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미지

박규빈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박규빈 기자 입니다.
  • 산업부
  • kevinpark@ekn.kr

전체기사

“4초에 1바퀴, 바람의 맥박 짚는다”…제주 두산윈드파워센터, K-풍력 생태계의 컨트롤타워 [현장]

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소재 '두산 윈드 파워 센터(Wind Power Center, 이하 WPC)'를 찾았다. 작년 9월 3일 정식 개소한 WPC는 연면적 496.34㎡(약 150평), 지상 2층 규모로 구축된 국내 풍력 발전기 제조사 최초의 통합 컨트롤 타워다. 국내에 풍력발전기를 공급한 제조사 중 원격 기술 지원을 위한 이 같은 대규모 통합 컨트롤타워를 자체 마련한 것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처음이다. 당시 개소식에서 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부회장 역시 “국내 최초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선 제주에 두산윈드파워센터를 개소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우리의 바람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국내 풍력 생태계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센터 관제실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전면 스크린 위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자체 개발한 예지 보전 플랫폼 '윈드링크(WindLink)'의 대시보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국에 흩어진 발전 단지의 터빈 상태가 카드 형태로 배열돼 있었고, 초록색(정상 발전), 주황색(정비·점검 및 터빈 가동 준비), 빨간색(에러 알람)으로 상태가 명확히 구분돼 있었다. WPC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운영∙유지·보수 계약을 맺은 전국 모든 풍력 발전기를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 및 제어하는 핵심 관제소다. 상태 확인 외에도 운영 이력과 축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된 분석 기능을 갖춰 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조기에 탐지하고 고장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실시간 제어를 통해 풍력 발전기의 효율과 가동률을 극대화함으로써 안정적인 운영은 물론 발전량 증가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05년 풍력 사업에 뛰어든 이래 제주 탐라(30MW), 전북 서남해(60MW), 제주 한림(100MW) 등에 총 347.5MW 규모의 풍력 발전기를 공급해 왔다. 오늘날 이러한 컨트롤 타워와 독보적인 공급 실적을 갖추기까지는 20년에 걸친 두산그룹의 뚝심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풍력 시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정부 주도의 소규모 육상 풍력과 실증 사업 위주로 조성됐으나 기술력 부족과 낮은 경제성 탓에 한계가 뚜렷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장 활성화 바람을 타고 여러 대기업이 앞다투어 풍력 발전기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외국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대부분 수익성 악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줄줄이 사업을 철수했다. 그럼에도 두산은 묵묵히 투자를 지속하며 기술 내재화와 국내 부품사와의 동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 그 결과 사업 초기 30% 수준에 불과했던 부품 국산화율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마침내 원천 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 자립'을 달성했다. 특히 두산은 사업 초기부터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해상 풍력 사업에 매진했다. 2010년 3MW 모델 개발을 신호탄으로, 국내 최초 해상 풍력 사업인 30MW급 제주 탐라 해상 풍력(2017년 준공)과 60MW급 전북 서남해 해상풍력(2020년 준공)에 차례로 해상 풍력 발전기를 공급했다. 나아가 지난해 하반기 완공된 국내 최대 규모 100MW급 제주 한림 해상 풍력에는 5.56MW 해상 풍력 발전기 18기를 대거 투입하며 사실상 국내에 설치된 대부분의 해상풍력 단지에 국산 발전기를 세우는 압도적인 최다 실적을 굳혔다. WPC는 이 중 장기 유지·보수(O&M) 계약을 맺은 전국 80여 기의 풍력 터빈을 24시간 365일 원격 모니터링한다. 제주도에 설치된 40기의 두산 터빈 중 38기가 이곳의 통제를 받는다. 1층 홍보 부스에는 3MW급 초기 모델부터 최근 고정 입찰제 시장에 투입될 초대형 8MW·10MW급 모델의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최인욱 두산 윈드 파워 센터장(수석)은 두산 터빈의 최대 강점으로 한국 기후에 최적화된 특수 설계를 꼽았다. 최 센터장은 “유럽과 달리 한국은 연평균 풍속은 낮지만 태풍과 국지성 난류가 잦은 극한의 환경"이라며 “두산의 터빈은 저풍속 구간에서 바람을 최대한 맞도록 날개를 늘리면서도 강한 난류와 극한 하중을 버틸 수 있도록 구조적 뼈대를 튼튼하게 보강한 '터빈 클래스 S(Special)' 모델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풍력 발전기의 진정한 경쟁력은 제품 사양만큼이나 설치 지역의 환경적 여건과 직결된다. 1년 중 40% 이상 초속 11m가 넘는 강풍이 불어 정격출력을 내기 쉬운 유럽은 터빈의 정격 용량 자체를 키우는 편이 유리하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은 정격 풍속 이상 바람이 부는 날이 연중 17% 수준에 불과하고 연평균 풍속도 초속 7m 안팎에 머무는 전형적인 '저풍속 영역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에 착안해 저풍속 환경에서도 더 많은 발전량을 낼 수 있도록 타사 동급 모델 대비 로터(Rotor) 직경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모델을 개발해 아시아 시장에서 최적의 경제성과 발전 효율을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 최신 10MW급 모델은 블레이드(날개) 1개 길이만 100m가 넘고 회전 직경이 205m에 달한다. 거대한 블레이드는 양력을 받아 분당 최고 15바퀴(15 RPM), 즉 4초에 한 바퀴를 도는 맹렬한 속도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타워 내부에는 2~3명의 엔지니어와 공구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최대 하중 300kg급 리프트가 설치돼 있고 10MW급 초대형 모델의 나셀 상부에는 유럽 IEC 규격에 맞춘 헬기 인명 구조용 랜딩 존(호이스팅 존)까지 갖춰져 있다. 나아가 자체 개발한 이 10MW 해상 풍력 발전기는 지난 7월 국제인증까지 성공적으로 취득하며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거대한 설비가 바다 한가운데서 제 몫을 다하려면 준공 후 20~25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원활한 유지보수가 필수적이다. 자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핵심 부품의 대다수를 국내 공급망에서 조달하는 두산에너빌리티는 부품 수급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외산 경쟁사 대비 압도적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수리가 가능하다. 디지털 솔루션을 통한 예지 정비 서비스와 WPC의 상시 즉각 대응 원칙이 시너지를 발휘해 두산에너빌리티는 장기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단지에 대해 당초 약속한 '계약 가동률' 이상의 뛰어난 성과를 빈틈없이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터빈 하드웨어에 정밀한 디지털 관제 솔루션을 덧입힌 WPC는 외산 업체의 공세 속에서 K-풍력 생태계를 사수하는 최전선이다. 견고한 하드웨어 기술 자립과 WPC라는 디지털 무기까지 장착한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 기조 속에 풍력사업 '연 수주 1조 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원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주와 매출 증대를 이뤄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려 해외 시장 진출까지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제품 라인업 강화를 통해 고객사에 차별화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며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하나로 융합된다면 국내 풍력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K-풍력'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박규빈의 경영 Scope] 영업현금 -5884억·부채비율 440%…LIG D&A의 ‘계산된 돈맥경화’

