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우의 산업돋보기] 현대차·기아 최대 매출 키워드는 ‘해외 RV 판매단가’

+8.8%, -29.2%. 현대자동차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감폭이다. 기아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8.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9.2% 급감했다. 현대차·기아가 장사를 못한 게 아니다.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관세 장벽을 쌓아 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양사가 미국 수출을 위해 쓴 관세 비용은 3분기에만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관세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오히려 현대차·기아의 매출 성장이 돋보인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판매가 늘며 나란히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대 매출 기록' 일등공신은 해외 레저용차량(RV) 판매 증가다. 앞으로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키워드 역시 RV 판매단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매출이 향후 지속 성장하기 위한 키워드로는 '해외 시장'과 'RV'가 꼽히고 있다. '관세 쇼크' 등이 불가항력적인 리스크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 방어를 위한 양사 판매·마케팅 전략 역시 이쪽 분야에서 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반기보고서를 보면 연결 기준 차량 부문 매출액에서 RV 평균 판매가 성장세는 승용(세단)보다 더 돋보인다. 지난 2023년 대비 올해 상반기 세단의 평균 판매가격은 5271만원에서 5509만원으로 4.4% 올랐다. 해외에서는 6293만원에서 6985만원으로 10.9% 상승했다. 같은 시기 RV 평균 가격은 국내에서 7.5%(5166만원→5557만원), 해외에서 11.9%(6744만원→7544만원) 뛰었다. 기아도 비슷하다. 다른 차종의 평균가가 큰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어든 것과 달리 해외 RV 가격은 5779만원에서 6337만원으로 9.6% 늘어났다. 각사 별도 기준 매출현황을 봐도 RV 수출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현대차의 세단 내수 판매 매출액은 2023년 12조5억원에서 지난해 9조6670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은 4조9143억원이라 반등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수출액의 경우 2023년 15조3125억원, 지난해 15조668억원이었지만 올해 1~6월은 5조7490억원으로 빠졌다. 단순 계산할 경우 연간 성적이 11조원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RV는 훨훨 날고 있다. 같은 시기 내수 매출액이 10조6753억원, 11조8562억원으로 뛰었다. 상반기 실적은 6조6271억원이라 연간 기준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22조3004억원, 24조3058억원으로 올랐다. 올해 역시 6월까지 13조3396억원을 벌어 연간 기준 최대치를 또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는 일찍부터 RV 중심 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별도 기준 세단의 내수 매출액이 2023년 4조266억원, 3조5037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1~6월은 1조7424억원이라 연간 기준 반등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수출의 경우 기존에 물량 자체가 적었던 터라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2조9584억원, 작년 4조2805억원, 올해 상반기 2조3739억원 등이다. RV 매출액은 내수에서 2023년 11조6328억원, 지난해 12조6520억원, 올해 상반기 6조9480억원 등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수출은 2023년 28조1504억원이었는데 올해는 6월까지 15조원을 넘겨 연간 기준 30조원 돌파가 기대된다. 현대차·기아는 다양한 형태로 글로벌 RV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 '크레타', 중국 '일렉시오' 등 현지 맞춤형 SUV를 출시하며 고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전기차 신차를 내놓으면서 디자인 형태를 대부분 SUV 또는 크로스오버차량(CUV) 형태로 가져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향후 현대차·기아가 '관세 리스크' 회피를 위해 미국 등 현지 SUV 생산 비중을 더 높일 것으로 본다. 현대차는 최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를 4분기 미국 내 출시하는데 현지 생산도 검토 중"이라며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앞서도 밝혔다"고 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시장 내 주력 상품은 단연 세단이었다. 현대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와 쏘나타 등이 미국, 중국, 유럽 등 전세계를 누볐다. 기아는 정의선 당시 사장 주도로 탄생한 'K 시리즈'를 통해 '디자인 경영' 서막을 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들어서는 싼타페(2000년), 쏘렌토(2002년), 투싼(2004년) 등이 나오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도 속속 늘어났다. 초반에는 내수 중심이었으나 점차 수출 물량과 해외 생산이 늘어났다. 준중형급 SUV인 현대차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의 경우 현재까지도 전세계 시장에서 '베스트셀링카'로 통한다. 승승장구하던 현대차·기아는 2010년대 후반 첫 고난을 맞이한다. 2017년 중국 '사드보복' 이후 현지 판매가 급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트렌드인 'SUV 열풍'에 제때 올라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 SUV 베라크루즈 단종, 세단 위주의 제네시스 라인업 구성 등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신차 계획을 재정비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공격적으로 SUV 라인업을 확장하고 파워트레인도 다양화했다. '현대차는 세단에 강하고 기아는 RV 명가'라는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진 조치였다. 