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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부터 베란다 태양광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로드맵 윤곽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위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간척지·군사접경지역 등 대규모 부지부터 산업단지 지붕, 지역 마을, 아파트 베란다까지 활용 가능한 모든 공간을 총동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추진 물량을 단순 합산해도 목표 달성에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경기 시화·화옹지구, 파주 접경지역 등을 중심으로 GW급 대규모 태양광 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시화·화옹지구에는 약 3GW, 파주 일대에는 그 이상의 규모가 거론된다. 기존 최대 규모인 새만금 수상태양광(1.2GW)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인천 수도권 매립지에도 GW급보다는 작지만 수백 메가와트(MW) 규모 대규모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경기도 대단지를 포함해 여러 공공부지를 이용하면 2030년까지 최대 10GW까지도 늘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정부가 수도권에 주목하는 이유는 송전망 용량에 여유가 있어서다. 한국전력 재생에너지 연계 여유용량에 따르면 올해 기준 경기도는 약 107GW로, 전남(0GW), 전북(0.6GW), 충남(1.5GW) 등 지방 대비 압도적으로 크다. 다만 송전망 여유가 곧바로 설비 확대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송전된 전력을 최종 수요지까지 전달할 배전망 구축이 필요하고 지방자치단 규제와 부지 확보 문제도 여전히 변수다. 그럼에도 간척지, 군사접경지역, 수도권 매립지 등 유휴부지 규제가 완화될 경우 대규모 태양광 확대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곳이 시화·화옹지구다. 약 3000만평 규모 간척지로, 정부는 수도권 최대 재생에너지 잠재지로 보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지난 22일 현장을 방문해 “에너지 전환 방향은 확고하며 이제는 속도와 집행력의 문제"라며 조속한 사업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접경지역 역시 전략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기북부는 약 6GW 수준의 송전망 수용 여력을 갖추고 있다. 유휴부지가 넓고 민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반도체·AI 클러스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와 인접해 '지산지소'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규모 단지 외에도 중소형 분산형 모델도 병행된다. 산업통상부는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 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산업단지 지붕과 유휴부지에 총 6GW 보급 목표를 제시했다. 주민이 직접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은 2030년까지 2500개 조성, 최대 2.5GW 규모로 추진된다. 국회와 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해 전력망 우선 접속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도 10만 가구 보급 시 약 0.1GW 수준의 전력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누적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38GW 수준으로, 대단지·산단·마을·주택 물량을 모두 더해도 100GW 달성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풍력 역시 보급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목표대로라면 2030년까지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수준에 그친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경기도 대단지 최대 10GW, 산업단지 6GW, 햇빛소득마을 및 베란다 태양광 2.6GW,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등 총 28GW 수준이다. 기존 설비(38GW)를 더해도 약 66GW에 그친다. 이마저도 모든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는 가정 하의 수치다. 결국 추가로 약 30GW 이상을 공공과 민간이 별도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전력당국 관계자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실제 달성 여부를 떠나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정부 부처, 탄소중립법 초기에 가파른 감축목표 명시 반대 의견

정부 부처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초기에 더 빠르게 줄이는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명시하지 말 것을 국회에 의견으로 제출했다. 구체적인 목표는 향후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해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법에 5년마다 강력한 NDC를 규정할 경우,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정부가 위법 소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기획재정부, 재정경제부는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탄소중립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공동 의견서를 제출했다. 선형 감축이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해 2018년부터 매년 동일한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35년에는 2018년 대비 53%, 2040년 69%, 2045년 84%를 감축하게 된다. 이를 하한선으로 설정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추가 감축이 가능할 경우 시행령을 통해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주요 입장이다. 실제로 현행 탄소중립법에는 2030년 NDC를 35%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시행령에서는 이를 40%로 상향해 적용하고 있다. 