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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강찬수 기자 입니다.
  • 기후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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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 이렇게] 차 연료·가정전력 10% 줄이면 CO₂ 연간 1450만톤 감축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격화하고,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는 장기적으로도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고유가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고, 정부는 공공기관과 산업계 등에 에너지 절약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분위기다.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절약은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순기능은 있다. 자동차 연료와 전력 사용을 줄이면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고,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에너지 소비가 급감하자 대기질은 즉각적으로 개선됐다. 중국에서는 질소산화물(NO₂)이 약 30~50%, 초미세먼지(PM2.5)는 최대 30% 이상 감소했고,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PM2.5 농도가 전년 대비 약 40% 이상 줄어드는 등 뚜렷한 개선이 나타났다. 이는 교통과 산업, 발전 부문의 에너지 사용 감소가 곧바로 대기오염 저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실증 사례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고유가 시대에 자동차 연료와 가정 전력을 각 10%씩 줄인다면, 1년 동안 거둘 수 있는 환경개선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본지는 국내외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했다. ◇차 연료 10% 줄이면 CO₂ 1000만톤 이상 감축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651만5000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 휘발유 차량이 1239만7000대, 경유 차량이 860만4000대, LPG 차량이 184만대, 하이브리드 차량 255만 대, 전기차 89만9000대 등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24년 한해 휘발유 소비량은 9504만 배럴, 경유 소비량은 1억5507만 배럴, 차량용 LPG는 2800만 배럴이다. 이를 리터(L)로 환산하면 휘발유는 약 150억 L, 경유 약 250억 L, LPG는 45억 L에 해당한다. 이같은 휘발유와 경유, LPG 소비를 △대중교통 이용 △5부제 참여 △급출발, 급제동 않기 △카풀 활성화 등을 통해 10% 절약한다고 하면, 휘발유는 15억 L, 경유는 25억 L, LPG는 4억5000만 L를 절약하는 셈이다. 연료별로 1L를 줄였을 때 감축할 수 있는 CO₂의 양은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적용하면 구할 수 있는데, 휘발유가 2.3kg, 경유가 2.6kg, LPG가 1.6kg이다. 이를 바탕으로, 휘발유 사용을 10% 줄이면 약 350만 톤 CO₂를 감축하는 셈이다. 경유 10% 감축은 약 650만 톤의 CO₂가 줄어든다. LPG 10% 감축도 CO₂ 배출량을 약 75만톤 정도 줄일 수 있다. 결국, 자동차 연료 10%를 줄이면 연간 1075만톤의 CO₂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대기오염 개선 효과도 크다. 특히, 경유 사용 절감은 개선 효과가 크다.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나 미세먼지(PM) 배출량 감축 규모는 수백~수천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여름철 오존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도심 공기질이 직접 개선되고,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 전력 소비를 10% 줄인다면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전력공사가 판매한 전력의 양은 550 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이고, 이중 가정용은 84 TWh에 해당한다. 가정부문이 전체 전력 소비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전력 소비 1kWh를 절약할 때 줄어드는 CO₂는 국내 전력 에너지 믹스와 배출계수 등을 고려하면 0.45 kg정도 된다. 이에 따라 △빈 방 조명 끄기 △대기전력 줄이기 △냉장고 여닫는 횟수 줄이기 △엘리베이트 닫힘 버튼 누르지 않기 △빨래 모아서 세탁하기 등을 통해 가정용 전력의 10%인 8.4 TWh를 절약한다면, 378만톤의 CO₂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평균 배출계수를 적용한 값으로, 석탄 발전이 먼저 줄어들 경우 감축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사태는 중동 석유 수급이 원인이어서 석탄 발전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LNG 발전량과 석탄 발전량이 줄어들 경우 대기오염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SO₂와 NOx 배출량이 감소하고, 결국 미세먼지 오염과 오존 오염이 줄어들 수 있다. ◇국내 산림 면적의 25%에 해당하는 정화 역할 자동차 연료 사용 10% 절감과 가정용 전력 10% 절전으로 줄일 수 있는 CO₂는 모두 1453만톤 수준이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30년 생 소나무 숲 1㏊가 1년에 흡수할 수 있는 CO₂가 10.77톤이므로, 1453만톤을 줄인다는 얘기는 30년 생 소나무 숲 135만㏊가 하는 일과 맞먹는다. 숲 135만㏊는 1만3500㎢로 서울시 면적(약 605㎢)의 약 22배 규모이고, 전체 국내 산림면적 630만㏊의 21%에 해당한다. 이같은 계산 결과는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절약이 대기오염·건강·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하는 정책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동차를 덜 타면 도심의 공기질이 개선되고, 가정 등에서 절전하면 LNG와 석탄 발전 감소로 수입 의존도 완화는 물론 대기오염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지정학적 위기는 한국 사회에 에너지 절약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에너지 절약은 불편이 따르지만,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호르무즈 해협 만들고 엄청난 석유 저장한 5억년 역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한 달을 넘기고도 끝날 줄을 모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군쇄적으로 봉쇄하고, 선박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통행료를 걷겠다고도 한다. 여기에 예맨의 후티 반군까지 이란 편에서 서서 참전하겠다고 나서면서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항로마저 위협받고 있다. 치솟는 석유 가격에 전 세계는 조바심을 내며 중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싼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는 단순한 해상 통로를 넘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쥔 공간이 됐다. 그렇다면 좁은 항로를 가진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유독 원유가 집중적으로 매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곳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지질학적 사건들이 중첩된 공간이고, 그 사건들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집중적으로 매장됐다. 그런 지질학적 '특이점'이 지금과 같은 지형을 형성하게 한 원인이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라비아 반도 주변 지역에 지질학적 역사를 살펴본다. ◇테티스해(海): 모든 것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중동 지역의 석유 이야기는 고대 해양 '테티스해(Tethys Sea)'에서 시작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크리스토퍼 G. 켄달 교수 등이 2014년 편집한 '미국석유지질학회 연구총서(AAPG Memoir)' 106호 내용에 따르면, 아라비아 판(板, plate)과 북아프리카는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약 5억 4100만년 전부터 6500만년 전 사이) 테티스 해의 연안 환경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퇴적과 석유 시스템을 형성했다. 이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따뜻하고 얕으며, 생물이 폭발적으로 번성하는 생산성이 매우 높은 해양 생태계였다. 온도가 높고 햇빛이 풍부한 이 환경에서 식물플랑크톤인 조류(algae)와 남세균(cyanobacteria)은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면서 대량으로 성장했고, 죽은 뒤에는 해저에 쌓였다. 중요한 점은 당시 해저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플랑크톤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보존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탄화수소의 원천이 되는 근원암(source rock)으로 변화했다. 근원암은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모암으로, 주로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석유 시스템의 첫 단계, 즉 '석유를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일어났다. ◇실루리아기 '핫 셰일': 에너지의 원천이 된 지층 이 지역 석유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실루리아기(4억 4380만 년 전~ 4억 1600만 년 전)의 '핫 셰일(hot shale)'이다. 혈암(頁岩)이라고도 불리는 셰일은 주로 작은 자갈이 퇴적돼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단단하게 굳어져 형성된 퇴적암이다. 아랍에미리트 대학의 압둘라만 S. 알샤르한 교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켄달 교수는 2021년 '미국석유지질학회 회보(AAPG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핫 셰일'이 아라비아 판 전역의 주요 탄화수소 공급원임을 강조한다. 이 셰일층은 유기물이 매우 풍부하고 높은 방사선(감마선) 수치를 보이기 때문에 '핫 셰일'이라 불린다. 핫 셰일은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고,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침수되는 시기에 형성되는데, 넓은 지역에 걸쳐 균일하게 분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실루리아기를 포함한 고생대(5억4100만년 전부터 2억5190만년 전 사이)퇴적층이 해수면 변동(eustatic sea-level change)과 빙하기, 그리고 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산 운동(造山運動)은 지구 표면을 덮은 약 10장의 강한 판이 서로 부딪치거나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말한다. 조산 운동을 통해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대산맥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라비아판은 단순히 유기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으로 유기물이 축적되고,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침식과 구조가 형성되는 단계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석유 생성과 저장에 최적화된 지층 구조가 만들어졌다. 