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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 신문 장혜원 기자 입니다.
  • 건설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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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매 끝, 이제부턴 버티기”... 서울 집값, 전세난 등에 업고 반등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다시 상승 폭을 키우면서 부동산 시장이 반등 국면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급매물 소화와 매물 감소, 전세시장 불안이 맞물리며 수급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3일 부동산업계와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다섯째 주(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2% 상승해 전주(0.06%) 대비 상승폭이 두 배로 확대됐다. 2주 연속 상승폭이 커진 것으로, 1월 말 이후 둔화하던 흐름이 다시 반등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반등이 아닌 수급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성북·서대문·강서구 등 강북권과 외곽 지역이 상승세를 주도했고,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과 금천·관악·구로 등 '금관구'를 중심으로 거래가 집중됐다. 반면 강남권은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서초(-0.02%)와 송파(-0.01%)는 낙폭을 줄이며 보합권에 근접했고, 용산·동작(각 0.04%)은 상승 전환했다. 강동구도 보합으로 돌아섰다. 다만 강남구(-0.22%)는 하락폭이 확대되며 지역별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 반등의 배경에는 매물 감소가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지난달 21일 8만80건에서 최근 7만7000건대 수준으로 줄었다. 약 2주 만에 3% 이상 감소한 수치다. 특히 강남구를 비롯해 노원·강서·중랑 등 외곽 지역까지 매물이 동반 감소하며 시장 전반에서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출회됐던 다주택자 매물이 상당 부분 소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에 맞춰 '무조건 팔아달라'는 다주택자 매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급매물이 대부분 거래로 소화됐다"며 “지금은 집주인들이 호가를 다시 올리거나 아예 매물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세금을 내고 파느니 차라리 증여를 하거나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수·매도 심리 역시 변화하고 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강남은 실수요층이 두터워 매물이 줄면 대기 수요가 바로 반응한다"며 “최근에는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수자와 매도자 간 '눈치싸움'에서 주도권이 집주인 쪽으로 넘어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강남권에 국한되지 않고 외곽 지역으로도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동작구의 중개업자는 “강남이 움직이면 노원이나 강서 등 외곽 지역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며 “양도세 이슈로 나왔던 매물들이 정리되면서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 자체가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른바 '매물 가뭄'이 가격의 하방을 지지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거래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일부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901건으로 1년 전(514건)보다 증가했다. 특히 강남구(87건)는 전년 대비 2.1배 늘었고, 서초구(62건)와 송파구(56건)도 각각 1.9배, 1.6배 증가했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양도세 부담을 감수하고 급매로 던지느니 차라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며 “강남 집주인들은 기본적으로 버티는 성향이 강해 '남 주느니 자식 준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상담하던 매물 10건 중 2~3건은 결국 증여로 돌리겠다며 매물을 거둬들인다"며 “특히 서초·송파 등에서는 전셋값 상승과 맞물려 채무를 포함한 '부담부증여'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다주택자 매물 출회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나타났던 매물 증가 흐름은 둔화되고, 향후 '매물 잠김' 현상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반등의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전세시장이다. 서울 전셋값은 올해 들어 누적 1% 이상 상승하며 지난해보다 상승폭이 확대됐고, 전세 물량은 연초 대비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 물량 감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약 2만7000가구로, 지난해의 60%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전세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자 일부 수요가 매매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실거주 의무 강화와 갭투자 제한 등 정책 변화 역시 매매 전환을 자극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전세를 구하지 못해 매매로 이동하는 '전세 밀림 수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도 전세 품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무주택자는 “전세 매물이 거의 없어지면서 전세난이 이미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전세를 구하지 못하면 매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인들 말 들어보면, 대단지 아파트인데도 전세 매물이 거의 없고, 나오면 바로 계약이 되는 분위기"라며 “예전에는 고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물건 자체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가 줄어들면 갭투자자들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반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해지면서 전셋값이 오히려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 가능한 물건이 희귀해지다 보니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 된 상황이고, 결국 부담은 실수요 임차인에게 돌아가고 있다"며 “'전세난은 이미 예견된 미래'라는 인식 속에 매매 전환을 고민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상승 흐름이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재명 정부가 보유세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 등 추가 규제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세제와 금융 정책 변화가 시장 방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특히 양도세·보유세 등 세제 정책과 주택담보대출 규제 수준에 따라 매도·매수 심리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리스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강남권 매물 변화는 세제 중심 정책의 '반짝 효과'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매물이 늘었지만, 결국 급매물은 빠르게 소화됐고 이후에는 오히려 매물 잠김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주택자 규제 영향력도 점차 약화되는 흐름"이라며 “과거처럼 세금 부담만으로 매도 결정을 유도하기 어려워졌고, 증여나 장기 보유 등 대체 전략이 늘어나면서 시장 반응이 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강남권에서는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거나, 가격을 낮추기보다 관망하는 '버티기'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재고 소진되는 5월이 공포의 정점”…건설사, ‘중동발 셧다운’ 공포 확산

중동발 전쟁 리스크가 국내 건설현장의 '혈관'을 조이고 있다. 정부는 아직 “멈춘 현장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비축 물량이 소진되는 4월 말~5월 초를 기점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셧다운'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중동전쟁 기업애로 지원센터'를 통해 자재 수급 불안, 공사비 상승, 공정 지연 등 건설업계 애로를 접수·지원할 방침이다. 대한건설협회 등 5개 유관 협회에 설치되는 이 센터는 공급망 이상 여부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자재 수급 차질이나 공사 중단 사례가 공식적으로 접수된 것은 없다"며 “지원센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공사의 공기 연장은 계약 당사자 간 협의 사항이고, 공공 공사는 발주청 판단에 따른다"며 “정부가 일률적으로 지원 방향을 정한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자재 가격 급등과 관련한 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정황 역시 “확인된 바 없다"고 부연했다. 현장의 위기의식은 정부와 온도차가 크다. 에너지경제신문 취재 결과 복수 대형 건설사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날까지는 '이상 없음'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건설업계는 현재 상황을 '초기 리스크 단계'로 보고 있다. 건설사 등을 회원사로 둔 주택협회와 대한건설협회는 모두 현재 상황을 '초기 우려 단계'로 보면서도, 구체적인 영향이나 공사비 상승 규모에 대해서는 확인된 자료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중동발 자재값 상승이 분양가나 공사비에 즉각 반영되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현 시점에서 분양가 상승이나 공기 지연이 업계 전반으로 가시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지원센터 역시 업계 애로를 파악하기 위한 초기 단계"라며 “협회 차원에서도 회원사 피해나 수급 문제를 집계한 자료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특정 품목별 수급 불안 수준이나 공사비 상승 폭을 정량적으로 파악한 자료는 없다"며 “혼화제, 단열재, 페인트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를 중심으로 우려가 제기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자재 가격 상승 압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전체 공사비 상승률로 환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건설 현장이 워낙 많고 실시간 집계 체계도 없어 몇 퍼센트 상승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에서는 이미 자재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 리스크'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일부 현장에서는 마감 공정 진입을 앞두고 자재 수급 상황을 점검하거나 일정 조정 가능성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도료업계에서는 일부 페인트와 실란트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가능성이 통보됐고, 주요 업체들도 최근 두 자릿수 수준의 가격 조정을 단행하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유가 상승이 건설 원가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도장재나 단열재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 비중이 높은 공정에서는 체감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4월 말~5월 초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지나면 가격 문제가 아니라 실제 물량 확보 경쟁으로 국면이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재고로 버티는 단계지만 이후에는 공사 지연을 넘어 일부 현장에서 공정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업계 전반적으로 4월 말에서 5월 초를 하나의 임계 시점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전쟁이 길어질 경우 그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에 '공사비 원가 상승 및 공기 지연 우려'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전쟁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불확실성을 반영해 공사기간 연장 가능성이 담겼다. 