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 vs 탄소중립 딜레마…“이념 벗어나 현실 전략 짜야”[창간 기획]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이 갈림길에 섰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선언하며 초대형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전력 공급 전략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단기간 내에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원은 현재로선 천연가스(LNG)밖에 없는데,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도 지향하고 있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 단계에서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목표를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초기부터 AI 3대 강국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또 다른 국정과제에 발목이 잡힌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AI 강국을 위해선 탄소 배출 증가가 불가피한데,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에 좇다 보니 정책에서부터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제12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전기본)과 제16차 장기천연가스(LNG) 수급계획이 동시에 표류하는 최근 상황은 이러한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전력 수급계획을 정하는 전기본이 정리되지 않으니 장기 가스계획이 못 수립되고, LNG 수요 전망 자체가 불확실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내부 시각차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부는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확대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도 LNG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LNG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규 LNG 발전 가동연한 제한과 수소 혼소·전소 옵션 축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흐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산업계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신규 공장 전력 공급 방안으로 LNG 열병합발전을 적극 추진 및 검토하고 있다. SK그룹과 아마존이 10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울산은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통해 300MW급 가스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의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단기간 내에 이를 공급할 수 있는 발전원은 현재로선 LNG밖에 없다. 원전은 건설 기간과 입지 규제 문제로 평균 건설기간이 16년 걸린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ESS) 조합은 계통 제약과 간헐성 한계가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유력한 미래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상용화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석연료인 LNG 사용이 늘면 탄소중립 목표는 후퇴하고 만다. 또한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은 글로벌 RE100(재생에너지 100%)·CF100(무탄소 에너지 100%) 흐름 속에서 글로벌 바이어들의 탄소 규제 기준까지 고려해야 한다. 전력은 LNG로 공급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탄소 배출은 줄여야 하는 이중 압박 구조가 한국 산업계에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모순되면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순위 실행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급한 것은 AI 3대 강국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퉈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뒤처질 순 없다. 여기에 단기간 내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전력은 현재로선 LNG밖에 없다는 점에서 LNG발전 허용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오는 탄소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로 해결 가능하다. 다만 아직 CCUS의 경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기술 고도화와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AI 3대 강국은 단기 목표이고, 탄소중립은 중장기 목표이다. 우선 단기 목표부터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CCUS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는 됐지만, 탄소 단가가 톤당 160달러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를 경제성 확보 수준까지 내리기 위해 기술 고도화 및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이 톤당 2만원으로, 160달러(약 24만원)와는 아직 큰 격차가 있다. 무탄소 전원인 원전+재생에너지+ESS 조합을 대폭 늘리면 LNG를 늘리지 않고도 AI 3대 강국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초기 천연가스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존 원전과 신규 대형원전을 최대한 활용하고 SMR 상용화를 앞당기는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ESS 조합으로 간다면 나중에는 AI 강국과 탄소중립이 동시 달성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이재명 정부가 원전 비중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지층인 환경단체들의 상당한 반발을 살 수가 있다. AI 3대 강국 목표를 우선 달성해 국가 경쟁력을 강건히 하고, 이후 AI를 통해 에너지 절감 및 탄소중립 기술을 고도화하면 후반부에는 탄소중립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에너지원을 둘러싼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AI 강국과 탄소중립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전지성 기자 jjs@ekn.kr

K-반도체, 메모리가 AI 지배하는 ‘HBM 시대’ 열다 [창간기획]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다. 과거 반도체산업이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연산 성능 경쟁 중심이었다면 생성형 AI시대에는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고, 공급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모델이 초거대화되면서 연산칩 자체보다 이를 뒷받침하는 메모리 기술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AI 서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다. AI시대의 핵심 병목이 연산 성능이 아닌 메모리 대역폭으로 이동하면서, 메모리 기술이 곧 AI 인프라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AI시대 반도체 패권은 GPU 단독경쟁이 아니라 GPU·HBM·첨단 패키징이 결합된 시스템 경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 확장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인프라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AI 가속기와 '한 몸' 된 HBM…반도체 패러다임 바꾼다 생성형 AI 확산 이전까지 반도체산업의 중심은 미세공정 경쟁이었다. 얼마나 더 작은 공정으로 더 높은 연산 성능을 구현하느냐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챗GPT를 비롯한 초거대 AI모델 등장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AI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GPU가 아무리 높은 성능을 갖추더라도 데이터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AI 서버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메모리 속도와 전력 효율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HBM은 이러한 AI 시대 요구에 최적화된 메모리로 평가받는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기존 D램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대역폭을 구현할 수 있어 AI 가속기와 사실상 '한 몸'처럼 작동한다. 특히 엔비디아의 최신 AI GPU에는 HBM이 필수적으로 탑재된다. GPU 성능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경쟁력이 사실상 HBM 수급 능력에 달려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HBM의 의미는 단순한 고성능 메모리를 넘어선다. 과거 D램 산업이 가격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리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었다면, HBM은 구조적으로 다른 시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HBM은 고객 맞춤형 성격이 강하다. GPU 설계 단계부터 메모리 업체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고, 발열·전력·적층 구조·신호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인증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공급망 진입 장벽도 높다. 한 번 공급망에 진입하면 장기간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기존 범용 메모리 시장과 차이가 있다. 