LIG넥스원이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업 간판을 'LIG D&A(LIG 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로 바꿔 달았다. K-방산 4대장 중 하나인 LIG D&A는 사명 변경 당시 우주항공과 글로벌 방위산업체로의 담대한 도약을 선언했다. 그런 만큼 이 회사의 재무 상태는 격동기를 맞았다. ◇PGM과 '수출'의 쌍끌이…'영업이익률 14.6%' 쾌거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LIG D&A는 올해 1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1679억원, 영업이익 1711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된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28.7%, 영업이익 56.1% 급증한 '어닝 서프라이즈'다. 외형 성장보다 매서운 것은 '수익성의 질적 개선'이다. 지난해 1분기 12.1%였던 영업이익률은 올 1분기 14.6%로 뛰었다. 비결은 1분기 매출의 59.0%(6890억 원)를 차지한 정밀타격(PGM) 부문의 호조, 그리고 내수 대비 마진이 월등히 높은 수출의 폭발적 증가에 있다. 과거 관급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LIG D&A의 올 1분기 수출액은 3777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2.3%를 차지했다. 2024년 23.6%, 2025년 19.9%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극적인 체질 변화다. 사우디아라비아(약 4조3000억원)와 이라크(약 3조7000억원) 등으로 수출된 대규모 천궁-II(M-SAM) 물량이 본격적으로 매출로 인식되면서 고수익 수출이 전사 이익을 강하게 견인하는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부채비율 440%의 역설…부채 절반 이상이 '착한 빚' 눈부신 실적을 뒤로 하고 LIG D&A의 재무상태표를 열어보면, 올 1분기 말 기준 총부채는 6조8480억원, 자본 총계는 1조556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40.11%에 달하는 것을 볼 수 다. 일반적인 제조업이라면 당장 유동성 위기를 우려해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방위산업 특유의 회계 기준이 만든 '착시 효과'다. 부채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전체 부채의 54.4%인 3조7272억원이 '유동계약부채'로 묶여 있다. 계약 부채란 방위사업청이나 해외 발주처로부터 무기 제작을 위해 미리 받은 '선수금' 성격이다. 이는 금융 기관에 이자를 내야 하는 악성 채무가 아니라 향후 무기를 제작해 인도하면 고스란히 매출로 치환되는 확정된 미래 수익이어서 '착한 부채'로 통한다. 오히려 재무적으로 면밀히 살펴야 할 부분은 이자발생 부채의 증가다. 유동 차입금 8629억원과 비유동 차입금 5931억 원을 합친 실질적 차입금 규모는 약 1조4560억원으로 전년 말 8588억 원 대비 급격히 늘었다. 다만, 1분기 금융 원가 약 91억원 대비 영업이익 규모를 감안할 때 이자 보상 배율은 약 18배에 달해 채무 상환 능력 자체에는 여전히 파란 불이 켜져 있다는 분석이다. ◇이익 났는데 현금은 -5884억 원 이번 1분기 보고서에서 시장이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바로 '현금 흐름표'다. LIG D&A는 135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업활동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 5884억원이라는 막대한 순유출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45억원가량 악화됐다.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역시 작년 말 기준 1252억원에서 올 1분기 말 150억원으로 급감했다.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데 현금 창고가 빈 이유는 소위 '흑자기업의 돈맥경화' 현상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무기를 생산하며 발생한 '운전 자본(Working Capital)의 증가'다. 작년 말 재무 상태표의 '유동 계약 자산' 계정에는 1조7068억원이 기록돼 있는데 올 1분기 말엔 1조5637억원으로 3개월 만에 4930억원이나 늘었다. 방산업체는 투입된 원가에 비례해 수익을 인식하는 투입법을 쓴다. 계약자산이란 회사가 원자재를 사고 공장을 돌려 회계상 매출로는 올렸지만 아직 발주처와 약정한 청구 마일스톤에 도달하지 못해 대금을 받지 못한 '미청구 공사대금'을 뜻한다. 다시 말해 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품값과 인건비로 현금은 먼저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대금 수금은 나중에 이루어지는 시차 때문에 현금 흐름이 꼬인 것이다. 실제로 영업 현금 흐름 세부내역을 보면 '매출 채권 및 계약 자산의 증가'로 무려 3957억원의 현금이 장부에 묶였고, 협력사 결제 등으로 '매입채무'가 1733억원 줄어들며 현금 유출을 가속화했다. ◇외부 수혈로 지은 공장과 美 진출…25조원 잔고가 쥔 '빅 픽처' 영업에서 묶인 막대한 운전자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LIG D&A는 대규모 외부자금 조달 카드를 꺼내 들었다. 1분기 재무활동 현금 흐름은 5842억원이다. 단기차입금을 2662억원 늘려 급한 불을 끄고, 지난 2월에는 공모시장에서 3391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대규모 장기 실탄을 확보했다. 이렇게 끌어모은 빚은 미래를 향한 천문학적 자본 투자의 밑거름이다. 1분기 투자 활동 현금 흐름은 -1066억원으로, 구미 퓨처 파크2 등 생산시설 인프라 선행 확보(총 예상 4236억원)와 김천 2공장 유도 무기 조립장 구축(총 예상 1126억원) 등 K-방산 르네상스를 소화하기 위한 굵직한 설비투자(CapEx)가 진행 중이다. 글로벌 지배구조 개편도 눈여겨봐야 한다. 2024년 인수한 미국 사족보행 로봇 기업 고스트 로보틱스(Ghost Robotics)를 품은 데 이어 올 2월에는 아예 미국 현지 지배회사 격인 'LIG 디펜스아메리카스'와 'LIG 디펜스U.S.'를 잇달아 100% 자회사로 신규 설립했다. 우주항공과 융합된 첨단 무기체계를 들고 세계 1위 방산시장인 미국 본토의 심장부로 진격하겠다는 강력한 포석이다. 다만, 고스트 로보틱스 인수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동반 매각청구권 등을 부여하며 발행한 교환사채(EB)와 관련해 61억원의 파생상품 부채가 계상돼 있는 점은 향후 고스트 로보틱스의 상장(IPO) 여부와 연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필요로 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단독] 조류충돌·동체착륙 대응 ‘실전처럼’…국토부, 조종사 훈련·심사 전면개편

여객 항공기 성능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체 항공사고의 대부분이 조종사의 상황 인식 오류 등 '인적 요인'에서 발생하자 정부가 국적항공사 조종사들의 훈련·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사전 각본에 맞춘 과거의 요건 위주 훈련에서 벗어나 조종사의 실제 위기대응 능력을 극대화하는 '역량 기반 훈련' 체계가 국내 항공 규정에 본격 도입된다. 아울러 이착륙 과정에서 버드 스트라이킹(Bird Striking: 비행기 동체와 조류(새)의 충돌 현상)이나 랜딩기어 고장에 따른 동체착륙 등 예측불가능한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조종사 필수 이수과목으로 법제화된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적 항공사 조종사 훈련·심사 체계 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이달 발주하고 본격적인 제도 개편에 들어간 것으로 10일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토부가 조종사 훈련 체계에 대수술의 칼을 빼든 배경에는 급변하는 항공운항 환경이 있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항공기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기체 결함보다는 복잡한 시스템 상황 속에서 조종사의 의사결정 미비나 인적 오류(Human Error)에 의한 사고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짜인 고정 시나리오 중심의 훈련(Task Based Training)만으로는 현대 운항 환경에서 발생하는 예측불가능한 돌발사고를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를 비롯해 미국 연방항공청(FAA), 유럽항공안전청(EASA) 등 주요 항공 선진국들은 조종사 훈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기반훈련평가(CBTA, Competency-Based Training and Assessment)' 도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CBTA는 조종사 개인별 취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대응 능력 위주로 맞춤형 훈련을 진행하는 선진교육 방식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극한의 비정상 상황에 대한 훈련 의무화다. 현재 국토부 고시로 운영 중인 '고정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 기준'에는 조종사들의 기량 심사와 비행 훈련 기준이 엄격히 규정돼 있으나 일부 치명적인 비정상 상황에 대한 명시적 훈련 과목은 누락돼 있다. 