핫 셰일은 바로 이 복합적인 환경에서 형성된 '지질학적 엔진'인 셈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이 동력의 근원이듯 유기물이 고온·고압을 받아 중동 고생대 석유 시스템 전체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밀어 넣어주는 에너지 생산의 본체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아라비아 판: 이동하는 대륙이 만든 구조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땅속 석유는 어떻게 모였을까. 그 답은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있다. 아라비아 판은 원래 남반구의 곤드와나(Gondwana)대륙에 속해 있었으나, 수억 년에 걸쳐 북쪽으로 이동했다. 곤드와나 대륙은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에 걸쳐 남반구에 분포했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다. 현재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 이외에 마다가스카르, 인도대륙까지 하나의 대륙, 즉 곤드와나 대륙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판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핵심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는 판의 분리와 홍해의 탄생이다.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과 갈라지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홍해다. 홍해는 지금도 진행 중인 리프트(rift) 구조다. 거대한 지각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면서 지각이 찢어지고 벌어지는 지질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란 의미다. 두번째는 판이 충돌하면서 자그로스 산맥과 페르시아만이 형성됐다. 아프리카 판과 갈라진 아라비아 판은 이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 판과 충돌하게 된다.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우주환 연구원과 이철우 교수가 2021년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충돌은 튀르키예에서 호르무즈까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이 약 2000㎞에 이르는 자그로스 습곡대를 형성했다. 습곡대는 지각 변동으로 지층이 주름이 진 형태가 된 곳을 말한다. 이 충돌은 단순한 산맥 형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층이 휘어짐(습곡 형성)과 단층 형성, 복잡한 지하 구조 형성 등을 통해 석유를 땅속에 가두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세번째 사건은 아라비아 판의 시계 반대 방향 회전이다. 알샤르한 교수와 켄달 교수의 2021년 논문은 아라비아 판이 아프리카 판에 대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6~7도 회전하며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회전 운동은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지각 경계선을 재설정하고, 서쪽의 사해(Dead Sea) 변환 단층과 같은 복잡한 단층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세 가지 역동적인 사건이 결합해 현재 아라비아 반도의 지형과 세계 최대의 에너지 매장지를 동시에 탄생시켰다. ◇배사구조: 석유를 모으는 자연의 저장고 석유는 가벼운 물질이기 때문에 생성되면 위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를 '잡아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사구조(背斜構造, anticline)다. 옆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지층이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올라간 습곡 구조를 말한다. 최근에 쌓인 지층은 위로 휘어져 올라가고, 중심부에는 오래된 지층이 위치하게 된다. 배사구조는 지층이 위로 휘어지면서 가장 아래쪽에 있던 오래된 지층이 습곡의 중심부(핵)에 위치하게 된다. 즉, 지표면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더 오래된 암석이 나타나는 구조다. 배사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두는 '트랩(trap)'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보다 가벼운 원유와 가스는 지층 사이를 따라 위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배사구조의 볼록한 꼭대기 부분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위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형 유전이 형성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철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란의 자그로스 습곡대 전면부에는 이러한 배사구조가 대규모로 발달해 있어 이곳에만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8%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저류암(reservoir rock)의 역할도 중요하다. 저류암은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와 가스가 이동해와 실제로 저장되는 암석층이다. 탄산염암처럼 암석 내부에 미세한 구멍(공극)이 많아 석유를 품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중동 지역의 석유 시스템에서 배사구조와 저류암의 관계는 '그릇'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의 관계와 같다. 저류암이라는 우수한 저장 물질이 배사구조라는 효율적인 저장 구조를 만났기 때문에 중동 지역에 세계적인 규모의 유전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거대한 천연 석유 저장고인 트랩(trap)을 형성하게 된다. ◇소금 돔: 석유를 지켜주는 '완벽한 밀봉' 그러나 배사구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석유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밀봉층(sealing layer), 또는 덮개암(cap rock)이다. 밀봉층은 지층 속에서 생성된 석유나 천연가스가 지표면으로 새 나가지 못하도록 그 위를 단단히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치밀한 암석층을 말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과거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형성된 증발암(Evaporite)이 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증발암의 주성분인 소금(암염)이나 무수석고(Anhydrite)는 입자가 매우 치밀해 액체나 기체를 거의 통과시키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하부 저류층에 모인 석유와 가스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지층 속에 고여 있을 수 있다. 페름기 후기(약 2억 5000만 년 전)에는 광범위한 해수면 상승 이후 대규모의 탄산염-증발암 퇴적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현재의 주요 밀봉층이 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는 이러한 두꺼운 소금층이 지각 운동의 압력을 받아 위로 솟구치며 소금 돔(salt dome) 구조를 형성했다. 소금 돔은 지하에 층상으로 넓게 깔려 있던 증발암(특히 소금층)이 지각 운동이나 밀도 차이에 의한 압력을 받아 위로 볼록하게 밀려 올라오며 형성된 기둥이나 돔 모양의 구조를 말한다. 이 구조는 석유를 특정 구역에 더욱 효과적으로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천연 저장 탱크' 역할을 한다. 덕분에 석유는 수백만 년 동안 그 안에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고, 이 지역이 세계 최고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소금 돔은 석유 시스템에서 '보존'과 '집적'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완전한 석유 시스템'이 에너지 저장소로 만들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중동 지역은 △근원암 (핫 셰일) △저류암 (탄산염암, 사암) △트랩 (배사구조) △밀봉층 (증발암, 소금 돔) 등 네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된 '완전한 석유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 네 요소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판의 이동과 해수면 변화라는 하나의 지질학적 흐름 속에서 동시에 형성됐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다. 그 본질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지질학적 자산, 즉 에너지를 둘러싼 경쟁이다. 아라비아 판의 이동, 테티스해의 퇴적, 빙하기와 해수면 변화, 판의 분리와 충돌. 이 모든 과정이 겹겹이 쌓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지질학의 역사는 중동 일부 국가와 세력이 병목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형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지형은 오늘날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중동'이라는 지정학을 낳은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폭우 감당 못하는 하수도, 공항 날아드는 새떼…“기후·생태 관점 인프라 재설계 필요”

비만 오염 빗물과 오염수가 섞여 하천으로 넘치는 하수도. 철새가 몰려들어 항공기와 조류 충돌 위험이 커지는 공항…. 인프라의 설계와 운영·관리가 부실하면 생태계 피해와 더불어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환경연구원(KEI)의 '2026년 국토환경연구본부 성과보고회'에서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물관리와 인간-자연 공존 전략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는 2025년 한 해 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이를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비 오면 넘치는 하수…도시 인프라의 한계 드러나다 첫 번째 세션 '미래에 대응하는 물관리 전략'에서는 강우 시 합류식 하수도에서 미처리 하수가 하천으로 유입되는 합류식 하수도 월류수(CSOs) 문제가 핵심 의제로 제시됐다. 