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에너지 패권’ 노리는 美…韓기업, ‘불확실성’ 걱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세계를 상대로 전방위적 '에너지 압박'을 가하며 자원 질서 재편을 도모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 제재부터 베네수엘라 개입, 인도·중국을 향한 경고까지 구사하는 전략도 다양하다. 이란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말폭탄'을 주고받은 탓에 국제유가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계는 유가 변동성과 공급망 불확실성이라는 변수를 만나게 됐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 있지만 대미 투자·에너지 구매 확대 등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국제유가는 최근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미국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의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 대비 0.81달러(1.27%) 상승한 배럴당 64.36달러에 마감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0일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미국 WTI는 전장 대비 0.4달러(0.62%) 떨어진 배럴당 63.96달러에,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4월물 브렌트유도 0.24달러(0.35%) 하락한 배럴당 68.80달러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도 하루 동안 유가가 3% 넘게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달 16일에는 ICE선물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가 전날 대비 4.15% 떨어지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널뛰기하는 것은 미국과 이란의 기싸움 때문이다. 양국 핵협상 불확실성이 고조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대한 함대가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할 때 선물 거래가가 급격히 올라갔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협상 상황에 대해 “합의에 이르길 기대한다"는 식으로 언급할 때 가격이 5% 안팎까지 떨어졌다. 시장이 미국과 이란 협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베네수엘라 학습 효과' 탓이다. 미국은 지난달 베네수엘라에 전격적으로 군사 작전을 벌여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다. 이후 석유와 관련된 통제권을 거의 확보해 놓은 상태다. 베네수엘라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가 매장돼 있다. 미국은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이란 압박은 물론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행동반경을 줄이는 대가로 미국은 인도에 부과하던 상호관세를 종전 25%에서 18%로 낮추기로 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계속 거래를 한다면 관세를 50%로 높이겠다고 인도를 협박했었다. 인도는 전세계에서 석유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소비국이다. 쿠바도 타깃이 됐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미국이 쿠바로 향하는 원유 수출길을 막는 등 행동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 해상 봉쇄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이처럼 노골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티에리 브로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는 최근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의 주요 고민거리이며 석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무기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물론 러시아, 이란산 원유도 브렌트유 가격보다 (배럴당) 약 20달러나 싸게 구매해 왔다"며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대부분을 미국 통제하에 둠으로써 베이징이 최대 수혜자인 석유 암시장을 말려 죽이려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방위·첨단 산업에서 필수적인 핵심광물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무역블록 결성을 공식화하고 한국 등에 참여를 요청한 상태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4일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핵심광물 장관급회의에서 “지난 1년간 우리 경제가 핵심광물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많은 이들이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핵심광물 무역블록'을 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회의에는 한국의 조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호주, 인도, 일본 등 외교 수장들이 참석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후 별도 기자회견에서 “(무역블록) 협력 관계를 맺고자 하는 55개 파트너 국가가 있으며 이미 다수가 서명했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핵심광물 공급망이) 한 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최악의 경우 (협상) 지렛대나 지정학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 이후 참석자들은 '지전략적 자원협력 포럼'(FORGE·포지 이니셔티브) 공식 출범을 알렸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출범했던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이 재편된 것이다. 우리 외교부는 한국이 올해 6월까지 포지 이니셔티브 의장국을 수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포지 이니셔티브 출범을 환영하며 의장국으로서 회원국 간 협력 확대와 실질 협력 사업 발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무역 갈등 과정에서 중국이 희토류 같은 핵심광물 수출 통제에 나서자 큰 위기 의식을 느꼈었다. 이후 중국발 공급 충격에 대비해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에 힘써왔다. 지난 2일에는 120억달러 규모 자금을 투입해 핵심광물을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민관 합동 프로젝트 '프로젝트 볼트(Vault)'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리튬, 구리, 희토류 등 50여개 광물을 비축해 중국 의존도를 강제로 낮추겠다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 같은 변화 양상을 신중하게 살피고 있다. 전반적으로 올해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것을 예상하고 경영 계획을 수립했는데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작년 말 발간한 '2026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보면 상반기 평균가가 배럴당 57.5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진 배럴당 55달러 안팎일 것으로 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공급 과잉 탓에 새해 원유 평균 가격이 50달러 선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이란발 위기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등이 다시 거론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워졌다.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전반적으로 비용 절감 수혜를 예상할 수 있다. 수입가격 인하로 내수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순기능도 기대된다. 항공·물류업계는 유류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석유화학 업종은 나프타 가격 하락 등 원가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유가 하락을 기다리고 있다. 정유사들은 비싸게 사둔 원유 가치가 하락하며 장부상 손해가 발생하는 재고 평가 손실이 일어날 수 있어 경계한다. 유가가 급등할 경우에는 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경우에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끝나는 등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는 통상 유가가 올라가면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가 늘어난다고 예상한다. 국제 유가 상승은 단기적으로 정유사 재고 평가 이익을 키울 수 있지만, 변동성이 커질수록 중장기 경영에는 부담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이 러시아·이란산 원유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확보해왔던 구조에 제동이 걸릴 경우 아시아 정유·석화 시장의 경쟁 구도 자체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해 왔지만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는 원가 관리 측면에서 악재다. 해운과 조선업은 상대적으로 수혜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동 리스크가 부각되면 원유·액화천연가스(LNG) 운송 노선이 길어지고 운임이 오를 수 있어서다. LNG 운반선, 원유 운반선 발주 확대 기대감도 함께 나온다.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에 한정된 '조건부 호재'라는 점에서 낙관은 이르다. 제조업은 보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에너지 가격 변동은 부담이지만, 이미 글로벌 수요 둔화와 전기차 캐즘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어 영향이 분산되는 모습이다. 에너지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물류비와 생산비 전반을 끌어올려 제조업 전반의 체력을 서서히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산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패권 전략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 변화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미국은 석유와 가스를 무기화해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동맹과 비동맹을 명확히 가르려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유가 자체보다 '불확실성의 상수화'가 더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향해 “무역 합의 이행이 늦다"며 자동차 등 주요 품목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경고한 상황이다. 정부와 기업은 미국산 LNG와 원유 구매를 더 늘려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도입 단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도 무시하기 힘들다. 기업들은 우리 정부의 외교·통상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소니의 사업전환 성공…韓 기업도 ‘체질 개선’ 서둘러야

