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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공정데이터 AI 분석으로 성능 극대화, 불량률 최소화”…차세대 태양전지 개발 심장부를 가다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한 시설에서는 국내 태양광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준공된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다. 지난 22일 찾은 연구센터 내부는 연구실이라기보다 실제 태양전지 공장에 가까웠다. 에어샤워를 지나 클린룸에 들어서자 웨이퍼들이 자동화된 제조 라인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실리콘, 웨이퍼는 여러 공정을 거치며 셀로 완성되고 이후 모듈 라인에서 실제 상용 제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조립된다. 태양광 모듈의 태양광 발전설비 부품의 최종 완성품이다. 연구센터는 연면적 약 2400평 규모로 50메가와트(MW)급 태양전지 제조 라인과 100MW급 대면적 태양광 모듈 파일롯 라인을 갖췄다. 셀·모듈 제조는 물론 신뢰성 평가, 소재·부품·장비 검증까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곳에는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퍼크(PERC) 태양전지뿐 아니라, 차세대 주력 기술로 꼽히는 이종접합(HJT) 태양전지 제조 라인도 구축돼 있다. HJT 태양전지는 실리콘 태양전지를 기반으로 고효율 구조를 구현할 수 있어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접합하는 탠덤 태양전지의 하부 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탠덤셀은 단일 접합 태양전지의 효율 한계로 꼽히는 22%를 넘어 목표 효율 35% 수준의 초고효율 상용화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현장에서 만난 센터 관계자는 “이곳 장비들은 대부분 양산급으로 구성돼 있어, 기업이 개발한 공정이나 장비를 실제 공장에 투입하기 전 전 주기 검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시간당 약 2000장 규모의 처리 능력을 갖춘 자동화 라인은 연구용 실험을 넘어 양산 조건에서의 공정 안정성과 수율을 점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연구센터의 또 다른 강점은 데이터 기반 공정 최적화다. 웨이퍼마다 고유 인식번호를 부여해 공정 전 단계에서 색상, 박막 두께, 광발광(PL) 특성 등의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 데이터는 서버로 실시간 전송돼 공정 이상 감지와 효율 개선에 활용된다. 연구진은 “공정 데이터가 쌓일수록 인공지능(AI) 기반 공정 최적화 가능성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센터 관계자는 “차세대 태양전지 효율이 현재 22% 수준에서 35%까지 올라가면 같은 면적에서 훨씬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며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넘어 기술 경쟁으로 승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센터는 오는 4월 페로브스카이트 공정을 위한 드라이룸과 분석실을 추가 구축할 계획이다. 해당 공정까지 완성되면 실리콘 태양전지를 넘어 탠덤 태양전지까지 아우르는 통합 실증 플랫폼이 구축돼, 국내 태양광 산업의 기술 자립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인터뷰] 이창근 에너지기술硏 원장 “에너지 기술은 경제이자 안보…중국산 저가 공세 K-energy로 돌파”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향한 국민의 요구가 달라지고 있다. 논문과 연구 성과를 넘어 개발에 성공한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출연연 운영방식을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서 임무중심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즉, 과도한 수주 경쟁과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를 막고, 기초·원천 기술 개발 및 국가 전략적 임무 수행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에너지 기술 분야의 최일선에 서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창근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은 지난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에기연 정관에 명시된 임무는 '기술개발 성과 확산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고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K-Energy'를 실현해 실제 시장에서 돈이 되게 하고 수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정부 기조에 맞춰 내놓은 해법은 '시장적기 진입과제'다. 출연연 기술은 종종 성숙도가 낮아 특히 대기업이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는 “논문 수준의 성과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제품으로 만들면 병목 구간이 있다"며 “그 중간을 메워 성능을 보여주면 기업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에기연은 이 같은 취지로 시장적기 진입과제를 37개 운영했고, 1년 반 동안 8건의 기술이전과 1건의 창업 성과를 냈다. 지난해 7월에는 55억원 규모로 우주 태양전지 개발 기업 '플렉셀스페이스'에 차세대 우주용 이중접합 태양전지 기술 이전도 성사시켰다. 그러나 연구개발을 이어가기에는 산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에너지 전환의 핵심 품목이 중국산 저가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중국이 보조금 기반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팔아도 남지 않는 가격 구조에서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국산 기술은 산업과 시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며 “유럽·미국처럼 시장을 일정 부분 보호하는 장치 없이 국산화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AI'와 '에너지 고속도로'를 핵심 아젠다로 내건 점은 에기연에 기회이자 과제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산자원관리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원장은 이 과정에서 인버터·컨트롤러 등 핵심 설비가 해외 의존 구조로 굳어질 경우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너지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로 연결돼 있고 운영 데이터가 외부로 넘어가면 안보 문제가 된다"며 “국내 기술로 부품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전에 위치한 에기연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를 직접 소개하며 차세대 태양전지인 텐덤셀 개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텐덤셀은 실리콘셀과 페로브스카이트셀을 이중으로 쌓아 발전효율을 극대화한 차세대 태양전지로, 목표 효율(35%)은 기존 실리콘셀(22%)의 약 1.6배에 달한다. 