이에 국토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랜딩기어 고장에 따른 동체착륙 △조류 충돌 △이륙 시 모든 엔진 고장 △착륙 시 모든 엔진 고장 등 4대 비정상 상황을 '운항기술기준' 내 필수 훈련과목으로 명시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갓 자격을 취득한 훈련 경험 부족의 '초기 부기장'의 운항 경험 훈련(OE, Operating Experience)과 관련해서도 유자격 부기장 동승 탑승 등 세부 근거를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한 개선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국토부의 이번 조종사 훈련체계 개편은 올해 3월 단행된 항공 안전망 강화 조치의 연장선에 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3월 25일 '고정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을 개정해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시스템 장착 기준을 상향하고, 저시정 운항·비행장 운영 최저치 설정에 관한 기준을 최신 ICAO 기준에 맞춰 구체화하는 등 하드웨어와 시스템 중심의 안전 규정을 대폭 정비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선제적으로 도입한 비정상 자세 예방·회복 훈련(UPRT, Upset Prevention And Recovery Training)과 증거 기반 훈련(EBT, Evidence-Based Therapy)에 이어 이번 CBTA 체계의 전면 도입을 통해 이를 직접 운용하는 조종사의 역량까지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8000만원을 투입해 향후 5개월간 연구를 진행하며, 연말까지 ICAO 기준(DOC9868/9995)에 부합하는 CBTA 국내 승인·운영 절차와 정부 운항자격심사관 심사표를 새롭게 마련해 운항기술기준 개정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성능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조종사의 훈련 시스템도 '절차 암기'에서 '실전 위기 대처 능력' 위주로 진화해야 한다"며 “이번 연구 용역을 거쳐 새로운 운항기술기준 개정안이 확정·시행되면 국적 항공사들의 안전 경쟁력이 한층 높아져 국민들이 더욱 안심하고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인터뷰] 태평양 황호성 전문 위원 “K-방산 수출 지속 가능성, 선제 리스크 방어에서 찾아야”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법무법인 태평양의 본사 25층 세미나실에서는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 주최로 '항공·우주·방산 분야 수출 통제 이슈와 기업의 대응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행사 직후 무역안보관리원·삼성종합기술원을 거쳐 세미나를 총괄한 황호성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장(전문 위원), 방위사업청 방산수출심의위원을 역임한 최다미 변호사, 김지이나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은 K-방산 생태계의 실상과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간극에 대해 뼈있는 진단을 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답변자는 각자 성에 따라 황, 김, 최로 구분) ― 자문 현장에서 수출 통제 리스크를 간과해 다 된 계약이 엎어지거나 글로벌 페널티를 맞을 뻔한 아찔한 위기 사례가 자주 발생하나? 방산업계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김) 사전 단계에서 철저히 체크해야 하는데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통제 대상 품목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덜컥 수출 계약부터 체결하는 경우가 가장 뼈아픈 문제다. 나중에 이를 뒤늦게 인지하게 되면 허가가 안 나와 상대국에 제품을 넘기지도 못하고, 막대한 글로벌 위약금 때문에 마음대로 해지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로펌을 찾아오는 경우가 꽤 있다. ▲(최) 방위사업청의 '예비 수출 승인' 제도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방사청으로부터 예비 승인을 받고 나면 '본허가'가 무조건 나올 것이라 굳게 믿고 깊은 검토 없이 계약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는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그사이 세계 정세가 급변하거나 해당 기술이 국익상 민감하다고 재판단돼 본허가가 전격 반려되는 사태가 발생해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곤 한다. ▲(황) 실무적으로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진짜 뇌관은 미국의 '수출 통제(EAR/ITAR)'다. 미국의 규제 산식 자체가 극도로 복잡할뿐더러, 한국 제도가 아닌 타국의 법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개입해 도와주거나 가이드해 줄 채널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오롯이 스스로 돌파하고 입증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 체계 종합 업체(대기업)와 달리, 방산 생태계를 이루는 중소 협력사들은 수출통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하위 업체의 부품 하나가 발목을 잡는 '공급망 연쇄 리스크' 실태와 취약성은? ▲(황) 정확한 지적이다. 체계 업체들은 본인들이 다루는 무기 체계가 '주요 방산 물자'로 명확히 지정돼 있어 자연스럽게 제도권의 큰 틀 안에서 관리가 된다. 반면 공급망 하위에 있는 협력사들로 내려가면 본인들이 납품하는 부품이나 가공 장비가 통제 목록에 해당하는지조차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많다. 사전에 리스크를 꼼꼼히 챙기기보다는 일단 무언가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려는 관행도 문제될 수 다. ― 글로벌 규제가 갈수록 깐깐해지는 가운데 역외 적용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이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미국의 제재 타깃 변화 기조는? ▲(황) 최근 글로벌 수출 통제 제도가 가장 빠르고 촘촘하게 바뀌고 있는 핵심 타깃은 전통적인 재래식 무기 방산 자체가 아니라 바로 '반도체와 인공 지능(AI)' 분야다. 첨단 반도체 부품과 통신 센서가 항공우주와 방산 무기체계에 필수적으로 접목되다 보니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의 제재망 강화와 까다로운 규제 잣대가 방산 업계에까지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타격을 주고 있다. ― 상업용으로 수출한 이중용도 품목이 제3국을 거쳐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군사용으로 발견되는 이른바 '우회 전용' 리스크가 크다. 기업이 어디까지 실사를 해야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나? ▲(황) 수출기업이 탐정도 아니고서야 현지에 직접 날아가 구매자가 진짜 상업용으로만 쓰는지 일일이 심문한 뒤에 수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국과 실무에서 요구하는 현실적 기준은 '기업이 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충분한 확인(Due Diligence) 절차를 거쳤느냐'다. 최종 사용자 증명서(EUC)를 철저히 챙기고, 의심스러운 징후가 없는지 점검하는 등 기업이 할 도리를 다했다는 '문서화된 증빙'을 명확히 남겨야 한다. 이 전제 조건만 충족됐다면 이후 수입자의 무단 전용이나 고의적 기망으로 우려 국가로 넘어갔더라도 원 수출 기업은 면책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실사의 충실성과 꼼꼼한 문서화가 수출 기업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 평소 수많은 기업을 만날 텐데, 사내 컴플라이언스를 구축할 때 행정 지연이나 가이드라인 부재 등 '정부나 제도가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이나 불만은 무엇인가? ▲(황) 의외일 수 있지만 방산·항공우주 기업들은 우리 정부의 수출 통제 제도 자체를 원망하거나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이 첨단 물자와 기술이 테러 단체나 우려 국가로 흘러갔을 때의 안보적 파장과 통제의 당위성을 기업들 스스로 너무나 잘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진짜 고민은 불만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엄격한 글로벌 규제 틀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위법 리스크를 피하고 합법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출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실무 해법을 찾는 데 온전히 집중돼 있다. ― 강력한 통제 권한을 가진 미국 등 선진국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방산 기업들의 전반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 수준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내부 인프라는? ▲(황) 기업마다 처한 환경과 자원 규모가 워낙 달라 일률적으로 특정 점수를 매기긴 조심스럽다. 다만 컴플라이언스의 필요성에 대한 경영진과 실무진의 '인지도와 실행 의지'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국을 10점으로 뒀을 때 한국은 7~8점 수준까지는 충분히 올라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실행의 영역은 다르다.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 할 점은 거듭 강조하지만 '사전 예방 중심의 문화' 정착이다. 사건이 터진 뒤에 법무팀이 혼자 수습하기에는 어려워진다. 제품 R&D 기획과 계약 논의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전사적 차원에서 수출 통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매핑하고 방어하는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글로벌 스탠다드에 완벽히 부합할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수출 통제·MRO’, K-항공우주·방산 질주 이면의 뇌관…법무법인 태평양, 글로벌 규제 돌파구 제시