특히 도급계약상 불가항력 조항을 근거로 공기 연장 및 추가 공사비 보전 협의 필요성을 명시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나프타 공급 차질이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전쟁 장기화 여부에 따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도장용 자재나 접착제 등 석유화학 기반 마감재를 중심으로 납기 지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현장에서는 자재 확보 상황을 점검하거나 일정 조정 여부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영향이 마감 단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레미콘 생산에 투입되는 혼화제 역시 석유화학 계열 원료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현재는 비축 물량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원료 수급 부담이 점차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사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 공문을 발송해 리스크를 사전 공유하는 한편, 원가율 조정과 자재 확보 전략 점검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재고로 버티는 상황이지만 5월 초가 사실상 데드라인"이라며 “이 시점을 넘기면 레미콘 생산 차질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혼화제 등 화학제품 계열 자재부터 영향이 시작돼 단열재, 플라스틱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건설 자재는 대부분 화학제품 기반이기 때문에 결국 전방위로 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재 상황의 본질을 '가격 상승'이 아닌 '공급 리스크'로 보고 있다. 가격은 협상 여지가 있지만, 공급이 끊기면 공사는 즉시 중단될 수밖에 있기 때문이다.수익성 압박도 확대되고 있다. 자재 가격 상승이 공사비나 분양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비용 부담은 즉각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공사 중단이나 대규모 공기 지연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전쟁이 길어질 경우 영향이 본격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버티는 국면이지만, 향후 공급 상황에 따라 현장별로 체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당시 글로벌 공급망 마비로 철근, 시멘트 등 핵심 자재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는 '코스트 푸시(cost push)'가 발생했다. 철근 가격은 평소 톤당 60만~70만 원 수준에서 한때 140만 원대까지 치솟았고, 시멘트 역시 유연탄 가격 상승 영향으로 단기간에 30% 이상 급등했다.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가 멈추는 사례가 속출했고,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은 공정률 50% 수준에서 2022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여간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으로 번졌고, 추가분담금이 가구당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까지 늘어나면서 조합원 반발과 소송이 잇따랐다. 결국 상승한 공사비는 분양가로 전이되면서 고분양가 논란과 청약 시장 위축으로 이어졌다. 건설사 관계자는 “전쟁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코로나19 당시에 겪었던 공사비 분쟁 재연이 우려된다"며 “현장별 원가율이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정비사업의 추가분담금 증가나 공공사업의 공사비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때처럼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공사비 상승이나 공정 지연이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며 “원자재 수급이 한쪽으로 쏠리면 가격 상승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상황은 당시와 유사한 '공급 충격' 구조를 보이면서도, 원인은 다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물류 마비에서 비롯된 전방위 자재 부족이었다면, 이번에는 유가 상승과 나프타 수급 불안 등 에너지 안보 문제가 출발점이다. 이에 따라 철근·시멘트보다 단열재, 창호, 방수재, 혼화제 등 석유화학 기반 자재가 먼저 흔들리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내 건설업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 자재 대부분이 석유화학 기반이라 호르몬즈 해협 리스크에 속수무책인 구조라는 것이다. 한 건설사 현장 관계자는 “현재 구조는 중동 원료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수입선 다변화 전략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아파트 가고 원전·SMR 온다… ‘회색 콘크리트’ 벗고 ‘에너지 디벨로퍼’ 입는 건설사들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건설업계의 판을 바꾸고 있다. 국내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태양광, 수소, 송전망 등 에너지 사업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조달·시공(EPC), 운영, 전력 공급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주택 의존 구조로는 불확실성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 인프라가 사실상 대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GS건설이다. GS건설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및 판매 관련 사업'을 정관상 신규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이는 태양광 발전소를 시공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고 생산 전력을 판매하는 사업자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충남 태안 창기 태양광 발전소를 기반으로 기업 대상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사업에 나섰고, LG유플러스와 20년 장기 전력 공급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주택사업이 분양 성적에 따라 수익이 흔들리는 구조라면, 장기 PPA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S건설은 인도 파투르 태양광 발전단지에서도 개발사업자로 참여해 시공과 운영, 전력 판매 경험을 쌓아왔다. 국내외에서 태양광 발전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밸류체인을 직접 쥐겠다는 구상이다. 직접 PPA는 이미 제도화돼 있으며, GS건설 사례는 발전사업자가 기업과 장기 계약을 맺는 민간 조달 모델이 실제 사업화 단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간 주도의 자율적인 에너지 거래 시장이 열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삼성전자 등 RE100 대응이 필요한 대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GS건설이 태양광 중심으로전기를 공급하면, 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인 가격에 RE100 대응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다가오는 글로벌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태양광을 비롯한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국내외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권 확보와 수요처 발굴에 주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한우 대표는 지난해 3월 '에너지 전환 리더'를 내세우며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매출 비중을 21%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글로벌 건설사 위빌드와 대형 인프라 및 양수발전 협력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신규 원전 건설 심포지엄을 열며 북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SMR, 수소, 태양광, 해상풍력 등으로 사업 축을 넓히며 주택 중심 수주 구조를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중심으로 바꾸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현대건설이 제시한 'H-로드(H-Road)' 전략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넘어선다. 2030년까지 에너지 매출 비중을 21%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은 주택 경기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독립적인 성장 엔진을 확보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과거 건설업 매출이 분양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주택·건축 부문에 집중돼 있었던 만큼, 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원전과 해상풍력 등 국가 단위 장기 프로젝트가 실적의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 역시 대형 원전과 SMR, 원전 해체 등 전 주기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은 원전과 해상풍력, 수소 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며, 특히 원전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실제 수주나 매출은 계약 체결 여부에 따라 가시화되는 만큼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잠재적 사업 기회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DL이앤씨는 한 단계 더 들어가 기술 축적형 사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DL이앤씨는 미국 엑스에너지와 약 1000만달러 규모의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건설사가 SMR의 표준화 설계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표준화 설계는 발전소 내 각 설비의 연계 구조를 정형화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같은 설계를 반복 적용해 공기와 비용을 낮출 수 있어 향후 후속 프로젝트 확장성도 높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역량과 기술 내재화를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DL이앤씨가 추진하는 SMR 표준화 설계의 핵심은 모듈러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방식을 기존의 현장 중심 토목공사에서 공장 제작과 현장 조립 중심의 '제품 조립형' 모델로 바꾸는 시도다. 