일본 소니가 TV 사업을 사실상 접었다는 소식이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던 '소니 TV 신화'를 기억하는 이가 많아서다. 합작사를 만들어 경영권을 넘기는 주체가 중국 TCL이라는 점도 눈길을 잡는다. 브라운관(CRT) TV부터 액정표시장치(LCD) 제품까지 기술 리더십을 유지한 '전통의 강자'가 저가 공세를 퍼붓는 후발주자에게 왕좌를 내주는 모양새가 됐다. 중국과 일본이 극한 외교대립을 겪는 와중에 양국 대표 기업들이 피를 섞기로 했다는 점 역시 관전포인트다. 국내에서도 해당 뉴스 관련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초점 자체는 '소니의 몰락'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소니 TV가 최고였던 어릴 적을 회상하며 세상이 변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소니를 침몰시킨 중국 기업들의 공세를 보며 삼성·LG전자가 프리미엄 TV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핵심을 잘못 짚었을 뿐이다. 한국은 일본·중국과 거의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다. 우리 입장에서는 소니가 TV를 포기하고 어떤 신사업에 신경 쓰고 있는지를 봐야한다. 소니의 시가총액은 23일 마감가 기준 22조2254억엔(약 207조원)이다. 국내 증시로 옮겨온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를 달리게 된다. 최근 주가가 급등한 현대자동차도 이제 막 시총 100조원 고지를 넘었을 뿐이다. 소니는 지난 수십년간 주력 사업을 수차례 교체해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친숙한 가전·워크맨 회사였다. 소니 트리니트론 TV는 1973년 '방송 분야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인물이나 작품이 아닌 상용 제품이 에미상을 받은 첫 사례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엔터테인먼트 분야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등 게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미디어 쪽에도 관심을 가졌다. 2010년 금융위기 전후에는 TV 사업 적자 등으로 회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시총이 20조원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후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집중하고 이미지센서 경쟁력을 갈고닦았다. 2026년 현재 수익 중심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며 글로벌 종합 엔터테인먼트·테크 기업으로 거듭났다. 우리 입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이미지센서 분야 영향력이다. 이미지센서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전기 에너지로 바꾼 뒤, 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부품이다. '디지털 시대의 필름' 또는 '전자기기의 눈'이라고 볼 수 있다. 소니의 글로벌 이미지센서 시장 점유율은 약 55%다. 삼성전자(약 15%)와 옴니비전(약 10%) 등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소니 제품은 센서와 반도체 칩을 겹쳐 쌓는 기술에서 세계 최고의 수율과 성능을 자랑한다고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디지털카메라 사업 부문을 일본 니콘에 넘겼다고 가정해보자. 회사의 경영 판단일 뿐, 삼성전자가 망하거나 과거의 영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소니와 TCL이 합작사를 세웠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소니는 일찌감치 TV를 껐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중국 TV가 '소니' 브랜드를 달고 팔린다는 점은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기 때문이다. 기술력 자체는 아직 최고 수준이기도 하다. 중국산 공세가 워낙 거세다 보니 생겨나는 두려움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한국 산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LCD 등 분야는 이미 생태계 자체를 장악했다. 한국 석유화학·철강 산업은 중국 탓에 고사 위기에 놓였다. 전기자동차와 이차전지 분야 기술력도 무시하기 힘들어졌다. TV를 비롯한 가전제품들 '저가 공세'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고부가가치 제품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공지능(AI) 경쟁력을 무섭게 쌓더니 이제는 반도체에서도 존재감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시작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는 관세 장벽이 높아지며 중국 제품이 서구권에 들어가는 길이 더욱 좁아졌다. 중국산이 월마트를 점령하고 저가 가전제품들이 아마존에서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덕분에 한국은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던 다양한 전통산업 분야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과거와 같은 자유무역시대였다면 이미 없어졌을 산업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이차전지·철강·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게 이처럼 쉬웠을 리 없다. 유럽이 중국을 견제한 덕분에 우리 기업들의 수출길이 열리고, 일본이 중국과 갈등을 겪은 덕분에 한국 기업의 몸값도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블록화'의 최대 수혜국이다. 미국·유럽이 기술, 환경,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높은 진입장벽을 쌓을수록 한국에 기회가 생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통상 불확실성 증가가 희소식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이같은 '특수'를 누리다 체질 개선 또는 구조조정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니가 TV를 끌 수 있도록 압박한 것은 삼성·LG전자였다. LCD TV 시대가 도래했을 때 과감한 투자와 경영 판단으로 '왕좌'를 가져왔다. 소니는 정당한 경쟁에서 패배했고, 이미지센서 등 다른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지금 우리는 중국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다. 자유무역 무한경쟁 체제에서 중국이 더욱 고삐를 더욱 죌 경우 한국의 상당수 업종들이 고사 위기에 놓였을지 모른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나 태양광 모듈은 물론 철강·석유화학 등도 안심할 수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부를 인수했다. 동시에 전장 사업부문 경쟁력을 강화하며 새 먹거리 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SK그룹은 비핵심 계열사를 과감하게 정리하며 새로운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에 집중하고 있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이달 초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했다. LG그룹은 B2B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한화는 방산·우주에서, GS·LS·두산 등은 신에너지 분야에서 금맥을 캐는 중이다. '소니식 포기' 혹은 과감한 체질 개선 작업이 경영자의 판단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구성원들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회사가 로봇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귀족 노조'가 공장에 로봇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우리나라다. AI·로봇·우주 등 신사업으로 체질 개선을 해 나가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메모리 반도체 산업구조 변한다? 삼성·SK ‘투자시계’ 속도조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기'에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설 투자 관련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공급 확대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지만 정치·경제적 변수가 워낙 많아 속도조절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인공지능(AI) 시대 시장 특성이 얼마나 바뀔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업 구조 자체가 기존 '사이클'에서 벗어나 '수주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수요가 계속 탄탄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다. 반대쪽에서는 제조 기업들이 생산 규모를 늘리면 결국 공급이 넘쳐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이클 주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초호황 기조가 지속되기는 힘들다는 '신중론'이다. 이들은 'AI 거품론' 등을 근거로 삼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일단 예정된 투자에 속도를 내며 업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속내가 복잡한데 국내외에서 '정치 리스크'까지 부각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이 나온다. 미국 행정부는 자국에 생산 시설을 지으라고 우리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억장치다. D램과 낸드플래시(낸드) 두 종류로 나뉜다. D램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삭제된다는 특징이 있다. 용량 대비 가격이 낸드보다 높은 편이다. 낸드는 사진, 영상, 앱 등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는 공간이다. 처리 속도는 D램과 비교해 느린 편이다. 최근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은 일종의 '아파트형 D램'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D램을 높게 쌓아 데이터 처리 양을 크게 늘린 것이다. AI 시대 반도체들은 모두 '귀한몸'이 됐다. 초반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들어가는 HBM이 주목받았다. SK하이닉스가 기술 리더십을 가지고 삼성전자가 뒤를 추격하는 모양새였다. HBM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자 수익성도 올라갔다. 양사는 일반 D램 라인을 HBM에 우선 배치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반 D램을 만드는 라인이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공급이 줄고, 이로 인해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낸드의 역할도 재조명받았다. AI가 학습을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읽고 써야 하는데 HBM이나 D램의 한계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낸드가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양산하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들어가는 SSD 용량은 1152테라바이트(TB)로 기존 제품인 '블랙웰'과 비교해 열 배 이상 많다고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55∼60%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3개월여만에 가격이 1.5배 이상 뛴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 가격도 33∼38%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는 “AI 추론 기반 인프라 개발은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조달을 촉진하고 있다"며 “D램 공급업체 재고 소진이 임박하고 출하량 증가가 웨이퍼 생산량 증가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투자 가속화에 따라 글로벌 서버 시장은 올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업용 SSD의 수요를 촉진하고 있다"며 “생산 능력 제한과 공급업체의 이윤 추구 및 출하량 조절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기업용 SSD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반가운 소식이다. D램 시장은 사실상 '삼파전'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D램 시장 매출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근소한 차이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가 다르지만 양사 모두 35% 안팎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업체들이 70% 이상을 공급하는 가운데 미국 마이크론이 20% 초반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낸드 분야는 경쟁 상대가 많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30% 수준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9%로 2위다. 