K-방산이 전례 없는 수출 호황을 누리며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촘촘한 '수출 통제'의 그물망이 기업들의 새로운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때문에 완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납품하던 과거의 관행을 넘어 부품 조달부터 데이터 보안, MRO(유지·보수·정비)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인 리스크 방어망이 필수적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본사 25층 세미나실에서는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 주최로 '항공·우주·방산 분야 수출 통제 이슈와 기업의 대응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방산 생태계를 이루는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 규제에 대한 실무적 해법을 모색했다. 김성수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환영사에서 “K-2 흑표 전차와 해군 함정 등 방산 수출 확대로 국제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제품·기술·데이터 이동에 있어 전혀 새로운 차원의 준법 과제가 수반되고 있다"며 “법무·사업, 연구·개발(R&D)·공급망 관리 부서가 하나의 팀으로 융합해 움직여야만 복수의 규제 체계가 얽힌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를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 10년 새 70% 고속 성장 전망…“우주청 R&D 예산 늘려야" 국내 항공 제조 산업은 향후 10년간 생산 70%, 수출 49%에 달하는 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글로벌 항공 제조 산업 규모 역시 여행 수요 폭발과 친환경 기체 교체 주기가 맞물리며 2023년 6306억 달러에서 2032년 1조31억 달러(한화 약 1532조 원) 규모로 팽창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중견·중소기업들은 △에어버스 A320·A321 날개 하부 패널 △이스라엘 IAI G280 비즈니스젯 복합재 △보잉 787 후방 동체 △GE 'LEAP 엔진' 저압 터빈(LPT) 모듈 △F-15EX 전투기 조종석 디스플레이 패널 등 핵심 부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며 우주 경제 생태계도 이종 산업 간 융합으로 외연을 확장 중이다. 국내 중소기업이 저궤도 위성 자세 제어용 '제논(Xenon) 가스'를 국산화해 수출길을 뚫었으며, 향후 달이나 우주 공간에서의 현지 자원 조달(ISRU)을 위해 소형 모듈 원전(SMR)·우주 건설 굴착기·페브로스카이트 태양 전지·수경 재배 등 원자력·건설·화학·농업 산업의 우주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성곤 한국우주항공산업협회 혁신성장실장은 “우리나라 제조 산업 특유의 선진화 역량이 우주 분야로 확장되며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면서도 “정작 내년 우주항공청 예산 1조1201억 원 중 실물 경제를 이끌 항공 제조 산업 관련 R&D 배정액은 500억 원대에 그쳐 정부 차원의 핀셋 지원과 예산 확충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허가받아도 美 꼬리표 규제…통제 사각지대 '간주 수출' 수출 기업 실무진은 계약 전 세 가지 행정 관문을 개별적으로 교차 검토해야 한다. 대외무역법상 전략물자는 산업통상부가, 방위사업법상 방산 물자·국방과학기술은 방위사업청이 관할한다. 대 러시아·대 벨라루스 특별 조치 등 상황 허가 요건도 별도로 따져야 한다. 상업용으로 개발된 이중 용도 품목이라도 수입국의 정부나 군 관련 기관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할 경우 방사청의 통제를 받는다. 미국 규제인 역외 적용(Extraterritoriality)은 더 큰 암초다. 수출품에 미국산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섞인 '최소 허용 기준(De minimis rule)'에 해당하거나 미국산 부품이 없더라도 미국 기술·소프트웨어(SW)를 이용해 생산된 '해외 직접 제품 규칙(FDPR)'에 해당할 경우 한국 정부의 허가와 무관하게 미국 수출 관리 규정(EAR)의 통제를 이중으로 받아야 한다. 특히 미국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 통제 품목은 단 1%만 섞여도 전체를 통제하는 '씨스루 룰(See-through Rule)'이 적용된다. 무형의 기술 통제망도 존재해 국내 사업장의 외국인 직원이 사내 서버에 있는 통제 기술 도면을 열람하는 행위는 '간주 수출(Deemed Export)'로 분류된다. 간주 수출이란 물리적인 물품이나 소프트웨어의 국경 간 이동이 없더라도 자국 영토 안에서 외국인에게 통제 대상 기술이나 소스코드를 공개·이전하는 행위를 '수출'과 동일하게 보고 통제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최다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업 실무진들은 단순히 완제품을 박스에 담아 해외 선박에 싣는 물리적 이동만을 수출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며 “해외 MRO 사업 명목으로 현지 인력에게 정비 매뉴얼을 건네거나 원격 진단 프로그램의 접속 권한을 허용하는 무형의 행위 역시 강력한 글로벌 제재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무기 획득 패러다임 변화…MRO 시장, 'CMMC' 장벽 넘어야 글로벌 국방 획득 패러다임은 30년 이상 가동률을 유지하는 '총 수명주기 관리(Life Cycle Management)'로 재편됐다. 생산 인프라 고갈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직면한 미국은 국가 방위 산업 전략(NDIS)을 제정하고, 인도·태평양 5개 거점을 활용해 동맹국과 '현지 지원 체계(RSF)'를 구축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다국적 파이퍼(PIPIR) 협의체를 통해 전 세계 2900여 대에 달하는 F-16 전투기 정비 시범 사업이 한미 간 핵심 의제로 논의되고 있고, 미 해군 함정 MRO 물량도 국내 대형 조선소들로 본격 유입되고 있다. 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올 10월 미 국방부가 전 부처 계약에 전면 도입하는 '사이버 보안 성숙도 모델 인증(CMMC, Cybersecurity Maturity Model Certification)' 획득이다. 대형 체계업체가 단독으로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무기 체계 데이터나 설계 도면을 공유받는 1~3차 하위 중소 협력사들 모두가 체계 업체와 동등한 등급의 정보 보호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만 정상적인 부품 납품이 가능하다. 양찬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책임 연구원은 “최고 성능의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 확보한 전력을 얼마나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수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진정한 국가 안보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렸다"며 “하위 중소기업들까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보안 인프라 상향 평준화를 서둘러 이뤄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MRO 슈퍼 사이클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더 독해진 '캐치 올'… 실사 의무 대폭 강화에 징벌적 페널티 완제품 자체가 통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 탑재된 핵심 통제 구성품의 가격이 전체의 10% 이상이거나 장비 성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전체 장비가 덩달아 전략 물자로 취급된다. 방산 품목 생산을 위해 특수 설계된 공작 기계나 환경 시험 시설(ML18) 역시 군용 전략 물자로 분류된다. 최근 미 국무부가 보잉과 RTX 등에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벌금 폭탄을 부과한 사례들은 완제품 밀수출이 아닌, 해외 협력사 및 외국인 직원에게 민감한 기술 자료 데이터 접근을 허용한 것이 사유였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된 개정 대외무역법상 '상황 허가(캐치 올)' 조항은 규제 문턱을 대폭 낮췄다. 수입자가 대량 파괴 무기로 전용할 의도를 기업이 명백히 '알았을 때'만 작동하던 기존 통제와 달리 개정안은 재래식 무기 제조 등 '이용 또는 전용할 의도가 있음을 알았거나 의심되는 경우' 무조건 정부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상업용 상용품이더라도 중앙아시아·중동 등을 거치는 우회 경로 정황이 포착되면 여지없이 규제망에 포섭된다. 황호성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장은 “방위산업은 전 세계적 보호 무역주의와 신 냉전 체제의 가장 끝점에 서 있어 제재로 인한 파장이 기업의 존폐를 가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황 센터장은 “로펌이나 법무팀의 사후 대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영업·R&D·물류가 융합된 전사적 자율 준수 체제(CP)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솔루션을 찾아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정해진 항로 벗어나 나만의 비행을”…항공대 교물 선배들이 띄운 ‘진로 나침반’

