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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트럼프, BTS, 그리고 K방산

말은 마음의 거울이자,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창이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의 언어는 개인 차원을 넘어 그 조직과 국가의 격조를 결정짓는다. 최근 전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새로울 게 없긴 하여도, 그 일관성에 재삼 놀라고 또 '경탄'하게 된다. CNN의 에런 블레이크 기자가 지적했듯,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가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그는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의 사망 소식에 “죽어서 기쁘다"고 환호하는가 하면,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고인이 된 정적들을 향해 저급하고 몰지각한 비난을 쏟아냈다. 블레이크 기자는 “수년간 이어온 저급한 발언들의 정점"이며 “이제는 단순히 막말하는 수준을 넘어 죽음을 노골적으로 축하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더 큰 비극은 트럼프의 천박한 언어가 실제 행동과 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언어가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사악한 언행일치의 심각한 사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5년 3월 4일, 남북전쟁 막바지에 행한 제2차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으로(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는 모두에게 악의를, 자신에게만 자애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듯하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방산 수출 현장은 다른 의미에서 언어의 품격이 시험대에 오르는 곳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유 공급 협상 과정을 설명하며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원유 수급과 방산을 계속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성과를 과시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한 태도다. 중동의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 우리 무기의 경이적인 요격률과 방산 대박을 찬양하는 보도가 자칫 초상집 옆에서 잔치를 벌이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신문의 관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가 사실 확인의 어려움과 인도주의 관점을 들어 보도를 절제한 것은 언론의 기능과 품격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확인되지 않은 승전보를 옮기기보다, 왜 우리가 이 시점에서 침묵하거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보도가 될 수 있다.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보도하는 제3의 길이 언론에게 적절한 타협안이 된다.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BTS가 21일 공연에서 보여준 태도 또한 긍정적이다. 그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들의 아미뿐 아니라, 슈가와 지민 등이 직접 언급했듯 공연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감사의 언어는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자 품격의 발로다. 만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트럼프가 천박한 말과 사악한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품격 있는 언어에도 상응하는 행동이 따라붙는다면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감사의 말을 넘어, 광화문이라는 공공의 장을 활용한 BTS가 공공의 가치를 위해 뭔가 실제적인 행동까지 보인다면 무대의 상업적 품격이 무대 밖에서 인격적이고 실천적인 품격으로 완성된다. 품격 있는 언어는 단순히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자신의 성과 앞에서 겸손하며, 보이지 않는 곳의 헌신을 기억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사회의 지도층이 내뱉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그만큼 의무가 따르지 않지만 스타들의 말에도 품격이 서리면 좋다. 내뱉는 말의 격이 곧 삶의 격이 되고, 그 격조가 다시 행동으로 순환하는 사람을 뉴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bienns@ekn.co.kr

[EE칼럼] 재생에너지는 산업 연료이고 안보 자산이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반감을 자주 드러냈다. 법원의 저지를 받기는 했지만, 수억 달러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무산시키려 했고, 육상풍력 발전 사업도 막으려 했다. 다른 국가들에게 화석연료로 회귀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영국을 향해서는 “나라 곳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태양광 패널에 대해서도 경관을 해치는 흉물, 매우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비난했고, 세기의 사기극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화석연료를 우선시 하며 태양광 프로젝트 수백 건의 최종 승인을 막았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변하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큰 폭의 전력수요 증가를 겪고 있다. 기술 기업들은 전력 부족으로 인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여기서 재생에너지의 실용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구글은 미시간주 남동부에 계획된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20년간 2.7GW 규모의 태양광,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 번째 계기는 지정학적 위기와 에너지 안보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이 이를 부각시켰다. 에너지를 외부의 장거리 운송이나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반면 태양과 바람은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없으며, 운송로 봉쇄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글로벌 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그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인 MAGA 진영도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 보좌관인 스티븐 밀러의 아내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인 케이티 밀러는 최근 “태양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이다. 우리는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토니 파브리치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 등 트럼프의 주요 측근들도 전력수요 급증과 에너지 가격 부담이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름에 따라 태양광발전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어조조차 바뀌었다. 그는 미국의 에너지 비용 인하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태양광 발전이 해결책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징후는 그동안 중지시켰던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의 허가 절차를 재개한데서 나타났다. 태양광발전을 전력망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비판했던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역시 어조를 바꿨다. 그는 태양광 발전이 전력망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상업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는 통계로 증명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26년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86GW의 발전 설비를 새로 추가할 계획이다. 이는 2025년의 53GW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점은 그 구성이다. 신규 설비의 절반 이상(43.4GW)이 태양광이며, 배터리 저장장치(24.3GW), 풍력(11.8GW)이 그 뒤를 잇는다. 천연가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약 6.3GW이다. 재생에너지가 미 전력망 확충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탄소중립의 수단이라는 명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시대에 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AI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산업 연료이자,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안보 자산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속도와 자립에 있다. 우리처럼 화석연료 매장량이 부족한 국가들에게 있어 태양광과 풍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조차 실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미 수립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할 때, 비로소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에너지 자립이라는 국가적 숙제 해결을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ekn@ekn.co.kr