시장에선 AI 서버 확대와 함께 HBM 시장이 향후 수년간 고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대형 금융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글로벌 HBM 시장 규모가 546억달러(약 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346억달러(약 51조원) 대비 57% 증가한 수치다. AI 모델 고도화로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요구 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력인 HBM3E(5세대)를 넘어 차세대 HBM4(6세대)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 삼성전자 HBM4 양산 공급에 SK하이닉스 커스텀메모리로 대응 AI시대 최대 수혜산업으로 메모리가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시장 주도권은 엔비디아 공급망을 선점한 SK하이닉스가 쥐고 있지만, 차세대 HBM4를 기점으로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BM4부터는 최하단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이 도입되는 등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술적 변곡점에 진입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 역량을 모두 보유한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턴키(Turn-key)' 경쟁력을 내세워 반전을 노리고 있다. 실제 삼성은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하며 차세대 HBM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삼성은 경쟁사보다 한 단계 앞선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하고, 베이스 다이 특성을 고려해 성능과 전력 효율 측면에서 유리한 4나노 공정을 도입했다. SK하이닉스는 TSMC와의 전략적 동맹을 공고히 하며 고객사별 최적화된 '커스텀 메모리' 솔루션으로 HBM 1위를 수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와의 강한 파트너십도 강점이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인 'GTC 2026'에 참가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찾아 AI 메모리 사업의 최신 성과를 살폈다. ◇ AI 인프라 움직이는 메모리…'K-반도체 전략 가치' 커진다 AI 확산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가치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메모리가 스마트폰·PC·서버 산업의 핵심 부품이었다면, 이제는 AI 인프라를 움직이는 핵심 자원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AI 시대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 반도체산업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상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생산능력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역대 최대 수준인 110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며 AI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HBM 중심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AI발 메모리 수요 급증은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에선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500조원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각각 57조2000억원, 37조6103억원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올린 바 있다. 일각에선 향후 3년 내 두 기업의 영업이익 합계가 1000조원에 육박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HBM 경쟁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모델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미래 반도체 경쟁은 단순 용량 확대가 아니라 '메모리 아키텍처 경쟁'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 메모리 경쟁은 단순 저장장치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동·연결·처리하느냐를 결정하는 '데이터 흐름 설계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가 단순 부품을 넘어 AI 시스템 효율과 전력 소비, 운영 비용까지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 포스트 HBM은 '메모리 아키텍처 시대'…한국 반도체의 새로운 시험대 차세대 HBM4E(7세대)와 초고성능 AI 메모리 경쟁은 물론, 데이터 처리 효율을 높이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연산 기능을 메모리에 결합한 프로세싱인메모리(PIM), 저전력 메모리 모듈 소캠2(SOCAMM2) 등 새로운 기술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CXL은 서버 내 메모리를 공유자원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용량을 유연하게 확장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PIM은 메모리와 프로세서 간 데이터 이동을 최소화해 '메모리 병목'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AI 메모리 기술로 주목받는다. 소캠2는 전력 효율을 높이고 발열 관리가 가능한 차세대 메모리 모듈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HBM에 이어 차세대 메모리 기술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경우, AI시대 반도체 경쟁력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과제도 적지 않다. 미국·대만·일본 등이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산업 육성 경쟁에 나서고 있고, 첨단 공정과 패키징 분야 인재 확보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력·용수·인허가 문제와 반도체 인재 부족 등이 장기적인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꼽힌다. AI시대 핵심산업으로 부상한 만큼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AI시대가 한국 반도체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메모리가 AI 인프라 핵심 부품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 기술력이 글로벌 기술 질서 재편 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반도체산업이 '메모리 강국'으로 성장했다면, AI시대에는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를 움직이는 핵심 '설계자'로 도약하고 있다. AI시대의 승부는 단순 연산 성능이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 흐름의 중심에 K-반도체가 서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제자리걸음’ 기후테크, 특별법 ‘승부수’…“대기업 품고 스타트업 깨운다” [창간기획]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산업으로 '기후테크' 산업이 떠오르면서 신속한 혁신이 가능한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주요업무 추진계획 중 하나로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가칭)' 제정을 제시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정부·공공기관·기업간 상시 소통창구인 '기후테크 혁신 연합'도 출범시켰다. 올해 하반기 제정을 목표로 하는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은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특별법 제정을 통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의 법적 기반을 확고히 마련하고, 각종 규제 샌드박스 및 금융 지원을 통해 기후테크 연구개발(R&D) 및 산업화를 집중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은 벤처·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중견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규모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기후·에너지 분야 특성상 기후테크가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이 협업관계를 구축해야 함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기후테크 스타트업, 관심·지원 비해 성장 '지지부진' 기후테크는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기술과 산업 전반을 뜻한다.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현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가 분류한 기후테크 분야는 크게 5가지로 △재생에너지·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을 다루는 '클린테크' △탄소포집·저장(CCUS) 등 탄소 저감 기술 중심의 '카본테크' △자원순환·업사이클링 분야의 '에코테크' △저탄소 식품 생산과 대체식품 기술을 포함한 '푸드테크' △기후 데이터·탄소 모니터링·기상정보 활용 산업인 '지오테크'가 이에 해당한다. 그동안 국내 기후테크 산업은 정책적 관심과 지원에 비해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지지부진했다. 이는 개별 스타트업에 대한 일회성 지원 위주의 육성 정책을 비롯해 국내 법체계 미비, 정보 및 투자 부족, 대기업·공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등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존 탄소감축 산업이 정부와 공기업·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이미 구축된 사업 관계 위주로 시장이 운영돼 왔고, 이로 인해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비상장 기업)은 2024년 1월 현재 총 54개로, 이 가운데 미국 기업이 25개, 중국 기업이 19개로 두 나라 비중이 80%를 넘는다. 나머지도 독일,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캐나다, 이스라엘 등 소수 국가에 국한돼 있다. 