다만 산업부, 기획재정부, 재정경제부는 기후부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기후부는 선형 감축을 하한선으로 두고 구체적인 목표는 시행령으로 정하자는 입장인 반면, 산업부 등은 선형 감축 외에도 후반부에 감축을 집중하는 시나리오도 검토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국회 기후특별위원회는 지난 16일과 23일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2030년 NDC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만 포함하고, 2031~2049년 감축 경로가 빠져 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2035년 NDC를 65% 이상, 2040년에는 85% 이상으로 명시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NDC를 설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 부처와 국민의힘이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제시하나 민주당은 국회 기후특위 공론화위원회 국민숙의단 결과를 근거로 초기에 감축을 강화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발표된 조사에서 국민숙의단의 77.9%는 2031~2050년 기간 동안 초기에 감축을 더 가파르게 하는 경로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후특위 활동이 다음달 말 종료되는 만큼,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충돌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단독] 혈세 3조 쓰고도 부실 플랜트 구축…“1달러 매각 이제 납득 간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3조원가량 손실을 본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 당초 포나인(99.99%)급의 고품질 전기동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로 알려져, 왜 1달러에 매각됐는지 궁금증을 자아냈으나 서서히 미스테리가 풀리고 있다. 전직 직원 등에 의하면 포나인급 제품은 시험실에서 아주 조금만 생산됐으며, 실제 상업제품의 순도는 시장경쟁력도 없는 저품질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산업통상부와 광업계에 따르면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운영사로 있던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를 지난해 말에 현지 기업에 단 1달러에 매각하고, 올해 3월에 정부 승인 절차까지 모두 완료했다. 계약 내용은 이달 말에 공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광해광업공단이 볼레오 프로젝트에 투자한 돈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총 3조1689억원이다. 투자손실률은 90%를 넘는다. 산업부와 공단 측은 매년 수천억원대의 손실과 막대한 부채 때문에 1달러 매각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본지의 볼레오 프로젝트 1달러 매각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에서 “매각 당시 볼레오 사업의 가치는 음(-)으로 평가돼 실질 매각가치가 없는 상황이었고, 거래를 위해 최소 명목가액인 1달러로 매매가를 설정했다"며 “2022년 이후 3차례 유찰(입찰자 전무)되는 등 인수 희망 기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매수의향자가 나타나 매매가는 1달러로 하되 매수자가 잔여 부채를 모두 부담하는 조건으로, 조속히 매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매각계획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볼레오 프로젝트의 현지 운영법인 MMB(Minera Metalurgica del Boleo)의 2024년 기준 경영실적은 매출액 1982억원, 영업손실 677억원, 당기순손실 3046억원이다. 재무 구조는 총자산 2986억원, 총부채 3조389억원으로, 2조7403억원 자본잠식 상태이다. 이 법인의 광해광업공단 지분율은 80.52%이다. 그동안 광해광업공단이 투자한 돈은 대부분 정제련 플랜트 구축에 사용됐다. 플랜트의 연간 제품 생산능력은 전기동(구리) 5만6700톤, 코발트 1700톤, 황산아연 2만5000톤이다. 특히 플랜트는 핵심 제품인 전기동을 포나인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설계됐다. 광해광업공단의 전신 중 하나이자 당시 볼레오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7년 발간한 50년사 책자에서 “볼레오 동 생산의 최종 형태는 가로 1m, 세로 1m, 두께 0.55cm~0.56cm, 무게 약 50kg의 순도 99.99% 전기동판이다"라고 소개했다. 산업부도 해명자료에서 “볼레오 사업의 제련 플랜트에서 2015년 순도 99.99%의 전기동을 생산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볼레오 플랜트의 포나인급 전기동 생산은 조작에 가까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볼레오 프로젝트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2015년 99.99% 전기동 제품을 생산한 것은 맞으나, 그것은 시험실에서 만든 것일 뿐, 절대 상업적 생산 제품이 아니다"라며 “거기 환경에서는 절대 포나인급의 전기동을 생산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관계자는 포나인급을 생산할 수 없는 이유로 진흙 섞인 저품위 광석을 꼽았다. 그는 “프랑스 기업이 고품위 광석을 모두 캐내고 저품위 광석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고, 여기에 노천광산은 진흙까지 범벅돼 있어 이를 정제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환경이었다"며 “볼레오 광산에 처음 갔을 때 한숨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광물자원공사의 상황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볼레오 플랜트는 2014년 9월 완공하고, 2015년 1월 시험생산한 뒤 7월에 첫 수출을 했다고 한다. 세계 어떤 제련회사도 설비 완공 후 몇 달만에 포나인급 제품을 상업 생산하기는 힘들다"며 “광업 및 금속업계 종사자라면 이 소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포나인급 제품 생산이 허위라는 사실은 볼레오 광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다. 홈페이지에는 생산제품과 원자량이 표기돼 있다. 원자량은 순도를 뜻한다. 그에 따르면 제품별 원자량은 구리 63.546(%), 코발트 58.933(%), 아연 65.38(%)이다. 60% 초중반 대의 순도로는 절대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참고로 세계 최고 품질로 평가받는 고려아연의 제품 순도는 아연 99.995%, 전기동(구리) 99.9935%이다. 홈페이지를 확인한 광업계 한 전문가는 “이 순도가 맞다면 1달러 매각이라는 사실이 납득이 간다. 즉, 전혀 쓸모없는 플랜트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광해광업공단의 감독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본지의 취재에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산업부 관계자는 “볼레오 플랜트가 포나인급이라는 것은 공단으로부터 보고 받은 것"이라며 “포나인급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단에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광업계에서는 혈세 3조원가량의 손실을 입힌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 투자 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필요 시 감사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에스토니아, 겨울 전력가격 급등 우려…韓과 협력해 ‘수출국 전환’