김호정 KEI 물관리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비 오면 넘치는 하수, 하천으로 흘러들게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에서, 국내 주요 도시가 여전히 오수와 빗물을 함께 모으는 합류식 하수도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구조에서는 집중호우 시 하수 처리 용량을 초과한 오염수가 별도의 처리 없이 하천으로 방류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기물뿐 아니라 의약물질, 미세플라스틱, 타이어 마모 부산물과 같은 미량오염물질이 그대로 하천에 유입되고,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어류 폐사와 수질 악화는 물론, 시민의 친수 공간 이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수돗물 생산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시설 부족이 아니라, 과거 강우 패턴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 인프라가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강우를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수도 정비에서 '통합 수질관리'로의 전환 KEI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하수도 정비 중심 접근을 넘어선 다층적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관로 점검과 정비, 준설, 도로 청소 등 유지관리 중심의 비구조적 대책을 통해 오염원의 유출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규모 투자 이전에 가장 효율적으로 오염 부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동시에 CSO 저류시설과 대심도 지하터널 구축과 같은 구조적 대책을 병행해 미처리 하수의 직접 방류를 물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기존 하수도 시스템의 저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수토실(雨水吐室) 제어 시스템 등 스마트 운영 기술을 도입하고, 도시 전반에는 저영향개발(LID)과 같은 그린 인프라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빗물의 침투와 지연을 유도해 하수관로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우수토실은 합류식 하수도에서 우천시에 일정량의 하수를 모아들여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고 나머지 하수를 하천 등의 수역으로 방류하기 위한 시설을 말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물환경보전법 개정을 통해 미처리 하수의 공공수역 배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공공수역으로 배출하더라도 강수량 등 기준에 해당할 때만 배출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배출 때 생태독성과 미생물까지 포함해 포괄적인 수질관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응해 '추가 여유량(Headroom)' 개념을 도입해 인프라 설계 기준 자체를 상향하고, 과학적 재정 추계를 기반으로 단계적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새를 쫓는 시대는 끝났다"…공항 인프라도 재설계 대상 이날 행사의 두 번째 세션 '인간과 자연의 공존 전략'에서는 인간과 야생동물 간 충돌 문제, 특히 항공기와 조류 충돌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후승 KEI 자연환경연구실장은 '조류충돌 대응, 생태안전 정책으로 전환하다'라는 발표에서 공항 안전 문제를 단순한 운영 리스크가 아닌 생태계 관리 실패의 결과로 해석했다. 공항 주변 습지와 농경지 감소, 먹이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조류의 이동 경로와 행동 패턴이 불안정해지면서, 항공기와의 충돌 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KEI는 기존의 단순 퇴치 방식에서 벗어나, 공항 외부로 조류의 활동을 유도하는 '단계적 서식지 이주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공항 주변에 임시 서식지를 순차적으로 조성해 조류의 이용 빈도를 점진적으로 공항 밖으로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장기적 관리 전략인 셈이다. 이와 함께 공항 개발 및 운영 과정에서 조류 생태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환경영향평가에 생태 위험 분석을 포함하는 등 과학적 관리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갈등에서 공존으로…생태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같은 세션에서 홍현정 KEI 부연구위원은 “인간과 야생동물 간 갈등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피해 유형도 농작물에서 인명과 사회 기반시설로 확대되고 있다"고 빍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갈등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갈등 사고 인벤토리' 구축, 보호구역과 완충구역을 구분하는 공간적 관리,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 도입,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감시 기술 활용 등 종합적인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피해를 줄이는 접근을 넘어,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인프라 '보완' 수준이 아니라 '재설계'가 필요 이번 성과보고회는 하수 월류와 조류 충돌이 별개의 문제이지만, 공통적으로 기후변화-생태계변화가 기존 도시 인프라와 일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인프라는 안정적인 기후와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전제로 설계됐지만,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이러한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 결과, 잦은 폭우와 극한강우로 하수도는 넘치게 되고, 야생동물은 인간의 공간으로 침투해 공항과 같은 핵심 인프라조차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 인프라를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는 수준을 넘어, 물·생태·도시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인프라의 재설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홍균 KEI 원장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변화, 도시환경 문제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어 단일 분야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물·자연·도시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070년 세계 인구 120억 정점에 도달…“현재도 수용가능 수준 초과”

현재 82억3000만명 수준인 지구 인구가 2070년 무렵 120억 명에 이를 때까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또, 지구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세계 인구 규모는 지금 인구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이미 1970년부터 세계 인구가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했다는 주장이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 코리 J. A. 브래드쇼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연구 회보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브래드쇼 교수 연구팀의 인구 예측은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예측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유엔 등 여러 연구자들은 세계 인구가 100억 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연구팀은 1800년 이후 인류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 즉 '지속 가능한 수용 능력'과 '이론적 최대 수용 능력'을 구분해 제시했다. 그 결과, 환경 훼손 없이 안정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인구 규모는 약 24억~25억 명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1930년 전후의 세계 인구 규모(23억 5000만명)와 유사하다. 이 수치를 넘어설 경우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자원이 지구의 재생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반면, 리커 로지스틱 모델(Ricker logistic model)을 적용했을 때, 단순히 출생과 사망이 균형을 이루는 이론적 최대 인구는 2070년 무렵 약 117억~124억 명으로 추정됐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직접 계산한 값이라기보다 인구 증가율이 0이 되는 지점을 통계적으로 추정한 '정점'에 가깝다. 연구팀은 “증가가 멈추는 규모 = 최대 수용 능력"이라는 생태학적 정의를 따라 '이론적 최대 수용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이 경우는 화석연료 사용과 자원 고갈을 전제로 한 '비지속적 상태'라는 점에서 연구팀은 현실적인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논문은 “지속 가능한 인구는 최대 인구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현재 인류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고 진단했다. ◇1970년부터 '생태 적자'…현재는 지구 1.7개 소비 브래드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을 기점으로 지구의 생물 용량(biocapacity)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류가 자연이 매년 재생할 수 있는 자원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현재 인류의 소비 수준은 '생태발자국' 개념으로 볼 때 지구 약 1.7개가 있어야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분석됐다.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은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와 배출하는 폐기물·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토지(생태계)를 면적으로 환산한 지표다. 연구팀은 생태계 발자국이 지구 1개를 초과한 이러한 상태를 사실상 '생태적 파산(ecological overshoot)'으로 규정하면서, 현재의 경제·에너지 시스템이 미래 자원을 미리 끌어와서 사용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인구 성장 메커니즘의 구조적 변화다. 연구팀은 1800년부터 1940년대까지는 인구가 증가할수록 성장률도 높아지는 '촉진 단계(facilitation phase)'가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산업화와 기술 발전, 화석연료 활용이 인구 증가를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이 관계는 붕괴되었고, 1962년을 전후로 인구가 증가할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감속 단계(negative phase)'로 전환됐다. 이러한 변화는 출산율 감소, 사회경제적 변화, 자원 제약, 환경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기후변화의 핵심 변수는 인구 규모" 이번 연구는 인구 증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분석 결과, 지구 기온 상승과 생태 발자국 증가,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는 1인당 소비보다 전체 인구 규모와 더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즉, 기술 효율 개선이나 소비 절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인구 규모 자체가 기후 변화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특히 화석연료가 자원 제약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면서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모순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이 모델을 통해 분석한 결과, 세계 인구는 2067년에서 2076년 사이 약 117억~124억 명 수준에서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에는 성장률이 0에 수렴하면서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러한 정점 도달 이전부터 이미 환경 수용 한계를 초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류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규모 축소(societal downscaling)'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시스템"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초과한 상태에서 인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규모를 조정해 나갈 것인지, 즉 어떻게 '질서 있는 전환'을 이룰 것인지 묻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한 인구 증가나 과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두 요소가 결합된 총량의 문제로 규정한다. 