키옥시아(약 16%), 샌디스크(약 13%), 마이크론(약 12%)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하위권 사업자인 샌디스크는 최근 고객사에 SSD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공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장기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선불을 받고 이마저 전액 현금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같은 호황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무작정 증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가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 업황 분위기만 살펴봐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7~2018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다.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서버 수요 등이 급증하며 D램과 낸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당시에는 D램 평균가격이 전년 대비 30~40% 가량 뛰었다. 이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증설에 나서자 이듬해부터는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제조사들이 재고 평가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2년 전후 환경도 비슷했다.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원격·재택 근무가 늘자 노트북, 서버 등 판매가 덩달아 많아졌다. 이때도 D램과 낸드 가격이 올라가며 기업들 실적이 크게 좋아졌지만 과잉 공급으로 가격은 곧바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2023년에는 삼성전자가 감산 사실을 밝혀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공급 과잉 우려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버텨왔지만 그해 4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량을 조정 중"이라고 언급했다. 1분기 영업이익(6402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95% 급감한 시점이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감산을 인정한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이 회사는 앞서 공급 과잉 국면에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으로 경쟁 상대들을 굴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2010년 전후로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 등을 무너뜨린 사례가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개념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 구조 변화론'이다. 과거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앞으로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수요 증가→공급 과잉→가격 하락→공급 감소→가격 상승의 '사이클'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붐으로 생태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현재 빅테크 등은 AI 데이터센터 등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역시 많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고객들이 사가던 과거 구도를 넘어 '선주문 후생산' 방식이 안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과거와 같은 '반도체 겨울'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반대쪽에서는 'AI 거품' 주장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 AI 인프라 투자가 수익 검증보다 앞서 있다는 이유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는 돈을 벌고 있지만, 이 회사 GPU를 사는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AI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기에 접어든 것은 맞지만 사이클의 모양만 달라졌을 뿐 산업 특성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호황에 수익성을 더 끌어올릴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평택 5공장 공사를 재개하고 증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8년께는 이 곳에서 HBM 등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작년 말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투자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초 SK하이닉스가 2028년까지 12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는데 상황에 따라 용인에만 600조원 가량 돈이 들어갈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양사 모두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 전면적 증설보다는 AI용 메모리와 첨단 공정 중심의 선별적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HBM의 경우 미세 공정뿐 아니라 적층·패키징·후공정 기술이 결합된 복합 제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확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양사 모두 수요가 늘었다고 무작정 생산 시설을 확충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메모리 반도체 산업 자체가 엄청난 투자를 기반으로 돌아간다는 특수성이 있다. 삼성전자를 보면 2022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23조8000억원 가량인데 시설투자로 48조원 가까이 썼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15조원 가량 적자를 내고도 48조원 이상 투자를 해야 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비용도 별도로 들어가야 한다. 올해 10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린다 해도 무작정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여기에 '정치 리스크'라는 변수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인에 만들려던 거대 반도체 단지를 새만금 등 전라권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선을 긋고 있긴 하지만 지방 정치인 등을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지속하고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해당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시설이 없으면 반도체 등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만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반도체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대만 TSMC 등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역시 추가 투자 결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뉴욕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과 무역 협상을 통해 반도체 관세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상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워낙 가변적이라 정부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시계' 속도는 오는 29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양사는 이날 오전 나란히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연다. 이들이 같은 날 실적 관련 설명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먼저 콘퍼런스콜 개최 계획을 공시했는데 SK하이닉스가 일정을 같은날로 잡은 것이다. SK하이닉스 측이 사업 현황과 전략을 먼저 노출하기 싫어 '기싸움'을 펼치는 형국이라고 업계는 해석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엔비디아, 테슬라·구글에 도전장…자율주행차 판도 바뀌나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제왕' 엔비디아가 자율주행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자동차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자율주행 '두뇌'를 제작·배포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을 선점한 테슬라·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엔비디아가 꺼낸 카드는 '오픈소스'다. 완성차 업체들을 우군으로 확보해 후발주자가 아닌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부상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글로벌 자율주행차 패권 판도는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도 기술 개발 및 협력관계 수립 등을 두고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엔비디아 '알파마요' 공개…인간 언어로 주행기록 설명 가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6' 개막을 앞둔 5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호텔 블로라이브 극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자율주행 차량 플랫폼 '알파마요(Alpamayo)'를 공개했다. 황 CEO는 이 자리에서 “실물 AI의 '챗GPT 순간'이 도래했다"며 해당 플랫폼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알파마요에는 엔비디아가 개발한 '추론 비전 언어 액션'(Vision Language Action, VLA) 모델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VLA 모델이 적용되면 자동차가 앞으로 일을 추론해 동작할 수 있다. 판단 과정 역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카메라와 라이다 등 센서로 수집한 주행 데이터만 확인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포인트다. 골목길을 지나는 차 앞에 공이 굴러오면, 공 자체를 피하려 하는 것을 넘어 공을 쫓는 아이가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골목길 양쪽에 차가 세워져 있을 경우 사람이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상황 등도 미리 대비한다. 