중동 사태로 겨울철 전력가격 급등을 우려하는 에스토니아가 한국과 협력을 통해 전력 수출국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2035년까지 전체 전력 생산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관과 에스토니아 기업청은 2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에스토니아 기후에너지부 관계자들과 관련 기업 6개사가 사절단 형식으로 방한해 참석했다. 사절단에는 에스토니아 국영 에너지 기업 '에스트 에네르기아'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솔루션 기업 '스켈레톤 테크놀로지' 등 6개사가 포함됐다. 스켈레톤 테크놀로지는 효성중공업과 협력해 ESS와 재생에너지를 연계하는 'e-스태콤(STATCOM)' 기술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에스토니아가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전력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 북유럽의 소국인 에스토니아는 현재 상당량의 전력을 주변 국가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마리아 베르톤 에스토니아 기후에너지부 부서장은 “에스토니아는 전체 전력 소비의 4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추가 투자를 통해 자국 내 에너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스토니아 전력청 관계자는 “태양광 발전량이 감소하는 겨울철에는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며 “수출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겨울철에는 풍력발전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참석한 에스토니아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같은 가스가격 상승이 재현될 경우, 겨울철 전력도매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녹색 전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는 현재 태양광 1.2GW, 풍력 0.7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2035년까지 태양광 1.6GW, 풍력 1.8GW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도 1.5GW 규모로 구축한다는 목표다. 마리 리스 쿠파 에스토니아 기업청 이사회 임원은 “에스토니아는 청정하고 안정적이며 회복력 있는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 구축에 있어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자연자본포럼 축사] 김민석 국무총리 “한국형 자연자본 공시 지침 마련할 것”

정부가 기업 자연자본 공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알렸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구의 날'인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 서면 축사를 통해 “기업의 자연 자본 공시에 필요한 데이터를 지원하고 한국형 자연자본 공시 지침을 마련하겠다"며 “녹색성장 혁신을 뒷받침하는 녹색 금융과 연구개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생물 다양성 감소와 자연 자본 훼손은 환경 문제를 넘어 원자재 수급 불안과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기업과 국가 경제의 중요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기관은 이미 생물 다양성 손실 위험이 높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재검토하고 환경 보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자본 리스크 관리는 기업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 전략이 되고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도전을 우리 사업 도약의 계기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한승 기후에너지환경부 1차관도 영상축사를 통해 “기업이 자연자본 리스크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시 의무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민관 협력체계를 탄탄히 구축하고 선제적으로 지원하겠다"며 “기후부는 기업이 자연자본을 경영에 내재화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자연자본포럼 환영사]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물, 공기 더이상 공짜 아니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는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에서 환영사를 통해 “생물다양성은 동식물을 보호하는 자선활동이 아니라 인류가 지속가능하게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지구라는 거대한 은행에서 무이자로 빌려쓰는 줄 알았던 공기, 물, 토양은 공짜가 아니다"며 “우리가 미래에서 잠시 빌려온 원금이고 이번 포럼은 원금을 파산시키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돌려줄지 논의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라며 자연이라는 자산이 줄어드는 데 국내총생산(GDP)만 늘어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풍요를 누린다고 착각하고 파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우리가 나눈 대화가 10년 뒤에 우리 기업의 성적표가 되고 우리 아이들이 숨 쉬는 숲의 농도를 결정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자연자본포럼] 이창석 국립생태원장 “생물다양성 관리, 기업 지속가능성 필수”