같은 면적에 텐덤셀을 설치할 경우 기존 실리콘셀보다 1.6배 많은 태양광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지 확보가 어려운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면적에서 발전량을 최대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 원장은 “텐덤셀 개발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도 우리 기술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는 오는 4월 텐덤셀을 보다 큰 규모로 연구할 수 있도록 추가 설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 PBS제도 전환에 따라 연구기관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바뀌고 있나. ▲ 출연연 정관에 '에너지 기술개발 성과 확산을 통해 국가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연구개발 자체는 출연연이 강점이 있다. 기술이전이나 성과 확산도 많이 해왔다. 그런데 이전된 기술이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돈이 되고 성장동력이 되었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그 지점이 성과의 핵심이 됐다. - 왜 부족했다고 보는가. ▲ 국민의 눈높이가 바뀌었다. 출연연이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눈에 보이는 경제적 결과가 무엇이냐를 묻는다. 항공우주 분야는 발사체 같은 상징적 성과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특정 기술이 수출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에너지 분야도 이제는 산업이 기술을 가져가서 상품화하고 수출까지 가는 구체적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PBS는 과제가 파편화되기 쉽고, 출연연이 국가 임무 지향으로 큰 과제를 끌고 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전략연구사업은 예산을 올리는 대신 대형 과제로 묶어 목적과 임무 중심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방향이다. - 연구기관의 기술이 기업으로 잘 안 넘어간다는 지적도 있다. ▲ 기술 성숙도 문제다. 논문 상으로는 아주 좋지만, 막상 제품으로 만들면 병목 구간이 생긴다. 실험실에서 가능했던 것이 생산·현장·안전·규격·유지보수 단계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그걸 연구자가 다 알기 어렵고 그러면 대기업은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출연연에 '시장성 없는 기술'이 쌓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 본다. - 병목 구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 시장 진입을 막는 중간 구간을 메워주는 게 과제다. 예산을 투입해 이 기술을 제품 수준으로 올려보자는 목표로 잡는다. 단순히 연구자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 비즈니스 모델 전문가 등과 함께 평가·자문 체계를 붙였다. 그러면 연구자들도 시장 관점에서 보완점을 알게 되고 기업이 가져갈 만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 실제 성과는 어느 정도였나. ▲ 지난해에 시장적기 진입과제를 37개 운영했고 1년 반 만에 8건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그중 하나는 창업으로 이어졌다. 배터리 관련 분야였고 초기 기업가치 50억원을 달성했고 5억원의 외부 투자도 붙었다. 기술이전은 연구성과가 국민에게 가는 중요한 통로이고 연구자가 직접 나가 창업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다. - K-Energy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해준다면. ▲ 에너지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자는 뜻이다. 예를 들어 태양광은 모듈만이 아니라 인버터, 운영·제어, 저장장치(ESS), 계통 연계까지 패키지로 묶여야 한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이 패키지가 기업이 가져갈 수준으로 완성돼 해외에 수출되면 그게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K-Energy'다.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 123개 중 에너지 분야가 10개가 넘을 정도로 에너지 분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 태양광은 밸류체인이 한때 한국에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보조금 기반으로 덤핑 수준의 가격을 만들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우리가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구조가 됐다. 가격이 반의 반 수준까지 내려가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 결국 국내 기업들이 무너지고 밸류체인이 사라져갔다. 지금은 태양광의 핵심 부품인 셀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페로브스카이트셀을 이용한 텐덤셀 개발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도 우리 기술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배터리 연구에서 에기연이 집중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 에기연은 대기업들이 아직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차세대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재 위험이 없는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 문제로 ESS 보급이 한차례 멈춘 경험이 있다. 현재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하는 액상 배터리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불이 나지 않는 저장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풍력 발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은 초대형화 경쟁에서 밀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 국내 기업도 8메가와트(MW), 10MW 터빈을 개발을 했지만 해외는 15~16MW, 중국은 18~20MW까지 간다. 개발은 했는데 시장에 못 들어가면 다음 세대 개발이 막힌다. 제품을 얼마나 팔았느냐가 다음 연구개발의 동력인데 팔리지 않으면 지속이 어렵다. 에기연은 현재 제주도에서 풍력연구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어느 정도 만들어주고 산업을 보호해줘야 한다. - 재생 확대 과정에서 가동중단(출력제어) 문제도 크다. ▲ 햇빛과 바람이 좋을 때 전기가 넘치면 출력제어를 해야 한다. 출력제어를 줄이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고 전력망도 깔아야 하며 무엇보다 수요·공급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분산자원관리 기술이 핵심이다. 지금은 사람이 직접 하는 단계인데 비효율을 줄이려면 결국 인공지능(AI) 기반 운영이 필요하다. - 외국산 인버터·컨트롤러 같은 설비가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로 연결돼 있다. 운영 데이터가 외부로 넘어가거나 특정 업체가 컨트롤룸에서 돌아가는 설비를 원격으로 모니터링·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단순 산업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 이슈다. 국산 인버터, 그리드포밍 기술, 운영·제어 체계를 국내에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 새 정부의 'AI' 아젠다와 에너지의 관계 속에 어떤 과제를 할 수 있나 ▲ 두 갈래다. 