일례로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기후테크 스타트업 클라임웍스(Climeworks)는 2009년 창업 이래 누적 1조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한 유니콘 기업이면서 동시에 직접 공기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제거하는 탄소 감축 기술(DAC·직접공기포집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아직 공기중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이 대규모 상업성이나 경제성은 검증 중인 단계라 할 수 있지만, 공기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지하에 돌처럼 반영구적으로 매립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으로 꼽힌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테크 분야에서는 아직 유니콘 기업 없이 예비유니콘 기업만 존재하는 수준이다. 일례로 국내 폐기물 재활용 기술 스타트업 수퍼빈은 인공지능(AI) 선별기술이 탑재된 무인회수기를 통해 시민이 배출한 투명 페트(PET)병을 수거하고 분리 운송해 자체 공장에서 고품질 재활용 페트(r-PET) 재생원료를 만드는 기업으로, 2015년 설립돼 현재까지 누적 2000억원 가량의 투자유치에 성공한 국내 기후테크 분야 대표적 예비 유니콘 후보 기업이지만, 아직 유니콘 기업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테크 산업은 특정 기업과 기술에 편중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24년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테크 관련 특허의 절반 이상이 2차전지·전기차·재생에너지·정보통신기술 등 4개 기술 분야에 집중돼 있다. 반면, 화학·정유·철강 등 탄소 다배출산업의 탄소저감기술이나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등 핵심유망기술에서는 특허 실적이 부진했다. 더욱이 2차전지·전기차·재생에너지 등 주력 기술 분야에서도 대부분의 질적 특허평가지표가 10대 선도국(특허출원건수 상위국) 중 하위권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자생력이 부족한 상태다. 현재 많은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자생적인 매출보다는 정부의 보조금 및 탄소감축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정부의 기술개발 보조금 및 정책금융 의존도가 60%를 웃도는 반면, 세제 혜택이나 민간투자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 산업 전망 여전히 밝아…스타트업이 기술 혁신 중심 돼야 그러나 기후테크 산업의 전망은 여전히 밝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2024년 231억달러(약 31조3468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그린테크 및 지속가능성 시장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3.1%의 성장률(CAGR)을 기록해 2030년 796억5000만달러(약 108조180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시장 역시 기후테크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스타트업 대상 데이터베이스 제공업체 '딜룸(Dealroom)'에 따르면, 기후테크에 대한 글로벌 모험자본(VC) 투자 규모는 2015년 87억 달러(약 13조원)에서 2023년 498억 달러(약 75조원)로 4.7배 증가했다. 전 세계 450여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탄소중립 금융 연합체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맹(GFANZ)'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약 100조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후테크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빠르고 과감한 혁신이 가능한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기후대응 기술이 개발돼 왔지만 실제 상업화에 도달한 기술은 많지 않고 대표적 기술인 태양광이나 전기차 배터리 기술도 상용화까지 수십년이 걸렸는데 탄소중립 달성 목표시점인 2050년까지 남은 기간이 30년도 안되는 만큼 기후테크 기술개발과 상용화 속도가 지금까지의 속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추고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스타트업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용욱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비해 내부 자원은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 규모를 기반으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특히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육성은 기존 중소기업의 친환경 전환(GX)을 촉진할 기술·설비 공급기업의 성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후테크 스타트업 기구 '그린테크얼라이언스' 출범…“스타트업 목소리 모을 것" 전문가들은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서는 민간 투자 확대와 정부의 종합적 지원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투자·기술·제도 개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먼저 민간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기업의 '기후가치평가'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기후테크육성실 관계자는 “민간 기업과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지 판단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기후테크 기술이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공신력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가치평가는 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실제 탄소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지를 전문적이고 공신력 있게 평가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현재 투자 시장에서는 기술의 환경적 효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부족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후부가 추진하는 기후테크 육성 특별법이 주목된다. 현재 추진 중인 특별법에는 기후가치평가 체계 구축과 기술·금융·규제 지원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관련 법과 정책이 본격 시행될 경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 투자 확대와 함께 산업 전반의 탄소중립 전환 역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분산돼 있던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기구가 출범한 것도 고무적이다. 국내 27개 기후테크 스타트업으로 구성된 '그린테크얼라이언스'는 지난 4월 기후부 인가를 받고 공식 출범했다. 폐기물 수거서비스 '업박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리코'의 김근호 대표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린테크얼라이언스는 앞으로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와 대기업 등에 전달하는 한편 기후테크 산업이 직면한 제도적·기술적 장벽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 제언 활동을 할 것임을 다짐했다. 김근호 회장은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이 가장 바라는 과제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라며 “기후·환경 분야에는 대기업·공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만큼 스타트업들의 결집된 목소리를 전달해 대기업·공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철훈 기자, 김혜민·김유진 인턴기자 kch0054@ekn.kr

소모적 보조금 줄이고 선진국 ‘인수창업’ 벤치마킹 해야 [창간기획]

해외 주요 선진국은 중소기업 인수창업을 활성화하고 은퇴를 앞둔 고령 창업자의 '흑자 폐업'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를 활용하고 있을까. 정부 주도의 강력한 지원책으로 가시적인 성공을 거둔 대표적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8년 '경영승계원활화법' 제정 이후 전국 47개 광역자치단체에 '사업승계·인수지원센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자산과 기술력을 갖추고도 후계자가 없던 수많은 '흑자 노포'들을 젊은 창업가들과 연결하는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니가타현의 사케 양조회사 '이마요츠카사 주조회사'(今代司酒造株式会社)가 IT 벤처 출신 창업가에게 인수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장인의 감에 의존하던 사케 발효 공정에 'IoT 온도 센서' 데이터를 도입하고 글로벌 직구망을 구축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부활하는 등 성공적인 인수창업 스토리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도 성공의 기폭제가 됐다. 제3자 인수를 추진하는 창업자가 피인수 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취득 금액의 최대 100%를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 초기 부담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또한 M&A 실사 비용(최대 600만 엔)과 인수 후 디지털전환(DX) 설비투자 보조금(최대 800만 엔)을 직접 지원하며, 위험을 낮춘 청년들이 기존 기업의 무형 신용과 인허가권을 레버리지(Leverage)해 신속하게 기업가치(Value-up)를 끌어올리는 상생 모델을 완성했다. 즉, 청년이 낡은 기업을 살 때 발생하는 금액을 '지출 비용'으로 전액 인정해, 첫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 원리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가치를 알아보는 실사 비용은 물론, 인수 후 공장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을 구축하는 비용까지 국가에서 현금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자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기존 기업이 가진 '단골'과 '은행 신용'을 발판 삼아 청년 창업가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 주는 셈이다. 