특히 환경 변화의 상당 부분이 1인당 소비보다 전체 인구 규모에 의해 더 잘 설명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효율 개선 중심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 자원 사용의 효율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인구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소비 구조와 생산 방식,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 역시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향후 인류는 기후 변화와 자원 제약에 의해 전쟁과 기아 같은 비자발적인 축소를 겪을 것인지, 아니면 에너지 전환과 소비 구조 개편, 인구 안정화 등을 통해 점진적이고 관리된 축소로 이행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연구팀은 현재 인류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자원 이용 방식과 사회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토지, 물, 에너지, 생물다양성 등 자원 이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문화적 전환 없이는 현재 인구는 물론 미래 인구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저출산은 위기가 아니라 전환 신호일 수도" 연구팀은 한국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아시아의 인구 변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고, 전통적으로는 저출생을 경제·사회 위기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의 관점에서는 인구 감소가 오히려 지구의 수용 능력에 맞춰가는 '적응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소득 국가일수록 먼저 인구 성장 둔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은 한국의 초저출생 현상이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에너지·자원·환경 구조 변화와 맞물린 장기적 전환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가능한' 인구 규모에 맞춰 에너지 소비, 산업 구조, 복지 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한국의 과제라면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이번 연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028년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30조 자산기업부터 시작[환경포커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는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도입을 위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이행지원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회계기준원(KAI)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주최하고 금융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후원했다.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단계적 공시 의무화 로드맵과 함께 지난 2월 공개된 구체적인 공시 기준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발표에서는 2028년 초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일정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식, 기후 시나리오 분석, 재무제표와의 연계성 확보 등 기업 실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핵심 사항들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순한 공시 대응을 넘어 경영 전략과 내부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기준실 유하은 3팀장은 “이번 공시기준서는 기업이 여건과 능력에 맞춰 공시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준 대신 공시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이 따르도록 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 발표 내용을 질문과 대답 형태로 정리했다. Q. 지속가능성 공시는 언제부터 시작되고, 어떤 기업부터 적용되는가? 전체 확대 일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는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최초 적용 대상은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인 초대형 코스피 상장사(58개사, 약 6.9%)이고, 이후 단계적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정책 방향은 초기 충격을 줄이면서 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2030년 이후에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에, 현재 대상이 아닌 기업도 사실상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시 의무화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변화라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Q. 공시는 어디에 제출하고, 재무제표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기업 내부 프로세스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지속가능성 공시는 원칙적으로 재무제표와 동일한 일반목적 재무보고서의 일부로 제공돼야 한다. 즉, 재무정보와 별개의 보고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정보 패키지로 취급된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거래소 공시 형태로 먼저 시행한 뒤, 일정 기간 이후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법정공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공시는 재무제표와 동일한 시점에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기업은 재무 결산 일정과 온실가스 배출량 등 비재무 데이터 확정 시점을 맞추는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Q. 공시는 어떤 구조로 작성해야 하는가? 핵심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공시는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거버넌스에서는 이사회와 경영진이 지속가능성 이슈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설명하고, 전략에서는 해당 이슈가 사업모형과 가치사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기술한다. 위험관리에서는 식별·평가·관리 체계를 보여주고, 지표 및 목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정량적 성과와 목표 달성 수준을 제시한다. 중요한 점은 이 네 요소가 서로 연결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체크리스트식 공시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를 설명하는 보고가 요구된다." Q. 어떤 정보를 공시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중요성(Materiality)'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공시 대상 정보는 투자자 등 주요 이용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해당 정보가 기업의 현금 흐름, 자금조달 능력, 자본비용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중요 정보로 간주된다. 기업은 기준서뿐 아니라 산업 관행, 글로벌 프레임워크 등을 참고해 정보를 식별하고, 단계적으로 선별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중요성 판단은 일회성 작업이 아니라 매 보고기간마다 재평가해야 한다.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해 공시를 생략하는 경우에도, 생략하게 된 그 판단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Q. 지속가능성 정보와 재무제표는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제표와 강하게 연결돼야 한다. 동일한 데이터와 가정을 가능한 한 일관되게 사용해야 하고, 차이가 발생할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또한 기후 변화나 환경 규제와 같은 요인이 자산 손상, 투자 계획, 현금 흐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현재와 미래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가능하면 정량적 정보로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질적 설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 정보가 재무 성과를 설명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Q. 온실가스 배출량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는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제 기준인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을 기본으로 산정한다. 스코프(Scope) 1은 기업이 직접 통제하는 배출원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이며, 스코프 2는 구매한 전기나 열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이다. 모든 배출량은 CO₂ 환산량으로 통합해 산출하게 되고, 지역 기반 방식(해당 지역 전력생산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이 기본 공시 형태로 요구된다. 기업은 지분율 접근법 또는 통제 접근법 중 하나를 선택해 적용해야 하며, 그 선택 근거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는 글로벌 비교 가능성과 기업별 특수성을 동시에 반영하기 위한 구조다." Q. 기존 배출권거래제 등 국내 규제와 충돌하지 않는가? “제도 설계는 이중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배출권거래제 등 국내 규제에서 요구하는 산정 방식이 있는 경우, 일정 범위 내에서는 해당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기업 내에서 서로 다른 기준이 혼용될 경우에는 각각의 방식에 따라 배출량을 구분해 공시해야 한다. 또한 지구온난화지수(GWP) 등 일부 기준도 국내 규정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된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준을 지향하면서도 국내 제도를 이미 운영 중인 기업의 실무 부담을 완화하는 절충적 구조라고 볼 수 있다." Q. 스코프 3, 즉 공급망 배출은 언제부터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가? “스코프 3는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로,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을 모두 포함한다. 