입학 후 전공과 진로를 두고 짙은 안갯속을 비행 중인 새내기들을 위해 현업의 활주로를 누비는 선배들이 든든한 관제탑으로 나섰다. 9일 한국항공대학교 새내기성공센터는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 신입생들의 주도적인 진로 설계를 돕기 위해 마련한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진로 릴레이 토크'가 학생들의 호응 속에 순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선배들이 직접 부딪히며 얻은 대학 생활의 치열한 고민과 현업의 땀 냄새 나는 실무 경험을 여과 없이 공유하는 '현실 밀착형' 멘토링으로 꾸려졌다. 릴레이 멘토링의 포문은 항공 산업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동문들이 열었다. 지난 3월 연단에 오른 에어서울 운항통제실 이찬희(항공교통 18) 운항관리사는 직무 선택의 계기와 준비 과정을 실제 사례에 녹여냈다. 그는 “진로라는 항로는 결코 빠르고 곧은 직선으로만 뻗어 있지 않다"며 숱한 시행착오의 우회로 속에서도 자신만의 궤도를 찾아가는 뚝심의 가치를 역설했다. 이어 4월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계류장 관제를 담당하는 조하나(항공교통 22) 동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조 동문은 자신의 학부 4년 타임 라인을 촘촘히 되짚으며 학년별 '우선 순위 로드맵'을 제시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한 적성 발굴부터 항공법규·항공정보·기상 등 전공 과목 실전 학습법까지 아낌없이 공개한 그는 “획일화된 스펙 쌓기보다 희망 기업과 직무 성격에 맞춰 '나만의 키워드'를 예리하게 벼려내는 것이 취업의 핵심 무기"라고 당부했다. 지난 22일에는 현대글로비스에 재직 중인 권동빈(물류 17) 동문이 강단에 올랐다. '성장을 지독하게 추구했던 사람의 현재를 보여드립니다'라는 파격적인 화두를 던진 그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물류 현장의 역동성과 뼈를 깎는 취업 돌파기를 교차해 들려주며 후배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 취업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진로의 스펙트럼을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시간도 마련됐다. 26일 강연에 나선 대학원 석사과정 이서원(항공교통 21) 동문은 '나만의 색깔로 비행하기'를 주제로 학문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전문 연구자의 길을 택한 진솔한 고민의 흔적을 나눠 멘토링의 다양성을 더했다. 같은 날 백승우(항공교통 22) 동문은 “항공교통 전공의 진로가 관제사나 운항관리사 두 갈래뿐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다수가 선택하는 안전한 길을 무작정 좇기보다는 학부 시절의 다채로운 경험을 자양분 삼아 내게 가장 완벽히 들어맞는 길을 주체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해 객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편 한국항공대 새내기성공센터의 '진로 릴레이 토크'에는 항공교통물류학부뿐만 아니라 대학 내 다양한 전공 동문들이 참여해 멘토링의 장을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홍선영(경영학과 21) △조서현(항공운항학과 19) △우준규(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19) △윤수빈(전자 및 항공전자공학과 22) △김정훈(소프트웨어학과 20) 동문이 각자의 전공과 직무 경험을 공유했고, 추후 신소재공학과 동문의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입생들은 “막연했던 진로를 보다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선배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명확한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한국항공대 새내기성공센터 관계자는 “졸업생과 재학생 선배들의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한 진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보다 현실적이고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전공과 직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학생들의 진로 탐색 기회를 대폭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현대모비스 “‘홀로그래픽 HUD’ 조기 양산, 獨 자이스와 생산 공장·투자 지역 차후 논의”

현대모비스가 자율 주행 시대를 겨냥해 세계적인 광학 선도 기업 독일 자이스(ZEISS)와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홀로그래픽 윈드실드 디스플레이(HWD)'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산 목표 시점을 2029년에서 2030년으로 설정한 현대모비스는 독일의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수주전에 나서는 한편, 대규모 생산 거점을 유럽과 한국 중 어디에 마련할지 실무 논의에 착수했다. 파트너사인 자이스를 비롯해 독일 정부와 경제 기관 고위 인사들은 혁신 기술을 대규모 물량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한국 딥테크 기업 고유의 '대량 양산화'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자국의 거대한 포토닉스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지 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9일 독일무역투자진흥처(GTAI)·튀링엔주 경제개발공사(LEG Thüringen)·주한독일상공회의소(KGCCI)는 서울 중구 소공동 더 플라자 호텔 서울 22층 루비홀에서 '독일 포토닉스 산업 거점 - 한국 파트너를 위한 혁신 및 협력 기회'를 주제로 독일 시장 진출을 위한 조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 토론과 현장 질의응답 세션에서는 현대모비스와 자이스 간의 상용화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다뤄졌다. 1977년 현대정공 시절 컨테이너·철도·방산 사업에서 출발해 2000년대 초반 자동차 부품사로 전환한 현대모비스는 최근 스마트카 트렌드에 맞춰 전장 사업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장형민 현대모비스 AE BU 사업기획팀장은 자율 주행 시대에 대비해 기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면 유리창 조수석까지 증강 현실(AR) 화면을 띄우는 HWD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하드웨어 프로젝터 설계에 능한 현대모비스와 윈드실드용 특수 홀로그래픽 광학 필름 기술을 보유한 자이스는 2023년과 2024년 해외 전시회에서 만나 파트너십을 맺었고, 그 결과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혁신상을 공동 수상했다. 장 팀장은 “자율 주행 시대에는 차량 내 운전 대신 콘텐츠 소비 활동이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했다"며 “기계 부품 중심에서 벗어나 전장 사업을 확대 중인 당사의 프로젝터 기술과 윈드실드에 들어가는 자이스의 특수 필름 기술에 대한 니즈가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조인트 벤처(JV) 설립이나 지분 투자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선행 개발을 통한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양산 목표 시점과 대규모 투자 계획을 언급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기술 센터를 키우며 현지 완성차 업체들과 과제를 수행 중인 현대모비스는 2029년에서 2030년을 상용화 타깃으로 삼았다. 또한 오는 10일 현대모비스와 자이스 양사 실무진은 테크 미팅을 갖고, 차후에는 양산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생산 공장과 한국·유럽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가혹한 진동을 견뎌야 하는 자동차 산업과 초정밀 광학 장치 산업 간의 경험 차이는 자이스 회장의 현대모비스 연구소·서산 공장 방문, 정수영 현대모비스 사장의 독일 예나 지역 시설 교차 방문 등 최고 경영진의 소통으로 간극을 좁히게 됐다고도 했다. 현재 양측은 7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기별 운영위원회와 주간 화상 회의로 긴밀히 협력 중이다. 