한편, 미국은 민간 금융 기법을 결합한 '서치펀드(Search Fund)' 모델로 성공을 거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명문 경영대학원(MBA) 출신의 젊은 인재(서처, 인수희망자)가 우량 기업을 발굴하겠다고 나서면 투자자들이 1단계로 활동비를 지원하고, 실제 중소기업을 찾아내면 2단계로 본격적인 인수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즉, 서치펀드는 '돈 없는 청년 인재'가 투자자의 자금과 정부 보증을 지렛대 삼아 검증된 알짜 기업을 인수해 CEO로 거듭나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가업 승계가 막힌 낙후된 에그카턴스(달걀 포장재) 제조 중소기업을 인수해 활성화한 사라 무어(Sarah Moore)가 있다. 무일푼의 하버드대생이던 사라 무어는 서치펀드를 통해 중소기업 '에그카턴스(EggCartons)'를 인수한 취임 직후부터 아날로그 공정을 디지털화하고 B2B 유통채널을 변화해 수십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가로 거듭났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들이 입증한 중소기업 인수창업의 성공 방식은 최고경영자 고령화와 지방 뿌리산업 공동화 위기를 동시에 맞이한 한국에 방향성을 제시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부실기업이나 폐업 자영업자에게 단발성 보조금을 쥐여주는 소모적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수한 산업 유산이 청년들의 혁신적인 역량과 결합해 국가적 자산으로 영속될 수 있도록, 일본의 제도적 인센티브와 미국의 선진 인수금융 등을 참고해 '한국형 인수창업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철훈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kch0054@ekn.kr

“일감 넘치는데 문 닫습니다”…‘흑자 폐업’ 중소기업, ‘인수창업’이 살린다 [창간기획]

“돈이 없어서 폐업하는 거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죠. 일감은 넘치고 통장엔 돈이 들어오는데, 가업을 넘겨받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30년 넘게 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해 온 A대표(68)는 최근 폐업 고민에 밤잠을 설친다. 매년 수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소위 '알짜 기업'임에도 말이다. 자녀는 외국에서 전문직으로 자리 잡아 가업을 승계받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A대표의 고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경영자의 고령화로 승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해당 기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적자 도산' 형태가 아닌 '흑자 폐업'이라는 점이다. ◇ 후계자 없어 폐업 위기 몰린 중소 제조기업 5만6천곳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2014년 52.2세에서 2024년 57.8세로 증가했다. 10년 사이 평균 연령이 5세 이상 높아진 것으로, 현재 추세라면 조만간 평균 연령 60세를 넘어설 전망이다. 2025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인수합병 및 승계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중소기업 중 28.6%가 후계자가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에 비해 승계 준비는 더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친족승계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저출생과 가치관 변화 등으로 가업 승계를 이어갈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CEO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약 236만개사(2022년 기준)로, 이 가운데 28.6%인 67만 5000개사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 지속적인 경영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2024년 11월 기준 후계자 부재로 지속 경영이 불투명한 제조 중소기업은 5만6000개에 달했다. 특히 폐업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 중 83%인 약 4만6000여 개사는 서울 경기 외 지방에 분포돼 있다. 창업 희망자 등에 의한 인수창업이 좌절돼 지방 기업들이 무더기 폐업할 경우, 향후 10년간 총 794조원에 달하는 매출이 감소해 지역 GDP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기업 몇 곳이 문을 닫는 수준이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 인수창업, 중소기업 승계·청년창업 활성화·지역경제활성화 1석 3조 이 같은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중소기업 인수창업(ETA·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이다. 제3자가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이어가는 M&A 방식의 기업승계로, 기존 기업을 유지한 채 경영권만 넘기는 방식인 만큼, 축적된 기술력과 숙련 인력, 거래망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소기업의 폐업을 막으면서도 새로운 창업을 촉진할 수 있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중소기업 인수창업은 신규 창업보다 생존율이 2배 가까이 높다는 점도 인수창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2026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일반 창업기업의 5년간 생존율은 약 33.8~36.4%에 불과하다. 반면 기반이 잡힌 기존 사업을 승계받아 시작하는 인수창업의 5년 기준 생존율은 73.3% 이상으로 신규 창업 대비 2배가 넘는 안정성을 보였다. 인수창업은 폐업으로 인한 대거 실직 등 일자리 문제도 방지할 수 있다. 정부 역시 M&A를 활용한 기업승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특히 기존 친족 중심의 승계 정책에서 벗어나 제3자 승계까지 정책 범위를 확대하려는 점이 핵심으로 꼽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업승계 정책 범주를 기존 친족승계 중심에서 M&A를 통한 제3자 승계까지 확장해 두 가지 승계 유형을 모두 포괄하는 법적 체계를 마련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기업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승계 M&A 중개 플랫폼을 구축·운영하고, 상법상 M&A 주요 절차 요건을 완화하는 특례를 신설해 보다 기업승계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국회 차원의 입법 논의도 활발하다. 지난해 12월 김원이 의원이 '인수·합병 등을 통한 중소기업 승계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데 이어, 김동아 의원이 '중소기업 기업승계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을, 이철규 의원이 '기업경영의 계속성 강화를 위한 기업승계 지원 특별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들 3개 특별법안은 공통적으로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고용 안정성을 높여 국민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승계 촉진 기본계획의 5년 단위 수립 △조세 감면 및 상법상 합병 절차 특례 마련 △기업승계 중개업자의 등록·관리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김원이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법안이 상정된 상태이며 관련 토론회도 한 차례 진행했다"며 “발의는 완료됐지만 현재 6.3 지방선거로 인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일정은 없는 상황이다. 입법 시점은 올해 하반기로 예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철훈 기자, 김유진·김혜민 인턴기자 kch0054@ekn.kr

“민주 압승 vs 국힘 반란”…전문가 6인이 본 6·3 ‘진짜 판세’ [창간기획]

6·3 지방선거를 2주 앞두고 여야 격전지 판세 예측이 엇갈리고 있다. 본지가 여론조사 전문가 6명에게 현재 판세를 물은 결과, 민주당 우세 9~14곳·국민의힘 우세 2~7곳을 점쳤다. 대진표 완성 직후와 비교해 접전 지역이 늘었다는 데는 의견이 모였지만 구도 전망은 엇갈렸다. 서울·부산·대구를 공통 경합지로 꼽았으며, TK가 이번 선거 최대 격전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직 본격적으로 불붙지 않은 '거여(巨與) 견제론'과 '보수 단일화' 여부가 남은 최대 변수로 지목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 우세 9곳, 국민의힘 우세 7곳으로 가장 박빙의 구도를 전망했다. 그는 “서쪽은 민주당 우세가 확연하고,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강원·서울까지 국민의힘이 우세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 여론조사가 샤이 보수를 캐치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진표 완성 직후와 비교해 “그때만 해도 경북만 우세했는데 지금은 접전 지역이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부울경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앞서야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데 지금은 그 범위 안"이라며 국민의힘 근소 우세를 점쳤고, 강원도도 “7%포인트 앞서는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그 정도로는 민주당이 이기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대구·부산·서울이 동시에 접전이라는 건 성립이 안 된다"며 “민주당이 영남에 서울까지 내주면 전체에서 앞서도 타격"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우세 12곳, 국민의힘 우세 4곳을 최소 가능 구도로 봤다. 그는 “15대1은 아니다"라며 “보수 결집이 일어난 건 사실이고, 투표 의향이 없었던 보수들이 투표를 생각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서울에 대해서는 “여당 다수 당선과 야당 다수 당선 응답이 40대 40으로 같아졌다"며 “여당의 견제는 필요하지만 야당으로서의 국민의힘은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강원은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호남에 대해서는 “광주 서구·북구청장이 무투표 당선된 것 하나만 봐도 설명이 된다"며 별도 분석을 생략했다. 