 행사였다. 앞으로도 미·일·한 협력과 동북아 평화 구축을 주제로 한 학술·정책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해상풍력 허들] 영국, 한 사업에만 설치선 80척 투입…한국은 겨우 9척 보유

해상풍력 건설에 투입되는 전용 선박 수가 해외 주요국과 한국 사이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영국과 대만 등 해상풍력 선도국에서는 단일 프로젝트에만 수십 척의 선박이 동원되는 반면, 한국은 현재 해상풍력 전용 선박을 9척만 보유하고 있다. 아직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기업들이 해상풍력 선박 확보에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글로벌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 클락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 운영을 시작한 설비용량 1300메가와트(MW) 규모의 '혼시(Hornsea)2' 해상풍력 사업 건설에는 80척 이상의 선박이 관여했다. 이중 풍력터빈설치선(WTIV) 4척, 설치지원선(CTV) 총 27척, 해상케이블설치선(CLV) 9척, 유지보수를 지원하는 'W2W'와 'CSOV' 선박이 각각 9척, 6척 동원됐다. 이외에도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상풍력 선박인 중량물운송선(2척), 앵커핸들링선(7척), 대기선박(9척) 등 다양한 선박들이 투입됐다. 대만에서도 300MW로 건설된 포모사(Formosa)2 해상풍력 사업에 50척 이상의 선박이 건설 과정에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해상풍력은 단순히 풍력터빈 설치선(WTIV) 몇 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조사·기초·설치·케이블·시운전·운영(O&M) 전 단계에 걸쳐 다양한 선종이 동시에 투입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WTIV는 해상에서 풍력터빈을 직접 설치하는 핵심 선박이지만 최근 터빈이 15MW 이상으로 대형화되면서 초대형·고사양 선박 확보가 필수가 되고 있다. CLV는 발전기 사이를 잇는 인터어레이 케이블과 육상으로 연결되는 수출 케이블을 설치한다. CTV는 육상과 해상 사이에서 기술 인력을 수송하며 한 프로젝트에 수십 척이 동시에 활용된다. SOV나 CSOV는 해상에 체류하며 시운전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선박으로 해상풍력의 장기 운영 단계에서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클락슨 관계자는 “해상풍력은 설치선 몇 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산업"이라며 “여러 선박이 동시에 투입되지 않으면 사업 지연과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해상풍력 선박 보유 현황은 아직 초기 단계다. 현재 국내에서 해상풍력에 투입 가능한 전용 선박은 총 9척으로 이 가운데 핵심 선박인 WTIV는 10MW급 2척에 불과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0년 이전 WTIV 선박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간에서는 한화가 15MW급 대형 WTIV를 건조 중이며, 2028년 6월 신안우이 해상풍력 단지 투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한국전력과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15MW급 WTIV를 2029년 투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통해 2030년 이전 15MW 이상급 WTIV 2척을 확보하고 2030년 이후 민간에서 2척을 추가로 확보해 총 6척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4000MW 수준의 해상풍력 보급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WTIV 확보 계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WTIV 외 선박 보유 현황은 CLV 4척, CTV 7척 수준이며, SOV는 사실상 미보유 상태다. 해외와 비교하면 설치선뿐 아니라 케이블·운영·지원 선박 전반에서 격차가 크다는 평가다 연간 WTIV 기준으로 4000MW 규모를 확보하더라도 그 외 선박이 충분하지 않으면 해상풍력 보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선박을 사전에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외에서 고가로 선박을 임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해상풍력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 기업들이 선박 확보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며 “정부가 해상풍력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명확한 추진 의지를 보여야 기업들도 선박 확보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신규원전 후보지 접수하세요”…한수원, 공모 개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원전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의 부지 확보를 위한 후보부지 유치공모를 착수했다고 30일 밝혔다. 신규원전 후보부지 유치공모는 지자체 자율유치 방식으로 추진되며, 한수원은 원활한 유치공모 진행을 위해 공모절차, 일정, 신청방법 등이 담긴 공모문을 30일 한수원 누리집(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신규원전 후보부지 유치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의 동의서류를 포함한 '유치신청서'를3월 30일까지 한수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후 신청 부지에 대한 기초조사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접수가 마무리되면 한수원은 6월 25일까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 선정 평가위원회를 통해 각 후보지의 부지 적정성, 환경성, 건설 적합성,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선정 결과는 평가 마무리 후 일주일 이내 발표될 예정이다. 원전 업계에서는 부산 기장, 울산 울주, 경북 경주 및 영덕 등이 후보지로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한수원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후보부지 선정을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 평가위원회를 운영중이며, 부지 적정성과 환경성, 건설 적합성, 주민 수용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신규원전 후보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선정된 부지는'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 지정(부지확정)을 신청할 예정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LX인터,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작년 영업이익 급감