이후 출시된 현대차 팰리세이드, 제네시스 GV80, 기아 텔루라이드 등은 현재 회사 실적을 견인하는 대표 차종이 됐다. 베뉴, 코나, 셀토스, 니로 등 소형급 SUV와 아이오닉 9, EV6 등 전기차 존재감도 상당하다. 픽업트럭인 싼타크루즈, 타스만 등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SUV는 차량 크기가 큰 탓에 통상 판매 단가가 높은 편이다. 강력한 파워트레인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원자재 사용량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발비용에 대한 부담이 승용보다 크지는 않다. 오히려 세단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원가절감에 도움을 준다. SUV를 포함한 RV를 원하는 고객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시기관 그랜드뷰리처시(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RV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607억달러(약 87조3300억원)에서 2030년 1445억5000만달러(약 208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판매 대수로 따지면 이미 2020년대 들어 전세계에서 팔리는 자동차 2대 중 1대 이상은 RV라고 집계되고 있다. RV 성공신화를 쓴 현대차·기아 역시 혜택을 충분히 봤다. 연결기준 현대차의 매출액은 2022년 142조1515억원, 2023년 162조6636억원, 지난해 175조2312억원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시기 기아의 매출액도 86조5590억원, 99조8084억원, 107조4488억원으로 늘어났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스마트폰 ‘두뇌’ AP, 삼성·애플 패권 경쟁 향방 가른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AP 기술 고도화 및 내재화가 스마트폰 패권 경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아직까지는 애플이 우위를 점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뒤를 따르고 있는 형국이지만 인공지능(AI) 시대라는 변곡점이 찾아온 만큼 양측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AP는 스마트폰 기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다. AP 성능에 따라 스마트폰의 등급이 구분될 정도다. AP는 여러 부품이 하나로 통합된 'SoC(System on Chip)' 형태로 만들어진다. 중앙처리장치(CPU)를 넘어 그래픽장치(GPU), 모뎀 등을 포함한다. 연산과 논리를 처리하는 CPU는 앱 실행 속도, 멀티태스킹 등을 좌우한다. GPU는 그래픽 연산에 특화돼 게임, 영상 재생 등 시각적 경험을 책임진다.모뎀은 5G 등 무선 통신에 필요한 신호 처리를 담당한다. 여기에 ISP(Image Signal Processor), AI 연산 전용 프로세서 등도 들어가는 게 최근 트렌드다. ◇ 스마트폰 성능 좌우하는 AP···애플은 'A 시리즈' 삼성은 '퀄컴 제품' 스마트폰 시장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애플은 그간 AP 분야에서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애플이 ARM 설계를 기반으로 'A 시리즈'를 자체 개발하며 AP를 고도화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퀄컴 '스냅드래곤' 시리즈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체적으로 '엑시노스'를 개발하긴 했지만 성능·수율 등에 문제가 나타나며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애플은 2010년부터 아이폰용 AP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텔 등 외부 칩 사용을 배제하기 위해 일찍부터 자체 개발에 공을 들였다. 아이폰 17에는 'A19', 아이폰 17 프로에는 'A19 프로'가 들어가는 식으로 제품마다 다른 칩을 넣는 게 특징이다. 생산은 대만 TSMC가 담당한다. 수년간 아이폰을 만들며 '두뇌'도 함께 발달시킨 만큼 '성능 최적화'가 상당 수준 이뤄졌다는 게 업계 평가다. 현재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독주하고 있는 배경도 AP 경쟁력에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엑시노스'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보급형인 갤럭시 A시리즈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플래그십 버전인 갤럭시 S나 Z 등에서는 최적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협업'을 선택했다. 세계 최대 통신 기업 퀄컴과 일찍부터 동맹을 구축하고 '스냅드래곤' AP를 스마트폰에 장착했다. 퀄컴은 모바일 AP를 제작해 납품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을 사용해 서로 '윈윈' 효과를 노렸다. 다만 수년 전부터 균열이 생겼다. 삼성전자의 4나노미터(nm) 공정 수율, 전력 효율, 발열 성능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면서다. 퀄컴은 4나노 스냅드래곤 8+ Gen 1 생산을 TSMC에 맡기는 등 생산 물량을 다변화하고 있다. ◇ 삼성, 애플보다 한발 뒤처진 'AP 고도화' 개선에 R&D 역량 집중 삼성전자 입장에서 더 큰 고민은 AP 매입에 수십조원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종합 가전·반도체 회사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칩을 개발해 파운드리 생산까지 가능한 공정을 갖췄다. 그럼에도 엑시노스 성능이 확보되지 않아 수익성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플래그십 모델 전량에 엑시노스를 적용했던 것은 2015년 갤럭시 S6가 마지막이다. 2020년(갤럭시 S20) 당시에는 성능 논란을 겪었고, 2023년(갤럭시 S23)에서는 엑시노스 탑재를 완전히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모바일 AP 매입액은 10조9326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상은 퀄컴과 미디어텍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 전체의 원재료 매입액은 67조7958억원이다. 