현장에 참석한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최종 채택 여부는 고객사가 결정하지만 2029년에서 2030년 양산을 목표로 벤츠·BMW·현대자동차·기아·제네시스 등에 계속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파트너사인 자이스 측 역시 한국 딥테크 기업이 지닌 압도적인 양산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시너지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1846년 설립 후 동서 분단을 극복하고 재건에 성공한 자이스는 최근 독일 동부에 예나 지역 마이크로옵틱스 부서에 5억 유로 이상을 집중 투자했다. 로만 클라인딘스트 자이스 마이크로옵틱스 대표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한국 테크 기업에 기대하는 바에 대한 질문에 단일 기술이 아닌 제품을 엄청난 물량으로 시장에 쏟아내는 능력을 꼽았다. 또한 과거 칼 람프레히트 전임 최고경영자(CEO)가 현대모비스를 방문해 새로운 자동차 시장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보였듯, 상이한 문화는 파트너와 시장을 다각도로 보게 해주는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클라인딘스트 대표는 “혁신 기술을 거대한 물량으로 시장에 선보이는 '대량 양산화' 역량이야말로 한국 기업이 가진 강점"이라며 “발명된 지 80년이 넘은 홀로그래피 원천 기술을 합리적인 가격과 고품질로 산업화하는 것이 당사의 목표이고, 반도체 데이터 전송 등 미래 첨단 과제를 해결할 열쇠가 광학에 있는 만큼 한국과의 파트너십은 강력한 회복 탄력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들의 뛰어난 상용화 역량을 바탕으로 독일 고위급 인사들은 행사 전반에 걸쳐 자국의 인프라를 소개하며 투자 유치를 호소했다. 독일의 특허 창출 건수는 연간 2만1000여 개이고, 유럽 수출 1위국 지위는 타국의 추총을 불허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와 관련, 독일 측은 거시적인 딥테크 연대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복잡한 글로벌 반도체 밸류 체인을 지탱하기 위해 하이테크 동맹이 필수적이라며 자국의 핵심 인프라를 부각했다. 게오르그 빌프리트 슈미트 주한 독일 대사는 “막대한 석유 자원 없이 뛰어난 두뇌와 기술, 국제 무역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하이테크 국가인 한국과 독일은 최근 주요국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는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자이스의 광학 부품 공급망이 없었다면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나 ASML의 놀라운 진보도 결코 불가능했을 것인 만큼 양국의 하이테크 연대가 절실하다"고 설파했다. 독일 정부는 옛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한 양국 경제 협력의 구체적인 지표와 강점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진출을 촉구했다. 엘리자베스 카이저 독일 연방 재무부 국무 장관 겸 연방 정부 동부 독일 특임 장관은 2024년 기준 330억 유로에 달하는 교역 규모와 540여 개의 독일 기업이 한국에서 10만 명을 고용 중인 현황과 지난해 한국 기업이 독일에 단행한 29건의 주요 투자를 언급했다. 또한 스마트폰·데이터 센터·자동차·재생 에너지 등 현대 경제의 중추인 마이크로칩 산업 육성을 위해 라이프니츠 연구소·프라운호퍼 연구소, 예나의 옵토넷(OptoNet)이 결집해 있고 보쉬와 글로벌 파운드리가 입주한 '실리콘 작센' 클러스터가 독일 동부 지역에 밀집해 있음을 강조했다. 본지는 카이저 장관에게 동부 지역에 진출 시 한국 기업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 질의했다. 이에 카이저 장관은 “우수한 대학과 연구소가 결집한 독일 동부 지역은 혁신적인 마이크로전자 클러스터 허브"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 합류한다면 공급망 파트너십 구축과 중소기업을 위한 중앙 혁신 프로그램(ZIM) 지원, 풍력·태양광 등 북동부 친환경 에너지를 통한 반도체 생산 탄소 발자국 감축 효과를 누리는 등의 이점이 따를 것"이라고 답변했다. 독일 현지의 포토닉스 산업 규모와 기업 지원책도 상세히 공유됐다. 일디즈 괴체 독일무역투자진흥처(GTAI) 국제화 지원 프로그램 총괄이사는 독일 포토닉스 산업이 1000여 개 기업과 19만 명의 직원을 바탕으로 약 500억 유로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수출 생태계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튀링엔주에만 국제우주정거장(ISS) 임무를 수행하는 예나 옵트로닉(Jena-Optronik) 등 195개 기업이 모여 40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 기업이 현지 진출 시 겪게 될 장벽과 파트너 발굴에 관한 본지 질문에 괴체 총괄이사는 “기업의 부지 선정부터 시장 인텔리전스 제공·파트너 매칭·법률 및 세무 자문에 이르기까지 투자 전 과정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 튀링엔주 경제개발공사는 튀링엔 지역이 전자·광학·세라믹 제조의 깊은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은 만큼 유럽 전체에서 센서 기술 기업 밀집도가 가장 높은 혁신 허브라며 사절단을 구성해 방한하겠다는 계획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홈플러스 구조조정에 고려아연 노조 “사모펀드 약탈경영 막아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과정이 전격적인 폐점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진 가운데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홈플러스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선언했다.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고려아연 노조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사포펀드 MBK의 '먹튀 잔혹사'가 끝내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집어삼켰다"며 “홈플러스 노조와 연대해 일자리를 위협하는 MBK에 대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의 눈물이 고려아연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한 고려아연 노조가 MBK파트너스(MBK)의 적대적 M&A를 저지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자본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에 대한 노조의 반발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최근 홈플러스가 전국 37개 점포 폐점 및 직원 권고사직 등 인원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정규직 노동자 3500여 명과 협력업체, 입점상인 약 2만 명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납품 피해자모임은 같은 날 경상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후 납품대금 미지급으로 협력업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전수조사 및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손실 5464억원, 현금 및 현금성자산의 급감(2024년 1393억원→2025년 104억원)을 기록한 홈플러스의 재무 악화에 MBK가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긴급운영자금(DIP)을 요청하면서도 법인 차원의 연대보증을 거부하며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한편, 고려아연 노조는 성명서에서 홈플러스 사태가 단순히 한 유통기업의 위기가 아닌 MBK의 수익성 회수에 치중한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이 초래한 구조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노조는 사모펀드의 기간산업 인수 제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검찰·사법당국에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를 하루빨리 재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르포] “가슴 압박, 갈비뼈 부러져도 멈추지 마라”…파라타항공 신입 승무원 응급 처치 참관기