“생물다양성 관리와 자연자본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에서 기조연설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및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 보고서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원장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위기의 심각성을 짚었다. 그는 산업화, 도시화, 기업형 농업 확산 과정에서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그 영향이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과거 울창했던 산림이 산업단지 개발로 황폐화되고 하천과 습지의 자연 구조가 훼손되면서 생태계 기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하천과 호수 등 수생태계의 변화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그는 “하천은 물과 수변 생태계가 결합된 복합 구조인데, 우리는 수변을 제거하면서 생태계의 핵심 기능을 잃어버렸다"며 “그 결과 수질 정화 능력과 탄소 흡수 능력 모두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변 식생은 일반 식생보다 최대 3배 이상 탄소를 흡수할 수 있음에도 이를 제거해왔다"고 덧붙였다. 외래종 확산에 따른 생태계 교란 문제도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혔다. 가시박과 같은 외래 식물은 기존 식생을 밀어내며 생물다양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해양과 내륙을 가리지 않고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더해지면서 생태계는 복원력을 잃고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생태계 단절'을 지목했다. 도로·철도 건설과 개발로 서식지가 파편화되면서 상위 포식자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종이 이동하지 못하고, 결국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생태계 건강성은 연결성에서 나온다"며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해법으로는 생태 복원 중심의 접근을 제시했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수준이 아니라, 지역별 생태 특성에 맞는 숲 전체를 복원해야 하며, 이를 통해 생물다양성과 탄소 흡수 기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도시 내 녹지 확충 전략으로 '핑거 플랜(Finger Plan)'을 언급하며, 도심 내부로 숲과 생태축을 끌어들이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단순한 녹지 확대가 아니라 생태계 네트워크를 형성해 생물 이동과 서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원장은 이러한 생태 복원과 관리 체계가 TNFD 보고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TNFD는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탄소 흡수와 생물다양성 두 가지"라며 “생태계 복원 프로세스를 그대로 적용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물다양성 관리와 자연자본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라며 “전문가 자문과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자연자본포럼 축사] 김명자 KAIST 이사장 “자연자본 줄면 GDP 성장 의미 없어”

김명자 KAIST 이사장는 '지구의 날'인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 축사를 통해 “자연자본이 감소하는 상황에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경제와 환경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99~2003년 동안 환경부 장관을 하던 시절을 언급하며 당시에는 자연자본을 고려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 이사장은 “2000년대 초반 '그린 GDP' 도입을 추진했지만 시대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기초 연구 수준에 머물렀다"며 “그러나 최근 영국 정부가 의뢰한 다스굽타 리뷰에서 자연자본이 감소하는 상황에서의 성장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면서 당시 문제의식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자본의 중요성이 최근 들어 더욱 부각된 배경으로 팬데믹과 지정학적 리스크, 에너지 위기 등을 꼽았다. 이 이사장은 “과학기술적 접근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제도, 나아가 인간의 가치관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며 “자연과 인간은 공존 관계이며, 이 균형이 깨질 경우 결국 인간 사회도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자연자본포럼 1세션] 자연자본 공시, 자발적 참여 넘어 글로벌 의무화로 진행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22일 공동 주최한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의 제1세션에서는 '자연자본 공시와 측정 동향'을 주제로, 글로벌 규제 지형의 변화와 국내 선도 기업의 대응 사례, 그리고 과학적 측정기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자본이 기업 경영의 선택이 아닌 필수 자산"이라고 역설했다. ◇“국제 공시기준, '자연(Nature)' 중심으로 통합 중 이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첫번째 주제 발표에서 '자연자본공시 국제 동향과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급변하는 글로벌 규제 흐름을 짚었다. 이 연구관은 “기후 공시와 자연공시는 기후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와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라는 자발적 이니셔티브에서 출발한 뒤,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와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 등에서 국제회계기준 형태로 다듬어지고, 이후 국가별로 제도화되는 순으로 발전해왔다"고 밝혔다. 