하나는 '에너지를 위한 AI'로, 발전·산업·건물 분야의 효율을 최적화하고 자율운전으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AI를 위한 에너지'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돌아가고, GPU가 발생시키는 열을 냉각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든다. 전력 공급 안정성과 냉각 효율(PUE 개선) 기술 등 새로운 과제들이 나오고 있다. AI 시대에서 시장적기 진입과제 같은 제도로 기술 성숙도를 끌어올리고 정책적으로는 국산 기술이 시장에서 숨 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에기연이 그 흐름을 만드는 연구원이 되겠다. 대담=윤병효 부장 정리=이원희 기자 □ 이창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프로필 ◇약력 △1959년생 △충북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 석사 △미국 리하이대학교 화학공학 박사 △1985년 에기연 입사 △에기연 고효율청정에너지연구본부장 △에기연 기후변화연구본부장 △에기연 부원장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운영위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의원 △한국화학공학회 산학이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현)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계속 지연되는 공공기관장 인선…“지방선거 공천 불발 대비용” 의혹

에너지 공공기관장 인선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정치권·업계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인사 공백이 1년 이상 이어지는 기관까지 나오자, 여권 내 6월 지방선거 공천 결과를 염두에 둔 '시간 끌기' 아니냐는 관측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22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의 자회사로, 발전소 정비업무를 맡고 있는 한전KPS는 2024년 12월 주총을 통해 신임 사장 최종후보자가 선임됐으나, 마지막 절차인 대통령 임명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아 1년 넘게 현 사장의 연임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최종후보자 철회를 위한 이사회가 개최됐으나 의결이 불발되기도 했다. 가스공사의 자회사로, LNG 설비의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한국가스기술공사도 1년 이상 사장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현 최연혜 사장이 지난해 12월 초 임기가 만료돼 신임 사장 공모에 들어갔으나, 후보자들에 대한 노조의 강한 반대로 결국 재공모로 결정됐다. 이로 인해 최소 2달 이상은 최 사장의 연임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임 사장 공모에 들어간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도 인사검증이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선 재공모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에너지 업계에선 이 같은 신임 기관장 인선이 장기화 되고 있는 양상에 의아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에너지 공기업 인선을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겠다"며 기관장 공백기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관장 인선 지연은 부처 단계가 아닌 최종 임명권이 있는 청와대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장 임명은 기관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최종후보자를 선정하면 이후 관할부처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 청와대가 인선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로는 지방선거 공천이 거론된다. 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장 자리가 이미 정치인들의 독차지가 된 상황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정치인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미 “6월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여당 인사들의 향후 거취를 고려해 인선을 미루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인선이 늦어질수록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커진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는 사실상 공공연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여권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요즘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출마 예정자들이 선거 캠프를 꾸리고 있는데 구인난 등으로 캠프 운영이 쉽지 않아, 보험 삼아 공공기관장에 지원해 놓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며 “당내 경선이 끝날 때쯤 각자의 진로가 정해져 공공기관장 인사도 진행될 전망"이라고 귀뜸했다. 문제는 인사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공공기관의 경영 안정성과 정책 집행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환, 전력망 확충, 연료 수급 안정 등 굵직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대행 체제'가 장기화되는 것은 책임 경영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 공기업은 정책과 산업 현장을 동시에 책임지는 조직"이라며 “기관장을 사실상 '대기 상태'로 두는 인사 운영은 공기업을 정무적 완충지대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제는 인선 지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면,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정부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선 이후를 기다리는 인사'라는 의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한정애, 에너지·방산 수출 뒷받침 ‘전략수출금융기금’ 입법 추진

에너지·방산 등 국가 전략 산업의 해외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수출금융기금' 조성이 본격 추진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병·외교통일위원회)은 23일 에너지·방산 등 전략 수출 산업 기업의 초대형 해외 프로젝트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수혜 기업의 이익 일부를 수출산업 생태계 지원 재원으로 활용하는 내용의 '전략수출금융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 4건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은 이재명 정부의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 포함된 '전략수출금융기금' 신설 구상을 입법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대규모·장기·고위험 해외 수주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금융 공백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메우고, 그 성과를 다시 산업 전반으로 환류시키는 구조가 핵심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방위비 지출이 확대되면서 에너지·방산 분야를 