기존 대형 원전이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수년간 건설되는 구조라면, SMR 모듈러 방식은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레고처럼 조립하는 개념에 가깝다. 이 경우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금융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번 표준화된 설계를 완성하면 동일한 품질의 발전소를 여러 프로젝트에 반복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DL이앤씨 관계자는 “4세대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 프로젝트 참여 및 수주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이번 사업은 단순 설계를 넘어 표준화·모듈화 기반의 SMR 개발·설계 모델을 구축하는 단계로, 글로벌 SMR 시장에서 신뢰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역시 카타르 태양광 프로젝트와 탄소 압축·이송 설비(CCS 인프라), 호주 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동시에 SMR 분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바탕으로 루마니아 등 동유럽 SMR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글로벌 신재생 에너지 수요 확대에 대응해 관련 기술과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왔다"며 “SMR과 수소, 재생에너지 등 분야를 향후 전략 사업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와 에너지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사업 재편을 두고 “단순한 신사업 추가가 아니라 생존 방식 자체를 바꾸는 흐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주택 사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금리와 PF 부담, 분양 심리 위축까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실상 주택만으로는 실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국가 단위 발주가 이어지는 원전과 전력 인프라 쪽으로 사업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국내 주택 시장은 사이클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데다, 중동 변수까지 겹치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한꺼번에 터진 상황"이라며 “이제는 공사를 따내고 끝나는 구조로는 수익을 유지하기 어렵고,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단계까지 들어가야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EPC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운영·유지보수(O&M)나 전력 판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향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중동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건설사들의 전략 전환을 앞당긴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전력의 '안정적 확보' 자체가 기업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AI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대규모 전력을 끊김 없이 써야 하는 산업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건물을 짓는 수준을 넘어 전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핵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원전, 재생에너지, 송전망 같은 전력 인프라의 전략적 가치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장혜원의 부동산 현장] 비강남권 분양가도 20~30억...서울 진입 장벽은 ‘통곡의 벽’

서울의 주거사다리는 더 이상 '한 칸씩' 오르는 구조가 아니다. 비강남 지역 국민평형(전용 84㎡) 분양가가 20억~30억 원대에 진입하고, 비한강권 뉴타운마저 15억~17억 원대까지 올라서면서 중간 단계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단계적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진입 가능한 계층이 나뉘는 구조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3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동작구 흑석뉴타운에서 분양을 앞둔 '써밋 더힐'은 전용 84㎡ 기준 약 28억3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분양된 인근 '흑석리버파크자이'가 10억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6년 만에 약 3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비강남 신축이면 맞벌이 직장인도 접근 가능한 가격대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현금 여력이 있거나 기존 주택을 처분한 수요만 진입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며 “결국 시장이 갈아타기 수요와 현금 부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뉴타운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노량진6구역 재개발 단지 '라클라체자이드파인'은 전용 84㎡ 분양가가 최고 약 25억8000만원, 전용 59㎡도 21억원 안팎으로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중대형은 30억 원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단지는 GS건설과 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이 시공하며, 지하 4층~지상 27층, 14개동, 총 1499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일반분양 물량은 369가구이며 2028년 11월 입주가 예정돼 있다. 노량진6구역은 뉴타운 내에서도 사업 속도가 빠른 곳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분양 결과가 향후 노량진 전체 재개발 단지의 가격 기준선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상승은 한강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초 분양가와 최근 실거래(2026년 1~3월 기준), 그리고 분양 예정 단지의 업계 거론 가격을 종합하면 서울 전역에서 신축 가격대가 동반 상승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성북구 장위뉴타운 10구역은 전용 84㎡ 기준 분양가가 약 17억원 수준으로 거론되는데, 이는 내달 분양을 앞두고 형성된 예상가로 2024년 인근 단지 대비 2년 만에 약 5억원 상승한 수준이다. 동북권 이문·휘경 뉴타운은 '가성비 지역'에서 고가 신축 타운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이문 아이파크 자이' 전용 84㎡는 최근 16억2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며 분양가 대비 4억 원 이상 프리미엄이 붙었다. 서북권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서대문구 연희1구역 '드파인 연희'는 올해 초 분양에서 전용 84㎡ 기준 약 15억5000만원에 공급돼 인근 기존 신축 시세를 넘어서는 '분양가 역전' 현상이 확인됐다. 서남권 강서구 방화동 '래미안 엘라비네' 역시 최근 분양에서 전용 84㎡ 최고가가 18억4000만원을 기록하며, 외곽 신축 분양가가 지역 내 기존 대장 아파트 실거래가를 추월하는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가격 상승과 함께 거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월 거래량(이달 초 집계 기준)은 주요 비강남 지역에서 이미 전월치를 넘어섰다. 성동구는 196건으로 1월(176건)을 웃돌았고, 강동구 역시 213건으로 증가했다. 양천구도 134건으로 전월(114건)을 넘어서는 등 거래 회복세가 뚜렷하다. 가격도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넷째 주 기준 성동·광진(0.31%), 강동(0.29%), 마포·서대문(0.28%) 등 이른바 '준상급지'의 상승률은 강남권(0.36%)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여기에 노원·도봉·강북 등 외곽 지역도 상승 전환 조짐을 보이며, 집값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업계관계자는 “최근 시장은 상급지에서 시작된 가격 상승이 중간 지대를 거쳐 외곽으로 번지는 '확산형 상승' 양상이 뚜렷하다"며 “동시에 고분양가 신축이 가격의 기준점을 끌어올리면서 기존 아파트 가격이 연쇄적으로 따라가는 '키 맞추기'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우선 강남권 규제 변화 이후 상급지 거래가 움직이면서 마포·성동·강동 등 준상급지로 수요가 확산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대 중반 수준으로 낮아지며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부담이 일부 완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결정적인 것은 고분양가다. 흑석 28억원, 노량진 25억원 등 비강남 신축 단지 분양가가 시장 상단을 끌어올리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존 아파트로 매수세가 몰리는 '가격 재정렬'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는 신축 분양가가 시세를 끌고 가는 시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시장 진입자들은 '비강남 신축 28억 시대'라는 높은 장벽에 정부의 강력한 규제 예고까지 겹치면서 연달아 암초를 만난 형국이다. 수도권에 거주 중인 3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2020년 집을 마련한 뒤 상환을 마치고 상급지로 갈아탈 계획이었지만, 가격 상승과 대출 규제 강화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대출·거래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며 선택지가 줄었고, 단계적 이동 경로도 불확실해졌다"며 “주거 계획뿐 아니라 자산 전략까지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을 단순한 상승이 아닌 구조 변화로 본다. 과거에는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한 신축 분양 단지 청약이나 외곽 구축→비강남 신축→상급지로 이어지는 갈아타기 매매 거래를 통해 부동산 자산 상승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비강남 신축 단지 분양가 가격 급등으로 '주거 사다리 타기'의 중간 단계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비강남 전용 84㎡ 기준 15억 원이 시장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그 가격이 사실상 최소 진입선으로 바뀌었다"며 “중산층이 외곽에서 시작해 비강남 신축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두 번째 계단'이 사라지면서 주거 이동 경로 자체가 단절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업계 관계자도 “최근 시장은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화폐 가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그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부동산으로 집중되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주식처럼 특정 테마에 의존한 자산은 변동성이 큰 반면, 부동산은 입지에 따라 수요가 유지되기 때문에 자금이 계속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모든 지역이 동시에 오르는 것은 아니며,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지역은 점진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결국 수요가 유지되는 핵심 입지로 자산이 집중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최상급지로 수요가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비강남권까지 번진 과열 양상에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고삐도 한층 죄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최근의 거래량 회복이 가계부채 증가로 직결된다고 보고, 이미 시행 중인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거나 대출 한도를 추가로 조이는 '핀셋 규제' 카드를 검토 중이다 금융권 대출 총량 관리 역시 강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최근 가계대출 증가폭이 확대되자 당국은 금융권의 대출 취급 동향을 점검하며 증가세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자체적으로 대출 심사를 강화하거나 금리 조정을 통해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역별 시장 과열에 대응한 관리 가능성도 언급된다. 정부는 특정 지역의 가격 상승세가 과도하다고 판단될 경우 금융·세제·거래 규제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 처분 조건부 대출 요건 등은 주요 정책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다만 구체적인 추가 규제 여부와 내용은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될 사안으로, 현재까지 확정된 조치는 없다. 특히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책대출 규모를 지난해보다 축소하는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도 중요하지만 가계부채 관리는 국가 경제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며 갭투자로 유입되는 자금 차단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전국 임대차 월세 비중 66.8%…서울도 ‘전세→월세’ 구조 전환