황 CEO는 “(알파마요 적용 차량은) 센서 입력을 받아 조향, 브레이크, 가속을 작동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수행할 행동에 대해서 추론까지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혼잡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차량이 자연스럽게 주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업계는 알파마요의 판단과 근거가 시스템 내에 기록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차가 결정한 내용을 인간의 언어·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진일보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 그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테슬라·구글 등 자율주행 시스템은 AI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알파마요가 탑재된 첫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CLA로 정해졌다. 이 모델은 이르면 1분기 내 미국 시장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2~3분기에는 유럽·아시아 시장 등에서도 판매된다. ◇ 거대 생태계 구축 위해 '오픈소스' 승부수…전기차 성공 방정식 답습 알파마요의 작동 방식과 별개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엔비디아가 자율주행차 시장 선점을 위해 펼치고 있는 전략이다. 플랫폼 자체를 무료 오픈소스로 공개해 수평적 생태계 형성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AI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으로 분석된다. 황 CEO는 이날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 FSD(Full Self-Driving)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도 “엔비디아는 차량을 직접 제작하지 않고 다른 회사를 위한 기술을 구축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술 플랫폼 제공자이기 때문에 시스템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며 “우리는 전체 자동차 산업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FSD를 자사 차량에만 적용한다는 점을 견제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엔비디아는 이날 황 CEO 기조연설에 앞서 자동차 제조사 메르세데스-벤츠,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사 스케일AI, 코딩 AI 업체 코드래빗, 의료특화 AI 업체 에이브리지, 데이터플랫폼 스노플레이크 등 협력사 관계자들을 무대로 불러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이같은 행보는 IT 업계에서 이미 수차례 검증받은 성공 방정식을 따르는 것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테슬라 역시 전기차 시장을 키울 때 오픈소스 전략을 사용했다. 테슬라는 지난 2014년 전기차 관련 각종 특허를 공개하며 경쟁사들에게 충격을 줬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구조도 일부 공개하거나 그 개념을 전파해 영향력을 발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테슬라가 단순히 기술을 개방했다기보다는 전기차 판 자체를 키웠고, 자신들의 생태계를 표준화시키는 데 일정 수준 성공했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큰 성과로는 충전 표준이 꼽힌다. 충전 관련 기술을 공유하고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확신시키면서 북미 등에서는 테슬라가 충전 표준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상태다. 테슬라는 자사 충전 서비스 이름 자체를 '북미충전규격(NACS)'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상당했다. 현재는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전기차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테슬라 오픈소스 전략의 결과로 지목된다. 이미 나름대로 기술을 축적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테슬라와 기술력 경쟁에서 밀렸고, 대신 리비안, 루시드 등 신생 기업들이 생기며 전기차 시장 파이를 키웠다. 허샤오펑 샤오펑(Xpeng) 창업자는 “테슬라가 특허를 무료로 공개했을 때 너무 흥분해서 창업을 결심했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 돋보이는 엔비디아 야심…현대차 등 한국 기업 행보 '주목' 엔비디아가 이미 수많은 완성차 업체들과 자율주행 관련 기술 협업을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도 재조명받고 있다. 엔비디아는 벤츠를 비롯해 토요타, GM 등과 협력 관계를 다지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을 공급받기로 한 상태다. 엔비디아가 완성차 업체들을 자신의 생태계로 유인해 자율주행 시장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앞세워 전세계 스마트폰 리더가 된 사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은 당장 셈법이 복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등은 이미 연구개발(R&D) 비용을 대거 투입해 자체적으로 자율주행 역량을 개발해왔다. 그럼에도 엔비디아가 막강한 AI 역량을 앞세워 제안하는 '동맹'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CES 2026 현장에서 황 CEO와 만난 사실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6일 오후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에서 30분가량 비공개로 회동했다. 현대차그룹이 엔비디아와 협업을 통해 자율주행 분야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엔비디아와 동맹을 맺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데 이어 10월에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또, 약 30억달러(약 4조3500억원)를 서로 투자해 국내에 엔비디아 AI기술센터, 현대차그룹 피지컬AI 애플리케이션 센터 등을 설립하기로 했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이달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엔비디아와 협력 가능성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가능성은 다 있다"며 “조만간 전체적인 (자율주행) 전략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율주행차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조사업체 Grand View Research는 전세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를 2024년 기준 약 680억~840억달러(약 100조~122조원)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이어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약 19.9% 성장해 2030년 2140억달러(약 310조원) 크기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고려아연 美 제련소 투자 ‘빛’인가 ‘빚’인가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11조원 규모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짓기로 한 결정은 한국 제조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파격적인 행보로 평가받는다. 미국 내 핵심 자산 확보라는 장밋빛 전망과 함께 천문학적 투자비에 따른 재무 부담과 기술력 재현 가능성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영풍과 경영권 분쟁 국면이라는 측면을 배제하더라도 업계에서 고려아연의 결단이 '빛'이 될지 '빚'으로 전락할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간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테네시주에 11조원 규모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의결했다. 이를 위해 설립하는 현지 합작법인(JV)에는 미국 국방부(전쟁부)와 상무부 및 기업도 함께 참여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빅딜'을 놓고 대한민국 제련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그 자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단순한 제조 기업을 넘어 글로벌 경제 안보의 '전략 자산급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놨다는 기대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제련 시장을 꿰뚫는 키워드는 '중국의 압도적 점유율'과 '서구권의 제조 역량 공동화'다. 중국은 아연, 납(연), 갈륨, 게르마늄 등 핵심 광물의 제련 및 정련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50~80%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이에 맞서는 고려아연은 기술력으로 글로벌 탑티어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단일 제련소 기준으로 세계 1위의 아연·연 생산 능력을 갖췄다. 특히 '헤마타이트 공법'은 세계 최고 수준 실력을 지니고 있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철을 경제적으로 분리하고 남은 찌꺼기에서 금, 은, 인듐 등을 추가로 뽑아내는 기술이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다면 고려아연은 서방 진영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고품질 금속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는 앞선 두 가지 키워드를 한 번에 관통하는 결정이다. 기술력은 앞섰지만 '물량 공세'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서구권에서 존재감을 공고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 단순히 공장을 짓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금속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아연 제련소를 만든 적이 없다. 고려아연의 테네시 제련소는 미국 땅에서 광석을 직접 녹여 순수 금속을 뽑아내는 수십 년 만의 첫 대형 기지가 된다. 미국은 첨단 무기나 반도체 제작에 필요한 인듐, 갈륨, 안티몬 등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대신 고려아연에 의존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려아연이 테네시 제련소에서 생산할 핵심 품목은 총 13종이다. 이 중 11개가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 광물'이다. 반도체·방산·인공지능(AI) 등 산업의 필수 소재들이다. 구체적으로 아연, 연, 구리 등은 자동차·건설·전기차 배터리 부품 기초 소재로 쓰인다. 안티모니, 게르마늄, 갈륨, 인듐, 비스무트 등은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첨단 무기 체계의 필수 소재다. 금, 은, 팔라듐, 텔루륨은 정밀 전자 부품 및 차세대 태양광 패널에 사용된다. 제련소가 들어서는 테네시는 미국 남동부에 위치했다. 현지 60여곳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한 끝에 제련에 필요한 용수·전력 등을 쉽게 조달할 수 있고 물류 접근성이 양호한 테네시주를 선택했다고 고려아연 측은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테네시주에 있는 기존 니어스타(Nyrstar)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이를 활용해 기반 시설을 재구축하고 첨단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련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의 결정을 두고 시장은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 유상증자를 결정해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내부 문제를 제외하고 산업적 측면만 놓고서도 일각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가는 투자 발표 직후 급등했지만 이후 곧바로 급락해 오히려 하락 반전한 상황이다. 포인트는 '재무 부담'이다. 