중심으로 초대형 수출 프로젝트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보험 등 금융 지원 역량이 수주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대규모 수출 계약의 경우 수입국이 계약 조건으로 구매자 금융이나 절충교역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국 정부나 수출신용기관이 직접 금융 지원에 나서 자국 기업의 수주를 뒷받침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수출 금융기관의 신용공여 한도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려할 때, 현행 제도만으로는 대규모 수출을 적시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특히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수출 확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금융 지원 여력 부족이 수주 경쟁력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가가 전략 수출 프로젝트에 정책금융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한 수혜 기업의 이익 일부를 다시 수출 금융과 산업 생태계 지원에 활용하도록 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업 중심의 수출 구조를 중소·중견기업까지 확산하고, 금융권까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한정애 의원은 “우리 기업의 수출 수주를 보다 충분히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신설하고, 국가적 지원으로 발생한 이익 일부를 다시 수출 산업 생태계로 환류시키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며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돕고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에너지·방산 등 전략 수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적·입법적 뒷받침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삼천리 이태호 사장, 서울부동산포럼 9대 회장 취임

삼천리에서 부동산 전문가인 이태호 사장이 서울부동산포럼(SREF)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은 22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루비홀에서 '제23차 정기총회 및 제9대 회장 취임식'을 열고 이태호 삼천리 미래사업 사장을 제9대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포럼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년간 포럼을 이끌어온 제8대 송종헌 회장(GRE자산운용 대표)의 이임식과 새롭게 선임된 제9대 이태호 회장의 취임식 순으로 진행됐다. 제9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태호 신임 회장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영학 석사, 수원대학교 건축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삼천리 미래사업 사장과 한화갤러리아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특히 이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감사, LH공사 사업전략자문위원, 국민연금 대체투자심의위원, 주택도시기금 자산운영위원 등 공공과 민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자문 활동을 통해 부동산 금융과 개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왔다. 이태호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최근 침체된 부동산 시장 환경 속에서 서울부동산포럼이 부동산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회원 간 지식 공유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포럼의 위상을 높이고 부동산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사)서울부동산포럼은 부동산 개발, 금융, 학계, 법률 등 부동산 산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정책 제안과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국내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 단체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젊은층·남성서 두드러진 원자력 지지…“전력 현실 인식 차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실시한 원자력 관련 여론조사에서 젊은층과 남성 응답자일수록 원자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가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원자력이 위험하다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앞세워온 반대 진영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9.5%가 원자력에 대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이 47.9%, '약간 필요하다'는 응답이 41.5%로 집계됐다. 반면 '전혀 필요하지 않다'(2.8%)와 '별로 필요하지 않다'(4.3%)는 합계 7.1%에 그쳤다. 특히 남성 응답자의 원자력 지지도가 두드러졌다. 남성의 '필요하다' 응답 비율은 91.6%로, 여성(87.3%)보다 4.3%포인트 높았다. 남성 응답자 중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은 54.9%로 과반을 넘겼다. 반면 여성은 '약간 필요하다'(46.3%) 응답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매우 필요하다'는 41.0%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젊은층의 원자력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18~29세 응답자의 96.1%가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답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중 '약간 필요하다'가 53.0%, '매우 필요하다'가 43.1%였다.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0.7%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그동안 원전 반대 측에서 강조해 온 “원자력은 위험하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에너지"라는 논리가 실제 미래세대의 인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히려 청년층일수록 원자력을 기후위기 대응과 전력 안정성 확보를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원전 반대 논리는 주로 '미래세대 보호'를 명분으로 제시돼 왔지만, 정작 미래세대인 20대에서 원자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며 “이는 전력 수급 불안이나 전기요금 상승이 오히려 미래세대의 삶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조사 결과가 에너지 정책 논의의 전제 자체를 재점검할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본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젊은층의 높은 원자력 지지는 이념이나 감정이 아니라, 전력 현실과 산업 구조 변화를 고려한 합리적 판단에 가깝다"며 “미래세대를 내세운 추상적 위험론보다는, 어떤 에너지가 미래세대의 부담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원자력학회 “원전 없는 에너지 전환은 허상…12차 전기본, 현실 직시해야”