서울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며 전세 중심 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전세 매물 감소와 계약 구조 변화가 맞물리면서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가 뚜렷해지는 흐름이다. 과거 주거 안정의 축으로 기능해온 전세 제도가 흔들리면서 시장 전반의 작동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 비중은 66.8%로 나타났다. 월세 거래량은 16만9305건으로 전월 대비 1.4%, 전년 동월 대비 42.5% 증가했다.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장에서는 전세 매물 부족 체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를 찾는 수요는 꾸준하지만 매물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라며 “실제 계약은 반전세나 월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세를 구할 수는 있지만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임차인들이 월세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월세 시장 역시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 매물 분석 결과 서울 아파트 월세 매물은 1년 전보다 14.5% 감소했다. 자치구별로는 성북구(-78.3%), 강북구(-58.2%), 동대문구(-54.3%), 노원구(-52.1%) 등에서 감소 폭이 크게 나타났다. 중저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매물 감소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실수요자의 체감 부담은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관악구 원룸촌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전용 10평 기준 신축은 월세가 1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고, 구축이라도 최소 70만~80만원 수준은 형성돼 있다"며 “이 같은 흐름은 코로나19 시기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신축 물건은 시장에 나오면 바로 계약이 이뤄질 정도로 수요가 빠르게 붙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매물 부족 현상이 확인된다. 수천 세대 규모 단지에서도 전세와 월세 물건이 각각 한 자릿수 수준에 그치는 사례가 이어지며, 임차 수요 대비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실제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매물 부족 현상이 확인된다. 27일 기준 부동산 플랫폼 집계에 따르면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3830세대)는 전세 3건, 월세 1건 수준에 그쳤다. 동대문구 '래미안위브'(2652세대)와 도봉구 '북한산아이파크'(2061세대) 역시 전세와 월세 물건이 각각 한 자릿수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수천 세대 단지에서도 임대 물건이 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든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공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과 고용노동부 자료를 국회 이종욱 의원실이 분석한 결과,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51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근로자 월평균 임금(420만5000원)의 36.1%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소득의 3분의 1 이상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구조다. 주거비 부담이 가계 소비 여력 전반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 송파구의 한 다세대 원룸 임대사업자는 “대출 규제 등 정책 영향이 임대차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장기적으로 왜곡을 낳을 수 있다"며 “결국 그 부담은 임대사업자와 세입자가 함께 지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감소의 배경으로 제도 변화와 시장 환경을 동시에 지목한다. 전세사기 등으로 인한 보증금 회수 불안이 커지면서 전세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고, 매매가격 상승에 따라 전세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일부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흐름이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증가와 실거주 의무 강화 등으로 시장에 나오는 전세 물량 자체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전세 매물 감소와 월세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가운데, 임대차 시장 내부 구조 변화에 대한 해석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주거비를 일정 수준 부담하더라도 자산을 금융시장에 투자하려는 인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전체 시장으로 확산된 구조적 변화인지, 아니면 제한적인 현상에 그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세보증금 약 3억 원을 회수해 미국 주식, 특히 S&P500 지수에 투자하고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사례가 공유되며 관심을 끌고 있다. 주거 안정성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자산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소식을 알린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집은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주거비를 줄이고 전세를 유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자산 방어 전략이었다"며 “그러나 글로벌 자산 시장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 전세보증금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정체 자산'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최근 시장에서는 지역별 가격 흐름이 과거보다 분절되는 양상도 감지된다. 특정 지역의 가격 움직임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전통적인 패턴이 약화되면서, 지역별로 수급과 가격이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 역시 단기적인 현상인지 구조적 전환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서울 주택시장의 변화에 대해 “그동안 시장을 설명하던 '공간적 전이(Spatial Diffusion)'가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은 “과거에는 강남 등 특정 지역에서 형성된 가격 상승 흐름이 인접 지역으로 확산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방향을 보이는 '탈동조화' 현상이 뚜렷하다"며 “시장 전체가 하나의 물결로 움직이기보다 각 지역이 개별적으로 반응하는 '분절 시장'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남이 가격 흐름을 선도하던 '안테나 역할'도 예전보다 약해졌다"며 “강남권과 용산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은 약세를 보이는 반면, 노원·구로·성북 등 비강남 중저가 지역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내는 등 서울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는 수요 구조의 변화를 지목했다. 박 위원은 “현재 주택시장은 고가 주택을 보유한 고령층과, 중저가 주택을 매수하려는 MZ세대라는 두 축으로 나뉘고 있다"며 “고령층은 보유세 부담과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자산을 줄이거나 주거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는 가격 메리트가 있는 비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르포] 기대는 재건축, 현실은 화재 공포…장미·주공5의 ‘민낯’

“오밤 중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몸만 겨우 피한 채 헐레벌떡 피신 나왔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 23일 밤 화재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현장을 27일 직접 찾았다. 이날 단지 내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자녀 가족이 화재가 발생한 동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위와 같이 전했다. 실제로 단지 안은 아직 화재의 흔적이 선명했다. 밤 사이 불길은 잡혔지만, 화재가 발생한 12층과 피해를 입은 13층에는 그을음과 잿더미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게시판에는 '화재 세대 피해 보상 안내' 게시물이 부착돼 있었다. 관리사무소 측은 피해 규모와 소방 안전 점검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화재로 주민 70여 명이 대피했고, 소방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8분 신고 접수 후 1시간여 만인 오후 10시 17분께 완진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방안전 체감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주민은 “스프링클러는 없고 경보기만 설치돼 있다"며 “평소 소방훈련이나 경보기 작동 시험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비원은 “오래된 아파트라 스프링클러는 없지만 매달 정기 소방점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대피한 입주민도 “경보는 정상적으로 울렸고, 주민들은 복도에서 울린 경보를 듣고 비상계단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장미아파트는 현장에서 본 것만으로도 화재 취약 요소가 적지 않았다. 외벽 쪽 비상구 계단 출입부에는 생활 물품이 쌓여 있었고, 이는 유사시 주민 대피 동선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어 보였다. 복도마다 소화기와 소화전이 설치돼 있었지만, 설비 존재만으로 초기 대응 여건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기에 단지 내 주차장은 이중주차 차량까지 겹쳐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구간이 눈에 띄었다. 대형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과 회차를 고려하면, 실제 화재 발생 시 진입로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제기된다. 