투표율과 관련해서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평균 투표율 55.5%를 넘긴 세 번 중 두 번은 민주당이, 한 번은 보수가 이겼다"며 “전체 투표율보다 4050 세대별 투표율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민주당 우세 14곳, 국민의힘 우세 2곳으로 봤다. 경상도 5곳(부산·울산·경남·경북·대구) 가운데 민주당이 2곳을 가져오면 선전, 3곳이면 대박, 1곳이면 기대 미달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는 2곳 정도 가능하고 잘하면 3곳도 가능하다"며 “부산과 경남은 아직 민주당이 유리한 국면"이라고 했다. 대구에 대해서는 “김부겸 당선 가능성은 딱 50%"라며 “숨어 있는 표까지 다 합쳤을 때 그렇다"고 밝혔다. 부산시장 선거와 북구갑 보궐선거의 연동성을 강조하며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순간 부산 기류가 바뀐다"고 했다. 민주당의 TK 공략 전략에 대해서는 “부울경에서 선전하지 않고 TK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며 “TK 공략은 부울경을 자극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평가했다. 서요한 여론조사공정 대표는 민주당 우세 7곳, 국민의힘 우세 2곳, 경합 7곳으로 분류했다. 민주당 우세로 광주·전북·전남·경기·제주·인천·대전을, 국민의힘 우세로 대구·경북을 꼽았다. 서울·부산·울산·경남·충남·충북·강원을 경합으로 봤다. 서울에 대해서는 “강남3구와 한강벨트 자산가 계층,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30 남성층을 중심으로 보수세가 공고해지고 있다"며 “오세훈 후보의 4선 타이틀과 안정적인 시정 관리 능력이 여당 지지율 정체 속에서도 중도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천에 대해서는 “행정체제 개편 이슈와 개혁신당 후보 완주 여부에 따라 승패가 바뀔 수 있는 수도권 최대 격전지"라고 했다. TK에 대해서는 “보수 결집이 80% 이상의 강도로 작동할 것"이라며 “막판에는 전통 보수층이 대거 투표소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역전 시나리오로는 “서울·강원·충남을 수성하고 영남권을 완벽하게 다지는 구도"를 제시했다. 투표율에 대해서는 “50%대 이하로 떨어지면 60대 이상 노년층 비중이 높아져 보수에 다소 유리하다"며 “높을수록 저연령층과 4050이 늘어 여당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체 유권자의 15~20%를 차지하는 중도·부동층이 투표장에 가느냐,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가 모든 격전지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은 민주당 우세 13곳, 국민의힘 우세 3곳으로 전망하면서도 “TK가 이번 선거의 최대 경합 지역"이라며 “대구 여론조사가 막상 막하인데 변화의 조짐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TK에서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5~50% 근방으로 나오는데 이건 이재명 개인 효과이지 민주당 지지율이 아니다"라며 “김부겸 표와 대통령 지지율의 갭이 15~20%포인트 나오는 건 이재명 홈랜드(고향) 효과가 처음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부산은 “전재수가 이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며 “해수부 이전 등 약속을 평가하는 이익 투표가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경남은 “무응답 제외 시 3~4%포인트 차이로 사실상 박빙"이라고 추정했다. 경기·인천은 “끝난 것"이라고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경북을 국민의힘 우세, 대구를 경합으로 분류하며 민주당 우세 14~15곳, 국민의힘 우세 1~2곳을 전망했다. 그는 “대구 경북을 제외하면 민주당이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대구가 민주당에 유리하면 15대1, 불리하면 14대2 구도"라고 했다. 그는 “대구가 제일 예측하기 힘든 지역"이라면서도 “김부겸 후보가 대단히 지혜로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얘기 없이 지역 일꾼·경제 활성화만 내세우는 전략이 보수 텃밭에서 파고들 여지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그는 “TK에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었고, 한일 정상회담을 안동에서 한 것도 TK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줬다"며 “당의 이름이 아니라 개인기와 이재명 정부 두 가지로 하는 선거 운동"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대해서는 “해수부·HMM 이전 이슈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기 때문에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불붙지 않은 거여 견제론이 선거 막판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엄경영 소장은 “장동혁 심판론이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고,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유권자들이 이재명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며 “거여 견제론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율 교수도 “지금의 선거 구도는 내란 세력 청산인데 이게 흔들리고 있다"며 “서울에서는 여당·야당 다수 당선 응답이 40대 40으로 같아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견제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트리거로는 민주당 지도부의 '오만 프레임'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최진봉 교수는 “국민의힘 자체적으로는 결집 모멘텀을 만들 수 없다"며 “민주당이 실수를 해야 결집이 일어나는데, 지금 대통령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제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가 리스크"라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선거 직전인 6월 1일로 당겨 잡은 것도, 안동 한일 정상회담도 보수 결집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요한 대표는 “민주당이 오만한 태도를 보이거나 승리를 장담하는 순간 중도층은 돌아선다"며 “삼성전자 파업이 실현될 경우 코스피 하락과 노란봉투법 입법 책임으로 여당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화 여부도 남은 변수로 거론됐다. 정한울 소장은 “남아 있는 큰 변수는 단일화"라며 “북구갑·평택 등 보궐선거에서 단일화가 이뤄지고 보수 혁신의 모습이 보이면 중도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박서현 인턴기자

‘사람-AI 초연결’ 유·무인 무기체계, 미래전장 지배한다 [창간기획]

전례 없는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근간마저 뒤흔들고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에 있어 '병력 절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닌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다. 대규모 병력 집약적인 과거의 전력 유지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가운데 국방부와 국내 방위산업계는 이 치명적인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인 돌파구로 '인공지능(AI) 기반의 무인화'와 '유·무인 복합 체계(MUM-T, Manned-Unmanned Teaming)' 구축에 전사적인 사활을 걸고 있다. MUM-T는 지휘관이나 조종사가 직접 탑승한 유인 무기체계와 고도화된 AI 두뇌를 장착한 다수의 무인 무기체계가 하나의 거대한 초연결 네트워크로 묶여 합동 작전을 수행하는 미래 전장의 핵심 전술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 분쟁 등 현대전에서 무인기의 비대칭적 파괴력이 여실히 입증된 가운데, MUM-T는 아군의 인명 손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작전 반경과 정밀 타격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압도적인 전력, 이른바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AI 자주 국방' 선봉 한화그룹, 지상 전력 무인화부터 하늘의 정밀 타격까지 한화그룹은 'AI 자주 국방'이라는 확고한 비전 아래 전장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무인화 체계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며 방산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지상 전력의 중추를 맡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래 지상전의 핵심이 될 다목적 무인 지상 차량(UGV)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오는 2028년까지 험준한 지형에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한 차륜형 및 궤도형 UGV의 자체 개발을 완료한다는 구체적인 타임 라인을 확정했다. 지뢰 탐지·험지 수색·전방 정찰·보급품 수송·근접 전투 지원까지 보병을 대신해 수행할 첨단 UGV를 앞세워 급격히 팽창하는 글로벌 무인 지상 전력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각오다. 화력 체계의 고도화와 지능화도 괄목할 만하다. K-방산의 효자 수출 품목인 '천무' 다연장 로켓 발사대에서 직접 운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인 '배회형 정밀 유도 무기(L-PGW)'는 한화가 자랑하는 첨단 자폭 드론 기술의 정점이다. 발사 후 적진 상공을 유유히 배회하다가 탑재된 AI가 스스로 표적의 가치를 분석하고 식별해 정밀 타격하는 지능형 무기로, 적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나 방공망을 은밀하게 붕괴시키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아울러 한화는 글로벌 공중 군용 무인기 시장의 최강자로 꼽히는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GA-ASI)와 긴밀히 손잡고 초격차 기술 확보에 나섰다. 