“심폐 소생술(CPR)은 하던 도중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져도 무조건 계속해야 합니다.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뇌로 산소가 공급되는 것이 환자의 생존에 훨씬 중요합니다. 법적으로 기내에서 '사망 선고'는 오직 의사만이 내릴 수 있습니다. 병원 밖 심정지 환자가 CPR로 소생할 확률은 1%에 불과합니다. 상공 한가운데 밀폐된 객실에서 그 1%의 기적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몸이 즉각 반응하도록 하십시오!" 중환자실에서 3년간 생사의 갈림길을 지켜본 베테랑 간호사 출신 교관의 단호한 목소리가 교육장을 묵직하게 채웠다.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소재 파라타항공 본사 교육장에서는 5기 신입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응급 처치 일반 사항 교육이 진행됐다. 이곳은 친절한 서비스 예절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기내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해야 할 매뉴얼을 체화하는 '구명(救命)'의 장이었다. 이번 교육의 학습 목표는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처치 상황 설명 △기본적인 응급 처치·생명유지 진행 순서 수행 △구조 호흡· CPR 방법 숙지·실시 △부상·질병의 종류 이해·설명 등으로 매우 명확했다. ◇“승무원은 진단하지 않는다"…구명 원칙과 5단계 행동 요령 기내 응급 처치의 대원칙은 '승무원은 환자를 진단하거나 처방하는 의사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승무원의 역할은 의료인에게 환자를 안전하게 인도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조치에 국한된다. 환자가 발생하면 최초 발견자는 즉시 도움을 요청하며 응급 처치를 시작한다. 승무원들은 '상황 판단(Consent)➔소통➔CPR➔회복 자세➔상태 파악·관찰'이라는 5단계 행동 원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가장 먼저 환자에게 “저는 훈련받은 승무원입니다.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신분을 밝히고 명시적 동의를 구한다. 단, 의식이 없는 심정지 환자의 경우 묵시적 동의로 간주해 즉시 응급 처치에 돌입한다. 이후 동료 승무원들에게 기장 통보·지상 도움 요청·장비 비치 등 도움을 요청하고 CPR을 실시한다. 호흡은 정상이나 의식이 없는 환자는 기도 폐쇄를 막고 체액이나 이물질이 입 밖으로 흐르도록 옆으로 눕히는 회복 자세를 취하게 한 뒤, 호흡·얼굴색·피부색·체온 등을 살피고 보온을 유지한다. 도움을 요청받은 다른 승무원들은 자동 심장 충격기(AED)와 구급 상자(FAK)를 가져와 처치를 돕고, 객실사무장은 기장에게 보고 후 방송으로 의료진을 찾는 '닥터 페이징'을 실시한다. 남은 승무원은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고 타 승객들을 안정시킨다. 기내에 자신이 의사임을 밝히는 승객이 있다면 신분 증명서나 명함을 통해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조산사 등 법적 의료인임을 확인해야 하며, 입증이 불가능하면 전적으로 기장의 판단을 따른다. 기내에서 의료인이 응급 조치를 수행할 때 승무원은 항상 환자 곁을 지키며 기장에게 상황을 지속해서 보고해야 하고, 지상 의료진에게 인계될 때까지 함께해야 한다. 만약 의료인이 탑승하지 않았고 환자 상태가 위급하다면 기장은 지상 의료진에게 원격 협조를 요청한다. 이때 지상에 전달해야 할 필수 정보는 △환자 인적 사항(성명·좌석 번호·국적·나이·성별·출발/도착지·연락처) △과거 병력·현재 사용 중인 약명 △의식 상태를 포함한 모든 증상 △호흡 유무·산소 사용 여부 △동반자 유무 △기내 응급 처치 사항 △도착 시 필요한 의료 지원 종류 등이다. 동시에 승무원은 환자의 객관적 상태를 알 수 있는 4대 활력 징후(Vital Signs)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정상 범위는 맥박 분당 60~100회, 호흡 분당 12~20회, 체온 36.5~37.2°C, 혈압 수축기 90~140 / 이완기 60~90mmHg이다. 비행이 종료되면 이 모든 과정을 담아 각종 내역을 상세히 적은 '객실 보고서(Cabin Report)'를 제출해야 한다. 처치 과정에서 감염 방지 수칙도 엄격하다. 환자의 혈액·상처dlsk 짓무른 부위 등 체액과 직접 접촉을 피하고, 인공 호흡 시 FAK 내 마스크를 반드시 사용하며, 처치 후 손을 씻고 접촉 시 비행 후 의료진의 조치를 받아야 한다. ◇땀방울 맺힌 골든타임 사수…CPR·AED·기도 폐쇄·붕대법 실습 훈련생들은 실전과 똑같은 강도로 실습에 임했다. CPR 훈련에 나선 여성 훈련생은 성인 마네킹을 상대로 두 손을 깍지 끼고 팔을 수직으로 뻗어 양 젖꼭지 사이 정중앙을 약 5cm 깊이로 체중을 실어 압박했다. 영유아의 경우 양 젖꼭지 가상선 바로 아래 중앙을 두 손가락만으로 4~5cm 깊이로 눌러야 한다. 분당 100~120회의 속도로 가슴 압박 30회를 한 뒤, 머리를 젖히고 턱을 들어 올려 기도를 열고 인공호흡 2회를 실시하는 사이클이 기계처럼 반복됐다. 자동 심실제세동기(AED)는 연령과 체중에 상관없이 CPR과 병행해 심장 기능을 소생시키는 장비다. 부착 전 피부의 땀과 물기를 닦고, 털이 많으면 제거하며 금속 장신구는 뺀다. 패드 부착 위치는 성인의 경우 우측 쇄골(빗장뼈) 바로 아래와 좌측 유두 아래쪽 겨드랑이 선이며, 영유아는 가슴과 등에 앞뒤로 부착한다. 전원을 켜고 심장 리듬을 분석하거나 주황색 쇼크 버튼을 누를 때는 반드시 “환자에게서 떨어지세요!"라고 크게 외쳐야 하며, 지시가 끝나면 즉각 CPR을 다시 시작한다. 기도 폐쇄(Choking) 실습은 2인 1조로 진행됐다. 환자가 쌕쌕거리며 숨을 쉴 수 있는 '부분 기도 폐쇄' 상태라면 상체를 숙이게 해 스스로 기침을 하도록 유도한다. 반면 숨소리가 안 나고 기침도 못 하며 청색증이 오는 '완전 기도 폐쇄' 시엔 즉각 등 뒤로 가 명치와 배꼽 중간 지점에 주먹을 쥐고 위로 강하게 밀어 올리는 복부 압박(하임리히법)을 실시해야 한다. 단, 비만이나 임산부의 경우 복부가 아닌 흉부를 압박하며, 영유아는 등을 5회 두드리고 가슴을 5회 압박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라면 '현장 안전 확인➔의식·호흡 확인➔가슴 압박 30회➔입안 이물질 확인 후 제거➔인공 호흡 2회'의 사이클을 기도가 개방될 때까지 반복한다. 외상·출혈 응급 처치 실습에서는 바닥에 모여 앉은 여성 훈련생들이 서로의 팔에 삼각건(붕대)을 감으며 감각을 익혔다. 베인 상처와 타박상은 출혈 시 지혈하고 물로 세척 후 소독해 깨끗한 붕대로 감는다. 심한 출혈은 마른 붕대나 천으로 환부를 직접 압박하며, 골절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상처를 심장(가슴)보다 높게 들어 올린다. 완전히 지혈되기 전까진 너무 단단히 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붕대법으로는 붕대의 시작과 끝을 고정하는 '환행대', 굵기가 일정한 팔 부위에 붕대 너비의 3분의 2씩 겹쳐 감는 '나선대', 굵기가 다른 부위에 한 번씩 꺾어 산(▲) 모양을 만들어 단단히 묶는 '절전대' 기법이 모두 동원됐다. 매듭은 환자가 불편하지 않게 롤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처리하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기내 작은 약국 '메디컬 백'과 내과 질환, 기내 출산 매뉴얼 기내 전방과 후방에 각각 1개씩 탑재되는 메디컬 백(Medical Bag)은 13종의 용품으로 구성된다. 내복약인 성인용 해열 진통 소염제·소아용 해열 진통 소염제·멀미약·알레르기약·소화제·지사제를 비롯해 일회용·멸균 밴드와 소독용 스왑·인공 눈물·상처 및 화상 연고가 구비돼 있다. 객관적 활력 징후 파악을 위해 즉시 사용해야 하는 '체온계'(겨드랑이로 측정)와 2도 이상 화상 환자에게 즉각적인 냉각 및 오염 방지를 제공하는 '번 실드(10x10cm 시트)'도 탑재돼 있다. 번실드는 화상 연고와 함께 사용하지 않고 단독 사용을 권장한다. 모든 약품은 승객이 먼저 요청했을 때만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하고, 객실 사무장(DP)에게 반드시 보고한 후 제공한다. 사용 후엔 '약품 관리 대장'에 수기로 날짜·사용자·약품명·좌석 번호 등을 꼼꼼히 적고, 사내 커뮤니티에 탑재 요청 글을 작성해 비행 전 약품을 보충해야 한다. 기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특정 증상별 대처법도 철저히 다뤄졌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만취 상태로 술 냄새·분별력 저하·안면 창백 및 홍조, 메스꺼움 또는 구토 증상을 보일 경우 즉각 주류 제공을 중단한다고 한다. 카페인이 없는 음료로 수분을 보충하고, 적절히 보온하며 구토 상황에 대비한다. 저혈당 환자가 의식이 있다면 인슐린 쇼크 방지를 위해 사탕 3~4개나 주스 등 당질을 제공한다. 의식이 없을 땐 질식 우려가 있으므로 절대 억지로 먹이지 말고 혀 밑에 소량의 설탕만 발라준 뒤 기도가 막히지 않게 조치하며 신속히 의료진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승객이 이통(항공 중이염)을 느끼면 기압 변화로 귀가 멍멍하고 고통스럽다. 현기증·두통이 오면 하품·침 삼키기·껌 씹기·물 마시기를 유도한다. 코를 막고 입을 다문 채 코 뒤쪽으로 공기를 힘껏 미는 '발살바 호흡법(Valsalva maneuver)'을 적극 안내하고, 유아는 우유병이나 젖을 물리게 한다. 뇌졸중의 F.A.S.T 징후인 얼굴 일그러짐(Face)·한쪽 팔 마비 및 감각 저하(Arms)·어눌한 발음(Speech)을 식별하면 즉시(Time) 기장에게 보고해 3시간 내 병원 도착을 목표로 한다. 기도 확보 후 환자를 안정시키며 필요시 산소를 주되, 질식 위험으로 음식물 제공은 절대 금지된다. 가장 긴장감이 맴도는 훈련은 중대한 '기내 출산' 매뉴얼이었다. 산모의 하복부 통증과 함께 양수가 터지고, 30~60초간 지속되는 진통의 간격이 10~20분에서 2~3분으로 짧아지면 즉시 출산을 준비해야 한다. 닥터 페이징 후 바닥에 깨끗한 천과 담요를 깔고 위생 장갑·구토대·의료 장비를 준비한다. 산모의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벌리게 한 뒤 머리·어깨·엉덩이 아래에 옷가지를 받쳐준다. 승무원은 손과 팔 전체를 씻고 소독 장갑을 낀다.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손과 팔로 조심스럽게 받쳐준다. 교관은 “절대 인위적으로 잡아당겨서는 안 되며,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유도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탯줄이 목에 감겼다면 보이는 부분부터 느슨하게 푼다. 출산 직후에는 신생아를 깨끗한 옷으로 감싸고 태반 분만을 돕는다. 산후 출혈을 막기 위해 생리대를 대어주고, 자궁 수축 및 출혈 감소를 위해 산모 스스로 배꼽 주변을 마사지하도록 안내하며 출혈 정도와 전신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 ◇승무원 건강 관리=300명 승객 생명줄 구명 훈련의 마지막 장식은 승무원 본인의 건강 관리를 위한 '항공 생리' 교육이었다. 기내 환경은 7000~8000ft의 높은 산과 유사한 기압, 24°C 내외의 온도, 10% 내외의 무척 건조한 습도를 가진 특수 공간이다. 또한 3~4분마다 환기 장치로 공기가 완전히 교체되고 비행 중 지속적으로 50~60dB의 진동과 소음이 발생한다. 이처럼 환경 속 좁은 좌석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피떡이 생기는 치명적인 질환인 '심부정맥 혈전증(DVT·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술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야 하며, 몸을 꽉 조이는 자세로 잠들거나 수면제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교관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좌석 앞 발밑에 짐을 두지 말고, 일정 시간 간격으로 발을 스트레칭하며 다리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항공보안학회 춘계 학술대회 ②] 여객기 해킹·사후 소송에 떠는 조종사…당국에 실효적 ‘사이버 복원력·면책권’ 요구