이번 화재는 그나마 도로변과 가까운 동에서 발생해 소방차 접근이 가능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쪽 동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훨씬 큰 혼선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공통됐다. 송파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서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설치하고, 불법 주정차 여부를 사전에 단속·점검하고 있다"며 “다만 장미아파트처럼 이중주차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단지는 매일같이 현장에 나가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사시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강제 처분이 가능하며, 필요할 경우 차량을 밀고 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며 “최근에는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차량 손상에 따른 민원이나 보상 문제 등 현실적인 부담이 있어 적극적인 집행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문제는 이런 불안이 장미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장미아파트와 더불어 재건축 수혜 단지로 각광받는 잠실주공5단지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노후가 확인됐다. 두 단지는 사실상 잠실 내 마지막 재건축 노른자위로 평가받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사업 기대감보다 노후 설비가 드리운 안전 불안에 더 가까웠다. 이곳은 1978년 준공돼 소방법상 전 세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일부 주민은 “장미아파트와 달리 주공5단지는 전 세대에 각각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복도마다 소화전이 갖춰져 있고, 관리사무소 측은 “수시 점검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 세대에 화재경보기도 나눠줬다"고 해명했다. 겉으로 보면 장미아파트보다 안전장치가 보강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공용부를 들여다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복도 벽면에 붙은 소화전함은 겉면부터 녹이 슬어 있었다. 문을 열자 내부에는 호스와 밸브가 있었지만 설비 주변엔 먼지와 거미줄이 엉겨 있었다. 상부 경보장치 부근에는 정리되지 않은 배선이 노출돼 있었고 용도가 분명치 않은 ON/OFF 버튼까지 달려 있었다. 본지가 확인한 설비 상태는 주민들에게 즉각적인 신뢰를 주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실제로 작동하여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방화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쪽 벽면에는 '방화문 항상 닫힘 유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다른 구간에서는 문이 열린 채 벽돌처럼 보이는 고정물에 받쳐져 있었다. 평소 통행 편의를 위해 열어둔 것일 수 있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방화문은 단순한 출입문이 아니라 연기와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핵심 차단막이 된다. 주민들의 불안도 제각각이었다. 한 입주민은 “화재경보기 설치 방법을 몰라 그대로 두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입주민은 “리모델링한 세대의 경우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송파소방서 측은 “아파트 내부 소화기, 소화전, 경보설비 등은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이 관리 주체"라고 밝혔다. 이어 “소방서에서도 점검과 지도는 하고 있지만, 수백·수천 개에 달하는 시설을 일일이 직접 점검·관리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며 “결국 관리사무소와 관계인의 자발적인 이행이 없으면 유지·관리가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비상계단 적치물이나 방화문 개방 등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점검 시 시정기한을 부여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한 내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현장 불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숫자로 봐도 현실은 무겁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서울 아파트 179만808세대 중 27.1%(48만4511세대)가 준공 30년을 넘겼다. 특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최근 5년간 분석에 따르면, 주택화재 사망자(116명)의 압도적 다수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노후 주택에서 발생했다. 스프링클러의 유무가 곧 '생존의 경계선'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후 아파트 스프링클러는 법적으로 어떻게 돼 있을까. 현행 제도는 기존 노후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현재 소방시설 설치 기준은 6층 이상 특정소방대상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두도록 강화돼 있지만, 기준은 원칙적으로 신축·증축·개축·재축·이전·용도변경 또는 대수선의 허가·신고 시점 이후부터 적용된다. 다시 말해 예전 기준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지금 기준을 자동으로 다시 맞출 의무가 없다. 이 구조 때문에 은마나 장미 같은 구축 단지는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공백이 생긴다. 1992년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관련 조항이 의무화되기 전 착공된 아파트 상당수는 여전히 화재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다만 “설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아무 의무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3조에 따르면 아파트 등 특정소방대상물 관계인은 자체점검 결과 중대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점검 결과와 이행계획도 관할 소방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시행규칙은 그 보고 시한을 점검 종료 후 15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즉 기존 단지라도 경보설비, 소화전, 방화문, 피난로 관리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장미아파트와 주공5단지가 보여준 풍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장미는 애초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구조적 공백이고, 주공5는 설비는 있으나 유지·관리의 신뢰가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사례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기존 공동주택에도 법 시행 후 2년 이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기존 아파트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려면 수조, 펌프, 배관, 세대 내 공사 공간 등이 모두 걸림돌이 된다. 기존 수도배관을 활용하는 간이 스프링클러 같은 대안도 거론되지만 비용과 공간 제약이 만만치 않다. 결국 국회 안에서도 '일괄 의무화'와 '현실적 보강' 사이에서 논의가 멈춰 있는 상태다. 정부도 아직 기존 노후 아파트에 대한 전면 소급 의무화 방침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지난해 부산 아파트 화재 이후 '스프링클러가 없는 아파트 전수 점검과 보강'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무조정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 2만5212개 단지를 대상으로 지자체, 전기·가스안전공사와 함께 긴급 화재안전점검을 진행했고, 2025년 8월 29일 기준 93.1%인 2만3460개 단지 점검을 마쳤다. 보강책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취약세대에 대해 3년간 약 150만 세대에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보급하고, 화재 발생 시 취약가구에 전화를 돌리는 '화재대피 안심콜' 도입, 세대 내 감지기 등 소방시설 설치에 장기수선충당금 사용 허용 등을 추진 중이다. 즉 스프링클러 소급 의무화 대신 감지·경보·대피 체계를 먼저 강화하는 방향이다. 전기적 화재 대책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노후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미설치 세대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특별 전기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올해부터는 전기안전공사의 세대 내 전기설비 점검 대상을 기존 '25년 이상·1000kW 미만'에서 '스프링클러 미설치 공동주택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항목 역시 누전·절연·접지뿐 아니라 콘센트·멀티탭 과부하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이런 보강책만으로 세대 내 초기 화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본지 질의에 “현재 안전 대책을 마련 중이며, 정리되는 대로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재건축을 기다리는 서울의 오래된 단지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 표정으로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다. 시장은 이들 아파트를 볼 때 입지, 사업성, 대지지분, 용적률을 먼저 따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그런 숫자가 아니다. 녹슨 소화전 문, 거미줄 낀 설비, 열린 방화문, 빽빽한 주차장, 그리고 “불 나면 괜찮겠느냐"는 주민들의 짧은 한마디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입법하는 손, 강남에 있었다”…국토위·재경위 자산 ‘핵심지 집중’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와 재정경제기획위원회(재경위) 의원들의 부동산 자산이 서울 강남권과 용산, 1기 신도시 등 이른바 '핵심 입지'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선 다주택 보유자도 있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통해 자산 가치를 형성하는 국토위와 그 상승분에 대한 세금을 결정하는 재경위의 권한이 맞물리면서 입법 권력과 개인 자산 간 직접적인 연결 구조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특히 단순 보유 주택 수보다 자산이 위치한 지역이 전체 자산 규모와 증가 폭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27일 에너지경제신문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26년 정기 재산변동사항을 분석한 결과, 재산 공개 대상 국회의원 287명 가운데 254명(88.5%)의 재산이 1년 새 증가했다. 감소한 의원은 33명(11.5%)에 그쳤다. 전체 평균 재산은 초고액 자산가 2명을 제외하고 28억873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약 2억2000만 원 증가한 수준이다. 단순 평균 기준으로도 의원 1인당 연간 자산이 약 2억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증가 폭 상위 의원을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일부 의원은 1년 사이 수십억 원대 자산 증가를 기록하며 평균을 크게 웃돌았고, 상위권과 평균 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감소한 의원들의 경우도 대부분 금융자산 변동이나 일시적 평가손에 그치는 사례가 많아, 전체적으로는 '증가 쏠림' 현상이 확인됐다. 