LX인터내셔널이 2025년 매출 16조7063억원, 영업이익 292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0.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40.3% 감소했다. 인도네시아 AKP 니켈 광산 등 주요 자산 생산량 증가 및 트레이딩 물량 확대, 공격적인 영업 활동으로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이어갔다. 자원 및 물류 시황 하락 여파로 영업이익은 줄었다. 2024년 톤당 평균 135달러였던 호주탄(NEWC) 가격은 2025년 106달러로, 인도네시아탄(ICI4)은 54달러에서 46달러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해상운송 운임지수를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2496포인트에서 1588포인트로 36% 급락했다. LX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올해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 주요 자원 생산국들이 공급을 조절하는 기조를 이어가면서, 전반적인 자원 시장은 지난해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LX인터내셔널은 니켈·보크사이트 등 신규 자산 확보, 트레이딩 사업 기회 발굴, 신성장 사업 분야에서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 창출에 주력할 계획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LNG 시장…낡은 제도에 발묶인 한국

미국의 공급 확대에 힘입어 올해부터 글로벌 LNG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민간의 LNG 수입비중이 20%를 넘어 30%로 향해 가고 있다. 이처럼 LNG 시장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나, 국내 기업들은 오래된 제도에 발이 묶여 신규 사업, 신규 지역 진출에 망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시장 선진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 보고서에서 전 세계 LNG 생산량은 2025년에 이어 2026년에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2025년 전 세계 LNG 생산량은 전년보다 약 7%(380억 입방미터) 증가했으며, 이 중 약 4분의 3이 하반기에 집중됐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플라퀘민스 LNG 플랜트가 연간 LNG 공급량 증가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2026년 LNG 생산량은 전년보다 7% 이상(400억 입방미터 이상) 증가하며,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가 전체 증가분의 8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가스 공급 증가로 인해 중국과 아시아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전 세계 가스 수요 증가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천연가스 수요는 2026년까지 4% 증가해 전 세계 수요 증가분의 약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지역의 천연가스 수요는 대체로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중남미 지역은 수력발전량 증가에 힘입어 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수요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가스 수요가 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유라시아 지역은 평균적인 기상 조건으로 복귀한다는 가정 하에 수요가 3.5%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수요는 산업 및 전력 부문의 가스 사용량 증가에 힘입어 3.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LNG 생산 및 공급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2025년 미국에서는 연간 800억 입방미터(bcm) 이상의 LNG 액화 설비 투자가 최종 확정됐는데, 이는 미국 LNG 산업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해당 LNG 프로젝트에는 △루이지애나 LNG △코퍼스 크리스티 8&9호기 △CP2 1단계 △리오 그란데 LNG 4호기 △포트 아서 2단계 등이 포함된다. 미국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힘입어 세계 LNG 시장 점유율이 2025년 약 25%에서 2020년대 말에는 약 3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에는 세계 모든 시장에서 천연가스 거래량과 허브 유동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헨리허브(Henry Hub) 거래량은 8% 증가했고, 유럽연합과 영국에서는 약 17%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아에서는 중국의 LNG 현물 구매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가스 파생상품 거래량이 35% 증가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지속적인 가스시장 성장은 가스발전 수요의 단기 변동성 증가와 지역 가스 시장의 상호 연결성 증대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며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더욱 정교한 헤지 전략과 선물 가격 곡선을 따라 더욱 활발한 거래가 필요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25년 LNG 수입량은 4671만7962톤으로 전년보다 0.9% 증가했다. 수입량은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이 가운데 가스공사 수입량은 3428만톤, 민간 직수입량은 1244만톤으로 각각 74%, 26% 비중을 보였다. 직수입 물량은 2021년 862만톤에서 2025년 1244만톤으로 144% 증가했다. 직수입 물량 중 발전용은 739만톤으로 전년보다 0.4% 증가했고, 산업용은 505만톤으로 전년보다 3.8% 증가했다. 직수입 발전용 물량 중 발전공기업은 103만톤으로 전년보다 13.7% 감소했고, 민간발전은 636만톤으로 전년보다 3.1% 증가했다. 그동안 LNG 시장은 일부 수출국의 독점으로 운영돼 왔지만, 이제는 수출국이 크게 늘면서 수출국이 수입처에 적용했던 도착지 제한, 재판매 금지, 무조건 구매(테이크 오아 페이) 등의 규제가 대체로 사라지게 됐다. 이로 인해 LNG는 단순한 연료 및 원료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업화가 가능한 상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안정적 공급' 위주의 낡고 보수적인 규제로 인해 LNG 사업자들의 활동영역을 제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1위이자 글로벌적으로도 3위의 LNG 수입자인 한국가스공사는 '국내 시장의 안정적 가스 공급'을 최우선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어 사업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연간 3400만톤의 LNG를 수입하면서도 확보 물량을 다른 곳에 판매하는 트레이딩 물량은 거의 없다. 또한 '안정적 공급 의무'에 발이 묶여 있다보니 예를 들어 민간 직수입자의 갑작스런 수입 중단으로 국내 공급이 부족할 경우 가스공사는 의무적으로 이 공백을 메꿔야 하는데, 이럴 경우 비싼 물량을 사와야해 손실로 이어진다. 공기업 가스공사는 정부에서 정한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에 따라 물량을 수입해야 해 최근과 같은 저가의 기회가 와도 더 많은 물량을 구매하는데 한계가 있다. 목적사업도 가스에 한정돼 있어 발전 등 연관사업을 영위할 수 없어 부가가치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민간 LNG 직수입자들은 수급 의무는 적지만, 수입 용도는 발전용과 산업용으로 한정된다. 또한 주배관을 이용할 시 사실상 경쟁자인 가스공사의 허가를 받아야 해 이용에 한계가 있다. 