자금조달 방식이 복잡하고 규모가 커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아연이 밝힌 예상 투입 금액은 약 11조원이다.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미국 내 전략 투자자가 출자한 합작법인인 '크루서블 JV'를 통해 약 2조8600억원을 조달하고, 고려아연은 약 8600억원을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나머지 소요 자금은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및 보조금 프로그램, 재무 투자자 대출 등을 더해 충당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사업 운영 주체인 크루서블 메탈즈가 미국 제련소 설립을 추진할 수 있도록 미국의 정책금융 지원 대출 및 재무 투자자 대출 규모가 최대 6조921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상무부는 '칩스법'에 따라 최대 약 3000억원 규모 보조금을 줄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17일 리포트를 통해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가) 사업경쟁력은 제고되나 재무부담 가중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현지 제련소 확보를 통해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 사업자로서의 시장지위가 공고해지는 가운데 희소금속 생산량 증대에 따른 미국 안보 공급망 편입이 중장기 사업경쟁력 및 수익성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한신평의 의견이다. 다만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재무부담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신평은 “미국 합작법인의 동사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비 일부인 2조8500억원을 충당했으나 나머지 투자 자금 대부분은 고려아연이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손자회사가 조달해 연결기준 차입 규모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려아연은 최근 순차입금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결 기준 조정순차입금을 보면 2023년 말 -1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2조4000억원, 올해 9월 3조7000억원으로 뛰었다. '이그니오 사례' 역시 주목받는다.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미국 폐기물 재활용 업체 '이그니오'를 약 5800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회사 매출이 미비하고 자본잠식 상태였다며 '고가 매수'라는 주장이 나온다. 11조원 규모 대형 투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고려아연 측은 “단독 재원만으로는 부담이 큰 이번 프로젝트에서 외부 자금이 적극적으로 조달되면서 차입 비중이 크게 줄고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프로젝트와 투자 협력은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측의 지속적이고도 공고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했던 구조"라며 “미국 현지 핵심광물 공급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해당 사업을 확대하려는 고려아연에 각각 안정성을 확보해줄 최적의 선택지였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이와 별도로 2029년까지 울산 등 국내에 총 1조5000억원 규모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연구개발(R&D)을 비롯해 전략광물 생산, 자원순환, 환경·안전 인프라 등 전반에 걸쳐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산업적으로 '기술 이식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국내 공장 노하우를 미국에 적용해야 하는데 다른 업종 대비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련 기술에서 숨은 핵심은 '얼마나 오래 멈추지 않고 돌리느냐'는 것이다. 산업 특성상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숙련된 인력이 많은 게 중요하다"며 “현지에 숙련 인력을 보내고 설비를 최신화 한다 해도 국내 공장과 같은 수준으로 초기 가동 안정화가 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현재 영풍과 겪고 있는 경영권 분쟁은 고려아연 미국 투자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재로 분류된다. 제련은 고정비 구조가 크기 때문에 장기 운영 계획이 필수적인데 자칫 '리더십'을 잃으면 사업 자체가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향후 인허가 및 제련소 건설 공정 등 사업 절차가 계획대로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제련소 건설 투자가 집행되는 2027~2029년 본격적인 차입금 및 금융비용 증가가 예상돼 고려아연이 기존 사업의 현금창출력 개선 등으로 재무부담 확대 폭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본업에서 확실한 경쟁력은 확보한 모습이다. iM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고려아연은 올해 4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라며 “환율 상승 및 아연·구리·귀금속 가격 강세, 아연·연 판매량 증가, 전분기 인식한 일회성 비용 지출 효과 소멸 등으로 별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고려아연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23년 9조7045억원, 지난해 12조529억원으로 상승 추세다. 올해는 16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6599억원, 7235억원, 1조1000억원 이상 등으로 뛸 전망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애플 리더십 ‘흔들’···스마트폰 글로벌 판도 바뀌나

글로벌 스마트폰 분야 '최강자' 애플의 경영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앞으로 시장 판도가 바뀔지 주목된다. '2인자'를 비롯해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를 이끌던 인원이 연이어 퇴사한 상황이라 회사 미래 전략 추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폴더블폰 등을 앞세워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기회가 생길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최근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임원진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후계자로 꼽히던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달 회사를 떠났다. 같은달 '아이폰 에어' 개발에 참여했던 애플의 산업 디자이너가 아비두르 초두리가 퇴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밖에 인공지능(AI) 부문을 총괄했던 존 지아난드레아 수석 부사장과 2017년부터 법무 총괄을 맡아온 케이트 애덤스 수석 부사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ESG와 대관 등을 담당하는 리사 잭슨 부사장 역시 그만둔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총괄해온 앨런 다이는 메타로 자리를 옮겼다. 내부가 뒤숭숭해지자 임원이 “당분간 퇴사할 계획이 없다"는 메시지를 조직원들에게 공유하는 상황까지 펼쳐지고 있다. 이달 초 이직설이 돌았던 조니 스루지 수석 부사장 사례다. 칩 부문을 총괄하는 스루지 부사장은 2008년 애플에 합류해 회사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이같은 결정이 단순한 세대교체라고 하기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해석이 나온다. AI 관련 조직의 경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COO를 비롯한 디자인 분야 인력 이탈은 아이폰 16의 성공 같은 현재 성과를 봤을 때 '예상 밖'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지난달 아비두르 초두리 퇴사 소식을 전하며 “애플 디자인팀 내 그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던 시점이어서 내부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쿡 CEO의 '은퇴설'까지 돌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 이사회가 다음 CEO 선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 안팎에서는 존 터너스 애플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부사장이 쿡 CEO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경쟁은 애플과 삼성전자가 격돌하는 와중에 중국 업체들이 추격하고 있는 모양으로 전개되고 있다.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기업은 단연 애플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Counterpoint Research), 카날리스(Canalys),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 등 시장조사업체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올해 3분기 기준 애플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내 매출 점유율은 40% 중반대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10% 중반, 중국 업체들은 한 자릿 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폰 분야에서 애플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데 따른 것이다. 판매 대수 분야에서도 애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올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점유율 19.4%를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계속해서 1위 자리를 지키던 삼성전자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애플이 출하량 순위에서 삼성전자를 누른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보고서는 애플 아이폰 출하량이 올해 10% 성장했지만 삼성전잔 갤럭시 스마트폰은 같은 기간 4.6% 성장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2029년까지 애플이 매출액·출하량 등 모든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누르고 1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이 선전하는 배경은 '라인업 확장'에 있다.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17 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보급형 모델을 선보이는 등 소비자 선택지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중국 내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왕좌'에 앉아 있는 애플이지만 제품·신기술 등 혁신 부문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 소개한 '초박형 모델' 아이폰 에어의 경우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 등 관련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지만 상품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CIRP)는 지난 9월 기준 전체 아이폰 판매에서 아이폰 에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애플이 아이폰 에어 후속 모델 출시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내년 가을 후속작을 선보이려 했지만 고객 반응이 워낙 미지근해 생산 설비 등을 축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애플을 둘러싼 최근 '리더십 교체' 바람에 삼성전자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쿡 CEO 퇴임 등이 현실화할 경우 애플은 폴더블폰 전략이나 AI 내재화 등 방향성 자체를 크게 바꿀 여지가 있다. AI 분야의 경우 이미 핵심 임원들이 물갈이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찾고 있는 상태다. 