다목적 무인기 '그레이 이글 STOL(단거리 이착륙기)' 개발에 3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이 무인기는 긴 활주로가 없는 상륙함 함정 갑판이나 열악한 야전의 흙길 등 척박하고 제한된 환경에서도 원활한 이착륙과 운용이 가능해, 향후 해상 및 상륙 작전의 항공 감시·정찰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핵심 전략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LIG D&A, 통신 단절의 공포를 넘다…극지·해상 넘나드는 자율 작전 정밀 유도 무기와 방산 전자 분야의 절대 강자인 LIG D&A(구 LIG넥스원)는 통신 네트워크의 지원 없이도 독자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완전 자율 작전'과 해양 무인 체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 전장에서는 강력한 전자전(EW)이나 전파 방해(재밍, Jamming)로 인해 지상 통제소와의 통신이 두절되거나 GPS가 먹통이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LIG D&A는 이 같은 극한의 전장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세계적인 AI 방산 혁신기업 '쉴드 AI(Shield 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양사는 외부 클라우드 시스템이나 위성 연결 없이도 무인기에 탑재된 엣지(Edge) 컴퓨팅을 통해 스스로 지형과 적을 인지하고 다수의 기체가 군집 자율 작전을 이어갈 수 있는 초고도화 '유무인 복합 솔루션'과 '드론 탑재형 소형 유도탄 기술'을 완성해 나가며 기술적 초격차를 벌리고 있다. 해양 플랫폼의 글로벌 영토 확장도 돋보인다. 일교차가 큰 사막의 혹독한 기후나 거친 파도가 치는 극한의 해상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설계된 모듈형 무인 수상정 '해검-X(Sea Sword-X)'와 소형 정찰·타격 복합형 드론을 전면에 내세워 중동 방산 시장의 빗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 임무에 따라 무장과 센서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해검-X는 해안 경계를 무인화하려는 중동 국가들의 니즈를 관통했다. 특히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해군과 첨단 함대공 유도 무기 '해궁'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 쾌거를 거뒀다. ◇KAI, '공중 MUM-T'와 온디바이스 AI의 융합 대한민국 항공우주 산업의 요람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래 항공우주력의 핵심 척도가 될 공중 MUM-T의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가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KAI가 그리는 핵심 마스터 플랜은 독자 개발한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을 지휘 통제기로 삼고, 다수의 국산 무인 편대기(KUS-FS)를 마치 수족처럼 부리며 연동하는 최고 난도의 '로열 윙맨(Loyal Wingman)' 체계를 실증하는 것이다. 유인기 조종사는 후방의 안전한 공역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무인기들이 적의 촘촘한 방공망 깊숙이 선제적으로 뚫고 들어가 정찰·전자전 교란·미끼 역할·정밀 타격 임무를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유인기의 생존성을 극대화하고 미래 6세대 전투 체계로 나아가는 글로벌 공중 무인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KAI의 기술적 성취는 무인기 두뇌의 완전한 자립화다. KAI는 적의 강력한 통신 재밍 상황 속에서도 중앙 서버의 명령 없이 무인기 내부에 탑재된 AI 칩 자체가 독자적으로 전장 상황을 실시간 추론하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방산용 온디바이스(On-Device) AI 반도체'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국방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의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혁명적 성과다. 최근에는 확장성을 갖춘 다목적 무인기(AAP)의 실물을 대중 앞에 전격 공개해 '공중 전력의 완전 무인화'를 향한 KAI의 단계적 기술 로드맵이 순항 중임을 증명했다. ◇대한항공, 스텔스 무인기 날개 달고 글로벌 공급망 정조준 우리에게 민간 상용 항공 여객 운송의 1인자로 친숙한 대한항공은 사실 1970년대부터 군용기 창정비를 시작으로 국내 최다 무인기 개발 포트폴리오를 보유해 온 항공 방위산업의 숨은 거인이다. 회사는 무인화 체계로의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에 발맞춰 다가오는 2026년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수주액 1조7000억 원을 달성한다는 도전적인 비전을 세우고 전사적인 혁신과 역량 결집에 나섰다. 대한항공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미래 승부수를 띄운 분야는 단연 차세대 '스텔스 무인기(UCAV)' 기술이다. 수십 년간 첨단 항공기 동체 제작과 정비(MRO) 사업을 통해 축적한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레이더 반사 면적(RCS)을 극소화해 적의 촘촘한 방공망을 은밀하게 뚫고 들어가 핵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 무인기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전술적 목적에 부합하는 차세대 다목적 무인기 기술 개발을 동시에 병행하며 장기적인 항공 방산 사업의 파이를 대폭 키우고 있다. 시선은 이미 좁은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방산 영토 확장으로 향해 있다. 대한항공은 세계 국방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딥테크 유니콘 기업인 미국의 '안두릴(Anduril)' 등 주요 방산 리딩 기업들과 긴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를 교두보 삼아 혁신적인 첨단 무인기의 공동 연구 및 대량 양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진입 장벽이 가장 높기로 소문난 미군·선진국 중심의 글로벌 방위 산업 핵심 공급망의 일원으로 본격 합류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로템, 스마트 방패와 창으로 K-전차 진화 선도 수십 년간 K-1와 K-2 전차를 생산하며 대한민국 육군의 기동을 책임져 온 지상 무기체계의 명가 현대로템은 기존의 튼튼한 재래식 유인 플랫폼에 최첨단 IT 생존 기술과 AI 자율 주행을 덧입히는 '지상 플랫폼 지능화' 역량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열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에서 불과 수백만 원짜리 FPV(1인칭 시점) 자폭 드론과 값싼 대전차 미사일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최신 전차를 파괴하는 가장 치명적인 천적으로 떠오르자, 현대로템은 전차의 '생존성 향상'에 초점을 맞춘 진화형 모델을 즉각 선보였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군 현대화를 서두르고 있는 폴란드를 비롯해 안보 위기감이 고조된 유럽 시장의 고도화된 수요에 맞춰 기획된 'K-2PL' 모델이 그 주인공이다. 이 전차는 다가오는 적의 발사체를 레이더로 탐지해 물리적으로 직접 요격하는 능동 방호 장치(APS)는 물론, 다가오는 소형 자폭 드론의 조종 주파수를 교란해 무력화시키고 추락시키는 첨단 전파 방해 장치인 '드론 재머' 등 최신 소프트킬·하드킬 방어 체계를 촘촘하게 적용해 K-2 전차의 생존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이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기동 및 섀시 기술력을 총동원해 보병을 대신해 화력 지원·위험 지역 수색·물자 보급·부상자 후송 등을 도맡는 다목적 무인 차량(UGV) 개발에 성공했다. 현대로템은 실전 배치를 통해 검증된 차세대 지상 무인화 플랫폼을 앞세워 전통적인 전차 수출국을 넘어 전 세계 무인 지상 차량 시장의 핵심 수출 기지로 거듭나기 위한 글로벌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반도체만 먹는 줄 알았더니”…AI가 삼키는 리튬·구리 전쟁 [창간기획]

인공지능(AI) 열풍이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배터리와 핵심 광물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곤두박질쳤던 리튬 가격도 최근 1년 새 3배 가까이 급등했다. 전기차가 주도하던 리튬 시장에 AI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핵심 수요처로 떠오르면서 원자재 확보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4일 블룸버그 산하 에너지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새로 설치된 ESS 규모는 전년 대비 48% 증가한 112기가와트(GW)를 기록했다.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 역시 지난해 글로벌 ESS 신규 설치량이 약 50% 증가한 315기가와트시(GWh)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 “4년 만에 10배"…폭발하는 ESS 시장 주목할 점은 ESS 시장의 성장 속도다. BNEF는 “연간 신규 설치량 기준 글로벌 ESS 시장이 10GW에서 100GW를 넘는 수준까지 확대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년"이라며 “태양광이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데 약 8년, 풍력이 약 15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용 ESS가 배터리의 핵심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다. BMI에 따르면 지난해 AI 데이터센터용 ESS 수요 증가율은 51%로, 전기차 관련 수요 증가율(26%)을 크게 웃돌았다. 