직수입 물량으로 발전까지 하는 민간 기업들은 가스공사 단가보다 저렴하게만 수입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지금까지 많은 수익을 거뒀지만 '체리 피킹'이라는 비난과 영역의 한계로 추가 성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과 변화를 거듭하는 LNG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거버넌스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전력시장도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변화를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전기위원회라는 중립적 거버넌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를 본받아 지난해 국회에서 가스위원회를 설립하거나 아니면 전기 및 열 등과 통합한 에너지위원회 설립 방안이 논의됐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체된 상태이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스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며 “공기업 통합방안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기업의 역할과 시장 제도 논의도 같이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스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LNG 저장시설은 현재 88기(1409만㎘)를 운영하고 있으며, 23기(536만㎘)를 건설할 예정으로, 다 지어지면 총 111기(1945만㎘)가 된다. 천연가스 주배관망은 5346㎞이며 끝과 끝이 연결돼 있는 환상망으로 구축돼 어디서든 인입과 인출이 가능하다. 또한 도시가스 공급관도 5만5000㎞ 구축돼 전국 도시가스 보급률은 85%에 이른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지역난방공사, 열에너지공사로 확대·개편 법안 발의

한국지역난방공사를 한국열에너지공사로 확대·개편해 국가 차원에서 버려지는 열을 종합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은 30일 '한국열에너지공사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열에너지는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의 48%를 차지하며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29%가 열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열에너지는 전기나 가스와 달리 국가 차원의 통합 관리 체계가 부재해 탄소중립 전략에서 핵심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분절돼 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박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에 따르면 열에너지공사는 △미활용 열에너지의 통합 회수·자원화 △부문별로 분절된 열 공급망의 연계 △전력–열 변환(P2H)을 통한 에너지 계통 안정화 등 국가 열에너지 관리의 핵심 기능을 전담하게 된다. 박 의원은 “열에너지는 이미 우리 에너지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기나 가스와 달리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는 부재했다"며 “열에너지공사는 흩어져 있던 열에너지를 통합 관리해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후에너지단상] AI·로봇 시대의 기본소득과 에너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 발전으로 향후 10~20년 내 일하는 것이 선택사항이 되는 사회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와 로봇이 생산성을 무제한으로 증폭시키면서 상품과 서비스의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하고 기존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넘어선 '보편적 고소득(UHI)' 사회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AI 혁명의 가장 큰 병목으로 전력 인프라를 지목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정, 서버와 냉각시설, 로봇 공장은 모두 전기 없이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망은 당장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로봇 도입에 반대하며 집단 행동에 나선 장면은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장 자동화뿐 아니라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 역시 AI로 인해 곧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술 발전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익이 소수 기업과 자본에만 집중될 경우 사회적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에너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AI의 핵심 인프라인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이를 연결하는 송전망 건설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소유권을 가지자는 주장이다. AI와 로봇이 사용하는 전기를 국민이 소유한 인프라에서 생산하고 그 수익이 배당 형태로 돌아온다면 이는 일종의 '에너지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햇빛소득마을'은 마을 공동체가 직접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하고 그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모델이다. 정부는 약 3만8000개 리(里)를 대상으로 올해부터 매년 500개소 이상, 2030년까지 2500개소 이상의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올해 투입될 국비만 약 5500억원에 달한다. 국민성장펀드 사업으로 선정된 신안우이 해상풍력 발전사업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총 사업비 3조40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첨단전략산업기금이 7500억원을 장기 대출 형태로 투자한다. 이 사업은 주민참여로 발생하는 연간 약 250억원 규모의 추가 수익 전액을 지역주민과 공유하는 '바람소득' 구조로 설계됐다. 송전망은 이번 국민성장펀드 사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포함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송전 시스템은 구매 보장이 되는 사업인데 왜 한국전력만 빚을 내서 하느냐"며 “민간 자본과 국민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은 에너지 기본소득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재생에너지의 날 행사에서 “기존 원전과 석탄발전소는 대기업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재생에너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나서야 한다"며 “100만 재생에너지인이 아니라 언젠가는 5000만 재생에너지인이 되는 사회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에너지 배당 모델이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AI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기를 누가 소유하고 그 수익을 얼마나, 어떻게 나눌 것인가. AI 시대의 기본소득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설계의 문제로 들어섰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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