원칙적으로는 15개 카테고리를 고려해 공시해야 하므로 데이터 확보 어려움이 크다. 이를 고려해 최초 적용 이후 3년간 공시가 유예되며, 2028년 적용 기업은 2031년부터 공시하게 된다. 이 유예 기간은 단순한 면제가 아니라 준비 기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업은 이 기간 동안 협력업체 데이터 확보 체계를 구축하고, 내부 산정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Q.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의무 사항이다. 기업은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과 기회에 대해 자신의 전략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다만 모든 기업에 동일한 수준의 정교한 분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후 위험 노출도가 높고 자원이 충분한 기업은 정량적 모델 기반 분석을 수행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질적 분석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회성 분석이 아니라 반복적 개선 과정이라는 점이고, 매 보고기간마다 분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Q. 모든 정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중요한 정보는 모두 공시해야 하지만, 지속가능성 '기회'와 관련된 정보 중 상업적으로 민감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공시를 생략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면제 적용 사실은 반드시 밝혀야 하고, 매 보고기간마다 계속 면제 요건을 충족하는지 재검토해야 한다. 반면 '위험' 정보는 면제 대상이 아니며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해 공시를 생략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빌딩 벽면의 변신…전기 생산하고, 냉방 수요도 줄이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지상 50층, 지하 6층 규모인 이 건물은 10년 전 미국 소재 웹사이트 아메리칸 아키텍처 닷컴이 '올해의 빌딩(Building of the Year)'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건축 관련 상을 받았다. 2013년 준공된 이 건물은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설비시스템을 갖춰 건물 유리벽면 전체와 옥상 부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은 전체 3279개로,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빌딩 조명에 필요한 전력 60~70%를 충당한다. 여름철에는 사무실 내부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하고, 겨울철에는 햇빛이 잘 들어오게 하는 커튼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전력 수요 급증이 동시에 심화되는 가운데, 건물의 '벽면'을 활용한 새로운 태양광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옥상 중심 태양광을 넘어, 건물 외벽 자체를 발전 설비로 전환하는 건물 파사드 일체형 태양광(building façade photovoltaics, FIPV)이 도시 에너지 시스템과 기후 대응 전략을 동시에 바꿀 수 있는 핵심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기술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확보 차원을 넘어 도시의 기후 회복력을 강화하는 복합적 솔루션임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건물 외벽 일체형 태양광(FIPV)은 건물의 외장재 자체를 태양광 발전 기능을 가진 재료로 대체해 외벽이 곧 전력 생산 설비로 작동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는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부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축 외피와 발전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FIPV는 콘크리트 벽면에 적용되는 불투명형 패널과 창문에 적용되는 반투명 태양광 유리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설치 과정에서는 외벽 구조 안전성, 풍하중, 내구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데, 전력 생산을 위한 배선과 인버터 등 전기 시스템이 함께 구축하게 된다. 또한 패널과 외벽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과열을 방지하고 단열 성능을 높이는 열 관리 설계도 중요하다. 특히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시에서는 옥상보다 넓은 외벽 면적을 활용할 수 있어 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FIPV는 건물을 단순한 에너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절감하는 복합적인 인프라로 전환시키는 기술로 평가된다. ◇전 세계 잠재력 732TWh… “도시 자체가 발전소로" 연구팀은 위성 기반 건물 데이터와 3차원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전 세계 FIPV 잠재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기술 조건에서 FIPV는 연간 약 732.5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300kWh의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를 기준으로, 2억 가구 이상이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연구팀은 “이는 단순히 새로운 발전원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건물 외벽 면적은 옥상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기존 태양광의 공간 제약을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FIPV는 일반 태양광과 달리 직사광보다 산란광(diffuse radiation)에 더 크게 의존하는 특성을 보여,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전력 생산 + 냉방 절감…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인다" 이 기술의 핵심은 단순 발전이 아니다. FIPV는 건물 외피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차양(shading)과 단열(insulation) 기능을 제공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295.6TWh의 전력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는 건물 전력 사용량의 평균 8.1%를 줄이는 수준이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차단해 실내로 열이 들어오는 것을 줄이고, 동시에 추가적인 열저항층 역할로 냉방 부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특히 폭염 시기에 중요하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순간, FIPV는 전력 생산과 수요 억제를 동시에 수행해 전력망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2050년 최대 37.7Gt 감축… “작은 온도, 큰 의미" FIPV가 본격적으로 확산할 경우 기후변화 완화 효과도 상당하다. 논문에 따르면 2050년까지 누적으로 최대 37.7Gt(기가톤, 1Gt=10억톤)의 이산화탄소(CO₂), 377억톤을 감축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1년에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양이 CO₂로 500억 톤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같은 감축으로 지구 온난화를 약 0.052°C 억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0.05°C라는 수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기후 시스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후 임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시간 확보' 효과로 해석된다. ◇경제성: “비싸지만 결국 이익"… 80% 지역에서 순지출 감소 FIPV의 가장 큰 논쟁은 경제성이다. 실제로 균등화 발전 단가(LCOE)는 kWh당 약 0.147달러로, 대규모 태양광(약 0.044달러)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총 비용'이 아니라 '총 효과'다. 연구 결과, 전 세계 도시의 80% 이상에서 생애 주기를 통해 지출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력 생산과 냉방 부하 감소 효과를 합산했을 때, 시스템 수명(25년) 동안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된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25년을 기준으로 평균 내부수익률(IRR)은 세계 평균이 약 6.45%로 나타났는데, 이는 안정적인 투자 수익률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일부 지역(서유럽, 남아시아, 브라질)은 15%를 초과해 매우 빠른 자금 회수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냉방 절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익'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FIPV는 발전 설비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건축 자재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좁은 국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 전략적 의미가 크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 밀도가 높고,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전통적인 대규모 태양광 확대에 불리하지만, FIPV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FIPV 잠재력은 연간 약 10.7TWh로, 세계 10권 내에 들어간다. 한국은 특히 ▲공간 제약 해결: 옥상 대신 벽면을 활용함으로써 토지 문제를 회피할 수 있고, ▲도심형 분산 전원 구축: 도심에서 직접 생산·소비가 가능해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폭염 대응 효과: 여름 냉방 수요가 큰 한국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 다만 다만 한계도 존재 한다. 한국은 중위도 기후로, FIPV 효과가 열대 지역보다 다소 제한될 수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태양열 유입이 줄어들어 난방 수요를 늘리는 방향을 작용, 순절감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가스 및 지역난방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발전소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재정의" 이번 연구는 FIPV를 단순한 태양광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건축·기후 대응이 결합된 '통합 인프라'로 정의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를 줄이며,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 탄소를 감축하는 복합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특히 정책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기 투자비 절감을 위한 세제 혜택, 탄소배출권 보상, 도시 설계 인센티브 등이 결합될 경우 FIPV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과거 30년 배출한 온실가스 51조 달러의 경제 피해 유발