당장 눈길을 끄는 전선은 폴더블폰이다. 업계는 애플이 내년 가을 아이폰 18 시리즈를 공개하면서 화면을 접는 폴더블폰도 최초로 선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폴더블폰은 프리미엄폰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애플을 추격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일찍부터 파고들었던 틈새 시장이다. 갤럭시 Z 시리즈 등을 만들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 화면을 두 번 접는 '트라이폴드' 모델까지 기술 리더십을 확보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의 글로벌 폴더블폰 시장 점유율 64%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8%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화웨이, 비보 등 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전체 출하량에서 폴더블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다. 업계는 애플이 첫 폴더블폰을 내놓으면 고객들이 삼성전자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 등 주요국 중에는 폴더블 수요가 덜한 곳이 많은데 오히려 애플이 삼성전자 제품을 홍보해주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역시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첫 트라이폴드 모델은 극히 제한된 수량으로 출시될 것이지만 규모 확대가 목표는 아니다"며 “내년에는 애플의 시장 진출로 폴더블폰 경쟁 구도가 크게 바뀌는 가운데 삼성은 트라이폴드 모델로 다중 접힘 기술의 리더십을 굳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이 폴더블폰 대량생산에 성공한다 해도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를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지분율 84.8%)다. AI의 경우 애플의 '결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분야 역시 삼성전자가 프리미엄폰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애플보다 훨씬 앞서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AI 열풍'이 불며 미국 빅테크들이 관련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관련 인재 영입을 위해 예상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재 확보 및 조직개편에 시간을 더 허비하다가는 삼성전자와 경쟁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대로 애플이 위기를 기회삼아 삼성전자보다 훨씬 강력하게 'AI 드라이브'를 걸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밖에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안정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애플의 내부 동요가 조직 문화와 직원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으로 애플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에게는 기회와 리스크 요인이 모두 생겨날 것으로 관측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요동치는 美 자동차시장…현대차그룹 ‘유연성’ 빛볼까

미국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대신 내연기관차 보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급선회하면서다. 바이든 체제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며 전기차 제조·보급에 돈을 퍼붓던 게 불과 3년 전 일이다. 갑작스럽게 판도가 바뀌자 제조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 트럼프 '전기차 지원' 끊으며 내연기관차 부활 유도 7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새로운 자동차 규제안을 발표했다. 제조사들이 준수해야 하는 최저 연비인 기업평균연비제(CAFE)를 기존 1갤런당 50마일에서 1갤런당 34.5마일로 낮추는 게 골자다. CAFE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연비를 개선하고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생산을 확대하도록 하는 유인이었다. 제조사가 판매하는 모든 차량의 평균 연비를 측정해 기준을 준수했는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해당 규제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연기관차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인해 일반적인 소비자가 신차 가격에서 최소 1000달러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를 제거했고 자동차 산업을 더 큰 불확실성으로 몰아넣었다"고 논평했다. 수혜는 미국 업체들이 볼 전망이다.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포드 등은 연비가 떨어지는 대형차 판매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동안 CAFE 기준을 준수하지 못해 벌금을 내오기도 했다. 미국 브랜드들은 한국·유럽 경쟁사들과 비교해 전동화 전환을 늦게 시작했다. 뒤쳐진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이차전지 제조사들과 합작사를 만드는 전략 등을 구사해왔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 포드와 SK온 등이 손을 잡는 식이다. 이들은 이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탓에 전기차 생산에 속도조절을 하던 와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CAFE 규제 완화로 이들은 내연기관차 보급 쪽에 더욱 무게추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IRA 등을 통해 지원되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지난 9월부터 끊긴 상태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빅4는 GM, 토요타, 포드, 현대차·기아이다. GM과 토요타가 10%대 후반, 포드와 현대차·기아가 10% 초반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혼다, 스텔란티스 등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이들을 뒤쫓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GM(268만9346대), 토요타(233만2623대), 포드(206만5161대), 현대차·기아(170만8293대) 순이었다. 이 중 GM과 포드 등 미국 제조사들은 연비 향상 등에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대신 기존 내연기관차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방'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 등 라인업도 늘릴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토요타는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차에 계속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북미 지역 하이브리드차 생산 확대를 위해 1조원대 자금을 투자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혼다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등에 대응해 하이브리드차의 미국 생산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 내연기관·전기차 다 갖춘 현대차·기아 '맞춤전략 구사' 가능 현대차·기아는 '유연성'을 앞세워 미국시장을 공략해 왔다. 엑셀 수출을 시작하고,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가 인기를 끌 때부터 현대차는 '세단 명가'로 유명했다. 이후 쏘나타를 거쳐 투싼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아의 대형 SUV 텔라루이드는 한때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각광받기도 했다. 현대차·기아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기차 전용 공장도 만들었다. 현대자동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지난해부터 전기차 양산을 시작했다. 추가 투자를 통해 연간 생산 규모도 기존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동시에 하이브리드차 판매도 확장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친환경차 누적판매는 올해 8월 기준 150만대를 돌파했다. 최다판매 차종은 현대차 투싼과 기아 니로의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 덕분에 현대차·기아는 관세 장벽 등 악재도 잘 이겨내고 있다. 최근 보조금이 끊기며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지만 다른 차종들이 선전하며 전체 규모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지난 11월 미국 판매량은 15만4308대로 전년동월 대비 0.1% 증가했다. 차종별로 보면 전기차 판매가 4618대로 58.9% 급감했다. 대신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3만6172대로 48.9% 급증하며 이를 상쇄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3405대), 엘란트라 하이브리드(2208대) 등 다양한 차급이 골고루 팔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 정부가 CAFE 등 '오락가락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정부의 정책이 또 다시 급변하더라도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GM·포드 등이 이번 조치 이후 전기차 기술 개발을 멈출 경우 '제2의 바이든 시대'가 열렸을 때 현대차그룹과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불확실성'도 제거한 상태다. 미국은 한국과 무역협상 합의에 따라 이달 4일자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공식 인하했다. 앞으로 관심사는 대형차를 선호하는 미국이지만 소형차 시장이 열릴 수 있을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CAFE 규제 완화를 발표하며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이들 나라를 가보면 비틀같은 작은 차들이 있다. 정말 작고 귀엽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생각했고 모두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숀 더피 교통부) 장관에게 이런 차의 생산을 즉시 승인하라고 지시했고, 여러분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기아는 캐스퍼, 레이, 모닝 등 경차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상태다. 다만, 시장이 열릴 경우 해당 분야에서 보다 더 강점을 지닌 일본 브랜드들과 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현대차·기아 최대 매출 키워드는 ‘해외 RV 판매단가’