자산 구성별로 보면 증가 요인의 중심은 부동산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과 용산, 재건축 기대 지역, 그리고 분당 등 1기 신도시처럼 정비사업·개발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지역에서 자산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주택 보유 현황을 보면 다주택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주택 이상을 보유한 의원은 52명으로 전체의 18.1%를 차지했다. 약 5명 중 1명꼴이다. 정당별로는 국민의힘이 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더불어민주당 20명, 개혁신당 1명 순으로 집계됐다. 구성 방식도 눈에 띈다. 단순히 동일 지역에 여러 채를 보유하기보다는, 상속으로 취득한 지방 주택을 유지하면서 수도권 주택을 추가로 보유하는 이른바 '전통적 다주택 구조'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배우자 명의로 주택을 분산 보유하는 방식까지 포함하면, 가구 기준 다주택 비율은 통계보다 더 높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입지별로는 '강남 3구' 집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서울 강남·서초·송파에 주택을 1채 이상 보유한 의원은 47명으로 전체의 16.4% 수준이다. 역시 약 6명 중 1명이 강남 3구에 주택을 보유한 셈이다. 정당별로 보면 국민의힘이 32명, 더불어민주당 14명, 개혁신당 1명으로 나타나 여야 구분 없이 공통된 자산 선택 양상이 확인된다. 다만 범위를 '주택'이 아닌 '부동산 전체'로 넓히면 수치는 달라진다. 상가·오피스텔·복합건물 등까지 포함할 경우 강남 3구 보유 의원은 50명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 주거 목적을 넘어 상업용·수익형 부동산까지 강남권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개별 사례를 보면 서울 핵심 주거지에 고가 자산이 집중된 흐름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는 신고가 기준 61억8000만원으로, 강남3구 내 단일 아파트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강남3구 외 지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진다. 같은 당 고동진 의원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아파트를 81억8000만 원으로 신고해, 강남권을 넘어 용산 등 신흥 고가 주거지까지 자산이 확장된 양상을 보였다. 수익형 부동산 중심의 보유 사례도 확인된다.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일대 오피스텔 11채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피스텔을 주택으로 포함할 경우 다주택 의원 수는 기존 52명에서 60명으로 늘어나, 전체의 약 20.9% 수준까지 상승한다. 국회 내 최상위권 자산가인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약 383억3000만원 규모의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자산 분포는 부동산 정책을 직접 다루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반복된다. 강남권 재건축 밀집 지역과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단지, 상업개발 거점 등에 자산을 둔 의원들이 적지 않아, 정책과 자산 간 접점이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강남권 자산 보유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약 194억6000만원 규모의 빌딩과 주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치동 일대는 재건축과 용적률 규제 완화, 상업지 개발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지역으로, 관련 정책 변화가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곳이다. 같은 당 김도읍 의원도 송파구 신천동 아파트, 부산 강서구 아파트 전세 및 상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송파 일대는 잠실·신천 등 재건축 밀집 지역으로, 안전진단 기준이나 정비사업 규제 변화에 따라 자산 가치 변동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꼽힌다.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노원구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노원은 대규모 노후 단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안전진단 기준 완화나 재건축 규제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다. 이처럼 국토위 소속 의원들의 자산은 △강남 재건축 지역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밀집지 상업개발 거점 등 정책 영향권과 상당 부분 겹쳐 있다. 세금을 결정하는 권한이 집중된 재경 소속 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 강남권 고가 주택 및 다주택 보유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주요 부동산 세제를 다루는 재경위의 특성상, 이들 자산 구조와 입법 권한 간 접점이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재경위 내 조세소위원회는 세율과 과세 기준을 사실상 최종 조율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위원 개인의 자산 구조와 정책 방향 간 관계에 대한 검증 필요성이 제기된다. 세제 완화 정책을 주도하는 의원 가운데 실제 과세 대상이 되는 비율이나, 다주택 보유 상태에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례 등을 교차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토위와 비교할 경우 이해관계 구조는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국토위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해 자산 가치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면, 재경위는 그 상승분에 대한 과세 수준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일한 부동산 자산을 둘러싸고 '가격 형성'과 '세부담 결정' 권한이 국회 내에서 분리·결합되는 구조다. 관련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과 세제를 다루는 상임위에 다주택 보유 의원이 다수 포함된 것은 이해충돌 소지를 키울 수 있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참여연대는 “주식처럼 업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매각이나 회피 조치가 필요한 것처럼, 부동산 역시 최소한 직무 연관성을 따져 상임위 배제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해충돌 가능성만으로도 정책 신뢰가 훼손될 수 있는 만큼, 국회 차원의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다주택 보유 의원들이 국토위나 재경위처럼 부동산 정책을 직접 다루는 상임위에 다수 배치돼 있는 현실은 국민 눈높이에서 명백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며 “상임위 배정 단계에서부터 보다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제도는 이해충돌 여부를 의원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과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경실련은 “부동산 매각이나 백지신탁 같은 강한 규제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있는 만큼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 임대사업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 활동에 대한 제한과 상임위 배정 기준 강화는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르포] 양도세+보유세 직격… “연금 200에 세금 80” 1주택자 ‘비틀’

“이미 버스는 떠났습니다. 지금은 막판에 한두 건 나오는 수준이에요."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인근 공인중개업소.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매물 폭탄'이 쏟아진다는 외부 인식과 달리, 현장의 공기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급매는 2월 말부터 3월 초중반 사이에 대부분 정리됐다"며 “지난주까지 팔릴 만한 물건은 다 나갔고, 지금은 집주인들이 호가를 1억 이상 다시 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일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현지 중개사는 “4월 초가 사실상 마지막 바겐세일"이라며 “4월 중순을 넘기면 절차상 매도가 어려워져 '안 팔리면 그냥 가져간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팔 사람은 다 팔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현장은 가격이 아니라 '현금흐름'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호가 5억 하락이라는 말이 파다하지만, 현장은 '급매 소진' 이후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송파·강동권 매물은 2월 말 정점을 찍은 뒤 3월 셋째 주(16일~20일) 기준 약 12% 감소했다. 양도세 중과 유예라는 '탈출구'를 활용할 수 있는 물량은 사실상 3월 15일 이전에 정리됐다는 의미다. 송파 헬리오시티 전용 84㎡가 27억 원대에 거래됐다는 사례 역시 전체 9510세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다수 집주인은 여전히 29억~30억 원 선의 호가를 유지하며 정책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가격 하락 역시 체감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단지에서 전용 84㎡ 기준 최고가 대비 4억~6억 원 낮은 거래가 등장했지만, 이는 제한적인 초급매 사례다. 헬리오시티 소망부동산 박영호 대표 공인중개사는 “언론에서는 5억씩 떨어졌다고 하지만 실제 거래는 한두 건뿐"이라며 “대부분 매도자는 여전히 28억~30억 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온라인에 올라온 저가 매물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하락폭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시세 대비 수억 원 낮은 특급 매물을 내걸고 영업 중인 한 업소에 들어가 실시간 거래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미 나갔다"는 판에 박힌 말뿐이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구체적인 거래 시점 등을 묻자 중개인은 즉각 취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대화를 끊었다. 현장 곳곳에서 제기되는 '미끼성 허수 매물' 의구심이 취재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 대목이다. 이처럼 단기 급락 이후 시장은 빠르게 관망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더 크게 언급되는 변수는 가격이 아니라 '세금'이다. 양도세 국면이 종료되면서 시장의 중심축은 보유세로 이동했다. 실제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 18.67% 상승했다. 반면 보유세는 최대 40~50%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6년 세수 추계 보고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 대상 1주택자는 31만7000가구에서 48만7000가구로 1년 새 53.5% 급증하며 과세 대상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가격보다 세금이 훨씬 빠르게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충격은 고령층과 1주택 실수요자에게 집중되는 양상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은퇴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 소득은 약 250만~300만 원 수준이다. 반면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보유세를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70만~100만 원에 달해 소득의 30~40%를 세금으로 지출하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연금 200만 원을 받아 80만 원을 세금으로 내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현금흐름'이다. 