과거에 개인과 기업, 국가 단위에서 배출한 탄소가 이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켰고, 미래에도 대기 중에 남아서 훨씬 큰 손실을 발생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1990~2020년 사이에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현재까지 51조 달러(7경7000조원) 이상의 경제 피해를 유발했고, 이렇게 배출된 온실가스가 향후 2100년까지 지금까지 피해의 10배를 유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도어(Doerr) 지속가능성대학원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과거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현재와 미래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화폐 단위로 정량화하는 통합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개인과 기업,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구체적으로 따진 이번 연구의 결론은 기후변화 논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탄소는 부채다"…미래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책임 연구진은 탄소 배출을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제적 부채'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과거 배출로 이미 발생한 손실보다, 해당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손실이 최소 10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가 단발적 충격이 아니라 경제 성장률 자체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구조적 요인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배출은 미래 경제에 대한 일종의 '지연된 비용 청구서'인 셈이다.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의 소비 행동 역시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로 환산된다. 특히 2022년 기준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테일러 스위프트(팝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복서), 제이 지(래퍼) 같은 인물이 상위권에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개인 전용기 사용으로 인해 오는 2100년까지 각각 100만 달러(약 15억 원) 이상의 미래 경제적 손실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일반 개인의 행동에서도 구체적인 비용이 산출된다. 장거리 항공편 연 1회(10년 지속)는 약 2만5000달러, 육류 소비 지속은 수천 달러 규모 추가 피해를 유발한다. 반대로 채식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은 각각 약 6000달러의 피해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개인의 소비 선택이 단순한 생활 방식이 아니라 전 지구적 경제 손실과 직접 연결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기업 책임 순위: '탄소 메이저'의 압도적 영향 기업 단위에서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는 1988~2015년 누적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업별 책임을 분석했다. 주요 기업 순위 (경제적 피해 기준)를 보면, 1위은 사우디 아람코(사우디아라비가 국영 석유기업)로 2020년까지 약 3조 달러 피해를 유발했고, 2100년까지 약 64조 달러 추가 피해를 발생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엑슨모빌(미국 석유기업)은 2020년까지 약 1.6조 달러의 피해를 유발했고, 미래에도 약 29조 달러의 피해를 더 가져올 것이다. 이밖에도 가즈프롬(러시아 가스기업), 이란 국영석유회사(이란 국영석유), 페멕스(멕시코 국영석유), 인도석탄(인도 국영석탄), 쉘(글로벌 석유기업), BP(영국 석유기업), CNPC(중국 국영석유), 쉐브론(미국 석유기업) 등이 앞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으로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미래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국가별 책임 순위: 가해국과 피해국의 역설 국가 단위 분석에서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누적 배출을 기준으로 경제적 피해를 산출했다. 배출 책임이 큰 국가(가해국) 순위에서 1위는 미국으로 약 10조1800억 달러의 피해를 끼쳤다. 2위는 중국으로 8조7000억 달러, 3위 유럽연합(EU)은 약 6조4200억 달러, 4위 브라질은 약 3억 5500억 달러, 5위 러시아는 약 3조 270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입은 피해 규모가 국가(피해국)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피해를 입은 규모가 약 16조 2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2위는 유럽연합으로 약 7조5700억 달러, 3위는 중국으로 6조550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4위 일본은 3조8500억 달러, 5위 인도 2조8400억 달러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최대 가해국이면서 동시에 최대 피해국으로 나타났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손실의 절대 금액도 커진다는 것 특징이다. 또, 배출과 피해는 국가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중위권에서 '가해국이자 피해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 배출 책임에서 약 7200억 달러(1086조원)로 중상위권(16위)이었고, 피해 규모는 약 8300억 달러(1252조원)로 1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글로벌 배출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국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국가에 유의미한 경제적 피해를 입힌 국가인 셈이다. ◇기후 문제는 이제 '정산 가능한 경제 문제' 이 연구는 기후변화를 윤리적 논쟁에서 경제적 책임 문제로 전환시켰다. 개인은 소비를 통해, 기업은 생산을 통해, 국가는 산업 구조를 통해 각각 정량화 가능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앞으로 발생할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과거 탄소 배출이 미래에 초래할 경제적 손실은 이미 발생한 피해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의 피해를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배출에 따른 전체 '기후 부채'를 결코 청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금은 단순한 환경 대응이 아니라 미래 경제 손실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를 고려한 정책 선택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신호등] 균형 잃은 지구에너지, 모든 게 무너진다

2015년 말 전 세계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 기후 협정'을 채택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마주한 기후 현실은 참담하다.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와 기후 과학 분야의 석학들이 내놓은 통찰력 있는 연구를 종합하면, 인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기후 국면에 진입해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지구 시스템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고, 온난화는 기존 예상보다 빠르게 가속화하고 있다. 인류에게 '오버슈트(overshoot, 목표 온도 1.5℃의 일시적 초과)'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오버슈트의 수준, 오버슈트의 기간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인류는 이제 역사상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여정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속화하는 온난화와 '지구 에너지 불균형' WMO는 지난 23일 '2025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통해 2015~2025년 사이 11년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따뜻한 기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2024년은 강력한 엘니뇨 영향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55°C의 기온 상승을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난화의 '속도' 역시 주목된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최근 출판된 논문에서 2015년 이후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자연 변동성(엘니뇨, 화산 활동, 태양 복사 변동 등)을 제거했을 때, 1980~2000년대 10년당 약 0.15~0.2°C였던 지구 기온 상승 폭이 최근 0.4°C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속화의 배경에는 '지구 에너지 불균형(Earth's Energy Imbalance, EEI)'이 있다. 영국 레딩 대학교의 리처드 P. 앨런 교수 등 75명의 과학자가 지난달 학술지 '글로벌 지속가능성 (Global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2년 중반부터 2023년 중반까지 EEI는 1.9 W/m², 즉 지구 표면 1㎡당 1.9W를 흡수해 2006~2020년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는 지구가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흡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와 빙권: 축적되는 열과 붕괴의 신호 지구에 축적된 과잉 에너지의 약 91%는 해양이 흡수한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25년 사이 해양 온난화 속도는 1960~2005년 대비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이로 인해 2025년에는 전 세계 해양의 90% 이상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해양 열파(폭염)를 경험했다. 이러한 변화는 산호초 백화, 어종 이동 등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한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 속도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2~2025년에는 연평균 4.75㎜에 달했다. 동시에 바다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29%를 흡수하면서 산성화가 진행돼 해양 생물의 생존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빙권의 변화 역시 급격하다. 전 세계 '참조 빙하(reference glaciers)'는 2016년 이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질량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이슬란드와 북미 태평양 연안에서 두드러졌다. 참조 빙하란 세계 빙하 모니터링서비스(WGMS)에 매년 보고되는 전 세계 약 170개의 빙하 중에서 30년 이상의 장기적인 질량 변화 관측 데이터가 축적된 특정 빙하 그룹으로, 전 세계 빙하 상태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후 변화의 영향을 평가하는 표준 지표 역할을 한다. 