이 금액에는 디스플레이 패널, 카메라 모듈 등 삼성전자가 만드는 제품 대부분의 원재료가 모두 포함된다. DX부문 전체가 쓰는 돈의 16.1%가 AP 매입액으로 잡히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연결 기준 32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 중 모바일경험(MX)부문 기여치는 10조6000억원이다. 전세계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을 팔아서 남긴 영업이익보다 모바일 AP 매입을 위해 퀄컴·미디어텍에 지불한 금액이 더 많다는 뜻이다. 성능 향상과 함께 AP 가격도 상승 추세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AP 매입 평균단가는 전년 대비 약 7% 상승했다.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1~6월 기준 모바일 AP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2% 뛰었다. 이 때문에 상반기 AP 매입액은 7조7899억원으로 급등했다. DX 부문 전체 원재료 매입액(39조62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로 올라갔다. ◇ 삼성 'AI 최적화' AP 적용 갤럭시 S26, 내년초 흥행 시험대 예상 삼성전자가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해 '엑시노스'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는 스마트폰 분야 수익성 뿐 아니라 파운드리 사업부의 안정적인 일감 확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장에서는 갤럭시 S26 '두뇌'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다음달부터 '엑시노스 2600' 양산 및 공급을 시작하기로 한 상태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나오는 갤럭시 S26에도 이 칩 탑재를 확정했다. 삼성전자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꺼낸 카드는 'AI 최적화'다. 최근 들어 온디바이스 AI나 대규모언어모델(LLM) 활용 등이 스마트폰 기본 성능이 되면서 AP에서도 신경망처리장치(NPU) 성능이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성능 극대화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SoC에서 AP(엑시노스)와 모뎀을 분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를 통해 기존 모뎀 공간만큼 AP의 CPU와 GPU 면적을 늘려 성능을 향상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NPU 기능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자체 테스트 결과 '엑시노스 2600'이 애플 'A19 프로' 대비 NPU 성능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측정하고 있다. A19 프로는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17 프로 및 프로맥스에 탑재됐다. 엑시노스 2600은 A19 프로보다 CPU 멀티코어 성능은 15%, GPU 성능은 일부 벤치마크에서 최대 75% 우수했다. 특히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 콘텐츠나 게임 등 멀티미디어 재생 성능은 A19 프로뿐 아니라 퀄컴의 스냅드래곤8 엘리트 5세대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노스 2600은 스냅드래곤8 엘리트 5세대 보다 NPU 성능은 30%, GPU 성능은 최대 29% 높았다. ◇ 애플도 독자개발 5G 모뎀 칩 아이폰18 모델 탑재 등 '통합 전략' 가속화 향후 삼성전자 2나노 공정 성능이 더 향상되면 엑시노스 2600의 주요 성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애플도 AI 시대 AP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 역시 모뎀 분야 퀄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개발한 5G 모뎀 칩을 일부 아이폰 모델에 탑재하는 등 '통합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이폰 18 모델에서는 A20 칩이 2nm 공정을 채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건은 NPU 등 기능을 스마트폰에 최적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입장에서는 기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기술을 고도화하는 전략을, 삼성전자는 판도를 뒤집기 위해 과감하게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한 첫 '시험대'는 내년 초로 예정된 갤럭시 S26의 흥행 여부가 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WiseGuyReports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AP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382억9000만달러(약 55조원)로 추산된다. 2032년에는 3배 가까이 뛴 1000억달러(약 143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여헌우의 산업돋보기] 반도체 ‘슈퍼 사이클’ 기대…삼성·SK 훈풍 탈까

국내 반도체업계가 '슈퍼 사이클'의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D램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까지 불며 수요가 급증해서다. 지난해 9월 K-반도체에 '겨울론'을 제기하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던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최근에는 '매력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10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D램과 낸드 플래시의 월평균 가격은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범용제품인 DDR4 가격의 경우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만에 '6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지난 9월 기준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6.3달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0.5% 오른 수치다. 