복수 공인중개사의 정보를 종합하면 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신축 대단지에서 별도 소득이 없는 60대 이상 고령층 비중은 약 20~25%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올해 보유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생존 문제에 가깝다. 실제로 헬리오시티 보유자의 보유세는 650만 원에서 약 980만 원으로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 환산 시 약 81만 원 수준으로, 소득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로 전환되는 구조다. 올림픽파크포레온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70~80대 고령 조합원이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는데, 이분들은 소득이 없어 보유세가 그대로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집을 내놓는 비자발적 매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헬리오시티도 마찬가지다. 그는 “강남에 집 한 채 있다고 모두 부자가 아니다"라며 “보유세가 월 100만 원 수준으로 늘어나면 사실상 생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 세대 역시 예외는 아니다. DSR 40% 규제 속에 '영끌'로 주택을 매입한 2030 세대는 원리금 상환에 더해 월 50만~60만 원 수준의 보유세 부담이 추가될 경우 실질 가용 소득이 마이너스 구간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한 중개사는 “월급 받는 직장인도 세금이 늘어나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식비"라며 “세금이 주거 안정성을 넘어서 삶의 질 자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망은 엇갈리지만 흐름은 분명하다. 5월 9일 이후에는 매물 감소에 따른 '공급 절벽' 가능성이 제기된다. 강동구 한 중개사는 “다주택자가 빠지고 나면 남는 것은 1주택자뿐인데, 이들이 급하게 매도할 이유는 없다"며 “일정 기간 거래 공백 이후 가격 회복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시장은 매수와 매도가 팽팽히 맞서는 '심리 교착' 상태다. 매수자는 추가 하락을 기대하고, 매도자는 반등을 기대하며 버티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거래 절벽, 중기적으로는 가격 반등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국면이다. 복수 공인중개사는 “지금 매수자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강해 호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매도자들은 조금만 버티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격을 쉽게 내리지 않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결국 이번 시장 변화는 가격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공시가격 상승(약 18%)과 과표 확대가 맞물리며세금이 40~50% 급증하는 구조가 형성됐고, 그 부담은 다주택자가 아닌 1주택 고령층과 실수요자에게 전이되고 있다. “결국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집 한 채 가진 서민"이라며 “세금이 시장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압박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주택자의 투기를 잡겠다던 조세의 칼날이, 평생 집 한 채를 지켜온 은퇴 세대의 밥상머리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먼저 베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 역시 시장의 중심 변수가 세금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양도세 국면은 사실상 마무리됐고, 지금은 보유세 부담이 시장을 움직이는 시기"라며 “특히 소득이 없는 고령층일수록 세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고령층은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보유세가 곧 생활비 부담으로 직결된다"며 “이들은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일부를 처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단독] 1년 넘게 묶였던 ‘민·군 하늘길’ 활짝 열린다

정부가 발표만 해놓고 1년 넘게 '서류상 확대'에 그쳤던 인천국제공항의 시간당 슬롯(Slot·항공기 이착륙 횟수) 80회 운용이 오는 29일부터 마침내 현장에 적용된다. 민·군 공역 조정이 실제 항로 설계와 관제 체계에 반영되면서, 그동안 지적돼 온 '하늘길 병목'이 해소될 전망이다. 25일 에너지경제신문 취재 결과, 국토교통부와 공군은 2024년 말 합의한 '서남해 군 공역 조정안'을 29일부터 항공 운항 스케줄에 반영하기로 했다. 국토부와 인천공항 측은 “시간당 슬롯 80회 확대 조치가 29일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본지에 밝혔다. 그동안 항공업계에서는 “슬롯을 80회로 늘렸다는 발표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70대 중후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공역 조정이 실제 항로와 관제 체계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서류상 확대'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 본지가 지난 21일 인천공항 인근 오송산 전망대에서 확인한 결과, 항공기 이착륙은 10분당 10~12대 수준으로 집계됐다.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60~70대 초반에 머무는 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항 인프라는 이미 확장됐지만, 공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병목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이날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역시 출·입국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등, 수요 증가와 처리 용량 간 괴리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시절부터 해외 출장을 위해 이곳을 이용해 왔다는 한 이용객은 “주말이 되니 제2터미널도 포화 상태에 이른 것 같다"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린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조정의 핵심은 인천공항 남측 및 서남해 군 공역 일부를 재배치해 민간 항공기의 직선 접근 경로를 확보하는 데 있다. 군 훈련 공역을 시간·공간 단위로 재편하고 고도를 상향 조정함으로써 민간 항로와의 충돌을 최소화한 구조다. 이 조정이 적용되면 인천공항의 시간당 처리 능력은 기존 약 75대에서 80대 이상으로 확대된다. 단순히 항공편이 늘어나는 수준을 넘어 항로 직선화에 따른 대기 시간 감소와 연료비 절감 등 운항 효율 개선 효과도 기대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하루 최대 1400편 이상의 항공기 운항이 가능한 기반이 마련되는 셈으로, 이는 2023년 일평균 운항량(924편) 대비 크게 늘어난 규모다. 결국 인천공항이 4단계 확장을 통해 목표로 삼은 '연간 여객 1억 명 시대'를 뒷받침할 공역 체계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항공업계는 이번 슬롯 확대를 단순한 '숫자 2' 증가로 보지 않는다.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한 공역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조치라는 평가다. 인천공항은 2001년 일평균 312편에서 2023년 924편으로 약 200% 가까이 운항량이 증가하며 사실상 공역 한계에 근접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슬롯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것은 기존 항로의 여유를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중 공간 자체를 재설계해야 가능한 변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번 공역 조정은 서남해 군 공역을 남쪽으로 이동시키고 일부 구역의 상한 고도를 기존 4만 피트에서 5만 피트로 상향하는 등 입체적 재편을 통해 이뤄졌다. 평면 확장이 아닌 시간과 고도를 나누는 '다층 구조'가 적용된 셈이다. 이번 조치는 인천공항 4단계 확장과도 맞물린다. 활주로와 터미널 등 '하드웨어'는 연간 1억 명 수용이 가능하도록 확장됐지만, 공역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실제 운용은 제한적이었다. 슬롯 80회 적용은 그동안 '서류상 확대'에 머물렀던 수용 능력이 실제 운영 체계로 전환되는 분기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 효과도 기대된다. 직선 항로 확보로 공중 대기 시간이 줄어들면 연료비 절감과 운항 효율 개선이 가능하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시간당 2대 증가가 하루 수십 편의 추가 운항으로 이어질 수 있어, 수익성 개선 효과도 예상된다. 다만 시행 지연의 배경에는 공역뿐 아니라 세관(CIQ), 보안 검색, 계류장, 유도로 등 공항 전체 시스템이 맞물리는 복합적 제약이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 검증과 운영 체계 조정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역 확대는 군의 작전 환경 조정과 맞물린 결과라는 점에서 단순한 인프라 개선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공군은 훈련 공역의 고도를 상향하고 일부 구역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민간 수요를 수용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슬롯 80회는 민·군이 수년간 협의를 거쳐 도출한 안보와 산업 간 타협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공군 관계자는 “이번 공역 조정은 국가안보와 민간 항공 안전, 항공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고려해 이뤄진 민·군 협력의 결과"라며 “공군은 공역을 단순히 축소한 것이 아니라, 서해 군 공역을 광역화하고 고도를 상향하는 방식으로 작전 효율성을 유지·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첨단 항공기와 무인 전력 확대 등 변화하는 작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군 공역의 재편이 필요했던 상황"이라며 “이번 조정을 통해 연합 공중훈련과 전술 운용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확보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공역의 구조적 특수성도 지적한다. 정창욱 광운대 미사일우주안보전략센터 교수(예비역 공군 소령)는 “수도권은 휴전선과 인접해 작전 종심이 매우 짧은 구조"라며 “군 공역은 단순 공간이 아니라 즉각 대응을 위한 안보 인프라"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항공이 증가해 공역이 과밀화될수록 저고도 침투 위협이나 무인기 식별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감시 사각지대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역 조정으로 군 작전 환경이 제한되면 대응 시간이 일부 줄어들 수 있다"며 “이는 유사시 대응뿐 아니라 한미 연합작전에서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북한의 GPS 전파 교란과 드론 등 저고도 위협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공역 확대는 새로운 과제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간 항공 증가와 군 감시 체계 간 충돌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역 확대의 전제 조건으로 '통제 역량 강화'가 강조된다. 정 교수는 “항공교통 수요 증가에 맞춰 민간 관제 체계를 고도화하고, 동시에 지대공 전력과 감시 자산을 보강해야 한다"며 “산업과 안보 사이 균형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9일 시행 이후 공역 운영 데이터를 축적해 추가 조정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북한 공역 차단과 수도권 군 공역 중첩이라는 구조적 제약이 유지되는 한, 슬롯 확대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인천공항 슬롯 80회 체제는 단순한 공항 운영 개선을 넘어, 제한된 공역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의 결과라는 평가다. 