국제회계기준은 한창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작년 11월에 처음 ISSB가 생물다양성 기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이후 올해 4월까지는 기존에 사용하던 국제회계보고기준(IFRS) S1, S2에 통합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IFRS의 실무검토보고서를 보면 새로운 기준이 아닌 기존의 IFRS 기준 안에서 자연공시를 다루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연구관은 “기존에 사용하던 IFRS S1, S2에 통합 기준을 마련할 경우 자연 관련 기준을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동시에 우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기준이 경제성만 고려하는 보수적인 기준이라는 점에서 자연 공시 기준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동향에 있어서 유럽연합(EU)은 올해 최종적으로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공시 의무 대상을 초대형 기업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프랑스는 EU가 기준을 정립하기 전부터 거의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공시 의무를 부과했다. 자연 관련 전략을 세울때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unming-Montreal GBF) 목표와의 정합성을 밝히도록 했다. 인도는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00개 상장사에 의무를 적용하고 있다. 리더십 지표에 넣어 관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연구관은 “기업들의 고민은 자연 데이터가 없거나, 데이터가 있어도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NFD가 추진하는 자연 데이터 허브(NDPF)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 연구관은 “2028년 이후 도입 예정인 기후 공시 다음으로 자연자본 공시 도입은 예정된 수순인 만큼 시간이 걸리는 데이터 확보 등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후공시에 자연 요소를 추가하는 전략도 현명한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자본은 기업 영속성 결정 짓는 기초 자산" 두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김미현 SK증권 상무는 국내 금융권 최초의 TNFD 시범 보고서 발간 사례를 소개하고 금융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김 상무는 특히 기업 경영에 있어 탄소와 자연자본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탄소 배출은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 등을 통해 이미 기업이 지출해야 할 실질적인 '비용(청구서)'으로 가시화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자연자본은 아직 재무제표에 비용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물·토양·생물다양성 등 기업 활동의 영속성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초 자산'이자 근본적인 경영 자본이라는 것이다. 김 상무는 “기후 전환(Climate Transition)에 이어 이제는 자연 전환(Nature Transition)에 대한 선제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SK증권은 이번 시범 보고서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국립생물자원관과 긴밀히 협력했다고 밝혔다. 특히 국립생물자원관을 통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직접적인 자문을 구함으로써, 분석 방법론에 대한 국제적 정당성과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방대한 글로벌 기준(GBF, TNFD 가이드라인 등)을 국내 산업 구조와 금융 환경에 맞춰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김 상무는 “무엇보다 '자연 회복'이라는 추상적인 글로벌 목표를 국내 기업들이 실제 공시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측정 지표 표준 모델로 전환하는 실무적 이정표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김 상무는 금융기관의 공시가 단순한 정보 공개를 넘어 '투자 프로세스의 진화'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단기적으로는 물리적 리스크를 식별하는 데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생태계 회복력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적 역할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측정 데이터가 신뢰성 담보" 세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KEI) 자연환경연구실장은 '한국의 자연자본 측정 동향과 정책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이 실장은 “자연자본을 평가할 때 기준은 '어디를 공간적으로 보전해야할 것인가'"라면서 “생태계 변화에 대한 공간자료가 구축돼 있고 그 활용도는 높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생물다양성 평가를 위한 기초조사로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생물자원조사는 30년 이상 수행 중이다. 생물에 대한 모니터링 자료는 충분히 축적된 상태다. 기업들의 위치가 어딘지, 그 위치가 산림인지 강인지, 어떤 생태적 환경에 따라서 생물종을 연결하고 분석할 것인지에 대한 자료도 갖춰져 있다. 이 실장은 “자연 상태의 변화는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종(種)에 대한 영향으로 나타나는데, 생태계 변화를 측정할 때는 생태계 계정이라는 통계 체계를 통해 들여다 본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계정은 생태계 규모·상태·서비스로 구성된다. 규모는 생태계 자산의 크기를 말한다. 상태는 질적 수준이고, 서비스는 생태계가 경제나 인간 활동에 사용되는 혜택에 기여하는 요소다. 종의 변화를 측정할 때는 긴 시간에 대한 흐름으로 생물의 패턴을 봐야 하는데, 동물·식물상(相)을 시계열로 모니터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문제는 종은 종으로만 접근하고 생태계는 생태계만으로 접근하다보니 둘을 매칭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간에 대한 변화와 그 원인을 같이 비교하는 것이다. 공간에 환경 변화가 생긴다거나 개발이 이뤄졌을 때 그 원인을 측정하는 방법들에 대한 자료들이 구축돼 있으므로 이를 공간 변화와 함께 비교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연자본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해 화폐화하는 작업 역시 어려운 과정이라고 이 실장은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환경가치 종합정보시스템(EVIS)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참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후 환경 모니터링을 통해서 자연자본이 감소했는지, 복원이 되고 있는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상황까지도 구축돼있다. 이 실장은 “자연 리스크 식별 결과가 실제 재무 의사 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정보로 전환될 때 공시의 진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EE칼럼] 폭우·폭염만큼 위험한 ‘계절의 무너짐’—소리없는 또 하나의 기후재난

