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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없이 주가가 치솟는 종목이 나오면 시장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뭔가 있다." 며칠 뒤 호재 공시가 뜨면 “역시"라는 말이 뒤따른다. 이 짧은 반응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공시보다 먼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급등은 그 누군가가 먼저 지나간 발자국이다. 투자자들이 공시 대신 소문과 급등 종목을 쫓는 건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이다. 공시를 읽어서는 늦으니, 앞서 간 사람의 흔적이라도 밟겠다는 계산이다. 추격 매수는 결국 미공개정보가 시장에 돌고 있다고 인정하는 행위다. 물론 모든 급등이 미공개정보 때문은 아니다. 수급이나 업황이 이유일 때도 많다. 그런데도 시장이 급등을 소문의 흔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이 공시에 대한 신뢰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보여준다. 이 전제가 근거 없는 의심만은 아니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지난 16일 고발·통보한 4건을 보면 공개매수 정보는 임직원 5명에서 가족·지인 11명으로 번졌다. 신기술사업금융사 대표는 유상증자 계획을 미리 알고 공시 전에 주식을 팔아 수십억원의 손실을 피했다. 공시가 나오기 전, 시장 어딘가에는 이미 발자국이 찍혀 있었던 셈이다. 이달에도 비슷한 의심이 잇따랐다. 코스닥 상장사 더코디에서는 임원 13명이 최대주주 변경 공시 직전 열흘 새 처음으로 주식을 사들였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대표 가족 등이 기술이전 공시 전 주식을 사고판 혐의로 15일 압수수색을 받았다. 아직 의혹과 혐의 단계지만, 시장이 급등부터 의심하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문제는 발자국을 쫓는 습관이 스스로 커진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급등을 신호로 읽을수록 가격은 공시 전에 먼저 움직이고, 공시가 나올 때 남는 몫은 줄어든다. 공시의 가치가 떨어지니 투자자는 더 부지런히 발자국을 찾는다. 시세조종 세력에게 이만한 먹잇감도 없다. 가짜 발자국을 찍어 급등을 만들면 추격 매수가 알아서 따라온다. 발자국을 따라간 끝에서 투자자가 만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먼저 온 사람이 던지는 물량일 수 있다. 공시 제도의 약속은 단순하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지켜진다고 믿어야 투자자는 발자국 대신 공시를 읽는다. 신뢰를 되찾는 길은 발자국이 찍히지 않게 하는 데 있다. 중대 계약과 자본거래는 협의 단계부터 정보 접근자를 관리하고, 공시 전 이상 급등은 거래소가 즉시 경위를 따져야 한다. 제재도 빨라져야 한다. 이번 공개매수 사건은 거래 뒤 1년이 넘어서야 결론이 났다.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 곧바로 드러나는 시장이어야 투자자도 발자국 쫓기를 멈춘다. 공시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정보가 될 때, 시장은 다시 공시를 믿는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2026-09-27 09:00 최태현 기자 cth@ekn.kr

주가와 시가총액이 낮아서 관리종목에 지정되는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달부터 한국거래소가 강화된 상장폐지 기준을 적용하면서 12일에만 36개 종목이 관리종목 명단에 올랐다. 최근 30거래일 시가총액이 코스피 300억원, 코스닥 200억원에 못 미치거나,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가 대상이다. 이후 90거래일 안에 45거래일 이상 기준을 넘기지 못하면 상장폐지로 이어진다. 이르면 10월 첫 퇴출 사례가 나올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강수를 둔 배경은 코스닥 시장이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코스닥 상장사는 343개에서 1821개로 다섯 배 넘게 불었지만 지수는 600선에서 900선을 맴돌았다. 상장은 넘쳐나되 부실기업 퇴출은 더딘 '다산소사' 구조 탓이다. 동전주만 코스닥에 156개로 코스피의 세 배에 달했고, 이들은 자본잠식과 감사의견 거절을 반복하며 개인투자자를 수년간 손실 속에 붙들어놓았다. 그러나 이 칼끝은 부실기업만 겨누지 않는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코스닥 상장사 149곳 중 30.2%가 흑자 기업이다. 실제로 영업이익이 두 배 가까이 늘었거나 우량기업부·라이징스타에 속한 회사까지 관리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지정 후 주가 급락과 거래정지가 시가총액을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의 인위적 주가 부양이나 가장납입 같은 불법행위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에서 소외된 소액주주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손실을 떠안는다는 점도 되풀이되는 우려다. 한국처럼 예외 없는 자동 산식으로만 미달 여부를 가르는 방식이 능사는 아니다. 미국 나스닥 역시 최저주가 미달이라는 정량 기준을 쓰지만, 통지 후 180일에 추가 180일까지 유예를 주고 그래도 부족하면 독립 청문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길을 열어둔다. 도쿄증권거래소도 기준 미달 기업에 '적합 계획서' 제출과 최대 1년 개선기간을 준 뒤에야 퇴출 절차에 들어간다. 같은 정량 기준이라도 회복 시간과 이의 절차를 넉넉히 준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부실기업 퇴출은 늦출 이유가 없다. 다만 그 칼끝이 일시적 위기에 놓인 흑자 기업과 소액주주의 재산권까지 겨눠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이의를 제기할 절차 자체가 없다면, 상장폐지에 내몰린 기업과 투자자는 결국 거래소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나스닥과 도쿄가 갖춘 유예와 이의신청 절차를 한국도 갖출 때, '신속'과 '공정'이 함께 설 수 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2026-08-20 14:38 최태현 기자 cth@ekn.kr