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금융지주에 이어 하나금융지주가 100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계획안을 수립하면서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생산적 금융 발표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생산적 금융이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부동산, 담보대출 등의 영업에서 탈피해 첨단산업, 벤처·혁신기업, 지역경제, 재생에너지 등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영역으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금융지주사가 내놓은 생산적 금융 청사진은 첨단전략산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거는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아직 계획안을 내놓지 않은 신한지주, KB금융지주의 압박감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 금융 규모가 곧 정부 정책에 대한 금융지주사의 동참 의지, 진정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사의 생산적 금융 경쟁은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의 '이자 장사'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4일 '디지털 토크 라이브' 행사에서는 금융은 상당 부분 인허가를 통해 국가의 발권력을 대신 행사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도 받으며 영업하기 때문에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며 "금융에 대한 근본적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8대 금융지주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에 쏠려있던 안전 위주의 손쉬운 영업에서 탈피해 첨단산업, 벤처·혁신기업 등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영역으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바꾸고, 실물경제와 동반 성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지주사가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생산적 금융확대, 경제 재도약에 매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중장기 생산적 금융 지원 계획을 천명하면서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금융지주는 2030년까지 5년간 생산적 금융 73조원, 포용금융 7조원 등 총 8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지주는 2030년까지 생산적 금융에 84조원을, 포용금융에 16조원을 투입해 금융의 본질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신한지주, KB금융지주는 아직 생산적 금융 계획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 금융지주사가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보다 이익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생산적 금융의 규모나 내용 면에서 고심이 깊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모두 정부의 큰 방향성에는 동감하지만, 자칫하다 알맹이 없이 생산적 금융 숫자만 키워서 내놓을 경우 밸류업 프로그램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적 금융'의 핵심은 국가전략산업 육성, 주주가치 제고, 재무구조 안정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하는데,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계열사, 부서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이를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특히 신한금융지주는 현재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 추천을 위한 경영승계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진옥동 회장의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그룹 차원에서 생산적 금융 계획을 서둘러 발표한다면, 자칫 특정 후보군, 즉 진 회장의 연임을 위한 포석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신한지주 역시 물밑에서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동참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평가다. 신한은행은 정부가 추진하는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에 발맞춰 '애자일' 조직을 신설하고, 첨단 소재부품 및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문 인력을 신규 채용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생산적 금융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했고, 하나금융지주가 100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을 발표하면서 발빠르게 대응했다"며 “이제 바톤은 신한금융, KB금융에 넘어갔는데, 이들 역시 시장 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겠나"고 밝혔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2025-10-20 16:32 나유라 기자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