대한원자력학회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대해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원전을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에너지 전환은 정책이 아니라 위험"이라며 원전의 필수적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대한원자력학회는 최근 발표한 입장과 학술적 분석을 통해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무탄소 기저전원은 원전이 사실상 유일하다"고 밝혔다. 원자력학회는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변동성과 간헐성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명확히 지적했다. 학회는 “태양광·풍력은 전력 시스템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 기저전원과 계통 보완 수단이 없다면 대규모 정전 위험과 전기요금 급등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전의 '경직성' 논란에 대해서는 과장된 프레임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원자력학회는 “출력 조정 운전과 계통 운영 고도화를 통해 원전은 재생에너지 확대 환경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원전을 유연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기술 발전과 실제 운영 경험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신규 원전 필요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 학회는 “계속운전만으로는 중장기 전력 수요 증가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없다"며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원전 비중 유지·확대 없이는 탄소중립은 물론 산업 경쟁력 유지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경제성 논쟁에 대해서는 '시스템 비용'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발전 단가만을 비교하는 방식은 왜곡된 결론을 낳는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증가하는 백업 발전, 송전망 확충, 에너지저장장치(ESS) 비용까지 포함하면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은 더욱 분명해진다"고 설명했다. 원자력학회는 원전 축소의 대안이 결국 화석연료 확대나 전기요금 인상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경고했다. 학회는 “원전을 줄이면 전력 공백은 LNG 등 화석연료로 메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탄소 배출 증가와 요금 부담으로 국민과 산업계에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회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은 이념이나 여론이 아니라 물리와 시스템의 문제"라며 “전력 수요, 계통 안정성, 비용, 산업 경쟁력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시민사회 “신규 원전은 백년지대계…부실한 공론화로 성급한 결정 안 돼”

시민사회가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결정 추진에 대해 “백년지대계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을 부실한 토론과 여론조사로 성급히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윤순진·임성진·박진희 공동대표는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신규 원전 결정은 사람·환경·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국가 정책"이라며 “충분한 공론화와 기술적 검증 없이 추진되는 신규 원전 확정은 무책임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최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전원구성)' 제2차 토론회를 두고 “원전의 경직성 문제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 대안 제시 없이, 원자력계 패널들의 원론적 주장만 반복된 부실한 토론회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시한 출력감발 확대 및 향후 탄력운전 계획에 대해 “원전 경직성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마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국내 전력망에서 원전은 실시간 자동제어·원격제어가 불가능해 계통 안정성에 구조적 부담을 준다"며 “이는 향후 원전의 정상 가동이 어려워지고 좌초자산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핵규제위원회(US NRC)가 원전의 자동·원격제어를 금지하고 있고, 국내 APR1400 원전 역시 이러한 설계·안전 규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시민사회는 “원전 경직성과 전력망 안정 문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후부가 3천 명 규모의 ARS 여론조사로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무책임한 정책 결정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토론회 영상의 낮은 조회 수를 언급하며 “국민 대다수가 토론회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정책 근거로 삼는 것은 공론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해외 사례도 함께 제시했다. 프랑스와 핀란드는 대형 원전 불시정지에 대비해 주변국과의 광역 송전 연계, 대규모 예비력 분담, 전용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그럼에도 재생에너지 급증으로 장기적으로는 원전 출력감발과 좌초자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국은 고립 전력계통 구조 속에서 가스발전에 의존해 원전 불시정지 위험을 관리하고 있어, 재생에너지 확대 국면에서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정부에 △무책임한 여론조사 추가 실시 즉각 중단 △재생에너지 주도 전력망에서 원전 경직성의 구조적 문제 명확화 △고립 전력계통을 고려한 원전 좌초자산화 위험 분석 △미국 설계 원전의 탄력운전에 따른 안전성 심층 검증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전력망 안정 대책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은 막대한 공공예산 낭비와 사회적 갈등만 키울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과학적 검증과 책임 있는 공론화"라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기후위기라는 ‘면죄부’를 거둘 때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의 원인을 '기후변화' 혹은 '기후위기'라는 한 단어로 환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 유례없는 폭염, 대형 산불, 한겨울의 극한 한파까지—언론과 국민 대다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주범을 기후위기로 지목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기후 탓'으로 돌리는 거대한 담론 뒤에, 정작 우리가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이미 변했고,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엇인지 짚어보자.