4월의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봄'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가? 최근 관측자료를 보면 서울의 4월 중순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7~9℃ 높았고, 낮 최고기온은 28~29℃에 이르렀다. 이는 과거 기준으로 5월 하순 또는 6월 초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벚꽃이 채 지기도 전에 반소매 차림이 자연스러운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많은 이들이 “봄이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보다 정확한 진단은 다르다. 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절의 구조 자체가 조용히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폭염, 집중호우, 태풍과 같은 강렬하고 즉각적인 피해를 동반하는 극한기상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또 하나의 위험은 훨씬 덜 가시적이며 사회적 경각심 또한 약하다. 바로 계절 길이의 변화, 즉 시간 구조의 재편이다. 이는 폭우처럼 갑작스럽지도, 폭염처럼 즉각적인 공포를 주지 않음에도, 이 변화는 더 깊고 광범위하게 사회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관측과 연구는 이미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여름은 약 25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여름은 이제 120일을 넘어 사실상 '4개월 계절'로 자리 잡고 있다. 여름의 시작은 앞당겨지고, 가을은 늦춰지면서 고온 환경이 계절 경계를 잠식하고 있다. 가을과 겨울의 계절길이 또한 짧아지고 있다. 100년 이상의 장기 추세에서도 동일한 방향 성이 확인된다. 이는 단순한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이 변화의 본질은 '날씨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시간 질서의 변화'에 있다. 농업의 파종과 수확, 산업의 생산과 소비, 에너지 수요의 계절적 변동, 교육과 사회활동의 일정까지 모두 계절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계절은 사회 전반에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다. 그런데 그 운영체제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부문에서 그 영향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길어진 여름은 냉방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전력 피크를 장기화한다. 이는 전력망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반면 겨울 수요는 점차 축소되며 계절 간 수요 구조 자체가 변형된다. 의류, 유통, 관광 등 계절 의존 산업 역시 기존의 '사계절 모델'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경고 신호는 뚜렷하다. 고온이 조기에 시작되면 작물의 생육 주기가 불균형해지고, 개화 시기와 기온 조건의 불일치가 심화된다. 특히 이른 개화 이후 발생하는 저온 피해는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여름이 길어질수록 고온 스트레스는 누적되고, 이는 단순한 수확량 감소를 넘어 식량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건 측면의 위험성은 더욱 직접적이다. 여름이 길어질수록 온열질환의 발생 기간은 확대되고,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확대된다. 그런데도 계절 길이의 변화는 아직 '재난'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마치 물이 서서히 끓어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삶은 개구리'처럼 이 변화는 너무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극한기상은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계절 변화는 통계로만 드러나므로 대응은 늦어지고, 체감은 뒤따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계절 변화는 폭우나 폭염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구조적인 위험이 된다. 이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 단발적 충격을 주는 '사건형 재난'뿐 아니라, 사회의 기반을 바꾸는 '구조적 재난'으로서의 계절 변화를 함께 인식해야 한다. 에너지 시스템은 장기 수요 변화에 맞춘 구조 개편이 필요하며, 농업은 재배 시기와 품종을 재설계해야 한다. 산업 전반 역시 계절 의존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과 사회 인식이 '계절 길이'를 핵심 기후지표로 받아들이는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더워진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재편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 변화는 폭우보다 조용하고, 폭염보다 느리지만, 훨씬 더 깊고 넓게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요란하지 않기에 간과되기 쉽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계절의 여왕' 봄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붕괴하는 계절 질서에 대한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는, 우리가 반드시 대응해야 할 또 하나의 기후위기이자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경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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