+8.8%, -29.2%. 현대자동차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감폭이다. 기아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8.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9.2% 급감했다. 현대차·기아가 장사를 못한 게 아니다.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관세 장벽을 쌓아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양사가 미국 수출을 위해 쓴 관세 비용은 3분기에만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관세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오히려 현대차·기아의 매출 성장이 돋보인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판매가 늘며 나란히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대 매출 기록' 일등공신은 해외 레저용차량(RV) 판매 증가다. 앞으로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키워드 역시 RV 판매단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매출이 향후 지속 성장하기 위한 키워드로는 '해외 시장'과 'RV'가 꼽히고 있다. '관세 쇼크' 등이 불가항력적인 리스크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 방어를 위한 양사 판매·마케팅 전략 역시 이쪽 분야에서 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반기보고서를 보면 연결 기준 차량 부문 매출액에서 RV 평균 판매가 성장세는 승용(세단)보다 더 돋보인다. 지난 2023년 대비 올해 상반기 세단의 평균 판매가격은 5271만원에서 5509만원으로 4.4% 올랐다. 해외에서는 6293만원에서 6985만원으로 10.9% 상승했다. 같은 시기 RV 평균 가격은 국내에서 7.5%(5166만원→5557만원), 해외에서 11.9%(6744만원→7544만원) 뛰었다. 기아도 비슷하다. 다른 차종의 평균가가 큰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어든 것과 달리 해외 RV 가격은 5779만원에서 6337만원으로 9.6% 늘어났다. 각사 별도 기준 매출현황을 봐도 RV 수출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현대차의 세단 내수 판매 매출액은 2023년 12조5억원에서 지난해 9조6670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은 4조9143억원이라 반등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수출액의 경우 2023년 15조3125억원, 지난해 15조668억원이었지만 올해 1~6월은 5조7490억원으로 빠졌다. 단순 계산할 경우 연간 성적이 11조원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RV는 훨훨 날고 있다. 같은 시기 내수 매출액이 10조6753억원, 11조8562억원으로 뛰었다. 상반기 실적은 6조6271억원이라 연간 기준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22조3004억원, 24조3058억원으로 올랐다. 올해 역시 6월까지 13조3396억원을 벌어 연간 기준 최대치를 또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는 일찍부터 RV 중심 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별도 기준 세단의 내수 매출액이 2023년 4조266억원, 3조5037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1~6월은 1조7424억원이라 연간 기준 반등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수출의 경우 기존에 물량 자체가 적었던 터라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2조9584억원, 작년 4조2805억원, 올해 상반기 2조3739억원 등이다. RV 매출액은 내수에서 2023년 11조6328억원, 지난해 12조6520억원, 올해 상반기 6조9480억원 등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수출은 2023년 28조1504억원이었는데 올해는 6월까지 15조원을 넘겨 연간 기준 30조원 돌파가 기대된다. 현대차·기아는 다양한 형태로 글로벌 RV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 '크레타', 중국 '일렉시오' 등 현지 맞춤형 SUV를 출시하며 고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전기차 신차를 내놓으면서 디자인 형태를 대부분 SUV 또는 크로스오버차량(CUV) 형태로 가져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향후 현대차·기아가 '관세 리스크' 회피를 위해 미국 등 현지 SUV 생산 비중을 더 높일 것으로 본다. 현대차는 최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를 4분기 미국 내 출시하는데 현지 생산도 검토 중"이라며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앞서도 밝혔다"고 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시장 내 주력 상품은 단연 세단이었다. 현대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와 쏘나타 등이 미국, 중국, 유럽 등 전세계를 누볐다. 기아는 정의선 당시 사장 주도로 탄생한 'K 시리즈'를 통해 '디자인 경영' 서막을 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들어서는 싼타페(2000년), 쏘렌토(2002년), 투싼(2004년) 등이 나오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도 속속 늘어났다. 초반에는 내수 중심이었으나 점차 수출 물량과 해외 생산이 늘어났다. 준중형급 SUV인 현대차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의 경우 현재까지도 전세계 시장에서 '베스트셀링카'로 통한다. 승승장구하던 현대차·기아는 2010년대 후반 첫 고난을 맞이한다. 2017년 중국 '사드보복' 이후 현지 판매가 급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트렌드인 'SUV 열풍'에 제때 올라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 SUV 베라크루즈 단종, 세단 위주의 제네시스 라인업 구성 등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신차 계획을 재정비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공격적으로 SUV 라인업을 확장하고 파워트레인도 다양화했다. '현대차는 세단에 강하고 기아는 RV 명가'라는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진 조치였다. 이후 출시된 현대차 팰리세이드, 제네시스 GV80, 기아 텔루라이드 등은 현재 회사 실적을 견인하는 대표 차종이 됐다. 베뉴, 코나, 셀토스, 니로 등 소형급 SUV와 아이오닉 9, EV6 등 전기차 존재감도 상당하다. 픽업트럭인 싼타크루즈, 타스만 등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SUV는 차량 크기가 큰 탓에 통상 판매 단가가 높은 편이다. 강력한 파워트레인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원자재 사용량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발비용에 대한 부담이 승용보다 크지는 않다. 오히려 세단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절감에 도움을 준다. SUV를 포함한 RV를 원하는 고객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시기관 그랜드뷰리처시(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RV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607억달러(약 87조3300억원)에서 2030년 1445억5000만달러(약 208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판매 대수로 따지면 이미 2020년대 들어 전세계에서 팔리는 자동차 2대 중 1대 이상은 RV라고 집계되고 있다. RV 성공신화를 쓴 현대차·기아 역시 혜택을 충분히 봤다. 연결기준 현대차의 매출액은 2022년 142조1515억원, 2023년 162조6636억원, 지난해 175조2312억원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시기 기아의 매출액도 86조5590억원, 99조8084억원, 107조4488억원으로 늘어났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스마트폰 ‘두뇌’ AP, 삼성·애플 패권 경쟁 향방 가른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AP 기술 고도화 및 내재화가 스마트폰 패권 경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아직까지는 애플이 우위를 점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뒤를 따르고 있는 형국이지만 인공지능(AI) 시대라는 변곡점이 찾아온 만큼 양측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AP는 스마트폰 기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다. AP 성능에 따라 스마트폰의 등급이 구분될 정도다. AP는 여러 부품이 하나로 통합된 'SoC(System on Chip)' 형태로 만들어진다. 중앙처리장치(CPU)를 넘어 그래픽장치(GPU), 모뎀 등을 포함한다. 연산과 논리를 처리하는 CPU는 앱 실행 속도, 멀티태스킹 등을 좌우한다. GPU는 그래픽 연산에 특화돼 게임, 영상 재생 등 시각적 경험을 책임진다.모뎀은 5G 등 무선 통신에 필요한 신호 처리를 담당한다. 여기에 ISP(Image Signal Processor), AI 연산 전용 프로세서 등도 들어가는 게 최근 트렌드다. ◇ 스마트폰 성능 좌우하는 AP···애플은 'A 시리즈' 삼성은 '퀄컴 제품' 스마트폰 시장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애플은 그간 AP 분야에서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애플이 ARM 설계를 기반으로 'A 시리즈'를 자체 개발하며 AP를 고도화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퀄컴 '스냅드래곤' 시리즈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체적으로 '엑시노스'를 개발하긴 했지만 성능·수율 등에 문제가 나타나며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애플은 2010년부터 아이폰용 AP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텔 등 외부 칩 사용을 배제하기 위해 일찍부터 자체 개발에 공을 들였다. 아이폰 17에는 'A19', 아이폰 17 프로에는 'A19 프로'가 들어가는 식으로 제품마다 다른 칩을 넣는 게 특징이다. 생산은 대만 TSMC가 담당한다. 수년간 아이폰을 만들며 '두뇌'도 함께 발달시킨 만큼 '성능 최적화'가 상당 수준 이뤄졌다는 게 업계 평가다. 현재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독주하고 있는 배경도 AP 경쟁력에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엑시노스'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보급형인 갤럭시 A시리즈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플래그십 버전인 갤럭시 S나 Z 등에서는 최적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협업'을 선택했다. 세계 최대 통신 기업 퀄컴과 일찍부터 동맹을 구축하고 '스냅드래곤' AP를 스마트폰에 장착했다. 퀄컴은 모바일 AP를 제작해 납품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을 사용해 서로 '윈윈' 효과를 노렸다. 다만 수년 전부터 균열이 생겼다. 삼성전자의 4나노미터(nm) 공정 수율, 전력 효율, 발열 성능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면서다. 퀄컴은 4나노 스냅드래곤 8+ Gen 1 생산을 TSMC에 맡기는 등 생산 물량을 다변화하고 있다. ◇ 삼성, 애플보다 한발 뒤처진 'AP 고도화' 개선에 R&D 역량 집중 삼성전자 입장에서 더 큰 고민은 AP 매입에 수십조원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종합 가전·반도체 회사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칩을 개발해 파운드리 생산까지 가능한 공정을 갖췄다. 그럼에도 엑시노스 성능이 확보되지 않아 수익성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플래그십 모델 전량에 엑시노스를 적용했던 것은 2015년 갤럭시 S6가 마지막이다. 2020년(갤럭시 S20) 당시에는 성능 논란을 겪었고, 2023년(갤럭시 S23)에서는 엑시노스 탑재를 완전히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모바일 AP 매입액은 10조9326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상은 퀄컴과 미디어텍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 전체의 원재료 매입액은 67조7958억원이다. 이 금액에는 디스플레이 패널, 카메라 모듈 등 삼성전자가 만드는 제품 대부분의 원재료가 모두 포함된다. DX부문 전체가 쓰는 돈의 16.1%가 AP 매입액으로 잡히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연결 기준 32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 중 모바일경험(MX)부문 기여치는 10조6000억원이다. 전세계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을 팔아서 남긴 영업이익보다 모바일 AP 매입을 위해 퀄컴·미디어텍에 지불한 금액이 더 많다는 뜻이다. 