데이터센터 등에 탑재되는 서버용 DDR5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구형 제품인 DDR4 공급을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메모리카드 및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지난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3.79달러로 나타났다. 전월보다 10.6% 오르며 9개월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낸드플래시 범용제품 가격은 앞선 1~7월 기간에 전월 대비 4.57%, 5.29%, 9.61%, 11.06%, 4.84%, 6.57%, 8.67%로 거침없는 오름세를 보이다 8월에 전월 대비 1.12% 증가에 그치며 상승세가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9월에 두자릿수 상승률을 회복하며 한 달 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했다. 모건스탠리는 시장 전망을 1년여만에 180도 뒤집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해에만 해도 '한국 반도체 업계에 겨울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가 올들어 전망 의견을 '시장 평균 수준'(in-line)에서 '매력적'(attractive)으로 상향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발간한 '메모리 슈퍼사이클' 보고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기회가 업계 성장률을 앞서고 있고 AI 서버와 모바일 D램 수요 덕분에 일반 메모리칩의 가격 변동률이 다시 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사이클 지표는 더는 단기 부진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2027년경 정점(peak) 패턴에 이를 것"이라며 “메모리 산업 역학이 바뀌면서 모든 곳에서 공급 부족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유지'(EW)에서 '비중확대'(OW)로 올렸다. SK하이닉스 외에는 삼성전자, 일본 키옥시아, 미국 샌디스크를 낸드와 일반 D램 반도체 호황을 잘 반영할 선호 업체로 꼽았다. K-반도체 업계는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AI 열풍'에도 잘 편승하는 모습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관련 대규모 투자 계약 체결이 잇따르면서 AI용 반도체 칩 시장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엔비디아의 경우 시가총액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기준 역대 최고가인 4조5000억달러(약 6300조원)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코어위브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과 최대 142억달러(약 20조원) 규모 컴퓨팅 파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대만 언론들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올해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국에도 최근 희소식이 들려왔다. 삼성과 SK가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초거대 규모 글로벌 AI 인프라 구축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오픈AI는 지난 1일 삼성·SK그룹과 각각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LOI(의향서)를 체결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번 협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픈AI가 진행 중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고성능·저전력 메모리 공급하게 된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지난 1월 오픈AI와 미국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가 함께 발표한 AI 투자 프로젝트다. 4년에 걸쳐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를 투입하는 대규모 데이터 건설 계획이다. 삼성·SK가 이같은 'AI 동맹'에 가입하면서 앞으로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장에서 조성됐다. 업계에서는 가격 상승과 AI 붐으로인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또한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본다. 두 회사는 AI 메모리 시장에서 맞춤형 HBM뿐 아니라 GDDR, LPDDR, 기업용 SSD 등 AI 학습과 추론 전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메모리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에도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첨단 공정 생산능력을 서버용 D램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북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 업체들의 비트 단위로 환산한 연간 D램 수요 증가율이 2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3∼8%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공급 부족 현상으로 3대 D램 업체들은 4분기 DDR5 계약 가격을 15∼20% 인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기술 선점을 위해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슈퍼 사이클'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오는 15일까지 경력직 채용 홈페이지 '10월 월간 하이닉스 탤런트'를 통해 경력사원 채용 원서를 접수한다. 모집 분야는 HBM 회로 설계, 설계 검증, 설루션 설계 등 10개 직무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오는 25일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치른 뒤 면접 등의 절차가 이어진다. 합격자들은 내년 상반기 입사한 뒤 각 사업부에 배치된다. 공정 개발, 회로 설계 등의 직무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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