과거 기체 결함이나 기상 악화를 다루는 '안전(Safety)'과 폭발물 테러나 불법 침입을 막는 '보안(Security)'은 부처 간 칸막이에 의해 엄격히 분리된 영역이었다. 그러나 항공 전자 장비(Avionics)를 노리는 사이버 해킹이 현실화되고 기내 난동이 더욱 흉악해지고 있다. 때문에 상황에서 1만 미터 상공의 비행 현장을 책임지는 조종사들이 당국의 탁상공론식 행정을 비판하며 실효적인 거버넌스 대수술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단법인 한국항공보안학회(KAFAS)는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립항공박물관 2층 세미나실에서 '세션 2: 항공 안전 보안 거버넌스' 심층 논의를 진행했다. 이번 세션은 박진서 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한국항공보안학회 부회장)이 좌장을 맡았고, 실제 비행 현장을 매일 책임지는 현직 기장·부기장들과 법·제도 전문가들이 대거 연단에 올라 '살아있는 실무형 거버넌스' 혁신안을 쏟아내며 학술대회의 백미를 장식했다. ◇“보안의 이름으로 훼손되는 비행 안전"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소속인 배덕희 에어제타 부기장은 '항공 보안 효율성 제고 종합 방안'을 발표하며 낡은 보안 규제의 맹점을 짚었다. 그는 공항 보안 통제 구역을 출입하고 항공기에 오르는 운항 승무원의 생생한 시각에서 형식적이고 획일화된 현행 항공보안 검색 절차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배 부기장은 “항공 보안이라는 명목 아래 매번 신원과 배경이 철저히 검증된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들에게까지 일반 승객과 동일한 수준의 과도하고 소모적인 물리적 보안 검색과 액체류 반입 제한 등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승무원의 육체적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불필요하게 가중시켜, 이륙 후 정작 가장 집중해야 할 비행 안전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첨단 생체인식 및 신원 확인 기술을 활용해 검증된 인력에 대해서는 검색을 대폭 완화하는 '신뢰 기반의 선택적 보안 시스템(RBS, Risk-based Security)' 전면 도입과 기내 반입이 제한된 불필요한 조종실 내 위해 물품 기준의 합리적 완화 등 안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장 운영의 효율과 편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밀착형 개선안을 제안했다. ◇“해킹당한 여객기에서 조종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이준혁 대한항공 부기장은 조종사협회원으로서 '항공 사이버 보안에서의 체크 리스트 기반 운영 회복 탄력성'을 다루며 디지털 시대 민항기가 직면한 새로운 사이버 사각지대를 경고했다. A350·보잉 787 등 현대의 최신 항공기들은 수많은 컴퓨터 시스템·센서·통신 장비가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돼 외부 위성 및 지상 관제와 쉴 새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디지털 서버'로 진화했다. 이로 인해 항공기 전자 장비나 지상 관제 통신망이 해커의 표적이 되어 랜섬웨어에 감염되거나 악의적인 GPS 스푸핑(위치 정보 교란) 등 고도화된 사이버 테러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위험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다. 이 발제자는 “만약 비행 중 외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내비게이션 및 자동 비행 시스템이 먹통이 되거나 계기판에 치명적인 데이터 오류 정보가 뜰 때, 조종사가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상 실무 가이드라인이 현재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그는 사이버 공격 징후 발생 시 조종사가 즉각적으로 외부 네트워크 연결을 물리적으로 차단·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날로그 방식의 수동 비행으로 신속히 전환해 안전하게 회항할 수 있도록 항공기 기종별로 완벽히 표준화된 '사이버 보안 대응 체크리스트(QRH, Quick Reference Handbook)'를 법제화 해 시스템의 운영 회복 탄력성(Operational Resilience)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장들, 테러범 앞에서도 사후 소송을 두려워한다" 안희복 항공보안학회 이사는 '항공 보안과 기장의 권한'이라는 주제로 기내 치안을 위협하는 법리적 사각지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최근 △취객의 기내 난동 △승무원 폭행 △비상구 문 개방 시도 △불법 무기 반입 등 예기치 않은 기내 불법 방해 행위가 나날이 흉포화되는 가운데 이륙 후 항공기의 최고 책임자이자 승객의 생명을 짊어진 최종 의사 결정권자는 '기장(PIC, Pilot In Command)'이라고 현행법에 명시돼 있다. 안 이사는 “고도 수만 피트 상공의 제한되고 고립된 긴박한 혼란 상황 속에서 기장이 주저 없이 승무원과 승객을 지휘해 테러범이나 난동객을 제압하도록 지휘권을 행사하고, 필요시 인근 공항으로의 비상 회항을 독자적으로 즉각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현행 항공보안법의 모호한 해석과 항공사 내부 매뉴얼의 보수성 및 징계 압박, 그리고 지상에 내린 뒤 벌어질 사후 과잉 진압 논란 등 민형사상 법적 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기장들이 정당한 통제 권한 행사에 극심한 심리적·구조적 제약과 위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안 이사는 도쿄 협약 등 국제법과 국내 항공보안법에 명시된 기장의 사법경찰권적 통제·지휘 권한을 실효성 있게 대폭 강화하고, 기내 안전을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선관주의) 의무를 다한 정당한 보안 조치 시 기장을 완벽히 보호해 주는 '법적 면책 규정'을 더욱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전-보안 철벽 칸막이를 부숴라" 마지막으로 학회 이사인 안주연 한국재난안전정책개발연구원 이사는 '항공 안전·보안 상호 연결적 위험 관리 거버넌스'를 발표하며 이번 학술대회 세션 2를 관통하는 핵심 정책 거버넌스 방향성을 제시했다. 과거에는 기체 결함이나 기상 악화, 조종사의 조작 실수를 다루는 '안전(Safety)' 영역과 폭발물 테러나 납치·무기 밀반입·불법 침입을 막는 '보안' 영역이 철저히 분절돼 국토교통부·국가정보원·경찰 등 각기 다른 정부 부처와 기관의 이기주의 속에 칸막이식으로 개별 관리돼 왔다. 이에 안 이사는 “그러나 앞선 발제들에서 보듯 공항 활주로에 불법 드론이 난입해 발생하는 항공기 충돌 위험이나, 지상 관제 시스템 해킹에 의한 대규모 항로 이탈 등 현대의 하이브리드 비대칭 위협은 '보안'의 방어망이 뚫림과 동시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안전' 참사로 직결되는 상호 연결적복합 재난의 성격을 띤다"고 분석했다. 안 이사는 “사건 발생 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놓고 싸울 시간이 없다"며 “국토부·국정원·경찰청·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각 항공사·군 등 보안과 안전에 얽힌 수많은 이해 관계 당사자들이 이기주의의 두꺼운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한 단일한 거대한 프레임 워크 안에서 실시간으로 위험 데이터를 수집·공유하며 선제적으로 합동 대응할 수 있는 '통합 위험 관리 지휘 통제(C2) 거버넌스' 플랫폼의 조속한 국가적 구축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세션 2 발제 직후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송병흠 한국항공대학교 명예교수와 김건환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부협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은 비행 중인 조종실과 객실, 지상의 항공 교통 관제 센터(ATC) 및 국가 대테러 기구 간의 실시간 비상 상황 정보 공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현실을 꼬집었다. 두 패널은 공중의 테러 위협이나 비상 상황을 지상에서 신속히 파악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IT 데이터 링크 통신 시스템 고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책상 앞에서의 탁상공론식 행정을 타파하기 위해 기장·객실 승무원·정비사 등 실제 비행 현장 종사자와 정부의 정책 입안자가 상시로 모여 제도를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상설화된 민관 합동 실무 협의체' 신설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