‘작전 축소’ 하겠다더니…트럼프, 하루만에 “발전시설 날리겠다” 발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4주째에 접어들며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만에 상반된 메시지를 내놓았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축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압박 수위를 끌어올린 것으로 해석되지만 무력 충돌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현 시점에서 48시간 이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 없이 완전히 개방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이란의 주요 발전시설을 타격할 것"이라며 “가장 큰 발전소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전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군사적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했다"며 중동에서의 군사 작전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를 두고 전쟁 수위를 다시 끌어올린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중동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와중에 주요 에너지 시설이 잇따라 피격되며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이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석유·가스 수송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여파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지난 20일 배럴당 112.1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며 통화정책 경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매파적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는 3.9% 수준으로 올라서며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도 4.39%로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TD증권의 제나디 골드버그 미 금리 전략 책임자는 “이란을 둘러싼 충돌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서 미 국채 시장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은 더 이상 올해 금리 인하를 반영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일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준의 정책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값도 크게 흔들렸다. 지난 20일 4월물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4574.9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값은 지난주에만 11% 급락하며 1983년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고 CNN은 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연말 목표치를 기존 7500에서 7200으로 하향 조정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충격이 기업 수익성과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연말까지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S&P500 주당순이익(EPS) 컨센서스는 2~5% 하향 조정될 것"이라며 “유가 상승폭이 더 커질 경우 하락 압력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번 전쟁이 4주째에 접어들었음에도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AFP통신은 “중동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지만 명확한 출구는 여전히 부재하다"며 “미국의 목표와 이란의 버티기 능력 모두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제니퍼 웰치 등은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이라며 “이란 지도부를 겨냥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와 미국의 요구에 대한 저항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진다"며 “군사 작전을 종료해 긴장을 완화하거나, 이란의 굴복을 유도하기 위해 충돌을 더욱 격화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현금 확보해라”…중동전쟁 장기화에 금융시장 ‘패닉셀’ 나올까 [머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4주차로 접어드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전쟁 장기화 조짐에 원유 공급 차질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주식·채권·금 전반에서 '패닉셀'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주식 비중 축소와 현금 확보를 권고하고 나섰다. 21일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96% 내린 4만5577.4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51% 하락한 6506.48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2.01% 급락한 2만1647.61에 각각 마감했다. 이날 하락으로 뉴욕증시 3대 지수는 4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며 모두 연중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 엇갈린 메시지에 불안 증폭…전쟁 장기화 우려 확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이란 공습을 결정했지만,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은 하나의 낙관적 시나리오를 주목하면서 움직여 왔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조기에 개방돼 원유 공급 차질이 제한적일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도 통화 완화 사이클을 재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했었다. 그러나 중동 에너지 시설이 잇따라 피격되는 등 무력 충돌 여파가 확대되는 상황에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불안을 키웠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란과) 휴전을 하고 싶지 않다"며 “상대방을 박살낼 때는 휴전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이란의 테러 정권에 대한 중동에서의 대규모 군사적 노력을 점차 축소하는 것을 검토하는 가운데, 군사적 목표 달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출구 전략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반대된다는 측면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백악관이 이란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점령하려는 계획에 무게를 두고 중동에 2000명 이상의 해병대를 추가로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을 상대로 전쟁 직전까지 협상 의지를 밝히다가 기습적으로 군사작전에 돌입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이번 발언 역시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신호로 해석된다. ◇ 브렌트유 100달러대…금리 인하 기대감 '소멸' 이 같은 불확실성을 국제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6월물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2.53% 오른 배럴당 106.4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이자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배럴당 98.32달러를 기록하며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현 시점에서 이번 충돌이 제한적 국면에 그칠 것이라는 신호는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중동 지역에서 하루 약 1000만배럴 규모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며, 이번 사태가 글로벌 원유 시장에 역대 최대 수준의 공급 충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급 차질이 4월 말까지 이어질 경우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180달러 돌파를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들도 유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브렌트유에 대한 자산운용사들의 주간 순매수 포지션은 7만7672건 증가해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며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전혀 인하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실제로 미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는 3.9% 수준으로 올라서며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도 4.39%로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TD증권의 제나디 골드버그 미 금리 전략 책임자는 “이란을 둘러싼 충돌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서 미 국채 시장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은 더 이상 올해 금리 인하를 반영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일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인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에 “더 제약적인 통화정책 기조가 필요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르면 내달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연준의 정책 경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값도 흔들렸다. 이날 4월물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4574.9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값은 이번 주에만 11% 급락해 1983년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고 CNN은 전했다. 시버트 파이낸셜의 마크 말렉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번 주는 시장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전환점"이라며 “이번 충돌은 종료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장기전일 뿐 아니라, 중동 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 “이제 시작"…증시 추가 하락 압력 커진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앞으로 추가로 위축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는 점이다. 고유가의 여파는 가계 소비와 기업 수익성, 금융 여건, 환율, 통화정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계는 연료비 증가로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기업은 비용 상승 압박을 흡수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디젤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실물경제 전반에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의 경우 금리 인하를 전제로 형성된 밸류에이션이 되돌려질 가능성이 있고 신흥국 시장에서는 자국내 정책 대응으로 상쇄할 수 없는 자금 유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골드만삭스의 크리스티안 뮐러-글리스만 자산배분 리서치 책임자는 “이번 금리·에너지 충격이 지속되거나 심화될 경우 자산 전반의 성장 기대는 더 약세 방향으로 재조정될 수 있다"며 “현재 시장은 성장 둔화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JP모건 자산운용의 프리야 미스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사태는 역사상 가장 큰 에너지 충격 중 하나로, 이를 완화할 뚜렷한 정책 대응 수단이 제한적인 만큼 경기침체 위험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기업과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충격을 흡수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주식과 신용시장이 지나치게 견조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에 소시에테 제네랄(SG)은 글로벌 주식 비중을 5%포인트 줄이고 원자재 비중을 같은 폭으로 확대했다. BCA리서치는 고객들에게 현금 비중 확대와 주식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향후 3개월 동안 현금 비중을 '비중 확대(Overweight)'로, 신용자산은 '비중 축소(Underweight)'로 조정하고 기타 주요 자산군은 '중립'으로 유지할 것을 제시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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