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위험기상 현상의 빈번한 출현'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실제로 기후변화 때문에 야기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지금보다 더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합리적인 결과를 토대로, 자연재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상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후 탓'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응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기후 대응책 역시, 막연한 위기감과 정서에 앞서 정밀하게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감성이 정책을 앞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렵지만 분명하다. 위험기상과 그에 뒤따르는 재난 속에서 '기후변화'라는 거인의 실체를 가능한 한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기후위기 이전에도 최고기온, 일 최대 강수량, 시간당 강수량과 같은 극값은 시간이 지나며 갱신되어 왔다. 이는 자연현상의 한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기후위기 시대에 극값 그 자체보다, 그 빈도와 강도가 과거의 추세와 비교해 어떤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는지이다. 충분히 축적된 기상·기후 데이터를 근거로, 그 변화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기후변화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인지 가려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만약 어떤 현상이 오로지 기후변화로만 설명될 수 있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대로 위험기상과 재난에 자연현상의 요소가 일부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즉시 취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단기간에 실행할 수 있는 대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2년 8월 8일, 서울 동작·관악·강남 일대에 시간당 141.5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이 폭우는 지금까지도 기후변화 없이는 과학적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한 걸음 뒤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는가? 만약 서울이 지금까지 경험해온 약 110mm 수준의 시간당 강수량에 머물렀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인가? 강남 한복판이 침수된 상황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계획되었던 강남 일대 '대도심 터널' 사업이 왜 지연되었는지, 그 이유라도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는가? 기후변화는 인류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거시적 과제다. 그러나 눈앞의 폭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기후 탓'이 행정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재난 대응과 더불어, 기후위기 시대에 숙고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은 에너지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정책 역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히 삼킨 음식이 머지않아 강력한 소화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국가 경제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포함해, 현실성과 실용성에 기반한 정밀한 검토와 계획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다.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충분한 점검과 준비 없이 세금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응과 에너지 정책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위에서 비로소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제는 '기후 탓'이라는 면죄부를 거둘 시간이다.

안호영 “이재명 대통령 용인 반도체 발언 환영…에너지 전환·균형발전 분명한 방향 제시”

전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용인 반도체 관련 발언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께서 에너지 전환과 지방균형발전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전환의 방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며 “특히 '정부를 믿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주시면 거대한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발언은 반도체·에너지·지역균형발전 논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은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안 의원은 그동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안고 있는 전력·용수 확보 문제와 송전선로 갈등 등 구조적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그는 “이 문제는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산업과 에너지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용인 반도체 문제를 이전 찬반이나 지역 간 갈등의 프레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밝혔다. 특히 안 의원은 “이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준비"라며 “대통령이 제시한 '거대한 전환'의 방향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전북을 비롯한 지방이 반도체와 첨단산업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선제적으로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입지는 강요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전력과 용수, 부지와 인프라, 정주 여건과 산업 생태계가 준비된 곳으로 설득하고 유도한다면 기업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이제는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대안을 정부와 지역이 함께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며 “전북이 에너지 전환 시대에 부합하는 산업 입지이자 국가 전략 산업의 대안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회와 지역, 정부를 잇는 가교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에 발맞춰 전북이 '거대한 전환'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며 “이 과정에 도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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