북극 해빙은 2025년 3월 관측 사상 가장 낮은 면적을 기록했고, 남극 해빙 역시 최근 4년간 최저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약화되는 탄소 흡수원과 생물다양성 위기 자연 생태계의 탄소 흡수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지난달 실린 논문(위에서 언급한)은 그 동안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북반구 아한대림(boreal forest)과 영구동토층 생태계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뭄, 산불, 해충 확산 등으로 인해 아한대림의 탄소 흡수 능력은 지난 10년간 약 36% 줄었고, 일부 영구동토층 지역은 숲이 흡수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 간 상호작용도 심각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연구팀이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식물 종 손실은 육상 탄소 저장 능력을 저하시켜 향후 최대 145 PgC(페타그램), 즉 1450억 톤의 탄소를 추가로 배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후 재난의 현실화: 건강과 경제의 충격 WMO가 내놓은 '2025년 주요 기상 기후 사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 기상현상의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몬순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베트남 역시 연이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노동 생산성 저하가 치명적이다. WMO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3°C 상승할 경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고온 노출 산업(농업, 건설 등)에서 노동 생산성이 각각 33%,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4.5%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기상청은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기후 위기의 시대'가 이미 심화되다고 지적했다. 가장 충격적인 기록은 산불이었다. 지난해 3월 21~26일 고온·건조·강풍이라는 '삼중고'가 겹치면서 전국 5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 발생해 역대 최대인 축구장 약 14만 7000개 면적에 달하는 10만5084㏊의 산림이 소실됐다. 또한 지난해 여름철 전국 평균 기온은 25.7°C를 기록, 1973년 체계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됐다. 반면 강원 영동 지역은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극심한 식수난과 농작물 고사 피해를 입었다. ◇오버슈트와 '핫하우스 지구'의 위험 현재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모두 이행되더라도 세기말 기온 상승은 2.6~2.8°C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하나의 지구 (One Earth)'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가 '온실 지구(Hothouse Earth)' 궤도에 진입할 위험을 경고했다. 특히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치) 문제는 심각하다. 그린란드 빙하 붕괴, 대서양 역전 순환(AMOC) 약화, 아마존 열대우림 사바나화 등 16개 주요 시스템이 임계치에 근접했거나 이미 초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일시적인 오버슈트조차도 티핑 포인트 발생 위험을 최대 72%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비록 온난화가 2°C 수준에서 억제되더라도 특정 부문에서는 훨씬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식량 안보의 핵심인 주요 곡창지대(breadbasket)의 경우, 2°C 온난화 상황에서도 가뭄 빈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5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1.5~2°C 이내로 제한하려는 노력은 통제 불가능한 극단적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만, 이제 그 안전장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틴달 기후변화연구소의 레이첼 워런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가장 가능성 높은' 평균값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확률이 낮더라도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응 전략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 연구팀은 지난 2월 '네이처 기후변화' 에 발표한 논문에서 1.5°C 오버슈트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기후 정책의 초점을 '예방'에서 '회복(recovery)'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안정화를 위한 해법: 36개의 전략과 CDR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 수단은 존재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환경정책센터 연구팀은 이달 초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36개의 기후 안정화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해법은 에너지, 산업, 수송, 건물, 토지 이용 등 전 부문을 포괄하는데, 각각 연간 약 2Gt(기가톤), 즉 20억톤 규모의 감축 효과를 갖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동화, 산업 공정 혁신뿐 아니라 식단 변화, 음식물 쓰레기 감축, 산림 보전 등 행동 변화와 자연 기반 해법도 포함된다. 특히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방법(Carbon Dioxide Removal, CDR)은 필수적 수단으로 강조된다. 다만 이는 화석연료 배출량을 줄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오버슈터 상황에서 기후 안정화 상황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수단으로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믹스'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이 202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41개국 1500개 정책 분석 연구에 따르면, 탄소 가격제와 규제, 보조금 등의 정책 수단이 결합될 때 실질적인 감축 효과가 나타났다. ◇ 법적 의무와 되돌릴 수 없는 변화 기후 대응은 이제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5년 7월 기후 변화가 인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며, 국가들이 이를 방지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버슈트 이후의 회복은 결코 대칭적 과정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트리소스 박사는 온도가 다시 낮아지더라도 이미 붕괴된 생태계와 멸종한 종은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핵심은 오버슈트의 폭과 지속 기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뜨거운 남비를 만졌다면 손을 재빨리 떼고 차가운 물에 담궈야 화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인류는 기후 교차로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수단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축적되어 있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우리의 행동에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이 달려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임도의 두 얼굴: 산불 진화 도움되지만, 발생·확산도 부추겨

산림 내 도로인 임도(林道)가 산불 진화의 핵심 병기인지, 아니면 발화와 확산을 부추기는 원인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최근 미국에서 이 문제를 다룬 논문이 발표돼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도가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산불 발생과 확산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미국 '미국 야생 보호 협회(The Wilderness Society)' 소속 연구진은 지난 30년(1992~2024년) 간의 미국 국유림 산불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논문을 최근 '산불 생태학(Fire Ecology)' 저널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도로에서 50m 이내 구역의 산불 발생 밀도는 1000㏊(헥타르)당 7.99건으로 나타난 반면, 도로가 없는 지정 야생 지역(wilderness areas)은 1.75건에 불과했다. 이는 도로 인근의 발화 가능성이 도로가 없는 숲보다 4.5배 이상 높음을 의미한다. 도로와 산불의 상관관계는 거리에 따라 더욱 명확해진다. 도로에서 250m 이내의 구역에서는 1000 ㏊당 6건의 산불이 발생했으나, 도로에서 2000m 이상 멀어지면 발생 밀도는 2건 미만으로 급감했다. 특히 인간에 의한 실화는 도로 근처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이는 도로가 사람과 차량을 숲 깊숙이 끌어들여 실화나 방화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대형 산불 진화에는 임도 도움이 안돼 흥미로운 점은 자연적 요인인 낙뢰에 의한 산불조차 도로 근처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로 건설로 인해 숲의 덮개(캐노피)가 열리면서 햇빛과 바람이 지표면의 식생을 더 빨리 건조시켜 불이 붙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임도는 소방 인력과 장비의 접근을 도와 초기 진압 성공률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도로 인근 산불의 평균 크기(49㏊)는 야생 지역(239㏊)보다 작게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진은 전체 산불 중 가장 치명적인 상위 2%의 대형 산불의 경우, 도로 유무와 상관없이 최종 피해 규모나 발생 빈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임도는 작은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상 조건이 악화돼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대형 산불'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발화 건수만 늘리는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기후 전문 보도 매체인 '인사이드 클라이밋 뉴스(Inside Climate News,ICN)'는 “미국 농무부(USDA)가 외딴 지역 산불 진압에 도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연구는 도로가 오히려 산불을 더 확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ICN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산불 예방과 관리를 위해 국유림과 초원에서 도로 건설 및 벌목을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반대론자들은 산불 진압에 도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목재 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숲가꾸기 사업과 침엽수림: 산불 대형화의 기폭제 국내 조사 결과는 숲의 구조적 관리가 산불 피해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불교환경연대, 부산대 홍석환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2025 경북산불 피해확산 원인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산림청의 '숲가꾸기(간벌)' 사업이 오히려 산불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사 결과,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적인 침엽수림의 수관화(나무의 상층부가 타는 화재) 발생률은 4.9%였으나, 숲가꾸기를 시행한 지역에서는 54.2%로 무려 11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산등성이(능선부)의 소나무림 간벌지에서는 수관화 발생률이 78.8%에 달해 최악의 화재 강도를 보였다. 