아직까지는 전기차가 전체 배터리 수요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지만 AI 데이터센터가 배터리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전통 자동차 업체인 포드 자동차가 하이퍼스케일러와 ESS 공급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는 지난 13일 하루에만 13.2% 급등해 2020년 3월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기차 수요 부진 속에서 ESS 사업 확대 기대감이 주가 상승 재료로 부각됐다는 점에서 AI 시대 ESS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AI 붐으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대규모 ESS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탄소전문 매체 카본크레딧은 미국에서 ESS 용량이 2030년까지 400%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BNEF 역시 향후 10년간 ESS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BNEF는 “배터리 가격 하락,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데이터센터 및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 수요처 확대가 모두 맞물리면서 2036년까지 연간 신규 설치 규모가 300GW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레스던스 리서치는 데이터센터용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규모가 2024년 52억달러에서 2034년 177억달러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 “AI 데이터센터가가 게임 체인저"…다시 뛰는 리튬 가격 이처럼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를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자 핵심 원료인 리튬 수요도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BMI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용 ESS와 관련한 리튬 수요는 2025년 약 1만5000t(톤) 수준에서 2035년 약 7만t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BMI의 애덤 웹 배터리 원자재 총괄은 가격 경쟁력과 고정형 저장장치 적합성을 이유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ESS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며 “향후 10년 동안 이 분야에서 원자재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UBS 데이터를 인용해 ESS용 리튬 수요가 지난해 71% 급증한 데 이어 올해도 5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중국 컨설팅업체 푸바오의 진이 수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ESS 부문의 리튬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치를 뛰어넘고 있다"며 “ESS가 리튬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2022년 이후 이어졌던 리튬 공급 과잉 국면이 점차 해소되며 올해부터 공급 부족으로 전환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리서치업체 SC인사이츠의 앤디 레이랜드 대표는 “리튬 시장이 상당히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는 수요가 24%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19% 늘어나는 데 그칠 수 있다. 향후 2~3년 동안 시장 수급이 더 빡빡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UBS는 올해 탄산리튬환산(LCE) 기준으로 각각 8만 톤과 2만2000톤의 리튬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리튬 가격도 최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최근 t당 20만500위안을 기록했다. 리튬 가격이 20만위안선을 넘어선 것은 2023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리튬 가격은 글로벌 탄소중립 열풍과 전기차 시장 급성장 영향으로 2021년 하반기부터 급등세를 보이며 2022년 11월 59만7500위안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지난해 6월에는 6만위안선까지 추락했다. 3년에 걸쳐 가격이 10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그러나 작년 4분기부터 가격이 꿈틀거리기 시작해 지난해 12월에는 2년 6개월만에 처음으로 10만위안선을 회복했고, 올해 들어서만 50% 가량 상승했다. 리튬 관련주들도 덩달아 고공행진 중이다. 세계 최대 리튬기업인 앨버말 주가는 1년전 60달러선을 하회했지만 지난 11일 210달러 코앞까지 치솟았다. 특히 앨버말의 1분기 순매출은 전년 동년 동기 대비 33% 증가한 14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조정 EBITDA도 6억6380만달러로 예상치인 4억6820만달러를 크게 넘어섰고,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대규모 ESS 설치 확대와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리튬 가격 상승세를 지지해왔고, 앨버말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미 국채금리 급등 등 영향으로 앨버말 주가가 171달러대로 내려왔지만 전문가들은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RBC 캐피탈은 최근 앨버말 목표 주가도 기존 245달러에서 253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투자전문 매체 트레이딩뷰는 애널리스트들 19명의 의견을 취합해 앨버말의 12개월 목표주가 평균치가 기존 219.1달러에서 223달러로 상향됐다고 전했다. ◇ AI 데이터센터가 바꾸는 구리 시장 AI 인프라 확대는 리튬뿐만 아니라 구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현물 가격은 지난 13일 톤당 1만4097달러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씨티그룹은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힘입어 구리 가격이 연말까지 t당 1만5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BMI의 안야 허드 애널리스트는 “구리는 데이터센터 건설, 전력망 인프라, 냉각 시스템, 반도체 제조 전반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데이터센터는 고밀도 컴퓨팅 구조와 첨단 냉각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시설보다 더 많은 구리가 요구된다.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의 1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5만t의 구리가 사용된다. BMI는 데이터센터 관련 구리 수요가 올해 약 50만t에 달하고, 2040년에는 100만t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S&P 글로벌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 확산으로 2040년까지 글로벌 구리 수요가 최대 50%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원전 vs 재생에너지…여야 에너지 공약 ‘극과 극’ [창간기획]

인공지능(AI) 산업 확산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가 6·3 지방선거의 핵심 정책 쟁점으로 떠올랐다. 더 이상 환경 의제에 머물지 않고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 전략의 문제로 부상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양당의 10대 정책을 보면 시각차는 뚜렷하다. 더불어민주당은 RE100 대응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앞세워 산업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인 반면, 국민의힘은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전면에 내세웠다. 10대 공약 가운데 별도의 'RE100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제시하며 국민의힘보다 에너지 의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인 이행 방법도 18개로 세분화했다. 민주당은 RE100 대응을 산업 경쟁력과 직접 연결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요하는 '새로운 무역 장벽'이 세워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곧 수출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논리다. 핵심 사업은 'AI 기반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이다. 민주당은 2030년까지 서해안을 중심으로 초고압 송전망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해안에서 생산한 풍력과 태양광 전력을 수도권과 산업단지로 보내는 일종의 '전기 고속도로' 구상이다. 이를 통해 AI 기반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하고, 서해안에 재생에너지 산업벨트를 조성해 반도체·AI·데이터센터 등 첨단기업 유치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단위 공약으로는 에너지 특구와 RE100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지산지소' 전력시스템 구축을 제시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 산업단지와 수출기업이 직접 활용하도록 하고, 분산에너지 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전력 직접거래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주민 체감형 공약으로는 '햇빛소득마을'이 포함됐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공공부지 등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하고, 발전 수익을 마을 복지나 햇빛연금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영농형 태양광과 농어촌 RE100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의 에너지 공약은 이재명 정부의 국가사업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하다. 에너지고속도로, 지산지소 전력시스템, 햇빛소득마을 모두 정부가 추진 중인 역점사업과 맞물려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지방선거 유세에서 “일 잘하는 지방정부를 세워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며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을 지역에서 실행할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에너지 공약은 '원전 생태계 복원과 확장'으로 요약된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원전을 안정적인 기저전원으로 활용해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을 육성하고, 현재 건설 중인 2기를 포함해 총 5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산업용 전기요금과 전력산업기반기금 인하도 주요 공약에 담겼다. 