성능 향상과 함께 AP 가격도 상승 추세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AP 매입 평균단가는 전년 대비 약 7% 상승했다.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1~6월 기준 모바일 AP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2% 뛰었다. 이 때문에 상반기 AP 매입액은 7조7899억원으로 급등했다. DX 부문 전체 원재료 매입액(39조62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로 올라갔다. ◇ 삼성 'AI 최적화' AP 적용 갤럭시 S26, 내년초 흥행 시험대 예상 삼성전자가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해 '엑시노스'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는 스마트폰 분야 수익성 뿐 아니라 파운드리 사업부의 안정적인 일감 확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장에서는 갤럭시 S26 '두뇌'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다음달부터 '엑시노스 2600' 양산 및 공급을 시작하기로 한 상태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나오는 갤럭시 S26에도 이 칩 탑재를 확정했다. 삼성전자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꺼낸 카드는 'AI 최적화'다. 최근 들어 온디바이스 AI나 대규모언어모델(LLM) 활용 등이 스마트폰 기본 성능이 되면서 AP에서도 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이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성능 극대화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SoC에서 AP(엑시노스)와 모뎀을 분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를 통해 기존 모뎀 공간만큼 AP의 CPU와 GPU 면적을 늘려 성능을 향상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NPU 기능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자체 테스트 결과 '엑시노스 2600'이 애플 'A19 프로' 대비 NPU 성능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측정하고 있다. A19 프로는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17 프로 및 프로맥스에 탑재됐다. 엑시노스 2600은 A19 프로보다 CPU 멀티코어 성능은 15%, GPU 성능은 일부 벤치마크에서 최대 75% 우수했다. 특히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 콘텐츠나 게임 등 멀티미디어 재생 성능은 A19 프로뿐 아니라 퀄컴의 스냅드래곤8 엘리트 5세대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노스 2600은 스냅드래곤8 엘리트 5세대 보다 NPU 성능은 30%, GPU 성능은 최대 29% 높았다. ◇ 애플도 독자개발 5G 모뎀 칩 아이폰18 모델 탑재 등 '통합 전략' 가속화 향후 삼성전자 2나노 공정 성능이 더 향상되면 엑시노스 2600의 주요 성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애플도 AI 시대 AP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 역시 모뎀 분야 퀄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개발한 5G 모뎀 칩을 일부 아이폰 모델에 탑재하는 등 '통합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이폰 18 모델에서는 A20 칩이 2nm 공정을 채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건은 NPU 등 기능을 스마트폰에 최적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입장에서는 기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기술을 고도화하는 전략을, 삼성전자는 판도를 뒤집기 위해 과감하게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한 첫 '시험대'는 내년 초로 예정된 갤럭시 S26의 흥행 여부가 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WiseGuyReports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AP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382억9000만달러(약 55조원)로 추산된다. 2032년에는 3배 가까이 뛴 1000억달러(약 143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반도체 ‘슈퍼 사이클’ 기대…삼성·SK 훈풍 탈까

국내 반도체업계가 '슈퍼 사이클'의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D램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까지 불며 수요가 급증해서다. 지난해 9월 K-반도체에 '겨울론'을 제기하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던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최근에는 '매력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10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D램과 낸드 플래시의 월평균 가격은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범용제품인 DDR4 가격의 경우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만에 '6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지난 9월 기준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6.3달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0.5% 오른 수치다. 데이터센터 등에 탑재되는 서버용 DDR5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구형 제품인 DDR4 공급을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메모리카드 및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지난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3.79달러로 나타났다. 전월보다 10.6% 오르며 9개월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낸드플래시 범용제품 가격은 앞선 1~7월 기간에 전월 대비 4.57%, 5.29%, 9.61%, 11.06%, 4.84%, 6.57%, 8.67%로 거침없는 오름세를 보이다 8월에 전월 대비 1.12% 증가에 그치며 상승세가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9월에 두자릿수 상승률을 회복하며 한 달 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했다. 모건스탠리는 시장 전망을 1년여만에 180도 뒤집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해에만 해도 '한국 반도체 업계에 겨울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가 올들어 전망 의견을 '시장 평균 수준'(in-line)에서 '매력적'(attractive)으로 상향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발간한 '메모리 슈퍼사이클' 보고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기회가 업계 성장률을 앞서고 있고 AI 서버와 모바일 D램 수요 덕분에 일반 메모리칩의 가격 변동률이 다시 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사이클 지표는 더는 단기 부진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2027년경 정점(peak) 패턴에 이를 것"이라며 “메모리 산업 역학이 바뀌면서 모든 곳에서 공급 부족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유지'(EW)에서 '비중확대'(OW)로 올렸다. SK하이닉스 외에는 삼성전자, 일본 키옥시아, 미국 샌디스크를 낸드와 일반 D램 반도체 호황을 잘 반영할 선호 업체로 꼽았다. K-반도체 업계는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AI 열풍'에도 잘 편승하는 모습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관련 대규모 투자 계약 체결이 잇따르면서 AI용 반도체 칩 시장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엔비디아의 경우 시가총액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기준 역대 최고가인 4조5000억달러(약 6300조원)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코어위브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과 최대 142억달러(약 20조원) 규모 컴퓨팅 파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대만 언론들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올해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국에도 최근 희소식이 들려왔다. 삼성과 SK가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초거대 규모 글로벌 AI 인프라 구축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오픈AI는 지난 1일 삼성·SK그룹과 각각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LOI(의향서)를 체결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번 협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픈AI가 진행 중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고성능·저전력 메모리 공급하게 된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지난 1월 오픈AI와 미국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가 함께 발표한 AI 투자 프로젝트다. 4년에 걸쳐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를 투입하는 대규모 데이터 건설 계획이다. 삼성·SK가 이같은 'AI 동맹'에 가입하면서 앞으로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장에서 조성됐다. 업계에서는 가격 상승과 AI 붐으로인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또한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본다. 두 회사는 AI 메모리 시장에서 맞춤형 HBM뿐 아니라 GDDR, LPDDR, 기업용 SSD 등 AI 학습과 추론 전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메모리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에도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첨단 공정 생산능력을 서버용 D램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북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 업체들의 비트 단위로 환산한 연간 D램 수요 증가율이 2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3∼8%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공급 부족 현상으로 3대 D램 업체들은 4분기 DDR5 계약 가격을 15∼20% 인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기술 선점을 위해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슈퍼 사이클'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오는 15일까지 경력직 채용 홈페이지 '10월 월간 하이닉스 탤런트'를 통해 경력사원 채용 원서를 접수한다. 모집 분야는 HBM 회로 설계, 설계 검증, 설루션 설계 등 10개 직무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오는 25일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치른 뒤 면접 등의 절차가 이어진다. 합격자들은 내년 상반기 입사한 뒤 각 사업부에 배치된다. 공정 개발, 회로 설계 등의 직무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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