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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원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장박원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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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박원 칼럼] MAGA의 역설

기원전 454년 아테네 몰락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델로스 동맹의 공동 금고를 아테네로 옮기도록 한 것이다. 금고를 좀 더 안전한 곳에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진짜 목적은 동맹의 자산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그 이후 금고 자금은 파르테논 신전 건설을 비롯한 아테네 공공사업에 유용됐다. 동맹국 기여금이 본래 목적인 페르시아 제국 방어가 아닌 아테네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한 셈이다. 더 나아가 아테네는 공납금을 증액했다. 기원전 431년부터 30년 가까이 이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재정난에 처하자 동맹국의 팔을 비틀었다. 그렇게 전쟁으로 구멍 난 재정을 충당하려고 했다. 아테네의 갑질에 동맹국들의 분노와 불만은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은 공동 안보와 협력을 위해 결정됐다. 공동 금고를 중립 지대인 델로스 섬에 놓기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친 아테네가 강력한 해군력으로 지역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동맹국들은 함선이나 공납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아테네가 '제국의 본성'을 드러내기 전까지 델로스 동맹은 굳건했다. 하지만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들려는 페리클레스 등장 이후 균열이 생겼다. 아테네와 동맹국들은 파트너십에서 예속 관계로 바뀌었다. 그 결과 자발적 참여와 협력이 강점이었던 델로스 동맹의 경쟁력이 사라졌다. 권위주의 체제인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다를 바 없었다. 동맹의 붕괴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쇠퇴한 결과이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과 사익만을 추구하는 선동가들이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국가와 시민에 대한 지도자들의 애국심과 책임은 실종됐다. 동맹국에 대한 예의도 사라졌다. 아테네 유력 가문 출신인 알키비아데스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적국인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그의 배신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테네의 역사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비슷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시장과 자유 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국가 동맹을 이끌었다. 미국이 손해를 보더라도 동맹국을 위한 공동 안보와 협력에 희생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전통을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 아래 동맹국에게도 무리한 요구서를 내민다. 모든 국가를 거래상대로 여기며 미국에 손해를 끼치면 보복하고 이익이 돼야 상대를 해주는 식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동맹국인데도 관세폭탄을 퍼붓고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고 있다. 2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역시 분위기는 좋았으나 주한미군 부지 소유권을 넘기라는 등 수용하기 힘든 청구서를 내밀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어질 실무 협상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한국 기업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좌불안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에게 정부 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지분을 내놓으라는 기상천외한 제안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폭주에 미국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언론사와 대학, 사법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겠다며 여러 지역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야당 지지율이 높은 도시들이 주요 표적이다. 심지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연방준비제도 의장까지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겁박하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 제국의 번영이 몰락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그의 탁견은 지금의 미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미국의 번영을 외치는 트럼프의 'MAGA' 역시 미국의 쇠락을 재촉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경고는 빗나가는 법이 없다. 동맹국에게까지 무리한 청구서를 내밀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관세폭탄을 퍼붓는 갑질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아테네와 로마가 그랬듯이 그 고통은 고스란히 미국의 미래 세대가 받게 될 것이다. 'MAGA의 역설'이 뻔히 보이는데도 트럼프의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현 상황이 당혹스러울 뿐이다. 장박원 기자 jangbak@ekn.kr

[장박원 칼럼] 탄소크레딧과 비트코인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2016년 발간한 '나와 세계'라는 책에서 이런 경고를 했다. “기후변화는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모두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건이 될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복잡해서 단지 '지구온난화'라는 명칭만으로는 부적절하다. 대기가 뜨거워지면 전 지역이 더워져야 하지만 모순되게도 일부 지역은 더 차가워진다. 폭풍과 홍수의 빈도가 증가하고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많아진다. 지금의 보수적인 예측보다 지구가 훨씬 빠른 속도로 뜨거워질 가능성은 무척 높다." 지난주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 등 우리나라에 큰 상처를 남긴 극단적 폭우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예전에는 없었던 폭우와 폭염, 폭한과 폭설 등 극한의 이상기후는 이제 일상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재난은 해마다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현재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인류는 조상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각종 호사를 누리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하루 안에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여행할 수 있고, 어떤 복잡한 문제도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으면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풍부한 식량과 높아진 위생 수준,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독소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탄소'다. 인간이 더 멀리 여행하고, 더 편리한 생활에 빠져들수록 탄소 배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화석 연료 사용이 급증하며 지구는 급속히 뜨거워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인류에 대한 '탄소의 복수'는 더 빨라질 것이다. 몇 년 안에 우리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환경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 영화들은 이를 경고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반복돼왔다. 인류 최초 문명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지역만 해도 그렇다. 그곳은 한때 삼림이 울창했다. 하지만 마구잡이 벌목으로 결국 사막이 되고 말았다. 탄소 배출로 똑같은 비극이 지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파국을 막으려는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각국은 2015년 12월 채택된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탄소 감축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가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으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은 거스를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목표다.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주력 산업이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해야 할 이재명 정부는 고민이 많을 것이다.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고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탄소 배출을 감축하려면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강화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위스 사례를 소개하며 배출권거래제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배출권 가격이 너무 싼 데다 탄소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낮은 탓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 배출량 중 가격이 책정된 비중이 30%에 육박했다. 인증된 배출권인 '탄소크레딧' 수요도 전년 대비 3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탄소배출권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김재민 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는 “경제 성장과 탄소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탄소크레딧에 금융 이익을 연계시켜야 한다"며 “이는 탄소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류의 생존이 달린 '탄소 감축'에 성공하려면 탄소크레딧도 비트코인 같이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서 탄소 저감 기술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지구를 구하는 일도 규제보다는 시장이 더 잘할 수 있다. 장박원 기자 jangba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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