항공업계는 향후 공역 정책의 핵심이 면적 확대가 아니라 시간과 고도를 나누는 '다층화 전략'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 공역 문제의 본질은 절대 면적이 작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제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공역이 구조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공역은 사실상 활용이 어렵고, 군 작전 공역과 수도권 혼잡 공역까지 중첩되면서 민간 항로를 설계할 수 있는 여유가 크게 줄어든 상태"라며 “결국 한국은 공역 자체가 좁다기보다, 여러 제약이 한꺼번에 겹쳐 있는 '이중 제약 공역 구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공역 정책의 방향은 단순히 공간을 더 넓히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공간 안에서도 시간과 고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할해 쓰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며 “공역을 여러 층으로 나눠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다층화 전략이 사실상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이런 방향에서 공역 운영 체계를 손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역을 일괄적으로 넓히는 방식보다 '탄력적 공역 사용(AFUA·Flexible Use of Airspace)'을 확대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군 훈련이 없는 시간대에는 민간 항공기가 군 공역을 직선 경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고도와 시간대에 따라 공역을 세분화해 전체 활용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국토교통부도 국가항행계획 2.0을 바탕으로 공역 관리 자동화와 실시간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UAM(도심항공교통)도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당초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했던 UAM 도입 시점을 2028년으로 조정했지만, 올해부터는 인천공항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실증 노선 시험 운영이 예정돼 있다. 이 경우 저고도 공역 사용이 본격화되면서 국방부의 드론 작전 공역과 민간 항로 사이 조정 문제가 새로운 협의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원전株 거듭난 현대건설…설계 주도권 ‘숙제’

현대건설이 북미와 북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 용융염원자로(MSR) 등 차세대 원자로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글로벌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시장 공략에 나선 모습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협력 구조 속에서 설계 주도권과 수익 배분 구조를 둘러싼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핀란드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원전 협력 논의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대형 원전(AP1000)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하는 한편, 스웨덴에서는 홀텍(Holtec)과 SMR 사업 협력을 검토 중이다. 네덜란드에서는 MSR 기술 기업과 협력하며 차세대 원전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언급된 '원전 40조원' 규모는 확정된 수주잔고가 아니라 향후 수주 가능성을 반영한 '수주 예정 프로젝트 및 파이프라인' 규모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이후 현대건설의 원전 관련 수주 파이프라인을 약 4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는 SMR, 유럽 원전 프로젝트, 북미 사업 등을 포함한 중장기 전망치다. 실제 전자공시 기준으로 확인되는 주요 원전 관련 계약은 신한울 3·4호기와 UAE 원전 등으로, 전체 수주잔고(약 90조원 대) 대비 원전 비중은 제한적인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과 확정 수주를 혼용할 경우 사업 규모에 대한 시장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유럽의 정책 환경도 원전 확대에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웨덴은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신규 원전 건설 규제 완화와 재정 지원 방안을 추진 중이고, 2035년까지 2기, 2045년까지 10기 이상 건설을 목표로 설정했다. 핀란드 역시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SMR 전용 인허가 체계를 도입하는 등 원전 확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에너지 안보 전략이 주요 배경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 변화가 단기간 내 실질 수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제시한 수주 파이프라인의 경우 향후 본계약 체결 및 착공 시점에 따라 실제 매출 인식까지 시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일부 프로젝트는 협력 또는 초기 검토 단계일 가능성도 있어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측 역시 사업별 금액이나 해외 원전 비중에 대해서는 “대외비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해외 원전 사업에서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영역까지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측은 “설계 기술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상태이며 현재 기본설계(FEED)를 수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사업에서도 기본설계를 담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독자 원전 모델 개발 계획은 없다고 밝혀, 글로벌 기술 기업과의 협력 기반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두고 원전 설계 영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원전 설계는 원자로 핵심 계통(NSSS)과 건설 및 계통 설계(BOP·FEED)로 구분되는데, 현재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원자로 설계와 핵심 기술은 주로 글로벌 기술 기업이 담당하고, 국내 건설사는 계통 설계와 시공을 수행하는 역할 분담 구조가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김규태 동국대 교수는 “건설·플랜트 엔지니어링 영역에서는 독자 수행이 가능하지만, 원전의 핵심은 원자로 설계"라며 “노심 설계는 고도의 전문 영역으로 별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전 사업은 기술과 동시에 지적재산권이 결합된 산업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구조와 관련해 김 교수는 보다 직설적인 분석도 내놨다. 그는 “원전은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특허 산업"이라며 “스마트폰 산업처럼 설비를 완공한 이후에도 기술 사용 대가 문제가 제기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현재 한국 원전 산업은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지적재산권 구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태"라며 “이로 인해 해외 기술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건설의 기술 역량에 대해서는 “격납건물 등 건설 영역(BOP)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원자로 설계는 여전히 글로벌 기술 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원천 기술 보유 기업이 로열티를 요구할 경우 사업 수익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웨스팅하우스와 한국수력원자력 간 지식재산권 분쟁은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APR1400)이 자사 기술 기반이라고 주장하며 제3국 수출 시 자사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기했고, 체코 원전 사업 등을 둘러싸고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측은 독자 기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분쟁 자체가 수출 협상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력 전문가는 “북미와 유럽은 규제와 감리 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발주처 요구 수준도 높다"며 “공급망, 인증, 인력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술력뿐 아니라 제도 대응 능력과 파트너십 구조가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협력 구조가 단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진입과 수주 확대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천 기술 보유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독자적인 시장 확장성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대건설의 해외 원전 사업 확대 전략에 대해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기술 협력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북미나 유럽에서 추진되는 대형 원전은 사실상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계열 기술이 중심"이라며 “이 구조 안에서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국내 원전 산업의 전략적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이미 APR1400이라는 완성된 원전 모델과 '팀코리아'라는 통합 수출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이 체계를 통해 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SMR 시장에서는 기존 '팀코리아' 중심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형 원전 수출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설계·시공·금융이 결합된 패키지 방식으로 추진돼 왔지만, SMR 분야에서는 건설사들이 각기 다른 해외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홀텍, 삼성물산은 뉴스케일, DL이앤씨는 엑스에너지와 협력하는 등 개별 협력 모델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30년 경력의 한 원자력 기술사는 “원전 산업은 설계·기자재·운영·연료까지 결합된 통합 산업"이라며 “해외 기술 기업과의 협력 구조가 확대되는 만큼, 국내 산업 생태계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 전략 없이 개별 기업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별 기업이 해외 기술 기업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식이 확대되면, 기존에 축적해 온 산업 생태계가 분산될 수 있다"며 “결국 설계는 해외 기업이 맡고 국내 기업은 시공 중심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이 원전 '하도급형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단순히 기업 차원의 전략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팀코리아 체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글로벌 원전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공 및 FEED 설계 역량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독보적인 공기 준수 능력과 시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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