에너지를 기업 비용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의 핵심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같은 기조는 앞서 지난 4월 24일에도 제시됐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시 “지금 대한민국은 AI 반도체와 전기화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전례 없이 급증하는 전기 시대"라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치우친 채 안정적 전력 공급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 후보들의 공약도 중앙당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철우 국민의힘 경북도지사 후보는 울진을 원전 기반 미래산업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 후보는 “울진 원전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라며 “울진 수소 국가산단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후보는 창원을 중심으로 한 중부권에 SMR 국산화 기술 개발과 제작·검사·인증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오지성 군산김제부안갑 국회의원 후보도 새만금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SMR 건설을 약속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에너지 공약을 별도 항목으로 내세우기보다 2호 공약인 '규제철폐와 신산업성장을 통한 경제대도약'의 세부 과제로 담았다. 에너지를 독립 의제가 아닌 산업 경쟁력 강화와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양당 모두 에너지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해법은 정반대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해 RE100 대응과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고, 국민의힘은 원전 확대를 통해 에너지 안보와 산업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RE100 대응이 늦어질 경우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지역 산업단지와 직접 연결해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재생에너지 중심 구상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은 본지에 “AI·반도체 산업 확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려면 원전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며 “중국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원전이 다시 부상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나 민주당 공약처럼 재생에너지로 그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현 기자 knh@ekn.kr

K-조선, ‘무탄소 항해’로 글로벌 해상 룰 바꾼다 [창간기획]

검은 매연을 뿜어내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화석연료 선박의 시대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저물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국제해운 탄소 순배출 제로를 선언한 이후 글로벌 해운업계에 불어닥친 탈탄소화 규제 파고는 이제 선택이 아닌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절대적인 생존 조건이 됐다.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는 오랜 기간 뼈를 깎는 기술 개발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 조선 산업에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줬다. 기존의 친환경 전환기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액화 천연 가스(LNG)를 넘어 이제 바다의 패권은 연소 과정에서 온실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암모니아'와 '수소'를 동력으로 삼는 궁극의 '무탄소 선박' 기술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HD현대, 세계 최초 암모니아 추진선 건조·'지능형 선박' 생태계 완성 미래 무탄소 선박의 핵심이자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암모니아 추진선 분야에서 HD현대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다. HD현대는 올해 4월, 대한민국 조선업의 심장인 울산 조선소에서 세계 최초로 이중 연료(DF) 엔진 기반의 암모니아 추진 가스 운반선 2척을 건조해내며 글로벌 조선 역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다. 암모니아(NH3)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궁극의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지만 맹독성과 금속을 부식시키는 성질 때문에 이를 견디는 엔진과 정밀한 연료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극도의 고난도 선박 공학 기술을 요한다. HD현대는 오랜 연구 끝에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기존 화석 연료와 친환경 암모니아를 혼용할 수 있는 DF 엔진 선박의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글로벌 선주들에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탄소 중립 솔루션을 제시했다. 하드웨어의 눈부신 진화는 첨단 소프트웨어의 혁신과 만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HD현대는 자사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인 '아비커스(Avikus)'를 통해 선박 자율 운항 형식 승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인공지능(AI)과 첨단 센서가 해상의 △기상 상태 △조류 △파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스스로 최적의 경제 항로를 계산해 내는 기술이다. 값비싼 친환경 연료의 소모를 최소화해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전체 해양 사고의 80%를 차지하는 인적 과실을 차단해 운항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다. HD현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지능형 선박' 생태계를 선점하며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벌리고 있다. ◇한화오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과 신소재 혁신 한화그룹 품에 안긴 이후 방산·에너지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친환경 해양 에너지 선도 기업'으로 성공적인 환골탈태를 이룬 한화오션은 다가올 글로벌 암모니아 경제 시대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수소 경제로 빠르게 전환함에 따라 수소의 가장 효율적인 운반체 역할을 하는 암모니아의 해상 물동량은 향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글로벌 메가 트렌드를 정조준해 한 번에 막대한 양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15만 CBM(입방미터)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개발에 본격 착수하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업과 더불어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선박 설계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부순 한화오션만의 파격적인 혁신 설계도 전 세계 선박 공학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미에 위치하던 선원들의 거주구와 조타실 등을 선수 방향으로 이동 배치한 것이다. 공기 역학적 설계는 항해 중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동시에 독성 가스인 암모니아 화물창과 선원들의 생활 공간을 물리적으로 멀찌감치 분리함으로써 승조원의 안전성을 극대화하고 추가적인 화물 적재 공간까지 확보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뒀다. 또한 극저온의 액화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싣고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연료 탱크·화물창에는 '고망간강(High Manganese Steel)' 소재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했다. 고망간강은 기존에 쓰이던 값비싼 니켈 합금강 등과 비교해 원가 경쟁력이 우수하면서도 극저온 환경에서 탁월한 강도와 인성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값비싼 친환경 선박의 건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무탄소 선박 대중화 시기를 크게 앞당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중공업, 수소 연료 전지와 크래킹 결합…밸류 체인의 확장 삼성중공업은 무탄소 에너지의 최종 진화형으로 불리는 '수소 연료 전지' 추진 선박이라는 강력한 카드로 궁극의 친환경 해양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선급(BV)으로부터 '암모니아 기반 수소 연료전지 추진 원유 운반선'의 기본 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이는 그동안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 의존도가 높았던 선박용 핵심 친환경 장비와 제어 시스템의 국산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쾌거로 평가받는다. 삼성중공업이 제시한 혁신적인 무탄소 선박 솔루션의 핵심 기술은 바로 '크래킹(분해)'이다. 영하 253도의 극한의 극저온 보관이 필요한 액화수소는 선박에 싣고 다니기에 기술적 제약과 비용 부담이 크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비교적 보관과 해상 운송이 용이한 액화 암모니아(영하 33도)를 연료로 싣고 다니며, 선상에서 화학 반응을 통해 수소와 질소로 분해(크래킹)해 이를 대용량 연료 전지에 공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시스템은 100년 넘게 선박의 심장 역할을 해온 거대한 기계식 내연 기관 엔진을 대체한다. 연소 과정 자체가 없어 탄소 배출을 원천적으로 100% 차단하는 것은 물론, 피스톤 운동 등 엔진 구동으로 인해 발생하던 거대한 소음과 진동까지 없앴다. 선원들의 승선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해양 수중 생태계에 미치는 소음 공해마저 지워낸 진정한 무탄소 항해 시대를 연 것이다. 나아가 삼성중공업의 시선은 선박 건조 그 이상을 향해 있다. 바다 위에서 직접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부유식 블루 암모니아 생산 설비'를 비롯, 이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재기화하는 해양 플랜트 설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함으로써 '에너지 밸류체인' 전체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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