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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사이 붉은 노을 번지며 낙동강 수면까지 붉게 물들여 6·25전쟁 상흔 간직한 호국의다리 위로 펼쳐진 '평화의 풍경'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호국의다리' 위로 무지개가 떠올랐다. 그 뒤로는 붉은 노을이 번졌다. 푸른빛을 머금은 먹구름과 무지개, 노을이 한 하늘에서 어우러지는 보기 드문 장관이 경북 칠곡에서 펼쳐졌다. 제13호 태풍 '돌핀'의 간접 영향으로 비가 내린 지난 9일 오후 칠곡군 왜관읍 칠곡 , 이른바 '호국의다리' 일대. 하루 종일 흐린 하늘을 뒤덮었던 비구름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낙동강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먹구름 아래에서는 붉은 노을이 서서히 번졌다. 하늘을 가로지른 무지개와 노을이 한 화면에 겹쳐지면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특히 서쪽 하늘에서 시작된 노을빛은 낙동강 수면까지 붉게 물들였다. 강물 위로 번진 붉은 빛과 하늘에 걸린 무지개,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호국의다리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했다. 비가 내린 뒤 모습을 드러낸 무지개와 붉은 노을은 짙은 먹구름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저녁 하늘은 낙동강 물결에도 그대로 투영돼 장관을 연출했다. 이날 풍경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무지개 아래 자리한 칠곡 가 지닌 역사성 때문이다. 칠곡 는 일제강점기인 1905년 경부선 철도교량으로 개통된 뒤 오랜 세월 낙동강과 함께해 온 근대 교량이다. 특히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교량 일부가 폭파되는 아픔을 겪었다. 낙동강 방어선의 치열했던 전투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 현장이다. 이 같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칠곡 주민들에게는 공식 명칭인 '칠곡 '보다 '호국의다리'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하다. 오늘날 호국의다리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는 역사 현장이자 주민들이 낙동강을 바라보며 걷는 칠곡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쟁 당시 포화 속에서 일부가 끊어졌던 다리 위로 76년의 세월이 흐른 이날 무지개가 길게 이어지고 붉은 노을이 강물을 물들이면서 색다른 의미를 더했다. 짙은 먹구름은 서서히 걷히고 그 사이로 나타난 일곱 빛깔 무지개와 붉은 노을이 전쟁의 기억을 품은 다리를 감싸는 모습은 마치 아픈 역사를 넘어 평화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태풍이 몰고 온 비가 잠시 멈춘 뒤 자연이 만들어낸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호국의다리와 낙동강, 무지개와 노을이 한데 어우러진 이날 풍경은 칠곡의 여름 저녁을 특별하게 물들였다.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2026-08-10 08:25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폭파된 '낙동강 방어선'의 상징…역사의 현장 찾다 전쟁의 비극 품은 호국의다리, 이제는 시민 쉼터이자 평화 되새기는 역사문화공간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낙동강을 가르던 거대한 폭발음은 76년이 흐른 지금,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조명으로 바뀌었다. 폭파 시각에 맞춰 찾은 칠곡 는 한여름 밤의 불빛 속에서 조용히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물 위로 길게 드리운 철교의 조명은 마치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수면을 비췄고, 다리 아래 음악분수에서는 평화를 노래하는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관광객들이 야경을 감상하는 명소지만, 76년 전 이곳은 나라의 운명을 가를 치열한 격전지였다. 는 6·25전쟁 당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의 핵심 철도교량이었다.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께 미 제1기병사단장 호바트 R. 게이(Hobart R. Gay) 소장의 명령으로 교량 일부가 폭파됐다.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고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군사작전이었다. 당시 왜관 방면 두 번째 경간 약 63m가 끊어졌고, 이 작전은 유엔군이 방어 태세를 정비할 시간을 확보하며 이후 낙동강 방어와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전세 역전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전략적 의미만큼이나 깊은 상처도 남겼다. 당시 철교 주변에는 남쪽으로 피란하던 주민들이 몰려 있었고, 폭파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역 주민과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지금도 전쟁의 참상이 생생히 남아 있다. 철교가 끊기자 한 어머니는 포대기에 갓난아이를 업은 채 낙동강의 얕은 물길을 건넜다. 그러나 강을 건넌 뒤에야 등에 업고 있던 아이가 물에 빠져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했다는 사연은 전쟁이 남긴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는 주민들에게 '호국의다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한때 생사를 가르던 통로였던 이곳은 이제 시민들의 산책길과 운동 코스,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칠곡의 대표 역사문화 명소가 됐다. 다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과 낙동강 전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해가 저물자 철교에는 하나둘 조명이 켜졌고, 낙동강은 평온한 여름밤의 풍경을 담아냈다. 폭발음이 메아리쳤던 자리에는 음악분수의 물줄기가 춤을 추고, 총성이 울리던 강변에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76년이라는 시간은 전쟁의 폐허를 일상으로 바꿔 놓았지만, 호국의다리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다. 과거의 희생을 잊지 않는 일이 오늘의 평화를 지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낙동강 위에 우뚝 선 철교는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2026-08-04 05:57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