이러한 역효과가 발생하는 과학적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간벌 후 산등성이에 방치된 나무 가지 등 부산물이 강력한 연료 역할을 하여 지표면의 불길을 나무 위로 끌어올리는 가교가 된다. 둘째, 나무 밀도를 낮추면 숲 내부의 습도가 낮아지고 바람의 속도가 빨라져 화재가 번지기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다. 하지만 밀도 높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유타대학교의 제이콥 레빈 등은 지난해 8월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업용 조림지(Industrial forests)는 공공림보다 대형 산불 발생 확률이 1.45배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균일한 간격으로 빽빽하게 심어진 조림지가 연료의 연속성을 높여 극한 기상 조건에서 화재를 더 넓게 확산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느냐에 따라 숲의 운명도 갈렸다. 경북산불 원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침엽수림의 교목 고사율은 81.8%에 달한 반면 활엽수림은 12.6%에 그쳤다.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산불에 의한 고사 위험이 약 6.5배 높은 것이다. 구체적인 수종별로는 잣나무(고사율 100%)와 소나무(78.5%)가 화염에 매우 취약했던 반면, 굴참나무(16.2%)와 졸참나무(20.8%) 등 활엽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고사율을 보였다. 활엽수는 잎의 수분 함량이 높고 가연성 수지 성분이 적으며, 불에 타더라도 뿌리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맹아 재생 능력이 뛰어나 숲의 회복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후 변화와 거주지 경계: 새로운 위험의 확장 기후적 요인 역시 산불 규모를 결정짓는 절대적 변수다. 강원대 백민호 교수와 국립소방연구원 박진찬 박사 등이 지난해 8월 '포레스트(Forest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최대 풍속이 초속 1m 증가할 때마다 산불 피해 면적은 약 8.5㏊씩 확대되고, 습도가 1% 상승하면 피해 면적이 약 3㏊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정부의 산불 위험 예측 시스템은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당시 위험 등급을 '보통'으로 예보하는 등 대형 산불의 기상 복합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피해가 커지는 또 다른 핵심 원인은 '야생도시 경계지역(WUI)'의 확장이다. 거주지가 산림과 가까워지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의 마리암 자마니아라이 등이 지난해 8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건물 간의 거리(SSD)가 가까울수록 화재 전이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건물 자체를 불에 강한 자재로 보강하고, 건물 주변 1.5m 이내(구역 0)의 가연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어 공간을 확보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건물 소실 위험을 최대 52%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 연구 결과는 무분별한 임도 건설이나 인위적인 숲가꾸기는 산불 예방의 정답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 조성, 자연스러운 숲 구조 유지, 그리고 산림 인접 거주지의 과학적인 방화 설계가 대형 산불 시대에 우리를 지켜줄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 리포트] 온난화 적응하느라 작아진 생선…인류 식탁은 텅 비어

가파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바다 물고기가 적응하느라 크기가 작아지면서 전 세계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온난화가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 연구 결과다. 폴란드 야기엘로니안대학교와 호주 모나시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발표한 논문에서 온난화에 대한 어류의 '진화적 적응'이 오히려 전 세계 어획량 감소를 가속화한다는 점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기존 수산자원 예측 모델이 간과해온 핵심 변수로, 향후 식량 안보 논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번식하고, 더 작아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어류의 대사율이 증가하고 자연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물고기들은 생존과 번식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애 전략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구체적으로 어린 시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이른 시점에 성숙 단계에 도달한다. 문제는 성숙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성장에 쓰이던 에너지가 번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성체의 최대 몸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개체 수준에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일찍 번식하면 생존 확률이 낮은 환경에서도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어획 대상이 되는 개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체 어획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물고기가 성장보다 번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쏟으면 바다 전체의 물고기 양, 즉 생물량(biomass)은 과거보다 줄게 된다. 어획량을 채우기 위해 남획이라도 하게 되면, 물고기 크기는 더 작아지고, 어획량은 더 줄게 된다. ◇“진화를 고려하면 어획량 감소 더 뚜렷" 연구팀은 전 세계 주요 43개 어종을 대상으로 기후 시나리오별 어획량 변화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단순히 수온 상승의 직접적 영향만 고려할 경우 어획량은 약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 어류의 진화적 적응을 포함하자 감소폭은 22%로 확대됐다. 이는 진화가 기후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손실을 약 50% 추가로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특히 온실가스 고배출 경로(시나리오, SSP3-7.0)에서는 세기말까지 어획량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대로 저배출 경로(SSP1-2.6)를 따를 경우 연간 약 1800만 톤의 어획량을 보전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어획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물고기의 크기 감소는 해양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생태계에서 포식 관계는 주로 몸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상위 포식자의 크기가 줄어들면 먹이 생물을 통제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실제로 북서대서양 스코샤붕 해역에서는 상위 포식자의 평균 크기가 약 40% 감소하자, 먹이 생물의 생물량이 300% 증가하는 현상이 관측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시 플랑크톤 구조를 변화시키며, 결국 생태계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재편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먹이였던 종이 포식자의 어린 개체를 잡아먹는 '관계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생태계는 바다가 아니라 담수(민물) 환경으로 나타났다. 민물 생태계는 해양보다 온도 상승 폭이 더 크고 변동성이 높아, 어류의 진화적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몸 크기 감소와 생태계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식탁도 직격탄… 명태·고등어·멸치 모두 영향권 이번 연구는 한국 수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시사한다. 분석 대상 43개 어종에는 한국에서 소비 비중이 높은 주요 어종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명태는 최대 체중이 약 12% 감소하고, 이에 따라 연간 약 50만 톤의 어획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외에도 고등어·멸치·갈치·참조기·대구·전갱이·꽁치·청어·가다랑어·까나리 등 한국 연근해 주요 어종 대부분이 동일한 경로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어종은 공통적으로 “더 빨리 자라지만 더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1990년대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대구(대서양대구) 어획 붕괴 사례를 중요한 교훈으로 제시한다. 당시 대구 개체군은 과도한 어획과 환경 변화로 급감했고, 이후 어획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체군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개체 수 감소가 아니라, 생태계가 '새로운 안정 상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구조가 바뀌고, 작은 개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회복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소형화 진화' 역시 이와 유사한 비가역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고기를 '진화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물고기의 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물고기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생선의 크기 변화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생태계와 식량 시스템에 보내는 구조적 경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기존 수산 관리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모델은 물고기를 '환경에 반응하지만 진화하지는 않는 존재'로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후 변화와 어획 압력이 결합해 매우 빠른 진화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화적 변수를 포함한 수산자원 모델 도입 △어획 압력의 전략적 조절 △대형 개체 보호를 통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 △생태계 기반 관리 접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후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으로 지목된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미래의 바다는 물고기가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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